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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최대노조 ‘連合’ 귀향운동

    일본 최대의 노조 렌고(連合)가 4월부터 ‘시골 돌아가기 운동’을 벌인다. 목표는 100만명. 일자리를 잃은 도시인들을 농어촌에 보내 일손이 달리는 농어촌을 활기차게만든다는게 렌고의 구상이다. 농어촌이나 실직자들 모두에게 유익한 상생(相生)의 운동인 셈이다. 렌고는 먼저 농어촌에서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 지역별로 파악, 정보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시골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원하는지역에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농협과도 협조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침.대상자는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나 시골에 전혀 연고가 없더라도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는 도시인들이다. 렌고에 따르면 2차대전후 일자리를찾아 도회지에 나온 수백만명의 시골출신들이 정년퇴직의 나이에 있다.또 도시 출신으로 일본의 거센 구조조정 물결에 실직했거나 퇴직후 농어촌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100만명 목표달성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오키나와(沖繩)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유휴농지,어촌의정보를 인터넷에 띄어 누구라도 검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시골에서살겠다는 사람에겐 렌고가 정착에 필요한 간단한 편의도 제공한다. 렌고의 이같은 운동은 일본에서 불고 있는 ‘귀농 붐’과 무관하지 않다.‘정년 귀농’,‘실업 귀농’,‘취업 귀농’ 등 귀농러시의 이유는 역시 전후최대의 불황.일자리가 모자라자 일터로서의 농촌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농이 크게 늘어나자 농촌취업을 준비하는 예비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가 하면 정부 차원에서 귀농설명회를 갖는 등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심지어는 대학생을 상대로 한 1∼4주짜리 ‘인턴십 농업체험’도 성행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클린턴 인터넷 보안연구소 추진

    ㅣ워싱턴 최철호특파원ㅣ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5일 백악관에서 인터넷 보안전략 마련을 위한 전문가 회의를 열고 인터넷 보안 관련규정 마련을 위한 연구소 건립과 학생들의 정부보안프로그램 제작 참여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인터넷 창시자 빈톤 서프를 비롯,선마이크로시스템사 화이트필드 디피 대표,‘머지’란 이름의 해커 등 컴퓨터 전문가와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참석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주 발생한 해킹사건은 경고였으며 2차대전 참전요인인 진주만 폭격처럼 파괴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인터넷은 자유로이 공개돼야 하지만 보안과 프라이버시는 유지돼야 한다”고강조했다.
  • [다시 뛰는 아시아경제](5)’제3부흥’ 꿈꾸는 일본

    일본 경제는 한 일본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해돋이 직전의 구름낀 하늘’이다.지리한 10년 불황의 터널을 막 빠져나오려는 참이다.정부와 기업은 ‘일본 재생’의 슬로건을 외치며 새 세기 재도약의 태세를 갖추고 부흥의 길에 오르려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기국회 정부측 경제연설.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경제기획청장관은 “경기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진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그는 그러나 “(경기부양)정책과 아시아 경제회복에 힘입어 차츰 개선되고 있으며 2000년도 후반에는 민간수요가 살아나 본격적인 회복궤도에오를 것”으로 예상했다.어느때보다 경제회복쪽에 힘을 실은 연설이었다. 일본경제 회생(回生)의 기운은 갖가지 경제지표에서 실감된다. 이달 9일 도쿄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2만엔을 넘어섰다.2년반만의 일이었다.경제회복의 기운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89년 12월의 3만8,915.87엔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경제의 거품이 걷힌 상태에서 상승기세를잡은 셈이다.어떤 분석가는 11월 2만4,000엔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무엇보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만큼 일본경제를 좋게 보고있다는 얘기다. 지역 경기도 차츰 살아나고 있다.일본은행의 지난달 지점장회의에서는 “햇살이 퍼지고 있다”고 낙관했다.정보통신산업 등에 투자가 쏠리면서 설비투자 감소추세에 제동이 걸렸다고 판단하고 있다.1월의 경제기획청 월례보고도 주택건설,설비투자,고용,기업수익 등에서 전달보다 좋아졌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2000년도 경제성장전망도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증가치로 잡혔다.99년도 0.6% 성장을 약속했던 일본 정부는 얼마전 각의에서 올해 1% 성장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부의 공식발표에 불과하다.대장성을 비롯한 경제부처의생각은 이보다 높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은 “연말쯤 2∼3%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미국의 로런스 서머스 재무장관도 “중장기적인 일본의 잠재성장력은 3∼4%를 웃돈다”고 맞장구쳤다.98년까지 2년연속 마이너스 성장을기록했던 일본으로선 빠른 시간에 성장력을 회복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심리를 계량화한 소비자태도지수는 99년 12월 41.3으로 3년전 수준으로회복됐다. 지난달 22일 선진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담에서 엔고에 대한우려를 확인한 점은 일본 경제에 더없는 호재(好材)다.최근 도쿄 외환시장에선 1달러당 엔화가 109엔대까지 떨어졌다.엔저에 일본 수출기업들이 모처럼웃는 모습이다.수출이 늘어나 기업실적이 올라가면 주식투자가 늘어나 주가가 오르고 주가상승은 기업자산가치를 높이는 상승작용이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98년 11월(24조엔),99년 11월(18조엔)에 굵직한 경기부양책을내놓았다.2000년도 예산도 전년보다 3.8% 늘어난 84조9,871억엔으로 책정했다.국회에서 심의중인 이 예산안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것처럼 일본 경제회복과 직결되는 경기부양을 고려한 예산이다. 일본 열도는 이제 ‘제3의 부흥’의 대장정에 올랐다. 황성기기자 marry01@ *100엔 →1엔 화폐개혁 구상 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 일본정부와 집권 자민당에서 신중하게 검토되고 있다.100엔을 1엔으로 하는 일종의‘화폐개혁’(denomination)을 단행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후 1달러=360엔에 환율을 설정한후 여러차례 화폐개혁논의를 해왔다.그러나 이번처럼 현실성을 띠고 논의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화폐개혁 소위원회’를 설치한 자민당은 2002년 1월 화폐개혁을단행한다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담은 제언을 내놓은 상태.아이자와 히데유키(相澤英之)위원장은 “화폐개혁은 물가,환율,경기,정치 4가지 안정을 전제로한다”면서 “지금은 4가지 전제가 충족돼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제언에는 1999년 1월 유로화 출범후 엔의 존재가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유로화가 전유럽에서 실제 유통되기시작하는 2002년을 화폐개혁의 시점으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선진국중 1달러당 환율이 3자리수를 넘어가는 화폐는 일본의 엔이 유일하다.최근 도쿄시장에서의 환율을 기준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할 경우 1달러=1.09엔에 해당한다.1엔으로살 수 있는 물건이 많아지는 이른바 ‘엔의 통용력’이 커져 엔은 달러,유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력이 생긴다는게자민당의 생각이다. 그러나 실현에는 여러 과제가 있다.백화점의 컴퓨터 시스템과 자동판매기개조비용 등이 만만치 않은데다 100엔을 1엔으로 바꾸는데 따른 국민들의 대혼란이 예상된다.상품가격을 바꾸는 과정에서 업자들의 무더기 가격인상도우려된다.대장성은 “화폐개혁은 최종적으로 정치권에서 결정할 문제”라는입장이다. *고령·환경·감성산업을 돌파구로 ‘고령사회산업으로 일본 경제성장을 유지한다’. 일본 통산성 자문기구인 산업구조심의회가 오는 3월 ‘21세기 경제산업정책의 비젼’을 통해 제시할 골자다.이 보고서는 2025년까지의 산업전망.각 부문에서 진행중인 구조개혁을 통해 일본이 ‘새로운 일본형 시스템’으로 변신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가 보도했다. 새 산업정책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경쟁력있는 사회형성’과 ‘경제사회 시스템의 경쟁력 강화’를 중요과제로 꼽고 있다.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사회란 “행정과 기업이라는 민관 이원적 조직에 경제활동에서 소외돼있는 고령자와 여성,비영리조직 등이 적극 참여해 다양한 취업기회를 갖는 사회를 일컫는다. 고령화에 걸맞는 경제사회구조개혁이 진행될 경우 유망산업으로는 ▲의료·복지 등 고령사회산업▲환경산업▲감성(感性)산업 3개 분야를 꼽는다. 먼저 고령산업이 연평균 4.3%의 성장률을 지속하면 2025년에는 현재 시장규모(39조엔)의 4배 가까운 155조엔,종업원은 75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령자를 위한 레저,가사 대행,안전관리,재택(在宅)의료,유전자 진단 등이주요 대상이다. 환경사업으로는 도시녹화,환경감시사업,수질오염방지장치 등을 들 수 있는데 60조엔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31조엔 규모인 감성산업은 73조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감성산업은 전자게임,만화,음악,영화,디자인,인테리어 등이 대상. 보고서는 이밖에 일본기업의 장점을 살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하는 디지털 가전 등의 ‘제3상품군’ 산업의 육성도 제창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한국 대일 무역적자 '상승곡선'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한때 급감했던 대일(對日)무역적자가 급속한 경기회복과 수출증가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부품·소재·기계설비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큰 고질적 수출입 구조로 수출확대→일본제품 수입급증의악순환이 재현되고 있다. 95년 326억600만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대일 수입규모(통관기준)는IMF체제에 돌입한 97년 279억700만달러,98년엔 168억4,000만달러로 급감했다.그러나 수출이 IMF체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지난해에는 236억300만달러로다시 늘어났다. 무역적자규모도 96년 156억8,200만달러에서 98년 46억300만달러까지 줄었다가 지난해엔 80억7,200만달러로 상승했다. 최근 대일수입동향의 특징은 컴퓨터,정보통신기기 관련 부품의 수입급증이다.지난해 11월말 기준 비메모리 반도체가 핵심부품인 IC집적회로의 수입액이 전년대비 35.9%가 늘어난 21억2,400만달러를 기록,대일수입품목중 수입액1위를 차지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까지 움추렸던 기업 설비투자가 정상화되면 대일무역적자의 급격한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그러나 ▲일본의 대한(對韓)투자 확대 ▲컴퓨터,정보통신 등 차세대 전자제품의 높은 기술력 등을 들어 개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산자부 윤상직(尹相直) 수출과장은 “일본의 지난해 총수입규모가 전년보다 5.5% 줄었으나 우리제품의 수입액은 반도체,LCD,의류 부문의 선전 덕택에 오히려 13.1% 늘어났다”고 말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기억과 망각’ 獨·日 전후청산 차이점 비교

    2차대전후 독일과 일본은 여러가지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패전과 전범처단을 위한 국제군사재판,황폐와 혼란속에서 이룬 경제부흥과 고도성장,그리고 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용틀임 등등.그러나 ‘과거사 극복’과 관련해서는 두 나라가 판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극우단체의 ‘난징대학살’ 부인 집회를 허가,중국과 외교분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같은 날짜 기사에서 독일정부는 나치 강제노역피해자 배상금으로 100억마르크(6조원) 규모의 기금마련을골자로 하는 법안을 승인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독일이 과거사를 ‘기억’하면서 반성해 왔다면,일본은 ‘망각’과 부인으로 전후 50년을 일관해 왔다. 이처럼 일본과 독일이 과거사 청산에서 양 극단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최근 나온 ‘기억과 망각’(다나카 히로시 외 지음,이규수 옮김)은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이 책은 지난 92년 일본 도지샤(同志社)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개최한 공개심포지엄 ‘과거 극복과 두 개의 전후-일본과 독일’의 발제와 토론을 정리,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필자는 일본내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사들이다. 전후청산에 관한 일본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점은 두 나라에서 행해진 전범재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나치전범을 재판한 뉴른베르크재판(1946.5∼48.11)은 전범 처단과정에서 ‘인도(人道)에 대한 죄’라는 새로운 국제법상의 개념을 도출,독일을 ‘반성의 길’로 유도했다.반면 도쿄재판(1946.5∼10)은최고 전쟁책임자인 일황을 면책하고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면죄하면서도 군 위안부와 강제연행 등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않았다. 도쿄재판을 주도한 미국은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을 일본 육군수뇌부에게 돌리고 아시아권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하였다.일본은 미국의 지원하에 일황을 위시해 천황제를 지탱해낸 궁중그룹과 해군·관료·재벌을 살리기 위해모든 전쟁책임은 육군에 있다는 왜곡된 ‘역사상’을 조작, 육군을 희생시키면서 ‘자기보존’의 길을 택하였다. 독일(구서독)은 뉴른베르크재판 뿐만 아니라 자국의재판소를 통해 현재까지 9만여명의 나치 관계자들을 재판에 회부,7,000건 정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반면 일본은 도쿄재판 등 타자에 의한 재판 이외에 스스로에 대해 판결을내린 적이 없다. 독일은 52년 유태인 피해자에게 34억여 마르크를 배상한 것을 시작으로 인종·신앙·세계관 등에 구애없이 90년까지 총 864억여 마르크를 지불했다.그러나 일본은 자국민 중심으로 배상원칙을 세워 외국 국적자는 배상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주로 해외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그 실상을 거의 모르고 있다. 지난 87년 독일의 저널리스트 랄프 졸타노는 ‘제2의 죄-독일인 됨의 부담’이란 책에서 “히틀러시대 독일인이 범한 죄가 ‘제1의 죄’라면,‘제2의죄’는 1945년 이후 ‘제1의 죄’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일본은 ‘제2의 죄’는 커녕 ‘제1의 죄’조차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삼인 펴냄 값 8,500원.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기억과 망각

    21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아주 짧지만 흥미있는 기사 하나를싣고 있다. “스웨덴이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전하는 바는 간단하다.스웨덴 총리인 고란 페르손이 지난 19일 스웨덴 거주 유대인연합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의 잘못을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공식입장은 2차대전 동안 스웨덴은중립적 입장을 취했을 뿐이라는 자기변호적인 것이었다.그러나 스웨덴은 전쟁기간 동안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화를 피해갔을 뿐 아니라 나치의 군수공장에 철광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사실 일부 현대사가들은 다른 나라에는 엄청난 비극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스웨덴에게는 부국으로 발돋움하는계기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스웨덴 정부는 비단 이뿐만 아니라나치군대가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침공하기 위해 스웨덴 영토를 가로지르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스위스의 엄정중립과는 달리,자의든 타의든나치에호의적인 중립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페르손 총리는 이번 주에 열릴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고위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웨덴의 이런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들이 국제문제에서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입장을취하는 데 반해,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비교적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원칙을고수했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당시의 잘못을 시인하는 데는 인색했던 모양이다.따라서 페르손 총리의 발언은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양심정치의 작은 승리라고도 하겠다.그것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 작은 기사가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 직전의 일본 방문에서 받은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일본의 진보적 잡지 편집자들과 역사가들을 몇만났는데,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에서 낸 ‘국민의 역사’라는 책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지하철 전동차에 붙은 광고는 발매 한달 만에 벌써 62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이다.일본 친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아사히신문조차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우익단체의 집회에 가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쓰라린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미래를 지향하는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국민의 역사’는 일본의 전쟁책임과 침략사실을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지난 23일 오사카에서는 극우단체의 지지자들과 역사가들이 ‘남경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는집회를 열어 중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부활시킨 지난해의 조치와 호흡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아시아 민중들에게 그것이 주는 끔찍한 의미를 일본은 이미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사회의 역사의식이 이렇게 기억보다는 망각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보다는 망각이 편할 때가 많다.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쓰라린 기억보다는 편한 망각을 택함으로써,일본사회는 스스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있는 셈이다.용서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스웨덴과 일본의 이 차이는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민중연대 사이의 메울 수없는 간격을 드러내준다.지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유럽연합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주독일이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의 끈을놓지 않고 집요하게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데 있다.동방정책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 당시 총리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했을 때 독일과 폴란드 양국 간의 아픈 과거는 미래의연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끈이 된 것이다. 한·중·일 3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주창하는 동아시아 민중연대 역시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딛고 설 때,어렵게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실천적연대에 앞서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드잡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여기에 있다. 임지현 한양대교수·사학
  • 日 ‘평화헌법’ 폐지로 가는가

    일본 헌법의 개정논의가 전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공식화된다.일본 국회는정기국회가 시작되는 20일 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를 중·참의원 양원에 설치,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헌법조사회는 1957년 내각에 설치된 적이 있으나 제1야당이었던 사회당의끈질긴 호헌론에 밀려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64년 폐지됐었다. 이번 조사회는 당시와는 달리 일본의 보수우경화가 힘을 얻고 사회·공산당등 호헌세력이 퇴조하는 시점에 발족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헌을 추진하는 세력이 양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고 일본 국민들의 개헌지지도도 높아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지난해 4월 요미우리(讀賣)의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3%로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개헌 반대는 31%에 불과했다. 계획대로라면 2곳의 조사회는 5년간 개정 내용을 검토,양원 의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2008년쯤 개헌을 마친다는 복안이다.조사회는 법안제출권은없지만 사실상 개정안과 다름없는 보고서를 낼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의 초점은 제9조.2차대전 패전뒤 미 군정하에서 46년 제정된 일본헌법의 9조는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규정하고 있다. “점령군 지시로 제정된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한다”는 집권 자민당의정강에서 엿보이듯 개헌파들의 속내가 교전권 확보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게주변국들의 걱정섞인 시각이다. 대표적인 개헌파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는 얼마전 자위권과 전력보유,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한 병력제공 등 9조 개정을 중점적으로 다룬 시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조사회는 일황을 국가원수로 명기할 것인지도 다룬다.일황은 구 헌법에서일본을 통치하는 원수로 돼있다가 현행 헌법에서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격하됐었다. 이밖에 ▲국제협력 ▲참원개혁 ▲환경권,알 권리,사생활보호 등 새로운 권리와 의무 ▲지방자치 ▲총리 선거제도입 등도 개헌논의 대상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오늘의 눈] 탈북자 보도와 ‘안보상업주의’

    중국정부의 탈북자 7명의 북한 송환조치는 여러 면에서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 사건이다.송환을 둘러싸고 대대적으로 보도된 첫번째 사례였던 만큼 “살려달라”는 이들의 절규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더욱 착잡하다.이 때문에 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몬 책임소재를 놓고 말들이 많다.일부 시민들은 서울 명동의 중국대사관으로 몰려가 송환결정을 내린 중국정부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지켜본 기자는 우리나라 언론의 ‘안보 상업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알려진대로 탈북자 7명은 러시아 정부의묵인 아래 남한행 티켓을 예약한 상태였다.지난해 남한으로 온 탈북자(147명) 대부분이 중국정부의 묵인 아래 비공개적으로 처리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일부 언론에 탈북자 7명의 신상이 공개됐다.입장이 난처해진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결국 ‘법대로 처리’라는 원칙론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는 판단이다. 물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이런 맥락에서 탈북자 신상보도 역시 언론의 고유 권한이다.하지만 그 책임 역시 언론의 몫이다.탈북자들이 언론에 공개될 경우 조교(朝僑·북한을 위해일하는 조선족)나 중국경찰의 추적을 당하고 송환시 북한당국의 가혹한 보복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확인된 사실이다.이 때문에 이번의 보도행태는 탈북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무책임한 처사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야당과 일부 언론이 탈북자에 대한 국민감정을 정치공세와 안보 상업화로 이용하고 있다는 ‘음모론’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탈북자 문제는 본질상 감성보다 이성의 판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다.중국과남·북한,그리고 러시아가 얽혀있는 ‘국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무조건 ‘쉬쉬’하는 저자세 외교도 배격해야 하지만 국민의 감성에편승하려는 보도 행태나 냄비성 대응 역시 사태를 꼬이게 할 뿐이다.‘한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는 2차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유태인을 보호했던 ‘쉰들러’의 독백이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오일만 정치팀기자 oilman@
  • [統獨과 한반도 통일](5)진정한 의미의 통일·교훈

    [포츠담 김규환특파원] 베를린시에서 남서쪽으로 30여㎞쯤 떨어진 글리니케 다리는 독일 전역에서 몰려온 차량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어 독일 통일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미국의 트루먼과 영국의 처칠,소련의 스탈린 등 연합국 삼거두가 2차대전 후 독일의 전후 처리방침을 논의한 역사적 현장인 포츠담으로 가는 관문인 이 다리는 분단 시절 동서독간의 간첩을 교환하던,한반도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같은 민족 분단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통일 10주년을 맞는 오늘의 독일 모습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으로남아 있는 한반도에 통일 한국의 장래를 예단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통일은 민족통합과 국력회복 등의 좋은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막대한 통일비용의부담과 동서독인들간의 마음의 장벽 해소,대량 실업 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남아 있어 한반도 통일 이후를 점쳐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는것이다. 특히 독일은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1,000조원 이상의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으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진행형’인 점을 감안하면,분단국이 완전 통합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과 인내심이 필요한지도 대변해주고 있다.통일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는 얘기다.베르너 페니히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독일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등장했다는 사실 못지 않게 심리적 장벽 등 사회적 갈등 해소 등의 과제를 안게 됐다”며 “통일 작업은 인내와 노력,그리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분단 이후 독일의 통일과정을 보면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해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60년대말 등장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는 ‘동독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對)동독정책의 원칙를 깨고 동서독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적대감을 완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그는 특히 동방정책(Ostpolitik)을 바탕으로 인접한 소련·폴란드와 국경선 문제를 매듭짓고 폴란드·체코·헝가리·불가리아 등과 관계정상화를 이뤘다.이 공로로 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브란트 총리의 통일을 향한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72년 동서독간 기본조약을 맺은데 이어,동서독 이익대표부를 설치함으로써 동서독 관계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독정부는 정치적 공세와 함께 인적교류를 넓혀 나갔다.지난 54∼57년 해마다 240만명의 서독인들이 동독의 친척을 방문했고,베를린 장벽이 설치된이후에도 연간 100만명 정도가 동독지역을 방문하는 등 교류가 잇따랐다.서독정부는 동독주민들에게 1인당 1년 2회에 한해 30마르크(약 1만8,000원)의서독방문 환영금을 주는 등 교류를 부추겼다. 경제교류도 크게 확대했다.서독은 분단초기 경제교류를 서베를린으로의 통행보장을 위한 협상수단으로 이용했지만,60년대 이후 동질성 회복의 수단으로 활용했다.서독정부는 동독이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동독제품을 수요 이상으로 구입했다.이에 따라 50년 8억마르크(약 4,800억원) 정도에 불과하던 동서독간의 교역액은 88년에는 160억마르크(9조6,000억원)으로 폭증했다.인적·물적교류가 독일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셈이다.페니히교수는 “통일전의 동서독관계와 남북한관계의 크게 다른 점은 인적·물적교류에 있다”며 “동독의 잦은 제한조치로 한때 인적·물적교류에 어려움을겪은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극소수의 기업인 및 문화·체육계인사들이 교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비하면 동서독의 교류창구는 항상 열려 있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북한이 최근들어 경제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에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한반도에서 협상을 통한 평화통일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칼 킨더만 뮌헨대 교수는 “동독은 소련의위성국가에 불과했지만 북한은 근본적으로 독자 행동하는 데다,서독 언론에접근할 수 있었던 동독 주민들과는 달리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탓에 한반도의 통일여정이 독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우위에 있는 한국이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교류를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khkim@ ** 베를린의 '분단 박물관'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통일전 동베를린의 프리드리히가에 자리잡고 있는찰리 검문소 앞의 조그마한 3층짜리 박물관은 동독 주민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분단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박물관 입구에 베를린장벽 조각 위에다 ‘자유! 자유! 자유!’라는 애절한구호와 함께 나비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림을 그려 분단의 아픔을 표현,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1층에 들어서면 통독전 동독주민들이 동독제 국민차인 트라반트 밑에 몸을 숨기고 검문소를 통과하는 모습을재연해 보이고 있다. 특히 차체 밑에 바짝 달라붙어 검문소를 통과하던 모습의 인형은 당시 탈출자들이 마음을 졸이는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일깨우고 있었다.본에서 왔다는 미카엘 쿤(64)씨는 “동독 주민들이 탈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은 했으나 이토록 처절할줄은 몰랐다”며“막대한 통일비용 등 통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자유의 소중함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전한다. 2층에는 평화시위를 벌이던 동베를린 시민들을 소련탱크들이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는 모습이 침중한 음악과 함께 비디오로 재현돼 ‘인민과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주장하던 사회주의체제의 비정함을 되새겨주고 있었다. 3층에는 들어서자마자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동독 경비병들이 동베를린 탈출 주민들을 제지하기 위해 사용한 철모,칼 등 각종 무기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친구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던 아겐투어 하르퉁(15)군은 “통일 당시 너무 어린 탓에 통일이 뭔지도 몰랐다”며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는 모습을 보고 분단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 印尼 종교전쟁 발발 위기

    인도네시아가 새해 벽두부터 사실상 내전 위기에 처했다.발칸반도가 따로없다.엄청난 희생끝에 동티모르가 독립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암본을 중심으로말루쿠주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기독교도와 회교도간의 분쟁이 전쟁양상으로치닫고 있다.일부 신문은 최근 2주일 사이에 2,000명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급기야 회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회교도들의 움직임 30여만명의 인도네시아 회교도들은 7일 자카르타 독립기념 광장에 모여 말루쿠 제도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회교도간 유혈 사태의복수를 위해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시위대는 이날 “교회를 불태워라”“관용은 넌센스다.기독교도들을 죽이라”는 구호를 외쳐댔다.이들은 회교 정치가들과 운동가들이 낸 신문 광고와소집령에 따라 모여들었다.통합개발당 지도자이자 장관을 역임한 함자 하즈와 국민협의회 의장인 아미엔 라이스도 참석했다.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무정부상태인 말루쿠주 인도네시아 군은 7일 말루쿠제도로 무기가 밀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 9척과 정찰기 5대를 배치 이지역을 완전히봉쇄했다.또 군병력을 대거 투입됐다.일간지 레푸블리카는 6일 말루쿠제도북쪽 할마헤라 섬에서 회교도 2,000명이 학살됐다고 보도했다.암본에서만 최근 700여명이 사망했다.안타라통신은 지난해 12월 26일 이후 할마헤라섬 7개지역에서 모두 99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 예배처 122곳을 포함한 건물8,500채가 부셔지거나 불탔다.수만명이 다른지역으로 피신했다. 새해 들어서1만 7,500명이 이곳을 떠났다. ■말루쿠주도 암본 19세기 태평양권 무역 중심지로 네덜란드의 항구였다.따라서 기독교도가 많다.2차대전 후에 인도네시아에의 편입을 거부,독립운동이벌어졌으나 강점당했다. 중앙정부의 회교도 이주정책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90년대 들어 이슬람교도가 지배세력이 되면서 긴장이 조성됐다.이때 기독교도들의 독립요구도 불거지기 시작했다.98년 11월 양측의 싸움으로 14명이 숨진 사건이 무력분쟁의 시발이었다.이외 분리독립 운동이 고조되고있는 지역은 아체주와 이리안자야주,리아우주 술라웨시섬 남부등이다. 김병헌기자 bh123@
  • [統獨과 한반도 통일](4)통일독일의 과제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통일 이후 서독지역을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데다 사고 싶은 물건들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매우 즐겁습니다.하지만 통일이전 100마르크(약 6만원)하던 월 주택임대료가 지금은 500마르크로 뛰어오르는 등 기초생활비가 큰 폭으로 올라 생활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통일 독일의 역동성을 대변하는 동베를린 중심부의 포츠담광장 인근 건설공사 현장에서 만난 동독 출신의 크레인 기사 크리스토퍼 라우(43)씨는 자신의경우 특정한 기술을 갖고 있어 실직을 당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통일 10년째를 맞은 독일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등 외적 팽창은 이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내적 과제를 안고 있다.이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실업 문제이다.서독지역의 실업률이 9. 4%인데 비해 동독지역의 경우 무려 18.2%나 된다.동독 시절에는 실업이라는개념이 아예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동독인들이 통일후 겪는 어려움은 매우크다.할레 경제연구소 뤼디거 폴 소장은 “92년 경우 동독지역 근로자의 28%가 실업상태나 고용 대기자였으나,지금은 18%로 떨어져 많이 호전됐다”며그러나 지금의 실업률도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동독인들은 앞으로 몇년동안매우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동서독인들간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동독인들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하는 정신적 고통과 서독인들과의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서독인들은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면서도 오히려 사회보장 혜택이 줄어드는 탓에 양쪽 주민들 모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독지역의 경제수준을 서독지역에 근접하도록 끌어올리는 방법밖에 별다른 묘책이 없어 독일 정부로서는 골칫거리다.볼프강 게어케 민사당(PDS) 외교정책 대변인은 “동서독인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동서독인 모두가 정치·사회·문화·인성 등 정치·사회적 조건이 다른 상태에서 성장했다는 점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생체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그래야 비로소 마음의 장벽이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연금보험 등 공공재원을 집중 투자하는 바람에 중앙정부의 빚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독일 정부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실업난해소와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동독지역에 공공재정을 더많이 투자해야 되는데도 재원을 마련할 길이 쉽지 않은 것이다.통일 초에는 주로 공채를발행하여 재원으로 충당했지만 앞으로는 예산절감, 세금 및 각종 사회보험료인상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직접 관련되는 탓에 난감한 사안이 될 수 밖에 없다. 동독기업들의 자기자본 부족을 메워야 하는 점도 난제로 꼽히고 있다.동독기업들은 출발 당시부터 축적된 자본이 없었을 뿐 아니라,그후에도 수익성이낮아 자기자본을 축적할 여력이 없었다.금융비용 등 영업외 지출이 큰 탓에동독기업의 약 14%만이 이익을 낸 것으로 나타나 기업의 자기자본 확충을위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동독기업들의 제품 판매시장이 좁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동독기업들의 국내총생산(GDP)은 독일 전체의 10%선을웃돌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독일 전체 수출에서 동독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 수준이다. 동독지역의 경제구조가 건설업 및 건설관련 업종으로 편중돼 제조업 비중이작은 점도 성장의 걸림돌이다. 서독 주민 1인당 제조업의 총 부가가치 생산이 동독지역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점을 보더라도 동독지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대변해주는 대목이다.따라서 동독지역의 경제기반을 다양화하고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 선결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khkim@ ** 40년만에 무너진 '사회주의의 희망' ◆東獨지역 국민車 '트라반트'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동독이 자체 개발한 국민차 트라반트는 40년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동독 역사를 대변해주는 상징물이었다.‘트라비’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자동차는 통일 이전만 해도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나타내며 동독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지난 57년부터 통일후인 91년까지 330만대의 트라반트를 생산한 작센링자동차가 자리잡은 작센주 츠비카우는 분단 이전부터 독일 자동차 생산의 메카였다.1904년 설립된 호르히 자동차와 DKW,아우디 등이 합병한 아우토유니온이 들어서면서 독일 자동차공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아우토유니온은 2차대전후 동독에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민 소유경영체제의 작센링으로 바뀌어 노동자를 위한 승용차 개발에 들어갔다.동독 초창기 경제는 취약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판을 수입할 수 없자 작센링 자동차는 플라스틱 차체의 트라반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트라반트는 플라스틱 차체를 채택으로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데다 무게가 가볍고 2기통·2행정기관을 사용해 연료 효율을 극대화했다.생산라인도 일부자동화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연간 10만대를 생산했다.서방세계에서도 자동차가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이었을 때 트라반트는 동독인들에게 마이카시대를 여는 사회주의체제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계획경제의 경직성으로 생산라인 확충과 기술개발에 등한시함으로써트라반트는 73년 100만대 생산을 정점으로 하향곡선을그리며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렸다.공급 부족에도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책정된 트라반트의 가격은 4,000마르크(약 240만원)였으나,주문에서 출고까지 최장 10년 이상 걸리자 중고차 값이 암시장에서 1만마르크 이상으로 치솟았다. 한때 동독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던 대표적 상품이 체제의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액물’로 전락한 셈.더욱이 89년 동독인들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서방으로 대거 탈출하면서 버리고 간 트라반트는 몰락하던 공산당의 모습을연상케 했다.통일 후 독일 정부가 안전도에 문제가 있고 유해가스 배출량이많다며 트라반트의 생산중단 명령을 내림으로써 종적을 감췄다.
  • 월街 전문가 7인 美증시 진단

    주가가 연초부터 폭락세를 보이자 미 증시에서는 ‘파티의 끝’이 아니냐는주장과 새로운 저점 매수기회라는 진단 등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월가는 첨단 기술주가 이끌어온 장기적 주가 상승세 끝에 지수가 1년여만에 가장 큰폭으로 하락한데다 1월 장세가 한해를 결정한다는 증시 속설 탓에 이번 주가폭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과 CNN이 5일 보도한 월가의 증시전문가들의 진단과 전망을 소개한다. ◆바튼 빅스(모건 스탠리 딘위터 국제담당 수석 투자전략가)=이번 폭락은 ‘신년의 발작적 공포’라고 할 수 있다.증시는 이번 폭락세에서 벗어나 다시상승하겠지만 그게 마지막 상승이 될 수 있다.기술주 중심의 호황시장은 2차대전 이후 4차례나 있었으며 그때마다 막판에는 단기적인 급락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투자자들이라면 이번에도 주가가 크게 떨어진 기회를 이용해 주식매입에 나설 것으로 본다. ◆랠프 아캄포라(프루덴셜증권 투자전략가)=주식 투자자라면 이번 폭락세가끝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이번 폭락은 호황시장내에서의 조정일 뿐이다.투자분석가들도 이를 심각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이번폭락으로 타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호황시장이 끝난 것은 아니다.증시에서는5∼10%의 조정은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다. ◆조지 밴더하이든(피델러티 인베스트먼트 펀드매니저)=첨단 기술주는 작년12월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증시 역사로 볼 때 거품은 보통 12월에 최고절정에 도달한다.기술주 붐은 상황이 급격하게 돌변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상황이 그런 것일 수 있다. ◆리언 쿠퍼먼(오메가 헤지펀드 회장)=주식시장의 조정은 상당기간 지연돼왔으며 주가 폭락은 조정이 가장 늦은 분야에서 일어났다.상당수 주식은 실제가치에 맞게 주가가 형성돼 있으나 75개 기업은 고평가돼 있으며 모두가이를 알고 있다.미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한 불황시장이 찾아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에릭 구스타프슨(스테인 로 그로스 스톡 펀드 펀드매니저)=이번 폭락이 호황시장의 끝은 절대로 아니다.투자자들은 작년 말에 얻은 부를 보전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은 기술분야 일부 주식의 과도한 상승을조정하고 있을 뿐이다. ◆마크 홀로웨스코(템플턴 펀드 펀드매니저)=세계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위험중의 하나는 미국 주식시장이다.미증시는 과대평가가 가장 심하며 정상보다45∼50% 이상 높게 주가가 형성돼 있다. ◆버클리 벨크냅(트레이너 워썸 앤 코 포토폴리오 매니저)=투자자들은 광고비를 많이 쓰는 뉴미디어 회사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진짜 시장의 추세는 인터넷 투자와 인프라스트럭쳐 회사이다. 박희준기자 pnb@
  • 美 ‘밀레니엄 타임캡슐’묻는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이 새천년을 맞아 지난 세기의 기념물들을 담은타임캡슐을 만들고 있다. 빌 클린턴대통령은 부인 힐러리여사와 함께 31일 자정 워싱턴 국회의사당앞에서 밀레니엄 타임캡슐 모형과 함께 캡슐에 담을 물품 목록을 공개할 예정이다.새해 봄 봉인작업과 함께 매장될 이 타임캡슐은 100년 뒤인 2100년 다시 개봉될 예정이다. 이 타임캡슐 아이디어는 힐러리여사가 “무엇가 금세기를 기념할 물건을 만들고 후세에 인류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담아 남기자”는 취지에서 제안한것으로 알려졌다. 매장될 품목은 38종으로 타임 캡슐은 길이 1.3m,폭 2m,깊이 62㎝의 금고.타임 캡슐 모형은 31일 공개행사에 이어 연휴기간중 스미소니언역사박물관에전시될 예정이다. 목록중에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해방 장면을 담은 사진,일본 나가사키에떨어진 원폭이 버섯구름을 일으키면서 폭파되는 사진등이 있다.결코 인류의자랑거리가 아니라 오점이랄 수 있는 것들이다. 20세기 민주주의 승리를 기념하는 베를린 장벽 조각과 2차대전에 참전했던한 군인의 철모,노숙자들의 사진등도 현실반성의 한 부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실을 자랑할 만한 것으로는 컴퓨터,무선전화기,헨리 루이스 게이츠가 만든 흑인에 관한 백과사전 CD,반도체,코닝 도자기,자동 번역기,우주에서 찍은 지구사진 등이 있다. 인류의 정신생활을 함축한 것들로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사라진 85개 문자,권리장전,소설 ‘분노의 포도’원고,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에 관한이야기,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아칸소주 콘웨이시의 한 지방신문,제럴드 포드 전대통령의 미국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연설문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실 세태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패스트 푸드와 편의점을 컴퓨터로 합성한사진과 만화영화 포케몬 장면도 담겨있다. 100년 뒤 이 타임 캡슐을 열어본 후손들은 지금의 인류에 대해 과연 어떤평가와 해석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hay@
  • [외언내언] 독일의 강제노역 배상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가 쿠담거리에 우뚝 선 ‘깨진 교회’는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내외국인들이 찾는다.‘카이저 빌헬름교회’가 ‘깨진 교회’로 불리는 까닭은 2차대전말 연합군 공습으로 교회 윗부분 3분의 2가 날아가고 나머지 부분만 폭탄을 맞은 상태로 보존돼 있는 모습 때문이다.보수를 안한것은 전쟁의 상흔을 후대에 알려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에서다. 이 교회 인근에 세워진 ‘속죄의 이정표’도 깨진 건물 못지 않게 인상적이다.‘아우슈비츠 681㎞’,‘다흐하우 458㎞’등으로 씌어진 10여개의 표지는 과거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대살육의 현장을 알린다.대전(大戰)중 유태인들을 학살한 집단수용소를 가리키는 이 이정표는 나치의 만행을 참회하고 반성하자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는 이같은 ‘속죄의 이정표’를 흔히 볼 수 있다. ‘속죄의 이정표’중 한곳으로 뮌헨근교에 위치한 다흐하우는 대전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담은 자료와 사진,소각로 등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학습과정에 포함돼 있어 어린 학생들이 인솔교사의설명을 들으며 참혹한 만행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외국관광객들에게는 다소 야릇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훈으로삼으려는 독일민족성이 얄미울 정도로 냉철하게 느껴진다. 독일은 대전 피해국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그동안 국가차원에서 끝낸 상태이다.다만 전쟁중 폴크스바겐·지멘스등 독일 기업에서 강제노역 한 외국인들에 대한 배상문제가 남아 있었으나 16일 100억마르크(52억달러)의 배상금 규모에 합의,연내에 해결키로 함으로써 전쟁 장본인으로서 국제법적 의무를 충실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웃이 좋아야 동네가 화목하기 마련이다.독일이 과거의 죄과를 인정하고피해보상에 능동적인데 비해 같은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의 피해국들에 대한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독일이 전후 공동체안의 독일을 강조하며 통일과 번영에 노력했다면 일본은 자신만의 풍요로움을 추구한 나머지 역사의 책임의식과 이웃 나라의 아픔을 돌이켜 보는 여유를 잃은 것 같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그렇고 강제노역·포로학대·군표·미지급예금 등 전후배상 문제가 분출하고 있지만 처리가 지지부진하다.종군위안부 문제만해도처음에는 자료가 없다며 실체를 부인하다 자료가 나오자 불완전하다는 핑계를 대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 국가배상은 안된다고 한다.남경 대학살과관동지진 학살도 마지 못해 인정하는 것도 솔직하지 못한 자세다.야속하다못해 얄미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든다.독일이 과거 멍에를 훌훌 털고 새 천년을 맞는 자세를 우리 이웃은 어떻게 볼까. [李基伯 논설위원 kbl@]
  • 나치 노역 52억弗 배상 합의

    [베를린 연합] 나치 독일의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금 협상이 독일 정부의 막판 배상금 증액 합의로 마침내 타결됐다. 피해자측 협상 대리인인 미하엘 비티 변호사는 14일 독일 협상대표와 피해자측 대리인이 100억마르크(52억달러)의 배상금 규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비티 변호사는 이번 합의내용이 수일내에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부터 시작돼 수차례 결렬위기를 맞았던 나치 강제노역 배상금 협상이 타결돼 독일 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소송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됐다. 지난주 피해자측은 독일측이 최종 제시한 배상금 최고액 80억마르크(기업부담 50억+정부부담 30억)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했으나 독일 정부가 이날 부담금을 인상하는데 합의함에 따라 협상의돌파구가 마련됐다. 피해자측은 협상 초기에 200억달러(360억마르크)의 배상금을 요구한데 반해 독일측은 처음에 33억달러(60억마르크)를 제시해 양측의 입장이 현격한 차이를 보였으나 피해자측이 전날 110억마르크까지 양보할 의사를 표명하고독일측도 정부출연금을 올리는 방법으로 100억마르크를 제시해 막판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2차대전중 1,200만명을 강제노역에 동원했으며 이들중 현재 120만∼150만명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7)이산하 장편연작시’한라산’

    고교 시절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던 이산하 시인은 80년대에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변혁운동에 기여하는 작품활동을 하고자 현장을 누볐다.이제는 역사적인 복권이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주 4.3항쟁은 80년대 저항문학의 첨단 소재였고,특히 이산하의 연작시 ‘한라산’은 문학작품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첫 작품이었다. 1986년 3월에 첫 회분을 발표한 뒤 즉각적인 잡지 회수 조치와 출판사에 대한 압력이 잇따르다가 1987년 11월에야 시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공소장은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 사회로 파악하고,무장 폭동을 민족해방을 위한 도민 항쟁으로 미화하며,인공기를 찬양하는 등 북한 공산집단의활동에 동조”했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공소장의 근거가 된 대목은 이 시 여러 대목에 산재해 있다.“2차대전 후 미국은 필리핀을/영국의 식민지 이란을/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을/일본의 식민지 한국을/각각 말아 먹었다//미군은 처음부터/‘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그들은 반드시 한국인 동포를 이용해 싸웠다/현지에 허수아비 파쇼정부를 세우고/그것에 경제·군사 원조를 하면서/반공을 명분으로 서로 피 터지게 물어뜯도록 하는 것/그것이 바로 그들의 방법이었다”(제1장)고 쓰는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소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물론 이런 시인의 판단은 ‘맥아더 포고문 제1호’가 그들 스스로를 “점령군”으로 호칭한데 비하여 소련은 자칭 “해방군”이라 부른데서 연유한 것이었는데,1990년대 이후부터는 두 강대국을 다 점령군으로 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연작시는 1947년 3.1절 제주도민이 내세웠던 구호로 “3.1혁명정신으로 조국의 통일독립을 쟁취하자!/미국놈은 남한에서 물러가라!/파쇼세력 타도 만세!/학원의 자유를 인정하라!/남조선 과도정부 수립 반대!”를 들고 있다.이후도민들의 파업과 간헐적인 시위가 지속되자 이에 대한 진압대의 대응은 “우리는 제2의 모스크바 제주도를 공격하러 온 멸공대다”는 명분이었고,그 뒤의 비극적 사태는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제주도민은 죽거나 쫓기면서‘관제 공산당’으로 낙인 찍혀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제주도 출신 작가들이 쓴 소설에서 처럼 집단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라산’ 필화사건을 맡았던 홍성우·안병도 변호사는 이 시는 미 군정 치하에서 “제주도민의 민족주의적 저항이라는 시각에서 재구성”했기에 기술방법에 따라서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변론했다.특히 논란의핵심인 ‘인공기’와 ‘북한 동조’에 대해서는 서대숙·김학준 등 권위있는 정치학자들의 해방전후사 연구 논문들을 인용하여 제주항쟁은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이전의 사건이며,여기서의 깃발은 북한이나 남로당과는 다른 여운형 주도의 당시 ‘인공’이라고 밝혀 검찰도 이를 수긍토록 만들었다.8.15직후의 남한이나 미 군정 비판이 곧 북한 찬양이라는 흑백논리를 탈피하도록만든 것은 ‘한라산’ 필화가 남긴 교훈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하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그는 안양교도소에 복역 중 이듬해 개천절 특사로 석방,‘한라산’을 완성하고자 제주도로 내려가 1년 6개월 가량 머물면서각종 자료 수집과 취재에 열을 올렸으나,막상 역사의 현장 체험에서 시인은 생각이 달라져 이 시를 완성시킬 수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필화로 작품의 완성이 가로 막혀버린 한 예가 된 ‘한라산’은 아직도 창작의 자유가 완벽하지 않음을 시사해 준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외언내언] 장군의 조건

    세계 2차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의 로멜장군을 격파한 몽고메리원수는 그의 자서전 ‘전쟁의 역사’에서 “지휘자는 적장의 근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며 그의 막사 안에 항상 로멜의 최근 사진을 걸어 두었다고 했다.몽고메리나 로멜이나 두 사람 모두 모범적인 장군들로 평소 체력관리에 남다른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로멜은 사막이라는 악조건하에서 전투 후 부관들이 아무리 권해도 야식을입에 대지 않았으며 대전 말기 연합군에게 쫓기면서도 체력 관리에 조금도소홀함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이 되려면 지덕체(智德體)를 골고루 갖추는 것이 기본조건이며 현대에이르러서는 배 나온 장군은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군기가가장 엄하기로 유명한 미국 해군은 19세기 중반부터 해군 장병들이 지켜야할 군기(軍紀)로‘청결’과 ‘품위’,그리고 ‘날렵한 몸매’를 규정해 그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특히 함상근무자의 정확한 취침시간 준수와 과식금지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징벌이 가해지는 것도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몸집이 크고 뚱뚱한 군인을 힘의 상징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런 군인들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굶주림과 고통에 견딜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비만하고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아니면 군인으로 뽑지 않았다고 한다.오늘날엔 어느나라고 뚱뚱하고 배가 나오면 행동이 둔해 환영받지 못한다.따라서 어느 나라든 군인들에 대한 정기적인 비만도 측정을 하고 있으며 비만의 주요 원인이 과식과 운동부족이라는 관점에서 군인들의 적정한 1일 운동량과 칼로리량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군 체력검정 제도를 내년부터 장성까지 확대해 합격기준에 미달하면 별을 달수 없게 됐다.이제 뚱뚱한 장교나 배 나온 장교는 장군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군에서처럼 계급이 엄격한 조직에서 장군은 지덕체를 골고루 갖춘 최고의 지휘관으로 모든 장교들이 동경하는 최상의 목표이다.하지만 앞으로는 뚱뚱한 장교는 심사의 문턱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장군의 대열에 오르려면 보통 50대가 되며 이 연령층은 체력이 한창 줄어드는 때다.국방부가 마련한 50대 연령층의 종목별 합격기준치는 윗몸일으키기22회,팔굽혀펴기 14회,1.5㎞달리기 8분40초이다.미군의 기준치에 버금가는수준이다.현대전이 과거의 전투와 다르지만 지휘관이 날렵해야 그 군대도 날렵하다는 것은 과거와 다름없다.장군들에 대한 체력검정 실시로 막강한 국군이 되기를 기대한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선동열 賞’ 만든다

    ‘국보’ 선동열의 업적을 기리는 ‘선동열 상’이 제정될 전망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3일 국내 프로야구에서 발군의 성적을 남긴 뒤 일본에서도 한국야구의 우수성을 알린 선동열의 이름을 딴 ‘선동열 상’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선동열 상’은 해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에게 수여하는 KBO의 공식 타이틀을 뜻한다.미국에는 통산 최다승(511승) 보유자인 사이영의 이름을딴 ‘사이영 상’이 있고 일본에는 30년대 최고투수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사와무라를 기리는 ‘사와무라 상’이 있다.국내에서는 대한야구협회가 일제시대 야구의 선각자였던 이영민의 이름을 딴 ‘이영민 타격상’을58년에 제정,해마다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주고 있다.
  • [대한시론] 국가적 ‘언론대책’은 ‘언론개혁’ 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언론대책문건’ 폭로로 촉발된 여야 대결은 갈수록 증폭돼 급기야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장외투쟁으로 끌고나감으로써 국회가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 관한 한 집권 ‘국민회의’는 대결의 단초가 된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의 ‘언론대책 문건’이 나오게 된 경위와 그것이 실제로 정부·여당의 당면 언론정책에 어느 정도 활용됐는지에 대한 사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검찰수사에 진실하게 협조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진실’에 바탕해 경우에 따라서는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까지 감수할 각오를 해야만 ‘국민의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덕성과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보여준 몇 가지 정치행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정형근 의원은 그가 제기해 발생한 ‘언론대책문건’을 둘러싼 여야 대결과정에서 이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빨치산’‘빨갱이’란 단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낡은 냉전시대의 사상논쟁을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가 지난날 군사독재정권 시절 공안검사로서 또는 안기부 고위간부로서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의 인권을 탄압했는지를 새삼 들먹일 생각은 없으나,세계 제2차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이데올로기가 세기말과 함께 세계적으로 마감되고 있는 이 시기에도 한국사회에 매카시즘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행태는 지탄받지 않으면 안된다.정형근 의원이야말로 그가 상대방을 공격할 때 사용한 용어를 그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맹목적 반공주의에 서 있는 ‘선전·선동정치인’인 것이다. 또 정형근 의원이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의 ‘언론대책문건’을 입수한 과정에서 드러난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와의 커넥션도 심상치만은 않다.그가 심심찮게 터뜨리는 폭로문건들이 이와 같은 음습한 각종 커넥션들에 의한 것이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근본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우리의 정치권에 아직도 ‘언론대책’ 문건 같은 것이 나돌고 그 문건 하나로 ‘예산국회’가헛바퀴를 돌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권력과 언론간 수평관계를 확립하지 못했고 언론의 자유가국민의 자유도,언론인 개개인의 자유도 아닌,언론사 사주의 자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민주화의 징표는 물론 여야의 공정한 집권경쟁일 터이다. 이 ‘공정성’은 공정한 게임의 룰이 여야 아니 모든 정치집단에 차별없이적용돼야 한다.그리고 그중 하나가 언론의 권력으로부터 독립임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므로 어떤 정당이 집권을 하든 여야 경쟁에서 언론을 이용하거나통제함으로써 이득을 취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언론을 ‘중립코너’쯤으로치부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지금과 같이 언론사와 언론사주들이 탈세,불공정 거래,부채경영 등으로 너무나 많은 약점에 노출돼 있는 한 언론에 대한 압력이나 ‘협조요청’의 유혹은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 시민사회가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그것에 언론사 지배주주의 소유제한 규정,소유와 경영의 분리,방송편성권,신문편집자율권 보장 등을 제도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권력이나 대자본에 의한 압력으로부터 언론을 독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정부나 여당의 언론에 대한 지배나 통제로 인해 공정한 정치적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장외투쟁보다는 국회로 돌아와‘언론개혁’을 위한 입법에 당의 힘을 모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지금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 통합방송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등 각종 언론관계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나가는 것임을 여야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국가적 ‘언론대책’은‘언론개혁’뿐이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외언내언] 체첸사태

    경기도만한 면적(1만9,000㎢)에 인구 130만명에 불과한 러시아의 체첸공화국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체첸 내의 회교 게릴라들을 소탕한다는명분으로 시작된 러시아군의 체첸 공격이 두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제2의 코소보사태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체첸 사태가 점차 악화되자 그동안 러시아의 내부문제로 간주하여 방관해오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수차례 강력한 경고를 보낸 데 이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사태해결을 위해 개입할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오는 1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OSCE는 체첸사태가 이제 더이상 러시아의 내부문제가아니라며 체첸 난민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단을 파견키로 하는 등적극적인 개입을 선언했다.미국과 유럽국가들의 개입움직임에 러시아는 당연히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체첸 사태가 자칫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3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난 8월과 9월의 잇단 아파트 폭탄테러사건을 체첸 회교반군들의 소행으로 보아 체첸 내의 테러리스트를소탕하고 안전지대를구축한다는 것이 러시아가 내세운 표면적인 공격 이유다.전투기와 장갑차를앞세운 러시아군은 이미 체첸 북부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한 데 이어 수도 그로즈니를 포위하고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한 도심에 로켓포 공격을 퍼붓고 있다.벌써 사망자가 3,000여명에 이르며 2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러시아군의 공격은 체첸 전국으로 확대되고 이에 저항하는 체첸의 반격도 만만찮아 사실상 러시아와 체첸의 전면전으로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회교 국가로 독립하기 위한 체첸의 저항은 역사가 오래됐다.17세기 러시아제국에 의해 러시아에 편입된 체첸은 2차대전 때 독일과 협력하여 독립을 꾀했으나 독일의 패전으로 무산됐고 지난 91년 구 소련이 해체되자 다시 독립을 선포했다.94년부터 21개월간 러시아와 혈전을 벌인 끝에 완전 독립국가는아니지만 독립적인 군대와 행정체제를 갖춘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이 됐다. 러시아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무릅쓰고 체첸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번 기회에 체첸의 독립의지를 꺾고 체첸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의회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복잡한 국내정치에이용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대로 둘 경우 체첸 사태는 장기화가 불가피하며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낼 것이 분명하다.국제사회가 하루빨리 개입하여 평화적인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하는것은 바로 이러한 재앙을 미리 막기 위해서이다. 蔣正幸 논설위원 chc@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하)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9일, 베를린에서는장벽붕괴 및 독일 통일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와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21세기 통일독일의 새비젼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냉전 종식의 주역들인 콜 전 총리와 부시 전 미대통령,고르바초프 전 옛소련 대통령이 행한 기념 연설.베를린 장벽 붕괴 및독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들 ‘3인방’이 차례로 연방하원에등장,‘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상황’의 회고 및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념 연설을 하자 연방하원 의원들은 물론 독일 시민들이 일제히 열렬한박수로 환영. ●장벽 붕괴 10주년 행사와 관련 최고의 인기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그가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아들론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몰려가 ‘고르비’‘고르비’를 연호.이때 고르바초프가 딸 이리나와 손녀 아나스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운더텐린번대로의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그는 또베를린의 유명 보석상 옌스 로렌츠씨로부터 독일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평화의 시계’로 명명된 최고급 시계를 선물 받았다. ●전날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합군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의 해방-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조용한 행보. ●베를린 시청에서는 부대행사로 장벽 붕괴일인 지난 89년 11월9일 출생한어린이들을 초청,‘독일 통일의 꿈나무’ 행사를 열어 이들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게메르크 폴란드 외무장관은 베를린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과 추쿠비스 츠브스키전 폴란드 외무장관에게 ‘독일·폴란드’상을 수여.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야외 특설 음악당에서는 3만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 거장들의연주에 이어,팝그룹 스콜피온스우도 라덴베르크가 각각 ‘변화의 바람’‘베를린을 환영합니다’를 열창.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수십발의 기념폭죽이 터져 하늘을 수놓자 시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 베를린 장벽 붕괴후의 동유럽 변화상 ‘동구 국가들의 새 세기 시작은 2000년 1월1일이 아니다.10년 전인 1989년11월9일 이미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철의 장막 음지에 있다 지난10년간 숨가쁜 변화를 겪어온 동구(지리적으로는 발트해에서 발칸반도)국가들에게 베를린 장벽붕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지난 91년 구 공산권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9일 연례보고서에서 중부 유럽국가들과 발트국가들이 내년에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인 1.6%의 두배에 해당하는 3.2%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동구 발전의 선두그룹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과 접경,유로리전(Euro Region)등의 실험적인 경제및 환경협력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체크 등 ‘동구 3룡(龍)’.지난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정치·경제 안정의 척도라할 유럽연합(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유럽 옛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89년 동독인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철의 장막을 처음 깨뜨린 헝가리는 이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10년전 2,000달러이던 1인당 GDP는 지난해 4,500달러가 됐다. 붕괴 이전부터 동구지역의 반공산혁명 선봉장 역할을 했던 폴란드는 지금도4,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력으로 중부유럽 최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10년전 3,200달러이던 1인당 GDP가 5,000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결별했다.체코는 옛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지도아래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그러나 슬로바키아는 90년대 내내 권위주의적 정부의 영향으로 유럽 최대 빈국으로 간주돼온 저성장국.그러나 지난해 친 EU성향 새정부 출범으로 장족의발전을 거듭하고 있다.옛 유고연방 국가들 가운데는 슬로베니아가 1인당 GDP1만달러를 넘기며성공, EU 가입 최우선 대상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90∼91년각각 독립을 선언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도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움으로 놀라운 경제변신을 이룩했다. 그러나 개혁이 오래 지체됐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그리고 계속된 분리 전쟁과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유고등은 불안정한 정치,절름발이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공산 종주국이었던러시아는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0%에 머물고 절대 빈곤층이 7,4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구동독 마지막 국가원수 에곤 크렌츠 [베를린 남정호 특파원] “지난 89년 11월9일부터 11일까지의 사흘동안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도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8일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62)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재 각종 강연과 집필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그해 10월18일 실각한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한달도 채 안된 11월9일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맞은 비운의 동독 마지막 국가원수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 위로 수천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기어올라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뚫릴 상황이었습니다.이때 우리가 가장 우려한 것은유혈 이었습니다.소련이 어떻게든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일밤 동독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동서독 국경선 개방 공표는 ‘피 대신 샴페인’을 터뜨리게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서 베를린 국경개방은 당시 양측의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것이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9년 11월1일 고르바초프와 4시간동안 회담했을 때 독일통일은 의제에도없었습니다.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을 해체하고자한 정치가는 동서진영 어디에도 없었고 고르바초프 입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뒤 12월2∼3일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통일이 결정됐다”며 “89년 당시 소련은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독의 몰락은 어찌보면 당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호네커와 슈미트 서독 총리간의 회담 이후 호네커와 소련 공산당지도부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는 크렌츠는 89년 11월9일밤 동서독 국경개방 결정도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리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후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서독 국경탈주자 사살명령 혐의에대한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동서독 장벽은 옛소련의 전략적 방위선으로 탈출자에 대한 발포 결정은 군사적 성격의 결정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고 강조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크렌츠는 97년 8월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었다. * 베를린장벽 붕괴 관련어록 [파리 AFP 연합] 유럽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는 기억할 만한 발언들을 많이 남겼다.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장벽을 부숴 버리십시오.(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89년 6월12일 브란덴부르크문에서)●장벽은 그것이 세워진 여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장벽은앞으로도 50년,아니 100년 동안도 존재할 것이다.(에리히 호네커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89년 1월19일)●소련은 동유럽 이웃들의 문제에 개입할 도덕적,정치적 권리가 없다.그들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89년 10월 핀란드 방문시)●동독인들은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이 조치는즉각 발효된다.(귄터 샤보브스키 옛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89년 11월9일기자회견에서)●우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매우 슬픈 일들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년 11월9일)●나는 방금 베를린으로부터 도착했다.엄청난 사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헬무트 콜 서독 총리,89년 11월10일)●베를린 장벽에 처음 금이 간 것은 80년 8월 폴란드 전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파업사태 당시였다.(아담 미흐닉 폴란드 반체제 인사,99년 11월)●나는 내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미하일 고르바초프,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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