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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노 전 대통령 NLL 발언 실체 명백히 규명하길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면 협의의 실체를 놓고 대선 정국이 달아올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발언과 함께 100조원가량의 대북 지원을 구두로 약속했다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당시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민주당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나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준비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NLL(북방한계선)은 6·25 정전 당시 유엔군 측이 그었으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실질적인 영토선으로 이어져 왔다. 1, 2차 연평해전 등 NLL을 무력화하려는 북측의 숱한 도발을 막아내며 산화한 우리 젊은이들의 얼이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NLL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면 그 자체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이후로도 남북 간 분쟁의 소지를 키운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위중한 사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직후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NLL을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노 전 대통령 발언의 진상과 정 의원 발언의 근거가 명명백백히 가려져야 한다고 본다. 정 의원 주장대로 북측이 녹음했다는 정상 간 대화록을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갖고 있다면 즉각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1급 비밀’ 운운하며 덮고 가자는 식의 논리로 버티는 건 국민적 혼란을 키울 뿐이다. 남북 관계의 추가적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도 투명한 진상공개가 요구된다. 물론 이를 통해 그 어떤 근거도 없이 정 의원 등이 선거에 활용할 목적으로 꺼내든 흑색선전임이 드러난다면 이 또한 대선 정국의 혼란을 부추기고 남북 관계에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 손학규 선대위, 김근태계가 ‘요직’

    민주통합당 손학규 대선 경선 후보가 12일 전·현직 의원 등 36명으로 이뤄진 선대위·선대본부 인선안을 발표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은 충북 출신의 홍재형 전 국회부의장과 호남에 지역구를 둔 4선의 이낙연 의원, 최영희 전 의원 등 3명이 맡았다. 이번 인선에서는 고 김근태계 재야파 모임인 ‘민주평화연대’(민평련)의 ‘흡수’가 눈에 띈다. 설훈·우원식·김민기·박완주 의원 등 민평련 인사 9명을 영입하면서 요직을 맡겼다.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당직을 유지한 채 선대부위원장을 맡았고 설훈 의원은 공동선대본부장으로서 인재영입을 책임지기로 했다. 전북 익산을의 전정희 의원도 손 후보의 여성 공약인 ‘맘 편한 세상’을 총괄할 본부장을 맡았다. 민평련 인사들의 추가 영입이 예상된다. ‘햇볕정책의 전도사’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도 영입,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 임 전 장관은 김대중(DJ)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 등을 지내면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의 실무를 총괄했었다. 임 전 장관의 합류는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전력이 약점인 손 후보에게 민주당 후보로의 정통성을 안겨 줄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장관은 “개인 자격의 합류이지 DJ세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당내 다른 후보들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손 후보 측 관계자는 “다른 후보 캠프 측에서 임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손 후보 캠프 합류를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후보 측 김유정 대변인은 “의원들의 추가 합류에 따라 조만간 2차 인선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역대 대통령 8명 통일염원 휘호 한자리에

    역대 대통령 8명 통일염원 휘호 한자리에

    역대 대통령 8명의 통일관을 엿볼 수 있는 친필 휘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은 7일 윤보선·최규하 두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 이후 현 정부까지 대통령 8명의 통일 관련 친필 휘호들을 강북구 수유동의 교육원 본관과 교육관 두 곳에 전시했다. 재임 중 6·25전쟁을 치르고 북진 통일을 주장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휘호는 ‘統一最先’(통일최선)이다. 통일교육원 관계자는 “1990년 발간한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 서집’에 실린 1950년대 휘호로 통일이 최우선 과제라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國力培養 統一成就’(국력배양 통일성취)라는 휘호를 썼다. 1975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위해 쓴 글이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 전력하며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앞세운 박정희 정부의 시각이 엿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휘호는 퇴임 후인 올해 2월에 쓴 ‘民族和合 民主統一’(민족화합 민주통일)이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 테러(1983년)를 겪고 수재 물자 지원 제의(1984년)를 받아들이는 등 대결과 대화를 병행했다.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제시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後世(후세)는 統一(통일)의 기쁨 속에서 前進(전진)하기를 念願(염원)하며’라는 휘호를 남겼다. 재임 시절인 1992년 2월 2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개관식 때 쓴 글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들의 휘호는 각각 1992년과 1997년 12월 18일 당선이 결정된 대통령 선거일 당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방문해서 남긴 글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南北統一’(남북통일)이라는 명료한 글을 남겼고, 대북 포용정책을 이끈 김대중 전 대통령은 ‘安保(안보) 平和(평화) 交流(교류) 그리고 統一(통일)’이라는 휘호를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글 휘호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참여정부의 평화번영 정책 의지를 담았다. 2007년 10월 2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방북하는 것을 기념한 글이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1일 통일부에 전달한 ‘相生共榮 平和統一’(상생공영 평화통일) 휘호로 북한과의 상생 공영 의지를 강조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역대 정부는 이전 정부의 통일정책을 계승하면서 이를 상황에 맞게 수정해 왔다. 정책의 연속성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며 “이 전시가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리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과 10분 면담… 순수 조문일뿐 별도 만남 안가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89) 여사와 현정은(56) 현대그룹 회장의 민간 조문단이 27일 1박 2일의 조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민간 조문단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의 별도 만남이나 대남 메시지 전달은 없었다면서 순수한 조문이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조문단은 남한 인사로는 처음으로 김 부위원장을 만났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면담을 가져 어떤 식으로든지 북측의 메시지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전날 오전 방북한 민간조문단은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의 영접을 받고 평양으로 향했다. 이들의 숙소는 북한을 방문한 최고위급 귀빈들이 묵는 평양의 백화원초대소로 1,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머물던 숙소다. 오찬을 마친 이들은 오후 6시 20분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조문했다. 이 여사 측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많은 인파가 있어서 40~50분을 기다렸다가 10분 정도 김 부위원장과 면담을 했다.”면서 “이 여사는 위로의 말을 전했고 김 부위원장은 멀리서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조선중앙TV에도 김 부위원장이 조화를 전달하며 말을 건네는 조문단의 손을 차례로 맞잡으며 인사말을 건네고 허리를 숙여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짧은 대화를 나눈 현 회장도 “조문만 했고 여러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언급을 피했다. 이 여사 측은 “그때 일순간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밝혔고 현 회장도 “인상은 매스컴에서 보던 그대로다.”라고 설명했다. 조문단은 조의록에도 글을 남겼는데 이 여사는 ‘김 위원장이 영면했지만 6·15 남북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 하루속히 민족 통일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썼고, 현 회장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준 국방위원장님을 우리 마음속에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현 회장은 이에 대해 “떠나기 전에 조의를 표시할 때도 내놨던 문구랑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문을 마친 이들은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묵었다. 별도의 만찬행사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여사 측은 “이번은 순수한 조문 방문이었기 때문에 오찬·만찬·조찬까지 현 회장 일행과 따로 했고 북측의 인사들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간 조문단은 27일 조식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기 전인 오전 11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수대의사당에서 면담했다. 이 여사는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북측이 조문단을 서울에 보낸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또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선언이 계속 잘 이행되기를 바라며 민간 조문단의 방문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장도 6·15, 10·4선언을 강조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세 분의 일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현 회장은 김 상임위원장과 일반적 얘기만 했고 순수 조문 목적이었기 때문에 (대북사업 등)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간 조문단이 평양을 떠날 때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 배웅을 하면서 백화원초대소에서 잠시 만남을 가졌다. 대(對)남한 정책을 총괄하는 김 부장은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 조문단으로 왔었다. 당시 조문을 마친 김 부장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했다. 민간 조문단은 평양을 떠나 오후 1시 30분쯤 개성공단에 도착했다. 이 여사만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현 회장 측이 일정을 변경해 개성공단에 있는 현대아산 개성공단 사무소를 방문했다. 이후 민간 조문단은 오후 3시와 3시 30분 경기 파주시 장단면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돌아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南조문단, 김정은과 ‘반짝 대화’… 새 남북접촉 시작됐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민간 조문단 일행이 26일 오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유족에게 직접 조의를 표하면서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각에선 예전 북한 최고 지도자들이 했던 대로 조문단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 부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오후 6시 20분 시작된 조문은 예상을 깨고 10분가량 진행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화환을 놓고 묵상한 뒤 위로의 뜻을 전하는 의례적인 절차만 이뤄졌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이 여사와 현 회장은 애도의 뜻을 담는 조의록에 글도 남겼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가 민족통일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그 이께서 이에 깊은 사의를 표하시었다.”고 했으나 대화는 짤막하게 오간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아산과 통일부 등에 따르면 밤 9시쯤 북한에 체류 중인 현대아산 측 조문단으로부터 유선전화로 ‘조문을 마쳤다’는 내용이 서울 종로구 연지동 본사에 전달됐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조문을 마치자마자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출발했다.”면서 “이후 만찬을 가졌는지 여부에 대해선 알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측 보도에도 불구하고 조문단의 평양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백화원 초대소에서 오후 1시부터 오찬을 갖고 휴식을 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도 “누구와 어떻게 식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아산 측은 “식사 뒤 곧바로 휴식을 취했다는 점으로 미뤄 간단한 오찬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문단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평양 대성구역 임흥동)가 조문 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과 지척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평양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8㎞ 정도 떨어진 모란봉(금수산) 기슭에 위치해 곳곳에 지도층의 안가가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빈관인 백화원 초대소에 머문다면 북 최고지도자와의 개별 면담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곳은 지난 2000년과 2007년 제1,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숙소였다. 현 회장도 2007년 11월 백두산 및 개성관광 등을 협의하기 위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가졌을 때 백화원초대소를 숙소로 썼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부위원장이 이 여사 일행과 차 한잔 정도 마시며 따로 대화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한 대북 소식통도 “적어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후견인인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조문단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예정대로 평양에 도착했고, 30분 뒤 백화원 초대소에 짐을 풀었다. 북한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이 이 여사와 현 회장을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영접한 점으로 미뤄 간단한 환영오찬이 이어졌다면 아·태위가 주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상중인 김정은 부위원장은 직접 오찬을 주재하거나 참석했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 환영만찬도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7일 오전 8시 이뤄질 조찬을 누가 주재할지는 관심을 끌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커버스토리-한가위] “죽기전에 성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죽기 전에 추석에 성묘라도 한 번 할 수 있었으면….” 추석이 다가오면서 이산가족들의 가슴앓이는 심해진다. 지난해 11월 2차 이산가족상봉을 앞두고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뒤 10개월이 넘도록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몇주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추석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한 뒤 무산된 터라 이들의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이상철 ‘1000만 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이벤트성의 상봉행사보다 생사확인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면서 “헤어진지 61년이나 지나 80대가 넘은 분들에게 무슨 이념이 필요하겠느냐.”고 말했다. 2001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사람은 12만 8000명. 이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18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이산가족의 고령화 탓에 이미 4만 8000명은 사망했다. 앞으로 사망률 증가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규정한 심인(尋人)사업은 주소 및 생사 확인→서신교환→상봉 및 상호지역방문→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 순으로 이뤄진다. 단발성 만남은 고령의 이산가족을 더욱 지치게 하고 상실감만 키우고 있다. 실제 상봉자의 70~80%는 ‘괜히 만났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상봉 후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은 인도적인 문제를 정치적 문제와 별개의 사안으로 다뤄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정부에서 독점할 것이 아니라 민간에 맡겨 정치·군사적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금강산 피격사건,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발목이 잡혀 북한에 이산가족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어지지 않았느냐.”면서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원칙이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오늘의 눈] 새 통일장관이 해야 할 일/김미경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새 통일장관이 해야 할 일/김미경 정치부 기자

    요즘 외교·안보가의 모든 눈은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류우익 전 주중국 대사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도 대화 상대”라며 북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취해 온 류 장관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대북 정책에 긍정적 변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다수의 대북 전문가들도 “이명박 정부가 남은 1년 4개월 동안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는 포석으로 읽혀진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류 장관 후보자가 내정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생각”이라고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통일부는 현 정부 들어 북한과 대립각을 세워 왔고 지난해 5·24조치 단행 등 대북 강경책을 고수해 오히려 통일을 지연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1년 6개월간 주중 대사를 역임한 것 외에는 외교안보정책 관련 경험이 없는 류 후보자가 통일부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또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 유연성을 낼 부분이 있는지 궁리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통일부가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신임 통일장관 임명은 내년에 예상되는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변화를 고려할 때 어느 때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을 비롯, 미국과 러시아는 대선이 예정돼 있고 중국도 최고위 지도자의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앞두고 대외활동을 전방위로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북 정책을 주도해야 하는 통일장관은 ‘창조적 마인드’를 갖고 적극적인 정책 운용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종료 2개월 전에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의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임기 말 무리한 레거시(유산) 쌓기에 연연하기보다는 남북 관계 개선 및 비핵화 진전 등 북한의 진정한 변화 유도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chaplin7@seoul.co.kr
  • [사설] 부산저축銀 증발된 돈 끝까지 찾아내라

    부산저축은행그룹이 120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식으로 5조원 규모의 불법대출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증발’된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과 금융감독원 조사로 알려진 것만 해도 캄보디아 캄코시티 3000억원, 영각사 납골당 사업 860억원,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 1200억원 등 5000억원을 웃돈다. 하지만 장부에 계상된 신안군 토지 매입비가 공시지가의 10배에 이르고 허위 서류도 적지 않아 실제 사라진 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사업 착수 배경도 의혹투성이여서 대주주와 관련자들의 비자금 조성설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 대가설, 당시 여권실세와 인허가 관청 뇌물설 등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는 부산저축은행 사태 초기부터 서민들의 피와 땀으로 모아진 돈으로 잔치판을 벌인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과 함께 빼돌린 돈을 끝까지 환수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정치권이 청문회에 이어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사퇴한 김준규 전 검찰총장도 이임사에서 저축은행 비리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 전 총장의 말처럼 저축은행 비리라는 광산의 모든 갱도에 수사팀을 보내서라도 반드시 어둠 속에 숨겨진 탐욕의 실체를 햇살 아래 들추어 내야 한다고 본다. 비리 척결에 피아(彼我)의 구분이나 성역이 있을 수 없다. 검찰은 비리 관련자들이 수사 협조에 소극적이거나 제3국을 통한 우회경로, 유령회사 개입 등으로 자금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검찰수뇌부 교체로 인사태풍을 앞두고 있는 등 검찰 내부분위기도 어수선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수사결과물밖에 없다. 새로 들어서는 검찰수뇌부는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재의 수사진용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수사결과를 반드시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 지금 검찰은 국민의 검찰로 위상을 회복하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 MB, 김정일 초청 배경과 실현 가능성

    이명박 대통령이 9일 독일 베를린에서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핵안보 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 ‘김 위원장의 방한→남북정상회담’이 순차적으로 실현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북한이 비핵화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확고하게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한과 관련, 비핵화를 전제로 ‘조건부 초청’을 한 것은 한반도의 핵 문제가 남북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판단에서다. “한반도에 핵이 있다는 것은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며, 핵무기를 가지고 통일이 됐을 때 이웃나라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8일 베를린 동포간담회)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1차 핵안보 정상회의 때도 이 대통령은 비슷한 조건을 달고 김 위원장 초청의사를 밝혔다. 당시 이 대통령이 내건 조건은 ‘북한이 핵 포기 의지를 밝히고 2012년까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번 비핵화 조건에 대해 “남북 비핵화회담 등을 통해서 북한이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성격의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북한이 염려하는 안전보장 문제, 경제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랜드 바겐의 세부이행계획은 6자회담 등을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북한의 비핵화 목표와 그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약속 등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통치자의 정치적인 적극적 메시지의 의미이고 (비핵화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돼야 한다는 그런 차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두고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진전된 제안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한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정부 당국도 현재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물밑접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김 위원장 방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천안함, 연평도 도발 사태와 관련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이 바뀐 것이 없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두 차례의 도발에 대한 북한의 분명한 사과가 비핵화 회담은 물론 남북관계 정상화, 본격적인 남북 간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대전제는 유지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합의’와 ‘도발에 대한 공식 사과’라는 두 가지 사안을 굳이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비핵화문제에 대해 6자회담에서 합의할 정도가 된다면 이미 충분히 천안함 문제 등에 대해 사과할 수준이 되기 때문에 굳이 선후 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신년 대담] 박상은 한나라의원·문정인 연세대교수가 조망한 ‘연평도사태 이후’

    [신년 대담] 박상은 한나라의원·문정인 연세대교수가 조망한 ‘연평도사태 이후’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 대외정책이 연평도 도발 전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평도가 지역구인 기업인 출신의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과 국제정치학자이자 북한·미국통인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가 5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나 연평도 사태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도운 정치부장의 사회로 1시간 20분간 이어진 좌담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사회 : 이도운 정치부장 →현장 얘기를 먼저 듣겠다. 연평도 사태 이후 서해 5도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왔는가. 박 의원 그동안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서 대하고, 한민족의 공동 번영과 평화, 통일 등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정착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서해 5도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대부분이 과거 우리가 말하는 ‘반공’ 분위기로 회귀한 것 같다. →연평도 사건이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문 교수 외교 안보 패러다임에서 연평도 사태를 미국의 9·11 사태와 비교하는데,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연평도 사건은 이제야말로 북한과 빨리 대화하고 서해 5도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해서 평화 협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중·러는 북한 편을 들고 한·미·일은 북한을 규탄했다. 상황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북아에 새로운 냉전구도가 생기고 우리도, 북한도, 동북아도 모두 어려워진다. →연평도 사태로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한나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박 의원 국제법을 따지는 것보다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면 독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니까 현실을 인정하고 협상하면 거기서 지배가 가능해야 한다. ●“상호주의 기반 대북 대화 늘려야” →지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에 합의했다. 이 시점에서 당시 합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문 교수 그 합의를 지켰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생각은, 국제해양법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 현실적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북한은 5개 도서의 남쪽 귀속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자유로운 선박 통행을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NLL을 양보 못 하는 대신 평화협력지대를 만들어 갈등을 풀자는 것이었다. 박 의원 인천국제공항부터 해주까지 갯벌이 6억평이다. 그것을 단계적으로 개발해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 남북이 공동 번영하자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우리가 평화수역 만들자고 했을 때 북한이 NLL을 인정한 면이 있다. 국제 영해가 12해리인데 북한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도 우리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남북 간이 현재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그런 얘기를 할 상황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에서 국면이 바뀌면 다시 심각하게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 인식이 보수화되고 있는데 대북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박 의원 북 도발에 의해 국민 생명을 빼앗기고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입었는데 정부에서 그것을 없는 것처럼 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기조가 바뀐 것이 상호주의다. 다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전시 중인 국가도 대화하는데 우리는 그런 대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향후 어떻게 나올 것 같나. 문 교수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한다고 하고, 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보면 상당한 수준의 미사일 요격 능력도 갖고 있다. 남측과는 대화한다고 할 것이고 핵은 포기 안 하려 할 것이다. ‘비핵·개방·3000’은 현실성이 약하다. 북한은 핵이 체제 생존을 위한 것인데 3000달러와 등가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도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남측이 북에 대해 영향력이 있을 때 미국과 중국도 우리를 따르고, 제한적이나마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남북관계가 단절돼 어렵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북과 대화해서 북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남측에 의존하도록, 도움을 받고 싶게 만든 뒤 미·중과 조율하면 북핵 해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 자체의 변화가 없으면 힘들 것이다. 개방으로 가고 시민사회가 확대되고 안심을 느껴야 하는데 어려운 것이다. →연평도 이후에도 주가가 올라 최근 며칠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과연 ‘북한 리스크’는 있는 것인가. 박 의원 그만큼 우리 경제와 국민이 성숙한 것이다. 경제가 커지는 동안 정부와 외교관, 전문가들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경제인들은 경제를 발전시켜 한반도 미래를 개척할 테니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안보를 더 강화하면서 북측에 당근을 줘 북한이 개방, 자유 세계로 나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건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 문 교수 증시 활황은 경제적 변수인데, 이것을 정부가 강한 응징을 해 북이 꼬리 내린 것이고, 그러면 경제는 계속 활황으로 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계산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북한이 그렇게 망나니는 아니라는 것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안전 기제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이것을 너무 자신해서 공세적으로 가다가 확전되면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대북 응징이 증시 활황 배경 아냐” →연평도는 접경 지역이지만, 개성공단은 북한 내부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의원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은 남북관계가 잘될 때는 공존 번영사업이지만, 나빠지면 우리 입장에선 북한에 인질이 되는 것이다. 유사시에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2단계 사업 투자도 늦어지고 있고 북측 불만이 크다. 문 교수 생각하기 나름이다. 현 정부가 얼마나 일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나.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은 안타깝지만 남북관계를 볼모로 잡았다. 하나 터지면 정부가 응징 외교 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됐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상황에서 개성공단까지 문 닫으면 남북관계 끈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긴장이 고조되고 일촉즉발의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개성을 본다. 개성 문 닫으면 뺀다. 우리 정부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쉬운 평화의 길이 있는데 왜 싸움을 하나. →정부도 남북정상회담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문 교수 백채널로 북한과 대화가 오가야 하는데 이뤄지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위기가 있으면 백채널이 만들어지고 정치적 작업이 있는데 단순히 이벤트성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다. 두 정상이 만나서 큰 그림, 평화 번영을 가져올 큰 그림을 그릴 전략을 갖고 접촉해야 한다. 우리 정부에 그런 그림과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고 백채널도 의문시된다. (교수님이 백채널로 나선다면?) 나를 활용하지 않으니까(웃음). 시간 늦으면 소용없다. 올해 상반기가 마지노선이다. 대통령이 김정일 만나 남북 현안 문제를 풀고 핵 이야기를 하고, 이 대통령이 미 오바마 대통령과 친하니 오바마와 김정일이 만나 핵 문제 풀게 하면 일석이조다. 박 의원 박왕자씨 사건은 남북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연평도 사건도 국민들에게 좋은 반성의 계기가 됐다. 북한이 도발한 것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지 정상회담도 바람직한 것이 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문 교수 정상회담은 조건 없이 해야 한다. 사과 전제로 하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조건 조건부, 미국 의존형 외교만 하고 있다. 우리는 큰 그림과 전략이 없다. 북한은 살고 죽는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강제로 할 수 없고 대화와 설득을 해야 한다. 정리 김미경·유지혜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오늘의 눈] 6자회담 워킹그룹 활용하자/김미경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6자회담 워킹그룹 활용하자/김미경 정치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9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내년에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며 6자회담에 힘을 실었다. 특히 “6자회담을 통해서 하지만, 남북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하는 데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6자회담과 남북대화에 부정적이었던 이 대통령의 달라진 발언은, 다음 달 1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6자회담 외교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당장 남북대화에 나서기는 어렵지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라는 장을 활용해 남북이 협상함으로써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남북관계와 6자회담은 그동안 선순환적으로 진행된 사례가 많다. 지난 2007년 6자회담 ‘2·13합의’에 이어 ‘10·3합의’가 나왔을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가 6자회담을 떠받쳤다. 6자회담 속 남북과 북·미 접촉은 진통 속에서도 회담 진전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존 틀로 돌아가는 6자회담은 남·북·미 간 아무리 협상을 해도 북한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미 등은 이미 ‘회담 재개를 위한 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것 처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비핵화를 결심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 2007년 ‘2·13합의’를 보면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등을 협의하는 워킹그룹이 설치돼 있다. 6자회담이 당장 열리기 어렵다면 경제·에너지 협력 워킹그룹 의장국인 대한민국이 나서 3자, 4자, 5자 접촉을 통해서라도 비핵화와 대북 지원, 평화체제 등을 협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chaplin7@seoul.co.kr
  • “남북화해 증진 계기되길” 교황 성탄절 메시지

    “남북화해 증진 계기되길” 교황 성탄절 메시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남북한의 화해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독 중국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쳐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정오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발표한 성탄 축하 메시지에서 “구세주의 탄생이 한반도에서의 화해를 증진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 10월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그 해 9월에도 남북 대화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한반도 상황을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를 내 놓기도 했다. 교황은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도 기원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 본토에 있는 교인들이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부과된 제약에 낙심하지 않으면서 희망의 불꽃을 계속 태우게 해 달라.”는 ‘뼈있는’ 기도를 올렸다. 중국은 이달 초 교황청 승인 없이 관제 가톨릭 단체인 ‘중국천주교 애국회’ 지도부 선출을 위한 주교단 회의를 강행해 팡싱야오(房興耀) 신부를 애국회 주석으로, 마잉린(馬英林) 신부를 천주교주교단 주석으로 각각 선출하면서 교황청과 마찰을 빚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北 대미외교라인 모두 승진

    北 대미외교라인 모두 승진

    북한의 핵협상과 대미외교를 총괄해 온 강석주(71) 외무성 제1부상이 23일 내각 부총리에,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67) 외무성 부상이 외무성 제1부상에 각각 임명되는 등 대미외교라인이 모두 승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강 제1부상과 김 부상의 승진 사실을 보도했다. 6자회담 북측 차석대표인 리용호(56) 외무성 참사도 외무성 부상에 임명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북 외무성 대미외교라인이 동시에 모두 승진한 것이다. 특히 김 부상이 박의춘 외무상을 제치고 부총리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대북 소식통은 “6자회담이 정체된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등이 이뤄지면서 대미외교라인에 힘을 실어줘 미국을 상대로 압박을 지속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김 부상의 승진으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북측이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외무성 고위급 인사를 시작으로 현재 8명인 내각 부총리를 비롯, 다른 부처 인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 신임 부총리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끄는 등 6자회담과 대미외교를 도맡아 왔다. 1986년 북한 관료로는 젊은 나이인 47세에 외무성 제1부상에 임명돼 24년간 같은 직책을 맡아 김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할 정도로 외교정책을 주도해 왔다. 올들어 김 위원장의 두 차례 방중과 각종 현지지도를 수행하면서 핵심참모 역할을 과시했다. 2003년 1차 6자회담 때부터 수석대표를 맡아온 김 신임 제1부상은 클린턴 미 행정부를 상대로 한 제네바 합의, 미사일 회담 등에서 대표단으로 활동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그를 회담장으로 불러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6자회담 10·3 합의 내용을 직접 설명하도록 할 정도로 김 위원장의 신임이 각별하다는 후문이다. 리용호 신임 부상도 1990년대 초부터 핵과 미사일 등을 다뤄온 대미 전문가로, 영국 주재 대사를 거쳐 2007년 외무성에 복귀한 뒤 차석대표로 6자회담에 참석해 왔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박 외무상과 함께 대표단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트위터로 위협하며 손벌리는 北 이중성

    북한이 최근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를 이용해 대남 선전·선동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우리민족’이라는 아이디로 개설한 트위터에 올라간 글을 보면 “무모한 군사적 행동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다.” “무자비한 대응의 철추를 내리게 될 것이다.” 등 험악한 내용투성이이다. 남남갈등 야기 등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트위터 이용이 잦은 젊은 세대들이 문제의식 없이 북한의 일방적인 억지 주장에 끌려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국민들이 북의 얘기에 부화뇌동하지도 않겠지만 그들의 ‘트위터 정치’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지만 개통 6일 만에 팔로어가 5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세가 빨랐다는데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북한은 천안함 폭침 이후 끊임없이 도발적인 언행을 일삼아 왔다. 문제는 남한을 위협하는 정도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핵 억제력에 기초한 보복성전’ 운운하며 3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더니 급기야 최근 NLL을 향해 해안포 110여발을 발사하는 군사적 도발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론화를 제의한 ‘통일세’도 ‘전면적인 체제대결 선언’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이처럼 겉으로는 큰소리치던 북한이 남한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재 북한은 지난해 2차 핵실험과 올해 천안함 사건으로 대북 경제제재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경협이 위축돼 타격은 더 클 것이다. 과거 정부 10여년 동안의 ‘통큰’ 대북 쌀지원도 끊긴 지 3년 가까이 되다 보니 식량 사정도 좋지 않아 쌀 한 톨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한다. 북한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처럼 경제지원을 담보한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지금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도 어려울 정도로 경색국면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천안함 폭침에 이렇다 할 사과 한마디 없이 뒤로 챙길 것은 챙기겠다는 이중적인 북한의 속셈을 우리 국민은 다 알고 있다. 북한이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핵포기 선언부터 하는 것이 순리다.
  •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 성과와 한계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 성과와 한계

    15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처음 만나 한반도 화해·협력시대를 천명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10주년을 맞는다. 남북 간 교류·협력이라는 큰 물꼬를 튼 6·15 공동선언은 지난 10년간 남북 간 상호 화해·협력의 증진을 도모하는 실천적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 긴장완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남북 교류·협력시대 열어 실제로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혈맥 잇기’에 나서 2003년에 도로 통행을, 2007년에는 경의선 철로운행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남한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에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시킨 개성공단을 본격 가동하면서 남북 교류·협력 시대를 열었다. 이 덕분에 2000년 4억 2500만달러에 불과했던 남북교역 규모가 2007년에는 4배가 넘는 17억 9700만달러로 증가했고, 개성공단 생산액도 2005년 1491만달러에서 2009년 2억 5647만달러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인적 교류도 2000년 7986명에서 2007년 15만 9214명으로 20배 가까이 늘어났고, 선박 운항은 2000년 2073회에서 2007년 1만 1891회, 항공기 운항은 19회에서 153회로 급증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 이후 남북 교류·협력이 더욱 탄력이 붙으면서 한층 다양해져 수산·농업·광업·보건의료 등 부문에서 당국 간 회담이 잇따라 열렸다. 여기에 2000∼2007년 남북 간에 1만 3593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6·15 공동선언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른 화해·협력을 정책화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이를 통해 경협사업 등이 활발해지면서 남북 간 화해와 협력,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은 실패 하지만 한계점도 드러냈다. 경제협력 부문과는 달리 정치·군사 부문 등에서는 공동선언의 의미가 크게 바랬기 때문이다. 공동선언 이후 남북은 장관급회담 21회, 국방장관회담 2회, 장성급회담 7회, 군사실무회담 35회를 개최했으나 분단 극복이라는 근본 문제를 푸는 데는 남북이 이견을 노출했다.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에서 심리전 수단 제거, 남북교류의 군사적 보장 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군사적 신뢰 구축에는 실패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1·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남한 내에서 ‘퍼주기’ 논란이 거세져 경제·사회·문화 등 부문의 교류가 위축됐고,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선(先) 핵포기, 후(後) 관계개선’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으면서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천안함 사태마저 발생하면서 공동선언의 의미는 사실상 빛을 잃었다. 북한 전문가는 “공동선언이 남한 내부에서 합의절차 부족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어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면서 “이렇다 보니 이행 과정에서 남북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바람에 공동선언의 남북 간 합의라는 타당성마저 크게 훼손돼 계승되지 못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토요 포커스] 정부부처 ‘기자실장’

    “오늘 발표자료 2건 있습니다. 온실가스 관련 해당국의 브리핑도 예정돼 있습니다.” 정부 부처 출입기자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얼굴이 기자실장이다. 아침 환경부 기자실에 들어서자, 김정자(42) 기자실장의 숨가쁜 전화 중계가 한창이다. 기자실장들은 출근과 함께 기자들의 문의 전화와 각종 자료를 챙기는 일로 분주하다. 같은 내용을 여러번 설명하자면 짜증도 날 만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성격이 제각각(?)인 기자들과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속 좋은 시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 ●기능·별정직으로 직급은 낮아 대부분 기능직이나 별정직으로 직급은 낮지만 본부 간부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부처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전문성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실장들은 스스로 ‘반기자’란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기자실장이라는 공식직책은 없지만, 기자도 공무원도 대부분 그렇게 부른다.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부처 상황파악이 서투른 기자들은 발표자료에 대해 기자실장과 오랜 시간 통화한다. 메일 서비스 주문에서부터 담당자 전화번호 문의 등 주문 사항도 제각각이다. 보건복지부 김희옥(50) 실장은 출입기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30년동안 기자실에서 생활, 보도자료가 나오게 된 배경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부처출입 초년기자들에게 기자실장은 멘토가 되기도 한다. 한 자리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취재원이나 간부들의 신상을 꿰뚫고 있다. ●보도자료 배경 등 정보 제공 통일부 허희옥(44) 실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자타공인 ´베테랑 왕실장’으로 통한다. 올해로 통일부 근무 25년째인 허 실장은 15년을 기자실에서 보냈다. 허 실장의 진가는 각종 남북회담 개최 때마다 확인된다. 허 실장은 지금까지 2차례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200여 차례의 남북회담을 거치며 회담에 필요한 실무를 도맡아 왔다. 통일부 출입기자들의 평양·금강산·개성 풀(Pool)기자 선정부터 매일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했다. 노동부 박현숙(45) 실장은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16년 붙박이이다. 기획재정부 박미란(53) 실장은 기자실장으론 처음으로 최근 사무관으로 승진, 기자실장들의 부러움을 샀다. 승진을 하려면 기능직에서 일반직 전환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합격하더라도 지방 근무 가능성이 커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고, 사무관까지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10~30년 근무한 베테랑 박 실장은 1978년 광화문 경제기획원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기자들과 함께 생활한 지 33년이 됐다. 박 실장은 부처와 언론계 호적계장으로 통한다. 남덕우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부터 윤증현 현 장관까지 30명이 넘는 수장체제를 겪었다. 부처를 출입한 기자들의 신상도 줄줄이 꿴다. 국방부 김안중(53·별정 7급) 실장도 33년간 기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관학교를 나와서 군생활을 했다면 4성 장군에 오를 수 있는 기간이다. 각 부처 기자실장들은 최하 10년부터 많게는 30년 넘게 근무한 고참들이다. 국토해양부 이혜영(43) 실장은 21년, 지식경제부 최훈정(39) 실장은 15년, 농림수산식품부 이미경(46) 실장은 22년째 근무 중이다. 유진상 오이석기자 jsr@seoul.co.kr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 北 “南주민 4명 조사뒤 통지”

    북한은 불법입국 혐의로 붙잡았다고 주장했던 우리 국민 4명에 대해 2일 “해당기관에서 조사 중으로, 다소 시일이 걸리는 문제”라며 “최종 확인이 되면 정식으로 통지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북한 당국의 입을 통해 공식 확인된 셈이다. 북측은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협의소에서 열린 ‘개성공단 3통(통행·통관·통신)’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이 4명의 신원 확인을 요구하며 우려를 표명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북측은 이외에도 8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 훈련 및 대북 전단지 살포의 부당성을 집중 거론했다. 남북은 접촉 내내 3통 개선을 위한 대화를 진행했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 대해선 이견차를 드러내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양측은 3통 문제를 통행·통관 분야와 통신 분야로 각각 분리, 후속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강우 통일부 남북협력지구 지원단 과장은 이날 밤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남북 실무접촉 결과 공식 브리핑을 갖고 “남측 대표단은 통행과 관련해 3월 내로 전자출입체계(RFID)를 도입, 5월부터 신청한 날짜에는 어느 시간대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1일 단위 통행제도 본격 시행을 제안했다.”면서 “통관의 경우 현재 전수검사 방식을 선별 검사 방식으로 전환하고, 선별 검사 비율은 50%수준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통신은 최근 설치 공사를 마친 광케이블을 활용, 인터넷과 이동전화 서비스를 빠른 시일내에 개통해 줄 것을 북측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면 북측은 2007년 12월 제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양측이 도출한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 합의 이행을 강조하며 남측에 동해지구 3통 관련 자재 및 장비제공을 요구했다. 북측은 또 1·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인 6·15, 10·4선언 이행 등을 주장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대통령 취임 2주년] 한·미 찰떡공조…남북정상회담 변수

    “올해로 외교통상부 근무 30년째인데, 요즘처럼 한·미 관계가 좋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22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서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서울에 온 한덕수 주미대사도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현재 한·미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게 워싱턴의 평가”라고 했다. 이달 초 서울을 찾았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한·미 관계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지금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같은 ‘한·미 관계 온난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중 간 견제와 미·일 갈등이라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으로 한국의 중요성이 부각된 데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국력이 커진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감성외교’도 한몫 했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신 차관은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한 성공담을 솔직히 털어놓는 이 대통령의 화법에 정상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중·일 순방 직후 “한국 방문이 가장 좋았다.”고 밝힌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한·미 간 ‘찰떡 공조’를 북한은 대남 위협과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고전적 수법으로 이간(離間)하려 들지만 별무소용인 상황이다. 북핵 문제에 있어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비(非) 정치적 해법을 지향하는 한국 정부의 ‘궁합’은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처럼 오락가락하지 않고 ‘핵추구=제재, 핵포기=지원’이라는 일관된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비핵·개방 3000’이라는 단순한 원칙으로 북한의 현란한 도발에 맞서고 있다. 경제난으로 다급해진 북한은 미국을 향해 제재 해제를, 남한에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와 남북정상회담 등을 각각 요구하는 ‘통미통남’ 전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전에 볼 수 없던 신(新) 기술이다.하지만 아직까지 한·미 간 보조는 가지런하다. “6자회담 재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북한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당국자들의 차분한 자세는 지금 남북문제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취임 직후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과 2차 북핵 실험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듯 했던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옳은 결단이었다는 분석이 점증하고 있다. 문제는 임기 중반에 접어드는 올해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適期)로 꼽힌다는 점이다. 북한이 ‘개과천선’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6자회담 이 재개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난제다. 지금까지의 전략대로 북한의 투항을 인내심 있게 기다릴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견인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지가 이 대통령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가시화되는 남북정상회담] 역대 정상회담 막후 인물은

    그동안 역대 남북정상회담은 막후(幕後)에서 어떻게 추진돼 왔을까. 남북정상회담은 비밀유지가 필수조건이다. 때문에 국가정보원장은 빠지지 않고 관여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게 회담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회담성사가 가시화되기 전에는 남북한 실무자들의 물밑접촉이 주로 이뤄진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쯤엔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할 핵심 측근이 ‘밀사’로 움직인다. 북측 카운터파트를 만나서 최종 방안을 결정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2000년 DJ 핵심 박지원씨 전권 2000년 6월 남북한이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사실은 4월10일 남북 동시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발표 한달 전인 3월9일 양측 정상의 특사인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측 송호경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가졌다. 지난해 말 남북 고위관계자가 싱가포르에서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것처럼 싱가포르가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의 인프라가 좋은 데다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국정원 대북담당 차장 등 국정원 실무자가 박 전 장관을 수행했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도 몇 차례 극비리에 방북했지만 협상은 주로 박 전 장관을 통해 이뤄졌다. 박 전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데다, 문화부 장관은 남북접촉 창구가 아니라 북측인사 접촉 때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도 고려됐다. ●2007년 안희정·김만복 투톱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2차 정상회담도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6년 10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베이징에서 이호남 북한 참사와 만났다. 이어 2007년 7월초 김만복 국정원장의 대북접촉 제의를 같은 달 29일 북한이 수용하고 김 원장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이후 김 원장이 전권을 위임받아 평양을 두 차례 비밀리에 방문했고, 8월8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 뻔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됐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는 각각 장세동·서동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대통령 신년연설] ‘남북 상시대화기구’ 마련 제안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한층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국정연설에서는 “북한은 더 이상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벗고 협력의 자세로 나와야 한다.”면서 대북 경계심을 강조하고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 반면 올해는 1982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처음 거론된 이후 현재까지 표류 상태인 ‘남북 상시 대화 기구 창설’, 2007년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한 뒤 남북관계 악화로 이행되지 못한 ‘국군 유해 발굴 사업 추진’ 의사 등 남북 간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이 올해 예년과 달리 남북관계 부분에서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한 데에는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올해 북핵 문제 흐름이 긍정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고, 북측도 이미 신년공동사설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조건이자 회담의 의제로 북핵 문제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꼽고 있기 때문에 향후 국군유해 발굴 사업 추진에 북한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할 경우 정상회담 개최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도 이날 이 대통령의 연설 이후 남북관계 진전 등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국군 유해발굴 사업을 우선적으로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는데, 이는 6자회담 재개가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조건’ 중 하나임을 북측을 향해 분명히 밝힌 것이란 분석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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