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차대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예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유망주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롤모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대여 투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34
  • 우솔레 시비르스코예 소금요양원(시베리아 대탐방:54)

    ◎지하 암반서 퍼올린 소금물로 질병 치료/1ℓ에 염분 45g·유황 등 천연성분 45종/진흙에 섞어 몸에 발라… 소아마비 등 특효/한해 1만명 치료가능… 노인·전상자들엔 무료 시베리아 중부 이르쿠츠크에서 앙가라강을 따라 1백㎞쯤 가면 우솔레 시비르스코예란 도시가 나타난다. 취재진은 이 도시가 암염생산으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차를 대절해 이곳에 도착했다.이 암염을 응용해 갖가지 질병을 고친다는 정보는 취재진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곧 도심 한 복판을 조금 벗어나 있는 「사나토리(휴양지라는 뜻)우솔레 시비르스코예」에 도착했다.간판은 휴양지였으나 요양원 같은 곳이었다.이곳 1층에는 5∼13세 정도의 어린 환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좁은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간혹 나이든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이들은 갖가지 병을 가진 환자였다.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에서부터 허리를 쓰지 못하는 아이들,선천적으로 뼈가 무른 아이들도 있었는 데 어른들은 대개 혈압과 류머티즘·부인병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었다. ○소금물요법 죄수가 발견 의사의 진료를 받은 아이들이 어떤 치료를 받는 지 따라가 보았다.이들은 옷을 모두 벗고 칸칸이 마련된 욕탕속으로 각각 뛰어들었다.욕탕에는 이 지역 4백m 땅속에서 퍼올린 소금물이 담겨 있었다.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욕탕물의 온도가 39도정도에 이르도록 온도를 조절했다.이들은 30분동안 욕탕찜질을 하고 난뒤 다음 코스로 향했다.침상 20여개가 양쪽에 놓여져 있었다.탄산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한쪽 모서리에는 검은 빛깔의 진흙덩이를 담은 양동이가 여럿 보였다.이 어린 환자들이 베드에 눕자 간호사들이 이 진흙을 어린아이들의 환부에 발랐다.어떤 아이는 다리쪽에 진흙을 바르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눈에·팔에·전신에 바르는 등 진흙을 바르는 부위가 서로 달랐다.몸에 문제가 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진흙을 바른다는 것이 간호사들의 설명이었다. 이들 환자가 사용한 물과 진흙은 바로 병의 치료제였다.「신비의 소금물」 「신비의 흙」으로 불린 이 치료제에 가장 많이 담긴 것은 염화나트륨,그러니까 그냥 소금이었다.다만 소금의 성분이 여느 다른 지역과 좀 틀리다는 얘기다.예를 들면 이곳 지하에서 퍼올린 물에는 1ℓ에 45g정도의 염분이 들어있고 유황 마그네슘 브롬 리튬등 무려 45가지의 천연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치료에 쓰이는 진흙은 이곳에서 약 30㎞ 떨어진 한 늪지대에서 실어온 것이다.치료할 때는 이 진흙과 이곳에서 퍼올린 소금물을 섭씨 70도로 데워 버무린 뒤 사용한다.물론 몸에 바를 때는 섭씨 40도정도로 식힌 뒤 사용한다. 이런 식의 치료기법은 1826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당시 이곳에는 영국의 기술자들이 와 땅속에서 소금을 캐기 위해 파이프를 박고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당시는 소금이 귀했으므로 정부는 반정부활동가들인 데카브리스트를 포함,죄수들을 이곳 시베리아로 차출해 소금공장에서 일하도록 했다.지하 깊숙이 작업하면서 죄수들은 갖가지 질병에 걸렸다.특별히 병원이 따로 없던 이들 죄수는 파상풍 때문에 죽는 일도 많았다.한 죄수가 일하다 다친 상처부위에 이곳의 진흙을 발라보았다.그러자 신비하게도 상처는 빠른 시간에아물었다. ○1회 최대 450명 치료 20년뒤인 1848년.니콜라이 1세때 이곳 시정부는 이곳에 정식 요양원을 세우고 진료에 들어갔다.이것이 「사나토리 우솔레 시비르스코예」의 탄생이다.이곳의 치료용 건물은 190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우솔레 시비르스코예」는 러시아말로 「소금이 있는 시베리아」라는 뜻이다.1회 최대 치료인원은 4백50명,연 1만명을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당시 파상풍이 고쳐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러시아 전역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각종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모여들었다.이들 환자 가운데 가장 치료가 잘되는 질병은 소아마비환자와 파상풍환자라고 요양원측은 말했다.이러한 질병말고도 심지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병 환자들도 이따금씩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취재진이 이곳을 방문하기 직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스웨덴의 30대 여성 두명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고 한다.이곳 요양원에서 만난 세르게이군(7)의 어머니(38)는 『여름방학을 이용,1년에 18일씩 3년동안 치료끝에 소아마비를 고쳤다』면서세르게이의 다리를 가리켰다.18일동안 입원치료비용은 1백50만루블,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원정도.연금을 타는 노인이나 전상자들은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요양원 원장인 마리나 자이체바씨(48)는 『2차대전 때 무려 1만3천7백여명의 전상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받고 나갔다』면서 『현재 이 요양원을 종합병원으로 바꾸기 위해 폴란드와의 합작을 추진중에 있다』고 말했다. ○의료용 소금 개발 박차 이곳 이웃에 있는 소금콤비나트의 역사는 소금휴양지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3백25년전인 1670년.당시 동쪽으로 진출하던 코자크들은 앙가라강줄기를 따라 이르쿠츠크지역을 가다 시커먼 물이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목격했는 데 이 지역이 바로 현재의 소금콤비나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이곳은 현재 깊이 1천4백m되는 곳에 파이프를 넣어 소금물을 퍼올리는데 1ℓ당 3백g의 소금이 포함돼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순도 99.9%의 이곳 소금은 지난 7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최고 식품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현재는 링거 주사약등 의료용 소금을개발하고 있다.이 콤비나트의 산하기관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소금연구소는 바로 소금을 의약용으로 쓸 수 있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레오니드 니콜라예비치 사장은 『소금의 순도가 좋아 몽골·노르웨이등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면서 『연간 13만t의 소금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1백년간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매장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곳.서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는 일반 저수조 물탱크청소용과 가축 사료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인다고 그는 말했다.이 콤비나트도 한국으로부터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현재 있는 시설들이 모두 스탈린 시대의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 영국의 자존심 「재규어 XJ6」/나인용(자동차 이야기)

    롤스로이스사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재규어사의 전신은 윌리엄 라이온즈의 스왈로즈사다.재규어란 이름은 당시 자동차 시리즈 이름으로 쓰이다가 2차대전후 회사명이 됐다. 벤츠 S클래스,BMW 7시리즈와 함께 세계 3대 프레스티지 세단인 재규어사의 XJ시리즈는 지난 68년 탄생했다.73년 시리즈 Ⅱ를 거쳐 79년 시리즈 Ⅲ,86년에는 XJ40으로,그리고 지난해에는 XJ6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XJ40은 종래의 재규어 이미지를 탈피하여 각이 진 스타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이는 재규어사의 경영악화를 불렀고 결국 미국 포드사에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됐다. 포드사는 재규어의 변신을 꾀한다.가장 재규어다운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XJ6가 그것이다.포효하는 재규어의 후드 마스코트는 사라졌지만 4등식 원형 헤드램프와 램프의 형상에 따라 주름진 보닛의 볼륨,꽁지가 낮게 빠진 후면부의 형상은 모방할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다. 프레스티지 세단으로는 다소 낮은 지붕,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바디라인,그러나 그속에 감추어진 여유와 스포티함은 재규어의매력이다. 재규어의 멋은 외장뿐 아니라 내장 곳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전자장비를 최대한 절제하였고 모든 부품과 편의 장비는 수작업으로 처리해 숙련공들의 손끝에서 배어나는 섬세함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개방감이 뛰어난 후석 윈도우는 일상적 풍경들조차 파노라마 영화를 보듯 신선한 감동마저 주고있다.포드사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지만 아직도 옛 재규어의 명성과 맛이 배어 있다.
  • “북한 수해구호품 전달,버나드 크리셔 방북 보고

    ◎“북 식량난 심각… 50만명 아사 직면/신의주일대 논 아직 토사에 뒤덮여/향후 석달이 고비… 1인 배급 연150㎏ 『앞으로 3개월 이내에 획기적인 식량구호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50만명 정도의 북한주민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최근 방북,수재 구호품을 전달하고 온 버나드 크리셔 뉴스위크지 전도쿄지국장이 전한 북한 식량난의 현주소다.그는 8일 하오 세종문화회관에서 방북중 목격한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상을 직접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로 생생히 공개했다.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북한동포를 위한 기도회 및 수해보고회」석상에서였다.그와의 일문일답 요지는 다음과 같다. ­방북중 북한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가.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는 유엔아동기금·국제적십자사등 거의 모든 국제기구에 홍수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을 요청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그리고 내가 구호품을 북한주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시 어떠한 제지도 없었다. ­눈으로 본 북한의 수해 실태는. ▲신의주 일대의 논들은 아직도 거의 토사로 뒤덮여 있다.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평소 3.5m인 수위가 8.8m로 높아지는 바람에 유실된 논밭을 복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직접 체감한 북한주민들의 식량난은 어느 정도인가. ▲수해피해가 극심한 황해도 은파와 린산,평북 신의주등에는 종전에는 하루 9백60g이었으나 요즈음엔 그 절반도 안되는 4백15g으로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그나마 매달 1,3주째마다 이뤄지는 식량배급 스케줄도 잘 안지켜지는 것 같았다.북한전역의 연간 1인당 식량배급량도 3백40㎏에서 1백50㎏으로 줄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주민들이 다른 일상생활상의 어려움은 없었는가. ▲내가 방문한 한 농가는 방이 2개,부엌이 하나였으나 조명이라곤 25W짜리 알전구 하나밖에 없었다.북한의 심각한 유류난을 감안해 내가 갖고간 구호물자를 트럭으로 현장으로 실어나르는 데도 2백달러 상당의 휘발유를 나 스스로 부담했다. 크리셔씨는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을 통한 국제적 구호요청 활동을 펴고 있는 인물.유태인인 그는 2차대전 당시 동족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면서 언젠가 인도적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했던 것이 이번에 대북 구호활동에 나선 직접 동기였다면서 구호금을 모아 내년 1월이나 2월초에 2차 방북에 나설 뜻을 밝혔다.
  • 독 의회,4천명 「보」 파병 승인/전후 최대규모

    ◎나치 점령지 파견은 처음 【본 AP 연합】 독일 의회는 6일 옛 유고에 나토 평화이행군의 일원으로 병력 4천명을 파견키로 결정함으로써 독일군은 2차대전 후 최대 규모의 해외파병을 맞게 됐다. 독일군은 이미 유엔군의 옛 유고 평화유지작전을 지원해 왔으나 나치가 점령했던 이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키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하원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보스니아에 파병하는 것을 방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가운데 파병안을 찬성 5백43,반대 1백7표로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이날 표결에서 야당인 사민당 의원들과 평화주의 노선의 녹색당원 다수가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3당 연정의 파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7일 1차 병력 1백70명이 항공편으로 사라예보로 출발,나토사령부 설치 활동에 들어간다.
  • 미 저명언론인 제임스 레스턴 사망

    ◎퓰리처상 두번 받아… 얄타협정문 특종 보도/워터게이트사건 등 권력부패 단호히 비판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타임스신문의 명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이 6일 사망했다.향년 86세.레스턴옹은 지난 87년 평생을 몸담았던 뉴욕타임스신문에 마지막 칼럼을 쓴뒤 89년 자신의 80회 생일때 은퇴해 그동안 오랜 숙환에 시달려왔다.그는 한마디로 세계 언론인들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지난 반세기 동안 세기적인 특종을 가장 많이 뽑아낸 언론인.사실 언론인으로서의 명성에 이 이상의 찬사는 필요없을 것이다.그는 2차대전 종전시 연합군의 유엔창설 결정을 특종보도해 첫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56년 미대통령선거에서의 뛰어난 취재로 두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한국전 휴전계획 특종보도를 비롯,얄타비밀협정문 사본을 미 국무부에서 빼내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한 장본인도 그였다. 인간성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통찰력,권력의 본질을 관통해내는 촌철살인의 명문들은 지금도 언론인들에게는고전으로 통한다.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되자 그는 『미국은 한 젊은 대통령의 죽음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에 울고 있다.지금 미국은 과거에 있었던 이 나라의 모든 기쁨을 덮고도 남을 만큼 슬프다』고 썼다. 그는 언론인의 역할을 단순한 정보전달뿐 아니라 칼럼을 통해 비판,대안 제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기도 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언론에도 보편화됐지만 지난 70년 뉴욕타임스신문에 「제임스 레스턴 칼럼」이라는 자신의 기명칼럼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이가 바로 그였다.이후 89년 마지막 칼럼을 쓸때까지 그는 아름답고 준열한 문체로 전세계의 여론 주도층 독자들을 사로잡아왔었다.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도 그는 누구보다도 단호했다.레이건대통령의 이란­콘트라사건이 공개됐을 때 그는 『인기는 사람을 타락시킨다.레이건은 자기가 인기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착각했다』고 썼고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 때는 『말로는 헌법을 준수했지만 실제로 그가 지킨 헌법조항은 하나도 없다』고 통박했다. 그는 19 09년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1세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으며 32년 오하이오주에서 첫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AP통신의 스포츠기자를 거쳐 38년 뉴욕타임스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53년부터 11년간 이 신문의 워싱턴지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최전성기를 구가한데 이어 명칼럼니스트로서 세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었다.
  • 일 보수단체 과거사 부인광고 물의

    ◎“남경학살은 허구·종군위안부는 창녀” 주장/청년진보당,620만엔 들여 NYT게재 계획 일본의 보수단체인 청년진보당은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 54주년을 맞아 미 뉴욕타임스에 일본이 2차대전중 잘못을 저질렀음을 전면부정하는 전면광고를 게재할 계획이라고 이 단체 회원들이 밝혔다. 「친애하는 미국의 친구들에게」라는 글로 시작되는 이 광고는 ▲진주만 공습은 기습공격이 아니었으며 ▲남경대학살은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은 허구이며 ▲종군위안부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일본군을 따라온 창녀들이었다라는 등 억지를 쓰고 있다. 이 광고는 진주만 공습이 기습공격이 아니라는 증거로 일본군 항공모함이 일본해군기를 휘날리며 하와이로 항해하는 사진을 제시하는 한편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는 사진을 통해 양국민이 서로 잘 지냈다고 말하면서 이 사진이 남경대학살은 허구임을 입증해주는 증거라고 주장. 이 단체의 사이토 신지 회장은 이같은 광고를 싣게 된 것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광고비는 6백20만엔(약 4천8백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진보당은 94년3월 결성된 단체로 일본 전국에 걸쳐 1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유엔,적국조항 삭제/독·일 등 7개국 대상

    【유엔본부 UPI 연합】 유엔법률위원회는 일본과 독일 등을 「적국」으로 규정한 조항을 유엔헌장에서 삭제하는 절차에 들어가기로 29일 결정했다. 유엔헌장에는 일본과 독일을 포함해 제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루마니아,이탈리아,헝가리 및 불가리아 등 7개국이 적국으로 규정되어 있다. 적국 조항은 일본과 독일의 삭제 요구에도 불구,지난 50년간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일본이 내년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편으로 상임이사국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적국 조항의 개정 필요성도 높아졌다. 유엔의 헌장 개정은 내년 봄쯤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녹색댐」 보전 모든것에 우선한다/신동식 논설위원(서울논단)

    「물은 어디서 오는가.빗물이 주 원천이다.비가 필요면적에 내려야 하고 그곳에 숲이 있어 머금어 주어야 한다」 독일 쾰른지역 수도국에서 바로 얼마전 있었던 한 물 관계 세미나에서 다시 들은 빗물과 숲 관련 문제 첫 마디다.나무 잘 가꾸기로 소문난 독일이지만 수원지 주변과 곳곳의 산지와 구릉지 일대에 독일가문비나무를 주로해서 형성된 숲은 대단하다.나무 한그루 간벌하는데도 해당 공무원의 심사와 입회가 있어야 할 정도로 수목관리 또한 엄격하다.쾰른시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수도국 급수지 주변도 수원보전지구로 지정되어 반경 2km 주변에서는 풀 한포기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고 있다.독일인들이 2차대전 패전후 가장 뼈아프게 감수한 수모로 산림훼손을 꼽았다고 한다.전쟁으로 파괴된 숲도 가슴아픈 일인데 승전국 일부에서 『독일의 부는 바로 숲에서 나온다』며 그나마 남은 아름드리 숲을 손댄 것을 지금도 잊지않고 있다는 것이다.숲은 독일인들에게 마시는 물과 공기를 공급하는 생명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숲은 세계산림학계에서 「녹색댐」으로 부르고 있다.숲이 물을 저류하여 내보내는 기능이 인공댐을 능가하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숲이 물을 함유하려면 숲이 깊고 건강해야한다.그 산지 토양에 맞는 나무와 풀이 오랜 연륜을 거치며 낙엽지고 부식하고 뿌리뻗어 기공을 만들고 미생물을 번식케 하여 토양층을 깊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빗물을 땅속 깊이까지 스며들게 할수 있다는 것이다.독일이나 스웨덴 캐나다 미국등 산림상이 넓고 깊은 나라에서 아직도 그많은 산림자원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공들여 가꾸는 것은 그 담수능력 때문이다. 산림학계에 따르면 우리 산지 임상은 아직 빈약하다.그간 녹화사업으로 대충 푸른 옷은 입었지만 수령 30∼40년생이 대부분이고 지속적인 가꾸기 소홀로 아직도 빗물을 깊게 저장할수 있는 수종과 토양층이 형성되지 못했다고 한다.일부 천연 그대로 남아있는 깊은 산은 담수기능이 있어 그나마 우리 강수량의 일부를 저장, 수자원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우리는 현재 전국토에 내리는 강수량의 23%만 쓰고 있다고 한다.우리국토에 내리는 연평균 강수량은 1천2백76㎜로 전세계 연평균 강수량 7백30㎜에 비하면 비교적 풍부한 비혜택을 보고있는 셈이지만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인공댐을 만들어 가두고는 있으나 인공댐은 수몰지구가 생기고 환경적교란을 일으키는등 한계가 있다.세계가 요즘 인공댐보다는 녹색댐에 물을 가두는 쪽을 택하는 추세에 있는 것을 유의하면 우리 산림지 보전은 생명수원 지키기로 중요시 해야 한다. 산림청은 얼마전 수량부족에 근원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으로 한강 낙동강 등 5대강 유역 산림지 1백15만9천㏊를 특별관리권역으로 정하여 이 지역의 수원 함양기능을 높이는 산림종합관리계획을 수립,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5대강 유역 산림의 녹색댐 기능을 높이기 위해 수원함량이 높은 상수리 굴참나무등 참나무류와 자작나무류등을 조림하고 천연림 보육사업을 실행하여 수원함량을 더욱 높이는 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한다고 했다.그런데 지방자치가 되면서 각시·도가 너도 나도 수익사업 명목으로 산림훼손 우려가 큰개발사업을 구상,발표하고 있다.더구나 제주개발특별법,폐광지역 지원특별법에 이어 국제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지원특별법까지 만들어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을 시·도지사에게 넘겨주기로한 최근의 국회 의원입법안 의결은 자칫 그나마 남아있는 천연녹색댐에 큰 훼손을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이다.이미 국제대회를 이유로 전북 덕유산이 정상에 육박한 스키슬로프 건설로 자연훼손을 당한 사례도 있다.강원도 평창군 발왕산에 국제대회를 이유로 대규모 스키슬로프를 건설하고 있는 업체도 정상의 주목군락등 천연산림지를 위협하고있어 많은 환경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산지는 한번 파괴되면 회복하는데 빨라야 60년∼2백년이 걸린다.산지 토양층은 10년에 겨우 0.1㎜씩 회복되기 때문이다.현재 우리강 거의는 수량부족에 직면해 있다.산림지보전이 모든 것에 우선돼야 한다.
  • 「반인류 범죄」 처벌에 시효없다/과거청산 외국선 어떻게 했나

    ◎유럽/나치전범 86년까지 6,479명 단죄­독일/2차대전 유태인 학살 투비에 종신형­프랑스 집단학살등의 반인류 범죄를 처벌하는데는 시한이 없다.특히 2차대전당시 인류를 학살하고 괴롭힌 전범들에 대해서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반인류범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미·영·불·소 등 4개국이 2차대전 전범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45년 11월20일 개설한 이 특별법정은 지난 20일로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뉘른베르크법정이 열리자 히틀러의 측근인 헤스를 비롯해 24명의 나치 지도급인사를 처벌됐으며 46년 10월1일까지 1년 가까이 4백8명의 전범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다. 독일은 특히 56년부터 루드스비히에 나치전범연구소를 세워 전쟁자료를 추적,구체적 죄목을 입증해 전범을 꾸준히 처벌해왔다.이에따라 86년까지 모두 6천4백79명이 날카로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중 12명이 사형이 선고됐고 1백60명은 종신형,나머지 6천1백9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7천5백명 정도의 나치전범이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 등지에 불안에 떨면서 숨어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들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어 시한이 걸리기는 해도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엔은 반인류범을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종교·인종적인 이유에서 학대하거나 약탈행위·암살·포로나 인질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로 규정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이같은 반인류범을 시한없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프랑스는 64년12월 반인류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치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형법을 개정해 집단학살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비에.투비에는 리옹 등지에서 나치 비밀경찰에 협조해 유태인 추방과 학살등에 관여한 혐의로 45년9월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잠적해 버렸다.사면을 받는 등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89년 붙잡혀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유태인 어린이50여명을 학살한 클라우스 바르비도 반인류적인 행위자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리옹지역의 게슈타포 지휘자였던 바르비는 52년 궐석재판을 받았다가 지난 83년 붙잡혀 4년뒤 종신형을 받았다. 스페인도 15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인권 학대 등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뉘른베르크 특별법정 이후에도 반인류범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93년 결의안 808조에 따라 유고내전에 대한 특별법정을 헤이그에 설치,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을 처벌하고 있다.또 르완다내전에 대한 국제법정이 지난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설치돼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단죄를 가하고 있다. 이런 법정들은 특정사안을 다루는 특별법정이지만 항구적인 법정도 있다.유엔 사법재판소는 45년 헤이그에 설치된 항구법정이고 유럽연합(EU)은 51년 룩셈부르크에 사법재판소를 두고 있다.EU는 이것도 모자라 59년 스트라스부르에 인권법정을 마련해 반인류범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회,67년 군부행위 쿠데타 규정 특별재판서 주모자들 무죄징역 그리스의 쿠데타주모자 처벌은 비교적 순조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2차대전 종전과 함께 부활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67년.쿠데타 주역은 예오리오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이끄는 영관급장교 24명.이들은 콘스탄틴 2세를 폐위시킨 뒤 68년 독재헌법을 마련,7년간의 군사정권이 계속됐다. 74년 키프로스사태가 군사정권 몰락에 크게 작용했다.키프로스공화국내 터키계 주민과 그리스계 주민 사이에 주도권 쟁탈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리스군을 파병하기 위해 군정실권자들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그동안의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군장성과 민간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명목상 군정대통령을 맡고 있던 기지키스 장군이 7월22일 야당지도자들과 민선 이양에 합의했다.당황한 군정측은 군대를 동원,아테네시를 포위하는 무력위협에 나섰고 시내 의사당 앞에 군정에 반대하는 수십만 시민이 모여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연출했다.결국 대세에 굴복한 군정측이 3일만에 손을 들었고 7월24일 파리에 망명했던 야당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금의환양했다. 그해 11월 총리직에 오른 카라만리스는 곧바로 67년 쿠데타주역들을 재판에 회부했다.75년초 의회는 67년 군부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했다.군정기간중 60여명이 독재에 항거하다 숨졌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같은해 8월 끝난 특별재판에서 쿠데타주모자인 파파도풀로스와 마카레조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고 여타 주모자들에게 최고 사형에서 최하 2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이후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쿠데타주역들은 지금도 복역중이다. ◎남미/쿠데타 집권 전대통령 등 법정에­아르헨/인권탄압자 사면조건 범죄고백 받아­칠레 ▷아르헨티나◁ 76년4월 이자벨리타 페론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라울 알폰신 민선대통령이 취임하는 83년12월에 이르기까지 최소 1만3천여명의 동족을 좌파타도의 슬로건 아래 납치·살해(실종 9천여명 포함)했다.알폰신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군 최고지도층 절반을 은퇴시키는 군개혁을 실시한 뒤 군부가 민정이양 4개월전 제정한 과거 10년간 군·경의 정치범죄에 대한 소급 사면법을 폐기,쿠데타주도의 혁명평의회 장군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쿠데타 장군들의 재판은 85년4월 시작돼 12월 혁명후 첫대통령 비델라 장군과 마세라 제독(종신형) 등 5명이 형을 받았고 4명은 석방됐다.포클랜드전쟁(82년) 당시의 갈티에리 대통령 등 3인혁명위원에 대한 재판은 따로 열려 갈티에리는 12년형을 받았다.그러나 알폰신정부는 87년 부분사면법을 통과시켜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3백70명의 군·경중 40명의 고위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석방했다. 89년7월 취임한 카를로스 메넴 새 대통령은 이전 페론당으로서 군부에게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군부집권시의 좌파대상 「추악한 전쟁」이나 민정 이후 쿠데타기도에 연루된 2백10명의 장교·하사관들을 89년10월 사면했다.그리고 90년12월 2차 대통령사면령을 통해 군부정권 1,2번째 대통령인 비델라,비올라 장군및 마세라제독 등 군부지도자들을 「국민화합」을 이유로 석방했다. 당시 「추악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두명이 올 2월과 4월에 약물에 마취된 좌파인사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최초로 고백하기도 했으나 1만여 동포살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칠레◁ 세계최초의 민선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아옌데를 살해하고 73년9월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국민투표 신임미달(43%)로 90년3월 파트리시오 아일윈 민선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으나 자신이 오는 97년까지 육군참모총장에 재직할 수 있도록 했다.앞서 군부는 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73∼78년 좌파대상 정치범죄를 일괄사면시켰으며 민정이양하면서 상원의 5분의1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17년간의 군부독재 아래서 자행된 인권탄압 범죄를 법적으로 처리할 힘이 부족한 민선정부는 90년4월 「진실과 화해 전국위원회」를 구성,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범죄고백을 받고,모든 피해를 확인·적시하는 문서작성에 들어갔다.91년3월 아일윈대통령은 2천2백79명의 정치박해 사망자에 관한 1천쪽 분량의 보고서 완성을 TV방송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화합」을 강조했다.여기서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명확히 기록했으나 가해자는 이름 대신 소속기관을 거명하는데 그쳤다.칠레의 이같은 과거청산 방식은 동유럽,남미,남아공 등 14개국이 모방하는 세계적 모델로 예시되곤 한다. 한편 76년 미 워싱턴에서 전외무장관을 살해한 범죄는 군부의 사면법에서도 제외되었는데 92년11월 장기조사 결과 군부의 정치탄압 실행기관인 국가정보국 소행으로 밝혀졌고 당시 국장인 콘트레라스 퇴임장군과 참모장 에스피노사 현준장은 각각 7,6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선고는 올 5월 최고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피노체트 장군과 장교들은 콘트레라스 장군을 해군병원으로 피신시켜 에스피노사 준장만 현재 수감중이다. ◎남아공/「진실 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 창설/과거 인종차별 범죄행위 조사키로 지난 7월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진실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만델라는 이 위원회가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숱한 인권탄압 등 국가의 주도 아래 벌어진 범죄들을 조사·단죄하기 위해 창설되며 창설 후 18개월간의 한시적 활동을 통해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모든 범죄행위들을 철저히 조사,남아공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국민들은 대부분 이 위원회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인종차별정책에 따른 피해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현재 남아공의 연정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나 국민당도 모두 겉으로는 이 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이 위원회의 활동을 전폭 지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범죄행위들이 정말로 철저히 파헤쳐지면 과거의 백인 소수정부를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 부통령의 국민당측은 물론 만델라 대통령의 ANC측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부 관측통들은과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가 도덕적인 사기 앙양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며 과거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에 있어 어떤 예외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만델라 대통령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며 과거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는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통일안보 정상외교(박화진 칼럼)

    우리가 부러워하는 89년의 독일통일이 20년전인 69년10월 시작된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의 동방정책(OST POLITIK)에서 비롯된 것임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다.독소불가침조약체결,할슈타인 원칙포기,폴란드와의 수교,유엔동시가입,오데르나이제강 국경선 인정 등 주로 옛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서독식 통일외교였다.내각책임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외교 하나만은 마지막 통일의 순간까지 일관되게 은근과 끈기로,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이어졌다. 독일은 2차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으로서 분단의 많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수있는 나라였다.서독의 통일외교는 그런 자각과 인식의 전제아래 전개되었다.전승국인 미영불 특히 옛소련을 상대로 하는 사죄와 반성 그리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의 회유외교라 할수있는 것이었다.특히 옛소련 동유럽에 대한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지원도 병행되었다.통일을 전후한 옛소련지원만도 약2백5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독일통일반대를 무마한 회유비용이었다. 독일과는 달리 우리의 분단은 김영삼 대통령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지적했듯이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패배한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에 근원적인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할수있다.말하자면 책임을 지고 분단의 고통을 겪었어야할 당사자는 일본이었던 것이다.그것을 일본 아닌 우리가 지게된 것이며 미·소 이데올로기대립이라는 직접적인 분단원인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분단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있다. 한반도분단의 주된 원인 및 책임은 이처럼 대부분이 일본과 미국·러시아등에 있다고 할수있다.우리의 통일외교는 이같은 역사인식을 기초로 해야한다.미·일·중·러등 이른바 한반도주변 4강을 상대로 그러한 인식을 공유시키며 한반도분단의 부당성·비도덕성 그리고 시대변화에 따른 무의미성을 강조하고 통일의 당연한 권리를 기회있을때마다 주장·설득하며 한국주도통일에 협조하고 방해하지 않도록 유도해나가야 할것이다. 동시에 한반도통일이 그들 모두에게 해보다는 득이 될것임을 강조하는 현실적노력도 중요하다.지리적으로 멀리떨어진 미국·러시아와는 달리 인접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통일,말하자면 「인구 7천만에 자유민주체제의 선진개도국 한국의 출현」이라는 주변현상의 변화에 민감할수밖에 없다.통일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결코 적대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일찍이 안중근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역설했듯이 강력한 한국이 동북아평화와 안정의 기본임을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일본과 중국의 가교요 완충지대로서 그리고 21세기아시아태평양시대의 번영을 주도할 통일한국 출현의 필요성을 납득시켜야 할것이다. 노태우 전대통령 사건의 와중에 제대로 주목받지못한 아쉬움을 남긴 김영삼 대통령의 지난 1주간에 걸친 중·일 상대 정상외교와 일·중 정상들의 한반도정책다짐 및 약속은 우리 통일안보외교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는 것이었다.강택민 중국주석방한은 그것만으로도 우리통일안보외교의 의미 심장한 승리라 할수있는 것이지만 정전체제와 한반도문제 당사자해결원칙에 대한 강주석의 지지표명 또한 중요성과로 평가할수있다.망언파동에도 불구한 무라야마일본총리의 대북수교3원칙(수교전경제지원않고,남북관계진전을 고려하며,한·일관계에 손상없게한다)보장도 대통령의 통일정상외교가 거둔 큰 성과라 하지 않을수없다. 우리통일외교도 서독 이상의 인내와 지속성을 갖고 꾸준히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전개해나가야할 것이다.
  • 「분쟁」 평화해결 선례가 큰 성과/보스니아협정 가조인의 의미

    ◎미 강력 개입… 분담막고 2개 실체인정/난제 수두룩… 완전 평화정착까진 먼길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유혈분쟁으로 「패자만이 있는 전쟁」으로 불려오던 보스니아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의 극적인 타결은 4년여 동안 전쟁의 참화에서 고통을 겪어 온 보스니아인들뿐 아니라 그동안 중재에 나섰던 모든 국가들에도 가장 훌륭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내전 당사자인 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 3국의 대통령들에 의해 가조인된 보스니아평화협정은 오는 12월 중순 파리에서 공식 조인될 예정으로 있어 큰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한 보스니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 가닥이 잡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협정은 유고연방의 해체라는 냉전 유산에서 비롯된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 선례로 미국의 강력한 중재로 이뤄졌기 때문에 탈냉전 이후 신국제정치질서를 위한 미국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고 있다. 평화협정의 주된 내용은 ▲국제적 승인에 따른 현국경선내 단일국가로의 보스니아 유지 ▲보스니아(연방)국가의 회교­크로아티아연방과 세르비아계공화국 2개의 정치적 실체로 구성 ▲사라예보의 통합수도화 ▲내년중 선거를 통한 대통령 선출및 의회 구성 ▲난민들의 고향 귀환 허용 ▲국제민간경찰의 보스니아인의 인권문제 감독 ▲나토의 지휘를 받는 6만명의 평화유지군 배치등으로 돼 있다. 평화협정은 느슨한 연방정부체제이긴 하나 보스니아의 분단을 막고 하나의 국가체제에 합의했다는 점이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으며 또한 다자간 집단토의를 통한 합의도출이라는 새로운 평화회담의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권위가 약하고 국가 구성체인 보스니아 회교도와 세르비아계의 적대감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스니아라는 국가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더욱이 평화협정이 곧 보스니아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과거에도 92년과 93년 두차례의 평화협정이 체결됐었으나 수일후에 깨진 선례가 있다.이 때문에 세번째 평화협정이 가조인됐지만 성급한 낙관을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다만한가지 이번 협정이 다른 것은 과거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때문에 희망적이라는 주장이다.보스니아에 배치될 평화유지군 6만명중 3분의1인 2만명을 미군으로 충당케 돼 있어 사실상 미국이 앞으로 보스니아평화를 직접 책임지게 됐기 때문이다. 미군파병을 위해 의회승인이라는 또하나의 고비가 놓여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번 협정은 클린턴대통령에게 팔레스타인자치협정에 이어 또하나의 외교적 승리를 안겨준 셈이 됐다.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세계의 평화를 주도해가는 「강력한 미국」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심어준 대통령으로서의 입지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 보스니아 평화회담의 주역들

    ◎내전사주 핵심인물… 최근 협상 적극 추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대세르비아건설」을 목표로 대리인들을 통해 보스니아 내전을 사주해 온 인물로 지목돼 왔으나 최근 신유고연방에 대한 유엔제재 해제를 위해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과격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크로아티아를 승인하는 등 평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41년생.변호사 출신으로 옛 유고연방 붕괴 후 92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91년 정계복귀… 전쟁통해 세계 굴복시켜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지난달 크로아티아 총선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강력한 국내지지를 업고 이번 데이턴 평화협상에 임했다.22년 자그레브 태생.2차대전에 유격대로 참전한 뒤 반공산주의자로 변신,축출됐다가 90년 「크로아티아민주동맹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정계에 복귀,세르비아와의 영토회복 전쟁을 통해 세르비아에 압박을 가해 평화협상에 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91년 세계에 납치됐다 유엔중재로 석방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독실한 회교도로 반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두차례 투옥된 적이 있으며 지난 4년간의 내전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보스니아를 이끌어 왔다.25년생.89년 회교계 정당을 창당,90년 총선에서 승리했다.91년 유고연방 붕괴가 시작될 당시 세르비아계에 납치됐다 유엔중재로 석방된 적도 있다. ◎세계 최강경파… 현재 전범재판소에 기소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독립을 선언한 92년 이후 강경한 입장을 고수,유엔과 국제사회에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데이턴평화협상이 끝나갈 무렵 대세르비아 건설 희망이 사라졌음을 시인.45년 몬테네그로 사브니크 태생.정신과의사 출신으로 현재 전범으로 유엔재판소에 기소돼 있다. ◎탁월한 회교력으로 내전종식 중재 역할 ▲리처드 홀브룩 미국 국무차관보=강력하고 적극적인 외교로 보스니아 내전 세력들 사이에서 평화협정을 이끌어 낸 중재자.2개월간 보스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를 직접 방문하고 지난 3주일 동안 데이턴에서 내전세력 지도자들을 달래고 위협하면서 협상을 주도.41년생.68∼69년 베트남전 평화협상 때도 미국대표로 활약했고 지난해 국무부 유럽·캐나다담당 차관보로 임명됐다.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 두진카항 유빙(시베리아 대 탐방:50)

    ◎“이조트 례도혼”… 굉음속 축제 4∼5일/거대한 빙산 깨지자 쇄빙선 고동 울리며 출항/올핸 예년보다 5일 빨라… 강둑에 구경꾼 몰려 북위 70도 선상의 두진카는 시베리아 북극 해상루트의 전초기지다.시베리아에서 캐내거나 생산한 많은 자원은 바로 이곳 항구에서 유럽으로,아시아로 혹은 러시아 남부지방으로 옮겨진다.두진카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약 10분정도가면 길이가 수십㎞ 되는 높은 강둑이 나타난다. 강둑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백개의 대형크레인이다.수출입화물을 배에 옮겨 싣기 위해 타이미르자치주 당국이 오래전부터 설치해놓은 것이다. 취재팀은 유명한 두진카의 유빙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두진카의 유빙이 유명한 것은 알래스카의 그것처럼 날씨가 풀리면서 단순히 커다란 얼음이 녹아 떨어져 나가는 것과는 다르다.우선 유빙이 시작되기전 시베리안 특유의 「세레모니」가 있다.당국은 3∼4일전 포구가까이 내려가 있던 대형크레인들을 모두 강둑으로 올려놓는다.유빙이 시작되면서 수면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매년 6월6∼8일께 시작 주민들은 매년 6월 6∼8일을 전후해 서로 입에서 입으로 유빙의 시작을 알려준다.지난 수십년간 6,7,8일 가운데 반드시 어느 한 날에 유빙은 시작된다.유빙이 시작되면 두진카 사람들은 하던 일들을 팽개치고 모두 강둑으로 모여든다.근로자들이나 공무원 주부 어린아이 할 것없이 『이조트 례도혼(유빙이 시작된다)』이라고 외치며 모여든다.남자들의 손에는 대개 보드카와 안주류들이 쥐어져 있다.다른 가족들은 깨져나가는 얼음사이로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대를 갖고 온다.넨슈족등 일부 소수민족들은 마을단위로 몰려와 가무와 함께 그들만의 제사를 지낸다. 유빙은 「탁­탁­탁」하는 얼음 쪼개지는 굉장한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순간 거대한 동산만한 얼음이 북극 바다를 향해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한다.얼음이 깨져나감과 동시에 대기중이던 작은 쇄빙선을 앞세운 화물선들이 커다란 뱃고동을 울리며 북극으로 향하기 시작한다.예니세이강 남쪽에서 올라와 대기하고 있던 배들이다.배들은 강위에서 줄서 대기하고 있다 일렬로 빠져나간다.한행렬은 유럽쪽으로 향하는 화물선으로 무르만스크를 경유해 나아가고 다른 행렬은 북극으로 향한 다음 동쪽으로 기수를 틀어 베링해로 나아간다.9월 말까지 약 3개월동안만 배들은 활동한다.이후는 다시 얼기 때문이다. ○“유빙 못보면 재앙” 믿어 유빙은 4∼5일동안 진행되고 이 기간동안 마을 사람들은 틈날 때마다 이곳으로 와 「한마당」을 펼친다.이곳에서 만난 니콜라이 페트로파블로비치씨(29)는 『유빙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유빙을 쳐다보며 마음속의 기도를 한다』면서 『유빙을 보지못하고 지내면 반드시 재산이나 건강상의 재앙이 뒤따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유빙은 지난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일찍 시작됐다.예년 같으면 6월 6∼8일안에 유빙이 시작됐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5일이나 빠른 2일부터 시작된 것이다.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상당수가 올해 유빙을 목격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첫 유빙이 빨리 시작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않았었다.타이미르 주청사에서 만난 야코비프 부주지사는 『유빙이처음으로 일찍 시작된 것은 한국기자가 이곳에 처음 유빙취재를 온 것처럼 내가 이곳에 정착한 22년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그는 『예상을 뛰어넘어 유빙이 빨리 시작돼 사진도 찍어두지 못했다』며 『유빙으로 강밑바닥에서 잠자던 물고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낚시나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두진카의 봄이 보통 5월에 시작되는데 올해는 3월말부터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면서 시베리아의 「이상기온」을 지적했다.유빙이 시작돼 녹은 얼음은 두진카 항구 수면을 16m나 높인다.이곳 유빙이 과학적으로 관측을 시작한지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조기에 시작된 것은 「북극의 만년빙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있다」는 것으로 장기간에 걸친 지구온난화현상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곳 기상관측소의 알렉산드르 페트로브소장은 『이제 지구상에 영구툰드라지대는 사라지고 있다』면서『10년전부터 과거에는 녹지 않았던 빙산들이 서서히 녹고 있는 것이 최근 현상이며 녹는 속도도 빨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능력 높이 평가 취재진은 포구의 배를 빌려 빙산 「카바츠코예」 주위를 돌았다.아직 산더미 같은 빙산이 무너져 흐르고 있었고 떠다니는 빙산에 이름모를 새들이 앉았다 날아가곤 했다.선장 카르카비 블라디미르 예브게네비치씨(32)는 『두진카의 유일한 관광자원이 유빙』이라면서 『그러나 몇해전부터 언제 시작됐는지 모르게 싱겁게 끝나곤 한다』고 말했다. 두진카지역 취재를 마치고 노릴스크로 나오기 위해 기차를 탔다.금속광산이 즐비한 노릴스크와 해상운송의 출발점인 두진카는 약 70㎞ 거리로 기차길로 연결돼 있다.30대 초반의 여차장은 한 사람당 9백루블(2백원정도)하는 기차삯을 받지 않으려 했다.오랜만에 그녀가 외국인을 본 탓이기도 했지만 동양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다.그녀는 두진카항구주식회사의 사장이 한씨성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것과 한국인의 능력을 이곳에서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자신의 남편가족들은 독일계로 2차대전전까지 볼가강 이웃에서 살고 있었는데 대전이 시작되면서 스탈린이강제로 이곳에 정착시켰다는 역사적 사실도 진지하게 얘기해주었다.혹한과 혹서의 날씨가 교차하는 지역개발을 위해 자생력과 독립심이 강한 독일계 민족을 스탈린은 많이 이용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된 얘기였다.이 때문에 지금도 관광철만 되면 독일과 불가리아 폴란드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휴일을 어떻게 보냅니까』 『집에서 하루종일 TV만 보지요.영화관도 없고… 정말 따분해요』 지난 70여년을 공산주의 그늘아래 갇혀 산 두진카의 주민들.개방은 됐어도 아직까지 그들의 가장 큰 오락은 1년에 한번 「유빙구경」이 전부였다.
  • “86세 억만장자” 심플로트 “부의 비결”

    ◎끊임없는 노력/기발한 아이디어/잇따른 행운/감자 가공업서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총수까지/14세때 학업 중담… 말고기 삶는 기계 개발/술·담배 않고 70평생을 돈벌기에만 몰두 미국의 반도체 메이커인 「마이크론 테크놀러지」가 세계 반도체 업계의 새별로 등장하면서 이 회사를 이끄는 존 리처드 심플로트회장이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2년동안 34억달러를 벌어 마이크론을 미국 굴지의 반도체 업체로 키운 심플로트회장은 70년동안 부를 차곡차곡 쌓아온 86살의 억만장자.특히 하루 아침에 「컴퓨터 황제」 자리에 오른 빌 게이츠와 대비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성공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노력,행운등 부를 쌓는데 필요한 「3박자」가 서로 어우러져 엮어낸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는 지난 20년대 아이다호주 남부지역의 스네이크 리버라는 조그마한 웅덩이에서 오늘날의 부를 쌓는 「대어」를 낚아올리는 발판을 마련했다.80년대 맥도널드사에 감자 프렌치 프라이(튀김요리)의 50%를 공급하는 「농업제국」을 건설한데 이어,90년대에는 세계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첨단산업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외에도 광활한 감자밭과 도축장·화학공장·광산등도 보유하고 있어 그의 연봉은 1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심플로트회장은 1909년 미국 아이오와주 듀뷰케에서 태어났다.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살때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기계 개발에 몰두했다.그가 개발해낸 기계는 감자와 말고기를 으깨 삶는 보일러.6개월도 안돼 7천달러를 벌었다.첫번째 행운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의 개발활동은 계속됐다.두번째는 자동 감자선별기.아이다호의 감자선별 작업을 독점,처음으로 1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세번째 행운의 기계는 음식물 건조기.40년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던중 우연히 「낡아빠진」양파 건조기를 발견,바로 사들였다.당시 2차대전중이어서 군인들에게 감자를 공급,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네번째 작품은 감자 얼리는 기계이다.감자 냄새를 없애기 위해 데치고 얼리는 이 기계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착상이었다.60년대 중반 맥도널드사에 얼리는 프렌치 프라이 기술을 넘겨주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와의 인연은 우연히 이뤄졌다.마이크론은 법률가인 조 파킨슨과 쌍둥이인 워드 파킨슨의 동료 엔지니어그룹이 78년 설립했다.마이크론의 목표는 메모리반도체 칩인 64KD램을 향상시킨 새로운 형태의 칩을 개발하는 것.문제는 돈이었다.이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각자 자금을 내놓는 한편 심플로트에게도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그가 선뜻 거액의 자금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다. 81년 그의 자금을 종자돈으로 마이크론은 1천만달러의 설비자산을 가진 반도체 생산체제의 골격을 갖추며 이듬해부터 64KD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IBM과 마이크론을 제외한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D램의 생산을 중단할 참이었다.일본이 1년6개월만에 D램의 가격을 2달러에서 25센트까지 떨어뜨리는 덤핑전략을 구사하면서 물밀듯이 밀려온 탓이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심플로트의 편에 있었다.당시 레이건행정부가 일본의 반도체에 대해 3억달러의 긴급관세를 매겼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마이크론은 올해 매출액을 29억5천만달러,순이익 8억4천만달러로 잡고 있다.마이크론의 급성장은 심플로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낙관주의자인 그는 대용량·저비용의 경영이념이 철저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심플로트는 이처럼 사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했으나 여러번 스캔들에 휘말리고 가정적으로는 불행했다.76년 상품 선물시장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피소됐다.감자의 현물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단기 감자선물을 투매한 것으로 드러나 5만달러의 벌금과 1백40만달러의 소송비용을 물었다.77년에는 1백만달러의 회사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등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2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가정적으로는 알코올중독자이던 그의 아들은 당뇨병으로 죽었고 다른 자녀들도 제몫을 못하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이같은 역경도 심플로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그는 94년9월 당당히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의 총수자리에올랐다.
  • “일 제국주의 환상 못버렸다”/독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 보도

    ◎경제대국 되자 “한반도 식민지배 정당” 망언/「미군 성폭행」 분노하면서 정신대문제는 발뺌 일본지도자들의 계속 반복되는 망언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아직도 제국주의시대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가 15일 보도했다.다음은 「적대감을 조성하는 일본인들」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 요약이다. 지난 6개월 사이 벌써 3명의 일본각료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에토 다카미(강등륭미)전총무청장관도 그중의 한명이다.그는 일본의 한반도강점이 한반도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도 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한국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사임했다. 그러나 일본 우파언론과 자민당내 우파세력은 한국측의 민감한 반응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에토장관의 입장을 두둔했다.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강대해진 일본이 아직까지도 제국주의시대에 가졌던 강대국으로서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에 성공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국교정상화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지난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에 대해 사과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때 일본내에서는 그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지난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다시한번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과할 때도 연정파트너인 자민당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그이후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한·일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던 중 에토장관이 사임했다.그의 사임으로 김영삼대통령은 일본의 오사카(대판)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할 것이며 무라야마총리와의 정상회담도 예정대로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양국간에 우호적이고 신뢰적인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다. 한·일 양국은 지금 한·일합방의 합법성과 한반도분할에 대한 책임소재를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무라야마총리는 1910년에 체결된 한·일합방조약은 당시로서는 합법적인 조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역사가들은(일본인을 포함) 당시의 조약이 일본군의 강압에 의해 체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당시의 한·일합방조약이 한국민의 이익을 위해 체결된 합법적인 조약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2차대전때 히틀러가 프랑스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프랑스의 비시 꼭두각시정권과 체결한 조약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역사의 왜곡이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간에 한반도에는 학교·철도·항만등이 건설되었으나 한국인은 강제노동과 강제징집,그리고 한국여성은 정신대에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다.그리고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지배는 결국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한반도분할에 일본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무라야마총리도 시인했으나 일본내의 폭발적인 분노의 비판으로 곧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 일본열도는 최근 주일미군의 국민학생 성폭행사건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그러나 일본내 어느 언론도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정부가 7만여명의 한국인 정신대여성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온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 노씨 비자금 스위스예치 증거확보 한듯/검찰 공조수사 돌입의 의미

    ◎블법조성 사실 밝혀야 확인 가능/「예금」 알아내도 반환에는 문제많아 검찰은 3일 외무부를 통해 스위스 정부와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수사 공조를 위한 예비 작업에 들어갔다.검찰의 움직임은 공개적인 것이어서,검찰이 이미 노씨의 비자금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됐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대검 중수부 박상길 부장검사는 이날 외무부의 한태규 구주국장으로부터 「형사사건에 있어 국제사법 공조에 관한 스위스 연방법」을 넘겨받았다.주한 스위스대사관이 외무부에 제공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노씨의 비자금을 확인하는 절차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 그 절차는 크게 5가지 정도로 나눠지는데,매우 까다롭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이다. 검찰은 먼저,노씨가 「불법적인 자금을 스위스 어느 은행에 누구 명의로 얼마를 예치했는가」하는 식의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자료를 스위스 검찰에 제시해야 한다. 또 그 자료에 근거한 협조요청서를 스위스 연방 경찰청에 제출해야 한다.협조요청서는 스위스 공용어인 독일어,이탈리아어,혹은 불어로 작성돼야 한다.협조를 요청하는 사안이 범인의 체포 및 인도라면 협조요청서가 인터폴로 넘어가도록 되어있지만 노씨의 비자금 의혹과는 관계없는 조항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자국의 이익을 고려해 스위스 은행 계좌 정보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스위스 정부는 은행에 예치된 돈이 깨끗한가를 자체적으로 판단한다.예를들어 예치된 돈이 외환관리법을 위반했을 경우 스위스는 이를 불법적인 자금으로 보지 않는다.국익 우선이다.따라서 검찰로서는 노씨가 비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다고 확인될 경우,이 돈이 불법적으로 조성됐다는 사실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스위스 은행에서 비자금이 예치된 사실을 확인한다고 해도,그 자금이 우리나라로 반환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스위스 은행이 쉽게 내줄 이유가 없다.그럴 경우 어쩔 수 없이 우리정부는 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지난 2차대전 이전에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고 나치에 처형된 유태인의 상속자들이 최근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같이 복잡한 과정과 법률적인 대응의 필요성 때문에 정부는 수사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스위스 연방정부와의 연락업무등을 담당할 현지의 변호사를 고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산악 레포츠 오리엔티어링 가을야산 누비며 모험 즐긴다

    ◎지도·나침반 이용… 목표지점 찾아 “기쁨 만끽”/기업체들 사원연수·가족단위 놀이로 각광 「막바지 가을정취를 만끽하며 숲속을 누빈다」 산과 계곡을 벗삼아 지도와 나침반만 갖고 미지의 지점을 찾아 달리는 「오리엔티어링」(OL)은 사계절 레포츠지만 해마다 이맘 때면 더욱 각광받고 있다.요즘 대도시근교 산에는 주말을 이용한 동호인과 직장인이 몰려 위세가 한풀 꺾인 단풍과 낙엽 등으로 어우러진 막바지 가을정취 속에서 오리엔티어링을 즐기고 있다. OL은 대자연속에서 지도와 나침반만 이용,보물찾기하듯 지도위에 표시된 몇개의 지점(포스트)을 순서대로,가능한 한 빨리 찾아가야 하는 「생각하며 달리는 산악레포츠」. 거추장스러운 장비나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경기방법·독도법·나침반사용법 등 간단한 이론을 1시간정도 배우면 실전에 들어갈 수 있다. 출발 이후에는 오직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한 채 산야에서 외롭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숲속에 숨겨진 목표지점을 하나하나 찾을 때마다 단순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과 희열을 맛보게 된다. 출발점을 중심으로 반경 2㎞내에서 1시간정도 혼자 또는 짝을 지어 이뤄지나 가족단위 등 참가자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뛰면서 즐기기 때문에 높은 산보다도 표고 1백∼2백m이하의 야산이 좋다.우리나라는 구릉지가 많아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즐길 수 있다.수원 원천유원지,우이동 밤나무골,세곡동 구룡산,경기도 삼송리일대 등이 서울 인근에서 알려진 OL장소다. 레저이벤트업체 코니언의 우정균씨는 『OL은 미지의 지형에서 방향탐지능력을 익히고 정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 기업체의 신입사원 연수과정과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의 교육프로그램에도 도입돼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군사훈련의 하나로 시작된 오리엔티어링은 제2차대전이후 급속도로 전세계에 보급됐으며 국내에서는 87년 「한국OL연맹」이 창설되면서 본격화됐다.현재 동호인은 50여만명. 오리엔티어링은 포인트OL,스코어OL,라인OL 등이 있는데 포인트OL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최근에는 스키·패러글라이딩·보트·자전거·자동차 등을 이용한 신종 오리엔티어링을 즐기는 사람도 크게 늘고 있다.한국OL연맹(928­3940)·레저연합회(720­9575)·레저이벤트협회(722­8811)
  • 하와이→서울 김 대통령 여로

    ◎“한반도 평화에 바친 미 장병의 희생 고귀”/참전용사 45명과 함께 전몰장병 넋 위로 김영삼 대통령은 하와이 방문 이틀째인 26일 낮(한국시간 27일 상오·이하 현지시간) 펀치볼 국립묘지 헌화,미태평양사령부 방문,진주만 함대 시찰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김대통령은 27일밤 2박3일동안의 하와이 방문일정을 마치고 귀로에 올라 28일 하오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태평양사령부 방문◁ ○…김대통령은 이날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태평양사령부에 도착,의장대를 사열하고 리처드 매키사령관으로부터 안보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했다. 리처드 매키사령관의 영접을 받으며 연병장에 마련된 사열행사장으로 이동한 김대통령은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매키사령관과 나란히 육·해·공군과 해병대 지휘관 및 장병들을 사열했다. 매키사령관의 환영사에 이어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미국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미군장병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크게 기여했다』며 『특히 태평양사령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결정적 기여를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6·25전쟁을 통해,그리고 지난 40여년간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던 장병 여러분을 만나게 돼 기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사열행사에는 미측에서 매키사령관을 비롯 육·해·공군,해병대 등 각군 사령관과 주요 참모들이 부부동반으로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김대통령은 연설을 마친뒤 각군 사령관부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펀치볼 국립묘지 헌화◁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공식수행원 전원 및 한국전 참전용사 45명과 함께 호놀룰루의 펀치볼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전몰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국립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로 헌화비에 헌화한뒤 군악대의 애국가와 미국국가 연주속에 사열대에 등단,1분동안 2차대전 및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고 이어 21발의 조포가 발사되고 진혼곡이 연주됐다.
  • 클린턴­옐친 「보」 평화정착 공조 합의

    ◎양국 국방 27일 회동… 러 평화군 참여 논의/독,병력 4천명 보스니아 파견 결정 【하이드파크(미국 뉴욕) 로이터 AP 연합】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3일 새로 구성되는 보스니아 국제평화유지군에 러시아군을 참여시키기로하는등 보스니아 평화정착에 협력하기로 완전한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평화협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등 보스니아 평화정착 전망이 한층 밝아질 것으로 기대되고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은 이날 2차대전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미대통령의 자택에서 4시간에 걸린 회담을 마친 뒤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보스니아 평화정착방안에 「완전한 합의」를 보았으며 세부내용은 추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과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은 오는 27일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러시아군의 보스니아 국제평화유지군 참여방법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미국방부 관리들이 전했다. 【본 AFP 로이터 연합】 독일 정부는 24일 보스니아 평화협정을 감시할 국제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병력 4천명을 보스니아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2차대전이후 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역외지역 파병중 최대규모로 해외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헬무트 콜 총리 정부의 정책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폴커 뤼에 국방장관과 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에게이같은 결정사항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유렵사령부에 통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번에 파견되는 병력은 수송,병참,의료,기술 등 비전투요원들로 활동은 보스니아,주둔은 인근 크로아티아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관리들은 밝혔다. 관리들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정권을 지원했고 대부분 세르비아인들을 대상으로 나치가 저지른 대량 학살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우려,전투요원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클린턴·옐친 회동 결산/“미­러 우호 다짐” 상징적 의미/탈냉전시대 양국 역할 원칙론 확인/내년 대선 의식… 이견조정엔 눈감아 23일 뉴욕주 하이드 파크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대통령 자택에서 열린 클린턴 미대통령과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탈냉전 이후의 국제질서 수립에 있어 양국의 우호와 협조를 다짐하는 상징성에 더 큰 비중이 두어졌다. 특히 그동안 보스니아사태 해결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됨으로써 상당한 불만을 표출시켜왔던 러시아를 참여시키고 구유고 지역의 평화정착에 있어 러시아의 역할을 증대키로 하는등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의 영향력을 행사키로 하는 원론적인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이날 양국정상은 4시간동안의 회담을 마친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양국이 보스니아 평화정착방안에 「완전한 합의」를 보았음을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세부내용은 오는 27일 워싱턴에서 열릴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과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의 회담으로 넘겼다. 양국은 러시아군의 보스니아 국제평화유지군 파병과 관련,러시아는 자국군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휘통제를 받을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나토가 모든 참여병력의 지휘권을 갖고 평화협정의 감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팽팽한 입장대립을 보여왔다. 보스니아사태에 대한 논의로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된 이날 회담에서는 ▲START(전략무기감축회담)Ⅱ 협정을 위한 공동촉구 ▲핵안전을 위한 공동노력 ▲내년중 CTB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를 마무리짓기 위한 공동노력등에도 의견접근을 봤다고 클린턴대통령이 밝혔다. 양국정상이 「빌」,「보리스」등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며 한층 친밀감을 과시한 이날 정상회담은 두정상이 모두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재선을 위해 외교문제의 성과를 중요한 업적으로 내세워야할 비슷한 입장에서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이견은 덮어두고 우선 서둘러 원칙적인 합의를 재확인한 선에서 서로의 입장을 세워주기에 급급한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양국 국방장관회담이 진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원칙론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세부적 협력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