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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관급 38명 임명/대거 내부 승진… 김 검찰총장 유임

    ◎법제처장 김홍대/보훈처장 김의재/통상교섭본부장 한덕수/재경부 차관 정덕구/통일부 차관 정세현/외통부 차관 선준영/국방부 차관 안병길/행정부 차관 석영철/교육부 차관 조선제/과기부 차관 송옥환/문화부 차관 신현웅/농림부 차관 김동태/산업부 차관 최홍건/복지부 차관 최선정/환경부 차관 정진승/노동부 차관 안영수/건교부 차관 손선규/해양부 차관 전승규/예산청장 안병우/국세청장 이건춘/관세청장 엄낙용/조달청장 강정훈/병무청장 이상호/경찰청장 김세옥/농진청장 김강권/산림청장 이보식/중기청장 추준석/특허청장 김수동/식품의약청장 박종세/철도청장 정종환/감사원사무총장 안번일/안기부 제1차장 신건/안기부 제2차장 나종일/총리비서실장 조건호/비상기획위원장 김진선/금감위 부위원장 윤원배/공무원교육원장 박용환 김대중 대통령은 8일 상오 법제처,국가보훈처,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16개부 차관 및 국세청장,경찰청장,국가안전기획부 1,2차장 등 차관급 3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김대통령은 법제처장에 김홍대 법제처차장,국가보훈처장에 김의재 보훈처차장,새로 신설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한덕수 산업자원부차관,재경부차관에 정덕구 재경부 제2차관보을 각각 임명했다. 또 통일부차관에는 정세현 민족통일연구원장,외교통상부차관에는 선준영 주제네바대표부 대사,국방부차관에 안병길 방위산업진흥회 부회장,행정자치부차관에 석영철 지방행정연수원장이 기용됐다. 박지원 청와대대변인은 “법무차관은 조만간 단행될 검찰인사때 임명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태정 현 검찰총장은 유임됐으며,교육부차관에 조선제 국제교육진흥원장,과학기술부차관에 송옥환 과기부 원자력 실장,문화관광부차관에 신현웅 전 문체부차관보,농림부차관에 김동태 농업진흥청장,산업자원부차관에 최홍건 특허청장,정보통신부차관에 정홍식 정통부정책실장을 발탁했다. 김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차관에는 최선정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환경부차관에는 정진승 환경부환경정책실장,노동부차관에는 안영수 한국산업안전공단이사장,건설교통부차관에는 손선규 한국감정원장,해양수산부차관에는 전승규 해양수산부 제1차관보를 기용했다. 예산청장은 안병우 재경부예산실장,국세청장은 이건춘 서울지방국세청장,병무청장은 이상호 전 국방부군수본부장,경찰청장은 김세옥 경찰대학장,농촌진흥청장은 김강권 농업과학기술원장,특허청장은 김수동 특허청차장,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박종세 식품의약품안전청 독성연구소장,철도청장은 정종환 건교부수송정책실장이 발탁됐다. 감사원 사무총장에는 안번일 감사원감사위원을 임명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엄낙용 관세청장,강정훈 조달청장,이보식 산림청장,추준석 중소기업청장,조건호 총리비서실장 등은 유임시켰다. 김대통령은 이와함께 안기부 제1차장에는 신건 전 법무차관,제2차장은 나종일 전 대통령직인수위행정실장을 발탁,기용했다.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은 김진선 전 2군사령관,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은 윤원배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박용환 전 총무처기획관리실장이 기용됐다. 박대변인은 이날 인선결과를 발표한 뒤 “내부 승진을 위주로 공무원의 사기진작,해당 업무의 전문성과근무평가,지역안배,출신 학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으며,특히 조직내 신망도도 충실히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차관들은 앞으로 국무위원과 함께 정부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다음주 중으로 이번에 빠진 감사위원 6명,공정거래위 부위원장,외교안보연구원장,경찰위원회 상임위원,서울시 행정부시장 2명,이북 5도지사 5명,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소청심사위원장 등 나머지 차관급 후속인사를 단행할 방침이다.
  • 호남출신 육참총장 나올까/군 수뇌부 인사 임박

    ◎김동신 연합삽사령관 발탁 유력시/합참의장엔 도일규·이광학 총장 물망 천용택 국방부장관이 부임하면서 군수뇌부의 대폭적인 인사가 예상됨에 따라 군내부가 술렁이고 있다.정기인사는 4월이지만 이달안에 개편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공군은 오는 6일 임기가 끝나는 이광학 참모총장 후임으로 박춘택 작전사령관(공사 12기)이 승진,임명된 상태. 가장 큰 관심은 핵심요직인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누가 맡느냐로 쏠리고 있다. 육참총장으로는 대장 가운데 유일한 호남출신인 김동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21기·광주일고)이 유력시 되고 있다. 공군참모총장에 TK(대구·경북) 출신인 박춘택 작전사령관이 임명된 것은 호남출신의 김부사령관의 발탁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부사령관이 발탁되면 동기생인 1·3군사령관은 물러나고 육사 22기를 주축으로 2∼3명이 대장으로 진급,군사령관이나 연합사부사령관을 맡게 될 전망이다.대장 진급 대상자로는 한승의 육사교장,길형보 육군참모차장,정영무 합참작전본부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합참의장에는 김사령관보다 1기 선배인 도일규 육군참모총장(육사20기)과 이광학 공군참모총장이 거론있는 가운데 학군2기인 김진호 2군사령관도 비육사 배려차원에서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해군참모총장으로는 유삼남 현 총장(해사 18기)의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이므로 유임이 유력시되고 있다.바뀐다면 이지두 합참차장(해사 19기·경북고)등이 후임자로 거명되고 있다. 기무사령관 후보로는 이남신 8군단장(육사 23기)과 김명세 BCTP선임관찰관(소장·육사 23기) 등 호남 출신 중·소장들이 거론되고 있다.
  • 안주섭 경호실장 내정자/육사 24기… 상하 신망 두터운 야전통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내정된 안주섭 육군대학총장(소장)은 육사 24기로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다. 합리적이면서도 뚝심이 있어 상하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남 곡성이 고향으로 국민회의의 임복진·천용택 의원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군 참모장으로 재직할 때는 사무실의 칸막이를 모두 없애도록 했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커피포트 코드를 뽑도록 하는 등 세밀한 측면도 있다. 취미는 테니스.부인 김영자씨(50)와 2남 ▲전남 곡성(51) ▲광주고 ▲육사 24기 ▲3군사령부 동원처장 ▲35사단장 ▲2군사령부 참모장
  • 청와대 수석 내일 발표/정책 강봉균·공보 박지원씨 내정

    ◎유력 후보/정무 문희상씨/경제 김태동씨/외교안보 박용옥씨/사회복지 이근식씨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 강봉균 정보통신부장관을 내정한데 이어 정무수석에 문희상 전 의원을,경제수석에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외교안보수석에 박용옥 국방부 국방정책차관보,사회복지수석에 이근식 내무차관을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김중권 당선자비서실장은 이같은 인사들과 함께 정무수석에 김정길 인수위정무분과간사와 이강래 당선자특보가,경제수석에는 이선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가,외교안보수석에는 임동원 아태재단사무총장이,사회복지수석에는 윤성태 전 보사부차관과 조규향 부산외국어대 총장이 각각 복수 후보로 검토되고 있다고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혔다. 대통령경호실장에는 조영길 2군부사령관(중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이남신 8군단장 등도 인선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당선자는 이에앞서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중권 당선자비서실장을,공보수석에는 박지원 당선자 대변인을 내정한 바 있다. 김당선자는 10일 수석비서진을 일괄 발표한다. 비서실장 직속의 1급 총무비서관에는 배기선 전 의원과 조재환 국민회의 사무부총장 등이 경합중이며,역시 1급인 법무비서관에는 검사장 승진을 앞둔 지검 차장검사급 인사가 발탁될 예정이라고 김실장은 밝혔다. 김당선자는 이에앞서 7일 권영민 외무부 외교정책실장을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내정,발표했다.
  • 행정능력 갖춘 베테랑급 인사들로 구성/대통령직 인수위 활동

    ◎예산·업무파악외 개혁프로그램도 마련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5일 사실상 출범했다.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에 따른 신·구정권간의 인계·인수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번 인수위의 활동은 향후 여야간 정권인수의전형을 세우는 작업이 된다. 김당선자는 이날 하오 인수위원장으로 내정한 이종찬 부총재와의 협의를 거쳐 국민회의와 자민련측 인사로 구성된 24명의 인수위원을 확정,발표했다. 이종찬 위원장은 이날 하오 기자회견에서 “당10역을 제외하고 행정에 밝은 인사를 선정했다”고 인선기준을 밝혔다. 국민회의측의 최명헌 전 노동부장관이나 신건 전 법무차관,임복진 2군부사령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민련측의 이동복·이건개·이양희 의원등도 각각 안보,사법,행정분야의 베테랑이다. 국민회의측 인수위원에는 이해찬 의원,박지원 정치특보등 김당선자와 가까운 인사들이 포진돼 적지않은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당선자 이날 “정부 문서가 법적근거도 없이 파기돼서는 안된다”고 일부 부처를 지목한점으로 미뤄볼 때 인수위의 정권흡수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당선자는 빠르면 26일 이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인수위의 활동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위원장은 “인수위의 업무 범위와 일정은 당선자와 충분한 의견교환을 하지 못했다”면서 “행정부측과도협의와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정부의 예산·인원·업무 현황파악으로부터 조각을 위한 인선자료 작성,개혁프로그램을 포함한 집권 청사진 마련등 당선자의 의중에 따라 얼마든지 활동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김당선자의 스타일로 볼때 인수위를 순수한 정부인수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권부로까지 만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인수위는 산하에 정치,통일·외교·안보,경제1,경제2,사회·문화등 5∼6개의 분과위원회를 둘 예정이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 방식에 입각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내년 2월25일 15대 대통령 취임식등을 준비할 별도의 기획위원회가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인수위 대변인에는 김한길 의원이나 박지원 공보팀장가운데 한 사람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인수위가 들어설 삼청동 중앙공무원교육연수원에 사무실 및실무지원 인원 배정을 마쳤다. 연수원에는 인수위 말고도 김당선자의 기획·공보·비서 기능을 전담할 공보팀도 함께 자리할 예정이다. 이래저래 내년 2월까지는 연수원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 해외수입자 신용조사 간소화/통산부/2차 수출보험 긴급지원책 마련

    통상산업부는 수출입자가 직접 제출하는 자료를 인정,해외 수입업자에 대한 신용조사를 간소화하고 긴급조사기간을 현재의 절반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제2차 수출보험 긴급지원대책’을 마련,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통산부는 그동안 해외수입자에 대해 수출보험공사와 업무를 제휴한 해외신용기관,국내외 금융기관 및 재외공관을 통해 실시하던 신용조사를 수출입자가 직접 제출하는 자료로 대체하는 한편 해외수입자에 대한 평균 신용조사기간을 종전의 10∼20일에서 5∼10일로 대폭 단축키로 했다. 이와 함께 해외수입자에 대한 신용조사 전에 일정한 금액범위에서 보험인수가 가능하도록 한 잠정인수 한도의 폭을 1,2군 구별없이 10만달러,기업규모 및 실적에 관계없이 10만달러를 각각 인정하기로 했다.지금까지 잠정인수한도는 신용도가 높은 1군 수출지는 10만달러,신용도가 낮은 2군 수출지는 5만달러,또 개별보험인 경우 신용장거래는 10만달러,중소기업은 2년 이내 결제실적이 있을 경우 5만달러를 인정해왔다.
  • 중부내륙 고속도 환경친화 도로 만든다/여주∼상주구간

    ◎방음벽 79곳·고갯길에 동물통로 설치/환경부,건설부에 요구 한국도로공사가 올해부터 1조7천96억원을 투입해 오는 2003년에 준공할 경기도 여주군∼경북 상주시 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환경친화적인 도로로 건설된다. 환경부는 10일 중부내륙고속도로 127.2㎞구간(4차선)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재협의 결과,주변지역 주민들의 소음민원을 미리 막기 위해 전체 구간의 17.9%에 해당하는 22.76㎞ 구간에 모두 79개의 방음벽을 설치토록 건설교통부에 요구했다고 10일 밝혔다. 지금까지는 도로 건설후 주로 주민들의 민원으로 방음벽이 설치돼 왔으나 사전에 전체 구간중 5분의 1 가까운 지역에 방음벽을 설치토록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는 또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생태계 단절을 막기 위해 백두대간을 잇는 이화령(충북∼경북 경계선)에 길이 1천130m 규모의 이화터널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충주시 노원면 중원터널(1천67m) 등 모두 12곳에 터널 공사를 하도록 요구했다. 또 동물이동통로를 위해 사각형 규모의 통로박스를 2군데에 별도로 설치토록 하고 수중생태계 보호를 위해 교량공사시 가배수로를 설치하는 등 보완조치를 철저히 하도록 주문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주민들의 소음민원을 방지하고 생태계 단절을 막기 위해 엄격하게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했다”면서 “앞으로도 이같은 기준을 철저히 적용해 대규모 건설에 따른 환경문제를 적극 해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아파트서 부부 피살/온몸 흉기 난자당해

    4일 상오 10시쯤 대구시 수성구 수성 4가 우방사랑아파트 101동 201호 김호상씨(53·제과점 주인)집에서 김씨와 아내 김경자씨(47)가 숨져있는 것을 김씨의 형 호준씨(59)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남편 김씨는 온몸 12군데를 흉기에 찔렸으며 아내는 목이 졸린 흔적과 함께 양손이 뒤로 묶인채 숨져 있었다.
  • “클린턴 모금테이프 변조 가능성”/미 공화당

    ◎불법모금 증거 포착 주장 【워싱턴 연합】 미 백악관이 최근 뒤늦게 제출한 선거자금 모금 다과회 테이프가 의도적으로 변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원 정부개혁 감시위원회의 댄 버튼 위원장(공화)이 19일 주장했다. 버튼 위원장은 이날 폭스TV 프로에 출연,“우리는 백악관이 제출한 테이프중 일부가 고의로 지워졌거나,변조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전문 기술자에게 의뢰,테이프 변조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문제의 테이프는 약 100시간 분량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이 모금활동을 위해 참석한 백악관 다과회 장면을 수록한 것이나 최소한 2군데 이상 녹화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백악관측은 “테이프는 편집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상태”라면서 녹화에 이상이 있는 부분은 카메라맨의 조작상 잘못에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워싱턴 AFP 연합】 미 공화당은 19일 백악관이 최근 의회에 제출한 선거자금 모금 비디오 테이프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불법모금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를포착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정당에 대한 기부금에는 제한이 없는 점을 이용,민주당에 접수된 정당기부금을 대선 운동자금에 전용하는 편법을 동원했으며 이들 자금은 클린턴 대통령을 위한 값비싼 TV 광고비로 충당됐다고 말했다.
  • 야구천재 이종범 선수 해외진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C통신 찬반논쟁 가열/찬­해외진출 모두 투수… 타자도 보내 우수성 입증/반­모두 내보내면 국내프로야구는 2류로 전략 ‘야구천재’ 해태 타이거즈 소속 이종범 선수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찬호 선동렬 조성민에 이어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대표 스타인 이종범을 미·일 프로야구에서 뛰게 하자는 일부 움직임에 대해 PC통신 ‘유니텔’에서 열띤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토론은 일본 ‘나고야의 태양’ 선동렬(주니치 드래곤즈)이 ‘최고의 유격수 이종범을 일본에서 뛰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종선씨는 “박찬호 선동열 조성민이 모두 투수라는 점이 아쉽다”면서 “이번 기회에 타자까지 내보내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에 뒤져온 우리 야구의 우수성을 입증하자”고 적극 찬성했다.김장우씨는 “계속 해태만 우승하는 국내 야구는 짜증스럽고 볼 맛도 안난다”면서 “외국에 나가도 훌륭하게 활약할 유일한 선수인 이종범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은 국위를 선양하고 아울러 국내 야구의 발전도 자극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반대론.임승환씨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하나 둘씩 외국으로 보내면 결국 우리는 2류급 선수들로만 리그를 치러야 한다”면서 “미국 일본처럼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국내 팀들은 자칫 팀 운영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정호씨는 “한국 프로야구는 좋은 선수를 해외에 보내기 위한 미·일 야구의 2군인가”라고 되묻고 “훌륭한 야구선수들이 딴나라로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돼 버린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고 자칫 국내 리그는 내년부터 수입되는 외국 용병들의 잔치가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해안 신석기역사 다시 쓴다

    ◎연대 2,500년 앞당길 ‘뾰족밑빗살문토기’ 포함/신공항 건설 삼목도에서 관련유물 대거 출토 신공항을 건설중인 인천시 중구 운서동 삼목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대량의 유물이 나왔다.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학)팀이 발굴한 이들 유물 가운데는 서해안 신석기시대 연대를 2천500년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뾰족밑빗살문토기 등이 포함되었다.그리고 돌을 갈아 만든 석열유구와 화덕자리도 함께 찾아냈다. 삼목도 신석기유적 출토유물 가운데 뾰족밑빗살문토기는 중요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이 토기는 인천지역 도서를 중심으로 백령도까지만 나오는 신석기시대유물.그 북쪽 천청강에 이르는 해안지역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신석기시대 유물로 확인되었다.그러나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 요령지방 해안인 대련과 여순지역 유적에서는 완형 뾰족밑빗살문토기만도 101점을 공식발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계는 당시 신석기시대 문화전파 경로는 육로라기보다는 해로였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특히 동아시아 고고학계는 중국 요령지방 해안유적에서 나온 뾰족밑빗살문토기의 연대를 전기 신석기시대로 보아왔다.그렇다면 BC1000∼1500년쯤으로 잡았던 우리 서해안의 신석기 연대도 뾰족밑빗살문토기 출토를 계기로 올려잡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이번에 삼목도에서 나온 토기편은 500여점이나 되어 물량으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목도유적에서 거둔 시료를 근거로 최근 과학적 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실제 BC4000년쯤 유적으로 분석된 바 있다.이같은 연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교토산업대 야마타(산전치) 교수가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및 수륜연대보정법을 적용해 밝혀낸 수치다.그래서 삼목도유적은 중국 요령지방 해안 신석기문화와의 교류상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서해안 신석기연대를 끌어올릴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유적에서는 뾰족밑빗살문토기 말고도 어망추와 가락바퀴 따위의 토제품과 의기로 보이는 소형돌도끼와 실용 돌도끼,발화석,석촉등의 석기도 나왔다.신석기문화층 아래 고토양층에서는 지름 12㎝ 정도의 몸돌과 긁개를 포함한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어 더욱 주목을 끌었다.이들 구석기류는 약 4만년점쯤 구석기인이라는 선주민이 신석기인에 앞서 삼목도에 먼저 들어와 살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삼목도를 비롯 영종도와 용유도 등 인천 앞바다 3개 도서는 신공항 건설에 따라 지금은 서로 이어진 연육상태.신공항 건설지역 안에는 신석기유적 8군데를 비롯 청동기유적 4군데를 합해 모두 12군데에 선사문화유적이 분포되었다.더구나 이번에 구석기유물이 나와 신공항건설지역은 선사문화의 보고로 떠올랐다. 이번에 삼목도유적 발굴에 참여한 임효재 교수는 “이들 3개 도서의 유적은 주변 서해안 도서지방은 물론 중국 대륙과의 선사문화 교류관계는 밝히는 주요자료라는 점에서 정밀발굴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그리고 “출토유물을 한데 모아 새로 건설하는 신공항 청사에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이는 세계 여러 공항시설과 차별화하는 방법일뿐 아니라 이 지역이 동아시아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고도의 홍보전략이라는말을 덧붙였다.
  • 북 하사 1명 귀순/어제 서부전선 넘어

    국방부는 23일 북한군 2군단 민병중대소속 정학수 하사(22)가 상오 9시17분쯤 서부전선 임진강 상류 지역을 건너 귀순해왔다고 밝혔다.
  • 북 보트피플 귀순­서해남하 어떻게 가능했나

    ◎레이더시설 등 낙후… 해상경계 “구멍”/경제난에 외화벌이배 출항 제한 없애/유류부족 심화… 감시선 활동도 느슨 안선국,김원형씨 탈북사건은 북한주민들이 선박만 구입하면 쉽게 해상으로 탈북할 수 있는 북한 해상경계의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은 전자장비,특히 레이더시설이 낙후돼있고 연료가 부족해 최근 감시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요즘,「외화벌이용」 어선이 출항할 경우에는 북한당국이 제한을 두지 않아 이를 이용한 탈북은 별 어려움이 없다고 귀순자들과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89년 북한 인민군 2군단에서 근무하다 임진강을 헤엄쳐 귀순한 김남준씨(35·기아자동차 근무)는 『북한에서는 최근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기업 등과 개별접촉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외화벌이 지도원인 안선국·김원형씨가 외화로 배를 구입하는 일은 쉬웠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해안경비대는 남쪽 배의 해상침투를 막는 일에 주력하고 북한배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시하지 않는다.북한의 선박은 대부분 고기잡이용이기 때문에 기업소(기업)의 소유라는 번호만 있으면 의심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4년 3월20일 가족 3명과 함께 중국,홍콩을 거쳐 귀순한 여만철씨(51·방지거병원근무)는 『지난 87년 김만철씨가 배를 타고 귀순한뒤 선박의 출항때 북한 보위부가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보위부에서는 기관장,갑판장,선원 등 신분이 확인된 4명이상이 배를 타지 않으면 출항을 시키지 않는다.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노모까지 있는 안씨와 김씨의 가족들이 어디서 배에 탔는지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씨는 『하지만 해상경비는 매우 허술한 편이어서 일단 출항과정만 통과하면 탈북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 북한문제전문가는 『북한의 해상감시활동이 약화돼 최근 우리 어선이 가끔 북쪽 영역으로 들어가도 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때문에 이번 탈출어선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 『북한 인민무력부는 무역회사를 따로 운영하는 등 자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이번 배의 뱃머리에 인민무력부가 부여한 특정번호가 있고 선미에 중국어선 이름이 따로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중국에서 사들인 이 어선을 김씨가 속해있는 총참모부 공병부 소속으로 지정해준것 같다』고 덧붙였다.
  • 목단강유역 발해유적(송화강 5천리:25)

    ◎발해 도읍지 오동성터에 푯말만 외로이…/일제,성터 뭉개고 대규모 공장 건립/400m 성곽 간곳없고 남은흔적 고작 80m/23개 강동괴석에 역마울음 들리고 옛 암자터에 세운 정각사만 한때 영화 말하듯 송화강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루었다.그 가운데 가장 큰 지류가 목단강이다.길림성 돈화시 목단령에서 발원한 목단강은 흑룡강성으로 접어들어 경박호에 이른다.그리고 나서 의란현 서쪽에서 흑룡강 본류와 만나는데,길이는 670㎞를 헤아렸다.당나라때는 홀한수라 불렀던 이 강은 왕조가 바뀌면 이름도 따라 바뀌었다. 청나라때 목단울라라 한 것이 목단강으로 강 이름을 굳힌 계기가 되었다.그 목단강유역은 옛 발해의 강토다.강의 상류 오동성에서 발흥한 발해는 오늘날의 영안시 동경성에서 멸망하기까지 220년 동안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다.「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한 속말말갈이며,성은 대씨다.고구려가 망한 다음 그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동모산을 지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왕조따라 강이름도 바뀌어그러면 동모산은 어디인가.오늘날 길림성 돈화시 현유향 성산자촌의 산이라고 한다.해발 600m밖에 안되는 산이었지만,돈화분지 넓은 평야 한 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터라 제법 웅장했다.동모산 동쪽으로 10리 안쪽에 목단강이 남으로부터 북으로 흘렀다.그리고 대석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와 목단강과 합류했다.이들 물줄기야말로 동모산을 지켜주는 천연의 호성하 그것이었다. 그 동모산에는 성산자산성이 있다.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 흔적이 보였다.성은 본래 반월형으로 길이가 2천m였으나 지금은 얼마 남지않았다.동문으로 들어서자 50여기의 반움집터와 군사 조련장이었을 것이라는 넓은 마당이 나왔다.조선족 고고학자 엄장록 선생은 「연변지구 발해시기의 옛 성터 고찰」에서 이렇게 썼다.「역사기록과 지리적 위치에 근거하면 성산자산성은 대조영이 698년 진국을 세운 동모산으로 추정된다」 오동성은 오늘의 돈화시 고성거리에 있다.동모산 성산자산성을 근거로 국력을 키운 대조영이 새로 성을 쌓고 도읍을 옮긴 곳이 오동성이다.돈화임업국의 사택이 꽉 들어차서 성터를 찾는데 힘이 들었다.한참만에 사택 나무울타리에 가린 오동성유적지 팻말을 가까스로 찾아냈다.그러나 팻말 뒤쪽은 장작더미가 쌓여있는 바람에 새겨놓은 글귀는 읽어 볼 처지가 못되었다.아쉬울 뿐이었다. 오동성은 길림성의 성급보호문물로 되었다.팻말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서글픈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오동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발해유적들이 종종 수난을 당했다.지난 1995년 4월에는 화룡시 서성건 북고성촌 서고성이 큰 피해를 입었다.곽보위(34·화룡시 두도건 명성촌)라는 사람이 발해의 중경 현덕부자리인 서고성 동쪽 토성벽 5㎡를 허물어 못자리판 객토로 썼다는 것이다.사실이 탄로나 5천원의 벌금을 물기는 했다. 오동성 역시 흙을 다져 쌓아올린 이른바 판축의 토성이다.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졌던 오동성은 본래 동서 400m,남북 200m에 이르는 토성이었다고 한다.지금은 겨우 80m 정도가 남아있다.그것도 성터였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오동성이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때다.일제는 성터를 뭉개버리고 대규모 목재공장을 지었다. 오동성과 동모산 성산자산성의 거리는 15㎞다.그러니까 도성과 산성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구려 도읍지인 집안에 평지성인 국내성과 그 외곽에 산성인 환도성이 자리한 이치와 똑같다.도성과 산성을 가까이 배치한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다.발해가 오동성을 수축할 당시 당나라와의 관계는 전쟁상태였던 것이다. 연변조선족 사학계에서는 더러 오동성이 발해의 첫 도읍지가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1949년 육정산에서 발해의 무덤떼가 발견되고,그 무덤의 일부는 왕실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오동성이 발해의 수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 것이다.그리고 청나라 연호로 광서 11년인 1885년에 조정걸이 쓴 「동삼성여지도설」에서도 여러가지 지리적 여건을 감안,오동성을 수도로 보았다. 발해의 무덤떼가 나온 육정산은 돈화시에서 남쪽으로 5㎞ 떨어진 강동향 승리촌에 자리했다.동서로 6개의 봉우리가 낙타등처럼 이어졌다.해발 603m의 두번째 봉우리가 주봉이다.그 주봉 동남쪽 산길 동서 양쪽의 평지에 무덤떼가 있다.동쪽 무덤떼는 신분이 낮은 계층의 무덤이고 서쪽 무덤떼는 발해 전기에 묻힌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밝혀졌다.이 육정산 무덤떼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제3대 문왕인 대흠무의 둘째딸 정혜공주묘다. ○성급 보호문물로 지정,유지 정혜공주묘는 북으로 육정산 주봉을 등지고 남으로는 활짝 트인 광활한 목단강 충적평야를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강 서쪽 연안은 사원유적을 품에 끼었다.무덤에서 동모산까지는 시오리가 채 안되었다.그러고 보면 정혜공주묘는 배산임수의 좋은 땅을 차지한 것이다.1950년대 이 무덤 발굴 당시 참여했던 전 연변대 사학부 교수 방학봉선생은 정혜공주묘를 이렇게 묘사했다.「무덤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들을 향했다.무덤의 주인이 마치 북쪽 산에 기대고 누워 남쪽 벌판을 멀리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공주의 묘는 무덤방,무덤 안길과 바깥길로 이루어졌다.무덤방인 묘실은 네모꼴이다.무덤방 네 면의 벽은 크기가 서로 다른 용암석과 현무암을 다듬어 8∼9층 정도를 쌓아 만들었다.무덤에서는 비석·돌사자·구슬·청동못 따위의 유물이 나왔다.돌사자는 암수 한쌍이었다.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린채 앞을 바라보고 앉은 돌사자는 날쌔게 보이면서도 의젓했다.발해무덤에서 돌사자가 나온 것은 당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날 밖에서 볼 수 있는 발해의 유물이 있다면 24괴돌유적이다.흑룡강성에 2군데,길림성 연변지역에 6군데 남아있다.돈화시에만 3군데가 있는데,그중 하나가 강동괴석이다.돌 하나는 없어지고 지금은 23개가 남았다.목단강을 사이에 두고 오동성과 마주한 강동괴석은 강에서 동쪽으로 300m 거리에 위치했다.한 줄에 8개씩 3줄에 모두 24개의 돌을 나란히 세운 이들 돌유적은 발해시대의 역참으로 추정하고 있다. 돈화시에는 새로 지은 정각사라는 절이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이 절은 발해시대부터 광복 이전까지 명맥을 유지한 한 암자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해방 이전까지는 이씨 성을 가진 한 보살(여자신도)이 암자를지켰다고 한다.그러다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보살은 싱가포르로 가서 세상을 떠났다.그런데 보살은 암자에 큰 절을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그 유언은 손자대에 이루어져 중국돈으로 2천5백만원을 들여 정각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 3군장성 승진·전보인사

    국방부는 15일 중장 승진 6명,소장 승진 10명 등 육·해·공군 장성급 승진및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소장인 권영효 국방부조달본부장(육사 23기)과 강종필 제3사관학교교장(육사 23기) 등 2명을 현직위에서 중장으로 진급시키고,이종옥 교육사교육훈련부장(육사 24기)·김판규 육군대학총장(육사 24기)·오남영 육본관리참모부장(육사 24기)·노연웅 학생중앙군사학교장(학군 5기) 등 4명을 중장 진급과 동시에 군단장으로 보임했다. 이와함께 강광석 준장(학군 5기)등 8명을 각각 소장으로 진급시키면서 동시에 사단장으로 보임하고,이강수 2군수지원사령관(학군 5기)과 박호순 기무사참모장(육사 26기)을 현직에서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국방부는 또 육군중장인 한승의 합참인사군수부장(육사 22기)을 육사교장,이호승 1군부사령관(육사 22기)을 국방대학원장,정영무 특전사령관(육사 22기)을 합참작전부장,박용득 11군단장(육사 22기)을 교육사령관,최돈걸 교육사령관(육사 21기)을 합참전력평가본부장으로 각각 전보 발령했다. 국방부는 이와함께 해군의 최낙성 소장(해사 20기)을 군수사령관으로,한광수 소장(해사 24기)·오승렬 소장(해사 24기)을 각각 함대사령관에 전보키로 내정했다.
  • 12·12사건 재판 계류 유학성씨 별세

    12·12 및 5·18사건으로 기소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둔 전 국회의원 유학성씨(70)가 3일 낮 12시35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1의11 자택에서 지병인 십이지장암으로 숨졌다. 유씨는 지난해 12월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난 뒤 서울대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4기까지 진행돼 수술을 포기하고 지난 2월부터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유씨는 12·12 및 5·18사건으로 지난해 1월 17일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년,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었다. 대법원은 유씨가 사망함에 따라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게 된다. 국방부는 「형 확정판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4성장군 출신의 유씨를 국립묘지 장군 묘역에 안장토록 허가해주기로 했다. 유씨는 육사를 졸업한 뒤 26사단장,2군단장,3군사령관,국가안전기획부장,12·13·14대 의원을 지냈다.특히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군수차관보를 맡았던 12·12사건 당시 「경복궁 모임」인 수경사 30경비단 회합에 참석한 핵심인물로 전두환보안사령관 등과 함께 군사반란을 주도했다.그러나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공직자 재산공개때 부동산투기 등으로 치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 석유도시 대경의 조선족(송화강 5천리:23)

    ◎중 최대 유전도시개발 대역사 참여/인구 87만중 5천여명… 유화업종에 종사/석유관리국 최기남 총공정사 “돌출한 과학자”로 두각/민족교육에는 뒷전… 자체 유치원시설 한곳없어/한어교육에 집착… 중국인 한국어교습 열풍과 대조 조선족과 모국어 하얼빈 서북쪽 160㎞ 밖에는 대경이라는 석유도시가 있다.하얼빈과 만주리간 공로를 고물 버스로 4시간을 옹골지게 달려 대경시에 도착했다.이른바 흑하지구에 해당하는 대경일대는 농사도 잘되었지만,대부분이 버려진채 묵어나는 황무지격의 무인지대였다.그런데 1957년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화학공업지대로 탈바꿈했다.공산당이 국가를 세운지 10주년이 되는 해에 유전이 발견되어 크게 경사스럽다는 뜻에서 대경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표본 공업지대로 명성 대경의 첫 인상은 도시라기 보다는 드넓은 평원에 마을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은 거대한 군락처럼 보였다.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무인지대가 수십리씩 이어졌다.무인지대에는 석유를 탐사하는 시추기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과연 중국 최대의유전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대경의 유전면적은 2천334㎢에 이르고 있다.중국전체 석유매장량이 47%를 차지하고 대경유전은 중국의 표본공업지대이기도 했다.모택동은 생존시 틈만 있으면 「공업은 대경을 따라 배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그래서 대경은 중국인들 귀에 못이 박힌 석유화학공업지대인 것이다. 대경의 첫 석유는 정확히 1959년9월26일 하오 송기3호 시추기가 박힌 탐사정에서 분출되었다.석유가 본격 생산되면서 근로자와 그 가족을 위한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이 무렵 중국정부는 석유개발과 함께 개간농업을 추진하기 위해 근로자 가족들을 끌어들였다.그래서 대경은 1979년 시로 승격한 이후에도 농공결합도시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석유 말고도 옥수수·밀·조·수수·콩·농사 등 대경의 농업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대경시 인구는 87만9천명으로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5천35명으로,모두가 유전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유전개발 당시 와서 뿌리를 박았거나,그 이후 학교는 졸업하고 직장을 따라 온 간부·기술자·근로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다.조선족 대표인물로는 대경석유관리국 시추제1공사 최기남 총공정사(56)를 꼽는다.1963년 북경석유학원을 졸업하고 기술원으로 대경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30여년간 석유공업 발전에 뚜렷한 공을 세웠다.그는 「돌출한 과학전문가」와 유전의 「10대 우수종업원」이라는 영예를 얻은 탁월한 인물이었다. 대경시는 조선족들이 석유공업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민족을 위한 사업에 발벗고 나선 사람들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5천명이나 되는 조선족들은 자기네 문화관 같은 시설 하나를 챙기지 못했다.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소학교 307군데,중학교 92군데,대학 및 전문학교 27군데가 모두 한족학교다.대경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창작을 하는 작가 이주천씨(34)의 말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직장이 같지 않으면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습네다.조선족이 많기는 하지만,동서남북으로 멀리 흩어져 살기 때문이디요.교육도 기래요.조선족 학교를 세운다고 해도 기숙제를하지 않고는 학교를 보낼수가 없다 이 말입네다.그래서리 대경의 조선족들은 자식을 유치원에서부터 한족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디요』 ○영·일어 이어 한국어 인기 조선족 모두가 잡거구에 사는 터여서,아이들이 조선족유치원에 들어가지 않고는 모국어를 알 턱이 없다.어린시절을 한족유치원에서 보내고 조선족소학교를 가도 중국에서 조선어라 호칭하는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되기는 매한가지다.그렇다고 조선족 어른들이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중국에 살자면 어차피 중국어에 능통해야 된다는 선입견으로 해서 아이들의 한족학교 입학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조선족학계에서도 한국어보다 한어를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중국에 자리를 잡은만큼 한어가 국어고 한국어는 모국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국어를 영어나 일어 정도로 보아야한다는 한어 주창론자들은 조선족들의 못리판인 연길에서도 한어를 모르면 문밖을 나설수 없지 않는가라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견해에 날카롭게맞서는 이들도 있다.말은 민족의 마음이고,글은 민족의 얼굴이어서 모국어를 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따라서 한국어가 만약 일어나 영어와 같은 외국어 위치에 놓인다면 민족은 자기의 모습을 잃어버린 꼴이 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모국어 옹호론자들은 한국어가 세계에서 17번째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한국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면서 한족들의 한국어 학습열기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모국어 옹호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뿌듯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언어의 표준화 및 규범화,우리말과 우리글의 보급이 시급하다는 옹호론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이는 소수민족의 자기언어 우선은 물론 소수민족지구 한족간부들도 해당 소수민족 언어를 배우도록 부추기는 중국 정부 소수민족정책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족간부들 가운데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어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로 자리잡았다.길림성 교하시 조선족소학교 교원 허순옥씨는 산동성 위해시 직업학교 교장으로부터편지 한 통을 받았다.내용은 한국의 외국어학원과 비슷한 한국말학습반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 위해로 와서 한국말을 가르쳐 줄 뜻이 없느냐는 것이었다.말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교사가 부족한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제2외국어로 통하는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데,교과서를 구할 수 없느냐?」는 편지가 수없이 날아든다고 했다. ○대학서도 관련학과 설치 붐 지난 1995년 하얼빈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족유치원이 문을 열었다.정원이 110명이었는데,50명을 초과할만큼 인기가 높았다.이는 1991년5월 하얼빈시 조선족 기초교육건설 모금위원회가 하얼빈시에 여러 차례 건의하여 이루어진 사업이다.지난 해에는 정부 허가를 받은 하얼빈중급한국어학교가 설립되어 15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였다.그리고 흑룡강성 외국문서점에서는 「한국어백일통」「한한대조 365」「현대한국어회화」를 내놓았다.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를 단숨에 제치고 영어와 일본어에 이어 3위에 오르면서 판매량이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어 바람은 중국내 유명대학에까지 불어 한국어학과 설치가 늘어나고 있다.그 때문에 연변대 조선어학과 출신들을 앞다투어 모셔가는 일이 벌어졌다.조선족들의 한국어 외면과 달리 한족들에게 오히려 한국어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 귀순자 일가족 첫 탈북/북송 재일교포

    ◎중 거쳐 홍콩에… 서울행 준비/작년 귀순한 홍진희씨 어머니·두 동생 지난 94년 북한을 탈출,96년 귀순한 북송재일교포 2세 홍진희씨(28)의 일가족 3명이 최근 북한을 탈출,현재 홍콩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관계당국은 이날 홍씨가족들의 북한탈출과 망명신청 사실을 확인했으며 당국은 현재 이들의 망명절차를 홍콩정부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상수난민수용소에 수용중인 홍씨 가족은 어머니 주영희(50·가내협동조합중앙회 노동자),여동생 경화(26·염화비닐신발공장 선전대원)와 남동생 진명씨(22·고등중학생)로 이들은 지난 2월 17일 함북 삼봉에서 탈출길에 올라 중국의 연길·심양·청도를 거쳐 지난 20일 홍콩으로 밀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가족단위의 탈북귀순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귀순자의 남은 가족이 북한을 탈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서울에 도착할 경우 귀순자 가족들과 북송 재일동포들의 북한내 생활상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96년 1월 홍씨가 귀순하면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허천으로 강제이주,유배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귀순한 홍씨는 중국체류시 자신을 보호해준 조선족동포를 통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부를 파악해온 것은 물론 이 동포의 도움으로 가족들의 탈북을 성사시켰다. 홍씨는 지난 69년 함흥에서 태어나 방직공장과 요업공장 노동자를 거쳐 북한군 제2군단 수산기지 지도원을 하다 92년 제대한뒤 94년 중국으로 탈출,홍콩을 거쳐 96년 1월 귀순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다. 한편 현재 홍콩에는 이들 홍씨일가 3명 외에도 7명의 탈북자가 서울행을 기다리며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서귀포시 음식쓰레기 100% 재활용/퇴비화사업 대상 시전역 확대

    제주도 서귀포시(시장 오광협)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모두 퇴비로 재활용된다. 서귀포시는 지난해 7월부터 시내 중심가와 상설시장,그리고 남성·색달·도순동 등 3개 외곽마을을 대상으로 시행해 온 음식물쓰레기 퇴비화사업의 대상지역을 올들어 시 전역으로 확대했다.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19t의 음식물쓰레기 전량을 퇴비로 재활용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 1월 음식물쓰레기 중간 집하장을 18군데에서 112군데로 대폭 늘리는 한편 대형 음식점들에 대해 음식물쓰레기 퇴비화 용기 사용을 의무화했다.외곽마을인 하원동도 시범마을에 포함시켜 음식물쓰레기를 자체적으로 퇴비화하도록 했다. 시는 관내 998개 업소 가운데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모범을 보인 49개 업소를 선정,수도요금 감면과 위생검사 면제 등 혜택을 줄 방침이다.
  • 국경마을 「삼차구」의 새바람(송화강 5천리:18)

    ◎통행증 없이 왕래… 변경무역 도시로/중·러 장사꾼 몰려 여관 식당 “우후죽순”/아낙은 옷장사 남편은 집안살림 신풍속도/조선족이 일군 옥토… 30년대 강제추방 시련도 중국에는 변방검사소가 모두 234군데에 있다.검문소 기능을 가진 변방검사소 가운데는 공항소 50군데,항구소 119군데,육지소 62군데,검사본소 3군데가 포함되었다.그런데 흑룡강성에는 15군데나 되는 변방검소가 들어섰다.중국의 대외개방정책에 따라 흑룡강성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중국에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로 나가는 길목일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곧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역이 흑룡강성이다. 흑룡강성은 특히 러시아와 3천45㎞나 되는 긴 국경선을 이루었다.그래서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러시아의 도시 20여개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또 중국에서는 국경지대 24군데에 통상구를 설치했다.그런데 조선족진인 동녕현에도 통상구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조선족 유일의 이 통상구는 동녕현 삼차구에 들어앉은 동녕통상구이다.수로와 육로를 통해 곧바로 러시아와 연결되었다. 그 동녕통상구가 있는 삼차구로 가기위해 목단강시에서 버스를 탔다.수분하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달리다 수분하 10㎞를 앞두고 마록구쪽으로 굽어들었다.험준한 산악도로를 넘어 벌판에 들어서자 동녕현성이 나타났다.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7㎞를 더 달려 삼차구에 닿았다.수분하와 후부투하가 합수하는 삼각지대라고 해서 삼차구라는 이름이 붙었다.흑룡강성의 강남으로 불리는 삼차구는 기후가 좋아 목화와 고구마농사가 잘 되었다. ○“흑룡강성의 강남”으로 불려 삼차구는 얼마전 만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변경지대였다.90년대 들어서야 개방되었다.변경통행증이 없으면 차에도 못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지금은 자유자재로 오갈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머리털이 나고 처음 밟아보는 땅이라 그런지 감개가 무량했다.더구나 우리민족이 일찍 개척한 땅이 아닌가.선조들의 개척정신이 새삼스럽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경북도 경원군 송하면 사람 이창호일가가 맨 먼저 삼차구에 들어와 첫 괭이를 박았다.지금으로부터 100년을 훨씬 더거슬러올라가는 1882년의 일이다. 1923년 기록을 보면 삼차구 조선족은 324가구에 2천125명으로 되어있다.동녕현 조선족은 1930년 1천40호 5천200명에서 1935년에는 1천433호 7천703명으로 늘어났다.현재는 9천여명으로 현 전체인구(2만1천명)의 48%를 차지했다.삼차구는 만주국 시절 얼마동안은 현 소재지이기도 했다.그러나 1937년 장고봉전투에서 진 일제가 구 소련의 요구를 들어주는 바람에 현 소재지를 동녕으로 옮겼다.일제는 국경선으로부터 10㎞이내에 마을을 두지않기로 한 요구를 받아들여 삼차구의 주민들을 강제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목단강,영안,해림 등지로 뿔뿔이 떠나버렸다.광복이 되어 다시 모여들었는데 바로 오늘을 사는 삼차구 조선족들이다.삼차구진 소재지 마을은 동녕현 소재지 못지않게 흥청댔다.길 양쪽에 음식점과 여관들이 촘촘하고 소학교 뒤 공터에는 장이 섰다.장마당에는 팔고사는 사람들로 늘 북새통을 이루었다.그리고 큰길로는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컨테이너 트럭과 택시들로 해서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마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다. ○1991년 조선족자치진 지정 국경은 마을 끝자락을 지나갔다.개울이나 다름없는 강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고,양쪽 다리끝에는 두나라 변경검사소가 자리잡았다.국경에 다리를 놓은 지도 10여년 밖에 안되었다.처음에는 중국쪽 주민들과 러시아쪽 주민들 사이에 물물교환으로 시작한 거래가 지금은 덩치가 커졌다.사사로운 민간무역이 통크게 발전하더니,80년대 두나라 친선관계가 강화되면서 개방이 급속도로 가속화했다. 삼차구는 1991년에 조선족자치진이 되었다.지난해는 주민 1인당 연간평균 2천476원을 올렸고,올해는 3천원을 내다보고 있다.농사수입보다 변경무역이 더 큰 수입원이다.동녕통상구가 열리면서 천지개벽과 같은 현실을 맞는 것이다.삼차구가 자치진이 되었던 해는 밀수가 판을 치던 때라 돈을 긁어모았다.밀수꾼들이 몰려와 헛간에도 손님이 들 정도여서 여관과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지금은 밀수길이 막혔지만,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국경의장사꾼은 대개 두 부류이다.밑천이 든든하면 옷장사고,작은 밑천으로는 채소나 과일장사를 한다는 것이다.옷장사는 여자들 몫으로 삼차구 부녀주임 박정금은 지난해 몇만원이나 되는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러시아 우스리스크까지도 멀지않다.드나드는 옷장사가 여자들 몫이라,부부역할이 뒤바뀌었다.그래서 남자들이 집안살림에 매달리는 가정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삼차구는 개혁개방 덕분에 살기좋은 고장이 되었으나 새 풍속도가 생겨난 셈이다.돈도 돈이지만 옛날 분위기에 비하면 삼차구는 별천지가 되었다.을씨년스러웠던 시절을 삼차구에서 보낸 백원만씨(63)의 말을 들어보면 삼차구는 무시무시한 국경지대였다.처음에는 교편을 잡다가 형이 사는 삼차구로 와서 경찰에 들어간 그는 오랫동안 파출소장을 지낸 인물이다. 『내 여기서 11년간 경찰질 할 때는 중·소관계가 팽팽했던 시절이었수다.구 소련땅에 친척이 살아도 간첩으로 몰렸지비.별별일이 다 있었수다.중·소관계가 악화한 1969년에는 밤낮 비행기가 뜨고 하루에도 몇번씩 공습경보가 내리지 않았겠슴등.국경넘어서 달리는 소련군 탱크 소리에 모두가 겁에 질렸지비.기리고 1979년 중국이 월남을 쳤을 때도 삼차구 코앞에까지 소련군이 집결했었수다』 그러고 보면 삼차구는 많이 달라졌다.문화대혁명 시기 러시아어를 하면 간첩이었는데,지금은 러시아어가 대접을 받고있다.백원만씨 딸도 노어전문학교를 나와 무역회사에 입사,시집밑천을 벌써 모아놓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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