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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할만큼 했다” 일부의원 日 두둔

    “내 이름은 이용수다. 위안부라는 더러운 이름을 내게서 떼어달라. 일본의 돈을 전부 긁어모아 준다 해도 나는 받지 않을 것이다.” 15일 열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안부 청문회’에서 이용수(79) 할머니는 절규했다. 청문회에는 이 할머니와 김군자(81),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러프 오헤른(85) 할머니 등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3명이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증인으로 참석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으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을 낱낱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 바로세우기, 위안부 결의안 처리 등을 요구했다. 청문회는 일본계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의원이 제출한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과 결의문을 미 하원이 채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지원 성격도 가진 행사였다. 그러나 청문회에선 일본을 두둔하는 미 의원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다나 로라바허(캘리포니아) 의원은 “일본이 1994년 이후 여러차례 총리 발언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를 하라는 것이냐.”고 위안부들을 힐난했다. 그는 “현재의 일본이 앞선 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처벌받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일본을 두둔했다. 로라바허 의원은 혼다 의원이 제출한 결의안을 겨냥,“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사과의 조건도 일본은 이미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우적 성향으로 중국을 경계해 일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한국의 반미감정에 ‘분노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의 스티브 샤보트(오하이오) 의원도 이 문제를 물질적 보상 차원으로 접근했다. 샤보트 의원은 “위안부 가운데 283명이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서 “나머지 위안부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주재한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소위원장은 “일본이 역사를 되돌리려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미국이 다른 나라 정치에 얼마만큼 간섭할 수 있는가.’를 놓고 위원회 내부에 이견이 있다고 인정했다. 주미 일본대사관도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대사가 위원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러차례 책임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했던 아시아폴리시포인트의 민디 코틀러 국장은 “일본의 사과는 총리의 개인적인 것이었으며, 정부 차원에서는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행태는 가부키(가면) 연극을 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묘하게 흐르자 이용수 할머니는 청문회가 끝난 뒤 기자에게 로라바허 의원의 발언을 지목하며 “위안부들이 받지 못한 사과를 미국 의원이 대신 받았단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문제를 감추려는 일본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분을 삼켰다. 청문회 직후 일본 기자들은 청문회 주최에 앞장서고 직접 증인으로도 참석했던 혼다 의원에게 몰려가 “도대체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이유가 뭐냐.”고 힐난성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혼다 의원은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응대했다. dawn@seoul.co.kr
  • 인도차이나반도 교육한류 현장을 가다

    인도차이나반도 교육한류 현장을 가다

    “카오리(한국사람), 최고예요!” 인도차이나 반도에 교육 한류(韓流) 열풍이 뜨겁게 일고 있다.인기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한류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배우자는 교육 한류로 이어지고 있다.그 중심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교육 기반시설 지원 사업.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라오스 현지에 설립하고 있는 루앙프라방 국립대 건설 현장과 재작년 한국의 도움으로 문을 연 캄보디아 기술대를 다녀왔다. ●란상(Lan Xang)에 한국을 세운다. 지난 5일 오후 라오스 북부 중심 도시인 루앙프라방의 외곽 수파노봉 국립대. 우리나라 60년대 농업고등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단층 목조 건물에서는 세미나가 한창이었다. 오는 7월 ‘라오스 루앙프라방 국립대’로 다시 태어나는 이 대학 교수들에게 한국 교수들이 교육과정 운영 등 대학교육 시스템 전반을 설명하는 자리다. 대부분 학사 출신인 이 곳 교수들은 한국이 국립대를 세워준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표정만큼은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듯 진지했다. 우리나라가 이 곳에 국립대를 세우게 된 것은 2003년 라오스 정부가 한국에 지방 국립대 설립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오움 생찬다봉(59) 라오스 교육부 기획협력국장은 “한국도 30∼40년 전만 해도 우리처럼 가난했지만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 선진국이 됐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교육 노하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루앙프라방 지역은 중세 백만마리의 코끼리를 이끄는 찬란한 란상 왕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라오스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수파노봉 국립대만 초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교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학생 수(2800여명)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캄파이 시사반(54) 총장은 “라오스 북부에는 번듯한 교육시설이 없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어려워 현대식 대학 설립은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다.”면서 “한국의 도움으로 라오스 최고의 교육시설을 갖추게 됐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시설은 물론 교육과정과 운영 등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일괄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는 턴키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라오스 교수들이 전공별로 정기적으로 교류, 구체적인 대학 운영 매뉴얼을 전수하고 있다. 수파노봉대 부근에 짓고 있는 새 캠퍼스에는 메콩강을 끼고 36만 6000평 부지에 본관과 강의실, 기숙사, 도서관 등 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36개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다. 세계 인력자원(HR) 개발 거점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총괄 감리와 컨설팅을 맡고 있다. 또 포스코건설이 설계와 시공을, 포스데이터가 장비의 공급과 설치를 각각 책임지고 있다. 우송대를 중심으로 전주대와 강원대 등 5개 대학 등으로 구성된 시너지비전 컨소시엄은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전체 예산 가운데 80%에 이르는 2270만달러가 우리 정부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자금이다. ●캄보디아의 인재 ‘사관학교’를 꿈꾼다. 지난 9일 오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에서 차로 40분 걸리는 단꼬 지역. 이 곳에서는 한국의 교육수출 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 영글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2005년 문을 연 캄보디아 기술대학(NPIC)이 오는 9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한국어 테스트를 거쳐 한국 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전공은 건축과 자동차정비, 조리, 관광, 정보기술(IT), 기계 등 6개.2년과 4년제 과정에 캄보디아 내 직업훈련원과 기업, 학교의 장·단기 기술 위탁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 취업 희망자를 위한 한국어 강의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국은 이 곳에서 단순히 기능대학 하나를 세워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NPIC가 캄보디아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시간만 채우는 과거 직업훈련 교육방식이 철저히 경쟁 체제로 바뀌었다. 좋은 성과를 내는 대학이나 훈련기관이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NPIC 옆에 태국의 지원으로 이미 설립돼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던 직업훈련소도 최근 덩달아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현직 노동직업훈련부 차관이 대학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정도로 캄보디아 정부의 관심도 각별하다. 픽 소폰(54) 차관은 “한국을 다녀온 뒤 충격을 받고 생각을 바꿨다.”면서 “단순히 시설만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배워 철저히 질 관리를 통해 필요한 인력을 키우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루앙프라방·비엔티안·프놈펜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교수제자만 10명 한국배우기 열광” “편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평안한 것도 인생의 보람입니다.” 송융남(68) 전 강원대 농학과 교수는 라오스 수파노봉대 교수들 사이에서 스승으로 통한다. 현재 맡고 있는 루앙프라방 국립대 설립 사업에 교육과정 자문 역할 외에 교육 전반에 걸쳐 현지 교수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는 매주 두세 차례씩 이른 아침 교수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을 배우려는 교수들의 열망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작은 강의지만 주제는 다양하다. 우리 말에서부터 문화, 전통, 유행 등 한국에 대한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이 곳 교수들의 관심사다. 현재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교수 제자’만 10여명.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교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그 외에 두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추가로 한국어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송 전 교수는 “한국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해 뭘 가르치더라도 스펀지처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송 전 교수가 이 곳에 온 것은 2005년 9월. 강원대 농학과에서 퇴직한 뒤 봉사의 삶을 위해 주저없이 라오스행을 결정했다.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이젠 베풀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현재 수파노봉 국립대 근처에서 최소한의 체재비만 받으며 작은 집을 빌려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나라를 배우려는 이 곳 사람들의 열망만큼은 대단합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교육자들이 퇴직 후 이 곳에서 봉사의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루앙프라방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교육노하우 전수 한국 알리기 첨병” 우리나라의 교육수출 사업이 라오스와 캄보디아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교육 시설은 물론,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등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원스톱으로 세심한 자문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은 현지에 상주하는 컨설턴트가 있기에 가능했다. 주인공은 현지인들에게 ‘고민 해결사’로 통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지순(41) 박사. 교육수출 사업의 현지 컨설턴트 국내 1호다.2003년부터 5년째 이 곳에서 현지인들을 돕고 있는 장 박사는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우리의 교육수출 사업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컨설턴트의 역할은. -말 그대로 현지에서 자문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건물만 지어주거나 시설만 설치해주는 데 그쳤지만 이 곳에서는 현지 컨설턴트가 직접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단순한 성과 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상당한 동질 의식을 느끼고 있다.2차대전 당시 패전한 태국이 일본과 동질의식을 갖는 것처럼,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다른 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데다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 동류의식을 느낀다. ▶이번 사업의 의미는. -이 곳은 브릭스(BRICs)를 연결하는 축으로,2억 2000만명 이상의 시장 규모에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특히 일반적인 원조 사업과는 달리 사후 관리에 초점을 맞춰 질을 관리해 주기 때문에 시장 개척은 물론 장기적으로 친한(親韓) 인사가 늘어난다는 점도 매력이다. 비엔티안·루앙프라방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열린세상] 초상(肖像)/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떤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그린 그림이 초상이다. 옛날부터 쓴 말은 아니다. 초상이라는 말을 쓰기 이전에는 진영(眞影)이나 영정(影幀), 화상(畵像) 따위로 불렀다. 그런데 얼굴 그림은 내면적 정신세계를 담아야 그 진가가 인정되었다. 이를 전신(傳神)이라 했고, 마음까지 아우른다는 뜻에서 사심(寫心)이라는 말도 썼다. 초상을 흔히 휴머니즘에 충실한 예술로 일컫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고대부터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이를 제대로 그려 널리 퍼뜨린 시기는 조선시대다. 이 시대 초상의 유행은 국가가 유교를 정치적 지도이념을 삼은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나 조상의 뿌리를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인격에서 찾으려 한 흔적이 초상 곳곳에 배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면, 엇비슷한 이미지의 걸작 초상 두 점을 만날 수 있다. 도암 이재(陶庵 李縡·1680∼1746)와 그 손자 채(采·1745∼1820)의 상이다. 한 가족의 유전적 혈통을 속일 수 없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 만큼 두 얼굴이 서로 닮았다. 골상(骨像)부터가 닮아 할아버지와 손자 얼굴이 길다. 고요히 생각하는 정려(靜慮) 어린 눈매가 온유한데, 단아(端雅)한 입술은 수염 속에 감추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코가 역시 기다랗지만, 날카롭지 않은 콧날이 섰다. 이들 두 초상에서는 한산 모시에나 보임직한 올곧고도 정갈한 체취가 우러난다. 이는 곧 선비의 풍모가 아닌가. 할아버지 이재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손자 채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副使)로 부총관(副總官)을 겸임한 학자이자 행정가였다. 두 초상 얼굴에는 유풍(儒風)이 그윽하다. 최근 문화재청이 전국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한 31건의 초상을 한꺼번에 보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가운데는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5∼1910)의 초상이 들었다고 한다. 국권을 빼앗긴 풍운의 시대를 살면서, 그때그때 들은 소문을 그대로 적은 수문수록(隨聞手錄)의 역사 이야기 ‘매천야록(梅泉野錄)’ 저자의 초상이다. 더구나 서화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이 자신의 사진관에서 찍은 매천 초상사진을 포함시켜 일괄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매천 초상의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에 두 얼굴이 똑같다. 매천은 사팔뜨기 사시(斜視)로 묘사되었다. 왕조의 마지막 시대 구한말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눈을 뜨고는 응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볼썽사납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잔잔한 인품이 눈가를 스친다. 옳은 일에 뜻을 굽히지 않는 지사(志士)의 절개를 가슴에 품어들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사진이 일상화하기 훨씬 이전에는 보잘것없는 사진틀 카메라옵스큐러가 초상의 데생을 도왔다고 한다. 이어 사진기가 얼마만큼 보급되었던 1850년대에 사진이 들어온 중국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무렵 서양의 사진가들이 찍은 작품을 모아 엮은 책 ‘중국의 얼굴’을 들추면, 청조 말엽을 폭정으로 이끌었던 서태후(西太后·1835∼1908)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꾸민 초상사진이 나온다. 그러나 서태후가 관음보살로 분장한 초상사진이 어디 걸렸더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요 며칠 전 두 사연의 외신기사를 읽었다. 하나는 프랑스 국민들이 노숙자의 아버지로 기리는 아베 피에르 신부(1912∼2007)의 선종(善終) 기사다. 다른 하나는 2차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을 미국인들이 여태 위대한 인물로 꼽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초상을 지금도 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터이다. 우리도 초상 주인의 훌륭한 전기(傳記)를 읽는 마음으로 사진을 걸어두는 날이 오길 기다려 보고 싶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일본은 우리가 죽길 바라지만 죽지 않을 것”

    |워싱턴 이도운 특파원|오는 15일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한국인 피해자인 이용수(79)·김군자(82) 할머니와 함께 푸른눈의 백인 할머니도 증언대에 선다. 올해 84세로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네덜란드 국적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오헤른 할머니가 평생동안 가슴에 담아온,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세상을 향해 처음 토해낸 것은 지난 1992년. 당시 보스니아 전쟁에서 여자들이 무참히 강간당했다는 뉴스가 세계적 분노를 사고 있을 때,TV를 통해 한국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정부를 향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도쿄를 비롯, 영국·네덜란드 등 전 세계에서 열리는 위안부 관련 행사에 참석해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전쟁으로 인해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오헤른 할머니는 과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행복은 19살 때인 1942년 3월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침략하면서 무참하게 짓밟혔다.‘점령군’은 17세 이상 젊은 여자들은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고, 할머니는 3년 반동안 수용소에서 강간과 폭행, 굶주림 등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인간 이하의 끔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 인터뷰에서 오헤른 할머니는 “추해 보이면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모두 잘라내 흉측한 대머리 소녀가 됐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면서 일본인 의사들도 일본군의 강간대열에 합류했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시아 위안부들이 일본정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측은 미 의회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이 큰 로비스트를 고용, 하원 외교위 의원 및 민주당 지도부를 상대로 필사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고, 오는 5월엔 의원단을 대거 미국에 파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dawn@seoul.co.kr
  • ‘日軍위안부’ 美하원 첫 청문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하원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가 처음으로 청문회에 오른다. 미 의회 소식통은 6일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가 오는 15일쯤 한국과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달 하원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한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주) 의원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한 적은 있지만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춘 청문회를 개최하고 피해자를 직접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것은 처음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외교위 전신)는 지난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한 한국 및 중국과 일본간의 역사 갈등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뤘었다. 당시의 위안부 결의안은 하원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한편 혼다 의원은 7일 오전(한국시간 8일 새벽)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취지와 청문회 개최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한다.dawn@seoul.co.kr
  • 美하원 ‘위안부결의안’ 再제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하원 의원들이 31일(현지시간) 일본 정부가 2차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던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다시 제출했다.일본계인 마이크 혼다(민주당·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및 공화당 의원 7명은 이같은 내용의 위안부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공식 사과는 일본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공개성명을 통해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결의안은 또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들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배척”할 것과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 이 가공할 범죄행위에 관해 교육하고,(종군위안부에 관한) 국제사회의 권고를 따를 것”도 아울러 촉구했다. 이번 결의안은 지난해의 결의안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과 함께 제출한 발언록에서, 이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는 이유가 제2차 대전 당시 어린 나이에 미국에 살면서도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미 정부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결의안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모두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일본은 민주당 출신인 마크 폴리 전 하원의장을 로비스트로 고용, 이 결의안의 채택을 막기 위한 대미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dawn@seoul.co.kr
  •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 파문] 과거청산 해외 사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30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 공개를 강행키로 했지만, 각국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판사가 처벌받거나 공격 대상이 된 경우는 흔치 않다. 2차대전 직후인 1945년 전범 처벌을 위해 연합국이 주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시절 고위 법관 12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자신들이 내린 판결 때문은 아니었다. 이들은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독일 국내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법관들이 사법처리된 적은 없다. 하지만 60∼70년대 언론과 학계에서 나치 정권하 법관들에 대한 책임 논쟁이 불거졌다. 독일이 점령한 동유럽 지역에서 유대 상인이 계란을 매점매석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이 상인에 대해 법정형보다 더한 중형을 선고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독일 언론은 “청산 과정에서 법의 잣대가 공평하지 못하고 굴절됐다.”고 혹평했다. 전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초법적 숙청’으로 대변되는 약식처형을 통해 8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프랑스는 이후 ‘사법적 숙청’을 단행했다. 부역자 재판소에 5만 5000여명이 회부됐고, 이 가운데 6700여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치·경제·군사·문화계 모두 이 과정에서 검증 대상이 됐지만 법관은 보호됐다. 우리나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모델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60년부터 94년까지의 인권침해 상황의 원인과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정부와 관료들의 행위가 폭로됐지만, 법관과 관련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진실을 털어놓은 가해자를 사면키로 하는 등 애초부터 위원회가 처벌보다 진실규명에 주력한 탓에 사건의 실체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법관들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지난 연말 보도됐던 재미있는 해외 뉴스 한토막. 프랑스의 포나콩(FONACON·새해반대전선)이라는 조직이 12월31일 밤 서부도시 낭트에서 2007년이 오는 것을 축하하지 말고 저항하자고 촉구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세월의 흐름을 축하하는 행위는 비논리적이다. 한해를 마감하면 무덤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라 비극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포나콩은 자기들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 나와 2007년이 오는 것에 반대하자고 촉구했다. 오는 해를 막겠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하겠지만 프랑스인들의 시위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시위 마니아들이다. ●시위는 신성한 국민의 권리 프랑스인들이 새해 반대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전한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프랑스인들은 불가피한 일에도 저항하는 아주 오랜 ‘훌륭한’ 전통을 자랑한다.”고 비아냥하면서 장폴 사르트르가 작고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좌파 철학자 사르트르가 땅에 묻힌 1980년 4월19일 5만여명의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사르트르의 죽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인들처럼 시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마 없을 것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지만 프랑스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시위문화가 독특한 프랑스인들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사사건건 따지기를 좋아하고,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무척 중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논쟁을 서슴지 않는다. 권리 주장이 강하다. 시위는 이런 프랑스인들에게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이 모이면 의미전달은 더욱 효과적이다. 정치적 성향, 남녀노소,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시위는 자유·평등의 정신에 따른 신성한 국민의 권리로 인정된다. 프랑스에서 시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민주주의 발전의 에너지 프랑스가 ‘혁명의 나라’가 된 것도 프랑스인들이 시위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가 로저 프라이스가 프랑스의 근대정치사를 ‘혁명과 반동의 역사’라고 했을 정도다. 국민주권 시대를 연 1789년의 대혁명을 비롯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닦은 1830년 7월 혁명, 보통선거제를 확립한 1848년 2월 혁명, 노동자 권리신장으로 이어지는 1870∼1871년 파리코뮌 등이 대표적이다.2차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주권을 지켰으며 1968년 5월의 ‘68혁명’을 통해 기성세대가 일궈놓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권위주의에 도전했다.68혁명은 프랑스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 변화를 수반하면서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2002년 대선에서 네오파시스트로 불리는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했을 때 그를 반대하기 위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역사의 한장으로 기록됐다. 프랑스인들의 저항정신이 빚은 시위문화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 토양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나치게 잦은 시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과 함께 일부 시위가 폭력양상을 띠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축제 같은 시위, 그러나… 파리에서 시위는 주로 주말 오후에 열린다. 그래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특히 내 주장을 펴기 위해 뜻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파리에서는 주로 주말에 크고 작은 시위가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매일 3건씩 벌어지는 셈이라고 한다.1년이면 1000건 이상이라는 얘기다. 워낙 시위가 많다 보니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주장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며 정부의 개혁안을 반대한다. 경찰이나 공무원도 각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한다. 학생들은 교육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한다. 매춘부들의 시위도 간혹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외국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불법 이민자들은 거주증명서를 달라고, 집없는 사람들은 거주권을 달라고 주장한다.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의 시위는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된다. 화창한 날 어린아이를 무동 태우거나 유모차를 밀고 나와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축제에 참가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인상적이었던 시위 중의 하나는 게이 퍼레이드다. 동성애자들 수천명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가장행렬을 하는데 각 단체별로 꾸미고 나온 모습들이나 주장하는 바가 정말 다양했다.‘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라’‘에이즈확산반대 동성애자단체에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금발에 짙은 화장, 금방 터질 듯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가 다 드러날 초미니 스커트,20㎝는 족히 될 높은 굽의 부츠를 신고 나온 여장 남자 등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게이퍼레이드는 매년 엄청난 인파를 불러 모은다. 시위에 대응하는 방식도 조직화됐다. 시위 진압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찰도 있다. 시위진압전문경찰은 공화국안전수비대(CRS)라고 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시위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는 것’이다. 시위도중 불상사를 막아주는 것 외에 진압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대가 예정된 코스로 이동하도록 교통을 막아주기도 한다. 한번은 영·미국식 학제도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하며 끝까지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파리의 대학건물들이 모여 있는 생미셸 지역에서 시작해 교육부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CRS는 시위대가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고 폭력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번득였지만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의 꼬리 부분을 보니 200m 정도 사이를 두고 청소차와 청소원들이 따라오면서 시위대가 흘리고 간 전단이나 쓰레기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치우고 있었다. 시민들은 시위하고, 경찰은 보호하고, 청소부들은 치우고…정말 재미난 나라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20세기 화보집/이목희 논설위원

    은퇴하신 선배가 책을 선물했다. 영국 페이든출판사가 펴낸 20세기 주요 사건 화보집이었다. 연도별로 정리된 1000여장의 사진을 훑어보면서 ‘광기(狂氣)’를 떠올렸다.1차대전,2차대전, 한국전쟁, 여러 내전…무수한 살육의 현장. 짐짝 같은 시체들, 그래도 어른을 미워하지 않는 듯 평온한 아이의 주검…. 도대체 평화란 언제 존재했을까. 이런 험한 세기에서 살아남아 21세기에 안착한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갖게 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바버라 터치먼은 ‘바보들의 행진’이란 저서를 통해 3000년 동안 이어온 인간의 잘못을 꼬집었다. 고대 트로이전쟁부터 베트남전쟁까지, 독선과 아집이 점철된 역사의 반복.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를 억압하는 이성의 횡포를 나무랐다. 이성에 대한 확신 위에 구축되어 온 서양 근대사상을 근본부터 뒤흔듦으로써 지성사회에 일대 충격을 줬던 푸코였다.20세기 화보집은 푸코와 다른 측면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라크전, 북핵….100년 후 21세기 화보집은 어떤 모습일까.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아임 낫 스케어드(SBS 밤 1시5분)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다.2차대전 중 무인도에 남게 된 병사들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지중해’로 일약 스타에 오른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이 열살 소년의 성장과 모험을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황홀한 자연풍광은 영화감상의 또 다른 포인트다. 밀밭을 가르는 아이들의 모험과 우정이 어른들의 탐욕스러운 세상을 잊게 한다.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소년들의 눈물 나는 생활과 꼬마 영웅으로 거듭나는 모험담이다. 순수함에 대한 갈망과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 또는 이상적인 아이들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어른들의 판타지와도 연결된다. 살바토레 감독은 소재를 물색하던 중 우연히 두 소년의 우정을 소재로 쓴 소설을 읽게 된다. 적당한 속도감과 시종일관 긴장감이 어우러진 이 소설은 감독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책의 저자인 니콜로 아만티는 감독의 요청으로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해 원작보다 더 탄탄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결국 감독과 원작자를 비롯한 스태프와 연기진이 하나가 되어 이탈리아 영화산업의 전반적 쇠퇴라는 악재를 꿋꿋이 이겨내며 잔잔한 웃음과 훈훈한 인정이 살아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베를린 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빈집에서 여동생의 안경을 잃어버린 미카엘은 안경을 찾던 중 우연히 마당 구석에 숨겨진 이상한 굴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내려다본 구멍. 그곳에서 미카엘은 놀랍게도 누더기와 사슬에 묶여 갇혀 있는 또래 소년을 발견한다. 지하 굴에 갇혀 눈도 뜨지 못하는 소년 필리포. 집에 돌아온 미카엘은 이 정체불명의 소년에 관한 상상의 세계에 젖고 하루하루 소년을 찾아가는 사이 미카엘과 필리포 사이에 특별한 우정이 싹트게 된다. 이 기묘한 만남의 시작과 함께 미카엘의 주변에는 온통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안 찬장에 낡은 오두막에 있던 것과 똑같은 냄비가 있고, 여행을 떠났던 아버지는 정체불명의 남자들과 함께 돌아와 밤새 텔레비전을 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던 어느날 미카엘은 TV 뉴스를 통해 납치된 소년의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가 바로 필리포이며 자신의 부모와 마을 사람 모두가 그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미카엘과 추악한 어른들에게 유괴된 필리포가 탈출을 꿈꾼다.2004년.109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씨줄날줄] 유해발굴감식단/황성기 논설위원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유지하는 은밀한 영적(靈的)장치였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의 슬픔을 “죽어서 신이 된다.”는 기쁨으로 바꾸어 젊은이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통치 기제로 이용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진보 지식인이 쓴 야스쿠니 관련서 중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야스쿠니에 ‘감정의 연금술’이 내재한다고 분석했다.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개입에 이어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이 시각에도 사상자를 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미국이 30년 된 육군중앙감식소 등을 통합해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를 하와이에서 창설한 것이 2003년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라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전사자건 실종자건 전쟁포로건 최후의 1인까지 고국으로 귀환시킨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미국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땅에 두고온 미군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처음에는 북측이 발굴한 유해를 감식한 뒤 사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 들어가 유해를 발굴하며 그 대가로 2500만달러를 지불했다. 북핵 문제로 2005년 5월 중단하긴 했어도 미국이 전쟁 희생자에 쏟는 집착은 유별나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보증을 JPAC는 유형무형으로 보여준다. 연중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 미국에 이 같은 보증은 전장에 나가거나 내보내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기제로 작동한다. 정치적 안경을 벗어 던진다면 유해든 포로든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국방부가 그제 JPAC를 본뜬 ‘유해발굴감식단’의 창설행사를 가졌다. 한국전쟁의 전사·실종자 13만여명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낙동강변,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를 포함한 중부전선이 주 대상이다. 서둘러 퇴각했던 평북 운산을 비롯한 북한 내 유해발굴도 장기과제다. 다만 생존한 국군포로의 귀환은 업무 밖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 점만큼은 미국을 본뜨지 않은 모양이다. 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하나 더 덧붙인다.“발굴이 군만의 일이 아닌데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없다.”고. 새겨들었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인스턴트 라면 개발 안도 닛신식품 회장 별세

    |도쿄 이춘규특파원|‘즉석(인스턴트) 라면’을 세계 처음으로 만든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 회장이 5일 오사카부 이케다시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96세. 즉석 라면은 현재 전세계에서 한 해 857억개나 팔리는 대중소비식품. 1910년 타이완에서 태어난 안도 회장은 1933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학시절 타이베이와 오사카에 의류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2차대전 종전 직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던 일본 국민을 위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1948년 닛신식품의 모태를 설립했다. 전후 자신이 이사장을 하던 신용조합이 도산, 한때 무일푼의 나락에 빠지기도 했으나 추운 밤 라면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것을 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라면을 개발하기로 작심했다. 이런 배경에서 자택 실험실에서 1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4시간씩 실험을 계속한 끝에 48세이던 1958년 즉석라면인 ‘치킨라면’ 만들기에 성공했다. 59년에는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미쓰비시상사와 판매제휴에 성공, 당시 부상하던 슈퍼를 통해 즉석라면을 판매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가 ‘식품대량소비시대’를 열었다. 무일푼에서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기상천외의 발상’이란 책을 내 새롭게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미국 출장 중 자신의 즉석라면을 미국인이 종이컵에 넣은 뒤 물을 부어 먹는 것을 보고 착안,1971년에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안도 회장은 닛신식품을 매출 27억달러(약 2조 5000억원)의 회사로 성장시켰으며 200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5년에는 주위에 “올해 골프 라운딩을 100회 하겠다.”고 다짐,101회나 소화했을 정도로 건강체질이었다고 주치의가 밝혔다. 타계 전날인 4일에도 회사 신년회에서 30분간 신년사를 하기도 했다.taein@seoul.co.kr
  • [이건호의 뷰티풀 샷] 크루즈룩 연출하기

    [이건호의 뷰티풀 샷] 크루즈룩 연출하기

    ‘퀸메리호를 아시나요’ 193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을 운항하던 정기여객선이다. 당시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보다 더 컸던 초호화 유람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항공기의 등장과 채산성의 악화로 결국엔 2차대전 이후 현역에서 은퇴한 후 현재 미국 LA남부 롱비치에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선상호텔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2005년 6월호 ‘W지’의 화보촬영은 이곳 퀸메리호의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해마다 6월 즈음이면 크루즈룩을 주제로 화보를 기획한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매년 진행되는 단골메뉴이다. 좀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던 중 1930년대를 주제로 한 크루즈룩의 진행을 기획하고 영화 타이타닉을 상상하며 퀸메리호를 촬영장소로 정했다. 막상 도착한 퀸메리호는 그 공간이 생각보다 광대해서 선뜻 촬영장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작 객실은 너무도 협소해서 1등실조차 촬영하기가 여의치가 않았고, 반면에 항해사실과 선장의 침실, 응접실, 체육관 등은 이를 발견하고 환호하는 필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촬영불가지역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60여년이 된 시설들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사료로 대접받는 것이 얼핏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유재산조차도 정부에 의해서 소중히 유지보존되는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LA에 방문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그리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쯤은 타이타닉의 로맨스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특히 실내 수영장에서 보여주는 유령쇼는 유치하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촬영장은 아르데코풍의 선내외의 각 곳과 기관실 조타실 등에서 이루어졌다. 사진에서 보듯 의상은 대부분 가벼운 드레스를 위주로 선택하였고, 간편한 일상복과 수영복이 추가되었다.30년대풍을 재현하기 위해서 메이크업에 특별히 신경을 썼는데 진한 아이메이크업과 가늘게 표현된 눈썹 조그맣고 어두운 색상의 입술 등으로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일부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이었기 때문에 메인조명은 HMI(주광과 비슷한 색온도를 가진 인공지속광)를 사용하였고 느린 셔터속도를 이용, 자연스러운 흔들림으로 깊이감을 표현하였다. 패션사진의 경우 때로는 사진촬영의 보편적인 방법과는 정반대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색다른 표현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부분적으로 초점이 안 맞게 하든지, 느린 셔터를 이용한 흔들림이라든지, 정상적이지 않은 화학처리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번 촬영에서도 부분적으로 초점을 흐트러지게 함과 동시에 저속셔터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와 함께 후반작업에서 세피아색감의 모노톤으로 색상을 처리해 오래된 흑백사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작가
  • 2007년 美·日·中 경제 기상도

    2007년 美·日·中 경제 기상도

    세계화 진전속에 개별 경제권의 상호의존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2007년 세계 경제 기상도는 어떠할까. 성장기조를 유지하고 중장기 전망도 밝다는 최근 세계은행의 분석에도 불구,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불안한 유가와 요동치는 중동정세. 사상 최대의 재정·무역적자에 짓눌리고 있는 미국,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잇단 경고음속의 중국 등 세계경제의 복병도 적지 않다. 미국, 일본, 중국 등 특파원들의 현지 진단을 통해 내년도 지구촌 경제 상황을 짚어봤다. ■ 미국 - 미국發 주택경기 하락…세계 경제 ‘걸림돌’ 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2007년의 미국 경제는 “침체는 피하겠지만 썩 좋지는 못할 것”으로 미국 및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 경제가 무엇보다 주택 경기 하락 때문에 활력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예견했다. 국제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미 경제가 2006년 갑작스러운 주택 경기의 소멸로 하반기부터 둔화 현상을 보였으며, 이같은 흐름이 짧아도 내년 중반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도이치방크도 ‘2007년 세계 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주택 경기 하락이 내년에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의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경제 성장률은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됐다. 미 재무부는 의회에 국제경제 및 환율 정책을 보고하면서 내년도 경제 성장률이 2.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JP모건은 내년부터 2010년까지의 경제 성장률이 매년 2.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2차대전이 끝난 1945년이후 가장 낮은 성장세다. 이코노미스트의 수석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파딩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경기가 하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저성장을 우려해 이자율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이자율을 더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딩은 특히 FRB가 이자율 인상 추세를 너무 오래 가져갈 경우에는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주택 경기와 함께 무역 및 재정 적자, 달러화 약세도 내년도 미국 경제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지목됐다. 파딩 박사는 미국의 대규모 적자가 이자율 상승과 맞물려 2007년에 달러화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며, 이에 따라 달러화에 대한 투자 심리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과 국제 경제의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릴 것으로 우려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의 세계’ 특별판을 통해 미국인의 소비가 줄어들 경우 다른 나라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 재무부는 2007 회계연도 재정 적자가 1270억달러(약 120조원)를 기록,2006년 회계연도의 2480억달러보다 크게 줄 것이라고 의회에 보고했다. 미국의 고용 상황은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미시건 대학 경제학과의 사울 하이만스, 조언 크레어리 교수는 연례 경제 예측보고서를 통해 내년에 180만개의 신규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dawn@seoul.co.kr ■ 일본 - ‘前弱後强’… 약하지만 경기 불씨 살아 |도쿄 이춘규특파원|내년 일본경제에 대해서는 ‘전반 흐림-후반 맑음’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일본 정부나 일본은행은 “약하지만 경기확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정부나 민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이 개인소비의 불투명성이다. 내년 1월부터 소득세의 정률감세가 폐지되고,6월에는 개인주민세 정률 감세도 없어진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소득세 감세 폐지→ 소비 위축 이처럼 새해 일본경제는 소비 불확실성에다 금리인상, 환율, 미국경제 감속 등 복병이 많다. 그래서 일본은행은 19일 재거품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개인소비와 소비자물가 부문이 약하다며 추가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일 2007년도 국내총생산(GDP) 실질성장률을 2.0%로, 명목성장률을 2.2%로 전망했다. 내년에도 기업부문과 가계부문을 양 축으로 하는 내수주도의 경기회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러면서 15년 가까이 일본경제를 짓눌렀던 디플레이션에서도 내년도에는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의 주요 싱크탱크들도 내년도 일본 경제의 실질 GDP성장 전망을 1.6∼2.5%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0.3% 안팎 상승예상이고, 개인소비는 1.5% 안팎 신장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당히 보수적인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질성장률 1.6~2.5% 예상 종합적으로 내년 일본경제에 대해 비관론자는 물론 낙관론자까지도 공통적으로는 내년 상반기 경기조정설을 유력하게 제기한다. 그러면서 하반기에는 재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마나카 유지 미쓰비시 UFJ 리서치·컨설턴트의 투자조사부장은 따뜻한 겨울로 계절상품이 팔리지 않아 생산도 늘지 않아 내년 초 강한 조정기를 거칠 것으로 봤다. 내년 일본경제의 중요한 변수는 금리인상과 엔화 환율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1999년이후 계속중인 초저금리의 후유증으로 제2거품이 우려되지만, 조기에 인상할 경우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금리문제가 난제가 될 전망이다. 환율도 중요변수다. 현재 일본경기 확장은 엔저효과를 보는 자동차와 전기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중국 - 위안화 변수 속 9~10% 고공성장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무착륙 비행’ 2007년에도 이어질 중국의 고공 성장을, 삼성경제연구소 북경대표처는 이같이 압축 표현했다. 장기 고도 성장의 후유증으로 수년간 ‘경(硬)착륙이냐, 연(軟)착륙이냐.’ 논란을 빚어왔지만 내년에도 여전히 9% 이상의 높은 성장률이 예상된다. ●‘경제대국→강국´ 전환 토대 마련 대신 후진타오(胡錦濤)의 4세대 지도부는 ‘체질 개선’을 통해 장기적인 고도 성장의 부작용을 해소해나갈 계획이다.2007년을 ‘경제대국’에서 ‘경제강국’으로 이행하는 기점으로 삼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며, 후 주석의 ‘과학적 발전론’이 그 핵심이다. 국내적으로는 우선 제조업에 대한 집중·과잉투자가 야기해온 산업간 불균형, 환경 파괴, 양극화 문제 등을 해소해나가는 게 목표다. 동시에 선별적인 긴축정책과 투자억제, 내수 확대 정책의 확대·강화를 추진중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강력한 경기과열 억제조치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로 지난 수년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대외적으로 중국은 GDP 세계 4위, 수출규모 세계 3위, 외환보유고 1조달러의 경제력에 알맞는 경제 외교를 보다 강화하는 중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대응, 무역흑자를 줄이고 평가 절상 속도를 높여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독점법´ 외국인 투자환경 악화 위안화는 2005년 7월 중국정부가 환율을 절상한 이후 지금까지 달러화에 대해 5.8%가량 절상됐다. 특히 환율조정 1주년이 되는 올 7월이후부터는 위안화의 평가절상 폭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세계은행은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의 부분적인 자본 유출 자유화 결정은 위안화의 평가절상 압력과 외환보유고 확대 필요성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외국인의 대중국 투자환경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외국인투자와 관련된 주요 법안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외국기업에 대한 각종 혜택을 줄여나가고 있으며 외국기업이 자국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지 가려내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높은 시장지배력을 가진 외국기업들은 내년 중 입안될 ‘반(反)독점법’에 의해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될 전망이다. 노동계약법도 도입돼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노사관계 감독도 한층 강화된다. jj@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위안부 결의안’ 총대 멘 일본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일본계 미국 의원이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총대를 메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출신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하원 의원. 그는 지난 8일(현지시간) 109대 의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이번 회기중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추진했던 레인 에번스 의원의 은퇴를 기리는 발언을 통해 “에번스 의원이 해오던 일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에번스 의원이 주도했던 위안부 결의안은 국제관계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으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혼다 의원이 부모의 나라인 일본을 겨냥한 입법 활동을 추진하려는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로라도의 일본인 집단수용소에서 유아기와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부모는 1953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캘리포니아의 새너제이에 정착해 딸기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혼다 의원도 그곳에서 성장해 새너제이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공공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 감동을 받고 평화유지군에 들어가 엘살바도르에서 2년간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에서 돌아온 혼다 의원은 과학 교사가 됐으며 후에 두 학교에서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새너제이시 기획위원회, 새너제이 학교연합회 회장,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 등을 거쳐 2000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하원 과학위원회와 교통·사회간접시설위원회에서 활동했지만 시민권과 인권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미 1999년 캘리포니아 주의원 시절 일본이 2차대전 당시의 행위를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내용의 결의안(AJR 27)을 제출해 통과시킨 바 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희생자들에게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의회 소식통은 혼다 의원이 다소 ‘반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낸시 펠로시·스테니 호이어·톰 랜토스 등 당 중진 의원들과 함께 노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한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차기 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의 톰 랜토스 의원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감추기보다는 해결하려고 나서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된다.”고 혼다 의원을 지원 사격했다.dawn@seoul.co.kr
  • 한국전쟁 최초 美보도기자 사망

    지난 1950년 북한군의 남침을 서방에서 제일 먼저 보도한 월터 A 시몬스씨가 지난 달 25일 미시간주 베어레이크에서 심장 및 폐질환으로 숨졌다.98세. 고인은 1943년 미국의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에 입사,2차대전 당시 태평양 지역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일본에서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을 세계에 특종보도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일 전했다. 그는 1955년 시카고트리뷴의 주말판 에디터가 된 뒤 1973년 은퇴할 때까지 발행인보로 일했다. 저서로는 ‘조 포스, 하늘을 나는 해병(Joe Foss,Flying Marine)’(1943년)과 ‘하늘의 사무실(Offices in the Sky)’(1959) 등이 있다.
  •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6) 동거는 필수, 결혼은 선택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6) 동거는 필수, 결혼은 선택

    2007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사회당을 대표할 세골렌 루아얄(53)의 프로필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의 혼인 관계다. 루아얄은 국립행정학교(ENA) 동기생인 프랑수아 올랑드(52) 사회당 제 1서기와 25년째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트너 관계로 살면서 네 자녀를 두었다. 집권 중도우파의 대중운동연합(UMP) 소속으로 대권 경쟁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미셸 알리오-마리 국방장관도 의정활동을 하는 파트릭 올리오와 22년째 동거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애시당초 정치활동을 시작도 못했을테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런 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동거(concubinage)가 보편화된 사회 현상이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급속 확산 프랑스에서는 동거하지 않으면서 사귀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거나, 유대교 집안일 경우 동거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 함께 살아보고 맘이 맞는다고 확신이 서면 결혼을 한다. 국립통계연구소(INSEE)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약 480만쌍(960만명) 정도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다.6커플 중 1커플은 결혼하지 않고 동거 중이라는 얘기다. 프랑스에서는 동거가 문란하고 복잡한 사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는 동거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쳐진 것이 사실이다. 내연의 관계이거나 격식과 절차를 중시하지 않는 노동자 계층에서 동거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하지만 60년대 프랑스의 지성을 상징하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이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함께 하면서 동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2차대전 이후 태어난 68혁명 세대들은 결혼이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사회로부터 여성 소외를 야기하는 제도에 불과하다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결혼이든, 동거든 개인의 가치선택에 달린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살아보고 결혼해야 실패도 줄여 프랑스에서 동거가 보편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풍토인데다 종교(가톨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이 동거하는 이유를 물으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거나 “아직 모든 면에서 준비가 안돼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전자의 경우 제도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하는 지식인 계층이나 사고가 자유로운 예술가, 결혼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해당한다. 알리오-마리 국방장관은 “결혼은 부르주아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는 함께 살면서 좀더 상대방을 알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20∼30대 젊은 커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취재차 만났던 세실과 질은 “결혼은 두 집안의 결합이기 때문에 훨씬 신중해야 한다. 동거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관계일 뿐이다.”고 했다. 이들은 “결혼이 리스크가 큰 반면 동거는 자신과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테스트 기간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거를 통해 상대의 성격이 자신과 맞는지, 반대로 전혀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동거기간을 거쳐 결혼을 하면 성격차로 인한 불화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결혼하는 커플 갈수록 줄어 동거가 일반화되면서 결혼하는 커플은 계속 하향세를 보인다. 밀레니엄붐이 일었던 2000년 30만 5385쌍을 정점으로 줄어들어 지난 2004년에는 27만 8600쌍을 기록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위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니다.2004년 기준 전체 신생아(80만 240명) 가운데 47.4%가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생아 둘 중 한명은 혼외출산인 셈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제도적으로도 뒷받침하고 있다. 부모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 부모들이 갖는 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가족 수당도 소득과 자녀 수에 따라 지급된다. 이전에는 민법상 결혼한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동과 그렇지 않은 아동을 구분했지만 2005년 7월 5일 법령으로 이런 구분을 없애고 모든 아동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했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커플을 유니옹 리브르(union libre), 즉 ‘자유로운 결속’이라고 한다. 법적인 효력을 지닌 부부관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만나 동거를 하거나, 금방 헤어지고, 자유롭게 한눈을 파는 일은 드물다. 짧게는 1∼3년, 길게는 수십년간 함께 산다. 아이도 낳아 기르며 가정을 이룬다. 아이들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고,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부모인 남녀는 서로 아내, 남편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상대방을 남에게 소개할때 내 남자친구, 혹은 내 여자친구라고 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반려자(compagnon)’라고 소개한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시민연대계약이란 시민연대계약(PACS·Pacte civile de solidarite)은 두 개인이 공동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다. 지극히 프랑스적인 이 제도가 도입된 단초를 제공한 것은 필립과 미셸이라는 동성애자 커플이었다. 필립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자 가족은 외면했지만 동거남 미셸은 끝까지 필립을 간호했다. 하지만 필립이 세상을 떠난 뒤 필립의 가족들은 미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필립의 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미셸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당의 진보적 의원들은 “동성애자 커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며 법 제정을 추진했다.1990년의 일이다. 이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0월 의회를 통과했다. 동성애자 커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긴 했지만 지속적이고 안정된 성격의 사실적 결합을 이루고 있는 모든 동거 커플에 적용되고 있다. 시민연대계약은 자유로운 형태의 동거와 구속력이 강한 결혼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일종의 계약 관계를 사회가 인정해주는 것이다. 거주지 관할 시청에서 2명의 증인 참석 하에 신고하면 간단하게 끝난다.PACS 동반자로 신고된 두 사람은 은행에 통합계좌를 열 수 있으며 재산세의 경우 계약에 서명한 날로부터 공동 과세대상이 된다. 계약 후 만 3년이 되면 소득세에 대해서도 공동 과세대상이 된다. 증여세나 상속세율도 낮게 적용 받는다. 주택 계약의 명의 이전도 가능하고 육아휴직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결혼한 부부와 마찬가지로 누릴 수 있다. 1999년 말∼2004년 말까지 14만 5000쌍이 연대계약을 맺었고, 같은 기간 1만 8000쌍이 관계를 해지했다.
  • ‘바람 잘 날 없는’ 부시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은 항상 겹쳐서 오게 됨)이라 했던가. 중간선거 참패로 기가 꺾인 채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가 연이은 사고로 가슴을 졸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21일(현지시간) 또 나쁜 소식이 들렸다. 미국 ABC방송은 경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아르헨티나를 2주 일정으로 여행하던 큰딸 바버라(25)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지갑과 휴대전화 등을 강탈당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비밀경호팀이 바버라와 쌍둥이 동생 제나가 식사하는 근처를 경호하고 있었는데도 강도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사건과 별개로 다른 경호원은 현지민과 언쟁을 벌이다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고 방송은 보도했다. 19일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전용기 에어포스 원의 타이어가 펑크나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던 부시 대통령의 귀국길 역시 평탄치 못했다. 이날 장병들과 아침을 들기 위해 히컴 공군기지로 이동하던 중 행렬을 선도하던 경찰 오토바이 3대가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경관 1명은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밤 백악관 직원 2명은 호놀룰루 외곽을 돌아다니다 괴한들에게 두들겨맞고 강도를 당했다.AP통신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호찌민과 2차대전의 발단이 된 진주만이 있는 하와이를 방문한 이번 여정은 “과거와 현재의 전투 얘기로 그늘졌다.”고 꼬집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7세 美고교생 ‘핵융합’ 성공

    17세 美고교생 ‘핵융합’ 성공

    17세의 미국 고교생이 진공청소기로 제작한 장비를 통해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 이 소년은 세계에서 18번째로 핵융합에 성공한 아마추어 과학자(www.fusor.net)에 등재됐다. 미국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는 19일(현지시간) 미시간주의 스토니 크리크고교 3학년생인 티아고 올슨이 2년여의 도전 끝에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핵융합은 ‘인류의 차세대 에너지’로 불린다. 현재 국제적인 공동프로젝트를 통해 실험이 진행되는 분야다. 핵융합은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D)와 삼중수소(T) 등의 핵을 결합하는 것으로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된다. 핵융합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폭발하는 게 수소폭탄의 원리이다. 친구들이 붙여준 올슨의 별명은 ‘과학에 미친 소년’이다. 올슨은 지난 2년간 1000여시간을 집에 마련한 지하 실험실에서 보냈다. 지난 17일 진공청소기의 부품 등으로 만든 진공장치에 중수소를 주입하고 4만볼트의 전기를 가해 플라즈마를 일으키는 등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쳤다. 올슨은 2차대전 당시 미 국방부에서 탱크를 디자인한 과학자이자 친할아버지인 클레런스 올슨처럼 연방정부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미국·프랑스, 정계 우먼파워

    ■ 美 펠로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 의회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에 16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추대된 낸시 펠로시 의원의 낯빛은 밝지 못했다. 대통령 유고시 딕 체니 부통령에 이어 승계 2위에 올랐지만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스테니 호이어 의원의 손을 맞잡은 그녀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역력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자신이 공공연하게 밀었던 존 머서(펜실베이니아) 의원 대신 긴장관계에 있는 호이어(메릴랜드) 현 원내총무가 선출됐기 때문이다.<서울신문 16일자 15면 참조> ●원내대표 경선에 표심 관철 못 시켜 호이어 의원은 이날 비밀투표 경선에서 149표를 얻어 86표에 그친 머서 의원을 가볍게 따돌렸다. 펠로시는 여성 첫 하원의장으로서 산뜻한 첫발을 떼는 데 상처를 입게 됐으며 당내 통솔력에도 의문부호가 매겨졌다. 뉴욕 대학 의회연구센터의 폴 라이트는 “하원의장으로서 할 일은 첫 싸움에서 누구라도 넘볼 수 없도록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확실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머서의 패배는 낙태와 총기 규제 및 하원 윤리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이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진보파의 지지를 상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펠로시와 원내 2인자인 호이어 의원은 원내 운영과 당내 진로를 둘러싸고 충돌할 것으로 우려된다. 펠로시는 애써 기자회견에서 “당내에 논란도 있고 견해차도 있었다.(그런데도)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다.”며 당의 단합을 촉구했다. 한인단체 등에선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 그녀가 내년 1월 차기 하원의장직에 앉게 되면 결의안 재상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프리카계인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이 원내 서열 3위인 원내총무로 선출됐다. 아프리카계 원내총무 역시 사상 처음이다. 이로써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은 상·하원 지도부 구성이 모두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인선 내용이 알려진 상원 상임위원장 외에 통상·과학·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일본계인 하와이 출신의 다니엘 이노우에 의원이 내정됐고 국토안보·정보위원회 위원장에는 코네티컷주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조지프 리버먼 의원이 내정됐다. ●약진하는 여성 정치인 펠로시 하원의장의 등장은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결정과 맞물려 여성 정치인의 위상이 약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과 버티 어헌 총리,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지난해 11월 전후 첫 여성 총리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현역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다.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전 총리는 현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전 총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의 미셸 알리오마리 국방장관도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 루아얄과의 승부가 펼쳐질지 관심을 모으며 영국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인 마거릿 베케트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북유럽(40)을 제외하고는 유럽의 여성 의원 비중은 17.4%에 그쳐 미국(21.4%), 아시아(16.5%)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dawn@seoul.co.kr ■ 佛 루아얄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여성뿐이다.”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세골렌 루아얄(53)은 “여성의 시대가 왔다.”며 이같이 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도약’한 그녀는 정치 실종으로 신음하고 있는 프랑스를 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 소신에 따라 지난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두 달여 장정 끝에 지난 16일(현지시간) 치러진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 1차투표에서 60.6%의 지지율로 관록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20.81%) 전 재무장관, 로랑 파리뷔스(18.59%) 전 총리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변화를 선택한 사회당원 지난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뛰어든 루아얄은 환경장관(92년), 학교교육담당장관(97년)을 역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대선 후보’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 폭력과 아동 포르노물 추방 등 충실히 정책을 시행하면서 ‘내면화된 야망’을 키워갔다. 그녀가 프랑스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지난 2004년 지방선거에서 푸아투-샤랑트 지역의 의회의장에 선출된 것이다.‘무리’라는 주위 만류에도 불구, 전통적으로 우파가 강했던 이 지역을 찾아가 당당히 승리함으로써 관료가 아닌 ‘정치인 루아얄’을 각인시켰다. 앞서 1988년 미테랑의 보좌관 생활을 접고 두-세브르 지역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지역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발로 뛰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평가다. 이후 ‘참여 민주주의’를 내걸고 가장 먼저 ‘블로그’를 개설하는 등 ‘전자 정치’에 주력하면서 지명도를 높여갔다. 특히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화력으로 기존 정치인에 환멸을 느끼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선 소식을 접한 일성이 “그저 행복감을 느낄 뿐”이었다는 것도 그녀의 소박함을 보여준다.88년 총선 출마 당시를 기억하면서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기차에 훌쩍 올라탔다.”고 말하는 등 감성 정치에도 뛰어나다. 1953년 9월22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육군 대령 자크 루아얄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프랑스의 전형적 엘리트 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ENA 동기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와 함께 정식결혼이 아닌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당이 단합할 때”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먼저 경선 과정에 나타난 당의 분열을 꿰매야 한다. 우선 다른 후보들과의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분열을 해소하고 12년 만의 정권 탈환에 주력해야 한다. 17일 당선 확정 소식을 들은 그녀가 “이제는 당이 단합할 때”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부담을 잘 보여준다. 지난 2002년 대선 1차투표에서 좌파가 분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극우정치인 장-마리 르 펜에 밀리는 이변을 낳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다. 또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주자로 유력시되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에 맞서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앞에 두고 있다. 최근 공개된 잇단 여론조사에서 루아얄은 사르코지와 같은 지지율이 나올 정도로 내년 대선은 접전이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외교·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과제다. 이미지 정치로 인기에 영합했다는 비판에 맞서려면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게 사회당 안팎의 시각이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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