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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중국의 변화, 시진핑 시대] 4세대 후진타오만 빼고 ‘투쟁·암투’로 점철

    [2012 중국의 변화, 시진핑 시대] 4세대 후진타오만 빼고 ‘투쟁·암투’로 점철

    중국의 공산당 권력교체는 투쟁으로 점철돼 왔다.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평화적인 권력교체가 이뤄진 것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에서 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으로 이양됐던 지난 2002년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전대)가 처음이다. ●‘문혁’ 이후 덩샤오핑 집권… 개혁 추진 ‘건국의 아버지’이자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다 1976년 9월 사망하자 중국 권부에는 피바람이 몰아쳤다. 문화대혁명(문혁) 때 좌천당한 덩샤오핑(鄧小平)을 지지하는 예젠잉(葉劍英) 등 개혁파와 마오의 부인인 장칭(江靑)을 비롯한 ‘문혁 4인방’이 충돌한 것. 예젠잉 등 군부 개혁파는 ‘군사 쿠데타’에 성공해 4인방을 체포했고, 덩샤오핑은 마오의 뒤를 이은 2세대 지도자로 올라서 개혁·개방 등 중국의 현대화 역사를 새로 써나갔다. 앞서 덩샤오핑이 문혁 당시 좌천됐던 것도 권력투쟁의 결과였다. 마오는 대약진운동 실패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권좌를 내놓고, 당시 2인자였던 류샤오치(劉少奇)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류샤오치는 실용주의를 앞세운 덩샤오핑을 등용해 대약진운동의 후유증 치유에 나섰고, 국민들의 높은 신망을 얻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오는 홍위병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문혁을 일으켜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을 내친 바 있다. ●자오쯔양, 텐안먼 무력진압 반대로 실각 3세대 지도자 장쩌민으로의 권력교체도 순조롭지 못했다. 당초 덩샤오핑의 후계자는 장쩌민이 아닌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였지만, 자오쯔양이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무력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한 뒤 후임으로 장쩌민이 간택됐다. 덩샤오핑은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의 ‘후견인’으로서 생전에 직접 최고지도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후 주석에서 5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으로의 권력이양은 외견상 평화적인 권력교체로 보이지만 ‘암투’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스캔들’이 그것이다. 지난 5월에는 보시라이 처리 문제를 놓고 계파 간 반목으로 톈안먼 광장에 탱크가 진입했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세계적 IT공룡들의 ‘두 얼굴’] 페북 열어보니 2인자도 ‘먹튀’

    페이스북 경영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최근 744만 달러(약 81억원)어치의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블룸버그가 이날 보도했다. 샌드버그는 ‘자사주 매도 금지 기간’이 풀린 후 첫 거래일인 지난달 31일 주식 33만 9512주와 1만 3392주를 각각 주당 21달러 10센트와 20달러 79센트에 팔았다. 샌드버그는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에 이어 페이스북의 2인자로 불린다. 같은 날 페이스북의 법률 고문을 맡고 있는 시어도어 울요트와 회계책임자인 데이비드 스필레인도 주식을 내다 팔아 각각 312만 달러와 540만 달러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페이스북이 기업공개(IPO)를 한 뒤로 고위 임원이 주식을 매각한 것은 처음이다. 페이스북은 이에 대해 “샌드버그의 주식 매각은 이미 지난 7월부터 예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페이스북 주가는 공모가였던 38달러에서 44%나 떨어져 지난 2일 21.18달러에 머물렀다. 주가가 급전직하하는 상황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식을 내다 팔자 ‘먹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는 내년 9월까지 주식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형식파괴’ 무한도전 예능의 판 뒤집었다

    ‘형식파괴’ 무한도전 예능의 판 뒤집었다

    오는 20일 방송 300회를 맞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2005년 4월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인 ‘무모한 도전’으로 출발해 2006년 5월부터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무한도전’은 6년 5개월간 장수했다. 변화무쌍한 예능계에서 롱런하며 무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무형식의 형식’·감동 재미 선사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유행을 주도했다. 특별한 형식 없이 매회 특집으로 꾸며지는 구성은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정해진 대본 없이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텔링으로 가식과 설정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출연자들은 예능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와 뉴스, 다큐멘터리, 시트콤까지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면서 재미뿐 아니라 감동을 줬다. 소재도 가요제 특집, 무한상사, 프로레슬링, 조정, 에어로빅 특집 등 장·단기 프로젝트로 다양하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교석씨는 “그 전까지 예능은 짜여진 각본에 따라 무대 안에서 펼쳐지는 쇼였다면 ‘무한도전’은 형식을 떠나 멤버들이 캐릭터로 접근해 관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시청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방관자가 아닌 한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등 시청 패턴을 바꾼 것이 롱런의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나이·권위의식 타파 ‘무한도전’의 인기는 출연자들의 캐릭터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멤버 모두 30대 이상으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고 솔직하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모습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유반장’ 유재석의 따뜻한 리더십이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냉소적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2인자’ 박명수, 어수룩하지만 정감 있는 ‘식신’ 정준하, ‘소녀들의 대통령’을 자처하는 노홍철, 친근한 매력으로 어필하는 ‘상꼬맹이’ 하하, 뻔뻔한 정형돈과 어정쩡한 길. 한 방송 관계자는 “이전의 스타들은 마치 가면을 쓴 양 무조건 좋은 모습을 보이려 했다면 ‘무한도전’의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감정의 희로애락을 다 보여줘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예능의 틀은 없다 ‘무한도전’은 TV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한계를 넘어 문화콘텐츠로서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자체 로고를 활용한 달력, 시계, 이모티콘, 교통카드 등 관련 상품은 물론이고 멤버들의 피규어 캐릭터 인형까지 나오는 등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냉면’, ‘바람났어’ 등 각종 가요제 특집에서 기존 가수들과 함께 부른 노래가 음원 차트를 휩쓰는 등 가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한도전’ 브랜드화의 일등공신은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이다. 파업으로 6개월 넘게 결방해 폐지설까지 흘러나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도 10차례 넘게 받는 등 각종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니아층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무한도전’은 자기 틀 안에서 외부의 형식이나 인물이 들어오는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캐릭터와 형식의 무한 변주를 이뤄냈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형식으로 팬덤을 모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건강한 비판 없이 팬의 지지에만 안주한다면 마니아용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좀더 다양한 세대를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金, 친박 좌장→ 탈박→ 복박 변신

    한때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이었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의원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남다른 인연이 다시금 주목을 끈다. 김 전 의원은 친박의 ‘맏형’에서 대표적 탈박(탈박근혜) 인사로, 다시 복박(복박근혜) 인사로 면모가 바뀌어 왔다. 2005년 당시 당 대표였던 박 후보가 김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기용하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활약한 대표적 상도동계 인사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후보의 인사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의원은 계파에 얽매이지 않은 특유의 포용력과 배포, 오랜 당료 경험을 바탕 삼아 18대 국회 초반까지 친박 진영의 좌장 역할을 했다. 2007년 경선 당시엔 박근혜 경선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경선을 진두지휘했다. 경선 패배 후 해단식에서 그가 탁자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훔쳤다는 일화는 당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러다 2009년 5월 원내대표 출마 문제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이(친이명박)·친박 갈등이 극에 이르렀던 당시 박 후보는 미국 방문길에서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당 쇄신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후 세종시 추진안을 놓고도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렸다. 관계회복의 물꼬는 올해 4·11 총선에서 터졌다. ‘현역의원 하위 25% 배제’ 기준에 걸려 낙천이 점쳐진 김 전 의원이 “영원한 당인(黨人)인 제가 우파 분열의 핵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백의종군한 것이다. 낙천자들을 직접 설득한 그의 백의종군으로 새누리당은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후보도 김 전 의원에게 “부산 사나이다움을 보여주셨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의 ‘컴백’은 이미 8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예고됐다. 4·11 총선 돈봉투 파문, 비박계 갈등 등 악재가 이어지자 김 전 의원이 대선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당 안팎에선 “김 전 의원이 당을 두 번 구원해야 한다.”며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창수-이 사나이의 순정, 짓밟힌다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창수-이 사나이의 순정, 짓밟힌다

    창수는 다른 사람의 옥살이를 대신하고 돈을 받는 인천 차이나타운 삼류 건달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건달이지만, 아직 수총각이다. 어느 날 밤길을 걷던 창수 앞에 고급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도석은 미연을 끌어내려 마구 주먹질을 한다. 창수는 말려보려 했지만, 외려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외모만 봐선 말도 섞지 않을 법한 둘의 짧은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창수는 반지를 사서 미연에게 청혼을 하려 한다. 하지만, 집에 와보니 미연은 이미 숨진 채 침대에 누워 있다. 알고 보니 여자는 전국구 조폭 두목의 애인이면서 조직의 2인자인 도석과도 얽힌 터. 경찰과 조폭들의 추적을 동시에 받게 된 창수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의지로 행동을 결심한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대된 ‘창수’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은 남자배우가 탐냈던 영화다. 평생 하류인생을 살던 삼류 건달이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를 위해 전국구 조폭과 10여 년에 걸쳐 외로운 대결을 펼친다는 영화의 얼개는 구식 누아르의 느낌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 창수 역을 임창정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충무로는 반신반의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색즉시공’ 등 수많은 영화에서 임창정은 코믹연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웬걸, 스크린 속 임창정은 영락없는 창수였다. “감히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나보다 뛰어난 연기자는 많지만, 창수를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던 임창정의 언급은 빈말이 아니었다. 주먹솜씨는 건달치곤 수준 이하. 하지만,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료 건달 상태(정성화)와 사랑하는 미연(손은서) 앞에서 무슨 일이든 해결할 것처럼 허풍 떠는 창수에게선 짙은 연민이 묻어난다. 표정과 목소리의 울림만으로 임창정은 창수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파이란’(2001)이 떠오를 것이다. 평생을 비루하게 살아온 인천의 삼류 양아치 강재(최민식)가 한 여인(장바이즈)의 사랑을 깨달은 뒤 조직 보스의 뜻을 거슬러 새로운 인생을 결심한다는 기본 얼개는 ‘창수’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창수’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늦깎이 신인 이덕희 감독은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을 보좌했던 조감독 출신이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3)안철수의 측근 (상)용인술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3)안철수의 측근 (상)용인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캠프를 들여다보면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도의 착지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개방성을 갖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다 보니 최정점의 안 후보가 독단으로 흐르면 오히려 폐쇄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구조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 ‘탈이념적 용인술’ 역시 제3지대 후보로서 외연을 확장할 수단은 되지만, 안 후보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 함정이 될 수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안 후보가 캠프 인물로 정치 경험이 많지 않은 서울대 출신의 법조인과 유학파, 경제관료, 교수 등을 중용하는 건 탈정치적 행보의 일환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펙 위주의 ‘엘리트주의’나 ‘정치적 선민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의구심이 일 수 있는 부분이다. 안 후보의 출마 선언 4개월 전인 지난 5월의 일이다. 현재 캠프 핵심이 된 A씨는 안 후보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는 색다른 ‘면접’을 치렀다. 안 후보는 그 인사에게 통상적인 질문이 될 수 있는 고향이나 출신 학교는 묻지도 않은 채 제일 먼저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설명하며 의견을 구했다. A씨는 ‘호구 조사’가 생략된 안철수식 면접을 치른 후 안 후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면접을 통과했고, 안 후보의 지근에서 대선 행보를 돕고 있다. ‘학연·지연·혈연’ 등 이른바 3연(緣)을 묻지 않는 면접을 거친 인사는 그뿐만이 아니다. 안 후보가 조직 내 ‘라인 형성’을 극도로 경계해 안철수 캠프에는 학연·지연·혈연을 고리로 한 연줄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영포(영일·포항)라인’처럼 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핵심 실세들이 없고 역설적으로 ‘연줄의 힘’을 통해 만들어지는 조직력도 없다. 여느 대권주자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라인, 실세, 조직이 전무한 ‘3무(無)’ 캠프다. 안 후보가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영입부터 인선까지 직접 챙긴 ‘안철수의 사람’만이 있다. 공적 라인에 직접 검증한 인사를 앉혀 자신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초기 구상안이 틀어지는 일이 없도록 완벽을 기하려는 안 후보의 ‘결벽증’마저 느껴진다. ‘3무’는 업무와 기능을 중심으로 캠프 구성원들이 팀제로 얽혀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형 대선조직을 가능하게 한다. 안 후보는 출마 전부터 선대본부장이 명령을 하달하는 기존 정치권의 수직적 체계를 벗어나 이런 형태의 대선조직을 구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 개방성·참신성·전문성이 안철수 캠프가 내세우고 있는 강점이다. ●이상·현실 괴리 사이 ‘외줄타기’ 하지만 뒤집어 보면 캠프 구성원 모두가 수평적 관계에 놓인 가운데 안 후보 홀로 정점에 서 있는 구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안 후보를 가운데 두고 팀장과 팀원들이 바퀴살처럼 뻗어 있는 ‘방사형’이다. 구성원들은 기업 부서처럼 기능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계돼 있고 끈끈한 연줄이 없다 보니 구심점과 공유하는 가치는 오로지 ‘안철수’뿐이다. 후보 하기에 따라, 특히 후보가 마지막 순간 독단을 내리려 한다면 개방성이 순식간에 폐쇄성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구조다. 후보에게 조언할 최측근 그룹도 없고, 견제할 2인자도 없다. 안 후보의 경제멘토로 주목받았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공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 조언자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 후보와 막역한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 원장을 최측근으로 꼽는 사람도 있지만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와의 단일화는 그도 알지 못했다. 안철수 캠프 팀장급 회의의 대부분은 박선숙 총괄본부장이 주재한다. 연관성 있는 팀들이 모여 토론을 하면 이를 조정, 관리하는 역할이다. 팀장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권한도 주어진다. 그러나 캠프 관계자는 25일 “충분히 반영하고 고민하되 최종 결정에는 후보의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논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교통정리를 하느냐.’는 물음에 “지금까지 논쟁을 벌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모든 구성원의 생각이 ‘안철수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논쟁이 붙을 만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 없었거나 혹은 이에 대한 토론이 심도있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안 후보의 대외적 이미지는 ‘불통’이기보다는 일단 ‘소통’에 가깝다.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며 참석자들과 교감했고 안랩 최고경영자(CEO) 시절에는 사원들과 하루에 한번씩은 면담했다고 한다. 대선출마 직전까지 그는 전국을 돌며 밀도 있게 사람을 만나고 대선 도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고독함을 자처하는 스타일로 비친다. ‘안철수 비토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불통’ 아닌 ‘불통’의 단적인 예로 꼽는 것이 바로 휴대전화다. 억양과 목소리 톤을 통해 감정까지 전달되고 때로는 불편한 말도 들어야 하는 ‘날것’ 그대로의 휴대전화 대신, 정제된 문장이 오가는 이메일만으로 ‘일방적 소통’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연줄을 멀리하거나 2인자 행세를 하려는 ‘킹메이커’를 가차없이 내치는 행동 패턴은 권력 욕구나 완벽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안 후보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언론에 이런저런 말을 하자 “저는 나름의 판단이나 역사의식이 있다. 그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300명 정도 된다.”며 정치권의 대표적 선거전략가인 윤 전 장관을 300명 중 1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세에게 영향과 간섭을 받으며 자신의 판단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상황을 못 견딘다는 얘기다. 안 후보 주위에 각 분야의 엘리트는 많지만 정치적 동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라인업’을 원천 봉쇄한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라인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조직 안에 세력이 형성된다는 것이고, 이 세력의 입김이 거세지면 안 후보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라인을 만들었다며 안랩의 한 간부를 자른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돌이켜 보며 “라인을 만드는 사람, 그래서 조직을 해치는 사람에겐 가차없다.”고 강조했다. 참모진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다. 안랩에서 안 후보의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했던 박근우씨는 마감일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했다가 안 후보로부터 “어제까지 보고를 기다렸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제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겠습니다.”란 ‘통첩’을 받았다고 한다. 영입 대상의 성향은 진보·중도·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와야 하는 만큼 의식적으로 진보·중도·보수 간 균형을 맞춰 영입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아직 캠프 가동 초반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화학적 결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모피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전 경제부총리와 손잡은 것처럼 무소속 후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외연을 넓히고 캠프에 중량감을 더하기 위해 코드만 맞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영입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탈정치적 중용… 엘리트주의? 일부에선 안 후보의 ‘탈이념적 용인술’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체성’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 후보는 폭넓게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야권 전체적인 합이 진보적 가치이고 진보 정체성을 강조하는데 이것과 다르게 가면 지지층을 결합할 때 난점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민주당·새누리당 사람들을 제외하고 캠프를 소수로 꾸리려다 보니 일명 ‘사’자 돌림으로 통하는 퀄리티가 좋은 시민 사회 계열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철수가 지향하는 정치 색깔과도 맞지 않다.”며 “‘안철수가 과연 민주적이냐. 박근혜보다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게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정·송수연기자 hjlee@seoul.co.kr
  •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박근혜의 측근 (상)용인술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박근혜의 측근 (상)용인술

    국정 운영은 대통령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대리인 격인 측근들의 도움 없이 권력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 역시 대통령에 당선되면 권력의 정점에서 국정 운영을 총괄하며 조력자들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국 정치의 불행 중 상당 부분이 무능하고 부패한 측근들의 권력 횡포 및 남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서울신문은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캠프와 측근들을 심층 분석, 미래 권력으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검증하고자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주변 사람들을 꼬집는 말로 ‘오겹살’이라는 표현이 있다. 박 후보가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붙인 말이다. 박 후보가 ‘불통’(不通)의 이미지를 갖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고 비판한다. 또는 ‘친박근혜계’의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표현으로 ‘해자(垓字·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도랑)론’이란 것도 있다. “박 후보와 주변 인사들과의 사이에 해자처럼 일정한 거리감이 형성돼 있다.”는 것인데, 그의 주변 인사들은 “이 거리감이 특정 인사의 전횡을 차단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자의 폭만큼의 거리감이 ‘핵심’의 등장을 막고, 핵심이 없기 때문에 권력의 남용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캠프를 꾸릴 때도 홍사덕·김종인 당시 공동 선대위원장 등을 포함, 아무에게도 명함을 찍지 못하도록 한 일이 대표적이다. 박 후보의 인사 스타일로,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횡 방지 vs 토론 부재 그러나 해자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한편으로는 “해자 폭만큼의 물리적 거리감 때문에 조언을 받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로 통할 수 있다. 이 해석은 박근혜 캠프의 ‘빈약한 토론 문화’와도 연결된다. “그러니 토론이나 논쟁은 없고 늘 ‘박심’(朴心·박근혜의 뜻)밖에 없지 않으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이광재·안희정같이 맞담배를 피우며 논쟁을 벌인 정치적 동지이자 직언 그룹이 있었지만, 박 후보 주변에는 그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인혁당에 대한 발언이 문제가 되고 파문이 커진 뒤에도 그의 주변 인사들은 박 후보와 변변한 ‘논의’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선기획단 인사들이나 실무진이 삼삼오오 머리를 맛대고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표현으로 사태 수습을 시도하고 이튿날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당 대변인의 사과문을 발표했다가 이를 다시 부인한 것은 이 같은 내부 사정을 잘 보여 준다. 과거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박 후보와 그 측근들이 토론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해결책을 내고 ‘전달하는 일’에 그쳤던 것이다. 논쟁에 약한 것은 박 후보뿐이 아니다. 측근 간에 논란이 생길 때면 그 종착점은 역시 ‘박심’이다. 측근들 사이에서 이견이 표출됐을 때 “박 후보와 어느 시점에 얘기했느냐.”로 교통정리가 이뤄지는 일도 흔하다. 물론 측근 사이에 토론과 논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토론과 논쟁의 결과는 ‘의견 개진’으로만 활용되는 때가 잦다. 이런 구조는 한편으로는 높은 효율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박 후보가 보여 준 ‘광폭 행보’는 실무팀의 건의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져 실행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문제와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선기획단의 회의 모습은 이런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주영 단장은 회의 도중 박 후보에게 직접 알려야 할 내용이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 단장은 이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스피커 모드로 해놓고 박 후보의 의견을 다른 구성원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한다. 대선기획단 전체가 박 후보의 생각을 자세히 알고 자신이 잘못 전달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3일 “박 후보는 ‘천막 당사 시절’이 보여 주듯 난국을 돌파하는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강인한 리더십을 보여 왔지만, 앞으로는 갈등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적 리더십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기보다 조직력에 초점 물론 해자 안쪽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개념에서의 측근들이, 적은 숫자로 존재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인사들이다. 많은 조언 그룹이 있지만 박 후보는 우선 이 측근들의 의견은 잘 듣는 편이다. 박 후보는 다른 어떤 의원들보다도 국회에 공식 등록된 보좌진을 신뢰한다. 이재만·정호성·이춘상·안봉근 등은 박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부터 줄곧 함께해 왔다. 박 후보의 의중을 가장 잘 알 뿐만 아니라 능력면에서도 이들에 대한 박 후보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을 비롯해 2007년 경선에 참여했던 의원들도 ‘해자 안쪽 사람들’로 분류된다. 주요 측근들에 대한 평가는 “성실하다.”는 게 가장 많다.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능력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하지만,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에 초점을 둔 박 후보 특유의 용인술로 해석된다. 다만 자신이 맡은 역할만을 충실히 담당하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구조로 인해 각 영역 사이에 높은 칸막이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당 안팎에서는 박 후보의 측근 상당수가 정치적 피해의식을 쉽사리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때 친이명박계와의 갈등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간주되지만, 정치적 경쟁 상대를 향한 경계심이나 거부감이 외연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보안 제일주의’로 상징되는 폐쇄적인 조직 운영도 문제로 꼽힌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주변 인물들의 충성도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등의 모습이 폐쇄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 “여러 계층을 포용하는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는 현재까지 해오던 방식보다 좀 더 과감하게 다른 계층에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실과 신뢰 vs 화학적 결합 어려워 다만 박 후보는 이들을 ‘공적 라인’에 배치함으로써 일정한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박 후보가 제일 꺼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특보’라고 한다. 그의 주변에서는 특보라는 직함을 가진 인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 당이나 대선기획단에서 직함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시점에서 박 후보와 일정한 거리 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 후보는 경선캠프에서도 의원 보좌관 하나하나를 일일이 선택했으며, 이번 대선기획단 비서 자리 하나하나까지 직접 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공적 라인을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의사 결정 구조가 왜곡되는 일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으로 박 후보는 일을 맡기면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상당한 권한을 주는 스타일이다. 다만 이들이 ‘정치적 동지’로까지 잘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 박근혜’의 한계로 지적된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은 기존 측근들에 더해 새로운 인사들을 속속 합류시켜 ‘신주류’를 만들고, 세력 간 경쟁을 통해 정치적 활력을 공급받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박 후보의 캠프에 대해서는, 정치에 있어 강한 화학적 결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박 후보의 주변은 정치적 결사체라기보다는 후보를 중심으로 한 기능적 연결체에 가깝다. 이는 박 후보가 사람에 연연하지 않는 점을 보여 주며,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인물을 통해 변화와 쇄신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진단하면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김씨는 “박 후보의 용인술은 생각이 맞는 사람을 중용하는 방식으로, ‘한 번 신뢰한 사람은 계속 쓴다’는 표현 이면에는 이러한 관계가 깔려 있다.”고 요약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주변 사람들은 “박 후보의 용인술과 그간의 측근 관리 방식 등을 볼 때 집권 이후 박 후보 측근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은 다른 어떤 정치인 캠프보다 낮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장세훈·허백윤기자 shjang@seoul.co.kr
  • 朴-文-安 대선 3강 프레임 전쟁

    朴-文-安 대선 3강 프레임 전쟁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18대 대통령 선거가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 후보의 3각 경쟁 구도로 확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프레임 전쟁의 막이 올랐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는 반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프레임 전략은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자극하는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대선을 90일 앞둔 20일 세 후보 모두 향후 한달 이내의 초반 기선 제압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물고 물리는 삼각 프레임 공방에 주력하고 있다. 프레임은 대중이 정치사회적 현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을 의미한다. 박 후보 측이 문 후보에게 덧씌우는 프레임은 무능과 아마추어로 비치는 ‘친노(친노무현) 이미지’다. ‘노무현의 친구’로서 참여정부 실패에 무한 책임이 있는 2인자라는 점에서다. 측근 비리가 잦은 정권이었으며 말로는 서민 정권이라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서민을 배반한 정권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계산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은 집값 폭등과 대학 등록금 급등, 저축은행 사태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문 후보가 용광로 선대위를 말하지만 사실은 진영 논리에 가장 깊숙이 매몰돼 있다.”고 주장했다. 친박(친박근혜) 관계자는 “박정희와 노무현의 대결 프레임으로 간다면 박 후보가 밀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 측에서 보는 ‘필승 프레임’은 후보 능력과 자질에서 ‘개인 박근혜’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가 대선 필승 카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 후보가 지난 15년간 국회에서 보여준 능력과 경륜은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따라올 수 없다는 논리가 곁들여진다. 박 후보가 수년간 40~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위기 극복 능력을 검증받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박 후보가 “어떤 경우든지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거나 그 분야에서 내공을 쌓으려면 최소한 10년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권의 ‘단일화 프레임’ 깨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안 후보를 겨냥한 박 후보의 프레임 공세는 안 후보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신구(新舊) 대결’에 대한 뒤집기로 요약된다. 참신하고 기대되고 빚진 것이 없다는 안 후보의 논리를 뒤집으면 ‘참신한 새것’이 아닌 ‘숙성되지 않은 날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국정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계산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후보가 문 후보를 공격할 때는 이념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고 안 후보에게는 검증이라는 무기가 이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후보는 박 후보에 대해 3공화국을 연장하려는 ‘낡은 정치 세력’ 프레임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다.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유신 체제 핵심 역할론’ 등 역사관을 계속 부각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후보와 그 주변 인물들을 새로운 정치 구현에 한계를 지닌 ‘구태 정치인’으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다. 서민과 대비되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귀족적 이미지와 불통 이미지도 박 후보에 대한 주요 공격 포인트다. 박 후보가 미래 지향적인 정치인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실정의 공동 책임론도 내세운다. 안 후보가 내세우는 프레임 전쟁의 핵심 메시지는 ‘낡은 체제와 미래 가치의 충돌’이다. 기성 정치권 출신인 박·문 후보를 ‘낡은 체제의 정치인’으로 규정,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안 후보는 기성 정당인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대해서도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위선을 행하고 있다.”며 구체제 프레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약점이 되는 정치 경험 부족에 대해서는 오히려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 이미지로 반전시키려 한다. 야권 단일화 일전이 예고된 문 후보와 안 후보 간의 프레임 대결은 복잡하다. 선의의 경쟁 속에 지지율 동반 상승을 꾀하는 2인 3각의 전략적 복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안 후보가 내세우는 ‘기성 정치인 대 새로운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을 탈피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문 후보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면서도 기존 대선 후보의 관행이었던 소속 의원들을 무더기로 대동하는 인위적 병풍을 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안 후보는 민주당을 흔들지 않겠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하되 진보뿐 아니라 중도와 보수 표심까지도 공략하는 행보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안 후보가 이날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모두 참배한 게 대표적이다. 기성 정치권의 인식 틀을 뛰어넘을 수 있는 탈(脫)여의도 정치 주자라는 프레임을 선점,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오일만·김경두·안동환기자 golders@seoul.co.kr
  • “시리아, 지난달 화학무기 실험”

    시리아 정부군이 지난달 말 화학무기를 실험했다는 증언이 나와 시리아 사태가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이 지난 8월 말 동부 도시 사피라의 화학무기 연구단지 인근 사막에서 독가스탄 등 화학무기 발사 시스템을 실험 가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알레포 동부에 위치한 사피라 연구단지는 공식적으로는 과학 연구단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시리아 최대의 화학무기 실험장소다. 서방 정보국에 따르면 이곳에는 이란과 북한 과학자들도 파견돼 있으며, 이들은 사린, 타분, 겨자가스 등 화학무기를 생산해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실험을 지원했다는 증언도 나와 진위 여부가 주목된다.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란 관리들이 실험을 돕기 위해 헬기를 타고 이곳으로 파견됐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지난 16일 혁명수비대 산하 특수부대인 ‘쿠드스’ 요원 일부를 시리아에 파견한 사실을 처음 시인했다. 사피라 연구단지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기류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수개월간 단지 내 기존 경호인력이 교체됐는데, 알아사드 대통령의 막내동생이자 실질적인 정권 2인자인 마헤르가 이끄는 제4사단 소속 엘리트군 100여명으로 보강됐다. 또한 최근 전기 발전기를 연구단지 내 발전소에 새로 설치하고, 디젤 비축량을 대규모로 구비해 놓는 등 반군의 공격으로 빚어질 수 있는 전력 부족 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슬람 反서방 시위 확산] 알카에다 “리비아 美영사관 테러 우리가 했다”

    ‘9·11 테러’의 배후인 국제적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의 피습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알카에다는 또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 국가들에 미국 공관에 대한 추가 공격을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테러에 대비해 일부 공관을 폐쇄하고 자국민 대피령을 내렸다. ●美피습에 외국인 가담 주장 나와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리비아 미 영사관 피습 사건이 알카에다 제2인자인 아부 야히아 알리비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미국 이슬람권 웹사이트 감시단체인 ‘사이트(SITE) 정보그룹’을 인용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알리비는 지난 6월 파키스탄 자택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무인공격기 공습을 받고 숨졌으며, 미 백악관은 당시 사건을 “빈 라덴 제거 이후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한 바 있다. AQAP는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알리비의 죽음은 예언자 마호메트를 공격한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우리의 결단력을 부추기는 신호”라면서 “전 세계 무슬림들이 힘을 합쳐 미국 외교관을 살해하고 미국 공관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건에 외국인이 가담했다는 주장도 처음 제기됐다. 무함마드 알마가리프 리비아 제헌의회 의장은 이날 NBC 방송에 출연해 “이번 피습의 계획과 실행 과정에 외국인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의 출신 국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세부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英 해리 왕세손 배속 기지 공격당해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공관 테러 위협 등 과격 반미 시위가 계속되자 미 당국도 대사관 폐쇄 등 긴급 조치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북(北)수단의 하르툼 주재 미 대사관이 16일부터 폐쇄될 예정”이라면서 “현지 미국인들은 당분간 대사관에 접근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수단과 튀니지에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긴급 요원을 제외한 모든 공관 직원과 자국민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한편 영국의 해리 왕세손이 배속된 아프가니스탄의 남부 헬만드 지역의 국제안보지원군(ISAF) 합동기지가 14일 탈레반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미 해병대 병사 2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카리 유수프 아흐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성스러운 전사들이 미국인이 만든 모욕적인 영화에 복수하기 위해 자살 공격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세손은 이달 초 4개월 일정으로 아프간에 파견돼 아파치 헬기 조종사로 복무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왕세자를 아프간에서 철수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피를 나눈 친척도 반군으로… 알아사드 사면초가

    정권 고위 인사들의 잇따른 망명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이번엔 대통령의 친척인 공군의 영관급 장교가 탈영해 반군 진영에 합류했다. 심복들은 물론 친척까지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반군의 압박, 그리고 심복과 친척들의 배신 등으로 알아사드 대통령은 사면초가 상황에 처했다.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인터넷 매체 ‘와이네트’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먼 친척인 유수프 아사드 공군 대령이 소속 부대를 탈영해 반군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대령은 최근 공개된 47초짜리 동영상에서 “나는 범죄 집단에서 탈영해 시리아 국민의 혁명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권이 살인과 추방, 방치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탈영 이유를 밝힌 뒤 “시리아 정권이 조국을 파괴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전투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8월에는 정권 2인자인 리아드 히자브 총리가 장관 2명과 함께 시민군에 합류했으며, 7월에도 아사드 대통령의 죽마고우이자 시리아 최정예 부대인 공화국수비대의 마니프 틀라스 사령관(준장)이 터키로 망명했다. 이들은 명목상 정권 상층부에 속하긴 했지만 핵심부는 아니었다. 정부 요직과 군대는 여전히 알아사드 대통령의 친척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사드 대령의 이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측근인 친척마저 반군으로 옮겨 가면서 정권 이너서클(핵심 권력집단)의 집단이탈 가능성이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Weekend inside]경선패배 5년만에 우뚝선 미래권력 朴, MB와의 결말은

    [Weekend inside]경선패배 5년만에 우뚝선 미래권력 朴, MB와의 결말은

    “경선패배를 인정합니다. 오늘부터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후보는 결과에 승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박 후보는 이명박 후보(8만 1084표, 49.56%)에 2452표 뒤진 7만 8632표(48.06%)를 얻었다. 지지율 격차는 불과 1.5% 포인트였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5년 뒤인 지난 20일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여권의 역대 대선 경선 사상 최고인 8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5년의 와신상담 끝에 여당 대선 후보의 자리에 오른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4개월 동안 불안한 ‘정치적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5년마다 대통령 vs 與대선후보 권력충돌 지난 5년간 18대 총선공천(2008년), 세종시 수정안(2010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2011년) 등 현안마다 사사건건 부딪쳤던 두 사람이 ‘대선’이라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조용한 동거’를 지속할 것 같지는 않다. 흔히 애증(愛憎) 관계로 표현되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여권 대선주자의 갈등은 역대 정치사를 봐도 거의 예외 없이 반복됐다. 2인자인 여권의 대선후보는 현직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며 충돌했고, 결국 상당수는 끝도 좋지 못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미래권력과 갈등을 빚다 예외없이 탈당하는 전례도 남겼다.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YS) 후보와 갈등을 빚다 대선을 3개월 앞두고 탈당했다. 관권선거 의혹과 노 전 대통령의 사돈인 SK그룹에 대한 특혜 의혹 등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갈등은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정면충돌한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YS는 1993년 2월 ‘대쪽 법조인’ 이회창을 감사원장에 임명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무총리로 중용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헌법상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다가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난다. 이 후보가 여권의 대선후보가 되자 YS는 “깜짝놀랄 만한 젊은 후보(이인제)를 내세우겠다.”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그러자 발끈한 이 후보는 3김(金) 정치 청산을 요구했고, 급기야 YS의 인형을 불태우는 화형식까지 벌인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야당인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수사를 중단하자 이 후보는 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고, 결국 YS는 대선을 한달 남긴 1997년 11월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선을 끝까지 완주했던 정 후보를 각별히 챙겼다. 대선 전 마지막 유세에서는 “차기에는 정동영도 있다.”고 까지 말할 정도로 신뢰가 깊었다. 열린우리당 창당 후 정 후보는 초대 당의장에 올랐고, ‘노인폄훼 발언’으로 시련을 겪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를 통일부장관으로 입각시킬 정도로 무한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면서 둘 사이의 균열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노 전 대통령은 여당의 압박으로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고, 정 후보는 그해 8월 당을 해체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구태정치, 기회주의자”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했고, 정 후보는 “공포정치의 변종”이라며 맞섰다. 그나마 2002년 대선 때 김대중(DJ) 대통령과 노무현 대선 후보는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DJ는 2002년 초 대선 불개입을 선언했고 이어 아들의 비리가 잇따르자 대선을 7개월 앞둔 2002년 5월 자진 탈당한다. 이후 노 후보는 대선까지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대선까지 남은 4개월, 이 대통령과 박 후보는 어떤 관계를 이어 갈까. 두 사람 역시 5년 전 경선 이후 지금까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며 감정의 앙금을 쌓아 왔다. 경선 당시 박 후보 측이 ‘BBK사건’, ‘도곡동땅 차명소유’ 문제를 놓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데 대해 이 대통령이 서운함을 안 갖고 있을 리가 없다. 박 후보도 경선 이후 했던 ‘동반자 약속’을 이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말뿐인 ‘권력분점’에 그쳤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2008년 4월 18대 공천 직후 친박(친박근혜계)이 대거 탈락하자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직설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갈등이 정점에 이른 것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맞섰던 2010년 2월이다. 이 대통령은 2월 9일 충청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그러자 박 후보는 다음 날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느냐.”라고 이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맞섰다. 이른바 ‘강도론’을 둘러싼 두 사람의 마찰이다. 이어 다음 날인 11일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근혜 대표’가 아닌 ‘박근혜 의원’이라고 꼬박꼬박 지칭하며 “(박 의원의 태도는) 온당치도 못하고 적절치 못할 뿐 아니라 황당하다. 최소한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일각선 “당적 유지 첫 대통령 나오나” 기대도 사실 당시 두 사람의 충돌은 가장 민감한 부분인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된 발언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충북 업무보고에서 ‘강도론’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 정치적 계산만 하면 발전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일부 언론에서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정부안에 반대하는 박 후보가 차기 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뜻을 이 대통령이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양측 갈등에 불을 붙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것은 이 대통령이 평소 자주하던 발언인데, 당시 박 후보가 이를 오해하면서 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지난 5년간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왔다. 지난해에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놓고 양측이 또 충돌했다. 하지만 여전히 협력의 끈도 놓지는 않고 있다. 박 후보가 두 차례(2008년과 2011년) 대통령 특사로 외교행보에 나선 것도 이를 방증한다. 올초 여권 일부에서 이 대통령의 탈당요구가 나왔지만 금세 수그러들기도 했다. 박 후보가 지난 3월 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탈당이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무리하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두 사람은 최근에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박 후보에 대해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고 대놓고 칭찬했다. 박 후보도 지난 17일 SBS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 대통령의 편을 들어줬다. 박 후보는 그러나 정책 차별화는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의 추가감세는 물론, 연내 차세대 전투기(FX) 선정, 인천국제공항 지분매각 시도에 제동을 걸고 있다. 박 후보는 또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이 대통령과 명백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청와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김영삼·이회창’(1997년 대선), ‘노무현·정동영’(2007년 대선) 조합 식의 극단적인 갈등을 이 대통령과 박 후보가 겪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1일 “박 후보는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극단적인 언행을 하는 분이 아니며, 대통령도 이미 당에 대한 애정을 밝힌 바 있다.”면서 “차별화를 위해 당에서 제시하는 정책대안도 100%는 어렵지만,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부는 가급적 수용하고 있어 당·청이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대선과정에서 박 후보가 정책차별화에서 더 벗어나 이 대통령과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임기 이후의 불안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 하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미래권력인 여권 대선주자는 운명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야권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본격적인 여야 대결구도가 펼쳐지면 박 후보 측에서 단순히 이 대통령과의 선긋기를 넘어 ‘MB 부정(否定)’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후보가 야권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게 되거나 지지율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오면 ‘MB 때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동안 잠복했던,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세에 몰린 이 대통령도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치전문가들도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충돌은 시간과 수위의 문제일 뿐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본다.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 박 후보는 지금보다 더 차별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갈등의 정도도 과거만큼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이지,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인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추가로 친인척 비리가 다시 불거진다면 갈등의 강도는 더 커질 것이다. 대통령과 여권 대선후보의 갈등 수위는 대통령의 지지도와 반비례 하는데, 지금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 “이 대통령의 존재감이 너무 없기 때문에 박 후보 입장에서는 일부러 차별화할 필요조차 못 느낄 수도 있다. 국민들이 이 대통령과 박 후보를 명백히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박 후보 입장에선 이 대통령이 자진탈당을 해 주면 제일 좋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무시’하는 행보를 할 것으로 본다.”(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기덕감독 부른 베니스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김기덕감독 부른 베니스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해마다 8월 말이면 전 세계 영화인의 눈은 이탈리아의 리도섬으로 쏠린다. 한때 프랑스 칸영화제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最高)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最古)이자 ‘2인자’가 된 베니스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새달 8일까지 열리는 제69회 베니스영화제는 내실에 힘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10여년 만에 집행위원장에 복귀한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이번 영화제를 “더 수수하게, 덜 화려하게” 꾸밀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부문 상영작 수도 줄었다. 2010년 22편, 2011년 21편에서 올해는 18편이다.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도 포함됐다. 그의 네 번째 베니스 경쟁부문 진출작인 ‘피에타’는 악마와 같은 사채업자(이정진 분)와 어느 날 엄마라며 찾아온 낯선 여자(조민수 분)가 만나며 겪는 수상한 사건을 담았다. ●김기덕에게 선물을 안길까 한국 영화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품지 못했다. 1987년 ‘씨받이’의 강수연(여우주연상), 2002년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감독상)과 문소리(신인배우상), 2004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빈집’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김 감독은 출국에 앞서 2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상을 준다면 거절할 것 같진 않다.”면서 “수상 여부에 앞서 동시대 영화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수업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로피의 종류가 문제일 뿐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게 완성된 ‘피에타’를 본 영화인들의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최고작은 아니지만, 김기덕만의 펄떡거리는 힘이 유지되면서도 성숙함을 더했다.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과거보다 여유롭고 따뜻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리랑’에서 (한국영화계와 옛 제자 장훈 감독 등에게) 독설을 내뱉었던 게 실제로 치유의 기능을 했고, 후속작 ‘아멘’에서 엿보인 성숙함·포용력은 더 깊어졌다. 베니스에서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고 덧붙였다. 집행위원장 교체도 기대감을 부풀린다. 전임 마르코 뮐러 위원장은 유럽 영화계의 대표적인 ‘친중국파’였다. 막판에 경쟁부문 추가작(서프라이즈 필름)은 늘 중국·홍콩 영화의 몫. ‘피에타’의 경쟁부문 진출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7년 만일 만큼 한국 영화는 베니스에서 소외당했다. 반면 바르베라 위원장은 1999~2001년 집행위원장 시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김 감독의 ‘섬’과 ‘수취인불명’을 공식 초청했던 인연이 있다. 또 2005년 토리노 영화박물관에서 김기덕 감독 특별전을 열었다. 일부에서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 거론됐던 ‘피에타’가 베니스로 방향을 튼 건 믿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피에타’의 상영 날짜가 폐막 나흘 전인 새달 4일이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주최 측에서 김 감독을 폐막까지 붙잡아 놓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테렌스 맬릭, 폴 토머스 앤더슨 등 거장들의 향연 올해 경쟁부문의 화두는 변화다. 18명의 경쟁부문 감독 중 12명은 베니스가 처음이다. 신진 감독이 대거 포함됐다. 테렌스 맬릭, 폴 토머스 앤더슨, 올리비에 아사야스, 기타노 다케시 등 스타 감독도 베니스보다 칸이나 베를린과 각별했다. 바르베라 신임 집행위원장의 속내가 엿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지난해 ‘트리 오브 라이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할리우드의 은자(隱者)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다. 후반 작업이 늦어지면서 칸 대신 베니스를 선택했다. 2010년 10월 촬영에 돌입할 때부터 ‘테렌스 맬릭 제목 미정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스페인의 명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필두로 벤 에플랙과 레이첼 맥애덤스, 레이첼 와이즈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자원 등판했다. 멜로 영화로 알려졌지만 맬릭이 고만고만한 사랑 이야기를 했을 리 없기에 호기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막차로 경쟁부문에 오른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도 강력한 경쟁자다.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신흥종교 교주의 이야기를 담았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호아퀸 피닉스, 에이미 애덤스 등이 출연했다. 앤더슨 감독은 2002년 ‘펀치 드렁크 러브’와 2008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각각 칸과 베를린 감독상을 받았다. 맥애덤스의 신작이 또 한 편 있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적자로 평가받는 브라이언 드팔마가 5년 만에 내놓은 ‘패션’이다. 프랑스 영화 ‘러브크라임’을 다시 만들었다. 한 여자가 직장 상사와 멘토에게 아이디어를 도둑 맞은 뒤 복수하는 내용을 담은 스릴러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출발해 갱스터 영화의 스타로, 다시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우뚝 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아웃레이지 비욘드’,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섬싱 인 디 에어’ 등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유민영 감독의 단편 ‘초대’는 오리종티 부문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어로 지평선을 뜻하는 오리종티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경향을 선보이는 비경쟁 부문이다. 전규환 감독의 ‘무게’는 베니스데이즈 부문에 초청됐다. 베니스데이즈는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해당하는 주요 섹션으로 한국 영화로는 처음이다. ‘모차르트 타운’ ‘애니멀 타운’ ‘댄스 타운’ 등 ‘타운’ 시리즈와 ‘바라나시’로 해외에서 호평받은 전 감독의 작품으로 인간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아픔을 담아 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배구] 누가 이들을 ‘만년 4위’라 했나

    [프로배구] 누가 이들을 ‘만년 4위’라 했나

    실업배구 시절까지 합쳐 14차례나 리그 우승을 했던 프로배구 삼성화재. 그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동안 대한항공이나 현대캐피탈이 무수히 도전했지만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만년 4위’ LIG손해보험이 2인자들도 못했던 일을 해냈다. LIG는 26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2 수원컵 프로배구대회 결승에서 삼성화재를 3-0(25-15 25-20 25-20)으로 꺾고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출범 이후 정규리그 우승은 한 번도 없었고 전초전 격인 컵대회에서도 2007년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던 LIG가 사고를 제대로 친 것. 1976년 금성통신배구단을 모태로 한 LIG가 종합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LG화재 시절인 1995년 전국체전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경기 초반부터 LIG는 삼성화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요한(27)과 이경수(33) 쌍포는 어김없이 불꽃 화력을 자랑했고, 여기에 군 복무에서 돌아온 센터 하현용(30)이 가세해 중앙 블로킹으로 기세를 올렸다. 세터 이효동(23)은 영리한 토스워크로 상대 블로킹을 교란했고 신기에 가까운 디그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리베로 부용찬(23)도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어떤 포지션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블로킹 19개를 기록, 7개에 그친 삼성화재를 높이에서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삼성화재는 전날 대한항공과 준결승을 치른 뒤라 체력적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V리그 6회 우승에 빛나는 삼성화재는 이상하게도 컵대회에서는 한 번(2009년)밖에 우승하지 못하며 부진했는데, 지난해 결승 진출 좌절에 이어 올해도 결승에서 무릎을 꿇으며 징크스를 이어가게 됐다. 준결승에서 개인 최다득점 타이인 50득점을 하며 트리플크라운(서브·블로킹·후위공격 각 3개)을 달성한 박철우(27)는 이날 15득점에 공격성공률 40%로 부진했다. 27세 동갑내기 주포의 라이벌 대결로도 관심을 끈 이날 결승은 김요한의 낙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김요한은 두 팀 통틀어 최다인 23득점(공격성공률 65%)을 올리며 승리를 견인해 기자단 투표 만장일치(총 18표)로 컵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여자부에서는 GS칼텍스가 MVP(15표 중 12표)로 뽑힌 한송이(28·25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IBK기업은행을 3-1(25-15 25-12 19-25 28-26)로 누르고 2007년 이후 5년 만에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박근혜의 사람들(상)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박근혜의 사람들(상)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사람들은 다양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박 후보가 2인자를 두거나 특정 인물에게 힘이 쏠리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측근들이 방사형으로 포진된 형태를 띤다. 박 후보가 신뢰를 중요시하는 만큼 박 후보의 사람들도 의리와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하고 입이 무거운 것도 공통점이다. 이번 경선 과정을 비롯해 앞으로 대선 가도를 이끌 핵심 참모진으로는 우선 최경환 의원이 꼽힌다. 3선의 최 의원은 이번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실무 전반을 진두지휘했다. 박 후보가 당 대표 시절 함께 당직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최 의원과 함께 박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낸 3선의 유정복 의원과 이학재 비서실장도 박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다. 2007년 경선 때보다 강화된 역할을 하며 이른바 ‘신주류’로 부상한 정치인 그룹도 주목을 받는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향후 대선 자금을 비롯한 당무 전반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캠프에서 공보단장을 맡았던 윤상현 의원과 정책을 담당했던 안종범·강석훈 의원도 신주류에 속한다. 박 후보의 ‘입’ 역할을 해온 이상일·조윤선 대변인과 이정현 최고위원도 높은 신임을 얻고 있다. 이번 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투톱’ 체제를 형성했던 홍사덕 전 의원과 김종인 전 장관은 주로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며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김 전 장관과 함께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던 이상돈 교수는 외부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캠프내 신주류로 꾸준히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큼 영향력을 보였다. 6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홍 전 의원은 2007년 경선에서도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영원한 좌장으로 꼽힌다. 박 후보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과 공부모임 소속 인사들은 박 후보의 정책을 다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경선 캠프에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위원장이었던 김광두 교수와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안종범 의원 등은 모두 국가미래연구원 소속이다.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장수 전 의원도 박 후보의 안보분야 자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7인회’로 논란을 빚었던 원로그룹도 여전히 안팎에서 박 후보를 돕고 있다.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고문과 김용환·최병렬·김기춘·김용갑 당 상임고문, 현경대 전 의원 등이 거명된다. 물밑에서 캠프를 이끌어 온 실무진들도 역할이 컸다. 박 후보가 정치를 처음 시작한 1998년부터 15년째 함께해 온 박근혜 의원실의 이재만·이춘상 보좌관과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캠프에서 각각 정책, 홍보 등 분야별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번 캠프 실무진들의 상당수는 2007년 경선을 같이 뛰었다가 복귀한 인사들이다. 5년 전 정책메시지총괄부단장으로 박 후보의 메시지와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조인근 전 비상대책위원장실 부실장은 이번에도 메시지 팀장을 맡았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등도 캠프 안팎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캠프의 핵심이었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유승민 전 최고위원 등은 탈박, 또는 구주류 친박 등으로 분류되면서 이번 경선에서는 박 후보와 거리를 멀리했다. 캠프 안팎에서는 박 후보가 본선에서 보다 소통과 통합의 이미지를 굳히려면 이들과 다시 함께해야 한다는 조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軍 수뇌부 전격 경질 ‘무르시’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61) 신임 이집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국방장관 등 군 지도부를 대폭 물갈이하면서 이집트 정국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민선 대통령이 군부와의 허니문 기간 없이 개혁에 나선 모습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 ‘하나회’(육사 출신 장교의 사조직)를 척결한 것과 퍽 닮았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며 조롱받던 무르시 대통령이 서슬 퍼런 칼날을 빼든 것이 반전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카이로의 한 대학에서 가진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 성월) 연설을 통해 “이번 인사는 특정인이나 특정기관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자유가 위축되지 않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앞서 그는 군부 수장인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과 2인자인 사미 아난 육군 참모총장을 전격 해임했다. 또 해군과 공군·방공군 사령관까지 해임하며 군 수뇌부를 모조리 갈아 치웠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임시헌법도 폐기했다.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 5일 이집트 국경 수비대원 16명이 무장세력의 기습을 받고 살해당하면서 군부를 향한 여론이 악화되자 이 틈을 타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집트 정세 분석가들은 무르시의 ‘쇄신 승부수’에 대해 의외라면서도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무슬림형제단 측 후보로 지난 6월 대선 결선에 나선 그는 51.73%의 득표율로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48.27% 득표)를 꺾고 당선됐다. 무슬림형제단은 애초 카이라트 알 샤테르 후보를 1순위 대선주자로 밀었으나 테러 지원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 탓에 후보자격이 박탈되자 무르시를 대신 내세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스페어 타이어’라고 부르며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번 결단으로 유약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단박에 바꿔놓았고, 민간정권과 군부 간 권력균형도 정권 쪽으로 급속히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집트의 정국 향배가 어디로 향할지에 집중된다. 관건은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와 협의를 거쳐 군 인사를 내렸는지 여부다. 만약 군부와 사전교감을 나눴다면 정세가 크게 악화되지 않겠지만, 협의 없이 군부와 정면대결을 택한 것이라면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후임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압델 파타 엘 시시가 군최고위원회(SCAF) 소속이라는 점에서 젊은 장교들과 교감 뒤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조은지 기자의 런던 eye] 외국의 한국인 감독님 은메달까지만 봐드릴게요

    이웅 감독은 호탕하게 웃었다. “기분이 끝~내 주게 좋아요. 이렇게 좋은 자리가 어딨겠어요.”라고 했다. 까만 선글라스에 감춰진 눈도 분명 반달 모양이었을 것이다. 이 감독은 2일 멕시코에 메달 두 개를 안겼다. 그것도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틈바구니에서. ‘금빛’은 아니었지만 은메달과 동메달을, 그것도 하루에 몰아쳤다. 멕시코 역사상 올림픽 양궁에서 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이빙 은메달 두 개로 심심해하던(?) 멕시코 국민에게도 큰 기쁨을 안겼다. 이 감독은 수십 명의 멕시코 취재진에 둘러싸여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처음 팀을 맡았을 때부터 꿈꾸던 순간. 그는 “한국이 금메달을 따고, 우리가 은·동메달을 딴 건 정말 완벽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래도 마냥 편한 마음은 아니었다. 기보배와 아이다 로만이 5세트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슛오프에 들어갔을 때는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먼저 쏜 기보배의 화살이 8점에 박히자 로만에게 별다른 지시를 할 수도 없었다고. 그저 “우리들 축제니까 편안하게 생각하고 쏘라.”고만 했다. 한국을 꺾고 싶으면서도, 또 한국을 꺾기엔 불편한, 그런 묘한 심정이었다는 얘기. 얄궂게도 로만의 슈팅은 기보배보다 (과녁에서) 먼 8점에 박혔고, 이 감독과 한국은 결과적으로 ‘윈윈’한 셈이 됐다. 그동안 양궁 지도자들은 줄기차게 밖으로 나갔다. 한국 양궁을 벤치마킹하려는 외국 팀들이 앞다퉈 영입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40개국 중 우리 지도자는 무려 16명. 한국의 조련법에 현지 특성까지 감안한 맞춤형 지도로 한국인 감독 전성시대를 열었다. 지난 올림픽까지 동문회 같은 훈훈한(!) 분위기였지만 런던에서는 살짝 달라졌다. 한국 선수들은 고비마다 한국 지도자에게 발목을 잡혔다. 여자 개인전 이성진은 멕시코에 막혀 4강행이 좌절됐고, 남자단체전 역시 이기식 감독이 이끄는 미국에 져 동메달에 그쳤다. ‘양궁판 히딩크’를 보는 시선이 달콤쌉싸래해진 이유다. 자랑스럽긴 한데 우리를 이기는 건 아직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스포츠 한류가 좋으면서도 우리보다 못할 때, 딱 2인자일 때까지만 흐뭇하다. 만약 로만의 마지막 슈팅이 10점이나 9점에 꽂혔다면, 그래서 우리가 은메달을 땄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이 감독의 웃음도, 기자의 축하 인사도 조금 불편했을 것 같다. 가치판단은 어렵다. 하지만 한국 양궁이 무서운 추격자들을 떨치고 변신을 시작할 때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zone4@seoul.co.kr
  • [런던올림픽] 영원한 지존은 없다

    역시 영원한 절대강자는 없다. 런던올림픽 열전 첫날부터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7·미국)와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 등 종목별 ‘지존’들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는 등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UPI통신은 29일 이들과 함께 여자 펜싱의 발렌티나 베잘리(38·이탈리아), 사이클 스타 파비앙 칸첼라라(31·프랑스)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스타로 소개했다. 첫 주인공은 단연 펠프스. 남자 개인혼영 400m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노렸던 펠프스는 이날 새벽 결선에서 4위에 그쳐 금메달은커녕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펠프스의 그늘에 가렸던 ‘만년 2인자’ 라이언 록티(미국)가 최근 급부상하면서 펠프스가 2위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기는 했지만, 메달권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개인 통산 14개의 금메달과 2개의 동메달을 획득한 펠프스가 메달 셋만 추가하면 옛 소련의 전설적인 체조 선수 라리사 라티니나(18개)를 제치고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로 등극할 수 있어 첫날 노메달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펠프스는 아직 6개 종목을 남겨 놓아 여전히 대기록을 향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여자 펜싱 플뢰레에서 올림픽 4연패를 노리던 베잘리의 결승 진출 실패도 큰 이변으로 꼽힌다. 베잘리가 금메달을 땄다면 한 종목에서 4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베잘리는 준결승에서 동료인 아리아나 에리고(24)에게 덜미를 잡혀 3~4위전으로 밀렸고, 당초 결승전에서 만날 것으로 기대됐던 남현희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거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한국 남자양궁은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지만, UPI는 이변으로 꼽았다. 한국 대표팀은 예선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4연패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준결승에서 최근 실력이 급상승한 미국을 넘지 못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딴 칸첼라라는 남자 개인 도로 결승선을 8㎞ 남겨 놓고 선두로 달리다가 펜스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메달을 놓치고 몸까지 다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2부) 선진 공익재단 현장을 가다 ⑤싱크탱크로 어젠다를 설정하라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2부) 선진 공익재단 현장을 가다 ⑤싱크탱크로 어젠다를 설정하라

    ‘세상을 바꾸는 정책의 전초기지에 부(富)를 투자하라.’ ‘슈퍼파워’ 미국의 힘의 원천으로 민간 싱크탱크를 꼽는 이들이 많다.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등은 ‘아이디어 전쟁터’인 워싱턴 정가에 ‘실탄’과 같은 정책과 두뇌를 공급한다. 미국을 움직이는 싱크탱크, 그 뒤에는 부자와 이들의 재단이 재정적 버팀목으로 서 있다. 이 자산가들은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노인 복지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싱크탱크를 통해 공공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편이 더 많은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정책 전문가와 아이디어에 기부하는 것이 최고의 자선’이라는 생각이다. ●사람과 아이디어에 투자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슈퍼리치의 재정 지원으로 설립,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주를 이루던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에 맞서기 위해 콜로라도의 맥주 갑부 조지프 쿠어스로부터 1년 예산인 25만 달러를 기부받아 1973년 설립했다. 이후 스카이프재단 등 보수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초대형재단으로 성장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1981~1989년)의 스타워스 계획(미사일방어 계획)과 적하 경제정책(정부 규제 완화, 감세 등으로 부유층에 혜택을 주면 고용과 소비가 늘어 서민들도 잘살게 된다는 것),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2009년)의 대테러 국토방위 전략 등 최근 30년 내 공화당 정부의 굵직한 정책들이 이 재단에서 나왔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의 빠른 성장세는 ‘네 자매’로 불리는 보수적 재단의 지원 덕에 가능했다. 올린재단과 브래들리재단, 스미스리처드슨재단, 사라스카이프재단 등은 1980년대 이후 미국 보수 연구소들이 세련된 논리를 갖추는 데 돈줄 역할을 한다. 중소 규모의 보수 싱크탱크의 경우 재정의 60%를 이들 4개 재단으로부터 지원받는다. 작은 정부와 개인 자유의 확대를 지향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등 보수 가치를 좇는 곳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브래들리재단은 ‘교육 바우처제도’(저소득층 학생들이 원하는 사립학교 등에 갈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지원하는 것)를 전국에 확산시키기 위해 연구비용은 물론 바우처제 도입을 머뭇거리는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 비용까지 지원했다. ●한국도 부호층 지원 절실 갑부와 재단의 화력지원을 받기는 진보 싱크탱크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 싱크탱크’로 평가받는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는 초기 록펠러재단과 카네기기금의 지원 속에 돛을 올렸다. 또,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을 표방한 미국진보센터(CAP)는 조지 소로스,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 등 진보 성향 부자들이 엄청난 재원을 제공했다. 소로스는 200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의 낙선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뒤 재단 설립의 초기자금을 댔다.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인 CAP는 ‘오바마의 두뇌’라고 평가받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오바마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으로 꼽히는 건강보험·교육 개혁의 틀을 제공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미국 갑부들은 싱크탱크 지원을 자선의 일환으로 여긴다.”면서 “기업 경영 등을 통해 사익을 얻었지만, 이제는 사재로 (정책 연구를 도와) 공공 영역에 직접 기여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정책 개발뿐 아니라 ‘전문가 인력 풀’ 역할도 한다. 부시 정권의 2인자였던 딕 체니 부통령과 이 정권에서 각각 재무장관과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폴 오닐, 존 볼턴 등은 보수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AEI) 출신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CAP의 존 포데스타 초대 소장이 정권인수위원장을 맡고 멜로디 반스 수석부소장이 백악관 국내정책위원장을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 독립 싱크탱크가 제역할을 할 때가 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기업 오너 등 부호들이 정치 논쟁에 휩싸일 수 있는 영역에 기부를 꺼려 연구소들은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싱크탱크 전문가인 홍일표 박사는 “특정 주제의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직접 기관을 세우거나 주제를 정하지 않고 기존 싱크탱크의 운영을 돕는 형태로 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총리 해임안/곽태헌 논설위원

    1948년의 제헌헌법은 정치세력 간의 타협의 결과로 미국식 대통령제의 기본요소인 대통령과 부통령제 외에, 영국식 의원내각제의 근간인 국무총리제까지 두면서 변형된 정치형태를 출현시켰다. 1960년의 4·19혁명에 따라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한 뒤 그해 6월 의원내각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이 이뤄졌다. 이때의 국무총리는 명실상부한 제1인자였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에 따라 대통령제로 환원됐다. 의원내각제의 수명은 1년 남짓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 뒤에도 개헌은 몇 차례 이뤄졌지만, 대통령제는 변함이 없다. 현행 헌법도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처럼 대통령의 궐위 시에 대비하여 부통령제를 두는 것이 순리일 수 있지만, 부통령제 대신 국무총리제를 두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의전 서열 1위는 당연히 실권도 있는 대통령이다. 행정·입법·사법부의 3권 분립에 따라 보통 국무총리의 의전서열은 국회의장(2위), 대법원장(3위), 헌법재판소장(4위)에 뒤지는 5위이지만, 행정부의 2인자로서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제1순위의 직무대행권을 갖고 있다(헌법 71조). 국무총리는 행정부의 2인자이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동네북’ 신세도 된다. 야당은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압박의 수단으로 국무총리를 겨냥한다. 야당이 들고 나오는 무기는 국무총리 해임안이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국무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명분이 있든 없든, 야당 의석이 과반을 넘는다면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19대 국회 의석 분포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밀실 추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황식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지난 17일 제출했고, 본회의에서의 표결을 요구했다. 해임안이 통과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다분히 정치적인 액션이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20일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전격 직권상정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151명)를 채우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민주통합당의 요구대로 표결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의석 분포상 폐기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직권상정이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6선(選)의 강창희 국회의장답다. 앞으로 민주통합당에 불리한 안건에 대한 직권상정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으니, 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의 ‘꼼수’에 따른 부메랑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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