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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들 눈앞에서 위안부 생체해부”

    |도쿄 박홍기특파원|2차대전 당시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쳤던 일본의 ‘731부대’가 군 위안부를 자식이 우는 앞에서 해부했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10일 일본 요미우리 인터넷판에 따르면 당시 육군 731부대의 위생병 하사였던 오카와 후쿠마쓰(88)는 지난 8일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전쟁과 의료의 윤리’에 참석,“아이가 딸린 위안부를 해부한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또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엄마는 죽어갔다.”고 말했다. 오카와는 “매일 2∼3명의 살아 있는 사람을 해부했다.”면서 “잘못된 역사를 사회에 분명히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처음으로 증언 배경을 설명했다. 오카와는 “처음에는 ‘대단한 곳에 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감각이 마비돼 매일 2∼3명을 해부하지 않으면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되뇌었다.“많을 때는 하루에 5명까지 해부했다.”고도 했다. 와세다대학에서 세균학을 배운 오카와는 1941년에 소집돼 44년 8월 구만주(현 중국 동북부)에 있던 731부대에 배속됐다. 소속된 반은 페스트와 콜레라, 매독 등의 병원체를 인체에 주사해 감염 상태를 조사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었다고 밝혔다.hkpark@seoul.co.kr
  • 伊영화감독 코멘시니 사망

    |파리 이종수특파원|블랙코미디로 유명한 이탈리아 루이기 코멘시니 감독이 별세했다.90세.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비토리오 데 시카가 주연한 ‘빵, 사랑, 꿈’(1953)으로 유명해진 코멘시니 감독은 영화인 생활 43년 동안 어린이와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을 담은 ‘교통체증’(1979년),‘오해’(1966년) 등 50여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40여편의 시나리오를 남겼다. 그는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 전후 신사실주의의 유산을 부드럽고 역설적인 코미디로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6년 브레스치아 인근 살로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와 밀라노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으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다 1946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딸 넷 가운데 크리스티나와 프란체스카는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월테르 벨트로니 로마시장은 “코멘시니는 영화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거장이자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vielee@seoul.co.kr
  • 의 마지막 2분이 시작된다

    의 마지막 2분이 시작된다

    왕년의 명화를 거론할 때 서부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쓴 <하이눈>을 빼어 놓을 수는 없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남우 주연, 주제가상, 음악상, 편집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가장 많이 감상한 영화이기도 한데 특히 클린튼과 아이젠하워가 백악관 재임 시에 각각 2~3번 본 것으로 유명하다. 그 자신 매카시즘에 의해 시달리던 칼 포어맨이 각본을 담당하였고 유태인으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명장 프레드 진네만이 감독한 영화이다. 촬영 당시 부인과의 이혼과 좌골 신경통, 그리고 출혈성 위궤양으로 심신의 타격을 받고 있던 51세의 주연 스타 게리 쿠퍼의 수척한 표정이 이 영화를 더욱 실감나게 각인시킨 셈이다. 아픈 몸을 일으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다. 그런데 영화 평론가 팀 덕스에 의하면 영화 <하이눈>은 한국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던 1952년에 만든 것으로 한국전쟁 중에 공산국들과 벌인 냉전과 혈전, 그에 따른 미국의 외교정책이 처한 난처한 현실의 비유로 해석되어 왔다는 것이다. 2차대전을 겪으면서 여러 해 동안 신의를 가지고 계속 도와줬던 해들리빌 마을사람들, 즉 유럽 우방들이 보안관을 배신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비겁함(cowardice), 무기력(physical inability), 이기심(self-interest), 편의주의(expediency), 엉거주춤(indecisiveness) 때문에 더 이상 보안관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이 협조를 거부하는 가운데 그는 겁이 나긴(Fearful)하지만 의무감(duty-bound)을 지닌 채 4명의 악당 즉 북한 공산군 ,중공군, 소련군, 기타 공산권과 마주서서 변방마을, 즉 한국의 정의(frontier justice)를 지키기 위하여 한낮 정오에 결투에 임한다는 것이다. 숨 막히는 총성이 멎자 영화 속의 주인공 윌 케인(게리 쿠퍼)은 승리하였다. 요즘 돌아가는 정세로 봐서는 이 영화의 마지막? 2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가를 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대결이 끝나고 나서 보안관 윌 케인은 보안관 배지인 ‘양철 별(tin star)’을 가슴에서 떼어내 그를 배신했던 마을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에 던져버리고 이 수치스러운(dishonorable) 서부의 최일선에 위치한 변경마을을 떠나간다. 막 결혼식을 올린 사랑하는 젊은 신혼 부인과 같이 말이다. 미국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의 3년여 기간 동안 한국전쟁에서 전사자 5만 4천 명, 부상자 무려 10만 명을 내었다. 이 기간 동안 미 국방성 자료에 의하면 동원된 군인 수는 연인원 572만 명이나 된다. 전비는 현재 가액으로 수천 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참고로 고이즈미 일본수상은 2006년 6월 29일 미국에서 있었던 국빈만찬에서 “보안관 게리 쿠퍼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악당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게리 쿠퍼와 오늘날의 미국과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악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미국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친구이자 동맹인 일본은 항상 미국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해 만찬 스피치로는 드물게 30초 정도의 긴 박수를 받았다. 영화 <하이눈>을 예로 든 미·일 양국 간의 우정은 만찬 참석자는 물론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영화 <하이눈>은 9·11 테러 직후 고이즈미가 텍사스를 방문했을 때 부시를 게리 쿠퍼에 비교하면서부터 화제에 올랐다. 고이즈미는 주도면밀한 준비 끝에 미국을 상대로 소위 ‘하이눈 외교’를 선보였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와서 미국의 시각에서 해들리빌 마을사람들은 누구인가. 또한 사랑하는 새로운 젊은 신혼 부인은 누구일까?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 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위안부 문제해결 아베총리가 걸림돌”

    최근 일본 수뇌부의 군 위안부 부인 발언에 강력한 비판논조를 펼쳤던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31일(현지시간) 일본군의 위안부 설치 관여를 처음 공개한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를 집중 인터뷰했다. 요시미 교수는 인터뷰에서 “15년 전 방위청 보관 자료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사실을 밝혔을 때만 해도 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곧 엄청난 반격에 부딪쳤다.”면서 “반격의 주역은 아베 신조 현 총리와 같은 젊은 민족주의 정치인들이었다.”고 말했다. 전후 일본의 민주화 문제를 연구하던 요시미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것은 1992년이다. 바로 전해 한국에서 ‘정신대’(당시 명칭) 피해 할머니들이 여성단체들의 지원으로 침묵을 깬 직후다. 일본 정부가 이를 부인하자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도쿄대를 졸업한 뒤 방위청 자료실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독가스 사용 자료를 찾고 있던 그는 일본이 위안소 설치·운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드러내는 문서를 발견, 까무러칠 뻔했다.그러나 워낙 이 문제가 생소한 것이었고, 전시 여성의 피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공개하진 않았다고 한다. 찾아낸 문서는 1938년 3월4일 일본 관동군 참모총장 부관이 작성한 ‘군 위안소 여성 충원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야전의 군은 여성 충원을 통제하고, 헌병과 각 지방 경찰이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1938년 7월 관동군 참모총장의 문서에도 “일본군의 주둔군 여성 겁탈이 반일 정서를 고조하고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위안소를 설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돼 있다. 1991년 말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태도를 본 그는 자신의 자료를 아시히 신문에 제보했다.1993년 고노 담화가 이렇게 해서 나왔지만, 그후 그는 우익 단체들로부터 엄청난 시달림을 받았다. 요시미 교수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2주간 도쿄 하늘은 군 지휘부 인사들이 전범 증거를 없애기 위해 공식 문서를 태우느라 검은 연기로 뒤덮였을 정도”라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가 찾은 자료는 당시 도쿄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불타지 않고 미군정에 압수됐다. 미 군정은 문서들을 1950년 일본 방위청에 반환했다. 요시미 교수는 8개 검정 교과서 가운데 1997년 7개 검정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실었지만, 지금은 2개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정치 권력을 손에 쥔 아베 신조와 그의 ‘동지들’이 땀을 흘린 결과라고 비꼬았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씨줄날줄] 로널드 레이건호/황성기 논설위원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것은 1996년 2월이었다. 미 7함대 소속인 인디펜던스호가 정례 기동훈련을 위해 한반도 해역에 왔을 때였다.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미국, 일본의 보도진과 인디펜던스에 승선할 기회를 가졌다. 군산 앞바다에 떠 있는 항모에 가기 위해 서울 인근 공군기지에서 20인승 C2수송기를 탔다.C2수송기의 좌석은 비행방향과 정반대로 돼 있다. 철선으로 비행기를 급제동하는 항모 특성상 착륙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2∼3m 높이의 파도가 있는 해역이었는데도 항모에서는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5600명이 근무하는 인디펜던스에는 빵집, 교회를 비롯해 병원, 대학까지 갖추고 있었다. 거대한 군사력을 거느린 떠있는 기지, 항모의 위용을 체험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항공모함은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 군사력의 상징이다. 현재 항모 12척 체제다. 미국의 항모개발은 2차대전때 일본의 항모에 대항하기 위해 본격화됐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으로 혼쭐이 난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항공모함 함대를 조직했다. 일본에 밀리던 미 해군은 이때부터 야마토 전함 등 일본의 주력선단을 침몰시키고 전세를 역전시킨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 보유국이다. 러시아의 1척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도 보유하고 있다. 어제 부산항에 들어온 로널드 레이건호는 미국의 최신예 핵항모다.98년 퇴역한 인디펜던스에 이어 취역했던 키티호크가 정비를 위해 비운 자리를 잠시 차지했다. 조기경보기, 최신예 전투기 등 80여대의 항공기를 탑재한 이 항모는 이지스 순양·구축함, 핵추진 잠수함 등 막강 전력을 끌고 다닌다. 핵항모 전단은 웬만한 국가의 군사력을 능가한다. 미 항모가 떴다 하면 북한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도 다 까닭이 있다. 핵항모가 지닌 위력을 잘 알고 있는 북한에는 생존차원의 위협이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이 로널드 레이건호가 참가하는 연합정시증원(RSOI)연습에 반대했다.2·13 북핵 합의에 역행한다는 게 이유다. 안보불안이 있는 한 한·미 군사훈련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훈련규모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사랑해요 유럽연합(EU)

    |파리 이종수특파원|저가 항공기 등장, 전화요금 인하, 웨일스 등 소수 언어 보호….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을 사랑하는 50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유럽 통합 이후 대륙의 변화상을 보도했다.25일로 창립 50돌을 맞는 EU의 모습을 50가지 혜택이란 프리즘을 통해 미시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신문은 먼저 정치적으로 역내 분쟁 종식을 큰 변화로 꼽았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이 2차대전 때처럼 다투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또 27개 회원국에 민주주의가 꽃피었다는 점도 통합의 혜택으로 들었다.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와 동구 10개국이 대상이다. 경제분야에서는 아일랜드 등 가난한 나라들이 풍요롭게 된 점을 거론했다. 영국의 그늘에 가려졌던 아일랜드는 EU 지원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이 EU 평균의 1.37배 성장했다. 이밖에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그로 인해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성장률을 이룬 점, 회원국 국민들이 부가세 없이 ‘국경 없는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된 점도 사례로 들었다. 사회분야에서는 회원국간 이민정책 조율로 불법이민에 적극 대응하게 된 것이 큰 변화로 꼽혔다. 또 EU 공동의 체포영장 사용으로 범죄수사 공조가 쉬워졌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노동자들은 1년에 4개월 동안 유급휴가를 갈 수 있게 됐다. 회원국 국민이 소비자로서 누리는 다양한 혜택도 거론됐다. 먼저 1980년 역내 정보통신시장 자율화로 전화요금이 1984년 이후 80%나 내렸다. 역내 어느 나라에서나 자국과 같은 의료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항공시장 자유화로 이지젯이나 라인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가 등장한 것도 큰 변화다. 한편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와 같은 폭군이 대륙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것도 통합의 성과로 꼽혔다. 대학생 교환 프로그램 활성화, 음식물 등급제의 강화도 달라진 양상이다. vielee@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0) 문화외교의 달인들

    [프렌치 리포트] (20) 문화외교의 달인들

    지난 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프랑스의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 문화장관과 UAE의 벤 타눈 알니안 관광장관은 오는 2012년 문을 여는 새 국립박물관 이름에 ‘루브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는 국가간 합의문에 서명했다.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박물관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2037년까지 30년 동안 루브르라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4억달러(약 4000억원)를 받는다. 박물관이 완공되면 10년 동안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예술품을 대여해줄 계획이다. 대여 기간은 작품당 2년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여졌다. 루브르 소장 예술품을 대여하는 데 UAE정부가 지불하는 비용은 7억 5000만달러(7500억원)로 알려졌다.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은 프랑스의 대외 문화정책이 21세기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사막에 루브르를 수출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는 인류 역사의 학습장을 만든다는 계획 아래 루브르궁을 박물관으로 바꾸고 왕족 소유의 회화와 조각 등 예술품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1793년의 일이다. 루브르의 소장품은 현재 44만 5000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의 보고(寶庫)를 찾은 방문객은 지난해 830만명이나 된다. 이런 상징적인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을 아랍 산유국에 설립한다니 프랑스 사람들이 분개할 만하다. 지난 1월 초 ‘사막 루브르’ 계획이 발표되자 프랑스에서는 비난여론이 폭등했다. 미술사학자, 고고학자,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을 비롯해 시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반대 서명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가 세계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프랑스의 영혼을 파는 행위’라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가 루브르 아부다비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이득보다는 중동 문화권에서 프랑스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아부다비시가 있는 걸프만에 조성되는 사다야트 문화지구에 들어설 예정인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은 프랑스의 대표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았다. 수많은 방들로 구성된 거대한 돔 형식으로 연건평 2만 4000㎡에 전시공간만 8000㎡에 이른다. 사다야트 문화지구는 루브르 박물관 외에 프랑크 게리의 구겐하임미술관, 다다오 엔도의 해양박물관, 자하 하디드의 공연예술센터 등이 들어서 거장 건축가들의 미래적인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사다야트 문화지구를 찾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문화적 파워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할 것은 당연하다. ●중국 상하이 ‘퐁피두센터´ 분관도 루브르 박물관 외에도 2010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분관을 오픈한다. 브라질에는 로댕미술관 분관 설립을 검토 중이다. 러시아·인도·아프리카·남미 등과 박물관 파트너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내적으로는 문화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문화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문화시설의 세계화를 통해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는 박물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르본 대학 위성캠퍼스가 아부다비에 생겼고, 카타르에는 생시르육군사관학교의 훈련아카데미가 설립될 예정이다. 문인들을 외교사절로 발탁해 문화 외교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전통이지만 대외 문화정책이 체계화된 것은 2차대전 이후이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인도차이나·아프리카 등 해외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면서 프랑스 문화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대외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1945년 외무부 내에 문화관계 총괄사무국을 신설, 대외적인 문화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프랑스어권 국가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국제적 문화예술 협력을 통해 프랑스의 문화를 새롭게 전파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프랑스 문화원, 외국의 프랑스 초·중등학교, 알리앙스 프랑세즈 등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알리는 조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다. “문화는 프랑스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당시 외무부 장관 조르주 비도의 말은 무척 인상적이다. 드골 대통령 때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프랑스 문화의 세계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모나리자의 도쿄전시회 등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프랑스 문화의 우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에 문화적 색채가 강해진 것은 모두 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보면 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문화다양성으로 대항 프랑스의 대외 문화정책은 미테랑 대통령 시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1980년대 초반은 할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몰개성·무국적의 미국 문화가 급속도로 파급돼 각국의 문화정체성을 위협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회당 정부에서 문화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프랑스의 문화를 보존·발전시키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문화의 독점적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각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아랍문화연구소, 국제문화의 집, 다문화연구소 등을 만들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추진했다.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 문화의 범람에 맞서 자국 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처음 제안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과됐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NYT, 日 위안부 진실부정 연이어 맹비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군대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는 없다.’고 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과 관련,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8일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피해 여성들의 뼈아픈 기억들에 또다시 생채기를 냈다고 논평했다. 지난 6일에도 사설을 통해 “일본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인정해야 창피한 과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아베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에게 진실을 인정하도록 촉구했던 NYT는 이날 2차대전 당시 중국 광둥성에서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한 타이완 여성 우슈메이(90)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피해자의 증언이 증거”라고 강조했다. 우슈메이는 한국 길원옥(79)씨, 네덜란드 국적의 얀 루프 오헤른(85·호주 거주) 등 두 위안부 출신 여성과 함께 호주 시드니의 일본 영사관 정문에서 아베 총리 등 일본 정치인의 역사왜곡과 사과 거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NYT와 회견을 갖고 ‘타이완인의 일본군 위안소 운영’ 등의 사실을 밝혔다.dawn@seoul.co.kr
  • 아베총리 ‘日 위안부 존재 부정’ 파문

    |도쿄 이춘규·워싱턴 이도운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일 2차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존재 사실을 부정한 것과 관련,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아베 총리의 언급은 지난 1993년 일본 정부가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 명의로 위안부 문제를 공식 사죄한 ‘고노담화’를 부정한 것이다. 일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미 의회 결의안을 추진 중인 마이클 혼다 민주당 하원의원은 1일(현지시간) 종군 위안부 만행은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거듭 밝혔다. 한국과 필리핀의 여성 인권단체, 정치권의 반발도 거세다. 혼다 의원은 성명에서 “숨길 수 없는 역사적 기록과 최근 위안부 할머니들의 미 하원 청문회 증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개인적 사죄 등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2차대전 당시 최대 20만명의 여성을 성노예로 내몰았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계인 혼다 의원은 일본의 명성을 더럽히지 말고 “부인할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을 공식 사과함으로써만 자유 민주 국가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입지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 종군위안부 단체인 리라 필피나의 레칠다 엑스트레마두라 사무총장은 “일본 총리가 2차대전중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발언한 데 대해 격분을 느낀다.”고 말하고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상당액의 보상액은 받았으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법적으로 우리의 위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1일 밤 총리관저에서 가진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고노담화’와 관련해 “당초 (담화가) 정의하고 있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구 일본군이 종군위안부를 강제적으로 모아 관리한 증거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냈다고 지지통신이 2일 전했다.taein@seoul.co.kr
  • [공연+새앨범]

    ■ Max 14 3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편집음반. 벌써 14집째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주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비욘세의 ‘Irreplaceable’,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 웨스트라이프의 ‘The Rose’ 등 무려 20곡의 히트 넘버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SonyBMG. ■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The Essential 프로그레시브 록과 팝을 현명하게 조화시킨 듀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역사가 망라된 2CD 베스트 앨범. 이들이 발표한 모든 앨범에서 적절하게 발췌한 곡들을 발표 연대에 맞춰 수록해 놓았다.80년대 최대의 히트곡 ‘Eye In The Sky’등 총 30곡 수록.SonyBMG. ■ We All Love Ennio Morricone 45년간 400곡 이상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며 20세기 영화음악을 이끌어온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카데미상 최초 수상(공로상)을 기념하는 공식 헌정앨범. 셀린 디온, 브루스 스프링스틴, 허비 핸콕, 메탈리카 등 초특급 뮤지션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그의 대표곡들을 노래한다.SonyBMG. ■ 카펜터스 ‘The Ultimate Collection’ 70년대 소프트 팝의 대명사 카펜터스의 베스트 앨범. 비틀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Ticket To Ride’를 시작으로 소닉 유스가 다시 불러 신세대 팝팬들에게도 익숙한 ‘Superstar’,7080세대의 영원한 애창곡 ‘Top Of The World’,‘Yesterday Once More’ 등 35곡의 대표곡들이 연대별로 두장의 CD에 담겨져 있다. 유니버설뮤직. ■ 클로드 볼링 내한공연 크로스오버의 살아있는 거장 클로드 볼링과 그의 19인조 빅밴드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CF나 라디오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아름다운 클로드 볼링의 선율을 풍성한 빅밴드의 연주와 함께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24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극장.(02)6080-5643. 미술 ■ 명화의 재구성 3월2일∼5월20일 사비나미술관. 밀레의 ‘만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명화를 한국의 작가 20명이 새롭게 해석했다. 서양 명화가 평면회화, 조각, 설치작품 40여점으로 재탄생한 전시회. 명화 속에서 찾아낸 창작의 샘.‘명화 속 주인공 되기’란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1000∼2000원.(02)736-4371. ■ 마리노 마리니-기적을 기다리며 4월22일까지 덕수궁미술관. 헨리 무어와 함께 구상 조각계를 이끈 쌍두마차. 기마상과 풍만한 여성 누드 조각은 2차대전 이후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다. 조각과 회화 등의 작품 105점을 만날 수 있다.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도 마리니의 회화, 판화 등을 3월14일까지 전시한다.(02)2022-0612. 연극 ■ 앵콜 아트 폐막 기한 없음 화∼목 7시30분, 금·토 4시·7시30분, 일 4시 허밍스 아트홀.2004년 시작돼 전용관까지 마련된 대학로의 롱런 히트극으로 이번이 9번째 공연이다. 우정의 본질에 관한 세련된 블랙코미디. 정보석 권해효 오달수 박광정 정원중 심혜진 송승환 등 연기력이라면 남 부럽지 않은 당대의 명배우들이 모두 출연한 바 있다. 김효중 연출, 박윤호 허성민 조성호 출연.1만 5000∼2만원.(02)764-8760. ■ 열하일기만보 3월10∼25일 화∼금 8시, 토 3시·7시30분, 일 3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조선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모티브로 삼아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극작가 배삼식씨가 특유의 상상력과 재기를 한껏 발휘했다. 정체조차 모호한 짐승 연암이 성인을 위한 동화를 들려준다. 인간의 본능인 호기심과 새로운 것의 탐닉에 대한 이야기. 손진책 연출, 서이숙 정태화 박영숙 황연희 등 출연.1만 5000∼3만원.(02)747-5161. 뮤지컬 ■ 위대한 캣츠비 3월9일부터 화∼금 8시, 토 4시·7시30분, 일 3시·6시30분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인터넷 만화의 선두주자 강도하씨의 ‘위대한 캣츠비’를 원작으로 최근 화제작 연출을 도맡고 있는 박근형씨가 연출했다. 뮤지컬 ‘불의 검’, 드라마 ‘연개소문’에 참여했던 아트모스피어(이충한, 정재환씨)가 작곡한 음악은 감미롭기 그지없다.20대 청춘의 현실적 고뇌, 사랑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뮤지컬 언어로 담았다. 김태훈 서범석 정인지 등 출연.3만 5000∼4만 5000원.(02)1588-7890. ■ 쓰릴 미 3월17일∼5월13일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2시·5시 충무아트홀 소극장.1924년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흉악한 범죄를 바탕으로 만든 섬세한 심리극. 당시 재판정에서 최종변론문이었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지금도 전해지는 명문장. 무대 위의 피아노 연주만으로 2명의 남자 배우가 노래 대결을 벌인다. 류정한 김무열 최재웅 이율 출연.3만∼4만원.(02)744-4337. 클래식 ■ 드레스덴 필하모닉 & 성 십자가 합창단 내한공연 3일 8시,4일 2시30분.3일 모차르트 ‘레퀴엠’과 바흐 칸타타 ‘내 마음에는 근심이 많도다’,4일 바흐 ‘마태수난곡’. 지휘 성십자가 합창단의 28대 칸토르인 로데리히 크라일레.3만∼20만원.(02)599-5743. ■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드보르자크 ‘스타바트 마테르’ 6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로베르트 리히터. 소프라노 신숙경, 알토 장현주, 테너 최상호, 베이스 박흥우. 고양시립합창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1만∼3만원.(02)587-8111.
  • “일본 단카이세대 퇴직금 잡아라”

    “일본 ‘단카이(團塊)세대’를 잡아라.” 22일 강원도에 따르면 ‘은퇴 후 돈을 쓰며 살겠다.’는 일본 단카이세대를 잡기 위해 다양한 테마관광상품 개발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동안 드라마 겨울연가 특수 등으로 인해 싸고, 가깝고, 짧은 일정의 관광지로 여겨졌던 강원도 관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일본의 단카이세대는 2차대전 직후인 지난 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하며 약 68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올해 대량 퇴직하는 이들의 퇴직금 규모만 해도 50조∼80조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강원도와 일선 지자체, 관광업계는 이같은 단카이세대를 겨냥해 ‘테마형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개발에 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해말 일본지역 여행상품기획자들을 초청, 단카이세대를 겨냥한 실버상품 팸투어(사전 답사여행)를 실시한데 이어 올들어서도 공격적인 홍보에 나선다. 당장 22일부터 24일까지 니혼료코(日本旅行) 등 일본 여행사 관계자 13명을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달 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긴키니혼투어리스트(KNT) 상품기획자 100명을 대상으로 강원관광설명회를 갖는다. 이어 다음달 2∼3일에는 히노 요시히로 후쿠오카현 스키연맹 부회장 등 8명을 정선으로 초청, 강원랜드 스키장 등 관광지를 답사하고 8∼9일에는 일본 선박회사인 유센크루즈 관계자 4명과 함께 동해안 팸투어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강원관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강원관광 R&D 파크 조성, 강원관광아카데미 개설·운영, 강원관광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홍기업 환경관광문화국장은 “올해 주요 목표는 강원관광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것”이라며 “엔저 영향으로 국내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대거 빠져 나가는 추세속에 일본 관광객들이 강원도로 발길을 돌릴 수 있도록 다양한 고품격 관광상품을 개발해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나치협력 佛 파퐁 사망후에도 논란

    |파리 이종수특파원|‘살아서 프랑스 국민을 속이더니 죽어서는 논란의 대상’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나치협력자 모리스 파퐁(96)이 사망했다. 그에게는 ‘최고위급 나치 협력자’란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2차대전후 나치협력 경력을 감쪽같이 속이고 레지스탕스로 과거를 ‘세탁’한 뒤 파리 경찰청장, 예산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최고 영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사기극은 1981년 드러났다. 그가 1942∼44년 보르도지역의 치안책임자로서 유대인 1690명을 나치 수용소로 이송하는 데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희생자 유족의 고발로 1983년 기소된 그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한 민간단체의 끈질긴 추적끝에 그가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도록 명령한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98년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항소심 전날 스위스로 도주했다가 체포되면서 항소 권리마저 박탈당했다. 이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3차례나 관대한 처분을 요청한 뒤 2002년 9월 석방됐다. 그런 그가 죽어서도 프랑스를 논란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그의 안장과 관련, 변호사 프랑시스 뷔유맹은 18일 “생전에 받은 레종 도뇌르 3등장 등 생전에 받은 훈장을 함께 매장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vielee@seoul.co.kr
  • “사과 할만큼 했다” 일부의원 日 두둔

    “내 이름은 이용수다. 위안부라는 더러운 이름을 내게서 떼어달라. 일본의 돈을 전부 긁어모아 준다 해도 나는 받지 않을 것이다.” 15일 열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안부 청문회’에서 이용수(79) 할머니는 절규했다. 청문회에는 이 할머니와 김군자(81),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러프 오헤른(85) 할머니 등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3명이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증인으로 참석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으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을 낱낱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 바로세우기, 위안부 결의안 처리 등을 요구했다. 청문회는 일본계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의원이 제출한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과 결의문을 미 하원이 채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지원 성격도 가진 행사였다. 그러나 청문회에선 일본을 두둔하는 미 의원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다나 로라바허(캘리포니아) 의원은 “일본이 1994년 이후 여러차례 총리 발언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를 하라는 것이냐.”고 위안부들을 힐난했다. 그는 “현재의 일본이 앞선 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처벌받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일본을 두둔했다. 로라바허 의원은 혼다 의원이 제출한 결의안을 겨냥,“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사과의 조건도 일본은 이미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우적 성향으로 중국을 경계해 일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한국의 반미감정에 ‘분노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의 스티브 샤보트(오하이오) 의원도 이 문제를 물질적 보상 차원으로 접근했다. 샤보트 의원은 “위안부 가운데 283명이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서 “나머지 위안부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주재한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소위원장은 “일본이 역사를 되돌리려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미국이 다른 나라 정치에 얼마만큼 간섭할 수 있는가.’를 놓고 위원회 내부에 이견이 있다고 인정했다. 주미 일본대사관도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대사가 위원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러차례 책임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했던 아시아폴리시포인트의 민디 코틀러 국장은 “일본의 사과는 총리의 개인적인 것이었으며, 정부 차원에서는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행태는 가부키(가면) 연극을 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묘하게 흐르자 이용수 할머니는 청문회가 끝난 뒤 기자에게 로라바허 의원의 발언을 지목하며 “위안부들이 받지 못한 사과를 미국 의원이 대신 받았단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문제를 감추려는 일본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분을 삼켰다. 청문회 직후 일본 기자들은 청문회 주최에 앞장서고 직접 증인으로도 참석했던 혼다 의원에게 몰려가 “도대체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이유가 뭐냐.”고 힐난성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혼다 의원은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응대했다. dawn@seoul.co.kr
  • 인도차이나반도 교육한류 현장을 가다

    인도차이나반도 교육한류 현장을 가다

    “카오리(한국사람), 최고예요!” 인도차이나 반도에 교육 한류(韓流) 열풍이 뜨겁게 일고 있다.인기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한류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배우자는 교육 한류로 이어지고 있다.그 중심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교육 기반시설 지원 사업.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라오스 현지에 설립하고 있는 루앙프라방 국립대 건설 현장과 재작년 한국의 도움으로 문을 연 캄보디아 기술대를 다녀왔다. ●란상(Lan Xang)에 한국을 세운다. 지난 5일 오후 라오스 북부 중심 도시인 루앙프라방의 외곽 수파노봉 국립대. 우리나라 60년대 농업고등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단층 목조 건물에서는 세미나가 한창이었다. 오는 7월 ‘라오스 루앙프라방 국립대’로 다시 태어나는 이 대학 교수들에게 한국 교수들이 교육과정 운영 등 대학교육 시스템 전반을 설명하는 자리다. 대부분 학사 출신인 이 곳 교수들은 한국이 국립대를 세워준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표정만큼은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듯 진지했다. 우리나라가 이 곳에 국립대를 세우게 된 것은 2003년 라오스 정부가 한국에 지방 국립대 설립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오움 생찬다봉(59) 라오스 교육부 기획협력국장은 “한국도 30∼40년 전만 해도 우리처럼 가난했지만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 선진국이 됐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교육 노하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루앙프라방 지역은 중세 백만마리의 코끼리를 이끄는 찬란한 란상 왕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라오스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수파노봉 국립대만 초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교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학생 수(2800여명)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캄파이 시사반(54) 총장은 “라오스 북부에는 번듯한 교육시설이 없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어려워 현대식 대학 설립은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다.”면서 “한국의 도움으로 라오스 최고의 교육시설을 갖추게 됐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시설은 물론 교육과정과 운영 등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일괄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는 턴키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라오스 교수들이 전공별로 정기적으로 교류, 구체적인 대학 운영 매뉴얼을 전수하고 있다. 수파노봉대 부근에 짓고 있는 새 캠퍼스에는 메콩강을 끼고 36만 6000평 부지에 본관과 강의실, 기숙사, 도서관 등 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36개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다. 세계 인력자원(HR) 개발 거점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총괄 감리와 컨설팅을 맡고 있다. 또 포스코건설이 설계와 시공을, 포스데이터가 장비의 공급과 설치를 각각 책임지고 있다. 우송대를 중심으로 전주대와 강원대 등 5개 대학 등으로 구성된 시너지비전 컨소시엄은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전체 예산 가운데 80%에 이르는 2270만달러가 우리 정부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자금이다. ●캄보디아의 인재 ‘사관학교’를 꿈꾼다. 지난 9일 오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에서 차로 40분 걸리는 단꼬 지역. 이 곳에서는 한국의 교육수출 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 영글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2005년 문을 연 캄보디아 기술대학(NPIC)이 오는 9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한국어 테스트를 거쳐 한국 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전공은 건축과 자동차정비, 조리, 관광, 정보기술(IT), 기계 등 6개.2년과 4년제 과정에 캄보디아 내 직업훈련원과 기업, 학교의 장·단기 기술 위탁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 취업 희망자를 위한 한국어 강의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국은 이 곳에서 단순히 기능대학 하나를 세워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NPIC가 캄보디아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시간만 채우는 과거 직업훈련 교육방식이 철저히 경쟁 체제로 바뀌었다. 좋은 성과를 내는 대학이나 훈련기관이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NPIC 옆에 태국의 지원으로 이미 설립돼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던 직업훈련소도 최근 덩달아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현직 노동직업훈련부 차관이 대학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정도로 캄보디아 정부의 관심도 각별하다. 픽 소폰(54) 차관은 “한국을 다녀온 뒤 충격을 받고 생각을 바꿨다.”면서 “단순히 시설만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배워 철저히 질 관리를 통해 필요한 인력을 키우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루앙프라방·비엔티안·프놈펜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교수제자만 10명 한국배우기 열광” “편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평안한 것도 인생의 보람입니다.” 송융남(68) 전 강원대 농학과 교수는 라오스 수파노봉대 교수들 사이에서 스승으로 통한다. 현재 맡고 있는 루앙프라방 국립대 설립 사업에 교육과정 자문 역할 외에 교육 전반에 걸쳐 현지 교수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는 매주 두세 차례씩 이른 아침 교수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을 배우려는 교수들의 열망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작은 강의지만 주제는 다양하다. 우리 말에서부터 문화, 전통, 유행 등 한국에 대한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이 곳 교수들의 관심사다. 현재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교수 제자’만 10여명.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교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그 외에 두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추가로 한국어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송 전 교수는 “한국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해 뭘 가르치더라도 스펀지처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송 전 교수가 이 곳에 온 것은 2005년 9월. 강원대 농학과에서 퇴직한 뒤 봉사의 삶을 위해 주저없이 라오스행을 결정했다.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이젠 베풀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현재 수파노봉 국립대 근처에서 최소한의 체재비만 받으며 작은 집을 빌려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나라를 배우려는 이 곳 사람들의 열망만큼은 대단합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교육자들이 퇴직 후 이 곳에서 봉사의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루앙프라방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교육노하우 전수 한국 알리기 첨병” 우리나라의 교육수출 사업이 라오스와 캄보디아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교육 시설은 물론,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등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원스톱으로 세심한 자문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은 현지에 상주하는 컨설턴트가 있기에 가능했다. 주인공은 현지인들에게 ‘고민 해결사’로 통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지순(41) 박사. 교육수출 사업의 현지 컨설턴트 국내 1호다.2003년부터 5년째 이 곳에서 현지인들을 돕고 있는 장 박사는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우리의 교육수출 사업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컨설턴트의 역할은. -말 그대로 현지에서 자문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건물만 지어주거나 시설만 설치해주는 데 그쳤지만 이 곳에서는 현지 컨설턴트가 직접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단순한 성과 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상당한 동질 의식을 느끼고 있다.2차대전 당시 패전한 태국이 일본과 동질의식을 갖는 것처럼,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다른 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데다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 동류의식을 느낀다. ▶이번 사업의 의미는. -이 곳은 브릭스(BRICs)를 연결하는 축으로,2억 2000만명 이상의 시장 규모에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특히 일반적인 원조 사업과는 달리 사후 관리에 초점을 맞춰 질을 관리해 주기 때문에 시장 개척은 물론 장기적으로 친한(親韓) 인사가 늘어난다는 점도 매력이다. 비엔티안·루앙프라방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열린세상] 초상(肖像)/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떤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그린 그림이 초상이다. 옛날부터 쓴 말은 아니다. 초상이라는 말을 쓰기 이전에는 진영(眞影)이나 영정(影幀), 화상(畵像) 따위로 불렀다. 그런데 얼굴 그림은 내면적 정신세계를 담아야 그 진가가 인정되었다. 이를 전신(傳神)이라 했고, 마음까지 아우른다는 뜻에서 사심(寫心)이라는 말도 썼다. 초상을 흔히 휴머니즘에 충실한 예술로 일컫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고대부터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이를 제대로 그려 널리 퍼뜨린 시기는 조선시대다. 이 시대 초상의 유행은 국가가 유교를 정치적 지도이념을 삼은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나 조상의 뿌리를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인격에서 찾으려 한 흔적이 초상 곳곳에 배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면, 엇비슷한 이미지의 걸작 초상 두 점을 만날 수 있다. 도암 이재(陶庵 李縡·1680∼1746)와 그 손자 채(采·1745∼1820)의 상이다. 한 가족의 유전적 혈통을 속일 수 없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 만큼 두 얼굴이 서로 닮았다. 골상(骨像)부터가 닮아 할아버지와 손자 얼굴이 길다. 고요히 생각하는 정려(靜慮) 어린 눈매가 온유한데, 단아(端雅)한 입술은 수염 속에 감추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코가 역시 기다랗지만, 날카롭지 않은 콧날이 섰다. 이들 두 초상에서는 한산 모시에나 보임직한 올곧고도 정갈한 체취가 우러난다. 이는 곧 선비의 풍모가 아닌가. 할아버지 이재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손자 채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副使)로 부총관(副總官)을 겸임한 학자이자 행정가였다. 두 초상 얼굴에는 유풍(儒風)이 그윽하다. 최근 문화재청이 전국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한 31건의 초상을 한꺼번에 보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가운데는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5∼1910)의 초상이 들었다고 한다. 국권을 빼앗긴 풍운의 시대를 살면서, 그때그때 들은 소문을 그대로 적은 수문수록(隨聞手錄)의 역사 이야기 ‘매천야록(梅泉野錄)’ 저자의 초상이다. 더구나 서화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이 자신의 사진관에서 찍은 매천 초상사진을 포함시켜 일괄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매천 초상의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에 두 얼굴이 똑같다. 매천은 사팔뜨기 사시(斜視)로 묘사되었다. 왕조의 마지막 시대 구한말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눈을 뜨고는 응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볼썽사납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잔잔한 인품이 눈가를 스친다. 옳은 일에 뜻을 굽히지 않는 지사(志士)의 절개를 가슴에 품어들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사진이 일상화하기 훨씬 이전에는 보잘것없는 사진틀 카메라옵스큐러가 초상의 데생을 도왔다고 한다. 이어 사진기가 얼마만큼 보급되었던 1850년대에 사진이 들어온 중국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무렵 서양의 사진가들이 찍은 작품을 모아 엮은 책 ‘중국의 얼굴’을 들추면, 청조 말엽을 폭정으로 이끌었던 서태후(西太后·1835∼1908)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꾸민 초상사진이 나온다. 그러나 서태후가 관음보살로 분장한 초상사진이 어디 걸렸더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요 며칠 전 두 사연의 외신기사를 읽었다. 하나는 프랑스 국민들이 노숙자의 아버지로 기리는 아베 피에르 신부(1912∼2007)의 선종(善終) 기사다. 다른 하나는 2차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을 미국인들이 여태 위대한 인물로 꼽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초상을 지금도 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터이다. 우리도 초상 주인의 훌륭한 전기(傳記)를 읽는 마음으로 사진을 걸어두는 날이 오길 기다려 보고 싶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일본은 우리가 죽길 바라지만 죽지 않을 것”

    |워싱턴 이도운 특파원|오는 15일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한국인 피해자인 이용수(79)·김군자(82) 할머니와 함께 푸른눈의 백인 할머니도 증언대에 선다. 올해 84세로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네덜란드 국적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오헤른 할머니가 평생동안 가슴에 담아온,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세상을 향해 처음 토해낸 것은 지난 1992년. 당시 보스니아 전쟁에서 여자들이 무참히 강간당했다는 뉴스가 세계적 분노를 사고 있을 때,TV를 통해 한국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정부를 향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도쿄를 비롯, 영국·네덜란드 등 전 세계에서 열리는 위안부 관련 행사에 참석해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전쟁으로 인해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오헤른 할머니는 과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행복은 19살 때인 1942년 3월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침략하면서 무참하게 짓밟혔다.‘점령군’은 17세 이상 젊은 여자들은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고, 할머니는 3년 반동안 수용소에서 강간과 폭행, 굶주림 등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인간 이하의 끔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 인터뷰에서 오헤른 할머니는 “추해 보이면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모두 잘라내 흉측한 대머리 소녀가 됐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면서 일본인 의사들도 일본군의 강간대열에 합류했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시아 위안부들이 일본정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측은 미 의회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이 큰 로비스트를 고용, 하원 외교위 의원 및 민주당 지도부를 상대로 필사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고, 오는 5월엔 의원단을 대거 미국에 파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dawn@seoul.co.kr
  • ‘日軍위안부’ 美하원 첫 청문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하원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가 처음으로 청문회에 오른다. 미 의회 소식통은 6일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가 오는 15일쯤 한국과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달 하원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한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주) 의원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한 적은 있지만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춘 청문회를 개최하고 피해자를 직접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것은 처음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외교위 전신)는 지난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한 한국 및 중국과 일본간의 역사 갈등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뤘었다. 당시의 위안부 결의안은 하원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한편 혼다 의원은 7일 오전(한국시간 8일 새벽)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취지와 청문회 개최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한다.dawn@seoul.co.kr
  • 美하원 ‘위안부결의안’ 再제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하원 의원들이 31일(현지시간) 일본 정부가 2차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던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다시 제출했다.일본계인 마이크 혼다(민주당·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및 공화당 의원 7명은 이같은 내용의 위안부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공식 사과는 일본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공개성명을 통해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결의안은 또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들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배척”할 것과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 이 가공할 범죄행위에 관해 교육하고,(종군위안부에 관한) 국제사회의 권고를 따를 것”도 아울러 촉구했다. 이번 결의안은 지난해의 결의안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과 함께 제출한 발언록에서, 이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는 이유가 제2차 대전 당시 어린 나이에 미국에 살면서도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미 정부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결의안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모두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일본은 민주당 출신인 마크 폴리 전 하원의장을 로비스트로 고용, 이 결의안의 채택을 막기 위한 대미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dawn@seoul.co.kr
  •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 파문] 과거청산 해외 사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30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 공개를 강행키로 했지만, 각국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판사가 처벌받거나 공격 대상이 된 경우는 흔치 않다. 2차대전 직후인 1945년 전범 처벌을 위해 연합국이 주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시절 고위 법관 12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자신들이 내린 판결 때문은 아니었다. 이들은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독일 국내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법관들이 사법처리된 적은 없다. 하지만 60∼70년대 언론과 학계에서 나치 정권하 법관들에 대한 책임 논쟁이 불거졌다. 독일이 점령한 동유럽 지역에서 유대 상인이 계란을 매점매석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이 상인에 대해 법정형보다 더한 중형을 선고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독일 언론은 “청산 과정에서 법의 잣대가 공평하지 못하고 굴절됐다.”고 혹평했다. 전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초법적 숙청’으로 대변되는 약식처형을 통해 8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프랑스는 이후 ‘사법적 숙청’을 단행했다. 부역자 재판소에 5만 5000여명이 회부됐고, 이 가운데 6700여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치·경제·군사·문화계 모두 이 과정에서 검증 대상이 됐지만 법관은 보호됐다. 우리나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모델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60년부터 94년까지의 인권침해 상황의 원인과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정부와 관료들의 행위가 폭로됐지만, 법관과 관련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진실을 털어놓은 가해자를 사면키로 하는 등 애초부터 위원회가 처벌보다 진실규명에 주력한 탓에 사건의 실체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법관들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지난 연말 보도됐던 재미있는 해외 뉴스 한토막. 프랑스의 포나콩(FONACON·새해반대전선)이라는 조직이 12월31일 밤 서부도시 낭트에서 2007년이 오는 것을 축하하지 말고 저항하자고 촉구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세월의 흐름을 축하하는 행위는 비논리적이다. 한해를 마감하면 무덤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라 비극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포나콩은 자기들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 나와 2007년이 오는 것에 반대하자고 촉구했다. 오는 해를 막겠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하겠지만 프랑스인들의 시위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시위 마니아들이다. ●시위는 신성한 국민의 권리 프랑스인들이 새해 반대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전한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프랑스인들은 불가피한 일에도 저항하는 아주 오랜 ‘훌륭한’ 전통을 자랑한다.”고 비아냥하면서 장폴 사르트르가 작고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좌파 철학자 사르트르가 땅에 묻힌 1980년 4월19일 5만여명의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사르트르의 죽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인들처럼 시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마 없을 것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지만 프랑스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시위문화가 독특한 프랑스인들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사사건건 따지기를 좋아하고,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무척 중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논쟁을 서슴지 않는다. 권리 주장이 강하다. 시위는 이런 프랑스인들에게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이 모이면 의미전달은 더욱 효과적이다. 정치적 성향, 남녀노소,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시위는 자유·평등의 정신에 따른 신성한 국민의 권리로 인정된다. 프랑스에서 시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민주주의 발전의 에너지 프랑스가 ‘혁명의 나라’가 된 것도 프랑스인들이 시위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가 로저 프라이스가 프랑스의 근대정치사를 ‘혁명과 반동의 역사’라고 했을 정도다. 국민주권 시대를 연 1789년의 대혁명을 비롯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닦은 1830년 7월 혁명, 보통선거제를 확립한 1848년 2월 혁명, 노동자 권리신장으로 이어지는 1870∼1871년 파리코뮌 등이 대표적이다.2차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주권을 지켰으며 1968년 5월의 ‘68혁명’을 통해 기성세대가 일궈놓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권위주의에 도전했다.68혁명은 프랑스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 변화를 수반하면서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2002년 대선에서 네오파시스트로 불리는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했을 때 그를 반대하기 위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역사의 한장으로 기록됐다. 프랑스인들의 저항정신이 빚은 시위문화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 토양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나치게 잦은 시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과 함께 일부 시위가 폭력양상을 띠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축제 같은 시위, 그러나… 파리에서 시위는 주로 주말 오후에 열린다. 그래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특히 내 주장을 펴기 위해 뜻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파리에서는 주로 주말에 크고 작은 시위가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매일 3건씩 벌어지는 셈이라고 한다.1년이면 1000건 이상이라는 얘기다. 워낙 시위가 많다 보니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주장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며 정부의 개혁안을 반대한다. 경찰이나 공무원도 각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한다. 학생들은 교육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한다. 매춘부들의 시위도 간혹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외국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불법 이민자들은 거주증명서를 달라고, 집없는 사람들은 거주권을 달라고 주장한다.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의 시위는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된다. 화창한 날 어린아이를 무동 태우거나 유모차를 밀고 나와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축제에 참가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인상적이었던 시위 중의 하나는 게이 퍼레이드다. 동성애자들 수천명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가장행렬을 하는데 각 단체별로 꾸미고 나온 모습들이나 주장하는 바가 정말 다양했다.‘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라’‘에이즈확산반대 동성애자단체에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금발에 짙은 화장, 금방 터질 듯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가 다 드러날 초미니 스커트,20㎝는 족히 될 높은 굽의 부츠를 신고 나온 여장 남자 등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게이퍼레이드는 매년 엄청난 인파를 불러 모은다. 시위에 대응하는 방식도 조직화됐다. 시위 진압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찰도 있다. 시위진압전문경찰은 공화국안전수비대(CRS)라고 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시위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는 것’이다. 시위도중 불상사를 막아주는 것 외에 진압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대가 예정된 코스로 이동하도록 교통을 막아주기도 한다. 한번은 영·미국식 학제도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하며 끝까지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파리의 대학건물들이 모여 있는 생미셸 지역에서 시작해 교육부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CRS는 시위대가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고 폭력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번득였지만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의 꼬리 부분을 보니 200m 정도 사이를 두고 청소차와 청소원들이 따라오면서 시위대가 흘리고 간 전단이나 쓰레기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치우고 있었다. 시민들은 시위하고, 경찰은 보호하고, 청소부들은 치우고…정말 재미난 나라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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