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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9 10돌에 돌아본 민주화역정/김학준 인천대총장(특별기고)

    우리는 어제 6·29 10주년을 맞이했다.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고 국제사회에서도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그 감격스런 민주화조처 8개항의 실현이 약속됐던 때로부터 어언 10년이 흐른 것이다. 선언자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의 표현 그대로 그것은 국민에 대한 항복이었다.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민주정치의 부활을 외치는 대다수 국민들의 전국적 절규가 마침내 6월 항쟁의 형태로 폭발했을 때,집권세력의 제2인자였던 그는 더 이상 저항하는 무모함을 버리고 그것을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비롯한 8개항으로 압축해 즉각적 실현을 다짐함으로써 탈권위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6·29선언은 국민의 승리였다고 하겠다.60년의 4월혁명에 이은 두번째 민주혁명이 국민의 힘을 통해 시작됐던 것이다. ○개헌 통해 기틀 마련 돌이켜 생각하면,4월혁명은 그 꽃이 활짝 피기에 앞서 61년에 5·16 군사쿠데타를 만남으로써 일단 좌절됐다.그뒤 72년의 유신쿠데타,79년과 80년의 신군부쿠데타는 그리하여 권위주의체제를 지속시켰고 강화시킴으로써 4월혁명의 정신은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27년만에 다시 점화됐다.마치 4월혁명이 김주렬군의 죽음으로 촉발됐듯,6월항쟁은 박종철군과 이한열군의 죽음으로 촉발됐으며,그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순사위에서 마침내 6·29 민주화선언의 나무가 자라게 된 것이다. 6·29 민주화선언은 우선 자유화의 단계를 밟았다.권위주의체제 아래 취해졌던 부당한 반민주적 법률들과 제도들이 고쳐지기 시작했으며 그것들에 의해 부당하게 구속됐던 사람들이 풀려났다. 그 조처들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조처는 개헌이었다.여야합의에 따라 새로운 민주헌법이 마련된 것으로,이 헌법은 오늘날까지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개헌은 자유화의 다음 단계로서의 민주화의 개시 단계를 알리는 신호였다.이 개헌에 따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들이 마련될 수 있었다.3권분립의 확립,헌법재판소의 신설,언론자유의 보장,복수정당제도의 보장 등이 그 대표적 보기들이다.그리하여 그뒤 우리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경·사 수준 높여야 민주화 개시 단계의 다음 단계는 민주화의 실천 단계이다.이 단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도화의 수준을 뛰어넘어 실질화돼야 한다.그래서 이 단계를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라고 부른다. 4·19 혁명이,그리고 6월 항쟁이 요구한 민주화는 오늘 현재 민주화의 개시 단계와 민주화의 실천 단계 사이에 와 있다.달리 표현해,제도적 민주주의의 단계와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 사이에 와 있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해,제도적 민주화는 비교적 착실하게 진행되어 왔다.제도적으로 여전히 미비한 부분이 없지 않으며 그래서 그 미비한 부분의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으나 그래도 이 방면에서의 진전은 꽤 높은 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화의 수준은 높지 않다.우선 정치문화와 행정문화는 여전히 권위주의체제의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이어 경제 부문과 사회 부문에서도 민주화는 실질적으로 선진국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하다. 이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를 우리는 이번 15대 대통령 선거를계기로 크게 진전시켜야 한다.깨끗한 선거의 전통을 확립하는 것이 그 목표들 가운데 하나이다.그리하여 새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재벌의 국민화,부의 보다 더 고른 분배,그리고 지역간 갈등의 완화 등을 통해 경제적 및 사회적 부문에서의 실질적 민주화를 진전시킴으로써 민주화의 실천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우리는 민주화의 세번째 단계인 민주주의의 확립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며 동시에 평화통일의 과업을 주도하게 된다. 6·29 선언은 이렇게 볼 때 현재 진행형이다.우리 모두 새로운 감회로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하자.
  • 「서유기」 저자 오승은의 회안(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0)

    ◎타동항 생가 연당에 주인닮은 청죽 꼿꼿이…/영원불후한 명성 불구 무덤가엔 잡초만 휘휘하고/거리는 온통 “탄신 100주년” 주은래 기념 플래카드가 비록 중국의 장배항 교수가 최근 「서유기」의 저자는 오승은이 아니라고 회의를 제기했지만 중국의 4대기서 가운데 「서유기」만큼 그 저자·생졸·저작연대·출생지·무덤에 대한 논쟁이 적은 것도 없거니와 「서유기」만큼 신마소설을 비롯한 사회소설·종교소설·기행소설·공상과학소설·우언소설 등의 다양한 성격 부여도 없을 것이다. 오승은(1504∼1582)의 행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중국 도처에 널려있는 명인들의 동상이나 입상은 겨우 그사람의 인상이나 풍격을 과장적으로 풍기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지금 오승은의 고향집이나 화과산 산구에 세워진 오승은의 입상은 400여년전 생존했던 실재 용모와 매우 흡사하다는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의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제작이기 때문이다. 그 입상을 세우기까지는 상당한 곡절이 있었다.1974년 겨울.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속에 모든 문화재가 닥치는대로 파괴되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들이 까뭉개지는 난장판이었다.그런 난리판에 회안. 마전향(회안) 이보촌의 오씨 선영으로 알려진 무덤 몇개가 도굴당했다. 그중 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 오국옹의 무덤으로 판명되었지만그 옆 무덤에선 관목만 파냈을 뿐 백골 한무더기를 고스란히 그 자리에 묻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관목은 당시 어느 중학교에 팔려서 창문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그런데 그 관목을 헐어 손질하다가 「오」자를 비롯한 글자들이 발견, 계속 추심끝에 그곳 중학교 역사교사들은 당판에 쓰인 글자들을 겨우 「형부기선사양오공지구」로 판독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혁이 끝나고 서서히 질서가 회복되던 1981년 8월,강소성청 문화재관리국은 그 오씨선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 위의 당판에 쓰인 열글자가 오승은의 마지막 문서직 관명임을 확인했고그 무덤에서 수습한 1남2녀의 유골을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에 보내 검증,그중 미골이 뾰족한 장렴에 키 1m60∼70cm,생존연령칠십몇쯤으로 보이는 남성의 유골은 오승은의 것이요,나머지는 초취와 지취부인의 것임을 각각 확인했으니 「서유기」연구에는 일대 개가가 아닐수 없었다. 오승은은 저승으로 떠날때 겨우 「회안부지」에 「서유기」의 저자라는 단 한줄로 남았지만 4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를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로 연구의 열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회안땅 하하리,소상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항운하가 지나가는 중원의 요충인 회안땅에는 본시 인걸이 많았다.옛날 한고조때 천하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한신대장을 비롯해 한나라의 대표적인 부가 매승, 한나라 말엽 건안칠자의 하나로 불리는 시인 진림,그리고 청말의 대표적인 풍자소설로 꼽히는 「노잔유기」의 저자 유악등이 이곳에서 낳거나 살았던 곳.그러나 그 모두를 몽땅 모아도 문학으로는 어찌 「서유기」한권을 감당할 것이며 정치하는 사람 모두를 내놓아도 어찌 죽은 주은래(1898∼1976)한 사람을 당하랴! 그는 회안사람으로 모택동을 도와 신중국을 세우곤 줄곧총리를 지냈던 제2인자요,또한 시인이었다. 필자가 오승은을 만나러 연운항에서 2시간반이나 버스에 터덜거리며 회안에 당도했는데 회안은 주은래 일색이었다. 거리에는 그의 「탄신100주년」을기념하는 빨강 플래카드가 물결을 치고,회안시 북교에는 수만평 규모의 호상공원으로 꾸며진 「주은래기념관」,다시 시내 한복판 서문대가 연도에는 주은래 생가가 옛날 반가의 풍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30년전, 대북에서 즐겨 탔던 삼륜차를 타고 회안시 북단에 있는 초호 지나 하하로 머리를 돌렸다. 오승은이 태어나서 예순살이 넘어 장흥현의 현승을 살아먹은 1년남짓 말고 줄곧 살았던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회안호텔에서 겨우 15분거리.하하는 들판.타동항이라는 골목에 접어들자 네모난 전통 가옥.동향 대문에는 「오승은고거」라는 횡편이 걸렸고,대문으로 발을 딛자 맨앞에 손님맞이의 객실,객실옆으로 오승은의 서재로서 불후의 명작 「서유기」를 썼던 「사양이」(사양은 회안의 옛이름이요,오승은의 호.이는 다락)가 있고,서재옆으로 대청,그 안에는 중국과학원의 검증으로 제작된 오승은의 반신 동상이 있다.그 옆으로 오승은이 거처했던 안방,안방 건너편에 사랑방.마당에는 작은 연당,연당에는 가산.가산에는 청죽 몇그루 꼿꼿이 서있는데 비록 불우하게 큰 벼슬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천궁 지부를 마음대로 출입하고 작은 이끗에도 굽히지 않던 신통과 오기가 보이는 듯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오승은의 무덤은 깜깜한 안개속이었다.이제 그 무덤이 확인되고 그 유골이 틀림없다는 그곳은 찾는 이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경항운하를 따라 남행 8㎞쯤의 도로에 이윽고 「마전공업단지(마전공업원)」라는 안내판이 보였다.거기서 좌회전하여 내를 건너 다시 미루나무가 이열 횡대로 선 언덕을 따라 남으로 1.5㎞쯤 걸었을때,왼편에 작은 마을.아무 팻말도 없었다.그 마을이 이보촌.곽대장.그러니까 두번째 방축 마을의 곽씨네 집성촌이란 뜻이겠다.마을앞에 묘문이 보였다.「오승은지묘」. 온 마을에 푸릇푸릇고개를 흔드는 밀밭,그 복판에 버드나무로 방풍림을 세우고 묘문안에는 아주작은 봉분 2기.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그러나 2기 모두 잡초와 잡목이 휘휘했다. 오승은의 묘앞에는 「형부기선사양오공승은지묘」라는 묘표.여기서 형부는 명나라 인종의 서출왕자인 형헌왕의 왕부요, 기선이란 왕부의예법을 관장하는 자문직,사양은 오승은의 관향을 말한다. 곧 왕부의 8품으로 말직인데 그것마저 증여의 관작으로 보인다.오승은의 만년 관운이 얼마나 소조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 한보사건 1차 공판­검찰 직접신문 지상중계

    ◎한 경제수석에 대출청탁 전화했다­홍인길씨/“김 산은총재에 한보자금지원 부탁”­황병태씨/부담갖지 말고 쓰라고해 1억받아­김우석씨/은행대출 관련 홍 의원외에 배후인물 없다­정태수씨/대가·청탁성 없는 순수 정치자금으로 받아­권노갑씨 ▷홍인길 피고인◁ ­박상길 검사=지난 90년 정태수 피고인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한보그룹에 법률자문을 하던 김명윤 변호사를 통해 정피고인을 알게 됐지요. ▲홍인길 피고인=예. ­박검사=93년말쯤 정피고인을 만났을때 『국회의원이 되면 대우가 12가지나 달라진다』는 고 김동영의원의 말을 인용하면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뜻을 비쳤지요. ▲홍피고인=예. ­박검사=95년 2월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정피고인을 만나 『산업은행이 최근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는데 김시형 총재에게 전화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당시 한리헌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허허벌판에 말뚝을 꼽았을때 지원해 주고 공장을 다지었을때는 안해주면 모순이 아니냐』고 말했지요. ▲홍피고인=그렇습니다. ­박검사=정피고인이 노태우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95년 11월 정보근 회장이 찾아와 대출을 청탁하자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너무 걱정말라』고 한 뒤,『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며 정회장을 한수석에게 보낸 사실이 있지요. ▲홍피고인=예. ­박검사=96년 12월에는 이석채 경제수석에게 전화해 『(한보그룹 대출을)잘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지요. ▲홍피고인=예. ­박검사=피고인이 「깃털론」을 제기해,몸체가 따로 있다고 보도됐는데. ▲홍피고인=전혀 사실과 다릅니다.평소 나보고 실세라고 불러 나를 낮춰서 그렇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박검사=검찰에 출두하기 전 『정치권에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말한 사실이 있나요. ▲홍피고인=없습니다.수사과정에서 보도된 「홍인길 리스트」 등 별도의 배후인물에 대해서도 진술한 적이 없습니다. ▷황병태 피고인◁ ­김명곤 검사=국회 재정경제위원장으로 재직하던 96년 10월쯤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정피고인을 만난 사실이 있지요. ▲황피고인=예. ­김검사=그때 정피고인이 『산업은행에 한보철강 운영자금 5백억원을 대출받으려 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자,산업은행 김시형 총재에게 전화해 『가능하면 자금을 지원해 줄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지요. ▲황피고인=예.김총재는 당시 『이미 많이 지출돼 있어 자금지원이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했지만,대출은 이뤄졌습니다. ▷김우석 피고인◁ ­박상길 검사=건설부장관으로 재직하던 94년 9월초 롯데월드 호텔 객실에서 정피고인과 만나 저녁식사를 한 일이 있지요. ▲김피고인=예. ­박검사=그날 한보그룹을 잘 보살펴 달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1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받았지요. ▲김피고인=예.그러나 미안한 말씀이지만,정피고인과 헤어지면서 인사치레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을 뿐 한보그룹과 관련한 청탁은 받지 않았습니다. ­박검사=정피고인이 『특별히 좋은 사과를 준비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고 꼭 집에 가져 가시라』는 말과 함께 피고인에게 차번호를 물은뒤 사과상자를 트렁크에 실었지요. ▲김피고인=예. ­박검사=94년9월 피고인이 『불용예산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해 당진제철소 앞을 지나가는 해안도로가 건설되게 됐지요. ▲김피고인=당시 도로공사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있었습니다. ­박검사=정피고인으로부터 한보그룹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로 돈을 받았지요. ▲김피고인=정피고인을 3번째 만났을때 (돈의 성격을)물었더니 『절대 부담갖지 말고 받아 쓰라』고 해서 받게 됐습니다. ▷정태수 피고인◁ ­김명곤 검사=96년 봄 조승만 증권거래소 고문을 통해 산업은행에 대출을 청탁한 사실이 있습니까. ▲정피고인=모릅니다. ­김검사=조씨는 김시형 산은총재를 만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는데. ▲정피고인=모르는 사실입니다. ­김검사=은행대출과 관련,몸체가 따로 있습니까. ▲정피고인=아닙니다.홍의원 말고 따로 배후인물은 없습니다. ­김준호 검사=93년 3월 정재철 의원이 『당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권노갑 피고인을 소개했지요. ▲정피고인=예. ­김검사=92년 국감때 야당의원들의 질의로 고생한 적이 있어,이 자리에서 국감질문을 무마하기위해 5천만원이 든 가방을 건네주고,93년 12월 롯데월드 호텔에서 다시 만나 5천만원을 주었지요. ▲정피고인=예. ­김검사=95년 10월에 정재철 의원을 만나 『국민회의 박태영 의원이 국감에서 한보관련 질의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정의원이 『권의원에게 얘기하면 해결될 것 같다』고 해 1억원을 건네주라며 정의원에게 준 사실이 있지요. ▲정피고인=예.돈을 준 뒤에 (국정감사 질의와 관련해)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김검사=96년 3월 국립극장에서 권의원을 만나 5천만원이 든 가방을 준 사실이 있나요. ▲정피고인=예.그날 하얏트호텔에서 권의원에게 가방을 주었는데 권의원이 가방을 들고 호텔을 나가다가 다시 객실로 와 가방을 놓고 갔습니다. ­김검사=권의원이 왜 가방을 놓고 갔나요. ▲정피고인=호텔보이한테 얼굴이 알려져 권의원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김검사=몇분 뒤에 『국립극장에서 만나자』고 권의원이 전화했고 그곳에서 돈을 다시 건넸지요. ▲정피고인=예. ­김검사=96년 10월 국감때 국민회의 재경위소속 의원 4명이 한보관련 자료를 은행에 요구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재철 의원을 통해 권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하게 했지요. ▲정피고인=예.처음에는 이용남 한보철강 사장을 통해 무마하려 했지만 한 의원이 『공동으로 자료를 요구한 것이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해 4명 의원의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 정재철의원에게 말했습니다. ▷정재철 피고인◁ ­김준호 검사=96년 10월 하얏트호텔에서 『권피고인에게 부탁해 국민회의 의원 4명의 국감자료 요구를 막아달라』는 정태수 피고인의 부탁과 함께 현금 1억원이 든 가방을 받은 사실이 있지요. ▲정피고인=예. ­김검사=다음날 하얏트호텔 로비에서 권피고인을 만나 이같은 사실을 얘기하자 권피고인이 『형님을 봐서 알아서 해 드리겠다』고 대답했나요. ▲정피고인=예. ▷권노갑 피고인◁ ­안종택 검사=93년 3월 하얏트호텔에서 정태수 피고인을 처음 만나 5천만원이 든 가방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권피고인=예.제가 최고위원 경선에 나간다고 하니까 학교선배인 정재철 의원이 정태수씨를 아느냐고 물었고,『수서때 문제된 사람 아니냐』며 안만다고 하니까 정의원이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해 만나게 됐습니다. ­안검사=정태수 피고인은 국정감사에서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의 질의를 무마해 달라는 취지로 돈을 줬다고 하는데요. ▲권피고인=아무런 대가도 청탁성도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었습니다.96년 3월 국립극장 구내에서 받은 5천만원도 같은 명목이었습니다. ­안검사=95년 9월쯤 정재철 피고인을 통해 『같은 당 소속 박태영 의원의 한보그룹 관련 국정감사 질의를 무마해 달라』는 정태수피고인의 청탁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권피고인=없습니다. ­안검사=96년 10월 정재철 피고인으로부터 현금 1억원이 든 가방을 전해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권피고인=10월이 아니라 12월 6일이나 7일쯤 받았습니다. ­안검사=무슨 명목으로 받았습니까. ▲권피고인=역시 순수한 정치자금으로 알고 받았습니다. ­안검사=여당 중진의원이 야당 2인자에게 정치자금을 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권피고인=대학 1년 선배로 평소형님으로 모시는 사이입니다. ­안검사=국감 무마조건이 아니라면 왜 국민회의 의원들이 국감에서 한보관련 질의를 하지 않았습니까. ▲권피고인=모르겠습니다.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한보사태 검찰수사 이모저모

    ◎검찰 “수사결과 발표 보면 의혹 풀릴것”/“보강수사 통해 폭넓게 조사”/“여 실세 구속 등 큰성과” 자평 검찰은 14일 한보 수사에 아직 의혹이 많이 남아 있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사결과에 상당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검찰은 집권여당의 실세와 야당의 2인자 등을 구속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여론이 잇따르자 곤혹스런 표정.검찰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출경위 및 비자금 사용처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수사결과 발표를 지켜보면 의혹이 대부분 풀릴 것』이라고 대답,자신감을 보이기도. ○…최중수부장과 이정수 수사기획관 등 수사팀들은 이날 한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해서인지 한결 여유로운 모습.수사팀의 관계자는 『(기자들도)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고생많이 시켜 미안하다』며 「덕담」을 건네기도. ○…수사팀들은 야권과 언론에서 이번 사건수사가 그동안 불거진 의혹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채 서둘러 종결됐다는 지적과 관련,『수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보강수사를 통해 폭넓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 ○…대검찰청은 한보수사가 사실상 종결돼 평온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 황장엽 비서 망명 사건으로 정부 주요기관에 대한 북한측의 테러위협이 대두됨에 따라 대검청사 각 출입문의 출입통제를 한층 강화. 대검은 전날까지 특별한 통제없이 출입을 허용하던 취재진에게 「보도」라고 적힌 비표를 나눠주고 패용토록 하는 등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 ○…한보사태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대검찰청 당직실과 상황실 등에 수사의 조기 종결을 비난하는 전화가 빗발쳐 검찰직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검찰이 결국 욕먹게 마련 아니냐』며 뜻모를 한숨.
  • 종점으로 달리는 한보수사/한보 태풍­검찰수사 전망

    ◎“더 나올것 기대말라” 쐐기/“외압실체 규명됐다” 자평 검찰의 한보그룹 대출비리 의혹사건 수사가 12일 최고조에 올랐다. 김우석 내무부장관과 신한국당 황병태 의원(경북 문경·예천)및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전국구) 등 여야 핵심 「실세」 3명을 동시에 소환,조사에 들어갔다.한결 같이 자신의 「정치적 보스」의 오른 팔을 자임하는 인사들이라,검찰은 「월척」을 낚았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찰수사는 「정점」에 오른 동시에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릴 것 같다.수사가 사실상 종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한 인상이 짙다. 최병국 중수부장은 이날 하오 브리핑에서 이같은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막바지 수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그렇다고 크게 진전상황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달라』『뭔가 더 있을것 같다는 기대는 하지 않아야 될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검찰의 이같은 방침은 17일 임시국회가 개원되면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가 번거로워질 뿐 아니라,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일각에서는 검찰이 한보사태의 국면을 장기적으로 끌고가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한보그룹에 거액의 대출을 가능토록 한 외압의 실체를 규명해 냈다는 자평도 한몫했다.최중수부장은 이와 관련,『평가는 다른 사람의 몫이겠지만 (외압의 실체를)밝히려고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이미 구속한 홍인길 의원과 현직 내무장관,여당의 국회 재경위원장 및 야당의 실질적인 2인자를 외압의 실체로 지목한 것이다. 항간에서 거론되던 유력 인사들은 범죄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아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김기수 검찰총장도 수사대상에서 이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몇차례에 걸쳐 언급했었다.야당측에서 제기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개입 의혹설도 『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따라서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는 2∼3명 가량을 추가로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대미를 장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러면서도 여론의 향배에 적지 않게 신경쓰는 눈치다.한보와 「검은 거래」를 튼 정치인들과,핵심 배후세력을 제대로 규명했는지 등에 대한 물음이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올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 “은행장은 외로워…”/한보파문으로 몇몇 전·현직 “구속수순”

    ◎일부임원들은 발빼기 급급… 내우외환 지난해에 「공주는 외로워」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은행장은 외로워」로 바꿔야 할 판이다. 한보철강의 부도파문으로 몇몇 전·현직 은행장의 구속이 당연한 수순으로 예정된 상황에서 은행의 일부 임원들까지 행장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는 게 감지되는 탓이다. 한보철강에 거액의 대출을 해준 은행은 제일·산업·조흥·외환은행 등 빅 4.4개은행의 장은 최악의 경우 구속될 수도 있는 등 외부사정이 좋지 않은 판에 내부임원들의 도움도 별 기대할 수 없다.「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셈이다. 빅 4행장(총재)중 한 사람인 A씨의 고백이다.『2인자와 담당임원이 한보철강의 대출과 관련해 도와주는 것 같지 않다.오히려 발을 빼고 나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다』 요즘 한보철강에 대한 거액대출과 관련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다른 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다른때 같았으면 톱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가 나오면 임원들이 나서서 언론에 항의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B은행 한 관계자의 얘기다. 요즘 이러한 분위기를 일부 은행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장이 한보철강 파문으로 물러나면 어부지리를 얻을수 있다는 지나친 이기주의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 미 상원인준 통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4년간 유엔대사 활약… 미 외교정책 주도/실무진 대폭 물갈이… 대북정책 등 이끌듯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매들린 올브라이트(59)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22일(현지시간) 열린 상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올브라이트는 이에따라 23일 국무장관으로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미국의 최고위 여성 공직자가 된 올브라이트는 지난 4년동안 유엔대사로 국제외교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이미 미국정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브라이트는 유엔대사로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앤터니 레이크 국가안보담당 보좌관과 함께 클린턴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주관해온 3명중 1명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앞으로는 미국외교 총책으로서 그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첫 과제로 대외정책을 이끌어 나갈 실무진을 대폭 물갈이할 것으로 알려졌다.우선 이미 사임을 발표한 윈스턴 로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후임엔 북한 전문가인 스탠리 로스가 내정된 상태이다. 정치담당 차관에는 경륜있는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유라시아 재단을 이끌고 있는 토머스 피커링이 피터 타노프의 뒤를 이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또 경제담당 차관에는 스튜어트 아이젠슈타트 상무부 국제무역 담당 차관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그러나 국무부 제2인자인 스트로브 탈보트 부장관과 데니스 로스 중동문제 조정관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요청 등으로 인해 유임될 것으로 보인다.
  • 96 정치결산­야권공조 실상과 허상

    ◎대선항로 “오월동반”… 곳곳 암초도/내각제 편차 JP는 「목적」 DJ는 「수단」/내각제 시기·후보단일화 등 싸고 묘한 입장차이/최 강원지사 자민련 탈당에 공조노선 타격클듯 『김종필 총재의 탁월한 지도력이 야권공조에 크게 기여했다』(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지난 12일 대전 발언),『김대중 총재의 경륜과 지도력으로 공조는 계속될 것이다』(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14일 광주 망월동묘역 발언) 「4전5기」와 「영원한 2인자」의 결합.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처럼 서로를 치켜세우며 한 배를 타고 있다.내년 대선을 향해 일단은 순풍에 돛 단 듯하다.갖가지 역풍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다. 두 사람을 태운 배는 「반 YS(김영삼 대통령)호」.「정권교체호」라고 부를만도 하다.지난 5월 닻을 올린 뒤 연좌제 축소문제 등으로 옆길을 가기도 했지만 공동선장의 호흡은 그런대로 잘 맞는다는 평이다. 지난달 1일 「목동 회동」,즉 국민회의 김총재와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과의 면담 이후 야권 공동집권론이 구체화하고 있다.아전인수식 계산이 섞인 변형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논리는 한결같다.야권후보를 단일화,정권교체를 이루자는 것이다.단일화 실패는 패배라는 절박감이 공조의 끈을 더 조여매도록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이 국민회의 김총재나 자민련 김총재에게 「마지막 승부」라는 점이 「마지막까지의 연대」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단일화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마저 없지 않다. DJ(국민회의 김총재)는 최근 호남은 물론 부산·경남 대구·경북 강원 등 취약지 공략에 하루가 짧다.노소를 불문하고,장소를 따지지 않는다.JP(자민련 김총재) 역시 4개월째 단주이후 잦은 골프 등으로 고희의 나이를 잊고 분주하게 산다. DJ와 JP는 야권후보 단일화가 정권교체의 필연적 전제임을 강조하고 있다.다만 누가 단일후보,즉 최선의 선택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삼가고 있다.하지만 그 위치를 차지하려고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는 예외가 없다. 서로는 차선도 준비하고 있는 점 역시 공통한다.여기에 내각제를 고리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양당의 공조에 「태풍급」변수가 돌출했다.최각규 강원지사 등의 자민련 탈당을 계기로 자민련으로서는 한쪽 구멍이 뚫리게 된 것이다. DJP 후보탄생 여부에 대한 걸림돌은 이 밖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서로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후보단일화를 놓고도 우선 그 시기부터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DJ는 『내년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JP는 『처음부터 하는게 바람직하다.그러나 선거기간 중에도 가능하다』고 여유를 더 남겨 놓고 있다. 이런 차이는 극히 미미한 사안에 불과하다.우선 두사람의 연대에 고리가 되고 있는 내각제를 놓고는 적지 않은 편차를 노정하고 있다.JP에게는 내각제가 「목적」이다.반면 DJ에게는 정권획득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내각제 도입시기에 대한 시각차는 서로의 속뜻을 보여주고 있다.DJ는 「16대 국회 초반」을,JP는 「15대 국회 임기말」을 주장하고 있다.즉 JP는 16대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98년 2월부터 15대 국회가 끝나는 2000년 4월까지의 「2년3개월짜리 대통령」을 못박고 있다.그러나 DJ는 「2년3개월짜리」+「α」,즉 16대 대통령 임기가 거의 보장되는 상황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민련은 국민회의에 대해 「선 내각제 당론수정,후 후보단일화」를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국민회의는 머뭇거리고 있다.『내각제로 당론을 변경하고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 치명적』(반대론),『자민련과의 공조를 굳히고 여론설득 여유가 있다』(찬성론),『시간을 끌어 협상력을 높임으로써 DJ로의 단일화를 얻어내자』(지연론) 등 당내 의견만 분분한 형편이다. 두 사람은 「반YS연대론」에는 차이가 없다.그러나 DJ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겠다』고 말한다.JP는 『내각제를 위해서라면 공산당을 제외하고 누구와도 손잡겠다』고 말한다.DJ는 자민련과 함께 민주당,통추,재야 등과의 연대를 상정하고 있고 JP는 여권내 내각제세력도 끌어들이려고 한다. 「DJP플랜」은 당내 반발을 무마하지 못했다.국민회의는 김상현지도위의장,김근태·정대철 부총재 등으로부터 「내각제 반대론」에 부딪히고 있다. 자민련 역시 야권후보 단일화 조기논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한영수 부총재는 『DJ는 정치적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고 JP로의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두 사람은 방계 지원 세력을 끌어안으려고 끊임없이 시도중이다.DJ는 지난 14일 포항제철을 방문,박태준 전 회장을 극찬하고 그의 정치복권을 강력히 희망했다.대구시지부 및 경북도지부를 결성,「TK뿌리내리기」를 시도하고 있다.JP 역시 당내 TK세력과의 유대강화에 여념이 없다. JP는 『국민회의의 기본 자세가 우리와 같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얻어내야 할 것을 얻어내려고 공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얻어내야 할 것」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갈라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이 점에서는 DJ 역시 예외가 아니다.서로를 합치게 할 수도,갈라서게 할 수도 있는 바로 핵심 요인이다.
  • 각본·연출자 카르톨리니/가명 에바리스토… 노동운동 하다 “변신”

    ◎80년대 북경도시 공격후 “불사조” 명성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저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투팍 아마르 혁명운동(MRTA)의 리더는 페루국민들에게 불사조로 알려져 있는 네스토르 세르파 카르롤리니로 경찰과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카르롤리니는 MRTA 창설 핵심대원으로 10여년동안 경찰의 추적을 피해 반정부활동을 벌려온 도시 게릴라전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그는 80년대 빅토르 폴라이 캄포스,미겔 린콘과 함께 MRTA를 창설한후 페루 젊은이들을 혁명전사로 훈련시켜 도시게릴라활동,외국기업인 납치,정부요인 암살 등의 활동을 펴오며 경찰의 주요 검거대상이 돼왔다. 「에바리스토」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그는 지난 92년 MRTA 지도자 폴라이 캄포스가 검거되고 지난해 2인자였던 린콘 마저 경찰에 잡히면서 실질적인 1인자로 조직의 재건을 모색해왔다. 그가 페루 국민에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MRTA 북동전선 소속 게릴라들이 페루 정글 인근 도시를 공격하면서 부터이다.MRTA에 참가하기전에는 노동운동가로활동했으며 지난 79년 크로모텍스 공장시위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구속돼 1년정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 좌익 반군 「투팍 아마루」/일 반응

    ◎좌익 반군 「투팍 아마루」/84년부터 무장봉기… 병력 한때 1천명 육박/주로 도시게릴라전… 92년후 세력 급속 쇠퇴 【리마 AP 연합】 페루의 주일대사관저에 난입,외교관들과 각료들을 인질로 잡고 대치중인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은 지난 84년부터 무력봉기를 시작한 좌익반군이다.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은 페루에서는 스페인어 약자인 MRTA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모택동주의를 표방하는 「센테로 루미로소(빛나는 길)」반군에 이어 페루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쿠바의 영향을 받고 있는 MRTA는 전성기에도 그 전사의 수가 1천명미만이었으며 산악과 밀림을 주무대로 한 「빛나는 길」반군과는 달리 도시지역 게릴라전에 주력해온 것이 특징. 그러나 MRTA의 지도자인 빅토르 폴라이와 제2인자인 페테르 카르데나스는 지난 92년6월 체포돼 현재 종신형을 살고 있으며 그밖의 지도자들도 93년7월 패배를 시인하고 대부분 투항해 세력이 크게 약화된 형편이다. ◎일 반응/하시모토,후지모리에 인질안전보장 요청/비상대책반 설치… 우익세력 강경대응 촉구 일본정부는 인질사건이 일어난 직후 외무성과 총리관저에 즉각 비상대책반을 설치하고 인질들의 안전구출을 위해 페루정부와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는 등 급박히 돌아가는 분위기. 가지야마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인명구조가 최우선』이라고 밝히고 이같은 입장을 페루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가지야마 장관은 페루정부와 일본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받아들였다며 『따라서 페루정부가 인질구출을 위한 테러범들의 강경진압작전을 펴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시모토 총리도 사건발생 직후 후지모리 페루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인질들의 안전에 힘써줄 것을 당부. 일 정부의 비교적 신중한 자세와는 달리 일본의 극우주의자 수십명은 이날 도쿄의 일 외무성 건물앞에 모여 『페루 좌익단체의 범죄행위는 반드시 응징돼야 한다』 『이런 수치를 당한 정부는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DJP를 DJ↔JP로/틈새 비집기 분주한 여

    ◎연합대의 불이익 자민련에 조목조목 「훈수」/자민련 자극에 더 무게… 반발세력 부추겨 「DJP」(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 총재 애칭의 합성어)는 신한국당에게도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두 야당의 공조가 후보단일화로까지 발전할 경우 그만큼 대권기상도의 제1변수인 때문이다.까닭에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속에서도 신한국당은 「DJP」의 틈새 벌리기에 부심하고 있다. 일단의 시도는 김철 대변인의 논평으로 나타난다.김대변인은 지난 1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용 환사무총장의 「목동밀담」이후 줄잡아 10여건의 관련논평을 냈다.26,27일엔 자민련이 김종필 총재의 영문약칭을 「JPK」(Just President of Korea·바로 대통령)로 삼은데 대한 비난논평을 거푸 냈다.27일 논평에서 김대변인은 「JPK」를 「Junior partner of Kim Dae Jung(김대중씨의 작은 파트너)」으로 풀어 비꼬았다. 이어 국민회의와의 연합때 자민련이 입을 불이익을 조목조목 짚었다.『자민련이 국민회의와 연합하면 기존 보수지지층은 멀리 떠날 것』이라며 『김대중 총재가 단일후보를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김종필 총재는 또다시 2인자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지지지역 주민의 실망이 이만저만한 정도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28일에는 논평 없이 추이를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자민련 김총재가 전주에서 『야권단일화는 반드시 이뤄낼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신한국당은 『늘상 듣던 얘기』라며 애써 무시했다.하지만 신한국당의 틈새전략은 야권 내부반발세력에게 논리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도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흥미로운 대목은 화살의 무게가 자민련쪽에 더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 대통령 유고땐 석달안 선거/옐친 수술 이후의 정국

    ◎“추바이스파­레베드 대결 양상” 옐친 대통령이 5일 텔레비전을 통해 심장수술을 받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크렘린의 권력공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옐친의 수술결정발표는 심장병의 증세가 심각하며 더이상 버틸수 없는 상황까지 갔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심장병수술 결과는 앞을 내다보기 힘들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옐친은 오랫동안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때문에 「옐친후」를 놓고 후계대열에 들어선 경쟁자간의 암투가 치열해질 것이다. 옐친 대통령이 수술을 받는 동안 공식,비공식의 권력위임은 없을 것이다.그는 지난 두차례 입원기간동안에도 직무수행을 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경우 양상은 조금 다르다.입원기간동안 국정운영의 세부사항은 형식상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수행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실권을 쥐고 국정운영을 펴나가갈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대통령의 명령을 직접 검토·관장하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실장과 권력야망에한껏 불타있는 알렉산드르 레베드 국가안보위서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행보는 레베드 안보위서기.러시아 안보문제 권한을 틀어쥔 그는 최근 체첸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연히 「2인자」임을 자부한다.최근에는 옐친의 유고시를 상정,대통령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진실과 질서」라는 정당을 창당해 정적들로 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한 정당 관계자는 『대통령선거를 새로 실시해야할 상황에 대비해 창당했다』고까지 밝혔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며 3개월안에 대통령선거를 치르도록 돼 있다.문제는 옐친대통령이 수술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을 경우다.이경우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여부를 누가 정의할 것이냐는 것이다.옐친의 측근들은 그가 의식이 있는 한 그를 대통령직에 있도록 할 것이며 반대인사 혹은 정적들은 새 대통령선거를 주장하는 상황으로 정정불안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전씨 사형·노씨 22년6월 선고/「12·12」「5·18」1심공판

    ◎군사반란·내란·수뢰죄 적용/박준병씨 무죄… 「비자금」 포함 7명 법정구속 □선고형량 ·10년­황영시 정호용 이학봉 허화평 ·8년­이희성 허삼수 유학성 최세창 ·7년­주영복 차규헌 장세동 ·4년­신윤희 박종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사형과 징역 22년6월이 각각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는 26일 상오 10시 12·12 및 5·18 사건 선고 공판을 열고 비자금 사건과 경합된 전피고인과 노피고인에 대해 이같이 선고했다. 전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2백59억5천만원이,노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8백38억9천6백만원이 함께 선고됐다. 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 수괴·뇌물 수수 등 10개 죄목이,노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뇌물 수수 등 9개 죄목이 적용되는 등 검찰의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됐다. 황영시·정호용·이학봉·허화평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죄 등을 적용해 징역 10년씩을,이희성·허삼수·유학성·최세창 피고인에게도 반란중요임무 종사죄 등으로 징역 8년씩을 선고했다. 주영복·차규헌·장세동 피고인은 반란중요임무종사죄 등으로 징역 7년씩을,신윤희·박종규피고인은 징역 4년씩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2·12사건과 관련,반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준병 피고인에 대해서는 『정승화 총장 연행 사실을 모르고 경복궁 모임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육본 병력에 대응해 자신의 부대병력을 출동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석방했다. 또 정호용·황영시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광주 유혈진압과 관련한 내란목적 살인죄 부분은 『시위 진압을 지휘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구속집행 정지 또는 1심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된 유학성·황영시·최세창·장세동·이학봉·박준병 피고인 등 6명 가운데 무죄를 선고받은 박피고인을 제외하고 5명에 대해서는 구속집행정지 등을 취소,법정구속했다. 불구속 기소된 이희성·주영복·신윤희·박종규·차규헌 피고인 가운데 차규헌 피고인도 직권으로 법정구속했다. 이로써 이 날 공판에서 법정 구속된 피고인은 하오에 열린 전두환 피고인 비자금 사건의 안현태피고인을 포함,7명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피고인 등에 대해 『군 병력을 동원,군 내부 질서를 파괴하고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하는 등 내란을 일으킨 점이 인정된다』고 지적하고 『특히 전·노 피고인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수많은 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엄청난 부정축재를 했으나 노피고인의 경우는 12·12사건 등에 제2인자로서 관여했고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당선된 점 등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 「12·12」­「5·18」 선고/피고인별 양형 이유

    ◎전두환 피고/12·12­5·17­5·18 반란 수괴/2인자역·수천억 수뢰­노태우 피고/12·12 적극 가담… 군인사 문란케해­유학성·황영시·차규헌 피고/무장병력 동원·정 총장 연행 담당­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으로서 12·12사건과 5·17,5·18사건(이하 12·12 등)의 수괴로서 군병력을 동원,군 내부질서를 파괴했으며,헌법질서를 문란케 해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했고 우리 헌정사를 크게 주름지게 한 점,군병력 동원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점,피해자 및 유족들이 지금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군병력을 동원해 결국 대통령이 됨으로써 국민들에게 법 질서가 파괴되고 무시돼도 막강한 무력이나 권력 앞에서는 수수방관하고 결과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갖게 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일부 기업주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하여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범죄 중 2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 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우리 형법이나 군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한 죄들인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한다.집권 과정에 정당성이 결여돼 있는 마당에 대통령 재직중 경제적 안정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례를 남겼고 퇴직 후 백담사에서 상당기간 외부출입을 하지 못한채 생활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다해도 자신이 범한 죄의 법정최고형을 피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노태우◁ 12·12 등에서 모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하고 군병력을 동원하는 등 사건 2인자로서 적극 관여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때에 따라서 기업주들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해줬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무력감 등을 갖게 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죄 중 1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중형을 면키 어려우나,12·12 등에 2인자로서 관여했고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돼 재임중 북방외교,유엔가입 등 상당한 업적을 남긴점 등의 정상을 고려한다. ▷유학성·황영시·차규헌◁ 12·12에 적극 가담했고,5·17의 논의부터 결정까지 깊이 관여돼 있는 점,군 인사를 문란케 한 점에서 중형을 피할 수 없다.황영시는 12·12에서 자신의 병력을 동원했고 5·17에서 강경진압 입장을 고수한 점,차규헌은 12·12 등에서 병력동원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다. ▷최세창◁ 12·12에서 공수부대를 출동시키고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게 한 점,그 과정에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사망케 하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장세동◁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제30경비단의 단장실을 12·12지휘부로 제공했고 직속상관인 수경사령관을 상대로 30경비단에 포탄을 장전케 하는 등,대응체제를 갖춰 저항함으로써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12·12 등에 초기부터 깊이 관여한 점,특히 이학봉은 정승화 육참총장 및 재야인사 수사를 총지휘했고 허화평은 중요연락을 맡았으며 허삼수는 무장병력을 동원해 정총장을 연행하고 공직자 숙정을 담당한 점을 고려한다. ▷이희성·주영복◁ 사건 초기 모의에 배제됐고 당시 직분으로 인해 다소 수동적으로 가담한 점 등을 고려한다. ▷신윤희·박종규◁ 상관에게 총격을 가한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으나,직속상관의 명령을 존중하고 따르는 군 내부 질서를 고려한다. ▷정호용◁ 5·17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해 있고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에 자신의 부대를 동원시키면서 5·17,5·18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 「12·12」­「5·18」 선고/사건의 실체와 의미

    ◎쿠데타·권력형 부패 중형 단죄/반란·내란 잘못된 역사 법적 심판/“「자위권」이 발포명령” 살인죄 인정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적 심판이 26일 내려졌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김영일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12·1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이며 5·17 및 5·18은 폭동을 통해 집권에 이른 내란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12·12 및 5·18의 역사적 의미가 16년만에 구체적인 사실에 기초,바로잡히는 토대가 마련됐다.김재판장의 말대로 「크게 정지됐던」 역사의 흐름이 비로소 민주화라는 제 길로 들어서게 됐다. 5∼6공 정권의 정통성 결여도 사법부와 역사의 이름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군사쿠데타를 통한 정권찬탈과 권력형 부정부패는 더이상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는 「안전판」이 설치된 셈이다. 재판부가 내린 형량은 죄질과 정상을 참작할 때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량의 가장 큰 특징은 전·노 피고인에 대한 차등선고.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이자2천2백여억원의 뇌물을 챙겼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2인자이자 2천8백여억원의 뇌물을 받았으나 직선대통령인 노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 나머지 13명의 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10∼4년을 각각 선고했다. 특히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 증거부족을 이유로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나란히 징역 10년을 선고해 주목됐다.박준병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검찰이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과 죄목 10가지를 모두 인정한 것에 검찰은 흡족해 한다. 12·12의 쟁점도 명확히 정리됐다.이른바 ▲12·12의 동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병력출동 및 저지 등이다. 재판부는 12·12를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쟁점의 핵심인 정총장의 연행은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의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고,사전구속영장이나 사후영장 없이 무력으로 연행한 불법조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총장의 연행재가와 관련,당일 하오7시쯤 최대통령에게 요청한 재가가 거부됐다는 점을 불법의 이유로 적시했다.특히 13일 상오5시10분의 사후재가는 국가권력이 전피고인 등의 행위로 그 권위를 도전받고 위법상태가 발생한 이후에 이뤄진 승낙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력출동에 대해서는 같은 해석을 내렸다.신군부가 육본측의 지시에도 불구,당일 하오10시30분에 먼저 병력출동지시를 내리고 국방부·육본·경복궁 등에 병력을 진주시켰다는 것이다.하극상에 의한 명백한 쿠데타임을 적시한 것이다. 80년부터 81년1월24일까지의 5·17 및 5·18사건도 내란및 내란목적 살인 등의 유죄사실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특히 발포명령자를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재판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포명령이 실질적으로 5월21일 계엄사의 자위권보유 천명으로 이뤄졌다고 지적,실질적인 발포명령자를 전두환·주영복·이희성 피고인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검찰의 주장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상계엄의 확대선포가 폭동에 해당되며,선포유지행위가 포괄적으로 내란죄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계엄군 배치와 국회의원 등원저지,광주 진압,정치인 체포,공직자 숙정,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대법원 판사의 사직요구 등 일련의 과정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특히 대통령의 승인을 거쳤다 하더라도 국회해산과 국보위설치 등은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 전·노씨 선고공판 어떻게 진행되나

    ◎역사적 심판 3백11일만에 1심 매듭/노씨 포함 피고인석 16명 정면촬영 허용/재판부,중요성 감안 선고때 피고인 기립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의 1심이 26일 28차공판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공판은 상·하오에 걸쳐 12·12 및 5·18사건,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등 3부분으로 나눠 진행된다.「단죄의 법정」에 서는 피고인들은 각각 16명,14명,4명 등 모두 34명이다. 상오 10시에 개정되는 12·12 및 5·18사건 공판은 재판부가 상오 10시에 입정해 「95고합 1280 반란수괴 등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면서 시작된다.전피고인이 법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417호 법정안에 대기하고 있는 방송국 카메라 3대와 사진기자 등의 플래시가 집중적으로 터진다.이어 노피고인 등 나머지 15명이 입정해 피고인석에 기립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담는다.피고인석에 대한 정면 촬영이 허용돼 전·노피고인의 회한에 찬 표정 등도 볼 수 있다. 피고인 16명이 모두 자리에 앉으면 김영일 부장판사는 피고인 별 범죄사실 및 쟁점에 대한 설명,선고 형량의 이유 등을 낭독한다.재판부는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중대성을 감안,양형 이유 등을 자세하게 설명할 방침이다.따라서 최대 하이라이트인 주문(선고 형량)의 낭독은 낮 12시쯤에야 이뤄진다. 이때 전·노피고인 등 전원은 재판부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석에서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통상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이 앉은 상태에서 선고받지만 재판부는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기립시키기로 결정했다.주문 낭독이 끝나면 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난 피고인 6명의 법정구속 및 재수감 여부도 드러난다. 2시간여 휴정을 한뒤 하오 2시30분부터 노피고인의 비자금 사건 선고 공판이 시작된다.노피고인은 상오공판 때 뇌물수수 범죄혐의에 대해 일괄 선고받아 입정하지 않는다.전피고인 등과 함께 법원 지하의 구치감에서 재판이 끝날 때가지 기다려야만 한다. 피고인은 삼성그룹 이건희·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재벌회장 9명을 포함,이현우·이원조피고인 등 14명이다.상오 공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건넨 돈이 뇌물인지 여부 등에 대한 재판장의 설명이 있을 예정이다.선고는 하오 3시30분쯤 있게된다.재벌총수들은 대부분 집행유예가,이현우 등 6공 실세들은 실형 선고가 예상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피고인의 비자금 사건 공판은 하오4시쯤 시작돼 「역사적 심판」의 대미를 장식한다.피고인은 모두 6명이지만 전피고인과 정호용피고인은 상오공판 때 12·12 및 5·18 사건과 일괄선고를 받아 입정하지 않는다.안현태·사공일 등 피고인 4명 역시 형량이 문제일 뿐 유죄 선고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3차례의 선고공판이 모두 끝나는 시각은 하오 5시쯤.실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은 호송버스에 태워져 다시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 등으로 출발한다. 지난해 10월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을 폭로해 「역사 바로세우기」의 단초를 제공한 이래 꼬박 3백11일의 대장정 끝에 1심 재판이 마무리된다. ◎전·노씨 선고형량 전망/전 피고­반성 기미없어 사형 불가피할듯/노피고­2인자 참작… 15년이상 징역 유력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사건과 전두환·노태우피고인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1심 선고가 마침내 26일 내려진다. 피고인은 모두 34명.한 시대를 호령한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권력은 유한하나 재벌은 영원하다」고 숨죽여 외치는 재벌 오너도 다수다. 검찰의 구형대로 전피고인에게 사형이,노피고인에게 무기징역,재벌 총수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재판장과 김용섭·황상현 판사만이 알 일이다. 따라서 법조 주변에서 흘러 나오는 예측과 형량에 대한 일반론을 간추려 주요 피고인들의 형량을 가늠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피고인들에 대한 형량을 「중형 불가피론」과 「정상 참작론」의 잣대로 어느 정도 재볼 수 있다. 전두환 피고인. 사형 선고 불가피론은 「법대로」 적용할 경우다.재판과정에서 형량이 사형 밖에 없는 반란수괴죄가 드러났다.보안사령관·중앙정보부장 직대를 겸임하며 계엄 확대·정치인 체포·국보위 설치 등 주요 내란과정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사실이 입증됐다.여기에 2천2백억원의 뇌물을 거둔 점도 시인했다.반성의 빛이 거의 없고,항소할 것이 확실한 만큼 1심에서 만큼은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참작론」은 무기징역을 점치는 쪽이다.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공헌도,당시의 정황론,국가적 위신,정치적 부담 등이 참작 사유로 거론된다. 사형이든,무기징역이든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노피고인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전씨보다 더 많다.상관살해미수죄에 대한 검찰의 작량감경,광주 민주화운동의 불간여,예의 「영원한 2인자」로 기록될 재판 태도 등을 감안해 볼 수 있다.그러나 전국민을 공분케 한 뇌물사건으로 징역 15년 이상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재벌 총수들도 비슷하다.정경유착의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선 징역형이 마땅하다.그러나 최근의 「경제위기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성장·국제수지·물가라는 경제정책 목표의 「세마리 토끼」를 다 놓칠까봐 아우성이다.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얼마전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으로 뽑혔고,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경영」의 상징이다.경제성장의 주역들에 대해 전·노피고인은 처벌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형평성에 대한 재판부의 부담이 예상되나 집행유예를 점치는 이유들이다. 다른 30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 형량도 구형량보다는 낮아지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일부 피고인,일부 죄목에 대한 무죄 판결에 따른 파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 「12·12」 「5·18」 결심공판/재판부 신문내용

    5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7차 공판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재판장은 검찰의 구형에 앞서 마지막으로 피고인을 직접 신문했다.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인이 신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함에 따라 허화평 피고인부터 신문했다. 피고인 별 신문내용을 간추린다. ▷허화평 피고◁ ▲김 부장판사=보안사가 수집한 정보는 분석내용 및 대응책을 함께 묶어 상부에 보고하는게 상례 아닙니까.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대응책 등이 자동적으로 수반돼 보고됩니다. ▲김 부장판사=12·12 당시 신군부병력이 출동해 국방부까지 장악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허 피고인=저로선 잘 모르는 일입니다. ▲김 부장판사=노재현 국방장관의 결재는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허 피고인=답변하기 곤란한 사안입니다만, 참고적으로 국방장관으로서는 12·12사건 자체가 합수본부장과 직접 관계된 일이고 따라서 사안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합수본부장과 접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제로 결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부장판사=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하는 건 이례적인 일 아닙니까. ▲허 피고인=통상에 비춰 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5·16때 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했었나요. ▲허 피고인=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10·26 이후 중앙정보부가 퇴락한 후 보안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죠.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전두환 피고인이 10·26 이후 12·12까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승화 총장의 눈치를 살필 정도라고 진술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허 피고인=…. ▲김 부장판사=「K­공작계획」이라는 게 그 당시 있었죠. ▲허 피고인=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김 부장판사=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가 됨에 따라 정부조직법상 국방부장관이나 계엄사령관 등 보다 서열이 높아진 것 아닌가요. ▲허 피고인=서열은 잘 모르지만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압니다. ▷이학봉 피고◁ ▲김 부장판사=육참총장이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총장의 계엄업무 수행과정에가시적으로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간주했습니까. ▲이 피고인=업무수행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피고◁ ▲김영일 부장판사=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면 12·12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줄 몰랐습니까. ▲노 피고인=내란방조 혐의가 있는 정총장을 연행하는 것은 적법하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영복 피고◁ ▲김 부장판사=당시 계엄사 산하 합수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까지 맡게된 후 국방부장관인 증인과의 관계가 힘들게 됐죠. ▲주 피고인=중정부장서리가 된 후에는 전 보안사령관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임무수행에 곤란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희성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사태 때 광주시민에게 몇차례 선무전단을 살포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령관 이름으로 3∼4차례 살포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선무전단은 계엄사에서 만들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 참모가 만들었는지, 다른 기관에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호용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에서 상황보고를 받기 위해서나 지휘참고 등을 위해 특전사 여단장들을 만난 적 있습니까. ▲정 피고인=제가 정식지휘 계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단장들이 저를 만나면 대충의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 했으나 지휘혼란을 막기 위해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그렇다면 왜 여러차례 광주에 내려갔습니까. ▲정 피고인=예하 부대가 파견돼 있는 저로서는 내려가 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서울에서 광주를 오르내린 것은 시위진압에 대한 기밀사항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까. ▲정 피고인=검찰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나, 기밀사항을 가지고 갔다면 어딘가에 전달을 했어야 하는데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그런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광주에 갔다 오면 계엄사령관 보다 보안사령관을 먼저 찾아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정 피고인=사실이 아닙니다.서울에서 광주에 오르내릴 때마다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박은호·김상연 기자〉 ◎검찰의 피고인별 구형 이유/전씨­최고책임자에 법정 최고형/노씨­「2인자」 고려 전씨와 차등 검찰은 5일 전두환 피고인 등 16명의 피고인에 대해 법정 최저형량 10년을 기준으로 차등해 사형까지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원치 본부장(서울지검 1차장)은 피고인들에 대해 작량감경(범죄의 정상을 참작해 형을 낮추는 것) 없이 구형했지만 노태우 피고인은 상관살해 미수죄의 「미수」 부분을 고려해 법률에 따라 감경했다고 설명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은 검찰이 재량으로 감경했으며 형법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가담경위, 기여도, 사후 태도, 개인정황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피고인별로 차등구형 했다고 강조했다. 개인별 구형 이유를 간추린다. ◇전두환 피고인=반란 및 내란의 모든 과정에서 최고책임자로서 수괴에 해당된다. 거액의 뇌물수수를 고려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노태우 피고인=거액의 뇌물을 수수했으나 반란 및 내란과정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를 고려해 전 피고인과 달리 무기징역을 차등 구형한다. ◇황영시·정호용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과정에서 강경진압을 주도했다. 내란목적 살인죄의 최저형인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한다. 황씨는 12·12에도 관여했고, 정씨는 뇌물 3백억원을 수수한 사실도 감안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에 소극적으로 간여했다. 그 가담경위와 (다른 피고인과 달리 변호인이 사퇴하지 않은) 재판태도 등을 감안, 각각 징역 15년으로 작량감경했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12·12 및 5·18사건의 주요 계획에 대한 입안과 실행을 주도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유학성·차규헌 피고인=군 선배로서 신군부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범행에 가담했다. 차 피고인의 경우 검찰 조사에서 시인한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한 사실을 참작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세창 피고인=3공수여단을 직접 동원해 특전사령부를 공격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 하극상을 주도한 패륜적 범죄를 저질러 대표적으로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피고인=30경비단을 지휘부로 제공했으나 직접 범죄의 실행에 가담한 정도가 적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신윤희·박종규 피고인=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패륜적 범죄에 속하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점을 감안해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준병 피고인=법정태도와 범행의 가담경위, 피동적인 가담사실을 감안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박선화 기자〉
  • 헤스 사망 9주년 시위준비/독­신나치 충돌 우려

    【베를린 연합】 독일의 신 나치주의자들이 나치 2인자였던 루돌프 헤스의 사망 9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시위를 준비하자 독일 지방정부들이 1일 시위불허를 결정,양측간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독일의 신나치주의자들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헤스가 사망한지 9년째인 오는 17일까지 독일 전역의 90개 지역에서 기념집회를 열겠다고 밝혀왔다.정보기관에 따르면 독일에는 약 4만6천명의 극우주의자들이 있으며 이중 2천여명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자민련 사무총장 김용환 의원(오늘의 인물)

    ◎총재없는 당 살림에 동분서주… “리틀 JP”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JP(김종필 총재)의 최측근 참모다.3공시절부터 따지면 25년간 JP를 모셨다.3당 통합시절 민자당을 탈당,잠시 국민당에 적을 뒀으나 근본은 「JP사람」이다.김총장에 대한 JP의 신임도 무척 두텁다.그래서 김총장을 두고 「2인자」니 「리틀 총재」니 한다. 요즈음은 더욱 그럴 만하다.JP가 어깨결림증으로 며칠째 당사에 나오지 못하자 김총장이 총재를 대신하고 있다.총장자리가 원래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김총장은 동분서주하며 정말 총재 역할을 하는 것 같다.김총장 스스로도 『이러다 당권도전 얘기 나오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다. 김총장은 1일 월례조회에서 JP를 대신해 인사말을 했다.그는 『내년 정치일정에 자민련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자』고 강조했다.「총재급」 인사말이다.지난달 31일에는 이인구 의원의 기소와 관련,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는등 기민한 움직임도 보였다.이날 하오에는 총재를 찾아온 미의회 청소년 교류사업단을 김총장이 접견하기도 했다. 오는 20일까지 당무회의와 간부회의가 모두 취쇠되는 등 당은 「정치방학」을 맞고 있으나 김총장만큼은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백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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