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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의 안보리상임국 진출」 어떻게 보는가(오늘의 쟁점)

    ◎찬성/신희석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부장/경제력 걸맞는 국제공헌 마땅/회원국 압도적인 지지… 반대는 무의미/한일관계 긍정적 발전 계기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을 긍정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공로명 신임 주일대사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사견임을 전제,『국제사회는 일본에게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공헌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대일관이 필요하다』고 역설,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며 우리나라도 결국 이같은 추세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대세론」을 제시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과거사 청산의지가 미약하고 또 「인근 긍핍화정책」을 수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이 과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이 문제에 관한 찬반 양쪽의 시각을 게재한다. 최근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일본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역할 수행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달리 일본이 처해있는 국내외 여건을 감안하건대 시기상조라고 하는 시각도 있는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일본이 그들의 경제력에 맞는 국제공헌을 하는 것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일본은 전세계 GNP의 약14%를 점유하고 있는 초강대국으로서 지난 56년 유엔에 가입한 이래 7차례에 걸쳐서 안보리이사국으로 선출된 바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일본은 경제대국이요,군사대국이요,나아가서는 핵강대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강대국 미국은 구소련보다는 오히려 일본을 가장 두려운 경쟁국으로 간주하고 있으며,러시아와 중국은 오히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일본의 발언권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둘째,현재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물론 유엔가맹국의 대부분이 일본의 상임이사국진출에 긍정적이기 때문에 일본의 진출은기정사실이라고 하는 인식이 현실적이겠다고 하겠다.예컨대 일본은 지난 91년의 경우 1백61개의 회원국중 무려 1백58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이미 대세가 판명된 상황속에서 한국이 이를 저지한다거나 반대해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셋째,향후의 한일관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일본의 외교목적에 협조함으로써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있어 전략적인 효율성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동안 한일양국 정부당국자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언론보도는 오히려 오늘날의 한일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강인섭 국회의원·민자·전국구/「일제침략사」 청산 의지 희박/「진정한 이웃」의 자세부터 가다듬어야/세계평화 기여의지에 의구심 한마디로 일본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제2차대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되어가는데도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한다면 언제쯤이라야 되느냐고 반문할른지도 모른다. 일본은 지금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경제대국의 하나다.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아래 진행되고 있는 핵개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언제든지 군사대국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런 일본이 국제적으로 발언권을 갖는 유엔안보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엔이 어떤 국제기구인가를 곰곰 되새겨 본다면 일본은 아직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과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두말할 것도 없이 유엔은 세계평화에 기여하면서 인류의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범세계적인 기구이다.따라서 유엔안보이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자국의 국가리익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든지 역내의 세력균형과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평화구조의 정착과 인류의 공동번영에 손상을 입힐 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일찍이 일본의 침략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지금도 경제침략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반세기 전에 있었던 침략에 대해 깊은 참회나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것같다.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 교과서 왜곡파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전적으로 책임져야할 사할린동포의 송환문제,원폭피해자 보상,정신대문제에 대한 대응태도를 보면 일본이 아직도 반성을 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같은 일본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일제침략의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가들이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그리고 미래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벗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부도 일본이 유엔안보이 상임이사국이 되어 한반도의 재통일문제등 민족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고려호/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32)

    ◎한국해온의 개척선… 일 군수품 수송/1952년 우리해운사상 첫 태평양횡단 국가경제 발전의 요체는 유통체제의 확보에 있다.육상에서의 고속도로 개통이 한국 경제를 부흥시켰다면 해상에서의 해운로 확장도 한국 경제 활성화의 큰 몫을 담당했다고 생각된다.태평양 횡단의 해운로를 개척한 것은 고려호였다. 고려호(7천t급 화물선)는 원래 일본인 소유의 화포호로서 2차대전시 일본의 군수물자를 조선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맞고 있었다.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초,부산 용당앞 해상에서 미군 기뢰에 의해 침몰되어 암초위에 버려져 있었다.해방된 이후 고려호는 적산선박으로 분류되어 사람들의 접근이 금지된 채 방치상태에 있었다가 남궁 연씨(현재 80세·서울 거주)가 공매과정을 통해 15만원에 인수했다. 남궁 연씨는 고려호를 모체로한 극동해운회사를 설리하고 미국과 한국을 왕래하는 선로개설을 결심하였다.그것은 항로를 개설함으로써 국제무역을 발전시키자는 의도였다.미국취항계획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고민이 발생하였다.그것은 당시 민간인으로서 7천t에 달하는 대형선박을 운항할 전문항해사와 기관사가 없었기 때문이다.국제무역이 국가발전의 요체이며 그 기초가 대양항로의 개설임을 알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은 대형함운항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 해군에 협조 명령을 내렸다.대통령의 명령을 받게된 해군은 운할 요원의 인선에 착수하여 초대 선장엔 당시 해군준장인 박옥규씨(2대 해군참모총자어를,기관장엔 권태춘 대령을 발탁하고 사관급 선원도 모두 해군장병으로 구성하였다.약두달간의 숙달훈련을 마친 고려호 선원들은 1952년10월21일 관부연락선 대합실 앞에 있는 부산항 1부두에서 처녀취항식을 가졌다.
  • 독,유고군사작전 참가/독연방 헌재,조기경보기 탑승허용

    ◎2차대전후 첫 역외파병 결정/“유엔의 신유고연방 제재결의 반대”/러시아 【베를린 연합】 구유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상공에 대한 유엔의 비행금지조치를 강행키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내주부터 전개할 군사작전에 독일군의 참여가 확정됐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8일밤 독일 연립정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FDP)과 제1야당인 사민당(SPD)이 각각 정부를 상대로 제출한 위헌심사소청을 이틀간에걸쳐 심의한 끝에 독일군이 나토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AWACS 정찰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연합(CDU­CSU)과 자민당으로 구성된 독일정부는 지난 2일 국무회의 표결을 통해 독일군의 AWACS기 작전참여를 결정했는데 자민당과 사민당은 독일헌법에 따라 군의 배치는 나토 영역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헌법재판소에 정부조치를 잠정 금지시키도록 제소했었다. 헌법재판소는 자민당과 사민당의 소청을 기각한 이유에 대해 독일군이 불참할 경우 AWACS작전의 성공적 수행이 위협되며 이는 독일에심각한 외교적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유고내전 종식을 위한 유엔평화중재안을 거부하고 있는 보스니아공화국내 세르비아계에 압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유엔이 마련한 새로운 유고제재결의안 초안에 반대한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9일 밝혔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하기 앞서 이날 유고내전 지도자들과 회담을 한 비탈리 추르킨 외무차관은 세르비아계가 벤스·오웬 평화안을 수용하도록하기 위해 마련된 유엔의 대 신유고연방 제재계획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오히려 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세르게이 야스트르젬브스키 외무부대변인이 전했다. 그는 또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성급한 조치나 역효과를 낼수있는 결정들은 오히려 분쟁을 악화시킬 뿐이며 반드시 회피돼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프/전장이 낳은 전천후차(자동차백과)

    ◎2차대전때 미 포드사 제품명서 유래/도시감각의 유선형 신모델 출하경쟁 튼튼한 차체와 강한 힘이 장점인 지프가 최근 레저인구가 늘면서 판매량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89년만 해도 겨우 1만5천대정도가 팔린 지프는 91년 2만7천여대,92년 4만5천7백대로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올해는 7만5천여대가 공급될 전망이다. 세련된 외관을 중시하는 일반 승용차와 달리 「지프」는 거친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모양새가 특징이다.이는 지프가 본래 군용으로 개발된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외관보다 실속만을 강조한 지프의 경우 산길이나 농토등 포장 도로가 없는 「전장」을 누비고 다니기 편하도록 설계된 점이 특성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미국방부는 「밴텀」,「오버랜드」,「포드」등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에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는 특수목적의 군용차량을 주문했다.각 사가 만들어낸 시제품을 갖고 전장과 유사한 모의 훈련장에서 혹독한 테스트를 마친 미국방부는 최종적으로 「포드」의 제품을 선택했다.성냥갑 생김의 볼품없는 듯한 우스운모양의 포드 제품의 본래 명칭은 「지피」였으나 당시 유행하던 뽀빠이 만화속의 작은 동물의 이름을 딴 「지프」로 세상에 알려졌다. 「2차대전의 영웅」「전장의 발바리」로 불리며 군인들 뿐아닌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게된 「지프」는 한때 압도적인 인기를 누려 동일차종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으나 이제는 과거의 차가 되버렸다.험한 길을 거침없이 주파하는 성능의 개선을 빼면 20년전과 똑같은 모습의 「지프」는 새로운 유선형 지프차들에 밀려 1위자리를 내놓은지 오래다. 국내 지프시장은 쌍용자동차의 「코란도」가 지난 88년까지 거의 독점하다시피했으나 아시아의 「록스타」,현대의 「갤로퍼」가 뛰어들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고있다.여기에 올 하반기쯤에는 기아자동차의 승용차형 지프 「스포티지」,쌍용자동차의 「미래형FJ지프」등 신모델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라 지프시장을 겨냥한 국내자동차회사들의 한판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새로 시판될 「미래형 지프」들은 스포츠카 못지않게 유선형의 날씬한 모양새를 자랑한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프 제조회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선형의 미래형지프들을 선보이고 있어 국산 지프들의 스타일링 변화 역시 가속화될 전망이다.
  • 엔화 또 최고치 경신/일 중앙은,방매조치

    【도쿄 연합】 일본 엔화가 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또 다시 최고시세를 보였다. 이날 도쿄시장에서 엔화는 전날 폐장치보다 달러당 0.54엔이 높은 114엔에 거래를 끝내 2일 연속 2차대전후 최고치를 갱신했다. 일본은행은 엔화가 한때 1달러당 113.50엔으로 치솟자 4년4개월만에 처음으로엔화의 방매에 들어갔다.
  • 워싱턴 사교계여왕,외교관 변신

    ◎73세 “여걸” 해리먼여사,주불대사로 부임/민주당 정치자금 모금에 큰 공헌/“권력·돈에 굶주린 여자”로 비난도 워싱턴정가의 「제1귀부인」「사교계의 여왕」「막후의 여걸」로 명성을 날려온 파멜라 해리먼여사(73)가 23일 클린턴 미국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화제가 되고있다. 그녀의 정치적 실력은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뒤 처음으로 워싱턴에 왔을때 조지타운에 있는 그녀의 저택에서 첫 파티를 가졌던데서 잘 나타나고있다.반 고흐와 피카소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걸린 그녀의 저택에서 클린턴의 대통령당선축하파티가 열렸고 당시 언론들은 이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이 새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칠수있는 인사들이 될것이라며 참석자취재에 열을 올렸었다. 파멜라는 영국에서 딕비경의 딸로 태어났으며 윈스턴 처칠영국수상의 아들인 랜돌프 처칠과 결혼했다.2차대전후 랜돌프와 이혼한 파멜라는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리랜드 헤이워드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71년 헤이워드가 죽자 당시 소련대사였던 애브렐 해리먼과 다시 결혼하면서 워싱턴정가의 사교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새 남편 해리먼은 그후 뉴욕주지사로 민주당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파멜라여사는 남편못지 않게 민주당의 재건과 정치적 단합에 헌신했다.그녀는 남편이 남긴 조지타운의 우아한 저택을 민주당의 정치적 결속의 무대로 제공했다. 그녀가 이끌고있는 정치모금기구인 「팸팩」은 80∼90년사이 1천2백만달러를 모금했고 이 자금을 민주당의 이미지고양작업에 투입했다.클린턴은 자신이 팸팩에 봉사했던 지난 81년이래로 파멜라와 알고지냈는데 그녀는 클린턴­고어선거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으로도 이름을 걸어놓는 등 민주당의 「막후정치의 대모」로서 아낌없는 지원활동을 벌였다. 파멜라를 두고 한 작가는 『고양이 눈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한 여인』이라고 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고있다.그녀에 관한 책은 2권 출간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녀를 「권력과 돈에 굶주린 여자」로 묘사되어있다.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평론)

    ◎북의 NPT 탈퇴와 핵기술개발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 안보체제를 위협하여 세계평화를 갈구하는 인류 전체의 간절한 소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그동안 북한의 핵개발사업이 핵무기개발사업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갖고 있던 국제여론사회는 이제 이구동성으로 북한당국의 처사를 비난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사업을 핵무기제조를 위한 일련의 작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중차대한 안보외교문제일뿐 아니라 북한 정권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실추시키는 결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데에는 국제정치적,내부통치적,기술적,경제적,국가방위적 고려사항들이 개재되어 있다.당초에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2차대전중이었으므로 당연히 국가방위및 전쟁승리를 위한 것이었다.최초의 핵분열실험이 독일에서 이루어지는등 핵물리에 앞서있던 독일을 의식하였기에 미국은 우수과학기술자들을 총동원하다시피하여 맨해턴사업(핵개발사업)을 급속히 추진하였던 것이다.여기에 직접 참여한 오펜하이머 시볼그 베네딕트 페르미 등은 당대의 석학들이고 사업추진책임자인 그로브 장군은 월등한 공병장성이었다.2차대전은 원자탄의 위력에 일본이 즉시 굴복함으로써 종결되고 미국은 절대적인 군사우위를 확신하여 재래식 무기를 대량 감축하였고 국방비도 대폭 삭감했었다.그러나 2차대전 종료후 4년만에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동서핵무기개발 경쟁을 유발시켰고 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한 냉전체제가 조성되었다.영국(52년),프랑스(60년),중국(64년)은 독자적인 핵무기개발로 세계는 5대강국의 핵공유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들은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정치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였다. 핵비확산조약은 이들 5개 핵보유국들이 국제안보체제의 유지와 자국의 헤게모니보장을 위하여 발의하였고 이에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인식한 전세계의 호응을 얻어 성안되었다.1970년에 발효된 핵비확산조약은 자국의 지정학적 여건때문에 가입을 안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등을 제외하고 1백53개국이 가입함으로써 범세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물론 NPT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고 민주대국이면서도 후진성을 탈피못한 인도는 통치면에서의 핸디캡을 항상 지니고 있었고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국가방위를 명분으로 핵개발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인도가 핵을 개발했으나 그 반대급부는 너무나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국제정치에서 중립평화국가로서의 발언권을 대부분 상실하게 되었으며 국제적인 기술과 경제제재로 말미암아 국가발전에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인도는 핵국가로서 대우도 못받고 받으려는 노력도 할수 없어서 결국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핵은 개발하였지만 국자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경우가 되었다. 국제적인 위상과 경제적인 이해득실을 고려하여 핵기술을 수출하는 선진국이면서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는 나라들이 허다하다.캐나다는 CANDU기술을 자체개발하고 국내외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으나 핵무기개발은 자제하고 있다.독일 역시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및 경제이익때문에 핵무기개발을 자제하고 기존 핵보유국의 핵우산을 활용하고 있다.스웨덴,벨기에,스위스등은 자력으로 얼마든지 핵무기를 개발할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가이익을 장기적으로 고려하여 핵무기개발을 안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핵비확산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일본도 핵에 대한 자제를 해왔으나 최근 해외에서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반입함으로써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인근 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일본도 거시적인 면에서 핵무기경제를 따져본다면 핵개발을 자제하리라고 보지만 동북아의 핵균형이 깨질 경우 일본의 핵정책이 전환될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커다란 위협요인이 아닐수 없다. 살펴본바와 같이 핵비확산은 협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국가의 이해관계로 유지되는 것이다.절박한 내부통치차원에서 핵개발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단기간의 수단은 될지언정 장기적인 국가발전이나 정권유지에는 오히려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때문에 북한이 NPT로 다시 복귀하는 것도 배제할 수는 없다.또한 북한 핵정책에의 대응은 단편적인 단순대응이나 핵강대국의 정책에 맹종하는 것보다는 우리자체의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대응할 수 있는 신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지나친 두려움이 해결책이 아니듯이 안보측면을 무시한 경솔한 대응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국가이익을 최고로 하는 전문가들의 탁견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 호지명과 김일성/안필준 전 보사부장관(굄돌)

    베트남참전 20년만에 필자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솔직히 말해 하노이에는 관광거리가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있다면 베트남사람들이 자랑하는 호지명성전과 전쟁기념관정도다. 전쟁기념관은 중학교 건물하나를 고쳐 만든 것으로 호지명의 일생과 전쟁지도에 관한 이야기,충성스러운 호지명군대의 이야기(디엔비엠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던 이야기),호지명의 작전지시에 의해 그가 죽은 후 사이공을 탈환했던 이야기들이 음악과 더불어 절정을 이루는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호지명성전은 호지명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뉘어놓고 모든 국민들이 참배하도록 해놓은 곳과 호지명이 2차대전이후 30년간 집무했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같은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건축물은 2층 목조였는데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수 있게 한장의 유리로 막혀 있을 뿐,1층에는 칸막이도 없는 30평 남짓한 한개의 방만 있었다.그방엔 긴 책상과 의자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는데 이 방이 바로 국무회의실을 겸한 통치자의 집무실이었다.방 입구에는 비서실장이 사용했다는 조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1개씩 놓여 있었다.2층방으로 올라가려면 바깥으로 나와 나무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침실과 서재가 있을 뿐이었다. 필자가 호지명의 가족관계를 묻자 그곳의 안내원은 『그분은 월남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을 뿐,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사신 분』이라고 대꾸하였다.필자가 또 호지명의 별장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성인을 욕되게 하는 외람된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고,동상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자 『많은 다리와 건물이 있지만 어느 한곳에도 그분의 서명이 없으며 동상을 세우는 것은 오히려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호지명이 유언으로 『시신을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하노이,하나는 나의 고향,하나는 사이공에 각각 묻어달라』고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이곳 하노이에 묻었노라고 했다.그러면서 안내원은 왜 그분이 공산주의를 민족의 이념으로 택했는지 그것이 의문일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안내원의 얘기를 듣고 자주로선이라는 점만가지고툭하면 김일성과 호지명이 동격화되었던 생각이 떠올라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 건전사회는 건전문화에서 가능/이중한(정경문화포럼)

    ◎신한국은 국민문화감수성 증진 힘써야/학교 등 예술기관 총체적교육 활용 필요 스웨덴의 음악단체·극단·전시단체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의 활동을 일정량 책임지도록 되어 있다.예컨대 음악단체의 경우 학생들이 12년동안 36회의 연주회를 들을수 있도록 각 학교구역에서 매년 3번 이상의 연주회를 가져야 한다.전시회의 40%,극단공연의 25%도 매년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프랑스에서 만들고 있는 실험적박물관인 「어린이전용박물관」은 그 첫번째 것이 1968년 마르세유에서 개관되었다.그림·조각품들이 아니라 그림·조각품을 만드는 도구들,특히 예술가들이 직접 쓰던 도구들을 바닥에 늘어 놓고 모형만들기·그림그리기에서 영화만들기까지 어린이들이 직접 해볼수 있는 장소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미국에서는 「교육적인 공원」이라는 실험을 하고 있다.학교의 교육자재와 각급 예술센터들의 예술용품들을 공원에 내다놓고 3살부터 성인까지 함께 무엇이든 해볼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조직한다.나이와 관계없이,오히려 모든 연령층이 함께 섞여 무엇인가 새 상상력의 추구를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하기를 돕는 것이다. 영국애슈비에 있는 아이반호 중학교는 낮에는 학교로,저녁에는 아예 주민들의 문화센터로 완전히 이중 운영을 하도록 이원체계를 만든 최초의 학교이다.따라서 이 학교에는 관리위원회도 두개로 분리돼 있다.하나는 학교경영위원회고 또 하나는 문화활동위원회다.그 성과는 물론 눈부시다.낮에 학생은 9백명인데 저녁 참여 주민수는 언제나 1천명이상이다. 뉘른베르크에 있는 독일국립박물관은 새로운 교육의 형태라는 기치아래 15세기의 의상들을 학생들이 입어보며 이 복장으로 당시의 춤까지 추게하는 특별 축제를 만들어 보았었다.다수에게 이렇게 할수는 없었으나,이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는 일생 잊을수 없는 역사의 경험을 그들의 자랑스런 감수성으로 가질수 있게 했다. 캐나다는 지역박물관 단위에 어린이들에 의해 공연되는 「어린이 극장」을 가지고 있다.연극교육담당자들은 학교에서 책임을 지고 공급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문화발전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문화란 그동안 마치 예술의 어떤 장르들이 그들 영역에서 보다 높은 수준으로 진전되기만 하면 발전되는 것이라고 보았었다.그러나 이제는 「각 개인과 모든 사회집단에 있어 발전의 근본적인 속성을 이루는 것이 문화」이며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있어 문화적인 면이 강조되어 개개인이 평균적으로 창조적 기량을 갖게 되어야」비로소 문화발전이라고 말할수 있다는 관점에 도달해 있다. 2차대전후 경제·과학·공업기술의 발전속도는 한때 이것만으로도 희망일수 있었다.그러나 이 희망은 바른 것이 아님이 확인됐다.물질적 성장은 비례적으로나마 생활조건을 꼭 향상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심화되는 불균형,환경에 대한 파멸 위협,깊어가는 불평등,생활양식의 획일화,문화적 주체성의 타락과 해체들을 가져왔다.이같은 현실은 복지와 진보와 행복이 미리 제정된 계획이나 표준양식에 일치하여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라는,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어떤 발전계획도 개개인이 그가 사는지역에서의 자연적·문화적 환경과,그 전통에서 이어지는 욕구·열망·가치들의 본질적 특성속에 기초하지 않는한 결코 성공적 진전을 이룰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적 문화교육이 출발된다.무엇보다 중요시되는 것은 국민 모두의 평균적인 문화감수성의 질적증진과 이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심미적 특성을 형성해 내자는 것이다.이 목표의 구체적 접근방법들이 바로 앞에 예시한 프로그램들이다. 우리에게서 문화는 아직 50년대 이전의 소박한 예술취향영역에 있다.문화교육의 주된 거점인 학교는 문화감수성교육을 배제해 가는데 더 강력하게 행동하고 있고,문화공간들은 실제 프로그램 없이 건물만 짓거나 또는 방치해두고 있다.도서관도 박물관도 마치 사체와 같고,심지어는 사체밖에 안되니 아예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라고까지 생각한다.「예술의 전당」에 대한 보편적 느낌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건전한 사회」가 신한국의 주요지표로 설명되고 있다.「건전한 사회」야말로 「건전한 국민」의 「건전한정신지향」에 의해서만 가능하고,이것은 또 바로 「건전한 문화의 감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이나마 깨닫는게 좋을 것이다.
  • 미,“전면압박 통상정책 구사”

    ◎국무부·CIA 등 대외업무기관 역할 재조정/“경제회복이 맹방안보보다 우선”/무역장벽 허물기 입체작전 선언 미국의 클린턴행정부는 냉전종식이후 대외정책목표를 「경제전쟁에서의 승리」로 설정한 것 같다.정부 대외문제관련부서의 역할과 기능을 모두 이같은 목표의 달성을 위해 재조정하고 기구의 개편도 서두르는 인상이 짙다. 대외정책의 중요한 수행기관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그리고 무역대표부의 수뇌들은 이같은 목표를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회증언을 통해 거의 같은 방향으로 나갈 것임을 함께 밝히고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하원세출위원회에서 94년도 국무부예산과 외교정책방향을 설명하면서 『국무부를 미국의 국내외기업가들을 위한 부서(아메리칸 데스크)로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크리스토퍼장관이 앞으로 추구할 외교정책의 중요한 축은 『전세계적으로 미국상품및 서비스에 대한 장벽을 끌어내리기 위해 가동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국무부는 새로운 역할강화와 관련,상무부 수출입은행 국제개발처(AID)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수출전략을 조정하고 예산배정도 국제적으로 미국기업들을 지원하는 업무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제임스 울시 CIA국장도 이에 앞서 9일 하원정보위원회에서 미국의 정보기관은 변천하는 국제환경에 부응,대외경제정보의 수집과 이를 국가이익에 연결시키는 기능을 강화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울시국장은 냉전종식에 따라 CIA의 기능과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면서 『미국정보기관은 외국의 불공정 무역행태의 탐지나 외국기업및 정부의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의 적발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데 기여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주요기업의 외국지사나 외국을 방문하는 기업중역들이 외국정보기관의 산업첩보 대상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있다』고 말해 외국의 정보수집활동도 예의 주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미키 캔터 무역대표부(USTR)대표 또한 이날 상원재무위에서 『과거 미국행정부가 외교정책이나 안보적 고려때문에 미국의 경제및 통상이익을 희생당해왔으나 이제 더이상 이같은 노선을 지속할 수없다』고 천명했다.캔터대표가 제시한 대외무역노선은 결국 탈냉전시대에 있어서 「맹방」의 안보문제가 통상정책의 수행에 있어 별다른 고려사항이 될수 없다는 뜻이다.맹방이나 우방의 안보보다는 통상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클린턴행정부의 「통상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무장관,CIA국장,USTR대표가 연쇄적으로 밝힌 클린턴행정부 대외정책방향의 기본인식은 『탈냉전시대에 있어 국가안보는 경제력에 의존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다.2차대전후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한 미국은 모든 국가이익을 국가안전보장의 문맥에서 평가하고 대처해 왔다.또 50년대에는 미국의 수출입이 국민총생산의 8%에 불과했으므로 일본등 동맹국들의 자국산업보호,미국시장접근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맹국들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자국산업의 보호주의에 따라 미국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80년대에 와서는 미국행정부의 고식적인 냉전적 사고로 미국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져 87년에는 상품무역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고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 해주기 위해서는 탈냉전시대에 부응하는 「올 코트 프레싱」통상작전을 구사해야 된다는 것이 클린턴행정부의 기본인식인 것이다. 국무부가 무역상대국의 시장개방을 위해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CIA가 해외첩보활동 수행과정에서 획득한 상업상의 비밀을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미국업체들과 공유하며 여기에 USTR가 슈퍼301조라는 무역보복의 칼을 휘두르면 미국은 「경제전쟁」에서 필경 승리할수 있을 것이다.클린턴행정부의 눈에는 과거의 군사적,정치적 동맹의 개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통상상대국으로서 미국의 국익과 어떻게 연관지어져 있는지가 더 중요할 뿐이다.공산주의의 붕괴로 세계가 변한 것은 거의가 알지만 미국이 이때문에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것은 아닐까.
  • 독 전함 비스마르크호/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31)

    ◎속력 30노트 배수량 42,000여t 초대형/영 집중감시·공격… 첫 출항서 침몰 당해 2차대전시 독일이 세계최강의 전함이라고 자랑하였던 비스마르크호는 이름과는 달리 처녀 출항을 하면서 침몰당하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였다.4만2천여t의 배수량,30노트이상의 속력,15인치 주포 8문과 5.9인치 부포 12문,최고의 사격통제장치와 장갑을 보유한 이 전함은 분명히 공격과 방어면에서 비교할만한 함정이 없는 초대형 전함이었는데,19 40년에 진수되어 19 41년에 취역하였다. 비스마르크호는 대서양에서 영국의 통상을 방해하기 위하여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호와 함께 출항하였다.출항소식에 접한 영국은 발칵 뒤집혔고 마침내 노르웨이의 베르겐 근해에서 이 함정들을 항공 촬영하는데 성공하였다.영국 함대의 사령관 토베이제독은 노르웨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모든 통로를 봉쇄하였다.독일의 뤼첸제독은 비스마르크호를 덴마크 해협으로 항해하게 하였으며,그곳에서 영국의 순양함 노포크호와 서포크호는 안개속에서 레이더를 이용하여 비스마르크호를 미행하였다. 5월24일 새벽에 영국의 홀랜드제독은 신형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와 순양함 후드를 이끌고 악천후 속에서 비스마르크호와 첫접전을 하였는데,전투시작 5분만에 후드호는 탄약고에 명중되어 침몰하였으며 승조원 1천4백18명도 함정과 함께 수장당하였다.또한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는 사격통제장치가 파괴당하여 전투를 중지하고 연막 속으로 숨었다. 첫 접전중 영국 해군은 사용가능한 모든 함정을 동원하여 비스마르크호를 추적하였다.이에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뤼첸제독은 프린츠 오이겐호로 하여금 브레스트항으로 향하게 한후 비스마르크호를 유 보트의 작전 해역으로 향하게 하였다.영국 함정들은 유 보트의 위협때문에 지그재그로 추적하다가 그만 비스마르크호를 놓쳐 버리자 출현가능해역을 광범위하게 탐색하였다. 26일 항공모함 아크 로열호에는 비스마르크호의 발견보고를 정찰기로부터 받자마자 즉각 뇌격기들이 이륙하였다.이 뇌격기들의 공격을 받은 비스마르크호는 타와 스크루에 손상을 입어 속력이 8∼10노트로 감소되었으며,그후 구축함 5척으로부터 어뢰 8발을 명중당하였다. 27일이 되자 뒤늦게 도착한 영국 대형함정들은 집중사격과 어뢰공격을 통하여 10시40분에 비스마르크호를 침몰시키는데 성공하였다.승조원 2천4백명중 1백10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모두 선체와 함께 수장되었는데 그중에는 뤼첸제독은 물론 항해실습중이던 해군 사관생도 4백명도 포함되었다. 또한 항공모함이나 보조 전투함을 동반하지 않는 거함은 무용지물이라는 교훈을 주기도 하였다.
  • 일 징용한인 1천명 명부 발견

    【도쿄 연합】 2차대전말 일제에 의해 강제 연행된 후 일본 군수공장에 투입,혹사당했던 한국인 1천2백여명분의 명부가 새로이 밝혀졌다. 일교도(공동)통신은 8일 태평양전쟁 말기에 아이치(애지)현 한다(반전)시 중도비행기 제작소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 1천2백50명분의 건강보험조합 피보험자 명부가 「아이치현강제연행진상조사단」(조총련계)에 의해 확인됐다고 전하고 일본의 강제연행 문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명부는 중도비행기제작소 자리를 양도받았던 한다시의 기계제조회사가 보관하고 있던 것인데 20대의 함경도 출신 남자가 가장 많았다. 이들이 보험 자격을 취득한 날은 1944년 12월18일로 해군 정찰기의 제조에 투입되어 있었다. 2차대전때 군수공장이 많았던 아이치현과 인접 기후현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은 수만명에 이른다고 교도통신은 설명했다.
  • 유고전범재판소 설치 결의/안보리,2차대전이후 처음

    ◎인종청소·강간책임자 심리/유엔사무국,실무단 구성 착수 【유엔본부=임춘웅특파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2일 구유고연방 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학살및 강간등의 범죄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심리할 전범재판소를 설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지난 1945년 제2차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후 독일 뉘른베르크와 일본의 도쿄에서 각각 나치 지도자들과 일본의 군부 지도자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있은 이후 전범재판소가 설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범재판소는 구유고연방의 「인종청소」,강제수용소,조직적인 강간행위및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심리대상으로 하게 된다. 안보리는 이날 통과시킨 유고전범재판소 설치 결의를 통해 구유고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인종청소,회교도 여성에 대한 성폭행 등의 사태가 『국제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고 『91년이후 구유고 영토에서 모든 국제인권 법률을 크게 어긴 책임자들을 심리하기 위한 국제재판소를 설치하기로 안보리는 결정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가 발의한 이 결의안은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범재판소의 기능에 관해 상세한 제안을 60일 이내에 마련하라고 요청했으며 안보리는 사무총장의 제안이 담긴 보고서가 마련되는 대로 이를 승인하면 비로소 전범재파판소가 공식으로 설치된다. 이 결의문은 또 각국에 대해 전범재판소의 권한및 기능에 관한 제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유고전범재판소의 재판관할권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국한되지 않고 구유고연방 전역에 적용되며 유엔사무국은 전범재판소에 관한 실무단의 구성에 착수했다.
  • 세르비아 강경지도자 단죄 처리/유엔 결의 「유고전범재판소」 기능

    ◎전세계 분쟁지 인권유린도 심판/신병확보가 난제… 실효 미지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2일 유고내전 전범 처벌을 위한 국제전범재판소를 설치하기로 결의한 것은 세계 분쟁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잔혹행위에 철퇴를 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국제전범재판소설치는 비단 옛유고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곳에서나 반인륜적 잔학행위를 자행한 책임자들에게도 적용될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전범재판소설치는 제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후 독일 뉘른베르크와 일본의 도쿄에 설치된 전범재판소와는 판이하게 다른데다 그후 처음으로 승전국이 아닌 유엔결의를 통해 설치된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미국·프랑스등 서방국가들이 주축이 돼 채택된 이번 전범재판소 설치결의안은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법재판소의 기능에 관한 세부적인 제안을 60일 이내에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제안이 마련돼 다시 안보리의 승인을 얻게 되면 구유고연방의 인종청소,강제수용소,조직적인 강간행위및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는자들을 심리대상으로 하게 된다. 현재까지 유엔전범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지목한 전범은 없지만 미국무부가 지난해 12월 전범으로 지목한 인물들은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주민 지도자 라도반 크라드지치,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병대사령관 라트코 몰라디치와 7명의 세르비아계및 크로아티아계 민병대 지휘관,그리고 포로수용소장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전범재판에서 내려진 형벌은 교수형이나 종신형이 대부분이었다.2차대전에서 잔악한 행동으로 악명높았던 나치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뉘른베르크국제군사재판에서는 레지스탕스와 유태인등 4천명을 학살한 리옹의 백정 클라우스 바르비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독가스로 유태인 6백만명을 학살한 나치의 친위대당 아이히만등이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다. 또 패전국 일본에서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원수가 개설한 군사재판소에서는 관동군 사령관으로 남경학살의 주역을 담당했고 총리대신을 지낸 도조 히데키등이 사형을선고받았다. 그러나 2차대전이후에는 전범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과거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정권이 자행한 대량학살도 국제재판에까지는 이르지는 못했다. 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전범재판을 하겠다고 나선 유엔의 이번 결의가 유고내전종식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세르비아측에 과연 정치적인 타격을 안겨줄지는 미지수다. 전쟁직후의 군사재판과는 달리 유고전범재판은 실제 재판소설치까지 수개월이 걸릴뿐더러 인권유린의 당사자를 가려내는 문제와 전범자의 신병확보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결의가 냉전이 붕괴된이후 잔혹한 인권유린을 일삼고 있는 지역에 더이상의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억제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일,정신대 진상조사를”/한국대표,유엔인권위서 공식 제기

    【브뤼셀 연합】 한국은 18일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49차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에서 2차대전 당시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정부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의 즉각 실시와 충분한 보상을 촉구했다. 한국정부는 그간 종군위안부 등 과거 일제에 의한 인권피해의 조사와 보상을 촉구해왔으나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공식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제네바 대표부는 이날 회의에서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당시 일본정부가 이를 직접 지시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성의어린 조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대신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신혜수 국제협력위원장이 발언한 것을 비롯,「국제교육개발(IED)」「해방」등 유엔등록 공식비정부기구(NGO) 대표들이 차례로 나서 전쟁포로에 대한 학대와 동남아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력 등 과거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했다.
  • “주아미군 해·공군 위주 재편”/미 포린 어페어즈지 전망

    ◎주둔병력 감축은 정해진 코스/한·일과의 안보협의 중시해야 저명한 외교계간지 포린 어페어즈는 18일 발간한 최신호에서 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로버트 옥스남명예회장이 기고한 『아시아·태평양의 도전』이라는 글을 실었다.옥스남회장은 이 글에서 『아시아주둔미군도 감축이 불가피하며 주둔형태를 해공군중심으로 바꿔나가게 될것』이라고 말했다.다음은 이 논문의 주요내용­. 지난해 11월,미국의 함대가 수빅만을 빠져나감으로써 한세기에 가까운 필리핀의 미군주둔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어떤이들은 필리핀에서의 미군철수가 냉전의 산물인 태평양지역의 미군개입이 점차 쇠퇴해가는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일본,한국,호주,필리핀과 태국과 군사동맹을 맺고있으며 10만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있다.물론 병력의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에 있다. 앞으로 수년간 이들 병력이 줄어들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누구도 의문을 갖지않는다.병력감축은 당초의 감축계획에 의해서는 물론 재정적자를 줄여 균형예산을 꾀한다는 측면에서도 불가피한 실정이다.이에따라 미국은 냉전시대의 특성의 하나인 지상상주군의 배치보다는 해군및 공군기지를 중심으로한 병력배치전략으로 전환하게 될것이다. 포스트 냉전시대에서 미국이 전세계 모든 「적」들을 감시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현재의 안보환경은 전혀 새롭고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중국의 해공군력강화등 잠복적인 이슈에 대해 편견이나 과장없이 관심을 가져야한다.한반도에서 긴장이 계속되는 예외적 상황도 있지만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것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크게 줄어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아시아지도자들은 미국이 태평양지역의 군사세력으로서 남아있기를 희망하고있다.이들은 새로운 군사세력이 등장하는것을 원하지않는다.말하자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일본,중국,통일한국,러시아등이 기존균형의 틀에서 벗어나 군사강국으로 되는것을 싫어한다.태평양지역의 불안정했던 과거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볼때 안보의 공백은 이 지역에서 독재를 불러오거나 위기를 초래했다. 미국의 군사개입문제는 베트남전처럼 너무 과도하게 개입했을때도 문제였지만 2차대전이 일어나기 수년전처럼「위험한 무관심」도 문제였다. 클린턴미행정부는 이 지역의 안보계획을 동맹국 특히 일본,한국과 충분히 협의하여 수립해야하며 동맹관계의 재확인에 정책의 우위를 두어야한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4

    ◎지게와 바퀴… 그 도구관의 차이/곤충에 바퀴 안달아준 하늘의 뜻은/도로개설 없이도 짐 나르는 지게/환경보호 측면서 바퀴보다 우수/자연순응의 바이오 테크놀로지 모델/계산 등 외곬일 잘하는 컴퓨터·로봇/상황에 따른 균형대응능력은 없어/자연그대로 이용하되 새기능 창출/한국인의 지게정신 되살려 나가야 □황규호문화부장=우리는 변변히 산업시대의 혜택을 누리지도 못해보고 지금 그 해독만을 받게 된 것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지난번에 리사이클문제를 이야기 해주셨는데 우리는 훌륭한 자연존중의 전통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신경한지 모릅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사실 한국인처럼 자연의 훼손을 꺼려온 민족도 이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객관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지게를 보면 압니다.가까운 일본에도 중국에도 우리와 같은 그런 형태의 지게는 없습니다.물론 유럽에나 다른 제삼국에도 지게와 같은 운반체를 사용한 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유례없는 운반체 □지게와 환경보호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인간의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 바퀴라고 합니다.바퀴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자동차는 엔진으로 가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자전거를 타보면 바퀴의 편리함을 금세 알 수 있지요.두다리로 걸어다니는 것보다 그것으로 바퀴를 굴려서 가면 훨씬 빠르고 편합니다.같은 힘을 들이고도 멀리 빨리 쉽게 갈수가 있지요.유럽에서 여자가 남자처럼 바지를 입게 된 것도 이 편리한 자전거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라고 하지만 일단 이렇게 편한 바퀴도 조금만 경사가 있거나 턱이 있는 곳이거나 땅의 표면이 울퉁불퉁하거나 혹은 단단하지 않으면 걷는 것보다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렇지요.길이 없으면 바퀴문명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바퀴와 길,그리고 세계의 지배는 떼낼 수 없는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다고들 하지요.온 제국의 영토에 포장도로를 깔았던 대 로마제국의 문명이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로마제국의 포장도로도 제국이 망하고 난 뒤 보수를 못하게 되자 차가 다니지 못하게 되고 나귀나 낙타가 등에 짐을 지고 다니는 길로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한마디로 평탄한 길에서는 바퀴의 회전운동은 전후 상하의 운동과 같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그 효율이 높지만 요철이 있는 곳에서는 반대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요.보통 차량은 직경의 4분의1까지의 높은 단까지는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고 합니다.요철만이 아니라 진흙길이나 풀섶과 같은 길에서 바퀴가 구르려면 콘크리트보다 회전의 저항은 8배이상이라고 합니다.생물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만약 쥐에게 바퀴가 달려 있다고 한다면(웃음)그 몸집의 비율로 보아 그 바퀴의 직경은 약 6㎝정도가 되리라고 합니다.그러면 1·5㎝의 돌이나 나뭇잎도 지날 수가 없습니다.쥐덫을 놓지 않아도 잡을 수가 있지요.더구나 개미같은 작은 곤충이 바퀴가 달려 그것으로 달린다고 하면 4㎜의 바퀴정도가 될 것이므로 1㎜의 모래도 넘지 못하고 쩔쩔 맬 것입니다. □알겠습니다.왜 하느님은 다리 대신 그 편한 바퀴를 달아주시지 않았는지 말입니다.(웃음)생긴 그대로의 자연은 어디를 보나 편편하고 단단하고 똑바른 길처럼 생긴곳은 없지요.진흙이거나 자갈이 널려 있거나 언덕 낭떠러지 돌­천지가 그렇습니다. ■바퀴가 편하게 구르기 위해서는 지금 말씀하신 것같은 그런 자연을 훼손하여 길을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자연의 그 땅을 뚫고 깎고 무너뜨리고 하지 않으면 길이 날 수가 없습니다.바퀴가 다니는 곳에는 모두가 이처럼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그 바퀴문명이 절정에 다다른 것이 오늘 우리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며 자연 파괴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자동차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자연파괴와 훼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바퀴보다는 지게를 개발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우리라고 왜 바퀴가 편하고 힘 안드는 운반수단이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중국도 일본도 손으로 끄는 수레라 하더라도 바퀴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이규경이 「북학의」라는 글에서도 말 한적이 있듯이 한국인만이 유독 바퀴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바퀴를 사용하면 길을 닦아야하고 길을 닦으려면 자연의 특히 풍수사상이 강해 지맥을 끊는 결과를 가져 오지요.그래서 자연을 그대로 두고도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는 도구를 생각해 낸 것이 지게였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흙속에 저 바람속에」의 저서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길이 없는 곳에서는 지게 이상가는 운반도구가 없지요.모든 것이 기계화된 미군들도 한국전에서 군수품을 고지에 실어나르려 할때에는 지게부대에 의존해야만 되지 않았습니까.그런데 지게의 도구적 특징은 무엇인지요. ■지게의 어원은 짐을 「지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막는것이 마개고 머리에 베는 것이 베개인 것처럼 지는것이 지게이지요.그런데 이것이 똑같이 지는 것이라고 해도 멜빵으로 지는 것 즉 배낭같은 것과 다른점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요한 균형의 힘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역도선수라해도 자기 체중의 3배이상 되는 짐을 들어 옮기기 힘들지만 지게를 이용하면 누구나 벼 몇섬 지고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이를테면 수레바퀴처럼 끄는 것이아니라 지고 다니는도구가운데 지게보다 더 많은 무게를 쉽게 질 수 있는 도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지게는 우스워보여도 한국인의 원초적 사상이 철학이 배어 있는 도구입니다.천지인의 삼태극사상처럼 조화와 균형의 힘을 이념으로 삼은…. □지게의 원리는 균형과 율동의 힘을 이용한 조화의 도구라는 말씀이신가요. ○균형과 율동 원리 ■실제로 지게를 져 본 사람이면 다 알 것입니다.아무리 가벼운 짐이라도 좌우의 중심이 즉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지게에 지고 한 발짝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뒤로 벌렁 자빠지거나 비틀거려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양쪽 물동이의 무게가 서로 다른 물지게를 졌을 때처럼 말입니다.반대로 자기 키보다 두서너배가 넘는 짐이라도 좌우 무게의 밸런스만 맞으면 거뜬히 질 수가 있습니다.지게 진 사람은 마치 출렁이는 파도처럼 그렇게 리드미컬하게 걷지요.출렁 출렁 말입니다.리듬으로 균형을 잡고 속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게는 결국 바퀴에 패하고 말았지요.우리도 이제 고속도로를 만들어 본격적인 자동차문명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그런데도 지게의 의미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면 어떤 분야 어떤 형태로 남게 될는지요. ■두말 할 것없이 바퀴의 편의성과 기능성 앞에서 지게는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춘게 사실이지요.이제는 농촌에 가도 지게는 볼 수가 없어요.그러나 지게로 상징되는 도구관이나 균형문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우리만이 아니라 세계가 21세기의 새 문명이 그러한 정신을 갈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비근한 예로 날이 갈수록 서비스업,인간을 상대로 한 통신분야등 산업사회때의 2차산업과 다른 생업들이 불어나고 있지 않습니까.이런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정신이 균형감각입니다.보통 컴퓨터나 로봇은 외곬수로 계산하는 일은 잘 하나 상황에 따라 균형을 살리는 눈치 감각 마인드는 어렵습니다.애매한 상황에서 그때 그때 밸런스를 유지해주는 힘은 생체감각과 같은 생명력을 가진 주체에서만이 가능해지지요. □그것말고 직접 물건을 만드는 산업현장에서도 지게 정신이 발휘될 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지프는 지게형 차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지프가 그렇지요.이것은 처음 군사용으로 2차대전때 개발되었지만 한때 사라졌다가 요즈음 서서히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지프가 많이 눈에 띕니다.같은 자동차라고 해도 지프는 지게형에 가깝습니다.길을 내지 않아도 비교적 자연상태의 지면을 달릴 수가 있습니다.자연을 덜 파괴하고도 다닐수 있는 차형입니다.그래서 지프의 선전문에는 「길이 아니라도 좋다」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보통 세단보다 지프가 자연적응이라는 면에서 지게형도구에 가깝다는 말씀이시군요.차체가 높다든지 4륜구동이라든지 차체가 짧아 좁은 공간에서도 회전할 수 있다든지 모두가 자연환경과의 균형을 살리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자동차만이 아닙니다.요즈음 일본에서 대 히트상품이 된 것으로 퍼지 선풍기라는 것이 있지요.선풍기 바람은 기계로 일으키는 바람이므로 자연바람과는 아주 다릅니다.강약조절을 해도 일정한 속도,일정한 회전수에서 생기는 바람이므로 풍향과 풍력이 규칙직이고 정형화되어 있습니다.판판한 고속도로처럼 말입니다.바퀴처럼 매끄럽게 굴러가는 바람이지요.그래서 도무지 선풍기 바람을 항창 쐬고 있으면 시원한 생각이 들지않아요.그러나 선풍기 바람을 방향이나 풍력등을 불규칙적으로 랜덤하게 해놓으면 마치 산들바람이 부는 것 같아 훨씬 시원하게 느낀다는 거지요.이것도 지게식 도구관을 살린 것입니다.자연 그대로를 따르면서도 그 자연에서 새로운 인공적인 도구의 힘을 만들어 내는 정신말입니다. 지게와 같은 도구는 바이오의 새 기술 시대를 여는데 절대적인 모형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주도하는 기술은 바이오 테크놀로지라고 하는데 지게의 도구관이 그와 어느 점에서 연결될 수가 있을 까요. ■산업문명시대의 기술은 대개가 다 기계 즉 무생물·무기물을 이용한 도구들입니다.자동차·비행기·로켓,그리고 모든 일렉트로닉스가 그렇습니다.그런데 바이오는 생명체를 즉 살아있는 것을 다루는 기술로 정말 신의 영역에 인간이 들어가는 것입니다.유전자 이 배합기술등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자연 그대로를 이용하여 스스로 그것이 에너지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지요.예를 들자면 대장균을 이용하면 전기를 발생시킬 수가 있는데 이것이 실용화하면 수세식변소의 정화조를 이용하여 가정용 전력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공해도 줄어들고 리사이클로 지구 자원도 보존 됩니다.인분을 퇴비로 하여 먹고 배설하는 것이 영원한 순환을 하듯이 에너지도 그렇게 순환됩니다.이런 발상 그리고 이런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면 한국인의 지게정신이 되살아나 남의 나라보다도 그 마인드가 더 풍부해지지요. ○가까워지는 자연 □자연을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보통 자연과는 다른 기능을 창출하는 것,이것을 지게정신이라고 이해 해도 좋을는지요. ■그렇습니다.지게라는 도구자체가 무슨 못을 쳐서 만들었거나 기계를 사용하여 만들었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Y자형의 지게가지나 작대기 머리의 V자형의 기능적 형태는 나뭇가지를 있는 그대로 이용한 것이지만 이미 나뭇가지와는 전혀 다른 물건을 져나르는 기능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한군데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그것을 조립하고 응용한 것만으로 자연속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물건이 생겨난 것입니다.천의무봉이라는 기술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지요.산업사회의 기술은 꿰맨자국이 보이지만 정말 기술이 발전되면 꿰맨자국(인공성)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요즈음 폐광이나 채석장의 굴을 이용하여 발효공장이나 식품보존 창고로 응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지게적 발상에 속하는 미래형 기술이라고 할 겄입니다. □우리가 미련없이 버렸던 지게도 잘 뜯어보면 미래의 자원이 있군요.지게정신을 살리면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발상법이 새겨날 것 같습니다.그러면 공해도 없어지고 자연과 인간도 더 가까워질 것이고요.정말 감사합니다.
  • 항공모함/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

    ◎1992년 길이 155m·7.470t급 일서 첫 완성/미,2차대전때 136척 건조… 해상권 장악 항공모함은 기중기로 비행기를 함상에 오르내리는 수상기 모함에서부터 예고되었지만 19 11년 1월 18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민간조종사 유진 일리는 장갑순양함 펜실베니아호의 갑판에 나무로 플랫폼을 만들어 비행기를 이룩시키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1차대전 이후에 열강들은 이미 건조되었거나 건조중인 함정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였다.그러나 비교적 늦게 이 경쟁에 뛰어든 일본은 항공모함을 최초로 설계하여 건조한 국가라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일본은 19 19년에 착공하여 19 22년 12월에 호쇼(봉상)호를 완공하였다.호쇼호는 배수량 7천4백70t,길이 1백55·5m,폭 18m,엔진 3만마력,속력 25노트의 제원을 가졌다. 비행기가 무거워지고 속력도 빨라지자 함상착륙을 쉽게 하기위해 보다 나은 제동장치와 고압증기를 이용한 사출장치가 개발되고 또한 비행갑판을 선체에 비스듬한 각도로 설치하려는 등의 연구로 항공모함이 개선되었다.그러나 양차 대전까지만해도 미국과 영국 및 일본만 항공모함을 보유하였다.이중에서 미국은 선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한 뒤 조립하는 건조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짧은 기간에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그리하여 미국은 2차대전 중에 2만7천t급 22척,1만1천t급 9척,1만1천4백t급 19척,7천8백t급 50척,9천8백t급 36척,합계 1백36척에 상당하는 크고 작은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였다. 2차대전 이후에는 각국의 노력으로 항공모함이 훨씬 더 개선되었다.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충분히 경험하여 19 4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항공모함을 건조하였다.현재 미국은 5만t의 미드웨이급 3척,6만t급의 키티 호크급 8척,원자력 항공모함 3척 등 1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소련은 1970년대부터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여 현재 5척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소련에서 항공모함을 구입하는 중이며 2차대전때 항공모함을 보유하였던 일본은 공격형 함정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패전국 규제조항 때문에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그동안 쌓아 놓은 기술적 역량과 경제력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자체 건조가능한 위치에 있다.
  • 독 잠수함 「U­보트」/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28)

    ◎2차대전기간 소형 위주 1,162척 건조/연합군의 상선 2,603척·함정 175척 격침 1차대전중이던 1914∼1918년까지 독일은 9백75척의 U보트를 건조하였는데,1918년에 잠수함 승조원의 수가 11만명에 달했다.전형적인 형태의 잠수함은 길이가 48m이고 12발의 어뢰를 보유한 제2주일동안 계속 항해할 수 있는 UC 보트였다.U보트는 영국의 생명줄인 통상파괴에서 놀라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U보트는 대전동안 총1천4백82만t의 상선을 격침시켰으며,전성기에는 매달 50만t의 상선을 격침시키기도 했다.연합군은 구축함 5백척을 동원하여 54척의 U보트를 그리고 쾌속정과 초계정 3천척을 동원하여 단지 31척만을 격침시킬 수 있었다.그러나 연합군 잠수함 40척이 20여척의 U보트를 격침시킴으로써 잠수함의 최대 적은 잠수함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1차대전 이후에 독일은 군축조약을 통하여 보유함정의 총톤수를 제약받되 척수에 대한 제한이 없었기때문에 소형잠수함의 건조에 치중하였다.3백30t급의 U2A나 5백71t급의 U7호는 그 대표적인 잠수함으로서 16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는데,2차대전 중에는 1천6백t급의 대형잠수함 U21C을 건조하기도 하였다.대전의 전기간에 독일은 모두 1천1백62척을 건조하여 연합군 상선 2천6백3척과 함정 1백75척을 격침시켰으며,그대신 독일은 7백84척의 잠수함을 잃었다.이러한 잠수함의 활약은 칼 데니츠(1891∼1980)제독의 노력 덕분이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의 통상파괴전에 대항하기 위해 선단호송제도를 발전시켰으며,이에 많은 U보트들이 피해를 입었다.그러나 데니츠는 개별적인 활동을 금지시키고 그대신 십여척 안팎의 U보트를 한 전대로 묶어 첩보에 의한 해역에 미리 대기시켰다.낮에는 잠수해 있다가 야간에 부상하여 항해중인 상선단을 포위한채 여러 방위에서 동시에 공격하였다.먹이를 둘러싸고 무리지어 공격하는 이리떼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흔히 이리떼 전술이라고 불리우는 이 전술로 말미암아 U보트는 연합군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는데 영국 수상 처칠도 전후에 가장 괴로웠던 것으로 회상할 정도였다.
  • 일 재건 청사진 마련/전 외상 오키다 별세

    【도쿄 교도 연합】 오키다 사부로 전일본 외상이 9일 사망했다고 유족들이 밝혔다.향년 78세. 저명한 경제학자이기도 한 오키다 전외상은 2차대전후 일본 재건을 위한 청사진 마련에 기여했으며 지난 48년부터 51년까지 일본 경제백서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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