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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때 日공격” 中해커 ‘동원령’

    |도쿄 이춘규특파원|2차대전 종전 60주년 기념일인 오는 15일을 전후해 중국과 일본간에 대규모 사이버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중국인 해커 4만 5000명이 15일을 전후해 일본 사이트 총공격을 계획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해커집단이 앞장서 총공격을 촉구하고 있다. 양국간 해커전쟁은 9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측의 반격이 거세 중국이 열세라는 분석도 있어 중국측은 올해 8월15일을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해커들은 역사왜곡 비난을 받고 있는 후소샤 출판사와 일본내 반중사이트를 공격목표로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중국내 해커집단은 최근 “올해에는 한국 3개 대학과 인터넷게임 프로바이더도 공격거점으로 이용한다.”고 밝혀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경유한 공격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taei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원자폭탄이 있으니 대규모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로 우리가 누릴 것은 무한정으로 연장된 평화 아닌 평화뿐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2차대전이 종료된 후 두 달여쯤 지난 1945년 10월19일 조지 오웰은 ‘트리뷴’지 칼럼에 위와 같이 썼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오웰의 바람대로 아직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수천배 위력을 지닌 핵폭탄에 둘러싸인 채 ‘평화 아닌 평화’ 속에 현대인은 숨죽이고 살고 있다. 8월6일은 일본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1945년 8월6일,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권기대 옮김, 황금가지 펴냄)는 첫 원폭 실험에서 실제 투하까지 긴박했던 3주간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 스티븐 워커는 작가이자 12년간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히로시마:세계를 뒤흔든 그날’이란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원자폭탄을 주제로 씌어진 책은 많았지만, 주로 원폭 개발 과정을 다룬 과학서이거나 일본측 시각에서 피폭자들의 참상을 다룬 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원폭 실험 성공(1945.7.16)부터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8.6)되기까지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이 원자폭탄의 자취를 좇아 로스앨러모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과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몇몇 도시들, 그리고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발진했던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작고 외딴 티니언 섬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 가운데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원자폭탄 제작을 책임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 스탈린을 따돌리고 실제 투하를 결정한 처칠과 트루먼, 요동치는 B29 안에서 원자폭탄을 조립한 폭격수 모리스 젭슨 소위, 그리고 히로시마 피폭자 중 살아남은 이들 등등. 수많은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저자는 60년 전에 있었던 사상 최대의 ‘작전’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티니언 섬 509대대 병영은 이제 정글 속에 묻혀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대원들은 지금까지도 매년 친목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미 상당수가 사망해 몇명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금 당시와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마치 ‘히로시마 원폭의 망령’이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개명한 21세기에 ‘신(神)’을, 그것도 ‘현인’으로 존재하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있다. 국가의 구심점,‘현인신’(顯人神·아라히토카미) ‘천황´을 떠받드는 일본인들이다. MBC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천황´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5부작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을 준비했다.7일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8일에는 2·3부 ‘사쿠라로 지다’와 ‘신을 만든 사람들’,14일에는 4부 ‘충성과 반역’,21일에는 5부 ‘제국의 유산’이 전파를 탄다. 방영시간이 밤 11시∼12시대여서 아쉽다. 사실 ‘‘천황´’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실토했듯 일본 ‘천황´가가 백제 무령왕의 방계 일족이라는 점은 이런 저런 자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을 사실상 백제 계열의 국가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게다가 장군들이 통치하는 막부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천황´은 아무런 권력없이 은거하고 있는 상태가 됐다.MBC가 조명하는 대목은 메이지유신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천황´이 어떻게 만세일계의 절대권력자이자 일본의 상징으로 떠올랐는가이다. 1부에서는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토로하는,“‘천황´과 황실 얘기만 나오면 일본인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안된다.”는 현상을 다룬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믿음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다.2부는 2차대전 당시 ‘인간폭탄 부대’였던 카이텐, 오오카 부대원들을 다루면서 어떻게 꽃다운 젊은이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죽어가야 했는지를 묻는다.3부는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이 부각되는 과정을 다뤘고,4부는 ‘천황´제를 둘러싼 극우세력들의 테러와 협박,5부는 미·일동맹 아래 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이 ‘천황´을 어떻게 다시 이용하려 드는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쏠쏠하게 건진 것들도 많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보도지침을 뜻하는 기쿠 터부,2차대전 당시 일본 본토에서 미국에 결사항전하기 위해 지은 마쓰시로 대본영의 모습, 얼마전 논란이 일었던 ‘천황´의 사이판 방문 이모저모, 일본국 헌법개정을 둘러싼 논란 등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나 이런 사실관계를 다룬다 해도 일본인이 변할까. 제작발표회장에 참석한 한 일본 기자는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지만 ‘믿음’은 사실관계와 다른 차원의 문제기 때문이다.‘천황´제에 이의를 제기하던 메이지 당시 민권운동,20세기 초 공산주의,60∼70년대 적군파, 이들 모두가 실패한 이유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세계의 도청 실태] 美, 지구촌 통신망 70% 24시간 감시

    [세계의 도청 실태] 美, 지구촌 통신망 70% 24시간 감시

    지난 2001년 9·11테러 전날 “엄청난 일이 다음날 터질 것”이라는 아랍어 통신 2건이 위성 감청망 에셜론(Echelon)에 포착됐지만 이 내용을 번역하는 데 이틀이나 걸리는 바람에 미 보안당국은 참사를 막아내는 데 실패했다. 국내에서 ‘안기부 X파일’에 따른 불법 도청 파문이 연일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전문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8일자)는 커버 스토리로 9·11 이후 더 광범위해지고 일상화된 도·감청 및 감시 시스템을 집중 조명했다. ●더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9·11테러 정보 분석에 실패한 것은 에셜론의 하루 수집 정보가 미 의회 도서관 문서의 10배여서 이를 분류하고 가중치를 둬 분석하는 데에만 엄청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정보들은 이제 12시간 안에 번역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에셜론을 주관하는 미 국가안보국(NSA)은 실시간 번역과 분석을 목표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에셜론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동안 3000여명의 알 카에다 관련자를 체포함으로써 100여건의 테러를 예방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하고 있다. 영국에선 런던 50만대를 비롯,400만대의 카메라가 길거리, 공원과 정부 건물 등을 샅샅이 비춰 수상한 이를 즉시 가려내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일도 차츰 현실화되고 있다. 현관에 설치된 ‘인공코’를 이용, 누군가의 머리카락에 남겨진 폭약 흔적을 추적할 수 있거나 저수지에 떠있는 조그만 센서로 단파나 무선 신호를 감지할 수도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걷는 모양이나 귀 형태를 보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까지 등장했다. ●유엔, 도감청 기술과 방지 기술의 경연장 뉴욕 유엔본부는 세계 최고의 ‘스파이 소굴’ 역할을 하고 있다. 본부 건물뿐만 아니라 191개 회원국 공관이 입주해 있는 바로 옆 건물과 유엔 직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식당, 자동차에는 도·감청 장치 또는 방지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새로 부임한 이들은 사무실과 집, 차에 도청 방지장치를 달 것을 맨먼저 동료들로부터 조언받는다. 건물 옥상들에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세워 둔 안테나들이 숲을 이룰 정도다. 공원이나 식당에서 외교관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스파이들은 ‘입술 읽는 훈련’을 받은 이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전자코 등 미래의 감시기술 비즈니스 위크는 숨겨진 총이나 칼을 촬영할 수 있는 초미세 열파 카메라, 종전의 지문 날인 시스템보다 위조가 어렵도록 일본 후지쓰사가 개발 중인 손바닥 동맥 인식 시스템 등이 곧 시장에 선보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몇년 후에는 무기나 폭약을 숨긴 사람에게서 나오는 고주파를 감지하는 T레이 카메라가 실용화될 것으로 보았다. 또 버팔로 대학 연구팀은 숨이나 땀 등에서 특정 냄새를 가려내 이를 레이저로 분석하는 전자코를 개발 중이다. 이 장비는 냄새를 맡아 신원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질병 감염, 나아가 여성의 임신 여부까지 가려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에셜론이란 에셜론은 미 NSA가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기관과 함께 운영하는 감청 시스템으로,120여개의 첩보 위성을 통해 전세계 전화와 휴대폰, 팩스,e메일 등을 감시한다. 최근에는 인공위성뿐 아니라 초단파 송수신탑, 광케이블로까지 확대돼 전세계 통신망의 70%를 커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위크는 “하루에 미 의회 도서관 자료의 10배에 해당하는 정보를 도청한다.”고 보도했다.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에셜론의 슈퍼 컴퓨터는 ‘테러’,‘폭발’,‘암살’ 등의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거나 특정인의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골라 감청한다. 또 ‘데이터마이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서로 동떨어져 있는 정보들간의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견해 내기도 한다. 중심 기지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요크셔 맨위드힐에 있고 미국인 1000명 이상이 투입돼 매년 200억달러의 예산을 쓰고 있다. 에셜론의 실체는 1998년 영국 출신 기자인 덩컨 캠벨이 유럽 의회에 통신감청 의혹을 제기해 처음 밝혀졌으며,2001년 유럽 의회가 에셜론의 상업적 이용이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보고서를 냄으로써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원래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비밀암호를 캐기 위해 미·영 등이 첩보협정을 맺은 데서 출발해 이후 공산권 감시를 위해 본격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점점 더 기업 비밀과 경제 정보도 무차별적으로 수집, 미국이 거대 입찰과 조달 계약 등 민간 경제 정보를 빼내 자국 기업에 넘겨준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미국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자국 기업의 공정한 거래를 위해 뇌물 거래 정보를 수집한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이에 따라 유럽 의회는 회원국들에 에셜론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암호 사용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고 영국에는 에셜론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도와 감청망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계급간 타협이 ‘시장발전의 원동력’

    계급간 타협이 ‘시장발전의 원동력’

    마르크스와 베버. 흔히 자본주의의 ‘기원’을 따지다 보면 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경제 개념(궁핍)을,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라는 문화 개념(절제)을 답으로 제시했다. 후대에 다양한 버전이 이어졌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주장이 자본주의 기원과 발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나왔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이자 네오마르크스주의자 하르트무트 엘젠한스의 목소리를 빌려 그 비판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바로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이국영 교수의 ‘자본주의의 역설:계급균형과 대중시장’(양림 펴냄)이다. 책의 요지는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전제로 한 체제라는 생각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외려 “평등해야 발달할 수 있는 게 바로 자본주의 체제”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상식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방법은 비교정치학이다. ●계급‘차별’이 아니라 계급‘평등’이 자본주의의 원동력 ‘원조’ 자본주의 국가는 영국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자본주의로 바뀔 당시 유럽 최고의 국가였을까. 아니었다. 오히려 식민지 개발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생산기술이나 국가주도의 산업정책에서는 프랑스에 한참 뒤져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 모두를 추월했는가. 엘젠한스는 ‘계급간 균형’을 그 원인으로 짚는다. 다른 나라들은 지배계급이 강대했다. 그러다 보니 신분제를 바탕으로 피지배층을 잔인하게 착취할 수 있었다. 손쉽게 돈을 번 지배층은 사치와 향략으로 이를 탕진해버렸다. 포르투갈·스페인·프랑스가 재정흑자를 바탕으로 강력한 산업진흥정책을 폈다곤 하지만, 생산물은 지배계급을 위한 사치품뿐이었고 피지배계급은 소비력이 전혀 없었다. 자본의 축적이니, 시장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혁명으로 이런 상황을 돌파한 프랑스는 자본주의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포르투갈·스페인은 3류국가로 전락해버렸다. 이에 반해 영국은 잇따른 역병과 전쟁 때문에 지배계급의 지배력이 크게 약화됐다. 피지배계급을 착취하려 들었다가는 국가 자체가 붕괴될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피지배계급에게 양보를 거듭하는데 이것의 정점이 바로 명예혁명의 실체라는 설명이다. 착취 안 하고 임노동 계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지배계급으로서는 큰 양보라는 것. 간단히 생각해 보아도, 돈 있는 사람이야 권력을 끼고 앉아 땅이나 사고 매점매석하는 게 속 편하지, 애써 공장 지어서 뭘 만들고 노동자들과 씨름하는 게 나을 리 없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혹독한 착취(마르크스) 때문도 아니고, 유달리 종교적이고 근면성실한(베버) 유럽인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간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못 가진 자의 시기와 질투가 곧 성장엔진이다 기원에 대한 이런 설명은 자본주의 발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성장주의자들은 분배니, 평등이니 하는 개념을 못마땅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부 보수언론의 칼럼에서는 이를 ‘못 가진 자들의 시기와 질투’로 매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엘젠한스의 논리에 따르자면 ‘못 가진 자들의 시기와 질투’, 여기에 이은 계급간 갈등, 그리고 타협이야말로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엘젠한스는 이 메커니즘을 ‘대중시장’이라 이름붙였다. 쉽게 말해 ‘노동자들이 월급 올려달라고 또 파업하네.’라고 말하는 것은 자본가 시각의 1차원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임금 상승은 생산비를 늘리지만 동시에 그만큼 소비자의 구매력도 강화시킨다. 이런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과정이 바로 대중시장인 것이다. 이는 박정희시대 고속성장의 원인에 대해서도 해명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박정희시대를 다른 나라와 비교한 국제비교연구 결과를 보면 고속성장에도 불구하고 분배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보수주의자들은 성장 위주 정책 때문에 ‘떡고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엘젠한스 논리에서는 정반대다. 박정희시대 고속성장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소득분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냉전과 독재의 영향도 있었다.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 정착과 함께 세계적 호황이 찾아왔다는 사실도 하나의 증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 kr
  •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한·일 국교정상화는 올해로 40주년이 된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의 영역을 넘어 사회·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대 발전돼 가고 있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은 공동으로 한·일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 한·일관계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향후 발전가능성에 대해 탐색하고자 했다. ■ 양국관계 평가·전망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최근 반일의식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일관계 자체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종전 60년, 한·일 국교정상화 40년 동안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44.1%로 ‘나빠졌다.’ 15.7%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변함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응답도 37.0%로 나타났다. 한·일관계가 좋아진 이유(복수응답 허용)로는 ‘월드컵 축구 공동 개최’를 꼽은 응답자가 34.7%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경제 교류’ 33.8%,‘한류붐’ 26.5%,‘자매도시 교류를 비롯한 민간 교류’ 18.8% 순이었다. 관계가 나빠진 이유로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70.7%로 압도적 다수가 지적했다. 우리 국민 세 명 중 두 명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가장 못마땅해한다는 뜻이다.‘과거의 역사’ 35.7%,‘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26.1%,‘문화 관습의 차이’ 13.4% 등도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열거됐다. 특히 일본에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관계는 악화되었다고 보는 국민들의 72.2%가 독도 문제를 그 이유로 지적했다. 또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필요하지만 관계는 악화됐다고 보는 국민들도 77.0%가 독도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한국 국민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직결되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인 84.3%가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반성하고 있다.’는 비율은 12.4%에 그쳤다. 일제 식민지를 몸소 경험했던 70대 이상(69.0%)에서보다 20대(84.8%)와 30대(86.6%)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 국민들의 다수는 양국 관계의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44.1%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고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에 불과했다. 다만 ‘변화 없을 것’이란 비율이 36.5%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 일본 국민들은 어떨까.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51.2%로 우리 국민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변함 없다.’거나 ‘나빠졌다.’는 각각 24.6%,20.6%였다. 좋아진 이유로는 ‘한류 붐’이 56.6%로 가장 많았고 ‘월드컵 공동 개최’ 49.2%,‘경제 교류’ 46.1%,‘민간 교류’ 39.6% 등 순으로 경제 교류나 월드컵보다 한류 붐을 먼저 꼽는 약간의 인식차를 보였다. 한류 붐이 몇몇 대중 스타의 반짝 인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 자체를 변화시켜 양국 국민들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빠진 이유는 한·일 간 서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독도 문제’가 63.6%로 역시 높았고 ‘과거사’ 55.3%,‘신사 참배’ 51.5%,‘문화 관습의 차이’ 33.0% 등이었다. 일본 국민 역시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과반수인 52.3%가 답했다.‘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변화 없을 것’ 29.9%였다. 이같은 징후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한 일본 국민이 53.9%로 나타난 데서도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20대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비율이 60.3%로 전체 평균보다 높은 점은 앞으로 한·일관계 미래를 밝게 점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43.4%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해 한·일 간 장벽을 느낄 수 있다. 총리의 신사 참배를 한국과 중국이 문제 삼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양국민 감정’ 총평 한국인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감정적으로는 일본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을 필요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감정과 현실인식 사이에 부조화현상이 발견된다. 반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비교적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으로도 한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감정과 인지가 비교적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0년간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두 나라 국민 모두 좋아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으며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한·일관계가 더욱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 반성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일본인들은 고이즈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양 국민 모두 상대방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상당수 한국인들이 일본을 동아시아 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한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를 아직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의 재무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 대다수는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등의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측의 진지한 과거사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는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은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들과 교류하고 배워나가야 한다는 실용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결과가 한·일관계 개선과 발전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양 국민이 서로 감정과 인식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현안들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풀어나간다면 한·일관계는 상생의 틀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남영 KSDC소장 nlee@ksdc.re.kr ■ 동아시아 최대 안보위협국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일본인들은 북한과 중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경우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이 강했으며, 일본에선 젊은 세대의 반북(反北)감정이 거셌다.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4.2%가 미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중국과 일본·북한을 지목한 응답자는 각각 21.7%와 20.6%,17.1%였다.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미국을 위협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20대와 30대의 각각 34.4%와 29.1%가 미국을 지목했다. 반면 40대와 50대,60대에선 미국을 꼽은 비율이 21.5%,19.1%,7.8%에 그쳤다. 40대는 최대 위협 국가로 중국을,50대는 중국과 일본을 지목했다.60대에선 북한이 24.5%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포인트 차이로 뒤를 이었다. 예상과 달리 70대 이상에선 미국이 21.1%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6.9%로 그 다음이었다. 이는 2차대전을 체험한 이들 세대의 경우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각심과 공포심이 무의식 속에 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측은 분석했다. 일본인 여론조사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각각 37.7%와 37.2%로 나와 월등하게 높았다. 미국은 10.8%에 그쳤다.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지목한 비율이 높았고 50대 이상은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았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릴수록 북한을 위협 국가로 지목했으며 부정적으로 평가할수록 중국을 꼽았다.‘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느낀다.’고 밝힌 응답자 556명 중 가장 많은 43.5%가 북한을 지목한 반면,‘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280명의 46.4%가 중국을 첫번째로 꼽았다.‘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도 ‘관계가 좋아졌다.’고 평가한 경우 북한을,‘나빠졌다.’고 대답한 경우 중국을 지목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종전 직후 오키나와서 촬영 한국인 위안부사진 美서 발견

    |도쿄 연합|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 여성들의 종전 직후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이 미국에서 발견됐다고 일본의 한 위안부 지원단체가 29일 밝혔다. 칸토 가쿠인 대학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이 사진은 전쟁 후 위안부 여성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여주는 희귀 사진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오키나와의 캠프 ‘코자’에 수용된 한국인 위안부 7명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설명에는 이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오키나와로 끌려 왔으며 본국 송환전인 1945년 11월 캠프 코자에 모였다고 설명돼 있다.
  • 日국회 종전60주년 결의안 ‘식민지배·침략’ 표현 삭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하원격인 중의원이 채택을 추진중인 2차대전 종전 60주년 결의안의 역사인식이 10년전인 50주년 때의 결의안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밝혀져 일본 내외의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언론들은 27일 빠르면 29일 채택될 예정인 결의안 초안은 종전 50주년인 1995년 채택한 결의안에 들어있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라는 표현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창설 및 종전·피폭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국제평화구축에 대한 공헌서약 결의’라는 이름의 이 결의안 초안은 여당인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중심이 돼 마련했다. 초안은 “과거 한 시기 우리나라의 행위가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 국민에게 안겨준 많은 고난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히고 “모든 희생자들에게 다시 한번 추도의 정성을 바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러나 1995년 무라야마 정권 당시 채택한 결의안에서 밝혔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라는 표현을 삭제해 ‘반성’의 정도를 희석시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안은 평화헌법을 갖고 있는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폐기 등 “지속가능한 인류 공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taein@seoul.co.kr
  • 日국민 과반 “미국 못 믿어”

    일본인의 52%가 미국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미국인은 59%가 일본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다. AP통신과 교도통신이 2차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아 이달 초 양국 국민 각각 1000여명을 전화로 인터뷰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두 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여론조사 결과, 일본인 응답자의 과반수가 미국 정부와 미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 외에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감정을 가진 일본인도 52%나 됐다.반면 미국인 응답자의 81%는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은 걸프전쟁 직후인 1991년 실시된 같은 조사 때보다 26%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라면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안보전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에 대해서는 일본인 응답자의 63%가 ‘불필요한 행위였다.’고 답한 반면 미국인은 60%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동안 3차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인의 60%가 ‘일어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일본인은 35%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북한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지를 묻자 미국인은 74%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일본인은 59%가 같은 대답을 했다. 주일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74%의 미국인이 ‘주둔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일본인은 찬성과 반대가 똑같이 47%로 나뉘었다. 자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국가로는 일본인의 54%가 미국을 꼽았으나 미국인의 39%는 중국이라고 답했다.일본을 손꼽은 미국인은 중국 다음으로 많은 18%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18세 이상 미국인 1000명과 선거권이 있는 20세 이상 일본인 1045명을 상대로 일본에서는 이달 1∼3일, 미국에서는 5∼10일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3.2%포인트이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노벨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피소

    |도쿄 이춘규특파원|2차대전 말기인 1945년 3월 구일본군 지휘관이 미군 상륙에 앞서 오키나와 주민에게 집단자살을 강요했다는 교과서 등 각종 출판물의 기록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피소됐다. 24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당시 수비대장과 유족들은 집단자살강요를 사실로 기록한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집단자살강요 사실은 정설로 인정돼왔으나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면서 소송이 제기된 것 같다. 신문에 따르면 오키나와전투 당시 자마미섬 수비대장을 지낸 우메자와 유다카(88)와 도카시키섬 수비대장 아카마쓰 요시쓰구의 동생 슈이치(72)는 오사카지방법원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피고는 당시 집단자살강요를 다룬 ‘오키나와 노트’를 쓴 오에 겐자부로와 이 책을 비롯해 집단자살강요를 사실로 기술한 여러 서적을 출판한 이와나미출판사다.taein@seoul.co.kr
  • 생쥐,인간 게놈을 구하러 가다/카트린 부스케 지음

    2차대전 중이던 1942년의 추운 겨울.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한 농가에 다다랐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계란을 살 수 없냐고 물었고, 특히 영양가가 많다는 이유로 수정란을 원했다. 그녀는 독신이였고, 물론 아이도 없었다. 수정란이 든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실험도구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계란 속에서 닭의 배아를 채취했다. 이 젊은 여자가 30대의 리타 레비-몬탈치니다.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그녀는 몇십년 후 수천 시간 동안 닭의 배아를 관찰, 신경 세포 형성 매커니즘에 관한 연구를 인정 받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생명체 연구의 파트너인 실험실의 동물들생쥐, 인간 게놈을 구하러 가다(카트린 부스케 지음, 심영섭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에서 저자는 실험실의 동물들을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세포의 연구까지 현대 생물학을 발전 시킨 공로자라고 말한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 초파리는 눈의 색깔을 바꾸었고, 개구리는 바지를 입었고, 생쥐는 그들의 유전자를 경매에 부쳤다. 집쥐는 미로를 헤맸고, 닭은 메추라기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과학 경력을 보면 발톱 개구리와 닭의 근속 연수는 약 3세기이고, 생쥐는 퇴직 나이보다 두배나 더 일했으며 노랑초파리는 100년에 이른다. 이들은 과학 발전을 위해 몸을 바쳤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생명에 관한 지식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논쟁, 가설, 이론을 고안하도록 했다. ●인간 게놈을 밝힌 생쥐 2차대전 이후 기상천외한 돌연변이를 가진 새로운 생쥐들이 탄생했다. 비만 쥐, 털이 전혀 없는 누드 쥐, 난쟁이 쥐 등 종류가 다양하다. 유전공학은 생쥐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제공했다. 배아에 성장 호르몬이 주입된 생쥐는 보통쥐의 두배나 큰 슈퍼 마우스. 이처럼 생쥐를 통해 유전자 조작이 성공하자 인간 질병의 모델로서 생쥐의 열풍이 불었다. 특히 인간 유전자와 비슷한 쥐의 유전자가 분리되고 복제됨에 따라 생쥐의 게놈을 해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게 됐다. 연구 결과 인간과 생쥐 유전자의 90%이상이 유사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고, 약 80%는 동일한 유전자다. 쥐는 우리와 공동의 조상을 가진 사촌인 셈이다. 인간에 의해 태어나 인류를 위해 생을 마감하는 실험실의 동물들. 그들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인류의 숙제이다.1만 2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얄타체제와 G4/이목희 논설위원

    2차대전 전승국이 만든 얄타체제가 깨졌다고 말하지만 기본 국제질서는 아직 그를 따르고 있다. 유엔이 대표적이다. 유엔 창설 구상은 1941년 8월 미국·영국간 대서양헌장에서 시작됐다.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 수뇌가 얄타회담을 갖고 첨예한 쟁점이었던 안보리 표결방식을 타결했다. 유엔은 지금 191개의 회원국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 전승국으로 짜여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거부권을 가진 5개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주요 안건은 통과되지 못한다. 주권평등,1국1표주의가 사실상 인정되지 않는 셈이다. 가장 강한 무력인 핵도 마찬가지다. 유엔이 승인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5개국만 핵보유를 용인했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했더라도 NPT체제 밖의 얘기다. 그래도 이들에 대한 압박은 덜하다. 북한과 같이 믿을 수 없는 국가는 절대 핵을 가지면 안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여기서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전승 5개국의 기득권을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 패전국 일본·독일과 인구·영토 대국인 인도·브라질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시도는 새 질서를 구축해 보자는 취지일 수 있다. 하지만 새 질서는 주권평등 쪽으로 가는 게 합당하다.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전승국이 누려온 기득권의 말석에 얻어타려는 이기심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일본·독일·인도·브라질 등 이른바 ‘G4’국가는 자신들을 포함해 상임이사국을 6개 늘리는 방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대외원조를 활용해 지지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통과전망은 밝지 않다. 우군으로 분류했던 미국이 표결 회부에 반대하고 나섰고, 아프리카 국가와의 연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이탈리아·스페인 등 중견국가들과 함께 ‘G4’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 등 중견국가들은 물론 일본·독일은 새 국제질서 모델을 제시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당장 바뀌긴 어렵겠지만 상임이사국과 거부권이 존속돼야하는지 근본 질문부터 국제사회에 던질 필요가 있다. 미국 등 5개국이 핵무기 감축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도 촉구해야 한다. 동북아에서 북핵 폐기가 중요하듯 궁극적인 인류평화를 위해서는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가 사라져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씨줄날줄] 독도함과 일본/이목희 논설위원

    1905년 도고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동해상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이후 일본 해군은 영국·미국과 함께 세계 최강대열에 올라섰다. 항공모함을 개발한 나라는 영국이다.1차대전 당시부터 순양함과 상선을 개조해 항공기를 탑재·운용했다. 전투용 순수 항공모함은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건조됐다. 1920년대 일본은 7500t급 항공모함 호우쇼를 만든 데 이어 2만 7000t급의 가가, 아카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항공모함이 진가를 발휘한 첫 사례였다. 일본은 6척의 항공모함과 400여대의 항공기를 동원,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초토화시켰다.2차대전 패배 후 일본의 군사력은 제약받아 왔지만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만만찮다고 평가된다. 군사전문가들은 세계 4위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첨단 항공모함은 아직 갖고 있지 않다. 가장 큰 상륙함이래봐야 오스미급으로 8900t에 불과하다. 한국이 엊그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형수송함(LPX)인 독도함을 진수하자 일본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송함의 이름에 유감을 표명했으나 ‘아시아 최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을 게 틀림없다.1만 4000t급의 독도함은 탑재 가능한 병력, 전차, 헬기 숫자에서 일본 함정을 앞선다. 초수평선(超水平線)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등 공격력을 갖췄다. 해안의 적에게 탐지되지 않는 거리에서 고속공기부양정과 헬기를 이용해 신속한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만 개조하면 해리어기 등 수직이착륙 항공기 탑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독도함이 경항공모함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우리가 해군에 본격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대양해군’의 개념이 생겼고, 일본을 가상적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무력충돌을 다룬 소설·만화가 인기를 끌었다. 올 들어 실제로 독도 해역에서 양국 경비정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일간 기본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해상 무력충돌이 생길 확률은 낮다. 서태평양에는 두나라를 중재할 미7함대가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독도함에 시비를 거는 모양이 개운찮다. 독도 논란을 넘어 해군력 강화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열린세상] 공정거래법 집행 강화돼야/이의영 군산대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

    삼성이 공정거래법 조항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어이가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탈법적 로비와 불법 정치자금을 매개로 시장을 교란하고 정경유착을 일삼아 온 삼성이,‘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공정거래법 조항을 위헌이란다.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온 국민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거늘! 뭐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실체규정은 비교적 선진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집행의 절차규정은 매우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차제에 공정거래법 집행(enforcement)의 절차규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25년전인 1980년 5공 군사정권하에서 위반행위에 대해 정부만이 법집행을 독점하도록 입법하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제71조의 전속고발권 규정이다. 제56조 이하의 취약한 사적소송 규정도 공정거래법 집행에 시장원리에 의한 민간의 집행절차 참여가 거의 없게 하는 절차규정이다. 이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급속히 확산된 이 시점에도 군사독재정권과 관치경제의 유물인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25년이 지나도록 개정되지 않고 있는 이 규정은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전경련 주변의 논객들에 의해 선진경제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대명사처럼 인용되는 미국의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사항에 대한 소송절차는 연방거래위원회보다도 검찰을 비롯한 법무부의 역할이 더 막강하다. 그 구제절차도 연방거래위원회의 심결절차보다는 소송에 의한 사법부의 사법절차가 훨씬 더 중요하여 대부분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 관련 소송을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천양지차여서 비교 자체가 쑥스럽다. 특히 민간에 의한 소송(私訴,private suit)이 활발하여 지난 125년간 미국의 전체 관련소송의 88%에 달하며 2차대전 이후에는 90%이상에 이르고 있다. 기껏 행정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절차에 의한 과징금이나 시정권고 등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행정벌은 미국의 방대한 민형사상 사법적 처벌에 비하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아니할 수 없다. 사소의 경우 집단소송제와 더불어 손해액의 3배를 배상케 하는 3배손해액배상(treble damage)청구 소송이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규정도 강력하여 1000만달러 이하의 벌금과 3년 이하의 금고형이 적용되고 있다. 가중처벌을 통해 5억달러(약 5000억원) 벌금을 부과한 형사처벌의 예도 있다. 집단소송제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기형적으로 증권관련법에 먼저 적용되어 논란을 겪은 바 있지만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가들에 이미 수십년 전부터 도입되어 있는 제도이다. 증권관련법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제조물책임법, 환경관련법, 소비자보호법 등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도입하여 경쟁기업과 소비자들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은 물론 행정권력과 정치권력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제권력의 오만방자한 이번 공정거래법 위헌소송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는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집단소송제 도입, 사소활성화 방안을 적극 추진해 주기 바란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의 창달과 공정거래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는 시장참여자의 자율적인 이익추구와 더불어 경쟁제한적이고 불공정한 경쟁방법에 의한 금전적 손실과 피해에 대해 확실한 보상과 재발방지를 담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자기보호가 가능한 사법제도가 필수적이다. 총수를 비롯한 재벌기업의 불법적인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그러한 행위로부터 예상되는 기대수익보다 사법절차에 의한 처벌을 통해 예상되는 기대손실이 더 커야 무소불위의 힘을 통해 시장을 교란하고 공정거래질서를 해치는 불법적, 탈법적, 초법적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의영 군산대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
  • 佛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몽 타계

    |파리 연합|지난 198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클로드 시몽이 지난 6일 사망했다고 프랑스 문화부가 9일 발표했다.91세. 그의 유해는 9일 파리에 안장됐다. 60년대 프랑스 문단을 휩쓴 ‘누보로망’(신소설)의 대표 작가중 한 사람인 시몽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닮은 소설 ‘사기꾼’(45년작)에 이어 ‘전원시’(81년작)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차대전중 나치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경험을 갖고 있는 시몽은 1913년 10월10일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출생,‘사기꾼’,‘바람’(59년작)’,‘플랑드르로 가는 길’(60년작) 등 20여편의 작품을 썼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 공화파에 가담했던 시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 ‘전원시’에 그대로 투영됐다. 시몽의 난해하고 자유분방한 필체는 프랑스에서도 쉽게 읽기 어렵다는 평을 들었고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복잡한 경력과 문체 등을 들어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에 비유하곤 했다. 시몽은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는 소설을 쓸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것은 단지 나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며, 단지 현실을 그대로 본뜰 뿐”이라고 말했다.
  • [일요영화]

    [일요영화]

    ●위대한 산티니(EBS 오후 1시40분) 31살의 늦은 나이에 첫 출연한 ‘앵무새 죽이기’(1962)에서 연기한 부 아저씨.‘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헬기를 타고 베트남 하늘을 날며 바그너의 ‘발키리 기행’을 틀던 킬고어 중령.‘대부’(1972)에서 돈 콜레오네 가족을 돕는 냉정한 책사 톰 헤이건. 어느 덧 일흔네 살이 된 로버트 듀발은 나오는 영화마다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미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감독·주연을 맡았던 ‘사도’(1997)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로서 화려한 삶보다는 소박한 전원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커티스 핸슨 감독의 ‘럭키 유’에 조연으로 나오는 등 영화 5편을 잇달아 준비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차대전 영웅으로 ‘위대한 산티니’라는 별명을 지닌 미 해병대 중령 불 미첨(로버트 듀발)은 스페인에서 귀국, 오랜 만에 가족과 해후한다. 하지만 불의 새 근무지로 이사해야 하는 가족들은 불만스럽다. 불은 맏아들 베니(마이클 오키프)가 해병대에 가기를 바라지만 베니는 이를 거부한다. 가족들과 마찰을 빚던 불은 베니와 친하게 지내던 가정부의 아들 투머(스탠 쇼)가 숨지는 사고를 당하자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데….1979년작.116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페퍼민트(KBS1 오후 11시30분) 그리스 영화다. 그리스를 배경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로 첫 장편을 찍은 코스타스 카파타스 감독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1988)과 비슷한 느낌이 묻어난다. 마흔 중반의 항공기술자 스테파노스(게오르고스 호라파스)는 어머니가 숨지자, 눈물을 흘린다. 그의 앞에는 소중한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옛날 학교 친구들과 함께 말을 타던 기억, 약간 제 정신이 아니었던 이모가 벌이던 소동, 그리고 젖니를 뽑던 기억까지. 스테파노스는 이모의 보석함에서 반지를 훔쳐, 사촌 마리나(애니 루루)에게 주며 사랑을 약속한다. 하지만 10대가 되자 운명은 이들을 갈라놓는다. 스테파노스는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의 친구였던 마놀리스는 마리나와 약혼한다.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스테파노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1999년작.101분.
  • [씨줄날줄] 십자동맹/이목희 논설위원

    나치 독일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던 지정학(地政學)의 골치아픈 이론들을 접어두고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면 미래 국제정치의 모습이 대충은 그려진다.21세기 초강대국은 미국이고, 그를 따라갈 잠재력을 가진 나라는 중국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커가는 중국을 미국이 견제하는 것도 역학구도상 자연스럽다. 미국 지도자가 되어 중국 포위정책을 생각해보자. 중국의 동서남북으로 일본, 인도, 아세안, 러시아가 위치해 있다. 이들 4개축과 경제협력 및 군사동맹을 확실히 한다면 중국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한반도와 타이완, 옛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CIS국가들, 그리고 중동까지 미국의 영향력에 있다면 중국으로서는 숨통이 막힐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방위력 강화 지지에 이어 지난달 말 사이가 별로였던 인도와 군사협력조약을 맺은 배경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중국이 아니다. 지난 4월 앙숙이던 인도와 화해를 선언, 친디아(Chindia) 구상을 과시했다. 어제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 독주에 제동을 걸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중국은 또 아세안 10개국과 자유무역협정(ACFTA)을 발효시킴으로써 18억을 남북으로 묶는, 최대 인구의 경제권 추진에 시동을 걸었다. 인도가 군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미국과 일본, 인도를 연결하는 가로축에 중국과 러시아의 세로축이 대항하는 모양새로 21세기 국제관계가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지리적으로 볼 때 십자동맹으로 부를 수 있겠다. 신라의 3국통일 직전 한반도가 전형적인 십자동맹의 시대였다. 신라와 당나라 가로연합이 고구려·백제의 세로연합을 패망시켰다.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 한반도도 십자동맹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한·미·일 등 해양세력과 북한·중국·소련 등 대륙세력이 수직으로 대립해왔다. 지금 한반도는 변화의 용틀임을 하고 있다. 남북한 사이가 좋아지고, 한·중, 한·러 관계도 우호협력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반도의 소(小)십자동맹은 깨지고 있는데 유라시아 대륙의 대(大)십자동맹이 태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잘 지켜보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5)’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뜬다

    [일본을 다시본다] (5)’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뜬다

    |도쿄 특별취재팀|올해 마흔 한살의 아키야마 스스무. 그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출근하는 회사는 매일매일 다르다. 월요일에는 에너지 관련 회사에 나간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신규사업 개발. 다음날에는 가네보 화장품 회사로 출근한다. 담합 등 법률 위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점검하고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를 미리 걸러내는 것이 주된 임무다. 수요일에는 신생업체인 모 중소기업체로 향한다. 이곳에서의 직함은 사장 고문. 경영과 관련해 이런저런 자문을 해준다.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 보인다 싶더니 또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수요일 오후에만 출근하는 또다른 회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회사로 출근하니까 지겨울 틈이 없어요. 때로는 오전·오후 직장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도 급한 일이 들어오면 짬을 내 처리해줍니다.” 일찍이 ‘인디펜던트 콘트랙터(Independent Contractor)’ 세계에 뛰어든 덕분에, 지금은 꽤 일이 많이 들어온다는 아키야마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고용 형태”라고 말했다. ●인디펜던트 콘트랙터란 일본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뜨고 있다. 뜻을 그대로 옮기자면 ‘독립된 계약인’이다. 전문 기능을 무기로 기업체와 독립된 계약을 맺고 일을 처리한다. 신사업 개발, 인사관리, 회계 정비, 재무전략 수립,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 경영 컨설팅 등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통상 영문 머리글자를 따 IC로 불린다. 사원식당이나 콜센터 등이 팀 단위의 아웃소싱 형태라면 IC는 개인 아웃소싱이다. 대개는 10년 안팎의 직장 경력자들이다. 회사에 소속돼 있지는 않지만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탈(脫)샐러리맨과는 다르고, 높은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창업과도 다르다. 적게는 2∼3개, 많게는 4∼5개의 전문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가지 분야의 전문가인 프리랜서와도 구별된다. 물론 한가지 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IC도 있긴 하다. 태동지인 미국에서는 활동 인원수가 860만명에 이른다. 일본에 IC협회가 설립된 것은 2003년 12월.30명으로 출발한 회원수는 현재 180명으로 불어났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43세.4명의 공동 이사장 가운데 한 명으로 협회 설립을 주도한 아키야마는 “일본의 기업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앞으로 IC가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일본에서 IC가 뜨는 이유 아키야마 이사장은 일본 기업체에 불고 있는 ‘스피드 경영’ 바람을 IC의 확산과 연관지어 해석했다. 신입사원을 뽑아 일정 훈련을 거쳐 투입시키는 기존의 형태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도로 훈련된 외부의 전문 인력에게 눈을 돌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오랜 불황으로 비용 절감이 절실해진 것도 일본에서 IC가 뜨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고용을 늘리고 싶지 않은 대기업체나, 노련한 전문가를 원하는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체에 1인 아웃소싱인 IC는 ‘해답’이었다. 일본 특유의 ‘종신 고용’ 문화를 감안할 때,IC 붐은 다소 의외라고 지적하자 아키야마 이사장은 “종신고용은 전후에 정착된 형태”라면서 “전쟁 전엔 일이 있으면 모였다가 끝나면 흩어졌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약육강식의 세계 IC의 최대 장점은 시간조절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몸이 힘들거나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일감을 줄이거나 밀쳐놓으면 된다. 그러나 전문능력이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또 IC다. 대부분의 IC들이 10년 이상의 직장생활 경력자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간 경쟁도 심하다.‘수주’는 대개 능력과 직결된다. 입소문이 나면서 협회로 IC 소개를 부탁하는 기업체들도 부쩍 늘었다. 이렇게 들어온 일감은 협회 홈페이지와 회원들의 개인 이메일로 통보된다. 시간과 조건이 맞는 IC가 수임 의사를 비치면 계약이 체결된다. 회비는 연간 3만 2000엔(약 32만원). 구체적인 보수 협상은 전적으로 IC 당사자의 몫이다. 전공 분야는 보수를 높게, 부전공 분야는 다소 낮춰 부르기 때문에 보수 계약을 놓고 큰 갈등은 없다고 한다. 연간 1억엔 이상의 고소득자도 적지 않다. 큰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면 몇 명의 IC들이 팀을 짜 맡기도 한다. ●IC도 재투자해야 IC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투자도 필수적이다.‘리크루트’사에서 15년 이상 여행잡지 편집을 맡다가 2년 전 과감히 IC로 전환했다는 이마무라 마유미(41·여).“마흔살 이후에도 직장에 매여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그림이 안 그려져 IC로 나섰다.”는 그는 잡지 편집(주 1회 낮)·아로마향 치료(주말)·커리어 상담(주 3회 저녁) 등 세가지 일을 하고 있다. 잡지 편집은 주전공이지만 아로마 치료사는 경력이 아직 짧다. 아로마 보수는 시간당 700엔(7000원). 맥도널드 매장의 아르바이트 임금보다도 낮다.“이 분야의 다른 IC들보다 기술이 처지기 때문에 적은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재투자 기간이 끝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전문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등 수입의 30%를 재투자에 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리크루트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적다.“3년 정도 더 투자하면 역전될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어지는 얘기가 재미있다.“직장에 다닐 때는 쉬면서도 내 개인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IC로 나서고부터는 일하는 시간도 내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일이 더 즐겁다.” IC들이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은 ‘과욕’.“의욕이 넘쳐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가 밤샘작업을 밥먹듯이 했다.”는 이마무라는 “노련한 IC일수록 시간과 체력 안배가 뛰어나다.”며 한국에서도 IC협회가 생겨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hyun@seoul.co.kr ■ ’10년후 일본’ 저자 다카하시 |도쿄 특별취재팀|‘10년후 일본’이라는 책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IC)의 등장에 주목한 다카하시 스스무(52) 일본종합연구소 이사는 “IC가 ‘단카이세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카이(團塊)세대란 2차대전 직후인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첫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말로, 워낙 사람수가 많다 보니 구조조정의 단골대상이 돼왔다. 게다가 오는 2007년을 전후해 대거 정년을 맞게 돼 일본 내 사회문제로도 떠오르고 있다. 다카하시 이사는 “중장년 사원이 많은 회사는 인건비를 절감해서 좋고, 당사자들은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직장에 계속 머물러 있어봤자 비전이 없기 때문에 IC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야지(아저씨들을 일컫는 일본말)들에게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가 IC”라며 웃었다. 그가 10년 후 일본을 보여주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IC를 지목한 데에는 일본인들의 인생관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예전의 일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회사형 인간’으로 불렸다. 그러나 구조조정 파고로 회사가 곧 전부는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삶의 행태를 즐기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하시 이사는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얘기하지만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바뀔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결코 잃어버린 10년은 아니었다.”며 “다만 다이어트(구조조정)로 뺀 살을 흡수할 데가 없으면 말짱 헛일인 만큼 새로운 분야 개척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에서 뜨고 있는 ‘가이고(介護·노인요양사업)’를 그 대표적 예로 꼽았다. 그는 “한국도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분야 개척은 유효한 키워드”라며 “드라마 겨울연가나 영화 쉬리 등 영상·콘텐츠산업에서의 발전 속도가 비약적인 만큼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1인자형 사업에 (한국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1등을 따라잡는 ‘캐치업’형에서 ‘1인자(프런트 러너)’형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0년 후 일본의 또다른 키워드로 ‘기술 중심의 시즈(seeds)형’ 대신 ‘감성 중심의 니즈(needs)형’을,‘하이테크’ 대신 ‘하이터치’를,(골프채를 전부 갖고 다니는)‘풀세트형’ 대신 (분업의) ‘하프세트형’을 제시했다. hyun@seoul.co.kr 협찬 POSCO
  • 일왕도 과거사 미화 동참

    |도쿄 이춘규특파원|아키히토 일왕 부처가 27일 2차대전 격전지였던 미국령 사이판을 위령 방문했다. 일왕이 과거 식민지배 지역을 위령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일왕은 이날 정부 전용기로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기에 앞서 발표한 출국사에서 “지난 대전 중 해외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추도하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오늘의 일본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구축된 점을 늘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일왕 부처는 이날 오후 유족회와 전우회 등의 대표를 만난 데 이어 28일에는 일본 정부가 1974년 사이판 북부에 건립한 ‘중부 태평양 전몰자 비’를 방문해 헌화한다. 또 많은 옛 일본군 병사가 미군에 투항을 거부하다가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반자이(만세) 절벽’과 원주민 희생자 933명의 이름을 새긴 마리아나 기념비,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 5000명의 추도시설인 제2차 세계대전 위령비 등을 찾아 헌화할 계획이다. 사이판은 2차대전 말기 격전지로 변해 1944년 6·7월 미군이 상륙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징용자를 포함한 현지 거주 민간인의 60% 이상과 주둔 옛 일본군의 90%(4만 3000여명) 등 6만명 이상이 숨졌다. 일본군의 강력 저항으로 미군도 1만 5000여명이 희생됐다. taein@seoul.co.kr
  • [특종] 나는 모국의 스파이였다

    [특종] 나는 모국의 스파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 밖에 없는 개인 임업장을 사재를 털어 꾸며놓은 전 내무부장관(제6대) 장석윤(張錫潤)(65)옹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미군에 협조한 국제「스파이」였다. 그는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을 어기고 김종원(전 치안국장)씨의 기용을 거부한 경무대의 반항투사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10만 공무원 대신 10만 그루의 나무를 호령하는 나무장관이 되었다. 동남아 휩쓸던 청년 시절 이젠 10만 그루 나무 호령(號令)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마산리 15번지 3만 5천 평의 땅에 1백 50종의 나무를 질서정연하게 심어놓고 하루 4시간씩 잠자면서 10만 그루의 각종 나무를 돌보는 장석윤(張錫潤)옹-. 그는 횡성군 둔내면에서 태어나 서울 제일고보(경기고교 전신)를 졸업한 뒤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테네시」주「벤트·빌드」대학을 졸업했다. 유색인종 박해 속에서 갖은 고생을 겪으며 장옹은 이승만(李承晩)박사와 함께 교민생활 지도를 해오던 중 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맞았다. 당시 미국대통령「루스벨트」씨의 부인과 친교가 두터웠던 이박사의 소개로 비밀히「루스벨트」대통령이 조직한 COI(OSS 및 CIA 전신) 제1기생으로 조직에 가담, 소정의 교육(스파이 교육)을 마친 장옹은 한국인으로서는 단신 미국 21명과 함께「파키스탄」의「카라치」시에 공수되어 첩보 활동에 나섰다. 2차대전 때 미의 COI 대원 「버마」전투에 참가, 활약해 「히말라야」산맥을 낀「버마」전투에 참여한 장옹은 일본군 전선에 잠입, 정보를 수집하여 무전으로 미「셰넬」장군에게 타전, 작전계획을 세우도록 했으며 또한 일본군 포로 신문, 포로수용소 안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007을 방불케 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이 사선을 넘나드는 활동 속에서도 장옹은 이박사 김구(金九)주석 간의 비밀문서 연락을 맡아「티베트」고원지대를 넘어 중경(重京)을 넘나들었으며 때에 따라 미군 장교와 일본군 장교 및 외교관 신분을 마음대로 붙이고 활동했다. 45년 조국해방과 더불어「하지」장군과 함께 귀국한 장옹- 군정 당시 좌익계열의 만행을 낱낱이 파헤쳐 치안을 유지하도록「하지」장군에게 건의해 왔으며 이박사를 측근에서 도왔다. 6·25동란이 일기 며칠 전 1950년 6월 18일 당시 내무부장관 백성욱(白性郁)씨의 권유로 치안국장에 기용된 장옹은 서울이 괴뢰들의 발굽에 짓밟히던 날 노동자로 변장, 가족을 서울에 둔 채 홀로 적정을 살피고 한강을 넘어 아군 진지로 탈출했으며 대전에 도착한 장옹은 일선 경찰 정보망을 통해 괴뢰군의 선발대 동태를 파악, 육군에 정보를 제공, 큰 공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때의「에피소드」로 당시 괴뢰군이 천안, 온양을 거쳐 공주 방면으로 대전을 침공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치안국장 장옹은 그 사실을 국방부장관에게 연락했으나 국방부장관은 허위정보라고 대발노발, 정보제공자인 온양경찰서장을 총살하겠다고 으르렁거리다가 후에 정확한 정보임을 확인한 장관이 사과하기도 했다는 것. 치안국장 재직 30일만에 사표를 낸 후 52년 1월 내무부장관에 발탁된 장옹은 국군이 당시 총부처장의「지프」와「프란체스카」여사의「지프」를 강제징발하였음을 폭로했고 국군 장병들의 가슴에 명찰을 달도록 권유, 실행케 했음을 회고하면서 부산 정치파동 때 장총리(장면(張勉)박사)의 사표를 직접 받아 오기도 했다는 장옹의 회고담. 또한 지방자치제를 실행했으며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하는 산파 역할도 맡아 했다고 밝혔다. 특히 내무부장관 때 거창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온 김종원(金宗元)씨의 경무관 기용을 이박사로부터 세 번이나 명을 받은 장옹은 매번 공무원 자격문제를 들고 거절했었다는 것. 국민을 과신한다고 이박사의 약점을 밝히는 장옹은 그래도 이박사는 부모와 같이 섬겼다면서 미국에서의 인연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뒤 국도신문(國都新聞)사 사장을 역임했고 3대 국회의원으로 향리 횡성군에서 당선된 무소속 민의원으로서 자유당의 만행을 보면서도 이박사와의 인간관계로 말 못하는 벙어리 국회의원으로 생애에 오명을 남겼다는 장옹…. 그래서 4대에는 자유당 공천 국회의원으로 역시 벙어리 의원을 지냈다는 장옹은 3년 뒤쯤 나올 자서전을 통해 모든 것을 해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4·19 의거 후 고향에 내려온 장옹은 현재의 마산리 15번지 3만 5천 평을 구입하여 자신이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면서 나무를 심기 시작, 태기산(泰岐山)의 정목 등 1백 50종 10만 그루의 나무를 가꾸며 살아 가고 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나무와 씨름하면서 찾아드는 농민들에게 일일이 접목, 전지 방법을 비롯 이식재배, 시비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 각종 수목이 자연스럽게 꽉 들어찬 장옹의 임업장에는 멀리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의 관광객들이 찾아들 뿐 아니라 인근 각급 학교 어린이들의 소풍터로 알려졌고 심지어 미군들까지 찾아와 놀다가는데 하루 보통 1백 여명의 구경꾼이 오고 많은 학생들이 실습을 위해 찾아들고 있다. 잣나무 4년 만에 결실케 산림 물려줄 젊은이 찾아 임업과 목축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고된 줄을 모르고 일한다는 장옹은 지난 해 목초로는 최고의 영양가를 지녔다는「코리언·레이스·패스자」라는 풀을 발견, 재배하고 있다. 이 풀은 30년 전 미국 선교사가 개성 지방에서 채취하여 본국에 보냄으로써 영양가가 제일 많은 목초로 밝혀져 현재 미국에서는 목초지의 20%가 이 풀을 재배하고 있으며 자꾸 번지고 있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풀 이름조차 없다는 이야기. 장옹은 앞으로 임업장에 5백종의 수목을 더 심고 농림학원을 세워 자신이 직접 후배 양성을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5~20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 잣나무들이 장옹의 임업장에서는 불과 4년 만에 잣이 달리도록 비배관리 및 이식재배 기술을 보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넓은 초원과 하늘이 안보이는 숲길은 관객들의 환성을 사고 있다. 임업장은 자기와 같은 뜻을 가진 젊은이에게 넘겨주는 것이 소망이라는 장옹의 가족으로는 현재 서울에 부인과 딸 셋이 있다. <원주 = 정준교(鄭俊敎)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3 제1권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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