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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포로보상금 日에 추가 요구 검토/블레어 총리­향군대표 면담

    【런던 연합】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10일 영국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2차대전중 일본군에 억류됐던 자국 포로에 대한 추가 보상금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검토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일본에 대한 그같은 보상금 요구가 때늦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본군 포로출신 재향군인 대표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이 약속했다. 영국 재향군인 권익을 위한 초당적인 의회내 단체의 회장인 마크 오튼 의원은 이날 일본군 포로출신 대표들이 블레어 총리와 40분간 요담한 결과 영국정부 입장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 美·中 내년 합동 해상훈련/홍콩 스탠더드紙

    ◎클린턴 訪中때 전략 동반자관계 논의/중국軍 새달 림팩훈련 첫 참관 【도쿄=姜錫珍 특파원·홍콩 AFP 연합】 중국과 미국이 내년에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키로 합의할 것 같다고 홍콩의 스탠더드지가 8일 보도했다. 양국의 합동 해상구조작전 훈련 계획은 오는 25일부터 중국을 방문하는 클린턴 미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간의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어 양국 전략군과 핵병력간 정보교환 체제도 구축될 것이며,이에 따라 양국 최고위 장교들간의 연례 교환방문 길이 열리게 된다고 진단했다. 한편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날 7월에 대규모로 실시될 림팩(환태평양 합동훈련)에 중국군 시찰단이 처음으로 참관하게 된다고 미 국방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림팩이란 미국이 한국,일본,캐나다,호주,칠레 등 5개국과 함께 하와이 앞바다에서 2년마다 한번씩 대규모로 실시하는 해상 군사훈련이다. 중국의 림팩 참관은 미국의 초청에 따른 것으로 시찰단은 해군 장교 등 3∼4명으로 구성된다.중국은 또 올 여름 알래스카에서 있을 미군 훈련에도 시찰단을 보낼 계획이며,재해에 대비한 인도적인 구조활동을 위한 도상훈련에도 참관을 희망하고 있다. 신문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재해 구조를 비롯한 인도적 활동 교류 ▲훈련에 시찰단 파견 ▲환경보호 협력 등 3개 분야에서 군사교류 추진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 反民특위 강제 해체/‘6·6사건’의 의미(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미완의 단죄’로 민족사 굴절/제헌국회,48년 반민족처벌법안 통과/화신재벌 朴興植 등 검거 재판대 세워/본격 활동 앞두고 李承晩이 강력 제동/조사대상 30%만 기소… 결국 흐지부지 일제 강점기 친일 행각을 벌인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이 특위는 李承晩 대통령의 집요한 방해로 활동에 제약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이듬해 6월6일에는 강제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반민특위 활동의 미완성은 이후 49년 동안 우리 현대사 굴절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왔다. 1949년 6월6일 아침 8시.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경찰을 가득 태운 2대의 드리쿼터가 들이닥쳤다. 습격대 지휘자는 尹기병 당시 중부경찰서장.尹을 비롯한 40여명의 경찰은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출근하는 특위 직원들을 연행했다.반민특위 金尙德 위원장과 金相敦 부위원장이 “국립경찰이 헌법기관인 특위를 강점하고 직원을 불법체포하니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내였다.金부위원장은 책상을 치며 울분을 터트렸다.검찰총장 겸 특별검찰관장 權承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그 역시 안하무인의 경찰에게 권총을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지휘권자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호통도 소용없었다. 연행된 사람은 모두 35명.특경대원 24명,직원 및 경호원 9명이었다.직원을 면회온 민간인 2명도 엉뚱하게 같이 끌려 갔다.연행자 중 22명이 입원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날의 ‘6·6사건’은 해방후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었다.경찰력이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李承晩 독재의 길을 열었다.친일파 제거에 실패함으로써 헌정사 왜곡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입법부가 행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반민특위가 구성된것은 48년 9월29일.올해가 50주년이다.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李承晩 독재는 물론,이후 군사정권도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제헌국회는 48년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시켰다.반민특위 위원은 각도 출신국회의원 중 선임됐다.金相敦(서울) 趙重顯(경기) 李鍾淳(강원) 朴愚京(충북) 金明東(충남) 吳基烈(전북) 金俊淵(전남) 金尙德(경북) 金孝錫(경남) 金庚培(제주·황해) 등이었다.金炳魯 대법원장을 재판관장으로 하는 특별재판부,權承烈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특별검찰부,李元鎔 총무과장이 이끄는 중앙사무국이 각각 구성됐다.진용을 갖춘 반민특위는 49년 1월5일 공식업무를 시작했다.특위는 1월8일 화신재벌 朴興植을 검거하는 것을 필두로 전광석화같이 친일파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출범초부터 친일세력의 심한 반발이 일어났다.일제 경찰 출신들이 반발세력의 중심이었다.해방직후 발족된 새 경찰의 50%이상이 이들 출신으로 추산된다.친일파 세력을 집권 기반으로 한 李承晩도 반민특위가 눈엣가시였다.李承晩은 盧德述 崔燕 등 심복인 경찰간부들이 특위에 체포되자 특위 해체를 추진,‘6·6사건’에 이르게 된다. 결국 특위는 49년 8월31일 조사대상 682명 중 221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냈다.이중 1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5명은 집행유예,나머지 7명도 형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됨으로써 친일파 단죄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다른 나라의 사례/佛,나치협력 3만∼4만명 처형/시민법정 설치… 9만5천여명 시민권 박탈/中·대만 정부 친일파 漢奸 색출 상당수 처벌 2차대전 직후 독일과 일본의 전범처리가 있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는 22명의 1급 전범이 기소되어 나치군 원수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7명이 종신형∼10년의 금고형을 받았다.도쿄재판에서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이 내려졌다.기도 고이치(大戶幸一) 등 18명에게는 종신형∼금고 20년이 선고되었다. 우리의 친일파 문제와 비슷한 것은 유럽국가의 나치협력자 숙청과 중국·대만의 한간(漢奸·친일파)재판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멸망 직후인 44년 6월부터 11월에 걸쳐 나치협력자 처리를 위한 4개의 훈령을 내렸다.이 훈령에 따라 조사받은 인원은 150만∼200만명.드골은 회고록에서 1만842명이 나치협력자로 처형됐다고 밝히고 있다.드골은 작가,언론인,학자 등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들도 엄히 다스렸다.현대사가 로베르 아롱은 “3만∼4만명이 재판에 의했든지, 그렇지 않든 간에 민족반역자로 사형당했다”고 추정했다.프랑스는 형사재판권이 없는 시민법정도 설치,9만5,000명을 ‘비국민’으로 판정해 시민의 권리를 박탈했다. 덴마크는 1만4,000명,네덜란드는 4만명,벨기에는 5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의 나치협력자를 각각 민족반역자로 무기에서 유기징역형에 처했다. 중국과 대만정부도 2차대전이 끝난후 친일파 제거에 나섰다.한간재판은 중국공산당 정부와 장제스(蔣계石)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46년 4월부터 48년 9월까지 따로 진행되었다.중국·대만정부에 의해 한간으로 판명된 상당수 인사들이 처형됐지만 개별처리 사실만 알려질뿐,전체적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특위 총무과장 역임 李元鎔옹/“민족정기 바로서는 날 두눈 감기전 보았으면” “金大中 대통령이 명실공히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되찾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반민특위 총무과장과 조사관을 역임했던 李元鎔옹(78)은 국민의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반민특위에관계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타계한 현실에서 그는 당시 특위의 고위 중앙요원으로는 유일한 생존자다.서울 공대 전신인 광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48년 10월 반민특위 구성때 민간인 신분으로 행정실무를 주도했다.다음은 李옹과의 일문일답. ­현재의 심경은. ▲오늘 이 땅위에 사는 구세대 치고 일제의 학정과 인간 이하 대우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이러한 일본의 관헌에게 우리 조국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던 애국지사를 밀고,또는 체포해 넘긴 반역자가 있었습니다.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두 눈을 감기전 바르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반민특위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 못한 이유는. ▲국내사정에 어두운 李承晩 대통령이 친일파들의 간계에 현혹되어 경찰력을 동원,하루 아침에 반민특위를 와해시켰습니다.제헌국회의 결정에 따른 헌법기관이 불법적으로 무너짐으로써 헌정사에 크나 큰 오점을 남기게 됐지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는. ▲金泳三 정권이 들어선 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기치로 내걸어 혹시 하며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실효없이 용두사미격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관계 각료나 관련 인사들이 모여서 기구를 만들어 과거에 처단치 못한 민족반역자를 처벌해야 합니다.그래야 이 나라의 기초가 탄탄해집니다.金대통령은 해박한 경제관과 탁월한 국제 외교력을 겸비했습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많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해주는 데도 힘써주실 것으로 믿습니다.그것이 경제 등 다른 난국의 극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반민특위 활동 일지 ▲48년 8월5일=제헌국회,‘반민족행위 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 ▲9월7일=‘반민족행위 처벌법’ 국회 통과 ▲9월29일=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반민족행위 조사특위(반민특위)’구성동의안 국회 가결 ▲10월1일∼11일=반민특위 10명 조사위원 선임 ▲10월23일=반민특위 1차위원회 ▲49년 1월5일=반민특위 사무실 개소,업무 개시 ▲1월8일=화신재벌 총수 朴興植 1호 체포 기록 ▲1월13일=崔麟 검거 ▲1월25일=盧德述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검거 ▲2월7일=崔南善 李光洙 검거 ▲2월15일=李承晩 대통령,반민처벌법 개정 필요성 특별담화 ▲3월28일=李琦鎔 朴興植 등 반민자 첫 공판 ▲5월하순∼6월초=정부,1·2차 국회 프락치사건 발표 ▲6월6일=경찰,반민특위 습격,조사요원 불법체포,특경대원 무장해제 ▲6월26일=金九 선생 암살 ▲8월31일=반민특위 공식해체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核대결 부른 美 외교정책/羅潤道 특집기획팀장(데스크 시각)

    이달초 인도의 핵실험에 이어 이번에는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온세계가 벌집을 쑤셔놓은듯 들끓고 있다.이는 단지 오랜 앙숙관계에 있어왔던 두 나라 사이에 핵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21세기 단일 수퍼파워로서 핵균형을 통한 국제평화체제를 구축하려던 미국의 전략구상에 큰 차질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같은 사태를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지난해 8월15일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분리독립한지 50주년을 맞았을때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다투어 남아시아 관련 보고서를 내놓으며 그동안 미외교에서 사각(死角)지대로 돼있던 이 지역에의 관심 강화를 촉구했다. 중국의 인구보다 많은 14억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두 나라가,강대국들이 21세기 평화의 안전판으로 내세우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서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주장이었다. ○美 국익따라 원조­중단 반복 그러나 이번 인도­파키스탄 핵실험으로 초래된 새로운 긴장의 근본원인이 2차대전 이후 50년 가까이 지속돼온 적대적인 분할국에 대한 미외교정책의 실패라는 측면에서 한반도나 중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른바 ‘국익’을 앞세운 일관성 없고 편의주의적인 미외교정책이 이들 국가들의 적대감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더 악화시켰으며 급기야는 핵대결로까지 치닫게 한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과거 무굴제국으로 통합돼 있었으나 독립하면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이유로 분할됐다.미국은 파키스탄과는 냉전시대 소련의 공산침투를 막기 위해 전략적 동맹관계 수립,미 주도의 지역안보기구인 동남아조약기구(SEATO),중동조약기구(CENTO)에 파키스탄을 참여시키고 막대한 군사원조를 퍼부었다. 인도와는 ‘세계최대의 민주주의’국가라는 관점에서 식량원조와 경제개발계획 원조,그리고 중규모의 무기지원을 해왔다.65년 제2차 인파전쟁에서는 양국이 미국제 무기로 싸우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그후 얼마간 양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는 중단됐다. 그러나 72년 닉슨 행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중개역할을 위해 파키스탄에 군사원조를 재개했다.71년 제3차 인파전쟁에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동·서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인도를 위협하던 전략적 위치를 상실한 파키스탄은 인도와 적대관계에 있던 중국과 밀착했던 것이다.수년후 미국은 중국과 직접대화가 가능해지면서 다시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원조를 끊었다. ○印·파키스탄에 군사지원 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다급해지자 미국은 파키스탄에 맹방임을 강조하며 다시 군사원조를 재개했다.그러나 80년대말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다시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했다.더욱이 중국으로부터 핵기술 이전을 이유로 경제제재를 취해 파키스탄으로부터 F­16기 28대의 대금을 받고 아직까지 물건도 돈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오늘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양국의 핵기술도 산업용을 저제로한 미국의 기술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적대적 분할국들에 대한 중재역의 실패가 해당 국가들 간에 심각한 긴장을 초래시켰다는 사실에서 미국을 최고의 중재자로 삼아온 남북한이나 중국­대만이 얻는 교훈은 클 것이다.
  • 日王 對英 사과 발언 眞僞 논란

    ◎英 언론 “영어 번역문에만 슬픔 첨가”/향군 분노 커지자 日 대사관 진화 부심 【런던 AFP 연합】 일왕(日王)의 영국방문 논란이 이제 그가 공식석상에서 행한 발언의 진위 여부에까지 번졌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5일(현지시간) 버킹엄궁 만찬에서 행한 연설 가운데 2차대전 희생자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의 번역문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당초 일왕은 연설에서 “그들이 겪었던 전쟁의 상처를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은 깊은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으나 일본정부가 제공한 영어 번역문에는 “…깊은 슬픔과 고통이 차오른다”고 돼 있어 ‘슬픔’이라는 말이 첨가됐다.일왕이 하지도 않은 말을 일본정부측이 슬쩍 집어넣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일왕에 대한 전쟁포로 출신 재향군인회 회원들의 사죄 요구를 희석시키자는 의도에서 이같은 첨가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영국 언론쪽에서 제기됐다.이같은 논란이 일자 영국 재향군인회쪽에서는 더욱 ‘깊은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런던 주재 일본 대사관은 “번역을 통해 영국 국민들을오도하려 했다는 지적은 근거없는 것”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번역문은 일본어 원문에 담긴 진정한 의도와 의미를 반영하는 유일한 것”이라며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 도쿄 국제기독대학 로저 버클리 교수 IHT 공동 기고(해외논단)

    ◎英·日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을 영국 정부가 공식 방문중인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크게 반기고 있지만 영국 국민들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2차 대전중 일본군의 포로였던 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도쿄 국제기독대학의 역사 교수인 로저 버클리씨와 영국 BBC방송의 유럽전문가 윌리암 호슬레이씨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과거청산이 있어야만 양국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다음은 기고문의 요약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최근 영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공헌도를 강조하며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공조해나갈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영국에 일본의 공장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살인적인 철도 공사현장이나 싱가포르의 창이 감옥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을 잊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왕의 방문은 영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함께 또다른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재향군인회의 한 간부는 영국 왕실이 최고 명예작위를 아키히토 일왕에게 수여하는 것은 당시 참전용사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의 영국군 참전용사그룹은 전쟁에서 입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으로 일단락된 정부 차원의 보상책을 거부하며 가해국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당하게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협정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일시불로 76파운드(약 17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보상책은 악몽과도 같은 전쟁의 상처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모욕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영국 방문에 강도높게 항의하고 있는 영국의 재향군인회와 유가족,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좀더 책임있는 태도를 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서 불성실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던 터다. 향후 다각도의 경제협력을 모색중인 일본과 영국 정부는 좀더 전체적인 협력체제의 모양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정부간의 경제적 이해에 앞서 먼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막고 있는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전쟁희생 당사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한 해결책으로 최근 독일과 체코 정부가 조성한 ‘화해기금’의 사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독일과 체코 정부는 이 기금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체코 상이군인들의 노후생활을 지원키로 했다. 영국과 일본이 이같은 조치들을 함께 실행해 갈 수 있을 때 두 나라 역시 진정으로 아픈 과거사를 묻고 미래를 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日王 英 국민에 “깊은 아픔 통감”/공식방문 첫날

    ◎英 참전용사들 거센 항의시위 【런던 AFP DPA 연합】 영국을 방문중인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국왕은 26일 2차대전 당시 영국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日王)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날 버킹엄궁에서 베푼 만찬에서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이 겪은 갖가지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전쟁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손상을 입은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는 또 “전쟁의 상처를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아픔으로 차오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 영국군 참전용사들은 이같은 아키히토의 유감 표명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헌법상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아키히토 왕은 1만명의 영국군 참전용사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편 아키히토의 영국 공식방문은 첫날인 26일부터 거센 항의 시위를 겪는등 수난으로 얼룩졌다.
  • 英 방문 日王 곤욕 우려

    ◎향군 “과거사 사죄” 시위속 첫날 행사 순조 【런던 AP AFP 연합】 곤욕을 치를 것이란 우려속에 영국 방문길에 나선 아키히토 일왕(日王) 부처가 25일(이하 현지시간)런던에 도착,공식일정에 들어갔다. 당초 영국정부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중 일제 포로수용소에서 고통을 당한 영국 군인과 민간인들이 일왕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준비,공식일정에 불미스런 일이 염려됐었지만 첫날 행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일왕 일행이 버킹엄 궁전으로 지나가는 길가에서 재향군인회 소속 전쟁포로 출신자들이 일장기를 태우고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행진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야유도 보내는 등 과거사에 사죄를 촉구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런던에 도착해 4일간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간 일왕에게 영국 최고의 ‘가터’ 훈장을 수여키로 하는 등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일왕의 방문에 앞서 최고의 판매부수를 가진 신문 ‘선’지에 “우리는 왜 오늘 일왕의 영국방문을 환영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 세계지도력의 산실 백악관(美國의 대통령 문화:21·끝)

    ◎‘모든 사람의 집’ 백악관 매년 관광객 수백만명 다녀가/1800년 애덤스 첫입주후 40명 거쳐/“정직 현명한 이들만 살게 하소서”/라이브러리룸 등 6개 20분 소요/시대 초월한 국민과의 교감 피부로 【워싱턴=羅潤道 특파원】 미국 대통령문화의 산실인 워싱턴DC에는 미대통령의 체취를 느끼려는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매년 몰려든다.‘펜실베니아 애브뉴1600번지’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백악관,스미스소니언 초상화박물관의 대통령실 등은 차치하고라도,워싱턴기념탑,링컨기념관,제퍼슨기념관,프랭클린루즈벨트 기념관,시어도어 루즈벨트 기념관 등 개인 기념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물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포토맥강과 잔디광장 ‘더 몰’이 어우러져 이뤄내는 아름다움 사이로는 또 케네디센터,윌슨센터,조지 워싱턴 대학,루즈벨트 브릿지,린든 B.존슨 기념공원,제임스 매디슨 빌딩 등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시설물들도 많아 시내곳곳 어디를 가도 대통령을 만날수 있다.특히 백악관은 미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세계 지도력의산실로 역대 미대통령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다. 이곳은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누구에게나 개방된다.백악관 남쪽의 ‘방문자센터’에 가서 줄을 서기만 하면 된다.그러나 백악관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7시부터 선착순으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3천매,단체관광객에게 1천500매 등 모두 4천500장의 입장권을 나눠준다.대부분의 경우 입장권 분배를 시작,30분이면 동이난다. 입장은 당일 상오10시부터 정오까지만 허용되며 지하1층의 회랑을 통해 첫 방인 라이브러리 룸에서 출발하여 지상1층의 국가만찬장까지 모두 6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된다.전체 20여분의 투어다. 백악관은 보통 관광객들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남쪽에서는 4개층으로,정문쪽인 펜실바니아애브뉴 쪽에서는 3개층으로 보인다.따라서 관광객들은 지하1층 동쪽 회랑의 출입문으로 입장하여 첫방인 ‘라이브러리’만을 본후 지상1층으로 올라가게 된다.지하1층의 다른 방으로는 금도금한 은제품들을 진열한 ‘버메일(금도금)룸’,대통령의 식기 세트를 진열한 ‘차이나룸’,중앙의 ‘외교사절 영접룸’,그 좌측에 2차대전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황을 체크하기 위해 사용했던 ‘맵(지도)룸’ 등이 있다. 지상1층에는 리셉션이 열리는 가장 큰 방인 ‘이스트룸’,응접실인 ‘그린룸’과 ‘블루룸’,퍼스트레디들의 응접실인 ‘레드룸’,연회실인 ‘국가만찬장’ 등이 있고 이들 5개의 방은 모두 공개된다.또한 이들 방을 연결하는 중앙회랑에는 대통령들의 흉상과 퍼스트레디들의 초상화들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 등 사적 공간이 있는 2,3층은 공개되지 않는다.중앙의 거실인 ‘옐로 오벌 룸’을 중심으로 양측에 대통령의 서재와 조약체결시 사용하던 ‘트리티룸’이 있고 그 양측 옆으로 대통령의 침실과 손님방으로 사용되는 ‘링컨룸’이 있다.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와 각료회의장인 ‘캐비닛룸’은 서쪽 부속건물에 있다. 1792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임기중 착공된후 1800년 11월,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퇴임 2개월여를 남기고 미완성인채로 입주함으로써 시작된 백악관에서의 대통령 스토리는 오는 2000년 200주년에 이르게 된다.그동안 워싱턴을 제외하고 클린턴 대통령까지 40명의 대통령을 거쳐오며 조금씩 증개축되어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거주기간은 윌리엄 해리슨(9대)의 1개월부터F.루즈벨트(32대)의 12년까지 다양하다.임기중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8명으로 4명은 암살,4명은 병사로 기록돼 있다. 한편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이듬해 득녀,백악관에서 자녀를 얻은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자녀수가 가장 많은 대통령은 타일러로 전처와 후처로부터 모두 8남6녀를 얻었다.다음은 윌리엄 해리슨으로 6남4녀를 기록하고 있다.가족대통령으로는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6대)가 부자관계 였고 윌리엄 해리슨과 벤자민 해리슨(23대)은 조부와 손자 사이로 유명하다. 워싱턴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대통령문화의 본거지는 국립초상화박물관 이다.2층의 대통령실에는 역대 미대통령들의 사진과 흉상,부조 등이 전시돼 있다.언제라도 대통령의 미소를 접하고 그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시대를 초월한 국민과 대통령의 교감은 이같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원을 이루는 또하나의 현장이기도 하다.백악관 ‘국가만찬장’의 벽난로 위에 새겨진 애덤스의 글귀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정직하고 현명한 사람들만이 이지붕 아래 살게 하소서.”
  • 日本軍 위안부 출신 7명 히로시마 高法에 항소

    【도쿄 연합】 2차대전중 일본군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했던 柳贊伊씨(70) 등 전 여자 정신대원 7명이 최근 야마구치(山口) 지법 시모노세키(下關)지부에 제기했던 일본 정부 상대 배상청구소송에서 패배하자 히로시마(廣島)고법에 항소하기로 결정,1일 항소장을 야마구치지법 시모노세키지부에 제출했다.
  • 日 정부 항소 강력 시사

    【도쿄 AFP 연합】 일본 외무성은 27일 야마구치(山口) 법원이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군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여성들에 대해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을 내린 사실에 유감을 표명했다.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외무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종류의 보상문제는 지난 65년 한·일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지적하고 “이같은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 문제가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며 군위안부 출신들에 대해 직접손해 배상을 하거나 공식 사죄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 러·日 평화우호조약 체결 합의/옐친·하시모토 회담

    ◎북방영토 반환포함 포괄적 관계개선 【도쿄=姜錫珍 특파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 총리는 19일 쿠릴열도 등 북방영토 반환문제를 포함한 양국간의 포괄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키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크라스노야르스크 회담에서 오는 2000년까지 체결키로 합의했던 평화조약에 주권문제는 물론 경제,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시켜 양국관계 전반의 개선을 도모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시즈오카(靜岡)현 이토(伊東)시 가와나호텔에서 열린 2차 비공식 정상회담 직후 이같이 밝히고 양국간 경제협력과 관련,일본이 러시아에 공동투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조만간 조사단을 러시아에 파견키로 합의했다. 일본은 또 러시아측이 제안한 북방영토내의 수산물 가공공장의 건설 문제도 적극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은 안전보장 대화의 착실한 진전을 위해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양국민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문화교류의 확대에도 합의했다. 한편 이날 회담에 앞서 보리스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차대전중 KGB(옛소련 비밀정보국)가 일본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종군위안부 이용 등 전범행위에 관해 심문한 문서 등을 일본측에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2차대전 당시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있던 일본군 포로 60만여명에 관한 조사와 관련,일본에 협력키로 지난 91년 합의했었다.
  • 약탈문화재/“돌려달라” “못준다”

    ◎러시아이회 ‘반환 금지법’ 최종 통과/“국제관례 어긋나” 헝가리 등 강력반발 【파리=金柄憲 특파원】 러시아와 독일등 유럽 당사국들간에 활발하게 진행되던 문화재 반환협상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당사국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일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옛 소련이 강탈한 문화재는 러시아 소유라는 법이 합헌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린데 이어 15일 엘친 대통령이 의회가 통과시킨 ‘약탈문화재 반환 금지법’에 최종 서명했다.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집권이후 옛 소련이 2차대전종결후 패망한 독일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다시 독일에 반환한다는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의회 등 러시아 내부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독일에게 문화재를 강탈당했던 유럽 각국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문화재 반환을 강력히 반대한 측은 국수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다.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지난해 4월 ‘2차대전기간중에 옛 소련군대가 약탈한 문화재는 러시아 소유’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옐친 정부의 반환 움직임에 제동을걸었다. 엘친 대통령은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하원이 이를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재통과시켰고 옐친 대통령이 다시 헌법재판소에 제소했으나 합헌으로 판결이 내려져 최종 확정되면서 유럽 당사국들과 러시아간에 새로운 불씨가 됐었다. 이 법안은 개인 유품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그 후손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예외규정을 두었으나 원칙적으론 모든 문화재의 반환이 불가능하게 하고있다.이로써 이 문제는 자칫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의 1차 약탈자이기도 한 독일과 독일 패망뒤 독일 약탈물을 다시 빼앗아 온 옛 러시아,문화재를 빼앗긴 프랑스,헝가리 등의 입장도 각각이지만 프랑스,헝가리 등은 이미 이 법안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다른 나라들의 유물을 뺏앗아 왔다 다시 러시아에게 빼앗긴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게 비해선 신중한 편이다.독일은 최종판결이 나자 모스크바주재 대사관을 통해 국제관례에 어긋한 것이라며 일단 반박성명을 냈으나 관망하는 자세다. 독일은 지난1907년 헤이그에서의 ‘미술품은 전리품으로 볼수 없다’는결정과 90년 러시아와의 우호조약을 맺은뒤 개선되고 있는 양국관계에 기대를 걸고 있다.헤르베트 슈멜링 정부 부대변인이 “문화재 반환문제는 두나라간에 매우 어렵고 예민한 문제”라고 말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문서 등 일부 문화재를 이미 돌려받은 프랑스는 다소 느긋하다.프랑스는 가장 빨리 협상을 시작해 고문서의 경우에는 이미 지난 95년부터 반환이 시작되어 돌려 받고자하는 절반정도가 파리에 이미 와 있다.이번 조치는 강탈당한 문화재를 러시아에서 찾아내는 것을 작업을 방해하는 행위라며 비난은 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응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개인소장품을 많이 빼앗긴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도 마찬가지다. 국가 문화재 6만여점을 강탈당한 것으로 알려진 헝가리가 가장 강경하다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지자 마자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법은 국제관례에 어긋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는 등 강도높게 비난했다.이 조치가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세계여론에 호소하는 등 다양한 대응조치를 강구하고 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침략군에의해 약탈된 각 유럽국가들의 국보급 문화재와 전쟁종결뒤 이를 다시 빼앗아 온 러시아 등간의 뒤얽힌 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 어떻게 민족 감정을 무마시킬 것인지 관심이 몰리고 있다.
  • 옛 소련 2차대전 전리품/옐친,獨 반환금지법 서명

    【모스크바 AFP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옛소련군이 약탈해 온 전리품의 독일 반환 금지법에 서명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15일 보도했다. 러시아 의회는 1년전 옐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약탈해 온 모든 보물급 문화재의 반환금지법안을 통과시킨 바있다.
  • 日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의 파장

    ◎엔화 폭락… 주가·채권 등 동반하락 가속화/2차대전후 첫 선진국 디플레이션 우려 【도쿄=姜錫珍 특파원】 지난달말부터 약세를 보여온 일본 엔화가 3일 도쿄시장에서 미화 1달러당 135엔대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엔화가 135엔을 넘어 더 하락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엔화 하락세가 이어지는 것은 일본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 때문.특히 이날 엔화 폭락은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 등급 전망을 낮췄다는 보도가 투자가들의 심리를 위축시킨 때문이다. 엔화와 함께 도쿄증시의 주가,채권가격도 동반 하락세를 이어갔다.‘일본 팔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재정개혁을 이유로 재정출동을 주저하다가 최근 공공투자를 중심으로 16조엔의 재정출동안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이를 미봉책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 등은 엔화 하락과 증시침체를 막기 위해 개입했다는 소문이 이어져 왔는데 시장은 이러한 소문도 무시해 버리고 있다.오히려 도쿄의 일부 딜러들은 3일 일본은행이 당분간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점증함에 따라 엔화 약세가 가속화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니사의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회장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경제는 붕괴 직전”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일부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2차대전후 선진국으로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디플레이션에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이 재정개혁을 내세워 사태에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건강식품을 처방으로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세 등 대규모 감세안으로 민간소비를 자극해야 한다는 일본정부에 대한 국내·외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일본경제가 침체되고 엔화가 하락하면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일본의 지원능력 감소,일본 시장수요 감퇴,경쟁력 위축 등에 따른 3중고를 겪게 될 전망이다.
  • 日 서머타임제 부활 검토/온실가스 배출 감소위해

    【도쿄 AP 연합】 일본 정부가 46년만에 서머타임제(일광절약시간제) 부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서머타임제 부활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일본 환경청은 여름철 시간을 1시간 앞당김으로써 연간 55만2천㎘의 원유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차대전후 미군 점령기간중 실시됐던 일본의 서머타임제는 52년 미군철수직후 폐지됐었다.그후 90년대 중반 몇차례 정부내에서 서머타임제 부활론이 대두됐으나 일본 직장인들이 밝은 대낮에 퇴근하는 것을 꺼려 해가 질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함으로써 과로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반대론에 봉착해 무산되곤 했다.
  •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 ‘신호탄’/러·獨·佛 3國 정상회담 의미

    ◎의제 경제·문화 국한… 영향력 반감/3국 이해관계 얽혀 미국견제 힘들듯 【모스크바=柳敏 특파원】 26일 모스크바 교외에서 열린 러시아와 독일·프랑스3국 정상회담은 미·소간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계속되고 있는 ‘미국독주시대’를 겨냥,‘새 다극화시대를 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0월 러시아­유럽연합 정상회담 기간중 옐친 대통령이 제안해 러·독·불 3국 정상들이 합의함으로써 이뤄지게 된 것이다.옐친 대통령은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유럽등으로 확대되자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에 노력해 왔다. 그는 이날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거대한 유럽의 3두마차가 출발했다” “지금의 유럽보다 더 강력한 조직은 없다”고 말해 이번 3국정상회담이 미국을 겨냥,다극화구도 구축의 일환이 었음을 강조했다. 이번 ‘3국회담’은 그러나 새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선언이나 구체적 일정을 내놓지 못해 러시아측이 당초 목표로 한기대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약 2시간여동안 옐친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콜 독일 총리등 정상들이 초점을 맞춘 의제는 새 국제질서나 안보문제보다는 경제·문화·학술교류등 주로 다자간의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예를 들면 21세기형 AN­70수송기의 공동생산 협력문제나 런던­파리­베를린­바르샤바­모스크바를 연결하는 도로·철도건설을 앞당기기로 합의한 것등이 그것이다.또 우주분야에서의 공동협력 문제,자연재난등에 대비한 3국 공동의 구호부대창설,3국 공동의 대학설립문제,유럽사 공동편찬문제등이 이번 회담에서 다양하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코소보사태 해결 노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과 이라크문제의 공동대처,러시아의 유럽연합통합문제등이 전부였으며 새 국제질서구축과 관련해서는 단지 세 정상이 함께 했다는 ‘상징성’에 의미를 두어야할 것같다.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가 미국을 의식해 다극화 질서구축에 안간힘을 쏟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2차대전때 러시아에 빼앗긴 미술품의 반환에,프랑스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등 러시아 도시간의 철도시설·기술공급문제에 각각 염두를 두는등 동상이몽(同床異夢)상태여서 러·독·불 3국정상회담이 새 국제질서를 만드는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일제 징병 재일 韓人 연금청구자격 없다”/日 지방법원 판결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교토(京都)지방 재판소는 27일 2차대전중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재일한국인 李昌錫씨(72,교토府 구미야마町)가 日 총무청을 상대로 제기한 연금청구 기각처분 취소소송에서 “연금법상의 국적조항은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되지 않으며 일본 헌법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며 李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李씨는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가 만주에서 종전을 맞은후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로 연행,벌목작업 등 노동에 종사하다 53년 교토 마이즈루(舞鶴)항으로 귀환했다.
  • 독 점령하 유태인 추방 연루/전범 파퐁에 20년형 구형/불 검찰

    【보르도(프랑스)AFP 연합】 프랑스 검찰은 19일 독일 점령기간중 유태인 추방에 연루된 모리스 파퐁 전 보르도지역 경찰책임자(87)를 반인류범죄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차대전중 반인류범죄로 프랑스 전직관리가 법정에 선 것은 파퐁이 처음으로 그에 대한 선고공판은 26일 있을 예정이다.프랑스 법률에 의해 반인류범죄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량은 종신형이다.
  • “IMF 없애야 세계 경제 회복”

    ◎미 경제지 EIR 편집인 린든 라루시 주장/고정환율제 주축 새 브레튼 우즈 체제 촉구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 중에서 린든 라루시 EIR지 창설·편집인 만큼 IMF를 대놓고 미워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IMF 아시아 구제정책의 긴축 노선을 비판하는데 그치고,보수적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도 미국은 IMF에서 출자금을 회수하고 발을 빼야 한다는 선에 머문다.그러나 ‘경영자 정보편람’이라고 옮겨 놓을 수 있는 주간지 EIR 창설자이자 소유주인 라루시씨는 “IMF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초래했고,IMF를 이대로 놔두면 세계 금융은 결딴난다”고 역설한다.즉 당장 IMF를 없애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라루시 사장은 18일 워싱턴에서 세미나 연설을 통해 2차대전 이후 세계금융체제의 근간으로서 IMF의 존립근거인 브레튼 우즈 체제 아래서는 한국 등 아시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IMF를 폐지하고 고정환율제를 주축으로 하는 ‘새’ 브레튼 우즈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언론 및 학계의 주류에서 다소 벗어나 있지만 25년 전부터 IMF 폐지론을 주창해온 라루시씨는 지난달 미 의회의 IMF 청문회 때 참고진술인으로 참석,자신의 논지를 열렬하게 전개했다.개인적으론 상당한 재산가로 알려졌으나 발행 잡지와 개인적 정치 노선은 좌파적 색채를 띠고 있다.76년 노동당 정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며 80년부터는 민주당원으로 4번이나 지명전에 나섰다. 이날 라루시 사장은 IMF를 그냥 놔두면 조지 소로스 등 환투기 자본가들이 일본 엔화에 대한 공략을 시작할 것이며 그로써 한국의 원화는 한층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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