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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재단 “조명균, 검찰서 폐기 진술 한 적 없어” 與 “사전·사후 이행문서도 누락” 추가 의혹 제기

    노무현재단이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전혀 사실무근”으로 일축하면서 논란을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이 본격화한 이후 처음으로 본격 대응했다. 회의록 실종 논란 국면에서 양측이 구체적 사실을 가지고 벌인 사실상 첫 공방이다. 이 과정에서 진실의 키를 쥐고 있는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도 처음 등장했다. 조 비서관은 모 신학대 2학년에 재학 중으로 부인이 투병 중이라 더욱 예민해진 상태이며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재단과의 전화통화에서 “국가정보원 협조를 받아 회의록을 작성, 노 전 대통령에게 이지원으로 보고했고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지원 보고서를 폐기하라는 어떠한 지시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고 재단 측은 밝혔다. 이어 “올해 1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 검찰 조사 때 폐기와 관련한 진술을 한 적도 없다”면서 일련의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고 한다. 이에 새누리당은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은 물론 NLL과 관련된 다른 회의자료도 누락됐다”며 연관 회의록 파기 의혹을 추가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당 내부적으로 ‘사전 준비·사후 이행문서 사이에 몇 가지가 없구나’ 하는 심증이 있다. 우리 입장에선 이것까지도 파기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사전 준비회의에서 내부적으로 격론이 벌어진, NLL 문제에 대해(노 전 대통령 발언이 담긴) ‘뭐가 중요해’ ‘당장 없애버려’ 등 그런 자료”라고 말했다. 노무현재단과 조 전 비서관 반박에 대해선 “당시 검찰 진술에 의하면 (노 전 대통령의 폐기 지시가) 거의 사실”이라고 재반박했다. 여권은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청와대 지시로 1차 회의록 파기 후 음원을 듣고 정교하게 다듬은 2차 회의록을 노 전 대통령 지시로 폐기했을 가능성, 회의록이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보유 중인 음원 파일이 공개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은 “국가기록원이 국회에 제출한 회담 전후 부속자료 열람부터 하고 NLL 논란을 끝내자”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핵심인 회의록 원본이 없는 상황에서 부속서류만 보는 것은 물 타기 시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부속서류 열람은 오히려 논란만 더 증폭시킬 소지가 있다”고 맞섰다. 민주당 소속 대화록 열람위원들은 이날 오전 해당 자료를 보관 중인 국회 본관 3층 운영위 소회의실을 방문해 단독열람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史草 게이트’ 본격화] 못 열어본 ‘판도라의 상자’… ‘사초 실종’ 수사 불가피론 확산

    [‘史草 게이트’ 본격화] 못 열어본 ‘판도라의 상자’… ‘사초 실종’ 수사 불가피론 확산

    ‘사초(史草) 실종’ 사태가 결국 검찰 수사의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가 지난 2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257명) 찬성으로 ‘판도라의 상자’인 국가기록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20일 만에 ‘회의록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초 실종’ 의혹이라는 새로운 혹을 떠안게 된 정치권으로서는 이를 묻어 두고 가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검찰 수사 불가피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수사는 회의록 행방 찾기와 더불어 ‘언제 어떤 과정에서 회의록이 누락됐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보고에선 회의록 분실 원인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가 그대로 묻어났다.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당시 청와대에서 기록원으로 이관한 외장하드와 기록원에 탑재된 팜스(PAMS·대통령기록물 관리 시스템) 체계의 문건 수가 동일했지만 (노 전 대통령 재가를 거친) 목록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록원에 아예 회의록이 이관되지 않았다는 여당 주장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반면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이지원에서 팜스로의 자료변환 과정에서 보호기간 누락 의혹, 이관된 외장하드와 팜스 용량의 불일치 등을 지적했다. 이런 논란은 향후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야가 회의록 실종은 확인했지만 국회에 기제출된 정상회담 전후 관련 문서를 열람할지를 놓고선 2차 공방이 예상된다. 여당은 “회의록 원본이 없는 마당에 부속서류 열람은 의미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이다. 그러나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논란의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여부”라면서 “새누리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23일 단독 열람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는 친노무현(친노)계를 겨냥해 국정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음성 파일 공개를 재차 주장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국정원 녹음 파일을 들으면 민주당도 쇼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증발된 회의록을 찾는 작업과 국정원 국정조사를 병행하자며 친노계를 달랬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가 묻힐 것을 우려하는 기류다. 회의록 증발사태 관련 특검을 주장한 친노계는 물러서면 참여정부의 회의록 폐기설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고민이 깊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국제화 등 견해차 좁혔지만 재발방지책 이견 여전

    국제화 등 견해차 좁혔지만 재발방지책 이견 여전

    남북한은 22일 개성공단에서 제5차 당국 간 실무회담을 열고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문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수정안과 재수정안을 주고받는 등 조율을 시도했지만, 결국 재발방지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양측은 25일 6차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기웅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일부 협의가 진전된 부분도 있었지만 좀 더 조율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재발방지 부분에 대한 입장 차가 가장 크다. 우리측은 재발방지 보장을 위해 북측의 확고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은 이날 제도적 보호장치 문제를 논의할 별도의 기구를 마련할지를 놓고도 논의를 진행했다. 김 단장은 “이 문제는 제도적 보상장치 항목에 포함할 수도 있고 따로 갈 수도 있다”며 “어떤 기구가 필요한지, 어떤 내용을 할 것인지 (북측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전에만 두 차례 전체회의를 여는 등 남북은 2~4차 회담에서 ‘밀린 진도’를 서둘렀다. 오전 10시 제1차 전체회의에서 남측은 지난 3차 회담(15일)에서 북측이 제시한 합의서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았다. 낮 12시부터 열린 2차 전체회의에서 북측은 재수정안을 제시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김 단장과 북측 단장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총국 부총국장이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김 단장은 회담 전망과 관련,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남북이 국제화 문제 등 일부 항목에서는 견해차를 좁혔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장을 둘러싸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6차 회담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회담은 출발 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측 대표단이 북측 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하자 북측 관계자들은 소지한 책도 검색하는 등 한층 강화된 형태의 짐 검사를 했다. 회담에 앞서 박 부총국장이 먼저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는데 회담을 잘해서 어둠을 걷어내자”고 건넸다. 이에 김 단장은 “장마도 있지만 때가 되면 맑은 하늘 아래 곡식이 익는 철이 올 때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회담에 앞선 모두 발언에서 김 단장과 박 부총국장은 선문답처럼 날씨에 빗댄 입씨름을 했다. 개성공동취재단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과제 (상)남·북한 입장

    [정전협정 60년]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과제 (상)남·북한 입장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둘러싼 남북 간 줄다리기는 협정 체결후 1년도 안 된 1954년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현재 한국을 제외한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과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남북한 간 평화협정 체결에 무게를 뒀었다. 김일성 주석은 1962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1차 회의에서 미군철수와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했으며, 같은 해 10월 제3기 제1차 회의에서도 평화협정 체결을 재차 강조했다. 요지는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 남북한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각각 병력을 10만명 이하로 축소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기조는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이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상호 무력침범 금지 ▲상호 내정간섭 금지 ▲휴전협정 존속을 골자로 하는 남북 상호불가침 협정체결 등을 역제의했다.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양측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억제해 전투 상태의 일시적 정지를 초월한 준(準)평화 상태를 만들자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에 있어 남북한 당사자 원칙을 고수할 것과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할 것, 대북 군사 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측 주장이었다. 그러자 북한은 우리 측 제안을 거절하면서 입장을 바꿔 같은 해 3월 미국 의회에 서한을 보내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더 이상 전쟁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고, 대북억지력이 사라진다면 남한의 공산화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한국이 정전협정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으며,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실질적 권한 행사자’인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1984년 1월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남북 사이에는 불가침 선언을 채택하자는 소위 3자 회담 형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이 없자 북한은 1987년부터 주한미군 즉각 철수에서 단계적 철수로 주장을 완화한 데 이어, 1990년대 들어와선 적대적 군사행위가 없다면 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뉘앙스의 발언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예 2002년 10월에는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정전협정마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불가침 조약의 체결은 더욱 절실하다”며 목표를 불가침 조약 체결로 바꿔 잡았다. 불가침 조약은 기존에 제안했던 북·미 평화협정에 비하면 일보 후퇴한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2003년 3월 20일~4월 14일)을 앞두고 전운이 고조되자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을 우려한 북한이 미국과 우선 불가침조약부터 체결하려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평화협정 논의는 2005년 9월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북핵 문제와 맞물려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됐고, 북한의 핵 포기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 동시에 별도 포럼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 및 평화체제 보장을 동시에 논의하는 포괄적 해결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9·19공동성명 이행을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때문에 자신들의 핵을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들이 마무리된 뒤에야 핵폐기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핵폐기와 관련된 실질적 조치들이 마련되고,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구축돼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고 맞섰다. 양측의 현격한 입장 차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18대 대선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전 상태를 지속시키는 배후에 유엔군사령부가 있다고 주장하며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하고, 어떤 형태의 전쟁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한 안보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와의 뮌헨 회담 후 ‘우리 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천명했지만, 그가 가져온 합의문은 1년도 안 돼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전쟁이 발발했다”면서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평화협정에 사인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당당히 맞서야 하며, 북핵 폐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을 분명히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종전 직후부터 협상…양측 입장따라 합의·결렬 되풀이

    [정전협정 60년] 종전 직후부터 협상…양측 입장따라 합의·결렬 되풀이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쌍방 군 사령관은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대표를 파견해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정전협정 제60항)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60년전 총성이 멈춘 직후 시작됐다.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치회담에서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했지만,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첨예한 입장 차로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후 1950~1980년대 남북 대치 상황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는 문구 정도만 포함됐다. 남북은 1989년 2월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을 준비하는 예비회담을 진행했다. 예비회담은 8차에 걸친 협상 끝에 1990년 7월 고위급회담 개최를 합의했다. 1992년 2월 18~21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5조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합의했다. 남북이 처음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을 공식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1991~1996년 북한은 공산군 측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 대표들을 철수시키면서 정전체제를 와해시키는 조치들을 취했다. 1996년 4월 제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4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97년 12월부터 1999년 8월까지 6차례 남·북·미·중 4자회담이 열려 한반도 평화 체제와 긴장 완화를 협의했지만 합의 없이 결렬되고 말았다. 북한 측이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설정할 것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한 탓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이 시작됐다. 2005년 9월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폐기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하기로 합의한 9·19공동성명과 성명의 1단계 조치에 합의한 2·13합의를 통해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을 합의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은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다. 10·4선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뜻을 모았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김 위웡장에게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0년간의 남북 회담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평화체제를 언급한 입장표명이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남북, 개성공단 5차회담 합의서 수정안 교환…오늘 협상 ‘고비’

    남북, 개성공단 5차회담 합의서 수정안 교환…오늘 협상 ‘고비’

    정부는 22일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제5차 실무회담에서 공단 가동중단 사태의 재발방지 보장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정부 대표단은 이날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제1차 전체회의에서 북측이 지난 회담에서 제시한 합의서에 대한 우리 측의 수정합의서안을 제시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전했다. 우리 측은 특히 재발방지 보장에 대한 북한 측의 전향적인 인식 전환을 촉구하면서 제도적 장치 마련과 개성공단 국제화 등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우리 측 수정안을 검토한 뒤 낮 12시 속개된 2차 전체회의에서 재수정안을 제시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남북은 오후에 추가 접촉을 통해 입장을 계속 조율해 나갈 예정이다. 이 당국자는 회담이 결렬될 분위기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녹음파일 없다”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녹음파일 없다”

    국가기록원이 18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과 회의록을 녹음한 음원 파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여야는 이날 회의록 열람위원 10명이 참여한 가운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으며, 국가기록원은 “대화록의 단초인 음원 파일도 찾지 못했다”면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회의 참가자들은 전했다. 열람위원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지난 15일에 이어 17일 열람위원 전원이 재차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추가 검색 결과를 확인했으나 해당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 열람위원인 우윤근 의원은 “현재까지 찾지 못한 것이 옳은 대답이며 모든 방법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야는 양쪽 열람위원 2명씩,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 2명씩, 모두 8명이 대통령기록관에서 회의록을 계속 검색하고, 오는 22일 10명의 열람위원 전원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최종 확인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대화록이 존재하는지는 이날 최종 판가름 날 전망이다. 민주당과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e)지원’과 국가기록원 간의 시스템 차이로 검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앞으로 나흘간 대화록을 찾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반면, 대화록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될 때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국회 정보위의 서상기 위원장은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음원 파일을 보관 중인 것을 확인했으며 차후 상황에 따라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며,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 불가피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날도 여야는 노무현 정부 또는 이명박 정부가 회의록을 폐기했을 가능성을 서로 제기하는 등 공방을 벌였다. 참여정부의 인사는 “대화록을 왜 못 찾는지 이해할 수 없다. 회의록 관리과정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다는 심각한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관계자는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넘기면 변경이나 폐기는 불가능하며, 법에 따라 봉인된 것을 건드릴 수도 없다”면서 “전형적인 물 타기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7월 27일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는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60년 세월, 정전협정 당시 갓 태어났던 아이가 회갑을 맞기까지 하루도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보지 못하고 살아온 허망하고 억울한 세월 60년, 그 세월을 뒤로하고 또다시 60년의 ‘생의 주기’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0년간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최근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겪었고, 지난 3~4월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 기간에는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고 실질적인 전쟁 위기를 경험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정전체제하의 삶에 익숙한 탓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못된 짓을 하는 북한을 처벌하는 정책’에 국민들이 길들여져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손쉬운’ 정책인 ‘압력과 제재’를 선택한 탓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됨으로써 우리는 아직도 이 땅을 서성이는 전쟁의 유령과 함께 살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한반도 문제’라는 ‘병’ 때문이고, 이 병의 연원은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분단시킨 데 있다. 이 병의 ‘근원’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구조, 즉 전쟁의 구조, 불신의 구조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 미사일 문제, 로켓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생겨나는 남북한 충돌, 연례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인한 전쟁 위협 문제, 심지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 등은 모두 병의 ‘증후’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병의 치료가 그렇듯이, ‘한반도 문제’라는 병도 완치를 위해서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안 되며, 반드시 근치요법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군사안보적 성격 등 여러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압도적이다.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것보다 더 정치적인 성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련국들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테크노크라트의 손에 맡겨짐으로써 전혀 문제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 정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부차원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북한 길들이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동조차 걸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들과는 달리 ‘6·25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초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모 재단이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설명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보면, ‘우선 추진과제’와 ‘중장기 추진과제’ 그 어디에도 평화체제 수립은 들어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평화체제 비전이 결여된 정책이 남북 간 신뢰 구축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동에 큰 공헌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평화 정착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구나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민주정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에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일종의 사회협약을 맺어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 안보 불안에 보수 달래기… 국방부, 전작권 ‘연기’ 대신 ‘점검’ 표현

    안보 불안에 보수 달래기… 국방부, 전작권 ‘연기’ 대신 ‘점검’ 표현

    정부가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를 다시 협의하자고 미국에 제의한 배경이 주목된다. 정부가 전작권 전환 문제를 꺼내든 시점은 지난 3월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협 수위를 급격히 높인 직후로 알려졌다.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3월 5일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위협한 데 이어 같은 달 26일 전략로켓군과 장거리포병 부대에 ‘1호 전투근무태세’ 명령을 내리는 등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런 상황은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처음 늦출 때의 명분과 과정, 모두 비슷하다. 참여정부 당시인 2007년 2월 양국은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2년 4월 17일로 못 박았다. 하지만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연기 주장이 불거졌고,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이후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연기론이 급물살을 탔다. 결국, 2010년 6월 26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전환 시기를 미뤘다. 노무현 정부에서 합의한 전작권 전환 일정에 대해 보수정권에서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미 정치적 논란 끝에 한 차례 연기했던 데다 2015년 전작권 전환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란 점을 의식한 듯 국방부는 ‘재연기’란 표현을 극도로 꺼렸다.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 소식이 알려진 17일 보도자료에도 ‘연기’ 대신 ‘점검’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김관진 장관은 헤이글 장관에게 연기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방부 관계자는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 국방부 관료가 실수로 언론에 ‘재연기’ 얘기를 꺼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전작권 전환 시점를 늦추려는 배경에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등 안보 불안이 커지고 있는 데다 보수층에 대한 고려가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는 전작권이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전환될 경우 연합사령부는 해체된다. 물론, 전작권 전환 뒤에도 연합사가 가칭 ‘연합전구(戰區)사령부’로 대체되면서 연합방위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새누리당 일각과 성우회·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연합사가 해체되면 양국 안보관계의 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며 전작권 전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여야 ‘NLL 회의록 원본’ 못 찾아…단순 검색 불가냐 원본 고의 폐기냐

    여야 ‘NLL 회의록 원본’ 못 찾아…단순 검색 불가냐 원본 고의 폐기냐

    여야가 17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 2차 예비열람을 마쳤지만 핵심인 회의록 원본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10명의 여야 열람위원들은 지난 15일에 이어 이날 경기도 성남 국가기록원을 방문, 자료 목록을 검토했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여부를 가려줄 회의록 원본 소재 확인에 실패했다. 정치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오늘까지 여야 열람위원들이 키워드(핵심어)로 요청한 자료 목록에서 회의록 원본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회의록 관련 목록을 단순히 못 찾은 것인지, 원본 자체가 폐기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여야가 각각 당 지도부에 이런 상황을 보고했고, 18일 오후 2시 국회 운영위를 열어 경위 보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야는 추가 예비열람을 통해 회의록 찾기에 나설지, 현 상황에서 본격적인 열람을 시작한 뒤 대응방안을 논의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파문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회의록 폐기 및 유출 여부를 놓고 새로운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말기, 또는 이명박 정부 당시 고의로 폐기했는지가 쟁점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사용하던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이(e)지원’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통째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자료 열람 활동에 정통한 핵심 관계자는 “검색어 태그(문서 정보에 키워드를 덧붙여 검색이 쉽도록 만든 것) 호환이 되지 않아 현재 시스템상 회의록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무현 재단 김경수 봉하사업본부장도 “국가정보원에도 남긴 기록을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국가기록원이 통째로 넘겨받은 ‘이지원’에 담긴 기록물을 자체 시스템에서 변환해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 국가기록원 시스템은 ‘이지원’과 달리 자료 간 링크가 되지 않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이) 있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에서 열람하자고 해놓고 또 그쪽에서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을) 맡겨놓고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대남 비방 줄인 北… 개성공단 조속한 재가동 포석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이어지면서 북한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남 비방은 크게 줄었고, 회담에 실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전날 있었던 제3차 개성공단 실무회담 소식을 전하며 “쌍방이 개성공업지구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 초안을 내놓고 의견을 교환한 뒤 17일 4차 실무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객관적 사실만 짤막하게 보도했다. 지난 10일 2차 실무회담이 끝난 뒤 3시간여 만에 결과를 보도하며 “남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 비난한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의 달라진 태도는 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적인 요인을 최소화하고,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지난 2차 실무회담 때 합의문 초안을 제시한 데 이어 3차 실무회담에서 합의문 수정안을 제안한 것도 의미있는 변화로 읽힌다. 북한 스스로 절충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막상 회담에서 드러나는 남북 간 입장의 차이가 너무 커 쉽사리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우리 측은 3차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재발방지대책 수립, 공단 국제화 등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개성공단의 조속한 가동이 급선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분위기도 종전과 달리 냉랭했다. 일각에서는 협상이 장기화 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전승 기념일’로 여기는 7·27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경우 회담 자체가 지속될지도 미지수다. 지금까지의 회담이 개성공단에 대한 양측의 총론적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면, 17일 개성공단에서 열리는 4차 실무회담은 보다 구체적인 각론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차 실무회담에서 우리측은 입주기업인들의 신변안전과 기업들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보완을 요구했다. 2차 실무회담 때보다는 구체화된 제안이다. 북측의 안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아직 우리 정부가 수용할 만큼 무르익은 해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南 “신변 안전” 北 “조속 재가동”… 7시간 기싸움

    南 “신변 안전” 北 “조속 재가동”… 7시간 기싸움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3차 실무회담이 15일 열렸지만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를 확인한 채 합의문 채택 없이 끝났다. 남북은 17일 개성공단에서 4차 실무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날까지 세 차례에 걸친 실무회담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입장 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해 앞으로의 협상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북측이 보인 태도를 감안할 때 우리 정부가 납득할 만한 해법이 바로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협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 측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개성공단 우리 측 인원의 신변 안전과 기업들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완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가동중단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들에 대해 국제적 수준의 기업 활동을 보장, 국제적 공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은 재발방지책 등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 제시 없이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하는 등 기존 입장만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 회담 당시 우리 측에 제시한 합의문 초안을 수정해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회담에서 남북은 시종 냉랭했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기웅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전체회의에 앞서 악수도 하지 않는 등 초반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회담을 시작한 양측은 집중호우와 관련돼 뼈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입씨름을 벌였다. 박 수석대표는 “공업지구 회담 결과가 큰 기여를 한다면 비가 미래의 축복이 될 수 있고, 아니면 한철장(한철 장사)이 될 수 있다”고 우리 측을 압박했다. 이에 김 수석대표는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개성공단이 발전적으로 정상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남북 대표들이 분발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해 본다”고 북측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양측 수석대표가 서로를 ‘회담 전문가’라고 치켜세웠던 1차 실무회담 때의 화기애애한 덕담은 오가지 않았다. 우리 측은 지난 12일 수석대표를 김 단장으로 교체했고, 북측은 회담 직전 대표단 3명 가운데 허영호 평양법률사무소장을 남북경협 전문가인 황충성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참사로 교체하는 등 양측 모두 대표단 진용을 정비했다. 북한의 대남 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민경협 소속인 황 참사는 2009년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1~3차 실무회담에 북측 대표로 나오는 등 개성공단 실무에 밝은 인물로 알려졌다. 한편 통일부는 개성공단 물자 반출 사흘째인 이날 섬유·봉제업종 입주기업 48곳이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 516t을 개성공단에서 반출했다고 밝혔다. 개성 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15일 남북 3차회담… 잇단 돌발변수에 개성공단 재가동 안갯속

    15일 열리는 남북 3차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동 중단 책임소재와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워낙 크고, 2차 회담 이후 새로운 변수들이 불거져 일단 ‘난산’이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 10일 개성공단 2차 실무회담 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카드’만을 받았다. 이에 북한은 이튿날 두 가지 제안 모두 보류한다고 통보해 왔다. 이와 관련,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당시 북측이 보낸 전통문을 뒤늦게 공개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명의로 된 전통문에서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 실무회담만을 수용한 우리 측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업지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 북남관계에서 어떠한 진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문제에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얘기로 우리측에 보내는 경고메시지로도 읽힌다. 통일부가 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전격 교체한 것도 변수다. 특정 사안에 대한 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책임자를 교체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4일 “북한이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을 거부당한 불만과 우리 측 새 수석대표 길들이기 차원으로 강력하게 나올 수도 있다”면서 “3차 회담은 4차 회담 날짜만 합의해도 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단절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북측은 조평통 전통문에서 “남측은 우리의 아량과 노력에 대해 오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성명의 정신’을 언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인 7·4공동성명을 강조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협력’을 바라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측의 국면전환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에 대화를 접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실무회담을 계속하기보다 ‘급’을 높인 회담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4차 회담에서는 남북이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기념일이면서 자신들이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하는 오는 27일을 즈음해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포토]윤호중 민주당 의원 공개 ‘등면적 서해지도’

    [포토]윤호중 민주당 의원 공개 ‘등면적 서해지도’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14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국정원과 새누리당 일각의 주장에 대해 ‘허위·날조’라고 반박하며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등면적’ 서해 지도 등을 공개했다. 윤 의원이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지도 사본에는 당시 우리 측이 북한에 제안한 공동어로수역, 해상평화공원, 한강하구공동이용수역, 서해공동경제특별구역, 평화생태공원 등 5개의 사업 구상을 서해상에 구역설정 등을 통해 구체화했다. 특히 공동어로구역으로 표시된 내용을 보면 NLL 북쪽의 장산곶 서쪽 해상을 포함한 총 4곳을 NLL 기준으로 남북이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이미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안이 이뤄졌다고 윤 의원은 설명했다. 윤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 측이 제시했다는 지도의 사본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지도의 사본도 공개했다. 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 측이 제안한 ‘등면적안’ 지도 사본에도 NLL을 기준으로 남북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4곳이 설정돼 있다. 그러나 이어진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측은 NLL 남쪽으로 어로구역 4곳을 설정하는 안을 제시했고 우리 측이 이를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윤 의원은 밝혔다. 윤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NLL을 기준으로 남북이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며, 뒤이어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과 정상급 군사회담에서도 우리 측은 이러한 방침을 일관되게 지켰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의원직 사퇴,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촉구했다. 윤 의원은 이날 공개한 지도가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배석했으며 이후 후속회담에까지 관여한 고위급 인사로부터 입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개성공단 실무회담 우리측 수석대표 교체

    개성공단 실무회담 우리측 수석대표 교체

    정부가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3차 실무회담을 사흘 앞둔 12일 우리 측 수석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통일부는 1, 2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의 수석대표를 맡았던 서호(53)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을 대기발령하고, 김기웅(51) 정세분석국장을 13일자로 신임 단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부서장으로, 북측과 공단 운영 등의 문제로 협상할 때 수석대표를 주로 맡는다. 정부는 이르면 13일 새롭게 정비된 대표단 명단을 북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수석대표를 교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북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고위공무원단 인사가 예정돼 있던 차에, 15일부터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바뀔 사람을 미리 투입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조금 일찍 발령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임 김 단장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5급 특채로 통일부에 들어온 뒤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기획총괄팀장, 남북회담본부 회담 1과장 등을 거치며 남북 협상에도 200여 차례 참여한 ‘베테랑’이다.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파견됐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북, 딴 생각 말고 ‘이산 상봉’ 인도적으로 풀라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과 올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열 것을 제안했다가 하루 만인 그제 이를 보류했다.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은 유보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만 즉각 수용하자, 북한이 “두 가지 실무회담 모두 보류”를 통보해온 것이다. 2010년 10~11월 진행된 제18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끊겼던 행사가 재개되면 혈육과의 생이별의 한을 풀 것을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1985년 서울과 평양으로 남북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평양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비롯해 2010년 10월 제18차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그동안 남한 측 상봉자는 신청당사자 기준으로 겨우 1874명이다. 7차례의 화상 상봉자 279명을 포함해도 모두 2153명이다. 1988년부터 대한적십자사가 받은 이산가족 상봉을 원하는 누적 신청자가 6월 말 현재 12만 8824명임을 감안하면, 전체 신청자의 겨우 1.7%에 불과하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7만 2864명(56.6%)으로 신청자의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만도 613명이 사망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의 다수는 초고령자이다. 70대 이상 고령자가 5만 8543명으로 80.3%에 이르고, 80대가 2만 9480명(40.5%)으로 가장 비중이 높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촌각을 다투는 이유다. 1988년 이래 지금까지 매년 2200명 이상의 신청자가 북한의 가족과 상봉하지 못한 한을 품고 돌아간 것이다. 함남 원산에서 19살의 나이에 1951년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던 소설가 이호철은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여동생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그 후 13년 동안 칠순이 된 여동생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추석에 임진각에서 차례를 지내던 고령의 실향민들이 점차 줄고 있다고 그는 한탄했다. 이씨와 같은 실향민들은 연간 1~2차례 상봉자로 각각 100여명을 선출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자들이 상봉하려면 730여년이 걸린다고 비판한다. 북한이 일과성 상봉 이벤트가 아닌, 상설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응해야 할 이유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간 정치적 갈등으로 부침을 겪어서도 안 된다. 혈육의 상봉은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또 북핵으로 예민해진 남한에서 남북 경협 분위기를 되살릴 명분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경협 확대의 실마리는 북측이 이산가족들이 혈육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는 데 성의를 보여줄 때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 北, 南 금강산회담 거부에 불만 표시… 실익 없다고 판단한 듯

    北, 南 금강산회담 거부에 불만 표시… 실익 없다고 판단한 듯

    북한이 11일 자신들이 제안했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회담과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을 돌연 보류시킨 것은 적십자 실무회담만 수용한 우리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이 무산된 상태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을 추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애초부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미끼’로 내걸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강산 실무회담을 통해 관광 재개에 대한 남측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이산가족 상봉 회담 등을 이용해 관광 재개 물꼬를 트려고 했을 것이란 얘기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신들의 목적이었던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 자체가 무산된 상황에서 이를 위한 카드로 활용했던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개최해도 남북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착시 효과’를 줘 북한이 목표로 하는 북·미 고위급 회담 등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데도 제안을 모두 취소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무회담이 성사돼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추석(9월 19일) 즈음인 9월 첫째주나 둘째주에 열렸다면 북한은 정권 창건일인 소위 ‘9.9절’을 앞두고 국면을 전환시킬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한국이 거부했는 데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추진하면 북한이 너무 저자세로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대내외에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대외에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이 같은 ‘저자세’ 외교가 대내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향후 미국과의 협상 국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실무회담 보류 조치가 오는 15일로 예정된 개성공단 관련 3차 실무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대화 공세를 펴오다 이 과정에서 남측이 보였던 태도를 평가하며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전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개성공단 관련 2차 실무회담이 끝난 지 3시간 만에 실무회담 개최 소식을 전하며 남측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현·진선미를 어찌할꼬” 고민 깊은 민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국정조사 특위 위원인 김현·진선미 의원의 제척을 놓고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두 의원의 사퇴는 있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국정조사로 정치적 성과를 내야하는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다. 당 지도부는 원활한 국정조사를 위해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당내 강경한 분위기 때문에 아직은 관망 중이다. 일단 “특위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의견만 내놓고 있다. 특위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다. “국조 활동기한(다음 달 15일)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국조가 우선”이라는 주장과 “새누리당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의 태도도 완강하다. 이날 전병헌 원내대표와 만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김·진 의원이 특위에 포함되면 사퇴하겠다고 버티는 위원들까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고민이 길어지면서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은 적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다음 달 15일까지로 국정조사 활동시한이 정해져 있고 파행에 따른 정치적 부담 등을 감안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지도부가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두 의원의 특위 위원 사퇴를 받아들이는 대신 새누리당으로부터 국정조사를 원만히 진행하겠다는 확약을 보장받자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편 민주당의 배재정 대변인은 전날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다시 주장한 것에 대해 ‘2차 정치 쿠데타’라면서 “허위 사실 유포의 책임을 물어 남재준 국정원장과 국정원을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北, 금강산 관광·이산상봉 회담 제안

    北, 금강산 관광·이산상봉 회담 제안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0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2차 실무회담이 합의문 없이 7시간 만에 종료됐다. 남북은 오는 15일 개성공단에서 3차 실무회담을 열고 후속 협의를 하기로 했다. 북한은 이날 회담과는 별개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17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19일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남북 적십자 간 실무회담을 금강산 또는 개성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관련 실무회담을 열되 장소는 판문점 우리 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하자고 수정 제의하고,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은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결정하자고 보류했다. 이 밖에 북한은 폭우로 인해 황해도 예성강 수위가 높아져 이날 자정 예성강 발전소 수문을 열겠다고 우리 측에 통보해 왔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동시다발적 대화 공세에 나서는 모양새여서 주목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측은 이날 회담에서도 개성공단 사태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만 주장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북측은 외국 기업 유치 등을 통해 개성공단을 국제화해야 한다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개성공단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는 남북이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3차 협의에서는 더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측은 북한이 최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존엄 훼손’ 운운하며 대남 비난 공세를 편 데 대해서도 “우리에게도 우리 체제의 최고 존엄이 있다”고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편 개성공단 입주 기업 59개사 대표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KT, 한국전력 관계자 등 96명도 이날 방북해 공장 설비 등을 점검한 뒤 귀환했다. 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석 달여 만에 공장을 둘러본 입주 기업인들은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다”며 안도했다. 또 “하루빨리 공장이 재가동되길 바란다”며 남북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개성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北 동시다발 대화 제의] 후속회담 합의문 실패 왜

    [北 동시다발 대화 제의] 후속회담 합의문 실패 왜

    남북이 10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2차 실무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향후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합의까지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고 있다. 이날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방안과 관련해 남북이 보여준 입장 차가 워낙 뚜렷해 오는 15일 예정된 후속 3차 실무회담에서도 양측 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측은 전체회의에서 북측에 공단 가동 중단 사태에 대한 책임있는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재발방지에 대한 분명한 약속과 가시적 조치를 촉구했다. 또 개성공단 국제화 방안 등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우리 측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하면서 우리 측 제안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회의를 포함해 총 5차례의 접촉을 갖는 동안 양측은 개성공단을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대(大)원칙 외에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했다. 7시간 동안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한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 측은 “북한도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존엄’은 그쪽(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있다”는 이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북측에 그대로 전하며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다. 남북이 최소한의 절충점도 찾지 못했던 것은 인식의 간극 차가 큰 탓도 있지만, 이같이 개성공단 외적인 문제로 강하게 맞붙은 정황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정부가 북한과 강대 강으로 맞붙은 데에는 어떤 요구를 해도 곤궁한 처지에 놓인 북측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북한은 실무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는데도 이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한 실무회담을 연달아 제기하며 ‘대화 공세’를 폈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 개성공단 실무회담의 전망을 밝게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열린 개성공단 실무회담 첫 만남에서는 남북 수석대표가 서로를 ‘회담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며 덕담을 주고받았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서로 “잘 지내셨습니까?”(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 “네네”(박철수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 등의 간단한 인사말만 주고받았다. 이어진 자리에서도 양측은 개성공단 발전 방안에 대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서 단장이 “남과 북이 합의를 하고 준수하는 게 신뢰의 첫걸음이다. 오늘 그런 협력 속에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좋은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운을 떼자, 박 부총국장은 “비가 많이 오는데 기업 설비·자재 상황 걱정이 크다”고 조속한 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양측 수석대표들은 환담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않는 등 이번 회담은 남북 간 입장 차가 뚜렷한 의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만큼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개성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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