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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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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남 자체가 성공…관계진전 희망적”/그레그 전주한 미대사 인터뷰

    ◎체육교류­이산재회 합의 가능성/현안의 한목해결 기대는 말아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고 미­북한간 3단계 고위급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리기로 함에 따라 한동안 전쟁일보전의 위기감에 휩싸였던 한반도상황은 다시 일변하게 됐다.43년간의 공직생활중 25년간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 일했으며 부시행정부때는 주한대사(89∼93년)를 지냈던 도널드 그레그씨는 잘알려진 미국의 한국통.현재 뉴욕소재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그레그 전대사에게서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등을 들어본다. ­귀하가 보는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는. ▲내가 현직 미국대사가 아님을 전제하겠다.그러나 나는 한국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또 한반도에 평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입장이다.그런 관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대단히 긍정적이다.지난 4∼5년동안 북한에는 좋은 뉴스가 없었다.외교적으로 러시아등과 관계가 악화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다.이제 김일성은 남한의 최고지도자가 평양을 찾아왔다는 좋은 뉴스를 갖게됐고 김영삼대통령은 아주 현명하게도 직접 평양을 방문,통일에의 일보를 디디게됐다.이런 점에서 정상회담은 매우 긍정적이다.그러나 남북한간 해결해야할 산적한 문제들이 일시에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어떻든 정상회담은 그것 자체 만으로도 성공적이며 (남북관계의)진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렇게 이뤄지리라고 최근 예상해본 일이 있는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상회담을 급작스럽게 이끌어 냈다고 보는가. ▲한국 국민들,북한 국민들은 물론 일본,중국국민들도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특히 남북한국민들은 6·25전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왜우리가 위기상황에 빠져야 하느냐』하는 위기의식이 회담을 이끌어 낸것같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는가. ▲우편물교환이나 전화통화,문화·체육교류,이산가족 방문같은 것들이 합의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잘만되면 제2차 정상회담에합의하게 될것이다.김일성이 서울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핵문제 해결에 어떤 돌파구를 기대할 수는 없는가. ▲추측하지 않겠다.두 정상간에 핵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얘기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나 정상회담은 보다 쉬운 문제를 다루지 않을까 생각된다.핵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데다 제네바에서 미­북한간에 토의되고 있을때이다. ­귀하는 개인적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나는 매우 낙관적이다.내가알기론 91년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했을때 그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실토했고 또 자신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같은 운명이 되는 사태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그때 북경의 지도자들은 중국식개방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음을 지적했고 김일성도 그것을 인정했다.독재자가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를 부여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루마니아사태를 막는 유일한 길은 중국식 모델을 따를수 밖에 없다는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김일성은 핵과 경제를 동시에 가질수 없음도 알고있다.
  • 대화 이어갈 정치 꼭 마련토록/조순승(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우리는 역사의 전환기에 서있다.한 시대의 획을 긋는 분기점에 서있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창조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다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 또한 막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잘못 판단하여 역사흐름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후세에 영원한 지탄을 면치못할 것이며 옳은 판단을 하여 민족통일의 길을 열어놓으면 민족사에 길이길이 잊지못할 지도자로 남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남북한의 실무자 회담에서 양정상이 수행원들의 배석없이 두차례이상의 단독 정상회담만 갖고 확대정상회담은 따로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운명을 두정상의 판단력에 일단 맡기겠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제삼자의 개입없이 단 둘이서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장래를 논하고 상호간의 진의를 파악할 기회를 줌으로써 분단의 서러움을 한꺼번에 씻어보려는 어떻게 보면 무모하게도 생각되며 또 한편으로는 막다른 골목에서 활로를 찾아보려는 대담한 시도이기도 하다.따라서 이 회담이 성공한다면 두 정상은 민족사에 영원히 빛나는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민족사의 전진을 20∼30년이나 후퇴시켰다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이러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두 정상이 회담에 임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처럼 중대한 회담은 우리 민족사에서도 그렇게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민족분단의 비운을 맛본지 49년만의 첫 정상회담이 아니던가? 그만큼 우리의 기대도 크고 회담에 임하는 두 정상의 책임도 무거울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과거 10여년동안 꾸준히 통일의 길을 확대해 왔으며 1972년의 남북공동선언이후 구체적인 실현방법을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즉 1992년2월17일에 발효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고위급회담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또한 동년 9월17일에 발효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제2장 남북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제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등이 있다. 또한 이 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1992년5월7일 발효된 「남북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남북교류협력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남북 연락사무소의 설치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있다.그뿐만 아니라 한반도내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92년2월19일 발효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과 1992년3월19일 발효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있다. 이렇게 많은 남북합의서를 진작부터 실천에 옮겼다면 우리민족의 통일은 현재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불행히도 이 모든 합의서가 선언적 효과만 거두고 실천화되지 못했고 지난해 3월에 있었던 북한의 NPT탈퇴선언으로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어 올해에 들어서는 전쟁재발의 위험선까지 이르기도 했었다.남북간의 전쟁이 재발된다면 우리 강산은 일순간에 초토화될 것이고 선진국으로 향하는 길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민족재생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것은 민족사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따라서 이번의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온민족의 힘으로 성공시켜야 한다.이 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단숨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오히려 회담을 좌절시키는 위험이 있다.처음 회담에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양정상의 신뢰구축에 역점을 두고 회담이 계속 열릴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힘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동서독의 제1차 정상회담에서도 그러했다.제1차 회담에서 동서 양수뇌들이 합의한 것은 전쟁을 피한다는 것과 제2차,제3차 회담을 계속해 나가자는 약속을 하는데 그쳤다.우리는 그 많은 합의서에 의해서 어떻게 하면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에는 이미 도달해있는 상태다.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지도자들의 의지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두 지도자가 실천의지를 표현해주기만을 온 민족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핵개발의 과거사를 꼬치꼬치 따질 것이 아니라 민족간의 분쟁은 전쟁이 아니라 대화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천명하여야 한다.아울러 이미 합의된 합의서의 이행을 지켜보며 독려하기 위해서는 제2차회담은 남한에서 열릴 것을 합의만 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핵의 과거사는 북미회담에서 거론될수도 있고 다음 고위급회담에서도 다룰수 있을 것이다.두 정상이 민족분단의 문제를 기필코 해결해야 겠다는 결단을 민족앞에 내놓음으로써 민족을 안심시키고 민족의 앞날에 희망를 주기만 해도 그 의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회담은 정상간의 단독회담이기 때문에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여야만 한다.의제가 없이 만난다고는 하지만 어떤 말을 꺼내고 어떤 문제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자체가 의제를 결정하게 된다.따라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예상되는 의제 선택에 만전의 준비를 기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결단력이라할수 있을 것이다.결단력없이 우유부단하면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김대통령이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민주화투쟁의 과정속에서 길러온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판단밑에 내리는 결단력이 이번 정상회담을 꼭 성공시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온 민족과 더불어 그가 우리민족사에서 찬란히 빛나는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
  • “수고했다… 평양에서 만나자”/남북정상회담 2차 실무접촉 주변

    ◎윤 대표,“토요일인데 일찍 끝내자” 조크/TV중계소 이용싸고 막판까지 진통/엄익순수행원,회담 길어져 딸 결혼식 못가 남북한은 2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대표 접촉에서 하오 늦게까지 계속된 마라톤 절충을 거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절차 문제를 매듭지었다. ○…양측 대표단은 당초 예정했던 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은 하오 6시40분부터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본회의장에서 50여명의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무절차합의서 서명식을 거행.양측은 지난달 28일의 예비회담과는 달리 합의문을 낭독하는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서명에 들어갔다. 양측대표는 양측이 배포한 2본씩의 합의서에 서명한뒤 1본씩 교환. 북측의 백남준대표는 서명을 마친뒤 『수고하셨습니다.이제 우리 사업이 다 끝났으니 평양에서 다시 만납시다』고 말했고 이에 우리측 윤여전대표도 『이틀간 진지하고 전향적 자세를 보여줘 감사합니다』고 인사. 이어 백대표는 보도진을 향해 『이틀간 수고했다』면서 『북남회담 보도사업과 민족의 통일 평화 번영에 기여하도록앞으로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 ○…이에앞서 북측대표단은 이날 상오 10시 정각 우리측이 보내준 두대의 그랜저 승용차에 분승해 평화의 집에 도착한뒤 관례대로 마중나와 있던 윤대표의 안내로 2층 대기실로 직행.차에서 내린 백북측대표는 윤대표가 『어서 오십시오.안색이 밝은것 같은데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글쎄요』라고 짧게 응답. 그러자 윤대표는 『오늘 무척 표정이 밝으신 것을 보니 회담이 잘 될 것 같다』고 은근히 실무절차문제 타결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북측의 백대표는 지난달 28일 예비접촉 때는 상당히 굳은 표정이었던데 비해 이날은 평화의 집 현관에서부터 자주 미소를 지어 눈길. ○…북측의 백대표가 논의에 들어가기전 『오늘은 일찍…』이라며 운을 떼자 우리측 윤대표는 『오늘 기자들로부터 토요일인데 일찍 끝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응수. 윤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기자들한테 잘못 보이면 곤란하다』며 『기자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자』고 제의하자 백대표도 『나도 기자선생들을 좋아한다』고 화답.윤대표는 이를 받아 『어제 관례대로 비공개로 하자』고 제의했고 백대표도 이에 동의,양측은 곧바로 2차 회담에 돌입. ○…이날 회담장 주변에는 우리측의 엄익순수행원이 실무접촉이 빨리 끝나 과연 이날 하오 3시로 예정돼 있는 장녀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 지에 관심.엄수행원은 결국 실무접촉이 하오 늦게까지 길어지는 바람에 결혼식에 불참.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라는 중대사를 맡은 탓인지 장녀결혼식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후문.서울의 공항터미날에서 있은 결혼식에서는 신부부친의 불참으로 신랑,신부가 함께 식장에 입장했다고. ○…양측대표는 전날 매듭짓지 못한 선발대 파견및 TV생중계 문제를 놓고 집중협의를 한 결과 북측이 선발대 파견에 대해서는 우리측안을 상당히 수용함으로써 회담분위기가 갑자기 활기. 그러나 생중계문제에서는 양측이 원칙적인 면에서는 의견접견을 보았으나 북측이 자기측 중계소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막판까지 진통. 양측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상오 11시 35분께 정회하기도. 정회중 양측은 각각 대표들간에 내부의견 취합을 벌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점심식사후 하오 2시에 속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백대표등 북측대표단및 기자단일행은 북측 통일각으로 향발. ○…양측대표는 점심 식사를 끝내고 하오 2시부터 회담을 속개,상오에 마련된 절충안을 갖고 곧바로 합의서 문안정리작업에 돌입.양측은 특히 우리측의 「경호」,북측의 「호위」 등 어휘사용을 비롯한 갖가지 세부문제를 놓고 장시간 협의를 계속해 회담장주변에서는 오늘안으로 매듭지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 북측 백대표는 회담장에 들어서면서 오늘중 합의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겠지요』라고 거리낌없이 말해 이미 합의쪽으로 복안을 갖고 왔음을 강력 시사. 백대표는 그러나 『4시까지 합의서 문안작성이 끝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까지는 좀 힘들다』고 말해 문안정리작업이 저녁늦게까지 이뤄질 것임을 비치기도. 뒤따르던 최성익 조평통서기국 부장도 『4시까지 끝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글쎄요…』라고 답변.빼어난 용모로 관심을 끌었던 최수행원은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출신으로 지금까지 줄곧 남북대화사업만을 담당해온 「대남통」이라고 북측의 한기자가 귀띔.
  • 남북정상 서울회담 열려야/평화보장 한민족대화합 선언을

    ◎이 민주대표 국회연설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1일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전제,『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통일시대의 문을 여는 한민족대화합선언을 천명해 줄 것을 두 정상에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대표는 이날 상오 국회본회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남북한의 신뢰회복을 위해 2차 정상회담은 반드시 열려야 하며 그 장소는 상호주의에 입각,서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북한핵문제와 관련,『북한핵의 투명성은 확실히 보장돼야 하며 현재와 미래의 핵투명성이 확보되면 과거의 핵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표는 이어 『남북관계의 질적개선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이 조속히 실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동·한은법 개정 늦출수 없어/이 민주당대표 국회연설 요지

    ◎「UR」 불리한 개방조건 수정을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특히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통일시대의 문을 여는 한민족 대화합선언을 세계만방에 천명해주기를 두 정상에게 촉구한다.북한 핵문제는 일괄타결방식으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하며 핵투명성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현재와 미래의 핵투명성이 확보되면 과거 핵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이와 관련,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이 빠른시일내에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제2차 정상회담도 반드시 개최되어야 하며 장소는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서울이어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잦은 정책혼선으로 소중하게 얻은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확고하고 일관된 외교통일정책을 수립하기를 촉구한다. 정보와 정책,그리고 역할이 정부와 야당사이에 분담되어야 한다.이런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나의 역할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상무대비리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현행 국정감사조사법에 모호한 점이 있다면 법을 개정,국정조사가 관철되어야 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지방자치시대에 대비,법적·제도적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올초의 물가폭등은 지금까지도 서민생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등 일부에 편중된 일시적 호황 현상을 두고 전체경제를 낙관하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공정거래법,한국은행의 독립을 위한 한국은행법,정의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금융실명제 대체입법,근본적인 세제개혁등을 통해 경제개혁의 기틀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UR협상의 최대피해국인 우리만 비준동의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먼저 한미 두나라사이의 쌍무협상에서 불리한 개방조건부터 수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이런 노력이 없다면 결코 비준동의안이 통과될 수 없다는 점을 재천명해둔다. 지하철과 철도파업사태는 갈등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정부는 공권력투입을 자제하고 해직노동자들을 현장에 복귀시켜야 한다.또한 노동자들은 극단적 파업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올바른 국가개혁을 추진한다면 조국의 장래를 위해 언제든지 협력하고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심상치않은 북의 남언론비방/「북전술 경계」보도에“분위기 저해”억지

    ◎2차 서울회담 거부위한 「복선」 가능성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한국언론들의 보도내용을 문제삼고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8일 판문점 예비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후 북측의 대남 비방의 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을 직접 거명해 「괴뢰역도」니 「○○○도당」이니 하는 욕설도 지난 24∼25일을 기점으로 북한의 주요 매체들에서 일단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정부당국에 따르면 톤은 낮아졌으나 대남 비방 그 자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28일 평양방송을 통해 『남조선 당국자들이 쌀시장 개방에 도장을 찍었다』며 우리측을 「쓸개빠진 주구」라고 원색적으로 매도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특히 북한의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이 30일 우리측 모일간지 특정기사 내용에 대해 트집을 잡고 나온 것은 심상치않은 대목이다.김일성주석과 북한의 대화전술에 경계를 촉구한 내용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발로만 보기 어려운 표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노동신문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개최를 위해 「분위기 조성」이 절실한 때에 북체제를 헐뜯는 기사를 실은 것은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행위』라고 반발했다.이는 북측이 지난 28일 타결한 「정상회담 개최 합의서」에 「양측이 회담 분위기를 흐리게 하려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하려고 기도한 점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때문에 북측이 우리 언론의 보도내용을 트집잡고 나온 것은 단순한 신경전이 아니라 고도의 복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김주석에 대한 비판 내지 경계적인 우리 언론의 보도내용을 정상회담에서 발을 빼려는 구실로 삼을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물론 북측도 국내외적인 여론을 감안한다면 이미 합의된 25일의 평양정상회담 일정을 번복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다만 내심 원치않고 있는 김주석의 「서울행」을 내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다수의 대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에도 권령해 당시 국방장관의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아 특사교환 실무접촉을 일방적으로 무기연기한 바있다.따라서 이번에도 남측인사들의 발언이나 우리측 언론의 보도내용을 남북간 대화의 「속도조절용」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만일 북한이 체제개방이나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없이 대북제재를 피한 채 미·북 관계개선을 촉진하기 위한 지렛대로 모양내기식 1회용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미·북 3단계회담에서 소기의 목표를 거두지 못했을 때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 통일논의 방향(남·북한 화해시대:4)

    ◎“한민족 공영” 원칙 평화통일 접점 모색/남 「3단계 3기조」·북 「10대 강령」/원칙·최종목표 등 유사점 많아 김영삼대통령과 북한 주석 김일성의 정상회담에는 따로 정해진 의제가 없다.관심사항이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달리보면 의제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두 정상이 반드시 짚어야 되고,짚고 넘어갈 게 틀림없는 의제가 있다.그것은 양쪽의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이다.관계자들도 핵문제·남북경협·이산가족 재회등 다른 예상의제와 달리 여기엔 이견이 없다. 남북정상회담에 무게가 실리고 시선이 쏠리는 것은 회담의 주 목적이 민족의 평화적 통일에 있기 때문이다.정상회담은 바로 그 통일로 가는 노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두정상이 통일론에 대해 합의하든,그렇지 않든 논의 그 자체만으로도 통일의 거보를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전문가들도 『남북의 정상이 처음으로 마주앉아 양쪽의 통일방안을 놓고 공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김대통령과김주석의 한판 논쟁이 불가피 해진다.가장 첨예한 문제이므로 벌써부터 두정상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물론 두정상은 서로의 통일안을 설명한 뒤 「평화통일」의 원칙을 확인하는 원론적인 차원의 대화를 나눌 것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그 특유의 설득력으로 새정부의 통일정책인 「화해·협력단계­남북연합­1민족 1통일국가」를 주요 골자로 하는 「3단계,3기조」를 설명할 것으로 예측된다.또 우리에게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음을 북측에 분명히 전달할 것이다. 김주석도 마찬가지다.연방제 통일안을 설명하면서 「10대 강령」을 다시금 확인할 게 분명하다. 남북의 통일방안은 그 원칙면에서,또 지향하는 최종목표에서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우리가 「1민족 1통일국가」라면 북한은 「자주·평화·중립적 연방제 통일국가」이다.궁극적으로 둘다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또 그 이념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3대 기조와 북한의 「10대 강령」도 얼핏보면 서로 통하는 대목이 많다.우리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구축된 자발적인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북쪽은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또 한민족이 공존공영의 정신으로 서로 교류·협력하고,특정이념과 체제보다는 민족복리를 우선생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이는 김대통령이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 『어떤 이념이나 체제도 민족을 우선할 수 없다』고 천명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북한의 10대 강령도 단결의 원칙으로서 사상·제도·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 공동의 최고이익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길 주장하고 있다.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존·공영·공리의 도모와 일체의 정쟁중지등 8개항을 요구한다.그리고 우리에게 10대 강령에 따라 외세의존정책을 포기하고 미군철수의지를 표명할 것등 4가지 요구사항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3단계·3기조」 통일정책이 현실을 인정한 실질적인 방안이라면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과 10대 강령」은 이념적이고 보다 해석이 자유로운 정치적 색채가 짙다. 북한전문가들은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정부의 한 당국자도 『북한과의 통일논의는 원칙적인 합의 속에 항상 함정이 있어왔다』고 설명했다.북한은 항상 합의문안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이들은 김대통령이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의전문제 현격한 의견차/오늘 2차접촉 진전 낙관”/실무접촉 윤여준대표 문답 우리측의 윤여준대표는 1일 3시간 남짓 걸린 남북정상회담 실무대표접촉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협상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윤대표는 『북쪽이 진지한 자세로 나왔으나 의견접근이 이뤄진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윤대표는 『합의를 보지 못한 「경호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의전문제」에 대해서는 의외로 북쪽의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하면서 「현격한 의견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윤대표는 『내일 10시에 만날 때는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2일의 2차 실무접촉 결과를 낙관했다.­이번에 합의가 안된 것은 북측의 정치적 의도 때문인가. ▲그렇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관행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본다. ­의전문제에서 국가·국기게양 등이 생략된데 대한 북한측의 반응은. ▲그런 세부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오늘 없었다. ­선발대 파견에 대한 이견은 파견시기의 문제인가,아니면 선발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인가. ▲북쪽도 선발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으나 선발대가 해야 할 역할과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는 이해의 차이가 있었다.
  • 차관 실무접촉 2년간 70여차례(동서독정상회담의 교훈:중)

    ◎“대화창구 유지 가장 중요” 공동인식/성과없어도 꾸준히 만나 신뢰구축 독일내부문제 전문가인 빌헬름 브룬스교수는 통일전 동서독관계의 특징을 정치적 대화를 계속하면서 분야별 교류협상을 통해 협정을 체결하는 「협력」(Kooperation)과 이념적 측면에서는 서로 화해하지 않고 군사분야에서 군비경쟁을 계속하는 「대결」(Konfrontation),그리고 서로 자기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쟁」(Kompetition)의 3K로 요약한 바 있다.이중 대결과 경쟁은 분단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협력은 첫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것이다.동서독간 첫 정상회담이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동서독간 첫 정상회담 개최가 곧바로 협력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중요한 것은 동서독이 정상회담으로 열린 대화창구를 유지하기 위해 쏟은 노력이다.동서독은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접촉을 계속했고 그 결과 대결과 경쟁만이 존재하던 동서독관계에 상호협력을 가능케할 신뢰분위기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일통일의 기본틀이 된 「동서독간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기본조약)조인으로 이어진 에곤 바(당시 서독총리실 국무차관)와 미하엘 콜(동독각료회의 국무차관)간의 회담을 들 수 있다.에르푸르트와 카셀에서의 1,2차 동서독 정상회담이 끝난 6개월 뒤인 70년11월27일에 시작된 동서독 국무차관회담은 기본조약이 체결된 72년12월21일까지 2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70여차례나 열렸었다.이같은 과정에서 첫회담이 시작된지 9개월여 만인 71년9월30일 「우편및 통신교류에 관한 의정서」가 서명돼 첫번째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그후 71년12월17일 「서독과 서베를린간 통과여행에 관한 협정」,그리고 「통행문제에 대한 동서독간 조약」(72년5월26일)서명 등 기본조약의 바탕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50년 가까운 한반도분단의 세월속에 남북한간에도 수많은 접촉이 있었다.그리고 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및 91년의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및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등 몇가지 중요한 성과를 도출,주목을 끌기도 했다.그러나 이같은 성과들은 그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남북한은 여전히 대립·반목을 계속했고 한반도의 긴장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이는 실제 이행을 위한 탄탄한 현실적 바탕을 마련하지 못한 채 너무 큰 목표에만 매달린 나머지 협정체결이란 성과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대결과 경쟁만 있고 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결과를 구하려 서둘렀던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개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상회담으로 열린 남북한간 대화의 창구를 계속 유지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대화창구가 닫히지 않는한 남북한 관계도 이제까지와 같은 대립·반목의 긴장국면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협력 쪽으로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정상회담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회담이후까지 이어나갈 때 비로소 알찬 결실을 거둘수 있음을 동서독의 경험은 보여주고 있다.
  • 예비접촉 뒤안/북측 「회담」 대신 「상봉」 용어사용 제의

    ◎우리측 이의제기,「회담」으로 일단락 북한측은 지난 28일에 있은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예비접촉에서 남북정상간의 「회담」이라는 용어대신 「상봉」으로 표현하자고 제의했으나 결국 우리측 제의를 수락,「회담」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합의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북측의 김용순단장은 그 당시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홍구통일부총리의 첫 발언에 이은 발언에서 남북정상회담 대신 「북남최고위급 상봉」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이에 우리측이 『남북정상이 만나는데 상봉이라는 표현이 말이 되느냐』고 하자 북측은 즉석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30일 정부의 한 당국자가 전했다. 우리측은 표현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북한측이 이처럼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채 곧바로 우리측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감을 잡고 이날 예비접촉 결과를 낙관했었다고 이 당국자는 부연. 또 2차정상회담 개최와 회담분위기 조성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홍구부총리가 북한의 김단장에게 마이크를 끄고 단둘이 얘기하자고 제의해 두 사람만의 비공개 단독회동이 이뤄졌으나 북한측이 10분도 안돼 마이크를 켜고 얘기하자고 번복했다는 것. 이같은 북측 태도로 미뤄 아마도 평양에서 예비접촉의 전과정을 지켜보고 지시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주석궁」 규모/대지,백만평… 4∼5층 복합 석조건물/지하 2백m 지점 주석전용 지하철 현재 정상회담 장소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곳은 김일성 집무실로 알려진 「금수산의사당」으로 이곳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원수나 귀빈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도 「주석궁」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김일성과 회담했으며 지난 90년3월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 국가주석 강택민도 이곳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주석궁은 평양시 중심가에서 동북쪽으로 8㎞ 떨어진 대성구역 미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난 77년4월15일 김일성의 65회 생일기념으로 세워진 총건평 3만4천9백10㎡(1만5백75평)의 유럽식 궁전을 본뜬 4∼5층구조의 석조건물. 총부지 면적이 3백50만㎡(약 1백6만평)에 이르며 경내는 위수지역으로 지정돼 30여개의 감시초소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대동강과 합장강이 합류하는 능나도 북쪽 금수산(일명 모란봉)기슭에 위치해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또 천연요새인 이곳 지하 2백m 깊이에는 평양지하철과 지하 비상통로가 연결돼 있으며 전용지하철이 유사시를 대비해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능란한 화술… “협상의 귀재”/만나본 사람들의 김일성 평가

    ◎곤란한 주제 피하는 임기응변 탁월 해방 후 49년만에 열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일에 싸여있는 김일성주석의 성격·화술·대인관계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영삼대통령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김일성주석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지금까지 공식·비공식적으로 김주석을 만난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김주석이 좌중을 선점하는 능수능란한 화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회담에서는 장황한 논리보다는 자연스럽게 핵심 문제로 이끌어가고 간단한 구어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0년10월18일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대표로 강영훈 당시 총리와 함께 김주석을 만난 이병용민족통일연구원장은 『즉흥적으로 분위기를 유도해 자기의 의도를 적절하게 관철시키는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85년10월 장세동당시안기부장이 방북했을 때에도 『내집에 온 것 처럼 푸근하게 있으라』고 말했는가 하면 92년2월 정원식전총리를 만났을 때도 『외교형식을 버리고 한식구처럼 화목하게 얘기하자』며 분위기를 잡았다.김우중대우그룹회장도 방북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주석이 앞으로 내집처럼 생각하고 들러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전안기부장은 특히 『공산주의식 협상의 노하우는 물론 항일투쟁에서부터 고대 유적등 화젯거리가 풍부하고 상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대화를 주도한다』면서 『지난 84년9월 우리측이 예상을 뒤엎고 수재구호물자 공급 제의를 받아들이자 당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구호물자를 받는 전대통령의 용기에 감탄한다」고 치켜세우는 등 임기응변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갑수전경제기획원차관도 『오찬 당시 쏘가리 매운탕,들쭉술 등의 음식과 서울의 공해문제를 화제로 내세워 대화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기억했다. 그의 친화력은 불법 방북자들도 느낀 점들이었다.황석영씨는 『김주석이 소설 「장길산」을 다 읽었다』고 했으며 임수경양도 『화술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김주석은 솔직담백한 합리적 인물이며 인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그의 능란한 화술을 웅변하는 대목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그런 화려한 화술 만큼 경계해야 할 대목도 많다.반세기동안 권좌에 머물면서 인민들을 다스려온 경력이나 수없이 많은 외국 원수들을 만나 외교를 해온 풍부한 경험과 전력을 유념해야한다는 분석들이다. 이동복전안기부장특보는 『마치 위대한 배우를 대하듯 유들유들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또 한갑수전차관은 『김주석이 「우리는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또 한 관계자는 『최근 핵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남북정상회담을 제기해 국면을 전환시킨 것도 교묘한 외교술』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김주석과의 합의는 추상적이기 보다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한 관계자는 『쌍방이 편리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추상적 합의는 북한에게 명분만 제공할 수 있다』면서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합의는 공산주의 협상전술의 하나』라고 경계했다.이동복전특보도 『그들이 말하는 자주·평화·민족등의 개념은 우리의 대미 존속을 전제로 한 것이니만큼 지난 반세기동안 계속해온 대남 선전전과 용어혼란 전술에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강전총리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자 『아무런 결과가 없는 정상회담은 인민들에게 실망만 준다』면서 『정상들이 순조롭게 만날 수 있도록 많은 사업을 해달라』며 의례적이면서도 능란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김주석의 건강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동원전외교안보연구원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건강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이병용민족통일연구원장도 『보청기를 끼고 있어 귀가 다소 어두운 것 같았으나 전체적으로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임원장도 『연형묵 당시 총리가 서울 방문 경험담을 꺼내자 김주석은 「뭐라고 뭐라고」하면서 큰소리로 말하라는 시늉을 해 한쪽 귀의 청력이 떨어졌음을 알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전총리를 수행했던 정호근전합참의장도 『김주석의 걸음걸이는 불편이 없어 보였고 특유의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걸걸하고 쾌활한 목소리로 「환영합니다」,「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러면서도 우리와 악수하는 장면이 TV등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행동했다』고 말했다.
  • 상호 이해·양보로 합의 도출/기자가 본 예비접촉 현장

    ◎달라진 북대표·기자 표정… 낭보기대감 증폭 1994년 6월28일은 우리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 같다.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남북정상회담을 다음달 25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3개월만에 재개된 이날 접촉에서 양측대표들이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보여준 「이해」와 「양보」,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룻만에 회담을 마무리한 양측의 성실성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 까닭이다. 우리측 대표단과 함께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떠날 때만 해도 회담 성과에 대해 솔직히 반신반의 했다.『북한측이 처한 대내외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만큼은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했지만 북측이 또다시 수용하기 어려운 엉뚱한 전제조건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그래서 설전만 벌이다 기약없이 서울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온갖 걱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리측 대표단의 얼굴에서도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상오10시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양측 대표단이 만나는 것을 본 순간 기우에 그칠지 모른다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먼저 김용순 북측단장의 얼굴과 몸짓 하나하나가 지난날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회담에 앞서 영국대사를 지낸 우리측 이홍구수석대표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역시 두사람은 국제적 신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것이 합의로 이어졌으면…』하는 바람이 생겼다. 첫째 것이 좋으면 둘째 것도 좋은 것인가.북측 기자들도 여느 때와 다른 것 같았다.그전엔 말도 안되는 것을 트집잡아 자주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곤 했는데 이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심스러웠다.몇년동안의 판문점 취재경험을 통해 그날 회담의 성과는 북측 기자들의 언행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이같은 모습은 고무적인 것으로 비쳐졌다. 회담은 곧바로 비공개로 진행됐다.공개회담이 아닌 것으로 봐서 『진짜 북한이 정상회담에 열의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그로부터 한편으론 초조하고 한편으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평화의 집 1층에 마련된 프레스룸은 회담의 진전상황을 체크하려는 기자들로 북새통이었지만 회담장으로부터는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측 대표단이 점심 식사를 끝내고 실무대표접촉을 가지면서부터 낭보에 대한 기대감으로 긴박하게 돌아갔다.여러차례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실무접촉에 뒤이은 수석대표간의 2차개별회동은 서로의 이견을 완전히 해소한 「화룡점정」이었다. 드디어 하오8시25분.9시간 가까이 마라톤회의를 마무리지은 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의 서명식이 2층 회담장에서 열렸다.양측 수석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한 뒤 이를 주고받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따라 최신식 시설에다 한국적 멋을 곁들인 평화의 집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 “북,서울2차회담” 명시 끝내 거부/정상회담 예비접촉 이모저모

    ◎「남북접촉」 사상최장 10시간 “신기록”/북측,서명란 직함 오기… 1시간 지연/“합의사항 실현에 공동 노력”… 양측대표 악수 ○부대조건합의 진통 ○…28일에 있은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예비접촉에서 양측은 「1차 7월25일 평양개최」 까지는 비교적 쉽게 의견접근을 보았으나 상호주의원칙에 따라 서울에서 2차정상회담을 갖는 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부대조건들을 잇달아 들고 나와 합의에 도달하는데까지 심한 진통. 하오 1시까지 합의에 실패한 양측은 하오 2시35분부터 시작된 우리측 윤여전·북측 안병수대표간의 실무회담과 5시부터 속개된 이홍구·김용순수석대표간의 막판 단독회담을 통해 1차회담 일정과 구체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7월1일 2차접촉을 갖기로 최종합의.마라톤회의에 이어 양측이 합의서 서명하기까지 장장 10시간 이상 걸린 이날 회의는 남북접촉과정에서 가장 긴 접촉이라는 새 기록을 수립. ○4단계로 회담 진행 ○…이날 예비접촉은 대표단회의,수석대표 단독회의,실무회의,대표단회의 순의 4단계로 진행. 상오 10시부터 시작된 대표단회의에서는 양측이 첫 발언을 통해 「7,8월 상호교환방문」과 「8·15 평양개최」 주장이 팽팽히 맞서 진전을 보지 못하다 우리측 요구로 상오 11시30분부터 10분간 정회. 이어 수석대표간 단독회담으로 속개된 두번째 회의에서 양측은 시기와 장소에 대한 양측 주장을 절충,『7월2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자』는데 까지 의견을 좁혔으나 북한측이 우리측 상호교환방문 조건의 수용을 거부해 난항. 게다가 북측은 「회담을 깨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안을 합의서의 한 조항으로 삽입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제시,상오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하오1시쯤 산회. 하오 4시15분께 끝난 윤­안 실무회담에서는 상오회의 결과를 정리,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통일각에 머물고 있는 대표단과 합류하기 위해 평화의 집을 나서던 북측 안대표는 결과를 묻는 보도진에게 『잘됐습니다』라고 짤막히 답하며 밝은 웃음을 짓기도. 이에 대해 우리 정부측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접촉은 「패키지」로 한꺼번에 타결되는 만큼 현 상황에서 합의했다 못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자세. ○…이어 김단장을 비롯한 북측대표단 일행은 하오 4시58분 평화의집 회담장으로 들어왔고 5시부터 이홍구우리측수석대표와 김북측단장간에 단독회담을 시작. 정부측 한 관계자는 『양측간에 합의되지 못한 중요사항에 대해 완벽하게 합의하기 위해 다시 수석대표회담을 열고 있다』며 『우리측은 오늘 완전합의를 목표로 막판까지 최선을 다해 결론을 끌어 낼 것』이라고 설명. ○…북측 김단장은 기자들을 위해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펼쳐 두손을 들어보이는 포즈를 여러차례 취하는가 하면 이수석대표의 말에 『그렇죠 그렇죠』라고 맞장구를 치는등 소탈한 모습. 김단장은 또 안병수대표와 백남준대표들을 정중하게 우리측에게 소개한 뒤 자신을 가리키며 『나는 그저 김용순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해 웃음.이에 대해 이수석대표는 『나도 이홍구라고 불러 달라』고 응수. ○…이날 회담장에는 북측에서도 25명의 비교적 많은 인원이 취재활동을 벌이는등 높은 관심을 반영. 북측 기자들은 회담장소와 시기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논의하기 위해 오늘 모인 것 아니냐』 『결정되면 그 때 보도하면 되지,미리부터 만들어 쓸 필요는 없다』며 애써 피하는 모습. ○「최고위급회담」 표기 ○…남북수석대표는 하오5시부터 수석대표회담에서 7월25일 평양에서 2박3일간의 일정으로 1차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해 놓고도 합의문의 「서명란」에 대한 오기로 예상보다 1시간이상 걸리기도. 북측이 이날 잘못표현한 부분은 합의문 문안 맨 끝에 「남북정상회담예비접촉 수석대표,이홍구」란에 「남북최고위급회담 예비접촉 수석대표 리홍구」로 표기한 것. 이에 따라 북측은 우리측으로부터 정정요구를 받고 다시 「통일각」으로 돌아가 합의문안을 재작성. ○…이날 예비접촉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최대의 걸림돌은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일체행동을 하지말자」는 문구를 합의서의 한 조항으로 명기하자는 북측의 요구였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문제는 결국 두번째 열린 수석대표간 단독회담에서 북측이 문구의 강도를 완화하자는 남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해,단합·신뢰…」라는 문구로 수정하는데 합의,극적인 타결점을 찾아냈다는 것. ○…합의서 서명은 하오 8시25분 남북양측 수행원들이 먼저 입장한 가운데 양측에 서명용 합의문 1부씩을 사전교환하는 것으로 시작. 곧이어 양측 대표단이 입장하여 잠시 포즈를 취한뒤 착석. 이부총리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길다면 길었지만 합의서 채택에 들어갈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인사. 합의서는 우리측의 윤여전대표가 낭독하고 곧이어 북측 안병수대표가 낭독.대표들은 상대측이 합의문을 낭독하는 동안 자기앞에 놓인 2부의 합의문을 펼쳐보며 내용을 확인. ○…서명은 먼저 양대표가 2부의 합의문에 서명을 한뒤 이를 다시 교환하여 서명하는 순서로 진행.이수석대표는 검은색 만년필을,김단장은 검은색 사인펜을 사용. ○…양측 대표는 합의문을 교환한뒤 합의문을 왼쪽에 끼고 일어서서 악수를 교환하며 보도진을 위해 포즈.악수를 나눈뒤 김북측단장은 『앞으로 우리함께 합의사항의 실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합시다.오늘 중요한 합의서가 나와 기쁩니다』라며 주위를 둘러보며 『모두들 수고했습니다』라고 인사.또 김은 윤여전대표를 바라보며 『윤선생은 오늘 특별히 수고많았습니다』라며 인사.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서명식을 마친 김용순 북측단장은 우리측 수행원들과 일일이 악수. 김단장은 계속되는 사진기자들의 포즈요구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두손을 번쩍 치켜드는 모습을 자주 연출,외교통으로서의 면모를 과시. 그는 이날 회담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우리측 기자들의 질문에 『구태여 말로 할 필요가 있느냐.합의한대 서로 잘 지키면 되지 않겠느냐』고 짤막하게 답변. ○북언론 회담 즉각보도 ○…북한은 28일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이 이날 상오 판문점에서 시작된 사실을 즉각 보도. 평양방송은 이날 10시 「보도」를 통해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28일 상오10시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시작됐다』고 전하고 이날 접촉에 북한측에서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 김용순 단장과 「조평통」부위원장 안병수,정무원 참사 백남준이 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으나한국측 대표명단은 언급하지 않았다.
  • “북측,교환방문 등 상호주의 중요성 이해”/이홍구수석대표 일문일답

    ◎2차회담 합의 어려웠던 상황/핵문제 등 특정의제 논의없어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우리측 수석대표 이홍구통일부총리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를 교환한 뒤 28일 하오8시40분쯤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전망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이부총리와의 일문일답 요지. ­합의서를 보면 2차 정상회담의 성사여부가 확실치 않아 보이는데. ▲과거 남북관계의 관례인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서울과 평양교환방문을 제의했다.그러나 논의를 해보니 정확히 언제 어디서 2차 회담을 한다는데 큰 비중을 두기가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상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뜻을 충분히 설명했고 북한측도 이를 이해했다. ­만약 1차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안되면 2차 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는가. ▲그것은 합의문에 대한 논리적 해석이고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북측이 성의있게 나왔고 우리도 이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회담에 임했다. ­이번 접촉에서 걸림돌은. ▲처음은 북한이 8·15를 의식하면서 8월중 평양회담 개최를 제의했을 때였다.두번째는 북한이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합의서에 넣자고 했을 때였다.북한측은 우리 언론을 상당히 의식하고 이런 제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나름대로 언론이 차지하는 위치가 있어 정부도 「이래라 저래라 할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식으로 설득했다.「흐리게 한다」는 표현은 부정적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므로 적절치 않다고 했고 이를 북한측이 이해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는 무엇이고 핵문제는 어떻게 다룰 방침인가. ▲최근 몇년동안 격변하는 세계사의 와중에서 한반도만 예외로 남았었다.또 근래에는 긴장이 고조돼 우려할만한 사태로 발전했다.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고 대결보다는 협력의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게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다.이를 위해 양국 정상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그래서 예비접촉 과정이 빨랐고 비록 장시간의 협의 끝이지만 하루만에 합의를 이루었다.의제는 정상들이 자유롭게 논의한다는 방침이라 핵문제등 특정의제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 ­회담결과에는 만족하는가. ▲우리가 원하던 것이 있고 저쪽의 희망사항이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합의에 도달한 것은 대체로 잘된 것이다. ­실무절차와 관련해 우리측이 제안한 사항이 있는가. ▲우리측은 실무절차도 오늘 논의하자는 쪽이었고 북측은 다음 실무대표접촉 때 이를 다루자는 쪽이었다.따라서 실무절차와 관련한 개별사안에 대한 의견차이는 없었다.
  • 남북예비접촉을 보며/정상회담 성공의 조건/강인덕(기고)

    예정대로 28일 판문점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접촉이 진행되었다. 우리측 대표인 이홍구부총리는 물론 북측대표인 김용순 당비서 역시 통일정책수립과 그 집행을 총괄하는 정책당국의 대표라는 점에서 비교적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듯 보였다. ○오래끌 이유없어 또한 양측대표는 최고당국자의 돈독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융통성을 발휘할만한 위치에 있다. 거기에다 이번 예비회담의 성격은 복잡한 의제에 따라 격론을 벌여야 할 회담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절차문제」를 토의하는 회담이고 이미 쌍방정상이 「언제 어디서나 만나자」는 언질을 준 상태이니 오래 끌어야 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국민들은 비교적 낙관적 시선으로 판문점에서의 회담소식을 기다렸다. 이 회담에서 이부총리는 『정상회담날짜를 7월중순,장소는 상호주의원칙에 의한 서울과 평양』을 제의했고 회담형식은 「정상간의 단독회담」으로 하자고 하였다. 한편 북한의 김단장은 『정상회담날짜를 8월중,회담장소는 평양』으로 제의했다. ○「상호주의」 관철을 그러나 「8월중 평양」이라는 제의는 우리로서는 수락하기 거북한 제의였다.왜냐하면 지난 4월11일 북한최고인민회의 양형섭의장명의로 제의한 당국·정당·사회단체대표및 개별인사·해외동포가 참가하는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대회와 연계되기 때문이다.이런 제의는 정상회담까지도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의 한 형태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식이다. 이점은 북한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우리측은 「8월중」을 「7월중」으로 수정하고 「평양」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쌍방은 1차회담을 7월25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서 문제는 상호주의원칙을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1차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다면 마땅히 2차회담은 서울에서 개최되어야 한다.그래야 형평에 맞는다.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과연 김일성이 서울에 와도 되는가하는 것이다. 북한측은 「2차회담은 평양회담이 개최된후 결정하자」는 유보조건을 제시했다. ○회담명칭 정해야 우리는 이러한 북측의 제의에 분명한 담보를 받아내야 한다.왜냐하면 확실하게 합의한 것도 마음대로 어기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평양의 1차회담에서 이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다음회담은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없게 된다.과거 그들은 「선원칙합의,후 실천문제토의」를 주장하며 자기 주장을 관철시킨후 약속했던 실천문제토의나 후속조치를 내동댕이 쳤던 일이 수없이 많다. 따라서 제2차회담의 개최일시와 장소는 반드시 평양회담에서 확정해야 한다.이것이 회담성공의 관건이다. 둘째로 이 회담의 명칭을 정확히 합의해야 한다.편의주의원칙에 의거하여 우리는 「정상회담」이라고 부르고 북측은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왜 북측은 「정상회담」이라고 부르지 않고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부르는가.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조선 하나의 국가」라는 북한의 통일원칙에 비추어 볼때 혹시 이번 회담으로 「2개 국가」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그러나 필자는 이번만은 전략적인 이유보다 전술적인 이유에서도 이 회담명칭을 명백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이라고 할때는 「대통령」또는 「국가주석」이외 지명할 대상이 없지만 「최고위급」이라고 할때 「급」에 해당하는 수명을 지명할 수 있다.「당정치국원」또는 「부주석」등도 「최고위급」에 해당한다.얼마든지 「대리」를 지명할수 있다. ○「대리」보낼 가능성 만약 서울에서 개최될 제2차정상회담에 「대리」를 보낸다면 우리의 입장이 어떻게 될 것인가.다지고 다져도 자기 멋대로 행동해 온 북한이다. 따라서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 대표는 항상 예측불허의 사태 발생을 감안하여 보다 확실하게 매듭짓는 태도로 예비회담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정상회담이 실현될 때까지 북한의 새로운 술책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전력해 주길 바란다.
  • 지나친 기대 금물/구본영 북한부기자(오늘의 눈)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20일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을 먼저 제의한 정부도 21일 상오 정종욱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이홍구통일부총리실에 들러 구수회의를 갖는 등 분주한 분위기다.하지만 실무준비에 나서고 있는 정부 관계자 누구도 북측이 카터 전미대통령을 통해 스스로 제안한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응해 올 것인지에 대해선 마음을 놓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사실 지난 80년대 이후에만도 모두 12차례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탐색단계나 절차 논의과정에서 무산된 전례를 굳이 이 시점에서 「불길하게」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정황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우선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판독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간주하는 대남 비방방송이 아직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우리측이 정상회담을 제의한 이후에도 그들의 대남 방송에선 「괴뢰 역도」운운하는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조잡한비방공세가 그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측은 카터전대통령을 통해 김일성주석이 먼저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의해온 점에 한때 기대를 걸기도 했다.그러나 북한핵문제에 대한 카터의 중재활동이 미국 조야에서조차 도마 위에 오르자 정부도 그의 정상회담 「주선」에 다시 못미더워하는 인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카터전대통령이 남북한 병력을 10만명선으로 감축하자는 김주석의 제의를 「역사적」이라고 평가한 데 대해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그의 북한에 대한 「순진함」 때문이었다. 병력을 상호 10만명선으로 줄이자는 얘기는 지난 54년 제네바회의에서 들고 나온 이래 90∼92년 사이 열린 남북고위급회담과 군사공동위 등에서 북한측의 단골 메뉴였다.60년대부터 시작된 「전인민의 무장화」 등 4대군사노선으로 4백만의 노농적위대 등을 완전무장시켜 놓은 채 정규군을 줄여도 대남 군사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한다면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을위해선 정상회담을 포함한 어떠한 대화채널도 가동한다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북핵해법/「핵과거」규명 초점/「정상회담」새 변수/우리정부의 입장

    ◎“성사땐 문제해결 결정적 동인될것”/미 부담감소… 포괄타결가능성 반반 긴장과 위기국면으로 치닫던 북한핵문제가 카터전미국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급격히 대화해결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번의 방향선회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의 탈퇴를 감행했던 북한이 카터전대통령을 통해 사찰단과 감시장비의 유지,「핵동결」이라는 뜻밖의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이뤄졌다.북한의 이러한 움직임과 경수로원자로에 대한 관심,핵안전협정의 이행 용의등은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구실을 했으며 그렇지 않아도 북한제재가 별로 내키지 않던 미국으로 하여금 다시 대화로 돌아설 명분을 제공한 셈이 됐다. 그러나 이번의 대화는 최근 유엔안보리의 제재가 논의되기 전에 한국과 미국,IAEA가 추진해오던 대화해결방식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이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카터·김일성회담을 통해 전달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능성이다. 그동안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핵문제의 해결로 가는 길의 변수로 여기지는 않았다.북한핵의 종착역인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실천하는 마무리역할로써 막연히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문제가 북한핵문제의 전면에 부상했고,성사되면 문제해결의 결정적인 동인이 될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또 부수적이지만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남북한사이에 특사교환이 이뤄지거나 특사교환을 위한 남북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이는 우리가 지난 4월 남북특사교환을 전제조건에서 철회한뒤 미국과 북한,북한과 IAEA의 축으로 움직여왔던 해결구도가 다시 세개의 축으로 복원됨을 뜻한다. 관계자들은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로 남북대화가 재개된다면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남북대화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테두리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북한의 「핵과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북한이 영변 5메가와트급 실험용원자로에서 지난날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했는가를 밝히지 않고는 한반도비핵화가 결코 실천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되면 미국도 「북한 핵과거」에 보다 자유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때문에 미국은 카터를 통해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힌 「핵동결」과 경수로원자로건설지원,핵확산금지조약(NPT)완전복귀문제와 이와 맞바꿀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데 집중할 것으로 분석된다.물론 통로는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회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은 북한이 카터를 통해 전달한 정상회담등 모든 메시지가 진심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그 가능성은 현재로선 반반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반응이다. ◎정리돼가는 미대응 방향/“평양의 「핵동결」 메시지 진실일때 대화/생산적 결과 없을땐 언제든 제재 선회” 카터전미대통령의 「평양발언」으로 빚어진 클린턴미행정부의 북핵대응방향의 혼선은 『핵동결이 진실이면 대화를 갖고,또 대화가 이뤄지면 제재추진은 중지한다』는 얘기로 일단 정리가 되었다. 북핵정책조정팀장인 로버트 갈루치차관보는 17일 카터발언과 관련한 특별브리핑에서 『대화의 기초가 다시 확립되면 3단계회담을 할 것이며 그러면 제재는 일단 중지될 것이다.그러나 대화가 생산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면 언제나 제재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정리했다. 카터의 「대북제재중단」발언(16일 하오 평양)­클린턴대통령의 공식부인(17일 상오 시카고)­갈루치차관보의 입장정리(17일 하오 워싱턴)로 이어진 우여곡절은 기본적으로 클린턴행정부가 현재 구사하고 있는 화·전 양면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의 이같은 양면전략은 16일 카터·김일성 1차면담에서 북한이 핵동결용의를 표시하자 『그 메시지가 진정이면 3단계고위회담을 할 수 있다』며 사실상 대화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카터전대통령이 김일성주석과의 2차면담에서 『미국이 대북한제재조치를 중단했다』고 밝힌 대목에 대해 클린턴행정부는 한결같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시카고방문중 『미국의 정책은 어제 기자회견때 말한 것에서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고 갈루치차관보는 『카터전대통령의 방북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방문이며 그에게 제재조치에 관해 언급할 권한을 부여한 일이 없다』고 잘랐다. 갈루치차관보는 이날 상오 한승수주미한국대사와 면담시 『미국정부는 북한이 핵개발활동을 완전동결하여 제재조치가 불필요하게 될때까지는 우방과 협의하여 제재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카터전대통령이 그같은 발언을 한 근거와 동기에 의문이 생긴다. 카터전대통령은 김주석과 1차면담이 끝난후 백악관의 클린턴대통령과 통화를 했고 갈루치차관보로부터는 북측의 핵개발동결의사에 대한 미국정부의 성명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그가 평양으로 떠나기 직전 백악관은 물론 국무부관계관들이 북핵문제에 관해 상세한 브리핑을 했다.그는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떠나기전 서울에서 현상황과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그는 클린턴행정부와 조율을 할만큼 했던 것이다. 적어도 카터전대통령은 이같은 교감을 바탕으로 북한측에 핵개발포기를 종용하면서 상황이 원만하게 진전될 경우 제재가 중단되리라는 논리적 전망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클린턴행정부의 반응이 처음엔 「강력부인」에서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시작되면 제재는 유보된다』는 입장으로 정리된 것을 보면 카터전대통령이 클린턴행정부의 속내를 성급하게 공개한 인상이 없지 않다.또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제재추진이 중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클린턴행정부가 이날 아침 강력부인으로 진화작업을 편 것은 제재에 동참해주도록 설득해오던 우방국들에 사전에 한마디 말도없이 대화로 급선회한 결과가 된데 따른 외교적 파문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속마음을 한번 꺼내보여준 후에는 다시 주워담기 어려운 것처럼 카터의 「평양발언」은 어차피 클린턴행정부의 향후 북핵정책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전전대통령­김일성 정상회담 추진/장세동씨·허담교환방문/85년

    지난 85년 가을 전두환전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남북한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장세동전안기부장과 허답전노동당비서(91년 사망)를 특사로 극비리에 각각 평양과 서울에 파견했다고 중앙일보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허비서가 85년 9월4일부터 6일까지,장부장은 10월16일부터 18일까지 각각 신변보장 각서를 교환하고 판문점을 거쳐 평양과 서울에 도착,전전대통령과 김주석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장·허씨는 전전대통령과 김주석의 친서를 휴대한 교환비밀방문에서 1차 정상회담(남북한 최고위급회담)을 조기에 평양에서,2차회담은 서울에서 갖기로 하는등 구체적인 협의를 벌였으나 북측은 86년 이후 직선제 개헌문제 등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이 불안해지자 정상회담 자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특사가 비밀리에 왕래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표출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새 단계 대북정책 한 외무에 듣는다/대담=김행수 정치부장

    ◎“북핵해결엔 점진적 접근 중요”/「경수로전환」은 북의 사찰수용 명분용/IAEA규정 준수땐 대북경협 재개/김 대통령 적절한 시기에 러시아방문 미·북한 2단계회담이 끝나 북한핵문제는 이제 국제원자력기구(IAEA)­북한,남­북,미­북한이라는 3개의 축을 중심으로 접점을 찾게 됐다.이 축들은 때로는 강한 연결고리를 갖고,때로는 독자적으로 돌아갈 것 같다.그러나 북한핵은 이제 해결의 첫 관문을 넘어섰을 뿐 완전한 투명성 확보까지는 갈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우리외교의 일선사령탑인 한승주외무장관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본사 김행수정치부장은 미·북 2단계회담이 끝난 시점인 21일 상오 정부종합청사 외무장관실에서 한장관과 만나 북핵문제와 관련한 향후전망,한반도 주변4강의 역할및 국제공조체제등 주요외교현안에 대해 긴급대담을 가졌다. ­정부는 미·북 2단계회담에 대해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습니다.그러나 일본과 미국의 일부여론은 다소 비판적이고 민자당 일부의원들도 마찬가진데. ▲구체적인 평가약속을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북핵문제는 한단계 한단계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그런 점에서 실패 또는 성공이란 판단은 곤란합니다.우리는 지금 이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가고 있습니다.다만 명분을 살리면서 협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북한이 수차례 고위회담을 갖는등 주변정세가 변화하고 있습니다.우리의 기존 북핵정책과 남북대화방식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남북문제는 통일원이 있고….그렇지만 국제적인 연계가 있으니까,이번 발표문이 남북대화의 촉진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IAEA사찰에 불응하면 제재가 뒤따르지만 남북대화는 그렇지 않습니다.핵문제해결에 한국을 계속 배제하는 인상을 주는 게 북한으로선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현재로선 북한이 남북대화재개에 불응할 가능성이 큽니다.미·북 3단계회담의 전제조건이 남북대화이니만큼 3단계회담을 시작하려면 대화를 하려고 하겠지만….현재로선 불투명합니다. ­발표문을 보면 IAEA와의 협의만을 명시하고 있는데. ▲핵사찰을 받겠다,또는 하겠다는 게 큰 의미가 없어요.아전인수가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까.9월중에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가는냐,아니면 안가는냐,다시말해 IAEA회원국으로서 의무이행 여부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죠. ­북한핵개발수준을 놓고 국내외에 여러 추정이 있습니다.1,2단계 미·북회담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드러났습니까. ▲시설이나 원자로 운영양상으로 봐서 핵물질을 만들어낸 것은 확실합니다.다만 신고량과 추정량이 다릅니다.사찰은 바로 그 차이를 규명하자는 것입니다.앞으로 북한이 만들 핵물질에 대해선 규제가 가능하나 이미 만들어놓은 것은 사찰을 해야 알 수 있습니다. ­물밑에서만 간헐적으로 논의되어온 경수로지원문제가 공식석상에 본격 등장했습니다.이에 대한 향후전망은. ▲마치 미국이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하나 지어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막연한 언질일 뿐입니다.경수로 지원문제는 북한의 국내용이며,사찰수락을 위한 명분이라는 게 정확합니다.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다시말해 핵에네지개발·핵무기개발·안전문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수로로의 전환은 바람직합니다.먼 장래의 일이지만 그때는 우리를 포함해서 국제사회가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이는 북한의 핵시설뿐아니라 사회 자체 개방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회담으로 북핵문제는 이제 3개의 대화통로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즉 북한과 IAEA,그리고 우리,미국등…. ▲앞서 지적했듯 남북관계는 단기적으론 불투명하지만 북한 자신의 경제복구를 위해서는 우리의 협조를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결국 대화에 응하리라고 봅니다.북한과 IAEA간의 협의에 성과 없을 때 오는 결과가 명백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수락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미·북대화는 2단계까지 진행됐습니다.그러나 진전의 전제조건이 남북대화,IAEA사찰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그만큼 떨어졌다고 봐야겠죠. ­대북제의및 북핵 대응에 있어 부처간 이견은 없습니까.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만약 차이가 있다면 정책의 대안문제가 아니라 결과와 과정에 대한 평가입니다.예컨대 1단계 미·북접촉이 잘됐느냐,못됐느냐,2단계결과는 어떤 것이냐 그런 것들이죠. ­20일 밤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과 의 통화내용은. ▲(웃으며)크리스토퍼장관은 자기들이 북한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한국,나아가 국제사회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따라서 미·북 양자간의 대화가 아니고 핵문제해결의 장이며,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긴밀한 협조를 유지해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북한이 미·북대화를 핑계로 다른 의도를 보인다면 용인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오는 26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 PMC에서 다시 만나 구체적인 대응책을 다시 논의할 것입니다. ­미·북회담에 있어 우리의 역할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우리의 역할과 미국과의 의견조율은 어떻습니까. ▲직접 당사자는 우리인데,우리는 모르는 내막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소외감을 국민 누구나 느꼈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일의 성격상 협의내용을 널리 알릴 수는 없었습니다.양국은 접촉시마다 북한의 태도를 면밀히 공동분석했고 칼루치차관보도 회담참석에 앞서 현지 한국대사관에 들러 협의를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남북경협·이산가족방문문제등 남북대화의 전망은. ▲북한핵문제는 한민족의 생존뿐 아니라 동북아지역 전체의 안정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남북관계발전과 연계시키는 입장을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북한이 미·북간 제2차회담 결과에 따라 IAEA의 규정을 준수하고 상호사찰에 성의있게 임할 경우 우리는 대북경협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클린턴미대통령 방한시 신태평양 공동체구성을 제의한바 있는데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신태평양공동체에서 중국·대만·홍콩등 3개 중국의 대표권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것으로 봅니까. ▲신태평양공동체는 우리의 신외교에서 밝힌 포괄적 아·태협력체와 그 목적이 같습니다.한·미 양국은 공동목표달성을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3개 중국문제는 우리가 APEC의장국이었던 91년 거중조정을 통해 3개 중국의 APEC 가입을 성사시킨 경험이 있으므로 필요시 측면지원할 생각입니다. ­김영삼대통령의 미국방문은 언제쯤 이뤄질 전망입니까.러시아및 일본방문계획은. ▲클린턴대통령이 방한시 김영삼대통령을 초청했고 김대통령께서도 이를 기꺼이 수락했으나 아직 구체적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러시아방문은 옐친대통령이 김대통령의 연내 방문을 희망하는 정식초청장이 지난 6월 방문한 본인을 통해 정식전달된 상태입니다.따라서 여러 사정을 보아가며 적절한 시기에 추진될 것입니다.한·일 양국의 정상도 가까운 시일내에 만날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 양국수석 발표문성명 “아전인수”/제네바회담 이모저모

    ◎대표단,“피곤하지만 홀가분하다”/회견장 서방기자 몰려와 북새통 ○강조점 제각각 달라 ○…로버트 갈루치 미수석대표와 강석주 북한수석대표는 양측 실무진간에 사전에 합의된 대언론발표문을 읽으면서도 서로 강조하는 포인트가 달라 미·북한간 입장의 차이를 엿보게 하기도. 강대표는 원자로 형태변경에 따른 북한의 핵투명성 제고를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환영했다면서 이 부분이 핵심인 것처럼 설명했으나 갈루치대표는 북한과 IAEA간의 협의재개에 초점을 맞춰 회담결과를 설명.강대표는 또 남북정상회담 실현과 특사접촉,팀스피리트훈련 영구중지 요구등 정치적 발언과 지난 6월 1단계회담때 나온 양측 공동성명의 원칙 재확인도 비중있게 다뤘으나 갈루치는 이에 대해 간단하게만 언급. ○미측 지친표정 역력 ○…진통끝에 제2단계 미·북한 고위급회담을 19일 하오(한국시간 20일상오) 마무리지은 양측대표단은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 역력한 가운데서도 홀가분한 표정들. 회담직후 회담장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특히 미측대표단이 피곤한 기색을 그대로 보였다면서 아마도 북한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어지간히 진을 뺀 모양이라고 전언. ○신분증 일일이 대조 ○…이날 양측대표의 기자회견이 있은 미대표부에는 1·2차접촉때보다 훨씬 많은 1백명이상의 기자들이 몰려 북한핵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입증.지난 두차례 접촉때는 한국과 일본기자들이 대종을 이뤘으나 이날은 서방기자들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 그렇지만 회담장인 미대표부는 지난 14일의 1차회담때와 마찬가지로 통보된 취재기자들의 명단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한후 통과시켰는데 이 또한 정문을 완전히 개방하다시피 했던 16일 2차회담때의 북한대표부와 완전히 대조적. 미대표부측은 명단에 있는 일본기자들을 맨먼저 안으로 들여보낸후 나머지 한국및 기타 외국기자들은 소속과 이름을 적거나 확인해가며 입장시켜 한 백발의 외국기자로부터 『클린턴이라도 만나게 되는거냐』는 가시돋친 질문을 받기도. ○실무접촉 함구 일관 ○…북한과 미국 양측은 제네바시내 한 호텔에서 하루종일 실무접촉을 가졌던 것으로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양측은 모두 함구로 일관. 북한측 대변인이 이날 상오 『다시 만난다는 원칙은 정해졌으며 양측이 실무접촉을 갖고 협의중』이라고 밝혔으나 미국측은 회담개최여부가 북한측에 달렸다는 듯 『재개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회담 직전에야 결정 ○…이날 3차접촉은 사전 실무접촉에서 세부사항까지 합의를 보고 본회의에서는 이를 확인하기만 한듯 하오7시에 시작된 회담이 일사천리식으로 진행돼 1시간40여분만에 종료.그러나 실무접촉에서도 큰 진통이 있었던듯 3차접촉의 재개여부는 회담 직전에야 결정. ○…이날 회담직후 곧바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매우 밝은 표정의 강석주 북한대표가 겨우 2개의 기자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하고 총총히 퇴장한 것과는 달리 갈루치 미국대표는 회담결과 설명에 이어 긴 시간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지난 2차회담때와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
  • 「특사교환」 접촉 8일 이후로/정부,내일 북에 통지

    ◎“핵이 최우선 의제” 재확인 정부는 북한이 지난 4일 『남북정상회담개최를 다룰 특사교환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접촉을 8일 판문점에서 갖자』고 제의해온데 대해 접촉일자를 8일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또 이 접촉에서는 반드시 핵문제가 최우선 의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정부는 5일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황인성국무총리 주재로 고위전략회의를 갖고 미·북한간 고위급접촉 결과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남북대화 대응방안을 논의,이같이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이같은 방침을 7일 황총리 명의의 대북 전화통지문을 통해 북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8일 접촉 제의의 의도가 「남북간 대화」를 이용해 NPT탈퇴 발효 마감시한인 12일을 넘기려는 명분축적용으로 분석된다』고 말하고 『만일 특사교환문제만 논의할 경우 절차나 시기문제 때문에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미·북한간 2차 고위급접촉 결과와 관련,아무런 성과없이 끝났지만 완전 결렬된 것으로 보기는 이르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3차회담이 오는 12일 전에 다시 열릴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회의에서는 특히 미·북한간 1,2차 고위급접촉을 종합 분석할 때 북한의 태도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추가 단행될 유엔안보리의 제재조치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조만간 정리키로 했다. 정부는 그러나 만일 유엔안보리의 추가 제재조치가 취해지더라도 국제현실을 감안,중제재보다는 단계적 제재조치가 북한핵문제해결에 유익하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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