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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민철 부활투

    정민철(한화)이 국내 복귀 이후 첫 선발승을 거뒀다. 정민철은 28일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아와의 경기에선발 등판,7과 3분의 1이닝 동안 단 4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1실점으로 막아 시즌 2승째(3패)를 올렸다.삼진은 7개를 뽑아냈다.한화는 정민철의 역투와 이도형의 결승 홈런으로 2-1로 이겼다.정민철의 국내무대 선발승은 지난 99년 10월3일 LG전 이후 2년7개월여만이다.2년간의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접고 올시즌 국내로 복귀한 정민철은 초반 부진으로 한때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정민철은 이날 ‘부활투’로 구겨졌던 자존심을어느 정도 회복하며 한화의 선발 로테이션 멤버로 다시 자리잡았다. 선취점은 기아가 뽑았다.2회초 1사 2·3루의 기회에서 홍세완의 희생 플라이로 1-0으로 앞섰다.그러나 한화는 5회내야안타로 출루한 김수연이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이영우의 적시 2루타로 홈을 밟아 동점을 만들었다.한화는 6회터진 이도형의 결승 1점 홈런에 힘입어 한점차의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박준석기자 pjs@
  • 강영식 “무명 만세”

    ‘무명’강영식(21)이 프로야구 삼성 마운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았다. 강영식은 지난 23일 기아전에서 구원투수로 나와 6과 3분의 1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역투,시즌 3승째(1패)를 올렸다.특히 4-3으로 쫓기고 있는 3회 1사 1·2루의 위기에서 등판한 강영식은 이동수를 삼진으로 처리한데 이어 ‘바람의 아들’ 이종범마저 평범한외야 플라이로 잡아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줬다. 프로 3년차 강영식의 활약은 지난달 17일 두산전에서 생애 첫 승리를 올릴 때부터 예견됐다.상승세를 탄 강영식은 8일 뒤 현대전에서 생애 첫 선발승을 거뒀다.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 등 전천후로 출격하고 있는 강영식은 현재 배영수 노장진(이상 4승) 임창용(3승) 등 베테랑급 팀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방어율도 2.61로 팀내 2위,전체 투수 가운데 4위. 그는 2000년 해태(현 기아) 유니폼을 입으면서 프로에 뛰어들었다.그러나 계약금 3000만원이 말해주듯 주목은 받지 못했다.데뷔하던 해 4패만을 기록했고 삼성으로 팀을 옮긴 지난해엔 등판하기 조차 힘들었다.프로생활 2년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무명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자신의 끈질긴 노력과 김응용 감독의 신뢰가 올시즌 강영식을 팀의 주축 투수로 바꾸어 놓았다.김감독이 강영식에게 신뢰를 보낸 이유는 해태시절부터 돌봐주던 애제자중의 한명이었기 때문. 강영식 자신 또한 지난해 대부분을 2군에서 생활하며 묵묵히 비지땀을 쏟은 것도 강타자 신동주를 내주는 대신 자신을 데려온 김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강영식의 활약에는 김감독에 대한 보은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
  • 레스 “다승왕 나도있다”

    게리 레스(두산)가 시즌 6승째를 올리며 팀의 6연승을 이끌었다. 레스는 22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선발등판,7이닝 동안 2실점(자책 1점)으로 역투하며 10-2승리를 도왔다.6연승을 달린 두산은 한화를 한게임차로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시즌 6승째(1패)를 거둔 레스는 송진우(한화)와 함께 다승 공동 1위로 올라서며 용병 첫 다승왕의 꿈을 부풀렸다.지난해 기아에서 7승9패를 기록하며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 레스는 그러나 올시즌엔 다승왕을 바라보며 팀 에이스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레스는 LA 다저스(98년),미네소타 트윈스(99년) 등 메이저리그에서 뛴 베테랑답게 시종일관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줬다. 두산은 3-2의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7회 타이론 우즈와심재학의 적시타가 연속으로 터지면서 5-2로 달아났다.이어진 공격에서 두산은 송원국의 만루홈런 등으로 5점을 추가,10-2로 점수차를 벌리며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화는 6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불붙은 두산의 타선을막지 못해 3연패에 빠졌다.일본에서 활약하다 올시즌 국내로 복귀한 정민철은 한달여 동안의 2군생활을 접고 다시선발로 나섰지만 시즌 3패째(1승)를 기록했다.정민철은 5와 3분의 1이닝 동안 안타 6개(홈런 1개 포함)를 허용하며 3실점했다. 삼성은 기아를 8-5로 물리치고 10일만에 단독 선두에 복귀했다.25승15패를 기록한 삼성은 기아(22승2무14패)를 한게임차로 따돌렸다.연타석 홈런으로 시즌 15개째 홈런을뽑아낸 마해영은 홈런 선두 이승엽(삼성)과 송지만(한화·이상 17개)을 2개차로 바짝 추격했다.특히 마해영은 최근4경기에서 6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무서운 파괴력을 보였다. 양 팀은 홈런 3개씩을 주고받으며 초반부터 난타전을 펼쳤다.그러나 삼성은 6-5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8회 틸슨 브리또가 2점 홈런을 폭발시키며 쐐기를 박았다. SK 이승호는 5연패 뒤 시즌 첫 승을 올렸다.이승호는 현대와의 경기에서 8이닝동안 3실점하며 올시즌 9경기만에승리를 따내는 기쁨을 맛봤다.무려 13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이승호는 시즌 처음으로 상대 선발타자 전원으로부터삼진을 뽑아내는 진기록도 함께 세웠다.3연승을 달린 SK는 단독 5위에 올라섰고 현대는 6연패의 늪에 빠졌다. 박준석기자 pjs@
  • 정민철-이상훈 “부활投 보라”

    ‘옛 에이스’ 정민철(30·한화)과 이상훈(31·LG)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두 선수는 모두 90년대 국내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외국으로 진출했다.그러나 똑같이 일본과미국 프로야구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올시즌 국내로 복귀했다. 일본에서 활약하다 올해 연봉 4억원을 받고 복귀한 정민철은 벌써 한차례의 시련을 겪었다.한화는 ‘옛 명성’만믿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켰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결국 1승2패,방어율 22.24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지난달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92년 빙그레(한화 전신)에 입단한 뒤 99년까지 통산 109승62패10세이브,방어율 2.80으로 에이스의 자리를 지키며99년엔 18승(8패)으로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던 정민철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모였다. 다행히 20여일간의 2군 생활을 끝내고 지난 15일 1군에다시 합류,“2군생활이 큰 보약이 됐다.”면서 “남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각오를새롭게 다지고 있다.코칭스태프는 일단 경기감각 회복 차원에서 중간계투로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과 미국을 전전하다 5년만인 지난달 16일 귀국한 ‘야생마’ 이상훈도 조만간 복귀전을 치를 예정이다. 98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로 이적한 이상훈은 99년 중간계투를 맡아 6승5패 방어율 2.86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한 뒤 2000년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지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이렇다할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LG는 이상훈에게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인4억7000만원의 연봉을 주면서 큰 기대감을 나타내 귀추가주목된다.이상훈은 17일 1군에 합류할 예정. 전문가들은 이들의 성공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반응이다.뛰어난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외국생활 실패로 인한 정신적 위축과 국내프로야구의 급성장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박준석기자 pjs@
  • “이임생” 대표팀 주전 합류 ‘초읽기’

    이임생(30·부천 SK)이 히딩크호 수비라인의 주전 후보로 떠올랐다. 홍명보 외에 마땅한 중앙수비수를 찾지 못해 고심해온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임생의 부상 탈출로 기대를 부풀리게 된 것.최근 프로무대를 통해 4개월여만의 재기 성공을 알린 이임생은 이번주중 다시 발표될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이는 칭찬에 인색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프로축구 휴일 경기를 본 뒤 “실수를 하지 않는 좋은 수비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데서 감지된다.이임생은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홈페이지(www.kfa.or.kr)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내 중앙수비수 가운데 최고의 지지(24.19%)를 얻었다. 이임생은 지난 4월 이집트4개국대회와 5월 대륙간컵 멤버로 발탁됐으나 부상으로 박용호(20·안양)에게 잇따라 대표 자리를 물려주는 불운을 겪었다.이임생은 그러나 지난 19일 프로축구 대전전에서 골까지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쳐 2군 생활을 통한 재활에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이임생은 96애틀랜타올림픽 멕시코전에서 발목부상으로 도중하차했고 지난해엔 발목부상 재발로 아시안컵에 나서지 못했다.이후에도 불운은 계속돼 대륙간컵을 앞두고 훈련중 장딴지를 다쳐 도중하차하는 등 고비 때마다 부상 악몽에 울었다.그 결과 히딩크호에서 제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그러나 홍명보와 함께 한국축구의 중앙수비를 이룰 최적의 인물로 꼽혀왔고 그만큼 그의 잇따른 부상은 대표팀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임생은 대표팀에 복귀하면 빅매치에서 홍명보와 함께 스토퍼와 스위퍼 역할을 주고받을 전망이다.4백시스템을 쓸 경우엔 상황에 따라 스토퍼와 스위퍼역을 번갈아 맡게 되고 3백을 쓸 경우엔 전문 스토퍼 임무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부천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공격적이지 않은 멤버”라는평가가 말해주듯 타고난 수비전문이지만 지난해 프로축구에서 5골2도움을 기록했을 만큼 불시의 ‘한방’과 패싱 능력도 겸비했다.지난해 부천의 대한화재컵 우승과 정규리그 챔프전 진출을 이끈 공로로 베스트11에 들었다. 성격은 온순하지만 183㎝ 80㎏의 체격을 바탕으로 몸싸움과 대인방어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해옥기자 hop@
  • [名士의 책읽기] 김진선 前2군사령관 ‘호치민 평전’

    대한매일은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간을 소개하는 ‘명사의 책읽기’ 코너를 신설했습니다.첫회는 호치민연구가로이름높은 김진선 전 2군사령관의 ‘호치민 평전’(찰스 펜지음,김기태 옮김,자인 펴냄)입니다. 호치민은 불란서 영국 중국 옛소련 홍콩 태국과 베트남 등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열 번이나 바꾸어야 했다.홍콩과 중국에서 감옥 생활도 보내는 등 베트남 독립을 위한 그의 생애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약소국의 지도자였기에 불란서와 미국에게 네번이나 피가끓어오르는 배신을 당한 후 내린 결론은 무력으로 이기는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베트남인들은 맨주먹뿐이었다. 이때 그들은 호치민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쳤다.20세기 최강인 프랑스와 미국에게 차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지금의 베트남을 세우게 한 원동력은 호치민의 정의롭고순수한 정신과 베트남인들의 단결이었다. 지도자로서 그의 일생이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겪은 고난의 길이 단 한줌이라도 자신의 영광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아니고 오직 베트남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를 좋아하고 정감적이어서 흔히 세상에서 보는 정치인들처럼 혀끝이나 머리로 말하지 않았고 가슴으로 얘기한 사람이었다. 그가 공산주의 세력과 제휴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어쩔 수 없었다.이 책은 그가 오직 베트남인의 자유와독립에 생애를 건 순수한 민족주의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유서에서 ”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나를 위하여 동상을 세우지 말라.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베트남의 남부 중부북부에 나누어 뿌려라.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와독립뿐이다.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싸우라”고 했다. 또 주석궁이 호화스럽다하여 수리공의 집에서 살았으며 각료회의도 누각에서 했다. 그는 베트남 민족과 결혼하였다하여 79세의 총각으로 이세상에 자식도 재산도 보석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은 정부에서 종용하지 않지만 그의시신이라도 보기 위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승리하고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찾은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베트남은 미국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대항하여100%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으며 호치민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의 정신적 유산이 있는 나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에도 자기의 욕심과 개인의 명예를 100% 완전히 다 버린 호치민과 같은 순수한 지도자가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백성이 그 얼굴만 보아도 사랑을 느끼고 진실을 볼 수 있으며 일할 기분을 느끼게 되는 그런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빈털터리로 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호치민과 같은 지도자를 보고싶다. 작은 체구이지만 순수성이 태산도 머리를 숙이게 한 호치민,그의 지도자 상에 경의를 표한다.
  • 장도영 전 참모총장 회고록 발간

    5·16 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에게 옹립돼 군사혁명위원회의장을 지내다가 나중에 ‘반혁명사건’으로 몰려 제거된장도영(張都暎·78·재미)전 육군참모총장이 최근 회고록을펴냈다. 지난 62년 미국으로 정치망명에 오른 후 대학에서강의를 해오다 지난 93년 은퇴한 그는 그동안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비교적 말을 아껴왔다. 작정하고 말문을 연듯한 그의 회고록 ‘망향’(도서출판숲속의 꿈 펴냄)은 아무래도 애증이 교차되는 박정희에 관한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5·16전에 부하인 박정희,5·16후 사실상 실권자인 박정희에 대한 감정이 절제없이 노정돼있다. 그는 “내가 2군 사령관으로 재직 시절 좌익성을 의심받아예편 직전에 있던 박정희를 2군 부사령관으로 불러내려 예편에서 구제해 주었다”면서 “박정희와는 모두 다섯번이나상하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특히 5·16쿠데타 음모를 미리 알고도 묵인했다는 그동안의 의혹에 대해 장씨는 극구 부인했다.그는 “내가 군사행동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묵인,방조했다는 주장이 있는데이는 혁명주체라는 사람들이 꾸민 악랄한 간계”라면서 “군정 기간과 업무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조속한 민정복귀를 주장한 것이 반혁명사건으로 몰린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에 대한 인물평도 눈길을 끈다.그는 “박정희는 얼핏 보면 일본무사를 연상할 정도로 흠잡을 데 없는 전형적군인이었다”며 “당시 군은 대개 미군에서 그 본(本)을 땄는데 그는 군의 편제·훈련에서 일본군대에 관한 예를 더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또 “얼굴에는 늘 수심이 끼어있고 욕구불만에 찬 표정이었는데,비범한 영웅심으로 사회생활에서 자기소외를 가져왔기 때문”이라며 “5·16에서취한 행동은 그가 내세운 애국심보다는 영웅심이 작용한 것같다”고 평가했다. 5·16 당시 육군 책임자인 그는 “참모총장으로서 막중한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국민의 단죄를 달갑게 받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공직인맥 열전](39)법무부 검찰④

    서울지검은 전국 검사의 3분의 1이 재직하는 ‘매머드’지검이다.웬만한 대도시 검찰청보다 큰 동·서·남·북부지청과 의정부지청을 거느리고 있다.권력과 경제력이 집중된 수도권을 관할하는 서울지검 사령탑인 서울지검장은‘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요직중의 요직인데도 역대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사례가 많은 것은 아이러니다.91년4월 전재기(全在琪) 전 서울지검장부터 서울지검장 출신으로서 검찰총장에 오른 인물은 박순용(朴舜用) 현 검찰총장이 유일하다.전재기·이건개·송종의·김종구·최영광·최환·안강민·김수장 전 서울지검장은 총수에 오르지 못했다.총장 자리가 ‘정치 바람’을 많이 탄다는 반증이기도하다. 부산·대구·광주·대전지검 등 광역시를 낀 지검도 주요 포스트.수도권의 인천과 수원지검은 ‘고참’들이 맡는것이 관례다.검사장급이면서도 일선에서는 한발 비껴난 고검 차장은 대개 초임 검사장이 맡는다.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은 김종구,김수장씨로 이어져오는 대전고 라인.고려대 인맥이기도 하다.89년 광주지검형사1부장으로 재직할 때 조선대생 이철규군 변사사건을수사해 타살이 아닌 실족사라는 결론을 내렸다.83년 명성사건 수사에도 참여하는 등 특수수사 경험도 많다.시골 사람같은 친근한 외모에 솔직한 성격. 조준웅(趙俊雄·사시 12회) 인천지검장은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법대에 들어가 늦게 검사가 됐다.최연장 검사.진종채 전 2군사령관이 장인.서울지검 공안1·2부장을 지낸 공안통. 송광수(宋光洙·사시 13회) 부산지검장은 경남 마산이 고향으로 서울고를 나왔다.‘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1과장을 거친 기획통.서울지검 형사부장 때 경원대 입시부정사건을 지휘했다.바둑 실력이 프로에게 2점으로버티는 아마추어 최고수급. 정충수(鄭忠秀·사시 13회) 수원지검장은 활달한 성격에보스 기질이 있다.서울지검 산하 3개 지청장을 역임했고법무행정에도 밝다.장인이 B양조 회장.목포고,고려대 출신. 김진환(金振煥·사시 14회) 대구지검장은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때 아이스하키 특기생 선발비리 사건을 지휘했다. 친화력 있고 성품이 원만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정홍원(鄭烘原·사시 14회) 광주지검장은 대검 중수부 3·4과장,서울지검 특수 1·3부장을 거친 특수수사통.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격의없는 소탈한 성격이 장점. 김영진(金永珍·사시 14회) 창원지검장은 검찰1과장을 거쳐 인사·기획분야에 해박하다.소탈하고 겸손한 성품.경남 밀양이 고향으로 부산고를 졸업한 ‘PK’. 김규섭(金圭燮·사시 15회) 대전지검장은 목포고 출신.겸손하면서도 합리적인 성품으로 청렴하다는 평.서울지검 3차장 때 ‘고급 옷 로비의혹 사건’ 수사를 맡았다. 황선태(黃善泰·사시 15회) 청주지검장은 실무에 밝고 성실하며 인화력에 강점이 있다는 평.‘동남아 각국의 사법제도 및 공안정세’라는 책(공저)을 썼다. 정진규(鄭鎭圭·사시 15회) 울산지검장은 겸손하면서도소신이 강해 위아래의 신망이 두텁다.대검 공안2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낸 공안통. 채수철(蔡秀哲·사시 15회) 춘천지검장은 차분한 성품으로 책임감이 투철한 실무통.매사에 완벽을 중시해 업무처리에 엄하다. 김종빈(金鍾彬·사시 15회) 전주지검장은 수사 및 기획분야에서 뛰어나고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조규정(趙圭政·사시 15회) 제주지검장은 온화한 성품의‘선비형’ 검사.업무처리는 꼼꼼하고 빈틈이 없다. 손성진기자 sonsj@
  • 뉴스피플 3월29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3월 22일 발매,3월 29일자)는 ‘대안의 삶’ 생활협동조합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먹거리,환경,교육,의료 등 일상사에서 철저히 객체로만 존재했던 사람들이 생활속의 불안과 불만을 스스로 해결하기위해 나섰다.의정부 두루생협,부평 평화의료생협을 찾아,작은 실천으로 보다 밝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정치면에서는 지나치게 앞서가다 DJ의 경고에 꼬리를 내린 대권주자들의 움직임,목소리 높이는 한나라당 비주류,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을 포함시킨 민주당 조순형 의원을 만날 수 있다. 지역편중 논란이 일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공무원출신지별 인사 현황도 집중 분석했다. ‘에쓰-오일’의 등장으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정유업계를 심층진단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으로 국내선 전용공항으로 바뀌게 될 김포공항을 돌아봤다.지난 겨울 혼쭐이 난 기상청 사람들이 전하는 날씨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문학마을’은 시조시인윤금초를 초대했다.근·현대사를 재해석한 ‘대한정통사’를 펴낸 괴짜 의사 안재세씨,꼬마가수 ‘예솔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으로 거듭난 이자람양,사진기를 든 시인 신현림이 이사람 코너를 장식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를 더하고 있는 ‘신 장군의 비망록’에는 전 2군사령관 김진선 장군이 털어놓는 수도방위사령관 시절의 비화가 가득하다.
  • 신세대 네티즌 ‘꿈’ 향해 달린다

    2001년도 벌써 한달이 지나간다.새해 들면 누구나 한해의 계획과 목표를 세워 스스로 다지기 마련.한달쯤 지나 되돌아 보면 그 목표는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대한매일 뉴스넷(www.kdaily.com)은 신사년한해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 중간점검을 했다.여전히 자신에 넘치는 그들을 1년 후 다시 만나 그 소망과 목표가얼마나 이뤄졌는지도 점검할 계획이다. ◆박인철 (타운넷 사장) 타운넷(www.townnet.co.kr)은 전국 지리·위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기초로 지역 생활지리 정보를 인터넷으로서비스하는 회사다. “작년 10억원가량 수익을 냈지만 그것은 단지 투자에 불과했다고 여깁니다.올해 200억원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타운넷 박인철사장은 올해 34세.젊은 CEO답게 일에 대한 투지와 신념이 대단하다.타운넷은 일반적인 인터넷 기업과는 달리 직원이 많은편이라 서울과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합치면 290명이나 된다.직원들은 담당지역의 도로·건물을 중심으로 실제 생활에 관련된 사전조사를 벌이는 일을 맡아 한다. “전국 각지에서 직접 수집한 정확한 자료를 기반으로 가공된 정보를 유무선을 통해 제공해 명실상부한 인터넷 정보의 창고로서 자리잡을 것입니다” 타운넷을 내년 상반기 코스닥에 상장시킨다는 목표로 전 직원이 올 한해를 뛸 각오를 다지고 있다. ◆홍성건 (지오네이티브 사장) 지오네이티브(www.gonative.tv)홍성건사장(38)의 소망은 “직원이 부자가 되는 것”이다.작년 6월 ‘출생신고’를 마친 지오네이티브는인터넷 영어학습 사이트.이 회사의 역사가 고작 반년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홍사장 지휘 아래 지오네이티브는 지난 91년부터 ‘튜터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전화 영어회화 사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오네이티브의 서비스는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취향에맞게 선택하게끔 학습 메뉴를 다양하게 갖춘 점이 특징입니다.특히귀여운 캐릭터가 돋보이는 ‘게놈영어’코너가 인기를 얻을 것 같아요”직원은 40명,이 가운데 외국인 25명이 포함돼 있다.그러나 학생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네이티브’들. 인터넷을 통해 한국학생 컴퓨터와 연결된다. 오래 미국에서 생활한 홍사장은 영어교육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다. “우리는 1년후 월 평균 매출액 20억원을 달성할 겁니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사업영역을 점차 넓혀갈 테니까요”◆문석현 (교통방송 아나운서) “주부에게만 명절증후군이 있는 건아닙니다.노총각에게 명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교통방송에서 ‘아름다운 서울의 저녁입니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문석현씨(33)는 올해 목표를 결혼으로 정했다. “변명인지 모르지만 요즘 같아선 애인이 있더라도 연애할 시간이 없겠어요.”준수한 외모에 세련된 말솜씨를 가진 아나운서에게 애인이없다는 것이 의심스럽기까지 했지만,방송국 생활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들은 수긍할 것이다. 그간 문아나운서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주로 새벽방송이었다.지난 방송개편 때 은근히 낮 방송 맡기를 기대했지만 다시 저녁 프로그램을배정받았다. 요즘 빠듯한 일정을 쪼개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 다니는 그는 “방송에선 최대한 스스로를 낮추려고합니다.배워야 할 것도 많구요.방송5년차라지만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고 겸손함을 보여준다. 학문적인 바탕이 바로 자신의 방송을 넓고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장희진 (중학생 모델)“1년 후엔 슈퍼엘리트 모델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장희진양(16). 지난해 7월 모델 수업에 들어간 중학 3년생이다. 아직 햇병아리지만 서울컬렉션·SFAA·KUFF 등의 패션쇼와 패션잡지모델로 잇따라 나가 소속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하지만 그가 주목받는 데는 어린 모델이라는 점이 한몫했다.이러한 장점이 긴 안목에선 결코 유리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잘 안다. 요즘 장양 또래 친구들에겐 연예인이나 모델이 되는 게 희망사항. 그러나 그는 모델 생활이 반드시 화려하지만은 않다고 ‘어른스럽게’말한다. 모델다운 몸매를 유지하려면 다이어트는 기본이고,적어도 8시간을 헬스클럽 운동과 위킹연습으로 보내는 하루 스케줄을 지키는 것도 중학생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모델생활이 힘들긴 해도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아직까진 즐거워요”꿈많은 소녀 장희진을 1년후 다시 만날 때 성공한 모델로 변해 있을까?지금의 순수함은 그대로 지니고 있을까?◆김철림 (조이큐브 대표) “올해 500억원을 버는 게 목표입니다.가능하냐구요? 그럼요”올해 예상 수익을 묻자 조이큐브(www.joycube.co.kr)김철림(32)대표이사는 거침없이 대답한다.지난해 7월 설립된 조이큐브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상현실을 실현시킬 사업무대는 바로 PC방이다.3차원 입체영화나 게임을 즐기며 DVD(DigitalVideo Disc)등으로 제작된 영상물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설치한다.차세대 개인용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HMD(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장치)VSS(사운드를 진동으로 전환하는 장치)3차원입체안경 등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모든 환경을 제공한다. “이제 게임방도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어요.수익을 늘리는 PC방의 새 모델이 될 거예요.”아직 사업준비 단계라는 조이큐브의 직원은 현재 7명.사장과 직원의일 구분이 없고,내 일과 남의일이 따로 없다. “내년 이맘 때면 누구나 손쉽게 PC방에서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을겁니다.1년후 부쩍 커 있을 조이큐브를 기대해 주세요.”◆이동현 (LG트윈스 선수) 계약금 3억2,000만원에 연봉 2,000만원.며칠 뒤면 고교를 졸업하는 투수 이동현선수(18)가 한국 프로야구 LG트윈스 구단과 계약하며 받은 액수다.경기고 시절 황금사자기 대회 우승,대통령배 준우승 등을 이끌며 고교 최고 투수로 명성을 날린 이동현은 올 고졸예정 선수 중 ‘최대어’다.LG트윈스와의 계약 전에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당차게 거절했다.국내에서 기량을 닦은 뒤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얻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1년 후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1군 선수”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1군에서만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선발·구원 등 보직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한다.지금 2군에서 묵묵히 훈련을 소화해내는 그에게 시급한 것은 투구자세 교정.본격적으로 프로무대에 서기전에 올바른 자세를 익히고자 구슬땀을 흘린다.신체 조건이 탁월할뿐아니라 타자를 상대하는 두뇌회전도 상당해 큰 기대를 모은다.
  • 수능이후 대입전략

    수험생들은 내달 12일 성적표를 받게 되나 당장 오는 22일부터 특차모집 전형이 시작되는 만큼 예상점수를 토대로 미리 입시전략을 짜야 한다.특히 내년부터 특차모집이 폐지되고,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이 높아지는 등 새 입시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더욱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시점이다. ◆특차모집=특차는 정시모집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대학·학과의 합격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해본 뒤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대개 특차합격선은 정시보다 상위권 대학은 3∼5점,중위권은 1∼3점 높지만,정시에서 합격 안정권에 든다고 판단되면 특차에서는 같은 대학·학과에 지원하기보다는 다소 높은 점수대라도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학과에 소신껏 지원해볼 만하다. 대학에 따라서는 특차 지원규모가 작고 합격선도 정시보다 낮은 경우가 있어 무리하게 하향지원할 필요는 없다.또 특차에 합격하면 정시 지원은 불가능해 후회없이 대학·학과를 소신지원해야 한다.비평준화 지역의 일부학교 수험생과 비교내신제를 적용하지 않는 대학에진학하려는 특수목적고 수험생은 학생부성적이 불리하므로 특차를노리는 게 좋고,논술에 자신없는 수험생도 특차에 도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시모집=자신의 논술 실력과 수능 영역별 가중치 부여,학생부 교과목 반영방법,표준점수 적용 등을 꼼꼼히 따져 대학·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모집군을 달리해 총 4차례 지원할 수 있으므로 2군데는 소신지원하고 나머지는 하향 안전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시에서는 학생부 성적의 반영률이 높아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특목고생들과 학생부 성적이 낮은 수험생들은 비교 내신을 시행하는 대학이나 교과성적 산출시 반영하는 교과목 수가 적은대학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순녀기자 coral@
  • 이종범, 3개월만에 다시 2군으로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즈)이 3개월간의 1군생활을 청산하고 19일 2군으로 내려갔다.교체선수는 약 40억원의 스카우트 비용이 든 호주용병 딩고(31·본명 데이비드 닐슨). 이종범은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딩고가 올림픽 출전때문에 호주로 돌아갈 9월 11일까지 2군에 머물러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지난 4월 22일 1군에 복귀한 이종범은 그동안 60경기에 출장해 타율 .259 5홈런 22타점 10도루를 기록했지만 최근 11타수 무안타의 부진 끝에 18일부터 선발출장에서 제외됐다.
  • 송파구, 臥床환자 특별관리

    송파구는 불치의 질환으로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내는 환자를 찾아 의료서비스와 함께 임종간호를 제공할 ‘와상환자 특별관리팀’을 구성,4월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관리팀에는 의사 등 보건소 의료진 외에 간병을 맡을 자원봉사자와 전문 호스피스,종교인 등을 포함시켜 관주도 보건사업의 취약점을 보강하도록 했다. 송파구가 특별관리팀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최근 지역노인을 대상으로 한치매 전수조사에서 와상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수요가 적지 않았던데다 저소득층 와상환자의 경우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송파구는 이에 따라 거동이 불가능한 관내 159명의 와상환자를 대상으로 가정형편과 용태,가족들의 의견 등을 종합,이중 50명을 선정해 방문치료 등 특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지원되는 서비스는 가정간호,가정봉사원파견,일상생활 지원,주간 보호시설 이용,단기 보호시설 이용,양로원 이용,임종간호,장례서비스 등이며 병세에 따라 1군 환자는 수시로 방문하고 2군 환자는 월 1회 방문해 의료 및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심재억기자 jeshim@kdaily.co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 (6)반대자들의 변신

    5·16 직후 워싱턴에 있던 한국학생·지식인·예비역 장성 가운데 5·16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백악관앞에서 연일 ‘5·16 반대시위’를 벌였다.이는 미국정부가 5·16을 인정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5·16후 ‘한국인 정치망명 1호’를 기록한 내 남편 최동현(崔潼鉉)이었다. 5·16 반대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로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장리욱(張利郁·작고)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 신병현(申秉鉉)전 부총리,최경록(崔慶祿)·강문봉(姜文奉·작고)·김웅수(金雄洙)장군과 국회의원 양일동(梁一東·작고)씨 등이었다.강영훈(姜英勳)전 국무총리는 5·16직후 시골에 있어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워싱턴으로 온 뒤부터는 이 모임에 항상 참여했다. 5·16 당시 강씨는 육사 교장이었는데 쿠데타세력이 요구한 육사 생도들의5·16지지 시가행진을 거부했다.강씨와 처남 매부간인 김웅수 장군(전6군단장),장면(張勉) 정권에서 육참총장을 지낸 최경록씨도 5·16을 반대했다.당시 2군사령관이던 최씨는 자기밑에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朴正熙)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하극상 사태를 당한 셈이었다.최씨는 조선일보 등에 “군은 절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는 등 5·16을 반대했다.이 세사람은 5·16이 기정사실화된 후 미국측 배려로 미 국방부 장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백악관앞 시위에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에 재학중이던 한국유학생도 많이참여했다.당시 열심이던 학생으로는 오세응(吳世應·전 국회부의장)씨와 한광년이 기억에 남는다.그때 오씨는 워싱턴지역 한국학생회 회장이자 ‘한국인 택시운전사 1호’였다.한광년은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70년대 들어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넘어가고 말았다. 5·16 직후 박정희는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주미 대사관 공관원들을 모두해임시켜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자신의 수족들로 채웠다.그가 특히 신경을썼던 주미대사 자리에는 당시 하버드대학 청강생으로 있던 정일권(丁一權)을 ‘미국통’이라고 해서 앉혔다. 정일권이 주미대사로 앉게 되자 백악관앞 5·16 반대시위 참여자 중 여러사람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남편 최동현부터 정일권의 하버드시절 그의 영어가정교사를 했던 사람이었다.영어선생과 학생이 데모대장과 진압대장으로만난 셈이었다.또 강문봉 장군은 정일권과 같은 함경도출신으로 현역때부터형님,동생 해온 사이였다.그런 그가 백악관앞에서 반(反) 5·16 시위를 하니 정일권이 닦달할만도 하였다.그때마다 그는 “골프치러 가려고 운동화 신고 나서는데 최경록이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하는 식의 변명으로 모면하곤 했다. 한편 백악관 앞에서 5·16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그후 행적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생각되는 바가 많다.박정희는 이들을 한 사람씩 회유해 한국으로불러들였다.민주당정권때 주미대사관 경제담당 참사관으로 있던 신병현씨는5·16이 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백악관앞 시위에는 그의 부인까지도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후 미국에서 세계은행 이사로 있던 신씨는 그의 후배 김정렴(金正濂)이 박정희의 비서실장이 된 후 회유공작에 넘어가 귀국,청와대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최경록장군도 “선배님,그러실 것 없이 한국에 와서 손잡고 일합시다”하는 박정희의 간청에 결국 귀국해 주영대사,교통부장관 등을 지냈다. ‘백악관앞 시위동지’들 중 가장 부끄럽게 처신한 사람은 강영훈이라 하겠다.강영훈도 초기에는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았다.그의 부인은 미장원에서 일했는데 독한 파마액때문에 손가락이 모두 헐 지경이었다.그런 생활고 때문이었던지 70년대 들어 강씨는 결국 중앙정보부의 돈으로 ‘한국문제연구소’라는 것을 설립,미국 언론계·학계에 친박정희세력을 심는 역할을 담당했다. 백악관 앞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5·16을 반대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의 행적도 기억해둘 만하다.장면 정권하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이석기(李錫基·작고)씨와 나중에 야당 당수를 지낸 이철승(李哲承)씨가 그들이다. 이석기는 주미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워싱턴에 왔다가 5·16소식을 듣고는장리욱 대사 방에 달려와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사님,미군을 동원시켜야 합니다”하면서 열을 올렸다.그런데 5·16이 기정사실화되고 미 CIA부장 매쿤의 초청으로 당시 김종필(金鍾泌·현 국무총리) 중앙정보부장이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주미 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 김동환의 집에서 김종필 부장 환영파티가 열려 다른 특파원들과 함께 갔더니 뜻밖에도 이석기와 이철승씨의 모습이 보였다.나는 이석기에게 대뜸 물었다.“이의원,와이셔츠 걷어붙이고 미군 동원시키라던 분이 웬일이세요? 번지수를 잘못 알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이석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김 부장하고 나는 한 고향 출신이라 옛날부터잘 아는 사이입니다.게다가 김 부장의 춘부장도 제가 잘 알고,김 부장의 형님도 내가 은행에 취직시킨 처지라 먼길 오셨는데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뒷날 김종필이 정계에 진출할때 이석기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를 주고 자신은 서울로 옮겨갔다.그 점에선 이철승도 마찬가지다.그토록 열렬히 5·16을 반대한다던 그가 왜 그자리에 왔었겠는가.정리 정운현기자 jwh59@kdaily. com
  • 국민의 정부 2기내각 출범-각부처 표정

    ‘5·24’개각의 뚜껑이 열린 24일 정부세종로,과천,대전청사는 크게 술렁거렸다.이날 새로 장관을 맞은 부처는 대체로 반기는 모습이었고,장관이 유임된 부처는 안도하면서 후속인사에 촉각을 기울였다. 외교안보부처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통일부장관 ‘전면배치’로 대북포용정책이 보다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가 통일부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데다 현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핵심 브레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장관은 이날 장관실로 간부들을 불러 1년 2개월 동안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강전장관은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미·일·중·러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민족의 장래는 없을 것”이라고 마지막 충고를 했다. 외교통상부는 홍순영(洪淳瑛)장관의 유임에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홍장관은 취임 10개월 동안 왕성한 강연활동을 통해 대북 포용정책의 ‘전도사’ 역할을 해온 점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 4강 및 유엔외교에서도역량을 과시한 점을 유임배경으로 꼽았다. 특히 임장관이 80년대 초 홍장관과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동고동락했던 인연을 상기하면서 향후 대북정책에 있어 ‘임-홍 밀월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그러나 외교부 일각에서는 실세장관의 등장으로 통일부의 목소리가 커질경우 ‘주도권 경쟁’을 은근히 경계하는 듯 했다. 경제부처 재경부는 강봉균(康奉均)청와대 경제수석이 장관으로 부임해,부처에 힘이 실릴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또 정덕구(鄭德龜)차관이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후속인사로 인사적체가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재경부 내 옛 재무부 출신 관리들은 옛 기획원 출신이 요직에 다수등용되는 것과 달리 옛 재무부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박태영(朴泰榮) 전장관과 색깔이 전혀 다른 ‘젊은 장관’의등장으로 바짝 긴장하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건설교통부 직원들은 이정무(李廷武)전장관이 건설경기와 대형 국책사업을정상궤도에 올려 놓은데다 건교부의 위상을 높이는 데 전력을 다했다며 이별을 못내 섭섭해 했다.일부 직원들은 이건춘(李建春)신임 장관이 국세청장 출신으로 다섯번째 건교부 수장이 되자 “또 국세청이냐”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그러나 대다수 직원들은 80∼90년대 부동산세제 행정을 주도한 이장관의 경험이 건교부 업무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획예산처는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의 장관취임으로 업무의 연속성을기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신설부처의 경우 초대장관이 누가 오느냐에따라 부처의 위상이 결정되는 만큼 진장관의 취임이 기획예산처의 향후 위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문화부처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이 예상을 깨고 법무장관에 임명되자 법무부와 검찰은 “내부 승진이어서 다행스럽다”고 안도했다.특히 김총장이 임기를 3개월 남짓 남겨두고 영전함에 따라 후임 검찰총장을 비롯,검찰의 물갈이 인사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지난 2월 ‘검란(檢亂)’때박상천(朴相千) 전 장관이 사퇴 뜻을 밝힌 뒤 후임으로 김총장을 강력히 천거했었다”면서 “김총장의 장관 기용은 어느 정도 예상됐으나 시기는 총장 임기가 끝나는 8월쯤으로 점쳐졌다”고 상기시켰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장관은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노동부는 이상용(李相龍) 전 강원도지사가 신임 장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그러면서 ‘지역안배 측면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이기호(李起浩) 전장관의 청와대 경제수석 기용설에 대해서는“노동부 업무를 잘 아는 이전장관이 대량실업과 노·정 갈등 등 현안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국방부는 조성태(趙成台) 전 2군사령관이 실무에 밝은 정책통이라는 점에서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조장관의 전격 발탁은 천용택(千容宅) 전국방장관과 과거 육본전략기획처장을 지낸 임동원 신임 통일부 장관이 군 개혁을강력하게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며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장관은 당시 임처장 밑에서 과장으로 근무한 인연을 갖고 있다. 환경부는 신임 손숙(孫淑)장관이 문화계 출신 여성이라는 점에서 썩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일부 직원들은 “손장관이 환경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환경전문가라고 할 수 없으며 조직생활 경험도 전무하다”면서 “환경부의 위상이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손장관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동강댐 건설 반대를 위한 밤샘농성에도 참여한 점을 내세워 환경정책이 민간 단체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문화부는 박지원(朴智元)공보수석이 장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 약간은 의외라면서도 힘있는 ‘실세장관’이 왔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야당대변인,청와대대변인 등을 오래 지내 공보마인드로 문화행정을 처리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차흥봉(車興奉)장관이 부처 최대 현안인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통합을 능숙하게 풀어나갈 적임자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그는 80년대 초보험제도과 등 3개 과장을 지내 ‘복지부 출신 첫 장관’이란 의미까지 있기 때문이다.복지부는 최대 현안인 국민연금과 의보 통합이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육부는 김덕중(金德中) 아주대총장이 새 장관에 임명되자 이해찬(李海瓚) 전장관의 경질을 아쉬워 하면서도 교육개혁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전장관이 김대통령의 전적인 신임을 얻어 누구도 하지 못했던 개혁정책을 펴왔는데 중도하차하게 돼 안타깝다”면서 “교원들의반발로 ‘불명예 퇴진’하는 것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부처 종합
  • 박용오 KBO총재 인터뷰

    시련의 해는 지났다.터널을 빠져 나오는 일만 남았다.그러나 액셀러레이터 를 밟지 않으면 터널의 끝도 없다.지난해 프로야구는 출범이래 최악의 해로 기록된다.관중은 바닥세 였고 갖가지 시련 속에서 1년을 보냈다. 프로야구의 총수인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가 맞는 기묘년은 남다 르다.목표는 단하나 프로야구를 ‘국내 최고인기종목’의 자리에 올려 놓는 일이다. 박총재는 지난해 말 낙하산이 아닌 구단주에 의해 선출된 최초의 총재다.여 기에 기업 경영의 귀재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야구광이기도 하다.그 래서 그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박총재의 일성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스포츠 마케팅의 도입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저력은 아직도 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확신합니 다.축구붐이 거세도 야구팬은 야구팬대로 남아있습니다.우선 과제는 이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불러 모으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박총재는 야구장 시설을 하나씩 정비하기로 했다.돈이 덜 들고 손쓰기가 쉬운 곳은 바로 뜯어 고치고 필요하면 관계기관과 협의를거쳐 시 설 현대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박총재는 “올해 팬서비스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올시즌 개막전을 지켜보라 ”며 “프로 스포츠는 관람여건·스타·볼거리가 한데 어우러질때 장사가 된 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오랜 외국 생활로 몸에 밴 민주적 사고를 지닌 박총재는 모든 운영을 자율 적으로 해 나가다는 방침이다. 박총재는 총재에 오르기까지 갖가지 수난을 겪었지만 솔직하다.박총재는 “ 지금 KBO의 정관은 18년전에 만들어진 만큼 현실에 안맞는 부분은 고쳐 나가 겠다.각 구단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고 내 뜻을 솔직히 전하니까 다들 공감하 고 따라주고 있습니다”며 구단들의 높은 지지를 암시했다.특히 자유계약선 수(FA)제도 등의 전격 도입은 그의 첫 작품인 셈이다.박총재는 언제가 할 일 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그리고 프로야구와 관련된 모든 운영은 구단 주들과 협의하고 필요하면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민주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겠다는 말도 잊지않는다. “미국 유학시절 로저 매리스·앨리 레이널즈 등이 활약했던 뉴욕 양키스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그는 “프로야구가 발전하려면 재료 즉 선수층이 두터 워야 한다”고 지적한다.따라서 각 구단의 2군 운영을 활성화하고 고교야구 를 적극 지원할 것임을 강조했다.또 올해부터 시행하는 양대리그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내에 정몽윤 야구협회장을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가 닥치기 3년전부터 두산그룹의 파격적인 자체 구조조정을 서둘러 위기 에 처했던 그룹을 구한 박총재는 “KBO의 살림도 줄여야 한다.힘들겠지만 함 께 믿고 뛰다보면 사상 최초로 흑자 구단도 나온다”며 프로야구의 청신호를 예고 한다.박총재는 “관중이 전성기의 절반에 그쳤다는 지난해에도 한국시 리즈 만큼은 사상 두번째로 많은 관중을 끌지 않았냐”며 웃었다. 김경운 kkwoon@ [김경운 kkwoon@]
  • 풍전등화의 대한제국과 창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2)

    ◎‘排日護國’ 민족혼 일깨운 횃불/여론조작 친일紙 득세하던 1904년/치외법권 혜택 裴說 발행인 내세워/첫호부터 日 야욕 고발한 민족지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이하 대한매일)가 한국사 무대에 등장한 1904년은 일본의 한반도 병탄 야욕이 막바지에 달한 때였다.그해 2월8일 일제는 인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 2척을 격침해 러일전쟁을 도발한다. 이를 빌미로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은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는 권한을 획득한다.이어 7월20일에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해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할 때는 그 정지를 명령하고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한다. 배일(排日)민족언론의 숨통을 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올가미가 드러나기 이틀 전인 7월18일 대한매일은 그 거대한 족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당시 국내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이 뒤섞여 있었다.한국인 신문(민족지)으로는 ‘황성신문’‘제국신문’이,일본인 신문(친일지)으로는 ‘한성신보’‘대한일보’‘대동신보’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민족지들은 일본군 주둔 이후 갖가지 탄압에 시달려 활기를 잃은 반면 수적으로도 우세한 친일지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일제는 19세기 말 한반도 침략을 시작하면서 여론 조작수단으로 일본인 경영의 신문을 많이 발간했다.1881년 이래 한반도 전역에서 발간한 한글·일본어·영자 신문이 총 30여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매일 창간은 한민족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주었다.발행인인 배설(裴說)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영국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 뿐더러 발간 즉시 ‘한민족과 대한제국의 편에 서서 일제침략에 맞서는’태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매일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는 당시 유일한 일간 영자지여서 한반도 정세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했다. 대한매일 창간 무렵 한민족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였다.일본은 6월6일 ‘한국인이 명백하게이용·경작하는 토지를 제외한 전국토’를 개간해 50년 동안 경영하는 권리를 달라고 대한제국 정부에 요구했다.표면상 개간권을 요청한 자는 일본 각료 출신인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화’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당연히 들끓었다.요구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국토의 6분의 1(당시 일본 외상의 발언)에서 많게는 3분의 2(윤치호 주장)까지 일본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아울러 황무지 개간을 내세워 일본인들이 떼지어 한반도로 몰려올 것도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민족지들은 일제히 일본의 야욕을 비난했고 농광회사(農鑛會社),보안회(保安會)등의 단체가 생겨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이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고자 일제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매일도 당연히 ‘황무지 개간’건 보도의 일선에 나섰다.현재 대한매일의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남아 있지 않고 제16호(1904년 8월4일자)가 가장 오래된 지면이다. 그 날짜 영문판 톱기사는일본의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의 논설 ‘프로텍팅 코리아(Protecting Korea)’를 절반 가까이 전재했다.‘일본 정부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코리아에는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기사를 자세히 소개한 뒤 대한매일은 ‘이같은 고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무슨 말로 대답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이어 16일자에도 ‘나가모리 어게인(Nagamori Again)’(18일자 한글판 제목 ‘장삼씨의 문제 갱론이라’)이란 톱기사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한다. 대한매일이 배일 논조를 뚜렷이 하자 친일지들은 즉각 대한매일과 배설(裴說)을 비방하는 기사를 실었다.대한일보 10월5일자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이 신문은 ‘영국인 배설이 경성에서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는…번번이 일본이 패전한다는 설을 논하고,러시아의 제2군이 이미 일본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포위했으므로 머잖아 일본군이 대패하리라는 등의 거짓말을 싣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어 ‘이 영국인은 (일본)고베에서 장사꾼으로 생활하던 천인(賤人)이기로 전국(戰局)을 알 리가 없다’고 인신공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이밖에도 11월10일자,12월23일자 등에서 대한매일을 ‘일본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거나 심지어 ‘친러시아 기관지’라는 등의 악의에 찬 비난을 거듭 퍼부었다. 창간하자마자 민족지의 대표로 떠오른 대한매일신보.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두 어깨에 짊어진 대한매일이 6년여 동안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벌인 대전쟁은 이처럼 막을 올렸다. ◎대한매일신보 발행 체제/영문·순한글 6면 합쇄/타블로이드판으로 출발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는 6년여 동안 4가지 체제로 발행됐다.창간시에는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4면과 순한글판인 대한매일신보 2면 등 모두 6면을 합쇄 형태로 냈다.지면 비율로는 2대1일이지만 영문판 4면 가운데 2면은 광고였으므로 처음부터 한글·영문 기사의 비중은 같게 출발했다.판형은 타블로이드판이다. 그즈음 영문으로 나온 정기간행물은 미국인 헐버트(Homer B.Hulbert)가 내는 월간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뿐이어서 일간지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처음부터 널리 주목받았다. 영문·한글판 합쇄 체제는 다음해 5월10까지 이어졌으나 인쇄시설에 문제가 생겨 다섯달 동안 휴간한다.1905년 8월11일 속간하면서는 영문판과 국한문혼용판을 분리해 발행했다.2년쯤 뒤인 1907년 5월23일에는 한글판을 부활해 영문판·국한문혼용판·한글판 세 가지가 동시에 나왔다.우리 언론 사상 유일한 사례다. 裴說이 영국인 만함(Alfred Weekly Marnham)에게 신문사를 넘긴 며칠 뒤 영문판 발행이 중단돼 1908년 6월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한글판 2종만을 내었다.영문판은 이듬해 복간되지만 곧 사라진다. 이같은 발행체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국한문판·한글판으로 점차 확대하다가 후기에는 일제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문판이 사라짐을 알 수 있다.1900년대 초 시대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독자층의 욕구를 수용한 대한매일의 발행체제는 진실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대한매일신보 연구 현황/韓末 담아낸 시대그릇/각 분야별 연구 활발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연구는 100여년 한국 언론사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가 이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첫째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의 소임을 다한,우리 언론사에 거의 유일한 신문이었다는 원론적 의미에서다.둘째는 한말 우리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한매일에 대한 지금까지 연구는 우리 언론사 연구에서 항일과 관련,독립적으로 다뤄져온 부분도 많다.언론 자체 문제뿐 아니라 한말 우리의 시가(詩歌),한글,산업진흥,광고,자주의식,국제 외교사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이 확대돼왔고 특히 80년대와 90년대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매일신보만을 독립적으로 다룬 단행본은 △‘제국주의와 언론­배설·대한매일신보 및 한·영·일 관계’(구대열·이화여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 연구’(이광린 유재천 김학동 공저·서강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등이 있다. 한말 저항시가연구서는 가장 많아 ‘대한매일신보 가사연구’(조현경·전남대 석사논문 1995),‘대한매일신보소재 가사문학연구’(유정선·이화여대 〃 1990),‘개화기의 저항시가연구’(박을수·경희대 박사논문 1984),‘우국가사 연구­대한매일을 중심으로’(김준태·고려대 석사논문 1980) 등이 있다.한글 신문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연구’(오선화·이화여대 〃 1988)가 있다. 한말 대한매일신보가 산업진흥을 역설한 논설들에 대한 연구로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에 나타난 실업진흥론’(이윤정·서울시립대 〃 1997)이,당시의 신문광고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나타난 광고에 관한 연구’(김영희·효성여대 〃)가 있다. 그밖에 ‘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자주의식연구’(김영애·성신여대 〃 1979),‘대한매일보에 나타난 의병 동향’(윤경숙·인하대 〃 1988),‘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언론활동’(권만용·건국대 〃 1993) 등이 있다. 또한 한말 국제관계를 다루는 논문들에는 특히 영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다루고 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2(정직한 역사 되찾기)

    ◎헌법 반세기/9차례 개헌… 민의 철저히 외면/52년 의원들 납치 직선제 채택/54년 부결안 사사오입 억지통과/박 대통령 집권연장 3차례 칼질/12·12 탈취자 헌전파괴로 ‘심판’/10번째 개헌 국민의 뜻 반영돼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헌법전문은 이렇게 시작되어 326자의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헌법전문을 의미도 잘 모른 채 달달 외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개헌의 역사도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그러나 교과서 뒤에는 권력자들의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었다. 그들의 정략적 개헌은 많은 어용 학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정당화’ 되어왔다.헌법은 이러한 굴절된 개헌의 역사로 오염됐다. 헌법은 지난 50년 전쟁 와중의 1차 개헌 이후 9차례에 걸쳐 바뀌었다.지금까지 개헌은 집권세력이 자기의 편의대로 헌법을 뜯어고친 정치적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1차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선출을 국회가 아닌 국민직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50년 총선에서 참패한 李承晩은 국회에서 대통령 재선이 어려워지자 52년 7월7일 국회의원을 강제로 납치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그는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개헌을 다시 강행했다.그러나 그 개헌안은 당초 부결된 것으로 선포됐다.하지만 54년 11월29일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기상천외한 수학적 원리를 끌어들여 억지로 통과시겼다. 4·19혁명은 헌법에서 보장받지 못한 민중 스스로의 저항권 행사였다.그러나 혁명주체가 정치적 힘으로 결집되지 못해 직업 정치인들에게 공을 가로채이고,그들에 의해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채택한 3차개헌이 단행됐다.그러나 혁명주체세력들은 4·19정신의 반영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그들은 국회에 압력을 가해 4차개헌이 이루어지도록 했다.4차개헌은 3·15부정선거 주동자에 대한 공민권 정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민의에 의한 헌법질서 수립은 그러나 5·16쿠데타로 6개월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30여년의 기나긴 군사독재의 장이 열렸다.朴正熙대통령은 3번이나 헌법을 개악했다.개헌의 핵심은 대통령권한의 강화였다.그는 4년 임기 대통령의 중임제한규정을 없애기 위해 69년 대통령 재임을 3번까지 인정하는 6차개헌안을 여당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날치기 통과시켰다.72년에는 아예 영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공포했다.유신헌법체제는 거센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고,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울한 긴급조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김재규의 朴正熙 살해는 유신체제를 끝나게 했다.하지만 군사정권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신군부세력이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그들은 80년 10월27일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선출을 골자로한 제8차 개헌을 단행했다.그러나 결국 이들은 헌정파괴사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신군부의 공포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이는 직선제 개헌의 요구로 이어졌다.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이 도화선이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위기를 느낀 집권세력은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 수용으로 국민들을 회유한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여전히 비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다.대통령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고 긴급권에 대한 통제장치도 부족하다. 새 정부도 내각제로의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10번째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정부형태의 변경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지난 50여년간 왜곡돼온 것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개헌때에는 특히 그동안 소외돼온 국민들의 뜻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대한민국헌법 연혁 ▲1948.7.17 헌법제정 ▲1952.7.7 제1차 개정(제2대 국회) △양원제 △대통령·부통령의 직접선거 ▲1954.11.29 제2차 개정(제3대 국회) △주권의 제약,영토의 변경 등 중대사항에 관한 국민투표제 △국무총리제 폐지 ▲1960.6.15 제3차 개정(제4대 국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절대적 기본권화 △의원내각제 △중앙선거위원회 설치 △헌법재판소의 설치 ▲1960.11.29 제4차 개정(제5대 국회) △4·19에 관련된 부정선거관련자 및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 제한과 부정축재자의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권의 부여 △특별재판부및 특별검찰부의 설치 ▲1962.12.26 제5차 개정(국회재건최고회의)전문개정 △국가안전을 위해 기본권 보장 다소 약화 △단원제환원 △대통령제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에 부여 △헌법개정엔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1969.10.21 제6차 개정(제7대 국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50명 이상의 발의와 재적.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함 △대통령의 계속 재임 3번까지 가능 ▲1972.12.27 제7차 개정(유신헌법) 전문개정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임기의 연장과 긴급조치권,국회해산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강화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제한 내지 축소 △헌법위원회 신설 ▲1980.10.27 제8차 개정(국민투표) △비례대표제 채택 △국정조사권 신설 △행정심판제도 신설 △대통령 7년 단임제 △대통령 비상조치권 부여 △전직대통령의 예우조항 신설 ▲1987.10.29 제9차 개정(국민투표) △대통령의 직접선거(5년 단임제) ◎누가 참여했나/권력에 들러리 선 학자들 반성없는 ‘법기술자’ 활보/5·16후 법조인 등 21명 개헌작업 참여/신군부 입법회의에 총장 등 이름 내걸어/실제 입법활동 청와대·권력기관이 주도/김철수 교수 등은 양심 지켜 좋은 본보기 쿠데타에 의한 정권찬탈과 독재정치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은 학자들이 주로 맡았다.이들은 개헌안 입안과 각종 악법 제정에 참여해 부실한 통치 이념을 보완하고,양심세력을 잡아넣는데 정당성을 부여했다.그리고 이들은 대개 출세가도를 달렸고,지금도 반성의 말 한마디 없다. 5·16쿠데타 세력이 추진한 5차개헌안 마련에는 兪鎭午·韓泰淵·葛奉根·尹天柱·李英燮 등 21명의 학자와 법조인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兪鎭午는 5·16세력의 개헌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관제 단체인 재건국민운동 초대본부장을 맡음으로써 제헌헌법 기초자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낮추었다. 72년 유신 선포후 개헌작업은 申稙秀 법무 李坰鎬 보사 徐壹敎 총무처장관과 劉敏相 법제처장,그리고 헌법학자 韓泰淵·葛奉根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위원회가 맡았다.韓泰淵과 葛奉根은 3선 개헌에 이어 유신개헌까지 참여해 독재헌법 제정의 ‘단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80년 신군부의 개헌을 위한 헌법심의위원회에는 文鴻柱 부산대 尹謹植 성균관대 尹世昌 고려대 朴承載 한양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그리고 5·6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종 악법을 양산한 입법회의에는 金相浹 고려대(5공 초대 국무총리) 權彛赫 서울대 鄭義淑 이화여대 安世熙 연세대 총장,朴奉植 서울대 羅昌柱 건국대 韓基春 외국어대 교수 등이 들어갔다.이들중 朴承載 羅昌柱 등은 특히 신군부 집권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각종 기고문을 많이 써서 곡학 아세(曲學阿世)의 본보기가 됐으며,두사람 모두 5공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韓己植 고대 교수는 ‘광주폭도의 실상’이란 주제로 각 대학을 돌며 교수들을 상대로 슬라이드 상영과 강연을 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헌법심의위나 전문위원,입법회의 등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실제 입법은 청와대나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비밀모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비록 극소수지만 金哲洙 서울대 명예교수 韓相範 동국대 교수 등 끝내 권력자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법의 본질적 역할인 정의를 지키는 일에 헌신한 양심적 학자들도 있다. ◎3선 개헌 반대 芮春浩 전 의원/“헌정 파괴 방관만 할수 있나 여 의원으로서 저항에 자부심”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개인이나 당의 이익보다는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요” 지난 69년 朴正熙정권이 3선개헌을 강행하자 여당인 공화당의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芮春浩 전의원(71)은 지금도 그때의 결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芮 전의원은 개악적 개헌 저지를 위한 반대투쟁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그는 여당의원의 신분이면서도 정권의 불의에 끝까지 저항했다.당시의 독재적 정치체제 속에서 여당의원이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생명의 끝이며 핍박의 시작이던 상황이었다.그러나 그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세속적 의미의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69년 6차개헌에 나섰다.그러나 여당내에서도 芮 전의원 등 40명이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숫자상으로 야당의원에 여당의원 5∼6명만 가세해도 개헌은 막을 수 있었는데….그러나 개헌의결 당일까지 당내에서 반대로 남았던 사람은 제명당했던 저와 鄭求瑛 전 공화당의장 등 2명뿐이었습니다.정권의 회유와 협박이 대단히 집요했어요.” “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다른 사람들은 결국 굴복했습니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재산가로 변신했죠”라며 芮 전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정권에 몸담게된 계기에 대해,“5·16직후 벌어진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재건운동의 취지가 훌륭했습니다.朴正熙의 소박한 생활과 일에 대한 열정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 남다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새정부의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개인적 소신으로는 의원내각제가 좋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헌의도와 그 과정의 순수성과 투명성이겠지요.국민들을 그과정에 얼마나 많이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그는 현정부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 귄위주의적 통치문화를 벗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한번 그 맛에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절대 권력의 속성”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0여년간 서울 진관외동에 살다 지난해 분당으로 이사해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주로 독서와 낚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새 정부 차관급 38명 프로필:Ⅱ

    ◎이건춘 국세청장/재산세 분야 전통… 행시 10회 선두 업무추진력이 탁월하며 국세청내 행시 10회 출신 가운데 선두주자.온화하면서도 성품이 성실해 위 아래 신망이 두텁다.처음 만나는 사람도 쉽게 호감을 갖는 호남형이며 외부에도 지인이 많다.특히 직세와 재산세 분야에 밝다.부인 문영인씨(49)와 2남.▲충남 공주·55세 ▲공주고·연세대 행정학과 ▲국세청 재산세·직세국장 ▲경인·중부·서울지방국세청장. ◎이상호 병무청장/합리적 군수업무 정비한 ‘국제신사’ 차분하면서 강한 업무추진력을 갖춘 외유내강형.군수본부장 재직때 합리적인 군수업무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을 받았다. 외모처럼 일처리가 깔끔해 ‘국제신사’로 통하며 못하는 운동이 없을만큼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많은 책을 읽는 독서광.부인 신용선씨(60)와 1남1녀.▲경북 김천·60세 ▲육사17기 ▲국방부 군수본부장 ◎이보식 산림청장/연구직 출발… 내부승진 1호 청장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연구직으로 출발,산림청 개청이래 처음 청장으로 내부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육종연구소 소장 재직시 주목의 씨눈에서 항암제인 ‘택솔’을 개발,상업화하기도 했다.뚝심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워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부인 임정자씨(59)와 2남 1녀.▲황해 수안·60세 ▲부여고·서울 농대 ▲산림청 조림·영림국장 ▲산림청 차장 ◎박종세 식품의약청장/미서 20년간 연구… 행정력도 호평 20년간 미국 존슨 홉킨스대학 등에서 연구생활을 한 전문기술관료 출신. 88서울 올림픽때는 도핑콘트롤센터 소장을 맡아 벤 존슨의 약물복용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 전개가 정연하며 합리적성품에 행정력도 겸비했다는 평.▲서울·54세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식품의약품안전본부 독성연구소장 ◎신건 안기부1차장/장영자 사건 수사 지휘 ‘칼날검사’ 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때 수사검사로 명성을 날렸다.그러나 93년 슬롯머신 사건때는 정덕진씨와 수차례 만난 인연으로 엉뚱한 곤욕을 치렀다.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이나 칼같은 기질도 돋보여 이종찬 안기부장을 도와안기부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 부인 한수희씨(55)와 1남 3녀. ▲전북 전주·57세 ▲서울법대 ▲대검 중수부장 ▲법무부 차관 ◎김진선 비상기획위장/수방사령관 등 주요 보직거친 야전통 수경사·사단장·수방사령관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야전통. 93년 4월 2군사령관으로 임명됐다가 노태우계인 ‘9·9인맥’으로 분류돼 한달여만에 옷을 벗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대선전에 자민련에 입당해 김종필 총리서리의 신망이 높다.부인 임매자씨(54)와 2남.▲충북 괴산·59세 ▲육사19기 ▲육군참모차장 ▲2군사령관 ◎엄낙용 관세청장/세제·국제업무 두루거친 재무관료 세제와 국제업무 분야를 두루 섭렵한 재무관료.신사 풍의 용모에 조용한성격이지만 업무 추진력은 뛰어나다.재정경제원 2차관보때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지만 대인관계는 원만하다.부인 홍영신씨(47)와 1남 1녀.▲서울·50세 ▲서울대 행정학과 ▲재무부 세제심의관 ▲재경원 국세심판소장·제2차관보. ◎김세옥 경찰청장/후배 신망 두터운 경비작전 전문가 경비작전 분야의 전문가.신중하고 과묵해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나 대인 관계가 원만하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 간부 후보생 16기를 수석 졸업했으며 인정이 많아 부하들의 신망이 두텁다.부인 박옥주씨(50)와 2남.▲전남 장흥·57세 ▲조선대 법대 ▲전북경찰청장 ▲경찰청 경비국장 ▲전남경찰청장 ▲경찰대학장 ◎추준석 중기청장/국제감각 겸비한 상공분야 토박이 토박이 상공맨.부산출신으로 할아버지가 김영삼 대통령의 은사였던 관계로‘PK’로 분류돼 왔으나 정작 인사에서는 출신지 덕을 본 일이 없다.사안의 핵심을 정확히 판단해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주불 상무관 경험 등으로 시야도 탁 트였다.부인 엄윤지씨(49)와 1남 1녀.▲부산 동래·51세 ▲서울상대 ▲상공부 국제협력관 ▲통산부 산업정책국장 통상정책국장·차관보 ◎정종환 철도청장/교통경제 분야 잔뼈굵은 ‘불도저’ 28년간 교통경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관료 출신.교통부직원들 사이에서는 업무 추진력이 강해 ‘불도저’로 불리우면서도 자상하다는 평.야생화 등 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건문가 수준.부인 조정자씨 사이에 3남.▲충남청양·50세 ▲고려대 정외과 ▲교통부 국제항공과장·도시교통국장·항공국장·관광국장 ▲건교부 국토계획국장·기획관리실장·수송정책실장 ◎나종일 안기부2차장/새 정부 이론 가진 국제정치학자 김대중 대통령 집권과정에서 ‘지역등권론’이란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국제정치학자.경희대교수직을 가진 채 국민회의 지도위원,당무위원으로 김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나용균전의원(4.5.6대)이 부친이다.부인 홍재자씨(54)와 1남 3녀. ▲전남 나주·58세 ▲서울대 정치학과 ▲경희대 정경대학장 ▲국민회의총재 외교안보특보 ▲인수위 행정실장 ◎윤원배 금감원 부위원장/경제정의 실현 강조한 학자 출신 합리적이고 온건하다.69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80년 조사역을 맡다가 미국노스웨스턴대로 연수를 떠난 뒤 학자로 변신했다.경제정의 실현에 관심이 많다.김태동 경제수석,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 가까우며 지난 해 대선때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자문에참여했다.▲전남 강진·52세 ▲서울대 경제학과 ▲숙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정의연구소장 ▲경실련 집행위 부위원장. ◎강정훈 조달청장/업무 추진력 탁월… 조달분야 전문가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고 치밀하다.줄곧 조달청에만 몸담아 온 조달분야 전문가.소탈하고 정이 두터워 따르는 부하직원들이 많다.정부조달시장 개방과 관련 제도개선,업무의 국제화,대민 친절봉사 등으로 조달청의 위상을 새롭게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부인 박안자씨(55)와 1남 2녀.▲경북 영주·56세 ▲연세대 행정학과 ▲행시7회 ▲조달청 부산지청장·차장. ◎김강권 농진청장/녹색혁명 주도… 농업발전 산중인 70년대 녹색혁명과 80년대 백색혁명을 주도한 농업발전의 산증인.감자육종을 비롯한 원예·생물산업의 토대를 확립하고 기술개발에 기여했다.소탈하고 격의없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지금도 프라이드 승용차로 출·퇴근한다.두주불사형.부인 장명자씨(55)와 2녀.▲서울·59세 ▲서울고·서울 농대▲미 하와이대 박사 ▲농업진흥청 시험국장·농업기술연구소장 ◎김수동특허청장/변리사 자격증 취득… 특허업무 조예 업무처리가 치밀하고 추진력도 갖춘 상공관료 출신.옛 상공부에서 산업·무역·통상분야를 두루 거쳤다.특허청 항고심판소장을 역임하며 변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특허분야에 조예가 깊다.집요하면서도 모나지 않는 성격으로 특허청을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평.부인 유정애씨(50)와 2남 ▲경북 문경·52세 ▲경기고·서울법대 ▲특허청 차장. ◎안번일 감사원사무총장/세법·금융 감사 인정 받는 회계통 일 처리의 선이 굵은데다 합리적이며 통솔력이 뛰어나 따르는 직원들이 많다.세법과 금융관계 감사에 밝아 감사원 내에서 손꼽히는 회계통.감사위원으로 승진했다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이례적 케이스.부인 이춘희씨(49)와 2남1녀. ▲서울·56세 ▲서울대 법대 ▲감사원 공보관 ▲〃 제4국장 ▲〃 기획관리실장 ▲〃 제1사무차장 ▲감사위원 ◎조건호 총리비서실장/경제부처 섭렵·인화 탁월 ‘마당발’ 상공부 재무부 총리실 청와대 등을 두루 거친 화려한 경력의 경제관료.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했으며 소탈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인기를 모은다.문화계 스포츠계와 언론계에도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다.부인 박찬혜씨(49)와 2녀. ▲경기 김포·54세 ▲서울대 법대 ▲재무부 공보관·국제금융국장 ▲청와대 기획조정관 ▲총리비서실장 ◎박용환 공무원교육원장/업무처리 명쾌한 행정전문가 옛 총무처에서 조직·인사국장을 지내 중앙 행정을 두루 섭렵한 행정전문가.업무처리가 명쾌하고 성격이 호탕해 부처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보스형.판단력과 통솔력을 갖췄으며 업무처리도 명쾌하다는 평이다.부인 백아영씨(54)와 2남2녀. ▲대구·54세 ▲서울대 정치학과 ▲행정고시 11회 ▲총무처 조직·인사국장 ▲소청심사위원 ▲기획관리실장
  • 귀순자 일가족 첫 탈북/북송 재일교포

    ◎중 거쳐 홍콩에… 서울행 준비/작년 귀순한 홍진희씨 어머니·두 동생 지난 94년 북한을 탈출,96년 귀순한 북송재일교포 2세 홍진희씨(28)의 일가족 3명이 최근 북한을 탈출,현재 홍콩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관계당국은 이날 홍씨가족들의 북한탈출과 망명신청 사실을 확인했으며 당국은 현재 이들의 망명절차를 홍콩정부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상수난민수용소에 수용중인 홍씨 가족은 어머니 주영희(50·가내협동조합중앙회 노동자),여동생 경화(26·염화비닐신발공장 선전대원)와 남동생 진명씨(22·고등중학생)로 이들은 지난 2월 17일 함북 삼봉에서 탈출길에 올라 중국의 연길·심양·청도를 거쳐 지난 20일 홍콩으로 밀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가족단위의 탈북귀순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귀순자의 남은 가족이 북한을 탈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서울에 도착할 경우 귀순자 가족들과 북송 재일동포들의 북한내 생활상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96년 1월 홍씨가 귀순하면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허천으로 강제이주,유배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귀순한 홍씨는 중국체류시 자신을 보호해준 조선족동포를 통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부를 파악해온 것은 물론 이 동포의 도움으로 가족들의 탈북을 성사시켰다. 홍씨는 지난 69년 함흥에서 태어나 방직공장과 요업공장 노동자를 거쳐 북한군 제2군단 수산기지 지도원을 하다 92년 제대한뒤 94년 중국으로 탈출,홍콩을 거쳐 96년 1월 귀순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다. 한편 현재 홍콩에는 이들 홍씨일가 3명 외에도 7명의 탈북자가 서울행을 기다리며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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