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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해협 사태」 미­중전문가 시각/에드윈 퓰너(기고)

    ◎“중의 대만공격은 미국안보 위협”/미 경고가 장래 위기로부터 미·아주를 구해 준다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미사일을 쏘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대만을 흔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대만이 23일 중국 4천여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치르는 것에 영향을 주려는 뜻이다.또 등소평시대가 곧 끝날 것을 우려한 중국과 그 차세대지도자들이 대만을 혼쭐내서 명성과 특전과 힘을 얻고자하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다.그중 하나는 사회 정치 경제 분야에서 대만이 이룬 성취에 중국이 다소간 당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의 이같은 대만 위협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지난 수년동안 우리 헤리티지재단은 중국과 대만에 대한 중장기전망을 수립해오고 있다.이 전망은 몇가지 기본사항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중 세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미국은 중국과 보다 많이 접촉하고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자유무역,시장개방,의견 및 정보 교환의 증대는 민주화에 일조를 한다.따라서 우리 재단은중국의 인권과 무역문제를 연계시키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또 우리는 중국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미국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중국을 파트너로서 세계경제에 동참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나라가 지키는 게임의 룰을 중국 또한 지켜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있다.이는 안보와 무역에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대만의 외교적 지위가 격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대만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세계무역기구(WTO)등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셋째,중국의 무력과시 행태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게 중대한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중국과 대만 간의 상황은 조만간 급변할수 있다.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부분이다.함부로 무기를 철거덕거리며 을러대는 중국의 행동은 바로 이런 인식에서 야기된 것이다.현재 미 정부의 정책과 태도를 보면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과 제일 친한 우방중의 하나인 대만을 함부로 위협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미행정부는 대만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명확히 알려야 한다.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 역시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해야 한다.중국이 대만 쪽으로 미사일을 쏘아대고 상륙훈련을 벌이는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가만이 있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알리기 위해 이 지역에서 해군훈련을 벌이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79년의 대만관계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에 대한 공격을 「서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미국이 우려해야 할 중대한 사건」으로 간주하도록 돼있다.따라서 클린턴대통령은 대만의 권리침해가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할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최혜국대우 철회에서 전면적 통상금지에까지 심대한 경제 제재·보복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중국에 분명히 해야 한다. 엄중한 경고는 일이 터지기전에 해야한다.일단 일이 터지고 나면 미국과 동아시아국가들은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중국의 대만 선제공격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는다해도 우방을 보호하는 미국의 능력이 엄청나게 위협받게 되기 때문에 필요시 전면적 군사개입 의지표명등의 조치가 당장 요구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붕 중국총리는 『2000년까지 대만문제를 완결짓는 일이 중국인민의 급선무』라고 말했다.강택민 국가주석이 참석한 지난해 중앙군사위 정책회의에서는 대만을 재복속시키는 일이 군의 중요한 역할로 강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정부는 이번 대만문제를 직시해야 한다.아니면 중국은 물론,아시아 전체가 미국을 약하게 볼 것이다. 위기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미국이 중국에 엄하게 따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미국이 대만을 지켜준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미국정부가 사전에 따금하게 경고하는 일은 장래의 위기로부터 미국과 아시아를 함께 구해준다. ◎조석흔 중 외교협회 상무이사/“「2개 중국 정책」이 양안긴장 초래”/북경의 통일의지 확고… 외무개입하면 사태 악화 대만해협의 최근 정세가 아시아·태평양국가들을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대만문제는 중국 국내문제이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대만해협 및 아·태지역의 평화·안정에 대한 우려때문에 관심을 갖는다.그러나 확실히 몇몇 국가들은 고의로,공개적으로 대만문제에 개입하고 중국의 평화적 조국통일을 가로막아 왔다. 우선 역사적으로 살펴보자.2차대전뒤 미국의 대규모 군사원조아래 내전을 도발한 국민당정부는 3년만에 괴멸,대만으로 쫓겨갔다.곧이은 한국전쟁을 빌미로 미국 트루먼정부는 7함대를 파견,대만을 보호했으며 「공동방위협정」을 체결,미군을 주둔시켰다.이것은 대만문제가 중국의 장기 내전이 남긴 문제임을 보여준다.미국의 지속적인 중국의 내정간섭및 직접 군대파견을 통한 보호로 대만문제의 최종 해결이 늦춰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70년대이후 중·미관계의 개선,발전에따라 대만문제도 변화됐다.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뒤 발표된 중·미 상해공동성명과 「8·17성명」및 수교성명등 3개성명(공보)은 두나라 관계의 기본원칙 및 근거가 됐다.중·미수교의 전제는 미·대만사이 외교관계단절및 「공동방위협정」폐기,대만주재 미군의 전면철수였다.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정부이며,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했다.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줄여가다가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만문제는 중·미수교와 중·미간 3개 공동성명 체결에도 불구,해결되지 않았다.3개 공동성명의 관철,집행을 둘러싼 곡절·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고 대만문제는 두나라를 괴롭히고 있다.중국내정에 대한 간섭과의 길고 힘든 투쟁이란 것을 말해준다. 최근 중국정부는 동해및 남해의 공해와 대만해협에서 미사일 발사훈련과 해·공군의 실탄연습을 벌였다.이 훈련은 중국군대의 수준및 작전능력향상을 위한 것이다.또 영토 및 주권보호를 위한 능력,결의를 중국이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이에대해 국제사회와 대만동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진정한 위험은 외국 지지를 업고 중국분열을 기도하는 자에게 있다.이것은 대만해협긴장의 최대 근원이다. 중국정부는 개혁개방이래 여러차례 「평화통일,1국양제」가 대만문제해결의 변화될수 없는 방침임을 밝혔다.이는 1개 주권국가내 다른 사회제도의 용인을 뜻한다.현재의 정치·법률질서 및 군대 보유도 향후 50년간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양안간 협력을 살펴보면 87년 15억달러이던 교역량이 95년 2백억달러를 넘었고 대만의 대륙투자액도 2백50억달러를 돌파했다.「조국」을 찾는 대만인들 수도 총8백10만명에 이르는등 근년 양안관계는 크게 발전해왔다. 이런 가운데 강택민 주석은 지난해초 양안통일 추진을 위한 8개항의 방안을 제의,1개 중국 전제아래 양안고위층의 회담및 적대상태 종식등을 요구했다.그러나 지난 6월 미국내 반중국세력의 부추김과 클린턴정부의 안배에따라 이등휘의 미국방문등 국제무대에서의 생존공간확보및 2개중국 정책은 노골화됐다.또 오는 23일의 총선을 거쳐 「민선」,「합법」이라는 구실로 중국분열의 여론과 조건을 강화하려하고 있다.이등휘가 계속 이 방향으로 나간다면 중국인민은 이에대한 투쟁을 중지할수 없다.중국정부는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거나 외국세력이 대만을 침략 혹은 대만문제에 개입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등휘가 대만독립의 길을 고수하거나 외국세력이 공개적으로 분열활동을 지지하고 개입할 경우,대만문제 해결을 위한 무력사용 위험성은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고 대만해협은 더욱 긴장이 높아질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정부는 두척의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에 진입,대만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개입하려 하고 있다.이는 중국내정에 간섭하는 것이다.이등휘의 중국분열 및 「대만」독립에대한 공개적 지지로 해협 긴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이는 중·미관계의 심각한 악화와 아·태지역의 불안정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이런 방향으로의 사태진전은 미국 이익에도 맞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만해협의 긴장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것인가. 해답은 대만당국자들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갈 것인가, 다시말해 「1개 중국원칙」으로 돌아올 것인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또 외부세력의 태도 및 행동도 향후 사태진전과 중요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 “일군 징병됐다 러서 수용소 생활”/중 교포,일서 보상 투쟁

    【도쿄 연합】 2차대전중 일본군으로 징병돼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던 중국거주 동포 오웅근씨(70·중국 하북대 교수)가 최근 일본을 방문,국적을 이유로 일본정부가 수용소에 같이 억류됐던 일본인들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며 보상투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길림성 태생인 오씨는 45년 8월 소련 국경부근의 일본군부대에 징병된 직후 포로로 잡혀 3년9개월 동안 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됐었다. 오씨는 지난 88년 일본정부가 평화기념사업 특별기금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그동안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18만명에게 은배 등의 위로품과 위로금(국채 10만엔분)을 지급했으면서도 일본국적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적조항을 적용,지급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0일 일본에 온 오씨는 그동안 국회의원·정당·노조 등을 방문,지급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제소도 고려중이다.
  • 대만정보국 “중,4차 훈련 가능성”/중­대만 현지표정

    ◎대만인 수만명 독립촉구 시위… 등 화형식도/중국 신문 “미 항모 실전경험 없는 골동품 ○…대만정부의 정보기구인 국가안전국은 16일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제4차 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가안전국 제4처 시자중 처장은 이날 대만 입법원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은 15일 TV 등을 통해 8일간의 미사일발사훈련 성공을 자화자찬.국영 TV는 이날 『인민해방군 미사일이 본토 산악지대의 이동발사대에서 밤하늘을 가르며 올라가는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고 『등소평 동지의 군건설에 관한 새 이념의 지도를 받는』 병사들이 미사일발사를 성공리에 마쳤다고 보도. ○…대만 마조도 방위사령부는 15일 중국군의 공습및 상륙작전에 대비,수백명의 병력을 동원해 방어훈련을 했으나 실탄사격은 자제.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에는 훈련공습경계경보가 발령돼 시민들이 방공시설로 대피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문과 창문을 걸어잠근 채 두문불출. ○…대만언론들은 다음주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례 대만·미국간 무기구매회담에서 대만정부가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잠수함,CH47 수송용헬기 등의 신속구매 승인을 미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보도. ○…수만명의 대만인들이 16일 중국의 군사위협에 반발하며 독립선언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가운데 일부 시위대는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91)의 모의화형식을 가졌다. 수도 대북을 비롯,주요 도시에서 수만명이 참여한 이날 시위는 대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것중 하나로 중국이 오는 23일 대만 총통선거 이후까지 대만근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데 자극받은 것이다. 「독립을 추구하는 세계 대만인연합」과 「대만대학교수협회」등 2개단체가 주도한 대북 시위에서 군중들은 「대만은 대만,중국은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공격과 재통일을 집어치워라」,「대만은 주권국」등의 구호를 외쳤다. ○…미국은 18일부터 4월30일까지 공격용 잠수함 1척,구축함 2척,급유함 1척 등 함정들이 마닐라 북서쪽 80㎞ 지점의 수빅항에 기항하도록 허용해달라고요청해 왔다고 필리핀군 고위관계자가 언급. ○…중국 문회보는 『대만해협에 배치된 미항모 인디펜던스와 니미츠호는 2차대전 이후 전혀 실전을 경험하지 않은 골동품』이라고 폄하.이 신문은 한 중국장교의 말을 인용,『미항모는 약소국은 겁줄 수 있지만 중국군의 작전은 막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해 중국군의 미항모에 대한 불안감을 간접적으로 시사. ○…최근 중국 해안가 인근 공항에는 군용기들이 모여들고 하루중 상당시간 동안 공항기능이 폐쇄되고 있으며 그나마 비행기 탑승객들은 비행기 창문을 가리도록 강요되고 있다고. ○…대만은 이등휘 총통의 지난해 방미 등 중국의 분노를 유발했던 것과 같은 대외정책을 앞으로 자제할지 모르나 유엔 복귀노력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복외교부장이 15일 말했다.그는 이총통이 가까운 장래에는 외국 지도자의 대만방문에 대한 답방으로만 외국을 여행할지 모른다고 말했다.그의 이같은 발언은 세계무대에서의 대만의 지위향상을 위한 이총통의 노력에 자극받아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고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 몽브리알 불 국제문제연 소장,책 펴내

    ◎“한국,21세기엔 중국과 가까워질것”/중,효율적 독재체제 계속 유지 전망/아주지역내 미 안보 역할 더욱 확대 21세기의 문턱에서 21세기의 국제정세를 전망하고 금세기의 역사를 평가한 프랑스 석학의 책이 발간돼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국제문제연구에서 최고권위자의 한명으로 꼽히는 국제문제연구소(IFRI)의 티에리 몽브리알 소장(서울신문 「지구촌칼럼」필진)이 낸 책은 「21세기의 첫 조건들」.그는 이 책에서 다음 세기에 한국이 통일을 이루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몽브리알 소장은 또 2백5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경제·외교·정치·군사적 측면에서 21세기를 내다보면서 『한국은 중국에 기울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와 함께 중국은 다음 세기에 효율적인 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게 그의 전망이다. 반관반민이나 국립에 가까운 IFRI를 79년 창설해 27년동안 이끌어오고 있는 몽브리알소장은 『아시아지역의 안보에서 이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역할은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그리고 오는 세기를 핵에너지가 지배하는 시대로 규정했다. 몽브리알 소장은 지난 45년 2차대전 이후를 20세기의 후반기로 보면서 후반기에는 국제관계가 크게 발전한 때라고 지적했다.88년 이란·이라크전 이후 중요한 국제적 분쟁은 없었다고 그는 분석하면서 이같은 발전은 유엔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혁신은 불황 따위로부터 탈출을 위한 적극적 정책인 「전방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서 유럽연합건설을 그 예로 들었다.이와 함게 「국가·민족」이라는 현상이 최근에 나타났으나 그것이 인류역사의 알파와 오메가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지난 60년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이 없었다면 베트남뿐 아니라 지구촌 다른 지역에서 레닌주의 전체주의자들의 팽창이 촉진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학계는 이 책이 프랑스뿐 아니라 해외의 많은 국가에서 번역돼 출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돌은 누구/최장수 원내총무·6선 상원의원 “화려”

    ◎61년 정계입문… 당선땐 최고령 미 대통령 기록/80·88년 이어 세번째 도전… “지번 부족” 지적도 올 7월로 73세가 되는 돌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 역사상 가장 늙은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그러나 엄청난 육체적 역경을 이겨낸 20대때 돌의 입지전적 의지는 지금도 그의 최대자산이다.2차대전 당시 육군소위로 참전했던 그는 종전을 한달 앞두고 평생을 반신불수의 불구자로 보낼 치명적 부상을 당했으나 39개월간의 철인적 재활노력끝에 다시 일어섰다.오른손을 완전히 못써 악수는 커녕 노트필기,넥타이매기,나이프로 음식을 써는 것조차 못했으나 84년부터 공화당 상원 최고지도자(원내총무)로 연속 뽑혀 최장기록을 세웠고 80,88년에 이어 공화당 대선지명전에 나섰다. 돌은 누구보다 의정경험이 풍부하지만 대국적 비전이 부족한 노정객일 뿐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61년 연방하원에 처음 진출했고 69년부터 상원의원이 됐다.상원 초선이면서도 당시 닉슨 대통령에게 잘 보여 당요직인 공화당전국위원회 위원장에 올랐으나 「다행히」 워터게이트사건 이전에 닉슨이 거리를 두었다.76년 카터·먼데일 민주당팀에 진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다.80년 레이건 후보에게 공화당지명전에서 참패했고 88년 부시 후보에게 역시 참패했다. 23세 아래인 클린턴 대통령과는 부자뻘인 「참전세대」와 「베이비붐세대」의 차이가 읽혀진다.돌 후보가 부상당한 1년 후인 46년 클린턴은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고향 캔자스주 러셀의 지방검사였던 돌이 하원에 진출한 2년 후인 63년 고등학생인 클린턴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돌이 첫 상원선거에 당선된 68년 클린턴은 베트남 파병을 피해 영국유학길에 올랐다.80년 클린턴은 주지사 재선에서 떨어졌고 돌은 첫 대선지명전에서 도중하차했다.88년 돌은 두번째 지명전에 나섰고 6년 전부터 다시 주지사에 올라있던 클린턴은 「뉴민주당」의 스타로 부상했다.그리고 92년 클린턴은 대통령에,돌은 6선의 상원의원에 각각 당선됐다. 돌 후보는 본래 의사를 지망했고 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갈 만큼 운동에 뛰어났었다.간호원 출신의 첫 부인과 헤어진 뒤 하버드대 변호사인 현 엘리자베스 여사와 75년 재혼했다.
  • 뒤라스 유작 「이게 다예요」 곧 출간

    ◎8순노파가 35세연하 연인에게 남긴 글/10개월간의 일기형식 메모 묶어/죽음 앞둔 초조감·삶의 욕망 표현 지난 3일 파리의 자택에서 82세로 유명을 달리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때맞춰 그의 유작 「이게 다예요(C’est Tout)」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 뒤라스의 이름을 듣고 그의 대표작을 선뜻 기억해낼 국내 독자는 많지 않은 게 그간의 실정.차라리 장 자크 아노감독의 영화 「연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프랑스소녀와 중국인 귀족간의 러브스토리를 떠올릴 법하다.뒤라스는 우리에겐 몇해전 상영된 이 영화의 원작자로 잘 알려졌고 같은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권위 공쿠르상도 받았다.그러나 이 지명도는 뒤라스를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는 데 오히려 손해를 끼쳐온 게 사실.그도 그럴 것이 「연인」의 그늘에 끝없이 변화와 젊음의 추구를 멈추지 않아온 뒤라스의 실험정신 대부분이 가려져온 것이다. 실제 「연인」에서처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몰락한 명문의 딸로 불행하게 자란 뒤라스는 속 깊은 곳에 가둬둔 뒤틀린 욕망과 자의식을 글로 털어놓은 작가다.그는 심리주의·누보로망·페미니즘 등을 넘나들며 50여년간 무수한 소설·희곡·시나리오 등을 썼다.하지만 국내엔 「연인」 이외에 「모데라토 칸타빌레」 「부영사」 등 몇몇 대표작이 번역돼 나와 있을 뿐이다.또한 그는 지극히 비사회적인 작품세계와는 대조적으로 2차대전 당시 고 미테랑대통령과 함께 레지스탕스로 싸웠는가 하면 평생 굵직한 사회문제에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같은 뒤라스가 육순을 넘긴 지난 80년 35세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얀 안드레아라는 애인을 만나 늙으막에 불꽃 같은 삶의 희열을 또한번 선사받은 것.말년의 15년간 뒤라스는 이같은 사랑의 기쁨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사경 사이에서 숨가쁜 삶을 살았다. 「이게 다예요」는 어느덧 죽음을 예리하게 감지한 뒤라스가 지난 94년11월부터 10여개월간 얀에게 남긴 일기형식의 메모를 묶은 것.죽음 앞에서의 초조함,글쓰기와 삶에 대한 욕망,그렇지만 결국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체념을 오가는 뒤라스의 의식세계가날 것으로 드러나 있다.「난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가 없어/이 두려움에다 무슨 이름 같은 걸 붙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아.아직은」「어떻게 해야 하나 좀더 살기 위해서,또 좀더 살기 위해서」 그런가 하면 말년까지 꺼지지 않은 창작의 영감을 얀에게서 얻었음을 고백하면서 (「네가 떠났을 때,난 너에 대해 아주 격렬히 썼어­내가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너는 모든 것의 저자야」) 「회자정리」의 안타까운 심사를 털어놓는다.(「그냥./하늘은 텅 비어 있다./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해째다./내가 아직 이름짓지 않은 남자./나를 떠날 어떤 남자」) 이 글을 옮긴 작가겸 저널리스트 고종석씨는 「자신이 직시하고 있는 그 제한된 삶의 시공간 속에서 사랑의 최대치를 이루는 데 남은 힘을」 쏟았다고 이 기록을 남긴 뒤라스를 평했다. 뒤라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현무 교수(서강대)는 『뒤라스는 죽음의 순간까지 쓰고 사랑한 젊음의 작가』라면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뒤라스에 대해 국내에서도 합당한 관심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맥아더 사령부 「일 영토규정」 문서/“독도는 일본땅 아니다”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2차대전의 패전국 일본을 통치했던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일본이 통치권 및 행정권을 행사할수 있는 영토규정」에 따르면 독도를 제주도·울릉도와 함께 일본의 통치권 밖에 있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맥아더 사령관의 명의로 발송한 이 문서는 제3항에서 『일본의 영토를 혼슈(본주) 등 4대 섬과 대마도·유구열도 등 1천여개의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울릉도와 독도,제주도는 이같은 일본의 영토에서 1차적으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통일 끈기있게 대처하자/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시론)

    지금 한국에서는 북한이 곧 붕괴하고 멀잖아 통일이 되리라 믿는 사람이 많다.이 지구위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이니만큼 통일의 열망도 그만큼 세다.갈라진 나라로는 대만·중국이 있다 해도 인구로 보나 크기로 보나 이들 나라는 분단국가라 하기 어렵다. 어떻든 우리도 월남이나 독일처럼 그렇게 소원하던대로 통일할 수 있을까.월남과 독일 통일의 공통점은 다른 한쪽이 저절로 「무너져 준 것」이다.전쟁을 치른 월남의 경우 사정이 전혀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미군 철수후인 75년,북쪽이 본격적으로 공격도 하기 전에 남쪽이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이다.그 대표적 예가 월남 중부의 요충지인 퀴논의 월남군이다.당시 퀴논에 포진해 있던 월남군 최정예부대 15만명이 월맹군 불과 7백명의 교란으로 군단장은 배를 타고 도망가고,사병은 뿔뿔이 흩어져 싸움 한번 해보지도 않고 부대가 내려앉은 것이다.지금도 하노이에선 그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쉽게 통일할 수 있었는지,신기해 하기만 하는 회고담을 늘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미 CIA 도이치국장이 얼마전 말한것처럼 북한도 월남이나 동독처럼 「붕괴」할 것인가.그리고 그 붕괴는 우리의 많은 사람들이 믿는대로 통일로 이어질 것인가. 그러나 분명히 나눠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그것은 바로 북한의 「붕괴」와 한반도의 「통일」이다.붕괴와 통일을 등식으로 볼 것이냐,안볼 것이냐이다.확실히 월남과 독일의 경우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그러면 우리도 그러한가.이 물음에 앞서 이들 나라는 어떻게 한쪽의 붕괴가 통일로 이어질 수 있었느냐의 풀이가 중요하다. 월남의 경우 남쪽 월남이 무너짐과 함께 그 정부를 떠받쳐줄 외부세력이 없었다는 것,그것이 통일의 필수요건이다.월남 스스로 붕괴했다 해도 외부세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새 정부를 세우고 군대를 재정비할 수 있다.그러나 월남은 2차대전 직후의 영국 세력도,그후의 프랑스 세력도,그리고 맨 마지막의 미국세력도 물러가고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였다.그 고립무원이 붕괴와 통일을 등식으로 만들어준 주요인이 된다. 이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다르지않다.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거대한 소련제국도 붕괴되었다.이 두 사건은 거의 동시에 전후해서 일어난다.동독을 밀어주고 재건해 줄 외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독일 또한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성취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러한가.우리는 불행히도 21세기 초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중국이 북한의 배후세력으로 버티고 있다.북한이 「붕괴」되면 그 뒤에 있는 중국이 월남의 미국이나,동독의 소련처럼 팔장을 끼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중국과 북한은 수비동맹을 맺고 있다.그 시효가 만료되는 올해 더 이를 여지도 없이 연장할 것이라고,지난번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의 중국당 총서기 강택민이 기자회견에서 토로한 바 있다. 도이치 국장의 말대로 북한의 붕괴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해도,김정일 체제가 무너지면 또다른 「김정일 체제」를 중국은 북한에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이는 러시아도 똑같이 시도할 것이라는 것은 오랜 역사의 경험에서 불을 보듯 명백하다.그렇지 않고 북한의 붕괴가 남에 의한 통일로 이어지려면,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이 통일이 이익이 돼야 한다.현재의 분단이라는 현상유지보다 미래의 통일이라는 현상타파가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이익이 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혹은 조건이 있다면 어떤 조건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통일 통일」하며,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자유주의·자본주의가 좋다고 그들에게 선전하지 않는 것이다.「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만큼 지금 통일의 장애요소는 없다.자유민주주의를 외쳐대는 것만큼 통일의 저해요인은 없다.적어도 통일에 관한한 우리는 독일이나 월남만큼 운이 좋은 나라가 못된다.특히 월남과 달리 우리 주변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강대국이 너무 많다.북한이 아무리 「거짓된 세뇌와 억압과 공포의 복합체 국가」라 해도,그것이 냉혹한 국제관계를 바꿔놓지는 못한다.북한이 아무리 국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는 무능력 집단이라 해도 그때문에 중국이 수비동맹을 폐기할 가능성은 없다. 너무 통일을 초조히 기다릴 필요가 없다.한 50년 더 끈기있게 참고 준비나 하자는 다짐이 가장 좋은 통일방안일지도 모른다.
  • 한인 징용자 일제 잔학행위 증언

    ◎일 법원서… “징용자 12명 무차별 처형” 【도쿄 교도 연합】 2차대전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한 한국인이 26일 도쿄지방법원에서 일본군의 잔학행위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짐꾼으로 일한 한국인 강인창씨(75)는 이날 도쿄지법에서 한국인 전쟁희생자유족단체가 제기한 사죄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16차공판(재판장 히나가타 요마쓰)에 증인으로 출석,일본군의 잔학행위에 관해 진술했다. 2차대전당시 일본군의 잔학행위와 관련,목격자가 일본 재판정에서 진술하기는 50여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증언에서 강씨는 1945년 3월 오키나와현 케라마섬에서 일본군 특공대의 짐꾼으로 일하던 한국인이 식량을 지급받지 못해 민가에 내려가 감자와 벼 등을 훔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같은 해 4월 일본군 병사가 이같은 이유로 한국인 짐꾼 12명을 처형했으며 『이들을 매장하라는 명령을 받고 따라가보니 동료들이 총격을 받고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 “한국인 피폭자에 안준 임금 지급을”/일 변호사회 촉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변호사연합회는 22일 2차대전중 히로시마(광도)시내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연행됐다가 피폭한 박창환씨(73)등 한국인에게 미불 임금을 지급하라고 촉구했다. 변호사회는 이날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와 미쓰비시중공업에 제출한 요망서에서 『전쟁수행을 위해 국가와 미쓰비시 중공업이 공동으로 사원을 징용했기 때문에 연대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독도는 6세기부터 한국땅”/WP지

    ◎“50년이후 한국경비대가 유일거주자” 【워싱턴 연합】 워싱턴포스트지는 13일 한·일간의 독도분쟁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지난 6세기 이래 「코리아」가 독도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왔음을 적시했다. 이 신문은 도쿄발기사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하기 바로전인 러일전쟁 당시(1904∼1905년) 코리아가 6세기이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왔던 독도를 점령하고 이를 합병했다』고 지적하면서 2차대전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자 한국은 독도의 영유권을 재천명했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한·일간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섬의 위치를 설명하는 도표를 실으면서 한국측 주장대로 독도라고 표기하고 일본측의 독도표기지명인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괄호안에 집어넣었다. 포스트지는 2차대전이후에도 일본측이 종종 서울로 편지를 보내 이 섬에대한 권리를 주장해왔으나 『1950년대 이래 이 섬의 유일한 거주자는 한국 연안경비대의 소규모 파견원들이었다』고 말했다.
  • 외국 언론들도 “독도는 한국 땅”

    ◎“영유권 주장않는다” 전후 일 문서 소개­독지/“군국주의 영토야심 되살아났다” 논평­영지/1896년 일 문서도 “한국영토” 기술­중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논쟁을 주시해온 외국 언론들도 일본의 주장이 부당하다며 한국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외국언론들은 대체로 일본의 영유권주장이 「군국주의의 부활」이며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한국측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일부 언론은 한일간 독도 분쟁이 역사관의 차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악화된 양국관계를 더 나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지는 12일 한일간 독도분쟁과 관련,6면에 4단 크기로 다루면서 『한국의 영유권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이 신문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이뤄진 한일합방조약을 근거로 내세우는 반면 한국은 2차대전 뒤 작성된 최근 문서 등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며 종전후 연합군사령부(SCAP)와 일본간에 체결된 「SCAP No677」문서중 「패전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도 같은날 6단짜리 기사를 통해 『한국은 40년 이상 독도를 관리해왔다』고 말하고 『한국이 독도 접안시설 공사를 하는데 대한 일본의 항의는 일본 민족주의와 영토야심의 부활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서방 통신들이 독도에 대한 독자적인 호칭을 「작은섬」 「바위섬」 등으로 대신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는 각각 「독도」라는 한국측 이름을 사용했다.신화통신은 9일 서대원 외교부 대변인이 성명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한국영토』라고 못박았음을 알렸고 인민일보도 사흘 뒤 일본 외무성이 1896년에 작성한 「조선국교시말내탐서」조차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북경방송은 12일자 논평기사에서 독도는 512년에 신라 소속국인 우산국이었다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방송은 같은날 도쿄발 특파원 보도에서 『독도가 한국과 더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한국의 입장이 더 옳은 것 같다』며 일본측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 【워싱턴 연합】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한·일간의 독도분쟁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지난 6세기이래 「코리아」가 독도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왔음을 적시했다. 이 신문은 도쿄발 기사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하기 바로 전인 일·러시아전쟁 당시(1904∼1905년)코리아가 6세기이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오던 독도를 점령하고 이를 합병했다」고 지적하면서 2차대전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자 한국은 독도의 영유권을 재천명했다고 설명했다.
  • 일의 독도외 섬분쟁 지역

    ◎중·대만 등 3국간 영토주장 팽팽히 맞서­센카쿠제도/구소련이 전후 점령… 일서 “반환” 강력 요청­북방4도 일본이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곳은 독도 이외에도 중국과의 사이에 센카쿠제도(첨각제도:중국명 조어도 또는 조어대),러시아와의 북방 4개 도서가 있다. ▷센카쿠제도◁ 대만과 오키나와 사이 동지나해상에 위치한 무인도.주도인 어조도(중국명 조어도)와 북소도,남소도를 포함한 섬들로 구성돼 있다.일본은 이들 제도를 청·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1895년 일본령으로 편입시켰다.한 때 민간인에 불하해 새 깃털 채취업등이 행해지기도 했으나 종전시 미군에 의해 오키나와와 함께 점령됐다.1972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센카쿠제도도 일본령으로 되돌아갔다.독도와는 정반대로 현재 일본이 실효적 점유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반환을 앞두고 중국측은 71년 센카쿠제도가 중국령임을 선언했다.대만도 센카쿠제도가 자국의 영토임을 선언해 놓고 있다. 센카쿠제도에서는 지난 78년 중국어선에 의한 영해침범(일본측 주장)이 있었고일본은 이에 맞서 우익단체가 등대를 설치했다.이해 등소평 당시 부총리는 『센카쿠제도의 귀속문제는 다음세대에 해결을 맡기자』고 제언,현재까지 보류돼 있는 상태이지만 92년 중국이 센카쿠제도와 남사,서사제도의 영유를 명기한 영해법을 채택하고 일본이 강력히 항의하는 등 분쟁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북방4도◁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일본 쪽으로 뻗어 나온 알류션 열도와 일본의 홋카이도가 만나는 해역의 섬 에토로후,구나시리,시코탄,하보마이를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이 지역은 옛소련이 전후 점령한 곳으로 일본이 과거 소련,현재는 러시아에 대해 반환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2차대전중 카이로선언에서 「폭력 및 강욕」에 의해 약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일본을 구축한다」는 규정에 의거,45년 2월 얄타협정에서 「사할린 남부와 인접한 제도를 소련에 반환한다」고 규정되면서 전쟁후 소련령에 편입됐다.전쟁전 이곳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전후 모두 일본으로 쫓겨났다. 이에 대해 일본은 홋카이도의 코앞에 있는 시코탄과 하보마이는 홋카이도에 속한다고 주장,두 곳은 돌려받고 두 곳은 소련령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 뒤 네곳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 결렬후 소련은 냉전시대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아예 「일본과의 사이에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일본은 매우 강력하게,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영토문제를 제기해 왔다.소련 붕괴후 러시아는 영토문제의 존재마저 부인하던 자세를 버리고 영토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한 때 두곳은 협의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일본도 궁박에 몰리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영토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그러나 러시아 정치권에서 보수세력이 강화되고,군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영토협상론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일 전쟁박물관 전몰자 추모장으로 변질/1억달러 들여 이달 착공

    ◎“일군 잔학상 전시… 과거사반성” 꿈 물거품/전시위안소·생체실험 자료 등 전시 못해 일본 정부가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맞아 과거사를 반성,청산한다는 차원에서 건립키로 했던 국립 전쟁박물관. 일본 각계의 시민단체들은 새 전쟁박물관에 제국주의 일본군의 잔학상을 전시,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교훈의 자료로 삼으려 했으나 이같은 바람은 허사로 돌아갔다. 1백20억엔(1억1천2백만달러)이 투입될 전쟁박물관 건립은 오랫동안 연기된끝에 빠르면 이달 착공된다. 그러나 이 박물관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야 하나? 외양보다 훨씬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 문제로 그동안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최초의 완벽한 국립 전쟁사 전시장인 이 박물관은 전쟁기간중 있었던 어떠한 악행에도 관계없이 일본인 전몰자에게 경의만을 표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고 말았다. 즉 이 박물관에는 전시 「위안소」에서 성적 학대를 당한 수만명의 아시아여성들을 징발한 일,일본의 탄광과 공장에서의 노예와 같은 강제노역 혹은 일본군 군의관이 자행한 인체실험 등의자료들은 전시될 수 없게 됐다.『전시 역사에 대한 해석에 논쟁을 불러일으킬 자료는 전시되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후생성의 박물관사업 책임자인 카키하라 요지씨는 말했다. 후생성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어야 했던 전쟁박물관을 오는 99년까지 완공키로했다.또 이 박물관은 2차대전 당시 전범들을 포함한 전몰자들의 위패가 봉안된 신사 옆에 건립할 방침이다.
  • “미 80년대 군비 2조달러 허비” 금융정보지 「월스」 보도

    ◎카터·레이건 정부 구소능력 과대평가/무리한 전력증강으로 예산적자 초래 2차대전 종전이후 미국과 소련간에 치열하게 전개됐던 냉전이 80년대초에 사실상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정보판단 잘못으로 80년대말 소련 붕괴 때까지 2조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불필요한 군비확장에 쏟아붓는 우를 범했다고 미국의 금융정보 월간지인 「월스」(Worth)지가 최근호에서 폭로했다. 월스지는 주로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 때 이뤄진 이같은 잘못된 정보판단으로 인한 예산남용은 오늘날 연방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예산적자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만일 정확한 정보판단이 있었다면 1천6백4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 예산은 1백10억달러의 흑자로 반전시킬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소련 힘의 약화시점을 1980년 8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에서의 자유노조 파업으로 발생된 폴란드 위기 이후로 상정하고 그때부터 소련군의 약화과정을 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을 역임한바 있는 아나톨리 그리프코프 전소련군 대장과의 인터뷰와당시 소련정치국 회의록등을 통해 밝혔다. 바웬사가 이끄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1년여 투쟁끝에 야루젤스키 정권의 붕괴가 임박하자 소련은 폴란드 침공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결국 81년 12월10일의 정치국원 최종회의에서 격론끝에 79년의 아프간 침공으로 인한 국제적 위신추락 및 고립화와 경제난등을 이유로 폴란드 불개입원칙을 확정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프코프 장군은 『당시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이 소집한 군최고지휘관 회의에서는 「아프간은 하나로 족하다」라고 결론을 내렸으며 이어서 열린 정치국원회의에서 그같은 지휘관회의의 결론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회고하고 『브레즈네프 정권의 폴란드 포기는 소련이 유럽에서 더이상 공산주의를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이같은 그의 증언은 1급비밀로 분류됐던 당시의 정치국원 회의록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정보는 카터행정부의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이 CIA의 보고는 폴란드가 곧 제2의 아프간이 된다고 분석하고 있었으며 냉전에서 소련이 승리하고 있으며 소련의 경제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힐 정도로 왜곡돼 있었다.또 외교정책 자문기구인 CPD는 소련의 세계 최강국으로의 부상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No 2국가 전락을 경고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는 소련의 위협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방위력강화를 추진,81년 1천9백40억달러였던 방위예산이 베를린장벽 붕괴의 해인 89년에는 2천8백50억달러까지 증강시켜왔다는 것이다.
  • 고급가방의 대명사 「루이 뷔통」 창립 100돌

    ◎작년 판매고 14억불… 전년비 10% 증가/경영내역은 비밀… 신제품 2개만 전시 고급가방의 대명사인 루이 뷔통이 올해 창립 1백주년을 맞았다. 루이 뷔통은 처음에는 역마차에 실을수 있는 크기에 조잡한 그림이 그려졌으며 방수처리를 한 보통가방에 불과했다.그러나 2차대전후 비행기여행이 일반화되면서 루이 뷔통은 고급가방으로서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소피아 로렌등과 윈저공 부처가 이 가방을 이용하는 모습이 세계에 비쳐지면서 루이 뷔통은 일약 세계 최고급 가방의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불어닥친 여행과 소비증가추세에 힘입어 일반인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아 번영을 거듭했다.지난해 판매고는 14억5천달러(한화 1조1천1백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94년보다 10%가 증가한 것이다.하지만 루이 뷔통의 자세한 경영 및 판매내역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루이 뷔통의 귄위는 국제시장에서 가짜상표가 범람하는 것으로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상징인 LV표시는 조지 뷔통이 창업자인 아버지 루이 뷔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낸 것. 루이 뷔통은 가방을 만들어내기 위해 7명의 국제적인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다.첫 작품은 단 2개를 만들어 전시하고 프랑스의 인기영화배우 제라르 데파르듀,베아트리스 달등이 어깨나 팔에 한번 걸쳐본다. 이 회사의 이브 카르셀회장은 『신제품은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뤼이 뷔통은 앞으로 가방수집가를 위한 제품도 만들어 낼 계획이다.
  • 데이비드 램턴 양국 강경주의에 경고(해외 논단)

    ◎“미·중 관계 악화땐 신냉전시대 온다”/강경파들 상호 비난… 「대만해협 분쟁」으로 비화/중­대만 군비경쟁 갈수록 치열… 아태안보 위험 중국·대만간의 긴장증폭 못지않게 미·중관계의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데이비드 램턴 미·중협회장은 최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양국의 강경주의자들이 새 냉전돌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기고했다.관계악화의 심대한 파장을 경고한 그의 글을 소개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종래와는 성격이 다른 냉전이 재발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이 냉전은 하찮은 어떤 것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만약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미국내의 예산논쟁이 불러일으킨 헛된 소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함을 미국인은 알아야 한다. 중국의 강택민국가주석과 개혁주의자들은 미국 「패권주의자」에게 너무 무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국내비판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다.미국 또한 공화당 대통령출마자 패트 부캐넌 같은 보수강경인사들은 클린턴행정부는물론 공화당 출마자 대부분이 중국에 관한 한 「미 대기업의 의사를 충실히 전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호되게 질책한다. 양국의 강경파는 서로에게 비난거리를 제공하면서 양국간에 마찰과 잘못된 인식을 산처럼 높이 쌓고 있다.일반대중 역시 상대방에 대해 나쁜 쪽으로 생각이 굳어진다.미국인은 대대적으로 보도된 중국 고아원의 「아이들을 일부러 죽도록 내버려두는 방」을 상상하곤 몸을 떠는가 하면 미국은 중국을 약하게 만들고 창피줄 방도만 궁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이런 상호작용결과의 하나로 대만해협에서 분쟁위기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은 두번째 냉전을 우려케 하는데 이것은 첫 냉전과 여러 모로 다르다.우선 미국과 중국은 이전 미·소 때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미·중은 갈등을 서로 자제하면 득을 볼 요인을 갖고 있다. 둘째 첫 냉전의 2차대전이후 시기에서 연합국은 미국의 경제적 월등함과 소련 침략 및 핵무기위협의 강한 현실성에 밀려 미국의 뜻을 좇았다.지금은사정이 달라 전통적 우방들이 무조건 미국을 따르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더구나 아시아내 미국 우방들도 지난해 아시아국가간 교역이 5천억달러를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이것저것을 재보고 태도를 결정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정보혁명과 기술확산은 한 나라를 여러 나라로부터 격리시키고 제자리에 가둬둔다는 50년대의 「봉쇄」전략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차이점을 차치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다시 냉각된다면 첫 냉전때 일반화된 사태가 재연될 것인데 일부는 이미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다.예전에 미국은 소련의 한 분야에 제공한 혜택이 다른 분야에서의 태도변화로 연결되기를 꾀했다.소련에게 부여한 관세최혜국대우는 유태인 이민허용등과 연계되었으며 미국의 곡물판매,공산권개최 올림픽참여는 소련의 제3세계정책과 묶여졌다.그런데 이같은 연계는 생산적인 미·소관계를 불가능하게 했다.관계 자체가 현안들의 볼모로 잡혀 있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국에 대한 관세최혜국대우와 인권상황,대만 이등휘 총통의 방미와 미·중 군비통제회담 등이 연계되었다.연계정책은 갈등을 확대하며 공동의 이해기반구축을 불가능케 한다.억제력과 확실성이 첫 냉전 때의 표어였다.미·소는 상대방의 공격적 행태를 사전에 막기 위한 방안으로 위협을 활용했으며 억제력으로서 위협이 효과적이기 위해선 확실해야 한다.지금 억제력·위협·확실성의 개념이 미·중관계에 나타나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무력행사를 억제하기 위해 더욱 더 많은 현대적 무기를 원하고 있고 중국은 대만의 독립노선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군사력의 현대화와 군사훈련 대규모화를 택한다.미국은 대만이 독립하는 것과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각각 억제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미국의 이 자세를 대만·중국 모두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남중국해상의 전략적 항해요충지인 섬들을 중국해군이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내에서는 이를 보다 확실성 있게 억제할 방안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작용과 반작용이 거듭되면서 첫 냉전의 군비경쟁이 이루어졌다.이 현상이 지금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중국은 최근 국방경비를 증액했고 러시아로부터 전투기등을 구매했으며 전략군사력을 현대화했다.대만 인근에서 미사일실험을 실시했으며 핵실험도 강행했고 상륙작전연습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대만은 무기구입에 한층 열을 올렸다.한편 대만해협에 군사비지출이 폭증하고 군비경쟁에 박차가 가해지며 미·중간에 적의가 커지는 걸 본 인근국가 사이에도 무기구입의 붐이 일고 있다. 상황이 새 냉전으로 발전된다면 아시아·태평양전역은 이전보다 훨씬 비싼 대가가 우려되는 안정보장위기에 놓일 것이다.지금 미국과 중국지도자들은 한발씩 물러나서 긍정적 관계의 전략적 효과를 인식,각자의 현안에 자제력을 발휘하고 잘못됐을 경우의 엄청난 대가를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 미국 무기제조급 플루토늄 85t 보유/에너지부 첫 공개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에너지부는 6일 미국이 핵무기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 85t을 보관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플루토늄 보유 사실을 공개했다. 에너지부는 이날 공개한 「플루토늄:최초 50년」이란 제하의 보고서에서 85t중 66t이 텍사스주 아마리요 인근의 에너지부 판텍스 소재 저장고에 보관돼 있다고 밝히고 이 물질이 정부의 연구용 원자로에 사용되는 플루토늄 재고량인 99.5t 중 일부라고 설명했다. 에너지부의 보고서 공개는 제2차대전 이후 비밀로 분류돼온 문서들에 대한 일반접근을 위한 비밀문서 공개노력의 일환으로 발표된 것으로 이 문서들은 지난 50년 동안의 미국의 방사능물질 저장 관련 기록들이 담겨 있다.
  • 일에 「위안부」배상촉구/유엔인권위/“국제법적책임 가해자처벌해야”

    ◎“유엔 보고서 수용 못한다” 일 관방장관 제네바의 유엔 인권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국제법적인 책임이 있으며,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보고서를 공식 발간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7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방문,군대위안부의 진상을 조사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이 작성한 것으로,이날 제네바 유엔인권센터에서 발간됐으며 오는 3월 열릴 제52차 유엔 인권위회의에 제출하게 된다. 보고서는 『2차대전중 일본이 저지른 행위는 「인도에 대한 죄」이자 노예제를 금지한 국제관습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국가 배상을 실시하고 ▲성적 노예화에 관여한 가해자 전원에 대해 법적조치를 취하며 ▲군대위안부에 대한 역사교과서 기술을 고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군대위안부(comfortwomen)라는 용어가 피해자의 고통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군사목적에 의한 제도적 성폭행 피해자(militarysexualslavery)」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인권위의 이번 보고서는 정부차원의 배상을 배제한채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을 통한 위로금 지급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향후 위안부 문제 해결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배상 불응” 【도쿄=강석진특파원】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일본 관방장관은 6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등을 요구한 유엔특별보고관의 보고서와 관련,『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는 없다』고 말해 국가배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지야마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3월 개최되는 유엔 인권위원회를 위해 제출된 것』이라면서 유엔인권위의 최종견해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인권위가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일본총리는 이날 보고서와 관련,기자들에게 『일본정부 입장에서 법적으로 반론할 것은 해나가겠다』면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통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거듭 강조했다. ◎국가배상 수용촉구/일 시민단체들 【도쿄 연합】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일본내 시민단체 대표등 16명은 유엔인권위의 특별보고서 공표와 관련,6일밤 도쿄시내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권고한 보고서내용을 전면 수용할 것을 일본정부에 요구했다.
  • 일에「위안부 징용」관련자 처벌 권고/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 내용

    ◎구속력 없어… 한·비·NGO기구 활동강화 촉구/정대협선 말련·북한·비와 연대,압력 강화 유엔 인권위원회가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국제법적인 책임을 규정하고,배상을 촉구함에 따라 한일간의 군대위안부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네바의 유엔 인권센터에서 발간된 보고서는 우선 전쟁기간중 군대에 의한,군대를 위한 강제매춘 피해여성을 「군사목적에 의한 제도적 성폭행 피해자(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새로운 용어로 규정했다. 그동안 사용해오던 군대위안부(comfort women)란 용어로는 피해여성의 고통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어 군대위안부의 모집과 관리에 대한 일본정부와 군대의 책임을 강조하고,일본정부에 대한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권고내용은 ▲2차대전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 체제는 국제법상 의무위반임을 인정하고,법적책임을 수락할 것 ▲피해자에 대한 개별배상 및 이를 위한 특별행정재판소 설치 ▲위안소 및 일본군의 행위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자료 공개 ▲피해여성개개인에 대한 공식 서면 사죄 ▲역사적 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 개정 ▲군대위안부의 징용 및 제도화 관련 범법자들을 가능한 범위까지 확인,처벌하라는 것 등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가 제기한 요구사항이 모두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의 권고는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보고서는 국제사회의 비정부기구(MGO)들이 유엔 체제내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라는 권고도 덧붙이고 있다.정대협을 비롯한 우리 사회단체들은 인권위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북한 등과 연대해 일본정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압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정대협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위해 특별법도 제정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정대협측은 보고서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더라도,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일본이 결국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압력을 피해나가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한국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해서는 일본의 책임 및 배상과 관련된 법적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조력을 요청해보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별다른 후속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어차피 배상문제는 청구권협정을 통해 다 끝난 것』이라면서 『일본이 자주적으로 조치하면,이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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