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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테러 공포」 확산/“3차테러 더 있다” 시민들 불안

    ◎범인 오리무중… 회교과격파 추정 파리가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지난달 25일 셍 미셀역 폭탄테러에 이어 3주만에 또다시 비슷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폭발 사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어 길을 걷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1백만프랑(한화 1억5천만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사고발생 직후 현장부근에서 이란 외교관의 번호판을 단 승용차를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기는 했지만 파리주재 이란대사관측은 이란이 사고에 개입됐음을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범인임을 자처하는 단체들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 도무지 윤곽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범인들은 무엇인가를 「무언」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3차 테러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번의 폭탄테러는 많은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과시용의 성격이 강하다.이번 폭발사고의 현장은 개선문 부근의 시내 중심가이면서도 인적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곳이다. 또 폭발물의 종류가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조잡한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지난달 사고 이후 알제리 회교근본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은 의혹의 눈길이 몰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화된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조잡한 폭발물을 사용했을 가능성 등에 의문이 제기된다.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 줄 모르는 프랑스의 핵실험 의욕이나 거세지는 보스니아에 대한 서구사회의 공세에 대한 제동에서 나왔다는 관측들도 제기되고 있다. 또하나 강하게 제기되는 가능성은 범아랍계의 소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차 폭발사고 전인 지난달 6일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의 추방에 프랑스가 「국가적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파리의 외교소식통은 『시라크 대통령을 「아랍의 친구」로 생각해온 아랍진영으로서는 시라크 대통령의 발언으로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입장 고려 NATO확대 신중히/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동구국가입 서두르면 96년 러 대선서 민주개혁파 곤경에 러시아와 서방과의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쟁점중 하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문제다.문제의 발단은 소련의 옛군사동맹국들인 동구권이 자신들의 적이었던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나선 데서 시작됐다. 그렇게 나선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동구국들은 우선 나토가입을 통해 서방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물론 경제적인 이득도 기대한다.이와 함께 나토 가입이 안보보장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동구,경제적 이익 기대 이들은 홀로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강대국의 먹이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갖고 있다.체코는 2차대전 전 나치독일의 먹이가 됐고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지금 체코,폴란드,기타 동구국들의 우려 대상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란 점이 다를 뿐이다.이들은 2차대전 뒤 모두 러시아에 의해 점령돼 비인간적이고,비효율적인 공산주의에 의해 속박됐다.몇몇 나라들은 이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다 소련군의 침공을 받아 저지됐다.동구국들은 이런 아픈 역사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민주화됨으로써 동구국들은 큰 혜택을 받았다.이들은 자유를 되찾았고 서구식 사회 건설의 기회를 얻었다.이웃 대국 러시아에 대해 품었던 공포감도 사라지는듯 했다.그러나 러시아의 개혁이 비틀거리고 외교정책 기조가 흔들리면서 이 공포감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1993년 12월 총선에서 극우민족주의자 지리노프스키의 압승은 동구국들을 아연 긴장케했다.지리노프스키는 수시로 동구권을 포함,주변국들을 러시아영토로 귀속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외에도 러시아 정치인들중에는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인물이 많다.정치적 불안정,경제·사회적 제불안요인은 동구국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앞날에 대해 짙은 우려를 갖게 했다.이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독립,자유,안보를 지키기 위해 동구국들은 나토로 몰려든 것이다. ○러시아­서구 관계 냉각 애초에 러시아 민주지도자들은 나토확대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91년,92년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승리감에 도취돼 있을 때는 모든 서방국들이 하나같이 동맹국처럼 느껴졌다.처음 폴란드의 나토가입문제가 나왔을 때 옐친대통령은 주권국가가 어떤 국제기구에 가입하든간에 그것은 그나라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했다.한때는 러시아 자신도 나토가입을 고려했을 정도였다.이같은 입장은 그러나 보수민족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러시아와 서방과의 관계도 긴장관계로 바뀌었고 러시아내 서방에 대한 기대,신뢰분위기도 급속히 냉각됐다.러시아에서 반서방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동구국들은 더 결사적으로 나토가입을 희망했다.그러면서 러시아 역시 나토확대에 강경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지금 나토문제는 러시아정부의 최대현안이다.러정부의 입장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서방은 처음부터 러시아를 기만했다.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했는데도 서방은 그 대응기구인 나토가 동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존속시키고 있다.둘째,나토를 동구권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서방이 여전히 러시아를 적으로 본다는 증거이다.셋째,나토확대는 유럽을 분열시켜 대결분위기를 조장한다.넷째,나토확대는 러시아를 유럽대륙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위 4가지 논지는 러시아정부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감한다.극우민족,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 몇가지 주장을 더 추가한다.우선 나토확대는 러시아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러시아는 서방의 군사,정치적 위협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세력불균형은 종국에는 전면대결로 발전케 된다고 말한다. 나토확대에 관한 러시아정부의 공식입장은 매우 강경하다.옐친대통령은 이 움직임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그러면서도 미국등 서방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시키고 싶어한다.그래서 타협의 여지는 있다.러외무부가 나토국들에게 제시한 몇가지 방안을 보자. 첫째,나토를 해체하고 전유럽을 포괄하는 안보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물론 서방은 이에 반대한다.그 다음으로 내놓은 안이 바로 동구권을 받아들이되 정회원이 아닌 동반자관계 자격으로 받으라는 것이다.러시아정부의 지도자들은 서방지도자들에게 최소한 나토확대를 서두르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한다.나토확대를 서둘러러시아내 보수여론을 자극할 경우 96년 대통령선거에서 보수파들이 승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반대로 민주개혁파가 승리하면 나토확대에 크게 반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동구국 역시 굳이 나토에 가입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논리이다. ○회원국들 입장 엇갈려 나토국 내부에서도 확고한 컨센서스는 아직 없다.예를 들어 스페인,이탈리아는 나토확대에 반대입장이다.기구가 너무 커져 자신들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걸 우려해서이다.미국 역시 러시아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신중히 추진하자는 자세이다.반면 독일은 이를 빨리 추진하고 싶어한다.독일국경에 맞닿은 나토방위선을 동쪽으로 밀어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다.그 경우 독일은 실로 50년만에 최전방국가의 짐을 벗는 것이다.군사전문가들은 대체로 나토확대에 신중한 견해를 밝힌다.무엇보다 그렇게 비대한 기구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우선 동구국들은 가입하더라도 군사장비,인력을 재무장하고 재훈련시켜야 한다. 이 모든 사항들을 고려할 때 나토확대는 최소한 수년은 걸려야 해결될사안이다.그리고 미·러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양국 모두가 그런 사태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핵강국 발돋움” 강한 집념 표출/중국의 「핵실험 재개」 저변

    ◎서방위협에 대응력 확보 전략/“강력한 핵탄두 제조 시도” 분석 중국의 핵실험 강행은 냉전후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반핵분위기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서방측 위협에 대한 확실한 억제력으로서의 독자적인 핵강국에 강한 집념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15일에 이어 17일 또다시 43번째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중국의 계속되는 핵실험은 국제적 압력이나 여론보다는 국익을 우선하는 중국 특유의 정책적 독자성의 한단면을 다시한번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올해 적어도 1차례의 핵실험을 더하고 내년에도 3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중국은 다른 핵보유국보다 핵실험이 크게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핵실험을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실제로 중국의 핵실험은 미국(9백50회),러시아(6백회),프랑스(2백회),영국(60회)보다 적은게 사실이다. 미국 등 다른 핵 보유국의 핵무기보다 낙후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중국은 핵실험을 통해 핵 기술을 축적하고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탄두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군사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국은 약4백5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이 갖고 있는 핵무기의 전체적인 위력은 2차대전때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1만6천배에 해당된다고 그린피스는 주장하고 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핵실험을 계속 강행할 경우 아시아에서 핵무기경쟁이 유발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중국은 핵실험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개발,무기 현대화등 군비증강을 계속,군비감축이라는 세계적인 흐름과는 역행하고 있다. 중국의 핵실험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일본은 중국의 핵실험을 강력히 비난하며 차관의 추가 감축을 시사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핵실험은 세계적인 비난과는 관계없이 중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중국은 포괄적인 핵실험조약이 발효되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역설적 통일론(이동화 칼럼)

    광복50주년을 기념하면서 조국의 통일을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은 지식인은 매우 적었을 것이다.진정한 광복은 국토의 분단을 해소하고 2차대전후 이어진 남북대치의 긴장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통일의 가능성은 그 기대에 비해 너무나 멀고 아득하다.통일은 커녕 남북관계는 6·25전쟁이후의 적대관계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우편과 전화도 마찬가지다.이산가족간에 생사확인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수로·쌀 받으며 큰소리 최근 남북간의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문제와 쌀문제를 놓고 보아도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남북관계를 읽을 수 있다.지난 2년여동안 한반도는 물론 국제적 관심과 긴장을 불러왔던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북·미회담을 통한 경수로 설치지원합의로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는 했으나 남북간에는 아직도 긴장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경수로설치주체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한국의 중심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기인하고 있다.심지어 한국인차장이 끼어있다고 KEDO총장단의 북한방문을 거부할 정도로 한국배제에 지나칠 정도의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쌀문제도 북한의 태도를 누그러뜨리려는 우리의 의도를 역이용해 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고자세로,주는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북 고자세,국민분노 유발 원산지표시를 하지말라든가,청진항에 배로 가져오라든가,주민들에게 쌀받는 것을 감추기 위한 요구들은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수송선을 놓고 벌이는 작태는 분노를 넘어 한심할 지경이다.쌀을 처음 싣고간 씨 아펙스호에는 인공기를 강제로 달게 하더니 최근 삼선 비너스호는 선원이 기념촬영한 것을 「정탐행위」라며 8일간 억류하는 몰염치를 드러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과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충정을 북한당국은 간파하고 재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이러니 국민감정이 좋을리가 없다.쌀을 무상으로 주는 것 자체만 놓고도 반대의사가 적지않았다는 것이 지난번 지방선거결과 분석에서 나온 결론이었다.그후 「쌀주고 뺨맞는」 일이 이어지니 국민들의 불쾌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관계에 뭔가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정부의 선의를 북한당국이 짓밟고 역이용 하는 일이 거듭되다 보니 거기에 들이는 돈과 정력이 아깝다는 회의적 견해가 나올 수 밖에 없다.더 나아가 북한에 더 이상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북정책 재고여론 비등 북한에 쌀을 주고 경제적 이득을 주어가며 동포애를 발휘했음에도 오히려 뺨을 맞을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는 정책을 당분간 끌고나가야 대화와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적 통일론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지만 모든 상황으로 보아 목마른 쪽은 북한인데 왜 우리가 목마른 것처럼 허둥대며 나서다가 챙피를 당하느냐는 반성에서 출발한 논리다. 결국 북한이 샘을 파도록 놔두라는 것이다.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만은,대북정책 전반을 차분히 재검토해보라는 고언이라고 할 수 있다.그 말속에는 또 서두르지 말고 남북의 주파수가 어느 정도 접근할 때까지는 내실을 기하는데 오히려 힘을 써달라는 주문도 섞여 있다고 믿는다. ○이질요소 극복 대비해야 계속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정도의 안보능력을 유지해나간다면 결국 현재 북한이 갖고 있는 카드는 지금보다 효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스스로 대화카드를 내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말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통일준비와 대비를 해나가자는 것이다.예를 들어 통일후 재산권의 문제라든가 남북간 교육의 차이,법률의 차이,문화의 차이등 이질적 요소를 찾아내고 극복하는 방안을 만드는데 돈과 정력을 돌리라는 것이다.예상치 않게 갑자기 통일의 기회가 닥쳤을 때 이런 대비가 충분하다면 혼란과 낭비를 줄일 수 있다.또 비용이 적게 든다면 통일의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일 언론/“과거 사과 후속조치 필요”/사과실천 기구설립 역설

    ◎조일 등 각매체 【도쿄 AFP 연합 특약】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16일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무라야마 도미이치(초난부시) 총리의 사과(15일)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사히 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무라야마 총리의 「올바른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면서 「지난 6월 채택된 국회 부전결의의 빈약한 내용을 고려할때 총리의 사과에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며 「다음 과제는 총리의 사과가 일과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요미우리 신문은 전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의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는 데 50년이나 걸렷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은 「총리의 사과가 추가조치가 따르지 않는, 말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며 「구체적인 기구를 설립해 총리의 사과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변 사과도 말로만 그친다면 총리의 신뢰도에 「흠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 착잡한 일본계 미국인들/이건영 뉴욕특파원(오늘의 눈)

    시카고에 사는 일본계 2세 샘 오자키씨(70)는 종종 이웃들로부터 의아한 시선을 받는다.따뜻한 서부 캘리포이아를 떠나 춥고 바람많은 동부로 와 여생을 보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는 2차대전과 미국의 인종차별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2월19일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 서부해안지역에 거주하던 10여만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산악지대와 사막지대의 집단수용소에 이주시키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일종의 인종격리 정책이었다.강제수용소 성격의 이곳에서 이들은 미국과 교전국인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철조망안에서의 굴욕적 대우를 견뎌내야 했다. 미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은 서부해안에 있던 일본계주민들을 동부지역으로 옮겨놓는 결과를 가져왔다.전쟁이 끝나기 전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들은 서부로의 귀환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카고,솔트레이크 시티,덴버 같은 낯선 동부도시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한편으로 오자키씨같은 수천명의 젊은 일본인 2세들은 「수용소 억류」를 피하기 위해 미군에 자원입대하는 길을 택했다.오자키씨는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돼 태평양전선에 배치된 442연대의 정보장교로 있으면서 일본군 포로로부터 많은 정보를 빼냈다.훗날 일본계 2세로는 최초로 시카고의 한 공립학교 교장까지 지낸 오자키씨는 『군입대는 미국민으로서 우리의 충성심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회고했다.그러나 미군에 입대했던 이들에게는 「2차대전의 승전」은 수용소의 악몽과 함께 (조국 일본에 대한)「반역자」 노릇을 했다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자키씨 외에도 많은 일본계 미국인들은 매년 이맘때면 연합국 승전무드에 착잡함을 느낀다.올해는 종전 50주년이어서 그들의 착잡한 심정은 더할 게 분명하다. 이들로 하여금 착잡함을 느끼게 하는 반역감은 조국에 총부리를 겨눴다는데서 비롯된다.그러나 일본이 일찌기 과거의 잘못을 명백히 인정했다면 이들의 반역감은 훨씬 덜했을 것같다.조국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총을 겨눌 수 밖에 없었다는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눈으로 보는 로켓 이야기/항공연 채연석 박사 책 출간

    ◎중국 불화살이 시초… 최무선의 「주화」 소개/미·러 「우주개발 경쟁」 묘사한 저서도 함께 국내 최초의 상업위성 무궁화호의 발사와 「향후 20 15년까지 20기의 위성발사 계획」발표로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인 로켓 과학자에 의해 우주과학 이야기책 2권이 한꺼번에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항공우주연구소 우주추진기관 그룹장 채연석박사(43)가 (주)나경문화에서 펴낸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와 「눈으로 보는 우주개발이야기」가 그것. 채박사는 과학로켓 1,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켰던 장본인이면서도 「우리것」에 대한 애정을 연구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별난 과학자이다.그런만큼 그의 책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도 관점이 색다르다.종전의 서구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로켓의 시초인 중국의 화전(불화살)에서부터 이의 유럽 전래 과정과 우리나라 고대의 로켓 역사를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3 77년 최무선에 의해 「주화」라는 로켓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세종때에는 이미 세계 최대의 종이통 로켓인 길이 5.5m의 「대신기전」이 제작됐을 정도로 자랑할 만한 로켓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채박사는 대학때부터의 꿈이었던 이 「신기전」의 복원발사 실험을 대전엑스포때 해보인 바 있다. 중국에서 서구로 전래된 로켓은 계속 수정,보완 개발됐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추력과 정확성이 더해져 마침내는 2차대전에서 영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독일의 현대적 로켓 V­2로 발전하는 과정도 재미있게 소개됐다. 이책은 또한 로켓이 어떻게 인공위성 발사로 발전하고 우주선을 달에 보낼 수 있게 됐는지,미래의 로켓은 어떤 모습이 될지도 보여주며 현대 로켓의 개척자 지올코프스키와 미국 로켓의 아버지 고다드,우주여행의 이론을 세운 물리학자 오베르트등 우주개발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들의 열정적 삶을 묘사해 독자의 감동을 자아낸다. 「눈으로 보는 우주개발 이야기」는 러시아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로 촉발된 러시아와 미국간의 숨막히는 우주개발 자존심 대결을 생생히 묘사했다.또 일본과 중국프랑스 영국등 그밖의 강대국들의 우주개발 실태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러시아의 달로켓 개발계획,우주정거장 건설계획등도 자세하게 언급해 자료적인 가치도 높아 보인다. 『로켓과 우주개발 이야기는 이제 소수 전문가들의 독점물이 아니라 21세기 우주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상식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책을 썼다는 채박사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우주개발의 꿈을 갖도록 소망했다.경희대 물리학과 출신의 채박사는 87년 미국 미시시피주립대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88년부터 천문우주과학연구소­항공우주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
  • 「침략인정」과 히로히토 면책론/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15일 담화를 발표,「국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며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했다.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들에 비해 일단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는 이어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특히 아시아 여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면서 「의심할 여지도 없는 역사의 사실」이라고 지적해 침략행위 여부에 대해 더 이상의 논란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총리로서의 소신을 집대성한 것처럼 보인다.거기에다 이날 발표된 담화는 각료회의의 의결을 거쳤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일단 간주되고 있다. 아마도 무라야마총리는 지난 6월 채택된 종전50주년 국회결의가 원래 뜻과는 달리 한국등 피해국들을 격분시킨데다가 시마무라 요시노부 문부상등의 망언파동으로 뭔가 분명한,강도높은 사회당위원장 출신 총리다운 태도와 전쟁관의 표명이 필요하다고 느꼈음직하다. 하지만 무라야마총리의「성의있는」 담화를 두손들어 환영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들이 남아 있다. 그는 담화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쇼와(히로히토)일왕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을 못박았다.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모순된 일이 아닐수 없다.쇼와일왕은 당시 국가원수이자 일본제국군 최고통수권자였다. 또 그는 종군위안부,강제징용자의 보상등 미해결 전후처리문제와 관련,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및 2국간 조약등에 의해 해결된 문제이므로 개인보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러나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만큼 종군위안부 보상,새로이 밝혀지는 징용자등에 대한 보상,나아가 전범등에 대한 처벌등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는 비슷한 시간 하시모토 류타로 통산상등 자민당출신 각료들이 줄줄이 전범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총리의 진일보한 담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늘 주변국들의 신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신뢰는 구체적인 행동의 누적속에 쌓인다.사죄라든가 침략행위 인정등당연한 말들도 늘 망언들로 뒤집혀 왔기 때문이다.
  • “전쟁은 정당” 일 극우단체 시위/종전 50주년… 일·미·태 표정

    ◎워싱턴 공식행사 전무… 언론도 침묵­미국/10만여명 희생된 콰이강서 위령제­태국/일 각료 9명 전범위패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8천여명 추도식 ▷일본◁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15일 정부주관하에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도쿄 기타노마루공원 무도관에서 일왕부처,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도이 다카코 중의원의장등 정부·국회관계자,유가족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조선인·대만인 등을 포함한 군인·군속 2백30만명,일반인 85만명등 3백15만명을 추도한다는 이날 행사에서 무라야마총리는 『그 전쟁에서는 많은 나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깊이 반성과 애도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무라야마내각의 각료 9명이 전범들이 봉사되고 있어 늘 말썽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올해 참배각료는 14일 미리 참배한 우라노 야스오키 과학기술처 장관을 포함,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명의 각료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데 비해 올해는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통산상,방위청장관등은 「공인」 자격으로 「공식참배」. 특히 히라누마 다케오 운수상은 이날 참배시 다른 각료들이 머리만 숙인것에 반해 「2례 2바교수 1례」의 신도식으로 참배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규정과 관련해 물의 무라야먀 총리 등 연립여당 3당 당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하지 않았으나 자민당의원 1백32명(대리참배 73명),신진당의원 36명(대리 20명)등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배대열에 합류,정치권의 분위기가 지난해보다 「참배」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줬다. ○배상 등 요구 시위 ○…오사카(대판)에서는 15일 한국유족,중국남경대학살 생존자,일본시민등 4백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집회가 열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 이날 집회에서 일제징용으로 남편을 잃은 유족 이김주(74·전남 광주)씨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다』면서 사죄와 배상을 일본정부에 촉구. ○안보리 기념성명 ▷미국◁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전쟁승리 50주년이 「망각」된 채 지나갔다.현지시간 14일인 승전일에 미국정부의 전승기념 공식행사는 물론 이에 대한 언급도 전무했다.이를 다룬 신문사설조차 없었다. 미국에서 태평양전쟁 승리는 일본의 미 진주만 기습(41년12월7일) 기념행사때 함께 축하되지만 언제나 종속적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진주만기습 50주년 기념행사는 4년전 미전역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바 있다. 미국인에게 정작 8월은 원자폭탄 투하의 달로 더 기억된다.미국언론은 지난 6일 원폭 투하 50주년 당시 히로시마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은 대대적인 기획기사를 다뤘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아시아지역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3개항의 기념성명을 채택,국가간 신뢰구축과 협력을 통한 단결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 된다고 밝혔다. ○생존포로 등 참석 ▷태국◁ ○…2차대전당시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태국에서 철도부설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가 숨진 연합군장병 1만6천여명과 아시아인 10만여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겸한 종전50주년 기념식이 15일 연합군 생존포로및 전일본군 병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방콕서쪽 칸차나부리에서 거행됐다.
  • 대만·말련 등 축하행사…일에 사과 촉구/종전50주년…아태국 표정

    ◎학살고발 영화전·폭죽 터뜨리며 행진­중·대만/“경제대국 일 눈치”… 조용하게 보내 대조­동남아 2차대전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은 일본에게는 패배의 날이지만 많은 아시아국가에게는 일본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환희의 날이다.종전 50주년를 맞아 한국·대만·호주 등은 이날 일본의 패전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벌이거나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과거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등 일본의 패전의 의미와 잔학상을 부각시켰다.하지만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국가는 의도적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등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에서는 수리눙 장군(74)을 필두로 20여만의 대만인이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고 폭죽을 터뜨리며 시가를 행진,일본통치 종식 50주년을 기념. 이등휘 총통의 보좌관인 하우페이춘씨는 『50년전 오늘이야말로 중국인에게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회고. 행진자중에는 「나는 중국인이다」란 표어를 내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부와 남부대만으로부터 올라온 이들도 끼어 있었다. ○…중국은 잔혹한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상영과 우표전시회,신문사설등으로 일본항복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주요우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않기 위해 신중한 반응. 특히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발간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일본군에 의해 3천5백만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나라의 수뇌치고는 용의주도한 발언을 해 주목.『나는 모든 일본인과 정치인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중·일관계의 정치적 기조를 지켜나갈 것으로 믿는다』 한 중국관리는 사적으로 『일본 항복 50주년을 맞아 중국이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 있는 마당이므로 일본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폴 키팅 호주총리는 14일 일본에 대해 2차대전중의 군국주의와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어린이에게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교육시키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촉구. 키팅총리는 이날 호주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인 15일을 맞아 『일본이 군국주의정책으로 이웃국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를 대표해 이에 대한 유감표명을 해주길 바란다』고 언급. 그는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였는데도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메시지를 일본인에게 남겼다』면서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 만큼 전쟁은 일본의 사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 ○…2차대전중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동남아국가들이 말레이시아의 국지적인 행사개최를 제외하고는 종전 또는 해방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동남아국가들의 이같은 반응은 이 지역 최대의 경제협력 파트너이자 원조제공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경제협력(21세기 한­일 새 지평:3)

    ◎수평 분업으로 공생체제 구축을/바람직한 한·일의 경제관계/경제블록화 대응,보완관계 필요/무역장벽 제거… 기술 등 공유해야 8·15광복 50주년을 맞는 지금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시대에 진입해있다.공산체제 붕괴이후 이념 전쟁대신 경제전쟁이 각국의 운명을 거는 싸움이 되었다.유럽국가들은 EU통합을 통해 국제경쟁의 우위확보에 초국가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했다.미국은 범미주의를 회복하고 세계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으로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을 출범시켰다.NAFTA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캐나다의 풍부한 자원 그리고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경제블록으로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동맹군의 성격을 띤다.이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대형공업국가들의 희생이 따르고 있다. ○충격흡수력 잃어 실제로 일본과 한국은 통화절상과 시장개방 압력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일본의 경우 8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플라자 협약에 의거,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두배로 절상됐다.일본은고도의 기술축적에 힘입어 당시 통화절상의 충격을 힘겹게 이겨냈다.그러나 최근 들어 엔화절상압력이 다시 가해졌다.금년초 엔화는 달러에 비해 15%이상 절상됐다.여기에 미국이 슈퍼301조라는 초법적 무기를 통해 자동차등 주요 일본상품에 무자비한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자 일본경제는 더 이상의 충격흡수 능력을 잃고 구조적 침체현상을 겪고 있다.그리고 엔화는 무력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경제가 퇴조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일단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자동차·철강·조선·반도체 등 주력 상품들이 일본수출시장을 잠식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단기적 과도 현상일뿐 내면적으로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우선 이미 고개를 들기 시작한 원고가 수출증가를 반전시키고 있다.외세에 의한 이득을 외세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산업기반의 대일 의존도가 커서 일본경제의 위기가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근간인 자본재와 원료·중간부품의 일본의존도가 30%나 된다.이러한 구조하에서 일본 엔화절상으로 인해 국내 물가가 오르고 산업전반에 걸쳐 고비용구조화하고 있다.결국 일본과 한국 두나라 경제가 함께 위기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 반사이익 그러면 광복 50주년을 맞아 향후 바람직한 한·일 경제관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양국 경제는 근본적으로 적대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우호적 보완관계를 가져야 한다.국제 시장을 지배하는 유일한 논리는 힘의 논리이다.따라서 양국이 공동 대응능력을 기르는데 국경을 초월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이런 견지에서 한·일간의 수평분업을 통해 공생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양국 경제가 수직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도 같이 위험을 맞는다.그러나 수평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 경제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가 이를 상당부분 상쇄하면서 위험제거효과를 가져온다.양국경제는 역사적으로도 대륙으로부터의 문물을 전수해가며 협조한 경험이 있다. ○시너지효과 기대 일본경제는 무역흑자때문에화를 입고 있다.일본의 연간 무역흑자는 1천3백억달러나 된다.지나친 흑자유입은 내부적으로 경제를 고물가체제로 만든다.또한 외부적으로 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을 거세게 받는다.무역흑자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난관을 자초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구조를 면치못하고 있다.경제발전이 기술개발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단순조립을 통한 수출실적증대 위주였다.따라서 경제가 외형은 크나 내실이 없다. 이런 구조하에서 한·일 양국은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기술·자본·인력등 모든 생산요소에 대해서 공유체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금세기초 식민지배 관계라는 앙금을 씻고 다가오는 2000년대의 한일 신시대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양국경제의 협조는 필수적이다.그러면 양국경제는 수출과 수입에 있어 불균형구조를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양국 경제는 국제시장에서 어떠한 위협도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이다. 이박에 한·일 양국은 상호보완 차원에서 북한 경제를 함계 도와 궁극적오로 북한도 공동번영체의 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47세) ▲서울대 공대졸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기업제휴 늘려 경제국경 낮춰야/한·일경제의 새로운 전개/한국 규모 커져 파트너로 재인식/반도체 교역급증… 역조개선 징후 올해는 제2차대전 종료 50주년이다.또 동시에 한일국교 정상화 30주년이기도 하다.전자는 「광복 50주년」으로서 한국인에게 선뜻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후자는 한국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내에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것이다.필자는 이것을 「개발 30주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한일국교정상화가 한국의 경제발전의 커다란 실마리가 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실마리 한일국교정상화 추진이 미국의 대소련 포위망정책의 일환,즉 냉전의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기반이 아직 다져지지 않았던 60년대 초반에 박정희정권이 국교정상화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섭의 타결을추진한 점이다.『조국을 근대화하는데 최초로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얻기 위해 한일관계는 타결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이다』(김종필).이 선택이 올발랐던 것은 국민이 경제발전을 추진한 박대통령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30년동안 한일경제관계를 간단히 돌이켜 보자.우선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양국의 무역관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변화했다는 점이다.한국의 대일무역은 65년 2억1천60만달러 규모에서 94년 3백89억1천3백만달러로 1백84배나 늘었다.연평균 19.7%의 신장률을 보였다.이러한 급격한 양적 변화는 당연히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그것은 일본의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의 구성변화에 명확히 나타난다.65년에 16.9%밖에 안되던 공업제품비율은 93년에는 80%에 달하고 있다.이 사실은 같은 해 일본의 수입전체에서 공업제품의 비율이 52%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한일관계가 일본과 제3국과의 관계보다 경제적으로 긴밀화(수평분업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일 의존 낮아져 두번째로는 한국의 무역에서 점하는 일본의 셰어의 저하다.미국의 셰어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하하고 있어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시장의 다각화,특히 미일경제에의 의존의 저하로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한국경제는 미일의 바운더리를 넘어서 세계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양국인의 왕래의 활발화이다.한국을 찾는 일본인 여행자수와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94년에는 각각 1백64만4천명,1백5만2천명에 달했다.한국인의 일본 방문자수가 엔고하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상 세가지 점은 한일경제관계의 긍정적 측면으로 말할 수 있다.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역시 짙어진다.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이 존재하고 있다.이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한국이 수출촉진을 통해 고도성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산업의 육성을 뒤로 돌렸다는 점에 있다.자본재 공급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왔다.이것은 한국경제의 상황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과로서 수입유발적인 산업구조를 형성시켜 거액의 대일적자를 한국에 초래시켰다. ○역조 성장정책 탓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양국경제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지난해이후 엔고는 다시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를 급증시키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없던 현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양국간에 가져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먼저 반도체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업제품의 대일수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반도체 수출의 급증은 대일무역 적자축소의 돌파구역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두번째로는 한국기업에 의한 일본기업의 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한국기업은 대일시장공략의 거점만이 아니고 기술 및 인재 등을 확보해 국제화 추진상 유리한 발판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셋째 삼성그룹과 닛산과의 승용차생산 제휴다.승용차생산은 전후방 연계가 넓다.그 승용차산업의 공장이 부산에 설치된다는 사실은 한국남부와 규슈지방의 경제적 교류를 한층 활발하게 만들어 한일경제의 보더리스(borderless)화를 진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일 기업 매수 늘어 이상 세가지 측면에서 양국경제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한국경제의 실력향상은 양국간의 경쟁을 심화시킬 뿐만이 아니라 상호 파트너로서 재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10년후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은 한국에 있어 보다 긍정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 교수(53세) ▲와세다대 경제학과졸 ▲아 경제연 국제교류 실장
  • 현대 추상화 창시 칸딘스키 연작전

    ◎미 LA 시립미술관서 새달 3일까지 열려/1910∼1939년 콤포지션 변화 한눈에/습작·부분화·스케치 등 밑그림도 전시 현대 추상회화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1866 ∼ 1944)가 생전에 남긴 「구성(콤퍼지션)」 연작을 한데 모은 전시회 「칸딘스키­콤퍼지션」이 미국 LA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초 개막,9월 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로 일컬어지는 「무제」가 발표된 1910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5년전인 1939년까지 그린 「콤퍼지션」 10점 가운데 남아있는 7점(3점은 2차대전중 소실)과 콤퍼지션 제작을 위한 드로잉,스케치 등을 처음으로 총집결해 보여준다. 칸딘스키에 관해서라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82년과 83년,85년 3차례에 걸쳐 열린 전시회를 통해 미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미 보여 줄 것은 다 보여 준 것으로 여겨졌었다.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뮌헨시절,파리시절,러시아와 바우하우스 시절로 나누었던 앞서의 전시회들과는 색다른 예술적체험을 미술애호가들에게 선사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회화부문 부수석 큐레이터인 막달레나 다브로프스키가 기획한 이번 전시회는 3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콤퍼지션」 시리즈를 통해 기하학적 추상의 발전단계를 보여준다.또 많은 습작과 부분화,스케치는 그의 작품이 즉흥적인 붓질과 색의 나열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형태에 대한 분석과 준비작업,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임을 확인시켜 준다. 초기 작품인 콤퍼지션 Ⅳ∼Ⅵ은 바그너의 오페라와 독일의 아름다운 전래동화,코사크 지방의 영웅담,옛 러시아의 민요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1차대전이 시작돼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인 1913년 제작된 콤퍼지션 Ⅶ은 이전의 작품보다 도상들이 더욱 복잡해 지고 있으나 구조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연구에 연구,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30점에 가까운 드로잉과 습작을 거친 결과다. 독일로 돌아와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던 시기에 그려진 콤퍼지션 Ⅷ(1923년작)에서는 기하학적 형태와 여백의 사용등이 두드러진다. 그는 전쟁과 혁명 등을 거친 후 마지막 체류지인 파리 근교에 머물면서 36년과 39년 콤퍼지션 Ⅸ와 Ⅹ를 완성했다.특히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콤퍼지션 Ⅹ(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예술관 소장)은 바탕을 검은 색으로 처리한 점이 독특하다.그에게 있어 검은 색은 다른 모든 색을 끌어안는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모태와 같아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미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 다듬어 가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가 담긴 긴 서사시와 같은 전시회였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일,영에 전쟁만행 사과/무라야마 총리 서한

    【런던 AFP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2차대전중 영국군 포로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고 영국정부가 11일 발표했다. 이번 무라야마 총리의 서한은 2차대전 후 일본이 영국정부에 보낸 최초의 공식사과문이다. ◎일선 사과서한 부인 【도쿄 AFP 로이터 연합】 한편 무랴야마 일총리는 이날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공식사과했다는 영국정부의 발표와 관련,메이저총리에게 서한을 전달한 것은 확인했으나 「사과서한」은 아니었다고 이를 부인했다.
  • 일 전·현 각료/잇단 「침략 미화」 망언

    ◎오쿠노 전 법무·시마무라 문부상 발언 파문/“동아 해방전쟁” “사과 불필요” 강변/“대일신뢰 저해행위… 유감”­우리 정부 【도쿄 외신 종합】 일본의 전현직 각료들이 또다시 2차대전당시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망언을 해 비난을 사고 있다.오쿠노 세이스케 일본 전법무상(82)은 9일 2차대전중 일본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미국의 세뇌로 인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결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쿠노는 지지통신과의 회견에서 『일부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이(전쟁중 일본군에 의해 당한 고통과 관련해) 말하는 것에 동정을 보이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 참전자이며 지난 80년 법무상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미국­영국 동맹군에 의해 전쟁 선포를 강요당해 방어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백인에 의해 식민지화된 대동아를 해방,안정된 삶을 가져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연정의 내각개편으로 새로 취임한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문부상(자민당)도 9일 과거 전쟁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망언을 늘어 놓았다. 시마무라 문부상은 무라야마 총리로부터 임명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로 침략을 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전제한뒤 『전쟁에서 이긴 측이 상대방을 침략했다고 말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강변했다. 한편 이에 앞서 무라야마 일본총리는 새로 입각한 각료들에게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관련해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줄 것을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외무부 “우려” 표명 외무부는 9일 시마무라 일본 문부상의 침략전쟁 호도 발언에 대해 『일본 정치인에 의한 거듭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아시아 근린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신뢰를 크게 저해하는 행위』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외무부 당국자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에 불가결한 요소임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상이 이러한 역사인식을갖고 있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쿠즈바스 탄전/주인구 2백만… 절반이 광부(시베리아 대탐방:28)

    ◎석탄생산 연 1억2천만t,러 최대 산지/「광부파업」은 연례 행사… 생산량 감소 상오10시(현지시간은 하오1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가기 위해 노보시비르스크역을 출발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부터는 동시베리아가 시작된다.월요일 이어서인지 아니면 1주일 전부터 기차요금이 1백50%로 인상된 영향 탓인지 침대칸에는 취재팀 외에 다른 승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옆의 일반칸으로 가보니 그곳엔 빈자리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인상된 요금이 큰 부담을 준 게 틀림 없는 듯하다. 3시간여를 달려 열차는 서시베리아의 마지막 주인 케메로프스크주로 진입해 첫번째 역인 유르가에 도착했다.케메로프스크주는 러시아의 최대 석탄산지이다.주인구 2백만명중 절반이 광부이고 연간 생산량이 1억2천만t에 달하는 러시아 최대 석탄산지다.케메로프스크는 행정구역상의 이름이고 경제적으로는 「쿠즈네초프 바신」,줄여서 「쿠즈바스」탄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소연방 해체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의 돈바스가 1천명의 광부를 거느린 최대 석탄산지였으나 우크라이나가 떨어져나간 뒤 러시아산업에 있어 이 쿠즈바스의 중요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석탄산업 중요성 실감 유르가역은 톰강에 위치한 석탄교역로의 도시다.케메로보시,노보 쿠즈네츠크시 등 남부 쿠즈바스탄전에 위치한 모든 유명한 광산들이 모두 이 톰강을 끼고 있다.북부의 톰스크는 톰강에서 따온 이름이다.유르가역은 톰강이 교차하는 외에 시베리아 순환철도가 톰스크∼쿠즈바스탄전을 잇는 산업철도와 만나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존재하는 순수 철도역이다.쿠즈바스 탄전에서 캐낸 석탄들은 일부는 이 유르가역을 거쳐 노보시비르스크 등으로 수송되고 나머지 일부는 남부 탄전쪽에서 서쪽으로 직접 연결되는 산업철도를 이용해 곧바로 노보시비르스크로 운반된다. 주경계를 넘기 전 노보시비르스크시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까지는 시외곽과 도심을 연결하는 순환철도가 교외의 절반이상을 감싸고 있었다.다차에 다녀오는 시민들이 역마다 모여서 교외선을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모두들 크고작은 보퉁이를 잔뜩 들고 있다.나무 묘목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노보시비르스크 시민들에게 이 교외순환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바로 동쪽에 접한 케메로프스크주에 있는 러시아최대의 석탄산지 쿠즈바스탄전 때문이다.이곳에서 생산된 석탄의 수송열차들과 알타이공화국등 주변 동서시베리아의 산업지대에서 드나드는 화물열차들 때문에 기존의 시베리아철도는 거의 포화상태가 돼있어 시민들이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그래서 시외곽 반경 1백여㎞를 따라 이 반원형 순환선이 건설된 것이다. 주경계를 넘고 유르가역을 지나 톰강을 건너기 직전,푯말에 쓰인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3천4백49㎞를 가리키고있다.케메로프스크주는 19 43년까지는 노보시비르스크주의 일부였다.그러다 2차대전중 이곳의 전시 석탄수송체계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분리시킨 것이다.케메로보를 행정수도로 삼아 남부 탄전에서 캐낸 석탄을 신속히 서쪽의 노보시비르스크등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지금도 이 케메로프주의 행정수도는 케메로보이다.그러나 실질적인 산업수도는 남쪽의 노보쿠즈네츠크다.주민수도 그쪽이 더 많다. 노보쿠즈네츠크는 주산업이 석탄채광이지만 대규모의 메탈 콤비나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1차로 메탈 콤비나트가 건설된 것은 스탈린시절이었다.당시 노보쿠즈네츠크의 이름은 스탈린스크시였다.스탈린은 이곳에 「우랄스크­쿠즈네츠크」메탈 콤비나트를 건설해 우랄로 연결시켰다.그뒤 2차대전 종전 후 2차로 메탈 콤비나트가 추가로 건설됐다.따라서 현재 시베리아의 메탈수도는 바로 이 노보쿠즈네츠크다. ○2차대전때 행정 분리 그외 케메로보시와 동쪽의 메주두레친스크시(톰강과 우사강 등 두 강을 낀 도시라는 뜻)에도 메탈 콤비나트가 건설돼 있다.따라서 쿠즈바스지대는 석탄중심지일 뿐 아니라 메탈,화학,낙농,임업 등의 주산지로 러시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산업지대인 셈이다. 유르가 다음 역은 타이가역이다.실제로 타이가지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다.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왼쪽 차창으로 타이가의 남단 경계가 펼쳐진다.타이가는 이곳에서 북으로 2천㎞나 계속 이어진다.오른쪽 차창으로는 멀리 곳곳에 탄전과산더미 같이 쌓아놓은 석탄더미들이 지나간다.기차는 쿠즈바스탄전의 북부지대를 관통해 지나간다.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1시에 도착한 유르가역에는 남부의 노보쿠즈네츠크에서 출발한 석탄화물차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역시 화차수가 1백개는 됨직하다.유르가역은 북부 톰스크와 남부의 석탄산지를 잇는 남북 철도가 시베리아철도와 만나는 교차역이어서 항상 이렇게 대기하는 석탄차들이 있고 역의 규모도 마을 규모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크다. ○엄청난 역 규모에 놀라 지금은 기능이 크게 떨어졌지만 1900년부터 혁명전까지 쿠즈바스탄전 전체 석탄생산량의 98%를 차지했던 곳이다.남쪽의 노보쿠즈네츠크지대가 본격개발되면서 지금은 탄광기능을 거의 잃고 열차역 구실만 하는 정도가 됐지만 한때 중부의 케메로보,남부의 노보쿠즈네츠크와 함께 쿠즈바스탄전의 중추를 이루었던 곳이다. 이렇듯 중요한 탄전지대이지만 쿠즈바스는 러시아의 만성 광부파업으로 유명하기도 하다.채탄기계와 기자재의 부족,광부들의 누적된 임금체불,거기다 개선되지 않는관료들의 병폐,세금제도 등이 겹쳐 80년대 이후 줄곧 생산량 감소를 겪고 있기도 하다. 옛날 타타르인들의 이름이 분명한 「야야」라는 이름의 작은 강이 지난다.폭 30m의 야야강 맑은 물에 낚시를 드리운 마을 남자들의 모습이 한가롭다.체료무하꽃이 마을어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맞은편 철로위로 1백개는 됨직한 화차에 석탄이 가득 실려 지나간다.이어서 칭기즈칸의 러시아 침략사를 쓴 작가로 유명한 치빌리헨의 출생지인 마린스크역이 지나간다.주민 4만2천명에 불과한 소도시이나 16 98년에 건설돼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케메로보주의 마지막 큰 역이다.
  • 원폭 제1목표는 고쿠라시/나가사키 투하는 제2선택

    ◎미 국방부 문서 비화/NYT 보도/B29 3회 비행… 구름덮여 공격지점 변경/첫 플루토늄 원폭 세례… 「우라늄탄」 능가 구름이 한 도시의 운명을 갈라놓았다.2차대전 당시 일본 규슈의 고쿠라시가 구름낀 날씨 덕에 원폭투하 세례를 받지 않고 대신 나가사키가 2차 원폭투하 대상지가 됐기 때문이다.뉴욕타임즈가 나가사키 원폭투하일(9일)을 맞아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지 3일 후인 1945년 8월9일 상오 10시30분.미국의 B29 폭격기 「복스 카」(흑맥주 차)는 고쿠라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세차례나 고쿠라 상공을 선회했으나 조종사 커미트 비핸은 구름이 깔려 지상의 목표물을 눈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비핸은 고쿠라 상공에서 목표물인 거대한 군수공장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에만 원폭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고쿠라 상공을 비행할 때 포격기의 폭탄적재실은 원폭투하를 위해 열려 있었고 조종석의 계기들은 투하준비 완료 상태를 알리고 있었다.비핸은 원폭의 섬광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보안경도 쓰고 있는상태였다.그는 군수공장 옆을 흐르는 강과 고쿠라의 건물들을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었으나 군수공장단지 자체는 구름에 가려 있었다.비핸은 할 수 없이 고쿠라를 포기하고 제2의 원폭투하 대상지인 나가사키를 향했다.나가사키 상공에도 부분적으로 구름이 깔려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결국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원폭은 나가사키에 내려졌고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폭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고쿠라에는 일본 서부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일본의 미사일,항공기 등 일본군의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었다.이 도시에서는 또 화학무기가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기도 했다.비밀해제된 미 국방부 1급 군사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고쿠라에서 화학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1945년 7월2일 이미 알고 있었다.
  • 일의 2차대전 책임/15일 공식 사과할듯

    ◎무라야마,독 사과연설 재찬중” 【도쿄 로이터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가 지난 50년동안의 침묵을 깨고 오는 15일 2차세계대전 패전일에 일본의 전쟁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총리는 7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독일대통령과 회담에서 바이츠제커대통령이 지난 85년 독일의 전쟁책임에 관해서 사과했던 역사적인 연설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무라야마총리의 이같은 발언과 지난 6일 히로시마(광도)에서 열린 원폭투하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히라오카 다카시(평강경) 히로시마 시장의 전쟁사과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일본이 오는 15일 패전기념 행사에서 마침내 공식 사과할 것이라는 추측이 높아지고 있다. 바이츠제커는 2차대전 종전 40주년을 맞아 행한 이 연설에서 『종전은 독일의 패배가 아니라 나치학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하고 『과거지사에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은 현재에도 눈이 머는 법』이라고 경고했었다.
  •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동경 강연 요지

    ◎일본은 침략의 역사에 눈을 닫지 말라/과거는 역사이자 현재… 진실된 속죄로 불신고리 끊어야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전독일대통령은 7일 서울신문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도쿄신문의 초청으로 도쿄 국립교육회관에서 「독일과 일본의 전후 50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가졌다.「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바이츠체커 전대통령은 이날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해 일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다음은 2시간여에 걸친 강연 내용의 요약. 독일과 일본 양국의 운명에는 유사점이 많다.양국이 금세기 전반에 군사적 수단으로 세력을 확대하려 했던 점,대부분의 이웃나라와 전쟁상태에 있었던 점,50년 전에 끝난 제2차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한 점,그후는 특히 경제면에서 극적인 부흥을 이룩했다는 점,따라서 「전쟁의 패자에서 평화의 승리자」로 불리고 있다는 점은 같다. ○독 전후처리와 대조적 그러나 양국은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우선 국가 규모의 차이이다.일본은 인구및 경제력에서 독일보다 50% 정도 웃돈다.또 독일은 대륙의 중앙에위치하고 있지만 일본은 섬나라이다.섬나라 사람들은 독자색이 짙은 단일전통,역사,문화를 갖고 있어 이웃 대륙의 여러 민족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갖고 있다.독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독일은 유럽이라는 다민족대륙의 가운데 놓여 있다.독일 역사는 외부로부터 내부로,내부로부터 외부로 부단히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역사였다.독일과 국경을 맞댄 나라는 9개국으로 러시아를 제외하면 세계 제1이다. 이처럼 양국에는 전혀 다른 고유의 특징이 있지만 양국민이 2차대전의 결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를 비교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과거는 역사다.그러나 과거는 단순히 역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역사이자 현재인 것은 아닌가.과거 해석은 역사가의 일이지만 그러나 정치가 또는 정신적 지도자들도 참가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나는 있다고 확신한다. 만일 책임있는 입장의 독일 정치지도자가 「전시중의 행위는 역사이므로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든지 또는 할 수 없다면」,「전쟁을 시작한 것이 누구인지,자국의 군대가 타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판단을 주저한다든지」,「타국에 대한 공격을 자위였다고 해석하는 일이 있다면」 현재의 우리에게 중대한 외교상의 결과로 되고 말 것이다. 이웃나라로부터 정치적,윤리적 판단력을 결여했다고 비판을 받는다든지 아직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는 위험한 나라로 보일 것이다. 불신 해소가 중요하지만 불신이 생긴 것은 전쟁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독일인이라면 확실하게 깨우치고 있다.불신 해소에 성공하는 것,이것이야말로 현재와 장래에 걸쳐 사활적 관심사인 것이다. ○「원폭」이 면죄부 아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정치적 책임인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 위험을 안고 있다. 독일은 이런 통찰로부터 적절하게 책임있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어려운 길을 오랫동안 걸어왔다.우선 19 68년 「청년들의 반란」으로 과거의 범죄가 용서없이 논의의 대상이 됐다.또 이에 앞서 기독교회가 나치즘 지배 아래서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여기에 저항할 용기가 없었던 점을 고백했다.여기에 아데나워 총리가 50년대 나치 희생자의유족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거액의 보상정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독일로서는 전쟁 패배의 날이 독재로부터 해방의 날인 것이다.독일연방공화국이 솔직히 과거를 다룬 것은 국제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유럽공동체의 가맹도,독일연방군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폴란드와도 조약이 체결됐다.정력적인 청소년교류계획도 추진되고 있다.인간으로서,국민으로서 화해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서양의 영향을 받아들이기는 하면서도 종속에 빠지지 않았다.일본은 현격히 강해졌고 국민으로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게 됐다.19세기 일본은 정신적 의미에서는 아시아로부터 등을 돌렸다.동시에 이 지역에서 군사적,정치적인 권력을 확대해 나갔다.이러저러한 군사적 분쟁을 일으켰다. 독일에 있어 나치는 이상한 시기,단절이었지만 일본은 전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면서도 종교적인 기반,천황제,또 국가체제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일본에서는 종전됐을 때나 그 후나 전통과 계속성이 강력히 유지되고 있다.거기에다 독일과 일본이 다른 것은 원폭 피폭 경험이다.미국이 무방비의 일본 일반시민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유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대측이 옳지 않은 일을 범했더라도 우리에게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솔직히 과거 다뤄야 전쟁에서의 죄와 옳지 않았던 일들을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역사의 진실에 눈을 닫아서는 안된다.이 진실은 파사현정,새로운 상호 신뢰를 일으켜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때로는 사죄가 필요하지만 거짓으로 꾸미지 않은 사죄가 아니면 효과가 없다.마음으로부터 사죄가 아니면 차라리 그만두어야 한다.또 독일의 경험으로는 보상의 행동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말보다도 크게 효과적이다.적극적으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독·일 양국민의 내외의 과제의 해결에 있어서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5백만명 살상 대형 가스탄 미,2차전때 일에 살포 계획”

    ◎영 「선데이」지 보도 【런던 교도 연합】 미국은 2차대전중 일본에 5백여만명을 죽일 수 있는 대규모 가스 무기 공격을 계획했었다고 영국의 「메일 온 선데이」지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안으로 가스공격을 계획했었다며 공격대상에는 도쿄와 히로시마,나가사키등 25개 도시가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군사 전문가 2명이 입수한 미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미군기들은 공격 초기 15일동안 5만6천5백83t의 가스탄을 투하할 계획이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은 가스탄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상오 8시쯤 투하할 생각이었다며 미국은 그 이후에도 모든 목표물들이 파괴될 때까지 매달 2만3천9백35t의 가스탄을 투하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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