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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野수뇌부 對美외교 나선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가 잇따라 ‘한반도 주변국 외교행보’에 나선다. 趙대행은 이달 25일부터 3월5일까지 미국을,李총재는 다음달 9일부터 1주일간 미국과 일본 방문을 추진중이다. 이들은 다같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초청강연을 갖는다.趙대행은 도착 하루 뒤인 26일 해리티지재단에서 국제관계 인사 100여명을 대상으로,3월2일에는 하버드대 학생·교수 280여명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이들은 강연에서 우리경제의 세계화와 경제회생 방안,대북관,통일문제 등에 대한 각자의 소신을밝힐 것으로 알려졌다.여야 수뇌부가 국제무대로 옮겨 ‘미국대회전’을 갖는 셈이다. 두 사람의 외유에는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다는 분석이다.趙대행은 5월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2인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비쳐진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국제적 이미지 강화를 통해 당내 입지를 높이려 한다는점에서 趙대행의 행보와 맥을 같이한다.향후 대권 수권자로서의 국제적 이미지를 가꿔나가려는 포석으로도 보인다.이를 위해 고어 미 부통령 등을 포함한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만날 계획이다.柳敏 rm0609@
  • 지자체 부단체장-’지방공무원의 꽃’으로 각광

    ‘1인지하 천인지상’ 민선 자치시대 출범 이후 ‘지방 공무원들의 꽃’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단체장을 일컫는 말이다. 부단체장이라는 공직은 단체장과 호흡만 맞으면 직업공무원으로서 자신의능력과 소신을 펴는데 더없이 좋은 자리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특히 행정경험이 없는 단체장일수록 행정전문가인 부단체장에게 전결권을 대폭 내주며역할분담에 있어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다.지역개발·인사·민원해결 등 각종 복잡한 업무를 추진할 때 단체장은 자칫 원칙보다는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정치적 결정을 하려 한다.이때 부단체장은 원칙을 지켜나가는 행정책임자로서 은근히 견제를 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편다. 자신이 평소 구상해온 시책과 지역개발 의지를 곧바로 시·군정에 반영할수 있는 점도 다른 부서에서는 맛보기 힘든 면이다.또 숙원사업 추진,지역개발예산 확보 등을 위해 단체장과 시·도,중앙정부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해내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서기관급의 경우 도의 국·과장으로서 특정 분야의 업무만 맡고 있지만 부단체장은 폭 넓은 종합행정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다.이 때문에 요즈음은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부단체장을 앞다투어 희망하고 있다.전남도의 경우 22개 시·군 가운데 7개 시·군 부단체장에 고시 출신들이 기용돼 소신있는 행정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단체장과 뜻이 잘 맞을 경우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자리를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다. 전북 익산시·군산시·완주군 등 3개 시·군은 민선 1기부터 4년여째 단체장과 부단체장이 함께 호흡을 맞춰 일하고 있다. 이곳 부단체장들은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체장과 머리를 맞대고 각종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에 지역에 큰 애정을 느끼게 돼 부단체장 근무지가 ‘제2의 고향’이 됐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부단체장은 인사위원회 위원장,막대한 예산의 지출권한을 쥐고 있는 경리관으로서 자치단체의 ‘2인자’만이 누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어려운 가운데 보람을 캐내고 있다.단체장으로부터 결코 초연할 수없는 어려운 자리.그러나 부단체장은 직업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사는 ‘공무원의 꽃’으로 위상을 높여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광주?몄投殮? shlim@
  • 上院 “탄핵 조속 처리”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미국 상원이 내년 1월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에 착수할 예정인 가운데 20일 상원의원들은 이 문제를 조속히 처리할 것임을 다짐했다. 그러나 탄핵재판 또는 견책 등 형식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날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견책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최소한 간략한 재판이라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공화당 내 2인자로 불리는 돈 니클스 상원의원은 민주당과의 협상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재판은 백악관이 원한다면 3일에서 3주일 내에 매우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황무지 개간권과 항일논조(대한매일 秘史:9)

    ◎일 50년간 토지사용 요구 강력 비판/영구 식민지화 속셈 폭로에 유생들도 궐기/개간권 확보 실패하자 대한매일 탄압 시작 대한매일은 창간직후부터 강력한 항일민족지로 발행되었다.그러나 항일논조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비판하면서 부터였다.일본이 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얻어내어 이를 영구적인 식민지로 만들려는 공작에 착수한 것은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부터였다.일본은 처음에는 태국(Siam)의 땅을 얻어내려 했다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한 표면상의 인물은 일본 대장성의 관방장을 역임한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다.나가모리는 개인 자격으로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는 듯이 가장했지만 사실은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된 것이었다. ○전국토 3분의 2가 넘어갈판 일본이 요구한 내용은 한국에서 명백하게 이용,경작하고 있는 토지 이외의 국토를 모두 개간하고 정리·개량·척식하는 권리와 그를 이용하고 이익을 거두는 모든 경영권을 우선 50년 동안나가모리에게 위임하라는 것이었다.일본은 한국에서 현재 경작하고 있지 않은 땅에 대한 사용권을 얻어서 50년 동안 이를 개간하여 경영하되 50년이 지난 뒤에는 사용기간을 또다시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이러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에 일본측이 차지할 수 있는 ‘황무지’가 얼마나 될것인지 정확한 넓이가 계산된 것은 아니었지만 외부협판 윤치호는 전 국토의 3분의 2가 일본측에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일본의 입장에 호의적이었던 주한 영국공사 조단은 적어도 경작 가능한 토지의 3분의 1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본국에 보고했을 정도였다.일본이 황무지 개간권을 차지한다면 한국의 광대한 토지는 영구히 일본의 점령하에 놓이게 될 것이며 한국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 운명이었다. 이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당시 양대 일간지였던 황성신문과 뎨국신문 등이 이를 폭로하였고 주로 유생(儒生)들이 중심이 되어 격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황성신문은 7월6일자 논설을 비롯하여 7월7일부터는 3회에 걸친 연속논설을 게재하여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함을 비판했다.대한매일이 창간된 것은 러일전쟁 직후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 일본의 부당한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인 7월18일 이었다.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국민적인 운동을 대한매일이 외면할 수는 없었다. 대한매일은 창간 4일후인 22일자에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윤치호의 글을 게재하였다.이때부터 대한매일은 일본의 부당한 요구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황무지 개간권 문제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일본어 신문과 영어신문에도 논란이 일어났으므로 대한매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친일논조의 영어신문 재팬 메일과 고베 해럴드와는 논전을 벌이면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대한매일의 일본에 대한 비판은 9월2일부터 5회에 걸쳐 연재된 「한국에 일본위력이라」는 논설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이 논설은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정책을 낱낱이 들춰내면서 실례를 들어 일본을 공격하였다.특히 마지막부분에서는 주한 일본 공사관의 대리공사였고 침략외교의 선봉장이었던 하기와라(萩原守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하기와라는 주한 일본 공사 하야시(林權助)와 함께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했던 일본 공사관의 제2인자였다.하기와라는 동경제대 출신으로 외교관의 경력이 화려했으며 본국에서는 정치적인 배경도 튼튼한 야심에 넘치는 젊은 외교관이었다.그는 하야시와 함께 한국침략 정책에 있어서는 늘 강경파였다. ○배설추방… 신문발행 중단 공작 대한매일을 비롯한 민족진영의 반대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는 실패로 돌아갔다.그러나 하기와라는 대한매일에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하기와라는 배설의 일본 공사관 출입을 금지시키고 배설을 한국에서 추방하고 신문발행을 중단하도록 하는 공작을 시작한 것이다.대한매일은 더한층 항일적인 논조를 강화하였고 고종을 비롯한 민족진영은 대한매일을 더욱 뜨겁게 후원하였다.
  • 사장 裵說의 재판:2(대한매일 秘史:2)

    ◎日측 “대한매일이 의병봉기 선동” 주장/張仁煥 의사 의거 찬양 등 항일사설 3건 증거로 내놓아/“한국사태 왜 日서 문제삼나”/英 변호인 추궁에 원고 우물쭈물/초만원 방청객들 야유 폭소 재판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 한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민족지를 영국의 법정은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피고는 대한매일의 사장 배설이라는 영국인이지만 진정한 피고는 배설이 아니라 민족언론 대한매일신보였다. 배설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대한매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법정은 만원을 이루었다. 방청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와 재판정 바깥까지 모여서 재판을 지켜보았다. ○법정 복도·바깥서도 지켜봐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통감부와 변호인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근본 원인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검사 윌킨슨이 고소인 미우라를 먼저 신문하기 시작했다. 통감부의 제2인자로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법정에 나온 미우라(三浦彌五郞)는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게 된 원인은 대한매일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매일이 소요와 무질서를 조장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적대감을 조장시키는 기사를 게재하였기 때문에 의병들이 궐기하여 전국의 치안이 불안하고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변호인 크로스는 의병의 봉기는 대한매일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의 성격을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부각시키려 했다.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은 독립국가다. 의병의 궐기는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미우라,당신은 일본 관리인가? 한국 관리인가? 일본 관리라면서 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문제삼아 일본 통감부의 대표로 나서서 영국인 배설을 고소하는가.” 미우라가 궁색한 논리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방성석에서는 야유하는 폭소가 터졌다. ○英·日 외교협상끝에 재판 열려 재판장은 변호사에게 정치상의 의견은 묻지 말고 사실에 관해서만 국한해서 물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영국과 일본 사이에밀고 당기는 길고도 끈질긴 외교협상 끝에 이루어진 재판이었으므로 재판장은 변호사가 재판을 정치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통감부가 배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제시한 대한매일의 논설은 3건이었다.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 암살을 찬양한 1908년 4월17일자 기사를 비롯하여 「일백 매특날(메테르니히)이가 능히 이태리를 압제치 못함」(1908.4.29)과 「학계의 꽃」(5.16)이라는 논설이었다. 통감부의 입장에서는 대한매일의 모든 지면이 항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지만 구체적인 증거물로 3건을 제시한 것이다. ○美 교포신문에 처음 실려 문제가 된 4월17일자 대한매일의 기사는 친일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張仁煥)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는 1904년 12월27일 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되었던 미국인이다. 그는 1882년부터 일본 정부를 위해 일했고 일본 정부의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친일적인 인물이었다. 일본은 그를 내세워 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외교상의 중요 사항을 일본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스티븐스는 한국의 외교고문이라는 직책으로 한국 정부가 주는 고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스티븐스의 암살 기사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발행인 鄭在寬) 3월25일자에 실린 것이었다. 공립신보는 교포들의 조직인 한인공동회(共同會)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공립신보는 ‘한국의 공적(公敵)’인 스티븐스를 쏘아 죽인 두 애국지사 장인환과 전명운을 찬양하면서 체포된 두 사람의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매일이 장,전 양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기사를 싣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주한 영국 공사 헨리 코번(Henry Cockburn)은 이때의 상황을 영국 외무성에 보고하면서 “한국인들은 집권세력도 그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발행물을 금지시키거나 저지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기사를 읽고 통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코번이 지적한 ‘집권세력’은 통감부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이며,그들의 재판을 기회로 일본 침략하의 한국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은 두 애국지사의 재판을 기회로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만국에 널리 알리자고 역설했다. “오호라 한국 독립은 곧 오늘이요,한국의 자유는 오늘이니 우리의 큰 뜻을 이룰 날이라”면서 “이 재판은 우리의 독립재판이니 우리가 이 재판에 이겨야 우리 2천만의 독립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 사장 裵說의 재판:1(대한매일 秘史:1)

    ◎韓·英·日 이목 집중시킨 ‘역사 드라마’/피고 대한매일사장 배설·원고 통감 이토/증인 편집책임자 양기탁·의병장 민종식/美 유학 마치고 돌아온 金奎植 통역맡아/당시 한국상황 상징적대표 총 등장 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던 시기에 정론직필로 구국의 필봉을 휘둘렀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에는 현대사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가 숨겨져 있다. 대한매일은 재창간을 기념하여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국외대 鄭晉錫 교수(언론사)의 집필로 연재한다. 70년대 대한매일 영인본 제작 실무를 맡았던 鄭교수는 영국 공공기록보관소에서 방대한 외교문서를 찾아냈고 한·일 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등 대한매일 연구에 몰두해왔다. 대한매일신보사의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개와 일본인은 출입금지.” 대한매일은 사장이 영국인 배설(裴說)이었으므로 사내에 일본경찰이 들어올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일본인(일본 순사)을 개에 비유한 경고문을 신문사 정문에 걸었을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한매일의 용기 있는 논설과 보도 태도로 보아 일본인 순사를 개로 빗댄 글을 써 붙였음직도 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한매일은 일인들이 침범하지 못할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당시에 발간된 영국의 데일리 미러는 영국 국기가 한국인 편집장 양기탁을 보호하는 피난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보도했다. 이와같이 대영제국의 치외법권이 허용된 신문이기는 하였으나 용기 있는 신문에 불어닥친 시련도 거세었다. ○용기있는 신문에 시련도 거세 1908년 6월15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에 있는 주한 영국 총영사관에서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을 피고석에 앉힌채 재판이 열렸다. 배설에 대한 재판은 그 한해 전에 이어 두번째였다. 재판이 열린 영국 총영사관은 오늘의 대한매일­프레스센터 빌딩의 맞은편 덕수궁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 건물이다. 재판이 열리던 무렵은 전국에서 의병들이 무력으로 항일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었으며 일본군 2만여명이 의병을 진압하려는 작전을 펼치고 있던 때였다.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책임을 물어 일본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직후,군대를 해산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여 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전개되던 위급한 상황이었다. 서방 기자로는 유일하게 산속까지 들어가서 의병을 직접 취재했던 캐나다 출신 영국기자 맥켄지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남루한 차림으로 싸우는 의병들의 처열한 투쟁에 감동되어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책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배설의 재판은 한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일본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였던 한­영­일 3국이 관련된 특이한 국제재판이었다. 재판 진행과정은 역사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이고도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만 보더라도 당시 한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피고 배설을 비롯하여 상해에서 이 재판을 위해 한국에 왔던 판사 보온과 검사 윌킨슨,일본 고베(神戶)에서 온 변호사 크로스는 모두 영국인들이었지만,통감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고소인의 자격으로 참석한 사람은 통감부의 제2인자 서기관 미우라(三浦彌五郞)였으며,증인으로는 대한매일의 실질적인 제작책임자인 총무 양기탁,의병장이었던 민종식을 비롯하여 궁내부 전무(電務)기사,그리고 평민도 있었다. 영어 통역을 맡았던 사람은 당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규식(金奎植)이었다. 일­영어 통역은 히시다(菱田) 박사가 맡았고,한­영어 통역 마에마(前間恭作)는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외교관으로 ‘조선의 판본(板本)’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고베에서 발행되던 영어신문 재팬 크로니클이 “동양 역사상 처음” 열리는 재판이라고 보도한 것처럼 재판 광경은 기이하고도 이색적이었다. 법관과 변호사는 영국 법정의 격식대로 백색의 꼬불꼬불한 가발에 육중한 법복 차림이었고,통감부를 대표하여 나온 미우라는 금실로 수놓은 제복의 정장이었다. 나중에 증인으로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흰 두루마기에 상투 틀고 갓 쓴 사람과 단발로 머리를 깎은 사람도 있었다. 통역 김규식은 서양 예복인 프록코트(연미복) 차림이었다. ○기이하고 이색적인 재판광경 연출 방청석에는 지방 거주 선교사도 상경하였고 각국의 주한 외교관과 서양 여자들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재팬 크로니클은 이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더글러스 영이라는 기자를 서울로 특파했고 AP통신도 특파원을 보내어 이를 취재할 정도로 이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컸다.
  • 中 지도부 개편 초미의 관심/공산당 제15기 3中全會 개막

    ◎朱鎔基­대홍수 극복·경제성장 공로 2인자 예상/李鵬­영향력 급락세… 서열 3위로 밀려날듯/胡錦濤­중앙군사위 부주석 맡아 軍 장악 전망 12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5기 3중전회)에서 고위층들의 인사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져 중국 지도부의 새로운 판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혁·개방을 결정한 78년 11기 3중전회의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3중전회의 최대 관심사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명실상부하게 2인자의 자리를 다지는지의 여부. 현재 권력서열 3위인 주 총리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 이어 서열 2위에 올라서는 반면,‘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3위로 밀려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홍콩 언론들은 주 총리가 총리에 임명된 뒤 그동안 권력기반을 다진 데다 총리직은 국제행사 참석 등의 기회가 많아 서열 2위가 적합하다는 당 내부의 평가가 내려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와 러시아 경제위기,44년만의 양쯔(揚子)강 대홍수 등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올 경제성장률 8%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주 총리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장 주석에 이어 2002년 당총서기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이 부상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군부 부패문제로 장 주석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장완녠(張萬年) 중앙군사위원회 상무 부주석 자리를 맡아 군부를 장악할 것이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전망이다. 장 주석은 후 부주석의 업무를 분담해주기 위해 ‘상하이방(上海幇)”의 핵심 인물인 황쥐(黃菊)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와 쉬광디(徐匡迪) 시장을 중앙무대로 진출시킬 채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레베드·야블린스키·주가노프/러시아 정국 주도 3인방

    ◎레베드/민족주의 색채 강한 국가적 영웅 러시아 군사령관 출신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공산당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애국주의자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지난 96년 10월 2인자로의 부상을 참지 못하는 옐친에 의해 국가안보회의 서기직에서 해임됐다.지난 5월 현직 지사를 압도적인 차로 누르고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에 당선됐다.92년 몰도바군과 러시아분리주의자들의 분규를 타결하고 96년 21개월간의 체첸 내전을 종식시켜 국가적 영웅으로 인식돼 왔다. 강력한 지도력과 이미지로 러시아가 혼란으로 치달을수록 인기가 오르고 있다. ◎야블린스키/지지계층 넓은 탁월한 경제학자 의회(하원)에서 41석을 점유하고 있는 개혁주의 성향의 야블로코당(黨) 당수.정치적으로는 민주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온건 개혁주의자다.지식인과 기업인 등에 이르기까지 지지계층이 폭넓다. 금융위기 등을 정확히 예측,상황판단력을 인정받아왔다.90년 고르바초프 정권 말기 부총리를 지내면서 ‘500일 경제개혁안’을 입안,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경제학자다.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주가노프/96년 대선서 고배… 연방 공산 당수 온건하고 합리주의적 성향을 지닌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지난 96년 대선에서 옐친과 결선투표까지 갔으나 박빙의 차로 패배했다.25∼30%의 기본 지지층을 갖고 있다. 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대해 주류 연방 소비에트당에서 이탈한뒤 강경 러시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부상했다.93년 10월 옐친이 의회를 거점으로 한 보수파 진영을 탱크로 진압한 뒤 공산진영에서는 유일하게 총선에 참여했다.
  • 李仁濟 고문 앞날/충청 맹주 야심 어찌될까

    ◎20% 지분 안주 보다 2인자 그룹에 끼어/정치력 발휘 꾀할듯 15대 대선때 492만표를 얻은 국민신당 李仁濟 상임고문이 李萬燮 총재와 소속의원 7명을 이끌고 국민회의에 합류했다. 한때 여론조사 인기순위 1위로 한국판 YS 후계자로 회자되던 그의 여당에서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국민신당의 공식적인 지분은 20%다. 그러나 한국판 토니 블레어를 꿈꾸던 그가 지분 확보를 통한 여당 속에서의 안주를 목적으로 합당을 결심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지난 7·21 재보선때 국민회의에서 그에게 수원 팔달 연합공천 후보를 제의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수성가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서는 충청도 출신인 그가 한때 JP 이후의 충청의 맹주를 꿈꾸었다고 전한다. 확실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중원을 차지한 양김의 코스를 밟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독불장군을 포기했다. 朴燦鍾의 몰락이 자극이 됐을 수도 있다. 국민회의 속에서 그가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지 벌써부터 정가의 관심을 끈다. 일단 2인자 그룹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독자적 지분도 있고,나름의 정치적 이미지도 갖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응만 하면 잊혀질 것이고 너무 튀면 소외되는 위험성을 안고있다.
  • JP/23년만의 국회답변 “허 참”

    ◎野 사퇴주장에 “할일 더있다” 일축 金鍾泌 총리는 26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대표 연설을 했던 자리다. 이날은 총리 자격으로 대정부 질문에 임했다. 지난 75년 12월 사퇴한 뒤 23년 만이다. 당시 4년6개월동안 역임했다. 金총리는 여느 총리와 다른 위상으로 답변대에 올랐다. 무엇보다 자민련 명예총재이자 공동정권의 한 축이다. ‘대독총리’‘허세총리’라는 비아냥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세총리’‘정치총리’라는 수식어가 대신하고 있다. 또 8선(選) 의원이다. 9선인 朴浚圭 국회의장에 이어 두번째 다선이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거친 공격을 받아넘겨야 했다. 사전 입수된 질의서에 인신공격성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고는 “허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불쾌감도 다소 엿보인다. 답변에서 때로는 정면 돌파로,때로는 비켜가기로 대처했다. 답변 1시간내내 노련함이 엿보였다. 상대방에 이해를 구하는 특유의 ‘JP어법(語法)’을 곁들었다.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강의’성격을 물씬 풍겼다. 먼저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있다”고 한나라당 徐勳 의원의 사퇴주장을 일축했다. 현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徐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지지 않아 그런 지적을 주신 것으로 안다”며 비켜가기도 했다.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서는 부쩍 힘을 넣었다. 그는 “지금은 경제문제 등으로 논의를 삼가고 있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채택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작심(作心)한 듯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며 ‘2인자론’도 폈다. 그리고는 “金大中 대통령만틈 더 잘한 분을 찾을 수 없다”고 극구 칭찬했다.
  • 趙 대행이 웃지않는 까닭은?

    ◎당직자 인사권 등 힘얻었지만 어깨 무거워/향후 10개월 정치적 시험기… 정국구상 몰두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어깨가 무거워졌다.‘대행’ 꼬리는 떼지 못했지만 당 대표에 준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은데 따른 부담이다. 국회의장 선출이 끝난 3일 하오 趙 대행은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내년 5월 전당대회까지 趙대행 체제로 간다는 것과 중·하위당직자 임면권 등 ‘당무를 위임하는 총재입장’이 담긴 문건이다. 이로써 趙 대행은 내년 5월까지 책임과 권한이 동시에 따르는 당 대표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趙 대행이 당의 2인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첫 조치는 당 3역이 함께 하던 매주 목요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단독으로 갖는 것이다.서열의 세계에서 최고통치자와의 독대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큰 것이다. 자민련과의 8인중진협의회 대표도 金令培 부총재를 대신 내보낼 계획이다. 자민련 金龍煥 수석부총재와 격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사전·사후보고는 하겠지만 중·하위 당직자 임면 재량권도 갖게 됐다.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솔하기 위해서는 인사권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위상이 높아진 만큼 책임도 따른다.지금까지는 당이 기대에 못미쳐도 그 책임이 趙대행에게 직접 돌아오지는 않았다.‘실세’가 아니라는 이유때문이었다.그래서 오히려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10여개월,趙대행은 중대한 정치적 시험기를 맞는다.재·보선 승리,여권 국회의장 선출에 이은 총재로부터의 권한위임등 잇단 호재에도 趙대행의 표정은 아직 무겁다.향후 정국구상에 대한 중압감때문이다.
  • 金 대통령,울진군수 이례적 접견/영남 유일 국민회의 당선

    ◎“동서화합 앞장” 당부/숙원사업 지원 약속 경북 울진 申丁군수가 16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기초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이다. 申군수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에서 유일하게 ‘국민회의 간판’으로 당선됐다. 申군수의 청와대 방문은 金大中 대통령이 ‘2인자’라고 지칭한 金重權 비서실장의 지역구라는 점도 무시못할 요인이다. 지난 선거도 金실장의 추천으로 나섰다. 金실장으로서는 체면을 살려준 ‘복덩어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申군수가 이날 받은 ‘선물꾸러미’도 두둑했다. 金대통령으로부터 울진 종합의료원 건립 등 지역 숙원사업의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동서화합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고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국회 50돌 진기록들

    ◎박준규 고문 9선으로 현역 최다선/이효상씨 7년3개월간 의장역임/이범이 위원 62년부터 국회서 근무/이광규씨 신상우 의원 보좌 17년/성천영씨 63년부터 속기사 외길/김순천씨 31년간 의사당 방호 영욕의 ‘헌정 50년사’는 각종 기록들을 배출했다. 최다선 의장·의원부터 최장수 속기사까지 다양한 ‘국회인생’과 진기록들이 50년 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다. 현역 최다선 의원은 자민련 朴浚圭 고문(73). 4·19 직후인 5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정치계에 입문,무려 9선을 달리고 있다. 93년 YS정권에서 강제로 의장직(14대)을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자민련 金鍾泌 총재와 손잡고 15대 총선에서 복귀했다. 최장수 국회의장은 6·7대 7년3개월간 국회 의사봉을 잡았던 李孝詳 전 의원(공화당·작고).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李起鵬 전 부통령(작고)이 5년 10개월(3∼4대)로 2위를 기록했다. 현역 국회 직원으로 최장수 근무자는 李範伊 전문위원(60·1급상당). 5·16 다음해인 62년 최고회의 총무처 9급 직원으로 출발,농수산 위원회 법제관을 거쳐 여성특별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장수 속기사는 成千永씨(56).63년 의사국 속기사로 국회와 인연을 맺은 이후 외길을 달려왔다. 대한 속기협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회 ‘방위’를 책임진 방호원(防護員) 가운데 최장수 직원은 金淳天씨(58). 67년 7대 국회 때 화부로 국회에 발을 디딘 후 난방수와 수위를 거쳐 현재 국회 외각 경호팀을 이끌고 있다. 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진 가운데 최장수는 한나라당 辛相佑 의원 보좌관인 李光奎씨(56세). 지난 81년부터 17년간 한결같이 ‘주군’과 운명을 같이했다. 최장 임기의 국회는 유신으로 6년의 수명(?)을 누린 9대 국회(73년 3월∼79년 3월). 반면 최단 국회는 4·19 직후에 출범한 5대다. 5·16쿠데타로 9개월 18일간의 수명에 그쳤다.
  • 강원도(2期 지자체 인사태풍:6)

    ◎영동·영서의 두 인물 행정부지사 낙점 관심/3국8과 통폐합계획 400여명 감축 불가피/道경제 살릴 인물로 정무부지사 외부영입 金진선 강원도지사는 눈앞에 닥친 인사를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장고 중이다. 지난 6·4 지방 선거를 치르기 직전까지 강원도 행정 부지사 자리에 앉았던 경력으로 도내 모든 행정을 손금 보듯 하고 있어 궁금한 것도,서두를 필요도 없는 탓이다. 金지사는 지난 1일 지사에 취임 하면서 강원개발 연구원의 朴世勳 연구원(38·고성)을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낸 바 있다. 30대의 비서실장을 발탁하게 된 배경은 崔珏圭 전임지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후문. 金지사로서는 자신이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3자 구도의 도지사 선거전에서 무난히 승리하기까지 崔전임 지사가 보여준 역할에 보답한 셈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이란 ‘손금을 드려다 보듯’하고 있는 사안들을 수순에 따라 처리만 하면 된다. 그러나 쉬운듯 하면서도 金지사를 고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2인자인 행정부지사 기용 문제다. 현재 행정 부지사의 물망에 오른 曺圭榮 기획관리실장(강릉)을 비롯,林茂龍 춘천시 부시장(춘천),權赫仁 도의회 사무처장(강릉), 咸炯仇 내무국장(고성),趙明洙 LA영사(양구)등 5명. 이들 가운데 인사때면 흔히 적용하는 연공서열 등 여러 정황을 적용, 최종 주자는 曺실장과 林부시장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金지사의 고민은 여기에서 장고를 낳게 한다. 자신이 평소 주장해 왔던 인사원칙은 ▲지역안배 배제와 ▲능력과 실적 중시였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이들 두 인사를 두고 한 것만 같아 선뜻 낙점을 내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동·영서’의 골이 깊게 팬 현실에서 공교롭게도 도내 동·서의 대표적 도시인 강릉과 춘천 이라는 두지역 인물이 최종적으로 부상,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은 것. 정무 부지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金지사는 “IMF라는 큰 산맥을 앞에 두고 강원도의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킬 사람이라면 외부 인사인들 어떠냐”는 것이어서 외부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강원도는 내달까지 도내 18개 시·군을 제외한도산하 재직 공무원 3,111명(정원 3336명) 가운데 12%에 해당하는 400여명을 감축해야 한다. 본청으로서는 3개국 8개과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실국장들에 대한 이동과 중·하위직 등 관계 부서 공무원 들에 대한 인사는 현재 인원이 정원에 크게 미달한데다 고위직도 여유가 있어 군살빼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국장급의 경우 동해출장 소장과 동계 아시안게임 조직위 행사본부장,도산림정책관,농촌진흥원장 등의 자리가 정년·명퇴 및 기타 개인적인 사유로 공석중이다. 과장급도 보건위생과를 비롯,통상협력과,도의회 전문위원 등 4∼5개 자리가 명퇴 등으로 비어 있고 오는 9월 정년퇴직때도 몇자리가 나온다. 金지사는 “늦어도 오는 10일 까지는 행정 부지사 자리를 메우고 정무부지사와 나머지는 연공서열 등 기타 역량과 능력 및 실적 위주로 매듭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 金 대통령 인촌강좌 특강­일문일답

    ◎“임기중 기필코 동서분단 타파하겠다”/남북관계 1년쯤 두고보면 가시화될것/중산층보호­실업문제 해결 최선의 노력 金大中 대통령은 29일 고려대학교 ‘인촌 강좌’에서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강연한 뒤 참석한 학생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 ­취임 초에 강력한 개혁의지를 천명했지만,국민들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불안감만 조성한 것 같다.실업사태로 불안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개혁의지는 보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그러나 세계 각국이 아시아에서 한국이 가장 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이 나라 역사상 언제 기업 25개나 한꺼번에 퇴출됐나.언제 은행이 5개나 한꺼번에 문 닫았나.개혁은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외환위기가 급해 거기에 중점을 두어 왔다.이제 금융과 기업,공기업의 개혁에 집중하고 있다.기업들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노조에서도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퇴출된 은행도 인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대화로 설득하고 법대로 진행하면서 하나하나 풀어갈 것이다.개혁은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며 해야 한다.우리는 그것을 얻고 있다.국민의 8할 이상이 정부를 지지한다.절대 다수가 정부가 간섭해서라도 개혁하라고 말한다. 실업자는 독일이나 프랑스에도 11∼12%가 된다.우리는 평생직장이 습관이 된데다 사회보장이 안돼 충격이 크다.지금 한달에 5만명선의 실업자가 발생 하지만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금년 1년은 도리가 없다.실업자를 아예 내리 않으려다가는 전부 실업자가 된다.2,000만 중 2할을 해고해야 기업 경영이 된다면,8할은 계속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2할도 해고 안하려면 10할이 다 실업자가 된다. 외국기업들이 해고의 자유를 지켜보고 있다.안되면 안 들어올 것이다.직업안정과 훈련,사회보장 등에 노력하지만 금년 1년은 실업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명년 후반기쯤이면 해소될 것이다.기업이 잘 되면 직장이 늘어난다. ­소를 500마리나 보내고 2차로 더 보낼 겨획인데도 북한은 잠수정을 침투시켰다.그럼에도 햇볕정책을 고수할지궁금하다.북한을 하루 빨리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낼 제도적 장치는.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다.북한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화해와 협력을 한다는 것이다.작년 4월 미 국방대학원에서 정보기관 사람 60명과 얘기를 나눈 적 있다.포용정책 즉,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내가 말한 햇볕정책은 처음 닉슨이 쓴 것이다.그는 70년대에 소련에 대해 데땅뜨 정책을 추진했다.구주안보협력회의,헬싱키 조약 등을 만들어 경제,문화 분야 협력을 시작했다.한쪽으로는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고 한편으로 문을 연 것이다.여기에 소련이 응해와 19년이 지나니까 총 한번 안 쏘고 소련 대제국과 동구가 무너졌다. 70년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압력을 가했을 때,毛澤東이 인구 6억명 가운데 200만명이 죽어도 좋다며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닉슨이 모택동을 만나 유엔에 가입시키고 미·중 수교해서 손잡았다.이 때 숙청된 鄧小平이 재등장한 것이고 그래서 오늘날 개방있게 된 것이다.클린턴 대통령도 이번에 중국을 가서 전략적 파트너로 손을잡고 있다. 햇볕 정책은 패배주의가 아니고 강한 힘을 갖고 있다.약하거나 유화정책이 아니다.북한의 강경세력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정책이다.남한에서 막하면 북한의 강경세력만 키워준다.북한에 상당한 온건세력이 성장하다가 좌절됐다. 지금도 북한 강·온 세력이 있다고 믿는다.안보를 확고히 하고,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 공영으로 가는 길이다.미 중 러 일 등 주변국이 모두 지지하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서도 각국이 전면 지지했다. 대화가 언제 열리느냐고 물었는데,鄭周永 회장이 북한에 간 것도 대화하는 것이다.우리 국민은 성질이 급하다.새 정부가 집권해서 몇 달이 됐는가.1년쯤 두고 보라.뭔가 만들어낼 테니까.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 ­정계 개편을 한다는데,인위적 과반수 만들기가 필요한 것인가.그런 방식으로 고질적 지역주의가 해소될 지 의문이다. ▲지역주의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지금 ‘민족의 시대’는 가고 있다.이제는 세계주의 시대다.산업혁명 이후 200여년 동안 각 민족은 침략적 민족주의,저항적 민족주의 같은 열병에 걸렸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해 경제의 국경이 없어졌다.모든 게 자유다.누구나 어디가서든 장사할 수 있다.청량리 뒷골목의 구멍가게도 세계의 수퍼마켓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이제는 세계 속으로 나가야 한다.우리의 가장 큰 결점은 세계를 모른다는 것이다.외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예전에는 단일민족을 자랑했지만 이제 세계속에서 뒤섞여 친구를 얻어야 한다.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영어를 제대로 하는 한국인은 1할도 안된다.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말만 한다.영어 안하는 것을 독립정신으로 생각한다.빨리 세계속에서 성공하려면 세계를 받아들이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남북이 갈렸는데 동서까지 갈리면 국가가 어찌 되겠나.세계에서 보면 한심한 일이다.나는 대통령을 못해도 동서분단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청와대비서실장은 정권의 2인자이다.金重權 실장은 경북 울진 출신이다.우리는 인사문제도 같이 논의한다.어제도 어느 곳의 인사안을 올렸는데 호남사람이 1위로 돼 있더라.그래서 안된다,비호남 사람으로 하라고 했다.대통령이 그만큼 노력한다.대구에서 갔을 때도 건의받은 예산 조치 등을 약속했다.정부의 1급이상 인사 가운데 아직 영남이 호남보다 10% 많다. 저는 지역주의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이다.그런 제가 그 짓을 하겠나.金大中정권 하에서 지역 학벌 배경 돈은 절대로 용납 안되지만 그 중에서도 지역주의만은 끝장내겠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당은 동쪽으로 뻗어 나가 전국적인 정당이 돼야 한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서쪽으로 나와 전국정당이 돼야 한다.정계 개편은 국민 절대 다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그러나 단 한사람도 돈으로 매수하거나 협박한 적 없다.선거구 따라 오고 안오고 한 것이다. 그 전에 야당에 애원하다시피 했다.1년만 도와달라,나라를 구하자고.그런데 잘 안된 것이다.그래도 무리한 일해서 야당에 피해주는 일 없었다. ­중산층이 무너진다.중산층 보호대책은 무엇인가.특히 대학생 자녀를 둔 중산층 가계에 도움을 줄 방안은. ▲국가 안정되려면 중산층이 튼튼하고 안정돼야 한다.실업사태 때문에 실직자가 생기고,장사가 안돼 중산층 상공인도 어려움이 많다.안타깝지만 우리는 터무니 없이 과소비하면서 경제를 망쳤다.무려 120조의 돈이 부실 대출됐다.결국 국민의 부담이다.그 가운데 기업 문 닫고 이렇게 된 것이다.그것을 해결하려면 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을해야 한다.그런 정책에 성과가 있다.금융,기업을 개혁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며 공기업도 개혁하는 가운데 사회 기반인 중산층 지원과 실업대책에도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과소비가 경제 망쳤다 실업대책 예산은 노사정에서 5조원으로 합의했지만 이후 8조4천억원까지 올렸다.앞으로 더 내서라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오늘 현재 8조4천억원 가운데 27%가 나갔다.중소기업 대출에 대해서도 22조원을 6개월 연장했고,62조원을 늘려 총 84조원을 연장했다.새로 12조원을 더 풀려고 한다.주택자금 지원도 노력 중이다.중산층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면서 금융과 기업의 구조를 개혁해서 경쟁력을 갖는 방향으로 나가면 명년부터 우리에게 훈풍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그간은 정부와 국민이 최대한 노력해 견뎌내기 바란다. 좋은 정부와 좋은 국민이 손을 잡아야 나라가 발전한다.해방 후 국민은 잘 했는데 정부가 잘못한 경우가 많았다.국민의 정부는 국민과 하나가 돼서 해 나갈 것이다.국민의 정부는 부정부패가 없을 것이다.소수 이익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지역차별을 하지 않을 것이다.권력을 위해 법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 속에 같이 가도록 노력하자.잘못은 비판하고 잘 하는 것은 성원해서 난국을 넘기자.
  • ‘한지붕 두가족’ 불협화음/홍콩 반환 1년

    ‘동방의 진주’ 홍콩이 7월1일로 중국에 반환된 지 꼭 한돌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홍콩 차이나의 1년’은 세계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록 법적으로는 ‘1국가 2체제’로 자유분방한 영국식 정치환경이 보장됐지만,역사적 주권 귀속이 주민들에겐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생부모’(중국)보다는 150년을 함께 생활해온 ‘양부모’(영국)쪽에 더 마음이 쏠린 그들이었다. 더욱이 때마침 밀어닥친 아시아권 경제위기에서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변혁의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홍콩의 오늘을 진단해 본다. ◎급속 中國化 부작용… 국제 비즈니스센터 위상 흔들/개혁세력 선거 승리… 시민 상당수 “英領시절 그립다” 홍콩이 50년 시한부인 특별행정구라는 지위로 중국에 귀속된 지 어언 1년. 사회주의 체제하의 12억 본토인과 시장경제하의 650여만 홍콩인들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1국 2체제’구도는 겉보기엔 순조롭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질적인 체제의 접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탈(脫)영국 중국화’로 요약된다. 홍콩은 더 이상 동서양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던,과거의 ‘동양의 진주’가 아니다. 올들어 홍콩거주 영국인들의 ‘엑소더스’도 가속되고 있다. 반환 이전 3만1,400여명을 헤아리던 영국인들이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음양의 간섭으로 서구식 자유주의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급속한 ‘중국화’과정에서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국 통치의 강점이었던 ‘법의 지배’가 약화되는 대신 인치와 연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령일 때보다 한층 무질서해진 교통질서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중국어 전용이나 서구적 질서의 실종은 그렇찮아도 위기국면인 홍콩경제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금융·무역 등 국제 비즈니스센터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다수 홍콩인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최근 홍콩대 사회과학원의 여론조사가 이를 입증한다. 주민 대다수가 영국 통치를 그리워하는 역설적인결과가 나온 탓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주권반환 100일에 즈음한 홍콩정부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엔 주민의 80%가 “‘홍콩 차이나‘가 더 안정되면서 번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컨대 홍콩과 중국이 협연하고 하고 있는 ‘1국 2체제’교향악은 아직 미완성 상태로 불협화음을 빚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귀속후 처음 실시됐던 지난달 입법회(의회)선거에서도 이 여론이 반영됐다. ‘홍콩발전민주연맹’ 등 친중국계는 불공정 시비 속에 간선제로 뽑는 의석을 독식,억지로 다수파가 됐다. 하지만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직선제인 지역구 20석중 15석을 석권,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이 결과는 중국 귀속 이후 상황에 대한 홍콩인들의 강력한 불만표출로 받아 들여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묘한 동거체제가 벌써 삐걱거리고 있는 징후인 것이다. ◎홍콩은… 홍콩은 홍콩섬과 대륙의 구룡반도,그리고 부근의 240개의 조그마한 섬들로 되어 있다. 모두 합해 면적은 1,067㎢. 제주도가 1,845㎢이니 제주도의절반보다 조금 큰 편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동서양간 경제교류의 징검다리로 보물과 같은 존재라 해서 흔히 ‘동방의 진주’로 불린다. 그러나 157년전만 하더라도 홍콩섬은 불모의 땅이었다. 고작 해적의 소굴에서 ‘동방의 진주’로 변신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1841년 아편전쟁의 와중에 홍콩섬에 영국군이 처음 진주했고 이듬해에 아편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할양된다. 18년후 2차 아편전쟁이 4년만에 매듭지어지며 구룡반도와 스톤 캐터스섬이 영국 영토가 된다. 그리고 1898년의 의화단 사건을 수습하면서 영국은 란타나오섬을 비롯한 200여개의 섬들을 또 넘겨받는 대신 할양기간을 99년으로 조정하는 조약을 맺었다. 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홍콩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이나 중국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했던 조약들이 평등하지 않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79년 반환협상을 시작했고 84년 협상에서 역사적인 ‘97년 홍콩반환에 관한 공동성명’에 조인하면서 97년 7월1일 157년만에 본래의 중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누가 이끄나/董建華·陳方安生 1국2체제 실험 주도/李柱銘 민주당수 “개혁세력의 희망봉”/통화전문가 任志剛 경제 조타수 역할 ▲둥젠화(董建華·61) 행정장관=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부터 가장 많은 스폿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지난 1년동안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도행사를 보장하고 입법회의 선거를 실시하는 등 유화 정책을 많이 썼다.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으로서 앞으로 4년간 ‘1국 2체제’실험을 주도해나갈 인물이다. ▲천팡안성(陳方安生·58) 행정총리=둥젠화 행정장관 아래 홍콩의 관료들을 이끄는 제2인자. ‘홍콩의 대처’로 불린다. 영국 통치시절 홍콩 번영의 반석이라 할 깨끗한 행정관료 조직을 중국 귀속 이후에도 별 흔들림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투화(司徒華) 지련회 주석=홍콩 민주 운동 단체의 대부격인 ‘애국민주운동을 지원하는 홍콩시민들의 연합회’(약칭 지련회)주석. 톈안먼 사태 기념 촛불시위 등을 주도. 중국의 인권탄압상을 국내외에 알리며 홍콩시민의 민주화 교사역을 하고 있다. ▲리주밍(李柱銘·60) 민주당 당수=5월24일 홍콩이 중국이 반환된 후 처음 치러진 입법회 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귀속 전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수장. 이번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지역구를 휩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측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셉 얌(任志剛·50) 홍콩 재정사 금융관리국 총재=아시아 경제위기를 통해 급부상한 통화정책 전문가. 지난해 10월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달러 가치 하락 압력이 거세자 하룻밤 사이에 홍콩 이자율 280% 인상을 단행,환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주역이다. 홍콩 경제 순항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달라진 것들/北京語 배우기 열풍… 모르면 2류시민/“아편전쟁은 침략전쟁” 中 역사관 주입/영국紋章 사라지고 紫荊化도안 사용 홍콩 특별행정구의 거리에선 이제 그 흔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관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동상은 물론 우표에 찍힌 여왕 흉상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특별행정구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꽃(紫荊花 자형화)도안이 행정특구 깃발에서부터 경찰제복에 이르기까지 뒤덮고 있다. 지난해만해도 어색하던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의 보통화(普通話 베이징 표준어)의 사용도 자연스런 일이 됐다. 영국 통치 시대 홍콩에선 영어와 광둥어(廣東語)만을 사용해 보통어는 소통이 불가능한 외국어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등 각급 학교에선 보통화 교육이 필수가 됐다. 아직 완벽하지 못한 보통화를 배우려는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학원은 계속 호황이다. 영국 치하에서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면 2류 시민이 됐던 것처럼 이제 매끄러운 보통화 실력없이는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가 개정된 것은 물론이다. 중화민국은 타이완(臺灣)으로 격하됐고,역사는 영국의 식민지배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관으로 대체됐다. 예전 영국령 홍콩 시절 교과서에서는 아편전쟁이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고 기록했지만 이제는 본래 모습대로 침략전쟁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공휴일도 달라졌다. 6월 두번째 토요일부터 시작되던 ‘여왕 탄신 기념일’연휴는 지난해로 홍콩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대신 10월1일부터 3∼4일간 이어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수립일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뒤덮는 불꽃놀이 속에 가장 성대한 축제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7월1일 이전까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영국의 추밀원에서 결정했으나 이제는 홍콩에도 최종심 법원이 설치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거리의 외환 환전창구에선 인민폐(중국돈)를 바꿔주고 있고 인민폐를 홍콩돈처럼 받는 상점도 늘고 있다. 물론 ‘베이징 바람’이 점점 거세질 수록 ‘홍콩 차이니즈’들의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화는 어쩔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경제/불황 주름살/1분기 마이너스성장 실업률 15년래 최악 중국 반환 1주년을 맞는 홍콩이 요즘 우울하다. 홍콩의 버팀목은 단연 경제. 꼭 영국과 결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에 휩쓸리며 어려움을 격고 있다. 90년대 들어 5%대의 경제 성장율을 유지해 왔으나 올들어 1·4분기에는 -2%를 기록했다. 경제가 침체되다 보니 실업률도 최악의 상황이다. 1.4분기 실업률은 4.1%. 최근 15년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96년의 실업률은 2.8%,지난해 2.5%였다. 지난해 중국 귀속을 앞두고 불안심리가 팽배하면서 오르기만 했던 부동산 가격과 주식의 폭락은 사뭇 심각하다. 주가는 1년 전보다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부동산도 4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콩 경제가 자랑하는 고정 환율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홍콩 달러가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탄력을 잃고 1년 내내 붐비던 관광객마저 발길이 뜸해졌다.중국에 편입되면서 11%나 줄었던 관광객이 올들어 24%나 더 감소했다. 재무장관격인 도널드 창(曾蔭權) 재정사(財政司)는 지난 17일 올 경제성장률 3.5%의 달성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년간경제 전망도 어둡다고 털어 놨다. 버팀목인 경제가 허약해지자 홍콩 사회가 흔들린다. 실제로 최근 홍콩대학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장래에 대한 불신도(不信度)도 지난해 9%에서 25%로 늘어났고 신뢰지수는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세계최고의 컨테이너 수송능력과 첵납콕 신공항 등으로 요약되는 아시아 금융·무역의 중심지 홍콩. 그러나 싱가포르와 상하이(上海)가 홍콩의 자리를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동방의 진주’가 얼마나 더 ‘제 색깔’을 유지할지, 의구심이 커가고 있다.
  • 6·4 지방선거­정계개편 전망/野의원 15∼20명 이탈 與大될듯

    ◎한나라 비교적 善防… 分黨論 약화/虛舟系 TK黨 출범땐 準與색채로 6·4 지방선거는 결국 여당쪽에 ‘힘’을 실어줬다.이 힘은 ‘6·25 이래의 최대 국난’으로 표현되는 현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국민적 열망의 결집이었다. 여권의 승리가 예고되자 “큰 틀 안에서 정치권의 구조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여권 최고위층은 틈틈이 “정치개혁만이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진행해온 경제개혁의 고삐를 당길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정계의 대지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계개편의 서막은 ‘의원들의 대이동’이라는 형태로 시작될 전망이다.야권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이동은 정치권에 여대야소(與大野小)의 구도가 탄생됨을 의미한다.여대야소로의 재편은 여권의 수도권 압승에 따라 예상외로 빨라질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분석은 서울·경기·강원지역에서 15명∼20명 정도의 야당 의원이 여권으로 말을 갈아탈 것으로 본다.인천·경기지사 선거에서 여권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상당수의 야권 인사들이 벌써부터 크게 동요했다는 지적이다.경기지역은 야당의원 22명 가운데 10명,인천지역은 야당의원 9명 가운데 5명이 여권과의 물밑 접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신당은 오는 7월 재·보궐선거에 앞서 당 해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관측된다.여권은 국민회의와의 통합 가능성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들이 대거 이탈하면 분당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정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金潤煥 부총재를 정점으로 하는 TK지역 의원들이 떨어져 나와 ‘TK신당’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그러나 정권교체 이후 구심점을 잃고 있는 민주계가 국민회의와의 정파별 연합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권의 구상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인상이다.국민회의­자민련­TK신당 3자가 연립해 정립(鼎立)하고 이에 한나라당이 대립하는 구도다.TK신당은 출현 시기가 매우 불투명하다. 신당의 출현 시기는 한나라당 내부상황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의 내부 갈등이 심화될수록,지도부 개편 요구의 강도가 높을수록 예상보다 빨리 탄생할 것이다.다만 여권은 ‘대연정(大聯政)구상’을 무리하게 태동시키지는 않되 올해안에는 정계개편을 끝내겠다는 의지다. 국민회의는 지방선거의 승리로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안정체제가 당분간 구축될 전망이다.‘총재대행’에서 명실상부한 당 2인자로서의 ‘대표’체제가 예상된다.
  • 신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鄭鎭奭 주교

    ◎61년 사제서품 받은 교회법의 권위자/생명존중 강조… 한국 카톨릭의 2인자 金壽煥 추기경에 이어 새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鄭鎭奭 청주교구장 겸 주교회의 의장은 올 67세로 가톨릭 교회법의 권위자로 통한다.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鄭주교는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중퇴한뒤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진학,6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64년 천주교 중앙협회총무와 65년 서울대교구 비서실장을 지내고 70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대학원에 유학,교회법을 전공,석사학위를 받은뒤 귀국했다. 70년 주교로 승진한뒤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85년 한국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에 취임한뒤 현재까지 재직하면서 ‘교회법 해설(1,2)’‘敎會法源史’‘敎階制度史’‘사제특별권한 해설’등 저서와 ‘가톨릭교회입문’‘성녀마리아 꼬레타’‘종군신부 카폰’ 등 많은 역서를 출판했다.청주교구장에 재임중이던 96년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주교회의의장에 취임했다. 지난 1949년에 설립된 주교회의는 전국 21명 천주교 주교들의 협력기구로 신도교육과 사회복지등의 교회사업을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통일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金壽煥 추기경이 국내외에서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최고위 성직자라면 鄭주교는 金추기경에 이어 한국교회의 법과 사목을 지도하는 제2인자라고 할 수 있다.鄭주교는 평소 건전한 가정생활을 중시,이혼과 낙태 반대를 강조해왔다.鄭주교는 또 “생명 존중의 신앙과 사상을 가져야만 가정문제,노인문제 사회문제도 풀 수 있다”고 강조한다.
  • 러 키리옌코 총리 인준/하원,또 거부땐 의회해산 우려 ‘찬성

    【朴海沃 기자】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서리가 우여곡절 끝에 24일 총리로 정식 인준을 받았다.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이날 키리옌코 총리서리에 대한 3번째이자 마지막 인준 여부를 묻는 표결을 실시,찬성 251대 반대 25로 인준했다.하원 총원 450명중 투표에 참가한 의원은 276명이었다고 하원은 밝혔다.총리 인준에 필요한 득표수는 226표이다.러시아 국가두마가 키리옌코 총리 인준에 동의한 것은 이를 또다시 거부할 경우 스스로 존폐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막판 위기의식이 작용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의회가 마지막 3번째 투표에서마저 총리 인준을 거부한다면 헌법에 따라 곧바로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왔다.따라서 의회로서는 이번 인준 투표를 자신들에 대한 생사여부를 가름하는 투표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현재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새로운 총선이 실시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러시아 유권자들이 현 경제위기로 인해 기존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당도 선거결과를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총리 인준이 거부된다 해도 옐친 대통령이 키리옌코를 총리 임명자 신분으로 제2인자 자리를 유지토록 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인준에 반대했던 자유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옐친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이 정치적 타협을 일궈낸 22일 이후 급격히 분열되기 시작했다.이는 곧 총리 인준 반대의 핵심세력이었던 공산당마저 분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공산당내 좌파와 독립적인 의원들은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투표시간이 임박해지면서 인준 찬성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 李鳳柱의 인간승리(社說)

    장하다.참으로 장하다.李鳳柱선수가 19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98로테르담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2위를 차지했다. 비록 1위는 놓쳤지만 李선수가 이번에 세운 기록 2시간7분44초는 지난 94년 黃永祚 선수가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세운 종전 한국기록 2시간8분9초를 25초 앞당긴 것이다.이로써 한국 마라톤은 4년동안 깨뜨리지 못했던 8분 벽(壁)을 넘어 드디어 7분대에 진입했다. 李선수의 신기록 수립은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다.그것은 온갖 악(惡)조건을 이겨낸 선수 개인의 인간승리이자 그를 통해 폭발한 한국혼(魂)의 승리다. 올해 28세의 늦깍이 마라토너 李선수는 ‘달리는 종합병원’으로 불린다.두발의 길이가 각각 다른 짝발에 짝눈,강훈련으로 인한 갖가지 부상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마라톤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무릎부상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최근 한 대회에서는 13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해 “한 물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이번 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중요한 대회에서 번번이 2위에 그쳐 ‘만년 2인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지니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주저앉을 상황에서 李선수는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서 한국인의 끈기와 투혼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은 그늘속에서 강인한 정신력과 성실성으로 한국 신기록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그래서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마라톤에서의 승리가 빛난다.올림픽 정신의 꽃이 마라톤으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경제난국도 李선수와 같은 자세라면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끈기와 정신력은 우리 모두 지니고 있는 한국혼이다.李선수의 쾌거는 온 국민에게 고통을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한국혼을 일깨운 李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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