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차대전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꾸준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공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기록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노동자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26
  • [사설] 광복 70주년, 일류 국가를 향해 함께 뛰자

    이 아침엔 어깨를 펴고 한바탕 크게 웃어 보자.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난 지 어언 칠십 성상(星霜). 광복 한국의 나이가 고희(古稀)가 됐다. ‘삼각산이 뒤집혀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것’이라며 애타게 기다리던 ‘그날’이 70년 전의 바로 오늘이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번영과 풍요를 누리기까지 광복 70년은 한 편의 서사시였다. 그토록 바랐던 해방의 희열도 잠시, 국권 피탈보다 고통스러운 동족 분열과 상잔(相殘)의 비극이 숙명처럼 들이닥쳤다. 금수강산은 두 동강이 났고 백성도 갈라졌다. 4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은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잿더미 속에 남은 건 절망뿐이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삶,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모 잃은 아이가 길거리를 배회하고 집과 가족이 있다고 해도 먹을 것이 없었다. 기댈 곳은 우리 자신밖에 없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적 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근면성, 굶주리면서도 불타올랐던 교육열, 위기 극복의 DNA를 품은 민족성으로 한국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GDP) 3만 1000배 증가, 1인당 국민총소득(GNI) 420배 상승, 최고의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콧대 높은 선진국에 수출하는 나라, 미래성장동력인 정보기술(IT) 선도국, 70년 만에 이뤄낸, 유례없는 성장의 열매다. 자부할 것을 다 열거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이제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으로서 명실공히 세계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 짧은 기간에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비결을 모든 나라가 배우고 싶어 하는 소강국이 됐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피땀으로 일궈 낸 자랑스러운 강토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대한민국은 중대한 고비를 만났다.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경제는 어느새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외형적 성장을 이뤄 냈어도 양극화라는 쉬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을 얻었다. 저출산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일할 능력이 있는 경제활동인구는 줄고 노인층은 점점 두터워져 ‘늙은 국가’가 돼 가고 있다. 복지 수요는 급증해 도움이 필요한 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취업과 연애, 결혼과 같은 인생 중대사마저 포기할 지경에 놓인 젊은 세대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와 주변국의 상황은 더 엄준하다. 패전 70년 만에 일본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경화로 치달으며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압제의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피해를 뒷받침할 물증이 버젓이 있는데도 사죄하기는커녕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다. 구한말의 한반도처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외교는 더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은 변함없는 동맹국이지만 중국 또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한국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칫하면 양쪽에서 압박을 받아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북한은 어떤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고립돼 갈수록 망나니처럼 날뛴다. 제재 조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핵 개발에 몰입하는 한편 육상과 해상을 가리지 않고 도발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위기일수록 비상한 능력을 발휘했던 우리 민족 아니던가. 총탄 세례도 뚫고 나왔고 국가 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금 모으기를 하며 극복했다. 땀과 눈물로 나라를 일으킨 아버지, 어머니가 든든히 살아 있다. 다시 뛰면 된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흩어져선 안 된다. 하나로 뭉쳐야 한다. 불행히도 날 선 대립과 갈등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좌와 우, 빈과 부, 동과 서, 노와 사로 분열, 대치하고 있다. 사회 통합을 이루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말로만 통합을 외치고 뒤로는 발목 잡는 정치, 헐뜯는 정치는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양보와 이해 없이는 통합은 어렵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한발씩 물러서는 배려가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4대 부문(노동·공공·교육·금융) 구조개혁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노조든, 기업이든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나 혼자 잘살겠다는 이기심은 전체 국민의 불행을 부른다. 고도성장 덕에 생산직도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시대다. 저임금으로 핍박받던 1980년대의 노조가 아니다. 일자리 없는 젊은 세대와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을 위해 막무가내식 태도는 버려야 할 때다. 경영 환경은 악화일로다.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일등 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 기업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노동개혁은 그래서 절박한 과제다. 경제 회복은 정부와 기업,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야 달성을 앞당길 수 있다. 리더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현실을 바로 짚고 미래를 통찰하는 정책이 아쉽다. 기업의 생명은 시장을 선도하는 신제품 개발을 통해 간단없이 이어진다. 미래의 먹거리 발굴을 게을리하다간 약육강식의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국제사회의 발언권은 경제력에서 우선적으로 나온다. 미국과 중국, 일본을 따라잡고 누구도 얕잡아 볼 수 없는 경제력을 보유하는 날, 외교 무대에서도 큰소리를 칠 수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는 확실히 응징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 놓고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세계 13위권인 한국 경제의 장래는 밝지 않다. 신흥국의 부상으로 2050년에는 17위권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것은 예상일 뿐이다. 2차대전 종전 후 독립한 110여개국 중 한국은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국가다. 아무도 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할 국가로 변모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은 깨지는 것이 더 많다. ‘잘살아 보자’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가 왔다. 광복 70년의 성공 신화는 계속될 수 있다. 다시 새 출발의 큰 걸음을 내딛자. 그리하여 자유와 평화, 여유와 기쁨이 넘실대는 나라, 일류의 선진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씨줄날줄] 심리전(心理戰)/이동구 논설위원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 최선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려면 먼저 아군과 적군 병사들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장수는 병사들의 심리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 덕목이었다. 손자병법의 구지편은 병사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병법을 기록하고 있다. 우선 병사들의 싸움 의지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이 좋다고 일러 준다. 배수진 전략이다. 심리전의 대가로 꼽을 수 있는 인물로는 단연 유비의 군사(軍師) 제갈공명이 꼽힌다. 그는 전쟁뿐 아니라 내정에서도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대표적인 예가 칠종칠금(七從七擒)의 전술. 유비가 죽은 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났으나 제갈공명은 반란군 우두머리인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풀어 줬다. 이유는 우두머리인 맹획뿐만 아니라 반란군 군사들도 모두 자신의 군대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제갈공명은 칠종칠금을 통해 반란군들의 마음을 얻었고, 남방 지역을 평정할 수 있었다. 첨단 무기들이 등장하는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전투 의지를 꺾거나 전술을 감추려고 심리전을 펼친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은 “노르망디에는 상륙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흘려 적을 교란시켰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원산에 미군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도 유사한 사례다. 1991년 미국 등 다국적군이 후세인을 제거하는 이라크전에 나섰을 때도 “미국은 막강하며 후세인은 부패했다”는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대량으로 뿌렸다고 한다. 이라크 역시 다국적군 포로의 인터뷰를 언론에 공개하며 다국적군에 공포심을 주고, 자국군은 사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심리전을 펼쳤다. 최근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을 다시 펼치기로 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의 결과에 따라 중단했던 확성기 방송 등을 11년 만에 재개하는 것이다. FM 방송을 통한 심리전은 계속됐지만 확성기 방송은 그동안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면 휘황찬란한 불을 밝혀 왔던 애기봉 트리도 없앴다. 모두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의 남쪽 한계선을 넘어 목함지뢰를 설치해 우리 병사들을 다치게 하는 등 침략 행위가 또 발생하면서 다시 심리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방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남성들은 기억하겠지만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은 대부분 체제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이념적인 것보다 현재 젊은이들의 소식, 세계인의 동향 등 북한 밖의 뉴스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하루빨리 대북 심리전이 필요 없게 되길 바라지만, 이왕이면 ‘세상의 흐름을 알려주는 확성기’가 됐으면 한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NHK “아베 담화에 침략·사죄 명기”

    NHK “아베 담화에 침략·사죄 명기”

    아베 신조(얼굴) 일본 총리가 오는 14일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 ‘사죄’와 ‘식민지 지배’ 등의 주요 4개 단어가 모두 포함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국영 NHK는 아베 총리가 14일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발표할 아베 담화 원안에 ‘침략’, ‘사죄’, ‘통절한 반성’, ‘식민지 지배’ 등 4개 핵심 단어가 모두 명기됐다고 10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가 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뼈저린 반성’을 언급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부각시키는 한편 역대 내각의 기본적 입장을 이어받겠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는 게 NHK 보도의 요지다. NHK의 보도는 아베 담화 초안에 ‘사죄’ 표현이 빠졌다는 일본 언론의 기존 보도와는 엇갈린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리 담화에 대해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기본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사죄’, ‘침략’ 등 단어를 포함할지에 대해선 “총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NHK는 “아베 총리가 이번 담화와 관련, ‘지금까지 써 온 문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관점에서 담화를 내고 싶다’며 문구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아베 총리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키워드를 모두 포함시킨 것은 해당 문구를 썼느냐, 쓰지 않았느냐 등의 논란을 피하고 자신의 진의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베 총리의 자문기구 ‘21세기 구상 간담회’는 지난 6일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존 아베 총리의 입장과 같은 “일본의 행위만 ‘침략’으로 단정하는 것에 저항이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교도통신도 이날 아베 총리가 담화에 ‘침략’이라는 문구를 포함할 의향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담화에서 거론할 ‘침략’이 ‘일본의 침략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공산이 커 논란이 예상된다. 통신은 또 담화에 사죄 표명 문구를 넣을지에 대해 최종적인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2차대전중 잃어버린 미군 지갑, 70년만에 주인품에

    2차대전중 잃어버린 미군 지갑, 70년만에 주인품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이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70년 만에 되찾게 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거주하는 요제프 루크호퍼는 최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농장 집을 리모델링을 하다가 나무 판자 아래에서 가죽 지갑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오스트리아에 주둔했던 미군 부대 소속 엘리히오 라모스의 군인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여자와 아이가 있는 가족 사진 한 장과 오래된 우표 몇 장도 나왔다. 루크호퍼는 "올해가 종전 70주년을 맞는 해이니만큼 지갑 주인을 찾아서 혹시라도 살아계시다면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신분증에 있는 주소지인 미국 텍사스의 전화번호부를 인터넷으로 찾아 라모스를 검색해봤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미국 전체를 놓고 다시 검색해보니 캘리포니아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화번호부에 나온 주소지로 신분증 사본과 지갑 사진을 보냈더니 일주일쯤 후에 라모스의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버지가 그가 찾던 지갑 주인이 맞으며, 지갑을 돌려받으면 정말 기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올해 91세의 라모스는 당시 부대원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이 농장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당시 부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했다. 루크호퍼는 "라모스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해 아직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며 "가능하면 직접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씨줄날줄] 북·중 관계와 ‘석탄 변수’/구본영 논설고문

    얼어붙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풀릴 조짐인가. 최근 양쪽에서 그런 시그널이 잡히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한국전 정전 62주년을 맞아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에 화환을 보냈다.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북한과 접경한 동북 3성의 옌볜과 선양을 연이어 방문해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북·중 관계가 과거의 혈맹 수준으로 복원될 것인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 도발을 지켜본 시진핑의 5세대 중국 지도부가 북·중 관계를 ‘정상적 국가 간의 관계’로 정립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게 그 근거다. 이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깃발 아래 아낌없이 북한을 지원하던 기조에서 벗어나 이제 주판알을 튕기며 상호 이익을 주고받겠다는 의지다. 중국 정부의 그런 의지는 북·중 교역 실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북한자원연구소의 최경수 소장이 어제 낸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 실적은 지난해 1547만t으로, 전년도에 비해 6.5%나 줄었다. 중국의 경기가 위축되면서다. 더군다나 중국 측은 북한산 석탄의 품질이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가격을 국제가격의 60% 수준으로 후려쳐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지도부와 북한 김일성 주석 간 끈끈한 연대 의식이 작동할 때에 비하면 상전벽해의 변화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우호가격’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초저가로 석유를 공급했다. 사실 석탄은 북한의 효자 수출 품목이다. 국제시장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공산품이 없는 북한의 형편에서 지난해 대중 수출의 40%를 점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대중 석탄 수출액은 줄곧 감소세다. 지난해는 경기가 나빴다고 하지만, 중국 경제가 좋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인들의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중국 정부가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다. 게다가 2013년 친중파인 장성택 행정부장이 처형되면서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은 결정적 차질을 빚게 된다. 당시 김정은은 장성택에게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마구) 팔아먹었다”란 죄목도 뒤집어씌웠었다. ‘잠재적 적을 그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능력에 의해서 평가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회자되는 격언이다. 최근 북·중 관계가 겉보기론 해빙기인 것 같다. 김정은은 지난 5월 러시아의 2차대전 전승기념일에는 불참했다. 그런 그가 다음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에 참석한다면 양측 관계가 완벽하게 복원될 것인가. 중국의 실질적 대북 지원 의도와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종래의 순망치한 관계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북한산 무연탄의 지속적 대중 수출 감소가 이를 가늠하게 하는 바로미터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대통령의 스캔들 정책 결정에 영향 끼쳤다

    대통령의 스캔들 정책 결정에 영향 끼쳤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래리 플린트·데이비드 아이젠바흐 지음/안병억 옮김/메디치/432쪽/1만 8500원 역사가들은 사적인 스캔들 들추기를 꺼려 한다. 정사(正史)의 사료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흔히 영웅담과 신화는 ‘허구’라 불린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들은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켰고 그 파장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기 일쑤였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은 그 신화와 진실의 간극을 파고들어 흥미롭다. 저자는 성인잡지 ‘허슬러’의 설립자이자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사를 강의하는 데이비드 아이젠바흐 교수다. 그들이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사생활을 들춰냈다. 건국 초기부터 빌 클린턴까지 훑어 미국사의 민낯을 보여 준다. 책의 특징은 숨은 스캔들 공개에 그치지 않는 데 있다. 두 저자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방탕함은 자유이다. 말릴 수도 없다. 하지만 그 행각이 현실의 중요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제어할 수는 있다.” 책의 큰 흐름은 미국사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 주는 식이다. 신문 기사며 각종 사료를 동원해 풀어낸 상관관계가 생생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빌 클린턴 대통령-르윈스키 스캔들과 9·11 테러의 연관성이다. 클린턴은 1998년 12월 알카에다가 항공기를 납치해 테러를 벌일 계획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스캔들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그해 8월 알카에다는 아프리카의 미 대사관 두 곳에 폭탄을 던지면서 테러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클린턴은 정보 당국에 오사마 빈라덴 사살과 테러기지 공격을 주문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당시 참모들은 대통령이 스캔들에 쏠린 관심을 분산하기 위해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군 통수권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 부인에 얽힌 이야기도 충격적이다.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여러 비서와의 성관계와 밀애로 숱한 염문을 뿌렸다. 이에 충격받은 대통령 부인은 동성애자들과 어울리며 정체성을 찾았고 여성·인권운동의 기수로 변신했다. 대통령 부인은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한 뒤 남편의 뉴딜 정책을 비롯한 정책의 대변과 홍보에 나서 결국 대공황과 2차대전의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위엄 있고 점잖았다’고 여겨지는 건국 초기의 위인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마흔둘의 나이에 여러 언론사를 거느린 미국 최초의 언론재벌이 된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유분방한 카사노바로 명성을 떨쳤다. 독립전쟁 초기에 영국군과 미국 반란군의 규모는 두 배나 차이가 났다. 프랑스의 지원이 필요했던 대륙회의(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논의한 식민지 대표자 모임)는 감수성, 특히 성 규범에 개방적인 프랑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로 프랭클린을 선발했다. 프랭클린은 특유의 카사노바 기질을 발휘해 미국 지지 바람을 일으켰고 루이 16세는 워싱턴 장군의 오합지졸을 지원하려 육해군을 파병했다. 루이 16세가 미국 독립전쟁 지원에 지출한 13억 리브르 때문에 프랑스 재정은 파산했다. 책에서는 이것 말고도 다양한 가설이 역사적 사실과 자료들에 얹혀 풀어진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정부(情夫)가 베르사유조약과 국제연맹·제2차 세계대전에 미친 영향,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동성 비밀 연애와 노예제도 존속의 관련성, 매카시즘으로 잘 알려진 조지프 매카시의 몰락과 동성애 사건, 최장수 FBI 국장을 지낸 후버의 애정 행각과 직무 유기…. 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스캔들을 이용하는 세력들이다. 저자들은 정치인의 합리적 정책 결정을 막는 건 그 사생활이 아니라 흠집 내고 학대재생산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또 다른 정치인과 언론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 지도자의 섹스 스캔들을 대하는 유럽인의 경우와 미국을 비교한다. 성 스캔들에 관심을 덜 가지면 정치 전반을 좀 더 성숙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책을 읽는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 같다. 한쪽은 스캔들을 따라잡는 재미의 탐닉이다. 번역자가 말했듯이 책은 침실과 성관계까지 까발려 외설적으로 비칠 수 있다. 다른 쪽은 그 스캔들을 어떻게 사회의 긍정적인 면에서 해석할지를 생각하는 부류다. 결국 무엇을 얻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日의 군대 위안부 강제 동원 끔찍하고 흉악한 인권 침해”

    미국 국무부가 2차대전 당시 일본이 군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행위가 “끔찍하고 흉악한 인권 침해”라고 재확인했다. 국무부는 30일(현지시간) 일본 집권 자민당 내에서 ‘여성을 민간업자가 모집해’ 등의 표현을 쓰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취지의 제안서가 마련된 데 대한 언론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국무부는 위안부를 “2차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성적(性的) 목적의 여성 인신매매”라고 규정하며 “이는 미 정부가 여러 번 언급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이어 “미 정부는 일본에 지속적으로 이(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다른 과거사 문제를 이웃(국가)과의 더 강한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접근하도록 권장해 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 15일에 맞춰 발표할 2차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에서 “조금이라도 진일보한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도 한국과 일본이 가장 중요한 맹방이니 역사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 진전된 성명이 나오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며 “(아베 총리의) 성명이 긍정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러 사할린정부 “日 쿠릴열도 개발 참여 거부땐 한국에 제안”

    러시아 사할린주 당국자가 러·일 간 영유권 갈등이 있는 쿠릴 열도 개발에 일본이 동참하지 않으면 한국에 참여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올렉 코제먀코 사할린주 주지사 대행은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일본도 ‘쿠릴열도 사회·경제 개발을 위한 연방 프로그램 2016∼2025’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뒤 “일본 정부가 거부하면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총 700억 루블(약 1조 4105억원) 규모의 쿠릴 개발 프로그램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12만 3000㎡의 주택과 더불어 학교·병원·체육관 등 17개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100㎞에 달하는 도로의 개보수와 아스팔트화를 실시할 계획이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는 영유권 갈등지역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내 일본 방문이 논의되는 가운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다음달 쿠릴 4개 섬 중 하나인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자 일본 측은 외교 경로를 통해 철회를 종용했다. ‘한국에 쿠릴 개발 프로젝트 참가를 제안하겠다’는 사할린주 주지사 대행의 발언 역시 양측 간 신경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일본은 홋카이도 서북쪽의 쿠릴 열도 가운데 이투루프, 쿠나시르(구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등 남부 4개 섬(쿠릴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통상 및 국경에 관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쿠릴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반면 러시아는 쿠릴 열도가 2차대전 종전 후 전승국과 패전국 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 따라 합법적으로 귀속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美 하원 외교위원장 “아베담화에 위안부 사과 담아야”

    美 하원 외교위원장 “아베담화에 위안부 사과 담아야”

    미국 의회에서 대표적 지한파인 에드 로이스(공화) 하원 외교위원장은 22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다음달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이날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시민참여센터(KACE) 등 미주 한인 단체들이 개최한 ‘제2차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 만찬에 참석, 기조연설에서 “2007년 미 하원이 통과시킨 ‘위안부 결의안’이 올해로 8주년이 됐다”며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29일) 미 의회 합동연설을 할 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일본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적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아베 총리는 사과하지 않았고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삭제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베 총리는 8월 담화에서 다시 기회가 있다”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 위안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행에 대해 담화를 통해 사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아베 총리의 의회 합동연설 전 사과를 촉구하는 연명 서한에 참여했으나 이뤄지지 않자 합동연설 직후 “위안부에 대한 사과가 없어 실망스럽다”는 내용의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로이스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아베 총리가 8월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과거사를 제대로 다루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8년 전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일본계 마이크 혼다(민주) 하원의원은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사죄하고 역사적 책임을 다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엄청난 돈을 뿌려 교과서를 왜곡할 것이 아니라 2차대전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캐서린 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미 상·하원 의원 12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새누리당 심윤조·배덕광,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참석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스타뷰] ‘뮤지컬 슈퍼스타’ 마이클 리

    [스타뷰] ‘뮤지컬 슈퍼스타’ 마이클 리

    국내 뮤지컬계에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많다. 하지만 마이클 리(42·한국명 이강식)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재미교포 2세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0여년간 활동하다 돌연 한국행을 택했다는 점도 이례적이지만, 그가 보여 준 배우로서의 진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독보적인 가창력과 연기력, 뮤지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겸손함까지, 뮤지컬 팬들에게 ‘마이클 리’라는 이름은 브로드웨이에서 날아온 선물과도 같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2013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마저스’(마이클 리+지저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 그가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간다. 오는 10월 초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엘리전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오픈런’(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탓에 ‘기약 없는 작별’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더 큰 무대를 누비게 됐다는 뿌듯함과 한동안 그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벌써부터 한국에서의 다음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와 마이클 리의 첫 만남은 생경했다. 2006년 ‘미스 사이공’의 라이선스 초연에 주인공 크리스 역으로 이름을 올린 그에게 국내 언론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한 배우’라는 것 외에 별다른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무대에 오른 그에게는 “가창력과 연기력은 일품이나 대사 전달이 안 된다”는 뜨뜻미지근한 평가가 내려졌다. ●혹독한 훈련으로 신뢰 쌓은 ‘미스 사이공’ 하지만 4년 뒤 그는 다시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을 찾았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그는 4년 전보다도 더 혹독한 훈련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2년에 걸친 전국 투어를 통해 관객들로부터 신뢰를 쌓아 간 그는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시작으로 아예 한국에 눌러앉았다. 그를 팬들도, 공연계도 다시 브로드웨이로 보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뮤지컬 배우들이 꿈꾸는 ‘꿈의 무대’인 브로드웨이를 뒤로하고 한국 무대에 매진했던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 활동은 내게 큰 기회가 됐다”고 돌이켰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몇 년 새 크게 발전해 있었습니다. 한국의 뮤지컬 산업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저를 알리고 싶었죠.” 그는 한국 활동에서의 성취 중 하나로 “브로드웨이에서는 맡기 힘든 배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을 꼽았다.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는 아시아인 배역이 주로 주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와 유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유대인 제이미 등 피부색의 경계를 넘어선 도전으로 호평받기도 했으나 데뷔작인 ‘미스 사이공’의 베트남 장교 투이, ‘태평양 서곡’의 일본 사무라이 카야마 등 아시아인 배역을 자연스레 맡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제가 아시아계라는 건 배우로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시아계 배우가 필요한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약이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물론 열린 생각을 가진 연출자와 제작자를 만나 아시아인이 아닌 배역도 맡을 수 있었던 건 행운입니다.”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그는 비로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 시인,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 ‘프리실라’의 틱 등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배역에 스스로를 던질 수 있었다. ●매번 파격적 배역… 소심남 듀티율 역할이 ‘딱’ 관객들은 그가 매번 새롭고 파격적인 배역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진중하고 중후한 이미지로 각인됐지만 이내 소심한 우체국 공무원(‘벽을 뚫는 남자’), 파격적인 의상과 분장으로 치장한 드래그퀸(‘프리실라’)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심지어 ‘서편제’에서 동호 역을 맡아 한국인의 정서를 탐구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을 가장 도전적인 배역으로 꼽았다. “한국의 뮤지컬 팬들은 배우의 이미지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처음 캐스팅이 발표된 뒤 소심하고 덤벙거리는 듀티율이 저에게는 안 어울린다는 우려가 많았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배우를 더 흥분시키곤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제가 왜 그 배역을 맡았는지 다들 이해하셨죠…. 그리고 사실 전 듀티율과 정말 닮았어요.(웃음)” 한국 활동에 매진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는 2년 넘는 공백이 생겼다.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브로드웨이 대극장이든, 지하실의 작은 극장이든 모든 곳이 똑같은 무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찾은 한국 무대에서 그는 훌쩍 성장했다고 한다. “처음엔 한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지금 1시간이면 할 수 있는 걸 처음엔 5시간 동안 매달려야 했죠. 덕분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넘어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좋은 청취자이자 더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가 한국 뮤지컬 팬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듯, 그 역시 한국 활동이 “큰 선물”이었다고 돌이킨다. 그는 출연 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9월 1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를 다음달 말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단 하루 휴식을 취하고 바로 ‘엘리전스’의 리허설을 시작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엘리전스’는 영화 ‘스타트랙’으로 유명한 일본계 배우 조지 다케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편견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여기서 리더십과 정의감으로 반란을 이끄는 대학원생 ‘프랭키 스즈키’ 역을 맡는다. 2011년 리딩 공연부터 참여해 온 작품이어서 애착이 남다르다. ●2년 넘는 한국 활동은 ‘큰 선물’ 이었죠 한국계 배우가 일본계 미국인 역할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아쉬워할 팬들도 있을 법하지만, 그는 국적과 민족을 넘어 ‘이방인’의 아픔에 주목한다. 스스로도 미국에서 ‘이방인’이었으며,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연기와 노래로 승화해 온 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것이 내 외모와 피부색, 혈통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인이 검은 머리와 황색 피부를 가진 사람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죠. 이는 한국도 조만간 고민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는 배우뿐 아니라 연출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어쩌면 브로드웨이와 한국에서 모두 성공한 뮤지컬 연출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계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한국에 살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 터를 잡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 꿈꾸는 목표도 있다. “한국에는 재능 있는 후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후배들의 재능을 키워 주고 싶어요. 그게 연기든, 뮤지컬 제작이든, 무엇이든 말이에요.”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퓰리처상 소설, 뭐부터 읽을까

    퓰리처상 소설, 뭐부터 읽을까

    여름 독서 시장에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4년 수상작인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전 2권·은행나무), 2015년 수상작인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전 2권·민음사)에 이어 1961년 수상 작가인 하퍼 리의 ‘파수꾼’(열린책들)이 가세하며 퓰리처상 3파전이 펼쳐졌다. 어느 작가의 작품이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프랑스의 장님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고아 소년 ‘베르너’가 1940년대 2차세계대전 전후로 겪는 10여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해 봄 출간 이후 1년 넘게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순위권을 지키고 있다. 지난 6월엔 앤드루 카네기 메달 상도 받았다. 작가는 작품 완성을 위해 10여년간 2차대전 당시 쓰인 일기, 편지 등 방대한 자료를 조사했고 작품의 배경이 된 독일과 프랑스도 여러 차례 답사했다. 퓰리처상 선정단은 “2차세계대전의 참혹한 경험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단순한 문체와 우아한 구성으로 기술의 힘과 인간 본성에 대해 탐색한다”고 평했다. 출판사 측은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이라며 “짧고 강렬하게 전달되는 생생한 묘사가 손에 땀을 쥐며 다음 장을 넘기게 한다”고 소개했다. ‘황금방울새’는 폭발 사고로 사망한 17세기 화가 카럴 파브리티위스의 실제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은 미술관 폭탄 테러로 어머니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소년 시오가 우연히 명화 ‘황금방울새’를 손에 넣게 되면서 시작한다. 상실과 집착, 운명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적나라한 대도시의 현실과 예술 암시장 등 흥미진진한 리얼리티로 돌파해 나간다. 32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출간 즉시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독일 등지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천재 작가’라는 수식을 안겨준, 1992년에 나온 작가의 첫 작품 ‘비밀의 계절’(전 2권·은행나무)도 개정판이 나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韓·日 정상회담 해도 관계 진전은 회의적”

    한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해도 실질적인 관계 개선에는 회의적이라는 관측이 미국 의회에서 나왔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펴낸 ‘한·미 관계’ 보고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두 서로 타협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이 전망한 것으로 12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의회조사국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접근이 서로 충돌하고 악순환에 갇혀 있다”며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2차대전 당시의 행위에 대해 완전히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하면서 한·일 관계의 다른 측면들을 과거사 문제와 연계하는 반면, 아베 총리는 일본 민족주의자들이 자학적이라고 여기는 증표들을 역사교과서 등에서 지움으로써 역사적 자긍심을 회복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의회조사국은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북한 도발 등에 대한 즉자적 대응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관계로 진전시킬 이해나 역량이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미 관계는 1953년 동맹을 체결한 이후 가장 강건한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몇 달간 양국이 이견을 보이는 분야에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한국의 대미-대중 관계를 가늠해보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韓·日관계 위해 日반성 필수… 양 국민 올바른 역사인식 절실”

    [새로운 50년을 열자] “韓·日관계 위해 日반성 필수… 양 국민 올바른 역사인식 절실”

    이만열(77)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서울 필운동 집 지하 서재의 벽 한쪽은 책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50년이 넘도록 역사학자로 살며 연구해온 이의 서가라 보기에는 의외로 듬성듬성했다. 서재 건너편 자료실에도 신문, 잡지, 문건 등 각종 자료들로 빼곡해야 할 공간이 성기다 못해 휑하다. “얼마 전에 당장 읽을 책들 일부만 남겨 놓고 3만여권의 책과 각종 자료들을 성산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로 기증했어요. 글 쓰거나 필요할 때 가끔 건너가서 보면 돼요. 이 집은 이미 팔기로 했고, 그 근처로 이사갈까 생각 중이에요.” 서서히 후세 연구자 및 뒷세대들과 교감하고 소통할 장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원로 사학자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회억은 개인의 삶과 어우러져 또렷하면서도 명징하게 되살아났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때 맞은 해방의 기억은 생생한데, 오히려 1965년 한·일회담 때는 큰 의미도, 특별한 기억도 없다”면서 “한·일회담 반대 운동이 치열했듯 국민의 호응이 없이 진행됐으며 별 기대도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일본의 사과 한마디 못 받고, 범죄 인정도 못 받은 단순한 수교의 결과만 나왔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사실 1965년 한·일 수교는 경제개발계획의 대규모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한국, 잉여자본의 해외진출을 꾀하던 일본의 이해관계가 각각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부분을 뛰어넘어 미국의 입장에서 억지로라도 한국과 일본을 수교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 이뤄진 것”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어 막대한 전비를 투여하던 미국은 한국에 전과 같은 원조를 계속할 여력이 없었다. 한국전쟁 군수물자 조달을 통해 경제가 재부상한 일본에 그동안 자신들이 맡고 있던 한국 원조를 상당 부분 떠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는 미국과 일본, 한국의 동아시아 반공 삼각동맹이라는 미국의 대외전략과도 맞물려 있었다. 그는 “당시 받은 8억 달러는 포항제철을 짓고, 고속도로를 놓는 등 산업화의 종잣돈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긍정적 역할에 대해 평가했다. 하지만 “그중 2억 달러는 차관, 3억 달러는 상업차관으로 갚아야 하는 돈이었고, 나머지 무상 3억 달러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10년 동안 연 2500만 달러씩 계획서를 받아 물품으로 준 것으로서 식민지 강점 시 독립군 학살 등에 대한 사과 한마디 못 받고, 일본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노동자 등에 대한 배상책임도 묻지 못하게 한 데 대한 대가였다”고 현재까지 문제를 지속시킨 원인이 된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5·16 군사쿠데타가 없이 4·19의 가치와 정신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한·일회담이 진행됐다면 최소한 식민지배 사과 등은 들어가는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회한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명예교수가 한·일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현실적 걸림돌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명예교수는 일본의 아베 체제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다. 그는 “나중에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2차대전 일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라는 정치인은 총리까지 지냈는데, 그는 1952년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면서 “그를 외조부로 둔 아베 신조 총리는 외조부가 못다 이룬 정책과 입장을 현실화시키고 있어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단순히 정치 지도자 개인의 문제만을 떠나 동일본 대지진의 파장,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 위협 등 일본 내에서 극우세력이 준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일반 시민들도 불안함 속에서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원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면서 “일본 내부 언론, 시민사회, 학계 등 지한파·친한파들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졌다”고 일본 내부의 부정적 조건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상황이 일본 탓만 하고 있을 만큼 녹록한 것도 아니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민들의 표피적인 반일 정서, 반일 의식도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성적 접근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이 국민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독립기념관을 조성하는 등 감정적인 측면의 국민운동으로 반일을 적절히 활용했다”고 말했다. 냉철한 역사인식보다는 감정적 반일의식이 만연했던 배경에 대한 지적이다. 또한 그는 “역사학계에서도 1987년 6월 항쟁 등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일제시대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될 수 있었다”면서 “그전에는 식민지 강점기에 대해 책을 쓰거나 연구하다보면 자칫 끌려가곤 했던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 측 대응도 그렇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독도에 찾아가서 사진 찍고 이벤트하는 방식이 당장 국민 감정 측면에서는 통쾌할 수 있지만, 좀 더 긴 호흡에서는 더욱 차분하면서도 명확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한·일관계에 있어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우리 정부의 무능과 무지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연원을 짚어나갔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독도의 영토 귀속 문제가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한국 측 참사관을 참고인으로 불러 독도에 대해 의견을 구했지만, 그는 독도의 위치도 모르고 제주도 밑의 파랑도와 독도를 헷갈려 하며 엉뚱한 얘기를 했고, 결국 1~5차 회담까지 한국의 영토로 정리되어가던 독도가 결국 한·일 어떤 나라에도 귀속 규정 없이 조약이 명문화된 것이지요.”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올바르게 역사인식을 갖고 정부 차원을 뛰어넘는 교류 활동을 펼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그는 “1982년부터 일본이 역사 교과서 왜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한국 역시 검인정해오던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난리를 피웠다”면서 “이 밖에도 정·재·관계에서 친일파 후예가 득세하는 한국의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어렵고 힘들어도 갈 길은 가야 한다. 이 명예교수는 한·일 관계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여러 방법에 대해 걱정과 기대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관련 문제, 어업자원 문제를 비롯해 엔저 상황에서 우리 수출 어려움 등 한·일 간에 조정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에게도 반드시 역사적 명분이 필요합니다. 위안부로 대표되는 식민지배 반성이 일단 선행되어야 하겠죠. 시민사회와 학자들의 분발은 기본이고요.”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경남 함안 출생으로 마산고, 서울대를 나와 같은 대학 국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숙명여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기독교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등을 지냈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사의 대표적 연구자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등이 있다.
  • 中 ‘7·7사변’ 맞아… 對日 역사 총공세 나선다

    중국이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 ‘7·7사변’(溝橋·노구교 사건) 발생일인 7일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일 역사 총공세는 9월 3일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을 정점으로 만주사변이 터진 9월 18일, 대만 광복 70주년인 10월 25일, 난징(南京)대학살이 일어난 12월 13일 등 연말까지 계속된다. 7·7사변 78주년 기념일인 이날 베이징시 노구교 인근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는 ‘위대한 승리, 역사적 공헌’을 주제로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제의 만행과 중국인의 항일전쟁 모습을 담은 1170점의 사진과 2834건의 문헌·사료 등이 전시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소련군에 참여해 전투를 수행한 기록도 포함됐다. 전국 각지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노구교 사건은 1937년 7월 7일 밤 베이징 남서쪽 외곽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야간 훈련 도중 일어난 병사 실종 사건을 중국군 탓으로 돌리며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요충지인 노구교를 점령한 사건이다. 병사는 20여분 뒤에 원대 복귀했지만 일본군은 이 사건을 빌미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2차 국·공합작을 이뤄 항일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특히 오는 8~9월 150여개국과 유엔 본부 등에서 ‘평화를 위한 기념’을 주제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항일전쟁과 제2차대전 승리,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과거사 공세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항일전쟁 관련 영화 10편이 개봉되고, ‘동북항일연군’을 비롯한 12편의 항전 드라마와 20편의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탄다. 일본군 전범들의 자백서도 출판될 예정이다. 9월 3일에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각국 지도자를 초청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휘하는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뉴스 분석] “더 잃을 게 없다”… 그리스의 도박

    2010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청했던 그리스가 5년 2개월 만에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에 반기를 들었다. 5일(현지시간) 추가 긴축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유권자의 61.33%가 ‘반대’를 택했다. 투표 결과는 국가 부도(디폴트)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그렉시트)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는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을 받은 뒤 고강도 구조조정 끝에 3년 8개월 만에 상환한 한국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그리스를 둘러싼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튿날인 6일 그리스의 협상 총책임자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전격 사퇴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재협상 기간에 한해 최소 7~10일간 그리스에 긴급유동성지원(ELA)을 재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7일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선 그리스가 새로운 개혁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국민투표에서 그리스인들은 왜 ‘빅 노’라고 했을까. ●“폭주 열차라면 뛰어내리자” 외신들은 압도적 반대 표심의 원인을 ‘비루한 현실’에서 찾았다. 2010년부터 두 차례 긴축안을 수용했지만 경제는 더 처참하게 위축됐다. CNN은 6년 동안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이 25% 줄고, 실업률은 10%대에서 25% 안팎 수준으로 폭증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청년 실업률은 50%였다. “그렉시트는 경제적 재앙이 될 것”이라던 ECB의 경고에 아테네 신타그마에 모인 청년들은 “더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맞받아쳤다. 채권단이 그렉시트 이후 미지의 불황상을 제시했다면, 그리스인은 추가 긴축을 했을 때 청년 실업이 2명에 1명꼴에서 3명에 2명꼴로 늘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 냈다. ●“상대에게도 명분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긴축재정·작은 정부를 주창한 우파 경제학자들이 위축된 반면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진보적인 노벨상 수상 학자들은 “긴축 대신 부채 탕감이 필요하다”며 그리스에 힘을 실어 줬다. 반면 싱크탱크 그룹을 확보하지 못한 채권단 진영의 스텝은 꼬였다. ECB가 지난달 10일 “긴축재정이 장기적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지만, IMF는 지난 2일 그리스 부채 삭감 필요성을 시사하는 엇박자 보고서를 내놨다. ●“맞고 살지언정 전남편과는 못 산다” 정치적 성향이 반대 표심을 규합했다는 분석도 있다. 투표에서 ‘찬성’이 우세하면 지난 1월 교체된 시리자 정권이 물러나고 이른바 협상파 정권이 들어선다. 협상파는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한 오점과 재정 위기를 야기한 세력이라는 정치적 한계를 갖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日측 전쟁포로 역사 밝히도록 한국 등 관련국 모두 나서야”

    “일본이 산업시설의 모든 전쟁포로에 대한 역사를 밝히도록 한국뿐 아니라 관련국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미국 워싱턴DC 아시아 전문 싱크탱크인 아시아폴리시포인트(APP) 민디 코틀러 소장은 5일(현지시간) 서울신문에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코틀러 소장은 미국 내 2차대전 전쟁포로 모임을 위한 지원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코틀러 소장은 “유네스코의 압력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해당 시설의 기술을 수정하도록 촉진했다. 그곳에서 노예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속한 나라들이 나서 일본이 해당 시설의 전체 역사를 더 잘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美 하원 6명 “유산위원회, 日 노예노동 인정하게 해야” 공개 서한

    美 하원 6명 “유산위원회, 日 노예노동 인정하게 해야” 공개 서한

    일본 산업혁명시설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에 앞서 미국 연방 하원의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내 일본 문제 전문가와 미 전쟁 포로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 혼다(민주·사진) 의원을 비롯한 미 하원의원 6명은 지난 3일(현지시간) 마리아 뵈머 세계유산위원회 의장 앞으로 연명서한을 보내 왜곡된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반대 뜻을 밝히면서 세계유산위가 일본 정부에 등재 신청을 수정하도록 공식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명서한에는 혼다 의원 외에 크리스 깁슨(공화), 마크 다카노(민주), 짐 맥거번(민주), 대럴 아이사(공화), 찰스 랭걸(민주) 의원 등 민주·공화 양당에서 초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의원은 서한에서 “일본의 이번 등재 신청에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국 전쟁 포로의 역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일본군이 전쟁 포로를 노예 노동자로 사용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해당 시설의 설명은 불안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원들은 “일본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8개 지역 중 5개 지역에 26개의 전쟁포로수용소가 있었다”며 “전쟁 포로들이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아소그룹, 도카이 카본, 우베흥산, 신일본제철, 일본석유엔지니어링, 스미토모제철, 후루가와그룹, 덴카 등 일본의 거대 산업체에 노예 노동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특히 92대 일본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가문의 소유인 아소그룹까지 공개로 거명한 데는 일본 정부에 보내는 암묵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붙잡혔던 미 전쟁 포로 출신들도 세계유산위에 서한을 보내 전쟁 포로 기술 없는 유산 등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한일 수교 50년] 여야 “과거사 사과 전제 한·일 긴밀한 협력해야”

    여야는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를 전제로 한 긴밀한 협력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특히 오는 8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종전 70주년 담화 발표 자리에서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與 “한·일관계 새 돌파구 찾는 계기”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하는 일이)경색됐던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양국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경제·안보·문화·과학 등의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나경원 의원도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리더 국가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독일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밝혔다. 외통위원인 정병국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과 여러 가지 피해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며 오는 8월 예정된 ‘아베 담화’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금전적 보상보다는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野 “위안부 문제 등 확실히 매듭 지어야”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담화문에 단순히 ‘반성’만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아베 총리에게 경고한다”면서 “한·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와 역사왜곡,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짓고 그 토대 위에서 양국 관계가 진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통위원인 최재천 의원은 이날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토론회를 열고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된 지 50년이 흘러 한·일 양국 관계가 이제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로 변화했지만, 역사적 질곡이 깊었던 만큼 여전히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며 “지난 50년간 한·일 관계를 되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대만, 연내 위안부 박물관 첫 개장

    2차대전 때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기리는 ‘위안부 박물관’이 대만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방문연구원과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대만 여성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수도 타이베이에서 오는 12월 10일 위안부 박물관이 개장한다. 박물관 개설을 주도한 여성인권단체 ‘타이베이여성구조재단’ 관계자는 “박물관의 주제는 평화와 여성의 권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 측은 위안부 박물관의 공식 개장에 앞서 8월 14일 박물관 명판을 공개하는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은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등의 시민단체들이 ‘위안부의 날’로 지정한 기념일이다. 재단 측은 또 위안부의 치유와 극복 과정을 담은 76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도 지역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360㎡ 규모의 박물관은 대만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비롯해 지난 20여년간 재단 측과 위안부들이 주고받은 연대기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재단 측은 그동안 위안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치유를 도왔다. 재단 측은 또 박물관에서 위안부 관련 전시와 함께 인권 교육, 성적 학대 등의 주제에 대한 워크숍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재단 측에 따르면 2000명이 넘는 대만 여성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으며 중국과 한국 등으로부터 끌려간 전체 위안부 규모는 20만~30만명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아베정권, 침략전쟁 인정 ‘도쿄재판’ 재검증 추진 논란

    아베정권, 침략전쟁 인정 ‘도쿄재판’ 재검증 추진 논란

    일본 집권당이 자국의 A급 전범을 심판하고 태평양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공식화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 대한 검증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이 도쿄재판과 함께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연합국군총사령부(GHQ)에 의한 정책, 현행 헌법을 만든 과정 등을 검증하는 새로운 조직의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자민당이 이 같은 조직을 이나다 도모미 당 정조회장 산하에 설치하고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에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산케이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이나다 정조회장은 지난 2월 “판결 주문은 받아들이지만 (판결의) 이유에 대한 판단에까지 구속될 필요는 전혀 없다”며 도쿄재판에 간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자민당은 GHQ가 점령 통치 중 전승국의 역사관을 침투시키기 위해 ‘전쟁 유죄 정보 프로그램’(WGIP)을 통해 조직적으로 선전했다는 주장 등에 대한 검증도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도쿄재판이나 헌법 제정 과정에 대한 검증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한 것이 맞는 것인지 혹은 무력행사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유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을 촉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범 국가로서의 반성 및 교전권 박탈 등을 규정한 전후 일본의 질서를 부정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앞서 헌법 제정 과정에 대해 “헌법 원안을 GHQ의 문외한들이 8일 만에 만들었다”고 혹평하는 등 개헌을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공언해 왔다. 한편 새 조직은 자민당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의 역할도 흡수할 계획이다. 특명위원회는 ‘전쟁 때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사망)의 발언에 관한 보도를 아사히신문이 취소한 것 등과 관련해 영향 등을 검증하는 집권당 내 조직이었다. 도쿄재판은 2차대전 뒤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심판하기 위해 열렸으며 재판부는 1948년 11월 12일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에게 교수형, 16명에게 종신형 등 모두 2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