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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군사력 키우는데… 반기는 2차대전 교전국들

    ‘통일 독일’ 등장 경계했던 英·佛·美 러의 크림반도 병합·IS 위협 커지자 무기력한 나토 대신 獨의 역할 기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이 통일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독일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찬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지만 과거 교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은 정작 독일의 팽창 정책에 안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달 연방군 병력을 2023년까지 7000명가량 증원하고, 2030년까지 국방비를 1480억 달러(약 175조원) 쏟아붓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독일군 병력은 17만 8000명에서 18만 5000여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만 해도 ‘통일 독일’의 등장을 경계하던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독일의 이런 결정에 반색하고 있다. 독일의 군사적 팽창을 환영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 소련의 붕괴 이후 군사력을 감축해 온 나토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과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다음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독일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도 관심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독일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다른 우방국과 달리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파병을 거부했다. 그러던 독일은 2014년 2월 열린 제50차 뮌헨 안보회의를 계기로 입장을 바꿨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그해 9월 독일은 70년 만에 처음으로 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 민병대에 4000명이 무장할 수 있는 미사일과 고성능 소총, 수류탄, 보병용 장갑차 5대 등을 지원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인접지역인 리투아니아에 미국, 영국과 함께 여단급 합동군을 편성해 지휘관을 파견했으며 나토 회원국의 군수물자 공유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NYT는 독일의 역할 확대에 대해 내부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도좌파성향인 사회민주당(SDP) 관계자는 “독일은 최대한 신속하고 대규모로 군사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독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리투아니아 파병이 1997년 러시아 인접지역에 항구적인 나토의 군사력 주둔을 금지한 나토·러시아 협약을 파기한 것이라며 확대를 반대하는 여론도 드세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종이학 4마리로 日열도 다독인 오바마…‘보여달라’ 요청 빗발

    종이학 4마리로 日열도 다독인 오바마…‘보여달라’ 요청 빗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원폭 희생자 위령비 단독 헌화와 일본 학생에 직접 접은 종이학 선물 깜짝 이벤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난 27일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2차대전 종전에 앞서 1945년 8월 이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71년 만의 첫 방문이란 역사적 의미에서다.  그만큼 미국과 일본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도착에서 평화공원 내의 동선, 메시지 발표 형식 등에 대해 끝까지 조율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결심한 것은 지난 6일이다. 실제 방문을 21일 앞둔 시점이다.  미국 내 반발 가능성,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의 영향, 한국과 중국의 반응 등을 마지막 순간까지 살폈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오바마 대통령의 결심을 일본 총리실 측에 통보한 것은 이틀 후인 8일이었다. 이는 총리실과 외무성의 최고위급 일부에게만 전달됐다. 아베 총리는 미·일 간 동시 발표일로 정해진 10일까지 함구령을 내렸다.  또 미국 측은 “평화공원에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참배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공원 방문 시에는 지난달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이 찾았을 당시와 같은 열렬한 환영 행사는 없었다.  아베 총리와 함께 위령탑 앞에 선 뒤 오바마 대통령이 따로 헌화하고 묵념한 것도 미국 측 요청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혼자 헌화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의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오바마 대통령의 원폭돔 시찰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평화공원에서 원폭돔까지 이동 경로에 사유지가 있어서 경호 문제상 실현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아베 총리와 평화공원 내를 걸어서 이동하면서, 그리고 자동차로 평화공원을 떠나면서 원폭돔을 먼발치서 바라본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원폭자료관 내 관람 장소 및 관람 시간을 두고도 양국은 최후의 순간까지 조정을 계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자료관에서 2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뒤 후유증으로 숨진 사사키 사다코의 사진을 관심 있게 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특히 직접 접은 종이학 2개를 현장에 있던 일본인 초중생 2명에 한 개씩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도 준비했다.  일본인에게 친숙한 매화와 벚꽃이 그려진 종이로 접은 학이다.  순간 아베 총리도 “대통령이 접은 것이냐”라고 물었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오바마 대통령의 선물이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대통령은 방명록을 쓰고 나서 종이학 2마리를 더 남겼다.  그는 “약간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내가 접었다”고 아베 총리에게 설명했다.  사사키는 2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뒤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나을 것으로 믿고 종이학을 접다 964마리를 접고 피폭 후유증으로 숨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접은 종이학을 보관 중인 원폭자료관에는 이를 보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졌고 자료관은 조만간 오바마 대통령의 종이학을 전시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원폭을 사죄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이학이나 피폭자와의 포옹은 사과 못지않게 일본인에게 공감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교도통신이 28∼29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투하를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74.7%에 달했고 사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18.3%에 그쳤다.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공원 연설도 당초 알려진 몇 분간이 아니라 17분에 걸쳐 진행됐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시작 직전에야 이를 알았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것은 물론 2차대전을 언급하면서 “전쟁은 지배와 정복이라는 가장 단순한 본능에서 생겨났다”고 일본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표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지난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마지막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가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할머니의 슬픈 사연에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 뿐 아니라 조선의 악습과 무능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2일 중국 내 최대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은 이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전했다.  1921년 평양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되던 해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듬해 남편과 딸이 병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시댁에서 나와 친정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부친은 새로 맞은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내친 상태. 슬펴할 겨를도 없이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살때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급하게 치료비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중국 하얼빈에서 일할 공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며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이 할머니는 이들의 말만 믿고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얼빈에 따라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가 간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와 함께 끌려온 여성은 7~8명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처녀는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어서 이들은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안돼 다시 잡혀와 죽도록 매를 맞길 여러번. 이들은 “누구든 도망칠 생각을 아예 말라”고 윽박지르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 할머니는 21살 때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지역인 헤이룽장성 둥닝셴(東寧縣)에 있는 일본 관동군 위안소로 옮겨졌다. 당시 이곳에는 13만명의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어 수천명의 위안부가 필요한 상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고 함께 간 위안부들이 병과 폭행에 시달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혼자 가슴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패망 무렵 이곳에서 사변이 일어나 혼란해진 틈을 타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할머니는 어두운 과거를 끝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군에게 버림받았고 남북한 정부도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도 둥닝셴에 남아 중국인 남성을 만나 다시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은 그가 위안부 출신인 것을 불쾌해하며 수시로 모욕하고 때렸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모든 것을 참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려 했지만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에 위안부 출신이라는 비관,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80년대 초 헤이룽장성 정부는 할머니를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양로원에 보냈다. 할머니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강변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회한을 달래곤 했다고. 말년에는 인형을 끔찍히 좋아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두 아기인형에 ‘량량(亮亮)’과 ‘뉴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돌봐온 양아들 고지상씨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해 왔으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인형들을 더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돼 우리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민족에 대한 정체성만은 확고했다고 한다.  2007년 하얼빈시 조선족 예술관에서 할머니에게 한복을 선물하자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죽을 때 이 한복을 입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평양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모셔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평양에는 친척이 없고 그저 배다른 남동생만 한 명 있을 뿐이다. 조선말을 잊어버려 남한이나 북한 어딜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곳(둥닝셴)에선 모두 나에게 잘 대해주니까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사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 원장 혜진(惠眞) 스님이 1998년 이곳에 들러 이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일 이 할머니는 생전 유언대로 한복을 입은 채 화장돼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중·한우호공원에 안치됐다.  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주심양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길에 일본군 포로 출신 노병 동행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에 과거 일본군 포로였던 미국 재향 군인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가해자’라는 측면을 부각시켜 오바마의 방문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데 대한 ‘일방적 사죄 행보’라는 평가를 불식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22일 교도통신에 의하면 일본군의 포로 생활을 경험한 미국 재향군인들의 단체인 ‘바탄·코레기도르방어미군추모회‘(ADBCMS·이하 추모회) 회원인 대니얼 크롤리(94)씨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동행한다고 추모회 잔 톰슨 회장이 21일 밝혔다. 톰슨 회장은 미국 정부로부터 타진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추모회에는 2차대전 당시 필리핀 바탄 반도에서 일본군에 붙잡힌 뒤 폭염 속에서 약 100㎞가량 걷기를 강요당했던 이른바 ’바탄 죽음의 행진‘ 생존자들이 포함돼 있다.  톰슨 회장은 2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전(前) 미군 포로와 히로시마의 피폭자가 만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전쟁의) 희생자들이 대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전쟁의 피해자는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을 내외에 강조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추모회는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일본 측이) 일본에서 사망한 미군포로에 대해 진심으로 추도할 때까지 히로시마행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한편, 요미우리신문은 22일자에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계기로 미·일간 역사논쟁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면 아베 총리도 답례로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있었던) 12월에 진주만을 방문하기 바란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나올 것”이라는 토머스 센킨 전 미국 국무부 차관 수석 보좌관의 예상을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무신론자의 시대/피터 왓슨 지음/정지인 옮김/책과함께/832쪽/3만 8000원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이 단호한 선언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렀고 여전히 회자되는 명언이다.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이 의지할 존재로서 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방법을 찾았을까. 실제로 니체는 신 없는 세상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이 책은 그 대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니체의 선언이 있은 뒤 신이 사라진 세계를 개탄하며 고통스러워한 이들도 있었지만 남겨진 것들에서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 세상에서 더욱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게 성찰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 출신의 언론인이자 지성사가인 저자는 바로 그들을 주목한다.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거대한 문화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했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 대중문화까지를 832쪽의 방대한 서사로 엮어 놓았다. 놀랍다.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피어난 새로운 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에 드러난 극복의 방안은 이렇게 압축된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끈질긴 실체성, 절정의 순간, 작은 기쁨, 휴일의 삶, 자발적 긍정…. 프루스트가 말한 ‘지복의 순간들’, 입센의 ‘정신적 가치의 섬광들’, 예이츠가 강조한 ‘황홀한 긍정의 짧은 순간’이 모두 그런 화두로 꿰어진다. 전체성과 단일성에서 벗어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순간을 붙잡으려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특히 저자는 ‘전체성’이나 ‘단일성’이라는 관념의 퇴조야말로 20세기에 이뤄진 큰 성취라고 꼽는다. 그런 차원에서 1·2차 세계대전기 문화·사회상의 변화를 꼼꼼하게 정리해 흥미롭다. 1차 세계대전 무렵 니체는 “새로운 무엇이 되고 새로운 무엇을 나타내고 새로운 가치들을 표상하라”고 제안했다. 그 말은 바로 기성의 고급문화에서 소외된 아방가르드에 대한 의미의 부여다. 실제로 표현주의 시인 에른스트 블라스는 독일제국 시기 베를린의 카페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내가 한 일은 당시의 거대한 속물주의에 맞선 전쟁이었다. 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누구보다도 반 고흐와 니체, 프로이트, 베데킨트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합리주의 이후의 디오니소스였다.” 저자는 2차대전으로 인류는 ‘0시’에 도달했고 장기적 결과와 마주했다고 쓰고 있다. 들끓는 전쟁과 점령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맺은 실존주의의 태동, 미국 사회에서 깊이 각인된 자유방임적 방향 전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생각에 남긴 영향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세 가지 결과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무력 충돌이 다 끝난 뒤에도 종교적 맥락과 세속적 맥락에서 오래도록 사상과 문화를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형성하고 있는 관심사들이다.”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형성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쳐 온 일들을 놓고 저자는 이렇게 압축해 표현한다. “자기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나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론의 끝은 이렇게 맺어진다.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성의 빛 속에서 걷기보다는 스스로 다음 시대의 예언으로서 걸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오바마, 한국인 위령비는요?

    오바마, 한국인 위령비는요?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18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 한국인을 포함한 원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 대상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미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 기간 중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방문하거나 원폭 피폭자들과 만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른다”며 함구했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태 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날 외신기자센터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들를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알지 못한다”며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2차대전에서, 그리고 원폭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을 기리고자 이번 방문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역사적 기록을 보면 원폭으로 많은 일본인에 더해 많은 한국인도 희생됐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온 많은 다른 아시아인(희생자)도 있었다”며 “대통령이 가서 모든 희생자를 기린다고 말할 때는 바로 그것을 진정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이 거기에 있는 동안 무슨 행동을 하든, 하나의 중심 목적은 모든 희생자를 기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같이 참석한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오바마 대통령은 깊은 존중의 마음으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할 것”이라며 “원폭으로 수많은 일본인이, 수많은 한국인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아시아인들과 미국 전쟁포로도 희생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 및 관련 단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를, 일본 측 피해자 단체 등은 피폭자와의 만남을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체류 시간 및 동선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인 위령비 방문이나 피해자 만남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인 위령비 방문은 일본 측이 민감해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나치도 핵 개발했다?…獨비밀기지서 핵폭탄 발견 주장 논란

    나치도 핵 개발했다?…獨비밀기지서 핵폭탄 발견 주장 논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소위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흔히 알려져 있는 역사다. 그러나 독일 나치 또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음모론'은 지금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빌트, 영국 인디펜던트 등 유럽언론은 독일 동부 튀링겐 지역 요나스 계곡에 나치의 핵폭탄이 숨겨져 있다는 한 역사가의 주장을 소개했다. 한편으로는 황당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듯한 주장을 펼치는 주인공은 역사가로 활동하는 엔지니어 출신의 피터 뤼어(70). 그의 주장의 근거는 과학적인 조사다. 전자파를 지표에 투과시켜 지하 빈 공간 형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레이더 장치인 GPR(Ground Penetrating Radar)를 사용해 요나스 계곡을 조사한 그는 이곳에서 거대한 동굴을 발견했으며 핵폭탄 같은 형상의 물체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뤼어는 "3D 이미지 기술로 5개의 큰 물체를 형상화한 결과 그중 2개는 핵폭탄으로 추정된다"면서 "핵폭탄이 맞다면 71년 간 이 동굴 속에서 부식돼 있는 것으로 두번째 체르노빌같은 참사가 우리 손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국에 이같은 사실을 알렸으나 무시당했으며 더이상의 조사도 허락치 않고있다"고 덧붙였다. 한 아마추어 학자의 주장에 현지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나치와 요나스 계곡에 얽힌 사실과 루머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당시 나치는 포로들을 동원해 요나스 계곡 지하에 25개의 벙커를 팠다. 이 공간이 바로 당시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한 비밀기지라는 주장으로 이는 여러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루머로만 떠돌던 나치의 핵무기 개발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난 2005년 독일의 역사학자 라니어 칼쉬가 그의 저서 ‘히틀러의 폭탄'(Hitler’s Bomb)에서 나치가 1944년, 1955년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특히 지난해 독일 제2TV 공영방송국 ZDF는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핵폭탄을 찾아서’(The Search for Hitler’s Atom Bomb)를 통해 관련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이 다큐는 2차대전 당시 작성된 러시아 및 미국 첩보 비밀문서의 내용을 인용, 나치가 핵무기 개발을 거의 완료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큐는 나치 무기전문가이자 나치친위대(Schutzstaffel) 장군이었던 한스 카믈러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추론을 펼쳤다. 카믈러는 몇 안 되는 히틀러의 직속 장교 중 하나였으며, 핵분열 연구 책임자이기도 했다. 다큐는 카믈러가 요나스 계곡에 위치한 비밀 연구시설에 파견돼 핵무기 연구를 진행했으며 핵무기 투하를 맡을 일종의 비행접시 개발도 나섰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종전 이후 나치 과학자 취조기록, 연구기록 등의 극비 문서들이 미국으로 반출됐으며, 이중에는 이 연구시설에 대한 기록도 포함돼 있으나 미국은 요나스 계곡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비밀문서를 100년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다큐는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각의 주장이 황당하다는 반론이 많다. 역시 독일의 유명 역사가인 스벤 펠릭스 켈러호프는 "히틀러가 총애했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조차 한 번도 핵폭탄 개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나치의 최측근도 모르는 탑 군사 무기가 어떻게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며 반문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日히로시마 가는 오바마] “완벽한 회개·굴복의 장면 될 것” “日 군국주의 야욕 단념시킬 것”

    [日히로시마 가는 오바마] “완벽한 회개·굴복의 장면 될 것” “日 군국주의 야욕 단념시킬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2차대전 원자폭탄 투하 이후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로서 처음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발표하자 미국 내 일본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갈 때와 장소가 아니라는 주장부터 일본의 군사욕을 꺾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다양하다.   대표적 지일파인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APP) 소장은 10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전체적으로 잘못 조언을 받았다. 이번 방문은 그 장소(히로시마)가 어떻게 기억돼야 하는가 보다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느냐에 쏠려있다”고 지적했다. 코틀러 소장은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핵 확산에 대한 중대한 발표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며 “핵무기 경쟁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번 방문 결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의기양양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낮은 자세로 헌화하면서 ‘완벽한 회개’와 함께 굴복하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목적은 핵무기 감축에 대한 기대 이외에도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칼더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기간 중 북한의 무모한 핵 도발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다”며 “이번 방문은 북한 핵 개발의 무모함과 무감각함에 대한 메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원폭 투하를 ‘필요악’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도 사과 대신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당시 일어났던 비극이 잊혀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핵무기 감축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번 방문이 역사적 평가보다는 핵 감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미국이 무엇을 더 얻거나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이 이긴 전쟁에 대해 사과했다고 비판할 가능성이 있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에 美전문가들 “갈 때·장소 아냐” vs “일본 군사욕 꺾을 것”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에 美전문가들 “갈 때·장소 아냐” vs “일본 군사욕 꺾을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2차대전 원자폭탄 투하 이후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로서 처음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발표하자 미국 내 일본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갈 때와 장소가 아니라는 주장부터 일본의 군사욕을 꺾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다양하다.   대표적 지일파인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APP) 소장은 10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전체적으로 잘못 조언을 받았다. 이번 방문은 그 장소(히로시마)가 어떻게 기억돼야 하는가 보다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느냐에 쏠려있다”고 지적했다. 코틀러 소장은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핵 확산에 대한 중대한 발표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며 “핵무기 경쟁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번 방문 결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의기양양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낮은 자세로 헌화하면서 ‘완벽한 회개’와 함께 굴복하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목적은 핵무기 감축에 대한 기대 이외에도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칼더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기간 중 북한의 무모한 핵 도발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다”며 “이번 방문은 북한 핵 개발의 무모함과 무감각함에 대한 메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원폭 투하를 ‘필요악’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도 사과 대신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당시 일어났던 비극이 잊혀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핵무기 감축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번 방문이 역사적 평가보다는 핵 감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미국이 무엇을 더 얻거나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이 이긴 전쟁에 대해 사과했다고 비판할 가능성이 있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원폭 투하 71년만에…美대통령 첫 방문

    원폭 투하 71년만에…美대통령 첫 방문

    G7 정상회의 참석 뒤 아베와 동행 ‘핵무기 없는 세상’ 호소 연설할 듯 버락 오바마(얼굴)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방문을 확정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피폭지를 방문하는 것은 2차대전 당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래 71년 만에 처음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0일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피폭지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6~27일 미에현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히로시마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은 G7 정상회의에 맞춰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별도 정상회담을 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결정에 대해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모든 (원폭) 희생자를 양국이 함께 추도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피폭지에서 세계를 향해,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도 이를 공식 확인했다.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대통령이 역사적인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과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 현장에서 핵무기 폐기 등을 호소하는 연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일본 방문 당시 히로시마에 가기를 원했으나 당시 현직 대통령의 피폭지 방문은 일본에 사죄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부정적 여론에 부딪혀 포기한 바 있다. 미국 보수 일각에선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마지막 임기를 맞은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됐다.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은 이번 방문에서 원폭 투하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는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번 방문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결정을 다시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방문은 전쟁 기간 희생된 모든 무고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회를 가지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9일 大選 필리핀도 ‘막말’이 접수하나

    9일 大選 필리핀도 ‘막말’이 접수하나

    필리핀도 ‘아웃사이더’ 돌풍…범죄·부패 지친 국민들 기성정치 혐오 오는 9일에 실시될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도 미국 대선과 마찬가지로 ‘아웃사이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중앙 정계와 거리가 멀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 시장이 대선을 한두 달 앞두고 지지율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며 대권에 근접하고 있다. 지방정부 시장만 22년 맡아온 두테르테는 막말로 대중과 언론의 시선을 끌고 파격적인 개혁 정책으로 기존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하다. 대선 초반 선두를 유지하다 현재 두테르테 시장을 뒤쫓는 여성 후보인 그레이스 포(47) 상원의원도 정계에 입문한 지 3년이 채 안 되는 초보 정치인이지만, 필리핀 국민배우였던 아버지의 대중적 인기와 참신하고 청렴한 이미지에 힘입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데 5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니 교황이 와서 교통이 통제됐다고 하더라고요. 교황 개】】! 당장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필리핀을 방문하지 마.” 두테르테는 지난해 11월 필리핀민주당(PDP-Laban)의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뒤 가진 연설에서 같은 해 1월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통 체증을 일으켰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두테르테는 교황에게 사과했으며, 교황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아량’을 보였다. ●성폭행·피살 선교사에 “내가 먼저 했어야” 두테르테의 막말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달 유세장에서 그는 1989년 다바오시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사건 당시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해 여성단체와 경쟁 후보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호주대사가 비판하고 나서자 그는 “당신들은 필리핀 사람이 아니다. 입 닥쳐라. 선거에 간섭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논란이 계속되자 그가 속한 필리핀민주당이 대신 사과했다. ●두테르테, 시장 시절 범죄자 1700명 처형 각종 설화에도 두테르테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그의 강력한 범죄 근절 공약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3~6개월 안에 모든 범죄와 부패를 뿌리뽑을 것이며, 군과 경찰이 범죄자를 죽이더라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가 자신의 범죄 근절 정책에 반대한다면 해산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22년간 다바오 시장에 재직하면서 시의 범죄율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지난해 다바오시는 세계에서 안전한 도시 4위에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자경단에 정식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약밀매상 및 다른 범죄자들을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으로 알려져 인권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두테르테 시장 재임 기간 자경단이 살해한 범죄자는 1700여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독재’ 선호?… 부통령은 마르코스 아들 유력 미국 하와이 소재 싱크탱크인 동서센터 선임연구원 제럴드 피닌은 “필리핀 국민은 변혁을 열망한다. 그들은 범죄, 부패 등 고질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을 원한다”며 두테르테의 부상을 분석했다. 엔리코 트리니다드 전 필리핀 증권거래소 부대표는 두테르테를 “강직한 경영자”로 묘사하며 “그는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다바오시에 효율적이고 청렴하며 온정적인 시 정부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비판가들은 두테르테의 경솔한 발언과 공약을 지적하며 그를 미국의 트럼프에 비유한다.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린 화이트 3세는 “두테르테는 트럼프를 천사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경도돼 있지 않아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트럼프에 대해 “편견이 심한 사람”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두테르테는 가톨릭계가 전체 인구의 83%에 달하는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에 반대하면서도 동성 결혼은 지지한다. 그는 공공연히 자신이 2명의 부인과 2명의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라고 말하고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아 여성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지만, 다바오 시장으로서 광범위한 여성인권 보호 규칙을 채택하기도 했다. LA타임스는 필리핀 유권자들이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독재자 스타일의 리더를 선호해 왔다며 두테르테의 인기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2차대전의 영웅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21년간 독재 통치를 했으며, 이후에도 액션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1999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부통령선거에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 상원의원이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스 2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살해, 고문했으며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한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통치기간을 “황금기”라고 주장하며 독재자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역전극 노리는 ‘입양아 출신’ 그레이스 포 맹추격 두테르테가 급부상하기 이전에는 무소속의 그레이스 포 상원의원이 지지율 선두를 지켜 왔다. 포는 특별한 가정사와 청렴한 이미지로 높은 인기를 누려 왔다. 태어나자마자 성당 앞에 버려진 그는 필리핀 국민 배우인 페르난도 포 주니어에 의해 입양됐으며 어렸을 적 아버지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 포가 양어머니의 동생인 여배우 로즈메리 소노라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불륜으로 태어났다는 소문도 있지만 모두 부인했다. 포는 어렸을 적 태권도 검은띠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아버지 포 주니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적이 있으나 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2013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그는 아버지의 대선 캠페인 기간을 제외하고 정계와 무관한 생활을 했기에 부패가 만연한 주류 정치권에 속하지 않은 청렴하고 참신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필리핀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경제적 자유주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버려두고 가지 않겠다”는 모토로 적극적인 빈민 구제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나도 있다”… 아키노 대통령 후계자 ‘로하스’ 베니그노 아키노 현직 대통령이 후계자로 내세운 집권 자유당(LP) 소속의 마누엘 로하스 2세(58) 전 내무장관은 아키노 대통령의 정책과 업적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항해 미국 및 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로하스는 마누엘 로하스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게리 로하스 전 상원의원의 아들로 정치 명가 출신이다. 제조마르 비나이(73) 부통령은 아키노 대통령의 연임 시도에 반발해 야당 통합민족동맹(UNA)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아키노 대통령의 외교 노선과 달리 중국과 더 협력하겠다고 공약했다. 그의 가문 역시 마닐라의 금융중심지 마카티시에서 수차례 시장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다. 이 밖에 국민개혁당(PRP) 소속의 미리암 디펜서 산티아고(70) 상원의원이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시 日전쟁 책임 분명히 해야”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시 日전쟁 책임 분명히 해야”

     일본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실제 방문할 경우에도 “일본의 2차대전 책임을 분명히 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외교부에서 나왔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신동익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은 ‘IFANS 포커스’에 기고한 글에서 “엄중한 한반도 및 국제안보적 환경 속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게 된다면, 우리로서는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도록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일본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다음 달 방일할 때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를 방문할 수 있도록 공을 들이고 있다. 신 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문제에 핵무기 사용의 ‘인도주의적 영향’ 측면과 더불어 과거사와 관련된 ‘복잡하고 민감한 정서적 요인’도 들어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원폭 피해 사실만을 부각시키려는 일본의 행동은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인 척하는 행동을 극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도) 핵무기의 인도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심각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 하에 강력한 핵 억지력이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인도적 영향만을 고려해 핵무기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논리를 지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외교안보연구소 연구진들이 주요 외교사안에 대해 발간하는 ‘IFANS 포커스’는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정부 산하 연구기관장이 밝힌 견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외국 정상의 제3국 방문 일정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혀 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경계용 ‘이지스’·휴대용 ‘스카봇’ 한국 군사로봇 기술 선진국 수준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경계용 ‘이지스’·휴대용 ‘스카봇’ 한국 군사로봇 기술 선진국 수준

    전 세계가 그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의 심장 파리에서 벌어진 폭탄테러 이후 프랑스와 미국은 “중단이나 휴전은 결코 없다”면서 이슬람국가(IS)의 주요 거점을 공습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어느 편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죽어 간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필요악’이라고 여긴 인류가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로봇이다. 전쟁터에 나간 군사 로봇은 군인 대신 총을 쏘고, 정찰에 나선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군사로봇, 어디까지 진화했을까.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 2차대전부터 투입 로봇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익숙한 탓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에게 익숙한 로봇(Robot)이라는 용어가 처음 인류와 만난 것은 1920년의 일이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는 당시 발표한 희곡에서 ‘강제된 노동’이란 의미를 가진 체코어 ‘로보타’(Robota)를 본떠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용어의 역사는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이미 ‘로봇’이 존재했다.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청동거인 ‘탈로스’가 그것이다. 탈로스는 대장장이의 신(神)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으로, 크레타 섬을 순찰하며 무단으로 섬에 상륙하려는 사람과 배를 엄청난 힘으로 막아 냈다. 어쩌면 인류 기록의 역사상 최초의 로봇일지도 모르는 탈로스는 현재 미군이 개발 중인 차세대 군사 로봇 ‘탈로스’(TALOS) 명칭의 시초가 됐다. 전투용 군사 로봇이 실제 전장에 투입된 대표 사례는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폭전차인 ‘골리앗’ 등이 원격 조종 형태로 운용됐으며 보스니아 내전(1997~1999년)과 코소보 전쟁에도 지뢰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무인로봇이 투입된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4족 견마로봇 ‘빅독’이 ‘핫’한 군사로봇으로 떠올랐다. 커다란 휠로 움직이는 팩봇과 달리 다리를 이용해 보행하며, 150㎏의 짐을 짊어지고도 산을 오르내리는 등 군용 물자 수송에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한국 ‘경계 로봇’ 이라크 파병·DMZ 배치 2000년대에 들어 군사 로봇이 승리 전적을 쌓는 공신으로 자리잡으면서 한국 역시 전투용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2005년에는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이지스 로봇을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 실전 배치했다. 경계용 로봇인 이지스 로봇은 주야간 목표 식별과 추적 및 K2 소총을 이용한 사격도 가능하다. 2007년에는 지능형 감시경계 로봇이 비무장지대에 배치됐고, 2010년에는 한국의 퍼스펙이 개발한 휴대용 다목적 군사 로봇 ‘스카봇’이 선보였다. 최근에는 드론이나 무인수색차량 등의 장비 개발에도 예산이 쏟아지면서 기술 수준도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2013년 국방기술품질원이 발표한 국방과학기술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용 지상로봇 기술 수준은 선진권에 속한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미국이 1위(100점)에 올랐고, 뒤를 이어 이스라엘과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이 최선진권(100~91점) 및 선진권(90~81점)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한국은 81점으로 일본 다음을 차지했다. 군사로봇 기술 발전을 위해 로봇이 전투를 벌이는 ‘초대형 전쟁터’인 국방로봇센터도 국내에 처음 마련될 예정이다. 2년 내에 모습을 드러낼 이곳은 군인들이 부대에서 훈련을 받듯 로봇 역시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테스트를 받는 장으로서 370만㎡(약 112만평) 규모의 부지에 국방로봇연구센터 및 26종의 실험·시험장비가 들어선다. ●‘킬러 로봇’ 통제·윤리 문제 고민해야 이처럼 군사 로봇이 정교해질수록 인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결국 군사 로봇은 전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살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군사 로봇이 원격 무인 조종으로 움직이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조종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군사 로봇의 행위 역시 살인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전쟁터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로봇이 사람을 죽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윤리적 차이점이 존재할까. 설사 아군과 적군 모두 로봇 군사를 내보내 병사의 피해를 줄인다 한들 조종당하는 로봇끼리의 전쟁을 지금과 같은 전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윤리적 논란을 피하기란 어렵다. 더 나아가 원격 무인 조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군사 로봇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곧 군사 로봇에는 스스로 적을 판단하고 공격할 줄 아는 능력이 탑재될 것이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싸움터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로봇에게 판단 실수나 전시 규칙 위반 등의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다. 영화 ‘아이언맨’에는 이처럼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등장한다. 이 로봇은 그 어떤 인간보다도 똑똑하고 전투능력도 높지만, 때로는 통제 불능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이언맨의 로봇들을 킬러 로봇 또는 살상용 로봇이라 부른다. 인류는 이제 고민해야 한다. 킬러 로봇이 될지도 모르는 군사 로봇을 어디까지 ‘키울’ 것인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그리고 과연 전쟁과 살상을 위한 군사 로봇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huimin0217@seoul.co.kr
  • “히로시마 헌화, 원폭 사과는 아니다” 선그은 케리

    美정부 사죄로 비쳐질까 경계 핵 참상 상징 ‘원폭 돔’ 전격 방문 존 케리 국무장관은 11일 미국 현직 각료로는 처음으로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평화공원)을 방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했다.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회의에 참석 중인 케리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등 다른 참가국 장관들과 함께 71년 전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이날 찾았다. 핵보유국인 영국, 프랑스 외무장관도 동행했다. 이날 방문은 미국과 일본이 ‘신(新)밀월기’를 구축한 가운데 일본의 제의로 성사됐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 각인시킬 수 있다는 신중론 속에서 장관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케리 장관 등 G7 외상들은 피폭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공원 내 원폭 자료관을 참관한 뒤 위령비 앞에 나란히 서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이어 원폭 투하 및 패전의 상징물인 ‘원폭 돔’을 방문했다. 원폭 돔 방문은 당초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케리 장관의 제안으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원폭 돔은 당시 물산진열관 건물로 쓰이다 원폭으로 돔 부분 철골 골조와 외벽 일부만 남아 핵무기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케리 장관은 평화공원 방문에 앞서 기시다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과거를 다시 논의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예우하지만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 방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이 자리에서 “평화의 중요성과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강한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없앨 수 있기를 희망하는 순간”이라고 자신의 평화공원 방문이 갖는 의미를 소개했다. 케리 장관과 함께 일본을 방문 중인 한 미국 관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케리 장관이 (과거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히로시마에 온 것이냐고 여러분이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혹시 여러분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모든 미국인과 일본인이 슬퍼한다고 케리 장관이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내 대답은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케리 장관의 히로시마 방문이 미 정부의 사과로 확대해석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케리 장관의 방문으로 다음달 G7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 및 위령비 헌화 등도 힘을 받게 됐다.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해 온 오바마 대통령은 케리 장관의 이번 방문에 대한 미국 여론의 동향을 살펴본 뒤 방문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외무상은 평화공원 방문 전 “역사적인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방문 뒤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기운을 다시 고조시키기 위한 역사적 한 걸음”이라고 짧게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피폭 실정을 접하는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기운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의 이번 방문 행보가 아베 정권이 2차대전 패전 결과인 ‘평화헌법’의 개정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가해’를 희석시키고 ‘피해’를 부각시키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인도주의 외교, 우리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키운다/이용수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월요 정책마당] 인도주의 외교, 우리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키운다/이용수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난민 문제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시리아의 난민이 1000만명을 넘어서고, 세계 전체로는 6000만명을 넘었다.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세계인구 120명당 한 명이 난민인 셈이다. 난민 수용국의 상황도 심각하다. 인구 450만명의 레바논이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 중이며, 터키는 250만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지난해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유입된 유럽에서는 난민 문제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의견이 갈리고, 영국의 EU 탈퇴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제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 공동의 대응이 필요한 심각한 글로벌 현안이 되었다. 지구촌은 난민 외에 다양한 인도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에볼라와 지카바이러스 같은 감염병, 기후변화에 따른 크고 작은 자연재난은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유엔은 세계 인도적 상황이 2차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6000만명의 난민을 포함해 1억 2000만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며, 이들을 위한 유엔의 요청은 2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도적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국제사회도 대응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30 지속가능개발의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leave no one behind)’는 포용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임기 마지막 해 최우선 과제로 인도적 지원 강화를 제시하고, 5월 세계인도지원 정상회의, 9월 난민정상회의 개최를 제의했다. 지난 2월 초 영국 런던에서 반 총장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의 공동 주최로 시리아 공여국회의가 개최되었다. 역대 공여국회의에서 가장 많은 120억 달러가 서약되고, 우리 정부도 1200만 달러의 인도지원을 포함해 총 4500만 달러를 약속했다. 그러나 글로벌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국제사회의 대응, 특히 인도적 재원은 여전히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를 재건하고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룩한 자랑스러운 성과다. 국제사회의 인도지원과 개발원조가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돌려 주어야 할 때다. 또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인도주의의 대의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인도적 지원, 재난구호, 보건안보 등 다양한 인도주의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첫째 가장 대표적인 인도주의 외교 활동으로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을 들 수 있다. 특히 에볼라 발생 당시 다른 나라 인력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 총 35명의 한국 구호대가 시에라리온에 파견되자 국제사회는 찬사를 보냈다. 에볼라 구호대 파견은 감염병이라는 인도적 위기에 선도적으로 대응해 보건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해외긴급구호체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둘째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 국제사회의 난민문제 대응에 기여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공적개발원조(ODA)나 인도지원 규모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정부는 이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한 선택과 집중에 의한 원조 효과성 제고를 위해 가장 취약한 아동과 여성을 최우선 대상으로, 교육, 보건분야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작년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구상과 연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셋째 인도주의 관련 국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이사회 등 주요 국제기구 의장으로 활동 중이며, 5월 세계인도지원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도주의 외교 강화 의지를 천명할 예정이다. 정부는 앞으로 인도주의 외교를 더욱 강화해 우리 외교의 대표 브랜드화해 나갈 계획이다. 인도주의 외교는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중견국 실현이라는 국정과제 달성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지구촌 행복시대를 열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이라는 궁극적인 이상 구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아키히토 일왕 “일본인들, 전쟁때 필리핀인 희생 절대 잊지 않아”

    베그니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초청으로 일본 군주로선 처음으로 필리핀을 방문 중인 아키히토 일왕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필린핀인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닷새간 이어질 이번 방문은 일본과 필리핀의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으며, 일본과 필리핀의 외교적 밀월 관계를 상징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7일 NHK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저녁 마닐라에서 열린 아키노 대통령 주최의 환영 만찬에서 “지난해 우리는 2차대전이 끝난지 70주년을 맞이했다”며 이 같이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그는 “전쟁 중 필리핀에서 일·미 양국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필리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면서 “우리 일본인은 이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이번 방문에서도 이것을 깊이 마음에 두고 하루하루 여정을 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일왕 내외는 이날 ‘무명 전사의 묘’를 찾아 전쟁 당시 숨진 필리핀인들을 추모했다. 오는 29일에는 현지의 일본인 전몰자비를 찾을 예정이다. 2차대전때 전쟁에 휘말린 필리핀인 희생자는 10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왕의 방문으로 필리핀 국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죄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 등은 필리핀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방문에 맞춰 일본 정부에 보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 계획이지만 일본 정부를 의식한 필리핀 당국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시위에는 생존 필리핀인 위안부 중 최고령인 힐아리아 부스타멘테(90) 할머니도 참여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日 집권당 의원 “위안부는 매춘부” 망언

    일본 집권 자민당의 6선 사쿠라다 요시타카(66) 중의원 의원이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업 매춘부”라고 말한 뒤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한국과 일본 정부가 협상을 타결한 지 17일 만에 일본 집권당 중진 의원이 망발로 합의 정신을 훼손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 사쿠라다 의원은 이날 자신의 위안부 관련 발언에 대해 “오해를 부른 점이 있었다”며 철회한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사쿠라다 의원은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외교·경제 협력본부 합동회의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국내법상 직업적인 매춘부였다”며 “희생자인 양하는 선전 공작에 너무 현혹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교도통신이 전했다. 그는 또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부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일본과 한국에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회의에는 의원 10명이 출석했다. 사쿠라다 의원의 발언은 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 사실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이날 “일·한기본조약을 체결했을 때 한국의 국가 예산을 일본이 원조했다”며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왜곡해 설명한 뒤 “그런 것을 한국인이 모른다. 한국 정부가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일개 국회의원의 무지몽매한 망언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며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했고, 아베 (신조) 총리도 내각총리대신 명의로 피해자 분들에 대한 사죄·반성을 공개적·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日집권당 의원 “위안부는 매춘부”망언…韓日합의 훼손

    日집권당 의원 “위안부는 매춘부”망언…韓日합의 훼손

    군위안부 합의가 나온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일본 집권 자민당 국회의원이 “위안부는 직업 매춘부였다”는 망언을 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66) 중의원 의원(6선)은 14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외교·경제 협력본부 등의 합동회의에서 군위안부에 대해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며 “그것을 희생자인 양 하는 선전 공작에 너무 현혹당했다”고 말했다.  사쿠라다 의원은 “자주 위안부 문제가 나오는데, 일본에서 매춘방지법(1956년 제정)이 생긴 것은 쇼와(昭和) 30년대(1955~1964년)였다”며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국내법상 합법적인 매춘부였다고 주장했다.   사쿠라다는 또 “(군위안부가) 매춘부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일본과 한국에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일한기본조약을 체결했을 때 한국의 국가예산을 일본이 원조했다”며 한일청구권협정을 왜곡해 설명한 뒤 “그런 것을 한국인이 모른다”며 “한국 정부가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동에는 의원 약 10명이 출석했다. 사쿠라다는 난징(南京)대학살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해 유네스코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분담금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 뒤 위안부 관련 망언을 했다. 이런 망언은 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 사실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작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간 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지난달 28일 한일간 합의를 발표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한일간에 군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한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쿠라다의 발언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자 “한명 한명 의원의 발언에 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작년 일한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한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중의원 의원은 사쿠라다의 발언을 “믿을 수 없다”며 “일한간에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다 의원은 문부과학성 부(副)대신(차관급) 시절인 2014년 3월 3일 위안부 제도에 일본 군과 정부가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의 수정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시아 무인 전투차량 공개…2017년 실전 투입

    러시아 무인 전투차량 공개…2017년 실전 투입

    21세기 현대전에서 무인기계(UAV)는 이미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최근 발전하는 IT 기술은 미래전에서 무인 선박이나 무인 전투차량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군사 선진국들은 이미 다양한 종류의 무인 군용차량이 개발 중인데, 이 분야에서는 다소 후발주자인 러시아가 무인 로봇 전투차량을 수년 내로 배치하겠다고 선언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러시아가 무인 전투 차량을 개발한 역사는 2차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소련은 텔레탱크라는 원격 조종 탱크를 개발해 실전에 투입했으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원격조종이 어려워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전투 중 원격 신호가 끊어져 독일군에게 투항(?)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뒤에 따라오던 소련군 전차가 공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 무기는 금방 사라져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세월이 흘러 러시아는 BMP-3 보병 전투차량을 무인화한 무인 전투차량을 선보인 이후 우란(Uran) 시리즈 무인 차량을 개발해 이제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우란 - 9 (Uran - 9) 무인 전투차량은 러시아의 로스보로네스포트(Rosoboronexport)사가 개발한 것으로 30mm 2A72 기관포와 7.62mm 동축 기관총, 그리고 Ataka ATGM 미사일 등으로 무장해 테스트 중이다. 이 무인 전투차량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무인 주행 기술 대신 원격 조종 방식으로 조작한다. 따라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신호가 끊어지면 전투 불능이 되거나 해킹되면 적에게 포획될 우려가 있으나 러시아군이 주로 투입할 목적인 대테러전이나 소규모 국지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막강한 전자전 능력이 있는 적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이 로봇 장갑차가 비정규전을 벌이는 테러리스트나 게릴라전에서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사람이 타지 않기 때문에 크기를 크게 줄여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소형 대전차 무기로 명중시키기도 쉽지 않고 급조 폭발물로 공격해서 파괴해도 인명 손상이 없다. 물론 안전한 차량에서 원격 조종하면 병사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작전에 임할 수 있다. 크기를 줄여서 은폐가 쉬운 점도 시가전과 게릴라전에서 유리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지원 전투차량을 무인화한 점이다. 우란 - 6 지뢰제거 차량은 개념적으로 가장 그럴듯한데, 위험한 지뢰제거 임무에 무인 차량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전차 지뢰에 차량이 파손돼도 인명 손상이 없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사실 미국 역시 같은 형태의 원격 조종 지뢰제거 차량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 더해 이 회사는 화재 진압, 장애물 제거 무인 차량도 개발했는데, 이 역시 폭발성, 인화성이 있거나 독성이 있는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러시아군은 2016년에 이 로봇 장갑차를 테스트하고 빠르면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실전배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연 실전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러시아 무인 전투차량 공개…2017년 실전 투입

    러시아 무인 전투차량 공개…2017년 실전 투입

    21세기 현대전에서 무인기계(UAV)는 이미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최근 발전하는 IT 기술은 미래전에서 무인 선박이나 무인 전투차량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군사 선진국들은 이미 다양한 종류의 무인 군용차량이 개발 중인데, 이 분야에서는 다소 후발주자인 러시아가 무인 로봇 전투차량을 수년 내로 배치하겠다고 선언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러시아가 무인 전투 차량을 개발한 역사는 2차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소련은 텔레탱크라는 원격 조종 탱크를 개발해 실전에 투입했으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원격조종이 어려워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전투 중 원격 신호가 끊어져 독일군에게 투항(?)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뒤에 따라오던 소련군 전차가 공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 무기는 금방 사라져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세월이 흘러 러시아는 BMP-3 보병 전투차량을 무인화한 무인 전투차량을 선보인 이후 우란(Uran) 시리즈 무인 차량을 개발해 이제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우란 - 9 (Uran - 9) 무인 전투차량은 러시아의 로스보로네스포트(Rosoboronexport)사가 개발한 것으로 30mm 2A72 기관포와 7.62mm 동축 기관총, 그리고 Ataka ATGM 미사일 등으로 무장해 테스트 중이다. 이 무인 전투차량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무인 주행 기술 대신 원격 조종 방식으로 조작한다. 따라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신호가 끊어지면 전투 불능이 되거나 해킹되면 적에게 포획될 우려가 있으나 러시아군이 주로 투입할 목적인 대테러전이나 소규모 국지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막강한 전자전 능력이 있는 적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이 로봇 장갑차가 비정규전을 벌이는 테러리스트나 게릴라전에서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사람이 타지 않기 때문에 크기를 크게 줄여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소형 대전차 무기로 명중시키기도 쉽지 않고 급조 폭발물로 공격해서 파괴해도 인명 손상이 없다. 물론 안전한 차량에서 원격 조종하면 병사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작전에 임할 수 있다. 크기를 줄여서 은폐가 쉬운 점도 시가전과 게릴라전에서 유리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지원 전투차량을 무인화한 점이다. 우란 - 6 지뢰제거 차량은 개념적으로 가장 그럴듯한데, 위험한 지뢰제거 임무에 무인 차량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전차 지뢰에 차량이 파손돼도 인명 손상이 없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사실 미국 역시 같은 형태의 원격 조종 지뢰제거 차량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 더해 이 회사는 화재 진압, 장애물 제거 무인 차량도 개발했는데, 이 역시 폭발성, 인화성이 있거나 독성이 있는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러시아군은 2016년에 이 로봇 장갑차를 테스트하고 빠르면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실전배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연 실전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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