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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독일 폭격기,영국해협서 인양 성공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독일 폭격기,영국해협서 인양 성공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2차대전 독일 폭격기. 영국 데일리 메일은 11일(현지시간)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브리튼 전투에서 추락한 독일 폭격기를 영국해협에서 인양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 했다.   영국 공군 박물관은 인양되는 순간 환호성을 울렸다. 이번에 인양된 독일 폭격기는 도르니에 17기로 날개와 엔진이 온전한 상태다. 영국해협 밑바닥 바다속에서 73년간을 견더온 것에 비해 비행기 상태가 아주 양호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폭격기는 브리튼 전투가 한창이던 1940년 8월 26일 영국 전투 비행단 허리캐인(RAF Hurricane fighters)의 공격을 받고 격추 된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런던 상공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1940년 여름 영국 브리튼 하늘에서 독일의 도르니에를 보는 것은 친숙한 광경이었다. 그후 나찌의 몰락과 함께 이런 종류의 독일 폭격기도 사라졌다.군사 역사가들은 이번에 건져 올린 독일 폭격기는 당시 전투를 벌였던 비행기중 유일하게 하나 남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 독일 폭격기는 복원돼 영국 공군 박물관(the RAF Museum)에 전시 될 예정이다. 영국공군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도르니에(Dornier) 폭격기의 복원과 발견은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중요하다.이것은 브리튼 전투에 참가한 유일무이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폭격기의 복원과 전시는 1940년 당시 제공권을 장악하기 치열한 공준전을 벌이다 목숨을 바친 영국과 독일의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데일리 메일 캡쳐 장상옥 기자 007jang@seoul.co.k
  • [저자와의 차 한잔]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

    [저자와의 차 한잔]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

    “북핵과 일본 아베 총리의 극우 행보 탓에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가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안보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선택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본이 핵무기가 들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김경민 교수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가나북스)를 펴낸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과)는 31일 위험천만한 일본의 핵무기 제조능력과 핵 보유 속셈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했지만 핵물리학자처럼, 군사전문가처럼 ‘핵의 모든 것’을 씨줄과 날줄로 풀었다. 일본의 잠수함 전력과 미사일 방어체제, 우주항공 능력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얻어내려는 핵 재처리권을 일본은 25년 전인 1987년에 어떻게 얻어냈는지 ‘설득의 논리’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처음 밝혀낸 일본의 사용 후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확보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김 교수는 이공계 출신 과학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문학의 문체’로 핵 개발의 모든 과정을 ‘류현진의 돌직구’처럼 뿌려준다. 4년 전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과학과 사회 소통상’ 제1회 수상자로 그를 뽑은 이유를 알 만하다. 연구생활 20여년 동안 연구실과 교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구를 빙빙 돌며 마치 신문기자처럼’ 에너지안보 분야를 취재했다.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객원연구위원으로 들어가 일본 자위대를 경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9권의 저서 제목에 ‘일본’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다. ‘군사대국’ 일본의 가공할 핵 능력, 대륙간 탄도탄과 요격미사일로 직결되는 우주항공력, 아시아 해상을 사실상 지배하는 잠수함력, 한반도를 손금 보듯 지켜보는 첩보위성의 실체를 샅샅이 파헤쳤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2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의 핵폭탄보다 훨씬 소형화된 양질의 핵폭탄을 한꺼번에 여러 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 교수는 점잖게 에둘러 표현했지만, 일본의 국내 전문가들은 ‘짧은 시간 안에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뒷골이 당기는 대목이다. 일본의 핵무장을 미국이 그냥 두겠느냐고 질문하자 “미국과 일본은 서로 필요에 의해 군사 일체화된 지 오래여서 일본이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미국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3차례의 핵실험과 은하 3호 로켓 발사에서 보듯 북한의 핵과 미사일 결합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북한’이라고 기록된 역사책을 읽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미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 2차대전 이후 금기시한 ‘비핵 3원칙’을 깨버렸다. 아베의 일본은 마지막 남은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핵을 막지 못한 미국이 일본의 핵 개발을 저지할 명분이 없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곁들인다. “우리의 선택지는 우주 개발과 잠수함 전력 극대화입니다. 미사일과 로켓 개발에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강점이 있습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 중국 마우쩌둥 주석, 일본 나카소네 총리가 자국 우주 개발의 초석을 놓은 미래 비전의 지도자입니다. 더 늦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력을 모아야 문이 열릴 것입니다.” 노주석 선임기자 joo@seoul.co.kr
  • “피해 위안부 증언 신빙성 없다” 하시모토 또 망언

    “피해 위안부 증언 신빙성 없다” 하시모토 또 망언

    일본군 위안부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이자 오사카 시장이 27일 “피해 위안부의 증언을 믿을 수 없다”며 망언을 이어 갔다. 하시모토 대표는 도쿄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한 피해자들의 증언은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면서 “일본 정부나 군이 조직적으로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증거는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날 회견에는 외국 특파원뿐 아니라 일본 기자 등 약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일부 기자는 기자회견장 옆 별실에 준비된 모니터로 회견을 지켜보는 등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 보니 하시모토 대표와 외신 기자들 간 설전도 벌어졌다. 기자 대부분은 하시모토 대표의 일본군 위안부 발언의 진의를 끊임없이 따져 물었고 하시모토 대표는 기존 입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답변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이탈리아 기자는 하시모토 대표가 오사카 요리조합의 고문 변호사를 맡았던 이력을 거론하며 “그 업소는 단순한 요릿집이 아니고 성 업소라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며 하시모토 대표의 비윤리적인 면을 부각했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 대표는 “그 업체가 위법한 일을 저질렀다면 수사기관에 의뢰해 처벌을 받을 것”이라며 피해 갔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만들 때도 강제 연행 증언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노 담화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고 규정한 뒤 한·일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해 이 담화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시모토 대표는 이날 위안부 제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2차대전 때 미국군과 영국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때의 한국군에도 전쟁터에서의 성 문제는 존재했다”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그는 또 이날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나의 인식과 견해’라는 제목의 6장짜리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법적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특파원 칼럼] 오키나와 독립론과 댜오위다오/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키나와 독립론과 댜오위다오/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오키나와는 류큐(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가였다. 1600년대 들어 일본의 침공을 자주 받기 시작했으며 1879년 메이지(明治) 정부에 의해 강제 병합되어 오늘의 오키나와 현이 되었다. 2차대전 직후 일본이 강점했던 땅을 반환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오키나와의 주권도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중국 관영 언론들과 군 인사들이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부정하는 여론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독립 논의가 활발해지는 등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된 틈을 타고 중국이 오키나와 독립에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전문가들도 중국 관영 언론이 일본의 오키나와 소유권을 부정하고, 나아가 일부 중국 군 인사들이 그 귀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지적한다. 센카쿠를 구하기 위해 오키니와를 공략하는 것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하다) 전법에 비유한다. 실제로 오키나와는 센카쿠 영토분쟁과 직결되어 있다. 중국은 센카쿠가 타이완의 부속 섬이란 점을 근거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에 따라 패전국인 일본이 마땅히 중국에 반환했어야 할 땅이란 논리다. 반면 일본은 센카쿠가 자국의 오키나와에 속하기에 일본 땅이라고 반박한다.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주권이 부정될 경우, 센카쿠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할 근거도 자동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또 오키나와 독립 주장은 센카쿠 분쟁에서 일본 편을 드는 미국에도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키나와는 타이완, 필리핀 등과 함께 미국의 대(對) 중국 봉쇄선에 속하는 전략 거점이다. 미국이 즉각 오키나와 주권은 일본에 있다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중국이 오키나와를 물고 늘어질수록 “우리는 일본·중국 어느 쪽의 속국도 아니다”는 오키나와의 목소리는 커진다. 중국의 센카쿠 실효지배 시도에 대응하기 위한 힘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이 오키나와 독립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센카쿠 일부를 중국에 양보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서태평양 진출 거점을 마련하려는 술책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조용한’ 독도 전략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부는 자칫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며 일본의 공격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만 일관했다. 외교부 일각에서는 미국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광고가 나가는 데 대해서조차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는 말이 들렸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이 독도를 일본 땅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한·일 간 분쟁지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에서 침묵 전략이 유효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 들어 독도 경비 강화를 위해 울릉도에 해양경찰서를 설치한다거나 국가보훈처가 독도 교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호응을 보내는 소리가 높다. 중국의 민·관·학·군이 역할을 나눠 센카쿠 대응에 조직적으로 나서듯, 일본의 독도 공세를 격파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독도 전략을 기대한다. jhj@seoul.co.kr
  • [책꽂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야트리 스피박 등 지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펴냄) 인도 출신 문학비평가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와 함께 탈식민주의 3대 이론가로 꼽힌다. 스피박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개념 ‘서발턴’을 빌려와 차별받은 이들 가운데서도 또 차별받는 여성과 소수자 문제를 제기했다. 이 문제 제기에 호응한 연구들이 이어졌고 2002년 관련 학술대회까지 열렸다. 그 결과물을 모은 책이다. 3만원. 한국사회 불평등 연구(신광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를 30여년간 추적한 저자는 민주화로 이룩한 성과를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렸다고 본다. 지니계수로 보면 유럽은 0.20 대, 남미쪽은 0.40 대 정도다. 우리나라는 1996년 0.295로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군에 속했으나 2000년 0.352를 기록하는 등 급속하게 치솟았다. 2005년 소득 상위 10% 대 하위 10%의 비율은 7.44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평등하다는 미국의 5.45보다도 더 크다. 때문에 한국은 가장 불행한 사회다. OECD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율 1위,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 불평등 3위, 상대 빈곤율 2위다.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한국에 대한 진단이다. 1만 5000원. 국제법의 역사(아르투어 누스바움 지음, 김영석 옮김, 한길사 펴냄) 국제법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서 국제법의 역사를 정리해둔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고대 중국·인도, 서양 중세, 서구 근대, 나폴레옹 전쟁 시기, 빈회의에서부터 1차세계대전까지, 베르사유 조약 이후 2차대전시기까지 등 인류 역사 주요 시기마다 등장했던 국제법 문제를 다뤘다. 3만원.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폴라 스테판 지음, 인윤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기초과학을 두고 순수학문 어쩌고 하지만 실은 연구비 책정 문제에 사활이 걸려 있다. 첨단 과학 프로젝트가 경제학적 논리와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첨단과학은 날이 갈수록 대단위 실험을 수반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저자는 보상체계, 보조금 지급 구조, 대학원생 지원 방식 등을 세심하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2만 2000원. 해방공간의 영화·영화인(한상언 지음, 이론과실천 펴냄) 광복에서 6·25전쟁까지 영화인들이 남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민족영화 건설을 위해 벌인 영화 운동을 다뤘다. 좌우익의 분열, 분단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갔던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1만 3500원.
  • [세종로의 아침] 메르켈 총리와 아베 총리/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메르켈 총리와 아베 총리/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이다. 전쟁을 일으켜 주변 국가를 침탈하려 했던 국가다. 식민지 통치를 통해 경제적 약탈은 물론 대학살과 같은 비인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패전 이후 두 나라 정치인들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 역사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적절한 배상도 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치인들은 반성은커녕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등 망언을 쏟아내기 바쁘다. 지난 1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인은 2차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대학살) 등 나치 범죄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다. 이어 역사를 직시하고 어떤 것도 숨기거나 억누르려 해서도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자손대대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알려야 한다는 역사관도 밝혔다. 독일의 반성과 사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사과와 철저한 보상을 약속했고 실천하고 있다. 독일은 1952년 유대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30억 마르크(약 2조 1000억원)를 보상했다. 전쟁이 끝난 지 67년이 지났지만 홀로코스트 피해자 가운데 아직 보상받지 못한 사람을 찾아 돕고 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독일 정부로부터 위로금 2556유로(약 370만원)와 매달 300유로(약 43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 피해자에게 보상한 돈이 700억 달러(약 77조원)에 이른다. 독일은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교육시키는 나라다. 전범 처리와 함께 교과서에 자신들의 만행 내용을 수록했을 정도다. 피해국들이 독일의 사과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적대감을 갖지 않을 정도로 관대해진 것도 이런 독일 정치인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치인들은 어떤가? 지난해 12월 총리직에 오른 아베 신조. 그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앞장서서 바꾸고 있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일본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국가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행동과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정치인들이 미약하나마 한국에 대한 식민지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했던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마저 뒤집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조상들이 애써 이뤄놓은 한·일관계 유산까지 무너뜨리는 어리석음까지 범하고 있다. 아베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이기도 하다.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이지만 한국에 잘못된 과거 역사를 시인하고 사죄했던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도 한국의 정치·경제인들과 친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최근 망언과 행동은 조상들이 애써 이뤄놓은 한·일관계마저 짓밟는 꼴이 아닌가 싶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우익세력들의 정치적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 주도권을 잡고 세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이념과 신념도 내팽개치는 게 일본 정치인인가 묻고 싶다. 일본 정치인들은 독일의 정치인들이 주변 피해국의 상처를 진심으로 보듬고 참회하며 외교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배워야 한다. chani@seoul.co.kr
  • [막나가는 아베] 獨, 93세 나치전범도 추적 단죄

    일본이 2차대전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해놓고, 각료와 의원들이 정기적으로 참배하고 있는 가운데 2차대전의 또 다른 전범국인 독일은 이와는 달리 90대 나치 전범을 추적해 단죄키로 하는 등 철저한 과거사 청산에 나서 대비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검찰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나치 전범 용의자인 한스 리프시스(93)의 신병을 확보해 ‘대량학살 공범’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리프시스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친위대’(SS) 부대원으로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간수로 일하며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전쟁 직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1983년 나치 복무 사실이 드러나 독일로 추방당했다. 독일 검찰은 2011년 나치 전범 추적 대상 범위가 ‘유대인 학살에 간접 협력한 자’까지 확대된 것을 계기로 전범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리프시스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해 조사에 착수했다. 나치 전범 조사국의 쿠르트 슈림 검사는 “학살에 구체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 없이 부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도 기소할 수 있다”면서 “같은 혐의로 (아직 생존해있는) 50여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이 핵폭탄을 쏘네, 미사일을 날리네 하면서 협박 수위를 높이는 바람에 정신이 온통 사납다. 국영 조선중앙TV를 통해 품격이라곤 전혀 없는 저열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저러다가 정말 무슨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저들의 모습이다. 외신을 보면 평양에서는 최근 전쟁 분위기와는 달리 봄맞이 치장에 한창이다. 그제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도 의외로 조용히 끝났다. 외국 대사관의 무관 가족들이 한가롭게 시내관광을 즐기는가 하면, 여군들이 전투복에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진도 찍혔다. 외신의 평양 르포엔 한 주민이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긴장이 높아져도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터뷰도 담았다. 핵폭탄 한 발 쏘면 그걸로 끝장인데 여러 사람이 요란 떨 일 있느냐는 투다. 핵무기 덕분에 주민들도 배짱이 두둑해진 모양이다. 하기야 20년 동안 북한은 핵으로 재미를 꽤 봤다. 핵으로 적당히 겁을 주면 미국이 “말로 하자”며 쪼르르 달려오지, 한국은 쩔쩔매다가 돈 보따리를 풀어놓지…. 북한 정권에 핵무기는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요전핵’(搖錢核)이 된 지 오래다. 그곳 주민들이 평온한 걸 보면 그들도 핵무기가 전쟁용이 아니라 부(富)를 창출하는 도깨비방망이란 사실을 이젠 눈치챈 것 같다.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요긴하게 써먹은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에 앞서 프랑스가 원조 격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유르겐 브라우어는 저서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에서 이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에서 60kt의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3배, 당시 소련이 보유 중이던 수소폭탄의 1900분의1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한방’으로 세계 핵 대치의 본질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핵 독점을 깼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의 치욕과 베트남전 패배로 위축됐던 국가의 자존심과 장엄성을 회복했다. 재래식 군대와 무기를 대체하고도 남을 전쟁 억지력도 갖추는 등 이문이 많이 남은 장사였다는 게 브라우어의 분석이다. 그는 “핵이야말로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드는 과격한 수단이자 보유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헌법에 명시까지 해서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떼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장난이 이제는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여당의 중진 정치인들까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목청을 높이겠는가.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이에 동조했다. 성질대로라면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북한의 못된 버릇을 당장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냉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핵에는 핵’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그럴듯해 보이나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미국의 핵우산 체제가 이끄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면 본전은 찾는다. 물론 급할 때 우리 마음대로 핵무기를 운용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 억지력으론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수백~수천 기의 핵전력을 갖춘 미국·러시아·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핵무기 선택권(Nuclear Option)을 가진 일본도 덩달아 무장할 것이다. 핵무기는 이미 강대국의 기득권이 돼 버렸다.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모른다. 1960~70년대처럼 핵무기에 대한 국제 감시망이 어수룩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전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해 전쟁 억지력과 자위권을 확보한다 해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립된 북한 짝 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핵무기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강력하고 유용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진 어떤 나라도 감히 실전에 써먹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굳이 핵무기를 가져 이웃 나라와 불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ycs@seoul.co.kr
  • 세계 최강 미국·일본 관계사 전직 日외교관이 파헤치다

    한 나라의 운명은 친소 관계를 맺는 나라의 정책과 입장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특히 그 관련국이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강국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동맹국이라는 허울 좋은 관계의 내면도 따져보면 종속과 추종이 압도적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세계사는 관계국 간의 지배와 종속이 부른 흥망성쇠로 점철된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메디치 펴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실감 나게 파헤친 책이다. 일본의 2차대전 패망기인 1945년부터 2012년까지의 미·일 관계사를 역대 수상·정권별 기록과 증언으로 솔직하게 고발했다. 저자는 영국, 구 소련, 이라크,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이란 대사를 거치며 36년간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한 외교관 출신. 그런 그가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패전 이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과 처지는 변함없는 추종’이라는 것이다. 일본 내에 미국의 견제와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주파와 친미·종미파 간의 갈등과 전복이 있어 왔지만 ‘미국은 갑, 일본은 을’인 관계의 지속은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의 미국 추종사는 1945년 연합국 총사령부의 일본통치가 막 시작될 무렵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자’고 주장했던 요시다 시게루 외상의 노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때 이후 그 추종 노선을 벗어나려는 이른바 대미 자주파 수상과 정권이 어김없이 거세됐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책에 줄줄이 등장한다. 패전처리비 삭감을 주장하다 추방된 이시바시 단잔, 미군 완전철수론을 펴다가 의문의 급사를 당한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 소련과의 국교 회복을 추진하다 공직서 추방된 하토야마 이치로 수상, 미군의 유사시 주둔론을 주장해 정계에서 강제 은퇴당한 아시다 히토시…. 이들의 희생과 미국의 배후 조종 사료와 고증이 예사롭지 않다. 일본 말고도 이른바 미국의 ‘분할 통치’에 걸림돌이었던 각국 지도자들의 실각과 죽음도 만만치 않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처형은 물론, 미국에 적극 협조했던 이란 팔레비 국왕의 축출과 패망한 월남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살해도 모두 미국이 개입한 것으로 저자는 단정한다. 지미 카터와의 정상회담 때 카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안보론을 펴고, 미국의 청와대 도청기 설치에 맞서 미국대사관을 도청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런 연장선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평화와 질서보다는 일본 국익에 철저해 보이는 저자의 지론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한·미 관계는 미·일 관계보다 훨씬 더 긴박한 순간이 많았다.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한국 문제에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고,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개입한 사례는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서문 속 적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1만 8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범종 만드는 장인들의 예술혼·집념·사랑 이야기

    범종 만드는 장인들의 예술혼·집념·사랑 이야기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국보 29호). 742년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했고, 혜공왕에 이른 771년에 완성됐다. 우리는 막연하게 에밀레종이 세계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울림을 가진 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송광사나 해인사, 통도사 등을 방문했다가 저녁 무렵에 듣게 되는 종소리에서, 짝퉁 보신각종의 제야의 종소리에서 에밀레종 소리를 상상해 보곤 한다.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에서 지난해 제8회 세계문학상를 수상해 문단의 샛별이 된 소설가 전민식(오른쪽·48)의 두 번째 장편소설 ‘불의 기억’은 범종을 만드는 장인들의 처절한 예술혼과 집념, 사랑 이야기다. 전민식은 어느 날 사찰에 놀러 갔다가 예불시간에 들려온 종소리에 ‘꽂혔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하는 글쟁이적인 속성이 그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범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끈 것이다. 또 그는 호기심이 생겼단다. 왜 이리 종이 많은 것인가?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 가도 종은 없는데 한국 사찰에는 온통 왜 종인가? 종소리를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적인 기원 탓에 종은 중국과 한국에 많았는데,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와의 전쟁과 2차대전 이후 내전,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종이 사라졌다. 소설은 금속공예 졸업전시를 앞둔 박동주를 찾아온 쇠 냄새 나는 강철규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무형문화재인 강철규는 10년 전 아내를 살해한 강력범으로 징역을 살다 모범수로 풀려났다. 아버지가 출옥하기 직전 외동딸인 해원은 박동주의 아버지 한위와 함께 살던 금형리 집에서 가출해버렸다. 해원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을 다락에서 지켜보다 말을 잃었고, 동주는 해원을 사랑한다. 박한위는 신라 때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던 집안의 후손이다. 박한위의 아버지는 왜 자신의 아들이 아닌 강철규에게 무형문화재 지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초대형 범종을 만드는 일이 진짜 있었을까 싶어 뉴스를 검색하게 할 정도로, 전민식은 참말같은 거짓말을 소설에 풀어놓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천한 장인들이 만들던 한지나 백자, 청자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대형 범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전민식은 ‘비결’이 존재하는 듯 계속 냄새를 풍긴다. 소재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낯선데, 그래서 인터넷 웹진에 연재했던 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어내면서 기존의 원고를 절반 정도 버리고 새로 쓰다시피 했다. 추리기법을 활용한 전개로 지루하지는 않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 외국인들에게 논리적으로 알리고 싶었죠”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 외국인들에게 논리적으로 알리고 싶었죠”

    “국내에서 우리끼리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해외에는 일본의 왜곡된 논리에 익숙해진 외국인이 적지 않아요.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논리적이고 지혜롭게 알리고 싶습니다.” 첫 독도 영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혁 감독은 제작 취지를 묻는 질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재미교포인 그는 20년간 미국에 살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왜곡된 논리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영어로 독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고 결심했다. “일본은 연간 84억원의 예산을 들여 자신들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독도 홍보 예산은 19억원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지금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로비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독도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죠.” 그가 가제로 지은 이름은 ‘많은 이름을 가진 섬’(An Island with Many Names). 각국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독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빗댄 제목이다. 그는 이 작품을 해외 영화제에도 출품하고 연내 국내외 동시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중립적인 입장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강조한다. 독도 전문가인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도 영화 제작을 전폭 지원하기로 했다. 가수 김장훈, 서경덕 교수도 영화에 출연한다. “한·일 역사에 대한 자료 및 문서 공개, 전문가들 인터뷰를 통해 이성적이고 정확하게 사실을 알릴 겁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정치적 이유에 대해서도 밝힐 계획입니다.” 이 감독은 국내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영화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 영화 ‘모노폴리’(2006)의 기획 및 제작을 맡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 들어가는 순제작비는 5억원으로 3억원은 일반 모금(facebook.com/Dokdomovie)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 영화 투자사에서는 다큐멘터리의 비상업성 때문에, 일반 기업은 일본과의 이해 관계 때문에 투자를 꺼려 일반 모금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웰메이드 독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외국인은 물론 한국의 10~20대들에게도 이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샤갈·미로·달리… 거장들의 작품 63점

    샤갈·미로·달리… 거장들의 작품 63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내 63스카이아트미술관은 3월 24일까지 ‘유럽-그림으로 떠나는 여행’전을 선보인다. 미술관 개관 5주년을 맞아 2차대전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5개국 작가의 작품 63점을 한데 모았다. 유럽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 집엔 어떤 샤갈 그림 있어?”라고 묻고 답하게 했을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는 초현실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을 비롯해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헨리 무어,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유화와 판화가 즐비하다. 창 밖을 보면 시내 풍경, 등을 돌려 안쪽을 향해 서면 서구 미술 대가들의 그림이 줄지어 있다. 1만 2000원. (02)789-5663.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金보다 40배 비싼 운석 찾아라”…러 ‘운석 로또’

    “金보다 40배 비싼 운석 찾아라”…러 ‘운석 로또’

    지난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주(州)에 떨어진 운석우로 약 1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운석 파편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제 2의 ‘골드러시’를 예고하고 있다. 일명 ‘운석 사냥꾼’(Meteor hunters)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운석 조각의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이다. 현재 운석의 시세는 그램당 무려 2,200달러(약 240만원)로 금과 비교하면 무려 40배나 높다. 러시아 아마추어 운석 애호 단체의 드미트리 카크칼린은 “극히 적은 양의 운석만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을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러시아 우랄연방대학 탐사팀이 이 지역 호수에서 운석 조각 53개를 찾아낸 것이 알려져 ‘운석 로또’에 불을 당겼다. 우랄연방대학 빅터 그로코브스키 박사는 “이번에 발견한 운석 조각은 0.5~1cm 크기로 테스트 결과 철과 아류산염 성분이 확인됐다.” 면서 “호수에 더 큰 크기의 운석 조각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역 내 2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며 당국도 본격적으로 두팔을 걷어붙였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한편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 따르면 이번 러시아 운석우의 폭발력은 약 500㏏으로 세계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터진 원폭의 33배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유명환 “젊은 세대 역사문제 관심이 중요”

    유명환 “젊은 세대 역사문제 관심이 중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14일 “한국과 일본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은 양국 관계를 ‘리셋’할 수 있는 기회”면서 두 나라 정상들에게 “어려운 현안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포럼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유 전 장관은 자신을 “전후 세대로는 처음으로 주일 대사에 임명됐으며 외교관으로 첫 부임지도 동경이었다”면서 일본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을 알게 될 수록 두 나라가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문화·역사적인 인식의 차이도 크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면서 “이런 인식의 차이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관계 개선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특히 젊은 세대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일 간에 왜 영토문제가 발생했는지, 한국이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됐는지를 사실대로 이해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 나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한 운명적 유대관계”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최근 한·일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영토와 역사인식 문제가 관계 개선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2차대전 패배 직후 전후 처리를 분명히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이제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 전 장관은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라면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민간 차원의 협력과 한·일 의원연맹 복원,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소년 교류를 활발히 추진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자고 제안했다. 격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둘러싼 두 나라의 역할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에게만 맡기지 말고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면서 “특히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필수”라고 말했다. 또 지난 2004년 이후 중단되다시피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를 타결하기 위한 양국 정상들의 결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박철희 “영토문제·역사문제 해결해 한·일 협력 이뤄야”

    박철희 “영토문제·역사문제 해결해 한·일 협력 이뤄야”

    “영토문제와 역사문제 등 한·일 관계의 갈등 요인을 건설적으로 관리한다면 협력의 가능성은 무한히 넓고 깊습니다.”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포럼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다’에 참석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과 일본을 “동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동아시아의 선도국가”라고 정의하면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선 국가로서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협력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두 나라가 가진 위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한국과 일본은 패권적 질서를 추구하는 미국, 중국과는 또 다른 국제행위자”라고 말했다. 그는 “두 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선 공동 운명체”라면서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한·일 관계를 저해하는 갈등 요인으로 영토문제와 역사인식을 꼽았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난지 6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전쟁 전과 확실히 선을 긋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도 식민지 지배의 환상과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나라의 협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박 교수는 영토문제에 대한 자기 상대화 노력과 종군 위안부 문제의 조기 해결을 제시했다. 특히 최근 한·중·일 3국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독도와 센카쿠 등 국경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할 방안으로 ▲서로에 대한 자극적인 언동을 피할 것 ▲상대에게 위기감을 주는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않을 것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 것 등 ‘영토 관리 3원칙’을 세워 3국 정상이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창하고 있는 동맹 외교·가치관 외교·대중 외교는 한·일 관계와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을 배제한 외교 정책은 늘 불안정하고 시끄러운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일본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 관점에서 결단력 있는 외교 방침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아베 시대 한일관계/이춘규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아베 시대 한일관계/이춘규 선임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말 5년 만에 총리에 재취임한 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71%의 높은 여론 지지율도 있다. 강한 일본을 외쳐 온 아베는 취임 뒤 엔 약세와 2% 물가상승 목표를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엔 “엔저 과실을 근로자와 함께 나누라”며 재계에 임금 인상을 압박해 장기불황에 찌든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아베의 엔저 유도에 의한 가파른 원화 강세는 자동차나 전자 등 한국 수출 대기업들의 채산성을 위협하고 있다. 식민통치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관련 새 담화를 만지작거리고, 이웃 나라를 배려하는 근린제국 조항을 수정하려고 해 한국인을 자극한다. 북핵을 빌미로 우경화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아베시대 한·일 관계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아베(59)가 다시 총리가 된 배경에는 좋은 집안과 출신 지역도 작용한 것 같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지역구는 부친이 물려준 야마구치현이다. 야마구치현 출신 요시다 쇼인은 현대 일본의 틀을 짠 메이지유신 주역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서 정한론(征韓論)의 원조다. 극우의 본산 야마구치현은 이토 히로부미에서 아베까지 총리를 8명이나 배출했다. 광역단체 중 최다이다. 아베는 야구선수나 형사를 꿈꾸었지만 가풍 영향으로 정치인이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변에 정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 친조부는 중의원 의원, 부친은 외무상을 지냈다. 이런 지역·가문 출신의 아베는 강한 외교를 추구, 주변국과 충돌 가능성이 크다. 실제 아베노믹스는 미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지하지만 실패를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아베와 비슷한 연배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5일 취임한다. 두 사람은 모두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지지기반도 보수이다. 북핵 상황의 변화는 한·일 협력의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북한 관련 군사정보는 요긴해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북핵을 구실로 핵무장으로 치달으면 한·일 관계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뒤흔들린 박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새 틀을 짜야 한다. 역시 북핵은 한·일 관계에 새롭게 떠오른 난제 중의 난제다. 환율 갈등도 한·일 관계 해법을 복잡하게 하는 변수다. 최근에는 변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후 엔고 때는 한국경제가 좋았고, 엔저 때는 나빴다는 실증적 분석이 있을 정도다. 박 당선인은 한 여론조사에서 48%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인사 논란에 불통 지적까지 겹치며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초 낮은 지지율은 쓴 약이 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지지율이 52%로 2차대전 뒤 재임한 미 대통령 중 최저수준이었다. 위기감에 국민과 소통을 강화, 퇴임 직전에는 63%로 빌 클린턴과 선두권을 다투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한다. 박근혜 리더십도 환율 리스크와 북핵 관리로 시험대에 섰다.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일 관계의 긴밀한 대처에는 국민들의 지지가 절실하다. taein@seoul.co.kr
  • [서울광장] ‘신냉전’ 동북아가 가야할 길/박정현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냉전’ 동북아가 가야할 길/박정현 논설위원

    그들은 평화보다는 긴장으로 먹고 산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그랬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승계했으며, 손자 김정은 국방위 1부위원장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참이다. 슈퍼파워 미국을 상대로 하는 핵게임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지 21년째 3대에 걸쳐 진행 중이다. 핵게임 무대의 뒤에서 북·중 간에 또 다른 게임이 보이지 않게 진행 중이다. 미국에 다가서려는 북한을 중국은 으르고 달래 왔다. 중국은 북한이 빠진 한반도에서 미국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 북한에 원유와 식량을 대주고 있다. 이런 중국의 속내를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다’는 김정일의 유훈은 중국을 믿지 말라는 당부다. 북한이 가장 믿고 의지할 것 같은 형제국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은 북한을 실제로 움직이는 중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을 이용한 게임에 북한은 아주 능숙해 보인다. 김정은이 물려받은 벼랑 끝 전술이 가장 잘 먹힐 때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가 동시에 바뀌면 어김없이 주변 정세가 불안하고 긴박하게 전개된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교훈이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미국에서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갓 출범했고, 남한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 교체되는 중이다. 김정은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김정은은 이미 정해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긴장감을 단계적으로 높여 왔다. 유엔이 그들에게 제재를 결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2시간 뒤에 외무성 성명을 내 물리적 대응조치를 예고했고, 다음 날에는 국방위 명의의 성명에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예고했다. 이제 김정은이 핵실험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 선택만 남아 있다.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북한군은 핵실험의 마무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핵실험은 즉각적으로 한반도의 위기지수를 급상승시킬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에 나설 테고, 제재 수위는 북한 핵실험의 폭발력에 정비례할 전망이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발력 15㏏의 절반수준인 8㏏을 넘어서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체감할 위기감과 제재 수위는 증폭될 것이다. 1차 때는 0.4~0.5㏏, 2차 때는 4㏏으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북한 핵실험이 한반도 정세를 급격하게 얼어붙게 만들면 한반도는 신냉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벌써부터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목줄 죄기로는 북한의 핵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북핵 대응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엔 헌장 7장 42조(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조치)에 근거한 군사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섬뜩하게 들린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결의하면 북한이 다시 반발하는 수순은 정해진 레퍼토리다. 6자회담은 유명무실해졌고, 그 대체제는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면 북한의 비타협성은 커지고, 미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북한이 게임을 할 여지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을 함께 엮어 힘의 균형을 이뤄내는 이니셔티브를 기대해볼 법하고, 그것은 한국만이 가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참해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내면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동북아의 신냉전 기류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또 다른 화약고인 센카쿠열도에서는 중·일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간신히 넘겨온 센카쿠에서 두 나라 간 갈등이 언제 분출할지 모를 판이다. 2차대전 이후 불안이 지속되던 유럽에 평화를 가져다 준 것은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아니었던가. 동북아에도 신냉전을 몰아내고 평화를 가져다줄 안보협력체의 태동을 기대해 본다. jhpark@seoul.co.kr
  • “中, 국제질서 파괴” vs “日 황국시절 끝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참모와 중국의 퇴역 장성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놓고 맞붙었다. ‘막말’까지 나올 정도로 양측의 적대감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이다. 21일 명보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일본의 야치 쇼타로 내각관방 참여(參與·자문역)는 전날 홍콩에서 열린 ‘제3차 중·미대화’ 세미나 연설문에서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센카쿠 주권을 주장하면서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야치 참여는 “중국 지도자들은 2차대전 이후 국교정상화 이전까지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갑자기 무력으로 센카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국제질서 파괴 행위가 당신들이 세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중국인지 알고 싶다”고 공격했다. 중국 측 참석자인 중국 국방대 전략연구소장 출신의 퇴역 소장(준장급) 판전창(潘振强)도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판 전 소장은 “일본은 중국이 아직도 일본 황국 시절의 말 잘 듣는 양민(良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2013년은 고려인의 선조들이 두만강 너머 연해주 지신허에 최초의 고려인 마을이 들어서고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역사는 있지만 역사서는 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서를 건네주고 싶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고려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인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호준(70). 러시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사는 50만 고려인의 역사를 정리한 책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주류성 펴냄)를 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신문사 대선배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의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하다”고 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고려인에 ‘꽂힌’ 건 2002년 여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한국에서 6000㎞나 떨어진 산악지대에 고려인 2만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오지 중 오지인 이곳까지 흘려들어왔고, 무얼하며 먹고사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키르기스 고려인에 대한 궁금증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전체의 고려인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만 15~6차례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인터뷰한 고려인만 100명가량은 된다”고 했다. 고려인 이주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는 대로 모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옛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빛을 본 고려인 강제이주에 대한 기록들이 책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러시아에도 한국에도 고려인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책 한 권이 없더라. 기가 막혔다. 소련의 민족사 교과서는 수천 명밖에 남지 않는 소수민족까지 다루면서 40여만명에 이르는 고려인에 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해방 후 북한정권 창건에 참여해 건설상까지 지냈다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역사학자 김승화가 1960년대에 출간한 ‘소련 한족사’도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 책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별로 개괄한 통사(通史)인 동시에 고려인의 한 서린 수난사인 통사(痛史)”라고 정리했다. 저자는 고려인의 역사를 크게 4차례의 대이주를 경계로 정리, 복원했다. 첫번째는 1860년대 조선 땅에서 살 수 없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다. 두번째는 1937년 일본의 러시아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 두려웠던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내몰리며 삶이 뿌리째 뽑힌 시기다. 이어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인 재이주가 이뤄지며 고려인은 1차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5개의 민족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경제난과 차별정책에 몰려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길에 올랐다. 저자는 연해주 고려인을 다룬 앞부분의 상당 부분을 항일 독립운동에 할애했다.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왔다 남은 사할린 고려인도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저자는 “‘한과 슬픔의 역사’인 고려인의 유라시아 이민사를 정리하면서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시련을 기회로 만드는 강인함과 개척 정신이다”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150년 고려인의 발자취를 530쪽에 정리해놓았는데도 술술 읽힌다.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30년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0여차례의 현지방문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최 류드밀라를 비롯해 키르기스스탄 3선 의원 신 로만, 최장수 각료 김 니키포르, 탈영한 북한군 대위 출신 김수봉 부부, 연해주로 이주한 최 니키타, 고려인 출신으로 16년째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맡고 있는 편 위탈리 등과의 인터뷰와, 이들로부터 들은 일화 등은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들이다. 고려인 작가들의 시와 화가의 작품, 수집한 다양한 사진 자료들도 또 다른 볼거리다. 현재 52만 3000여명의 고려인 가운데 러시아 고려인이 21만 3000명으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1만명의 고려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개척자 정신이라는 DNA를 갖고 있는 고려인들이야 말로 우리(한국)에게 21세기를 함께 열어가야 할 대륙의 인도자가 되고 있다”며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균미 문화부장 kmkim@seoul.co.kr
  • 2년간 노숙인 60명의 삶 추적

    한국에서 노숙자(Homeless)들이 문제가 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그전에 흔히 부랑자라고 부르는 노숙인(Rough sleeper)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대량 양산된 노숙인은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국의 노숙인’(구인회·정근식·신명호 편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은 등장한 지 15년이 된 노숙인 문제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했다. 2차대전 이후 양산되기 시작해 60여년이 된 영국, 미국의 노숙인들과 달리 한국의 노숙인 역사가 일천한 탓에,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 사회학, 인류학, 사회복지학과 등 사회과학 연구진들이 200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노숙인 생애사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약 2년에 걸쳐 60명의 노숙인을 1·2차 심층 인터뷰하고 노숙에 이르게 된 경로를 추적했다. 한국 노숙의 범주에는 거리뿐 아니라 찜질방, 만화방, 쪽방, 고시원, 노숙인 쉼터 등도 포함된다. 한국의 노숙인은 첫째 고용의 악화와 자영업의 실패, 둘째는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이혼 등 가족의 해체, 셋째 선천적·후천적 질환에 따른 노동력 상실 등이 원인이었다. 현재 노숙인 정책은 영국의 ‘새정설’(2000년)이 수용되는 상황이다. 노숙인 발생에 따른 위생과 치안 문제 등 위기 관리보다 노숙인 발생을 예방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노숙의 원인보다 노숙을 촉발하는 요인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노숙인의 노숙 경로를 보면 근로 빈곤층에 불리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노숙인을 양산하지만, 노숙을 촉발할 만한 불운에 맞닥뜨렸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자체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즉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나 이혼 등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었거나, 사생아, 조부모 슬하의 방치된 어린 시절, 또는 도박이나 알코올 등에 취약하다든지, 재산이나 인간관계에서 계속 사기를 당한다든지 하는 관리능력의 미흡 등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구조적으로 엮이기도 한다. 인쇄업이나 봉제업과 같이 사양 사업에 종사하다가 퇴직한 후 동료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관리 능력이 부족해 사기를 당하는 형태다. 느닷없는 불운을 극복하는 능력은 물질적·경제적 차원의 일시적 지원이 아닌, 자존감의 회복이나 성찰을 통한 자립과 자활 의지를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학들과 연계해 진행하는 ‘인문학 과정’이 중요하다. IMF와 같은 전환기에 세상을 바라볼 안목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인간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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