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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굴암 십일면관음상(한국인의 얼굴:42)

    ◎천계의 정적 어린듯 신비한 미소/버들잎처럼 긴 눈썹 둥근 콧마루와 연결/정면 응시하느라 실눈… 입은 작고 또렷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 주실 벽에 배치한 3체의 부조 보살상들은 아름답다.특히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계에서나 행여 만날 수 있을까.이미 깨우쳐 위로부터 보리(보제)의 경지를 구한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신비마저 가득 어렸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열하나의 얼굴을 지닌 보살상인데,본존여래 뒤쪽에 서 있다.그러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얼굴은 열이다.관음보살상 자체가 부조이기 때문에 머리 뒤쪽에 표현할 얼굴 하나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열의 얼굴은 모두 관음보살상 머리에 표현해놓았다.머리 앞쪽에 화불 하나,좌우에 각각 셋,위쪽에 셋,머리 꼭대기에 하나가 배치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본래 소임은 중생교화다.그래서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얼굴에까지 깃들었다.거친 욕심을 떨쳐버린지 오래여서 표정이 마냥 지순하고 안온할 뿐이다.본존여래처럼 정면을 깊이 바라보느라 실눈을 했지만 눈매가 곱다.버들잎 같은 유엽형의 긴 눈썹이 그리 모나지 않은 콧마루와 맞물렸다.작고 또렷한 입이 고운 눈매와 어울려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옷 매무새는 하도 부드러워 지순한 얼굴에 비해 오히려 육감적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그러나 본존여래의 원력을 도와주는 보살을 누가 감히 범접할 것인가.그리고 천계의 정적이 어렸으니 넘나볼 수도 없다.2.18m나 되는 키가 헌출하다.그 큰키의 보살 몸에는 구슬을 꿰어 엮은 여러 가닥의 영락이 치렁치렁 매달렸다.그렇듯 돌을 다룬 솜씨는 보살의 얼굴과 천의자락,영락 등을 더 이상 화강암 걸감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보살은 위를 바라보고 활짝 핀 연꽃 디딤판(앙련대)을 밟고 발을 좌우로 향했다.왼쪽 팔은 구부려 손에 보병을 잡았다.그리고 아래로 내린 왼팔은 팔굽과 홀목을 약간 들어 손가락에 영락 한 가닥을 잡아올렸다.유연한 동작이다.중국과 일본에도 석조나 목조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전해오지만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따라올 작품은 아무데도 없다.그만큼 세기적 걸작인 것이다. 그 많은 걸작의 조각상들을 봉인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지혜가 함께 창조한 불멸의 문화유산이다.비단 미학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신라인들의 혼이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석굴암 창건을 더러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한 것이나,개인적 원력으로만 볼 수 없는 대역사였다.다시 말하면 개인적 발원에 의해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 발원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조각상은 그 하나하나마다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그 조화와 질서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동과 정이 어울린 것이다.석굴암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감동이 와 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투기성 자금/“최대 14조5천억”

    ◎한경연 발표/은행 비실명에금 5조2천억 투기성 자금의 규모는 최소 6조1천억원,최대 14조5천억원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4일 발표한 「대체자산 수익률 및 투기성 자금 수요와 금리의 관계」(박찬일·남주하 연구위원) 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투기성 자금은 작년 11월의 한국통신주식 공개입찰 응찰금인 1조4천5백억원의 10배인 최대 14조5천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입찰보증금은 총입찰금액의 10%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정치는 실질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이동하거나 들어온 자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가 아니므로 실제 투기성 자금보다 다소 과대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은행권에 남아있는 비실명 예금은 1천7백55만계좌·5조 2천6백억원으로 지난 3월에 비해 81만계좌·9천4백억원이 줄었다. 이중 6월 말 현재 하나은행의 비실명 에금은 9만 계좌·4천억원으로 계좌당 평균 4백44만원이다.또 보함은행도 8만계좌·1천9백억원으로 계좌당 평균 2백37만원이다. 이는 은행중 비실명계좌가가장 많은 국민은행(2백18만 계좌·4천억원)에 비해 계좌당 평균 금액이 하나은행은 25배,보람은행은 13배 많은 것이다.
  • 중,외국인탈세 집중단속/새달부터 두달간 부당송금 등 실사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7∼8월 두달동안 외국인과 외국투자업체를 대상으로 소득누락,비용과대 계산,부당 해외송금 등의 방법을 통한 탈세를 집중 단속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조세협정을 체결한 30개국 이상 나라와 탈세범 체포를 위한 정보를 교환할 예정이다. 중국은 또 외국인 세무관리를 위해 세무공무원들을 특별교육시킬 예정이다. 국가세무총국은 지난해 3·4분기에 중국 16개 지역의 외국인 3만3천1백90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중 9천6백95명이 탈세하거나 소득을 낮춰 신고해 1천8백6만원(2백18만달러)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공모주 청약예금 1조6천억 감소/3월까지

    지난 해까지 증시활황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은행과 증권금융의 공모주 청약예금이 올 들어 고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30일 한국은행과 증권금융에 따르면 은행의 공모주 청약예금 잔액은 92년 말 1조8백39억원에서 93년 말 1조8천4백79억원,94년 말 6조6천3백26억원으로 급증했다.그러나 올 1월 말 6조6천1백45억원으로 1백81억원이 줄어든 데 이어 2월 말에는 5조5천2백18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9백27억원이,3월 말에는 5조2백53억원으로 4천9백65억원이 줄었다.올 들어 3개월만에 1조6천73억원이 줄어든 셈이다. 지난 1월 말 대출을 조건으로 유치한 공모주 예금을 예대상계(예대상계)토록 한은이 지시한데다,지난 2월 11일부터 은행의 공모주 청약예금 신규 가입자에게 공모주 배정을 없애고 기존 가입자에는 5월 11일부터 배정몫을 10%포인트에서 5%포인트로 낮추었기 때문이다.
  • 거양해운 매각무효/현대중 소송 기각

    서울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조홍은 부장판사)는 21일 현대중공업이 『포항제철의 계열사인 거양해운 주식 2백70만주를 정석기업등 한진중공업계열사에 매각하기로 한 2월18일의 계약은 무효』라고 낸 「낙찰자 임시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 「마약과의 전쟁」급하다(사설)

    대마초·히로뽕·아편 등 마약류사범이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대검찰청이 발표한 「94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올 1,2월 적발된 마약사범이 6백5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나 급증했다고 한다. 검찰이 마약류에 대한 본격단속을 실시한 89년이후 해마다 마약사범은 감소돼 왔었다.그러다 93년에 1백20%의 폭증이 있은뒤 올 상반기에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형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의료인 등 전문인과 고학력층·부유층을 중심으로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해 마약사범으로 적발된 의료인이 2백18명이나 된다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준다.약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마약류 상습자가 되는게 아니라 전문인들이 중독에 빠지는게 오늘의 마약류 남용실태다.전문직업인들이 순간의 쾌락에 손쉽게 빠져들고 있음을 뜻한다.마약은 개인의 파멸뿐 아니라 국가·사회에 엄청난 손실과 해독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는 심각하게 그 예방책을 논의해야만 한다. 최근 수년간 한국은 효과적인 마약퇴치운동으로 「유엔마약퇴치 모범국가」로 인정을 받았었다.90년부터 서울신문사가 추진해 온 「마약류 퇴치 범국민대행진」은 민간운동으로 큰 호응과 성과를 거두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마약밀수루트의 다변화에 따라 공급이 수월해져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은 이제 히로뽕의 「황금시장」으로 통하고 있을 정도다. 망국적 독소인 마약류의 퇴치에는 민·관의 부단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이 요청된다.당국은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수사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마약류 취급 병원의 관리도 철저히 해야한다.특히 대검·경찰·세관 등 수사기관의 수사비를 대폭 늘려 현실화해야 한다.세계곳곳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우리도 범국가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 외국인 연수생/21% 기업 이탈/통산부조사 결과

    외국인 기술연수생의 21%가 연수기업체로부터 이탈했다. 29일 통상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추천한 외국인 기술연수생(2만8백명)의 21%인 4천3백68명이 이탈했다.중국인 이탈자가 전체의 54.9%(2천3백96명)로 가장 많고 다음이 필리핀(5백9명) 미얀마(3백80명) 네팔(2백72명) 베트남(2백19명) 파키스탄(2백18명) 스리랑카(1백74명) 방글라데시(1백57명)의 순이다.
  • 경기대 이적서클 적발/김일성 찬양서적 탐독·불법시위

    ◎군인 6명 포함 13명 검거 경찰청 보안국은 17일 대학에서 이념서클을 결성,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한 경기도 경제학과 대학원생 송재환(27·가명)씨 등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방위병 노준창(25·가명)씨 등 군인 6명을 국군기무사령부에 인계했다. 송씨 등은 90년 3월 「경기대학 자주대오 활동가 조직」을 결성,최근까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찬양하는 내용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각종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김일성주차사상을 강령·규약으로 채택한뒤 북한방송을 녹음해 「김일성 신년사」 등 50여종의 이적 문건을 작성·배포했으며 「주체사상만세」라는 혈서를 써 조직에 총성을 맹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이적 문건 작성에 사용한 컴퓨터 2대와 디스켓 25장,이념도서 및 유인물 2백18종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 러 벌목장 탈출 북 근로자/유엔,「난민」 판정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최근 『러시아의 시베리아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근로자들은 국제적인 난민』이라고 판정한 것으로 확인됐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 2월18일 한국으로 귀순한 탈출 벌목공 김봉찬·전성철등 3명은 UNHCR 모스크바대표부에 의해 난민지위를 부여받아 한국 망명이 허용된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이 당국자는 『UNHCR이 김씨등의 신원과 귀순의사등을 엄격하게 심사한 뒤 국제적 난민지위를 부여했다』고 말하고 『유엔기구가 탈출 벌목공에 대해 객관성을 바탕으로 국제적 난민지위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그동안 강력히 제기해온 「납치주장」은 근거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 미「기초」74.5%정당참여 배제/「정당정치 본산」의 지방자치제실태

    ◎“탈정당화” 가속… 10년새 4.3% 늘어/“부패 심화·지역문제 개입 불요” 인식 미국의 민주정치는 정당,그것도 양당정치라고 말할만큼 정당정치가 잘 발달되어 왔다. 그러나 정당정치도 따지고 보면 카운티나 주단위 이상의 각종 선거에서는 정당이 중심이 되지만 막상 시·읍등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에 있어서는 정당의 참여가 크게 배제되고 있다. 94년도 미국인구통계국의 자료에 의하면 미전역 50개주에는 7만8천2백18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3천44개의 카운티(군,구),1만8천5백17개의 시·읍(시,빌리지,인코퍼레이티드 타운,버로우),1만6천9백91개의 타운·타운십,1만5천7백81개의 학교구,2만3천8백85개의 비학교특별구 등으로 되어 있다.우리처럼 행정단계가 전국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지역마다 다르다. 어쨌든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시·읍(Municipalities)이하 각종 선거의 경우 74·5%가 정당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으며 오직 25·5%만이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의 저명한 지방자치학자인테리 레너(듀켄스대),빅터 드센티스(노스 텍사스대)두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한 「미국지방자치단체에 있어 최근의 양상과 추세」(93년도 미지방자치단체연감 수록)논문에서 밝혀지고 있다. ○주민 발안 확산 이들 두 교수가 지난 91년 미국의 시·읍 7천1백4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은 지방자치단체선거에 있어서의 정당참여배제는 주민발안 등을 통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10년전인 지난 81년에 조사했을 때는 정당배제 70.2%,정당참여 29.8%로 나타났으며 5년뒤인 86년의 조사에서는 각기 72.6%,27.4%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지난 10년동안에 정당배제추세가 4·3%포인트나 늘어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에 있어 정당배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인구 2천5백명이하 자치구의 선거에서는 거의 정당이 배제되고 있다.다만 미국의 지역전통에 따라 이같은 정당참여 정도는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북서(몬태나·와이오밍주),태평양연안(캘리포니아·워싱턴·오리건주),남부대서양연안(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나이나·조지아·플로리다주),산악지역(유타·와이오밍·콜로라도주)은 90%이상이 정당배제를 하고 있다. 다만 수도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버지니아·메릴랜드·펜실베이니아주 등 중부대서양연안지역만은 88%가 기초자치단체의 선거에서도 정당참여제를 채택하고 있다.정당참여의 경우에도 공화,민주 등 정당소속의 후보자가 당후보로 나서려면 해당선거구나 지역의 당원들로부터 후보지명을 받아야 한다.말하자면 당의 공천후보는 당원들의 투표에 의해 공천을 받는 것이지 한국처럼 중앙당이나 지구당등 상위기관에서 낙점을 하는 방식은 한곳도 없다. 미국의 지방자치단체의 의원이나 단체장의 선거에서 이처럼 정당배제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같은 추세가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이 두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첫째는 대대적인 지방자치 개혁운동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2백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도 불과 40∼50년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에 정당이 적극 참여했다.그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시정이 해당지역 정당관계자들의 이해에 따라 영향을 받아 엽관주의,정실인사,이권개입 등 각종 부패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도,쓰레기 청소,골목포장,공원관리등 지역문제를 다루는 지방행정의 본질상 굳이 정당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봉사행정이 정도 지금도 미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이같은 개혁운동의 방향은 ▲전문행정가에 의한 지방행정▲선거의 정당참여 배제 ▲시의원 전부의 통합단일선거구제 ▲주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한 시장선출 대신에 시의회가 행정전문가를 선정 ▲주민발안제및 선거직의 임기전 소환제의 확대 등이다.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이 정치운동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시민봉사행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정당정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의 하나가 바로 시·읍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있어 정당배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당좌대출 금리 하락세/자금시장 안정 영향

    ◎은행 공모주예금도 1조원 줄어 자금시장이 안정되면서 당좌대출 금리와 그 한도소진율이 크게 낮아졌다.또 은행 공모주 예금 가입자에 대한 공모주 배정한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공모주 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이후 20일만에 잔액이 1조원 이상이나 줄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당좌대출 금리가 은행의 단기자금 조달금리와 연동되면서 연 19.7%(8대 시중은행 평균)까지 치솟았으나 지난 달 10일에는 연 16.14%,20일에는 13.58%로 떨어졌다.지난 달말에는 기업의 월말 자금수요로 연 16.11%로 소폭 올랐다. 시중자금 사정이 경색되면서 지난 1월 말 59.4%까지 올랐던 당좌대출의 한도소진율도 금리 상승으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자 점차 감소,지난 달 10일에는 50.8%,20일 43.2%,월말 자금수요기인 지난 달 말에는 49.7%로 낮아지는 추세이다. 한편 지난 연말부터 자금시장의 교란요인이었던 은행의 공모주 청약예금은 작년 말 6조6천3백26억원에서 올 1월 말 6조6천1백45억원으로 1백81억원 줄어든 데 이어 2월 말에는 5조5천2백18억원으로한 달만에 1조9백1억원이 줄었다. 특히 지난 1월27일 은행이 공모주 청약예금을 유치하면서 고객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예금과 상계토록 한은이 지시한 이후 2월 말까지 9천2백39억원이 대출금과 상계됐다.
  • 미 미사일방어 개발안/하원반대로 법안 수정

    【워싱턴 AP 연합】 미하원은 15일 공화당이 제출한 국가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 계획안을 부결시킴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하원은 이날 2백18대 2백11로 하원 공화당지도부가 제출한 원안에서 미사일방어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채택했다.
  • 히로뽕 상습투여/주부 등 4명구속

    【인천=김학준 기자】 인천지방검찰청은 8일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투여하거나 판매해온 김효순(40·인천시 남구 주안8동) 조정임(24·인천시 남구 주안3동)씨 등 가정주부 3명과 김종영(31·인천시 남구 주안6동)씨 등 모두 4명을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김종영씨의 부인 박연숙(27)씨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 가정주부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히로뽕이 살빼는데 특효가 있다는 꾐에 빠져 지금까지 판매책인 김종영씨로부터 히로뽕을 사들여 자신들의 집이나 여관,승용차 등에서 2∼18회에 걸쳐 히로뽕을 투여하거나 대마초를 피워온 혐의를 받고 있다.
  • 유럽·아주증시 회복세/폭락 하루만에 진정기미

    【런던·도쿄·상해·싱가포르 로이터 AFP 연합】 일본 간사이(관서) 대지진과 미국의 금리상승 전망,중국 최고 실권자 등소평의 사망 임박설등 악재가 겹쳐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던 세계증권시장은 24일 도쿄와 런던 싱가포르 등에서 회복세로 돌아서는등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도쿄 주식시장의 2백25종목 닛케이 평균지수는 24일 반등세로 돌아서면서 23일보다 1.5% 높은 폐장가를 기록했다. 닛케이지수는 이날 2백75.24포인트 오른 1만8천60.73포인트에 폐장했으며 전종목 주가지수도 19.62 포인트 오른 1천4백10·30포인트의 폐장가를 기록했다. 개장초 하락했던 런던증시의 주가지수도 일본 닛케이지수의 반등세에 힘입어 이날 상오장에 다소 오름세를 나타냈다. 싱가포르에서도 STI지수가 23일의 1천9백16.94포인트에서 2·18포인트 오른 1천9백19.12포인트를 기록,회복세를 보였다.STI지수는 전날 1백11.67포인트가 폭락,하루 하락폭으로는 4년여년만에 최대를 기록했었다. 이틀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홍콩증시에서도 이날 항생지수가 54.97포인트 오르면서 7천22.90포인트에 폐장했다.중개인들은 등소평의 건강악화설과 미 금리의 상승우려에 따라 투매된 물량을 투자가들이 매수하기 시작함에 따라 주가가 회복세를 찾은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방콕증시의 SET지수도 전날 폐장가보다 2.09포인트 오른 1천1백93.35포인트의 폐장가를 기록했다.거래량은 1억80만주 69억바트(2억7천7백만달러)로 소규모에 그쳤다. 그러나 상해증시에선 우량주를 중심으로 일본 투자가들의 팔자주문이 쏟아지면서 연일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상해 B지수는 이날 1.61포인트 떨어진 52.05포인트를 기록,지난 93년 기록했던 최저치 51.01에 육박했다고 중개인들은 말했다.
  • 부산공업대/합격 26명 불합격 처리

    ◎수험생 내신성적 전산입력 착오로/“구제방안 협의… 관련직원 징계”/학교측 【부산=이기철기자】 부산공업대가 지원자들의 내신성적 전산입력 착오로 26명(주간 7명,야간 19명)의 합격과 불합격이 뒤바뀐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4일 대학측에 따르면 지난 21일 합격자 발표후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23일 합격자들의 성적을 재점검한 결과 제어계측공학과에 지원한 배정윤군(20)등 합격권에 든 26명이 전산처리 잘못으로 불합격된 사실이 밝혀졌다. 배군의 경우 실제로는 30등으로 합격권에 들었으나 1백54등으로 처리돼 불합격됐고 영어과 정태순양(19)은 17등에서 2백18등,무역학과 김미성군(20)은 과수석에서 7백39등으로 잘못 처리돼 불합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이 당락이 뒤바뀐 것은 내신 1등급으로 수능성적이 전국 자연계열 석차 3%)이내인 지원자에 대해서는 1백6·7점의 내신점수를 주도록 돼있으나 전산처리 과정에서 석차 1∼3%이내 지원자에 대해서만 이 내신점수를 주도록 입력하는 바람에 석차 0·99%이내에 들어 수능성적이 더 우수한 지원자들이 모두 0점 처리돼 일어났다. 전산입력 잘못으로 내신점수가 0점 처리된 학생은 총 68명이 발생했으나 합격권에 들고도 불합격 처리된 지원자는 26명이라고 대학측은 밝혔다. 대학측은 이날 긴급 입시관리위를 열어 이같은 사실을 교육부에 보고하는 한편 불합격 처리된 26명의 구제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대학관계자는 『고의성 유무와 관계없이 관련 직원들을 모두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작년 사교육비 총17조4천억/교육개발원 교육투자실태 분석

    ◎직접교육비 34조중 51% 차지/총중고 과외비만 5조8천억/학생1인 연비용 국교 135만·대학 238만원 지난 한햇동안 교육에 투자된 사교육비는 GNP의 6%인 17조4천6백40억원으로 공교육비 16조7천5백78억원을 능가했으며 90년의 9조4천2백70억원보다 1·9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가운데 과외비는 5조8천4백47억원으로 전체 사교육비의 34%나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3일 「한국교육투자의 실태와 수익률분석」 연구결과를 발표,지난 한햇동안의 우리나라 총교육비는 43조2천3백65억원이며 이중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에 직접 투자된 직접교육비는 GNP의 11.2%인 34조2천2백18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연간 사교육비는 77년 4천1백10억원이던 것이 85년에는 4조6천9백60억원,90년 9조4천2백70억원,94년에는 17조4천6백40억원으로 77년에 비해서는 40배가,90년보다는 1·9배가 증가하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나타냈다. 또한 1인당 연간 사교육비는 유치원이 1백24만원,국교 1백35만원,중학교 1백53만원,고등학교 1백75만원,전문대 2백76만원,대학교 2백38만원으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증가했고 특히 전문대의 사교육비가 대학보다 높았다. 사교육비는 등록금과 육성회비 등 직접적인 교육경비를 제외한 교재·부교재 구입비,학용품비,입시학원비,개인과외비,특기및 재능학원비,단체활동비,교통비,하숙비 등을 포함한 기타의 교육비를 총괄하는 비용이다. 사교육비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학부모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고 이는 가계부담의 압박은 물론 국가재정운용의 효율성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82년이후 초·중·고교의 사교육비는 6∼9배나 증가한 반면 대학은 3∼5배의 증가에 머물렀다. 이는 바로 유치원과 국민학교 학생들의 특기과외와 중고생의 입시과외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사교육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과외비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교육개발원이 이번 연구를 위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3천2백35명의 76%인 2천4백67명이 과외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고 82·9%가과외를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사교육비와 함께 모의 교육비 부담을 더욱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공교육비중 등록금 등 사부담 부분과 사교육비를 더한 사부담 교육비이다. 직접교육비중 사부담교육비의 비중은 77년에서 85년사이에 62.9%에서 72.8%로 크게 증가했다가 94년에는 65.8%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3분의2 이상으로 비율이 높아 우리나라 교육비 구조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따져서 학생1명당 연간교육비는 유치원이 2백1만원,국민학교가 2백55만원,중학교가 2백74마원,고교가 3백5만원,전문대가 4백69만원,대학이 5백6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산출됐고 한 사람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데 드는 총비용은 현재의 물가로 계산하더라도 5천7백11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학생 1명의 월평균 교율비비용도 유치원 16만7천원,국민학교 21만2천원,중학교 22만8천원,고등학교 25만4천원,전문대 39만1천원,대학 46만6천원으로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가계지출액의 13.7∼38%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교육개발원은 사교육비의 증가가 교육비부담의 가중,국가자원의 비효율적 운영,사회불평등구조의 심화,학교교육에 대한 불신 등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사교육비 규모와 비중을 낮추는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발원은 따라서 ▲공부담재원의 규모를 확충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사교육비의 일부를 공교육비부문으로 흡수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별 교육재정의 합리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강구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 주가 나흘째 하락/지수 9백56.96

    주가가 하루 종일 출렁거리며 나흘째 내림세를 탔다.그러나 당국의 신축적인 통화관리와 주식 공급물량 조절,증권사의 순매수 결의 등 증시 진정책에 힘입어 폭락세는 크게 진정됐다. 17일 종합 주가지수는 전 날보다 0.92포인트 내린 9백56.96을 기록했다.거래량 3천2백86만주,거래대금 7천2백18억원으로 거래는 여전히 한산했다. 개장 초 증시 진정책이 전해지며 5포인트 이상의 오름세로 출발했다.오름 폭이 10포인트 이상 커졌으나 증시 진정책이 미흡하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며 대형주를 중심으로 매물을 내놓아 곧 내림세로 돌아섰다. 후장 들어 한 때 9백50선이 무너졌으나 장이 끝날 무렵 기관투자가들이 금융주와 멀티미디어(다중매체) 관련주를 집중 사들이면서 낙폭이 크게 좁아졌다.
  • 올해 공무원 1,800명 명예퇴직/작년보다 3백50명 늘려

    ◎분기마다 4백50명씩… 11일부터 접수 총무처는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변동인력의 해소를 위해 올해 분기별로 4백50명 안팎씩 모두 1천8백명의 공무원을 명예퇴직시킨다는 계획 아래 신청자격및 심사일정등을 6일 공고한다. 총무처는 우선 1/4분기 명예퇴직을 예년보다 한달가량 앞당겨 오는 11일부터 2월18일까지 희망자 접수를 받은 뒤 심사를 거쳐 3월31일까지 퇴직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2/4분기는 5월8일부터 20일까지 접수를 받아 6월30일까지 명예퇴직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전직등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개별 심사를 거쳐 일단 일반퇴직으로 처리한 뒤 추후 명예퇴직수당을 지급하고 명예특진까지 시킬 계획이다. 총무처는 지난 91년까지 해마다 2차례씩 7백∼8백명을 명예퇴직시켰고 92년부터는 해마다 분기별 4차례로 확대,92년 1천1백97명,93년 1천17명,94년 1천4백53명을 명예퇴직 처리했다. 총무처는 올해 정부조직 개편을 계기로 전직을 바라는 공무원들의 명예퇴직 기회를 늘리고 96년 철도청의 철도공사화와 97년 체신부의 우정기능을 전담하는 우정공사의 발족에 대비해 명예퇴직 인원을 지난해보다 3백50명쯤 늘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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