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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의 전쟁 / 美·英 ‘戰後 3단계처리’ 가닥

    연합군이 바그다드 ‘접수’작전을 시작한 가운데 이라크 전후 처리 청사진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7일과 8일 북아일랜드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3단계 이라크문제 처리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영 연합군이 치안을 장악하고 미국의 이라크 재건 및 인도적 구호사무소(ORHA)가 인프라 재건 및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전담하는 것이 그 첫단계다.2단계는 행정권을 갖고 ORHA와 섭외해 점차 다양한 정부기능을 인수받는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마지막 3단계는 총선으로 민주적 이라크정부를 구성해 이른바 ‘이라크 해방’에 용의 눈을 그려넣는 일이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6일 이 과정이 6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나 바트당원 등 후세인 잔당들의 저항과 아랍민족주의 발흥 가능성 등 갖가지 변수들을 감안하면 더 길어질 개연성도 있다. 두 정상은 이라크전 개전을 전후한 3주 동안 이번까지 세차례나 만나 호흡을 맞춰왔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두 사람의 만남을 2차대전 종전 무렵 윈스턴 처칠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간 회담에 비유했다. 그러나 BBC는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에도 미묘한 틈이 있다고 보도했다.전후 처리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라크전을 계기로 영국내에서 인기가 곤두박질친 블레어 총리로선 분열된 유럽연합(EU)의 재통합을 추진,정치적 위상을 되찾는 게 급선무다. 그 연장선상에 전후 이라크 처리 과정에서 유엔을 개입시켜 팽배했던 유럽의 반전여론을 불식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한마디로 임시정부 구성 등 이라크 재건과정에서 반전대열에 섰던 프랑스와 독일 등 EU국가와 러시아 등을 참여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행정부 수뇌부는 이라크 복구 과정에서 숟가락을 얹으려는 프랑스 등의 움직임에 아직 호락호락한 자세가 아니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7일 “이라크 해방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피를 흘린 쪽에서 전후 처리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반전 명분을 거머쥔 채 경제적 실리까지 챙기려는 반전국가들에 대한 못마땅한 심사를 가감없이 표출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번 부시·블레어 회동을 계기로 미·영 연합군측은 전후 이라크 통치방안에 대한 가닥을 잡아갈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국제여론을 감안해 유엔의 역할을 완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특히 아랍권내 반미감정 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다. 하지만 주 역할은 미국이 맡고 유엔에 대해서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기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구본영기자 kby7@
  • 부시의 전쟁/후세인, 정치적 승리 노린다

    미군이 사실상 바그다드까지 진격한 지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후세인 전문가들은 그가 처절한 시가전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추구하다 모든 것이 실패하면 망명보다는 영웅적 패배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이라크 관리들은 “바그다드가 연합군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연합군에 자살공격으로 맞설 것도 다짐하고 있다.게릴라전식 시가전과 자살공격,민간인을 이용한 인간방패 작전으로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다는 계산이다.타리크 아지즈 부총리는 얼마전 레바논 방송과의 회견에서 “적군을 사막으로부터 주거지역인 도시나 마을들로 끌어들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시가전이 장기화되면 미군 사상자가 늘어난다.미국의 여론은 많은 사상자를 감내하지 못한다.또 민간인 피해도 늘어난다.민간인 피해가 늘면 국제적 반전여론이 비등하면서 미국에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다. 그럼 후세인은 군사적으로는 졌는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는 승리한 셈이다.후세인에게 있어 지난 91년 걸프전은 40개국으로 이뤄진 다국적군과 싸웠지만 권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긴’ 전쟁이었다.이번에도 이런 관점에서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그는 이란과의 전쟁,쿠르드족의 반란 등 자신의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화학무기를 사용해왔다. 후세인의 망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자신이 중동지역 내 초강대국이 될 이라크의 역사적 지도자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고 있는 후세인에게 망명은 굴욕이다.또 망명을 준비하면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쿠데타의 시작을 의미한다.결국 2차대전 당시 지하벙커에서 자살한 히틀러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부시의 전쟁/ 美선봉부대 ‘식량·식수난’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전쟁이 수개월간 지속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라크 중부지역에서는 미군과 이라크군의 교전이 격화,양측의 사상자가 크게 늘고 있다. 바그다드에 대한 공습도 통신시설 등을 중심으로 계속됐으나 민간인 거주지역에 대한 미군의 ‘오폭’으로 국제사회의 반전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러나 모래폭풍이 잦아지면서 미 선봉대의 진격은 부분적으로 재개됐다.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27일 비행장을 장악,연합군은 마침내 바그다드로 향하는 동·서·북 등 ‘3각 전선’을 형성했다.다만 보급로 확보 등 후방에서의 교란요인으로 공화국 수비대와의 일전은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6일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데 이어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미공영라디오(NPR)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른다.”고 말해 장기전을 시사했다. ●최대 격전 나자프 전투 미군이 거점도시를 지나치지 않고 게릴라식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 비정규군을 일망타진키로 전술을 바꾼 뒤 후방에서의 전투는 격화되고 있다. 25일 새벽 중부도시 나자프 주변에서 이라크군의 야간 기습으로 시작된 교전은 27일까지 계속됐다.미 3 보병사단의 7 기갑여단은 나자프를 에워싸고 북쪽으로 나가는 유프라테스 교량을 장악했으나 이라크군은 미군의 공습과 포격에도 아랑곳않고 끊임없이 중화기로 반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군 1000여명이 사살됐으나 미군도 적지 않는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빈센트 브룩스 중부군 부사령관은 “미군의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시리야 시가전 계속 미군에 최대의 타격을 준 나시리야에서는 미 해병대들이 조명탄을 쏘며 밤 늦게까지 이라크 비정규군과 시가전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미 해병대 20여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도시 바스라에서도 이라크군이 탱크를 앞세워 남쪽으로 이동하자 영국군은 이들을 공습했으며 시 외곽에서도 후세인에 충성하는 사담 페다인과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됐다.버포드 블라운트 3 보병사단 사령관은 “이라크 군의 저항이 집요하고 조직적이며 일부는 중화기로 무장했다.”며 “후세인이 여전히 군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초 1000대 이상의 이라크군 호송행렬이 미군을 향해 남하한다는 보도는 미군의 공중지원이 모래폭풍으로 어려운 틈을 타 공화국 수비대가 병력과 탱크의 방어망을 재배치하려는 것으로 평가됐다. ●북부전선에 미군 공중투입 26일 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의 거점도시 어빌에는 1000명 이상의 공수부대원이 투입됐다.이탈리아에서 출발한 제 173 공수여단 소속으로 2차대전 이후 최대규모다.이들은 어빌에서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바슈르 인근의 비행장을 곧바로 장악,처음 북부전선을 형성했다.국방부 관계자는 앞으로 이곳을 통해 탱크와 장갑차 등의 중장비와 대대적인 병력 증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의 불안한 후방 보급로 워싱턴포스트는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전쟁이 수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했다.이라크전의 저항을 제대로 평가하지못하고 ‘속전속결’식 작전을 폈다가 보급로 확보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실제 선봉에 선 3 보병사단의 경우 식수와 식량이 떨어지고 있으나 이라크군의 교란작전으로 물자보급은 신속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보급로를 확보하지 않고 중장비를 동원,300마일을 진격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작전이며 추가 병력이 증강될 때까지 공화국 수비대와의 일전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신문은 특히 공화국 수비대가 미군을 선제공격할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은 주력부대의 기력이 소진했다는 약점을 이라크가 알고 있다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mip@
  • 부시의 전쟁/커지는 反戰 목소리...세계 곳곳 전쟁 참상에 분노 폭발

    미·영 연합군의 바그다드로의 진격이 본격화되고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23일(이하 현지시간) 지구촌 곳곳에서 반전의 파고(波高)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포탄 파편과 피로 얼룩진 바그다드의 참상을 목격한 세계인들은 곳곳에서 전쟁의 참상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반전·반미를 토해냈다. ●이슬람권,“부시와 블레어는 ‘악의 축’” 파키스탄 동부 라호르에서는 어린이를 포함,20여만명의 시위대가 “악의 축은 부시와 블레어”라고 외치며 미·영 연합군의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미 대사관을 에워싸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를 불태우며 미국의 침공을 비난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미·영에게 죽음을”,“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고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는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장애인들이 붕대를 감은 이라크 어린이의 사진을 들고 의회까지 행진했다. ●이웃나라들,“우리는 후세인 포기 않는다”” 이웃 요르단에선 대학생 4000여명이 남부 마안에서 “우리는 후세인 대통령과 이라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미군과 미 대사를 요르단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터키에서는 미군에게 영공을 개방한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700여명의 시위대가 이스탄불 시내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1만 6000여명의 대학생이 3일째 반전집회를 이어간 이집트 카이로에선 이날까지 8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일부 아랍권 지도자들이 사태진화에 나서기도 했다.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전쟁을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해명했고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형제 이라크인의 시련에 고통과 고뇌를 느낀다.”며 시위대에게 호소했다. ●콜로세움엔 애도의 검은 깃발이 이탈리아에선 이라크 침공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검은색 깃발이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에 내걸린 가운데 평화를 염원하는 마라톤이 열렸다. 스페인 내전 당시 최대의 학살지이자 피카소의 벽화로 유명한 게르니카에서는 주민 100여명이 “더이상 게르니카는 없다.”라고 새겨진 깃발을 들고 연합군의 공격 중단을 외쳤다. 호주에서는 캔버라를 비롯,시드니와 애들레이드 등에서 4만여명의 시위대가 2000명의 병력을 연합군에 파견한 존 하워드 총리를 비난하며 파병된 병력의 조속한 귀국을 촉구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비롯,각 도시에서 2000여명이 평화행진을 벌였고 미국 워싱턴에서는 2차대전을 비롯,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했던 퇴역군인 수백명이 반전집회를 열였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
  • 75회 아카데미 영화제 / 反戰무드속 조심스러운 잔치,‘시카고’ 6개 부문 석권

    ‘전반부는 뮤지컬쇼,후반부는 반전(反戰)쇼.’ 이라크전의 와중에 열린 제75회 아카데미는 한판 ‘눈치작전’을 구사했다.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오스카상 시상식은 13개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뮤지컬 영화 ‘시카고’에 여우조연상 등 6개의 트로피를,2차대전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반전 영화 ‘피아니스트’에 감독상·남우주연상·각색상 등 3개의 트로피를 각각 안겼다.남녀주연상은 ‘피아니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와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에게 돌아갔다.10개 부문 후보작에 오른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은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하는 이변을 낳았다. ●스타들 의상 간소하고 차분 올해 아카데미가 전쟁을 의식한 흔적은 곳곳에서 여실했다.‘피아니스트’는 전쟁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겼다.잭 니콜슨,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 막강후보들을 제치고 할리우드의 신예나 다름없는 브로디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건 최대의 ‘뉴스’.보수적이기로 악명높은 아카데미가 폴란드 출신의폴란스키 감독에게 감독상을 넘긴 것도 파격적인 선택이다. 단골 사회자인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 특유의 재담에 간간이 폭소가 터질 뿐 무대는 시종 ‘표정관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45초 룰(수상소감 제한시간)이 중반까지 칼같이(?) 지켜졌을 정도.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의 대리전을 방불케 했던 레드 카펫 행사가 빠지면서 스타들의 복장도 간소하고 차분해졌다.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최고의 눈요깃거리인 여배우들의 보석치장은 거의 볼 수 없었다.불참 소문과는 달리,행사장에 나타난 니콜 키드먼과 메릴 스트립은 장식없는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여우주연 막강후보인 르네 젤위거는 빨간 드레스 차림에 액세서리는 일절 달지 않았다. ●쏟아진 반전 멘트들 행사장에서 ‘전쟁’이야기를 꺼내 반전 무드를 띄운 건 장편다큐멘터리상 수상자인 마이클 무어 감독.‘로저와 나’로 유명한 그는 트로피를 받아들고 “세계는 허구다.선거 결과도 허구이며,미국 대통령은 허구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에 우리를 보냈다.부시 대통령,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해 객석이 동조와 야유로 술렁거렸다. 이래저래 가장 돋보인 스타는 캐서린 제타 존스였다.줄리언 무어,메릴 스트립을 꺾고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그는 보름여 뒤 둘째아이를 낳을 만삭의 몸으로 ‘시카고’의 쇼무대를 재연해 환호를 한몸에 받았다.올해의 공로상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내 생에 최고의 해’ 등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피터 오툴에게 돌아갔다. 황수정 김소연기자 sjh@ ●부문별 수상자(작 ▲남우주연상 애드리언 브로디(피아니스트) ▲여우주연상 니콜 키드먼(디 아워스) ▲남우조연상 크리스 쿠퍼(어댑테이션) ▲여우조연상 캐서린 제타존스(시카고) ▲장편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독상 로만 폴란스키(피아니스트) ▲작품상 시카고 ▲시각효과상 반지의 제왕 ▲미술상 시카고 ▲단편애니메이션상 첩첩스 ▲단편영화상 디스 차밍 맨 ▲의상상 시카고 ▲분장상 프리다 ▲작곡상 프리다 ▲외국어영화상 노웨어 인 아프리카 ▲음향상 시카고 ▲음향편집상 반지의 제왕 ▲장편다큐멘터리상 볼링 포 콜럼바인▲단편다큐멘터리상 트윈 타워스 ▲촬영상 로드 투 퍼디션 ▲편집상 시카고 ▲주제가상 8마일 ▲각색상 피아니스트 ▲각본상 그녀에게 ◆남녀 주연상 브로디.키드먼 나치 치하,유령처럼 텅 빈 도시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피아니스트는 24일 그 고통의 보상을 받았다.쟁쟁한 대선배들을 제치고 ‘피아니스트’로 당당히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애드리언 브로디(33).그는 단연 가장 빛나는 스타였다. 결과가 발표되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못 다물던 그는 “소감을 미리 쓰면 상을 못 탄다기에 준비를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불면증에 시달린 나날이었지만 사랑과 격려가 충만했다.”고 회고했다. 마른 몸,긴 얼굴,처진 눈썹,매부리코를 가진 이 청년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 힘든 얼굴.지금까지 ‘신 레드 라인’ ‘섬머 오브 샘’ ‘빵과 장미’ 등에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그가 수상한 데는 물론 연기력이 뛰어났지만,아무래도 반전 여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이번 영화를 통해 전쟁이 가진 비인간적인 면을 깨달았다.하나님을 믿든 알라를 믿든 신의 가호가 있기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먼(36) 역시 수상대에 올라서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지난해 ‘물랑루즈’로 처음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그녀는,올해 매부리코를 붙이고 버지니아 울프로 열연한 영화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전초전 격인 골든글로브·베를린영화제 등의 여우주연상을 독식했었다. 불참설을 의식했는지 키드먼은 “사람들이 전쟁 시국에 왜 시상식에 참석하느냐고 묻는다.”면서 “예술이 중요하고 아카데미가 전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9·11테러 직후 많은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고,지금 이라크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오스카가 사랑한 두 배우는 한목소리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도쿄서민 애환 달래는 ‘골덴가이’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다.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몸을 휘감은 도쿄 최대의 환락가,신주쿠(新宿).그 신주쿠 구청 앞 골목에서 길을 잘못 들었나 싶더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2층짜리 낡은 목조건물군(群)이 눈앞에 나타난다.“도쿄에 이런 곳이 있었나.” 고층건물에 익숙해진 눈에는 너무나 낯선 키작은 건물이 빽빽하다.적어도 30년은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21세기에서 20세기로의 시간이동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색지대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도쿄시민들조차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골덴가이(ゴ-ルデン街)’.서울로 치면 옛 종로 뒷골목 분위기라고 할까.두 사람이 지나면 꽉 차는 좁디좁은 골목 양쪽에 가방 크기만한 조그만 간판들이 삐춤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 수상쩍기 짝이 없다.동행 없이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무섭다.”고 뒷걸음질칠 법하다.골덴가이 동쪽 끝 1층에 자리잡은 ‘돌꽃(石の花)’이라는 가게의 육중한 흙색 나무문을 열었다.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손님 4명이 카운터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테이블이 놓인 안쪽의 1평짜리 유일한 방에서는 5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드카를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섰다. “우리 가게는 신문기자들이 주고객이고 나머지가 샐러리맨들입니다.” 이곳 주인 모리타 고이치(51)는 가게라고 해봐야 7평도 채 안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29년6개월째 장사를 하고 있다며 웃는다. ●모르는 손님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모리타에게 이곳 골덴가이는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저 사람과 얘기하는 게 재미있고,함께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는 것이 즐거워 가게를 열었다. 이곳에 자리잡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밤 9시에 출근해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다른 일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는 모리타는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말 상대를 해주는 지금의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10년 단골인 기타오카 쓰네오(37)는 한 두달에 한 차례쯤 이곳을 찾는다.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그는 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한잔하며 지친 마음을 달랜다.“뭐랄까,탁 트인 공간보다 이런 좁은 공간에 오면 마음이 놓입니다.” 기타오카의 말처럼 결코 화려한 유흥가가 아닌 골덴가이의 매력은 혼자서나,혹은 동료들과 어울려 마음 편하게 마시고 얘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손님의 절반 이상이 ‘나 홀로’이다.특히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금세 어울려 세상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에”(기타오카) 이곳을 찾는 단골이 많다.두 사람 이상이 어울려야 술을 마시는 한국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인들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이곳 골덴가이에 와보면 여지없이 깨진다.절대음주량으로 치면 한국인에 다소 뒤질지 몰라도 음주시간으로 따지면 일본인이 앞서지 않을까 싶을 만큼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는 일본인들의 음주법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덴가이의 손님들 직업은 천차만별이다.신문·주간지·방송 같은 언론사 기자,프로듀서,정보 관계자(경찰),출판사 편집자,프리랜서,외국대사관 직원이 주류이다.굳이 이들의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정보’이다.공안관계의 경찰인 사토노 요시노리(35·가명)는 “정보 교환을 위해 골덴가이를 찾는 일이 가끔씩 있다.”고 말했다.특히 주간지 기자들에게는 골덴가이는 중요한 정보수집의 장소이자 기사거리를 찾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심야 플러스1’이라는 가게는 일본 모험소설가협회 회원들이 밤이 이슥해지면 ‘출근’하는 공식 사랑방이다.어떤 가게에서는 우익들이,어떤 가게에서는 좌익들이 모여 세상을 논하고 우익은 좌익을,좌익은 우익을 비판하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골덴가이가 생겨난 것은 2차대전 패전 후인 1940년대 말.신주쿠 역을 건설하면서 그곳에 있던 가게들이 한꺼번에 가부키초로 ‘집단이주’한 뒤로 개발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한때 250곳이던 크고 작은 점포들이 거품경제 붕괴를 거치고 100곳이나 줄어들었다가 최근 다시 늘어 190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다. ●60~70년대엔 ‘낭만의 거리'로 유명 어느 곳이나 가벼운 안주에 가볍게 마실 수 있다.점포의 대부분은 밤 9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연다.빨라야 밤 8시이다.밤 8시에 문을 열어봤자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밤 12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손님이 많다.”(모리타)고 한다.보통 새벽 4시면 문을 닫지만 손님에 따라서는 오전 7시쯤에서야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손님 4명이 들어가면 꽉차는 3평짜리 가게에서부터 커봐야 8평 정도인 이 곳 골덴가이는 1960∼70년대 연극,영화,문학,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낭만의 거리’로 사랑을 받았다.이곳의 매력은 시간의 흐름에도 모습을 바꾸지 않는 고집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60∼70년대 초반,경찰의 수사를 피해 이곳에 몸을 숨기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지금이야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운동세대들이 제도권에 진입해 기성세대가 되어 이곳을 찾으면서 활기를 더했다.이런 골덴가이이지만 일부 손님 사이에서는 불평도 없지 않다.프리랜서 기자인 나카야마 메구미(39·가명)는 “단골들끼리의 동류의식이 강해 처음 찾는 손님이라면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 가면 배타적 인상에 ‘서먹' 어떤 가게는 단골의 소개 없이 불쑥 찾아오는 ‘이치겐상(처음 온 손님)’을 사절하기도 한다.일본인들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가게 주인들로서는 어떤 손님인지 알 수 없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입소문이 퍼지고 복고 붐이 일면서 젊은이들도 꽤 찾는다.이곳의 임대도 한결 수월해져 80만엔(한화 800만원)만 가지면 보증금 없이 5평짜리 가게를 얻어 당장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그래서 대학생 몇 명이 돈을 추렴해 시작한 가게도 생겨나고 있으나 역시 골덴가이의 주류는 50∼60대 입담좋은 주인들과 30∼50대 고객들이다. 가게가 좁고 매상이 적은 만큼 종업원을 두는 가게는 없다.주인 혼자서 밤 9시부터 새벽 4∼5시까지 안주도 만들고 술도 따라낸다.“아무리 손님이 많아 북적거려도 점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 뿐더러,고용할 경우 채산도 맞지 않는다.”는 게 돌꽃의 주인 모리타의 설명. 도쿄에 간다면 골덴가이에 들러 생맥주 한 잔(700엔 정도) 놓고 가게주인이나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하며 ‘일본’과 만나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일 것 같다. marry01@ ◈‘골덴가이' 유일한 한국인업주 김용주씨 |도쿄 황성기특파원|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골덴가이에서 바 ‘파인트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주(金容珠·사진·53)씨. 파인트리는 그녀의 중년 인생이 시작된 출발점이다.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 1994년 2월이니 만 9년이 좀 넘었다.돈 한푼 없이 사진촬영을 배우러 온 도쿄에서 3년간을 방황하다 신주쿠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친언니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골덴가이에 한국인이 가게를 차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게다가 가게 주인이 한국사람을 싫어해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 기자의 명의를 빌려 가게를 얻어야만 했다.“몇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게 주인)가 집을 빌려준 뒤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반발도 했지만 곧 사이좋게 돼 돈이 필요할 때 이자없이 급전도 마련해주고 잘해줬다.”고 김씨는 말했다. 파인트리의 주 고객은 신문·주간지 기자이다.더러 기업홍보관계자,대학 교수,대사관 직원,경찰이 오기는 하지만 역시 오랜 단골은 언론인이 가장 많다.“여기를 찾은 손님들 명함만 5000장은 족히 될 것 같다.”고 할 만큼 발이 넓다. 지금이야 일본인 뺨칠 정도로 일본어가 능숙하지만 처음에는 말이 서툴러 애를 먹었다. 손님들과 얘기를 하다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한글로 적어서 집에 돌아가 사전을 뒤져 공부하곤 했다.호·불호가 뚜렷한 그녀는 싫은 손님은 내쫓을 만큼 기가 세다.그렇지만 일단 단골이 되면 내 식구처럼 따뜻이 받아준다.그녀의 호칭은 ‘욘상’이다.성이 아닌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용주의 용을 따 ‘용상’하던 것이 욘상이 돼버렸다. 그녀 가게는 골덴가이에서 비교적 넓은 편이다.카운터에 빽빽이 앉으면 8명,털썩 앉아야 하는 테이블 방에 다리를 모으고 앉으면 8명 정도 들어간다.그렇지만 그녀가 서서 일하는 주방을 빼면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불과 5평도 채 되지 않아 붐비는 날이면 옆자리 손님과 어깨를 붙이고 앉아야 할 정도로 비좁다. 낮과 밤을 거꾸로 하는 생활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다른 가게처럼 그녀 역시 밤 8시쯤 가게 문을 열고 새벽 4시쯤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면 동틀 무렵인 5시쯤이 된다. “9년 장사해 모은 돈은 한푼도 없지만 그래도 이 가게를 하면서 아이 둘을 후회없이 가르쳤다.”고 자랑한다.딸(26)은 일본의 사립명문 게이오대 문학부를 졸업했고,아들(23)은 홍익대 미대를 다니고 있다.
  • [씨줄날줄] 스탈린의 부활

    러시아의 볼고그라드는 볼가강변에 있는 도시다.2차세계대전 때 나치군이 볼고그라드를 침공했다.6개월간의 전투는 치열했다.소련의 붉은 군대는 1943년 2차대전 중 가장 중요한 전투 중의 하나인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다.스탈린은 전쟁 영웅이 됐다.볼고그라드는 스탈린의 이름을 따 스탈린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탈린그라드는 그러나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갔다.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자 그의 격하운동이 일어나며 스탈린그라드도 옛 이름인 볼고그라드로 바뀌었다.그런데 최근 볼고그라드를 다시 스탈린그라드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올해 사망 50주년을 맞아 스탈린이 ‘부활’하고 있다. 스탈린은 잔인한 독재자였다.그의 잔인함은 처칠 영국총리와의 모스크바 대화에서 잘 나타난다.처칠은 스탈린의 악명높은 대숙청과 학살에 대해 물었다.“전쟁이 어렵습니까,숙청이 어렵습니까?”스탈린이 대답했다.“숙청이 전쟁보다 어렵습니다.몇년이나 걸렸지요.1000만명쯤 죽었습니다.한 인간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통계상의 문제일 뿐이죠.” 스탈린 독재에 희생된 사람은 2000만명으로 추산된다.그러나 그의 잔혹한 만행에 대해서는 망각의 커튼이 내려지고 있다.스탈린을 2차대전의 영웅이나 국가질서를 확립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러시아인이 많아지고 있다.스탈린뿐만이 아니라 옛 소련의 부활을 꾀하는 움직임이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다.국방부는 군대기에 붉은 별을 다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옛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배경에는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과 현재 생활의 고달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개혁의 양지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즐기고 있지만 음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평등한 가난’을 그리워하고 있다. 스탈린의 고향인 그루지야 공화국(옛 소련땅)의 고리시(市)는 스탈린 사망 50주기인 5일 성대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스탈린을 홍보하여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공산주의자 스탈린이 자본주의적인 홍보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이념보다 삶이 더 중요한 탈이념시대에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창순 논설위원 cslee@
  • 유럽주둔 美軍 재배치 안보변화 대응·재정부담 줄이기

    |베를린 연합|유럽 주둔 미군의 대대적 재편은 옛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미국 정부 안팎에서 줄곧 거론돼 왔다.2001년 9·11 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의 안보개념과 재정적자 확대 등이 재편론을 가속했다.공식 발표만 없었을 뿐이지 재편의 방향과 윤곽도 사실상 그 동안 다양한 경로로 알려져 왔다. ●獨, 이라크전 반대와 무관 3일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관이 언론에 이같은 방침을 전격 공개한 이유는 미국이 독일 정부의 이라크 공격 반대에 대한 보복으로 주독 미군을 감축하려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부작용을 서둘러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유럽 주둔 미군 재편의 방향은 변화한 안보 개념과 상황에 걸맞은 미군의 임무변경과 지역적 재배치 그리고 미국의 부담 축소로 요약될 수 있다.이는 또 유럽과 여건이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거론의 배경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옛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유럽에서 2차대전 후 냉전구도는 이미 사라졌다.또 국가간 정규전에 못지않게 개인 또는조직에 의한 테러가 안보의 중요과제로 떠올랐다. 러시아와 벌이는 신경전이 상존하기는 하지만 미군과 나토의 동구 및 남유럽 확대,이슬람권 포위와 석유 확보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 가운데 하나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같은 맥락 이와 함께 재정적자로 허덕이는 미 행정부로선 과도한 군사비 지출부담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후 옛 소련권의 위협에 맞서 배치됐던 유럽 주둔 미군의 규모 축소는 진작부터 논의돼 왔다.냉전이 한창일 때 30만명에 달했던 유럽 주둔 미군 수는 현재 239개 기지,11만 900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3분의1로 줄어든 병력이 서유럽 외에 발칸반도에서 코소보까지 광대한 지역을 방어해야 한다.미국이 유럽 주둔군 규모를 축소 또는 현상유지하면서 새 ‘맹방’이 된 동유럽과 남유럽에 미군을 배치하려면 서유럽 주둔 병력을 빼낼 수밖에 없다.특히 8만명에 이르는 독일 주둔 미군이 가장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미군 사령관은 독일 주둔 미군은 안보상황에 비춰볼 때 규모가 크고 경비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 이주일의 아동도서/ 어머니의 감자밭,아이들의 숨겨진 삶

    ◆어머니의 감자밭 아니타 로벨 글·그림/장은수 옮김 비룡소 펴냄 “옛날옛날 동쪽나라와 서쪽나라가 있었는데…”로 운을 떼는 그림동화 ‘어머니의 감자밭’(아니타 로벨 글·그림,장은수 옮김,비룡소 펴냄)은 반전(反戰)이야기다.체험만큼 생생하고 절절한 텍스트가 또 있을까.2차대전의 와중에 독일 나치에 희생될 뻔했던 지은이는 유년의 혹독한 기억을 반전동화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쌈박질로 날을 지새우는 동쪽나라와 서쪽나라 사람들은 싸움을 멈춘 날에도 살벌한 모습으로 여가시간을 보낸다.칼을 벼리거나 대포알을 만들고 그도 아니면 군복의 단추를 달고.빨갛고 파란 색깔로 구분된 군복의 부대가 뒤엉켜 지옥 같은 전쟁을 벌이더니 얼마 안가 책은 정겨운 가족 이야기로 2막을 연다. 평온하기만 한 두 나라 사이의 작은 계곡.두 아들과 함께 감자밭을 일구고 사는 아주머니에게 전쟁이란 건 영원히 딴 나라 이야기일 것 같았는데,그러나…. 펜의 섬세한 먹선으로 채워진 그림에는 빨강과 파랑의 색대비가 강렬하다.담담한 먹선 사이로 전쟁의 황폐한이미지가 돋을새김된 듯하다. 전쟁이 멀쩡한 인간성을 얼마나 얄궂게 구겨놓을 수 있는지,동화는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든 두 형제의 이야기를 빌려 은유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형은 동쪽나라의 장군으로,동생은 서쪽나라의 사령관으로.피 튀기며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형제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끝내 군대를 이끌고 어머니의 감자밭을 찾는다. “용서하세요.” 슬픔에 잠겨 살던 고향의 어머니에게 형제가 나란히 용서를 비는 순간,어둡게 긴장했던 세상은 순식간에 화사한 평화를 되찾는다.칼과 훈장을 땅에 묻고 그 옛날처럼 사이좋게 감자밭을 일구는 형제의 모습 뒤로 뭉클한 감동이 솟구친다.5세 이상.8000원. 황수정기자 sjh@kdaily.com ◆아이들의 숨겨진 삶 마이클 톰슨 외 지음 세종서적 펴냄 때때로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세계 못지않게 복잡다단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또래 친구들에게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늘 긴장하고,별 것 아닌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아이들의 사회는 어른의 잣대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독특한 양상을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권위있는 아동심리학자인 마이클 톰슨을 비롯해 학교 상담교사,부모인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2년간 청소년·부모·교사와의 개별 인터뷰,세미나,토론회 등을 통해 아이들의 집단을 움직이는 ‘숨은 힘’의 실체를 밝히는 데 공을 들였다.열두살짜리 여자애들 사이에서 감도는 긴장감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서 출발해 또래집단에서 기쁨과 고통을 겪는 중학생,같은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두루 담았다. 아이들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이들 내부의 집단의 힘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부모와의 정상적 관계가 아이의 정상적 사회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강조하는 주제이다.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
  • 7000년 이라크유적 ‘風戰등화’

    *美 공격 임박… 세계 고고학계 ‘노심초사' “소재지 포격 말라… 도굴꾼 약탈 못하게” ‘전쟁으로부터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보호하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이뤄놓은 귀중한 고대 유적들이 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될 것에 대한 우려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들이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상대로 유물들의 가치를 알리는 노력을 전개하는 한편 전쟁의 포화와 혼란을 틈타 약탈을 자행할 도굴꾼들로부터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영토 전체가 유적지 “남부 이라크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구릉이 없다.구릉이나 야트막한 산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모래에 묻혀 있는 고대 유적지라고 보면 된다.” 이라크에서 오랜 발굴 경험을 가진 시카고대학 고고학과 맥과이어 깁슨 교수의 말이다.이처럼 이라크는 나라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나 다름없다. 이라크에는 인류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로 교과서에서 배운 그 유명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있다.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이집트문명이나 인더스문명보다 수백년 앞서 생긴 인류 최초의 문명이다.역사적으로 수메르와 아카드,아시리아,바빌로니아 제국 등이 현 이라크 영토에서 번성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시생활의 흔적을 비롯해 알파벳의 모태인 쐐기문자의 기원을 알려주는 유물 등 기원전 5000∼4000년의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는 지구상에 알려진 고대의 성 가운데 가장 크고 장대한 바빌론성(기원전 3600년) 등 유적지들이 수두룩하다.바그다드 남동쪽에 있는 고대 파르티아 왕국의 크테시폰궁 유적은 3세기쯤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원 후로 들어선 성경에 등장하는 유적지들도 있고 5∼6세기의 이슬람 유적지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류 문명의 기원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적지들은 이제 폭탄 한방과 함께 순식간에 모래 속에 파묻힐 위기에놓인 셈이다. ●폭탄보다 무서운 도굴꾼과 밀매상들 이라크에서 오래 활동한 고고학자들은 전쟁의 포화보다도 도굴꾼들의 약탈에 따른 유물 파손과 유적지의 훼손,국제적인 조직을 가진 골동품 거래상들의 횡포를 더 우려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제정된 이라크의 고대 유물 관련 법률은 골동품의 파괴나 유통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의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서는 골동품 약탈과 도굴이 횡행하고 있으며 세계 골동품 시장에는 이미 이라크에서 흘러나온 유물들로 넘쳐나고 있다.이라크는 유물들의 국외 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지만 막을 방법이 없어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 지키기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우루크,아수르,님루드 등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있는 유적지 발굴 현장들에서 작업하던 미국과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이미 수개월 전에 현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고고학자들은 연구 활동은 옆으로 제쳐둔 채 전쟁의 참화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하며 문화적 참화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 일환으로 몇몇 학자 대표들은 지난달 말 미 국무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을 만나 반드시 보존해야 할 중요한 유적지 목록을 전달하고 1954년 체결된 ‘무력 충돌시 문화유산의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헤이그협약은 전쟁시 군사시설이 배치된 곳을 제외하고는 문화 유적지를 직접 겨냥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이 협약에는 이라크를 비롯한 103국이 가입했지만 미국은 사인만 하고 비준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이행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학자들을 대표해 국방부를 찾았던 깁슨 교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은 사실상 영토 전체가 고고학 유적지이지만 전쟁으로 하나둘씩 파괴되고 있다.”면서 “정부와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파괴를 막아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고고학협회의 법률 고문으로 국방부와 전문가들간 회의에 참석했던 패티 걸슈텐블리트 박사는 “국방부 관료들은 문화·종교적 보물들의 가치에 대한전문가들의 의견이 국제적인 여론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적어도 전문가들이 제시한 정보와 문제점들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만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kdaily.com ■78년부터 바빌론성 대대적 복원 후세인 ‘옛영광 되살리기' 중단 위기 이라크는 1978년부터 국민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돌려주기 위해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바빌론을 다시 건설한다.’면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바빌론은 이중 성곽으로 돼 있으며 외곽 성벽은 양변이 1800m와 1300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이다.헤로도투스는 이중으로 된 바빌론 성벽은 네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양쪽에서 달리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넓었다고 적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거대한 바빌론성을 복원,바빌로니아의 영광을 재건하기 위해 수백만장의 벽돌을 구웠다.벽돌에는 ‘네부카드네자르왕의 바빌론이 후세인 시대에 재현되다.’라는 문구를 새겼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의 왕국이 들어선 것은 기원전 1830년경으로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이 바빌론시를 중심으로 고대 바빌로니아로 불리는 제1왕조를 세우면서부터다.수도 바빌론은 신 바빌로니아로 분류되는 시기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05∼562년)가 사상 최대의 성곽을 가진 도시로 건설하면서 그 세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후세인은 옛 바빌론에 있던 유적지들의 제모습을 찾는 작업도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옛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00개,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00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00개가 있었다.또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된 세미라미스 공중(空中)정원도 있었다.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건설한 공중정원은 실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 테라스에 흙을 담고 풀과 꽃,수목을 심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라크와 후세인의 운명이 풍전등화가 된 상태여서 옛 모습을 되찾는 작업도 중단이 불가피하게 됐다. 함혜리기자 ■반달리즘의 역사-5세기 반달족 로마·스페인 약탈 2차대전중 문화재 대량 파괴 최근 아프간 바미안 석불 훼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세계적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은 인류 역사의 영원한 오점이었다.문화재 파괴를 의미하는 ‘반달리즘(Vandalism)’도 서기 5세기에 만들어졌다.당시 흉노족의 침입을 받은 반달족은 로마와 스페인의 도시로 쳐들어가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 최근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문화재 파괴는 2년 전에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파괴였다.탈레반 군사정권이긴 했지만 자국 정부가 로켓포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자국의 문화유산을 파괴,세계를 경악시켰다.바미안 석불은 1500년 역사를 가진 대형 석불이었으며 이외에도 바미안의 고대 문화유물이 대부분 파괴됐다. 지난달에 태국과 캄보디아의 외교분쟁을 일으켰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도 대표적인 경우다.태국과 캄보디아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침략해왔다. 이어 15세기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침공으로 앙코르와트 사원은 400년간 역사에서 사라졌고 1861년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발굴,1970년대에 관광단지로 개발됐다.그러나 수많은 불상이 외국으로 유출됐고 가난에 시달리던 캄보디아 국민들이 사원의 일부를 떼다 파는 등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 불가능한 상태다. 문화재 파괴가 대규모로 일어난 때는 2차대전이다.독일 나치는 폴란드 침공시 그림과 조각품들을 파괴했고 프랑스에서 2만점 이상의 그림과 조각품들을 가져갔다.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를 침공,오벨리스크를 세 동강으로 나눠 운반한 뒤 로마 콜로세움 맞은 편 유엔 식량농업기구 앞에 세웠다.현재 두 나라간에 오벨리스크 반환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나치의 꼭두각시였던 프랑스 비시 정권은 1940∼1944년 유태인들로부터 문화재 10만여점을 약탈했다.러시아는 독일에서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 약 200만점을 약탈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도시 전체가 전화에휩싸인 경우도 있다.크로아티아의 중세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도시다.그러나 1991년 보스니아 내전 때 도시 건축물이 많이 훼손됐다. 이라크의 바그다드도 예외는 아니다.중세기 때 세워진 중요한 건축물이 10여개 있다.이중 서기 1230년에 세워진 아바시드궁은 이라크 국방부 청사 바로 뒤에 위치해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공습피해를 면치 못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폭풍의 한가운데/‘준비된 영웅’ 처칠의 젊은날

    나는 여러분께 피와 수고,눈물,그리고 땀밖에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영국을 구해낼 사명을 안고 총리직에 오른 윈스턴 처칠(1874∼1965)이 의회에서 한 이 연설은 역사에 길이 남는 명연설이 됐다.프랑스가 붕괴에 직면하자 그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V’사인으로 영국의 결전을 독려했으며,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협력을 강화했고,철저한 반공주의자임에도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자유진영의 승리를 위해 노력을 다했다.처칠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연합국의 승리를 이끈 전쟁영웅으로 기억된다.그러나 정치가·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노벨문학상수상자·화가로서도 처칠은 이름을 남겼다. ‘폭풍의 한가운데’(윈스턴 S 처칠 지음,조원영 옮김,아침이슬 펴냄)는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한 시대를 활보한 ‘거인’의 풍모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수상록이다.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기 전에 쓴 23편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1932년 영국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명문 말버러 공작 가문의 후손으로 옥스포드셔 블렌엄 궁에서 태어난 처칠은 아일랜드 총독이던 할아버지를 따라 더블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그 뒤 잉글랜드의 해로학교를 거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쿠바·인도 등지에서 복무했으며 종군기자로도 활약했다.이처럼 유서깊은 명문가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자신의 결점을 하나씩 고쳐나간 젊은 시절의 노력이 없었다면 처칠은 훗날 위대한 영국인으로 추앙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처칠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같은 역사·철학서를 탐독하며 격조 높은 연설 어법을 익혔다.말할 때 혀가 꼬부라지는 경향이 있어 말 수가 적었지만 그 결점을 고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즉석에서 말하는 것이 서툴러 연설 전에 원고를 미리 써서 암기했다.그의 훌륭한 연설들은 모두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처칠은 지도력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재치와 유머로도 유명하다.처칠이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위가 2차대전 때 가장 위대한 정치가가 누구냐고물으니까 “그야 당연히 무솔리니지.그자는 사위에게 총을 쏠 정도로 배짱이 있었던 사람이니까.”라고 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책의 첫 번째 글인 ‘너무나도 소중한 삶의 순간들’은 굴곡 많은 자신의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는 서장의 의미를 갖는다.처칠은 지나간 순간들을 회상하며 ‘내가 다시 산다면 선택은 달랐을 것인가.’란 질문을 거듭 던진다.남아프리카 전쟁 당시 우연히 루이스 보타(훗날 남아프리카 초대 총리가 돼 영국인과 보어인의 화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와 적으로 맞닥뜨렸던 일,해군장관으로 일할 때 소신을 갖고 추진했지만 실패로 끝난 갈리폴리 전투,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건 등을 예로 들며 다시 그런 상황이 닥쳐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밝힌다. ‘잊을 수 없는 만남’이란 글에선 일생을 충실한 토리당원으로 살았던 아버지 랜돌프 처칠 경을 비롯해 아일랜드 태생의 미국 정치인 버크 코크란,구식 재무관료의 전형인 프랜시스 모왓 경 등 여러 정치인과 행정관료들과의 만남을 얘기한다.거창한 결의나 의지,훌륭한 사람들의 가르침보다는 우연이나 스쳐지나간 사소한 사건들이 인간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삶의 불가사의’를 언급해 눈길을 끈다.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처칠은 이 책에서 정신을 맑게 해줄 취미 하나쯤은 가지라고 권고한다.모든 욕망과 잡념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붓 한 자루 들고 선 처칠의 모습에서 우리는 평범한 생활인의 기쁨을 확인할 수 있다.“나는 색깔에 대해 편견이 심한 사람이다.밝고 현란한 색을 보면 마음이 설레지만 어두운 갈색은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사양하고 싶은 색이다.나는 천국에 가면 첫 번째 백만 년의 대부분은 그림만 그리면서 보낼 작정이다.” 취미생활에 대해 처칠은 이렇게 말한다.“마흔이 넘어서까지 여가시간을 골프나 브리지게임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빈둥거린다는 것은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셰익스피어·엘리자베스 1세·뉴턴 등 쟁쟁한 역사 인물들을 제치고 지난해 BBC방송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자리에 오른 처칠.그의 젊은날의 기록은 자전적 회고와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한 편의 인생교과서다.처칠은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탔다. 1만 3900원. 김종면기자 jmkim@
  • 美·유럽 이라크전 갈등 언론들도 대리전 양상

    미국과 유럽간 이라크 공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유럽 언론들까지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 언론들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프랑스의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다.”는 등의 반프랑스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보도하고,유럽 언론들은 미국을 ‘전쟁광’으로 묘사하는 등 반미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뉴욕 포스트는 10일 2차대전 당시 숨진 10만여 미군의 유해가 안치된 프랑스 노르망디 미군 묘지에서 “미군들은 아돌프 히틀러라는 폭군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 오른다.프랑스의 엉덩이를 걷어차버리고 싶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앞서 월 스트리트 저널은 “프랑스가 식민지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군대를 파견할 때나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시위용 선박을 침몰시킬 때 국제사회의 여론에 신경을 썼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어판은 10일 독일인들의 절반 이상이 미국을 ‘전쟁광들의 나라’로 믿고 있다는 여론 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 신문은여론조사기관인 포르사 연구소가 최근 독일인 18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57% 이상이 ‘미국은 전쟁광들의 나라’라는데 동의한 반면,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평화유지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6%에 그쳤다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
  • 의회, 국가연합 창설법안 승인 유고연방 86년만에 역사속으로

    한때 가장 부유한 공산국가였으며 2차대전 후 주요 유혈 분쟁지였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86년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유고연방 상·하원은 4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연방을 해체하고 보다 느슨한 형태의 새로운 국가연합을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헌법안을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새 국가연합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불리게 된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유럽연합(EU)의 중재와 9개월간의 협상 끝에 지난 1월초 유고연방 해체와 새 헌법 등에 합의했다. 새 헌법에 따르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국가연합은 외교·국방·무역·인권 등을 담당할 합동 행정기구만으로 느슨하게 묶이며,독립성은 대폭 강화됐다. 양국은 각각 내각·의회를 구성하고 대통령도 선출하며,3년 후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완전 분리된다.새 국가연합의 수도는 당분간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두며 일부 합동 행정기구는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카에 두게 된다. 유고연방은 원래 지난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들에 의해 결성됐으며,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름을 바꿨다.2차 세계대전 후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연방으로 거듭나 40년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통치를 받았다. 티토 공산정권은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당시 유고연방은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80년 티토 사망 후 연방은 와해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90년대를 거치면서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및 인종갈등으로 인한 내전으로 4개 공화국이 떨어져 나갔다. 92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2개 공화국만으로 신 유고연방이 결성됐다. 박상숙기자 alex@
  • 윤곽드러나는 대북정책/한반도·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상

    대북 특사 파견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의 정동영(鄭東泳) 의원의 연설,임채정(林采正) 인수위원장의 한반도 번영 ‘6대 과제’ 언급 등 노무현 신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북한의 핵문제가 해소된다면,‘동북아 경제중심국가’개념틀 속에 북한에 대규모 원조를 실시,북한 경제를 재건한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내적 인프라 구축작업으로 한반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들어 낸다는 구상이다.남북한의 경제·통신·교통·문화 네트워크(網)를 구축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연착륙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북한판 마셜플랜 노 당선자의 외교안보특보 역할을 해온 유재건(柳在乾) 의원 등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밝혀온 개념이다.2차대전 중 미국이 소련의 공산화 공세에 대응,유럽에 대규모 경제원조를 했듯,한반도 주변국이 평화협력체를 만들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 도와준다는 생각이다.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협력 방안과,현재 노 당선자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프로젝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맥을 같이하는 구상이라는 게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이다.북한에 대해 세계은행(IBRD)의 차관제공을 추진하며,이를 위해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질 수 있도록 하는 등 국제금융기구 가입 여건을 마련할 방침이다.물론 북한의 자세 변화가 선행돼야 하는 것으로,이번 특사 방북에서 이같은 안을 김정일위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반도 경제공동체망(網) 현 정부가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새 정부는 한반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 사업 등을 통해 북한을 한반도 경제공동체,나아가 동북아 경제협력 지도에 편입시킨다는 계획이다.북한의 낙후된 통신·정보망 재건도 향후 망구축 사업의 주력분야다. 통일부 관계자는 “망으로 확고하게 연결된 이상,남북관계는 안보문제를 포함,뒤로 물러설 수 없는 안정적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렇게 되면,대북 경협사업도 북한에 대한 퍼주기가 아니라 “장기적 투자”개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것이다. ●대북 특사의 메시지 이같은 대북 정책을 설명하는 한편,그 전제인 북한 핵문제 해결에 집중,빅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진정한 ‘남북공조’와 북·미 직접 협상 여지가 줄어드는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막기 위해서,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고 이를 검증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한 만큼 실천적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분계선 통과 문제와 관련,북측의 ‘정치적 결단’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한 관계자는 “신 정부의 구상과 관련한 ‘빅딜’의 결과는 특사 방북 후 발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보물 추적자/전설속에 묻힌 보물 탐사

    히틀러 금괴 지금은 어디있을까 흥미진진 추적과정 엮어 독일 전설 속의 용사 하겐이 라인강에 던졌다는 니벨룽겐의 보물은 어쩌면 아직도 차가운 강바닥 어딘가에 묻혀 있지 않을까.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감쪽같이 사라진 히틀러의 제국은행 금괴는 지금쯤 어디서 잠자고 있을까. 쉽게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흥미진진한 상상이다.‘보물’이란 단어가 내뿜는 낭만적 매력을 엄연한 사실에 근거해 재구성한 책이 나왔다. 독일 공영방송 체데에프(ZDF)의 편집자 겸 작가인 볼프강 에베르트가 엮은 ‘보물 추적자’(정초일 옮김,푸른숲 펴냄).전설이 된 보물의 행방을 끈질기게 쫓으며 환희와 좌절을 거듭한 이들의 모험담이다. 보물 추적가들의 탐사대상이 된 테마는 4가지.러시아 고고학자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황금유물,유럽인에게 낭만의 탐험지로 인식된 실크로드,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행방,2차대전 때 없어진 히틀러 제국은행의 보물 이야기 등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의 면면도 다양하다.고고학자,역사학자,예술품 약탈자,보물 사냥꾼.학문적 성과를 목표로 출발하건 일확천금을 노리건,책속의 보물찾기는 역사교양서의 충실한 소재로 탈바꿈했다. 때로는 르포처럼,때로는 역사해설서처럼 행간행간에서 입체감을 살리는 기술은 책의 특장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보물탐사 여정을 엮은 1장 ‘옥수스강의 무덤 발굴자들’편.고대에 ‘황금의 땅’으로 통한 북아프가니스탄 박트리아의 유적탐사 과정을 일지처럼 생생히 재현한다. 1978년 봄,‘황금의 언덕’이라 불리는 박트리아 지역의 틸리야테페.굴착기 밑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164점의 금박조각에서 탐사팀은 그곳이 2000년 전의 보물매립지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보물탐사는 기대 밖의 큰 성과를 거뒀다.몇몇 보물이,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에 있는 스키타이 보물들과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시베리아의 보물들이 고대 박트리아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을 확인한 것. 진지한 역사서로서의 기능도 톡톡히 한다.‘황금의 언덕’이 탄생하기까지의배경을 설명하고자 기원 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되짚어 보인다. 잔재미를 주는 읽을거리도 갈피갈피에 놓였다.‘피렌체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이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종말을 맞은 징크스,1985년 발견된 동인도 무역선과 1999년 인양된 중국 정크선의 보물이 수십·수백억원에 팔려나간 사연 등은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 같은 스릴을 선사한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
  • [사설]기만적인 日총리의 神社 참배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4일 2차대전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한 것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기만하는 태도다.고이즈미 총리는 “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참배한다.”고 밝혔지만 이곳이 ‘일본 군국주의와 주변국 침탈’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중성을 보여준다.더욱이 고이즈미 총리는 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벌써 세번씩이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에서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그는 취임초 “힘들 때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생각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 숨은 의도도 문제지만,그 시기가 매우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지금 한반도는 북한핵 문제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한국과 중국은 정권교체기이기도 하다.북한핵 문제는 한·미·일 공조체제는 물론 중국,러시아의 협조도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 시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북핵 공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를 참배의 호재로 활용하는 듯한인상을 준다.또 일본이 이라크 주변해역에 이지스함을 파견한 것이나,이시바 시게루 방위청장관의 “미사일방어(MD)체계의 개발과 배치를 검토하겠다.”는 발언 등을 미루어 볼 때 군사대국화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이즈미 총리는 속보이는 참배에 대해 사과하고,약속대로 ‘대체 위령시설’ 건설 등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유감을 표시했고,김대중 대통령은 15일 방한한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과의 면담도 취소했다.중국의 반발로 5월초 예정된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방문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한국 정부나 중국은 이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를 면담 취소,일정 연기 등 일시적 대증요법보다는 보다 강도 높은 외교적 불쾌감을 표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고이즈미, 야스쿠니 전격 참배

    |도쿄 황성기·베이징 오일만 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4일 2차대전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2001년 8월,2002년 4월에 이어 세번째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패전기념일(8월15일)을 피하고 오는 20일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점 등을 고려,이날 참배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참배 직전 기자들에게 “정월도 됐고 새로운 기분으로 평화를 되새기고 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참배한다.”고 밝혔다. 중국정부는 이날 장치웨(章啓月)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착오적 행동은 중·일 관계 기초와 광대한 중국 인민의 감정을 크게 해치는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marry01@
  • [노무현시대의 개혁-재벌] ②뿌리깊은 대물림이 문제

    “재벌이 없으면 우리경제가 어떻게 버티겠나.규제 일변도로 가서는 안된다.출자총액 제한같은 제도는 없애는 게 좋다.그러나 한가지는 용납 안된다.자녀들에게 나쁜 방법으로 재산을 물려주려는 행태다.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재벌들은 영원히 ‘개혁대상’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경제부처 고위관료) 재벌의 공과(功過)를 따질 때,‘부(富)의 대물림’은 부정적인 항목의 첫머리에 항상 오른다.재벌시스템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재벌들이 보이는 잘못된 행태에 대한 반증이다. ●재벌들의 편법상속 실태 재벌들의 재산상속은 늘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법에 규정되어있지 않은’절세 방법을 이용한 것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회계사와 변호사 등 전문가를 동원해 법의 허점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과거에는 주식 저가매각 같은 단순한 기법이 많이 이용됐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채권자에게 일정기간이 지난뒤 특정가격에 신주 인수 권리를 부여한 사채) 같은 신종채권이 자주 등장한다.비상장회사와 상장회사를 합병하면서 비상장회사의 보유지분을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는 수법도 심심찮게 쓰인다.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자녀들인 이재용(李在鎔)씨 등은 99년 삼성SDS로부터 초저가에 BW를 매입한 뒤 지난해 2월 신주인수권을 행사,수천억원대의 평가차익을 냈다.LG는 99년 계열사를 통해 구본무(具本茂) 회장 일가에게 주식을 싸게 팔아넘기는 수법을 썼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지난해 현대모비스와 본텍(옛 기아전자)의 합병을 통해 정몽구(鄭夢九)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鄭義宣) 부사장의 지분을 확대하려다 여론의 집중 포화와 함께 주가가 급락하면서 이 계획을 백지화했다. 두산도 99년 발행한 BW와 관련,편법상속 의혹을 받고 있다.동부는 최대주주인 김준기(金俊起) 회장이 지난해 10월 보유 지분의 일부를 동부문화재단에 출연,2대주주인 김남호(14.6%)씨를 최대 주주로 올려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다양하게 ‘사전상속’ 성격의 증여가 이뤄지다보니 오너들의 사망후 상속세 납부액은 크지 않다.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나 SK 최종현(崔鍾賢) 회장이 사망한 후에도 ‘정당한 상속' 에 대한 시비가 불거졌다. ●조세제도와 금융시스템 선진화가 해법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정부는 상속·증여세의 과세 그물망을 촘촘하게 엮는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강력히 추진중이다.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14가지의 의제(擬制) 사례를 예시하고 여기에 들어맞거나 유사한 경우에만 세금을 물리고 있어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그러나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어 최종 입법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편법을 이용해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챙긴 데 대한 책임과 비난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참여연대 세제개혁팀 윤종훈(尹鍾薰·회계사) 위원은 “재벌 일가가 편법으로 거액의 부를 얻는 것은 계열사로 들어갈 돈을 오너의 호주머니로 낚아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해당 회사의 채권자나 소액주주들은 물론,회사이익 감소로 법인세수가 줄어들어 나라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세금 문제로만 다뤄서는 불로소득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는 지적이다.이와 관련,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부당하게 증식한 재산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거래였을 때의 가치로 환산해 세금을 매기는 ‘부당행위 계산의 부인(否認)’ 규정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스템의 선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조세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일정액수 이상은 모두 실명으로 거래하고 통보하게 돼 있는 금융실명제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차명계좌 등을 활용한 편법 상속·증여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진단한 뒤 “금융실명제법은 물론 자금세탁방지법 등 금융투명성의 확보가 세제개선에 버금가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 전광삼기자 windsea@kdaily.com ◆富 대물림 심리 최근 들어 재벌세습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새삼 높아지고 있다.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홈페이지에는 “노무현개혁의 성패는 족벌개혁에 있다.”-정책위원,“모그룹 셋째딸 대학생이 870억원 재산상속했다.”-재벌개혁,“재벌개혁의 창에 찔린 타워팰리스”-김태환 등 14일 하루동안만 해도 재벌의 부세습에 대한 수백편의 글이 쏟아졌다.노 당선자는 “한 두사람의 독단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기업이 움직이는 재벌세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다. ●부의 세습은 왜 이루어지나 우리나라에는 ‘복(福)신앙’이 있다.기독교신자나 불교도들은 교회나 절에 가서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가게 해달라기보다 복을 많이 줘 우리집,가족이 잘되기를 빈다.부가 아들,손자에게로 이어지는 것은 이러한 심리구조와 연관이 있다.나에게 복을 많이 달라는 것은 주위,나아가 사회전체로 시각을 넓히는 것을 제약한다.재산의 사회환원,기증 등의 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신경정신과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유한한 삶을 돈을 통해 영속시키려는 본능과 자식에게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유전적 무의식’ 때문에 부의 세습이 생겨나고 있다.”며 심리적 요인을 꼽았다. 또 다른 정신분석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유독 부의 세습이 많은 것은 ▲곡간에 곡식을 잔뜩 채워야 마음이 놓이는 농경문화적 요인과 ▲일제시대와 6·25전쟁,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수탈을 많이 당해 반사적으로 생겨난 ‘정신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도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다.권영준 경희대교수(경실련정책협의회의장)는 “우리나라의 경우 과세방법이 법률적 편의주의적이다보니 신상품과 파생되는 금융상품 등으로 생겨나는 탈법·불법적인 부(富)를 차단하지 못하면서 부의 세습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만우 사회학박사(국회도서관연구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신분세습을 유지하려는 구조적 측면과 지나친 온정주의(Paternalism) 등에서도 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 외국의 경우는 미국의 대기업총수들은 기업경영을 자식에게 결코 물려주지 않는다.이들은 부자란 ‘사회적 재산의 관리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자본주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일본의 경우도 2차대전 직후의 재벌해체를 통해 부의 세습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일거에 해결했다.가족의 기업지배가 일부 남아 있는 유럽의 경우도 소유 지배와 경영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전문가들은 재벌은 영문자로도 ‘Chaebol’일 정도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업형태로 단정짓고 있다. 김문기자 km@
  • 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안팎/北核틈타 韓·中반발 희석

    |도쿄 황성기특파원|고이즈미 총리의 14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북핵 위기로 어수선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외의 맹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참배 직후 즉각 일본 대사(대리)를 불러 강도높게 항의한 것은 이런 점을 반증한다.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국이 특사를 주고받는 등 외교적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배신감은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중국의 반발을 희석시키려는 목적 아래 두 나라 모두 정권교체기에 있는 시기를 택한 것이 오히려 반발을 부채질한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의 경우 15일의 가와구치 요리코 외상의 방한과 자신의 노무현 차기 대통령의 취임식(2월25일) 참석을 통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점 외에도 고이즈미 총리가 이 시기에 참배한 것은 국내적 상황도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침체된 정권 지지율을 끌어 올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13일 교도(共同)통신 조사(54.6%)에서는 다소 올랐지만 대부분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정권 지지율은 내리막이다. 지난 연말 아사히(朝日)신문 조사(12월16일)에서는 11%포인트 하락을 기록하기도 했다.지지율 유지를 위한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참배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 해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정기국회가 끝나는 6월 중의원 해산에 대비해 미리 참배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울질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국내외 논란은 거세질 것 같다. 무엇보다 2차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를 총리가 거듭 공식참배한 점이다.중국은 지난해 4월 참배 이후 일본 방위청장관의 방중을 거부했는가 하면 중·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인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문조차 거부했다. 일본의 한 중국 외교소식통은 “중국에 막 새 지도부가 들어선 이 시기에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뤄져 반발이 지난해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중은 물론 중국 고속철의 신칸센 채택 여부도 불투명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가 불러 일으키는 국내외적 반발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참배 후 “대체 위령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유야무야된 상태이다. 관방장관 자문기구인 ‘추도·평화기원 시설 간담회’는 지난 연말 국립 무종교 시설의 건설을 제안했으나 자민당 내 보수파들의 반대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11월18일 “(새 시설이 생겨도)야스쿠니에 대체할 시설은 아니며 야스쿠니는 야스쿠니”라며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는 발언을 한 바 있다. marry01@
  • [Look!아시아]1부. 新장보고 루트 르포(2)무너져간 10년, 일본

    “낡은 가치관·문화 “부실채권·디플레 근본적 개선 시급” 악순환 해결못해” |도쿄 황성기특파원|상실,좌절,불황,구조조정.‘잃어버린 10년’을 거친 일본은 지금 나락에서 새로운 길을 암중모색하고 있다.그러나 “바닥이라 생각했더니 다시 바닥이 보인다.”는 말처럼 일본발 공황의 우려 속에 새해를 맞은 일본,일본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그러나 거듭 태어나기 위한 붕괴는 필요하고,참아야 한다는 일본인이 의외로 많다.사사키 다케시 도쿄대 총장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돌아간다고 해도 사회가 상당히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붕괴를 딛고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몸부림이 한창이다. 무엇이 무너지고 있고 무너질 것인가.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종래의 생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정치,경제,사회가 됐다.” 오는 14일 관직을 떠나는 무토 도시로 재무성 차관의 퇴임변이다. “잃어버린 10년이 끝나고 붕괴의 10년이 시작됐다.길면 20년도 지속될 수 있다.”(나카모리 다카즈 데이코쿠 데이터뱅크 과장) “부실채권과 디플레이션의 두 가지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바야시 세이치로 경제산업연구소 연구원)일본병으로 집약되는 부실채권(42조엔·정부 추산)에 세계적인 디플레가 겹친 일본 경제는 최악의 위기다. “지역 디플레이션이 심각하다.지방에서부터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모래성 가장자리를 파내면 전체가 무너지듯 지금 일본 경제가 그런 과정이다.”(가네코 마사루 게이오대 교수) 지방이 위기다.우쓰노미야,도치기 같은 수도권의 상점가는 밤만 되면 칠흑처럼 변한다.수도권뿐 아니다.말라들어가는 지방경제는 일본 산업시스템이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져가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지방 붕괴의 물결이 곧 도쿄를 덮칠 것이라는 데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기업 윤리도 바닥이다.유키지루시의 쇠고기 위장사건(2002년 1월),미쓰이물산의 입찰 방해사건(2002년 7월),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장해은폐사건(2002년 9월).과거 기업 비리가 금권형 정계 유착이었다면 최근의 비리는 이익만 올리면 된다는 모럴헤저드의 ‘한탕주의형’으로 둔갑한 점이 특징이다. 명문 기업들의 이런 추악한 비리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없애야 했을 사키오쿠리(유보),가쿠시(은폐) 같은 일본적 문화가 한꺼번에 터진 것”(나카모리 과장)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10년’이 일본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그들 사회를 지탱해 온 시스템 자체를 뿌리부터 바꾸는 계기를 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종신고용,연공서열의 일본적 경영 시스템과 성과주의,연봉제의 미국식 시스템 중 “어느 쪽이 좋으냐.”는 비교우위 논쟁도 종결되어 가고 있다.“일본형 시스템이라도 합리성이 있으면 살아남는다.”(요네쿠라 세이치로 히토쓰바시대학 이노베이션연구센터 교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신 일본형 시스템’을 내건 캐논의 성공은 일본이 재생할 길로 받아들여진다.올해로 10년을 맞은 일본 프로축구 J리그.1위든 꼴찌든 구단에 돌아가는 방영권,스폰서료는 똑같다.비자본주의적인 ‘호송선단식’ 경영 덕분에 그동안 어느 구단이건 생존은 가능했다.그러나 구단간 실력차는 벌어졌다.실력이 강한 구단일수록 ‘파이의 동일배분’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J리그의 확대판인 일본은 적자생존 시스템을 요구받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일본을 이끌어갈 새 시스템,‘미래 일본국(日本國)’의 비전이 뚜렷한 모습으로 떠오른 단계는 아니다.인구 1억 2600만명,세계경제 2위의 ‘공룡’ 일본이 어떻게 새 가치관,문화,사고방식을 만들어갈 것인가.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인지,모두 불투명하다.“윤리보다는 조직의 관례나 관행을 우선하는 일본 사회에서 인정의 굴레를 끊고 문화 전체를 바꾸는 데 10년으로는 무리다.”(니와 우이치로 이토추상사 사장) 붕괴는 곧 재생의 출발점이다.“2류 국가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는 30대 정치가의 목표는 아직도 불투명한 일본의 미래상을 방증한다. “상황은 낙관할 수 없고”(요네쿠라 교수) 분명 일본은 침체를 거듭하고 있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관론이 지나치다.세계 유수의 우수한 노동력,사회자본을 활용하면 계속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닛산(日産)을 3년 만에 재기시켜 세계를 놀라게 한 카를로스 곤 사장의 격려이다.비록 좌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붕괴의 출발점에서 정확한 좌표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곤 사장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격려는 단순한 격려만은 아닌 듯하다. marry01@kdaily.com ◆요네쿠라 교수가 말하는 日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은 ‘유데가에루’(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다.가마에서 놀라 뛰쳐나오도록 뜨거운 물을 부을 시점이다.” 요네쿠라 세이치로(사진)교수의 ‘진단’이다.처방은 “강력한 충격”이다.19세 중반의 개항,1929년의 대공황,1945년의 2차대전 패전,1973년의 오일쇼크 같은 외부 충격을 딛고 일본은 비상했다.“지금 외부 충격을 기대할 수 없다.내부 충격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어떤 충격인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나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 같은 강력한 리더십의 정치가가 나서지 않는다면,내부로부터의 충격 네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닛케이 평균주가 6000엔 붕괴,둘째 대량도산에 의한 실업률10%대 진입,셋째 땅값 20% 이상 하락이다.넷째가 국채 폭락이다.한국이 V자형 회복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충격에 하드랜딩(경착륙)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형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은행의 예를 들어보자.아직도 많은 은행은 은행업이 접객업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줄까,손님과 술 한 잔,가라오케에 가서 사이를 잘 유지하는 게 업무이다.그런 것으로는 이제 이익을 낼 수 없다. 1980엔짜리 점퍼를 내놓아 대히트시킨 유니크로는 지난해 고전했다.스타벅스도 적자에 빠졌다.시장도 기술도 급변한다.바이오 시장 주기는 불과 3개월이다.느긋하게 생각하는 일본형 경영이 맞지 않다. ●일본형 경영이 나름대로 유용성은 있을 텐데.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성장을 지향한다든가,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팀 워크가 강한 점은 살릴 만하다.실리콘 밸리가 그렇지만 어떤 하이테크 기업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본형 시스템은 천연기념물이 아니다.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다.합리성이 있으면 살아남을 것이고바꿔야 할 곳은 변해 갈 것이다.히타치(日立) 같은 곳에서 왜 냉장고를 만드는지 모르겠다.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에게 냉장고,에어컨은 코딱지 같은 것이었다. 냉장고를 중국에 팔아치워 중국도 강해지고 미국도 강해지는 그런 국경을 초월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그렇게 해서 미국은 소생했다. ●일본의 가능성은. 시장을 만들고 창조성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가능하다.게임 소프트라든가 일본 만화는 재미있다. 미국에서도 ‘소년 점프’는 품절이다.인터넷 시장 ‘라쿠텐(樂天)’은 좋은 예이다.인터넷상에서 시골의 계란이 날개돋힌 듯 팔린다.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많은 어린이들에게 사료부터 잘 관리된 계란이 필요하다.보통 것보다 5배,10배 비싸도 예약이 쇄도한다.좋은 상품을 만들어 인터넷을 이용하면 단 하루 만에 국제적인 브랜드가 생겨날 수 있다.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창조적이다.할 수 있다. ●일본의 재기는 가능한가. 새 기업을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앞으로 실업자가 쏟아질 것이다.지방 분산이 필요하다.아시아적 현상으로 좋지 않은 것은 서울,도쿄,방콕 모두 수도에 집중돼 있다.미국은 핵공격에 대비해 분산하고 있다. 금융은 뉴욕,정치는 워싱턴,학문은 보스턴·하버드,정보기술(IT)은 샌프란시스코,영화는 로스앤젤레스,자동차는 디트로이트 이런 식이다.분산하면 호텔이 생기고 서비스업이 생겨난다. 택배회사 ‘검은고양이 야마토’는 1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도요타는 6만 3000명이다.서비스산업과 제조업 어느 쪽이 고용을 흡수하고 있는가.그렇게 고용을 만들어 가면 좋다.오사카,후쿠오카 같은 지방을 소중히 해야 한다.그러나 상황은 낙관할 수 없다. ◆요네쿠라 교수는 1953년 도쿄 출생.히토쓰바시(一橋)대를 거쳐 미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1995년부터 히토쓰바시대 교수를 하고 있다. ‘경영혁명의 구조’,‘네오 IT혁명’ 등 왕성한 저술활동도 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그의 저서가 여러 권 번역돼 나왔다.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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