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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기부등 4개부처 문서검증/「평화의 댐」 증인 58명으로 축소

    ◎국회 국정조사 율곡사업,12·12군사쿠데타적 사건,평화의 댐 등 3대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활동이 31일 본격 착수됐다. 국회 건설위는 이날 하오 평화의 댐 건설 관련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감사원·안기부·국방부·건설부 등 4개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문서검증을 실시했다. 또 국방위는 이날 여야 간사접촉을 갖고 당초 증인·참고인 78명을 58명으로 줄이는 등 세부일정에 합의하고 1일부터 국방부등 관계부처를 상대로 보고청취와 서류검증,증인신문에 착수한다. 건설위는 이날 4개반으로 나누어 문서검증을 실시,국방부에 대한 검증에서는 평화의 댐 건설공사는 안기부가 주도했으며 국방부도 당시 안기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검증에서 국방부 서태석북한정보부장은 이날 문서검증에서 87년 당시 북한 금강산 댐 수공위협에 대한 이기백국방부장관의 대국민 성명은 안기부가 인편으로 전한 것을 그대로 발표한 것이라고 진술한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또 『당시 안기부는 성명과 함께 일문일답자료를 함께 보내왔다』고 밝히고 『당시 국방부 북한정보부장과 실무과장등 2명이 안기부가 주도하는 실무대책회의에 두 차례 참석한 적이 있으나 안기부의 일방적인 보고를 듣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부에 대한 검증에서는 건설부가 보관중인 평화의 댐 관련 문서가 댐 건설 기본방침에 대한 대통령보고,금강산 댐 파괴에 따른 한강영향분석 보고,예비조사 용역계약관계 자료 등을 포함,모두 1천6백85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건설위는 안기부에 대한 비공개 문서검증에서는 관계기관대책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지난 86년 10월20일 청와대에 제출한 금강산댐에 대한 제1차 정보분석등 4차례의 보고문서 ▲미CIA가 금강산댐에 관해 제공한 정보자료 ▲당시 북한에서 열린 제7기 5차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정보분석 자료 ▲금강산댐 관련 1·2차 판단보고서등을 열람했다. 또 감사원에서는 지난 88년 감사원 기술국의 기술감사자료와 이날 발표된 평화의 댐 감사결과를,건설부에서는 수의계약및 사업비 집행내역 관련자료를 입수했다.
  • 제3세계 핵개발 저지에 큰 영향력/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란

    ◎87년 창설… 미­영­일 등 18개국 가입/핵 운반용 기술·장비 유출억제 목적 러시아의 항공기가 북한의 스커드미사일부품을 시리아로 운반했다.이 경우 러시아와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를 위반한 것인가. 최근 이스라엘은 북한제 미사일부품이 러시아항공편으로 중동국가에 수송되고있다고 주장했다.25일 미국무부의 마이클 맥커리대변인은 이같은 질문에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 논평을 할 수 없다.왜냐하면 그 문제는 미국의 정보및 첩보수집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고 답변했다. 맥커리대변인은 이날 중국이 파키스탄에 대해 M­11 미사일 기술을 수출함으로써 MTCR을 위배했다면서 제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국지적인 무기경쟁양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MTC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7년에 창설된 MTCR은 미사일확산을 막는 국제적인 다자간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결코 조약이나 협정은 아니다.왜냐하면 이 체제를 유지하고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국제적 조정기구나 집행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MTCR의 지침을 이행하거나 존중하기 위해서는 해당국가가 수출통제에 관한 국내법을 입법,이를 집행해야 한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는 3백㎞이상의 거리를 5백㎏이상의 적재중량을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무인 항공기의 확산을 막는데 1차목적이 있다.북한이 중동지역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진 중거리 스커드미사일은 물론 최근 실험을 완료한 사정거리 1천㎞의 노동1호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MTCR의 내용은 「지침」과 「부록」으로 이뤄져있는데 지침은 기본적으로 핵무기의 운반체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장비의 통제를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이 지침은 특정국가의 비군사적인 우주계획이나 이와 유사한 국제협력 계획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부록에는 통제를 가하는 미사일기술이나 장비에 대한 분류를 적시하고 있다.여기에는 1군과 2군이 있는데 1군에는 유도미사일,크루즈미사일을 포함한 「미사일완제품」과 여기에 사용될 수 있는생산장비,부속시스템등이 들어간다.2군에는 1군에 사용될 수 있으나 기술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로켓추진부품,구조물,컴퓨터,발사지원및 항법장치,비행조정장치등이 포함된다. 미국정부가 이번에 중국에 대해 취한 제재조치는 2군에 적용된 것으로 2군에 해당하는 미국의 첨단제품은 앞으로 2년간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것이다. 87년 당시에는 회원국이 7개국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미·영·불·독·일등 18개국이다.러시아등 구소연방국가들과 동구국가들은 회원국은 아니지만 가입수속을 밟거나 MTCR의 준수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중국도 회원국은 아니지만 지난 91년 중국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관련제재조치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이의 준수를 공식 천명했었다. MTCR이 사실상 다자간협정으로 영향력을 발휘함에 따라 그동안 브라질,아르헨티나등이 핵과 미사일개발계획을 포기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북한처럼 미국이 금수조치등 제재를 가한다해도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국가의 경우는 MTCR영역 이외의 통제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중)

    ◎두민족 금세기 4차례 피의 살육전/“카라바흐 독립운동”“침략전쟁” 입장차/「국경선 변경」 걸려 국제적 중재도 허사 아르메니아군의 대공세는 금세기들어 4번째이다.3차 공세때인 1918년에는 수도 바쿠까지 아르메니아군이 진격,1만1천명의 시민이 사망했다.두 민족간 원한의 뿌리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아제르바이잔측은 이번 공세도 『아르메니아인들의 영토확장욕에 의한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아르메니아측은 이를 구소련시절 잘못된 역사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한 카라바흐주민들의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한다.동족인 카라바흐주민들에 대한 무기·경제지원은 시인하되 자기들의 직접개인은 절대 부인한다. 양국분쟁의 진원지인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내에 고도같이 떠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자치주이다.이들이 고르바초프시절인 지난 88년 개혁분위기를 틈타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다수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소수 아제르바이잔인들을 내쫓으면서 두 민족간 유혈충돌이 시작됐고 이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영토전역에서 강제추방과 피의 살육이 자행됐다. 지난 5년간 이렇게해서 생긴 인명피해가 쌍방 합쳐 6천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공동묘지들은 전선에서 실려온 전사자들과 민간인 피해자들로 초만원이 됐다. 아르메니아의 직접 개입여부는 향후 카라바흐문제의 평화논의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국제사회는 지금까지 아르메니아측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아르메니아정부에 아무런 제재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유엔결의안도 카라바흐자치군대가 켈바자르를 침략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규모상으론 아르메니아 정규군의 직접 개입없인 불가능하다는게 통설이다.카라바흐자치군의 규모는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3만5천명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이번 아그담공격 때는 아르메니아군의 T­72탱크 20대와 20대의 장갑차가 동원됐고 지대지 그라드 미사일과 D­80가우비차 미사일이 집중 포격을 퍼부었다.2개의 탱크여단과 5개의 포병사단으로 구성된 아르메니아군 제2군단병력 6천명이 공세를 주도했다고 아제르바이잔측은 파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군의 배후에는 러시아군까지 개입돼 있다는게 아제르바이잔측의 주장이다.소련방해체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소련군이 완전 철수한 반면 아르메니아영토에는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러시아군 제7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군이 밀리는 이유 가운데는 정규군의 경험·훈련부족도 큰 몫을 차지한다.아르메니아는 지난 88년 독자군을 창설한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금년초 겨우 독자군을 창설,그것도 각지구별 지방군대로 이루어져 일사불란한 작전수행이 어렵게 돼있다. 어떤 싸움에서든 쌍방간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타협은 힘든 법이다.역설적으로 아그담이 점령된 직후 전전선에서 극적인 휴전이 이루어졌다.평화협상 재개를 위한 막후모색도 시작됐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있다.아제르바이잔은 카라바흐를 자국영토내의 한 자치주로 간주,후원국인 아르메니아와의 국가간 협상을 고집하는 반면 아르메니아측은 협상주체가 카라바흐 자치정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우선 카라바흐를 독립공화국으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흐의 독립국인정은 넓게 보면 2차대전후 수립된 「국경선의 변경」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쉽게 결말이 날 성질이 아니다.우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양국의회의 승인도 있어야 한다. 국제적인 평화노력도 진행되고는 있다.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주도하는 중재노력이 대표적인 하나다.러시아·미·독·불·이·벨로루시·스웨덴·체코·터키등 「민스크그룹」9개국이 ▲점령지 선철수 ▲즉각휴전 ▲CSCE평화유지군주둔등을 명시한 유엔결의안 822호의 시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군이 힘의 절대우위를 확보한 이상 민스크그룹의 중재안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게 이곳의 분위기이다. 팰릭스 파미코니안 주모스크바 아르메니아대사는 『점령지철수등은 카라바흐정부가 결정해야지 아르메니아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아르메니아정부가 국제적인 중재 대신 카라바흐와 아제르바이잔 정부간 1대1 협상쪽으로 전략을 수정했음을 인정한 것이다.카라바흐는 이미 협상대표까지 선임해 놓고있다.휴전합의도 공식적으로는 카라바흐자치정부와 아제르바이잔 정부간에 마무리됐다. 아제르바이잔 아사이라다통신의 이라다 사장은 『전쟁와중에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아제르바이잔 새정부로서는 군사적으로 더 이상 밀리면 정권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일단 협상에 임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아제르바이잔 새정부가 쉽게 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해 아르메니아측에 넘겨주리라고 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6월말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아제르바이잔 새정부는 아르메니아에 잃은 실지회복을 거사의 주명분으로 내세웠다.정권유지를 위해서도 일단 숨을 돌린 다음 재반격 기회를 노릴 것이 분명하다.평화해결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게만 보인다.
  • 「12·12」주역들 법정에 서게 될까/집단고소로 새 국면 맞아

    ◎공소시효 1년여 앞두고 형사절차/순수법률문제로 접근어려워 처리관심 12·12사건 당시 신군부의 반대편에 섰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이 사건 핵심 관련자 34명을 19일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공소시효(15년)를 1년여 남겨두고 이 사건 피해자들이 형사고발함에 따라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은 이 사건에 관련됐던 이필섭전합참의장등 현직 장성을 최근 해임하는 선에서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강조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들이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공소시효를 바로 앞두고 소를 제기한 것도 달라진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왜냐하면 지난 6공 당시만해도 노전대통령이 직접 당사자였기 때문에 현실여건이 이를 따라주지 않았다는 견해다. 검찰은 이에 따라 고소인조사와 함께 피고소인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걸머지게 돼 상당히 난처한입장에 처하게 됐다. 정전총장등은 고소장에서 『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들 반란 행위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준엄한 법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상기시키고 『그들에 의해 지배되던 강권 통치시대가 마감되고 이들에 대한 공정한 사법적 조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시대가 왔다고 판단해 법적책임을 묻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피해자들은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없이는 이 사건의 진상이나 실체를 밝힐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그 연후에 가능하다며 톤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정전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정부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검찰도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사건을 순수하게 법률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는 어려운데다 특히 2명의 전직대통령이 관련돼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어떻게 다룰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피고소인·고소인 명단◁ 「12·12」 관련 피고소인과 고소인 명단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당시 계급 및 직책). 피고소인 △전두환(소장·보안사령관) △노태우(소장·9사단장) △유학성(중장·국방부 군수차관보) △차규헌(중장·수도군단장) △황영시(중장·1군단장) △박희도(준장·1공수여단장) △최세창(준장·3공수여단장) △장기오(준장·5공수여단장) △백운택(준장·71방위사단장) △박준병(소장·20사단장) △장세동(대령·수경사 30단장) △김진영(대령·수경사 33단장) △허삼수(대령·보안사 인사처장) △이학봉(중령·보안사 대공처장)△허화평(대령·보안사 비서실장) △정도영(준장·보안사 보안처장) △김정용(대령·특전사 보안부대장) △우경윤(대령·육군 범죄수사단장) △성환옥(대령·육군본부 헌병감실) △최석립(중령·33헌병대장) △이종민(중령·육군헌병대장) △조홍(대령·수경사 헌병대장) △신윤희(중령·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정동호(준장·청와대 경호실장직무대리) △고명승(대령·청와대 경호실 작전과장) △박희모(소장·30사단장) △이상규(준장·2기갑여단장) △송응섭(대령·30사단 90연대장) △서수렬(중령·1공수여단 제2대대장) △박덕화(중령·1공수여단 5대대장) △박종규(중령·3공수여단 5대대장) △신우식(대령·특전사 작전참모) △구창회(대령·9사단 참모장) △이필섭(대령·9사단 29연대장) ▷고소인◁ △정승화(대장·계엄사령관) △이건영(중장·3군사령관) △윤흥정(중장·전투병과교육사령관) △이재전(중장·청와대 경호실차장) △문홍구(중장·합동참모본부장) △신현수(중장·국방부 특검단장) △전성각(중장·제3군단장) △최영식(중장·제2군단장)△정형택(중장·육본 예비군참모부장) △최명재(중장·군수참모차장) △안종훈(중장·육본 군수참모부장) △황의철(소장·육본 정보참모부장) △김한용(소장·육군대학총장) △신정수(소장·육본 민사군정감) △안철원(소장·육본 전술공사 통제단장) △한국섭(준장·전육본경리감) △하소곤(소장·육본 작전참모부장) △장태완(소장·수경사령관) △김계일(소장·국방통신정보부대 부부대장) △김종찬(소장·38사단장) △윤흥기(준장·9공수여단장) △김진기(준장·육본 헌병감)
  • 「하나회」등의 쌓인 불만 표출/이충석소장 발언파문 왜 생겼나

    ◎군개혁 과정의 잇단 실세로 위기감/보직해임조치로 「지휘권 도전」차단 장성들의 공식회식석상에서 군 개혁조치에 강한 불만을 표출,전격 보직해임된 합참작전부장 이충석소장(육사21기)의 행동이 군내외에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나회」회원인 이소장은 지난 9일 저녁 서울 사파리클럽에서 이양호합참의장이 주재한 합참 중장·소장급 이상 장성 20명이 참석한 회식모임 도중 최근 새정부의 「하나회」제거등 군개혁조치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물의를 빚었었다. 이소장은 이 자리에서 『하나회 출신이 한일도 많은데 무턱대고 제거하는 것은 잘못』『새정부가 장군들을 다루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개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물론 이소장의 발언은 「취중」이란 점을 감안하면 얼핏 우연한 돌출행위로도 치부할 수 있다.그러나 그가 「하나회」회원의 중추적 자리에 있다는 측면에서 볼때는 「하나회」회원등 「정치군인」들이 갖고 있는 군개혁에 대한 불만을 대변했으며 그 불만이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정부 출범이후 「하나회」회원들은 정치인맥 배제및 정화차원에서 「거세」됐거나 한직으로 대거 밀려났다.장성급만해도 이필섭전합참의장(육사16기)김진영전육군참모총장(〃17기)구창회전3군사령관(〃〃)김진선전2군사령관(〃19기)조남풍전1군사령관(〃18기)안병호전수방사령관(〃20기)등 6명이 옷을 벗었으며 최근에는 서완수1군부사령관(〃19기·전기무사령관)이 전역희망서를 낸 상태이다. 「하나회」출신 장성들이 전역한 이유는 통치권적 차원의 인사와 「12·12」관련 숙군인사·율곡비리관련인사등 다양하나 내용적으로는 「하나회」회원 거세와 밀접해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소장 자신도 89년 다른 「하나회」출신 동기와 함께 선두주자로 소장에 진급 1사단장,부군단장을 거쳐 91년 12월 요직인 현직에 임명됐으나 지난 4월 단행된 군단장급 인사에서 중장진급을 하지 못했다. 이소장의 발언은 이와함께 권령해국방장관·이양호합참의장을 축으로 하는 군수뇌부에 대한 직·간접적인 불만도 담고 있어 자칫 현군수뇌부에 대한 지휘권도전으로 발전할 소지도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이 때문에 파문의 조기차단을 위해 이소장에게 보직해임이란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소장의 발언파문이 이단계에서 어떤 양상을 띠고 나갈지는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그러나 곧바로 진정된다 하더라도 언제든 폭발할 소지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율곡사업 감사결과 동생의 무기중개업체와의 금전거래로 도덕성이 심하게 손상돼 거취문제가 정치쟁점화 되고 있는 권장관의 군지휘체제 등과 연결지어 보면 잠복성 불씨로 남을 것만은 틀림없다. 군부개혁추진의 강도및 성격이 이소장의 발언파문으로 변질될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으나 「내연변수」로서는 충분히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직해임돼 육본 대기발령을 받은 이소장의 차후 보직문제 역시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 “당시 정보사 3처장 테러 지시”/한진구 예비역준장 소환

    ◎범행자백 이상범중령 구속/이진삼 전 사령관 조사방침/군검찰 정보사 정치테러사건을 수사중인 군수사당국은 7일밤 테러단을 조직,지휘한 혐의가 드러난 정보사소속 이상범중령(44)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상습절도행위교사)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상습폭력행위교사)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5일부터 이 사건을 본격 수사해온 국방부합동조사단은 7일하오 이중령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짓고 사건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검찰부에 넘겼으며 검찰부는 이날밤 9시쯤 권영해국방부장관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이중령을 구속했다. 이중령은 합동조사단에 소환되기전에 이미 정보사의 자체조사를 받았었다. 합동조사단은 그동안 이중령으로부터 당시 정보사3처장 한진구대령(53·육사18기·예비역준장·경기도 성남시 남성대골프장대표)이 지난 85년10월 당시 「민추협」공동의장이었던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자택침입등 일련의 범행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7일하오 한씨를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한씨는 이중령의 진술내용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검찰부는 이중령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검토한뒤 한씨를 참고인자격으로 재소환,관련여부를 밝힐 계획이다. 군수사당국은 이중령과 한씨 이외에도 현역 영관급장교 3∼4명이 이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고 8일중 이들을 소환,조사키로 했다. 또 이들보다 상급자였던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전육군참모총장과 참모장 김윤각전2군사령관등에 대해서도 관련여부를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방부는 8일상오 이 사건에 대한 군수사당국의 조사결과를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 4세기 후반 요서·산동지방 진출(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8)

    ◎중국측 「송서」「양서」「북제서」등 사서에 기록/우리학자들 부정… 70년대에 교과서 수록 삼국 가운데 백제는 그 역사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되고 있다.고구려가 만주의 지배자로서 중국의 왕조와 패권을 다투었고,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데 비해 백제의 활약상은 두드러진 것이 없는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이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한 초기에 가장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벌인 나라는 백제였다는것이 정설이다. 백제는 4C 후반 근초고왕 때 북으로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했으며 남동쪽으로는 가야의 여러나라를 사실상 복속시켰다. 또 바다 건너 중국 남조의 국가들과 국교를 맺었으며,요서·산동지방과 일본 일부지역에 직접 진출했다.당시 백제의 대외진출을 대표하는 사실이「백제의 요서및 산동 경략」이다. 5C 후반 편찬된 중국의「송서」백제전에는『백제략유료서 백제소치위지 진평군진평현(백제는 요서를 공격하여 차지했다.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고 기록돼 있다.「양서」백제전에도『백제 또한 요서·진평 2군을 점거하고 백제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두 사서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백제가 요서지방(또는 요서지방내 요서·진평등 2개 군)을 점령해 군현을 세웠다」는 큰 테두리에서는 일치한다. 이와함께「북재서」후주기에「571년 백제 위덕왕을 동청주(현재의 산동반도 동남부)자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가 산동반도에서도 일정한 세력권을 형성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백제의 중국경략」이 기록상 명확한 데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19C 전반의 학자 한진서가「해동역사」에서 이를 부정한 이후 19 6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역사책은「백제의 중국경략」을 다루지 않고 무시했다. 부정론자들의 주장은「당시 백제가 바다건너 만리가 떨어진 요서에 군을 설치할만큼 강력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또 요서에 군현을 설치했다면,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중국 북조의 국가와 마찰을 빚었을텐데 북조측 사서에서는 그같은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따라서 남조측 사서인 송서의 내용은 믿기 어려우며 송서를 옮겨 적은 양서등 다른 역사서들도 역시 믿을게 못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67년 서울대 김상기교수가 ▲백제가 당시 바다를 통해 중국의 동진과 국교를 맺고 일본에 진출한 점으로 미뤄 요서를 경략할만한 능력이 있었다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자 백제가 이에 맞서 요서에 진출했다」는 송서의 기록이 당시의 정세와 맞아떨어진다고 밝힌 이후「요서경략론」은 김철준·방선주·신영식씨등에 의해 꾸준히 보강돼 왔다. 국사교과서에는 이 내용이 70년대 중반부터 실렸다.다만 백제의 진출시기,점령기간등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엇갈려 있다.
  • 부전전투 영웅 이병형씨(예비역 육군중장 전쟁기념사업회장)는 말한다

    ◎“6·25 끝난줄 아는 착각 안타깝다”/안이한 안보관으론 나라지탱 못해/우방지도층 자제의 한국전 희생 본받아야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와 두고온 산하를 못잊는 노병 이병형씨(67·예비역 육군중장·전쟁기념사업회장)에게는 아직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한 이씨는 『지금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76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이씨는 3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참군인의 면모를 과시,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그의 군인 됨됨이를 높이 산 노태우전대통령도 88년 취임초 그에게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맡겼으며 장태완전수경사령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을 정도.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리 6·25를 맞는 소감이 각별하다고 봅니다만.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6·25 발발소식을 듣고는 마치 댐밑에 서 있다 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에는 뚜렷한 승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승패없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치른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6·25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결정이 안났다고 봅니다.이질적인 집단간의 투쟁에서 아직 가부간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김일성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6·25는 어디서 맞았으며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인사참모로 대위였습니다.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원산탈환후 북진할 때는 18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 했습니다.전쟁얘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개 있지요.50년 12월초로 기억되는데 두만강을 90리 정도 앞둔 함북 부령까지 북진해 갔을때 갑자기 연대에서 대대장회의를 소집하더니 철수한다고 하더라고요.중공군 때문이었지만 그날 새벽 이미 2대대 6중대는 선발대로 두만강 쪽으로 출동한 상황이었지요 6중대에는 통신이 안닿아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병력만 철수했습니다.6중대를 먼저 보낸 것은 적의 급속한 진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지요.당시 6중대장인 이원개소령은 그 사실을 몰랐고…. 고향이 부령인 이소령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진급했음에도 부령전투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중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6중대 1백60명은 고립돼 유격전을 펼쳤다고 합니다만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고귀한 희생들로 인해 이 나라를 이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실향민인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시 동부전선에서 안강→청송→평창을 거쳐 서림(양양군)지역의 38도선을 돌파한 후 북진의 선봉대열에 서서 간성→양구→화천→신고산을 경유,원산까지 진격한다.원산탈환후 18연대 1대대장이 된 이씨는 대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점령하고 50년10월 하순에는 함흥 북방 신흥지역의 백암산에서 부전호를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 5명을 최초로 생포한다.곧이어 1개 중대의 중공군을 기습,매복으로 전멸시켰다. ­최근 탈냉전분위기등 주변상황변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25는 종전된 것이 아닙니다.휴전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모두들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협상등이 있고 보니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안보관을 개혁하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특히 권력층·지도층·부유층에 문제가 있습니다.나서야 할 사람들은 항상 뒤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방패로 썼기 때문에 망국의 설움과 6·25를 겪었던 것입니다.군대가는 문제만 해도 지금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권력층·지식층·부유층자제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소극적입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외국의 지도급 자제들이 6·25에 참전,많이 전사했다는 점을 거울삼아야 합니다.우리의 안보의식을 혁신해야 할 것 입니다. ­6·25때 생명을 내던져 쌓은 군의 신뢰가 최근 많이 실추된 듯 합니다. 군원로로서의 견해는. ▲군은 특별한 조직이 아닙니다.군도 국민의 일부입니다.국민이 합쳐서 군을 이루는 것입니다.국민들 이익에 반대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겁니다.군과 민이 별도라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군내에 「하나회」등 사조직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군내에선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물론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국민들도 전체 군과 관련지어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요즘 전쟁기념관건립에 몰두해 있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똑바로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노병의 한을 달래고 있다.
  • 민주 「12·12」 관련 서면질의서 내용/요약

    ◎최규하대통령에 대한 “하야협박” 사실인가/재가 받지않은 상황서 정 총장 연행 이유는/전 전대통령/80년5월20일 광주방문 어떤 목적이었나/9사단 1개연대 출동 누구지시며 임무는/노 전대통령 ▷전두환 전대통령◁ ▲김영삼정부가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에대한 소감은 ▲79년 11월 하순 보안사 허화평대령과 만나 정치정화계획을 세우고 정화대상자들에게 합수부에 협조하면 명단에서 제외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데 대상자의 규모와 이름은 ▲79년 11월25일에서 30일 사이 허대령이 수도권 각부대의 하나회 책임자들을 개별적으로 보안사에 불러 중대사태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는데 당시 소환인물들은 ▲79년 12월6일 보안사에서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을 만나 정총장을 연행하기 위해 모의한 내용은 ▲79년 12월12일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중장을 경복궁 30경비단에 불러모은 근거와 경위및 목적은 ▲정총장에 대한 체포지시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했는가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정총장을 연행한 이유는 ▲9사단 28연대와 2기갑여단 예하의 16전차대대 출동은 언제 누가 명령했는가 ▲최규하대통령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을 재가받게 된 경위는 ▲대통령 재가를 집단건의하기 위해 출발직전 3공수여단장 최세창준장,5공수여단장 장기오준장에게 병력장악 또는 출동준비 지시를 내렸는가 ▲최대통령의 정총장 체포건의안 재가는 언제 누가 받았는가 ▲신윤희수경사 헌병단부단장에게 하소곤육본작전참모부장과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순응하지 않을 경우 사살하라는 명령을 한 특별한 동기는 ▲최세창여단장을 통해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중령에게 정병주특전사령관이 순응하지 않으면 사살하라는 지시를 했는가 ▲장태완사령관과의 면담시 장사령관이 회유를 거절했으며 당시 이학봉보안사수사국장이 대화내용을 녹음했다는데 사실인가 ▲신현확총리를 찾아가 최대통령을 박정희대통령 시해방조죄로 조사하겠다고 한 사실이 있는가 ▲광주항쟁 진압전후인 5월22일 전투교육사령부를 방문해 보고받은 내용과 지시내용은 ▲김정렬 당시 국정자문위원과 총리공관에 찾아가 최대통령에게 하야하도록 협박한 것이 사실인가 ▷노태우 전대통령◁ ▲김영삼정부가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했는데 소감은 ▲『12·12는 구국의 일념에서 발생한 것으로 상관에게 행한 불경보다 더큰 명분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소신에 아직도 변함이 없는가 ▲신군부가 79년 11월 H그룹 조모씨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제공받았다는데 사실인가 ▲12월12일 경복궁 30단에서 열린 이른바 「생일집잔치」에는 누구의 지시로 참석했으며 발언내용은 ▲12월12일 9사단 1개연대를 출동시킨 것은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출동이유와 임무는 ▲당시 귀하의 직속상관인 황영시1군단장은 사후에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80년 5월20일 직접 광주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누구의 지시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갔었나 ▲80년 5월20일 보안사령관실에서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진종채2군사령관,정호용특전사령관과 회의를 가진 적이 있는가 ▲80년 8월10일을 전후해 최대통령의 삼청동총리공관에 김정렬씨와 함께 무기를휴대하고 들어가 하야를 협박했다는데 사실인가 ▲10·26이후 정치정화계획 구상,광주항쟁 유혈진압,요인숙정등 정권찬탈과정의 모든 문제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협의했다는데 사실인가
  • “12·12사태는 군사반란”/육종회/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육군종합학교전우회(육종회·회장 장태완전수경사령관)는 18일 『12·12사태는 일부 정치군인들이 실정법을 위반하고 일으킨 명백한 군사반란』이라고 규정하고 민족정기와 군의 정통성 회복을 위해 ▲12·12사태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반란군에 의해 순직 또는 부상한 사람이나 유가족에 대한 보상조치 등을 촉구했다. 육종회는 이날 하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재향군인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전쟁의 회고와 군사문화의 재조명」이란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12·12군사반란의 진상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육종회는 『12·12사태의 잘못된 점을 밝히는 것은 국토방위에 전념해야 할 군인들이 사리사욕과 출세욕때문에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세에 교훈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12·12사태는 군통수권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군령체계를 무너뜨려 군의 기강을 완전히 흩어지게 했으며 오늘날 군의 비리와 부정부패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 “미­북,핵금복귀 원칙 합의”/정부 당국자

    ◎한미,대북식량원조 등 긴급 조율 정부는 12일 새벽(한국시간) 열리는 미­북한간 핵문제를 논의할 제4차 고위급접촉에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향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무부는 3차 접촉이 예상외로 10시간이 넘는 마라톤회의로 진행된데다 탈퇴발효 마감시한을 불과 8시간 앞두고 4차회담이 열리게 된 점을 들어 북한의 NPT탈퇴 보류 원칙에 의견을 접근한것으로 보고있다. ◎미­북,NPT복귀 원칙 합의 북한측은 탈퇴 보류조건으로 ▲식량등 경제원조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 금지 약속 ▲북한 사회주의 체제 인정 ▲미·북한 관계정상화를 위한 차관급 협의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는 이에따라 제4차회담으로 미·북한간 탈퇴복귀 접촉을 일단락 짓고 북한측이 제시한 NPT탈퇴 보류조건 실현을 위한 방안을 미측과 협의키로 하고 이를위해 장재용미주국장을 11일 미국에 급파했다. 외무부는 이번 접촉에서 북한의 NPT 복귀조건을 들어주는 대신▲북한의 NPT즉시 복귀 ▲연변내 미신고된 핵시설 2군데에 대한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특별사찰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의 실천등 우리측 입장이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관련,정부의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NPT탈퇴 보류조건에 미·북한이 원칙적인 합의를 본 것같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4차 회담은 이러한 전제조건들에 대한 최종 조정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안다』면서 『북한이 이미 제시한 6가지의 조건중 경제원조,체제인정등 2∼3개 조건의 수용은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북한의 탈퇴 보류를 위한 전제조건 제시는 시한 연장 전략일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이 제시한 탈퇴 보류조건의 수용은 결국 북한의 NPT 즉시 복귀에 있는 만큼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의 실현등 후속대책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성역없는 척결… 부패구조 “와해”/사정태풍에 누가 쓸려갔나

    ◎재산공개로 장­차관·의원 10여명 침몰/과감한 군숙정… 현역장성 19명 옷벗겨/슬롯머신수사 확대 전망… 「대상자」 더 늘어날듯 김영삼정부의 출범은 이 사회의 부정부패 구조를 밑뿌리부터 뒤흔드는 격변을 예고하는 출발점이었다. 2월25일 취임사에서 김대통령이 「부정부패척결」을 제1의 당면과제로 제시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과거 정권들이 정통성결여를 위장하기 위해 흔히 내걸었던 민심무마용 사정 이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취임 이틀 후 스스로 재산을 공개하고 3월4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장차관 국회의원의 재산공개로 넘어가고 금융계,교육계,군·검찰로 줄줄이 이어지는 사정의 메들리는 과거와 비교할때 양과 질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과거완 차원 달라 이 과정에서 재산공개나 사정작업이 초법적이라거나 일부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가 정치보복이라거나 문민독재를 우려하는 등의 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김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국민들의 90%이상이 개혁을 지지한다」는 분위기에 묻혀 지나가고있다. 이러한 사정의 태풍속에 과거 권력과 돈·명예를 한꺼번에 누리던 숱한 유명인사들이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새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성역없는 척결은 3월초에 모습을 보였다. 김상철신임서울시장의 그린벨트 무단형질변경이 드러났고 박량실보사부장관의 부동산투기도 드러났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박희태법무장관이 미국국적으로 딸을 대학에 특례입학시킨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곧 물러나야 했다. 이와함께 허재영건설부장관도 축재과정이 문제가 돼 퇴진했다. 재산공개의 파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조규일농림수산부차관등 5명의 차관급 공직자의 옷을 벗기고 유학성·김문기·김재순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으며 박준규국회의장은 의장직을 사퇴해야 했다.박의장은 또 임춘원의원과 탈당,정치적 파국을 맞았고 탈당을 거부한 정동호의원도 막판에 당을 떠났다. 집권여당내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재산공개 파문의 뒤안길에는 민주당의 이동근의원이 잡지광고비리사건으로 구속돼 사정에 여야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김시장등이 물러나던 3월8일 바로 그날 새 정부는 세인의 의표를 찌르는 또 하나의 인사를 단행했다.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보안사령관이 전격 교체됐다.이들은 금전적 비리등에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날 하나회등을 중심으로 군에 깊이 뿌리를 드리웠던 정치군인들과 비리연루자에 대한 숙정의 시발이었다. 군에 대한 사정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5월 24일에는 이필섭합참의장·김진선2군사령관 안병호전수방사령관·박종규56사단장등을 각각 하나회와 12·12사태등과 관련해 강제전역시켰고 김철우해군참모총장도 인사비리로 물러나게 됐다.이로써 현역장성 19명이 옷을 벗었고 그 사이에 하나회와 12·12사태와 관련된 영관장교 19명이 전보 또는 전역조치됐다. 이에 앞서 4월 22일에는 김종호전해군참모총장이 재직시 인사비리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하나회」 장성 교체 이어 25일 무렵에는 정용후전공군참모총장과 조기엽전해병대사령관등이 인사비리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물론 정전공군참모총장의 수사는 차세대주력전투기 선정물의와 관련된 보복수사라는 일부 여론도 있었으나 이재돈해병소장등 해공군 장군과 영관급 장교들이 13명이 연달아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대로 묻혀버렸다. 사정의 거센 물결은 금융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3월19일 김준협신탁은행장이 대출비리와 관련해 돌연 사표를 내면서 금융계에 대한 사정바람을 예고했다. 김행장의 사임과 때를 같이 해 감사원이 13개 시중은행과 10개 지방은행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금융계비리 감사 그 뒤 강병건전강원은행장등 4명이 4월말 구속되고 비슷한 시기에 안영모동화은행장이 비자금 조성과 관련,구속됐다.안행장 사건은 곧 정치권으로 비화돼 김종인·이원조의원의 구속 및 의원직 사퇴로 연결돼 나갔다. 또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금융비리를 저지른 장기오은행감독원부원장등 3명이 감사원 감사에 걸려 해임됐으며 명의식축협회장등 6명이 공사발주 및 임원급 인사를 둘러싸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았다. 창군이래 가장 파격적인 인사를 겪은 군 못지 않게 사정 칼날 앞에 철퇴를 맞은 곳은 검찰. 검찰은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유로 현직 고검장이 구속되는 유례없는 「사변」을 치렀다. ○입시부정 큰 충격 구속된 이건개대전고검장이외에도 신건법무차관과 전재기법무연수원장이 옷을 벗었다. 엄삼탁병무청장도 슬롯머신관계로 옷을 벗었고 이에 대한 수사가 정·관·언론등으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앞으로 검은 돈과 연결된 부정부패의 인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새 정부의 비리 척결과정에서 가장 국민들을 실망시킨 곳은 단연 교육계가 으뜸이다. 교육계는 경원대·전문대 입시부정사건을 비롯,추계예대·호남대·동아대·경기대등에서 줄줄이 부정입학사례가 드러나고 개혁실세로 일컬어지던 집권당의 사무총장이 하루 아침에 실 끊어진 연처럼 날라갔으며 급기야는 교육부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던 사학에 대한 감사결과를 모두 내놓게 만들었다. 교육부는 또 김종억장학관과 김광옥장학사가 입시출제요원으로 들어가 답안지를 몰래 빼돌려 학부모에게 팔아온 것으로 드러나 엄청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거점타격식 진행” 교육계의 비리로 1백명에 육박하는 교수·교육부 직원·교직원·학부모·학생등이 형사처벌되는 진기록이 세워졌으며 정부수립후 한 부처에서 국장급 11명 가운데 10명이 자리바꿈을 하고 3분의 2에 달하는 서기관과 사무관이 한꺼번에 인사이동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이밖에 내무부·경찰등에서도 사정 한파가 매섭게 몰아쳐 뇌물을 받은 천기호치안감등 고위공직자들이 구속되거나 해임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정의 칼날이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는 장담키 어렵다. 얼마전 개혁실세인 모장관은 『사정은 거점타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타격을 받은 거점이 몇 개나 되는가』라고 되물어 아직 사정의 격랑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 교육사령관 박광영중장/56사단장엔 인성경소장 임명

    ◎육군,후속인사 단행 육군은 25일 합참의장 및 군사령관인사에 이은 후속인사로 대장으로 진급,2군사령관에 임명된 박세환교육사령관의 후임에 박광영중장(3군부사령관·육사19기)을,전역조치된 박종규 56사단장 후임에 인성경준장(1군관리처장·육사23기)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각각 임명했다. 육군은 또 병과장 인사를 실시,부관감에 김용수대령(부관차감·갑종186기),정훈감에 윤무장대령(정훈차장·갑종202기)을 준장으로 진급시켜 발령했다.
  • 군수뇌부 인사의 함축/문민정부의 「군체질개선」 마무리

    ◎육해공 균형발전·능역우선에 비중 「12·12사태」문책으로 단행된 「5·24」군 숙군인사로 김영삼문민정부의 군부가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본연의 임무수행을 추진할 자신감에 차있다. 지난 2월25일 문민정부출범이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친 군수뇌부 인사를 통해 보여준 다양한 메시지에서 문민정부의 군부는 과거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부분 충격요법을 동원,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문민정부의 군인사는 불예측성 때문에 군관련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한가지 원칙 즉 「거듭나는 군」「국민의 군대」를 재창출 하기 위한 동력원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물론 군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군인사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군인사는 「5·24」숙군인사를 마지막으로 대략적인 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5·24」군인사는 바로 앞서 4차례 군인사의 「종결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군인사는 ▲각 군의 균형발전과 미래지향적 군위상정립 ▲육사의 우위 또는 독점시대의 종막 ▲능력위주를 통한 조직의 활성화를 겨냥하고 있다.그전까지의 인사가 「하나회」「9·9인맥」등 소위 소수의 정치군인의 거세에 주안점을 둔 외과적 수술이었다면 이번 인사는 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체질개선과 세대교체를 위한 내과적인 대수술이었다 할수 있다. 이때문에 김영삼정부의 군부는 출범 3개월만에 내·외과적 수술을 모두 마치고 지휘부가 갈린 새로운 모습으로 왕성한 활동을 눈앞에 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할수 있다. 인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문민정부의 혁명적인 군부 틀짜기의 성패는 앞으로 구성원들의 개혁정신 강도에 달려있다고 할수 있다. 인적 청산만 하더라도 대장급의 경우 현재 92년6월에 보임된 조남풍육군1군사령관(육사18기)만 제외하고 8명이 모두 전역조치되거나 자리를 옮겼다.전역조치된 대장급은 이필섭합참의장(5·24)김진선2군사령관(〃) 김철우해군참모총장(〃) 김연각2군사령관(4·8)구창회3군사령관(〃) 김진영육군참모총장(3·8)등 6명이나 됐다. 특히 지난 3월8일 전격단행된 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기무사령관(현1군부사령관)의 경질은 군내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주었으며 문민정부 군부 틀짜기의 서곡이었다.이는 이어 지난달 2일의 수도권 핵심부대장인 안병호수방사령관(5·24예편)과 김형선특전사령관(현 참모차장)의 돌연경질로 이어진다.충격인사에 따른 군부의 동요움직임이 있자 「쐐기」를 박기 위해 6월 정기 장성인사를 두달 앞당겨 4월8일(대장급)과 4월15일(중장·소장급)두차례 군수뇌부인사가 실시됐다. 문민정부의 군부 골격마무리가 필요했던 김영삼정부로서는 「12·12사태 재조명」흐름을 활용,「12·12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연루된 이필섭합참의장등 장성급 4명을 문책인사를 함으로써 군인사 완결을 위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아직도 「5·18」관련자들의 문제가 미결상태로 남아있긴 하지만 군내 분위기는 「5·24」인사조치로 평상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공군참모총장의 합참의장기용,학군단(ROTC)출신의 대장진급과 2군사령관보임,갓 중장진급한 해군참모총장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군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군의 정치개입을 막는 차원에서 시작된 문민정부의 군부 재구성작업은 역설적으로 군의 정치참여배제를 선언한 「5·24」인사로 사실상 마감됐으며 각 군이 갖고 있던 불만요소를 제거한 인사로까지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 군위상 바로 세우다(사설)

    문민정부시대를 맞아 군이 국민으로 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민의 군」으로 거듭 나야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것은 국민적 여망인 동시에 시대적 요청이다. 군이 강력하고 건전한 군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면모를 일신시켜 국방의무라는 군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토록 해야 한다.또한 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상명하복의 지휘체계도 완벽하게 확립해야 한다.이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통한 「신한국」창조라는 대업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한 12·12사태 관련및 인사비리로 물의를 일으킨 장성들에 대해 전역등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은 군이 「국민의 군」으로 거듭 나게하기 위한 통치권차원의 결단이라 할 수 있다.뿐만아니라 그것은 비정상적인 한 시대를 정리함으로써 다시는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통수권자의 의지표현이라 할 것이다.우리 군이 과거 30여년 동안 정치군인들로 인해 저질러졌던 오욕의 역사를 딛고 새로 태어나는 전기를 맞이하게 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누차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 잡는다」고 강조해 왔다.그의 이같은 개혁의지는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한 변화와 개혁을 가져왔다.군에 대한 개혁조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과감하고 파격적인 인사는 군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하나회」군맥을 정리,군을 사조직으로 부터 보호하고 군의 지휘계통도 확립시켰다.새로 출범한 문민정부의 정통성 기반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결단이기에 국민들로 부터 신속하고도 용기있는 조치로 평가받을만하다. 특히 이번 군수뇌부의 전격적인 인사에서 육군출신 장성의 독무대였던 합참의장 자리에 공군참모총장을 임명하고 2군사령관에 ROTC출신을 임명한 것은 군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이러한 인사는 국군현대화를 위한 각군간의 균형적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또한 이는 김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사항이라는 점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면모를 새롭게하고 있다. 국민들은 결코 12·12사태가 역사의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믿지 않는다.그것은 10·26사태로 권력의 공백상태가 됐을 때 일부 정치군인들이 하극상을 저질러 가며 비정상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이다.국민들은 그같은 사건이 다시는 되풀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김대통령의 이번 군수뇌부 인사가 갖는 깊은 뜻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군은 이제 바로 서야 한다.
  • ROTC임관 10만명/4성장관 첫 배출

    ◎1기 군입문 30년만의 경사/복무중 위·영관급만 9천명/7기까지 36명이 장성 진급 학생군사훈련단(ROTC)출신의 박세환교육사령관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과 함께 2군사령관에 임명됨으로써 ROTC 4성장군의 시대가 열렸다.학생군사훈련단출신자들이 첫 소위로 임관된지 30년만의 일이다. 육사출신의 독주에 밀려 그동안 진급과 보직에서 소외됐던 ROTC출신들은 박대장이 야전군을 지휘하게 됨으로써 어깨를 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ROTC는 지난 60년 자유당정부때 성안돼 5·16직전인 61년4월 장면 민주당정부에 의해 창설됐다.당시 최초로 ROTC가 창설된 대학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등 서울의 주요대학과 부산대·경북대·전남대등 지방 국립대학을 포함,16개 종합대학교였다.현재는 전국 72개 대학에 ROTC가 설치돼 있다. ROTC출신으로 매년 소위로 임관되는 장교는 3천5백명 정도.소위 중위로 복무하는 상존인원은 8천여명이나 된다. 장기복무중인 영관급 장교는 1천5백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ROTC가 배출한 장교는 모두 10여만명.육사가 배출한 인원의 7배,갑종장교의 2배가 넘는다. ROTC는 지금까지 모두 32명의 장성을 배출했다.현재는 ROTC 7기까지 장성으로 진급한 상태. 1기의 경우 모두 10명의 장성이 나왔으나 현재 박2군사령관과 김태찬소장(학생중앙군사학교장)번웅식준장(공병학교장)이 남아있고 나머지 7명은 준장으로 예편했다. ROTC예비역장교들은 정계·관계·학계·재계·언론계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상장기업의 전체임원중 30%가 ROTC출신 예비역장교들이다. 최근 대졸 취업난속에서도 ROTC출신은 거의 1백%가 취업이 되고 있다.
  • 박세환 신임 2군사령관(얼굴)

    ◎리더십 탁월… 전형적 무인 1백80㎝의 훤칠한 키에 소박한 성품의 전형적 무인.ROTC후보생(학생군사 훈련단)시절에는 전국 ROTC 자치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탁월하다. 부인 유경자씨(50)와 육사4학년에 재학중인 장남등 2남1녀. ▲경북 영주(54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졸 ▲ROTC1기 ▲주월사령부 경비대장 ▲12사단장 ▲1군참모장 ▲8군단장 ▲교육사령관
  • 군복벗은 4인 「12·12」때 뭘했나

    ◎서울로 병력이동한 29연대장/이필섭/신군부 도운 수경사 상황실장/김진선/9사단 작전참모로 병력 인솔/안병호/특전사령관 체포 공수대대장/박종규 「12·12사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가 「5·24」인사조치로 전격 해임된 이필섭합참의장(육사16기) 김진선2군사령관(〃19기) 안병호2군부사령관(〃20기) 박종규56사단장(〃23기)등 4명의 당시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이들은 한마디로 「12·12사태」를 신군부의 승리로 만드는데 「혁혁한」공로를 세운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합참의장은 9사단 29연대장으로 있으면서 12일 밤 노태우9사단장의 서울진입명령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중앙청에 출동한 「9·9인맥」의 핵심인물이었다.당시 대령이던 이합참의장은 5·6공을 거치면서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사단장·군단장·육사교장·군사령관 등을 거쳐 합참의장까지 승승장구해왔다. 79년12월12일 자정쯤 서울 경복궁 30단장실에서 노사단장은 구창회참모장(전3군사령관·예편)에게 전화를 걸어 병력동원을 지시했고 구참모장은 29연대장인 이대령에게 출동을 지시했다.이대령은 1개연대 병력을 이끌고 구파발을 거쳐 중앙청에 진루했다.중앙청과 삼청동 총리공관을 점령함으로써 경복궁에 있던 「12·12주역」들의 방패막 역할을 했다. 29연대를 이대령과 함께 인솔해 들어온 사람이 바로 안2군부사령관이었다.9사단 작전참모였던 안중령은 전방배치 9사단 병력을 빼내 한동안 휴전선을 비우게 했다. 김진선2군사령관은 당시 중령으로 수경사 상황실장이었다.「12·12사태」를 끝까지 반대하며 진압군의 출동을 독려했던 장태완전수경사령관의 지시를 상황실에서 입수,신군부에 알려줬다.신군부는 김중령이 상황실에서 전해준 진압군 출동상황을 역이용,쿠데타군을 효과적으로 배치시켰다. 당시 중령으로 제3공수여단 15대대장였던 박종규56사단장은 신군부의 지시로 장전수경사령관과 함께 진압작전을 펴던 정병주특전사령관(사망)이 있던 강동구 거여동 특전사령부로 들어가 비상사태를 맞아 부대를 지휘하던 정전사령관을 체포했다.조금전까지도 상관으로 모시던 정전사령관을 무력으로 굴복시킨 「하극상」의 대표적인 상황을 연출했다.박중령은 이 과정에서 정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낭소령을 사살했다. 이합참의장등 이들 4인의 당시 행적을 이제와서 문제삼는 것은 다시는 군이 정치적인 집단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군내에 주입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 군관련 역사적사건「정치적매듭」/5·24전격 군수뇌개편 의미와 전망

    ◎「쿠데타적 12·12」 새 정부 평가뒤 첫 조치/ROTC 요직 기요에 인사 새 방향 제시 24일의 전격적인 군수뇌 개편은 12·12등 군이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정치적 종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후임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이 임명된 것과,새 해군참모총장에 중장 4명을 제치고 소장이 중장승진과 함께 임명된 파격성을 들어야 할것 같다.여기에 ROTC출신의 박세환교육사령관이 최초로 대장 승진과 함께 2군사령관으로 보임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인사를 통해 새정부의 군인사는 육군·육사우월체제를 지양하고 능력과 균형을 새기준으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날 인사에서 12·12 관련자인 이필섭합참의장(당시 9사단 29연대장)·김진선 2군 사령관(〃수경사 상황실장)·안병호 2군부사령관(〃9사단 작전참모)박종규 56사단장(〃특전사대대장)등 모두 4명의 장성이 예편조치됐다. 12·12가 청와대에 의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 이후 현역 관련자에 대한 후속조치의 폭이 어느 정도며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관심이 모아져 왔었다.수뇌부 개편내용을 발표한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자기직무의 범위와 상명하복을 벗어난 지나친 행동을 했던 사람」이 조치의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인사의 경우 상명하복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문제삼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말해 이번 조치가 법률적 측면보다는 군의 어두운 시대를 정리하고 군관련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상당한 정치적 선택이 포함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대변인은 5·18과 관련해서는 『군의 생명인 통수권과 지휘절차에 따라 행동한 지휘관은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5·18의 경우 12·12와 달리 적법한 지휘절차를 따른 군사행동이었기 때문에 문책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당시 광주진압에 참여했던 김동진육참총장은 이같은 원칙에 따라 논의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조치로 군관련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문민정부의 재평가와 이에 필요한 군내부 후속조치는 모두 매듭됐다. 군사상 처음으로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이 보임된 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사항인 군의 균형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설명되고 있다.공군출신을 임명함으로서 공군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새로운 군의 전략개념에 능동적으로 적응토록 하라는 메시지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김홍렬해군참모총장의 발탁은 공군출신 합참의장 임명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선임인 중장 4명을 제치고 소장이 총장에 발탁됨으로서 철저한 연공서열을 기준으로 했던 군인사가 앞으로는 능력본위로 개편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다.군내부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중장 4명이 모두 총장으로 임명되기에는 약점을 지녀 이같은 발탁인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해군의 대폭적인 물갈이 후속인사가 불가피한 부분이다. 이대변인은 박세환중장의 대장승진및 2군사령관 임명과 관련,「ROTC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투신한 사람들」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인사는 문민정부가 지향하는 군인사정책의 일면을 보여주는 또다른 특징이 될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ROTC출신들은 육사나 다른 군사전문학교 출신들보다 문민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여기다 육사출신이 대부분의 요직을 맡아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박중장의 요직기용은 군의 균형발전이란 큰원칙이 각군 사이만이 아니라 각군 내부에서도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잡을 것임을 알수 있다.특히 육사우월체제의 부인은 문민정부의 군통수체계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개선될 것인가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 예상밖 신속숙군에 거듭 충격/「5·24 군수뇌 경질」 이모저모

    ◎김 2군사령관,취임 46일만의 퇴진/공군출신 의장에 「군균형잡기」 해석 「12·12사태」에 주도적 참여 또는 관련 책임을 물어 이필섭합참의장과 김진선2군사령관·안병호2군부사령관·박종규56사단장등 4명을 전격경질한 「5·24조치」와 뒤이은 해·공군 참모총장후속인사에 대해 군내에서는 「정치적 숙군」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군은 청와대의 12·12사태 성격규정이후 문책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상과 시기에 대해서는 점치지 못해 온 터라 이번 인사로 또 한차례의 충격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이필섭합참의장등 12·12사태 관련장성 4명을 전격 경질시키는 발표가 나오자 국방부·합참·육군등 군관계자들은 충격속에 인사의 의미를 분석하느라 분주. 이합참의장의 경우 임기가 7개월 남아 문민정부출범이후 계속 경질설이 나왔으나 뜻하지 않게 「12·12사태」와 관련,퇴진해 불명예를 안든 셈.김진선 2군사령관은 지난 4월8일 대장으로 승진,2군사령관이 된지 불과 한달 보름만에 경질됨으로써 창군사상 최단명 군사령관의 기록을 세웠다. ○…정부가 12·12사태 관련 현역장성들에 대한 전역 인사조치를 결정한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13일 담화를 통해 12·12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명하면서부터 였으며 이후 대상자선정이 비밀리에 추진돼 왔다는 후문. 민주당등 야당의 관련자공직박탈 주장에도 모른채하며 대상자를 비밀리에 선정해 왔다는 것. 국방부는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동안 12·12사태에 참여했던 장성중 현역으로 남아있는 장성의 명단을 파악,이들의 참여정도를 조사해왔다는 게 정설.육군의 작전일지분석과 기무사등 정보수사관련부대의 조사등을 기초로 처음엔 당시 9사단 29연대장으로 노태우사단장의 명령을 받고 중앙청으로 출동한 이필섭합참의장(육사16기)·수경사 상황실장이었던 김진선 2군사령관(◎ 19기)9사단 작전참모로 활약한 안병호2군부사령관(◎ 20기)등 3명선을 전역시키기로 결정. 이 과정에서 이들이 모두 9사단 인맥이어서 자칫 노전대통령의 인맥거세로 비쳐지지 않을 까 고심하다 박종규사단장을 추가시켰다고. ○…이필섭합참의장 후임으로 이양호공군총장이 임명된 것은 육군우월체제를 벗어나려는 신호탄으로서 앞으로 군구조개편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기도.합참의장이 합참창설 39년사상 처음으로 공군에서 발탁된 것을 두고 합참관계자들은 3군의 균형발전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육군의 「힘빼기 전략」으로도 보고있어 주목. 공군에서는 과거에 김정렬·주영복총장이 오랫동안 국방장관을 역임하면서 군사외교와 군사력 증강에 큰 역할을 한점을 들어 공군력 우선의 합참전략이 수립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 ○…김철우해군참모총장경질은 임기가 3개월이 남아있지만 합참의장·공군참모총장의 경질에 맞춰 군인사비리 물의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김해군총장 자신도 군인사비리 파문이 진정된 최근 관계 요로를 통해 군지휘권 확립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했다는 후문. ○…한꺼번에 군사령관과 부사령관이 경질된 2군에서는 지난 4월8일 김진선사령관을 임명할 때와 그 이후에 행해진 중장급 후속인사시 안병호부사령관을임명할 때 「심사숙고」하지 못한 군 수뇌부에 화살. ○…해군과 공군에서는 신임 참모총장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눈치.가뜩이나 군인사파문으로 후유증이 컸던 이들 군에서는 「악몽」에서 벗어나 총장을 중심으로 동요없이 일사분란한 체제를 갖추는 계기로 삼자는 다짐들이 무성. ○…신임 해군참모총장에 김홍렬 합참전력평가부장(소장)을 파격 기용한 것은 김제독이 진급은 동기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상하간에 신망이 높고 「재물욕」이 없어 군인사비리파문으로 저하된 해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최적격이라는 군내 평판이 크게 좌우했다고. ◎노·전 전 대통령측 반응/구체언급 자제… 심기 불편한듯/노/“9·9인맥 대상” 6공겨냥 시각/전 연희동의 두 전직대통령들은 12·12사태 관련 장성들의 퇴역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무반응」을 나타냈으나 내심은 다소 다른 듯했다.노태우전대통령측이 불편한 심기를 깔고 있는 분위기인 반면 전두환전대통령측은 『조치된 군장성들은 노전대통령 사람들』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노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번 군인사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대통령의 고유권한행사에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 그러나 다른 측근은 『12·12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새로 하는 것도 별로 기분좋을리 없는데 밑에서 충직하게 일하던 사람까지 피해를 당하니 심기가 좋지않을 것같다.지금은 드러내놓기 어려워 가만히 지내지만 적절한 시점에 입장표명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군통수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고 「무반응」방침을 천명. 이 측근은 『군인사는 제3자가 이렇고 저렇고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따라서 우리가 기분 나쁘고 좋고 할 것도 없다』고 피력. 이 측근은 그러나 『이번에 퇴역조치된 장성들은 대체로 12·12 당시 노전대통령이 사단장인 9사단에 근무했던 인사들』이라며 『소위 9·9인맥인 것같다』고 말해 이번 군인사가 전전대통령보다 노전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쪽으로 이해하려는 자세. 전전대통령도 이날 측근으로부터 군인사내용을 보고받았으나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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