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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국당 「TK지역 공천」 어찌되나

    ◎대구/전 성환의원 등 7명 재공천 확실/대구동을­강신성일/수성갑­이민헌시 유력/포항북­이병석/상주­이상배씨 물망/신설 고령·성주 주진우­최도열씨 경합 신한국당의 대구·경북(TK)지역 공천작업은 한마디로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지역은 개혁성·참신성등이 고려되고 있지만 이들 TK지역은 사정이 다르다.지명도가 높은 중량급인사를 대거 동원하는 한편 현저하게 당선가능성이 떨어진 인사와 과거비리 등의 연루인사는 현역의원이라도 과감하게 배제한다는 원칙이다. 이번 정권에서 TK지역은 신한국당의 인기가 계속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이 오히려 무소속의 난립을 부추기고,「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지역구가 13개인 대구지역은 중량급 영입의 대안이 없는 지역은 거의 지명도가 높은 현역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의 재공천이 굳어졌다.유성환(중),강재섭(서을),김해석(남),김용태(북을),윤영탁(수성을),김한규(달서갑),김석원전쌍룡그룹회장(달성)의 공천이 확실하다.다만 최재욱의원(달서을)이 지역구사정을 들어 탈당의사를 표명,당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대구의 원외지역은 동을에는 영화배우 강신성일씨(종전예명 신성일),수성갑에는 전국구인 이민헌의원의 공천이 유력하며 북갑에는 사공일전재무장관의 영입이 거론된다.정호용의원이 탈당한 서갑과 신설구인 동갑은 마땅한 인사가 없어 외부인사 영입에 고심중이다.당에서는 한완상전부총리의 대구지역구 출마도 거론된다. 대구지역이 현상유지쪽이라면 지역구가 21개인 경북지역은 상대적으로 물갈이 폭이 커질 전망이다.일단 12·12관련 인사인 허화평(포항북),전두환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상주),노태우씨 비자금에 연루된 금진호의원(영주)의 공천배제는 확실하다.포항북은 이병석청와대비서관,영주는 박세환전2군사령관,상주는 이상배전서울시장의 공천이 유력하다. 신한국당은 이외에도 현역의원 가운데 지역구 관리가 부실하거나 당선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 B·K·P·L·H·L·J의원등의 교체를 불가피하게 본다.원외지구당 중 L·K씨등의 교체를 검토중이다. 현재 공천이 확실한 지역은 구미을의 김윤환대표를 비롯해 이상득(포항남),박정수(김천),김길홍(안동갑),김찬우(청송 영덕),이영창의원(경산 청도)정도다. 이밖의 지역에서 황윤기의원­정종복검사(경주갑),임진출위원장­백상승전서울부시장(경주을),유돈우의원­오경의마사회장(안동을),박세직의원­박재홍전국구의원(구미갑),장영철의원­이수담전국구의원(군위 칠곡),김동권의원­김화남전경찰청장(의성),강신조의원­윤영호전육군소장­박영무아주대교수(영양 봉화),번형식의원­황병태전주중대사(예천),이승무의원­신영국전의원(문경)이,그리고 신설지역인 고령·성주는 주진우사조그룹회장과 최도렬지역발전연구소장이 각각 경합중이다.
  • 신한국당 「신개혁 세력」 대거 발탁 방침 배경

    ◎총선후보 주개혁·종보수 두 축으로/30∼40대 신진인사들 수도권 전면 배치/이회창·이홍구·박찬종 「빅3」 영입 박차 신한국당은 4월 총선에서 「신개혁 세력」으로 승부를 건다. 새로 물갈이될 총선군단은 「주개혁」「종보수」를 두 축으로 한다.30∼40대 신진그룹,학자·변호사·기업간부등 전문가집단,야권 및 재야운동가들이 전면 포진된다. 신개혁그룹의 최선봉은 30∼40대 신진인사들이다.주로 승부의 최대 관건인 수도권에 전면 배치된다.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심재철 MBC기자(39)와 여성 율사인 김영선변호사(36)는 부대변인을 맡아 한몫하게 된다.심씨는 경기 안양동안갑에 내정됐으며 김씨는 서울지역에 출마가 예상된다. 또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이성헌청와대비서관(38)은 서대문갑,이신범부대변인(45)은 강서을에 내정됐다.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 고문으로 최형우의원의 비서실장인 박홍석씨(45)는 관악을에,당 부설 사회개발연구소의 박종선실장(41)은 노원 을에 출마한다. 이미 지구당을 맡은 신진들 가운데 서울에선 정태윤전 경실련정책실장(42·강북갑),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영춘씨(35·광진을)가 표밭을 다지고 있다.경기지역은 이사철변호사(44·경기 부천을)와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44·부천 소사),이원복(39·인천 남동을),홍문종씨(41·경기 의정부)가 뛰고 있다. 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출신으로는 안상수변호사가 영입이 확정적으로 서울 강남지역에 출마한다.최연희춘천지검 차장검사는 강원 동해에 내정됐으며 박용일변호사는 역시 강원지역에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국회 법사위 심의위원을 지낸 정종복검사는 경주공천이 검토된다. 인하대 교수출신의 이영희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서울지역에,이달곤서울대교수는 경남 창원갑에 영입을 검토중이다.한샘학원 이사장인 서한샘씨는 인천 연수에 내정됐다. 기업 간부등 테크노크라트 출신으로는 주진우사조그룹회장이 경북 성주·고령에 공천될 전망이다.「탱크주의」로 유명한 배순훈대우자동차회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도권 지역 영입설이 나돌고 있으며 도재영기아서비스사장은 경북 군위·칠곡에 거론된다. 이신행기산사장은 서울 구로을 공천이 점쳐지며 문병대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단지」인 수원 팔달,이윤호LG경제연구원대표는 대전 동을에 각각 거명된다. 재야 출신가운데는 이우재 전 민중당공동대표(금천구),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씨(경기 부천소사)가 이미 지역구를 다지고 있다.이태복노동자신문발행인은 수도권 공천이 확실시되며,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저자인 이철용 전 의원은 강북을에 내정됐다. 「보수그룹」을 상징할 구 여권 인사 중에서는 이회창·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박찬종의원 등 「빅3」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검증받은 공직자 출신으로 이상희 전 과기처장관이 부산진갑에,김용래 전 서울시장과 김한곤 전 충남지사는 충청지역에 거론되고 있다.또 군출신으로 박세환 전 2군사령관이 경북 영주에 영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유권자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TV앵커나 방송인,영화배우들의 대거 진입도 이뤄지고 있다.맹형규SBS,이윤성KBS 전 앵커는 서울 송파을과 인천 남동갑 지구당을 이미 맡았다.탤런트 이덕화씨는 경기 광명갑을 선점했으며 서유석씨는 경기 고양을,김한길씨는 경기 분당에 영입을 추진중이다.
  • 야3당 「총선 물갈이」 본격화/국민회의·민주·자민련 움직임

    ◎국민회의­“지역당 벗자” 비호남 젊은층 대거 공천/민주당­“수도권서 돌풍을” 외부인사 영입 나서/자민련­“보수세력 결집” 신한국 탈당의원 주시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 등 야권 3당은 나름의 전략아래 본격적인 총선준비에 돌입했다.내년 초에는 3당 모두 「선거대책반」을 설치,공식 선거체제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국민회의는 이미 87개 지구당 조직책 선정을 마쳤다.내년 초에는 서울시 부시장에서 물러난 이해찬전의원을 기획팀장으로 공식 선거체제를 출범시킬 계획이다.반발을 고려,호남지역 현역의원들에 대해서는 총선이 임박한 내년 2월 중에 집중적으로 물갈이를 할 예정이다.물갈이 폭은 40∼50% 수준일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회의는 수도권이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고 공천을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시켜 왔다.성북갑·강동갑 등 3군데 영입지역을 빼놓으면 서울은 90% 가까이 조직책 선정을 마친 상태다.인천은 2군데,경기는 8군데가 비어있다.공천에서 드러난 수도권 전략은 「탈 지역당」이다.조직책 선정을 비호남·여성·젊은 중산층표를 겨냥한 인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추미애 부대변인(광진을)·한기찬씨(양천갑)등 젊은 변호사와 설훈(도봉을),김진명(송파을),박우섭(인천 남구갑),이준형씨(안양 만안)등 비호남지역 젊은 인사들을 대거 공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박상규 중소기업회장의 부총재 영입도 중산층과 서민층을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으로 여겨진다. ○…민주당은 내년 1월 말까지 조직책 인선을 끝낸다는 계획아래 외부인사 영입작업에 본격 착수했다.특히 3김의 탄탄한 지지표를 둔 다른 3당에 비해 지역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수도권 지역에 쏟는 당력은 다른 당을 훨씬 능가한다.영입만 순조로울 경우,이부영·홍성우 최고위원과 이철총무·박계동·이규택 의원 등 지명도가 높은 현역의원들과 함께 「깨끗한 지대(Clean­belt)」를 형성,수도권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안팎에서 이회창 전총리를 비롯,장태완 재향군인회장과 홍준표·안상수 변호사 등의 영입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현재 이기택 상임고문과 김원기·장을병 공동대표가 직접 영입일선에서 뛰고있다.이고문과 두 대표는 경북·전북·서울에서 각각 출마,삼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민주당」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복안이다.특히 이고문은 이판석 전경북지사·백상승 전서울시부시장 등과 물밑접촉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진다.이런 가운데 장기욱·박석무·홍기훈·양문희의원의 수도권 공천경쟁이 흘러나온다. ○…자민련은 지역으로는 경북·대구,정서적으로는 보수안정 희구층의 세결집이 주요 목표다.이 때문에 조직책 선정작업이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여, 심장부인 충청권과 대구에 집중돼 있다.대전 3곳,충청권 1곳,대구 3곳이 비었으나 신청자가 너무 많아 여지껏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앞으로 이탈가능성이 높은 신한국당 의원들의 향배를 주시하고 있다. 현재 영입대상 1호는 노재봉 전총리이다.김종필 총재와 박준규 최고고문,최각규 강원지사가 발벗고 나선 상태다.
  • 신군부 내란혐의 입증에 초점/5·18사건 검찰수사 중간 점검

    ◎당시 군수뇌부 등 24명 소환조사/비상계엄 전국확대 경위 등 추궁 지난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서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일부터 25일까지 매일 2∼5명씩 이 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및 참고인등 모두 24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 가운데 15명정도는 5·18사건 피고소·고발인 58명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또 이에 앞서 피고소·고발인 10여명은 12·12사건 조사 때 이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군사반란죄로 기소하면서 5·18수사를 새해 1월중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비추어보면 수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방향과 내용을 종합해보면 검찰의 5·18수사는 당초 밝힌대로 신군부세력의 내란혐의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검찰의 주요 소환조사자는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광주사태 진압 관련자라는 두 부류로 크게 나눠져있다. 검찰은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관련해서는 비상계엄확대를 처음 결의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시국현안등 정치성 사안을 논의했고 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등 국정에 직접 관여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검찰은 이 회의에 참석한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윤자중 공군참모총장,김종곤 해군참모총장등 군 수뇌부가 신군부측이 제안한 비상계엄확대에 동의한 경위를 집중조사했다. 또 이한빈 부총리등 당시의 내각 관계자들을 소환한 것은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가 군의 결의뒤 반나절만에 국무회의에서 전격처리된 배경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군이 국정의 책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입증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신군부의 정권 장악의도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소환해 당시 치안유지상태가 군의 전격개입이 필요한 정도로 불안했는 지를 조사한 것과 초법적으로 국정을 사실상 장악했던 국보위 참가인사들을 대거 소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비상계엄확대 결정이후 군의 국회의사당 봉쇄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사가 진행됐다.신군부가 행정부 뿐 아니라 국가의 중추기구인 입법부에 대해서도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파악해 총체적인 내란음모를 규명키 위해서였다. 군의 광주 진압작전에 대한 조사는 광주현지 조사와 함께 이번주부터 본격 조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특히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하고 있었는 지와 발포 경위가 주요한 조사사항이다. 당시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던 진종채 2군사령관,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소준렬 전교사 사령관등은 이미 조사를 받았고 정호용 특전사령관등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5·16과 제4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9)

    ◎무력으로 장기정권 인수… 합법 권력장악 추진/민정이양선언 파기… 유신까지 18년 집권 1961년 5월16일 상오 3시,한강 쪽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 그 순간을 기다린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나른한 봄밤을 깊은 잠으로 보내고 깨어났을 때 새벽에 바뀐 불행한 역사 현실을 알아차렸다.이날 상오 5시 KBS 첫 방송이 정규프로를 접어둔채 성공한 쿠데타 소식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데타 주역은 이날부터 18년을 독재권력 정상에 군림한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었다.그리고 해병대 사령관 김동하 소장과 김종필 중령등이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군사쿠데타에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이 들러리를 섰다.장도영은 쿠데타가 성공한 첫 날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국민의 기본 권리를 묶어버린 혁명공약과 각종 포고문이 그의 이름으로 시간시간 전파를 탔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유엔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은 쿠데타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진압의사를 밝혔다.그러나 윤보선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매그루더의 쿠데타 저지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미 국무성도 군사혁명위원회 지도자들의 반공친미성향을 긍정적으로 주목했다.이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미국의 이익과 엇갈리지 않는 중요한 요소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리 박탈 군사혁명위는 쿠데타 첫날 포고령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이어 다음날은 장면정권을 정식 인수했다고 밝혔다.군사혁명위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최고회의는 6월6일 공포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라 최고권력기구로 등장했다.이와는 별도로 5월20일 장도영을 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이 출범한데 이어 부정축재처리위원회와 혁명재판소,혁명검찰부가 설치되었다. 군사쿠데타는 군인들이 장악한 권력 그 자체보다 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그 행동은 목적을 달성한 이후 병영으로 돌아가는 중재자형과 장기간 공공연히 정치에 간여하는 감독자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당시 한국의 군부도 초기에는 혁명과업을 2년내에 완수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주변의 소수 장교들은 군정하에서 장기집권 계획을 세웠다.그 계획의 하나가 최고회의 직속의 중앙정보부(중정) 창설로 나타났다.미국의 CIA를 표방한 것이라고 하나 성격이 전혀 달랐던 중정은 창설 초기부터 무소불위의 감독자 증후군을 다양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1961년 6월에 창설한 중정은 막강한 권부의 핵으로 민주공화당(민주공화당·공화당) 창당을 위한 사전조직을 주도하는등 장기집권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공화당 창당은 19 61년 8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2년내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한 이후 비밀스럽게 추진되었다.그 정당의 골격은 군사혁명 정부 2년간 통치에 이어 계속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패권정당이었다.그러니까 군부는 혁명과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군인이 예편한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군부는 이를 끝내 실현해냈다.군사혁명 포고령 제4호로이른바 구시대 정치인들의 발목을 모두 잡아두었던 군사정권은 그것도 공화당 사전 조직으로 먼저 뛰었다. 군사정부는 1962년 11월 민정이양을 위한 헌법개정안을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의결하고 이를 12월17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했다.12월12일 국민투표를 거친 개헌안을 정식 가결한 최고회의는 1963년 1월1일 포고령으로 묶었던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없애버렸다.1년7개월만에 정치활동이 재개된 것이다.그러나 오랫동안 휴면기를 살았던 기성 정치인들은 뒤늦게 스타트라인에 서야하는 불리한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공화당은 63년 2월26일 김종필이 사전조직한 재건동지회를 기반으로 창당되었다. 그러면 군사정권의 정상 박정희 장군은 약속대로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가.물론 아니다.그는 1963년 2월18일 민정불참을 선언하고 선서식을 일단 갖기는 했다.그러나 1주일뒤 원주발언에서 자신의 민정불참 선서에 대해 부정시각을 드러냈다.이어 3월16일 현시국은 과도적 군정이 필요하기때문에 4년간 군정연장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그의 폭탄선언이 나왔다.그는 이 선언을 자신의 민정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는 계기로 삼아 4·8성명을 내놓았다. ○헌정 짓밟은 반역 기록 그해 5월27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박정희 장군은 8월13일 지포리에서 군복을 벗는 전역식을 가졌다.대장 계급장을 단 전역식에서 「나 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남겼지만 그 아류의 정치군인들도 뒷날 네 개의 별을 달고 나서 정권을 잡는 전철을 밟았다.그래서 5·16군사쿠데타 연결선상의 군사정권이 장장 30여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거니와 헌정질서를 뒤흔든 반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떻든 박정희 장군은 1963년 10월15일 대통령선거에서 범 재야세력의 민정당 후보 윤보선을 겨우 15만표차로 누르고 신승했다.윤보선과 또 한차례 격돌을 벌인 대통령 박정희 장군은 1969년 9월14일 국회 변칙개헌으로 3선을 향해 줄달음쳤다.그리고 한 차례 더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서 1972년 10월17일 영구집권으로 가는 유신을 선포했다.박정희 정권의 제4공화국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상용 문화부부차장 ▲김성호 문화부부기자 ▲김영중 조사부 기자 ◎「5·16성명」 미국무성 보고서/주한 미대표부 이한림 장군 충고로 쿠데타 반대/본국과 협의없어 “합법정부 지지” 표명/워싱턴 명령에 「간섭」 배제… 경비만 강화 한국에서 박정희 소장이 이끈 5·16 군사쿠데타와 당시 미국의 관계를 확인하는 2건의 새로운 문서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에 의해 미 워싱턴 케네디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이들 문서는 1961년 5월16일 쿠데타 첫날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미국대표부 성명의 배경」과 11월28일 박정희 장군이 맥아더 원수에게 보낸 친서 등으로 되어있다.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 미국대표부 성명서의 배경」은 5·16당일 M 그린 주한미대사 대리와 C B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우선 거론했다.이들의 쿠데타 반대성명은 국무성과 사전협의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쿠데타 반대성명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그 배경은 매그루더의 해명을 인용한 것으로,쿠데타 반대성명은 한반도 군사분계선 방위담당 지휘관인 한국군 1군사령관 이한림의 충고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주한미대리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의 성명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직접 반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다만 「한국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 합법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담았을 뿐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되어있다.그 이후 매그루더는 명령에 따라 군사쿠데타에 간섭하지 않고 경비강화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서에 기록했다. 이밖에 또 다른 문서 박정희 장군의 친서에는 맥아더 원수에게 전하는 감사의 뜻을 담았다.1961년 11월14일∼25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최고회의 의장자격으로 보낸 것이다.뉴프론티어의 기수를 자처한 케네디 대통령과의 회담 등을 통해 한국 군사정부가 지지를 받기까지 미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백두산 천지/북,「종합탐험대」 탐사결과 공개

    ◎바닥곤충·조류 등 희귀생물 35종 서식/물맑아 용존산소 풍부… 겨울철 온천물로 성장/10년전 풀어놓은 산천어 대량 번식 해발 2천m가 넘는 고지인 백두산 천지에도 바닥곤충 6종과 조류 29종등 휘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최근 통일원이 공개한 북한의 「천지종합탐험대」의 탐사결과이다.천지에는 이밖에도 물속식물 38종과 북한이 10년전 풀어놓은 산천어들이 대량 번식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북한 중앙방송은 이같은 탐사결과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천지에 서식하고 있는 산천어들을 김정일이 「천지 산천어」로 명명했다고 선전했다.이 방송에 따르면 이들 산천어들은 길이가 최대 70㎝에서 보통 40∼50㎝로 일반 하천의 산천어보다 크기가 3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천지에 방류한 산천어들이 기대 이상의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 대해 북한측은 『물이 맑아 햇볕 투과율이 높아 용존산소가 풍부한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이들 산천어들은 번식기인 9월에 4천∼6천개의 알집을 10m 깊이의 천지 바닥에서부화한다는 소식이다. 더욱이 온천물로 인해 산천어들이 좋아하는 8∼12℃의 수온을 유지할 수 있어 금상첨화라는 얘기다.둘레 14.4㎞,깊이 3백84m인 천지는 19억5천5백만㎥나 되는 엄청난 저수량을 자랑한다. 이 저수량중의 30%는 바닥샘물과 천지 밑바닥 2군데서 솟는 온천물이라는 지적이다.나머지 70%는 눈녹은 물등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물이다.알에서 갓 부화된 어린 산천어들은 수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에도 온천물로 인해 성장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게 탐사단의 분석이다. 북한당국은 그러나 이번 탐사결과 발표에서 한때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괴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중국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연변방송이 천지에 공룡을 닮은 괴물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수차례 보도한 이후 지난해 외신들이 「백두산판 네스」의 존재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한편 천지 물속 뿐만 아니라 천지 주변 지표에도 1백91종의 곤충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이들 곤충들은 백두산의 강한 바람에 의해 천지 표면으로 실려와 산천어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다는 분석이다.
  • 역사청산과 나라 세우기/김석준 이대교수·정치행정학(서울광장)

    전두환·노태우씨의 구속기소로 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작업은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지난 한세기동안 오욕의 역사는 일제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일제잔제의 청산이 없는 위에 분단국가수립과 동족상쟁,5·16,10·17,12·12,5·17 등 일련의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이처럼 외세와 정치군인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온 국민들의 여망을 바탕으로 문민정부는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해왔다.하나회 등 군사조직해체와 안가철거,안기부등 국가정보기관의 문민화,공직자 재산공개와 율곡비리등 부정부패 척결,전 조선총독부건물 철거,관권·금권·행정·흑색선거추방,지방자치 전면 실시,정치관계법·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등 제도개혁의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이러한 정지작업위에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사건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는 김영삼정부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한국병 치유」와 「신한국 창조」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청산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권위주의 질서가 형성되고 기득권세력이 지배세력으로 형성되지 않고는 아무리 잘못된 역사라도 유지될 수 없고 그것이 불법적·폭력적일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물리적·인적 통치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들이 시민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특히 우리처럼 여러차례의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던 권위주의체제는 그만큼 청산하기가 쉽지 않고 청산과정에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일부 정치·경제의 혼란과 불안은 너무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다. 역사청산의 핵심적인 과제는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청산작업이다.일제식민통치나 군사쿠데타의 핵심세력들이 정치·경제·사회 등 역사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물러나는 인적 청산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이다.전·노씨의 구속기소뿐만이 아니라 5·16이후 12·12와 5·17군사쿠데타에 참여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청산이 엄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물적·제도적 청산작업이다.정경유착의 구조적·제도적 관계를 와해시키고 통치자의 도구로 전락한 법과 검찰·경찰등 국가기구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다.야당과 사회일부에서 특별검사제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그리고 문화적 청산은 모든 국민의 의식·정신및 문화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가장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조선총독부 건물과 쇠막대기 철거,일제지명 개칭 등이 일제 청산이라면 정치군인들이 심어온 잘못된 「군사문화」의 청산은 쿠데타역사의 문화청산문제이다. 이처럼 역사청산은 인적·물적·제도적·문화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각각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때 역사 바로세우기와 나라세우기가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과 각계가 나서야 한다.먼저 구세대의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새롭고 능력있는 정치집단이 시민과 함께 정치를 주도하는 세대교체가 나라세우기의 우선 과제이다.여야를 불문하고 과거 잘못된 역사의 직·간접적인 책임을 정치지도자들이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지역주의를더이상 정권장악의 볼모로 악용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새로 출범한 이수성내각과 김광일 청와대팀은 역사청산과 나라세우기라는 중요한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96년 총선과 97년 대선이라는 목전의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적 관점에서 나라 바로세우기작업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구질서와 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국민과 역사를 위한 국가운영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과거청산의 소극적인 기능을 넘어 세계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창조」라는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무기력하기만 했던 여당도 이제 신한국당으로 거듭나서 나라세우기의 주체로 서야 한다.당내의 인적 청산과 신진대사를 통해 현시국의 주체적·능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나아가 정부여당은 협력하여 역사청산과정에서 침체한 경제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생활개혁작업을 본격적으로 과감히 추진하면서 역사 바로세우기작업을 실천해야 하겠다. 야당과 사회단체도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적인 과업에 주체로 나서야한다.정략적·수단적인 문제보다도 역사적·목적가치문제를 우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국민과 언론도 보다 이성적·역사적 판단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가식과 위선,잘못된 의리나 단식행위와 같은 감성에의 호소,궤변과 사술을 통한 보혁갈등구도로의 왜곡,개혁작업의 폄하와 당리당략적인 비판,막무가내적인 증언거부와 진실호도,일부언론의 재벌기업 비호 등 역사 바로세우기의 장애물은 도처에 있다. 마지막으로 불편을 끼치는 입원환자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전두환씨는 단식을 중단하고 떳떳이 병원이 아닌 교도소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최규하·노태우씨는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 진실이 폭력보다 강하고 영원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역사를 세워야 한다.국민이 스스로 청치와 선거에 참여하고 감시·감독할 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실현하는 나라세우기작업에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될때 정치인,경제인,언론인,검찰등 국가기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광주발포」·계엄확대 경위 조사/검찰 「5·18수사」

    ◎진종채 전2군사령관 등 5명 소환/미체류 박희도·장기오씨 그;국 종용/전씨 비자금 거액 분산 확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2일 진종채 전2군사령관,김종환 전내무장관,우병규 전국보위 법사위원,길기상 전국회사무처장 등 5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진씨로부터 80년 5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의한 배경과 광주 진압작전의 지휘계통 및 발포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김전내무장관에게서는 비상계엄확대 때의 경찰의 치안질서장악상태,우씨에게는 국보위활동상황과 내용,길씨에게는 계엄확대 때 군의 국회봉쇄상태에 대해 각각 진술을 받았다. 검찰은 현재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박희도 전1공수여단장과 장기오 전5공수여단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 여권재발금금지조치를 외무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또 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당시 부총리이던 이한빈씨등 거물급 5명을 23일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와 관련,지난 93년실명제실시를 전후에 조성된 전씨 친인척및 측근의 수천억대 금융자산 및 부동산 자금출처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실명제직전 친인척 및 측근 명의로 거액의 비자금을 분산시켰다는 단서를 확보하고 조만간 친인척 등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21일 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씨에게 현재까지 조사된 3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및 친인척 명의로 거액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조성했는지를 추궁했으나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 “정총장 연행”전·노씨 회동서 결정/검찰 공소장에 나타난 새사실

    ◎장성 등 10여명 30경비단 제지없이 집결/신군부,뛰어난 통신·지휘설비 사전 장악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가 21일 12·12군사반란에 대해 새로이 밝힌 주요 내용은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정승화 총장의 강제연행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12·12 당일 상오 국군보안사령관실에서 『실탄과 총기를 준비하여 강제적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전씨의 진술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전씨가 정총장 연행,조사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얻기 위해 출발하기 전에 이미 『재가가 없더라도 하오 7시 연행작전을 개시하라』고 지시한 것도 밝혀내 군 지휘계통을 무시한 반란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두번째로 검찰은 그동안 항간에서 떠돌던 반란모의의 시발점이 전·노 두 전직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사실을 확인했다. 12·12사건 5일전인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이 전보안사령관의 초청으로 보안사를 방문했으며 이 자리에서 10·26사건수사 브리핑을 받은 뒤 12월12일 정총장을 연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결정 이후 정총장 연행 지지를 위한 하나회 회원들의 모임을 경복궁에서 갖기로 하고 노사단장은 황영시 1군단장에게,나머지는 전씨의 지시로 보안사 허화평 비서실장이 연락하는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번째로 드러난 흥미로운 사실은 신군부측이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경복궁내 30경비단이 당시 군내에서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릴 정도로 방어와 통신시설이 뛰어난 곳이었다는 것이다. 30경비단은 본래 청와대 경호실 직할로 박정희 전대통령 집권후반기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유사시 전군에 대한 지휘가 가능토록 만든 곳으로,수도권 방위 최고책임자인 수도경비사령관도 경호실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30경비단에 신군부측 인사 10여명이 아무런 제지없이 1시간여만에 모인 것이 우연이 아닌,군사행동에 대비한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른 것이었음을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군내에서 통신 및 지휘시설이 가장 뛰어난 30경비단과 보안사 상황실을 사전에 장악했기에 거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전·노씨의 진술도 반란의 사전계획을 엿볼수 있는 새로운 대목이라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과 함께 검찰이 이번 공소장에서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반란의 배후로 명시한 것도 지난 번 수사와 다른 점이다. 지난 번 수사발표에서는 12·12사건의 동기를 「소장 군부세력의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라고 애매하게 표현했었으나 이번에는 「군인사에서 정규육사 출신이 중심이 된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위기의식에서」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사조직의 군 지휘계통 장악을 인정하고 나아가 조직적 내란행위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12·12직전 전씨가 일방적 차관회의 주재 등 월권행위로 정총장측과 잦은 갈등을 빚은 점과 함께 주목된다. 이밖에도 검찰은 10·26 직후 1차 수사를 맡았던 백동림 당시 보안사 수사국장으로부터 정총장이 무혐의였음을 확인한 것도 지난 번 수사때와 다른 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도 지난 번 조사 때처럼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재가시 강압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 뜻 깊은 「5·18 특별법」성립(사설)

    5·18특별법이 국회에서 합의처리됨으로써 12·12군사반란과 5·17,그리고 5·18광주 학살사건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와 사법처리가 법적인 뒷받침을 받게 되었음을 환영한다.이제 수사의 주체가 된 검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사명의식과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이 문제 해법의 마지막 수순으로 남게됐다. 특별법은 12·12 및 5·18의 진상규명을 통한 헌정파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그리고 희생자들이 「폭도」에서 「민주투사」로의 새로운 평가를 받게 하는 명예회복이 주요 골자라고 하겠다.범법자의 사법처리와 희생자의 명예회복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핵심적 사항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특별법의 정신이 반드시 구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형법상 내란죄와 집단살해죄,군형법상의 반란죄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영원히 배제하는 내용의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국권찬탈에 나선 신군부 핵심인물들에 대한 단죄의 길이 열려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게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이미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당시 군사반란에 가담한 전두환 전대통령을 21일 기소키로 한데 이어 주동적인 가담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중이지만,이번에 특별법이 마련돼 공소시효등 적법성시비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전면적이며 본격적인 재수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특별법은 검찰이 군사반란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을 경우 고발인들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해서 별도의 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특례를 법안에 삽입함으로써 사살상 특검제안도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이제 남은 일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라고 하겠다. 검찰의 수사가 법적인 힘을 얻은 만큼 검찰은 이 사건에 관한 이번 사법적 검증이 마지막이 되도록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국민들이 수사결과에 공감하고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때 특별법의 의미가 빛을 발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파행·날치기 시비없이 「깨끗한 매듭」/14대 마지막 정기국회결산

    ◎5·18법 제정·예산 시한대 처리 큰 성과/정치관련법 손질… 정치권변화 틀 마련 제14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19일 폐회됐다. 이번 제1백77회 정기국회는 정치적으로나,국회 고유의 기능인 입법과 예산심의 등에서 그 어느 때보다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날 여야 각당의 폐회성명에서도 단 한차례의 파행이나 날치기 시비없이 유종의 미를 거둔 이번 국회활동을 높이 사고 있다. 먼저 이번 국회 회기 중에 시작된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민주당 박계동의원의 폭로로 비롯된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거 청산작업의 법적·제도적 완결이라고 볼 수 있는 5·18특별법 제정은 정치권의 앞날을 엄청나게 변화시킬 계기로 작용했다.물론 이 과정에서 대선자금 시비 등 여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는 단순히 정쟁차원이 아니라 구태와의 단절을 위한 진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결국 국회는 일부 야당의 반대가 있긴 했지만 역사청산이라는 대의를 쫓아 5·18특별법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정경유착 근절과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을 위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련법도 손질했다.이는 앞으로의 정치권의 체질개선과 나아가 15대국회의 도덕성과 생산성을 보장하는 준거로 작용할 전망이다.특히 이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여야가 끝까지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표결을 통해 처리하는 다수결 원칙과 민주적 질서가 존중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또 이번 국회는 15대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여야 4당 구도 속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생산적인 국회로 운영됐다.국정감사,예산심의,법안심의 등에서 여야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실적을 남겼다.지방자치 실시후 처음 실시된 국정감사는 단체장의 소속정당에 따라 일부 파행운영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감 본래의 취지에 충실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특히 새해예산안 심의에 있어서 여야는 한 차례의 격돌없이 법정시한을 지킴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민생을 우선한다는 모습을 보였다.이는 14대국회에서 여야가 날치기 시비없이 법정시한내 예산안처리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번 국회는 비자금 정국이라는 어수선한 정치분위기 속에서도 1백71건이라는 14대 정기국회 가운데 가장 많은 법안처리 기록도 수립했다.이는 92년이나 93년 정기국회에서보다 20여건이나 많은 숫자다.특히 5·18특별법이나 정치자금법개정 등 정치적인 법안 뿐만 아니라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중소기업 구조개선 및 경영안정지원 특별조치법 등 민생관련 법안이 그 어느 때 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번 국회가 결과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국회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야가 능동적으로 생산적인 국회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대선자금 공방시비,사정정국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국회안에서의 정쟁을 자제한 결과가 조용한 국회로 끝났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5·18 특별법안 제1조(목적)이 법은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공소시효의 정지)①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 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 ②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부터 1993년2월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제3조(재정신청에 관한 특례)①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고소 또는 고발을 한 자가 검사 또는 검찰관으로부터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통지를 받은 때에는 그 검사소속의 고등검찰청이나 그 검찰관소속의 고등검찰부에 대응하는 고등법원 또는 고등군사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다.이 법 시행전에 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결정이 된 사건의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①제1항의 재정신청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00조 내지 제205조 또는 군사법원법 의 해당규정을 적용한다.제4조(특별재심)①제2조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및 군사법원법 제46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②재심의 청구는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다만 군형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한 원판결의 법원이 군법회의 또는 군사법원일 때에는 그 심급에 따라 주소지의 법원이 관할한다. ③재심의 관할법원은 직권으로 제2조의 죄를 범한 자가 그 죄로 유죄의 선고를 받아 그 형이 확정된 사실을 조사하여야 한다. ④제1항의 재심청구인이 사면을 받았거나 형이 실효된 경우에 재심관할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6조 내지 제328조 및 군사법원법 제381조 내지 제383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종국적 실체판결을 하여야 한다. ⑤제1항의 재심에 관한 절차는 동재심의 성격에 저촉하지 아니하는 한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의 해당조항을 적용한다. 제5조(기념사업)정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제6조(배상의제)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보상은 배상으로 본다. 제7조(상훈치탈)정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훈을 받은 자에 대하여 심사한 결과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받은 상훈은 상훈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서훈을 취소하고,훈장등을 치탈한다. ○부칙 제1조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2조 제3조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한 재정신청은 이 법 시행일로 부터. ◎당정파괴범 공소시효 특례법안 제1조(목적) 이 법은 헌법의 존립을 해하거나 헌정질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헌정질서파괴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배제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용어의 정의) 이 법에서 「헌정질서파괴범죄」라 함은 형법 제2편 제1장 내란의 죄,제2장 외환의 죄와 군형법 제2편 제1장 반란의 죄,제2장 이적의 죄를 말한다. 제3조(공소시효의 적용배제) 다음 각호의 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49조 내지 제253조 및 군사법원법 제291조 내지 제295조에 규정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1、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 2、형법 제250조의 죄로서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에 해당하는 범죄 제4조(재정신청에 관한 특례) ①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고소 또는 고발을 한 자가 검사 또는 검찰관으로부터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통지를 받은 때에는 그 검사소속의 고등검찰청이나 그 검찰관소속의 고등검찰부에 대응하는 고등법원 또는 고등군사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다.②제1항의 재정신청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해당규정을 적용한다. ◎「12·12」­「5·18」 수사내용 국회보고 촉구안 ▷주문◁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 등의 수사에 있어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국회가 수사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명백한 의도가 없는 한 정부는 그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할 것을 촉구한다. ▷제안이유◁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함에 있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독립하여 수사를 하는 것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적절하게 감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일환으로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등의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토록 하는 촉구결의안을 제안하는 바이다.
  • 「5·18특별법」 국회 통과/찬성225·반대20·기권2

    ◎3당단일안 기립 표결/헌정파괴범 공솟;효 불적용/광쥔압 상훈 치탈… 「특벼래심」 허용/정기국회 폐회 국회는 19일 본회의를 열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민주당 3당합의로 마련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등 5·18관련 2개의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두 법안 가운데 헌정질서파괴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안은 여야4당의 만장일치로 의결됐으나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안은 기립표결 결과,재석의원 2백47명중 찬성 2백25표,반대 20표,기권 2표로 의결했다.표결에서 자민련의원 19명과 신한국당의 최재욱의원이 반대했다. 이날 본회의는 또 정부가 앞으로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 등의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토록 촉구하는 결의안도 의결했다. 이날 통과된 헌정질서파괴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은 형법상의 내란죄와 외환죄,군형법상의 반란죄·이적죄 등 헌정질서파괴범죄와 형법상 집단살해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12·12및 5·17군사반란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은 12·12와 5·18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는 80년 1월24일 신군부의 계엄선포이후 노태우전대통령의 퇴임일인 93년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규정했다. 이 법은 또 특별재심과 관련해 12·12관련 피해자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무죄판결을 위한 특별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고 ▲5·18당시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돼 받은 상훈은 치탈하고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회의는 또 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정치관계법과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및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지원법안 등 모두 7개 안건을 처리했다.이날 법안 처리를 마무리한뒤 제14대 마지막 정기국회인 제1백77회 정기국회는 1백일의 회기를 마치고 폐회됐다. 이에 앞서 신한국당의 서정화,국민회의의 신기하,민주당의 이철원내총무 등 여야3당 원내총무는 잇단 절충끝에 5·18관련 특별법 3당 단일안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또한 기존 5·18민주화운동「특별보상법」을 「특별배상법」으로 개정하기로 하고,내년부터 5월18일을 「민주화운동기념일」로 공식 지정키로 합의했다. 이날 총무회담은 부화뇌동자 처리문제와 관련,『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정신을 전제로 하되 여당안에서 『부화뇌동자의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 단서조항이 가해자 처벌을 전제로 한 특별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국민회의측 지적에 따라 이 조항을 삭제했다. 한편 황락주 국회의장은 폐회사에서 『14대국회가 많은 질책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새로이 열린 문민시대에 부합하는 참다운 국회상을 정립한 것을 의원들과 더불어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의장은 또 『오늘 국회가 5·18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14대 국회의 업적으로 헌정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면서 『특히 불행했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하는 지금의 노력이 우리 국회에서 점화되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고 의원들을 격려했다.
  • 「보안사 4인방」 수사… 사법처리 관심

    ◎“「12·12」 치밀한 사전모의” 확인/“정총장 연행계획 수립” 전씨 12월초 지시/서삼수­총장 체포조·헌병초소 장악조 등 지휘/허화평­경복궁 모임·연희동만찬 준비·연락담당/권정달­일선지휘관 도애 파악·병력동원 요청 허화평·허삼수·권정달·이학봉씨 등 보안사 「핵심4인방」에 대한 조사가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이들의 사법처리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4명은 12·12군사반란 당시 보안사령관겸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씨의 「수족」으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등 하극상을 일으킨 뒤 5공정권 창출에도 절대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수괴인 전씨를 추종해 군사반란을 일으킨 공범중의 「공범」으로 볼 수 있어 이들의 사법처리여부에 따라 다른 가담자의 사법처리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전씨가 입을 다물고 있는 만큼 우선 이들을 상대로 군사반란모의부터 성사단계까지의 전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밑그림」을 완성한 뒤 나머지 가담자를 차례로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조사결과 합수부측은 79년 12월12일 거사 이전인 12월 초순쯤 정전총장 연행계획을 세워놓고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해 12월 초순쯤 전씨로부터 정전총장 연행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은 정씨가 퇴근후 거의 외출하지 않는 점을 감안,일과시간 뒤 총장공관에서 정씨를 연행하기로 하고 이를 같은 달 8일 전씨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는 이씨로부터 보고받은 다음날인 9일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과 우경윤 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 합수부 수사2국장에게 정씨의 연행방침을 알리고 이씨와 협의해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육본 헌병대장으로 총장공관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성환옥 당시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과 이종민 육본 헌병대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을 가담시켰다. 이들이 세운 정전총장 연행 세부계획에 따르면 「허삼수·우경윤조는 정씨를 직접 연행하고 성환옥·이종민조는 총장공관입구 헌병초소를 장악하는 한편 최석립은 한남동 공관촌부근의 경비병력을 차단한다」고 되어 있는 등 사전준비가 치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12사건은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해온 신군부측의 거짓이 입증된 셈이다. 이같은 계획이 완성되자 전씨는 거사당일인 12일 하오7시 이학봉씨에게 정전총장 연행지침을 시달했으며 이씨는 이를 허삼수씨에게 바로 통보했다.특히 보안사 인사처장이던 허씨는 공관촌정문 해병대초소에서 보안사 정보처장을 사칭하기도 했다.정전총장 연행팀은 결국 총격전 끝에 정씨를 연행하는 데 성공했다. 허화평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은 수도권 주둔 장성들의 경복궁 모임 및 연희동 만찬 참석자에게 연락하는 등 이 사건 계획 및 준비과정에 참여하고 거사당일에는 연락업무를 담당했으며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은 예하 보안부대의 보고 등을 통해 일선지휘관의 동태를 파악,전씨에게 급보하고 30사단장에게 합수부측을 위해 병력동원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 전씨 단식/여야의 시각/당국의 대응

    ◎여야의 시각­“시민 학살한 장본인이 국민 모독”­신한국당/“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비난­국민회의·민주 12·12군사반란 및 5·17내란,5·18광주학살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전두환씨가 「5공 정통성 수호」를 내걸며 단식에 들어가자 여야는 7일 『어처구니 없는 일』『적반하장』등 비난을 퍼부으며 전씨의 자숙과 반성을 촉구했다. ○…신한국당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시민을 학살한 장본인이 이른바 「단식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요,정면도전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다만 대구·경북지역등의 묘한 동정 여론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표정이었다. 이신범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신이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감옥에 집어 넣은 양심수들의 단식과 인권유린의 총책임자인 전씨의 단식은 질이 다르다』고 혹평했다.그는 『전씨는 참회가 아니라 자신의 정권찬탈 행위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단식을 하는 중대한 착각을 범하고 있다』면서 『전씨는 폭력배 같은 집단난동식 대응을 획책할것이 아니라 12·12하극상과 5·17국헌문란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전씨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심지어 전씨의 단식을 「정신 못차린 단식」이라고 규정하는 등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반면 자민련은 『지금은 진상을 밝히는 일이 주요하다』며 『전전대통령이 12·12와 5·18진상을 밝히는 데 협조하도록 정부는 세심한 배려를 하라』며 전씨의 건강을 「염려」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은 『전씨는 5공의 정통성 수호 운운하기 이전에 헌정을 중단시키고 광주시민을 학살한데 대해 국민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전씨의 행동을 평가절하했다. ○…민주당은 『파쇼 수구집단의 결집과 국민의 동정을 얻어내려는 가소로운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규택 대변인은 『위선적인 쇼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당국의 대응­주말쯤 건강진단 결과 봐가며 조치­법무부/촉박한 수사일정 차질 빚을까 촉각­검찰 안양교도소 수감 5일째를 맞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항의 단식」이 7일부터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전씨는 수감 직후인 3일부터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관식을 거부하고 우유와 보리차를 번갈아 마시거나 둘중 하나를 챙겨 먹었으나 6일 저녁부터는 우유마저 끊고 보리차만 마시고 있어 사실상 본격적인 단식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무부와 검찰은 전씨의 단식에 대해 애써 태연해 하면서 아직은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말을 억지로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을 상기시키고 『현재로서는 건강상 문제가 없다』면서 『단식이 계속되면 주말쯤에나 건강진단 결과를 봐가며 교도소내에서 치료를 받게 하거나 외부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이처럼 전씨의 단식에 손을 놓고 있는 배경에는 『언제까지 버티겠느냐』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64세(31년생)의 나이로 볼 때 오래버티기 어렵지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물론 전씨가 비록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구속이라는 심리적 충격에다 수감생활까지 겹친 상태이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단식과는 차원이 다르며 시국사범으로 수감됐던 젊은 대학생들의 단식투쟁과도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특별수사본부는 전씨의 단식소식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전씨가 단식으로 버틴 뒤 병원으로 실려 가면 그렇잖아도 촉박한 수사 일정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권의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국민적 동정심을 일으켜 자칫 수사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전전대통령에 대한 2차 구류신문을 한 김상희 주임검사를 통해 건강상태와 단식 이유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캐묻고 단식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씨 쓰러져도 병보석 신청 안해”/측근 이양우 변호사

    안양구치소에 수감돼 닷새째 단식하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양우 변호사는 7일 『만일 전씨가 쓰러지는 등 어떠한 경우에도 병보석을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변호사는 이날 『12·12군사반란 당시 합수부장이던 전씨가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재가받는 과정에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권총으로 위협했다』고 주장한 당시 하소곤 육본작전참모부장 보좌관 김광해씨(52·중령예편)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한편 전씨측은 이날 이변호사를 포함,전상석·석진강 변호사 등 3명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 「12·12」와「5·18」 단죄(박화진 칼럼)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과 재벌들의 뇌물죄수사가 강행되자 사람들은 김영삼대통령을 두고 역시 「대단하다」「세다」「시원하다」면서도 안보·경제주름을 걱정하는등의 반응을 보였다.그런 여론도 참작하고 경제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검찰의 기소가 나오자 이번에는 또「미흡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있다.이것이 여론이요 세상인심이다. 「5·18」특별법제정의 결단이 내려지고 「12·12」군사반란과 광주민주화의거 유혈진압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전대통령을 전격구속하자 80%이상의 국민적 지지를 나타내면서도 일부에서는 또 「한치앞이 안보인다」「뭐가 뭔지 모르겠다」「좀 지나친것 아닌가」「정적을 너무 의식한다」는 등의 모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시해도 안되겠지만 끌려다녀서도 안되는 것이 여론이요 세상인심임을 잘도 보여주는 오늘의 세태라 할수 있다.소신껏 밀고나가면 독재적이라고 공격하는가 하면 여론에 충실하다 보면 소신없고 우유부단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김영삼대통령의 3당합당참여와 대통령취임후 그동안 보여준 통치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번 결단과 조치는 결코 일부 주장처럼 갑작스럽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구상·추진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쉽게알수 있다.3당합당 당시 참여결단을 두고 「호랑이를 잡기위해선 호랑이굴에 들어가야한다」는 속담이 곧잘 인용되었었다.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설마」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영국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등 해외언론들도 지적하듯이 대통령은 정말 호랑이를 잡고있는 것이 아닌가. 김영삼대통령은 한마디로 변화와 개혁의 대통령이다.그 구호로 당선되었으며 취임후 그것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부정부패의 척결과 깨끗한 정치·경제의 구현을 위한 개혁과 그 제도화작업을 착실히 진행시켜왔다.「한푼의 돈도 안받겠다」는 선언을 실천하면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근절을위한 금융실명제를 단행했으며 깨끗한 선진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자금법 및 통합선거법마련등 정치제도개혁에도 나서고 실천했다. 지난 6·27지방선거는 그러한 개혁성과에 대한 중간점검의 기회였다.그러나 개혁결실인 공명선거실현의 성과는 양김으로 대표된 지역할거주의에 앞도당하는 결과가 되고말았다.지역주의야말로 한국정치선진화의 최대 장애임을 극명하게 재확인시켜주는 기회였다.지역할거주의의 가장 중요한 병근의 하나가 5·18 광주의거에 대한 유혈진압에 있음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다.5·18의 확실한 청산없는 한국정치선진화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하는 뼈아픈 결과였다. 김대통령의 비자금수사와 전대통령구속및 5·18특별법제정결단은 근본적으로 한국정치·경제 선진화·일류화를 가로막는 정경유착의 잘못된 비자금관행과 지역할거주의의 근원이라 할수 있는 12·12군사반란 및 5·18유혈진압에 대한 혁명적 척결이요 단죄로 보아야 할것이다.5·18은 정치선진화개혁을 위해 풀지 않고는 지나칠수 없는 로마신화의 골디우스매듭과같은 장애이며 전대통령구속은 말하자면 콜럼버스의 계란세우기에 비유되는 일도양단의 대담한결단이라 할수있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대로 대도무문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할수 있으며 그것은 다른 대안이 없는 옳은 길이라 해야할 것이다.정치·경제 선진화·일류화라고 하는 보다큰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과감한 희생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양김은 물론 우리국민도 대통령의 그러한 결단과 도전을 협조는 물론 지원해야하며 적어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준엄한 단죄의 시작(사설)

    검찰이 전두환씨를 12·12사건의 반란수괴등 혐의로 전격 구속수감한 것은 이 사건의 철저한 진실규명을 위해 당연한 조치다.검찰이 전씨를 구속함으로써 이 사건수사가 신속히 이루어지게 된 것을 환영하며 12·12군사반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신군부의 정권찬탈과 학살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도 신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전씨의 전격 구속수감은 전날 그가 대국민 성명을 통해 잘못을 참회하기 보다는 변명에 급급하고 현정권에 정면도전하며 검찰수사에 일체 협조하지 않겠다고 강변함으로써 국민적인 분노를 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전씨의 구속수감은 검찰이 지난 7월 12·12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반란수괴혐의를 밝혀내고 기소유예처분을 한 만큼 언제라도 재소환조사와 기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보복이라는 강변은 후안무치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광주학살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없이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며 그 주범인 전씨를 단죄하기 위해서는 구속수사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더욱이 5·18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씨 사법처리와 관련한 재야와 학생권의 격렬행동등으로 조속한 사실규명과 처벌이 불가피한 실정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는 이 기회에 12·12군사반란 모의과정과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연행등 하극상범죄,최규하전대통령에 대한 압력,신군부측의 병력동원과 아울러 광주학살의 진실이 철저히 규명되길 촉구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최전대통령과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및 사법처리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검찰수사와 함께 5·18특별법도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만들어 전씨와 노태우씨등 군사쿠데타 수괴자들을 준엄하게 단죄함으로써 국민대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앞당겨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5·18문제 해결의 홍역은 어차피 우리사회가 한번 치러야 할 과정이라면 검찰은 이번 기회에 철저한 수사를 해 다시는 이 문제로 우리사회가 갈등에 휩싸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것이다.
  • 「12·12주역」… 어제와 오늘

    ◎허삼수·허화평씨 14대 지역구 현역의원/황영시씨 육참총장 거쳐 감사원장 역임/장세동씨 두차례 투옥… 박희도씨는 도미 검찰에 고소·고발됐던 12·12 관련자들은 모두 38명.이들 대부분은 군 사조직인 「하나회」회원들로 5공과 6공을 거치면서 정·관계의 핵심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육군참모총장이던 정승화씨를 연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허삼수 당시 보안사인사처장은 5공초 「파워게임」에서 밀려나 오랫동안 낭인생활을 하다 지난 14대 총선 때 부산지역에서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허씨와 함께 총장공관에 갔던 우경윤 육군범죄수사단장은 정씨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측의 오인 사격을 받아 하반신 불구가 된 뒤 소장으로 예편했다.5공 때 골프장 사장을 지냈다. 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은 5공초 허삼수씨와 함께 「거세」돼 미국에서 지내다 6공초에 귀국했다.지난번 총선 때 무소속으로 포항에서 출마,당선된 뒤 민자당에 입당했다. 권정달 정보처장과 이학봉 합수부수사1국장은 지난 89년 5공청산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시작했다.이씨는 14대 총선 때 김해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박희도 1공수여단장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무력점거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12·12 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박씨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5·18에 대한 재수사 방침이 발표된 직후 미국으로 출국,로스앤젤레스의 차남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씨는 합참의장직에 올랐다가 예편,광업진흥공사사장과 국방부장관을 거쳐 현재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다.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청와대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거치면서 권세를 누렸으나 5공비리와 「용팔이 사건」으로 두차례 옥살이를 했다. 하나회 후견인 역할을 했던 유학성 군수차관보는 안기부장을 거쳐 정계에 진출,12·13·14대 의원에 당선됐으나 93년 재산공개 파문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황영시1군단장은 83년 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뒤 84년부터 88년까지 감사원장을 지냈다.차규헌 수도군단장은 육사교장을 지내고 군수사령관으로 예편,5공 때 교통부장관을 지냈으나 장관 재직시절의 골프장 내인가와 관련,뇌물수수혐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6공까지 군에 남았던 가담자들도 승진을 거듭하며 요직을 거쳤으나 문민정부들어 철퇴를 맞았다. 김진영 33경비단장은 수방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고 9사단 29연대장으로 중앙청으로 출동했던 이필섭씨와 장태완 수경사령관 체포를 지휘했던 수경사상황실장(중령) 김진선씨도 문민정부 출범 직후 합참의장과 2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났다.
  • 「5·18 특별법」 7일 국회 제출/민자

    ◎전·노씨 2천8년까지 기소 가능/「광주 시위」연루 처벌받은 사람 재심 길 열려 5·18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온 민자당은 1일 형법상 내란·외환,군형법상 반란·이적죄등을 저지르고 집권한 사람에 대해서는 재임중 공소시효 진행을 정지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확정했다.또 신군부가 주도한 12·12,5·17쿠데타 및 5·18광주학살등도 이같은 헌정파괴 행위로 규정,집권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부칙에 삽입하기로 했다. 민자당은 이 법을 오는 6일 국회에 제출,정기국회 회기안에 반드시 처리키로 했다.이에 따라 전두환·노태우씨등의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혐의등에 대해서는 이들이 집권한 80년 9월1일부터 93년 2월24일까지를 빼고 공소시효기간(15년)이 계산돼 최소한 2008년까지 기소가 가능해졌다. 기초위의 특례법안은 특히 내란·반란죄등의 수괴뿐 아니라 공범들에게도 집권기간 공소시효 정지를 명문으로 규정,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참석했던 신군부적극가담자 상당수도 전·노씨와 마찬가지로 기소,처벌받게 됐다. 또한 헌법파괴 사범 불기소에 대한 재정신청과 이 과정에서 저항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토록 했다. 이에따라 광주항쟁 당시 시위·집회에 연루돼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이 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조(목적).이 법은 헌정질서를 파괴죄에 대해 형사소송법상의 처벌절차에 대한 특례를 마련코자 함. 2조(용어정의).이 법에서 「헌정질서파괴죄」라 함은 형법상 내란·외환,군형법상 반란,이적죄를 말한다. 3조(공소시효 특례). 헌정질서파괴죄를 범하고 집권한 사람은 재임기간 동안 형소법상의 공소시효진행이 중단되는 것으로 본다. 4조(재정신청).헌법파괴 범죄에 대해 소추기관이 불기소 처분한 때는 재정신청을 허용한다. 5조(재심) 헌정질서 파괴사범이 유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때는 이들에 맞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한다. 부칙 1조.이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2조.위본문의 공소시효 정지규정은 79년 12월12일 이후 행해진 범죄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 5·18 강경진압 5인 회의서 결정

    ◎민주,쿠데타관련 77명 명단 발표 민주당은 30일 「5·6공 부정부패 진상조사위」(위원장 강창성)를 열고 『5·18광주사태에 대한 신군부의 강경진압은 지난 80년5월20일 전두환·노태우씨등이 참여한 5인대책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5·17쿠데타 관련자들의 증언과 자료수집을 통해 확인한 결과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은 80년5월20일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수경사령관,진종채 2군사령관,정호용 특전사령관,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이 참석한 5인회의에서 결정됐으며 이들 가운데서도 노·진사령관이 지역성을 들어 초강경책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어 전두환·노태우씨등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의 핵심주동자와 주요가담자로 자체파악한 7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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