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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김정일 초청 배경과 실현 가능성

    이명박 대통령이 9일 독일 베를린에서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핵안보 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 ‘김 위원장의 방한→남북정상회담’이 순차적으로 실현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북한이 비핵화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확고하게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한과 관련, 비핵화를 전제로 ‘조건부 초청’을 한 것은 한반도의 핵 문제가 남북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판단에서다. “한반도에 핵이 있다는 것은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며, 핵무기를 가지고 통일이 됐을 때 이웃나라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8일 베를린 동포간담회)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1차 핵안보 정상회의 때도 이 대통령은 비슷한 조건을 달고 김 위원장 초청의사를 밝혔다. 당시 이 대통령이 내건 조건은 ‘북한이 핵 포기 의지를 밝히고 2012년까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번 비핵화 조건에 대해 “남북 비핵화회담 등을 통해서 북한이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성격의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북한이 염려하는 안전보장 문제, 경제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랜드 바겐의 세부이행계획은 6자회담 등을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북한의 비핵화 목표와 그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약속 등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통치자의 정치적인 적극적 메시지의 의미이고 (비핵화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돼야 한다는 그런 차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두고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진전된 제안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한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정부 당국도 현재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물밑접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김 위원장 방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천안함, 연평도 도발 사태와 관련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이 바뀐 것이 없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두 차례의 도발에 대한 북한의 분명한 사과가 비핵화 회담은 물론 남북관계 정상화, 본격적인 남북 간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대전제는 유지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합의’와 ‘도발에 대한 공식 사과’라는 두 가지 사안을 굳이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비핵화문제에 대해 6자회담에서 합의할 정도가 된다면 이미 충분히 천안함 문제 등에 대해 사과할 수준이 되기 때문에 굳이 선후 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주말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 여자의 잔혹동화가 시작된다.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되었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가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쇼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으로 해고당한 마츠코는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동거하던 작가 지망생은 자살해 버리고, 그의 친구와 불륜행각을 벌인 마츠코는 곧 버림받고 절망에 빠져 몸을 팔게 된다. 심지어 기둥서방에게 배신당한 마츠코는 그를 살해한 죄로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한다. ●카틴(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카틴 숲에서 자행된 폴란드인 대학살을 다룬 영화 ‘카틴’은 살해당한 폴란드 장교들과 그 사실을 모른 채 남편과 아버지, 아들과 형제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련공산당이 자신들이 자행한 학살을 강제로 묻으려 했던 거짓말에 대해 단호한 평가를 내린다. 2차대전 초기인 1939년 9월 17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스탈린의 명령을 받은 소련의 붉은 군대도 폴란드 땅에 침입한다. 그로 인해 모든 폴란드 장교들이 소비에트 수용소에 억류된다. 한편 기갑부대 연대장의 아내 안나는 남편 안제이를 기다린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살지만, 카틴 숲에서 폴란드 군인들의 시체 무더기들이 발견된 후 어쩔 수 없이 소련군들이 그의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당통(EBS 토요일 밤 11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인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9월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하며 수많은 과격파 정치인들을 단두대 위에서 숙청시킨다. 국민공회 산악당 소속 의원인 조르주 당통은 파리에서 평화를 호소하며 공포정치의 중단을 요구했고, 국민 공회와 정치인 친구들의 응원,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로베스피에르, 공안위원회 등과 맞선다. 몇 번의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민중의 반발이 두려워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의 기소를 거부한다. 하지만 비공개 회담에서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못하고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에 따라 국민공회는 당통과 그의 친구들을 체포한다. 당통은 뛰어난 웅변으로 재판장에서 자신을 변호해 보지만 결국 1794년 4월 5일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
  • 한·중 총리 FTA 도입 논의…원자바오 “빨리” 김황식 “만만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중국을 공식 방문 중인 김황식 총리에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요청했지만 김 총리는 “본격 협상 전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 입장을 전했다. 원 총리의 “빨리빨리” 요청에 김 총리가 ‘만만디’(천천히)로 화답한 셈이다. ●원자바오 “일단 시작 뒤 문제점 개선” 김 총리는 14일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전날 원 총리와의 총리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원 총리가 ‘일단 협상을 개시하고, 문제점은 협상 과정에서 논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중국 측에 ‘협상 개시도 좋지만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리 측 입장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김황식 “농수산물 등 준비 필요” 김 총리는 “농수산물 등 민감한 분야와 관련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우리도 중국의 제안과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해진 일정과 추진 방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중 FTA와 관련해 양국은 지난해 5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치고 정부 간 본격 협상 시작에 앞서 민감 분야에 대한 사전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견이 많아 눈에 띄는 진전은 없다. 지난 11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방중,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과 만나 지난해 9월 첫 번째 협의 이후 중단된 제2차 사전 협의를 빠른 시일 내 진행키로 합의한 바 있으나 날짜를 못 박진 않았다. 한편 김 총리는 남북 비핵화 회담과 관련,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아직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북한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고 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 사전 협의 이견… 진전 없어 김 총리는 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와 관련, 다음 달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정식 안건으로 올려져 원자력 안전사고 발생 시 3국 간 협조 강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날 오후 하이난다오(海南島) 싼야(三亞)로 이동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했으며 15일 보아오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내달 백두산화산 학술회의·6월 현지답사

    내달 백두산화산 학술회의·6월 현지답사

    남북은 12일 열린 백두산 화산 관련 전문가협의에서 5월 초 평양이나 편리한 장소에서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 6월 중순에 백두산 현지답사를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측은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2차회의를 열어 이같이 합의하고 합의문을 교환했다. 남북은 오전 11시 15분부터 회의를 시작해 오후 7시 넘어서까지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합의서 문안을 만들고 일정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차 전문가 회의에서는 양측이 공동연구에 대한 필요성에만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자료 교환이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었다. 이에 따라 우리 측 대표단은 이번 2차 회의에서 백두산 화산활동과 관련한 실태 파악에 주력하는 한편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데 주력했다. 수석대표인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교수는 이날 밤 귀환 후 경기도 문산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들에게 “우리 측은 백두산 화산 실태 파악에 중점을 두고 임했고, 북측은 화산활동 징후와 관련해 예년보다 최근 백두산 지진현상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언급하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학술토론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측이 5월 학술토론회와 6월 백두산 현지답사에 합의함에 따라, 이를 계기로 당국 간 회담이 개최될지 관심이 주목된다. 통일부는 이번 회의가 민간 차원의 전문가 회의임을 강조하면서도 당국 간 회담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민간 차원에서 맺은 합의이기 때문에 대표단이 돌아오는 대로 결과보고를 듣고 방북 승인 등 필요한 지원을 할 것”이라면서 “추후 구체적인 실무 절차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당국 간 접촉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한국 신속한 지원, 양국관계 긍정효과”

    “한국 신속한 지원, 양국관계 긍정효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80)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일본이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번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걸 교수는 16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이 플라자호텔에서 주최한 KF포럼에서 ‘한국과 중국, 1978-79: 발전의 전환점’을 주제로 한 강연과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관료사회는 굳건하며, 일본 국민들은 강한 저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탄탄한 관료사회도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 일본의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보걸 교수와의 단독 및 공동 인터뷰 내용이다. →일본 대지진이 한·일, 일·중 관계에 미칠 영향은. -한국이 매우 신속하게 일본을 지원하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며 한·일 관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매년 20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는 등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한국처럼 일본을 잘 아는 나라도 없다. 한편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는 계기는 될 것이다. 일본 대지진이 당장은 한·일, 일·중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 부재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데. -일본의 탄탄한 관료사회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강력한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중국 급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 등을 계기로 동북아에서는 한·미·일과 북·중 간의 신냉전구도가 구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들이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 등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부임 초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협력 관계에 방점을 뒀는데, 이를 두고 미국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반응과 함께 지난해 중국이 과도하게 강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최고위급 간의 관계 개선을 통해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본다. 지난해 중반 이후 중국 군부도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앞으로 군부와 정치적 지도자 간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으며, 시진핑 등 차세대 지도자들이 군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의 바람직한 대중 정책 방향은. -한국이나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상호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원칙에 입각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궁지로 몰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중국이 우려하는 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미·중 간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최고 정치 지도자 간 관계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중, 대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려면 한국과 일본 정부 내에 여야,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진영의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해 정권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정책의 근간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주제를 북한으로 돌려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은. -북한 핵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6자회담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해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보걸 교수는 ▲1930년 7월생 ▲1958년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1964~2000년 하버드대 교수 ▲1972~1977년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소장 ▲1995~1999년 페어뱅크 연구소장
  • 양제츠 “6者 시기·방법 협상 더 필요”

    ‘맞은 기자는 있는데 때린 경찰은 없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중국내 ‘재스민 집회’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중국 경찰의 외신기자 구타 사실을 부인했다. 양 부장은 7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외국기자를 때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양 부장은 대신 “중국은 법치국가로서 외국기자들도 중국의 법률과 법규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베이징 도심 왕푸징(王府井) 거리에 제2차 재스민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외신기자들이 몰려들자 중국 공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외신기자 수십명을 ‘강제 격리’ 조치하고, 블룸버그통신 기자를 둘러싼 채 폭행한 바 있다. 중국 공안은 중국내 재스민 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외신기자들에게 ‘중국 법 준수’를 요구했는가 하면 최근에도 불시에 사무실을 찾아와 ‘거주등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사실상의 취재방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양 부장은 이날 직접적으로 ‘재스민 혁명’을 언급하지 않은 채 “설과 원소절(대보름)을 즐겁게 보낸 중국인들은 지금 한마음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다.”면서 “(중국에는) 어떤 불안한 현상도 없다.”고 일축했다. 양 부장은 “우리는 당 중앙과 국무원의 지도하에 앞길에 놓인 곤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결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 부장은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재차 강조하면서도 “회담을 언제, 어떻게 재개하느냐는 문제는 협상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6자회담 조기 재개를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양 부장은 “어떤 문제도 하룻밤 사이에 해결방법을 찾을 수는 없다.”면서 “현재의 유리한 시기를 잘 이용해 관련국들이 조속히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게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미 관계와 관련해서는 올초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 이후 다양한 고위층 교류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추가 무기 수출에는 “결연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지난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악화된 중·일 관계와 관련, 양 부장은 최근 양국 간의 대화분위기를 전하면서도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선을 그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또 남북 정상회담 비밀 접촉설

    한국과 북한이 지난 1월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목표로 비밀 접촉을 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 1월 한국과 북한이 중국에서 정상회담 실현을 목표로 비밀 접촉을 했고, 이 자리에서 북한의 무력도발 처리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남북 비밀 접촉에는 북한 쪽에서 남북 관계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양측은 “정상회담 실현을 목표로 장애가 되는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 핵문제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협의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당시 접촉에서 한국 측은 과거 2차례 열렸던 정상회담과 달리 북한 이외의 장소에서 열 것을 요구해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북한이 무력도발과 관련해서는 유감 표명도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사히 신문은 “한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열려는 이유는 임기가 2년 남은 이명박 정부의 실적을 만들고,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요구하는 미·중 양국의 압력을 피하는 한편 한반도 정세에 대한 협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아는 바 없다.”며 보도내용의 진위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러, 쿠릴열도에 미사일… 영토갈등 고조”

    “러, 쿠릴열도에 미사일… 영토갈등 고조”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분쟁이 고조될 조짐이다. 러시아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열도에 실효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미사일과 공격용 헬리콥터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러시아군 참모본부 고위관계자가 쿠릴열도 연안에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인 야혼트를 장착한 이동식 미사일시스템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대공 미사일과 신형 공격용 헬리콥터도 배치할 계획이다. 공격용 헬리콥터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열도의 에토로후(러시아명 이투루프)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쿠릴열도에 배치할 대함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300㎞이며 200㎏ 이상의 탄두를 운반할 수 있다. 현재 쿠릴열도에 주둔 중인 제18 포병사단은 1970년대 실전배치된 소련제 방공 미사일 스트렐라10 12기, 50년 이상 된 소련제 탱크 T55 94대, 제2차 세계대전 때 생산된 122㎜ 대포 M30 18문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1956년의 일본·소련 공동선언에서 남쿠릴열도 4개 섬 가운데 시고탄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반환하는 대신 대규모 경제협력을 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격화되면서 사실상 이를 백지화했다. 극동의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일본이 투자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중국을 끌어들인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의 반응은 신중하다. 내각부의 시가타 노리유키 부홍보관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미사일배치 상황을 매우 면밀히 살피고 있다.”면서 “지난달 일·러 외교장관회담에서 논의된 것처럼 양국 정부 관계자들 간에 원활한 대화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의 양국간 상호 교환도 촉진해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앞서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상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쿠릴열도 4개 섬 반환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일본은 러시아 극동 개발의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선점당할 가능성이 있어 러시아를 강력하게 몰아붙일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미사일 배치 등 군사적 행동이 강화될 경우 보수세력 등이 위기에 처한 간 나오토 내각을 더욱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先 남·북대화 後 북·일대화” 한·일 외교 재확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무상은 16일 ‘선남북대화, 후북·일대화’ 기조를 재확인했다. 양국 외교장관은 이날 도쿄 외무성 이이쿠라 공관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핵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남북 간의 진정한 대화를 우선으로 다양한 양자 접촉을 통해 올바른 6자회담 재개 여건을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외교장관은 또 북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 장관은 회담에서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반출된 도서 반환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참여 등이 원만히 이행될 수 있도록 성의 있는 대응을 요청했으며 마에하라 외상은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마에하라 외상은 협상의 조기 재개를 요청했고 김 장관은 오는 4월 2차 국장급 협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2월 임시국회 정상화 논의 ‘평행선’

    2월 임시국회 정상화 논의 ‘평행선’

    여야 원내대표가 14일 2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한 실무절차를 협의했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오후 국회에서 만나 구제역 관련 국정조사 등 2월 국회 개회 조건들에 대해 논의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회담에서 전국적인 구제역 확산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구제역의 심각성이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고 있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아직 구제역이 진정되지 않았고 2차 환경오염 피해 등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민주당은 구제역·일자리·전셋값·물가 대란 등 4대 민생 문제를 다룰 민생 특위와 남북관계 개선 특위, 국민연금제도 개선 특위, 공항·발전소·가스충전소 주변 민원 해결을 위한 특위, 정치개혁특위 등 모두 5개의 특위를 여야 동수로 국회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 원내대표는 “특위 구성에는 공감하나 인원수는 교섭단체별 소속 의원의 비율대로 해야 한다.”면서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것은 관례상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위원장을 제외한 24명의 특위위원을 여야 동수로 할 것을 제안했으나 한나라당은 의석 수에 따라 한나라당 14명, 민주당 7명, 비교섭단체 3명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5개 특위 위원장의 경우 한나라당 3명, 민주당 2명으로 의견이 좁혀졌지만, 민주당은 민생·남북관계 개선·정치 개혁 특위 위원장 가운데 하나를 민주당몫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공항민원 해소 대책·국민연금 특위 위원장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8일 새해 예산안과 함께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던 친수구역 활용법, 서울대 법인화법, 한국토지주택공사(LH)법 등 5건의 법안에 대한 폐기안 또는 수정안을 우선 상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테니 한나라당과 정부에서 제출했다가 민주당 측의 거부로 상정을 못 한 법안들에 대해서도 우선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민주당이 약속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여야는 국회 폭력을 비롯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및 강행 처리를 방지하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2월 국회 내에 국회 운영위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원내대표는 금명간 다시 접촉해 의사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한·중·일 투자협정 5월 체결”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오는 5월 21일과 22일 도쿄에서 열리는 3국 정상회담에서 외국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와 투자 자유화 등의 규칙을 담은 투자협정 체결에 최종 합의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6일 보도했다. 투자협정은 투자자와 국가 간의 분쟁 처리나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 대해 규정하는 틀이다. 외국 기업에 부과하는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더욱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관세나 세관 절차 등 폭넓은 분야를 자유화하는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체결하기 쉽다. 한·중·일 사이에는 양국 간 투자협정이 이미 발효돼 있지만, 중·일 간 협정에 지적재산권 보호 규정이 없다는 점 등이 결점으로 지적돼 왔다. 일본 기업의 제품과 기술 저작권 등이 피해를 보아도 중국의 국내법에 근거한 소송을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3국은 협정 체결 이후 각국의 국회 승인 등을 거쳐 내년 중에 투자협정을 발효시킬 방침이다. 한·중·일 3국은 2007년 3월 투자협정 교섭을 시작했다. 3국의 경제계는 지난해 5월 제주에서 열린 ‘제2차 비즈니스 서밋’에서 3국 투자협정의 조기 체결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한편 5월에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중, 한·일은 각각 양국 간 정상회담의 개최 시기를 조정 중이다. 한·일 경제협력협정(EPA) 교섭 재개 여부와 지난해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이후 악화된 중·일 관계의 재구축이 초점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내년 서울 ‘2차 핵안보회의’ 의제서 북핵 제외 배경·전망

    내년 서울 ‘2차 핵안보회의’ 의제서 북핵 제외 배경·전망

    2012년 4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배경과 전망이 주목된다.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어 우리나라가 유치한 핵문제 관련 최상급,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에서 북핵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31일 북핵문제가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 방지 등 핵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북핵문제는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별도 의제로 논의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핵문제를 다루는 범주는 안보(security)와 안전(safety), 방호(safeguard) 등 3가지로 나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들 중 핵안보에 초점을 맞춰 열리는 것으로, 핵테러 방지 및 핵물질 안전 확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특히 이 기준에 따르면 북핵문제는 핵테러 등과 관련된 안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핵물질 생산을 막는, 이른바 방호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북핵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북핵 6자회담 등 다른 채널을 통해 협의되고 있는 사안”이라며 “핵안보정상회의는 군축·비확산·핵안보 등 큰 틀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북핵문제 말고도 다뤄야 하는 글로벌 이슈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방호뿐 아니라 안보, 안전 등 모든 범주와 연관될 수 있는 복합적인 성격인 만큼,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미국 측도 북한의 핵물질이 핵확산으로 이어지거나 테러조직의 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니 의제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고농축우라늄과 분리된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인정한다.’는 등 북핵과 관련된 조항들이 정상성명에 담기면서 북핵문제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북핵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상황에서 북핵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의제로 삼아 협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북핵문제를 협의할 경우,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외교부 한 당국자는 “외교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활용한 북한 비핵화 촉구’ 방한을 밝혔는데 정작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가 언급되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내년 한해 북한의 핵폐기를 6자회담을 통해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고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인 2012년 4월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선포할 때, 서울에서는 미·중·일·러 등 정상들이 모이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 전까지 북핵문제를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핵안보정상회의를 북핵문제 해결에 활용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북핵은 없다 ?

    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북핵은 없다 ?

    오는 2012년 4월 각국 정상 5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가 의제로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달 중 핵안보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교섭대표(셰르파)로 차관보급 인사를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의제에서 빠지게 되면서 준비위원회에도 북핵문제 관련 당국자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31일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어 내년 4월 서울에서 제2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며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목적이 정상들 차원에서 핵테러 방지 및 핵물질 안전확보대책 등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것인 만큼 북핵문제를 별도 의제로 삼아 논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북핵문제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의제로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이 9·11테러 이후 핵물질을 제대로 관리해 테러조직들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이른바 핵 안보(security)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라며 “북핵문제는 핵 안보 이슈라기보다 핵 방호(safeguard) 관련 문제이기 때문에 의제로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북핵문제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의제화되지 않음에 따라 이달 중 출범할 예정인 준비위원회에도 북핵문제를 총괄하는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당국자들은 배제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핵안보정상회의 준비위는 외교부 국제기구국을 중심으로 한 군축·비확산 전문가 및 교육과학기술부 핵전문가 등 20여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라며 “북핵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6자회담을 다뤄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당국자들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유치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가 별도로 다뤄지지 않게 됨에 따라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하) 중국의 對美정책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하) 중국의 對美정책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중국의 대미정책 변화를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지난해 지속적으로 대립, 견제하던 양국 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속히 협력 모드로 바뀌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상호 존중, 윈윈 하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었다.”고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했다. 중국의 대미정책 변화는 사실 지난해 말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제12차 국가경제 및 사회발전 5개년 계획인 ‘12·5 규획’을 확정한 중국 공산당의 17기 5중전회(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해 10월 이후다. 곧이어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미 항공모함의 서해훈련 등으로 양국 간 긴장 및 대결 구도는 계속됐지만 중국은 조심스럽게 ‘화해 메시지’를 미국 측에 날리기 시작했다. 외교 라인이 선두에 섰다.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 외교부장이 잇따라 미국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후 주석 방미 직전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보다 분명한 어조로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중국의 대미정책은 당분간 이런 기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내부 사정 때문이다. 중국은 내년에 후 주석 등 4세대 지도부가 퇴진하고, 시진핑 부주석 등 5세대 지도부가 등장하는 권력 이동기에 접어들었다. 후 주석으로서는 10년 집권을 마치고 모양새 있게 퇴진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후 주석은 부주석 재임 기간을 포함한 지난 14년간 이렇다 할 업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퇴진을 앞두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현실적 요구가 있다. 이번 방미에서 유난히 강조한 것처럼 ‘12·5 규획’이 올해부터 시작됐다는 점도 미국과의 대결 정책을 펴기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성장 방식의 전환, 분배 구조의 개혁 등이 핵심인 12·5 규획은 중국의 미래 30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의 최대 관심사항이다. 12·5 규획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외적 안정, 특히 미국과의 관계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미·중 관계에 정통한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도 “올해와 내년, 양국 관계는 지난해의 대결 국면이 무색할 만큼 매우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등 잠재적 불안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설령 미국이 또다시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한다 해도 중국이 지난해와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후 주석이 이미 자신의 필요에 의해 협력을 약속한 상황에서 얼굴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까닭에서다. 물론 안정적 대미정책을 위협하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대결 국면도 사실 외교 라인보다는 군 수뇌부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의 직접적 통제 아래에 있는 중국 군부가 최고지도부의 의중에 역행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일반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군부가 마오쩌둥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 전례도 있다. 당시 마오쩌둥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군부의 반발을 일거에 잠재웠지만 후 주석 등 현재의 지도부에는 그런 힘이 현저히 부족하다. 시 부주석 등 차기 대권을 접수할 5세대 지도부의 의중도 변수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대미정책 변화 등에 대해 ‘내년 당대회를 앞둔 후 주석 계열의 입지 강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NLL 충돌·심리전도 논의 가능성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일정이 합의되면 남북은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논의하게 된다. 또 북한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할 것에 대해 논의하자며 회담 범위를 넓힘에 따라 두 사건 외에 군사 현안에 대한 논의를 추가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 논의 진전될 수도 일단 정부는 조만간 성사될 회담에서 두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 도발 방지에 대한 확약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북한이 먼저 두 사건을 의제로 내걸고 회담을 제의한 만큼 북한의 사과와 약속을 받아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서다. 군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두 사건에 대해 우리 측에 책임을 떠넘기던 북한이 전격적으로 두 사건에 대해 의견을 밝히겠다면서 회담을 제안한 만큼 우리 측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 연평도 사건 당시에도 NLL 이남 해역에서 실시한 우리 군의 포격 훈련을 자신들의 해역에 대한 도발로 판단했던 만큼 이번 회담을 통해 NLL에서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또 천안함 사건 이후 시작된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 중단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이 체제 붕괴 등 북한 주민들에 영향을 끼친다며 불쾌감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 일부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우리 정부가 비핵화 문제는 별도의 정부 당국자 회담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내걸어 회담에 대한 합의 정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남북국방장관회담은 두 차례 개최됐다. 1차 회담은 2000년 9월 24일부터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렸다. 당시 조성태 전 국방장관과 김일철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이 만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공동 노력, 남북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실무급 회담 개최 등 모두 5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장관급 회담 2차례 열려 7년 뒤인 2007년 11월 27일부터 이틀간 평양에서 열린 2차 회담에서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김일철 부장이 만났다. 두 장관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보장, 서해상에서의 충돌 방지, 남북 유해 공동 발굴, 각종 교류협력사업의 군사적 보장 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으며 7개조 21개항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은 당시 합의서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들을 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데스크 시각] ‘신종 샌드위치’ 한국의 생존전략/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신종 샌드위치’ 한국의 생존전략/오일만 경제부 차장

    2006년 4월 20일,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하나가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백악관 환영식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의 소매를 ‘기분 나쁘게’ 잡아당기는 모습이었다. 식전 행사가 끝난 것으로 착각한 후 주석이 단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의 오만한 표정과 후 주석의 일그러진 얼굴이 오버랩됐다. 미국은 이날 타이완(Republic of China)의 호칭을 사용했고, 중국 당국이 극도로 기피하는 파룬궁 시위마저 방치했다. 미국은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중국인들은 한동안 ‘굴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절치부심, 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들은 ‘세기의 담판’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중국의 위상이 불과 5년 만에 주요 2개국(G2)으로 우뚝 섰고, 미국도 최상의 예의를 갖춰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달도 차면 기울 듯,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구가하던 미국도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2극, 다극체제로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는 대세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형국이 된 한국의 자화상이다. 샌드위치라는 말은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흥 중국과 기술력에서 앞선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의 어려움을 빚댄 말이다. 하지만 2011년의 상황은 당시보다 더욱 엄중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변수로 G2(미·중)의 글로벌 경제패권 전쟁을 꼽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환율과 금리, 재정 등 모든 경제전략을 놓고 불꽃 튀는 대결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의 환율 갈등은 길고 긴 경제전쟁의 서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한반도 냉전체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진행형’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을 중국은 대중 포위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3국과 북·중·러 3국이 대립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안보적 입지는 더욱 좁아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안보의 최대 파트너(미국)와 경제의 최대 협력자(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생존 전략을 펴야 하는가. 우선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소규모 개방경제’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다. 온갖 외풍이 곧바로 우리 경제에 직격탄으로 날아오는 구조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우리의 무역 의존도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82.4%로 G20 국가 중 가장 높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규모(1168억 달러)는 이미 미국과 일본을 합쳐 놓은 액수보다 더 커졌다.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길목을 선점해서 역량을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손자병법 36계 가운데 18계인 ‘금적금왕’(擒賊擒王)의 전략이다. 적을 제압하기 위해 가장 핵심부인 적장부터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행히 중국은 산업재편 과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차 5개년 경제개발 규획(規劃)을 통해 신재생 에너지와 바이오, 신소재 등 6대 분야를 핵심 전략산업으로 결정했다. 중국기업들도 일본과 한국기업의 성장 경로를 따르지 않고 곧바로 첨단 산업에서 승부를 보는, ‘도약형 성장’을 택했다. 중국이 향후 10년 동안 집중투자에 나설 6대 미래 지식기반 산업을 우리가 빨리 선점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거대중국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지만 중국이 한국에서 기술과 지식을 사가도록 경제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고래등(중국)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고 일갈한다. 결국 용중(用中)의 국가전략은 ‘샌드위치 한국’이 피할 수 없는 외통수인 것이다. oilman@seoul.co.kr
  • 인도 원전·철도 진출 모색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도를 방문해 원전, 철도, 항만 등 분야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진출 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양국은 또한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세무관련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가칭 ‘한·인도 세무조정협의체’를 신설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윤 장관과 프라나브 무케르제 인도 재무장관은 17일 뉴델리에서 제2차 한·인도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양국 간 협력분야를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금융·인프라 등의 산업으로 확대해 나가자는 데 뜻을 함께했다고 재정부가 밝혔다. 윤 장관은 한국형 원전의 뛰어난 품질과 안정성을 설명하면서 인도 원전건설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재정부는 “우리 측은 지난 1월 정상회담 시 추진키로 한 원자력협정 체결이 조속한 시기에 마무리되고 인도 원전 공사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 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며 “인도의 노후화된 철도시설 교체와 고속철도 건설계획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도 표명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제3국의 인프라 개발에 대한 협력 강화에도 뜻을 모아 수출입은행 간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오바마, 두차례 만찬 특급예우… 후진타오, 기업인 500명 동행

    오바마, 두차례 만찬 특급예우… 후진타오, 기업인 500명 동행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국빈 자격으로 나흘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사실상 주요 2개국(G2)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지구촌의 이목이 이번 후 주석의 방미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32년 전인 1979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 워싱턴을 방문해 국교를 맺은 일을 상기시키며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묵직한 시각도 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 1인자의 방미가 처음이 아닌데도 이번 후 주석의 방미가 유독 지구촌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까닭은 두 정상의 이번 회담이 향후 10~15년간 미·중 관계를 넘어 국제 사회 전반의 질서를 새롭게 규정하는 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림)의 시대를 끝내고 본격적인 ‘대국굴기’(大國崛起·우뚝 일어섬)의 시대를 열기 시작한 중국의 부상과 함께 현대 국제사회의 흐름이 ‘미국과 소련의 양강구도→미국 1극 체제→미국과 중국의 G2체제’로 재편됐음을 공식화하는 이벤트가 이번 회담이라는 평가다. 특히 무역 불균형을 둘러싼 기존 미·중 간 경제적 갈등을 넘어 최근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거치면서 형성된 ‘북·중 대(對) 한·미·일’의 신(新)냉전구도는 미·중 정상 간 안보 대화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정세를 감안할 때 이번 후 주석의 방미는 미국과 중국이 윈윈하는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제로섬 게임으로 치고 받는 사실상의 적국(敵國)으로 치달을지를 가늠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양국 모두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부통령 내외가 후진타오를 공항에서부터 영접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2차례나 만찬을 베푸는 등 특급 예우를 준비해 놓고 있다. 후진타오도 중국 기업인 500명과 동행함으로써 ‘선물 보따리’의 크기를 암시했다.  재선을 의식하고 있는 오바마로서도, 아직은 더 성장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도 서로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에 양측은 얼굴을 붉히는 일은 피하면서 한껏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회담의 의제는 크게 돈(경제)과 힘(군사력)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위안화 평가절상과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 문제 등에서 ‘제1전선(戰線)’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명쾌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신 중국으로서는 대규모 대미 투자와 미국의 대중 투자 환경 개선 등 비교적 수월한 쪽에서 미국을 배려할 개연성이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북한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하루아침에 흔들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특유의 모호한 화법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역으로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 등에서 미국이 중국을 배려할 개연성도 낮다. 따라서 이런 민감한 문제보다는 이란 핵문제, 테러리즘 등 ‘낮은 단계의 이슈’에서 타협하는 모양새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후진타오의 방미는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두 거인이 싸우지 않고 웃으며 악수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의미는 작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글로벌 시대] 베이징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위기/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베이징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위기/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지난 한해 한반도는 긴장의 악순환을 겪었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향해 순항하는 듯 보였던 한반도가 왜 긴장과 위기 속에 빠져들게 됐을까. 남북한 및 주변 주요국가들의 돌출 행동을 순화시키고 제약할 수 있었던 6자회담 같은 다자 틀이 사라진 탓도 있을 것이다. 2008년 말 6자회담이 표류하자 북한은 선군정치로 더 매진하면서 핵 개발을 가속화했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미국이 이를 방치한 탓도 있다. 전임 정부와 달라진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이에 대한 북한의 모험적인 대응이 상황을 더 나쁘게 했다. 남북한의 정책과 실제 행동의 상호작용은 한반도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이다. 한반도가 불안정해지고, 갈등이 깊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한반도가 긴장되면 어김없이 외세의 개입 강화가 따라온다. 미국의 개입이 심화되고, 일본도 이에 호응하면서 입지 강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이래저래 미국에 더 기대게 된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기존 세력 구도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새로운 전략 조합과 변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략적인 균형 변화를 중국은 바라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적대적 대치 관계 형성은 남북한이나 중국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반도가 불안정해지면 중국도 남북한 못지않은 피해자가 된다. 한반도 상황 악화로 손해는 누가 보고, 이득은 누가 챙겼을까. 한반도의 긴장은 미국에는 득이다. 동북아에서 전략적 존재와 패권적 지위를 더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긴장을 통해 실제로 미국은 한·미, 미·일 군사동맹이라는 미국의 ‘동북아 패권의 발판’을 더 굳건하게 할 수 있었다. 미국의 군사적 힘과 결의를 과시하고 강화할 수도 있었다. 한반도 불안정은 중국을 견제하고 누르는 유용한 구실로 이용된다. 한반도의 불안정은 중국의 지속 발전에 필요한 평화로운 외부 환경을 훼방 놓는다. 중국에 심리적, 군사적, 외교적인 부담이다. 중국의 발전과 영향력 확대를 도전으로 여기는 미국은 긴장과 갈등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놓고 한반도 상황을 쥐락펴락하려 한다. 미국의 국익에 따라, 정책적 목적을 위해 상황을 주도하려고 한다. 이달 초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한·중·일 동북아 3개국 순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6자회담이 표류하고 북한 비핵화과정이 중단되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에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했고, “왜 북한을 굴복시키지 않느냐.”며 중국의 대북 경협과 지원을 비난했다. 중국은 2002년 시작된 2차 북핵 위기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남북한 사이에서 중재·조정 역할을 시도했지만 그 어느 편에 서서 특정 입장을 옹호하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참여했지만 북한에 대한 채찍과 당근(유인책 및 인도적 지원)의 병행과 균형을 주장해왔다. 안정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런 선택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모험주의 행동을 겪으면서 한국 정부는 새로운 장애를 만났다. 화해정책에 대한 반감과 격앙된 여론은 대북 화해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은 긴장과 대결에서 협상 국면으로 옮겨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면서 공을 한국과 미국 측으로 던졌다. 그동안의 과정과 배경이 어떠했는지에 관계없이, 북한의 평화 공세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호소력과 영향력을 갖는다. 한국 정부가 이를 한 차원 높은 고차원 외교로 다뤄야 할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 신년사에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지구촌 선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한국이 ‘북한 리스크’에 발목을 잡혀서야 되겠나. 한국 정부가 2011년을 동북아 평화 국가의 명실상부한 이미지를 선점하고, 북한 리스크를 국가 도약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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