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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20) 요동치는 軍:下

    장면(張勉)정부 국방정책의 큰 줄기인 ‘감군(減軍)’은 처음부터 장벽에부닥쳤다.장면이 민의원 첫 시정연설에서 밝혔듯이 군 병력을 줄이려는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었다.국정목표로 내건 ‘경제제일주의’를 실현하려면 국방비를 줄여 그 돈을 경제건설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방비 규모는 국가예산의 40%를 넘을 정도였다.장면정부는 국방비가예산의 20% 수준으로 줄 때까지 지속적으로 병력을 감축할 계획이었다.모자라는 병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장비 현대화,화력 증강 등으로 보완할 생각이었다.주한미군이 있는 한 국가안보에는 이상이 없으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에 따라 장면정부는 집권하자마자 ‘10만 감군’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한국군과 미국 양쪽의 반발에 직면한다.장면이 새로 임명한 최경록(崔慶祿)육군참모총장부터가 앞장섰다.최총장은 민의원에서의 취임인사에서 “감군은 전투능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것”이라면서 정부의 계획에 “원칙적으로반대한다”고 밝혔다.주한 유엔군사령부와 미대사관,미 국방부 등에서도 완곡한 반대 의사를 잇달아 흘렸다. ‘정군(整軍)’을 주장하는 영관급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전력 약화’라는 측면 말고도 그들이 감군을 거부하는 까닭은 또 있었다.그것은 인사적체에 따른 불만이었다. 예컨대 육사1기생은 절반쯤이 입대 5년 만에 별을 달았는데 그들보다 4년늦게 시작한 8기생들은 12년이 지나도록 준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대령 숫자도 10%가 채 안됐다.가뜩이나 불만이 많은 상태에서 감군으로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이들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섣불리 감군을 발표한 장면정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그렇다고 정책의 정당성과 목표를 홍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도 별로 없었다.1960년 9월14일 열린군수뇌회의가 감군 규모를 5만명으로 줄여달라고 건의하자 장면정부는 이를받아들였다. 11월 초 권중돈(權仲敦)국방장관은 “일부 감군이 있지만 한국군 병력은 60만명을 유지한다”고 공식발표해 감군정책을 포기한다.국가정책의 전체적인틀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 시도조차 못된 채 무너져 내린 것이다. 감군의 무산과 함께 장면정부는 군인사에서도 실책을 거듭한다.어느 정부건 정권유지에 핵심이 되는 요소가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자체 인맥을 형성하는 일이다.그런데도 장면정부는 이를 경시했다. 장면이 총리가 되자 허정(許政)과도정부 수반은 그에게 “국방장관만은 이종찬(李鍾찬)을 계속 기용하라”고 권유한다.민주당에서 국방전문가로 통하는 이철승(李哲承)도 똑같이 이종찬을 추천한다.그같은 격변기에 군에서 두루 존경받는 이종찬이야말로 적임자라 할 만했다. 그렇지만 장면은 이종찬 대신 현석호(玄錫虎)에게 장관을 맡긴다.육군참모총장에 최경록을 앉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최경록도 이종찬처럼 이승만(李承晩)의 정치적인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유명한 꿋꿋한 군인이었다.특히장면이 부통령으로 출마한 ‘3·15부정선거’때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서경호를 도맡는 등 모든 일을 은밀하게 도와준 충실한 장성”(鄭一亨 당시 외무장관 회고록에서)이었다. 장면과 최경록은 그러나 처음부터 어긋난다.최경록은 감군정책을 공개리에반대했고,미 국방부 군원국장인 파머대장이 ‘정군 반대’를 밝히자 정면으로 반박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장면정부를 난처하게 만든다. 최경록은 61년 2월17일 육참총장에서 물러난다.임기는 2년이지만 실제로는반년도 못 채우고서였다.그가 해임되자 국회는 ‘총장 경질을 둘러싼 상황’을 전면조사하겠다고 나섰다.장면은 “최총장을 바꾼 이유는 공공연하게 반미감정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장면과 최경록의 갈등은 군정책에 관한 이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편에서는 장면내각의 핵심세력과 수석 국무위원인 정일형 외무장관 사이의 다툼 때문이라고도 풀이한다.최경록은 가족관계로 정일형·이태영(李兌榮)과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경록의 후임에는 장도영(張都暎)중장이 취임한다.장도영을 육군참모총장으로 기용한 것은 장면정부의 군 인사 중에서도 최악이었음이 석달 뒤 5·16쿠데타 때 드러난다.그는 쿠데타가 추진돼 성공을 거두는 전과정에서 쿠데타군과 장면정부에 ‘양 다리를 걸쳐’ 쿠데타 저지를 가로막은 장본인이었다. 사실 ‘장도영 육참총장’은 누가봐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다.장도영은 대표적인 정치군인이었다.자유당정권의 2인자인 이기붕(李起鵬)국회의장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그를 ‘아버지’로 모셨다.3·15부정선거 때는 2군사령관으로 후방 군부대의 부정선거에 큰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장도영은 60년 9월17일 최경록 육참총장에게 예편신청서를 제출하지만 되돌려받는다.그는 참모총장 자리를 통보받았을 때 “내가 총장을 맡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당황했고 사양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장도영 총장 취임을 누가 주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5·16 이후 나온 관계자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변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단지 영어에 능통한 장도영 부부가 미8군 장성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으므로 미군쪽 추천이 강력하지 않았나 추측될 뿐이다. 감군 추진에 따른 군부의 반발과 잘못된 인사로 장면정부는 군 통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이승만정권에서는 군 출신을 각료의 10%쯤 배정한 것과는 달리 장내각은 군 출신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심지어 국방부의 장·차관 자리마저 배려하지 않았다. “장면정부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직력이 강한 군부를 소외시켰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지적처럼 군에 무심(無心)했던 정부는 일부 군인들의 쿠데타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용원기자 ywyi@
  • MVP 정선민·신세계 이문규 감독

    - MVP 정선민…'정은순 그늘' 벗고 1인자 우뚝 정선민(신세계)은 이번 대회가 평생 잊지 못할 감회로 남게 됐다. ‘주부스타’정은순(삼성생명)의 그늘에 가린 ‘만년 2인자’의 아픔을 한꺼번에 씻어내며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데다 이적의 설움을 ‘기쁨의 눈물’로 승화시킨 것이다. 지난해 여름리그에서는 득점왕(한경기 평균 30점)에 오르고도 팀이 삼성생명에 지는 바람에 MVP영예를 정은순에게 넘겨야만 했다.게다가 지난해초 믿었던 소속팀 SK가 돌연 해체돼 한 때 오갈곳 없는 ‘미아신세’로 전락,정든 코트를 떠나야할 지 모른다는 암울한 터널을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정선민은 이번 대회에서 정신력을 앞세운 대변신으로 주위를 깜짝놀라게 했다.평균 29.6 득점에 12.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두 부문 수위에 올라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여기지던 정은순을 제치고 여자농구 최강의센터로 우뚝 섰다.정선민은 어시스트(3.8개)에서도 3위,자유투(성공률 83%)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제2의 농구인생’을 활짝 연 것이다. 이번 시즌에서 정선민은 또다른 곡절도 있었다.삼성생명과의 개막전에서 박정은과 부딪혀 오른쪽 발목부상을 입었고 그 뒤에는 왼쪽 발목마저 삐끗,제대로 걷기도 불편한 상태에서 ‘투혼’으로 팀을 정상까지 이끌어 주위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켰다. 정선민은 센터(186㎝)로서 체력이 좋고 승부근성도 강해 박찬숙-정은순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 센터의 계보를 잇기에 충분하다. 김경운- 신세계 이문규 감독 “이제부터 시작…정상 지키겠다” “이제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8일 여자프로농구 원년우승의 금자탑 세운 신세계쿨캣의 이문규 감독은 우승의 감격보다 정상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더욱 다졌다.이 감독은 “구단의전폭적인 지원과 선수들의 노력이 오늘의 결과입니다”라며 모든 공을 구단과 선수들에 돌렸다.특히 이감독은 오는 여름리그 때는 선수진과 허윤자 등2명이 보강돼 팀전력이 강화 될 것이라고 밝혀 장기집권을 암시 했다. 명지대를 거쳐 아마추어 현대전자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감독은 7년간의 대표선수로 국위를 선양했다.지난 90년 3월 현대전자에서 은퇴한후 잠시 현대여자농구단에서 코치를 맡다가 94년부터 한국화장품의 감독으로 본격적인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나 선수들이 뒷받침되지 않아 번번히 고배를 들었던 터라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문규 감독은 “신세계가 5개팀의 해체선수들을 모아 창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조직력을 키우는데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새로운 팀컬러를 창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운
  • 金重權비서실장“직원들 동요말라”당부

    - “신·구주류 갈등설 있을 수 없는 추측”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을 둘러싸고 갖가지 정치적 관측이 나돌고 있다.李康來 전청와대정무수석의 구로을 낙마,朴淙烈 민정비서관 임명 등을 놓고 그의 입지에 대한 억측 또한 구구하다.金大中대통령이 지적했듯 사실상 국민의정부 ‘2인자’인데다,그의 정치적·지역적 색채가 현 역학구도에선 나름의‘상품성’을 갖고 있어 정치적 관심권에서 벗어나기 힘든 처지인 것같다. 그런 그가 2일 청와대비서실 정기 월례조회에서 생각의 일단을 피력했다.그는 최근 국민회의 구로을 보선 후보교체와 관련해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있는 ‘신·구주류 갈등설’에 대해 ‘추측’이라고 규정지은 뒤 이런 추측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당에 있건,정부에 있건 대통령을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같은 편가르기는 있을수 없는 일인 만큼 이에 동조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업무수행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강조했다.특히 청와대는 국정 최고기관이므로 여기에서 근무하는직원들의 말한마디가 몰고올 파장이 매우 크다며 입조심을 당부했다. 金실장은 또 정부의 정책결정 혼선에대한 일반의 비판도 가감없이 열거했다.“국민연금 확대 실시와 한·일 어업협정에서 ‘쌍끌이 조업’이 누락된 것을 보고 준비소홀과 정책결정에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으며,한자병기·의약분업·장기수 북송문제 등도 관계기관간 충분히 토의해야 할 문제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정운영 시스템’이나 ‘정책 컨트롤 타워’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따라서 크게 경계하고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고 주문한뒤 국민을 직접 찾는 서비스행정과 경쟁 및 경영마인드로의 무장을 당부하는 것으로말을 맺었다. 梁承賢
  • 金鍾泌총리 취임1돌 간담회

    金鍾泌국무총리가 2일 삼청동 공관에서 취임 1주년에 즈음한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를 가졌다.金총리는 간담회에 앞서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예고했지만 공동정부 운영과 여야 관계,정치인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공동정부의 1년을 평가해 달라. 처음에는 잘 될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그러나 국민회의가 어떤 경우에는 자제하고 양보했고,자민련도 소리 지르려다 입다물고 참았다.기복도 있었지만잘 참고 여기까지 왔다.당과 당의 공조는 이 나라에서 처음이다.여러 가능성을 보여준 1년이었다. ▒위기의 순간이 있었나. 위기라고 할 만한 순간은 없었다.위기라면 앞으로 약속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순간에 가서 모멘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취임전 청와대 비서관들의 독단 문제를 제기했는데. 새 정부는 지난날과는 달랐다.과거에는 수석들이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협력과 협조를 잘해서 장관들이 일하기 좋았던 것 같다. ▒權魯甲의원을 만나봤나. 만난 적 있다.술도 한잔했다.점잖은 사람 아닌가.‘심’은 있지만 괜찮다. 경우에 따라 자기자신을 희생할 줄도 아는 심정의 소유자 같다. ▒金총리 주변에도 희생해줄 사람이 있나.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金龍煥부총재를 어떻게 평가하나. 사리를 따지고 어긋나지 않게,고지식하게 살아왔다.약속은 지켜야 한다는철학과 사리를 갖고 있다.나도 그런 생각이긴 하지만,나는 유한 자세로 주장하고 그 사람은 저돌적으로 주장한다.많이 얘기하지도 않았고 자주 만나지도 않았다.그 사람 일철(一徹)하는 면이 있다. ▒공동정권 기념식에서 해프닝이 있었는데. 누가 그런 사람(고려대 김호진 교수)을 택해서 얘기하게 했는지 모르지만그게 문제다. ▒만년 2인자이고,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모르는 얘기다.결단력없이 어떻게 5·16을 하고 95년에 당시 金泳三대통령과 헤어졌겠나.한가지 성취할 게 있어서 못참을 것 참으며 여기까지 왔다.韓信이 가랑이 밑을 긴 것이 결단력이 없어서 그랬겠는가.무엇을 하고 정계를떠날지 두고보면 알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내각제 지지가 10%밖에 안나오는데. 대선 전에는 60%가넘은 적 있다.여론에 좌우돼서는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없다.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한 것 아닌가.
  • 국민회의 중진들 ‘5월 全大’로 뛴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회의 중진들의 보폭 넓히기가 한창이다.나름대로 당 ‘2인자’고지를 겨냥한 잰걸음이 여기저기 눈에 뛴다.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2인자’이미지 굳히기를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23일 외신기자 회견,25일 미국방문,4월 중국방문 등 일련의 행보가리더십 부각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공동여당인 자민련과 큰 불협화음 없이무난하게 당을 이끌온 점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23일 비호남권 의원 40여명과 함께 ‘내각제 개헌불가’ 기치를 든 金令培부총재도 ‘2인자 후보’중 한 사람.당 ‘헌신도’를 높여 관리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비(非)호남권 인사라는 ‘강점’을 내세우고있다.22일에는 權魯甲전부총재와 오찬을 같이하는 등 행보가 분주하다. 연초 대통령과 독대 이후 당 인사들을 두루 접촉,과거 친화력을 되살리고있는 金相賢고문의 행보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그는 특유의 마당발 기질을 살려 야권인사들과도 폭넓게 접촉하는 등 청와대의 메신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동교동계 맏형격인 權전부총재에게도 당내 시선이 쏠리고 있다.정치전면에나서지 않고 있지만 당내 입지를 고려하면 당대표를 만들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국민화합형 카드로 당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사로는 대구·경북지역출신인 李壽成민주평통수석부의장과 李萬燮상임고문.李부의장은 부인끼리 경기여고 동창인 權전부총재와도 교분이 깊다.權전부총재에게 백범기념사업회부의장자리를 ‘권유’하기도 했다. 金槿泰·盧武鉉부총재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단기(單騎)로 2인자 자리를노리기에는 아직까지 둘 다 ‘체중’이 가벼운 느낌이지만 화합형 이미지 등을 고려할 때 집단지도체제 등으로 당이 정비될 경우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다는 평이다.재·보선 때마다 출마설이 오르내렸던 李仁濟고문의 행보도 주목거리.조기 귀국설이 나도는 그는 최근 측근 등을 통해 당 ‘실세’들의 의중을 탐색한 것으로 알려졌다.李부의장과 李萬燮·李仁濟고문등은 당 기반이 약한 점이 부담이다. 柳敏 rm0609@
  • 與野수뇌부 對美외교 나선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가 잇따라 ‘한반도 주변국 외교행보’에 나선다. 趙대행은 이달 25일부터 3월5일까지 미국을,李총재는 다음달 9일부터 1주일간 미국과 일본 방문을 추진중이다. 이들은 다같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초청강연을 갖는다.趙대행은 도착 하루 뒤인 26일 해리티지재단에서 국제관계 인사 100여명을 대상으로,3월2일에는 하버드대 학생·교수 280여명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이들은 강연에서 우리경제의 세계화와 경제회생 방안,대북관,통일문제 등에 대한 각자의 소신을밝힐 것으로 알려졌다.여야 수뇌부가 국제무대로 옮겨 ‘미국대회전’을 갖는 셈이다. 두 사람의 외유에는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다는 분석이다.趙대행은 5월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2인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비쳐진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국제적 이미지 강화를 통해 당내 입지를 높이려 한다는점에서 趙대행의 행보와 맥을 같이한다.향후 대권 수권자로서의 국제적 이미지를 가꿔나가려는 포석으로도 보인다.이를 위해 고어 미 부통령 등을 포함한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만날 계획이다.柳敏 rm0609@
  • 지자체 부단체장-’지방공무원의 꽃’으로 각광

    ‘1인지하 천인지상’ 민선 자치시대 출범 이후 ‘지방 공무원들의 꽃’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단체장을 일컫는 말이다. 부단체장이라는 공직은 단체장과 호흡만 맞으면 직업공무원으로서 자신의능력과 소신을 펴는데 더없이 좋은 자리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특히 행정경험이 없는 단체장일수록 행정전문가인 부단체장에게 전결권을 대폭 내주며역할분담에 있어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다.지역개발·인사·민원해결 등 각종 복잡한 업무를 추진할 때 단체장은 자칫 원칙보다는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정치적 결정을 하려 한다.이때 부단체장은 원칙을 지켜나가는 행정책임자로서 은근히 견제를 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편다. 자신이 평소 구상해온 시책과 지역개발 의지를 곧바로 시·군정에 반영할수 있는 점도 다른 부서에서는 맛보기 힘든 면이다.또 숙원사업 추진,지역개발예산 확보 등을 위해 단체장과 시·도,중앙정부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해내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서기관급의 경우 도의 국·과장으로서 특정 분야의 업무만 맡고 있지만 부단체장은 폭 넓은 종합행정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다.이 때문에 요즈음은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부단체장을 앞다투어 희망하고 있다.전남도의 경우 22개 시·군 가운데 7개 시·군 부단체장에 고시 출신들이 기용돼 소신있는 행정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단체장과 뜻이 잘 맞을 경우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자리를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다. 전북 익산시·군산시·완주군 등 3개 시·군은 민선 1기부터 4년여째 단체장과 부단체장이 함께 호흡을 맞춰 일하고 있다. 이곳 부단체장들은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체장과 머리를 맞대고 각종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에 지역에 큰 애정을 느끼게 돼 부단체장 근무지가 ‘제2의 고향’이 됐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부단체장은 인사위원회 위원장,막대한 예산의 지출권한을 쥐고 있는 경리관으로서 자치단체의 ‘2인자’만이 누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어려운 가운데 보람을 캐내고 있다.단체장으로부터 결코 초연할 수없는 어려운 자리.그러나 부단체장은 직업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사는 ‘공무원의 꽃’으로 위상을 높여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광주?몄投殮? shlim@
  • 上院 “탄핵 조속 처리”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미국 상원이 내년 1월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에 착수할 예정인 가운데 20일 상원의원들은 이 문제를 조속히 처리할 것임을 다짐했다. 그러나 탄핵재판 또는 견책 등 형식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날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견책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최소한 간략한 재판이라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공화당 내 2인자로 불리는 돈 니클스 상원의원은 민주당과의 협상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재판은 백악관이 원한다면 3일에서 3주일 내에 매우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황무지 개간권과 항일논조(대한매일 秘史:9)

    ◎일 50년간 토지사용 요구 강력 비판/영구 식민지화 속셈 폭로에 유생들도 궐기/개간권 확보 실패하자 대한매일 탄압 시작 대한매일은 창간직후부터 강력한 항일민족지로 발행되었다.그러나 항일논조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비판하면서 부터였다.일본이 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얻어내어 이를 영구적인 식민지로 만들려는 공작에 착수한 것은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부터였다.일본은 처음에는 태국(Siam)의 땅을 얻어내려 했다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한 표면상의 인물은 일본 대장성의 관방장을 역임한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다.나가모리는 개인 자격으로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는 듯이 가장했지만 사실은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된 것이었다. ○전국토 3분의 2가 넘어갈판 일본이 요구한 내용은 한국에서 명백하게 이용,경작하고 있는 토지 이외의 국토를 모두 개간하고 정리·개량·척식하는 권리와 그를 이용하고 이익을 거두는 모든 경영권을 우선 50년 동안나가모리에게 위임하라는 것이었다.일본은 한국에서 현재 경작하고 있지 않은 땅에 대한 사용권을 얻어서 50년 동안 이를 개간하여 경영하되 50년이 지난 뒤에는 사용기간을 또다시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이러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에 일본측이 차지할 수 있는 ‘황무지’가 얼마나 될것인지 정확한 넓이가 계산된 것은 아니었지만 외부협판 윤치호는 전 국토의 3분의 2가 일본측에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일본의 입장에 호의적이었던 주한 영국공사 조단은 적어도 경작 가능한 토지의 3분의 1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본국에 보고했을 정도였다.일본이 황무지 개간권을 차지한다면 한국의 광대한 토지는 영구히 일본의 점령하에 놓이게 될 것이며 한국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 운명이었다. 이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당시 양대 일간지였던 황성신문과 뎨국신문 등이 이를 폭로하였고 주로 유생(儒生)들이 중심이 되어 격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황성신문은 7월6일자 논설을 비롯하여 7월7일부터는 3회에 걸친 연속논설을 게재하여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함을 비판했다.대한매일이 창간된 것은 러일전쟁 직후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 일본의 부당한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인 7월18일 이었다.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국민적인 운동을 대한매일이 외면할 수는 없었다. 대한매일은 창간 4일후인 22일자에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윤치호의 글을 게재하였다.이때부터 대한매일은 일본의 부당한 요구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황무지 개간권 문제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일본어 신문과 영어신문에도 논란이 일어났으므로 대한매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친일논조의 영어신문 재팬 메일과 고베 해럴드와는 논전을 벌이면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대한매일의 일본에 대한 비판은 9월2일부터 5회에 걸쳐 연재된 「한국에 일본위력이라」는 논설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이 논설은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정책을 낱낱이 들춰내면서 실례를 들어 일본을 공격하였다.특히 마지막부분에서는 주한 일본 공사관의 대리공사였고 침략외교의 선봉장이었던 하기와라(萩原守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하기와라는 주한 일본 공사 하야시(林權助)와 함께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했던 일본 공사관의 제2인자였다.하기와라는 동경제대 출신으로 외교관의 경력이 화려했으며 본국에서는 정치적인 배경도 튼튼한 야심에 넘치는 젊은 외교관이었다.그는 하야시와 함께 한국침략 정책에 있어서는 늘 강경파였다. ○배설추방… 신문발행 중단 공작 대한매일을 비롯한 민족진영의 반대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는 실패로 돌아갔다.그러나 하기와라는 대한매일에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하기와라는 배설의 일본 공사관 출입을 금지시키고 배설을 한국에서 추방하고 신문발행을 중단하도록 하는 공작을 시작한 것이다.대한매일은 더한층 항일적인 논조를 강화하였고 고종을 비롯한 민족진영은 대한매일을 더욱 뜨겁게 후원하였다.
  • 사장 裵說의 재판:2(대한매일 秘史:2)

    ◎日측 “대한매일이 의병봉기 선동” 주장/張仁煥 의사 의거 찬양 등 항일사설 3건 증거로 내놓아/“한국사태 왜 日서 문제삼나”/英 변호인 추궁에 원고 우물쭈물/초만원 방청객들 야유 폭소 재판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 한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민족지를 영국의 법정은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피고는 대한매일의 사장 배설이라는 영국인이지만 진정한 피고는 배설이 아니라 민족언론 대한매일신보였다. 배설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대한매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법정은 만원을 이루었다. 방청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와 재판정 바깥까지 모여서 재판을 지켜보았다. ○법정 복도·바깥서도 지켜봐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통감부와 변호인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근본 원인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검사 윌킨슨이 고소인 미우라를 먼저 신문하기 시작했다. 통감부의 제2인자로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법정에 나온 미우라(三浦彌五郞)는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게 된 원인은 대한매일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매일이 소요와 무질서를 조장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적대감을 조장시키는 기사를 게재하였기 때문에 의병들이 궐기하여 전국의 치안이 불안하고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변호인 크로스는 의병의 봉기는 대한매일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의 성격을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부각시키려 했다.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은 독립국가다. 의병의 궐기는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미우라,당신은 일본 관리인가? 한국 관리인가? 일본 관리라면서 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문제삼아 일본 통감부의 대표로 나서서 영국인 배설을 고소하는가.” 미우라가 궁색한 논리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방성석에서는 야유하는 폭소가 터졌다. ○英·日 외교협상끝에 재판 열려 재판장은 변호사에게 정치상의 의견은 묻지 말고 사실에 관해서만 국한해서 물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영국과 일본 사이에밀고 당기는 길고도 끈질긴 외교협상 끝에 이루어진 재판이었으므로 재판장은 변호사가 재판을 정치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통감부가 배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제시한 대한매일의 논설은 3건이었다.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 암살을 찬양한 1908년 4월17일자 기사를 비롯하여 「일백 매특날(메테르니히)이가 능히 이태리를 압제치 못함」(1908.4.29)과 「학계의 꽃」(5.16)이라는 논설이었다. 통감부의 입장에서는 대한매일의 모든 지면이 항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지만 구체적인 증거물로 3건을 제시한 것이다. ○美 교포신문에 처음 실려 문제가 된 4월17일자 대한매일의 기사는 친일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張仁煥)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는 1904년 12월27일 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되었던 미국인이다. 그는 1882년부터 일본 정부를 위해 일했고 일본 정부의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친일적인 인물이었다. 일본은 그를 내세워 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외교상의 중요 사항을 일본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스티븐스는 한국의 외교고문이라는 직책으로 한국 정부가 주는 고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스티븐스의 암살 기사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발행인 鄭在寬) 3월25일자에 실린 것이었다. 공립신보는 교포들의 조직인 한인공동회(共同會)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공립신보는 ‘한국의 공적(公敵)’인 스티븐스를 쏘아 죽인 두 애국지사 장인환과 전명운을 찬양하면서 체포된 두 사람의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매일이 장,전 양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기사를 싣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주한 영국 공사 헨리 코번(Henry Cockburn)은 이때의 상황을 영국 외무성에 보고하면서 “한국인들은 집권세력도 그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발행물을 금지시키거나 저지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기사를 읽고 통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코번이 지적한 ‘집권세력’은 통감부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이며,그들의 재판을 기회로 일본 침략하의 한국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은 두 애국지사의 재판을 기회로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만국에 널리 알리자고 역설했다. “오호라 한국 독립은 곧 오늘이요,한국의 자유는 오늘이니 우리의 큰 뜻을 이룰 날이라”면서 “이 재판은 우리의 독립재판이니 우리가 이 재판에 이겨야 우리 2천만의 독립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 사장 裵說의 재판:1(대한매일 秘史:1)

    ◎韓·英·日 이목 집중시킨 ‘역사 드라마’/피고 대한매일사장 배설·원고 통감 이토/증인 편집책임자 양기탁·의병장 민종식/美 유학 마치고 돌아온 金奎植 통역맡아/당시 한국상황 상징적대표 총 등장 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던 시기에 정론직필로 구국의 필봉을 휘둘렀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에는 현대사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가 숨겨져 있다. 대한매일은 재창간을 기념하여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국외대 鄭晉錫 교수(언론사)의 집필로 연재한다. 70년대 대한매일 영인본 제작 실무를 맡았던 鄭교수는 영국 공공기록보관소에서 방대한 외교문서를 찾아냈고 한·일 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등 대한매일 연구에 몰두해왔다. 대한매일신보사의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개와 일본인은 출입금지.” 대한매일은 사장이 영국인 배설(裴說)이었으므로 사내에 일본경찰이 들어올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일본인(일본 순사)을 개에 비유한 경고문을 신문사 정문에 걸었을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한매일의 용기 있는 논설과 보도 태도로 보아 일본인 순사를 개로 빗댄 글을 써 붙였음직도 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한매일은 일인들이 침범하지 못할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당시에 발간된 영국의 데일리 미러는 영국 국기가 한국인 편집장 양기탁을 보호하는 피난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보도했다. 이와같이 대영제국의 치외법권이 허용된 신문이기는 하였으나 용기 있는 신문에 불어닥친 시련도 거세었다. ○용기있는 신문에 시련도 거세 1908년 6월15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에 있는 주한 영국 총영사관에서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을 피고석에 앉힌채 재판이 열렸다. 배설에 대한 재판은 그 한해 전에 이어 두번째였다. 재판이 열린 영국 총영사관은 오늘의 대한매일­프레스센터 빌딩의 맞은편 덕수궁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 건물이다. 재판이 열리던 무렵은 전국에서 의병들이 무력으로 항일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었으며 일본군 2만여명이 의병을 진압하려는 작전을 펼치고 있던 때였다.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책임을 물어 일본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직후,군대를 해산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여 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전개되던 위급한 상황이었다. 서방 기자로는 유일하게 산속까지 들어가서 의병을 직접 취재했던 캐나다 출신 영국기자 맥켄지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남루한 차림으로 싸우는 의병들의 처열한 투쟁에 감동되어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책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배설의 재판은 한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일본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였던 한­영­일 3국이 관련된 특이한 국제재판이었다. 재판 진행과정은 역사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이고도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만 보더라도 당시 한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피고 배설을 비롯하여 상해에서 이 재판을 위해 한국에 왔던 판사 보온과 검사 윌킨슨,일본 고베(神戶)에서 온 변호사 크로스는 모두 영국인들이었지만,통감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고소인의 자격으로 참석한 사람은 통감부의 제2인자 서기관 미우라(三浦彌五郞)였으며,증인으로는 대한매일의 실질적인 제작책임자인 총무 양기탁,의병장이었던 민종식을 비롯하여 궁내부 전무(電務)기사,그리고 평민도 있었다. 영어 통역을 맡았던 사람은 당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규식(金奎植)이었다. 일­영어 통역은 히시다(菱田) 박사가 맡았고,한­영어 통역 마에마(前間恭作)는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외교관으로 ‘조선의 판본(板本)’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고베에서 발행되던 영어신문 재팬 크로니클이 “동양 역사상 처음” 열리는 재판이라고 보도한 것처럼 재판 광경은 기이하고도 이색적이었다. 법관과 변호사는 영국 법정의 격식대로 백색의 꼬불꼬불한 가발에 육중한 법복 차림이었고,통감부를 대표하여 나온 미우라는 금실로 수놓은 제복의 정장이었다. 나중에 증인으로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흰 두루마기에 상투 틀고 갓 쓴 사람과 단발로 머리를 깎은 사람도 있었다. 통역 김규식은 서양 예복인 프록코트(연미복) 차림이었다. ○기이하고 이색적인 재판광경 연출 방청석에는 지방 거주 선교사도 상경하였고 각국의 주한 외교관과 서양 여자들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재팬 크로니클은 이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더글러스 영이라는 기자를 서울로 특파했고 AP통신도 특파원을 보내어 이를 취재할 정도로 이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컸다.
  • 中 지도부 개편 초미의 관심/공산당 제15기 3中全會 개막

    ◎朱鎔基­대홍수 극복·경제성장 공로 2인자 예상/李鵬­영향력 급락세… 서열 3위로 밀려날듯/胡錦濤­중앙군사위 부주석 맡아 軍 장악 전망 12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5기 3중전회)에서 고위층들의 인사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져 중국 지도부의 새로운 판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혁·개방을 결정한 78년 11기 3중전회의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3중전회의 최대 관심사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명실상부하게 2인자의 자리를 다지는지의 여부. 현재 권력서열 3위인 주 총리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 이어 서열 2위에 올라서는 반면,‘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3위로 밀려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홍콩 언론들은 주 총리가 총리에 임명된 뒤 그동안 권력기반을 다진 데다 총리직은 국제행사 참석 등의 기회가 많아 서열 2위가 적합하다는 당 내부의 평가가 내려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와 러시아 경제위기,44년만의 양쯔(揚子)강 대홍수 등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올 경제성장률 8%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주 총리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장 주석에 이어 2002년 당총서기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이 부상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군부 부패문제로 장 주석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장완녠(張萬年) 중앙군사위원회 상무 부주석 자리를 맡아 군부를 장악할 것이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전망이다. 장 주석은 후 부주석의 업무를 분담해주기 위해 ‘상하이방(上海幇)”의 핵심 인물인 황쥐(黃菊)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와 쉬광디(徐匡迪) 시장을 중앙무대로 진출시킬 채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레베드·야블린스키·주가노프/러시아 정국 주도 3인방

    ◎레베드/민족주의 색채 강한 국가적 영웅 러시아 군사령관 출신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공산당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애국주의자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지난 96년 10월 2인자로의 부상을 참지 못하는 옐친에 의해 국가안보회의 서기직에서 해임됐다.지난 5월 현직 지사를 압도적인 차로 누르고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에 당선됐다.92년 몰도바군과 러시아분리주의자들의 분규를 타결하고 96년 21개월간의 체첸 내전을 종식시켜 국가적 영웅으로 인식돼 왔다. 강력한 지도력과 이미지로 러시아가 혼란으로 치달을수록 인기가 오르고 있다. ◎야블린스키/지지계층 넓은 탁월한 경제학자 의회(하원)에서 41석을 점유하고 있는 개혁주의 성향의 야블로코당(黨) 당수.정치적으로는 민주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온건 개혁주의자다.지식인과 기업인 등에 이르기까지 지지계층이 폭넓다. 금융위기 등을 정확히 예측,상황판단력을 인정받아왔다.90년 고르바초프 정권 말기 부총리를 지내면서 ‘500일 경제개혁안’을 입안,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경제학자다.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주가노프/96년 대선서 고배… 연방 공산 당수 온건하고 합리주의적 성향을 지닌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지난 96년 대선에서 옐친과 결선투표까지 갔으나 박빙의 차로 패배했다.25∼30%의 기본 지지층을 갖고 있다. 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대해 주류 연방 소비에트당에서 이탈한뒤 강경 러시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부상했다.93년 10월 옐친이 의회를 거점으로 한 보수파 진영을 탱크로 진압한 뒤 공산진영에서는 유일하게 총선에 참여했다.
  • 李仁濟 고문 앞날/충청 맹주 야심 어찌될까

    ◎20% 지분 안주 보다 2인자 그룹에 끼어/정치력 발휘 꾀할듯 15대 대선때 492만표를 얻은 국민신당 李仁濟 상임고문이 李萬燮 총재와 소속의원 7명을 이끌고 국민회의에 합류했다. 한때 여론조사 인기순위 1위로 한국판 YS 후계자로 회자되던 그의 여당에서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국민신당의 공식적인 지분은 20%다. 그러나 한국판 토니 블레어를 꿈꾸던 그가 지분 확보를 통한 여당 속에서의 안주를 목적으로 합당을 결심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지난 7·21 재보선때 국민회의에서 그에게 수원 팔달 연합공천 후보를 제의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수성가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서는 충청도 출신인 그가 한때 JP 이후의 충청의 맹주를 꿈꾸었다고 전한다. 확실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중원을 차지한 양김의 코스를 밟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독불장군을 포기했다. 朴燦鍾의 몰락이 자극이 됐을 수도 있다. 국민회의 속에서 그가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지 벌써부터 정가의 관심을 끈다. 일단 2인자 그룹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독자적 지분도 있고,나름의 정치적 이미지도 갖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응만 하면 잊혀질 것이고 너무 튀면 소외되는 위험성을 안고있다.
  • JP/23년만의 국회답변 “허 참”

    ◎野 사퇴주장에 “할일 더있다” 일축 金鍾泌 총리는 26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대표 연설을 했던 자리다. 이날은 총리 자격으로 대정부 질문에 임했다. 지난 75년 12월 사퇴한 뒤 23년 만이다. 당시 4년6개월동안 역임했다. 金총리는 여느 총리와 다른 위상으로 답변대에 올랐다. 무엇보다 자민련 명예총재이자 공동정권의 한 축이다. ‘대독총리’‘허세총리’라는 비아냥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세총리’‘정치총리’라는 수식어가 대신하고 있다. 또 8선(選) 의원이다. 9선인 朴浚圭 국회의장에 이어 두번째 다선이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거친 공격을 받아넘겨야 했다. 사전 입수된 질의서에 인신공격성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고는 “허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불쾌감도 다소 엿보인다. 답변에서 때로는 정면 돌파로,때로는 비켜가기로 대처했다. 답변 1시간내내 노련함이 엿보였다. 상대방에 이해를 구하는 특유의 ‘JP어법(語法)’을 곁들었다.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강의’성격을 물씬 풍겼다. 먼저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있다”고 한나라당 徐勳 의원의 사퇴주장을 일축했다. 현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徐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지지 않아 그런 지적을 주신 것으로 안다”며 비켜가기도 했다.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서는 부쩍 힘을 넣었다. 그는 “지금은 경제문제 등으로 논의를 삼가고 있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채택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작심(作心)한 듯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며 ‘2인자론’도 폈다. 그리고는 “金大中 대통령만틈 더 잘한 분을 찾을 수 없다”고 극구 칭찬했다.
  • 趙 대행이 웃지않는 까닭은?

    ◎당직자 인사권 등 힘얻었지만 어깨 무거워/향후 10개월 정치적 시험기… 정국구상 몰두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어깨가 무거워졌다.‘대행’ 꼬리는 떼지 못했지만 당 대표에 준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은데 따른 부담이다. 국회의장 선출이 끝난 3일 하오 趙 대행은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내년 5월 전당대회까지 趙대행 체제로 간다는 것과 중·하위당직자 임면권 등 ‘당무를 위임하는 총재입장’이 담긴 문건이다. 이로써 趙 대행은 내년 5월까지 책임과 권한이 동시에 따르는 당 대표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趙 대행이 당의 2인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첫 조치는 당 3역이 함께 하던 매주 목요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단독으로 갖는 것이다.서열의 세계에서 최고통치자와의 독대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큰 것이다. 자민련과의 8인중진협의회 대표도 金令培 부총재를 대신 내보낼 계획이다. 자민련 金龍煥 수석부총재와 격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사전·사후보고는 하겠지만 중·하위 당직자 임면 재량권도 갖게 됐다.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솔하기 위해서는 인사권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위상이 높아진 만큼 책임도 따른다.지금까지는 당이 기대에 못미쳐도 그 책임이 趙대행에게 직접 돌아오지는 않았다.‘실세’가 아니라는 이유때문이었다.그래서 오히려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10여개월,趙대행은 중대한 정치적 시험기를 맞는다.재·보선 승리,여권 국회의장 선출에 이은 총재로부터의 권한위임등 잇단 호재에도 趙대행의 표정은 아직 무겁다.향후 정국구상에 대한 중압감때문이다.
  • 金 대통령,울진군수 이례적 접견/영남 유일 국민회의 당선

    ◎“동서화합 앞장” 당부/숙원사업 지원 약속 경북 울진 申丁군수가 16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기초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이다. 申군수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에서 유일하게 ‘국민회의 간판’으로 당선됐다. 申군수의 청와대 방문은 金大中 대통령이 ‘2인자’라고 지칭한 金重權 비서실장의 지역구라는 점도 무시못할 요인이다. 지난 선거도 金실장의 추천으로 나섰다. 金실장으로서는 체면을 살려준 ‘복덩어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申군수가 이날 받은 ‘선물꾸러미’도 두둑했다. 金대통령으로부터 울진 종합의료원 건립 등 지역 숙원사업의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동서화합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고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국회 50돌 진기록들

    ◎박준규 고문 9선으로 현역 최다선/이효상씨 7년3개월간 의장역임/이범이 위원 62년부터 국회서 근무/이광규씨 신상우 의원 보좌 17년/성천영씨 63년부터 속기사 외길/김순천씨 31년간 의사당 방호 영욕의 ‘헌정 50년사’는 각종 기록들을 배출했다. 최다선 의장·의원부터 최장수 속기사까지 다양한 ‘국회인생’과 진기록들이 50년 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다. 현역 최다선 의원은 자민련 朴浚圭 고문(73). 4·19 직후인 5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정치계에 입문,무려 9선을 달리고 있다. 93년 YS정권에서 강제로 의장직(14대)을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자민련 金鍾泌 총재와 손잡고 15대 총선에서 복귀했다. 최장수 국회의장은 6·7대 7년3개월간 국회 의사봉을 잡았던 李孝詳 전 의원(공화당·작고).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李起鵬 전 부통령(작고)이 5년 10개월(3∼4대)로 2위를 기록했다. 현역 국회 직원으로 최장수 근무자는 李範伊 전문위원(60·1급상당). 5·16 다음해인 62년 최고회의 총무처 9급 직원으로 출발,농수산 위원회 법제관을 거쳐 여성특별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장수 속기사는 成千永씨(56).63년 의사국 속기사로 국회와 인연을 맺은 이후 외길을 달려왔다. 대한 속기협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회 ‘방위’를 책임진 방호원(防護員) 가운데 최장수 직원은 金淳天씨(58). 67년 7대 국회 때 화부로 국회에 발을 디딘 후 난방수와 수위를 거쳐 현재 국회 외각 경호팀을 이끌고 있다. 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진 가운데 최장수는 한나라당 辛相佑 의원 보좌관인 李光奎씨(56세). 지난 81년부터 17년간 한결같이 ‘주군’과 운명을 같이했다. 최장 임기의 국회는 유신으로 6년의 수명(?)을 누린 9대 국회(73년 3월∼79년 3월). 반면 최단 국회는 4·19 직후에 출범한 5대다. 5·16쿠데타로 9개월 18일간의 수명에 그쳤다.
  • 강원도(2期 지자체 인사태풍:6)

    ◎영동·영서의 두 인물 행정부지사 낙점 관심/3국8과 통폐합계획 400여명 감축 불가피/道경제 살릴 인물로 정무부지사 외부영입 金진선 강원도지사는 눈앞에 닥친 인사를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장고 중이다. 지난 6·4 지방 선거를 치르기 직전까지 강원도 행정 부지사 자리에 앉았던 경력으로 도내 모든 행정을 손금 보듯 하고 있어 궁금한 것도,서두를 필요도 없는 탓이다. 金지사는 지난 1일 지사에 취임 하면서 강원개발 연구원의 朴世勳 연구원(38·고성)을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낸 바 있다. 30대의 비서실장을 발탁하게 된 배경은 崔珏圭 전임지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후문. 金지사로서는 자신이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3자 구도의 도지사 선거전에서 무난히 승리하기까지 崔전임 지사가 보여준 역할에 보답한 셈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이란 ‘손금을 드려다 보듯’하고 있는 사안들을 수순에 따라 처리만 하면 된다. 그러나 쉬운듯 하면서도 金지사를 고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2인자인 행정부지사 기용 문제다. 현재 행정 부지사의 물망에 오른 曺圭榮 기획관리실장(강릉)을 비롯,林茂龍 춘천시 부시장(춘천),權赫仁 도의회 사무처장(강릉), 咸炯仇 내무국장(고성),趙明洙 LA영사(양구)등 5명. 이들 가운데 인사때면 흔히 적용하는 연공서열 등 여러 정황을 적용, 최종 주자는 曺실장과 林부시장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金지사의 고민은 여기에서 장고를 낳게 한다. 자신이 평소 주장해 왔던 인사원칙은 ▲지역안배 배제와 ▲능력과 실적 중시였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이들 두 인사를 두고 한 것만 같아 선뜻 낙점을 내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동·영서’의 골이 깊게 팬 현실에서 공교롭게도 도내 동·서의 대표적 도시인 강릉과 춘천 이라는 두지역 인물이 최종적으로 부상,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은 것. 정무 부지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金지사는 “IMF라는 큰 산맥을 앞에 두고 강원도의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킬 사람이라면 외부 인사인들 어떠냐”는 것이어서 외부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강원도는 내달까지 도내 18개 시·군을 제외한도산하 재직 공무원 3,111명(정원 3336명) 가운데 12%에 해당하는 400여명을 감축해야 한다. 본청으로서는 3개국 8개과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실국장들에 대한 이동과 중·하위직 등 관계 부서 공무원 들에 대한 인사는 현재 인원이 정원에 크게 미달한데다 고위직도 여유가 있어 군살빼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국장급의 경우 동해출장 소장과 동계 아시안게임 조직위 행사본부장,도산림정책관,농촌진흥원장 등의 자리가 정년·명퇴 및 기타 개인적인 사유로 공석중이다. 과장급도 보건위생과를 비롯,통상협력과,도의회 전문위원 등 4∼5개 자리가 명퇴 등으로 비어 있고 오는 9월 정년퇴직때도 몇자리가 나온다. 金지사는 “늦어도 오는 10일 까지는 행정 부지사 자리를 메우고 정무부지사와 나머지는 연공서열 등 기타 역량과 능력 및 실적 위주로 매듭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 金 대통령 인촌강좌 특강­일문일답

    ◎“임기중 기필코 동서분단 타파하겠다”/남북관계 1년쯤 두고보면 가시화될것/중산층보호­실업문제 해결 최선의 노력 金大中 대통령은 29일 고려대학교 ‘인촌 강좌’에서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강연한 뒤 참석한 학생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 ­취임 초에 강력한 개혁의지를 천명했지만,국민들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불안감만 조성한 것 같다.실업사태로 불안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개혁의지는 보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그러나 세계 각국이 아시아에서 한국이 가장 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이 나라 역사상 언제 기업 25개나 한꺼번에 퇴출됐나.언제 은행이 5개나 한꺼번에 문 닫았나.개혁은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외환위기가 급해 거기에 중점을 두어 왔다.이제 금융과 기업,공기업의 개혁에 집중하고 있다.기업들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노조에서도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퇴출된 은행도 인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대화로 설득하고 법대로 진행하면서 하나하나 풀어갈 것이다.개혁은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며 해야 한다.우리는 그것을 얻고 있다.국민의 8할 이상이 정부를 지지한다.절대 다수가 정부가 간섭해서라도 개혁하라고 말한다. 실업자는 독일이나 프랑스에도 11∼12%가 된다.우리는 평생직장이 습관이 된데다 사회보장이 안돼 충격이 크다.지금 한달에 5만명선의 실업자가 발생 하지만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금년 1년은 도리가 없다.실업자를 아예 내리 않으려다가는 전부 실업자가 된다.2,000만 중 2할을 해고해야 기업 경영이 된다면,8할은 계속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2할도 해고 안하려면 10할이 다 실업자가 된다. 외국기업들이 해고의 자유를 지켜보고 있다.안되면 안 들어올 것이다.직업안정과 훈련,사회보장 등에 노력하지만 금년 1년은 실업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명년 후반기쯤이면 해소될 것이다.기업이 잘 되면 직장이 늘어난다. ­소를 500마리나 보내고 2차로 더 보낼 겨획인데도 북한은 잠수정을 침투시켰다.그럼에도 햇볕정책을 고수할지궁금하다.북한을 하루 빨리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낼 제도적 장치는.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다.북한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화해와 협력을 한다는 것이다.작년 4월 미 국방대학원에서 정보기관 사람 60명과 얘기를 나눈 적 있다.포용정책 즉,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내가 말한 햇볕정책은 처음 닉슨이 쓴 것이다.그는 70년대에 소련에 대해 데땅뜨 정책을 추진했다.구주안보협력회의,헬싱키 조약 등을 만들어 경제,문화 분야 협력을 시작했다.한쪽으로는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고 한편으로 문을 연 것이다.여기에 소련이 응해와 19년이 지나니까 총 한번 안 쏘고 소련 대제국과 동구가 무너졌다. 70년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압력을 가했을 때,毛澤東이 인구 6억명 가운데 200만명이 죽어도 좋다며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닉슨이 모택동을 만나 유엔에 가입시키고 미·중 수교해서 손잡았다.이 때 숙청된 鄧小平이 재등장한 것이고 그래서 오늘날 개방있게 된 것이다.클린턴 대통령도 이번에 중국을 가서 전략적 파트너로 손을잡고 있다. 햇볕 정책은 패배주의가 아니고 강한 힘을 갖고 있다.약하거나 유화정책이 아니다.북한의 강경세력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정책이다.남한에서 막하면 북한의 강경세력만 키워준다.북한에 상당한 온건세력이 성장하다가 좌절됐다. 지금도 북한 강·온 세력이 있다고 믿는다.안보를 확고히 하고,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 공영으로 가는 길이다.미 중 러 일 등 주변국이 모두 지지하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서도 각국이 전면 지지했다. 대화가 언제 열리느냐고 물었는데,鄭周永 회장이 북한에 간 것도 대화하는 것이다.우리 국민은 성질이 급하다.새 정부가 집권해서 몇 달이 됐는가.1년쯤 두고 보라.뭔가 만들어낼 테니까.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 ­정계 개편을 한다는데,인위적 과반수 만들기가 필요한 것인가.그런 방식으로 고질적 지역주의가 해소될 지 의문이다. ▲지역주의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지금 ‘민족의 시대’는 가고 있다.이제는 세계주의 시대다.산업혁명 이후 200여년 동안 각 민족은 침략적 민족주의,저항적 민족주의 같은 열병에 걸렸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해 경제의 국경이 없어졌다.모든 게 자유다.누구나 어디가서든 장사할 수 있다.청량리 뒷골목의 구멍가게도 세계의 수퍼마켓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이제는 세계 속으로 나가야 한다.우리의 가장 큰 결점은 세계를 모른다는 것이다.외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예전에는 단일민족을 자랑했지만 이제 세계속에서 뒤섞여 친구를 얻어야 한다.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영어를 제대로 하는 한국인은 1할도 안된다.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말만 한다.영어 안하는 것을 독립정신으로 생각한다.빨리 세계속에서 성공하려면 세계를 받아들이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남북이 갈렸는데 동서까지 갈리면 국가가 어찌 되겠나.세계에서 보면 한심한 일이다.나는 대통령을 못해도 동서분단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청와대비서실장은 정권의 2인자이다.金重權 실장은 경북 울진 출신이다.우리는 인사문제도 같이 논의한다.어제도 어느 곳의 인사안을 올렸는데 호남사람이 1위로 돼 있더라.그래서 안된다,비호남 사람으로 하라고 했다.대통령이 그만큼 노력한다.대구에서 갔을 때도 건의받은 예산 조치 등을 약속했다.정부의 1급이상 인사 가운데 아직 영남이 호남보다 10% 많다. 저는 지역주의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이다.그런 제가 그 짓을 하겠나.金大中정권 하에서 지역 학벌 배경 돈은 절대로 용납 안되지만 그 중에서도 지역주의만은 끝장내겠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당은 동쪽으로 뻗어 나가 전국적인 정당이 돼야 한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서쪽으로 나와 전국정당이 돼야 한다.정계 개편은 국민 절대 다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그러나 단 한사람도 돈으로 매수하거나 협박한 적 없다.선거구 따라 오고 안오고 한 것이다. 그 전에 야당에 애원하다시피 했다.1년만 도와달라,나라를 구하자고.그런데 잘 안된 것이다.그래도 무리한 일해서 야당에 피해주는 일 없었다. ­중산층이 무너진다.중산층 보호대책은 무엇인가.특히 대학생 자녀를 둔 중산층 가계에 도움을 줄 방안은. ▲국가 안정되려면 중산층이 튼튼하고 안정돼야 한다.실업사태 때문에 실직자가 생기고,장사가 안돼 중산층 상공인도 어려움이 많다.안타깝지만 우리는 터무니 없이 과소비하면서 경제를 망쳤다.무려 120조의 돈이 부실 대출됐다.결국 국민의 부담이다.그 가운데 기업 문 닫고 이렇게 된 것이다.그것을 해결하려면 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을해야 한다.그런 정책에 성과가 있다.금융,기업을 개혁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며 공기업도 개혁하는 가운데 사회 기반인 중산층 지원과 실업대책에도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과소비가 경제 망쳤다 실업대책 예산은 노사정에서 5조원으로 합의했지만 이후 8조4천억원까지 올렸다.앞으로 더 내서라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오늘 현재 8조4천억원 가운데 27%가 나갔다.중소기업 대출에 대해서도 22조원을 6개월 연장했고,62조원을 늘려 총 84조원을 연장했다.새로 12조원을 더 풀려고 한다.주택자금 지원도 노력 중이다.중산층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면서 금융과 기업의 구조를 개혁해서 경쟁력을 갖는 방향으로 나가면 명년부터 우리에게 훈풍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그간은 정부와 국민이 최대한 노력해 견뎌내기 바란다. 좋은 정부와 좋은 국민이 손을 잡아야 나라가 발전한다.해방 후 국민은 잘 했는데 정부가 잘못한 경우가 많았다.국민의 정부는 국민과 하나가 돼서 해 나갈 것이다.국민의 정부는 부정부패가 없을 것이다.소수 이익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지역차별을 하지 않을 것이다.권력을 위해 법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 속에 같이 가도록 노력하자.잘못은 비판하고 잘 하는 것은 성원해서 난국을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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