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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美문화 종속 탈피 움직임

    [베를린 연합] 유럽이 미국문화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가 보도했다. 슈피겔은 2차대전 후 미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초강대국으로 군림함에 따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미국 문화가 유럽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으나 최근유럽 곳곳에서 미국 문화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문화의 세례를 가장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받아온 패전국 독일의 대중문화는 사실상 미국 문화 자체였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TV 드라마와 영화는 미국 프로 일색이고 라디오의 음악 프로도 팝송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사정이 바뀌고 있다.독일 TV의 인기 시리즈물은 대부분 독일 자체 제작 프로가 차지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독일 대중음악인 ‘슐라거’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이에 따라 ‘슐라거 대상 시상식’은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문화행사가 됐다. 음악전문 케이블TV 방송에서 ‘MTV’의 시청률은 떨어지는 반면 독일어로방송되는 ‘비바’의 시청률이 급상승하고 있다.MTV가 일부 프로에서 영어진행자를 독일어 진행자로 바꾼 것은 이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영화도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관객들의 발길을 미국영화로부터 독일 영화로 돌리기 위해 영화산업진흥에 힘쓴 결과 꾸준히 자국 영화 관객이 늘고 있다.덴마크의 실험영화 그룹 ‘도그마’는 아예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영상연출 기법으로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또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간결한 영상미학으로 접근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문학에서도 대부분 미국 작가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였으나 최근에는 영어가아닌 유럽어로 씌여진 작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유럽 문화의 자각과 정체성 확보 노력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그동안 서서히 진행돼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과거속에서 미래 찾는 ‘해양대국의 힘’

    로테르담은 유서깊은 항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항만시설을 자랑한다.이미14세기부터 유럽대륙의 주요항구로 자리잡은 뒤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의 두번째 상업도시로 발돋움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내를 걸으면서 이 도시의 역사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옛 건물은,시청과 중앙우체국·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괴됐기 때문이다. 대신 과감한 도시계획과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눈길을 끈다.철저하게 파괴된 것을 오히려 현대적인 계획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기회로 삼은 전형적인 사례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로테르담 해양박물관(Maritiem museum Rotterdam)에서도 이 곳 사람들의 기질이 읽혀진다.과거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미래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해양박물관은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유럽쪽 종착역인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정면으로 난 큰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나타난다.3분쯤 더 가면 이 곳 출신대학자의 이름을 따 최근 개통된 에라스무스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그러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박물관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루페항(Louvehaven)의 도크 끝자락을 이용한 박물관은 소박한 외관에 야외 전시품들도일상적인 항구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물관 앞 ‘1490년 광장’에 서 있는 오시프 샤킨의 조각이 표지판구실을 한다.‘심장을 잃은 사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파괴당한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본관은 크고 작은 두개의 삼각형을 이어놓은 모습이다.길쪽에서 보면 평범한 흰색 벽체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만,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좁은 부지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코자 한 설계자의 뜻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전시공간은 크게 건물안과 밖으로 나누어진다.그러나 건물안팎 모두 보편적인 항해와 선박의 역사를 담고있다기보다는 철저히 네덜란드적이고 로테르담적이며,미래지향적이다. 건물밖 도크에는 1867년 진수된 네덜란드 군함 ‘부펠호’가 정박해있다.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뮤지엄 십(Museum ship)’으로 꾸몄다.크레인 등 각종 하역장비와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관차 및 화차,등대 등의 해양 안전시설들도 흥미를 끈다.화차의 내부는 하역방법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건물 안에서 맨 먼저 만나는 전시공간은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는 ‘세계항구 로테르담’이다.거대한 컴퓨터 게임장처럼 보이는 이 곳은 로테르담 항구를 축약하여 여행자의 짧은 일정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로테르담항의 전모를 보여준다.컴퓨터를 이용하면 항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3층의 ‘콜렉션’관은 로테르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대형 선박들의 미니어처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지도와 콤파스·나침반 등 항해도구를 통해 과거 첨단기술의 도움없이도 어떻게 대양을 주름잡았는지를 알게 한다. ‘17∼18세기의 해상생활’관은 당시 선원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었으며,어떤 위험에 직면했는지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네덜란드의 조선’관은 17세기에서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선박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여기서도 현대 네덜란드의 조선기술에 공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은 물론이다.‘스플래시 선생’이라고 이름붙인 어린이관은철저한 체험 위주 전시로 항해나 해양공학의 원리를 깨닫도록 만든다.예를들어 아치형 다리를 만드는 코너에서 구조물을 제대로 조립했다면 어린이들은 아치 위로 가상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그러나 아치의 원리를 이해하지못한 채 조립하면 어린이가 건너는 순간 다리는 무너지고 만다.물의 원리를보여주는 각종 실험장치에서는 배가 어떻게 뜨고 가라앉는지를 배우고,호이스트와 크레인을 작동해보면서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화물을 부릴 수 있는원리를 스스로 깨우친다. ‘스플래시…’와 부펠호의 내부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일파티 장소로도 개방된다고 한다.‘박물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라는 로테르담 사람들의 인식은 여기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다. 로테르담(네덜란드) 글 서동철기자 dcsuh@
  • [2000 美 大選](1)대통령의 권한

    대통령 후보를 확정짓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지난 3월 ‘슈퍼 화요일’ 이후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민주,공화 양당후보로 일찌감치 결정되면서 선거열기가 다소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하지만 양당이 사실상의 본선 레이스에 돌입하며 전방위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미대통령선거의 여러 특징과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43번째 미국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하게전개되고 있다.미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권한을 가지며, 왜 이를 위해 온 나라가 여기에 매달리며 선두다툼을 벌이는 것인가. 4로 나눠 떨어지는 해의 11월 첫일요일 다음 화요일에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다음해 1월 20일 취임하는 미 대통령은 호칭에서 대통령(President)외에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로 불린다.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체제위에 성립된 미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란 뜻이다. 1700년대 말 32세의 알렉산더 해밀튼과 36세의 제임스 매디슨이 작성한 연방주의 논문에 의해 기초가 다져진 미합중국 대통령직은 말도 많던 13개주분권체제에서 시작한 탓에 강력한 대통령직을 만들어냈다. 취임선서 이후 정오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의 권한은 행정권한 외에도 입법상권한을 비롯,사법권한,외교권한 등 방대한 권한을 갖는다. 행정권한은 말그대로 행정부내 규칙,규정,지시 등을 내리고 연방기관에 대해 법으로 구속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민병대를 포함한 군최고사령관직을 수행하며,전쟁선포는 물론 비상시국가 경제통제권한과 300여만명의 공무원 가운데 약 3,000명을 임명하는 권한도 갖는다. 1856년 취임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이래 더욱 강화된 외교권한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2차대전중 연합국지도자 회의 등으로확대됐으며,국가원수가 만나 국가간 정치는 물론 경제,법률조인등 방대한 권한을 포함하는 쪽으로 확대됐다. 사법부 쪽으로는 연방판사의 임명을 비롯해 사면권과 함께 형기단축,벌금인하란 강력한 권한도 갖는다.최근 주목되는 권한은 핵 사용 명령권.국가 종식이란 극단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핵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핵가방은 항상 대통령과 함께 동행하며 국가방위의 최초이자 최후의 권한을 담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미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한 만큼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마찰이 생길 경우 법원으로부터도 제한을 받기도 한다.주정부 공무원이었던 폴라 존스양 성추문 사건과정에서 불거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사법방해와 위증죄가 드러났던 클린턴은 의회로부터 탄핵의 궁지에 몰렸듯,대통령은 연방법 제2조 4항에 의해 상하양원 각각 3분의 2찬성으로 탄핵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법안은 의회입법으로 처리되게 돼있어 클린턴 행정부와 알력을빚은 의회는 모두 3차례에 걸쳐 예산안 처리를 거부,행정부 폐쇄라는 극단현상을 낳았는데 이 역시 견제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지난 49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가 입안한 법률안을 거부했음에도 의회가 3분의 2찬성으로 다시 입법화시킨것이나,이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했음에도 의회가 비준을 거부,국제연맹에 가입할 수 없다고 밝표한 것 등은 견제의 좋은 본보기다. 막강한 미 대통령의 가장 극단적인 견제는 바로 임기이다.초대 워싱턴이 3기 연임 권유를 물리치고 ‘고별사’를 남긴 채 물러난 이후 3기 이상 연임불가가 불문률로 굳어졌었다. 그러나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과정에서 45년 사망시까지 4기를 연임했으며,전쟁이후인 51년 의회는 수정헌법 22조로 법조문에 연임불가를 정식 규정했다. hay@.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미국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어디일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에서 탄생,아칸소주는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등 분주하지만 뉴욕주는 무려 지금까지 8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8대 마틴 밴버렌,13대 밀라드 필모어,21대 체스터 아더,22대 그로버 클리브랜드,26대 테어도어 루즈벨트,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34대 드와이트 아이젠아워,37대 리처드 닉슨이 모두 뉴욕주 출신.오하이오주도 9대 윌리엄 해리슨을 비롯,19대 러더포드 하이스,20대 제임스 가필드,25대 윌리엄 맥킨리,27대윌리엄 태프트,29대 워렌 하딩 등 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초대 워싱턴을 낳은 버지니아는 3대 토머스 제퍼슨,4대 제임스 매디슨,5대제임스 먼로,12대 제커리 테일러 등 주로 미 역사 초기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이어 메사추세츠주가 2대 존 애덤스와 6대 존 퀸시 애덤스,30대 캘빈쿨리지,35대 존 F.케네디 등 4명을 배출했다. 남부지역에서는 대통령이 잘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테네시 주는 7대 앤드류 잭슨을 비롯,11대 제임스 녹스 포크,17대 앤드류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나왔다.인구가 가장많은 캘리포니아에서는 31대 허버트 후버와 40대 로널드 레이건 등 2명이,그리고 일리노이주 역시 16대 애이브러햄 링컨과 18대율리시스 그랜트,그리고 텍사스 주에서도 36대 린든 존슨과 41대 조지 부시등 2명을 배출했다. 이밖에 앨라배마 노스·사우스캐롤라이나,미주리,뉴멕시코,애리조나,오클라호마,와이오밍,노스·사우스다코타,워싱턴,미시건,캔사스,콜로라도,네바다,미네소타,델라웨어,매릴랜드,메인,웨스트 버지니아 등의 주는 단 한명의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2)독립요구 거센 比모로족

    필리핀 제2의 섬 민다나오.천혜의 자원과 비옥한 토양,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민다나오는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폭탄테러와 납치로 얼룩진 ‘살상의 섬’으로 각인돼왔다.민다나오섬 남부와 인근 바실란섬 술루제도에 근거를 둔이슬람 교도 모로족의 이슬람 독립국 수립을 위한 반정부 무력투쟁이 끊이지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리핀 공산 반군 신인민군(NPA)도 민다나오섬에근거를 두고 반정부투쟁을 계속하고 있다.지난 30년간 사망자는 10만여명.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재연되는 테러,인질극. 지난 4월 이후 필리핀 이슬람반군의 유혈 폭탄테러,납치극은 극에 달하고있다.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도 급증하고 있다.수도 마닐라에서도 테러와 교전이 벌어졌다.지난달 20일과 23일 이슬람 무장단체 아부 사이야프는 잇따라두건의 인질극을 벌였다. 바실란 섬에서 50명의 현지인을 납치,부분적으로석방했으나 가톨릭 신부 4명은 처형됐다.23일엔 19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21명의 인질을 인근 휴양지 시파단섬에서 납치,자신들의 근거지 홀로섬에 억류했다.국제문제로까지 비화된 이 사건은 27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반군과 필리핀정부의 협상 결과 인질 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나 최종결과는 두고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배경. 원래 민다나오는 독립된 이슬람 국가였다.1521년 필리핀이 스페인에 정복되면서 민다나오 섬도 함께 복속됐다. 이후 1898년 미국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1946년 독립할 때까지 미국과 필리핀 정부의 모로족 차별정책이 계속됐다.본토 로존섬에서 토지없는 농민을 의도적으로 민다나오섬에 보내 경제적 부를 축적해왔다.특히 모로족과 이주민사이에 무장 충돌이 발생한 1971년 필리핀 정부의 모로족 학살을 계기로 대정부 투쟁으로 발전했다. 770만 인구가운데 가톨릭 인구는 83%,개신교는 9%이며 이슬람은 5%에 불과하다.민다나오섬을 비롯한 모로족 주 거주지역의 경제적인 낙후,상대적인 박탈감이 모로족의 이슬람국가 수립을 부추기는 커다란 배경이다. ◆모로 이슬람 반군 단체. 최근 인질극을 벌인 아부 사아야프와 MILF등 5개 조직이 있다.아부 사아야프는 ‘신의 검객’이란 뜻.조직원은 200여명에 불과하다.하지만 각종 테러와 납치에 관한한 최고 정예부대란 평이다.지도자는 카다피 잔하라니. 72년 결성된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은 조직원 1만5,000명으로 최대규모다. 96년 8월 당시 라모스 대통령과 MNLF의 미수아리 의장의 남부 자치주 주지사자리를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정치 참여 노선을 택하고 있다.이에 반기를 들고 파생된 조직이 MILF.조직원 1만3,000여명.지도자는 살라마트하심이다. 이밖에 모로이슬람개혁집단(MIRG)이 있다.이들 반군단체들은 특히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회교권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전망. 필리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반군 문제앞날은 한마디로 어둡다.심화되고 있는 경제난,지역 경제성장 불균형 등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30일 MILF측과 평화협상을 갖기로 돼있지만 만남 자체가 성사될지도 미지수다.미수아리 등 온건파 지도자들의 노선에불만을 품은 젊은 모로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도 평화정착의 걸림돌.게다가필리핀 정부로서는 노선을 달리하는 개별 반군들과 각각 협상을 진행해야한다는 한계가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모로족은. ‘모로(Moro)’족은 사실은 인종적으로 필리핀인들과 다르지 않다.16세기중반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인이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교도들을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교도와 동일하게 ‘모로’(영어로는 무어)라 부르면서 정착된 말이다. 모로라는 말에는 원래 이슬람교도를 경멸하는 뜻이 담겨있지만 이들은 모로족이라고 불리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필리핀인들과 달리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문화,전통생활 양식 등에 강한 애착을 갖고 전승시키려 한다.언어학적인 분류로 10개 부족으로 나눠져있다.거주지는 민다나오섬과 술루제도,팔라완섬,바실란섬 등.이들은 이 거주지를 통틀어 ‘모로랜드’라 부르고 이슬람 독립 국가건설을 위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모로족과 지배집단과의 갈등,투쟁,이른바 모로 지하드(聖戰) 역사는 수세기를 걸친 지난한 것이었다.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살라하크 하심의장은최근 한 이슬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핀땅에 가톨릭을 옮겨 심은 스페인과의 성전은 1시기(1521∼1898년),미국에 대해 투쟁한 1898∼1946년은 2시기 성전”이라고 구분했다.이어 필리핀 가톨릭 세력과 전면전에 들어선 1970년부터 현재까지가 제3기 성전으로 “성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투쟁은 계속된다”고 밝혀 필리핀 정부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모로 이슬람교도들의 입장에서 필리핀 정부군은 스페인,미국과 같은 외국제국주의 세력과 마찬가지인 ‘적군’인 것이다. 2차대전후 해외 이슬람국가로 유학떠났던 종교지도자들이 이집트 이란 리비아 등 범 이슬람권과의 연계 속에 귀국한뒤 독립국가 수립을 향한 총구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김수정기자
  • 21세기 차르 푸틴의 러시아/(上)정치·외교정책

    ‘푸틴호’의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가.강력한 러시아건설을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 이래 대내외적으로 의욕에 찬 정책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러시아의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모스크바 오일만기자] 지난 7일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47) 러시아 대통령의 외모는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아담한 체구에 번쩍이는 안광,절도있는 걸음걸이….무엇보다 러시아 부흥에대한 강렬한 의지가 몸 전체에서 품어져 나온다는 것이 푸틴대통령을 만나본 이재춘(李在春) 주러시아 대사의 소감이다. 군인의 길을 걸었던 박전대통령과 달리 푸틴은 ‘러시아 007’을 꿈꿨던 KGB(보안위원회) 출신이다.체첸 전쟁을 지휘하면서 ‘터미네이터’라는 애칭을얻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과시했다.“위대한 러시아 건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손쉽게 ‘차르(황제)’에 등극했다는 평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취임 직후부터 변화를 모색했다.지난 9일 2차대전 승전 55주년 기념일을 맞아 구소련 붕괴 이후 10년만에 군사 퍼레이드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옐친 시절 크렘린궁에서 권력의 혼돈을 생생하게 지켜본 푸틴은 취임 직후부터 ‘권력 집중’,즉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다.강력한 대통령만이 위대한 러시아를 만든다는통치철학이다. 이 때문에 총설계사 푸틴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국가구조 개편’ 작업이다.89개의 주·자치주·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된 러시아 전역을 7개의 연방지역으로 재편,각 지역의 총괄책임자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국민이 직접선출한 지방 지도자들 위에 앉히는 초헌법적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내무군소속을 내무부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편입시킨 것도 주목할 일이다.아직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하지만 푸틴의 대외정책은 대내 정책과 달리 ‘실용주의 노선’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국제사회의 호감을 확보하면서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위한 국제 환경조성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한반도에서의 실용주의적 접근도 ‘신등거리 외교’로 표출되고 있다.주한러시아 대사관의 고위관리는 “우리의 남북한 등거리 외교는 과거 친(親) 서방 친(親)남한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고 못을 박았다.지난 2월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북·러 신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푸틴의 러시아는 군사·외교면에서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이 지배적이다.특히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항한 중·소 공조체제를 본격 가동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oilman@k
  • 美육군 ‘성조지’ 만화가 워커에 최고 훈장 수여

    [워싱턴 AP 연합] 미국 육군은 24일 한때 국방부에서 기피인물로 간주되기도 했던 성조지(Stars & Strips,星條紙)의 만화가 모트 워커(76) 화백에게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루이스 칼데라 육군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비틀 베일리 일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조지 만화 ‘캠프 스웜피’ 연재 50주년을 맞아 코네티컷주(州) 출신의 워커화백에게 ‘최고민간수훈 훈장’을 수여하고 “캠프 스웜피는전세계에서 복무하는 모든 미군에게 매일 인생의 밝은 면을 비추어주고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고 치하했다. 캠프 스웜피에는 나태한 말썽꾸러기 비틀 베일리 일병과 엄격한 최고참 하사관 오빌 스노컬 상사,그리고 골프를 좋아하고 장교클럽에서 살 정도로 자주 가는 지휘관 아모스 해프트랙 장군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성조지는이 만화가 장교에 대한 존경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두차례나 수년간씩 연재를 금지하기도 했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리고 있는 워커 화백은“세상은 변했다”고 소감을 말하면서“나를 기피인물로 만들었던 고위 장교도 내 만화에 조금은 웃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간 게놈 프로젝트] (1) 초안 완성의 의미

    [베데스타(미 메릴랜드 주) 함혜리기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북서쪽으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메릴랜드 주의 베데스타시 소재 미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2차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기초과학 연구를수행해온 이 곳에 인간유전체 지도작성과 염기서열의 완전 해독을 골자로 하는 휴먼게놈프로젝트(HGP)가 진행되면서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90년 HGP가 본격 착수된 이후 가장 중대한 결과물로 꼽히는 인체염기서열(유전자 지도) 해독 초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NIH의 곳곳에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허락받지 않은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은 일체 금지되고 관계자들은 공식 발표사항 이외에 어떠한 논평도 거부했다.셀레라 제노믹스사와 같은 민간기업들이 21세기 생물산업의 핵심정보가 될 인간게놈 해독작업에 뛰어들면서 NIH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부추긴 원인이다. 오는 6월15일 인터넷을 통해 전 인류에게 공개될 인체염기서열 해독 초안에는 모두28억개의 염기쌍이 포함된다.인간의 염색체에 포함된 전체 유전정보(30억∼31억쌍)의 90%에 해당한다.특히 정보의 정확도가 99.9%에 이르기 때문에 21세기 생명과학의 중대한 원천정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염기의 배열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인간의 외형은 물론,각종 생리현상,질병과 관련이 되는 단백질의 생성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립암센터의 김성진 박사는 “DNA의 염기배열에 따라 단백질의 기본단위인 아미노산이 결정되기 때문에 유전자에 어떤 변이가 일어나 단백질의 구성 및 구조가 달라지고 기능이 달라지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유전자 정보는 암 등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장기적으로 볼때 사람의 피부 색깔과 키는 물론이고 노화의 정도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고 개개인의 유전자 특성에 따른 맞춤 의약품의 개발도 가능해진다.HGP가 지금까지 이뤄낸 인류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0만평에이르는 광활한 부지에 들어선 NIH 산하 24개 연구소와 임상병리센터는 휴먼게놈프로젝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그중에서도 국립휴먼게놈연구소(NHGRI),유전자 정보를 관리하는 국립생물공학연구소(NCBI),암 유전자를 집중 연구하는 국립암연구소(NCI) 등 3개 기관과 노스캐롤라이나에있는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가 HGP의 핵심을 이룬다. NIH는 NHGRI를 통해 인류의 질병퇴치와 관련된 유전체 연구를 자체적으로수행하면서 국가적인 유전체 연구의 정책방향 설정과 관련 연구기관에 연구예산을 집행한다.현재 NHGRI에서는 학계와 산업계에 있는 16곳의 유전체전담센터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각 유전체의 전담센터에서는 인간 유전체의 지도작성,대규모 DNA 염기서열결정,유전체 분석기술 개발,DNA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이용,기타 생물유전체 연구 등 게놈과 관련된 모든 면을 포괄하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2001 회계연도 과학기술 예산편성중 ‘21세기 연구기금’을 30억달러 증액하기로 했다.이 가운데 10억달러가 NIH에 지원될 예정이다. 유전체 연구에 대한 초기의 비난과 회의적 시각을 일소하고 이처럼 국가의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휴먼게놈프로젝트의 시대적 당위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lotus@. ◆게놈(genome·유전체)= 유전자(gene)와 세포핵 속에 있는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한 생물체가 지닌 유전물질(DNA)의 집합체를 뜻한다.이 유전체는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물의 설계도라 부른다. 한 개의 세포(핵)에는 23쌍의 염색체가 들어 있으며,이 염색체 안에 있는디옥시리보핵산(DNA)은 모두 30억∼31억개 염기쌍(유전문자)으로 돼 있다.이 유전문자가 10만여개의 유전자를 이룬다.한 개체에 있는 모든 세포는 같은수의 염색체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세포만 분석해도 전체 게놈정보를 알 수 있다. ◆DNA= 2중 나선형의 생체 고분자.인간의 경우 DNA는 세포핵에 있는 염색체에 나뉘어 담겨 있다.DNA사슬의 기본 구성단위를 뉴클레오티드라고 한다.DNA를 구성하는 염기는 아데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의 4가지.A는 T와,G는 C와 결합토록 돼 있으며,인체의 경우 이들 염기가 짝을 이루는 조합수가 30억∼31억개나 된다.사람의 세포에는 2m 정도의 DNA사슬이 들어 있어모든 세포의 DNA를 합치면 달까지 수만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된다. ◆휴먼= 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DNA 안에 나열된 염기서열을규명,10만개에 이르는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고 유전정보 전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다.인간의 유전정보에 내재된 기능을 종합적으로 탐구,생명현상의 이해는 물론 암 등 유전성 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1986년 에너지성(DOE)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현재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15개국 350여 실험실이 참여하고 있다. 2003년까지 인간유전체의 전 염기서열 해석을 완료하되 2001년까지 개략적인 초안을 작성할 것을 목표로 했으나 최근 클린턴 대통령이 이를 2000년 중반으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국립휴먼게놈연구소 제인 피터슨 박사.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휴먼게놈연구소(NHGRI)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휴먼게놈프로젝트의 사령탑이다.NHGRI의 대규모 염기서열 분석팀 책임자인 제인 피터슨 박사를 만나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들어봤다. ◆게놈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현재 유전자은행(진뱅크)에는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인간유전체 정보가 수집되고 있는데 80% 정도 달성됐다.인간 유전체의 DNA는 수많은 반복서열이존재하기 때문에 오차를 줄이기 위한 검증작업이 진행중이다.다음달 15일 전체 유전체의 90%에 해당하는 28억쌍의 염기서열을 포함한 초안(워킹드래프트)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보는 어떻게 공개되는가. 초안을 비롯한 모든 정보는 국립생물공학연구소(NCBI)의 웹사이트를 통해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DNA 조각에 대한 정보와 유전체 소재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단백질의 구조를 포함한 장기적인 후속연구 계획은. 인간유전체의 DNA 염기서열을 완성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인간유전자 연구에 관련이 깊은 쥐 유전체 연구에 주력하고 추가되는모델동물에 대한 유전체 해독작업이 진행될 것이다.그밖에 인간 유전체에서 1,000개의 염기에하나 정도씩 존재하는 SNP(단일염기변이)를 찾아내 이를 공개할 계획이다.바이오칩을 포함한 관련기술 개발,모델동물의 유전체 정보를 비교하는 비교생물학 연구와 함께 유전정보의 합법성 및 윤리문제,생물정보학 관련 인력 양성 및 교육훈련 등에도 투자할 예정이다. ◆게놈프로젝트에서 생산된 유전정보의 특허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는데. 국가주도의 게놈 프로젝트에서 얻어진 유전정보에 대해서는 전혀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다.이러한 기초데이터를 이용,다음단계의 기능 연구를 통한 특허출원은 개별 연구자의 몫이다. ◆염기서열 분석기술을 한국 등 제 3국에 기술이전할 계획은. 연구자들을 통한 공동연구 등을 통해 HGP에 협조할 의향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다.
  • 모리총리 발언 파문 확산

    [도쿄 연합]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라고 말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공산,사민당등 야당측은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가 하면 정부측에서도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관방장관등 일부 각료들이 이례적으로 비판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모리총리는 15일 도쿄(東京)도내 호텔에서 열린 ‘신도(神道)정치연맹 국회의원간담회의’ 결성 30주년 기념축하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일본 국가는당연히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라는 것을 국민이 확실히 알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 활동해온 지 30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모리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총선거를 앞두고 신사(神社) 관계자들의 지원을호소하려는 데 의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는 헌법상의 국민주권과 정교(政敎) 분리정책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리총리는 또 “사람의 목숨은 단적으로 말하면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중요시하고,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점이 기본이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종교는 자신의 마음에 깃들고 있는 문화다.그것을 중요시하도록 왜 교육의 현장에서 좀더 가르치지 않는가.신과 부처를 학교와 사회,가정에서 가르치는 것이 일본국의 정신론에서 볼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며 종교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모리총리는 “지금 나는 정부측에 있을 따름이지만 약간 엉거주춤한태도에서 (벗어나) 확실하게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이같은 주장을 전면적으로 내세울 의향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날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당수 토론등을 통해엄격히 따진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민주당 대표는 “일본제국헌법에 가까운 발상으로,국민주권의 현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라며 “아시아국가들에게 파급되는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공산당은 후와 데쓰조(不破哲三)위원장의 담화를 통해 “국민주권을 선언한헌법의 입장을 난폭하게 팽개친 것”이라고 평했으며 사민당도 “2차대전 전의 회귀를 방불케하는 것으로,총리의 자격을 현저히 결여한 발언”이라는 담화를 냈다. 정부측에서도 아오키 관방장관이 이날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 “만일 그대로라면 일국의 총리 발언으로서 여러가지를 감안해서 했었야 했다”고 논평했으며,가와라쓰토무(瓦力)도 “국민중에 그같은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있다. 원래 신중해야 하는 문제다”고 어짢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모리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그는 16일 기자단이 철회할 의사를 묻자 “왜 철회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전부를 정확히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일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으로,전후 주권재민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모리총리는 총선거를 앞두고 최근 일부 주간지들이 ‘학창시절의 매춘 추문’을 들어 집중 공격,주간지들에게 허위사실이라며 사과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이 이같은 발언파문이 불거져 어떻게 진화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5)브란트 슈토프 회담

    *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직접 회담을 통해 양쪽의 심각한 견해차를 확인했다.에르푸르트는 시작일뿐이며 2차회담을 갖는 것 이상의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1970년 3월19일 동독의 접경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 뒤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서독으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던진 첫마디다.그는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환상없이 침착하게 긴장을 제거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거짓된 희망’을 경고했다. 1945년 종전이후 25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은 긴장완화를 위한 대외적 여건변화를 동서독이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1969년은 2차대전 종전후지속돼온 동서간 냉전구조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미국과 소련간전략무기감축조약(SALT I) 협상이 시작됐고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상호균형감군협정을 제안했다.3월 동서화해를 추구해왔던 하이네만의 서독 대통령 취임,4월 서독의 ‘동독 국가승인’ 방침이 발표됐다.10월 ‘동방정책’을 제창한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했다.브란트 총리는취임연설에서 “서독 정부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상 승인은 고려될 수 없지만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둘은 외국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을뿐”이라고 밝혔다. ‘두개의 독일 인정 발언’은 동독을 소련의 위성국가로,‘비합법적’국가로 간주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 단절까지 불사하는 ‘할슈타인원칙’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야당은 즉각 반(反)통일노선,분단고착화,심지어 ‘매국행위’라며 비난했다.반면 동독은 두달 뒤인 12월 서독에 무력사용·위협 포기,외교관계 수립 등을 요구,정상회담의 계기를 마련했다. 브란트는 동독이 국제법상 승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동독총리를 만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 70년 1월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 앞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슈토프도 이에 즉각 합의했다.양측은 곧바로 실무접촉에 들어갔고 4차례의 실무접촉과정에서의제가 아닌 회담장소가 최대의 난제로 떠올랐다.서독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으로 가길 원했고 동독은 서독 정상의 베를린 장벽통과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결국 제3의 장소인 동독의 에르푸르트로합의했다. 3월19일 브란트가 탄 기차가 에르푸르트 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동독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그를 환영했다.숙소인 ‘에르푸르트 호프 호텔’까지 몰려와 환호하는 군중앞에 나서 이들을 진정시키던 브란트의 모습을 지켜보는수행원들 눈엔 눈물이 고였다. 회담장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회담장안은 냉랭했다.동독은 군비감축, 유엔동시가입,국제법상 동등한 관계수립 등 7개항을 요구했다.서독은 동·서독은서로 외국이 아니며 양측의 선린우호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한다등 6개항을 제시했다.양쪽은 각자의 입장만 확인한 뒤 5월21일 서독의 카셀에서 2차회담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만 발표하고 헤어졌다.두달뒤 카셀 2차회담도 양쪽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차때처럼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쪽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다.실무접촉은 계속 돼 기본조약이 체결된 72년 12월21일까지 70여차례나 열렸다.73년 9월 유엔동시가입,74년 3월 상호대표부개설로 이어졌다.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10월 통일때까지 양독은 9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조금씩 가까워짐으로써 변화를 촉발한다’는 브란트의 접근이 결실을 맺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 인류평화·공존 철학속에 동방정책을 싹틔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옛 동서독인을 막론하고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1913년 12월18일 북부 독일의 소도시 뤼베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소비조합여점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사회당원인 외할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성장한 그는 17세때 독일사회민주당 당원이 돼 반나치 청년운동에 가담했다. 히틀러 집권후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노르웨이로 망명,종전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49년 연방의회 베를린 시의원으로 독일 정계에 입문한 뒤 15년만인 64년 당수로 선출된다.69년 자민당과 제휴,전후 최초의 사민당 정권을 창출하고 총리에 올라 ‘동방정책’을 밀고 나갔다.동서독 정상회담 개최등 공로로 71년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보좌관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지면서 74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87년 사민당 당수직 사임으로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의장직을 6회 연임하면서 국제정의 실현과 인권신장에 앞장섰다.92년 10월8일 운명했다. *슈토프 당시 동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상대였던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1989년 거세게 전개됐던반정부 시위에 밀려 사임할 때까지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치하의 마지막 총리로 일했다. 1914년 7월9일 베를린 출생인 그는 벽돌공과 기술자,건축설계사 등으로 일했다.그는 동독의 내무·국방장관 등을 비롯해 공산당과 행정부에서 요직을두루 역임했다.70년 1차 정상회담직후 브란트 서독 총리로부터 ‘확고하고경직된 견해를 가진 정치가로 다루기 매우 어려운 회담 상대’로 불리웠다. 89년 10월18일 호네커 실각으로 함께 사임했다.사임하고 이틀 뒤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동독인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졌다.독일이 통일된지 1년만인 91년 60년대 베를린 장벽과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됐다.92년 이와 관련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됐다. 독일 정부는 99년 4월19일 그의 사망소식을 발표했다.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다. 김균미기자
  • 韓美주둔군 지위협정 실태와 과제/ 불평등 사례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전면 개정하라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다.지난달 술집여종업원 살인혐의로 기소됐다가재판 몇시간전 탈주한 크리스토퍼 매카시 상병 사건은 이런 국민여론에 기름을 부었다.늦어도 6월이면 열릴 양국의 SOFA 개정협상을 앞두고 협정의 실태,쟁점,외국 사례 등을 짚어본다. 지난해 발생한 주한미군 범죄 562건 가운데 우리 사법당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범죄는 20건(3.8%)에 불과했다.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 문제도 잇따라제기됐지만 이를 법적으로 다룰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각종 ‘독소조항’들이 도마 위에올랐다. SOFA는 91년 개정 이후 비교적 상호주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지만 ‘합의의사록’과 ‘개정양해사항’이라는 2개의 부속문서에서 본협정의 효력을 크게제한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불평등협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군 범죄에 대한 형사재판권의 제한,미군 기지내 한국인 노동자들의노동3권 제약,관세특혜,미군이 사용하는 시설물의 환경오염에 대한 무책임등이 대표적인 불평등 요소들로 지적되고 있다.지난달 살인피의자 매카시 상병이 재판직전 탈주했어도 한국 검·경이 속수무책이었던 점도 미군 범죄인의 신병 구금권이 우리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군 범죄자에 대해 우리의 재판권 행사 비율이 낮은 것은 SOFA 조항 중 형사재판권을 규정한 제22조의 독소조항 때문. 제22조는 ▲미 당국이 요청하면 한국이 재판권을 포기할 수 있고 ▲피의자가 미군 관할에 있을 경우 미군 당국이 구금하며 ▲한국에서 복역중인 미군범죄자에 대해서 미 당국이 미국에서 복역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 한국측은‘호의적 고려’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미국 관리의 입회없이는 수사·재판이 불가능한 점,1심에서 무죄를 받거나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으면 우리 검찰은 항소할 수 없는 점도 형사관할권을 지극히 제한하고 있는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미군이나 미 군속이 사용하기 위해 들여오는 각종 물품에 대한 관세면제 조항도 개정대상이다.영외 유출을 통해 국내 시장을 교란시키는 요소로 작용할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이밖에 미군 기지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최소한 70일 동안 금지하는 등 미군과 계약을 맺은 국내 노동자들의 노동3권에 대한 지나친 제약,미군기지 주변 환경의 오염 등 노무,환경,검역 등에서 SOFA 관련조항의 불평등한 요소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반면 일본,독일 등이 미국과 맺은 SOFA는 주둔국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게규정돼 있다.일본은 영외에서 미군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면 미국측에 피의자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아도 되고 독일은 교통사고 등 사소한 사건도 철저하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이장희(李長熙·법학) 교수는 “한미 SOFA가 오히려 한미 양국의 동반자적인 관계정립을 저해하는 만큼 미·일 SOFA,미·독 SOFA 수준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金宗燮 SOFA 개정 국민행동 사무국장. “단지 조항 몇줄 고치자는 게 아닙니다.미국이 우리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지의 문제입니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국민행동’의 김종섭(金宗燮·32) 사무국장은 40여년전 맺어진 SOFA는 국가 대 국가의 동등한 협정이 아니라 미국에 일방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인정한 비정상적 ‘약속’이었다며미국의 과감한 개정결단을 촉구했다. ●SOFA 조항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모든 분야가 문제지만 형사재판 관할권과 기지 사용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미군 피의자는 일본처럼 판결확정 전이라도 우리 검찰이 신병을 인수할 수있어야 한다.군 기지도 이제부터는 미군이 임대료를 내고 사용해야 하며 규모도 줄여야 한다. ●우리 사법체계 수준을 못미더워 해 미국측이 범인 신병인도를 거부한다는지적도 있다.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른 범인의 신병을 인수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불합리하다.인권침해를 우려한다면 세부조항에서 면밀하게 보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우리 안보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게 임대료를 내라는 주장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먹고 살만 하니까 은인(恩人)을 홀대하려는 게 아니다.한국은 2차대전 당시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독일과 일본보다도못하다. 일본처럼 ‘방위비 분담금’을 책정,우리 정부가 예산에서 지원하는 방법도있다. ●우리 정부에 할 말은. 주권회복과 양국간 호혜평등이라는 대의명분을 갖고 주도적으로 협상을 이끌었으면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개정 협상 어디까지 왔나.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 기원(起源)이라고 비판받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은1951년 체결된 이래 67년,91년 딱 두차례 부분 개정됐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 독일 등 유럽국가들과 맺은 협정에 비해 심각한 주권침해 조항들이 많아 분쟁의 불씨가 되어왔다.대표적 예로 92년 이후 주한미군 범죄는 연평균 603건.하지만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는 연평균 21건으로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양국은 95년 충무로 미군병사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다시 개정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7차례 입씨름만 주고받다가 96년 11월 미국측의 일방적인 결렬통보로 결실없이 끝냈다.8차회담은 남북회담 전인 5월말,6월초나 정상회담이후인 6월 하순쯤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협상이 차일피일 늦어지는 것은 기득권을 확보한 미국측이 한사코재협상을 꺼리는 데다 열세에 놓인 우리 정부 역시 강력히 요구하지 못한 탓도 있다. 시민단체들이 최대 독소조항으로 꼽는 것은 우리 정부의 미군 신병인도 제한.현행 협정은 미군이 살인·강간 등 중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형이확정될 때까지 미군 당국이 피의자를 계속 구금하도록 규정했다.이 때문에한국측은 미군 피의자 신병인도를 지금의 형 확정 시점에서 기소 시점으로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신병인도 시기를 조정할 수는 있으나 대신 피의자 대질신문권은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는 중이다.미국측은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이 예상되는 범죄의 경우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 6개월 이하 범죄는 관할권을 행사하지 말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한국은 노무·환경·검역 등 불평등 조항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정부 내에선 시급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역점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면 개선을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 오일만기자 oilman@. *주요국 주둔 미군지위 비교. 일본,독일,12개 나토조약국,호주,필리핀 등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과 마찬가지로 주둔군을 파견한 미국을 상대로 외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을 맺고 있다. 협정은 국내문제 불간섭 및 상호평등의 원칙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우월한지위의 미군을 견제하고 자국의 주권보장을 꾀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이들 나라의 협정과 현재 개정을 위한 회담을 앞두고 있는 한·미협정중 형사재판권,환경관련 규정 등 쟁점들을 비교해 본다. ●일·미협정. 1960년 ‘일미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과 이 조약 6조에따라 ‘시설과 구역 및 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 등을 체결했다. 형사재판권에서 협정의 적용대상은 미군에 한정하고 있다.군속,가족에 이르기까지 형사재판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는 한미협정과는 다른 점이다.한미협정에는 가족 범위에 ‘기타 친척’까지 포함하고 있어 규정자체도 모호하고범위도 넓다.일본의 경우 한미협정보다 미군 피의자에 대한 구금,체포권한이한층 강화돼있다. ●나토 및 독일보충협정. 미국과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12개 국은 51년 ‘주둔군의 지위에 관한 북대서양조약기구 체결국간의 협정’을 맺었다.체결국에 주둔하는 외국군대의법적지위를 규율하는 조약으로 출입국관리,과세 및관세면제,형사 및 민사관할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나토 및 독일보충협정은한마디로 상호주의 원칙을 준수한 평등조약으로 평가된다.한미협정이 합의의사록과 개정양해사항 등을 통해 본 협정상의 권리를 대폭 양보하거나 포기한 것과는 다르다.미군 및 군속,가족에 대한 모든 형사상 및 징계상의 관할권이 주둔국에 있는 것은 물론이다.‘환경’이란 용어가 들어간 조항조차 아예 없는 한미협정과는 달리 환경오염 제거비용의 부담,환경정보 공개 등 엄격한 환경 규정을 두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4)사다트 베긴 회담

    *77년 이집트·이스라엘 정상회담. “20세기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의 하나이자 역사적 이벤트였다.우리는전혀 새로운 평화에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7년 11월19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외무장관으로 동행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UN사무총장은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으로 촉발된 화해 기류는 누구도 녹일 수 없을 듯하던 중동의 얼음장 하나를 쩍 갈랐다.양국 정상간 대면은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중동평화 여정에 거대한 초석을 놓게 됐다. 애초에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4차례 전쟁을 통해 국토를 강탈해간 이스라엘에 아랍권은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이집트 역시 67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반도를 뺏겼고 73년 이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격전에 휘말리는 동안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선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 베긴 정권의 탄생으로 세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한편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넌더리가 중동 민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었다.국제사회의 압력도 날로 거세갔다.이스라엘은무력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 242조를 마냥 무시할수 만은 없었으며 극도의 민생 피폐상에 시달려온 이집트에는 미국이 ‘평화분담금’ 명목으로 제시해온 경제원조가 절실했다.이 시점에서 사다트는 결단을 내렸다.77년 자국 의회에서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어디든 간다.이스라엘 의회까지라도”라고 연설,강한 평화의지를 피력한 것.여기에 이스라엘이 즉각 초청장을 보내 화답했다.그리고 사다트가 무조건 이를 수락함으로써 아랍지도자 최초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3차례 회담에도 불구,평화조약이 아닌 “평화를원하며 대화를 계속하자” 정도의 원론적 합의성명서 한장을 달랑 내는데 그쳤다.30년간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양국간 입장 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베긴 총리는 평화보장을 전제로 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으나 요르단강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위와 관련된 사항에는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버텼다.양국은 향후 1년여를 무수한 중재회담으로 소모하고서도 접점을 찾지 못해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야 했다.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협상조율에 들어갔다.2주만인17일 천신만고 끝에 역사적인 합의문이 엮어져나왔다.골격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및 이스라엘-이집트 수교 ▲5년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보장 원칙 등 크게 두가지였다.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그후로도 반년이 흘러야 했다. 어렵사리 싹튼 중동평화였지만 부작용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양국 모두 국내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으며 사다트는 동포를 버린 배신자로 아랍권에 낙인찍혀 리비아,시리아 등으로부터 단교당하기도 했다.미국을 불러들인 반쪽정상회담의 한계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자치권 회복까지는 문서에약속된 몇배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이스라엘-이집트 협정의 의미 자체를 희석할 수는없다.미국이 중도개입했으나 협상의 촉발점이 된 사다트의 예루살렘 방문이상당히 독자적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중동문제를 자력으로 인식한 최초의사례가 아닐 수 없다.유대-아랍간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 회담이 없었다면 93년 오슬로협정,98년 와이리버협정 등 향후 중동평화의 모든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나올 수 없었다.78년 사다트와 베긴은 그 공로로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러나 81년 사다트는 과격파 총탄에 희생돼 중동평화의 첫 순교자가 됐다. 손정숙기자 jssohn@.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반식민,반봉건주의자에서 중동평화 개척자로.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1918년 영국 통치하 이집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로 사관학교에 입교,정치 역정을 시작한다.영국 통치에 저항한 자란,터키 오토만 왕정을 무너뜨린 케멜 아타투르크,비폭력운동의 간디,그리고 히틀러로부터 영향을받았다. 38년 졸업과 함께 배치된 후방에서 후일 이집트 초대대통령이 된 아브델 나세르를 만나 정치적 동지가 된다.52년 나세르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왕정을무너뜨리고 집권하자 그 밑에서 18년간 홍보장관,집권당 사무총장,국회의장,총리 등을 지내다 70년 나세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72년 소련군 추방,73년 대 이스라엘 반격 등으로 외교적 성과를 쌓아가던중 77년 이스라엘과의 평화계획을 제시,전세계의 관심권 안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을 철권통치로 억누르다 81년 자국군 내부 회교원리주의자 총탄에 숨졌다. *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또다른 축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때 시오니스트 무장단체를 이끌며 테러를 자행,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 1913년 옛 소련(지금의 벨라루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샤바 법대를 졸업했다.2차대전 홀로코스트에 부모형제를 잃은 뒤 과격분자로 변신,예루살렘의 영국군 사령부 숙소였던 한 호텔을 폭격,100여명을 사망케 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원내투쟁으로 선회,20여년간 극우 야당을 이끌다가 73년 리쿠드당을 창당했으며 77년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총리로당선됐다. 그는 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에 평화를 부른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81년 이라크 핵수로 폭격,82년 레바논 침략 등으로 강경 이미지를 재확인시키며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비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83년 자진 은퇴한 뒤에는 92년 사망 때까지 정치를 등지고 칩거했다. 손정숙기자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새천년 첫 시성 행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0일 베드로 광장에서 고국 폴란드에서 온 축하객들을 맞이하면서 20세기 폴란드 크라코프의 수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왈스카를 성인으로 선언하는 2000년 첫 시성행사를 거행했다. 나치 지배하의 폴란드에서 비밀 신학교 학생으로 있을 때 자신도 파우스티나 수녀의 무덤에서 기도한 바 있는 교황은 이 수녀를 “20세기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폴란드의 딸”이라고 말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2차대전 발발 즈음에 33세의 나이로 결핵으로 죽으면서자신이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록하고 추종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호소한 일기장을 남겼다. 교황은 예르지 부제크 폴란드 총리와 솔리대리티(연대) 노조 대표들도 포함된 광장을 메운 20만 청중들에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특히 당시의 사건들과 그후 수백만명에 들어닥친 무서운 고난을 목격하고 이를 직접 체험한사람들에게 그러한 자비의 메세지가 얼마나 필요한 지를 잘 알 것”이라고말했다. 이날 폴란드에서도 약 7만명의 신도들이 크라코프 교외에 있는 파우스티나수녀사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의 TV를 통해 그녀의 시성 의식을 지켜봤다. 바티칸시티 AP 연합
  • 日 손해보험사 첫 파산

    [도쿄 연합] 일본의 중소 손해보험회사인 다이이치(第一)화재보험이 2000년 3월 결산에서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 사실상 파산했다. 일본 금융감독청은 금명간 이 회사에 대해 일부 업무정지명령을 발동하고파산처리 절차에 들어간다.일본의 손해보험회사가 파산한 것은 2차대전후 처음이다. 이 회사 보험금은 내년 3월까지 전액 보호되나 그 이후는 일부 삭감된다.다이이치 화재는 올 1월부터 3월에 걸쳐 실시된 금융감독청의 검사에서 부실채권과 유가증권 손처리 등이 불충분하다는 판정을 받고 4월10일까지 자본보강대책을 요구받았었다. 1949년에 설립된 다이이치 화재는 전후 일본의 첫 손해보험회사로 적립형화재보험과 손해보험 등 저축형 상품을 주종으로 취급해왔으며 종업원수는 2,500명에 이르고 있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하)미국의 상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어느 전쟁이나 그렇겠지만 미국에게 특히 베트남 전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남긴 뼈아픈 전쟁이었다. 호치민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린든 B.존슨이 군사개입을 시작한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동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잊지못할 상흔만 남겼다. 1955년 미군 고문단이 베트남 땅을 밟은 이래 65년 첫 전투병력이 들어가개전,75년 4월29일 미대사관철수 때까지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고 5만8,000명이 희생됐건만 결국 패전의 쓴맛을 봐야 했다. 남북전쟁이 미국의 완전한 통일체 국가형성에 기여하고 세계 1·2차 대전이미국에 부를 가져다 주었다면 베트남전은 정치권력의 부정적 속성과 지방정부의 중앙통제 반발,군산복합체의 상업주의,이에 따른 국내여론 분열과 충돌등 미국의 환부를 여지없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이 받은 상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2차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제일주의를 과시하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이후 걸프전 승전때까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것이라고 역사가 피터 쿠즈니크는 지적했다. 54년 베트남군은 디엔비엔푸 지역 침공으로 프랑스군 3,000명,베트남군 8,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제네바조약을 끝으로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하지만이때 맺은 조약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즉 냉전 대결장으로인도하고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와 소련·중국이 중심이 된 공산주의와의 갈등은한반도의 38선 같은 ‘이념의 국경’ 북위 17도선을 그었고, 한국전에서 끝장을 보지 못한 냉전 강대국들은 베트남에서 재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혁명의 대상인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캄보디아를 통한 루트를 만든 뒤 미군을 공격한 북베트남의 호치민을 단죄한다는 명분에 4명의 미국 대통령은울창한 열대우림 땅속으로 숨은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과 숨바꼭질하며베트남 전쟁이라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주창했던 드와이트 아이젠아워,프론티어 주창으로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존 F.케네디,그의피살로 대권을 인수받은 뒤 차기를 노린 린든 B.존슨,종전이란 국민들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확전에 열을 올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등 역대 4명의 대통령은 그들의 미국내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두 베트남전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미 대통령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베트남전쟁에 M16 자동소총,신형제트전투기,각종 장갑차량,‘에이전트 오렌지’ 고엽제 등 물량공세로 대응했지만 결과는 전례없는 미군의 인명피해에 불과했다.미국은 베트남전장과 국내반전여론이라는 2중 전선에 시달리면서 전략부재를 드러내야 했다. 존슨은 매일 아침 신문과 TV화면을 통해 죽어나가는 미군 모습이 생생하게전달되는데도 불구하고 승전 홍보를 강조하다 여론에 부딪혀 “차기 대권도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했다.닉슨은 비등한 반전 여론 와중에 폭로된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반전 여론은 70년 오하이오주 켄트대학의 반전론자 학생 4명이 경찰총에 숨진 사건으로 정점에 달했고 미국은 결국 75년 4월 베트남 철수와 함께 씁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hay@. *한국에 남긴 교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은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겪고 있는 각종 후유증은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베트남은 인구 7,800만명중 전후 세대가 50%를 넘는다.이들은 돈에 대한 생각이나 의식구조가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세대간 갈등이현안으로 떠오를 정도다.한국의 경우 전후세대가 인구의 80% 가량을 차지한다.올해로 종전 50년을 맞는 한국은 분단의 역사가 긴 만큼 세대간 인식의골도 깊다. 남북간 개발의 불균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베트남은 뒤늦게 북부개발에 나섰지만 베트남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자본 유치도 난관에 부딪쳤다.남에서는 북부를 살리기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고있다는 불만과 함께 남의 제한된 ‘번영’마저 잃을까 불안해한다.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중심으로 남부는 86년 경제개혁 정책을 표방하면서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특히 97년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추락했다.범죄와 마약,매춘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교통망과 상하수도 시설등사회간접자본시설은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남북간 경제격차는 날로 심화돼지난해 상반기 남부의 수출은 22% 증가한 반면,북부는 15% 감소했다. 상호불신과 감정의 앙금도 여전하다.북부인들은 전쟁통에 가족과 재산을 잃은 책임을 남부인에 돌리며 원망섞인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중앙정부내 고위직에 남부인의 진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공직과 공기업에서 득이 되질 못한다. 한국의 경우 통일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베트남의교훈을 거울 삼아 남북의 균형개발과 이질감 해소 등 장기적인 민족화합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균미기자 kmkim@. *베트남 근대사 주요 일지. ◆1859 프랑스군 사이공 점령◆1930 베트남 공산당 결성◆459.2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45 9. 미·프랑스 연합군 베트남 진주◆54 제네바협정서 17도선 남북 분단◆55 남부에 미국지원 응오 딘디엠 정부 출범◆60 베트콩 월남민족해방전선 수립◆65 2 미국의 북폭개시,베트남전 시작. ◆68 9 호치민 사망◆73 1 파리 휴전협정 조인.3월 미군 마지막 철수◆75 4. 29 미대사관 철수◆75 4.30 월남 패망.통일◆76 7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86 6차전당대회서 도이머이 경제정책 도입◆92 12.22 한국과 수교◆95 7.12 미국과 수교
  • 호주 영문학교수 릴라 간디

    ‘포스트식민주의’란 식민주의 문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이론적 작업으로 근본적으로는 ‘탈식민화’를 꾀하려는 담론이다.처음이 용어는 2차대전 후 역사가들이 ‘포스트 식민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한데서 연유하였다.그러다가 문학이론가들이 70년대말부터 식민화의 다양한 문화적 효과들을 논의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지금은 하나의 독자적인 비평이론이자 학문분과로 정착되고 있다. 최근 이영욱 전주대 교수가 번역 출간한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펴냄)는 포스트식민주의가 80년대말 이후 포스트구조주의,정신분석학,페미니즘 같은 이론들과 더불어 인문학에서 주요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과 배경,주요 주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이 책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진정한 탈출구가 식민 과거에 대한 망각,혹은 포스트식민적 기억상실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주요 대상은 아프리카와 인도의 식민지 경험에 관한 것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 릴라 간디는 호주 라 트로브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포스트식민주의 대한다수의 논문을 발표해왔다.1만원.
  • 닐 조던 감독 ‘애수’, 열정적이고 간절한 사랑의 여정

    아일랜드 태생의 닐 조던 감독이 처음 선보인 멜로영화.비비안 리·로버트테일러 주연의 1940년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제목이 같지만 리메이크는 아니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소설가 모리스밴드릭스(랠프 파인즈)와 정부 고위관료의 아내 사라(줄리언 무어)가 나누는열정적이고 간절한 사랑의 여정을 그렸다.195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그레이엄 그린의 자전적 소설 ‘사랑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이원작. 조던 감독은 작가 출신답게 간결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대사와 멜로 장르가 무색할만큼 긴박감 넘치는 전개,예상치 못한 반전 등을 솜씨있게 살려냈다. 그러나 불륜의 멜로드라마 코드를 충실히 따르는데 비해 원작소설에 담긴 전쟁의 광기와 종교적 딜레마는 상당부분 희석된 듯한 느낌이다.22일 개봉. 김종면기자
  • [대한광장] 국민,민족,여성

    일본인 친구들 몇 명이 한국을 다녀갔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또 역사를 가르치는 친구들이다.한국에 오기 전,이들은 일본 보수파가 주도한 일장기와 기미가요에 관한 법률제정에 반대하는 지식인모임을 결성하고 인터넷을통한 서명운동과 여러차례의 집회를 개최했다.이들은 글과 정치적 실천을통해 2차대전의 기억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수정주의 사관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일본 민족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진보적 탈민족주의의 입장을 분명하게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늦은 밤까지 비교적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일본 제국주의의 조선과 대만에 대한 식민지 교육사를 전공하는 한 친구는,순배가 꽤 돌자 한국에 대한 솔직한 자기심정을 피력했다.일본에서 일장기에 반대하는 운동을 열심히 펼치다,한국에 와 보니 도처에 태극기 물결이라 무척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국기로 상징되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고 비판적인 한국 지식인들이 유독 자기나라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모양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일본과 한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한국 지식인들의 이중적 잣대를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었다.덧붙여 그는 일제시기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중국대륙에 대해서는 강한 연대감을 표하면서도,정작 같은 식민지인 대만의 민족주의자들은 무시해버리는 일종의 우월의식이 존재한 것같다고 말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좌파 지식인이라는 굴레 때문에 그는 몹시 신중한 표현을사용했지만,나는 그의 지적이 옳다고 동의했다.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이 한국의 국가주의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친구는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이 일본의 역사학계에 미친 엄청난 파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문서화된 사료가 없다는 이유로 정신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우파 역사학에 대해,할머니의 증언 자체가 바로 사료라는 것이이들의 입장이었다.문서로 된 사료들은 지배자의 입장이 기록으로 남은 것이며,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이야말로 피억압자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구술된 더중요한 사료라는 것이었다.그것은 곧 실증주의와 역사인식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일본 지식인들의 이러한 진지함에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에 대한 한국사회의 주된 반응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한분노에서 멈추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일본에서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의 양심선언이 나온 데 비해,한국에서는 정작 동이나 마을 단위에서 정신대를 모집했던 한국인들의 양심선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한국측 모집책들의 철저한 침묵은 정신대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큰 공백이 아닐 수 없고,일본의 우파들이 정신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당한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더 중요하게는 정신대문제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조선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착취를 의미할 뿐 아니라,같은 식민지 조선남성의 조선여성에 대한억압과 착취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이다.더욱이 그것은 과거의 기억으로만그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제국주의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의 하나라 할수 있는 이 할머니들에게 무려 50여년 동안이나 침묵을 강요했던 한국사회의 성적 억압구조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준다.반성해야 할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뿐만 아니라,식민지 조선의남성과 대한민국의 남성들인 것이다. 민족문제의 프리즘으로 정신대의 역사를 바라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또 다른 반성의 주체로서 식민지 조선과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생략된다는 점이다. 정신대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한국인 정신대 모집책을 설득하여 그들의 증언을 받아내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남성국수주의에 대한비판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스스로에 대한 점검과 반성은생략한 채,상대방에 대한 반성만 촉구한다는 것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林 志 鉉 한양대교수·사학
  • 이시하라 도쿄지사 또 망언

    재일 한국인 등 외국인을 흉악한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도지사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회견에서 재일 한국인 등 외국인을‘(제)3국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외국인들의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림으로써 도쿄도를 더 잘 통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17일자로 배포될 이 주간지의 회견은 지난주와 이달 초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지난 9일 육상자위대 네리마 주둔지 부대 창설 기념식에서 “3국인,외국인의 흉악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어 지진이 일어날 경우 소요사건이 예상된다”며 자위대의 대응을 강조해 물의를 빚었었다. 이시하라 지사는 또 타임과의 회견에서 ‘제3국인’의 의미에 대해 원래는“외국인을 의미하는 것”이나 2차대전이 끝난 뒤 한동안 “대만인,한국인과같은 (일본)식민지 출신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고 말했다. 도쿄 교도 연합
  • 伊소설가 조르조 바사니 사망

    [로마 AP 연합] 파시즘의 발흥으로 유대인들이 처한 곤경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소설 ‘핀지콘티니 가(家)의 정원’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가 조르조 바사니가 13일 사망했다.향년 84세. 로마시내 산 카밀로 병원 대변인은 최근 심장질환으로 입원했던 바사니가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바사니는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바사니는 고향인 볼로냐를 떠나 베네치아 인근 페라라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요소를 짙게 깔고 있다. 대표작 ‘판지콘티니가의 정원’은 파시즘이 발흥하기 시작한 30년대 부유한 귀족가문의 쇠락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세계 각국서 번역 출간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바사니는 2차대전중 파시스트들에 의해 잠깐 투옥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뒤문학인생을 시작했으며,56년 ‘페라라에 관한 5가지 이야기“로 이탈리아의유명 문학상인 스트레냐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인으로도 활동해왔다.아내였던 발레리아 여사와는 오래전 헤어졌으며 유족으로는두 자녀가 있다.
  • 佛 인물사진 작가 지젤 프로인트 사망

    [파리 연합] 프랑스 지식인과 예술가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으로 유명한독일 태생의 프랑스 사진작가 지젤 프로인트(여)가 31일 파리의 한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91세. 장-폴 사르트르,시몬 드 보부아르,제임스 조이스,어네스트 헤밍웨이,앙드레지드, 장 콕토,앙드레 말로,버지니아 울프,앙리 마티스,페에르 보나르 등이그녀의 모델이 됐다. 30년대 파리로 이주한 프로인트는 유럽 최고의 사진작가였을 뿐 아니라 프랑스 여권 운동가로서도 알려져있다.1908년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한 프로인트는 나치정권 출범에 대항하는 학생운동가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중 33년 경찰의 체포를 피해 파리로 탈출했다. 소르본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사진에 몰입하면서 당시 여권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작가 아드리엔 모니에를 우연히 만나 파리의 지식인들과 교분을 갖게됐다. 이 시기에 앙드레 말로를 만났고 트렌치 코트 차림에 담배를 입에 물고있는말로의 모습을 담은 작품 ‘인간의 운명’은 그녀의 대표작이 됐다. 그녀의작품 일부는‘라이프’나 ‘타임’에 게재되기도 했다.40년 나치가 프랑스를점령하자 프랑스 남부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피신,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남미에 머물게 된다.프랑스로 돌아와 조이스의 일상을 찍은 흑백사진 컬렉션 ‘조이스와의 사흘’은 특히 유명하다. 프로인트는 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공식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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