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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하느님의 충복’ 별명 보수주의자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78)는 일생 동안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요한 바오로 3세’,‘하느님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그의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뒤 그는 보수적 추기경들의 지지를 모으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교황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든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지역적 지지기반이 약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는 “교황이 된다면 단기간만 재위하고 물러나겠다.”며 스스로 ‘과도기적 관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범한 유년기, 나치 전력으로 얼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4월16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마르크트 암 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전통적인 독일 농가의 분위기를 이어받았으며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던 명민한 소년이었던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나치와 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14살이었던 1941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에 가입했던 것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년단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어 1944년 입대, 방공포 부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탈영했다가 붙잡혔다. 전범수용소에 갇혀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석방됐다.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명성얻어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신학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2년 뒤 뮌헨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프라이징과 본, 튀빙겐, 레겐스부르크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가톨릭 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1962년 그는 35세의 나이로 쾰른대주교의 고문에 임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1977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뮌헨대주교가 됐으며 석달 뒤 추기경에 봉임됐다.198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딕토 16세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聖省) 수장으로 임명, 이후 24년 동안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1998년에는 추기경단 부단장,2002년에는 단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베네딕토 16세가 실질적으로 교황청을 이끌어왔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평생 보수주의 유지 베네딕토 16세가 보수주의적 입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68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동성애, 낙태, 피임, 여성 사제 서품 등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베네딕토 16세는 종교적 자유·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에 대해 “교회의 타락 과정이며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불길하고 파멸적인 것”이라며 분명하게 반대했다.2001년 6월 발표된 동성애와 자위행위 금지를 포함한 엄격한 교황청의 성윤리 지침과 지난해 7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관하여’라는 교황청의 문건을 작성한 사람도 바로 베네딕토 16세였다. 또 미국 주교들에게 낙태를 옹호하는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베풀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했다. 지난 13일에는 이혼, 동성결혼, 인간복제 등에 반대하는 교리를 담은 저서 ‘격변의 시대의 가치’를 출간했다. ●엇갈리는 평가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지자들은 대표적인 지적 성직자인 베네딕토 16세가 뚜렷하고 명쾌한 교리를 제시, 가톨릭 내부의 단합을 이끌 것이라며 환영한다. 베네딕토 16세는 10개 언어를 구사하며 7개 분야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강요자’로 부른다. 이들은 ‘해방 신학’의 주창자인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징계했던 것처럼 새 교황이 진보적 성직자들을 처벌하고 가톨릭을 중세시대로 돌려놓을 것으로 우려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사설] 한·중·일 3국 정상 만나라

    최근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상황을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유럽에서는 국경이 허물어지는 공동체가 속도를 내고 있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앙숙이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화해했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국가간 갈등 양상이 잦아들었다. 유독 동북아에서만 민족주의가 힘을 얻고, 패권다툼이 심해지고 있다. 한·중·일 3국 관계가 이렇듯 부끄럽게 된 주요 책임은 일본에 있다. 침략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영토분쟁까지 일으키니 주변국으로서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국 관계를 이대로 끌고 가는 것은 한국과 중국에도 손해다. 중국내 과격한 반일 시위에서 보듯 격렬한 대립은 국제사회에서 양비론을 일으킨다. 동북아 전체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넘어 지역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우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왜곡 논란, 영토분쟁, 북한 핵은 양자 논의로는 근원적 해결을 추구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한국이 앞장서 추진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일본의 거부반응을 고려해 미리부터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중국과 일본의 일차원적 편가르기를 완화하는 데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동북아균형자’라는 거창한 지위를 들이대면 반감을 살 가능성이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3국 정상간 만남을 제안해야 한다. 새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전 60돌 기념행사’는 한·중·일 정상이 회담을 가질 좋은 기회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참석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모스크바로 날아와 3국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모스크바회담이 안 되더라도 가까운 시일안에 3국 정상이 손을 맞잡는 다른 일정을 타진해볼 필요가 있다. 때마침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설이 나오고 있다.3국 정상이 만나 공동번영의 동북아공동체 추진을 선언하고, 그에 즈음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구도가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라고 본다.
  •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한승조, 지만원 등의 일제관련 망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반박 글을 쏟아냈다. 그러나 “백범 김구는 빈라덴, 일본경찰을 이유없이 죽인 살인범” “일본 대사관에서 집회를 하는 할머니 가운데 80%는 가짜” “전쟁 중에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반박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스러운 일이다. 정말 이런 망언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방안을 내놓았다.‘일제찬양 행위자 처벌 특별법’을 제정하여 망언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룡의원도 ‘일제침략행위 왜곡 및 옹호방지법안’제정 구상을 밝혔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위가 친일범죄, 또는 친일 반민족 행위로 규정한 행위를 옹호·찬양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반응을 보인 곳은 오히려 반대의사를 표명한 쪽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고 폐기돼야 할 국가보안법의 찬양죄 조항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런 법을 제정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쟁범죄 청산에 철저했다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조차 게소법(Gayssot Law)을 제정해 전범 부인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우리의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망언이 되풀이된다면, 미래세대 역사의 눈은 흐려지고 말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게소법은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한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독일과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르펜은 1987년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르펜은 이후 스스로 ‘망언’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밖에 수정주의 홀로코스트 사학자 포리송, 철학자 가로디, 국제법 교수 골니시 등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은 거대한 정치적 사기” “독일군은 보호자”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진짜인가”등의 발언을 했다가 처벌되었다. 게소법은 언론의 자유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자들은 이 법을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유엔인권위원회는 인권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도 게소법과 유사한 ‘홀로코스트 부인법’을 제정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을 경우 피해자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망언 제한법은 일제 피해자나 순국선열의 명예와 권리 구제를 현행법보다 좀더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국내에도 일제 식민지를 미화하는 ‘수정주의 사관’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즈음이다. 민족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이까지 생겼다. 식민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미래세대에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깊이 생각할 때라고 본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中·日갈등 정상회담 카드로 봉합

    |베이징 오일만·도쿄 이춘규특파원|중국내 반일시위로 1972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외교적 차원에서 갈등의 봉합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 정부가 ‘D데이’로 잡고 있는 것은 오는 22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다. 양국 정부는 회의 기간 중 별도로 중·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물밑 협상이 한창이다. ●中 지방정부서 개별보상 방침 양국 모두 분위기 조성에 착수했다. 반일시위와 관련, 일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중국의 중앙 정부 대신 지방정부 차원에서 ‘손해배상’을 추진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19일 보도했다. 상하이시는 지난 16일 반일시위로 파괴된 일본 식당에 대해 손해 배상 의사를 피력했다. 베이징 일본대사관에 대해서도 건물 소유주인 중국 외무부 산하 법인이 9일 시위대가 파괴한 유리창의 배상방침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중국측에 의한 사실상의 사죄 표명”으로 보고 양국 정상간 대화를 통한 현안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도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정부 관리들에게 반일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중국 관영 CCTV가 보도했다. ●리자오싱, 관리들 시위참여 자제 지시 앞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18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중국인의 반일시위로 발생한 폭력사태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 역시 관영 언론들을 내세워 3주째 이어진 대규모 주말 반일시위에 대한 자제를 호소,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8일 시평을 통해 “지금 단계에서는 안정이 중국 인민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며 시위 자제를 호소했다. 그동안 반일시위를 방관해 오던 중국 당국이 국면전환에 나섰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고이즈미 사과·배상요구 포기 시사 실업문제와 빈부격차 등으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반일시위가 자칫 반정부 시위로 전환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중국 지도부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 공안이 시위 주동자 7명을 체포했으며 이는 반일시위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길 희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5·4운동 기념일’이다. 중국 전역에서 최대 규모의 반일시위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이번 주 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 맞춰 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부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oilman@seoul.co.kr
  • 中 “日帝 생체실험현장 세계유산 신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이 2차대전 당시 일본 731부대가 만주지역에서 자행한 생체실험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중국일보가 19일 보도했다. 하얼빈(哈爾濱) 사회과학원 731부대 연구소 진청민(金成民) 소장은 “731부대 유적지는 일제 군국주의가 세균전으로 인류를 멸살하려고 기도한 곳으로 일본군이 중국에서 행한 잔학행위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관동군 731부대는 지난 1939년부터 일제 패망 때인 1945년까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의 비밀부대에서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수천명의 ‘마루타’를 대상으로 생체해부, 페스트 병원균 배양 등 세균전 실험을 실시했다. 당시 3000여명이 이 부대에서 살해됐고 부대 주변 주민 20만명이 실험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하얼빈 사회과학원 보고서는 주장했다. 보고서는 2차대전 당시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상태여서 이같은 전쟁 유적지의 세계유산 등재가 전례없는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oilman@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이 일본과 다르려면/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1959년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83달러였다. 이 수치 하나만으로 당시의 궁핍이 어느 지경이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그것이 해소될 전망이 도무지 없어 보였다는 사실이다.6·25 이후의 베이비붐으로 어린아이가 늘어 살림살이 전망은 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장면 정부 시절에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자 했지만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국자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북한의 존재였다.5개년 계획이 끝나는 시점의 경제지표를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높여 잡아도 북한이 1959년에 이미 달성한 바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허다했다.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북한은 가난해서 거지가 득실거린다.”는 대민 선전이 뿌리째 흔들릴 판이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우리나라는 몸에 밴 오랜 궁기(窮氣)를 떨어내고, 세계 자본주의사에 남을 만한 기적을 이루었다. 무엇이 우리 경제에 기적을 안겼는가? 그 이유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베트남 특수이다.1965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가 벌어들인 총 수입은 1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바람에 1인당 GNP는 1964년에 105달러였으나 1973년에는 373달러로 300%이상 증가했다. 베트남 특수로 우리 산업기반 자체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미국의 신뢰를 얻어 외자도입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렸고, 그로 인해 정유·화학·시멘트·철강 등의 전략적 기간산업의 설비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다.6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우리 기술로 냉장고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만들어냈을 때 국민은 그런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했다. 그런 기쁨은 만약 베트남 특수가 없었다면 아마 최소한 몇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베트남 특수의 성과는 외형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쌓은 우리 토목 건설의 경험은 1970년대 이후 중동 등 각지에서의 해외건설 붐을 가능하게 했다. 더구나 우리 기술자들이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경제활동의 범위가 그야말로 지구적으로 확장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소득이다. 우리가 60년대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데에 베트남 특수가 기여한 바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로 하여금 느닷없이 베트남 특수를 생각하게 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 역시 이웃나라의 전쟁 덕을 톡톡히 본 나라다.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경제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한국전쟁 특수로 단숨에 2차대전 이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켜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덕으로 다시 일어섰으면서도, 일본은 우리 가슴에 끊임없이 못을 박는다. 총리라는 분은 잊을 만하면 신사를 참배하고, 정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망언을 내뱉는다. 일본에도 한류가 통하고, 그래서 이른바 ‘욘사마 붐’이 일고, 그 여파로 요즘도 남이섬이 통째로 일본 관광객 차지가 되어 있는 사실에서 일본 국민의 정서가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지만,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 우파 지식인들은 그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다. 그들은 2세에게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갖게 하는 데 우리나라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속좁은 일본에 대해 우리가 모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베트남을 위해 무엇을 도울까를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 “마사코 일본 왕세자비 시부모와 갈등 자살위험”

    |베를린 연합|마사코 일본 왕세자비가 시부모인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의 갈등 때문에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었을 정도로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ARD가 보도했다. ARD방송은 “마사코 왕세자비는 중병을 앓고 있고 나루히토 왕세자는 고립돼 있으며 왕위 계승자는 보이지 않아 일본 왕실이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그녀의 친구들은 여전히 자살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ARD에 따르면 비극은 일왕 부부가 딸 하나만을 낳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주고 ‘살아있는 상징’으로서만 활동해 주길 기대하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왕세자비는 이런 희망을 들어줄 생각이 없고 들어주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 5개 국어에 능통한 직업 외교관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살리고 영국 왕실 가족들처럼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싶어한다. 익명을 요구한 왕세자비의 한 친구는 “왕세자 부부가 주변 관료들에게 줄기차게 이러저런 요구를 해도 늘 거부 또는 무시돼 왔다.”고 전했다.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자 일왕 부부는 아들 부부의 해외여행을 불허했고 공식 활동을 극도로 제한해 왔다.
  • “北·이란 안보리 회부할 수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엔대사로 지명한 존 볼턴 전 국무부 비확산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11일(현지시간) 열린 상원 외교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혹독한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야당인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볼턴의 인준을 무산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낮아졌다. 유일하게 볼턴에 반대 의사를 보였던 공화당의 온건파 링컨 차피 의원이 이날 청문회가 끝난 뒤 “볼턴의 청문회 답변에 대부분 만족한다.”며 지지로 선회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상원 외교위의 의석은 공화 10석, 민주 8석이며, 가부 동수면 인준이 부결된다. 청문회는 13일까지 계속된다. 청문회에서 민주당측은 ▲강경하고 일방주의적 노선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고 ▲국무부 차관시절 이라크 정보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고 ▲쿠바에 대한 생물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연설을, 정보 담당자들이 근거가 부족하다며 반대하자 인사 압력을 넣었던 의혹 등을 들어 볼턴 지명자를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볼턴은 시종 차분함을 유지하며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발언 당시와 상황이 바뀌었다.”는 논리 등을 내세워 방어했다. 그러나 볼턴은 북한 문제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6자회담에 기대를 표시하는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넘어갈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도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의 협상에 무게를 두지 않고 결국은 이란도 안보리에 회부될 것이라는 입장을 시사했다. 볼턴은 “안보리 회부가 자동적으로 제재를 뜻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으나, 북한과 이란의 안보리 회부를 “현실적 가능성”이라고 부르며 압박했다. 볼턴은 유엔 안보리 개편과 관련,“일본은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 때부터 상임이사국 진출을 매우 강력히 주장해왔고, 최근 수년간 더욱 강해졌다.”고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청문회 도중 방청객 3인이 ‘No Bolton’이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볼턴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여 청문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또 청문회를 앞두고 전직 고위외교관 등 60여명이 인준반대 요청서를 상원에 보냈고,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인준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반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굳이 볼턴을 유엔대사에 앉히려는 것은 “유엔이 2차대전의 산물이어서 3차대전인 냉전을 거쳐 4차대전인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시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체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교소식통은 설명했다. dawn@seoul.co.kr
  • “日 상임국 진출 재고를” 원자바오 中총리

    |뉴델리 AP·도쿄 교도 연합|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12일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를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흘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중인 원 총리의 이번 발언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과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발언으로,중국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에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 총리는 이날 뉴델리에서 기자들에게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항의 시위를 언급하며 일본 정부는 2차대전때 저지른 잔학상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 총리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중국과 아시아,더 나아가 전세계 인민들에게 막대한 수난과 고통을 안겨줬다.”며 “역사를 존중하고 과거를 책임지는 국가,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서 신뢰를 얻는 국가만이 국제사회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주재 중국대사관은 이날 일본내 중국계 시설과 중국인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요청은 지난 10일 요코하마 소재 중국은행 지점 건물이 훼손되고 다른 중국 관련 시설들도 협박 전화를 받는 등 최근 중국의 반일시위에 대한 맞대응으로 일본에서도 반중(反中)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 [씨줄날줄] 베를린 효과/이목희 논설위원

    근·현대 세계사의 주된 흐름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대치였다. 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해양국가의 패권에 독일-소련(러시아)의 대륙국가가 도전하는 양상이었다. 해양국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라시아 중심부를 제패하는 세력의 등장이다. 독일이 그를 노리다가 1·2차대전의 패배를 맛봤다. 이어 40여년간 유라시아 중심부를 지배한 옛 소련이 힘을 잃자 미국의 봉쇄정책은 중국쪽으로 방향이 옮아가고 있다. 유라시아세력이 밖으로 뻗는 길목은 4군데다. 동북아, 중부유럽·발칸반도, 중동·서남아, 동남아가 그곳이다. 근대 이후 큰 전쟁은 유라시아세력이 해양세력과 맞부딪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한국전, 월남전이 유라시아 변방에서 벌어진 대표적 전쟁이다. 냉전종식으로 동북아에서 북한·러시아·중국의 대륙세력과 한국·미국·일본의 해양세력의 동맹구도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청와대측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각판의 충돌을 예상하기 힘들 듯 유라시아 변방의 불안정은 여전하다. 양대 세력이 만나는 전형적 장소로 한국의 판문점과 독일의 베를린이 꼽힌다. 베를린에서는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대륙세력의 힘이 꺾였다. 엄청난 군사력이 밀집된 휴전선을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 베를린은 깊이 참고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대륙국가 소련을 설득해 베를린장벽을 깬 옛 서독의 지혜가 아직 한국 정부에선 보이질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부터 베를린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와 관련해 관심을 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3월 남북경협, 한반도냉전 종식을 골자로 하는 ‘베를린선언’을 발표해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독일과 베를린은 분단 이외에도 한국 상황과 연관이 많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독일의 모범사례가 재강조되어야 한다. 독일은 또 수도이전의 선배다. 통일 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문제로 나라가 들썩인 끝에 ‘부분 이전’ 절충안을 채택했다. 우리와 다른 점은 핵심부처가 새 수도로 이전했다는 것이다.‘동백림(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참여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고, 동백림사건도 진상이 새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효과가 주목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독도, 알아야 지킨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교과서들이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그동안 ‘망언’으로 치부해 왔던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그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독도 영유권 귀속의 논리를 가르칠 것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우리땅인지, 일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인지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독도 영유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독도 역사와 독도 관련 분쟁의 역사를 다룬 것부터 목숨을 걸고 독도 지키기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 지도로 본 독도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것들이다. ●CD로 듣는 독도 이야기(문철영 지음, 경세원 펴냄) 이 책은 단국대 역사학과 문철영 교수가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의 ‘역사이야기’란 코너에서 나누었던 대담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화하듯 쉽게 풀어낸 내용이어서 독도 영유권 문제의 윤곽을 더듬고 맥을 짚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책에 따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까지 크게 세번이다. 울릉도·독도는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 우리의 영토로 지속되다가 1693년 첫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극심했던 왜구의 피해 예방차원에서 조선 조정이 공도(空島)정책을 취한 틈을 타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에 출몰하면서 조선 어선들과 큰 충돌이 벌어진 것. 그러나 이때 어민 대표인 안영복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1699년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해주게 된다. 두번째 논쟁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을 표방한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일본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울릉도·독도 문제를 재조사했으나, 역시 조선 영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게 보고했다. 태정관도 이를 바탕으로 1877년 최종 지령문을 내무성에 내렸고, 내무성은 이를 시마네현에 통보했다. 책은 1905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주권이 미치지 않는 ‘무주지’로 규정,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고,2차대전에서 패전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의 애매성을 구실로 지금까지도 억지주장을 펴는 과정을 소상히 살핀다. 대담 내용을 담은 CD도 있다.1만원.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호사카 유지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지은이는 일본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주장만을 들으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믿어버릴 만큼 논리와 자료를 정교하게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을 논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다. 일본은 1693년 한·일 어민들간의 충돌때 도쿠카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은 울릉도일 뿐 독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37년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까지 간다는 도해 허가증을 받고 울릉도까지 넘어간 상인이 사형에 처해진 일을 내세우며, 이는 자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항해를 일본이 허용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에도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내줄 때는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였으므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해 허가증을 발행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3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도다. 책에선 우선 ‘대일본국군여지전도’와 ‘개정대일본도’,‘교정대일본여지전도’ 등 에도시대에 작성된 상당수의 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점을 주목한다. 독도에서 일본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섬은 그려져 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로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 ‘대일본전도’‘관판 실측전도’ 등 메이지시대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총 17장의 일본 고지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있다.1만 3500원.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양태진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지음, 제이제이북스 펴냄)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는 독도의 지세와 생태는 물론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의 독도 관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지도와 지명,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측의 주장, 독도문제의 본질, 독도 수호인 안영복과 홍순칠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포진한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시마네현 의회에서 거론돼온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1만 5000원. ‘아, 독도수비대’는 1950년대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뼈대로 한 실화소설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 한국 어부들을 방해하고 테러를 가하는 등 침탈행위를 일삼자 젊은이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방어에 나서는 이야기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암벽의 ‘한국령’이라는 표식도 이들이 새긴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중 사이버게임 대전 올 광복절에 개최 추진”

    “한·중 사이버게임 대전 올 광복절에 개최 추진”

    “올해 광복절에 한국과 중국간의 사이버 게임(스포츠) 대전을 추진하겠다.” 6일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에 취임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e-스포츠 발전에 대한 일성으로 이같이 밝혔다. e-스포츠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고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국제 무대를 주도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협회 2기 출범식에 앞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김 사장은 “e-스포츠는 1500만명 이상이 즐기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다.”면서 “전세계 게이머들의 꿈이 한국 무대에 진출하는 것인 만큼 이에 걸맞은 국제 위상을 정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중국과 함께 아시아 e-스포츠 대전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광복 60주년이자 동시에 중국의 2차대전 종전 60주년인 광복절에 사이버 한국-중국 대회를 갖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월드사이버게임즈(WCG), 월드e스포츠게임즈(WEG) 등 국제 e-스포츠 행사 등을 협회 안에 담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현재 11개 게임구단 중 아직 스폰서가 없는 6개 구단이 구단주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전용 경기장을 짓기 위해 올 하반기쯤 어디에 어느정도 크기 등으로 만들면 좋을지 타당성 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e-스포츠가 외국산 게임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국산 게임 개발과 종목 표준화 등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스포츠 상무팀 창설 추진”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e스포츠협회 제2기 출범식’에서 프로게이머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군 e-스포츠 상무팀 창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국군 e-스포츠 상무팀 창설이 400여 프로게이머의 숙원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국군 상무팀 창설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광복절에는 남북 청소년 게임대회가 열리도록 북측과 교섭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노벨문학상 수상자 美 솔 벨로 사망

    |뉴욕 연합|인간 영혼의 방황을 그린 우울한 희화적 소설들로 현대 미국문학의 한 기둥으로 꼽혀온 작가 솔 벨로가 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 자택에서 타계했다.89세. 벨로의 친구인 월터 포즌은 “벨로는 최근 기력이 쇠약해지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이 놀랍도록 맑았으며 부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벨로는 버나드 말라무드, 필립 로스, 신시아 오지크 등 2차대전 후 떠오른 신예 유대계 작가군에 속하는 인물로 미국 문학에 이민자 특유의 활기와 지적 탐색, 낭만주의자다운 고상한 관념을 불어 넣은 작가로 꼽힌다. 벨로는 1976년 ‘훔볼트의 선물’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같은 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전미도서상을 세차례 수상한 첫번째 작가이기도 하다.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캐나다 몬트리올 외곽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솔로몬 벨로우스. 시카고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던 그는 1993년 생애 대부분을 보낸 시카고를 떠나 보스턴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다섯 차례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고 84세 때 딸을 얻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 [열린세상] ‘균형자’ 역할 중국도 기대안해/정종욱 아주대 교수·前 주중대사

    요즈음 우리 언론에는 국가안보에 관한 험악한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동북아 중심론에서 시작해서 탈진영 균형외교론에 이르기까지 모두 따지고 보면 국가안보의 기본구도를 바꾸겠다는 엄청난 함의를 지닌 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와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국민들이 낡은 생각에 매달려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안보구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몰라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은 정부가 새로운 안보구도의 분명한 청사진도 없이 지금의 구도를 흔들어 대는 게 아닌지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서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안보구도의 핵심은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국방장관도 한·중간의 안보협력을 적어도 한·일 수준으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안보협의를 정례화해서 국방장관 회담은 매년 열고 실무자 회담은 1년에 두 차례 개최한다고 한다. 문제는 과연 한·중간의 군사협력의 목적과 한계가 무엇이며 한·미동맹과 한·중 군사협력은 어디까지 같이 갈 수 있을 것인지가 논의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호불위적 동당풍험(互不爲敵 同當風險)’이란 말이 있다.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고 위험을 같이했다는 뜻으로, 대외관계에서 전략적 동맹국가와 경제적 협력상대를 구분할 때 흔히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의 동맹국가이지만 한국은 경제적 협력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북·중관계는 경제분야에서는 한·중관계에 비교가 되지도 않을 정도로 중요성이 낮지만 안보분야에서는 반대로 한·중관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요성을 갖는다. 과거 한때 우리가 한·미동맹을 사활적 관계라고 표기한 적이 있었지만 북·중관계야말로 사활적 관계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언제나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있어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고 이런 사정은 세월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오래 전부터 위험을 같이해왔다.1930년대 중국공산당 당원으로서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운동을 벌였던 김일성은 2차대전 이후 국공내전이 벌어졌을 때 북한을 중국 해방군의 후방기지로 제공했고 한국전쟁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구해 주었다. 한·중 수교로 관계가 소원해지기 전에 김일성은 39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다. 한·중 수교를 하면서도 중국정부는 북한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단계적·점진적으로 관계를 개선해 나갔고 매번 북한의 양해를 구했다. 북한의 반대가 심할 때에는 한국과의 협상속도를 늦추기도 했고 정상이 직접 나서 북한을 설득하기도 했다. 한·중 수교 이후에도 북·중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물론 필요하면 유엔동시가입 때처럼 북한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 경우에 한했다. 중국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한·중관계가 북·중관계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관계보다 한·중관계를 중시하거나 한국이 동북아에서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가이다. 미·일동맹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에 의존할 정도로 약하거나 어리석지도 않다. 한국이 미·중 협력관계에 방해가 되는 상황은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미국이 북한이나 타이완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할 경우 이를 견제해주는 보조적 역할이다. 한·중 국방장관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신축성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는 보도가 바로 이런 중국의 입장을 시사해준다. 한·중협력의 강화는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의 능력과 전략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냉철한 외교정책을 수립해서 추진해 나가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새 친구는 물론 옛 동지마저 잃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前 주중대사
  • [이도운특파원 워싱턴저널] 미·일동맹 토론회 독도문제 관심사

    4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워싱턴의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미·일 동맹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당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AEI의 댄 블러멘설 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같은 주제의 논문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존재의 이유조차 희미해졌던 미·일 동맹이 테러와의 전쟁과 북한 핵 문제로 활력을 되찾았으며, 이를 토대로 향후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사일 방위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위상을 강화시킨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블러멘설 연구원이 사회를 맡았고 주미 일본대사관의 가네하라 노부카쓰 정무공사가 일본측,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동북아시아 정책분석관이 미국측, 제네바 국제대학원의 랜신 시앙 교수가 중국측 입장을 각각 설명했다. 여기에다 또다른 한 자리를 차지한 토론자는 주미 호주대사관의 앤드루 시어러 정무담당 공사참사관이었다. 동북아 정세를 중심으로 미·일 동맹을 논하는 자리라면 호주가 아니라 당연히 한국의 외교관이 참석했어야 한다는 ‘한국적 상식’과는 동떨어진 구성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아태 지역을 바라보는 미국측, 좀더 범위를 좁히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AEI의 시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한반도 문제가 주요 논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 그 가운데서도 독도 문제가 미·일 동맹 토론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토론자는 발비나 황 연구원이었다. 그녀는 “독도 분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간의 협력이 방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네하라 공사는 일문일답 시간에 질문이 이어지자 “독도는 (2차대전)전쟁 후 한국이 장악했다.”면서 “우리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법정에서 해결하자고 주장해 왔고 한국은 이를 거부해 이 문제로 인한 분쟁이 계속돼 왔다.”고 말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발비나 황 연구원뿐만 아니라 가네하라 공사도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서 줄곧 일본측 명칭인 ‘다케시마’ 대신 독도라고 호칭한 점이다. 토론이 끝난 뒤 그 이유를 묻자 가네하라 공사는 “질문자가 그렇게 (독도라고)물어서 그렇게 답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dawn@seoul.co.kr
  • [책꽂이]

    ●발끝으로 오래 설 수 없고 큰 걸음으로 오래 걷지 못하네(김홍신 지음, 해냄 펴냄) 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소설가 김홍신이 소설을 쓰지 못한 시간 동안 가슴에 품어온 이야기들을 수필집에 풀어놨다. 정치판에서 겪은 다양한 일화들, 문학수업을 받고 등단하기까지의 사연, 가족 이야기 등을 두루 엮었다.9000원. ●누드 크로키(태기수 지음, 이룸 펴냄) 1998년 현대문학 7월호에 ‘소와 양’이 추천돼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인작가 태기수의 첫 창작집.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주제로 한 등단작 ‘소와 양’을 비롯해 표제작 ‘누드 크로키’‘롱아일랜드에 갇힌 사내’‘게임 월드’ 등 현대사회 인간의 실존을 생각해 보게 하는 중·단편 9편이 실렸다.9500원. ●맘모스 편의점(구광본 지음, 돋을새김 펴냄)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나의 메피스토’‘미궁’ 등을 내놓은 작가 구광본이 소설집을 냈다.1988년 발표한 ‘섬’부터 최근작 ‘맘모스 편의점’까지 8편의 중·단편을 수록.24시간 편의점에 설치된 CCTV의 눈으로 그 안을 들락거리는 인간군상을 탐색하는 표제작 등은 “혼란과 미로의식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표현한 포스트모던 소설”(문학평론가 김성곤)이라는 평.8500원. ●텔크테에서의 만남(귄터 그라스 지음, 안삼환 옮김, 민음사 펴냄)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78)의 장편소설. 신·구교의 갈등으로 촉발된 30년전쟁 끝 무렵, 독일의 시골마을 텔크테가 작품의 배경이다. 독일의 시인들이 전쟁으로 분열된 조국을 문학으로 치유해 보고자 모였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위선과 탐욕의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는 내용.2차대전 후 1947년 소설가 한스 베르너 리히터가 결성한 독일 ‘47그룹’의 이야기를 300년 전 시점에 대입시켜 소설로 재구성했다.8000원.
  • 日 ‘전방위 외교전쟁’ 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패전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주요국들과 ‘전방위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사안마다 심각한 내용이다. 따라서 무차별적인 외교갈등이 지속되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이 왜 이처럼 ‘고립외교’를 각오하면서 강력한 힘의 외교, 실력외교를 밀어붙이는 것일까. 패전 후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다.”는 국민정서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대중국 무기금수 해제 EU와도 대립 고이즈미 총리는 27일 중국에 무기수출을 재개하려는 EU 움직임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다. 시라크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지일파여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과는 미국산 쇠고기수입의 재개 여부로 미국의 무역보복설이 심상찮다. 주일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일본측의 언론플레이도 미측을 자극하고 있다고 도쿄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일본 정부고위관계자가 미국의 각종 이전협상 제안내용을 언론에 흘려, 해당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반발하도록 유도해 주일미군 재배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이 3년반 동안 중단된데다 동중국해 가스전과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등을 둘러싼 분쟁이 한창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반일감정이 격해지면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ㆍ러시아명 쿠릴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일본방문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씨 유골의 가짜 논란 등으로 관계가 지극히 냉각된 상태다. ●2차대전 전의 옛 영광을 꿈꾸는가 고위 외교소식통은 일본의 이같은 전방위적 ‘외교전쟁’에 대해 “2차대전 패전 후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일왕제를 존속시킨 것이 뿌리”라면서 “일왕을 중심으로 단결,2차대전 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패전 60주년을 맞아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시대변화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일본사회의 주역은 전후세대다. 전쟁의 참상과 책임을 모르는 이들은 “다른 나라처럼 할 말도 하고, 군대 보유도 하면서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며 경제대국에 맞는 대접을 원한다. 아베 신조 자민단 간사장 대리가 대표적 인물이다. 또 90년대 초반부터 경제거품이 꺼지면서 자존심이 구겨지자 ‘외교갈등을 감내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언론들도 이러한 갈등 국면에서 무조건적으로 일본 정부편을 드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자에서 한국 중학교의 국사교과서가 독도관련 기술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도쿄신문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비판 담화에 대해 “사실 오인도 있다.”고 주장했다. taein@seoul.co.kr
  • [지금 그곳은] 서울아트시네마

    [지금 그곳은] 서울아트시네마

    황사 때문일까.24일 늦은 오후 서울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를 내려다보는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정독도서관을 향하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십여명 남짓한 관객들이 나온다. 카메라를 무기로 2차대전 직후 전후 독일 사회를 예리하게 해부했던 ‘뉴저먼시네마’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회고전이 끝난 직후다.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예술영화의 현실이 노을과 함께 이들의 얼굴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 팬들에게 성소이자 고향이다.2002년 5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 의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개관했다. 장뤼크 고다르, 최양일, 로베르 브레송 등 영화사 교재에서 ‘문자’로만 봤던 거장들의 작품을 이곳에서 ‘영상’으로 접하는 것은 영화팬들에게 차라리 감동에 가까웠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인권영화제, 독립영화제 등도 매년 개최하는 등 ‘낮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암초에 부딪힌 것은 지난해 6월. 임대료 인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폐관 위기에 처했다. 오는 5월 개관할 서울역사의 예술영화전용관도 3개관에서 2개관으로 축소되면서 안정적인 둥지의 기대마저 무너졌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아트시네마는 종로2가 허리우드 극장에서 제2의 ‘셋방살이’에 들어간다.4월14일 개관식 및 후원의 밤이 열린 뒤 다음날부터 ‘카사블랑카’,‘닥터 지바고’,‘정사’ 등 불후의 명작을 상영하는 ‘시네필의 향연’이 준비돼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계약이 끝나는 2년 안에 전용관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하루살이’는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돈’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매년 3억 4000여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2억원에 가까운 연간 극장임대료와 프로그램 진행비 등을 내면 매년 1000만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 영화 수입비 등까지 감안하면 수천만원의 현금이 주머니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 운영 자체가 어려운 셈이다. 관계자들은 “해답은 십수년 동안 영화 단체들이 주장해 온 예술영화전용관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화 발전을 위해서는 영상자료원의 필름 기록보관소와 소장한 영화를 틀 수 있는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영진위든 문화부든 어느 곳에서도 이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울시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김노경 사무국장은 “몇 년 안에 필름 아카이브와 전용관을 마련하겠다는 장기적인 플랜이 전무하다는 것에 더욱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4월3일 오후 6시30분.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의 마지막 시간표다. 상영작은 ‘안녕, 용문객잔’. 국제적인 거장이지만 타이완 내에서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차이밍량의 작품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日 극우 민족주의 바람몰이 영토분쟁을 지렛대로 활용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일본은 극우주의와 민족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사가 27일 자매지인 주간지 요망(瞭望)의 분석기사를 전재했다. 요망은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래 국내에서 ‘해양 일본론’이 급속히 대두됐고 러시와와 북방의 4개 도서를, 한국과는 독도를, 중국과는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놓고 각각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최근 주변 3개국과 동시에 영토분쟁을 시작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배경으로 일본 정치·사회의 우경화와 해양 주도권 확장을 꼽았다. 특히 “일본이 한·중·러 3국과 도서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며 민족주의를 확산하는 양상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과 매우 유사하다.”며 일본의 재무장을 통한 군국주의화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잡지는 일본이 식민지 전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른바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에 호소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일본 영토분쟁의 수법은 민간 세력이 ‘도발’하고 정부가 배후에서 조정하는 ‘관민 합작’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과학원 국제전략 청야원(程亞文) 박사는 “일본이 ‘해양의 확장’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섬과 암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서쪽을 향해 해양세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 봉쇄 전략’과 맥이 닿는다고 주장했다. 요망은 “1990년대 후반 거품경제가 붕괴하며 좌절을 겪으면서 일본의 민족심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며 이런 배경 때문에 정치·외교적으로 민족주의 정서의 분출구가 필요하게 됐고 바로 이런 상황이 2차대전을 일으키기 전과 아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사회과학원 펑자오쿠이(馮昭奎) 연구원은 이와 관련,“고이즈미 정권은 국내 개혁 실패에 따른 실각 위기를 영토분쟁을 통한 민족주의 고양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릴열도 등 북방 4개 섬과 독도보다 댜오위다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중국의 시각이다. 영토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 참가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oilman@seoul.co.kr
  • 여야의원 24명 부산~모스크바 ‘지프랠리’

    국회의원들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지프 랠리’에 나선다. 북한에도 동참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4명과 러시아 국회의원 5명 등 29명의 참여가 확정됐다. 국회 연구모임인 ‘한민족평화네트워크’의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과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25일 “남북한과 러시아 국회의원이 지프 25대를 운전해 한반도를 횡단한 뒤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가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모임 24명의 의원이 참여할 뜻을 밝혔다. 러시아 의회에서는 카레이스키(고려인)인 장 르보미르 의원 등 5명이 동참한다. 랠리단은 오는 7월말 부산을 출발, 서울·평양·원산을 거쳐 대륙으로 넘어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모스크바까지 가기로 했다. 북한에는 민화협을 통해 최고인민회의에 동참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고, 다음달 말까지 최종 확답을 받을 예정이다. 시베리아 철로를 따라 가는 이동경로에는 대략 30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횡단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을 ‘찍고’ 돌아와 다시 배편으로 러시아로 이동하는 ‘편법’도 검토 중이다. 이같은 행사는 평화네트워크 의원들이 이달 초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했다가 아이디어를 내놨다. 박계동 의원은 “장 르보미르 의원이 저처럼 택시를 몰았던 경험이 있어 뜻도 잘 맞았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수교 120주년을 맞았고, 올해에는 각각 광복 60주년과 2차대전 승전 6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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