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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의 섬 사이판 & 로타

    서태평양의 미국령 두 섬 사이판과 로타의 최대 매력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때묻지 않은 트로피컬 휴양지라는 점이다.그래서 대단한 볼거리나 다양한 풍물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하기 일쑤다.그러나 바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느림의 미덕을 온몸으로 체험하기엔 더이상 좋은 곳을 찾기도 어렵다. 사이판엔 올 들어 한국 여행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해외여행 자유화 초기 한때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다가,‘휴양 여행’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외면받던 것이,웰빙 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때늦은 폭설,그리고 기나긴 추위로 지친 몸을 따뜻한 남국의 섬에서 녹여봄은 어떨지.사이판과 로타섬을 다녀왔다. ●사이판 사이판은 서태평양 한복판에 위치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도이다.남북으로 21㎞,동서로는 8.8㎞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으로,섬에서 가장 높은 타포차우산에 오르면 사방의 해안이 손금보듯 명확하게 보일 정도.사이판에선 최근 산호섬인 마나가하섬이 가장 인기가 있다.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불과 2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미니섬.사이판의 마이크로비치 끝 선착장에서 배를 타니 20여분 만에 섬에 닿는다. 바닷물은 꼭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가슴 정도의 얕은 물속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떼지어 헤엄쳐 다닌다.겁없는 놈들은 다리를 톡톡 쪼아대기도 하는데,간혹 팔뚝 굵기의 물고기가 쪼아대면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고기들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스노클링을 이용해야 한다.물안경과 호스를 연결한 스노클을 쓰고,물갈퀴를 신으면 준비 끝이다.대여료는 10달러 정도.좀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된다.요금은 어른 100달러,아이 80달러.이밖에 스피드보트에 줄을 매고 낙하산을 즐기는 패러세일링,제트스키 등도 즐길 수 있다.꼭 마나가하섬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사이판엔 때묻지 않는 비치가 즐비하다. 특히 사이판의 유흥가인 가라판에서 무초곶까지 눈부신 백사가 깔려 있다.하루에도 몇번씩 바다 색깔이 바뀌며,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이곳에선 특히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배를 타고 나가 50m 정도의 깊이까지 낚싯줄을 내려 3∼20㎏의 씨알 굵은 물고기들을 낚아올린다.요금 60달러. 사이판에 처음 왔다면 섬을 한 바퀴 돌며 사이판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해보자.먼저 섬 중앙의 해발 473m의 타포우차산에 올랐다.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곳.‘사이판이 이 정도로 작을 줄이야.’란 느낌이 들 정도로 섬 선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만세절벽,자살절벽도 가볼 만하다.모두 일본인들의 한이 어린 곳이다.만세절벽은 2차대전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7월 일본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던 곳.하지만 공격에 실패한 일본인 수천명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 푸른 바다속으로 투신 자살한 곳이다.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짙은 코발트 빛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풍광이 장관이다. 해발 249m의 마피산 산정의 서쪽 절벽인 자살절벽은 1944년 미국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다. 사이판 북동쪽의 새섬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섬에는 들어갈 수 없고 건너편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는데,석회암 섬과 연둣빛 바다,섬을 뒤덮은 새가 어우러져 환상적 그림을 그려낸다.이밖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최후 사령부가 있던 ‘라스트 커맨드 포스트’,일본 통치 시대부터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유흥가 가라판도 들러볼 만하다. ●로타섬 로타는 사이판과 괌 사이에 있는 면적 125㎢의 작은 섬이다.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35분 거리에 있으며,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외부 차만 보면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할 정도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있다. 로타섬에선 북부해안의 스위밍홀(Swimming Hole)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로타 북부 해안의 산호초 안쪽의 천연 수영장이다.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갯바위와 산호초가 만든 지름 20여m의 공간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아늑한 천연풀을 만들어준다.물에 뛰어들면 ‘언제 다시 이런 곳에서 헤엄을 쳐보나.’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떠나기가 싫은 곳이다. 해수욕이나 해양레포츠를 즐기기엔 섬 남쪽의 테테토 비치가 좋다.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하다.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가면 손바닥 크기에서 아이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반긴다. 로타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조류보호구역이다.수백m 높이의 벼랑 아래 펼쳐진 숲에 붉은발가마우지,하얀꼬리열대새 등 수십종의 새들이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섬 서쪽엔 유일한 마을인 송송마을이 자리하고 있다.마을뒤 송송전망대에 서면 마을과 함께 두겹의 케이크처럼 생겨 ‘웨딩케이크산’으로 불리는 타이핑고트산,그 뒤로 산호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이판,로타(북마리아나 제도) 글 임창용기자 sdragon@ ●항공편 및 교통 매일 오후 8시20분 아시아나항공(1588-8000)이 인천발 사이판행 비행기를 띄운다.4시간 소요.사이판에서 로타까지는 얼라이언스항공이 운영하는 30인승 세스나기를 이용해야 한다.35분 소요. 사이판에선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싸면서 편리하다.주요 리조트를 연결하는 PDI셔틀버스를 타면 사이판의 중심 도로인 비치로드를 중심으로 주요 호텔과 쇼핑센터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다.번화가인 가라판에 가려면 시내 면세점인 DFS갤러리아가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대부분의 호텔을 경유한다.택시는 호텔 프런트에서 불러 이용할 수 있다.기본요금은 1달러50센트지만,2분마다 32센트가 가산돼 가까운 거리라도 금방 10달러를 넘어가기 쉽다.로타섬엔 택시가 없으므로 개인 여행자의 경우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야 한다. ●렌터카 렌터카는 한국 면허증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임차료는 차종에 따라 보험료 포함 50∼90달러.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지렌트카’(233-2000) 등 10여개의 렌터카 업체가 있다.섬이 크지 않으므로 스쿠터를 빌려서 타도 좋다.16세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면 면허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배우고 탈 수 있다.가라판 시내에서 한국인이 유일하게 ‘아시아스쿠터’(233-1114)를 운영한다.대여료는 1일 25달러. ●호텔 사이판의 리조트 호텔은 대부분 섬 북부나 가라판 등 해안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PIC사이판,하얏트리젠시사이판 등 특급 리조트 호텔은 숙박비가 170∼200달러,일급 호텔은 100∼180달러로 비싼 편이다.비용을 아끼려면 사이판월드리조트 등 60∼99달러인 중급호텔을 이용하면 된다.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면서 위치가 좋은 호텔도 있다.로타섬엔 ‘로타리조트 & 컨트리클럽’(532-1155)이 유명하다.필리핀 해를 바라보는 곳에 빌라형 객실과 골프장,아로마테라미 마사지 시설 등이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골프장이 특히 아름다워 골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기타 -시차: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환전:미국 달러를 사용하므로,공항에서 미리 바꾸는 게 편리하다. -전화:호텔 객실의 전화를 이용할 경우 1분당 2∼3달러.수신자 부담전화를 이용하면 호텔에 별도로 서비스요금을 내야 한다.사이판 월드 리조트의 경우 1회당 50센트.전화카드를 구입해 호텔내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된다. 주요 현지 전화번호 아시아나항공(288-2625),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청(664-3200),경찰(234-0406),사이판국제공항(664-3500),전화번호 안내(411).˝
  • 日 우경화 갈수록 태산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사회 전반의 보수 우경화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인상이다. 문부과학성과 대학입시센터는 대학입시의 시험문제 작성자를 2007년부터 시험이 끝난 뒤 공개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일본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문부성의 이런 방침은 지난 1월 실시된 대학입시에서 ‘일본 통치하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냐는 4지선다형 세계사 문제와 관련,‘조선에서 일본으로의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정답에 대해 보수 정치인과 우익언론들이 이의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을 비난하는 성명을 만국우편연합을 통해 190개 회원국에 보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실제 발행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에 맞서 대항우표를 발행하자는 의견도 제기됐었다. 특히 집권 자민당 소장파 중·참의원 80여명이 참가하고 있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은 전날 입시센터 관계자를 출석시킨 가운데 총회를 열어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강제연행’이라는 말이 출제되는 등 사전체크 기능이 없다.”고 입시센터측을 강력히 비난했다. 총회에서는 “평가가 돼있지 않은 것을 정답으로 할 경우 국가가 (강제연행을)인정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거나 “설문의 기초가 된 교과서가 문제다.”는 비난이 잇따랐다.젊은 의원 모임은 3월 모임 때 이 문제를 낸 출제자와 세계사 교과서 관계자 등을 불러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이들 자민당 의원은 이 문제가 출제된 것을 계기로 일제의 조선인 ‘강제연행’ 기술을 역사교과서에서 아예 삭제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앞서 2001년 역사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지난 1월 “강제연행은 제2차대전 후 일본을 규탄하기 위해 정치적 의미를 지닌 조어(造語)에 불과하다.”며 입시센터에 문제작성자의 신원 공개와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낸 바 있다. 1979년 국공립대 입시에 공통 1차시험이 도입된 이후 시험문제 작성자가 공표되는 것은 처음이다. marry04@˝
  •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라인하르트 카이저 '러브 레터’

    짧은 만남이지만 오래 가는,그래서 더 아쉽고 여진이 지속되는 사랑이 있다.당연히 예술 혹은 문학의 단골 소재다.이 ‘짧지만 영원히 나눈 사랑’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민음사 펴냄)와 독일 프리랜서 작가인 라인하르트 카이저의 ‘러브레터’(모티브 펴냄).시공간도 다르고 픽션과 실화라는 틀도 다르지만 속에 담긴 사랑의 모습은 너무 닮았다. ‘콜레라…’는 마르케스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낸 첫 장편.19세기 말∼1930년대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가 거상의 딸 페르미나와 역경을 딛고 51년 만에 결합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신분 차이를 넘어 사랑에 빠졌다가 집안의 반대와 페르미나의 변심으로 헤어진 뒤 이어진 역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플로렌티노는 복수하듯 돈을 벌고 밥먹듯이 여자를 갈아 치우지만 임신한 페르미나를 우연히 본 뒤 자신이 실제로는 단 하루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이후 실연의 아픔과 그리움의 고통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종기’였다.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 플로렌티노가 “페르미나,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소설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다. 운명적 사랑에 무게를 실으려는 듯 마르케스는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에서 ‘마술’을 떼어버렸다. 영화 ‘세렌디피티’를 봤다면 이 소설 제목이 떠오를 것이다.운명적 사랑을 믿는 여주인공 사라가 조나단에게 연락처를 적어준 책,헌 책방을 떠돌다 결국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 책이 ‘콜레라…’다. ‘러브레터’는 작가가 우표경매에서 발견한 편지 꾸러미에서 접한 두 남녀가 나눈 사랑을 편지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실제 사랑 이야기다. 2차대전을 전후해 지질학자인 유대계 독일인 루돌프와 스웨덴 통역가 잉에보르크가 1935년 첫 만남 뒤 13일 동안 나눈 짧은 사랑과 41년 루돌프가 죽기까지의 긴 이별을 꼼꼼히 엮었다. 작가는 30통의 편지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친지와 관련 자료를 훑어 소설을 넘는 감동으로 남녀의 사연을 전했다.그 속에는 유대인인 루돌프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체포와 죽음의 공포를 피해 독일,이탈리아,리투아니아 등지로 도피생활을 하는 긴박감과 절실한 그리움,흔들리는 애정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역자는 “원래 작가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구상하다가 주인공들이 나눈 사랑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왜곡되고 손상될 뿐이라고 생각해 사실 그대로 구성했다.”고 들려준다. 이종수기자 vielee@˝
  • 세계 車업계 “Y세대 잡아라”

    “Y세대를 잡아라.”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당면한 과제다.2차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층을 뜻하는 Y세대가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Y세대는 2010년에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25%,2020년에는 40%까지를 각각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0일 보도했다. 특히 현재 18∼22세에 해당하는 연령층을 지금 공략하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소형차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 구매자 2명 중 1명은 이전에 자신이 택했던 브랜드의 차를 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엔트리 시장(생애 첫 구매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도요타는 이미 Y세대를 겨냥,지난해 ‘사이언’ 브랜드를 내놨다.상자 형태의 모델 xB,곡선을 좀 더 강조한 모델 xA가 지난해 6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에 들어갔다.혼다 역시 지난해 엘리먼트를 출시했다. 현대자동차도 8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현대조사팀’을 구성,이들에게 매년 모터쇼를 관람시킨 뒤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미국 내 고객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만으로 팀을 구성했다. Y세대는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것이 큰 특징이다.이 때문에 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자동차 회사들은 자사의 차종 구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례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들은 자국 내 자동차 판매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나 Y세대의 부상으로 시장을 위협받고 있다. 또 Y세대는 차의 성능보다는 낮은 가격에 스포티한 외관을 좋아한다.색상·액세서리 등 부수적인 기능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하고 이를 이메일을 통해서 또래집단과 공유,파급효과가 크다.자동차 광고가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가도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컵홀더 등 작은 부품도 자신의 선호에 맞춰 디자인하기를 원한다.이를 간파한 도요타가 지난주부터 변속기·색상·액세서리 등 많은 부분을 주문자 취향에 맞춰주는 마케팅을 시작,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Y세대의 선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아직은 어려운 상태다.현대차의 여성 조사팀원들 간에도 폴크스바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투아렉,폴크스바겐의 뉴 비틀 중 무개차,해병대 전투차량 험비를 개조한 GM의 허머H2 등 개개인에 따라 선택한 차량이 달랐다.도요타의 사이언도 아직까지는 목표 연령층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35세가 주요 구매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하기자 lark3@˝
  • [김영증의 킥오프]한국축구 '명예의 전당’

    대한축구협회는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명예의 전당’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미 30여명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했으며,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과 절차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 할 계획이다.명예의 전당 후보지로는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기념관이 꼽히고 있다. 자격 조건으로는 선수의 경우 한국 축구의 보급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개인기록,능력,청렴성,인격 등이 고려되며 공헌자는 지도자,심판,행정가를 포함해 현직에서 은퇴해 한국 축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인물이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축구 명예의 전당을 설립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 등이 있다.미국은 지난 1979년 뉴욕주 오네온타 시에 설립해 약 220명의 멤버가 헌액 돼 있고,미국내 축구의 보고로 8만여종의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필자가 81부터 3년간 선수로 뛴 북미축구리그(NASL)와 94미국월드컵 때의 희귀한 자료들과 사진 등이 소장돼 있다. 영국은 명예의 전당을 개인업자에게 설립토록 했다가 많은 논란이 일어 중단했으며,지난 2002년 5월 상업성을 배제,직접 홈페이지에 올려 운영을 하고 있다.선수 49명과 2차대전 이후의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13명 전원이 헌액 됐다. 한국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될 대상자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개인적으로 볼 때 선수부문에는 해방 이전의 한국 최고의 선수였던 김용식 선생님을 비롯해 54년 스위스월드컵 때 한국 축구를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최정민·함흥철 선생님,60년도 청룡멤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회택·김정남·김호씨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 동안 활약한 차범근씨와 86멕시코·90이탈리아월드컵에서 세계수준의 선수들과 당당히 겨룬 최순호씨 등도 거론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공헌자 부문에는 이면서 국제심판 1호와 여자축구 초대감독을 지낸 김화집옹,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한 거스 히딩크 감독,31·32대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내면서 전 금융단 팀을 창단해 한국축구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장덕진 전 회장 등이 물망이 오르고 있다.선정위원회는 이번 사업을 잘 마무리해 한국축구의 역사성과 전통을 세우기를 기대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2차 세계대전 ‘컬러로’ 느낀다/히스토리채널 18부작 다큐 4일부터 매주 수·목 방영

    드라마의 사랑,불륜 타령에 신물난 시청자들에게 희소식 하나.다큐멘터리 전문 히스토리채널이 개국 2주년을 맞아 특집 프로그램 ‘컬러로 보는 2차세계대전사’를 4일부터 매주 수·목 오후 10시에 방영한다. ‘컬러로…’는 히스토리채널이 2년에 걸쳐 제작한 역작으로,우리가 몰랐던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유사한 프로그램은 있었으나 18부작이라는 엄청난 분량에다,순수하게 컬러 자료화면만을 담은 작품은 없었다.게다가 종군기자와 군인이 직접 찍은 필름은 생생한 교전 장면과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일반 사병들이 느끼는 괴로움·두려움·공포 등이 적나라하게 배어 있어 기존의 전쟁 다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1939년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2차대전은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무려 6년 동안 전세계를 종말의 문턱까지 몰고 갔다.60여개국이 참전하여 1억 100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으며 전사자 2700만명에,민간인 희생자도 2500만명에 이른 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1부 ‘군인이 되다’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짧은 훈련을 거쳐 군인으로 태어나는 모습을,2부 ‘최전선에 서다’는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친다.6부 ‘항공모함과 가미카제’에선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연합군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끔찍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진한 감동을 감당하기 힘든 시청자는 홈페이지(historychannel.co.kr)에 시청소감을 써보면 어떨까.기념품도 준비되어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책/대통령의 자식들

    더그 위드 지음 / 윤성옥·송경재 옮김 중심 펴냄 우리에게 ‘대통령의 자식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소통령’ ‘비리’ ‘수갑’….그러면 200년 이상의 공화정치 역사를 지닌,43명이나 되는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미국도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특혜를 받고 비리를 저질러 여론의 비난을 산 아들들이 더러 있다.그러나 적어도 범법행위로 감옥에 간 아들은 없다.물론 어려서부터 ‘사회적 애완동물’이 된 대통령 아들들이 주위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예는 적잖다.또 대통령의 자식들은 일반인에 비해 이혼율도 높다.오죽하면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일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그들의 삶은 끔찍하다.”고 했을까. ‘대통령의 자식들’(더그 위드 지음,윤성옥·송경재 옮김,중심 펴냄)은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W 부시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녀에 관한 보고서다.1988년 조지부시 대통령 후보의 선거참모로 일한 저자는 부시가 당선된 후 아들 조지 W 부시의 요청으로 대통령 자녀들의 삶을 정리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모험가 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그래서 그런지 그 아들들 또한 모험심이 강한 이들이 많다.1999년 자신이 직접 조종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죽은 존 F 케네디 2세가 대표적인 예.그는 위험한 바다로 카약여행을 다니고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비행기 조종훈련을 받곤 했다.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들 4명은 1차대전이 터지자 모두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그 중 막내인 쿠엔틴 루스벨트는 전투기 조종사가 돼 독일군과 공중전을 벌이다 추락해 전사했고,두 형은 지체장애자가 됐다.맏형 시어도어 테드 루스벨트 2세는 육군준장으로 2차대전에도 참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다. 아버지에 못지않은 명성을 쌓은 아들도 보인다.링컨 대통령의 맏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은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산 인물로 꼽힌다.그는 AT&T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으며,가필드 정부에서 육군 장관을 지낸 것을비롯해 각료·대사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로버트를 포함해 8대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의 둘째아들 존 밴 뷰런,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장남 로버트 알폰소 태프트 등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실제로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장남 존 퀸시 애덤스는 6대 대통령에,41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장남 조지 W 부시는 4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역대 대통령의 아들로 주지사에 당선된 사람은 두 명인데 그들 모두 조지 부시의 자식들이다.부시가가 자식농사만큼은 잘 지은 셈이다.그 비결은 무엇일까.조지 부시는 말한다.“나는 자식들을 훈계하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오직 사랑만 베풀 뿐 스트레스를 결코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조지 W 부시 또한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벽돌담이라도 뚫고 달리겠다.”고 말한다. 대통령 아버지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불운한 생을 살다 간 자녀도 많았다.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의 장남 조지 워싱턴 애덤스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과 기대에 중압감을 느낀 나머지 자살로 추정되는 사고로 죽었다.남북전쟁 영웅인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은 퇴임 후 둘째아들 율리시스 심슨 버크 그랜트 2세가 설립한 증권회사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몽땅 날리기도 했다. 32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역시 아들들의 인사 개입과 특혜시비로 곤욕을 치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인기나 영향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루스벨트의 네 아들은 2차대전이 일어나자 모두 군에 자원 입대해 가장 위험한 전투지역에 투입됐다.‘병역정의’가 흔들리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책은 대통령 자녀의 생애와 일화를 11개의 장으로 나눠 요령있게 다뤘다.1만 6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열린세상] 시민주도의 한일관계

    잠시 조용한가 했더니 한·일관계가 또 법석이다.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새해 벽두부터 2차대전 전범들을 봉안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 시작이었다.그는 더 나아가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발언으로 불길을 달궜다.또 연이어 나온 아소 총무성장관의 일본도 독도우표를 발행하자는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끓고 있는 한국인들의 심기에 기름을 부었다. 한편 한국의 안방에는 올해부터 일본의 드라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방송개방은 일본의 문화와 산업생산품 전반을 한국민 앞에 한꺼번에 배달하기 때문에 문화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크다.일본으로서는 커다란 기회다.이런 일을 한국정부가 해준 것이다.물론 반대도 많았지만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잘 결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새해 벽두부터 이런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한국배우 원빈과도 공연했던 후카다 교코의 앳된 얼굴과 일본 각료들의 잇단 망언이 오버랩되면 참으로 착잡한 마음이 된다. 이런가운데 사이버공간도 양국 네티즌들이 상대편 사이트를 공격하는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동아시아 상호협력의 장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지금 한국인의 국민감정은 주위의 어느 나라와도 순탄하지 않다.소파협정,이라크 파병,주한미국인의 범죄 문제 등으로 해서 미국과도 좋은 감정이 아니고,이른바 ‘동북공정’ 문제로 인하여 중국과도 껄끄럽다.여기다 일본과도 해묵은 감정적 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니 착잡하기만 하다.우리는 ‘왕따’인가,동네북인가. 외교적 대응도 중요하지만,우리 국민들의 보다 냉철한 대응 또한 요구되는 시점이다,일본 정부 당국자의 경거망동과 망언이 밉다고 일본 국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피해야 할 일이다.한국국민 전부가 한국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당국자의 망동에 일본 국민이 모두 따르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일본의 건전한 다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와 침략전쟁 미화에 반대한다.따라서 우리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저해하는 모든시도들을 봉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과의 우호와 연대의 강화다. 독도문제도 그렇다.독도는 지금도 우리 영토고 앞으로도 우리 땅이다.따라서 일본 정부나 일부 일본인들의 말이나 태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중요하겠지만,민간 차원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이는 오히려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므로 독도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일본정부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들 수도 있는 일이다.한·일국교정상화 이후 40년 가까이 흘렀다.20세기의 한·일관계가 지배와 유착으로 점철된 것이었다면 21세기에는 대등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한·일 양국민간의 우호는 새천년의 보다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한 보루다.작금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인적,문화적 교류는 앞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더욱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야 한다.양국의 민간 관계는 전쟁과 식민통치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갈등과 불평등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매년 300만명 이상의 평화적이고 호혜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올해부터 양국 수도의 도심을 보다 편리하게 연결하기 위해 김포와 하네다를 잇는 한·일항공노선이 개설되기도 했다.이러한 우호의 물결을 저해하는 일본 내 불순세력의 망동은 평화를 사랑하는 두 나라 시민이 손을 맞잡고 단호히 막아내야 한다. 2002년 개최된 월드컵은 한·일관계사에서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거대한 공동 프로젝트였다.한·일 양국 국민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선진 문명국가간의 화합과 연대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다.이제 이러한 공통경험을 기반으로 시민적 한·일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개념을 뛰어넘는 시민사회의 인권존중의 논리가 과거사 해결의 열쇠로 이어져야 한다.파시즘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민족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애정이다.저항과 봉쇄의 대상인 군국주의자들과 우호와 연대의 대상인 일본의 일반 시민을 구별하는 성숙한 시각이 요구되는 때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신문방송학
  • EU 꿈과 도전/(상)EU의 빅뱅

    2004년은 유럽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해이다. 오는 5월1일 중·동부 유럽의 10개국이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때문이다. EU 회원국은 이에 따라 기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어난다.10개국의 신규 가입으로 EU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7500만명이 늘어나 EU는 총인구 4억 5000만명,국내총생산(GDP) 9조달러 규모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경제권으로 부상하게 된다. EU의 확대는 2차대전 이후 분단됐던 동·서 유럽의 재결합이라는 역사적 의의 외에도 분명 경제·정치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되는 것을 의미한다.각국의 이질적인 역사와 문화적 배경,경제·사회체제를 극복하고 ‘법’이 지배하는 ‘유럽 합중국’의 건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U의 꿈과 도전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브뤼셀 함혜리특파원|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유럽연합(EU)의 수도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브뤼셀에는 EU의 최고 입법 및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각료이사회와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가 있으며 법안을 심의하는 EU 의회 등 주요 기구들이 자리잡고 있다.푸른색 바탕에 12개의 별이 중심 원을 그리고 있는 EU 국기를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 지난 연말 브뤼셀에 있는 EU 각료이사회 건물 콘실리움 앞에서 10여명의 체코 청소년들을 만났다.프라하에 본부를 둔 NGO ‘젊은 유럽클럽’의 회원들로 2004년 5월 체코의 EU 가입을 앞두고 현장 견학차 브뤼셀을 찾았다고 했다. 젊은 유럽클럽 회장인 로만 파울릭(19·스위타베 김나지움)은 “전에는 내 자신을 서유럽 사람들과 거리가 있는 동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유럽인’으로 느껴진다.”며 “체코의 젊은 세대는 EU 가입을 계기로 체코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서유럽의 재결합 체코를 비롯해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동구 8개국과 몰타,키프로스 등 10개국은 오는 5월부터 EU 회원국이 된다.그동안 네차례 확대 과정을 거쳤지만 EU 역사상 10개국이 동시에 가입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전례없는 역사적인 유럽연합의 ‘빅뱅’인 셈이다.EU 집행위(EC) 확대위원회의 장 크리스토프 필로리 대변인은 “이번 EU의 확대는 지난 5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유럽 통합의 한 과정이며,2차 대전 종료 후 얄타회담 결정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단됐던 유럽이 재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10개국의 신규 가입은 이같은 역사적 의의 외에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유럽공동체 출발 당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평화 정착이었지만 지금은 회원국의 공동이익 창출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EU는 경제,외교·안보,내무·사법 등 개별 국가의 주권사항으로 여겨졌던 분야들을 초국가적 기구를 통해 공동관리하고 있다.이를 통해 역내 국가간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역외 국가들과의 경쟁에 공동대응하는 방식으로 공동이익을 추구한다.동구 국가들의 신규 가입으로 유럽에 대한 진정한 대표성을 확보하게 되는 EU는 유럽 공동의 대외정책 및 안보정책 수립을 통해 지역화를심화시키고,국제 현안에서 외교적으로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국제 위상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이자 모험 신규 회원국들은 EU 가입과 동시에 관세 및 비관세 장벽없이 기존 회원국들과 무역을 할 수 있다.EU 집행위는 EU 가입 후 동구 8개국의 경제는 대(對)EU 수출이 8∼10%가량 증가하는데 힘입어 연평균 1.7∼3.2%포인트의 추가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기존 회원국들은 무역 창출 효과 0.1%포인트,이민 증가로 인한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 0.3%포인트,무역장벽 제거로 인한 원가 절감 및 기술혁신 0.2∼0.3%포인트 등 연평균 0.5∼0.7%포인트의 경제적 혜택이 기대된다.EU 집행위 경제·재정위원회의 미카엘 티엘 수석연구원은 “10개국의 추가 가입은 유럽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실제로 올해 유로지역 12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0.4%에 불과한 반면 신규 가입국의 평균 성장률은 3.1%에 이른다.비유로 사용국(영국·스웨덴·덴마크)과 신규 가입국을 모두 포함시켰을 경우 EU 25개국의 올해경제성장률은 평균성장률을 웃도는 0.9%가 된다. 회원국이 늘어나는 만큼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기 마련이어서 통합의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더욱이 이번 확대는 기존 서유럽 일변도의 확대가 아니라 과거 사회주의 체제 하에 있던 동구국가들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하는 작업이어서 모두에게 큰 모험이다.지금까지 비슷한 경제구조와 소득 수준을 지닌 국가들을 대상으로 확대가 이뤄졌지만 이번 신규 가입국들의 소득 수준과 경제구조는 기존회원국들과 큰 차이가 있다.신규 회원국들의 1인당 GDP는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EU평균의 45% 정도에 불과하다.신규 회원국들은 EU 가입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31개 분야에서 법·제도와 사회시스템을 전환하는 작업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장경제 체제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나라가 태반이다. 이에 대해 필로리 대변인은 “이번 확대로 EU의 색깔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부의 수준이 EU 가입의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그보다는 투명하고 건전한 시장경제체제가 갖춰질 가능성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회원국간 갈등극복이 과제 EU측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특히 EU의 지역정책을 둘러싸고 EU 예산을 부담하는 선진 회원국들과 EU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후진 회원국들간의 갈등,지금까지 재정지원을 받아온 기존 회원국들과 신규 회원국들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회원국간 격차를 해소하고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EU의 지역정책은 ‘구조기금’과 ‘결속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2006년까지는 현행 EU 지역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신규 회원국들이 당장에 받게 될 보조금은 현재 회원국들이 받는 규모에 비해 미미하지만 2007년부터 동구국가들은 EU 지역정책의 최대 수혜국이 된다.올초부터 시작되는 2007년 이후의 지역정책 수립과정에서 회원국 확대의 최대 피해국인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부 회원국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EU 가입이 신규 회원국에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만은 아니다.신규 회원국들은EU 가입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지만 동시에 경제주권의 약화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환경기준,근로환경,제품표준 규격,소비자 보호 등에서 엄격한 EU 규정이 동구국가들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저비용 경제구조와 제도의 유연성이 제약을 받게 된다. 유럽정책연구소(CEPS) 대니얼 그로스 소장은 “동구 국가들이 EU의 경제·사회시스템을 무리하게 받아들일 경우 산업기반이 붕괴된 동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EU 시장에서의 경쟁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구조조정과 사회 개혁을 서둘러야 하며 기존 회원국들은 갈등을 최소화하도록 지속적으로 협상하고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커져왔나 유럽통합이 구체적으로 추진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이다.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은 1950년 5월9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전략자원이었던 석탄과 철강을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관리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유럽연합을 이룩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단초로 독일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은 1952년 유럽 최초의 공동체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켰다.ECSC 회원국들은 1957년 로마조약을 체결,자본·서비스·노동의 자유이동이 가능한 유럽공동체(EEC)를 출범시켰다. EEC 회원국(당시 12개국)들은 1991년 1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장통합·통화 단일화 등 유럽통합의 기틀을 다지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했다.이 협약에 따라 1993년 11월1일 유럽연합(EU)이 공식 출범했으며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됐다. 회원국은 1973년 영국·아일랜드·덴마크,1981년 그리스,1986년 포르투갈·스페인,1995년 오스트리아,핀란드,스웨덴이 가입하면서 15개국으로 늘어났다. EU의 중·동부 유럽국가 확대가 결정된 것은 지난 1993년 코펜하겐 EU 정상회담에서였다.2002년 10월 EU 집행위는 키프로스,체코,에스토니아,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몰타,폴란드,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 등 10개국에 대한 EU 가입 권고안을 채택했으며 같은해 12월 코펜하겐 EU 정상회의는 10개국의 가입을 확정했다.이들 국가는 이미 각국내 비준절차를 완료했으며 신규 회원국으로서 올해 6월 치러지는 EU 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불가리아,루마니아,터키가 EU 가입을 추진 중이며 중·장기적으로 EU는 유고연방,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등 서부 발칸지역 국가까지 회원국을 확대해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라는 진정한 유럽의 통합을 실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씨줄날줄] 日총리의 독도 망언

    새해 벽두부터 2차대전 A급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를 기습 참배해 한국인들을 격분시켰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급기야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망언을 했다.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에 맞서 일본도 독도를 등장시킨 우표를 발행하자는 아소 총무상의 주장에 대해 파문 확대를 진정시키는 입장을 표명한 자리에서다.덧붙인 표현이 또한 미묘하기 짝이 없다.“한국 측도 잘 분별해서 대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분별있는 한국의 대응이란 어떤 것일까. 일본 총리의 독도 망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977년 후쿠다 총리가 참의원 발언으로 한·일 갈등을 일으켰고 2000년에는 모리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둔 시점에 국내 방송과의 회견에서 억지 주장을 펴 파문을 일으켰다.1996년 하시모토 총리는 독도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으로 삼는다고 선언해 영토적 야심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다.일본의 망언이 나올 때마다 한국 외교당국이 취해온 자세는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것이다.독도가 우리땅인 것이야 역사적·지리적·국제법 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고 한국이 실효적 점유까지 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감정적 대응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적 분쟁거리로 이슈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논리다.이번에도 정부는 이런 입장을 고수한다고 한다. 과연 이는 효과적 전략일까. 이와 관련,호사카 세종대 교수는 ‘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란 책에서 한국의 방심을 경고한 바 있다.일본인들은 상대방을 면밀히 연구하고 속여서라도 적을 이기는 게 선(善)이라고 가르치는 병학(兵學)사상의 신봉자들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 항목을 빼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그럴 듯하게 믿도록 끌어가는 사례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감정 자제’전략은 일견 옳다.그러나 이런 전략이 일본의 EEZ선언이나 신 한일어업협정에서처럼 우리의 독도영유권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문제이다.일본 총리의 ‘분별 있는 대응’발언이 노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독도 수호에 관한 한 ‘한·일 우호’는 잊고 공격적인 문제 부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도 이제는 이를 경청할 때가 되었다. 신연숙 논설위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4)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1898년 10월29일 종로 네거리 운종가 광장에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외세의 국권 침탈위기에 맞서기 위해 정부 대표자와 민간인 각 계층 대표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국정개혁 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결정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하자는 큰 모임이었다.이 모임은 거리에서 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벌이는 한국 최초의 합동토론회였다. 오후 2시.광장에는 황국협회,황국중앙총상회,순성회,협성회,광무협회,진신회,친목회,교육회,국민협회,진명회,일진회,보신사 등 각 사회단체들이 모였다.순성회 부인들,각 학교 생도들,시전상인들,맹인,승려들,백정(白丁)들,정부부처 관료 및 신사들이 청첩장 받은 순서대로 참석해 있었다. ●무어에 세례받은 백정 만민공동회 연설자로 오후 3시.대회장인 윤치호가 먼저 만민공동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인사말을 했다.곧이어서 군중은 만세를 불러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질서유지에 힘썼다.그런 다음 만민공동회의 개막연설자가 단상에 올랐다.회의장은 순간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연단으로 올라서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개막 연설자로 지명된 사람은 놀랍게도 백정 신분이자 새뮤얼 무어 목사한테서 세례받은 곤담골교회 박성춘(朴成春)이었다.박성춘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이에 이국편민(利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저 차일(遮日)에 비유컨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심히 견고합니다.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적에 보답하고 국조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회중은 연설을 끝낸 박성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연단 아래 모였던 수십명의 백정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세를 불렀다.이 광경은 여러 날을 두고 장안의 화제였다.박성춘,그는 이날의 연설로서 독립협회 주요인물인 안창호,서재필 같은 큰 인물들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자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무어 목사는 한국에 온 이듬해인 1893년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담골에다 교회를 열고 곤담골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교회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예수교학당을 함께 열었다.무어 목사는 늘 길거리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예수교학당에 보내라고 권했다.그 마을에 살던 박성춘이라는 백정도 무어 목사라는 사람의 진실된 성품이 싫지 않아서 그의 아들 박서양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후 박성춘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죽게 되었다.박서양은 주일학교에 나와서 아버지 병을 낫게 해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이를 본 무어 목사가 그 까닭을 물었고 박서양은 아버지의 병환의 위급함을 말했다.무어 목사는 박서양을 돌려보낸 뒤 급히 다른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을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황제의 전문의사에게 천민보다 더 핍박받는 계급 백정을 진료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설혹 에비슨이 승낙한다 하더라도 그런사실을 정부 대신들이나 서울의 양반들이 알게 되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에비슨은 무어 목사의 간곡한 청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무어 목사의 눈에 백정들의 참담한 생존이 가장 시급한 구원의 대상으로 비쳤듯이 에비슨의 눈에 비친 무어 목사의 행동은 천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교사들이 백정 박성춘을 찾아왔다.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두사람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박성춘은 임금님의 주치의가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해주기 위해 누추한 곳까지 와준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완치된 뒤 그의 자식들 모두를 주일학교에 보낸 그도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 같이 설움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그런가 하면 큰아들 박서양이 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치료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키웠다.박서양은 결국 1899년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면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무어 목사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모삼열(牟三悅).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즐겨 쓴 이유는 백정들의 애환과 고난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895년 박성춘은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곤담골교회는 교인 20명의 제법 뜻있는 교회로 자리잡아갔다. ●“양반전도 어렵다” 선교사들 불평·비난 받아 그 무렵 첫 차별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교회에 나오던 양반 신도들이 발길을 끊는 일이 생긴 것이다.사정을 알고보니 양반 신도들은 백정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는 백정 같은 천민도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백정이 가는 천당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양반 신도도 있었다.백정이 믿는 하느님과 양반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양반을 능멸하는 짓이며,더욱이 한 교회 지붕 밑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천당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며 뉘우치는 이들이 생겼다.그들은 무어 목사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자기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백정들을 뒷자리에 앉도록 좌석을 구별해준다면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무어 목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그후 1904년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 1905년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한국 기독교사상 가장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박성춘이 교인이 된 뒤 무어 목사는 에비슨 박사와 함께 뜻을 모아서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1895년에서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이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졌다.비로소 백정도 한국의 국민 자격을 얻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인들처럼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백정들은 머리에 갓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외출할 때에는 패랭이를 쓰고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한 눈에 백정 신분임을 드러내도록 했다. 2차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들이 가슴에 노랑색 별을 달고다녀야 하듯 했고,인도의 최하층 노예신분인 수드라가 항상 황토색깔의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았다.그러다가 갓을 쓸 수있다는 법령이 공포되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을 때 기뻐했던 흑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기쁨이 한국 전역의 백정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어떤 백정은 하도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갓을 쓰고 살았던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철도공사장 노동자 인권침해' 日에 항의 이와 같은 선지자적인 무어 목사의 행동은 많은 선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교회가 백정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양반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는 불평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또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양반들을 교인으로 전도해야만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실익이 생길 수 있지만,백정 같은 천민들이 아무리 교인으로 많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고 했다.백정들의 인간해방 운동을 위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임금에게 탄원서를 낸 것은미 국무부 정책을 위반하여 다른 나라 정치와 관습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99년 12월 무어 목사는 고종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알렌 공사로 하여금 주선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의 백정들에 대한 인권탄압 정책과 제도를 혁파해달라는 요구를 고종황제에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거절당한 뒤 할 수 없이 문제의 그 편지를 직접 고종황제에게 보냈고,그로하여 알렌 공사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어 목사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쇠약해져 1902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고향에서 요양을 끝내고 1903년 9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그 무렵 무어 목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했다.알렌 공사와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천민이나 서민들보다 양반과 부자,귀족들에게 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백정선교에 집중하는 무어 목사를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지쳐갔다. 그는 살림도 할 수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여 ‘기쁜 소식(The Glad Tiding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어촌과 섬,그리고 한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마음 속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런 중에 일본 군용철도 공사장에 강제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일본영사관에 제기했다.일본영사관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자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해외선교부에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906년 전도여행길서 병얻어 46세로 사망 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인들이 일본군인들에게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민중봉기가 없는 것은 한국인들이 수탈과 억압에 너무 익숙해져 인간의 혼이 죽어버린 탓이 아닌가 하고 통곡했던 적도 있었다.그때부터 평양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나간다면 장차 인간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인을 사랑하던 무어 목사는 1906년 전도 여행길에서병을 얻어 그해 1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4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의 백정을 사랑한 인권의 은인이자 인간해방의 참뜻을 가르친 위대한 사도였다.그의 인권사상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22년 백정해방운동으로 되살아났다.
  • 日, 자위대 파병활동 ‘보도 자숙’ 요청 논란

    |도쿄 황성기특파원|자위대 이라크 파병활동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도 자숙’ 요청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방위청장관은 육상자위대 선발대와 항공자위대 본대에 파병 명령을 내린 지난 9일 각 언론사 간부를 불러 “현지에서의 취재를 가능한 한 삼가달라.”고 요청했다.이시바 장관은 보도 자숙의 이유에 대해 “취재 시에 발생하는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이시바 장관은 “부대·활동 지역의 위치나 장래의 부대활동 정보,부대나 대원의 생명·안전에 관련된 정보” 등에 대해 보도를 자숙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라크,쿠웨이트에서의 자위대 활동을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안전에 유의하면서 현지에서 취재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대체적으로 일본 정부의 요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오타니 아키히로는 일본 정부의 “보도 자제 요청은 2차대전 당시 발표만을 쓰고 다른 이야기는 쓰지 못하게 했던 대본영(大本營) 발표로 돌아간 격”이라며강력히 비난했다. 방위청은 당초 이라크 현지 취재 활동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현지에 파견될 기자를 대상으로 안전확보훈련을 지난 8일 실시한 바 있다.같은 날 일본 정부의 대변인격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방위청에 현지 취재를 거부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쿠다 장관은 이튿날 기자회견을 통해 “‘도항금지구역’에 보통사람이라면 가지 않는다.”면서 “자위대가 어디까지 (기자들의)안전확보를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취재를)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marry04@
  • [박기철의 플레이볼]타력은 시력의 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는 한국전쟁과 2차대전 등 두 차례나 조종사로 참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그러나 그가 보통의 타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배트가 공에 맞는 순간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시력을 가졌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공군에 복무하면서 당시까지 미국 공군이 해 오던 모든 시력 검사 기록을 깨뜨렸다.또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이 눈에도 주안이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면 오른쪽 눈이 좋고,왼손잡이면 왼쪽 눈이 좋다.그러나 타자는 오른손잡이면 왼쪽 눈이 더 좋아야 그만큼 공을 더 잘 볼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윌리엄스는 이런 면에서도 행운아였다.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쪽 눈의 시력이 더 좋았다. 보통 일반인들은 시력 전문가들이 정지시력이라고 부르는 것만 좋아도 일반 생활에는 거의 지장이 없다.정지 시력이란 우리가 흔히 신체검사에서 받는 것처럼 시력 검사표를 읽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또 운동선수라 해도 거의 모든 종목은 정지시력만좋으면 경기 기술을 발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그러나 움직이는 공을 몸을 움직이면서 때려야 하는 야구에서의 타격은 정지시력만 좋아서 해결되지 않는다.시력 전문가들이 동적시력이라고 부르는,움직이는 상태에서의 시력이 더 중요하다. 또 움직이는 물체에 초점을 유지하는 시표 추적 능력,두 물체간의 거리를 판단해 내는 거리 인지 능력,보이지 않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주변시,흔히 우리에게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알려진 심상화 능력 등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시력이 필요하다.그런데 아직도 많은 타격 지도자들은 이런 종류의 시력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또 이러한 능력이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이런 시력에 가장 관심을 가진 곳은 공군이다.미국 공군사관학교 야구팀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동적시력을 야구팀 훈련에 도입해 큰 도움을 받았다.93년 시즌을 앞두고 전 선수단에 비시즌 동안 동적시력 향상 훈련을 시킨 결과,타율이 .319에서 .360으로,홈런은 32개에서 76개로 급증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그리고역대 유명한 타자들의 타격 장면을 분석한 결과 그들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시력에 아주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나름대로 훈련 방법을 개발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최신 타격 이론에서는 스윙 훈련 이상으로 시력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우리 야구계도 오래된 이론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훈련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해야만 지난해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의 어이없는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생긴다. ‘스포츠투아이’상무이사 sunnajjna@
  • [日 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1)일본의 신보수 탄생 배경

    21세기 일본의 첫 총선거(중의원)가 치러진 작년 11월 9일,하나의 키워드가 창조됐다.보수 양당제로의 재편,사민·공산당의 몰락이 일어난 열도를 읽어낼 새 흐름,풀뿌리 신보수이다.열도에 뿌리내려가는 신보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그 흐름이 주류가 되어가고,그 핵인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어떤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가,그들이 주역이 되는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풀뿌리 신보수,침몰해 가는 사민주의,그들과의 새 한·일 관계를 3회에 걸쳐 제시한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세밑인 12월18일 게이오대학.강연에 나선 작가겸 와세다대 교수인 헨미 요(59)는 2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의 수수께끼는 이렇다.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심의관 집에 지난 9월 폭발물이 설치됐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당연한 일”이라는 망언을 했다.“자기와 생각이 다른 인물을 암살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공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국가는 일본 밖에 없다.이런 발언을 하는데도 어떻게 300만표를 얻었는지,그리고 비인간적인,상식적이지 않은,있어서는 안될 발언을 한 그가 어떻게 도쿄도 지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왜 이런 발언을 해도 인기가 있는 건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이렇게 호소한 헨미는 “자연발생적인 파시즘의 전조”라고 지금 일본의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다나카 심의관 집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들이 체포된 것은 12월19일이었다.조총련과 사민당,일본교직원노동조합 건물에 총격을 가하거나 정치인들에게 실탄과 협박문을 보냈던 이들은 ‘도검(刀劍) 벗의 모임’ 회원들이었다.전통적인 우익단체와는 다른 자생적 신보수다.면면을 보면 치과의사,미용실 경영자,주지 등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40∼50대 보통 시민이다. 2001년 한·일 역사교과서 파동을 일으킨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반 참가자들도 ‘보통’을 자처하는 시민들로 추정된다.이 모임의 가나가와현 지부에 2001년부터 4월부터 10개월간 참가해 회원들을 조사한 우에노 요코(25·당시 게이오대 학생)에 따르면 회원들은 스스로를 ‘침묵하는 다수’로서 보통시민의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한다.2차대전 패전 후 태어난 30∼40대가 주축인 이들은 좋아하는 정치가로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침묵하는 다수”였던 야마모토 헤루미(37)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접하고 1999년 행동파로 변신했다.신보수 정치인의 산실인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그는 ‘청년의 모임’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해오다 지금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간사를 맡아 가두서명 등 “행동부대”로 일하고 있다. 야마모토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실감한다.재작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기 전만 해도 술자리에서 납치,안보 문제를 꺼내면 시큰둥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응해온다.군대보유,천황제,애국심을 강조하는 그는 납치 해결 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해서는 안되는 대북 강경론자이다.그가 주도하고 있는 ‘청년의 모임’ 회원들은 주축이 1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케이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도요가쿠엔대학 전임강사 사쿠라다 준(38)은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보수논객이다.그는 천황제,헌법 9조 개정을 통한 군대보유,야스쿠니(靖國)신사 존속,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을 주장하지만,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과격보수와는 약간 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진주만 공격에 나선 것은 “미국의 석유금수 조치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비유하는 사쿠라다는 “북한을 만족시켜서도 절망시켜서도 안 된다.”고 대북 지원 필요성을 주장한다.그런 점에서 야마모토보다는 온건하다. 좌파 주간지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의 다케우치 가즈하루(33) 기자는 이들을 “좌절을 겪으면서 경제대국의 재현,국제사회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군사력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고 있는 세대”라고 정의한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얻은 것은 내셔널리즘”이라고 분석하는 간사이가쿠인대학 아베 기요시(39)교수의 말처럼 풀뿌리 신보수는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50)가 등장,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만화 ‘전쟁론’ 등을 통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군대 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 군사 내셔널리즘의 토양을 다졌다. 이런 가운데 신보수의 지형을 넓히고,단결토록 만든 “패전 후 첫 퍼블릭 메모리”(헨미 요)는 역시 2002년 9월 북한의 납치 시인이었다는 데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일본 국회에서 지한파로 꼽히는 고바야시 유타카(39·참의원)는 일본의 최대 적을 “북한”이라고 꼽는다.그도 헌법 9조 개헌 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신보수 대열에 서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흐름이 “과거 히노마루(일장기)를 흔들던 군국주의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가네코(63·회사이사)는 올해 두 종류의 연하장을 만들었다.나이든 사람에게 “일본 안보의 위기감”을 주제로,젊은층에게는 “싸우는 일본은 어디로 갔는가.”였다.건설회사 간부로 20여년간 해외를 다니며 ‘강한 일본’을 체감했던 그는 지금의 ‘약한 일본’에 위기감을 느끼는 ‘보통 시민’이다. marry04@ ■ 오구마 게이오대 조교수 |도쿄 황성기특파원|게이오대 조교수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영국,프랑스에서 경기가 좋지 않았던 70∼80년대 이민 배척 운동이 태동한 것처럼 지금의 일본이 그렇다.”면서 “네오나치즘을 했던 사람들이 과거의 나치즘을 알고 했다기보다 경제적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택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내셔널리즘이 탄생한 배경은. -1990년 전후 냉전 종언과 불황이 동시에 일본에 찾아왔다.지금은 가난하지도 않지만,과거처럼 고도성장이 되는 시기도 아니다.그런 점에서 첫째,목표가 없어졌다.과거처럼 가난을 딛고 풍부하게 된다거나 좋은 생활을 추구하는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둘째,냉전이 끝나고 미국 일극체제가 되면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요구가 강해졌다.미·일 가이드라인 수정,자위대 파병 요구 같은 것들이다.셋째,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사회에서 점점 물러나면서 전쟁기억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이 세가지가 현재 내셔널리즘으로 불리는 현상의 배경이다. 특징이라면. -패전 직후의 (전통적)우익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는 분명 다르다.예전의 우익,보수는 전전(戰前)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지만 교과서 모임측은 전전을 모른다.그때를 살지 않았으니까.고도성장기 이후의 사람이 많다.전쟁 전을 몰라서 “전쟁이 좋다.”거나,“한·일병합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라든가 해도 그 말에 리얼리티가 없다. 이전의 보수,우익은 한국 중국에 대해 전통적인 멸시가 있었다.가난한 시절의 한국,중국밖에 모르기 때문이다.지금의 20∼30대들은 한국과의 우호나 한국 문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일병합은 옳았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목표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헤매고 있고,미국의 압력에 의한 군사요구의 흐름 속에서,자신 속에 전쟁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명확히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이 필요한것이다.신흥종교를 추구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그들은 ‘천황'에 충성심을 갖지도 않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내셔널리즘을 가르치는 세력은 누구인가. -단순히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전통적인 우익들이 먼저 있다.자민당 지지 기반과 연결돼 있고,신도(神道)의식,야쿠자 조직과도 연결돼 있다.이들은 이익 기반과 연결돼 있다.‘새 역사교과서 모임’ 같은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이들은 조직과 연결돼 있지 않고,신도의식 같은 것도 없다. 2002년 북한의 납치 시인이 일본내 여론을 폭발시키고 보수진영을 단결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오구마는 1962년 도쿄 출신.도쿄대 농학부를 거쳐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10년간 근무.도쿄대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뒤 현재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조교수.저서로는 ‘민족과 애국-전후 일본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치유의 내셔널리즘’ 등.
  • 세계지도자 카드발송 백태/통큰 부시… 성탄카드 150만장

    세계 지도자들은 카드 고르랴,서명하랴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십만∼수백만장의 성탄 카드를 보낸다.적은 돈으로 자신을 알리고 잠재적 지지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이보다 유용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BBC방송은 23일 인터넷판에서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세계 지도자들의 성탄절 카드 보내기를 다뤘다. 올해를 자신의 해로 기록하고 싶은 부시 미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중 최고인 150만장의 카드를 발송했다.내년 대통령선거를 감안한 것이다.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처리됐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들이 받는 사람들의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고려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기독교적 표현을 자제해온 것과는 달리 2년 연속 성경 인용문을 넣어 성탄 카드에서도 ‘일방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예 두 종류의 카드를 보냈다.하나는 가족 전체의 사진이 들어간 사적인 카드로 친한 친구들에게 보내지며 비용도 블레어 가족이 부담한다.다른 하나는 블레어 총리 부부만 나오는 공식 카드로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발송되며 비용은 예산에서 지급된다. 누가 어떤 카드를 받았느냐에 따라 이질감을 조장할 뿐 아니라 언론으로부터의 사생활 보호를 강조해온 그의 주장의 이중성을 드러내 논란이 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인터넷에 성탄절 카드를 공개할 경우 “총리로부터 카드를 받았다는 명예를 반감시킬 수 있다.”며 공개를 거절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돈만 많이 들고 불필요하다며 성탄 카드 보내기를 중단했다.세계 지도자들의 카드 보내기도 빈부 격차를 반영한다. 성탄 카드는 1843년 런던에서 등장했다.미국 대통령 중 성탄 카드를 정치적 수단으로 처음 활용한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성탄 카드가 지도자들의 주요 연례행사가 된 것은 2차대전 이후부터다.하지만 이에 대해 혈세 낭비에 그럴 돈이 있으면 한푼이라도 질병·기아로 숨져가는 사람들을 위해 쓰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균미기자 kmkim@
  • “시장 영합했다면 소니는 없었을 것”이데이 소니회장 4번의 위기 소개

    |도쿄 황성기특파원| 소니의 최고사령탑인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사진) 회장 겸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항간에 나도는 ‘소니 위기설’을 일축하는 이례적인 반론을 제기,이목을 끌고 있다. 이데이 회장은 월간 분게이주(文藝春秋) 신년특별호 기고를 통해 “내가 입사해서 소니 신화는 적어도 5차례는 붕괴했다.”면서 “여러 위기를 통해 느낀 것은 소니는 ‘소니 신화 붕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해진다는 점 이었다.”고 밝혔다.소니는 최근 2∼3년간 히트상품 부재,이익률 저하,영화·음악에 이은 금융업 진출 등 지나친 사업 다양화로 위기에 직면했다고 일부 일본 언론들이 지적했다. 이데이 회장이 열거한 ‘위기’ 사례는 4가지.먼저 개인용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1983년.두번째가 80년대 말 일본 빅터-마쓰시타(松下)연합과의 ‘VHS 대 베타 방식경쟁’에서 패했을 때로 당시 이데이 회장은 홈 비디오 사업본부장이었다. 세번째가 사장이 된 뒤 소니-필립스 연합과 도시바-마쓰시타 연합 사이에 전개된 DVD 규격통일 경쟁에서양자가 서로 양보를 통해 가까스로 해결했을 때.네번째가 엔고(高)에 의한 큰폭의 실적악화를 기록한 1999년이었다. 그는 “1983년의 실패는 1997년 ‘VAIO’(노트북 컴퓨터)로 재도전했을 때 확실한 거름이 됐다.”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몇번이고 도전하는 ‘소니 정신’에 의해 우리들은 언제나 부활을 이뤄왔다.”고 강조했다. 이데이 회장은 “단기적 결과와 업적을 요구하는 시장의 기대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화붕괴를 두려워해 임기응변으로 대응,시장에 영합했다면 지금의 소니는 없었을 것”이라고 전제,“따라서 2006년까지 내다본 장기 전망에 입각한 우리들의 개혁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니는 지난 10월 ‘변혁 60’이라는 새 경영방침을 통해 ▲1.5%인 이익률을 2006년까지 10%로 끌어올리고 ▲3년간 연구개발비,투자연구에 1조엔을 투입하며 ▲서비스 거점의 통폐합,부품표준화를 통해 고정비 3300억엔 삭감,2만명(현재 전세계 종업원 15만 4500명)감원을 발표한 바 있다. 이데이 회장은 “글로법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타사와의 제휴전략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면서 독일 미디어기업인 베텔스만과의 음악부문 통합,액정 디스플레이 패널제조에서 한국 삼성전자와의 합작회사 설립 등을 꼽았다. 이데이 회장은 소니와 일본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역설하면서 “소니처럼 일본도 언제까지 과거의 성공체험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그는 “21세기가 가까워질 때부터 세계경제 전체의 큰 변화에 의해 일본의 전후 성공모델이 통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그것은 메이지 유신,2차대전 패전에 이은 ‘제3의 개혁’의 물결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이 회장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재역전도 호소했다.그는 “재역전을 위한 많은 과제가 있으나 가장 큰 것은 정치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을 이끄는 소니의 선도적 역할도 강조했다.그는 “변화는 질량이 ‘가벼운’ 영역부터 일어난다.”면서 “가장 가벼운 ‘돈’을 다루는 금융업계가 변하고 다음에 영화나 음악같은 콘텐츠가 인터넷을 통해 오가는 지식정보산업의 큰 물결이 있고,그 다음으로 일렉트로닉스 산업이 자동차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산업구조 재편의 압박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데이 회장은 “그런 의미에서 소니는 일본의 변화를 위한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면서 “글로벌 기업인 소니의 시점을 살려 일본의 경쟁력을 보다 높이는 대담한 제언을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소니에 요구되는 것은 언제나 도전자였으면 하는 점”이라면서 “10년 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형태의 회사로 변할지 모르지만 늘 공격의 자세를 잊지 않는 소니 정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CEO로서 분명히 그 변화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marry04@
  • “북한 건설적으로 포용을”동아시아포럼 참석 마하티르 前 말聯총리

    아시아의 ‘쓴소리’ 모하마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16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국 등 서구 강대국 주도의 안보 정책과 시장개방 정책에 대해 예의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동아시아포럼(EAF) 창립총회 참석차 방한한 마하티르 총리는 “건설적인 포용정책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마하티르 총리는 또 “일률적인 세계화는 공평한 개방이 아니며 빈곤 국가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세계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시아적 가치’의 수호자로 불리고 있는데. -‘아시아적 가치’는 2차대전 후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97∼98년 이 지역 금융 위기는 ‘아시아적 가치’로 생긴 게 아니라 ‘탐욕’이라는 서구적 가치 때문이다. 서구적 가치는 생산 자체보다 외환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을 통해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다.외환조작을 통한 돈벌이다.돈 자체가 목적이다.하지만 ‘아시아적 가치’는 건전한 생산활동과 무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정직한 시스템이다. 아시아 지도자로서 북한과의 협력방안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북한을 우선 건설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접촉 포인트를 설정하고 북한을 이해해야 하고 문제의 근원과 해결책을 포용정책을 통해 찾아가야 한다.말레이시아는 미얀마에 대해서도 그런 정책을 취한다.북한을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 초청하고 싶은데,다른 나라 생각은 모르겠다. 선제공격 정책 등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의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는데. -초강대국이 예방적 조치,즉 선제 공격을 한다면 우리는 독립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우리 같은 약소국은 늘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이다.선제공격 정책은 또 다른 이름의 침공이다.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한 예다. 반(反) 세계화 및 반 신자유주의,반 신제국주의 대변인으로 불리는데 -나는 절대 반 세계화론자가 아니다. 반대하는 것은 강력한 부자 국가들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세계화다.각 국가는 모든 면에서 능력의 차이가 있다.일률적인 세계화는 공평한 개방이 아니고,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빈곤국가도 이득을 얻는 세계화라야 한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으로 안다.민주주의와 개발독재는 상충되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실천도 어렵고 한계도 많다.무정부 상태와 구분이 힘들 때가 있다.영국은 너무 많은 자유가 산업 쇠퇴를 불러왔다.서구 국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민주주의는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경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거를 통해 22년간 총리로 재임했다.만약 여러분들이 나를 독재자라고 생각한다면,정부내 자리 하나도 맡지 않고 자발적으로 퇴임한 최초의 독재자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는 ‘룩 이스트(look east)정책’을 취했는데. -모델의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예컨대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우리와 달리 IMF 방식을 따랐다.그로 인해 향후 한국이 경제발전의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한국의 재벌문제도 부정적인 요소다.반면 시장경제를 채택하되 정치는 개방하지 않는 중국의 경우 경제발전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수 있다고 본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본 풍경/서울 선화랑 ‘매그넘 풍경사진’展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단체인 매그넘(MAGNUM) 소속 작가들의 작품은 보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오지 인간들의 삶,대도시의 뒷골목 등 흔히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주로 앵글을 맞춰 왔다.그러나 매그넘은 예술사진 분야에서도 탁월한 수준을 자랑한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풍경사진’전은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에 매달려온 매그넘으로서는 좀 생소한 ‘풍경사진’의 진수를 보여준다.매그넘 창립 멤버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조지 로저,로버트 카파를 포함해 질 페레스,알렉스 웹,브루스 데이비드슨,스티브 매커리,조지프 쿠델카 등 매그넘 정회원 40여명의 풍경 사진 130여점이 전시중이다.이번 전시는 1997년 매그넘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획,1999년부터 시작한 세계 순회전의 하나다.전시작들은 1938년부터 1996년까지 시기적으로 50여년에 걸쳐 있다. 작품들은 풍경사진이지만 시대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산업화와 도시 풍경,전쟁과 폐허의 풍경 등을 통해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사진은 ‘풍경 바라보기’‘실재하는 풍경’‘재발견된 풍경’‘풍경 속의 인간’‘전쟁 풍경’ 등 다섯 가지로 나뉘어 걸렸다.‘풍경 바라보기’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구성된 풍경사진들을 보여준다.원경에 풍경이,근경에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뒷모습이 놓인다.‘실재하는 풍경’은 특정한 지역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재발견된 풍경’은 건설하고 파괴하기에 바쁜 현대사회의 시각적인 기호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모았다.‘풍경 속의 인간’은 엑스트라가 아니라 풍경의 주인공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전쟁 풍경’은 전쟁의 참화로 일그러진 도시,국경지대의 난민 등 인간 유린에 대한 기억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매그넘은 2차대전 직후 설립돼 지금까지 전쟁의 목격자 역할을 해왔다.창립자인 로버트 카파는 베트남 취재중 지뢰를 밟아 숨졌고,또 다른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세이무어는 수에즈 전선에서 이집트군의 기총 소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사진가 개인의독특한 스타일로 기록되고 해석되고 재발견된다.그런 점에서 매그넘 회원들은 리포터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깝다.전시 기간 중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사진평론가 이기명씨가 전시작품들을 설명하는 행사를 마련해 일반의 이해를 돕는다.내년 2월28일까지.(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열린세상] 파병, 서두를 일입니까

    알려져 있듯이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올해로 55년 됐다.그래서일 것이다.요 며칠은 ‘인권’을 말하는 모임이나 사람들이 꽤나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최로 8일 열린 ‘2003년 한국인권보고대회 및 토론회’는 그 중에도 대표적인 공론장이다.대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1년 동안의 인권상황을 토론-평가하고,당면한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특별결의문이 채택-발표됐다.가장 크게 눈에 띈 결의사항은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다.첫눈 내린 이날 인천공항으로는 이라크에 송전탑 공사하러 갔던 60대와 40대 근로자가 무참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국회반전의원모임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국민 대 토론회’를 정부와 국회에 제안하는 내용이다.이들은 “국회에서 어물쩍 ‘합의’해 넘기려 하지 말라.국민의 총의를 확실하게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 이름으로 인권주일 담화를 발표했다.제목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이다.인권 손상-침해 우려를 표명한 6개항 의제 가운데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들어 있다.본래부터 이 전쟁은 단호히 거부된다. 지난달 25일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출범 두 돌을 기념했다.‘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 바로 세우기’를 푯대로 내건 인권위는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 “인권옹호기관이 아니라 인권심판기관 수준이다.”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몇몇 이슈에 대해서는 ‘똑부러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서 평가의 대상이다.그 한가운데 ‘이라크 파병 반대의견 표명’이 있다.중요한 국가정책이든 대통령의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든 관계없이,국가인권위는 오로지 ‘보편적 인권’의 편에서만 가감 없이 말해야 한다.그래야 국가인권위가 바로 서고,인권도 바로 설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고 도덕적이지 않은 전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미국에 이라크 전쟁은 올해 새로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10년 전에 이미 ‘승전’했고 2003년에도 ‘승전’이 선언됐으나 전쟁은 10년 내내 지속되고 지금도 의연히 지속되고 있는,오래된 수렁이다.베트남과 똑같다. 전쟁이란 본래 승자가 없는 법이다.패자만이 남는다.잠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으나 전쟁에서는 궁극적으로 패자가 된다.인류학자 전경수 교수는 최근의 한 글에서,2차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만이 예외적일 뿐 모든 전쟁에서 드러나는 ‘항복 이후의 복수’ 양상을 이야기한다.미국은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본처럼 ‘항복 이후의 복수’라는 장르가 없는 상대를 만날 수 없다. 그의 글은 ‘아쉽고,안타깝고,원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이렇게 끝난다. “한국군 파병을 요구하는 부시에 대해서 논리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정치가가 없는 것이 아쉽다.그러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브레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파병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한국군 참전의 부당함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가가 나서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젊은이들을 부적절한 전장 속의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원통하다.” 이라크 파병 논란에는 ‘국익론’ ‘동맹론’ 같은 신화들이 있다.신화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고,결코 도망갈 수 없는 한계상황일는지 모른다.이런 현실과 한계상황은 우리를 늘 절망적이게 한다.그 중에도 우리를 ‘아쉽고 안타깝고 원통하게’ 하는 것이 있다.우리의 외교력,협상력,담력(膽力) 같은 것이다. 마침 우리의 파병부대 이름,서희(徐熙·942∼998)가 주는 교훈이 있다.공병부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우리 역사가 기록한 최고의 외교역량으로서의 이름이다.문신인 그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 정벌에 나선 거란(契丹) 장수 소손녕(蕭遜寧)에 맞서,맨주먹으로 적진 담판에 뛰어들어 청천강에서 압록강 사이,옛 고구려 땅인 강동육주(江東六州)를 회복하고 거란군을 철군시켰다.그럴 수 있었던 비밀은 적장 소손녕을 위압-압도한 서희의 기개(氣槪)였다고 전한다. 파병,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 달 영 언론인
  • 임시閣議 이라크파병 결의/日자위대 ‘전투’가능성

    |도쿄 황성기특파원| 9일의 일본 각의 결정에 따라 자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전장에 파병된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일동맹과 일본의 국제사회 공헌을 강조하며 파병결정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전후 부흥지원을 위한 비전투병에 의한 비전투지역 파병을 강조하고 있으나 테러 등 사실상 전투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이라크에서 전투·비전투 지역 구분은 어렵다. 전투가 예상되는 파병이라는 점에서 종전의 분쟁지역 사후수습을 위한 ‘자위대 파견’과는 분명히 획을 긋는다.마이니치 신문은 9일 “테러나 게릴라 공격이 다발하는 타국 영토에 중무장 부대를 보내는 자위대 첫 전지(戰地) 파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화기 무장 비전투병이라고는 하지만 육상 자위대는 장갑차,110㎜ 개인용 대(對)전차탄,84㎜ 무반동포 등으로 중무장한다.치안이 안정된 사마와를 비롯한 이라크 남동부 지역에 파병될 계획이나 언제 테러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중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자위대 파병의 근거인 ‘이라크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이들 무기는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에 사용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까지를 정당방위 등으로 간주할 것인가이다. 긴박한 상황에 따라서는 정당방위를 넘어서 헌법9조가 금지하고 있는 무력행사도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이 제기하는 우려이다. 자위대원이 살해된다든지,적을 살해한다는 가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2차대전 패전 후 처음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자위대의 유혈활동이 국내외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이다.그러나 야금야금 ‘행동범위’를 넓혀온 자위대의 보폭이 이라크 파병으로 순식간에 커질 것은 분명하다.기본계획은 파병시기를 규정하지 않았다. 연내 육상자위대 파병을 보류하면서 최대한 ‘시간벌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파병하는 것이 득이지만 국내정치를 감안하면 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사상자가 나올 경우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는 악재 중 악재다. ●파병시기는 내년 초 유력 대전차용 84㎜ 무반동포는 분당 4∼5발 발사가 가능하다.110㎜ 개인 대전차탄은 1발을 쏘고 버리는 휴대용으로 파괴력도 무반동포가 크다. 두 가지 중장비는 소총 등의 경고사격으로도 정지하지 않는 차량 등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96식 장륜장갑차,경장갑차는 전투상황에서의 인원수송에 사용된다.4∼8륜으로 시속 100㎞의 속도를 낼 수 있다. 기관총 장비가 가능하지만 대전차포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지금까지 캄보디아,르완다 등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했을 때 신변을 지키는 최소한의 권총,소총,기관총이 고작이었던 장비에 비하면 단번에 몇 단계 수준이 뛰어올랐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8일 도쿄 시내에서 가진 가두연설을 통해 “자위대 파병은 태평양전쟁과 같은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파병중단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9일에는 공산·사민 양당이 거리로 나와 파병반대를 외쳤으나 이미 법제화를 마친 파병인 만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marry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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