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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국도 18개 노선 2백18㎞/확장·포장 내년 완공

    전국의 기간국도 18개 노선이 내년에 완공된다. 건설교통부는 26일 내년에 총 8천8백79억원을 투입,안중∼발안,충주∼수안보,대전∼조치원,순천∼남원 등 기간국도 18개 노선 2백18.5㎞의 직선화 및 왕복 4차선 확·포장사업을 모두 완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노선별로 보면 국도 3호선 안중∼발안(12.8㎞)과 안중∼아산댐(12.4㎞)이 모두 완공돼 안중에서 아산댐까지 기간국도로 이어지고 충주∼상모(9.5㎞),상모∼수안보(8.0㎞)도 완공돼 충주에서 수안보까지 기간국도로 연결된다.
  • 하반기 경기전망 헷갈린다

    ◎산은 “3분기 호전… BSI 110으로 상승” 발표/최근 비관예측과 상반… 금주중 한은발표 주목 국내 경기가 하반기에는 보다 위축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오히려 좋아질 것이라는 의외의 조사결과도 나왔다. 산업은행이 24일 1천2백18개사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96년 3.4분기(7∼9월) 산업경기 전망」에 따르면 3.4분기의 제조업경기 BSI(기업실사지수)는 1백10으로 2.4분기의 1백4보다도 높다. BSI가 1백을 넘으면 경기를 좋게보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많다는 뜻이다.중화학공업 BSI는 1백22,경공업은 1백5로 조사됐다.대기업은 1백28,중견기업은 1백17,중소기업은 1백10으로 나타나 업종 및 기업 규모간의 명암은 여전했다. 업종별로는 시멘트(1백63),전기전자(1백32),기계(1백24),자동차(1백20) 등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고 종이제품(1백7),섬유(1백6),석유화학(98) 등은 낮은 편이었다. 3.4분기의 BSI가 높게 나타난 것은 조사기간이 총선직후인 4월21일부터 5월15일까지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현재처럼경상수지 적자폭 확대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 시점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한국은행은 이번주에 3.4분기의 BSI를 발표할 예정이나 산업은행의 경기호전 전망과는 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곽태헌 기자〉
  • 여소야대/3차례 모두 여대야소로 반전

    ◎13대 3당 합당… 14·15대선 당선자 영입 해방후 총 15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여소야대의 결과를 낳은 경우는 13대 이후 15대총선까지 내리 3차례. 총선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구도가 탄생한 것은 13대 총선때.지난 88년 4·26총선에서 집권 민정당은 과반수에 훨씬 못미치는 1백25석을 얻었다.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평민당은 70석을 얻어 제1당으로 급부상했으며 김영삼 현대통령의 민주당은 59석을 차지,제2야당으로 밀렸으며,김종필 현자민련 총재의 공화당은 35석을 얻었다.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90년1월 민주·공화당과의 합당을 추진,2백18석의 거대여당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이어 14대 총선은 여당에 두번째 여소야대의 시련을 안겨준다.92년 3·24총선에서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13대에 이어 다시 과반수에서 1석이 모자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자당 1백49석,민주당 97석,국민당 31석,신정당 1석,무소속 21석 등이었다.그러나 민자당은 총선후 무소속 당선자들을 영입,손쉽게 과반수를 넘겼다. 15대 총선은 세번째로 집권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선거.선거결과는 신한국당 1백39석,국민회의 79석,자민련 50석,민주당 15석,무소속 16석이었다.그러나 신한국당은 민주당과 무소속 당선자들에 대한 영입작업을 통해 15대 국회개원을 앞두고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다.〈박찬구 기자〉
  • 폐자재 활용 하천수질 정화한다/한국건설기술연,신기술 개발

    ◎타이어·콘크리트 등 넣어 정화시설 설치/설치비저렴·관리비도 안들어 “일석삼조” 폐타이어·폐콘크리트 등 처리가 곤란한 자원을 재활용한 「한국형」 하천수질정화기술이 개발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원장 유직형)과 경남기업(사장 김학용)이 공동연구로 개발한 이 기술은 우리나라의 하천에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SS(부유물질) 등이 많은 데 착안,이의 자정능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오염하천수를 침사지에 모아 자갈·폐타이어·폐콘크리트 등이 들어 있는 정화시설을 통과시켜 물을 맑게 하는 단순한 공정을 거친다.공정원리는 물리적 침전과 흡착,생물학적 산화분해를 통해 하천의 자정작용을 극대화시켰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영석 박사는 『정화시설에 폐타이어·폐콘크리트 등을 넣어 실험한 결과 오염물질처리효율이 평균 70%로 하천의 자정기능회복에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이 정화시설에 BOD농도 15.7(단위 ㎎/l)인 하천수를 통과시킨 결과 자갈형의 경우 9m 경과시 7.2,18m 경과시 5.4,유출시(27m경과) 4.6으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폐타이어형은 9m간격 이동거리마다 8.4,6.9,6.1로 낮아졌으며 폐콘크리트형은 7.5,6,5.4로 각각 낮아졌다. 부유물질도 자갈형에서는 유입시 농도 15.4(㎎/l)에서 9m 경과시 6.3,18m 지나면 5.1,유출시(27m) 3.8이었다.폐타이어형은 9.1,7.2,5.3이고 폐콘크리트형은 6.6,5.3,5로 각각 낮아져 정화효과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술은 특히 폐자재의 재활용으로 설치비용이 기존 하수처리장에 비해 20∼30%수준이고 유지관리비도 거의 들지 않아 상용화될 경우 오염하천수질의 정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육철수 기자〉
  • 어음부도 크게 줄었다/2월/「우성부도」 영향권 벗어나

    지난 2월 전국의 어음부도율이 1월이나 지난해 2월보다 크게 낮아졌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어음부도율은 0.14%로 1월의 0.21%나 지난해 2월의 0.19%에 비해 각각 0.07%포인트와 0.05%포인트가 떨어졌다.또 지난달 서울과 지방의 어음부도율이 각각 0.08%와 0.49%로 1월의 0.15%와 0.59%에 비해 각각 0.07%포인트와 0.10%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서울과 지방 기업들이 우성건설 부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지난달 부도업체(당좌거래 정지 기준)도 8백67개로 지난해 1월(7백75개) 이후 가장 낮았다.업종별로는 제조업 2백18개,건설업 1백13개,서비스업 5백14개로 1월보다 각각 35개,14개,1백18개가 줄었다.〈곽태헌 기자〉
  • “대만 독립 저지 추가 입력”/중 장성 5백명 건의

    【홍콩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 5백명이 중국공산당 및 중앙군사위원회에 대만독립을 타도하기위해 대만에 추가로 압력을 가하라는 건의서를 춘절(구정) 전날인 2월18일 정식으로 제출했다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성조일보가 10일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달 들어 계속되는 대만을 겨냥한 잇단 군사훈련은 해방군 장군들의 이같이 강력한 압력에 따른 결과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5백명의 장군들은 연대서명한 이 건의서에서 『해방군은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죽음으로써」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대만독립을 저지하기위해 「각종 방법」을 모두 다 동원하라고 촉구했다.
  • “제2롯데 토초세 부당”/대법/원고승소 판결 원심 확정

    ◎법적규제로 착공못한 사실 인정 서울 잠실의 제2 롯데월드 부지에 대해 부과됐던 2백18억원의 토지초과이득세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지창권 대법관)는 10일 롯데물산 등 롯데그룹 계열 3개사가 서울 잠실세무서를 상대로 낸 토지초과이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이로써 롯데는 제2롯데월드 부지와 관련,지난 93년 11월 대법원에서 1백28억원의 취득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 이어 토초세 부분도 승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땅을 취득한 후 제2롯데월드 공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관계 법령의 각종 제한과 행정 절차의 지연 등으로 착공하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제2롯데월드 부지는 토초세법의 유휴토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롯데는 지난 88년 1월 잠실 제2롯데월드 부지를 매입한 뒤 토초세 부과기준일인 90년 12월30일까지 착공하지 못해,잠실세무서로부터 토초세를 부과받자 지난 92년 소송을 냈다.
  • 계파 지분 무시… 「DJ친정」강화/국민회의 15대총선 공천 내용

    ◎30∼40대가 42%… 언론·재야 대폭 배려/35곳 공천자 못내… 「지역당」 한계 노출 국민회의는 3일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할 2백18명의 공천자를 확정,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출진진용을 갖췄다.이제 6일 후원회 결성에 이어 7일 공천자대회와 선대위 발족 및 공식 가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총선체제에 들어간다. 공천결과,그동안 관심을 모았던 호남 현역의원 물갈이는 8개 지역구,9명의 의원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비록 돌발변수가 겹친 탓이긴 하지만 4선의 중진인 신순범(연천)·유준상(보성·화순),3선의 최락도(김제),재선의 오탄의원(전주 덕진)이 탈락하는 등 예상보다 폭이 컸다.여기에 민주당에 잔류했거나 위원장이 지역구를 옮긴 지역 7곳을 합치면 15개 지역구,16명에 이른다. 이같이 국민회의의 물갈이 폭은 현역의원들에 대한 지역여론을 감안한 때문으로 분석된다.호남이 「DJ(김대중 총재)의 그늘」에서 안주하는 구시대 정치인들의 텃밭이냐는 일부 비난과 20억원 수수 자백이후 비판적인 지역여론을 돌려놓을 필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30∼40대 젊은 후보를 91명(42%)이나 공천했고,장성원 전 동아일보논설위원(김제)등 언론인 11명,재야인사 30명등 참신성과 전문성을 크게 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천의 또다른 특징은 중진들의 몫을 거의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강남갑에 이종찬 부총재가 추천한 강동연 전 사우디공사,광명을에 안동선 지도위원이 미는 김은호 백제상사대표와 같이 소폭의 안배 만을 허용,대선을 겨냥한 김총재의 당내 입지를 대폭 강화했다.공천발표가 이뤄지자마자 일각에서 「1인전횡의 공천」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이 무소속 출마·탈당·비리공개 등 극약처방을 쓸 경우,국민회의가 입게 될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유준상 지도위원은 이미 공천심사 결과에 불복,정면대응 의지를 밝혔다. 국민회의는 또 이번 공천에서 35개 지역에 공천자를 내지못하는 「지역당」이라는 취약점을 다시 노출했다.당 관계자들은 『총선후를 대비해 무소속 후보 지원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현실적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공천이모저모/일부의원 막판뒤집기… 이변 속출/보안 철저 유지… 언론과 추격전도/탈락자 반발대비 경찰에 “SOS” 3일 발표된 국민회의 공천결과 공천탈락이 확실시되던 일부 의원들이 막판뒤집기 끝에 구제되는가 하면 뜻밖의 인물이 공천되는 등 이변을 연출했다.지난 1일부터 합숙 공천심사에 들어간 위원들은 보안을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언론과의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공천심사 첫날인 1일 서울 시내 워커힐 호텔빌라에서 합숙심사에 들어갔으나 장소가 노출되면서 경기도 양주군의 모호텔로 개인적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들은 취재진을 피해 비상구를 통해 호텔밖으로 빠져 나가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했다.장소선정 등 현장지휘는 권노갑 지도위원이 맡았다는 후문.심사위원들은 3일 정오까지 당 공조직과 외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한 자료를 토대로 심사작업을 완료한 뒤 해산했다.서울로 올라온 조순형 심사위원장은 서울 모호텔에서 묵고있는 김대중 총재에게 그동안의 심사결과를 보고. ○…공천탈락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길재의원(광주 북구을)이 최종공천자로 발표되자,한 당직자는 『2일 이해찬·김근태의원 등 재야중진들이 김총재에게 간곡한 부탁을 해 구제됐다』고 전했다. 공천에서 탈락된 유준상의원(전남 보성·화순)은 지지자 50여명과 당사로 몰려와 김총재 측근인 박지원 대변인 등에게 격렬한 항의했다.유의원은 『이번 공천은 김총재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폭탄선언도 불사하겠다』고 흥분했다. 국민회의가 당초 발표일정을 하루 앞당긴 3일로 한 것도 반발의원들의 항의와 언론의 비판을 최소화하기 위해 휴일을 택했다는 후문.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며 전남 나주와 대구 수성에 각각 공천을 신청한 정호선·박남희 교수부부는 남편만 공천돼 희비가 교차.경북대 총장의 지원을 업은 정교수는 불출마를 선언한 김장곤의원의 적극 천거로 공천에 성공했지만 박교수는 남편의 선거운동을 돕도록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 ○…국민회의는 공천탈락에 반발한 일부 의원 및 공천신청자들의 항의를 우려해 경찰에 당사 보호를 요청,긴급 출동한 경찰 기동타격대 2백50여명이 정문 등을 지키며 출입자들을 일일이 검문하기도.
  • 국민회의­총선후보 218명 확정/호남지역 현역의원 9명 교체

    국민회의는 3일 서울 강동갑에 김형래 전 의원,강남갑에 강동연 전 사우디공사,광주 서구에 정동채 총재비서실장을 공천하는등 제15대 총선에 출마할 2백18명의 공천자 명단을 발표했다. 국민회의는 이번 공천에서 그동안 관심을 모은 호남지역 물갈이에 착수,9명의 현역의원을 전격 교체 했다.교체된 의원은 전주 덕진의 오탄,김제의 최락도,부안의 이희천,나주 김장곤,여천 신순범,영암·장흥 유인학·이영권,보성·화순 유준상,담양·장성 박태영의원 등이다. 대신 전주 덕진에 정동영 전MBC앵커,김제에 장성원 전 동아일보 편집부국장,부안에 김진배 전 의원,나주에 정호선 경북대교수,여천에 김성곤 전 영산대 교수,영암·장흥에 김옥두 의원,보성·화순에 박찬주 변호사,담양·장성에 국장근 전 전남도의회 의장을 각각 공천했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서울지역 조직책에 대해서는 한 명도 교체하지 않았다. 또 현역의원의 민주당 잔류로 공석이던 전북 임실·순창에는 박정훈 의원,전남 무안에는 배종무 전 목포대 총장을 공천했으며 서울서초을에 출마한 정상용 의원의 광주 서구에는 정동채 총재비서실장을 임명했다.
  • 선우중호·이기준교수 서울대 총장후보로

    서울대 제 21대 총장 최종후보로 현 부총장인 선우중호교수(56·토목공학)와 전 공대학장 이기준교수(58·화학공학)등 2명이 선출됐다. 이날 상오 8시부터 낮 12시까지 4시간동안 서울대 관악·연건·수원캠퍼스 등 세곳의 투표소에서 두명을 연기명으로 적는 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유효투표 2천2백18표 가운데 선우교수가 5백87표를 얻어 1위를,이교수가 16표차인 5백71표로 2위를 차지했다.
  • 중국,기술·장비 수입 218% 증가/작년

    ◎130억달러 기록… 외국차관 이용 활발 【도쿄 AP 연합】 중국은 지난해 94년에 비해 2백18% 늘어난 1백30억3천만달러 어치의 기술 및 장비를 수입했다고 중국 대외무역경제협력부의 한 고위관리가 30일 밝혔다. 이 관리는 이날 회견에서 지난해 중국의 기술 및 장비도입 규모가 이처럼 크게 늘어난 것은 중국정부가 작년 기술도입예산으로 94년(96억달러)보다 49% 증가한 1백43억달러를 배정한데 기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함께 중국내 많은 대기업들은 주로 민간금융과 외국수출차관등을 이용,외국기술을 구매하고 있다고 이 관리는 말했다. 한편 지난해 중국의 교역량은 전년대비 19% 증가한 2천8백8억5천만달러로 수출은 23% 늘어난 1천4백87억7천만달러 그리고 수입은 14% 감소한 1천3백20억8천만달러였던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를 나라별로 살펴보면 일본이 5백74억달러로 가장 많고 ▲홍콩=4백58억달러 ▲미국=4백8억3천만달러 ▲유럽연합(EU)=4백3억4천만달러 ▲동남아=1백84억4천만달러 ▲대만=1백78억8천만달러 ▲한국=1백69억8천만달러였던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 얼음낚시/짜릿한 손맛에 추위도 잊고…

    ◎2월말까지 시즌… 구멍직경 20㎝ 적당/강원 반계지­얼음두께 10㎝… 씨알 굵고 입어료 없어/충남 대호지­입질 잦은편… 지류엔 사성수로 찾기를 얼음낚시가 제철을 맞았다. 얼음에 구멍을 내고 낚시대를 드리운 채 좌대에 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얼음낚시.태공들은 추위를 잊고 신선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말부터 한파가 자주 몰아치면서 강원권에서 시작된 얼음낚시는 이달 중순부터 중부권과 경상권까지 확대돼 2월 말까지 본격적으로 시즌에 들어가게 된다. 기상청도 올 겨울이 예년에 비해 춥고 길 것으로 내다봐 얼음낚시를 즐기려는 꾼들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전국낚시연합회 권범로씨(33)는 『강원도 횡성군 반계지가 두께 10㎝정도 언데다 씨알이 굵고 입어료가 없어 주말이면 꾼들의 발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면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낚시터로 꼽았다. 그는 충북 괴산의 칠성지와 신항지,사리지 등도 얼음상태가 좋고 입질이 잦아 재미를 안겨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강화권은 북쪽지역이면서도 결빙이 아직 불완전하고 춘천의 반송지와 진해지는 얼음이 단단하나 조황이 나빠 중순이 지나야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권 상주·의성의 중덕지와 가음지도 중순 이후 본궤도에 올라 설 연휴(2월18∼20일)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얼음낚시의 최대 명소는 강원도 경포호와 충남 대호지.경포호는 대부분이 갈대숲이며 수심도 1m안팎으로 천혜의 어자원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이 때문에 안전사고의 부담이 적은 데다 고른 조황을 보여 해마다 1월 중순부터 꾼들이 몰리는 곳이다. 대호지는 낚시터의 범위가 넓을 뿐만아니라 얼음낚시에서도 입질이 잦아 기대가 모아지는 곳.대호만 지류수로 가운데 사성수로권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권범로씨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가능한한 낚시회 등을 통한 단체낚시가 바람직하며 구명장비나 로프 등을 챙겨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얼음두께가 최소한 7㎝이상 되는지 확인해야하며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구멍의 크기는 직경 20㎝,구멍간의 간격은 1m이상 유지하는 것이 좋다. 전국낚시연합회(02­747­0501)
  • 서울대 경쟁률 사상최고 될듯/원서접수 첫날

    ◎78개 모집단위 정원 넘어/연·고대 인기학과도 모두 초과/97학년부터 「3배수」 이내 자격제한 검토­서울대 2일 연세대 고려대 등 17개 대학에 이어 서울대 서강대 숙명여대 등 88개 대학이 원서접수에 들어간 3일 복수지원이 가능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등 주요 대학은 지원자수가 정원을 넘은 반면 나머지 대부분 대학들은 미달되는 「지원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원서접수 첫날인 이날 서울대의 원서접수결과 소신 지원자들이 대거 몰려 5천45명 모집정원에 7천1백94명이 지원,1.4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첫날 1천9명의 지원자에 비해 무려 7배가 많은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은 서울대의 최종 경쟁률이 지난해의 2.26대 1을 훨씬 웃도는 5∼6대 1 정도로 입시 사상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1백개 모집단위 가운데 78개 모집단위가 이날 정원을 넘어섰다. 학과별로는 농경제학과가 40명 모집에 1백76명이 지원,4.4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소비자아동학과가 40명 모집에 1백68명이 지원,4.2대 1을 기록했다. 인문대학에서는 종교학과 3.45대 1,서문학과 3.35대 1,언어학과 3.2대 1,고고미술사학과 3.2대 1로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사회과학대학은 지리학과 3.97대 1,사회복지학과 2.54대 1,인류학과 2.18대 1,정치학과 1.4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법학과는 2백70명 모집에 3백23명이 지원,1.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원서접수 이틀째인 연세대는 3천2백58명 모집에 5천8백78명이 지원해 1.8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성악과 4.83대 1을 비롯해 의예과 4.10대 1,사회복지학과 4.04대 1,치의예과 3.46대 1 등을 기록했다.36개 모집단위 가운데 3개는 미달됐다. 고려대는 4천83명 모집에 7천2백89명이 지원,평균 1.7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학과별로는 토목환경공학과가 56명 모집에 2백62명이 몰려 4.6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가운데 42개학과가 정원을 넘어섰으며 16학과는 정원에 미달됐다. 서울대는 신입생 모집원서접수 첫날인 3일부터 모집정원을 넘어서는 등 올 입시의 경쟁률이 최소 5대1을 넘는 사상초유의 높은 경쟁률이 예상되자 97학년도부터는 「예비사정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비사정제도는 수능성적과 내신성적 등을 기준으로 3배수 정도의 수험생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울대는 이에 대한 구체적 규정을 다음달 말까지 확정할 방침이다.
  • 일 실업률 최악/42년만에/실직 11월 3.4% 218만명

    ◎“기업구조개편 겹쳐 개선 비관적”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총무청은 26일 지난 11월 일본의 완전실업률이 10월 보다 0.2% 포인트 오른 3.4%를 기록,53년 이래 최악의 실업률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실업자는 2백18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33만명이 늘었다.여성의 경우 실업률이 3.3%로 지난달과 차이가 없었으나 남성의 실업률이 0.2% 악화,1백32만명을 기록했다. 실업률을 연령별로 보면 15∼24세가 6.0%,25∼34세가 4.0%로 젊은층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총무청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전체적으로 어려운 고용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전직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젊은이들이 기업체의 구조재편(리스트럭처링)으로 새로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노동성의 사이토 구니히코 사무차관은 『대단히 어려우며 앞으로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실업률 개선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 5·16과 제4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9)

    ◎무력으로 장기정권 인수… 합법 권력장악 추진/민정이양선언 파기… 유신까지 18년 집권 1961년 5월16일 상오 3시,한강 쪽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 그 순간을 기다린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나른한 봄밤을 깊은 잠으로 보내고 깨어났을 때 새벽에 바뀐 불행한 역사 현실을 알아차렸다.이날 상오 5시 KBS 첫 방송이 정규프로를 접어둔채 성공한 쿠데타 소식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데타 주역은 이날부터 18년을 독재권력 정상에 군림한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었다.그리고 해병대 사령관 김동하 소장과 김종필 중령등이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군사쿠데타에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이 들러리를 섰다.장도영은 쿠데타가 성공한 첫 날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국민의 기본 권리를 묶어버린 혁명공약과 각종 포고문이 그의 이름으로 시간시간 전파를 탔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유엔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은 쿠데타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진압의사를 밝혔다.그러나 윤보선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매그루더의 쿠데타 저지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미 국무성도 군사혁명위원회 지도자들의 반공친미성향을 긍정적으로 주목했다.이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미국의 이익과 엇갈리지 않는 중요한 요소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리 박탈 군사혁명위는 쿠데타 첫날 포고령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이어 다음날은 장면정권을 정식 인수했다고 밝혔다.군사혁명위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최고회의는 6월6일 공포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라 최고권력기구로 등장했다.이와는 별도로 5월20일 장도영을 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이 출범한데 이어 부정축재처리위원회와 혁명재판소,혁명검찰부가 설치되었다. 군사쿠데타는 군인들이 장악한 권력 그 자체보다 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그 행동은 목적을 달성한 이후 병영으로 돌아가는 중재자형과 장기간 공공연히 정치에 간여하는 감독자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당시 한국의 군부도 초기에는 혁명과업을 2년내에 완수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주변의 소수 장교들은 군정하에서 장기집권 계획을 세웠다.그 계획의 하나가 최고회의 직속의 중앙정보부(중정) 창설로 나타났다.미국의 CIA를 표방한 것이라고 하나 성격이 전혀 달랐던 중정은 창설 초기부터 무소불위의 감독자 증후군을 다양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1961년 6월에 창설한 중정은 막강한 권부의 핵으로 민주공화당(민주공화당·공화당) 창당을 위한 사전조직을 주도하는등 장기집권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공화당 창당은 19 61년 8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2년내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한 이후 비밀스럽게 추진되었다.그 정당의 골격은 군사혁명 정부 2년간 통치에 이어 계속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패권정당이었다.그러니까 군부는 혁명과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군인이 예편한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군부는 이를 끝내 실현해냈다.군사혁명 포고령 제4호로이른바 구시대 정치인들의 발목을 모두 잡아두었던 군사정권은 그것도 공화당 사전 조직으로 먼저 뛰었다. 군사정부는 1962년 11월 민정이양을 위한 헌법개정안을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의결하고 이를 12월17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했다.12월12일 국민투표를 거친 개헌안을 정식 가결한 최고회의는 1963년 1월1일 포고령으로 묶었던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없애버렸다.1년7개월만에 정치활동이 재개된 것이다.그러나 오랫동안 휴면기를 살았던 기성 정치인들은 뒤늦게 스타트라인에 서야하는 불리한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공화당은 63년 2월26일 김종필이 사전조직한 재건동지회를 기반으로 창당되었다. 그러면 군사정권의 정상 박정희 장군은 약속대로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가.물론 아니다.그는 1963년 2월18일 민정불참을 선언하고 선서식을 일단 갖기는 했다.그러나 1주일뒤 원주발언에서 자신의 민정불참 선서에 대해 부정시각을 드러냈다.이어 3월16일 현시국은 과도적 군정이 필요하기때문에 4년간 군정연장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그의 폭탄선언이 나왔다.그는 이 선언을 자신의 민정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는 계기로 삼아 4·8성명을 내놓았다. ○헌정 짓밟은 반역 기록 그해 5월27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박정희 장군은 8월13일 지포리에서 군복을 벗는 전역식을 가졌다.대장 계급장을 단 전역식에서 「나 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남겼지만 그 아류의 정치군인들도 뒷날 네 개의 별을 달고 나서 정권을 잡는 전철을 밟았다.그래서 5·16군사쿠데타 연결선상의 군사정권이 장장 30여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거니와 헌정질서를 뒤흔든 반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떻든 박정희 장군은 1963년 10월15일 대통령선거에서 범 재야세력의 민정당 후보 윤보선을 겨우 15만표차로 누르고 신승했다.윤보선과 또 한차례 격돌을 벌인 대통령 박정희 장군은 1969년 9월14일 국회 변칙개헌으로 3선을 향해 줄달음쳤다.그리고 한 차례 더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서 1972년 10월17일 영구집권으로 가는 유신을 선포했다.박정희 정권의 제4공화국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상용 문화부부차장 ▲김성호 문화부부기자 ▲김영중 조사부 기자 ◎「5·16성명」 미국무성 보고서/주한 미대표부 이한림 장군 충고로 쿠데타 반대/본국과 협의없어 “합법정부 지지” 표명/워싱턴 명령에 「간섭」 배제… 경비만 강화 한국에서 박정희 소장이 이끈 5·16 군사쿠데타와 당시 미국의 관계를 확인하는 2건의 새로운 문서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에 의해 미 워싱턴 케네디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이들 문서는 1961년 5월16일 쿠데타 첫날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미국대표부 성명의 배경」과 11월28일 박정희 장군이 맥아더 원수에게 보낸 친서 등으로 되어있다.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 미국대표부 성명서의 배경」은 5·16당일 M 그린 주한미대사 대리와 C B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우선 거론했다.이들의 쿠데타 반대성명은 국무성과 사전협의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쿠데타 반대성명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그 배경은 매그루더의 해명을 인용한 것으로,쿠데타 반대성명은 한반도 군사분계선 방위담당 지휘관인 한국군 1군사령관 이한림의 충고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주한미대리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의 성명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직접 반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다만 「한국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 합법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담았을 뿐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되어있다.그 이후 매그루더는 명령에 따라 군사쿠데타에 간섭하지 않고 경비강화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서에 기록했다. 이밖에 또 다른 문서 박정희 장군의 친서에는 맥아더 원수에게 전하는 감사의 뜻을 담았다.1961년 11월14일∼25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최고회의 의장자격으로 보낸 것이다.뉴프론티어의 기수를 자처한 케네디 대통령과의 회담 등을 통해 한국 군사정부가 지지를 받기까지 미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6공 비자금 파문­동아투금 어떤 회사

    ◎부실채권 없는 단자업계 「작은 거인」/이북·PK출신 설립… 소유구조 베일속/82년 출범후 급성장… 실명제 위반 1호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2백68억원이 추가로 확인된 동아투자금융은 「2금융권의 신한은행」으로 불릴만큼 잘나가는 투금사다. 82년 설립 이후 부실채권 하나없는 놀라운 경영과 완벽한 기업분석으로 단자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고속성장을 해왔다.93년 2백1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지난 결산기에는 1백6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금융실명제위반 1호라는 불명예가 각인돼있다.93년 8월 17일 고객 이모씨의 부탁을 받고 실명제 실시후 가명으로 개설됐던 8억5천만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종합통장을 실명제 실시전에 실명으로 전환한 것처럼 전산조작한 사실이 적발돼 장한규 당시 사장과 배진성 전무 등 임직원 7명이 검찰에 고발됐었다.이 사건으로 동아투금의 급성장에 의문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82년 12월 금융통화운영위원인 추인석씨가 이북출신과 부산경남 지역 실업인의 자금을 모아 세운동아투금은 대주주가 없는 소액다주주라는 소유구조로 처음부터 관심을 끌었다.공화당 원내 총무와 IOC위원을 지낸 고 김택수씨 유족과 서울마포가든호텔 이정구회장을 대주주로,이준용 대림그룹 회장,고정택 동아서적 회장,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이 창립멤버로 참여했지만 최근에야 한일은행이 실질 대주주로 밝혀졌을만큼 철저히 비밀에 가려있었다. 한편 동아투금의 비자금에 못지않게 비운의 금융인 장한규 아세아종합금융 사장 내정자(58)에게도 관심이 쏠린다.그의 「오뚝이 인생」은 80년 한일은행 광교지점장 당시 부하직원이 사채업자와 말다툼끝에 때려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81년 대한항공 이사로 옮겼다가 동아투금이 생기면서 82년 부사장으로 금융계에 복귀했고 89년 사장으로 승진했다가 93년 실명제 위반사건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5월 대림그룹 계열의 서울증권 사장으로 내정됐으나 실명제위반 전력시비로 고배를 마셨다.사장 선임 3일만이었다.현재 아세아종금 사장으로 내정돼 23일부터 출근하고 있으나이번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어음관리계좌란/만기되면 예치기간 자동연장/「검은 돈」 숨기기엔 최적 상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2백68억원이 예치됐던 어음관리계좌(CMA)는 투자금융사 상품 중 「검은 돈」이 잘 숨어들 수 있는 상품이다. 만기가 돼 별도 연락을 않더라도 예치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데다 수익률도 높아 비자금 예치장소로 적격이다. CMA는 투금사가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수탁받아 이를 기업어음(CP)과 단기 국·공채 등에 운용해 얻은 수익을 돌려주는 고유상품이다. 최저 거래단외가 4백만원 이상(지방 투금사는 2백만원)으로 하루만 예치해도 실적배당이 있으며 최장 만기일은 1백80일로 짧다. 1백80일 가입했을 경우 세후 수익률이 연 11%쯤 된다. 은행의 저축예그처럼 입·출금이 자유롭고 만기일이 돼서 자동연장할 경우 복리식으로 이자를 계산해주는 장점이 있다.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은 91년 5월부터 실명제 전인 93년 2월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입금됐는 데 이는 CMA를 잘아는 동아투금의 임직원이 자신들의 이름을 빌려주고 1∼5억원씩 쪼개 입금했가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현재 CMA의 수신액은 잔고기준으로 투금사 전체에 총8조5천9백99억원이다.
  • 군병력 4대강 수질오염 감시 2천2백건 적발/국방부 국감자료

    군당국이 지난해 4월부터 12월말까지 병력 5만4천명을 투입,4대강 유역 수질오염에 대한 감시활동을 전개한 결과 모두 2천2백18건의 위반행위를 적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 소속 국민회의 임복진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강수계에서 8백78건이 적발돼 가장 많았고 낙동강 8백49건,금강 2백87건,영산강 2백4건의 순으로 집계됐다.
  • 내년 공휴일 총 67일/설연휴 3·추석 4일(조약돌)

    ○…병자년인 1996년에는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이 67일로 올해와 같다.최근 시중에 나온 내년도 달력에 따르면 96년에는 1월1일이 월요일로 시작,맨 마지막 날인 12월31일이 화요일로 끝나기까지 모두 67일의 공휴일이 있고 이중 어린이날(5월5일)은 일요일과 겹친다. 또 내년에는 설이 2월19일,추석은 9월27일로 올해보다 각각 19일,18일씩 늦게 오며 올해 4일간이었던 설연휴는 3일(2월18∼20일)로 줄어들고 올해 3일간이던 추석연휴는 4일(9월26∼29일)로 늘어난다.
  • 전쟁포로(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6)

    ◎미­북한,송환방법 싸고 2년간 첨예 대립/이 대통령,반핵포로 2만여명 전격 석방 1951년 7월 8일 개성회담을 시작으로 2년간 지속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은 포로문제였다.한국전쟁에서 독특한 양상을 표출한 포로문제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까지 비화됐다.그래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이 포로문제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난항을 거듭했다. 북한은 포로문제를 불리해진 전황정비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또 전쟁 조기 종료를 바란 미국 주축의 유엔은 휴전회담에서 북한측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전세가 아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한국전쟁을 통일의 기회로 여겼던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부터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특히 포로문제에 있어서 유엔 협상대표들이 북한측의 요구를 수용하자 마침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전에서 포로문제가 복잡하게 꼬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여기에 대한 대답은 유엔군에 생포된 포로의 성분이다.생포된 공산측 포로중에는 북한에 의해 강제 징집된 수많은 남한출신과 함께 장개석의 국부군 출신 중공군이 끼어 있었다.이에따라 휴전회담에서 포로송환문제가 거론되자 이들이 북한과 중공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중 송환거부자 급증 미국은 휴전회담이 개막되기 전인 7월에 접어들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당시 미 육군 심리전감 매클루어 준장은 콜린스 참모총장에게 정전이 될 경우 국부군 출신 포로들을 대만으로 보낼 것을 건의해놓고 있는 상태였다.워싱턴에서는 51년 가을내내 포로문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그러나 자원송환과 강제송환,1대1교환과 전체대 전체 교환,인도주의적인 입장과 제네바협정 준수가 엇갈려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해 10월 판문점에서 협상이 재개됐으나 협상 벽두부터 북한측은 휴전협정 조인즉시 양측의 모든 포로들을 석방하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그러면서도 북한측이 제시한 포로 숫자도 터무니 없게 축소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유엔군은 공산군 포로 13만2천4백74명(중공군 2만7백명)의 명단을 제출하면서 민간인 수용자로 별도 격리 수용한 3만7천명이 더 있다고 미리 밝혀두었다. 반면 공산측은 한국군 7천1백42명과 유엔군 4천4백17명을 합쳐 고작 1만1천5백59명의 포로숫자를 제시했다.북한측이 한달전 평양방송을 통해 주장한 포로수가 6만5천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유엔군측은 그 때까지 실종인원을 한국군 8만8천명,미군 1만1천5백명 이상으로 파악해 놓고 있었다. 휴전회담은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한채 51년을 마감했다.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양상이 달라져 양측이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나왔다.19 52년 1월2일 회담에서 유엔군측 대표 R E 리비 미 해군 소장은 자원송환 원칙을 강력히 담은 포로교환을 제안하고 나섰다.공산군측은 이를 즉각 거절했다.이무렵 워싱턴에서는 자원송환의 원칙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꾸었다.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는 강경론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송환원칙으로 인해 협상이 교착되자 쌍방은 세부적인 사항의 타결을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는 듯 했다.3월5일 공산측은 전년도 12월18일 교환된 명단에 입각한 송환을 제의하면서 꼬리를 달았다.전선에서 석방했다는 유엔군측 포로 5만여명의 행방을 유엔군이 묻지 않는다면 유엔군이 억류하고 있는 3만7천명은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었다.유엔군측은 이미 명단을 제출한 공산군 포로 13만2천여명에 대한 조사결과 겨우 7만명이 송환을 원한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공산측은 이를 유엔군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 회담은 또 교착상태에 빠졌다.4월28일 유엔군측은 일괄타결안을 제시하고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과 미 트루먼 대통령은 각각 성명을 내놓았다.유엔군측이 제시한 일괄 타결안에는 공산측이 통고한 송환가능 유엔군 포로 1만2천여명을 인정하고 송환을 희망하는 유엔군 억류 공산군 포로 3만여명과 교환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당시의 분위기를 볼때 상당히 완화된 이 조건은 공산군측에 실리를 넘겨준 것이었다. ○공산포로,소장 인질로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5월7일 거제도 제76포로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공산포로들에 의해 피랍되면서 공산측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도드 준장을 인질로 잡은 공산포로들은 포로수용소측에 ▲독가스 및 세균무기 사용,원자탄 실험중지 ▲불법 부당한 인민군과 중공지원군의 자원송환 즉각 중지 ▲수천명의 포로를 재무장시키려는 강제조사 중지▲포로대표단 구성 승인등을 요구했다.도드준장 후임인 새 포로수용소장 C F 콜슨 준장은 포로들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공산측은 콜슨 준장의 회신내용을 들어 유엔군측이 지금까지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학대하고 세균전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선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유엔군측은 10월8일 마침내 최종안을 제출했으나 공산군측이 거부함으로써 협상은 끝이났다.이후 10월1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포로문제를 다시 다루어 휴전문제가 유엔으로 옮겨갔다.유엔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스위스,스웨덴등 4개국으로 포로송환위원회를 구성해 본국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그리고 모든 포로가 선택의 권리를 갖고 90일의 시한을 넘기고도 결정하지 못한 비송환자들은 휴전회담에서 위임한 정치회담에 이양하자는 인도의 절충안이 채택됐다.그러나 공산군측은 기본적으로 자원송환을 지지하는 유엔결의안을 수락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1953년 1월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서고 3월에는 소련수상 스탈린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판문점 연락장교회의를 통해 병상포로교환에 우선 합의했다.이에따라 4월26일 판문점에서 양측의 대표단 전원이 만났으나 회담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미국정부는 5월25일 회담대표자회의를 통해 최종안을 전달했다. 이 최종안은 6월4일 회의에서 약간 수정됐지만 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휴전조인후 2개월내에 송환완료하고 잔여포로에 대해서는 그후 90일간의 설득기간을 갖도록 한다는 내용을 일단 도출해냈다.또 30일이내에 송환거부 포로문제를 정치회담에서 처리하되 합의를 보지못한 해당포로는 민간인 신분으로 변경키로 합의했다.민간인이 된 포로들은 뒷날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의해 한국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향하는 운명이 결정되었다. ○첫 석방계획은 실패 그로부터 14일후인 6월18일 자정 남한에 수용됐던 반공포로 2만6천4백24명이 국군의 도움으로 수용소를 탈출했다.이른바 반공포로 석방으로 불리는 이 한국판 엑서도스는 이승만 대통령이 결정했다.유엔군과 공산군간에 휴전회담이 본격 진행되자 휴전반대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이승만 대통령은 10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등 군 수뇌들을 불러들였다.이 자리에서 반공포로 석방문제를 검토하고 다음날 정오 이를 시행토록 명령했다.그러나 한국군 병력배치등 준비미흡으로 첫 계획은 실패하고 1주일뒤인 18일 북한행을 거부한 포로들이 미군 경비 수용소를 빠져나와 자유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미 힉컬슨 작성 문서/미,공산군포로 난동에 시종 곤욕/북·중서 강력 항의… 정전협상 불리/도드 수용소장 피랍사건 상세 기록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내내 공산군 포로문제로 시달렸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MARA)에서 입수한 문서더미 가운데 국제정치관계철 북한 전쟁포로 관련 시리즈는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시리즈는 미 국무성 차관보 힉컬슨이 1952년 2월18일 「한국의 전쟁포로」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극동과 간부 엘리손과 존슨에게 발송한 문서로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이 문서시리즈에 따르면 미군측은 공산포로로 인해 지휘체계 상부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등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이 문서가 작성된 당일만 해도 한국인 포로를 조사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제62동에 진입한 미군병력과 포로들의 충돌로 미군1명과 포로 77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했다.이밖에 미군 38명,포로 1백40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를 빚었다.공산군측은 이사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유엔군측은 「민간인이 관련된 내부사건」으로 일축했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엔군과 미군측은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리지웨이 장군이 이 시리즈 4월29일자 전문에서 수용소 상황에 대해 기술한 내용도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장군은 전문을 통해 『이들 수용소는 잘 조직돼 수용자들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정도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다스릴 수가 없다.하지만 위험한 폭동이나 유혈사태등의 모험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기술하는 등 포로문제로 고심한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문서 시리즈는 또 52년 5월7일 도드 거제도 제76포로 수용소장의 납치사건도 기록하고 있다.콜슨장군은 도드의 석방을 위해 포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 사건으로 5월20일 도드와 콜슨장군이 모두 대령으로 강등하는 과정도 잘 드러내 보였다.
  • 석굴암 십일면관음상(한국인의 얼굴:42)

    ◎천계의 정적 어린듯 신비한 미소/버들잎처럼 긴 눈썹 둥근 콧마루와 연결/정면 응시하느라 실눈… 입은 작고 또렷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 주실 벽에 배치한 3체의 부조 보살상들은 아름답다.특히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계에서나 행여 만날 수 있을까.이미 깨우쳐 위로부터 보리(보제)의 경지를 구한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신비마저 가득 어렸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열하나의 얼굴을 지닌 보살상인데,본존여래 뒤쪽에 서 있다.그러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얼굴은 열이다.관음보살상 자체가 부조이기 때문에 머리 뒤쪽에 표현할 얼굴 하나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열의 얼굴은 모두 관음보살상 머리에 표현해놓았다.머리 앞쪽에 화불 하나,좌우에 각각 셋,위쪽에 셋,머리 꼭대기에 하나가 배치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본래 소임은 중생교화다.그래서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얼굴에까지 깃들었다.거친 욕심을 떨쳐버린지 오래여서 표정이 마냥 지순하고 안온할 뿐이다.본존여래처럼 정면을 깊이 바라보느라 실눈을 했지만 눈매가 곱다.버들잎 같은 유엽형의 긴 눈썹이 그리 모나지 않은 콧마루와 맞물렸다.작고 또렷한 입이 고운 눈매와 어울려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옷 매무새는 하도 부드러워 지순한 얼굴에 비해 오히려 육감적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그러나 본존여래의 원력을 도와주는 보살을 누가 감히 범접할 것인가.그리고 천계의 정적이 어렸으니 넘나볼 수도 없다.2.18m나 되는 키가 헌출하다.그 큰키의 보살 몸에는 구슬을 꿰어 엮은 여러 가닥의 영락이 치렁치렁 매달렸다.그렇듯 돌을 다룬 솜씨는 보살의 얼굴과 천의자락,영락 등을 더 이상 화강암 걸감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보살은 위를 바라보고 활짝 핀 연꽃 디딤판(앙련대)을 밟고 발을 좌우로 향했다.왼쪽 팔은 구부려 손에 보병을 잡았다.그리고 아래로 내린 왼팔은 팔굽과 홀목을 약간 들어 손가락에 영락 한 가닥을 잡아올렸다.유연한 동작이다.중국과 일본에도 석조나 목조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전해오지만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따라올 작품은 아무데도 없다.그만큼 세기적 걸작인 것이다. 그 많은 걸작의 조각상들을 봉인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지혜가 함께 창조한 불멸의 문화유산이다.비단 미학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신라인들의 혼이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석굴암 창건을 더러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한 것이나,개인적 원력으로만 볼 수 없는 대역사였다.다시 말하면 개인적 발원에 의해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 발원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조각상은 그 하나하나마다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그 조화와 질서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동과 정이 어울린 것이다.석굴암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감동이 와 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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