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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를 위한 「세계정상회담」(사설)

    오늘(29일)과 내일 이틀 동안 유엔에서는 아주 색다른 서밋이 열린다. 『어린이에게 밝은 미래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세계 80여개국의 정상들이 모여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어린이에게 나라의 장래가 걸려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하고 인류의 미래가 바로 오늘의 어린이들임을 말로 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정작 현안의 문제로 경중을 분별하기에 이르면 피해를 당해도 항의할 줄 모르고 당장 물욕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하며 「압력」을 조직하지도 못하는 어린이의 문제는 뒷전으로 돌려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영국의 대처 수상,일본의 가이후 총리,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등을 위시한 44개국의 대통령에게 24개국의 수상이 참가하며 3개국의 국왕도 함께하여 80여개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 안에는 경제대국의 정상도 거의다 들어 있지만 교황청의 추기경에서 아프리카의 저개발국 정상도 골고루 참여하고 아랍의 왕,대통령이 즐비하게 참여하며 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도 빠지지 않고 있다. 옵서버를 참석시키는 65개국을 포함하면 가히 전세계적인 규모다. 이처럼 대규모 참가가 이뤄진 것에는 어린이 문제가 지닌 현실적인 심각성이 적지 않게 작용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80년대는 발전도상국 입장에서 보면 「상실의 10년」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경제권의 남북의 격차가 확대된 시대였다. 그로 인한 주름살이 어린이에게 더욱 심하게 미친 시대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성을 위해 이번 서밋의 관심은 더욱 고조된 것이라는 관점이 우세하다. 어쨌든 세계의 어른들은 어린이에 대해 좀 더 심도있고 사려깊은 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될 아주 다급한 시기가 온 것만은 사실이다. 유니세프의 1990년 보고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4만명의 어린이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고 지구상에는 전인류가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이 생산되지만 어려운 나라에서 영양실조와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는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선진공업국도 어린이를 파괴하기는 마찬가지다. 환경파괴·폭력·가정파탄·약물중독 등의 병폐로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세계는 이런 어린이를 구제하고 지원할 기술과 자원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군비 증강이나 담배·광고·술 같은 데 쓰는 막대한 예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25억달러의 예산만을 어린이에게 전용한다면 1990년대에 적어도 5천만명의 어린 생명을 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 89년 유니세프의 제임스 그랜트 총재에 의해 제의되어 오늘의 실현을 보게 된 이 서밋에서는 어린이의 생존과 보호·발달에 대한 선언문과 실행계획이 채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보다 앞서 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인 「어린이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효과적인 이행방안과 운영방안도 토의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호중 외무장관이 옵서버로 참석하기로 하고 「협약」에는 25일 서명을 마쳤다. 인류의 이상과 부합되며 앞서가는 나라의 그룹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이런 기회에 정상급이 참가하는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애석하다. 그러나 이미 「서명」까지 한 「어린이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취지를 충실히 살려가는 일에는 우리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어린이를 위해 좋은 나라 만들기」는 가장 정의로운 국가목표이기 때문이다.
  • 「부자와 빈자의 정치」 큰 파문/김호준 워싱턴특파원(특파원수첩)

    ◎미 공화당 브레인 필립스의 저서/“부익부 빈익빈 레이건 재임시절 심화” 주장/일ㆍ서독 등에 국부 나눠준 무역정책도 비난/“90년대는 개혁시대” 예견… 중간선거 앞둔 민주당은 희색 미 보수진영의 탁월한 선거 전략가겸 평론가인 케빈 필립스의 신저 「부자와 빈자의 정치­레이건 이후의 부와 미국 유권자」란 책이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미 정치권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책에 대해 공화당의원들은 『평론가란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으나 민주당 진영에선 『왜 우리가 민주당원으로 있는지를 공화당원들에게 깨우쳐 주는 책』이라며 열렬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책은 1960년대 존슨 민주당정부의 「빈곤 퇴치 전쟁」 및 현대 미국의 복지제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마이클 헤링턴의 저서 「다른 미국」 이후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 사람들의 얘기다. 「부자와 빈자의 정치」는 한마디로 말해 1980년대 레이건 공화당정부의 시책이 미 국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유별나게심화시켰다는 주장의 전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반동이 19세기 말과 1920년대의 「황금기」 이후처럼 1990년대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필립스는 1980년대를 『부자들이 승리한 시기』라고 규정하며 레이건 행정부를 『자본가의 소생과 소수 엘리트의 부 축적을 주도한 고성능 기관차』로 비유했다. 그는 레이건의 정책이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고 『미국의 부를 재분배하려는 다음 세대의 반체제파들에게 기분 나쁜 뉴스는 부의 큰 몫이 이미 일본 서독 등에 재분배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거 미국에서 부자란 연수 5만달러 이상이나 10만달러 이상을 지칭했으나 80년대엔 백만장자도 흔해빠져 1989년의 경우 백만장자가 1백50만명을 헤아렸다. 문제는 부의 집중이 백만장자보다 훨씬 상층에 있는 천만장자ㆍ억만장자ㆍ5억장자ㆍ10억장자 층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미 국민의 1%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81년의 8.1%에서 86년엔 14.7%로 늘어났다. 81년과 89년 사이에미 4백대 부자의 재산은 3배가 커졌다. 동시에 그들과 다른 계층간의 간격은 엄청나게 벌어져 회사 시장과 공장 노동자간의 봉급차이는 1979년의 29대 1에서 1989년엔 93대 1로 확대됐다. 막대한 부가 월가에서 만들어졌고 실업계의 거물들이 저명인사가 되었다. 금융계 12대 소득자의 연간 수익은 81년의 5백만∼2천만달러에서 88년엔 증권시장 몰락에도 불구하고 5천만∼2억달러로 상승했다. 레이건 집권 8년간 미술품과 골동품 가격은 4배가 뛰어,20만∼30만명의 부유층 가족에게 큰 이익을 안겼다. 한편 해고된 철강 노동자로부터 농토를 잃은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회 저변층은 고통을 받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가진 30세 이하 세대주의 실질 수입은 73∼86년에 약 4분의 1이 감소됐다. 80년대엔 1백50만개의 중간관리직이 없어졌다. 그 희생자는 물론 중산층이었다. 필립스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을 「부유층으로의 소득 이전」으로 파악하고 있다. 레이건이 백악관에 들어갈 때 최고 70%에 달했던 부자들에 대한 소득세율은 레이건이 백악관을떠날 땐 28%로 떨어져 있었다. 반면 사회보장세와 소비세의 증가 때문에 전체적으로 빈자들의 납세액은 늘어났다. 미국의 세금정책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계급의 충성도에 따라 재편됐다고 필립스는 주장했다. 필립스는 1990년대는 「반월가시대」로 예견하고 있다. 과거처럼 90년대에도 호황기 뒤의 반동이 재현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80년대의 마감과 더불어 새로운 정치 경제철학이 요구되고 있고 또 미국의 부와 권력의 역사에서 90년대는 지난 80년대와 분명히 다른 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필립스는 강조한다. 그는 이런 변화의 무드가 미국뿐 아니라 영국 일본 캐나다 등에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나라에서도 80년대에 금융 부동산 붐으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필립스의 주장은 새롭거나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레이건 시대에 미국민의 소득과 부에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거론했던 얘기다. 그럼에도 필립스의 비판이 새삼스럽게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은 골수 공화당원으로서의 그의 신인도와 성가 때문이다. 필립스는 1968년 이래 6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5차례나 승리를 끌어낸 공화당 핵심전략가의 한 사람이다. 11월초 중간선거를 목전에 두고 민주당측은 『필립스가 문제를 올바르게 지적했다』며 백만원군을 만난듯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측은 불균형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 집권전인 카터 민주당 정부때부터라고 주장하며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카터 시대보다 레이건 시대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을 무얼로 설명하겠느냐』고 반문한다.
  • 소의 극동정책/드미트리 페트로프 소 극동문제연 연구부장

    ◎“동북아 「다자간 협의체」 상설 바람직”/군축ㆍ위기관리 등 공동토의 긴요/남북 총리회담 긴장완화에 도움 될 것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소장 권문술)는 30일 하오 「1990년대의 미 소의 동북아안보정책」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소련과학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드미트리 페트로프연구부장은 「평화와 안보를 추구하는 소련의 극동정책」이라는 제목으로,주한 유엔군사령관 특별고문 스티븐 브레드너는 「한미 안보관계=역사적 성격,현실적 영향,그리고 미래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브레드너고문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계획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돼서가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과 한국의 자력성장을 감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아직 변하지 않고 있고 개방의 가능성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한미 안보동맹과 한국안보문제 등은 북한의 변화와 연결,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페트로프연구부장은 『북방외교와 같은 한국의 국제역량이 강화될수록 남북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긴장완화를 위해 지속적인 남북대화와 남북총리회담과 같은 책임있는 당사자간의 접촉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트로프연구부장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 세계의 안보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련과 동구에서 있은 혁명적 개혁과 개방정책을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종식은 국제질서를 안정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비해 긴장이 뚜렷이 완화되고 군사적 대결 및 위협인식이 절대적으로 감소된 시기에 살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INF협정체결에 이어 화학무기 협정도 체결하였고 핵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군비및 군사력을 대폭 감축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이제 서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냉전종식을 위한 일련의 쌍무적 협정을 체결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소련은 이러한 일련의 긍정적인 변화에 힘입어 기존의 국방정책과 군사독트린을 대폭 수정하였다. 구체적으로 종래의 공세위주의 독트린을 방어중심의 「합리적 충분성」 독트린으로 과감히 바꾸었으며 소련은 결코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또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국방 예산은 1990년에 7천90억루블로 전년에 비해 8.2%나 감소하였다. 병력은 향후 수년간 50만명이 감축될 것이다. 소련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왔음을 주지해야 한다. 첫째,아프가니스탄과 몽고,그리고 베트남의 캄란에서 소련군은 완전 철수하거나 주둔규모를 최소화하였다. 둘째,소련은 극동에서 병력 20만명을 일방적으로 줄였고 아시아에 배치된 중거리 핵무기를 4백36기나 폐기시켰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관계가 뚜렷이 개선되고 정상화 단계로 진전되고 있음은 커다란 성과라고 아닐할 수 없다. 특히 서울올림픽 이후 소련은 한국이 이제 명실상부한 지역협력국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였으며 상호의존적인 경제통상관계가 지역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특히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이제 공식화시키고 협력방법을 제도화시키는데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소련은 말할 나위도 없이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극동에 있어서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몇가지를 제안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남북대화가 지속되어야 하고 남북총리회담 같은 책임있는 당사자의 접촉이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팀스피리트 훈련규모 축소제의는 좋은 효과를 줄 것이다. 특히 한국정부의 북방외교는 매우 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나라는 한국의 국제역량이 이처럼 강화될수록 남북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물론 한반도주변은 아직도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미소의 해군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미국의 우세한 해군력과 일본의 엄청난 군사잠재력은 소련을 위협하고있다. 한국도 결코 열세라고만 볼 수 없는 강력한 대북한 전쟁억제력과 방어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지역평화와 안정을 위해 역내 국가들의 외상회담같은 것을 개최하거나 쌍무적 혹은 다자간 협의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하여 군축문제를 포함한 항해,항공의 안전문제,군사교류 및 협력문제,공동위기관리위원회 설치문제,군수산업의 민수화문제 및 경제협력문제 등을 상호 이익을 위해 공동토의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는 단계적으로 공동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한이 정치ㆍ경제적으로 협력하고 과학기술을 서로 지원하며 관광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남북한 문제는 제삼강조 하지만 당사자끼리 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련이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과거부터 제안한 아시아포름의 창설은 노대통령이 지난 88년 유엔에서 제안한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창설과 그 정신을 같이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협의기구를 지역평화와 안보를 정착시키는데 기본초석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신 데탕트」는 어디로 흘러가나/세계 석학 기고

    ◎21세기 국제질서 다극체제로 대변환/미·소,자체문제로 골치… 「세계 경찰역」 포기/곳곳 국지분쟁… 유럽·아랍,「지중해 대립」 가능성/정치적 관심 시들… 종교가 이데올로기화(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우리는 15일 마흔다섯번째 광복절을 맞는다. 해방과 분단의 45주년을 맞는 것이다. 소·동유럽의 개혁으로 세계가 대립과 갈등의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맞는 광복절이란 점에서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광복절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민주화개혁과 시장경제 도입,동유럽의 탈소 독립 민주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 통합노력의 가속화등으로 조성되고 있는 구질서 붕괴의 과도기적 유동상황속에 지금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내지는 국제정치체제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냉전의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가운데 터진 아랍 민족주의 갈등의 중동사태는 새 질서 형성의 방향을 시험하고 있는 느낌이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 질서는 과연 세계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보다 확고히하고 촉진하는것이 될 것인가. 그 연장선상의 동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붕괴되고 있는 구질서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상황도 이제는 끝날 것인가. 광복 45주년 특집으로 새 국제정치·경제질서의 향방과 한반도 주변 열강의 새 역학관계,그리고 한반도형 통일의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모델등을 내외 학자·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종합진단하고 전망해본다.〈편집자주〉 1990년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서의 대립은 막을 내렸으며 핵의 위협은 사라졌다. 자유의 바람은 어디서나 느껴지고 있으며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이 보인다. 또 그동안 제3세계를 괴롭히던 기아문제는 적어도 남부아시아에선 해결됐다. 이같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러나 2000년에는 다소 불투명하다. 한 시대의 전환은 물론 어느 정도 평화리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2000년으로의 전환은 지난 45년이후 탄생한 국제질서가 보다 나은 새 세계질서로 새롭게 대체될 것이라는 기대를 약화시켰다. 국제질서의 붕괴,「북­남관계」의 점증되는불평 등에 대한 운명론,갈수록 심화되는 부국의 자기중심주의,게다가 이데올로기 대용으로서의 종교문제 대두 등이 이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국제질서는 기존 강대국들이 더이상 그 무엇이든 책임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연방은 소련을 대체했다. 러시아연방은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또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방내 이슬람 영역은 기회만 제공되면 자치를 이룰 것이다. ○달러화,기축기능 상실 그루지야·아르메니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폴란드의 야심에 맞서기 위해 혹은 이슬람 제국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방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결합체는 아직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연방 공화국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지경이다. 군주제도의 복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논의될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새 러시아는 이제 막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에 착수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러시아연방은 2000년에 자신들의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으며 여타문제에 관해선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오랜기간 동안 세계 최대 강국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미몽에서 서서히 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 이웃 지역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2000년에 미국은 세계질서의 개편보다는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성장의 침체는 냉혹하리 만큼 지속돼 미국인들의 삶의 수준은 일본이나 유럽인들의 수준에 못미칠 것이며 심할 경우 한국이나 대만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엄청난 외채문제로 달러화가 국제시장에서 신용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또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은 2000년에는 대다수 큰 도시에서는 물론 25개주에서 소수인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흑인과 스페인계가 대다수 지역을 지배한다. 미국은 또 사회복지를 위해 군비를 삭감,해외주둔기지를 철수시키고 대외적으로 안보는 아무 위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뒤를 잇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했던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할 수도 없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일본의 그런 역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럽과 북미는 일본을 불신하며 동시에 시기한다. 2000년에 있어 이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공식 독트린은 보호주의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으로 정치적 야심을 꾸미진 않으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모든 국민에게 적합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일본 경제의 우월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한 산업화된 부국과 남부에 위치한 미개발 빈국 사이의 균열은 점점 상호 관련이 없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임금 때문에 일본은 그들의 사업을 해외로 확장,한국 대만 등은 물론 중국·동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외기업을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은일본의 기술은 물론 노하우,심지어 경영철학까지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일본은 곧 추월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는 일반화되어 「남부」국가들 사이에서도 분열현상이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는 연대감을 잃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안데스산맥 인근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기아문제와 인구증가문제를 해결한 반면 아프리카는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름뿐인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슬람지역은 회교 정통주의 정권이 지나치게 명령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진정한 발전이 저해당하고 있다. 2000년의 문턱에서 중동지역은 또한 내부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터키,이라크,시리아 등은 종교적 색채가 덜한 정권이 들어서서 현대화를 꾀하는 데 반해 여타 다른 국가들­특히 산유국들­은 세계의 에너지원인 기름을 무기로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는 더이상 부가 아니며 그들은 삶의 수준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가중되는 경제혼란을 이슬람 가치의 찬양을 통해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 ○폴란드,권위주의 회귀 1990년대를 통해 선진국들은 제3세계의 정신적 가치를 받아들였다. 사회분석가들은 미국과 서유럽내의 가난과 부랑자들의 만연이 80년대의 실업위기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타대륙으로부터 이민의 유입과 냉혹한 경쟁으로 인해,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에 의존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군중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0년대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개발된 타대륙을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따라서 통합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뿐만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주요 정치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 발전은 지중해지역에 새로운 분쟁을 야기했다. 유럽에서는 주요 국제현안이던 동서대립이 중단됐다. 2000년 유럽의 분쟁은지중해에서 일어나게 되며 이때 유럽은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는 데 반해 아랍은 수적 우세와 과격성을 내세우게 된다. 또다른 분쟁지역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아랍분쟁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이다. 같은 지역의 이라크,시리아,회교정통국가들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1990년 발발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건은 이러한 전망의 예행연습이었다. 만일 이같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최신 무기로 무장한 나라가 승리할 것이며 그때 이란은 호메이니 때와는 달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90년대말쯤에는 주요 관심사항으로 부각된다. 공산체제가 와해된 이후 설립된 불안정한 민주정부는 진정한 통치력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또다시 옛날처럼 분열된다. 해안에 위치한 지역들­특히 상해와 홍콩­은 각광받은 도시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내륙도시는 발전이 부진하게 된다. 중국인에게 자유란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나 새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그같은 희망이 어디서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90년대 10년간 유럽에는 균형이 존재했었다. EC 12개국으로 유럽연방이 이루어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럽의 외교적 활동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정지된다. 유럽은 이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2000년에 브뤼셀의 정부는 아무 결정권이 없는 하나의 관료체제가 될 뿐이며 또 이러한 상황은 10년은 더 계속된다. 이 기간은 유럽이 내부적인 정치행태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유럽동맹은 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도와주느라 바쁠 뿐이다. 이 기간동안 유럽은 말뿐이지 진정 세계질서에 관심을 갖지는 못한다. 동독의 서독으로의 경제통합은 불과 4∼5년 만에 이루어졌다. 체코와 헝가리의 사회·경제적 회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농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들은 공산주의가 남긴 대규모 농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었고 사유화가 이루어지자 서유럽의 소규모 농장들과 경쟁해서 이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손실이었다. 유럽동맹의 농업문제는 전보다 나빠졌다.이제 2000년에는 적은 농업규모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잉여농작물에 대해 계속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하나 아니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살던 곳에 머물라고 돈을 주어야 하나. 이러한 문제들은 동유럽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바웬사대통령의 반독재통치정부이후 폴란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하지만 바웬사는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원적 민주주의 발달 루마니아에선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계속 정권이 바뀐다. 불가리아의 상황은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90년대 정치적인 안정은 이루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은 다시 두개로 나뉘어진다. 그 정도가 완화는 되었으나 여전히 격차가 있는 이 양자 사이에 이민이 계속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권위주의체제로의 복귀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2000년의 새로운 세계에 있어선 또한 인간의 정신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문제를 영원히 해결해준다는 어떠한 혁명적 이데올로기도 통용되지 못하며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비교적 덜 나쁜 정부로 인식된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며 동시에 정치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론이 증대된다.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붕괴는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뒤이은 필연적 결과일 뿐이며 2000년에 마르크스 이론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학자들과 일반인들은 공히 「혁명은 독재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혁명은 역사를 후퇴시키며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불평등은 선동연설이나 기적에 대한 확신 또는 속죄양을 내세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 2000년에 혁명을 부르짖는 게릴라그룹은 없어진다. 이데올로기가 내세운 유토피아가 거부되는 현상은 왜 다원적 민주주의가 인본주의 정치의 상징이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진짜 민주주의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때 시민이 아니라 놀란 노예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성문화된 권리나 보장이 자유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발견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 2000년 시민들은 정치가를 믿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은 단지 선거에 당선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선거에 기권하는 유권자는 늘어나고 이로인해 민주주의에 불만을 갖는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내세·구원문제 눈돌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종교적 정서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회교도들에게 이슬람적인 신념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신에게 부여된 능력이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념은 세계의 서구화에 직면,이슬람 특유의 정치를 표현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이 세계에 침투해 있는 모든 악에 맞서 도덕적인 저항을 하게 된다. 2000년대 문턱에서 이같은 태도는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국가의 정치성을 표현했다. 산업화된 아시아국가에서는 불교가 다시 번성하고 그것은 1천년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에 맞서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일본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신도가 새롭게 번성하게 된다. 정치성에 관한 관심이 종교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많은 사회에선 물질적 욕구에서 얻는 상대적 불만족이 다른 기대를 발생시켰다. 그래서 내세와 영원한 구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독교사회에 있어선 신비주의가 새로운 경향이 됐다. 종교지도자들은 사회정의나 제3세계를 위해서 보다는 개인의 구원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종교분파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신과의 교감이 다시 깊은 관심사항이 된다. 2000년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그러한 시대인 것이다. □기에르메 ▲1934년 파리 출생 ▲파리대학 졸 ▲정치학박사(비교정치학) ▲파리정치대학교수(현재) ▷저서◁ 「비교정치론」 「반민주 민중론」 「민주실천의 사회학」 「민주주의의 역설」
  • 노대통령 특별발표

    친애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세계가 냉전체제의 대결을 종식하고 새로운 화해의 질서를 이루는 큰 변혁속에 평화적인 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하기 위해 남북 민족의 교류를 위한 우리의 결정을 밝히려 합니다. 나는 1988년 7월7일 특별선언을 통해 남북이 한 민족으로서 대결관계를 지양하고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을 밝혔습니다. 나는 그해 10월18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을 가르는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자유로운 교류를 실현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2년사이 세계는 지난 시대의 질서를 그 바탕으로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개방과 화해의 조류는 동서세계를 가르는 장막을 걷고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베를린과 동서독일의 장벽을 무너뜨려 독일은 통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분단의 단절과 냉전의 대결을 종식시킬 때입니다. 한반도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체제로 인해 분단된 땅으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남북 동포가 서로 왕래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의 자존에 비추어서도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1990년대안에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21세기를 우리 겨레의 영광된 세기로 맞아야 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남과 북이 이제는 과감히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해방 45주년을 맞는 올해 8월15일을 전후한 5일간을 「민족 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8월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을 통로로 열어놓고 북한동포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원하는 남쪽의 어느 지역도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쪽을 방문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으며,필요하다면 숙식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기간중 우리 국민 누구라도 제한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조처할 것입니다.우리는 남쪽을 찾아오는 모든 북한동포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할 것이며,이에 상응한 북한측의 조처를 기대합니다. 나는 북한이 판문점 북측 지역뿐 아니라 북한의 어느 곳이라도 자유로이 가볼 수 있도록 전지역을 개방하고 북한방문을 원하는 남쪽 동포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한없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올 광복절의 민족교류를 성공적으로 이루면 우리는 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을 전후로 교류를 정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남북의 겨레가 언제나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동포들간의 왕래와 교류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도 지난 1월1일 남북한사회의 완전개방과 자유왕래를 제의한 바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면에서 볼때 올 광복절에 민족교류와 남북한의 전면개방을 실현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북한측이 아무 조건을 붙이지 말고 광복절 민족 대교류를 수락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측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상호교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우리는 북한동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면개방을 일방적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외국인이 판문점을 통하여 남북한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할 것입니다. 정부는 오늘 밝힌 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내와 동포 여러분, 남과 북은 이념적,정치적 차원을 떠나 민족통합에 진실로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된 나라,7천만이 하나가 된 우리 겨레가 펼칠 21세기가 얼마나 눈부시고 위대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데 모두가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미ㆍ일ㆍ유럽 3각 안보협력/나토ㆍG7 정상 새달 논의

    【크노케(벨기에) AFP 연합】 미국은 내달 열릴 7개 서방선진공업국(G­7) 정상회담에서 미ㆍ일 유럽국들간의 광범한 안보협력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한 회의에 참가중인 한 미국 외교관이 19일 말했다. 「세계안보 1990년대 북미ㆍ유럽ㆍ일본의 상호의존」이라는 주제로 이틀간 벨기에 크노케에서 비공개로 열린 이 회의에 참가중인 이 외교관은 내달 9∼11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서 범세계적 안보체제 및 안보상의 상호의존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이 회의에 참가한 이 외교관은 범세계적 안보문제에 관한 이틀간의 나토회의가 끝난뒤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이 문제는 내달 5∼6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나토정상회담에서도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회의의 한 참석자는 이 회의중 오와다 히사시 일본 외무차관이 일본은 주요 국제문제에 관한 협의에 참가하기를 희망했다고 말했으나 아시아에서의 나토식기구의 설립을 희망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 노대통령의 방일을 보고(특별기고)

    ◎한일은 「마음의 벽」부터 헐때/동반시대 발맞춰 젊은세대 교류 넓혀야 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을 방문중이던 지난 25일 도쿄(동경)도내의 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위해 자동차로 아오야마(청산)에서 이치가야(시□곡)를 경유할 때의 일이었다. 평소의 분위기와는 어딘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비가 삼엄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한 양국의 국기가 도로 양쪽의 가로등에 장식되어 5월의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1984년 한국대통령의 방일 때에도 그런 풍경은 있었지만 그때는 필자가 미국유학중이었기 때문에 도쿄거리에 두나라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가 많은 도쿄의 봄인데도 이번주는 보기 드물게 5월의 맑은 날이 많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풍경은 잘도 어울렸다. 필자가 한국에 유학했던 13년 전에 이런 분위기를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크게 변했다. 한국가수가 일본의 TV에 상시 출연하게끔 되었고 일본의 가라오케 술집에서는 한국노래 전용의 가요곡집이 구비되어 있다. 아카사카(적판)을 걸으면 「군고구마」라고 한글로 씌어있는 리어카를 만난다. 특히 젊은 세대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일본고교생이 늘고 있고 올림픽때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인 사이에 한국어 학습은 여전하다. 인기가 있는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서,배우는 학생숫자의 순위는 외국어 가운데 5번째 안에 든다. 서울∼도쿄사이 비행기 안에는 젊은 일본인관광객이 넘친다. 또 규슈(구주)간사이 (관서)를 중심으로 한국으로부터의 관광객과 마주치는 일도 흔해졌다. 거리의 2개의 국기가 도쿄의 풍경에 잘어울렸다는 사실은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80년대에 급속히 개선되어온 일한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듯 했다. 국제정치로 눈을 돌리면 1989년은 동구를 중심으로 유럽정세가 크게 변한 해였다. 현재 독일통일의 기본방향이 잡혀가고 있으며 유럽의 장래가 보인다. 그것과 비교한다면 아시아에서는 남북한통일문제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정치ㆍ경제적으로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가 아직 남아있다. 1990년대는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10년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변하기 쉬운 역사를 가진 일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그같은 속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실현된 것이다. 되돌아보면 일한관계는 3단계의 시대를 거쳐왔다. 제1기는 1948∼1965년이다. 이 시기는 양국간에 국교가 없이 마찰이 많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1965년부터 현재까지이다. 박정희정권의 「우선 건설을」이라는 정책을 출발점으로 국교가 수립되어 일한관계는 급속히 개선됐다. 그러나 과거 일한관계의 고난의 역사위에 구축된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에 80년대에는 교과서문제 및 경제협력문제 등이 양국간에 일어났다. 이번 일본방문에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양국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씻고 보다 깊은 선린우호관계를 수립할 필요』를 지적했고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는 『일한양국의 선린우호는 일본의 노력이 한국민에게 납득되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대해 쌍방이 같은 생각을 갖게끔 되었다. 아시아ㆍ태평양의 번영을 위해 양국이 협력관계를 한층 더 높여 간다는 총론에서 양국이 같은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즉 전후 일한 관계사의 제3의 단계에 접어 든 것이다. 이것은 각론은 이제부터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방일은 하나의 계기이며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성을 갖게 됐다. 『일의 시작이며 앞으로 살려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일한관계를 일보 진전시키는 기운이 솟아났다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스노베 전주한대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한관계의 장래를 생각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적어도 중요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한국에는 『일본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코리아가 일본의 라이벌이 되기 때문에 현상고정을 바라고 있다』라는 견해가 있다. 일본인은 결코 한반도통일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아니다. 실제는 일반의 일본인은 한반도통일문제에,혹은 분단이라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은 적다. 그러나 한반도ㆍ아시아지역의 현실을 깊이 생각,일본의 역할을 강구해보자는 젊은이가 일본에는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증가해온 국제정치관계의 학부와 강의,한국관계의 강의는 그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북미와 유럽의 케이스에 있는 것처럼 하나의 지역이 번영을 위해 노력할 때,한 나라의 경제만이 돌출하기 보다는 복수의 동등한 경제력을 갖는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그 지역의 경제이익으로 되는 것이며 또 지역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미에서의 미국과 캐나다,유럽의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다.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본과 한반도와의 관계는 한층 성숙한 파트너의 관계가 되며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은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둘째로 일한의 상호인식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반일일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일협력요청이라는 예를 들어 보더라도 한국의 대일기대감이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일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일찍이 「어두운」이라는 한국이미지는 개선되어 급속히 실상에 접근하고 있다. 활기에 넘치며 낙천적이고 감정표현이 직선적이다. 동시에 격렬하고 다정하다고 하는 한국인의 성격은 일본에서는 겨우 최근에 들어 알려지게 되었을 뿐이다. 쌍방의 상호이미지를 실상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교류,특히 젊은 세대의 교류를 축적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구축을 위해 양국의 노력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90년대의 아시아에서 예상되는 복잡한 국제정치상황을 생각할 때,이 일한간의 좋은 분위기를 소중히 여겨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뭔가 잘못돼가는 세태/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사회악 추방은 온국민의 합심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의 소음ㆍ공해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왁짜지껄이는 잡음을 들으면 황량하고 삭막한 삶을 실감한다. 그러나 시멘트블록 사이로 뚝심좋게 뻗어난 사철나무위에서 재잘거리는 참새소리에 깨어나는 아침의 감격이 뿌듯해진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고 시인 김영랑은 5월은 창엄한 햇살이 퍼지는 달이라고 읊었다. 그 아름다운 5월을 보내면서 어디선가 『더럽다,더럽다. 미쳤다,미쳤다. 망한다,망한다,망한다』하는 탄식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고 있다. 지금 이 때에 만약에 하늘로부터 특명을 받은 예언자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이 세마디를 외며 통곡하고 헤매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탄식소리 들리는 듯 모두가 먹고 마시며 기분내는 놀자판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그 예언자는 계속 그 말들을 외칠 것이다. 어느 청렴한 젊은 경찰관이 권총자살을 했다. 나는 그의 자살을 무척 안쓰러워 한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기가 힘겹고 뿌리칠 유혹은 많다.집안에서 철없는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과 바가지 긁는 소리에 미칠 것 같다. 그 결과 그 집안은 망해버린 것이다. 어느 여고 3학년 학생이 아침 일찍 보충수업 등교길에 집 근처 50m 떨어진 곳에 보온도시락을 버려둔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 여학생이 그렇게 깜찍하게 납치극을 위장한 가출극을 벌였다기 보다는 납치로 인정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찰은 그 여학생을 찾기도 전에 가출이라고 단정하였다. 수사촉각과 현장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결론을 얻고 있다면 우리국민 모두가 경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안심해도 되는 치안만세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실상은 그렇게 평가내릴 수가 없다. 흔히들 중매로 사귀다가 결혼한 경우에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말에 비유된다. 그 여학생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나섰다가 그날로 인신매매단에 넘겨진다. 가출이든 납치든 미성년의 어린 여학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출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열심히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가출한 지 40일후 내가 출연하는 MBC­TV 프로그램 「여론광장」에서 이 여학생의 실종을 다루게 되었다. 방송 전날밤 하나님께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헤매신다는 주님이시여. 주님은 이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지요. 방송을 통하여 이 아이를 꼭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여학생은 이미 눈쌍꺼풀 수술과 파마머리를 했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과거 방식으론 안 통해 기도의 힘은 큰 것이다. 신문보도와는 달리 어느 시민의 제보가 아니었고 여러 손을 거쳐 마지막으로 데리고 있는 포주가 이 방송을 본 것이다. 아이를 찾으려는 열정적 나의 태도에 놀라 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골치아프겠다며 경찰에 인계하였다 한다. 경찰은 그 여학생을 인도받은 지 무려 7시간후에 애타는 부모에게 연락하였다. 먼저 신문기자에게 배부할 진술서와 녹음내용을 다 만든 후에 말이다. 그무렵 며칠동안 자칭 인신매매단이다,경찰관이다 하는 남녀들로부터 집으로 사무실로 교회로 협박전화때문에 전화통이 불이 났다. 내가 더러운 곳만 건드리면 미치광이처럼 발작하는 자들이 왕왕거리는 세태에 우리식구들은 이미 익숙하여 그자들로부터 시달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가출한 딸을 찾는 부모가 시경에 가출신고를 했더니 YMCA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인신매매단에서 활약한 전력있는 사람의 경험에 의하면 경찰이 3일만 집중단속을 하면 인신매매단의 소굴은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올 상반기 가출ㆍ납치사건을 시경에서 3건,대검에서 5건,민주시민운동연합에서 25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성의 도는 가늠할 수 있다. 공직자 비리조사운운으로 다소 퇴폐산업이 기울어지고 있다 한다. 요즘처럼 부조리와 퇴폐문화가 만연되고 있는 때가 또 있었을까. 정부관리나 기업체 임직원들,세도부리는 사람들 치고 뇌물 주고받는 향응과 바이어들이 베푸는 기생파티나 술집에는 으레 여자의 시중이 있어야 한다는 빗나간 접대문화가 우리사회를 이모양 이꼴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만 16로세부터 29세까지 6백50여만명 여성중 5분의 1이 접객업소에 근무하고 있다 한다. 딸과 아내와 어머니,즉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면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실태인가. 정말로 바른 삶과 행복한 삶은 도덕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또 돈이 너무 많아서 미치고 있다. 작년 한해 재벌기업이 사들인 땅이 약 2조4천억원어치라고 한다. 서울에 땅 한평 안가진 사람이 71%인데 애써 모든 국민의 저금으로 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기업설비 증설은 하지 않고 부동산투기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미친 여자 널뛰듯이 부동산값은 폭등했다. 덩달아 최근 9년만에 가장 심한 물가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다가 계층간의 갈등을 폭발시켜 끝내 자유민주주의체제,자유경제체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절박한 상황에서 5ㆍ8조치가 나왔다. 지난 80년 9월27일 국보위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부는 1990년대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음성ㆍ진천군의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교훈삼아 강력하고 지속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도덕관의 재정립을 국민소득 4천달러의 우리가 국민소득 1천만달러 수준의 국민 이상으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 망국의 징조가 보인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다시는 기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씀씀이를 절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듯 근검절약하는 마음가짐으로 합심하여 노력해야겠다. 하나님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던 중 내 생각,내 염려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테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분명히 곳곳에 숨은 의인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 90년대 동북아의 정치기류 예진/일 전문가 특별기고

    ◎한반도정세 「한ㆍ소관계」를 축으로 진전/소 경제실리 앞세워 대한접근 가속화/중 동구변혁 여파,대북유대 강화주력/한­중,당분간 간접교류… 북한­소는 불협화음속에 지난 3월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춘의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상해 평화발전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는 2주일동안 체재하며 북경ㆍ장춘ㆍ연길ㆍ상해의 대학 및 연구소를 둘러 보았다. 최근의 소련ㆍ동구제국의 변화에 따라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의 군축문제 및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다 큰 파문속에 국제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견해를 가져왔다. 도쿄와 서울만을 왕복한데서야 어딘가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제흐름의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작년 1월부터 중국방문을 계획,이번에 실현을 본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의 유럽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될것인가 등에 관해 중국의 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한­소 접근에 느긋 중국학자와 의견교환을 했을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로 중국은 대 한반도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백년을 주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중국의 외부에서 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고 보는 것을 중국은 변화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는 이유이다. 두번째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대해서이다. 소련이 한반도에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소련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으나 소련의 한반도에의 적극자세가 그다지 중국에 있어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더욱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다라는 중국의 자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소관계개선에 관해서는 중국은 크로스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에 있어서 안정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ㆍ소관계와 병행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한ㆍ중관계에 대해 중국의 학자들은 북한ㆍ중국관계를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는 북한이며 그것은 변할 수 없다. 소련ㆍ동구의 변혁 이후 북한은 여전히 고립의 방향을 취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중국은 한국과도 1백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나 한국은 1주간 또는 2주간의 폭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 정치적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따라서 한ㆍ중 관계가 때로는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제일,한국과의 간접교류 추진」이라는 원칙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바로는 한ㆍ중교류에는 중국은 4개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고 경제적 교류는 크게 늘린다. 스포츠교류도 계속하지만 문화면에서는 간접교류에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ㆍ중간의 중요한 연구소의 자매관계 결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4원칙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당분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넷째로 북한체제의 혼란 및 불안정설에는 중국학자는 부정적이었다. 한국내의 김일성체제의 보도는 홍콩의 등소평보도와 마찬가지로 흥미본위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상으로 중국의 인상과 중국의 한반도에의 견해를 소개했으나 이제부터 내자신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한ㆍ소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한ㆍ소양국의 급속한 접근이다. 국교수립은 시간문제로 되어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이상이었다. 최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자세는 4개의 단계로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84년5월의 김일성주석의 소련방문으로부터 86년10월의 방소까지의 시기,소련은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86년10월부터 88년9월의 서울 올림픽때까지는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88년9월부터 89년9월 서울올림픽 1주년까지 소련은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진척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서울올림픽 참가등)을 취해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북한에 대한 「한국카드」를 소련이 사용했던 시기이다. 89년9월 이후 고르바초프 정권의 유력한 브레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때로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소ㆍ북한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담한 한반도정책을 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지난 9월 이후 북한ㆍ소련관계에의 배려보다 한ㆍ소관계에의 배려를 우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정세의 변화에 의해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생긴 소련이 한국의 협력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진척시키고 무역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대일관계 타결을 위해서도 긴밀한 한ㆍ소관계는 소련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중관계 개선 한계 둘째,한ㆍ중관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붕총리는 88년3월 이후 3차례에 걸친 정치활동보고를 했다. 88년3월에는 『북한은 중국의 친밀한 인국이며,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합리적 주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89년3월에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정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민간의 경제무역은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경제관계에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간접교류에 의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의 보고에서는 이붕총리가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최근 1년 중국과 많은 국가 특히 주변의 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개선,강화됐다. 중국과 북한의우의는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 표현은 지난해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이 3월말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만과 한반도의 통일은 동일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한반도는 2개의 정부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는 차라리 다른 점이 많다. 같이 분단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국으로 본다면 대만은 국내이며 한반도는 외국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한중간접교섭의 필요는 중국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또 한반도에는 소련의 영향이 있으며,주한미군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완화책과 주한미군의 유지를 둘러싸고는 주변 제국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대만과는 다른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교차한다. 중국 동북부에 접하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대만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대북한관계가 갖는 가치는 중국ㆍ대만관계가 갖는 가치와는 이질적인 것이며,중국에 있어서 북한ㆍ중국관계의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방식은 대만문제해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차라리 지금까지의 정책의 확인이다. 북한에 있어서의 중국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며 중국자신도 북한에 대한 역할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0년대초의 중ㆍ북한관계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북한에 쇼크요법 셋째로 소련ㆍ북한관계이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쇼크요법을 시험중이며,그 때문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다소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과 소련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 소련의 대북한 무기공급 템포는 둔화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접근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동구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ㆍ북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수면하에서는 북한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다. 네번째로 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올 들어서 부터 북한에서는 김정일비서의 신격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문헌을 주석의 것과 동격으로 학습하게 된 것.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지의 혁명사적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소련ㆍ동구에 파견된 유학생의 귀환명령 및 동구제국에의 비판을 보면 북한은 더 한층 폐쇄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에 있어서는 체제를 온존하는 길이라고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 우위를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이 한국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정책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는 「통일과 긴장완화」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이르면 대화가 중단돼 버리고 만다. 1990년대는 한반도에서는 한ㆍ소관계의 진전을 축으로 일부에서는 냉전구조를 남겨두면서 복잡한 정치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케사다 히데시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주한미군 역할 전환 방위 보조역 바람직/미 태평양 군사령관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최근의 동서 긴장완화 추세와 관련해 북한의 대남침공 가능성은 분명히 줄었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위험성이 높은 곳이라고 미 태평양군사령관 헌팅턴 하디스티제독이 7일 밝혔다. 하디스티제독은 1991회계연도 국방예산안 심의에 착수한 미 하원 군사위에서 증언을 통해 소련과 중국은 북한의 남북공격을 지원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하고 따라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럽의 상황과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상호 감군협상이 실현되지 않고 또 전쟁징후에 대한 사전경고 시간이 12∼24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하디스티제독은 말했다. 그는 북한의 모험주의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은 1990년대에도 계속 요구되겠지만 지금은 한국의 증대된 자체 방위역량을 반영하여 주한미군의 역할을 보조적인 것으로 바꿀 전환기라고 강조하고 미국이 한국에 제의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 가운데는 항공기 정비,건설,노무자 임금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 동구국가 개혁 불구/스타워스 계속 추진/부시

    【리버모어(캘리포니아주) AP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7일 『우주에서의 미사일 방어체제가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다』고 선언,동구 긴장완화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스」 계획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스타워스」전략의 중추기관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를 방문,직원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동구에서의 민주화 추세는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에 굳건히 대처할 수 있는 우리들의 능력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반짝이는 조약돌」 계획을 포함한 스타워스 전략들은 1990년대는 물론 그 이후의 평화유지 능력을 보강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 군축시대를 사는 힘과 지혜(사설)

    주한미군의 부분적인 감축은 이미 예견되어 왔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미관계의 새로운 위상과 탈냉전적 화해라는 시대적인 추세에서 이해돼야 할 현실이다. 한미관계는 그런 측면에서 이제 전통적인 군사협력 분야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에 서있다. 주한 미공군의 기능통합및 기지조정과 비전투요원의 철수에 대해서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을 늘려 미국의 재정적자를 타개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현실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또한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돼온 주한미군 철수의 시작임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는다. 오늘날 미소간의 「경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세계적인 군축추세에 비추어 우리는 냉철한 현실인식을 가져야 한다. 객관적으로도 1990년대 이 시점에 있어서의 한미안보협력 체제의 위상은 결국 방위비 분담의 효과적 운용에서 설정될 것이다. 한미 양국의 저명한 국방 외교전문가들이 정확한 현실분석을 토대로 내린 결론처럼 한국은 국력이 신장된 것 만큼 적정 규모에서의 방위비를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한미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대원칙도 된다. 다만 우리에게 있어 한미 안보협력의 기본 취지와 목적은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에 평화정착을 확립하는 데 있음도 또한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우리들 자신의 과제로 돼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계속 논의되고 부분적인 감축이 진행되더라도 그 존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준의 방위 공약을 보장하는 이른바 인계철선이라는 정치적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미국의 카터행정부 때 2만명으로 줄어들었다가 레이건행정부 출범시 3만8천명으로,그리고 4만3천명 규모의 현수준으로 늘어난 사실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한국주둔 자체가 전쟁억지 전력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한국방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세계전략,특히 동북아에 있어서의 소련군사력의 남진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라는 미국의 국가이익에도 기여한다. 그렇다면 미군감축문제를한국의 방위비분담 증액을 위한 수단으로만 삼으려 해서는 안된다. 국제적인 군축과 화해의 추세 속에서도 미소양대국의 각기 군사력을 축으로 한 세계전략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소련이 동구주둔군의 전면철수 용의를 밝히면서도 5년내 NATO철군을 조건부로 내세운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어떻든 세계는 바야흐로 군비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같다. 아직은 전술공군 분야의 부분 감축이기는 하나 주한미군의 「이동」도 그런 추세 속의 미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우리는 이해하고자 한다. 한국도 이제 담당한 국력으로,또 미국의 동맹군으로서 동북아안보의 일익을 떠맡게 됐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남북한문제 대처에도 이 힘을 전제로 할 때라야 효과적일 수 있다. 주한미군 문제를 둘러싼 앞으로의 모든 논쟁과 협의에 충분한 자신을 갖고 주목하면서 90년대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 “지속적 경제개혁… 분배정의 실현” 노대통령 연두회견 내용

    ◎폭력ㆍ불법분규엔 단호히 대응/제2세제 개혁추진ㆍ토지공개념 차질없이 시행/경찰력 총동원,민생치안 확립 ▷국정운영 기조◁ 1990년대는 이 세기에 들어와 어느 민족보다 가혹한 시련을 겪어온 우리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희망의 연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염원해왔습니다. 3년전 6ㆍ29선언을 출발점으로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이 모든 헌정사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큰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욕구와 갈등이 무절제하게 분출되면서 우리 모두는 지난 3년간 큰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질서 위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경제난국 극복◁ 우리는 지금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90년대의 첫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정치ㆍ사회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당면한 난국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기업인과 여유있는 계층이 절제와 희생을 솔선수범해주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전체 경제를 살리면서 각 계층의 욕구를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슬기를 발휘해야 이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수출과 제조업,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기업의 체질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대한의 지원을 할 것입니다. 인재의 육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첨단기술산업의 육성 등을 통한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3년 임기동안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을 결연한 의지로 추진하고 경제발전의 결실이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는 노사 어느쪽을 막론하고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쾌적한 사회건설◁ 정부는 우리경제의 갈등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경제개혁을 착실히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성실히 일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첫째,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 개혁을 밀고 나갈 것입니다. 올해부터 토지공개념관련 법률과 종합토지과세를 차질없이 시행하고 제2단계 새제개혁을 추진할 것입니다. 둘째,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할 것입니다. 또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도록 유도하여 근대적 경영구조가 뿌리내리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92년까지 주택 2백만호를 건설하여 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갈것입니다. 넷째,92년까지 16조원을 투입하여 농어촌종합발전대책을 추진합니다. 다섯째,올해 지방자치의 실시와 함께 경제ㆍ행정ㆍ교육ㆍ문화의 기능이 지방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국가발전의 힘이 지방으로부터 창출되는 지방화시대를 열 것입니다. 여섯째,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을 커가는 경제규모에 모자람이 없도록 확충할 것입니다. ▷5대 당면과제 해결◁ 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어있으며 우리의 밝은 미래을 위해 시급히 서둘러야 할 민생치안ㆍ교육개혁ㆍ과학기술진흥ㆍ깨끗한 환경보전ㆍ교통난의 개선,이 다섯가지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①민생치안=범죄예방과 범인검거에 모든 치안능력을 투입하겠습니다. 경찰인력과 체제,통신기동장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것입니다.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장래의 길을 터줄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고치고 여가를 건전하게 보내는 문화ㆍ체육 공간을 늘리는 등 근본적 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②교육개혁=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력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양성되도록 고등학교 교육체제를 개혁하겠습니다. ③과학기술진흥=앞으로 10년안에 우리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최첨단 반도체ㆍ슈퍼 컴퓨터ㆍ통신위성을 우리 손으로 만들고 신소재ㆍ광산업ㆍ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④환경보전=상수도원을 정화,보전하고 현재 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하수처리율을 빠른 시일안에 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⑤도시교통난 개선=지하철 건설,도로망 확충,주정차 공간확장 등 도시교통문제 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갈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개선◁ 우리는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의 전통적인 우방과 더없이 공고한 관계를 이룬 바탕 위에서 이제 본 궤도에 오른 북방정책을 더욱 내실있게 추진해갈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다함께 번영을 누려야 할 같은 민족공동체로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여 개방으로 나오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분단 반세기를 앞둔 이제 남북한은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서 대화ㆍ교류ㆍ협력을 통해 통일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합니다. 민족통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 문제는 남북당국,특히 그 최고책임자간의 회담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왕래ㆍ전면개방의 합의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서신교환과 전화통화ㆍ남북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부터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측이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하며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추진할 것입니다. 북한이응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금강산을 포함한 관광자원 등을 공동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한간의 물자교역도 게속 추진하여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해나갈 것입니다. 남북대화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올해 팀스피리트훈련은 축소하여 실시하기로 한미간에 합의하였습니다. 우리는 방어목적의 이 훈련을 직접 참관하도록 북한과 중국 및 중립국 감시단 4개국을 초청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북한이 실시하고 있는 군사훈련을 우리도 참관할 수 있도록 조처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2천년대의 설계◁ 우리가 모든 역량을 뭉쳐 우리가 맞고있는 도전을 이겨가면 10년후 서기 2000년의 우리나라는 수출 2천억달러,국민소득 1만5천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균형발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가면 근로자와 서민이 어렵잖게 내집을 갖고 수입의 상당부분을 저축하며 더 밝은 내일을 설계하는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져 헤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나며 금강산과 백두산을 가보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미ㆍ일ㆍ중ㆍ소 지도자 신년사

    ◎인류평화ㆍ번영위한 미래 열자 부시/정의와 자유가 실현되는 해로 고르바초프 ▲조시 부시 미 대통령=지난 한햇동안 미국 경제는 강력한 성장을 계속했으며 동유럽에서의 민주주의 이상의 승리와 소련과의 관계개선은 세계평화의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1990년대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많은 도전과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유의 만개를 목도하고 있다. 모두가 빈곤과 폭력ㆍ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에 참여,온 인류가 평화와 번영으로 상징되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89년은 냉전의 종식을 기록한 해였으나 국내적으로는 민족분규ㆍ파업ㆍ경제난의 심화등으로 얼룩진 어려운 한해였다. 90년은 인류문명에 있어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두는 한해가 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지난해 많은 교훈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수 있게 됐다. 그 목표들이란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자유와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의 구현 등이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될 필요성을 극명하게 상기시켜준 동구제국의 개혁이 훌륭한 선례가 될수 있을 것이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동서진영간 냉전이 종식된데 따라 일본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 몰타회담등 초강국이 대결에서 대화관계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환영하며 이같은 국제상황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 국가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길 기원한다. 그러나 한반도에 긴장이 상존하고 있고 캄보디아 분쟁이 계속되는 등 특이한 지정학적 특성상 동구권을 휩쓴 극적인 민주화 열풍은 아직 이 지역에 일고있지 않다. ▲강택민 중국 당총서기=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기 위해 대가를 치렀으며 교훈도 함께 얻었다. 사회안정이 이룩되어야만 경제발전ㆍ생활향상등 더 나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경제 회생위해 자제ㆍ협력을 북한동포엔 희망의 한해로”

    ◎노대통령 신년사 전문 1990년대를 여는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보람찬 한해가 되기를 빕니다. 특히 북한의 우리 동포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아침 맞는 1990년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희망의 연대」입니다. 6∼7년 후면 국민소득 1만달러,서기 2000년에는 1만5천달러의 번영을 이루어 우리는 대망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것입니다. 민주주의시대를 힘차게 진전시켜 국민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민주복지국가를 이 연대동안 이룩할 것입니다. 세기적인 변혁을 분단극복의 기회로 삼아 민족통합의 큰 길을 여는 것도 우리가 90년대에 이루어야 할 과업입니다. 불과 10년 후로 다가온 21세기를 「영광의 세기」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새로운 결의로 힘찬 전진을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출발선상에 다함께 서 있습니다. 나라와 온 국민에게 어둠과 빛,시련과 성취가 엇갈렸던 1980년대는 이제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빛나는 경제발전과 서울올림픽의 영광,그리고 어려움속에 활짝 연 민주주의,우리가 80년대에 애써 이룩한 이 소중한 보람은 더 큰 결실을 거두도록 키워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주고 큰 대가를 치르게 한 지난날의 문제는 이제 역사의 밑거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지난 2년간 나라와 국민의 힘을 그처럼 소모시키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온 과거문제의 시비는 90년대를 맞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물러난 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그의 재임중에 한 일에 대해 증언하는 일은 3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민주국가에도 선례가 없는 일입니다. 7년 넘어 이 나라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한 전임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지난날의 문제를 밝히고 잘못에 대해 사과한 이제 제5공화국의 문제는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전임대통령의 증언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밝혀야 할 과제로 하고 여기서 분명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90년대가 열린 새해에까지 지난 시대로 또다시 돌아가 이 문제의 시비를 계속하면 정치ㆍ경제의 안정과 발전은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불씨로 우리 모두의 소중한 내일을 불사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이룬 여야합의를 실천함으로써 지난 시대의 문제는 여기서 정치적으로 종결짓는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히고 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의 의지를 한 데 모아 나라의 발전과 겨레의 과업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질서와 안정 위에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온국민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자제하고 협력하여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합니다. 특히 올 노사관계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굳건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지난날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어 온국민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90년대에는 근로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보통사람들이 안락한 집을 갖고 자녀교육을 걱정하지 않는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각자의 일터와 맡은 분야에서 모두가 자기의 몫을 다할 때 민주번영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90년대는 통일의 전기가 이룩되는 연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주의국가는 혁명적인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헝가리로부터 폴란드 동독,최근 루마니아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1당 독재체제가 잇따라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속에서 북한만이 경직된 폐쇄체제를 고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빨리 오느냐 좀 늦게 오느냐의 시간문제일 뿐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로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번영의 넘치는 힘이 북한을 민족통합의 길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추어나갈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가 약소민족으로 남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분단의 비극 위에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난 지 꼭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새해에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일어섰던 4ㆍ19의거 30주년입니다. 이 민족사의 파란은 번영하는 나라,민주주의의 나라,통일된 나라를 이루는 일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절실한 소망인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제 이 소망을 실현할 마루턱에 섰습니다.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에 빛나는 발전을 이룩한 우리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한번 발휘한다면 90년대는 이 모든 소망을 이루는 「결실의 연대」가 될 것입니다. 새해 이 아침 우리 모두 21세기의 밝은 앞날을 내다보며 전진의 결의를 새롭게 합시다.
  • 전두환 전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5공 특위/“「일해」 기금관련 기업특혜ㆍ보복 없었다”/재임중 친인척 관리 잘못한 점 뉘우쳐/국제그룹 해체는 부실기업 정리 차원 ▷인사말◁ 지난해 11월 참회의 고별사를 드리고 국민여러분 곁을 떠나 산간벽지의 한사에서 반성과 수도의 길을 걸어온 제가,오늘 이처럼 국회에 나와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에게 언짢은 문제들에 관해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80년대를 마감하는 섣달 그믐날인 동시에 21세기를 향한 길목에서 밝아오는 1990년대의 첫 해를 맞이하게 되는 전야입니다. 송구영신하는 이 뜻깊은 시점에서,한때 이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제가,새 아침의 여명속에 희망과 기쁨의 말씀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지난 날의 어두웠던 기억과 아물어 가던 상처를 일깨우게 되는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이 다름 아닌 저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새길 때,새삼 저의 부도덕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3권분립주의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아직 한번의 선례도 없는,전직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이라는 오점을 우리 헌정사에 남기게 된 것은,저의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입니다. ○사안별 증언 이해를 저는 이 모두가 원칙적으로 저로 인해서 초래된 하나의 업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국민과 역사 앞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기억하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지난해 11월 서울을 떠나 사죄의 은둔생활을 시작하면서 국민 모두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단합해서,새로 출범한 정부를 도와 국가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저와 저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가슴 깊이 한이 맺히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분들에게는,저의 은둔이 모든 아픔에 대한 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그 당시 저는 그 이상의 어떠한 단죄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을 통해 나타난 여론이나 정치권의 요구는 「재임중의 과오를 사과하고 남은 정치자금이 있으면 헌납하고 고향에 가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과거청산문제가 마무리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저는 그 제의를 전폭 수용해서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저 스스로 근신하는 뜻에서 낯설고 인적도 드문 백담사를 찾아 오게 된 것입니다. 그간 일부에서는 해외 장기여행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이 저로서는 죽음보다 오히려 감내하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국민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수치스런 일인만큼 거론 되는 일조차 없어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제시한 해결책이 모두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바 대로 과거청산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저의 국회출석 증언문제가 또다시 제기되었습니다. 「5공청산」 문제는 정치의 안정과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으며 저의 국회증언이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정치는 물론 경제도 계속 뒷걸음질 치게 되고 사회의 혼란과 갈등도 모두 저의 증언문제 때문이라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치ㆍ사회의 안정과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저는 정치권이 바라는 바 그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국회출석 증언이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으며 또한 그 증언도 당초의 목적에 부합되는 증언이 될 수 있도록 증언의 방법ㆍ절차ㆍ시기 문제 등은 정치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야가 합의하고 국회가 결정한 바에 따라 제가 오늘 이자리에 서서 의원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증언의 내용이 의원 여러분에게는 미흡하게 느껴지는 점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증언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입니다만,질문 자체가 실무자들이 한 일,실무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일,또는 저 자신이 당시에는 보고를 받았고 재가를 한 일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일 경우 지금 이 시점에서 완벽하고 책임있는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질문중에는 간단하게 「아니다」 「모르겠다」 등의 한마디로 답변을 끝낼 부분도 있고 또 보다 정확히 이해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갖추어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질문의 순서에 상관없이 사안별로 묶어서 말씀드리게 된 데 대해 양해를 구하는 바 입니다. ▷「일해」설립ㆍ자금조성◁ 일해재단의 설립은 버마 아웅산 참사후 귀국하는 길에 본인과 동행했던 경제인들이 북한의 만행에 울분을 토로하고,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순국자의 유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시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그 당장에 23억원이 모금되었으나 『전액을 그대로 집행할 경우 세금 등의 문제로 유족 지원금이 상당부분 줄어든다는 것과 공익재단을 설립하게 되면 전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 그렇다면 재단설립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에 대한 조의금 분배만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지나친 편법이 아니냐는 의견과 순국자의 유지를 받들 사업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 되었습니다. ○경제단체,자체 할당 유가족 지원사업은 설립이후 계속 확대되어 왔을 뿐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희생자의 유지를 받드는 작업을 한시라도 게을리 한적이 없었습니다. 재단이 그 출발은 희생자 및 그 유가족에 대한 위무책의 일환으로 구상되고 설립된 만큼,본인도 고인과 그 유가족들을 위한 일에 정성을 보태고자 5천만원을 출연했습니다. 기금 모금은 경제단체 대표들이 주관해서 대상을 정하고 금액을 할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단측에서는 한해 50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할 셈으로 5백억원 정도의 기금조성 목표를 세웠습니다만,본인은 규모가 너무 커 출연하는 기업에 부담이 될 것같아 대폭 줄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재단의 사업계획이 확충된데다가,일부 기업인들의 의견이 『계속해서 연간 사업비를 모금할 수도 없고,외부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일단 기금을 조성한 다음 본격적인 사업전개 단계에서는 기금의 증식이자만으로 매년 예산을 충당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며 3차년도 기금모금을 진행시켜 기금의 총액이 처음 구상보다 커지게 된 것입니다. 재단명칭에 본인의 호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웅산 참변과 직접 관련이 있고 또한 지속적으로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재단명칭으로 사용하자는 건의가 있어 이를 승낙했습니다. 기금의 기탁과 관련하여 특혜가 있지 않았느냐,또는 이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 어떤 보복조치가 있지 않았느냐,심지어는 일해재단 모금자체가 정치자금을 조달키 위한 목적이 아니냐 하는 의혹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국제그룹 해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부실기업 정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신동아그룹 등에서 기부한 35억원이 익명으로 처리된 것은 좋은 목적으로 써달라는 뜻을 살려 당시 재단의 사업계획에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재단기금을 축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 자금을 이에 충당하도록 한 것입니다. 항간에 재단과 관련,본인이 퇴임후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풍문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무근의 이야기입니다. 본인은 단임의지를 실천한 전임대통령으로서 재직시에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연구소를 통하여 국내외 원로들과 교류하는 한편,동구권 등 비수교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민간외교 차원에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21세기에 대비하여 통일문제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를 연구할 국제적인 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민간연구기관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유족을 돕기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본인이 발의했던 재단의 설립과정에 물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새 세대ㆍ심장재단◁ 본인과 내자는 젊은 시절부터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유아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만 이 부문이 질량 양면에서 미흡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보고를 받아보니 정부의 예산사정으로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뜻있는 분들의 찬조로 사업을 일으켜 보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업의 취지에 찬동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기금이 조성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 세대 심장재단은 83년 11월 내한한 레이건 미대통령 부인 낸시여사가 우리나라 심장병 어린이 두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준 일이 계기가 되어 국내의 심장병 어린이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우리의 기술과 비용으로 우리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81년 새세대육영회는 창립 당시부터 83년까지 2백여명의 불우한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수술지원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착안한 당시 보사부장관과 심장병 전문의 등 의학계 인사들이 육영회에서 기왕에 하고 있던 심장병환자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뜻에서 별도의 재단설립을 건의해옴에 따라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취지찬동 기업 출연 그러나 새 세대 육영회나 심장재단 모두 기금조성 및 관리과정에서 너무 꼼꼼하게 취급하다보니 기금을 한푼이라도 더 증식코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오히려 경리면에서 의혹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만 그 기금 모금과정이나 운영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일해재단이나 육영회 심장재단 등은 본인 내외가 직접 설립했기 때문에 기금조성 과정에서 출연자들에게 반대급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으나 사업취지에 찬동한 기업인들의 출연에 의해서 기금조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본인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친인척비리ㆍ재산도피◁ 본인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미국산 쌀 도입,쇠고기 및 석탄 수입과 관련하여 본인의 친인척이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이 문제는 당시 이미 문제화 되어 철저히 조사한바 있습니다. 국회 해당상임위원회에서도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을 규명한바 있으나 전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그 결과에 대하여 국민들도 납득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호주 등에 막대한 재산을 도피시켜 놓았다는 유언비어가 일부 보도매체에도 실린 바 있으나,그러한 일은 터무니 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도 국회의 요청에 따라 해당국가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청한 바,최근 그러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온 것으로 저는 듣고 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에는 해당기업을 부도처리하여 도산시키는 방법이 가장 원칙적인 것이겠지만 대기업을 도산시키는 경우 하청기업과 계열기업의 연쇄부도 등으로 인한 대량실직 등의 커다란 사회문제가 초래될 수 있고 또한 대출금 회수불능으로 금융시장 전체가 근본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는 등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었습니다. 또한 부도처리 대상기업이 국외에서 상당한 공신력을 갖고 있는 재벌기업일 경우에는 해외시장에서의 한국기업 전체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신용실추 등이 염려되어 수출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 입장으로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의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해당기업에 계속 추가 금융지원을 하여 부도를 막아 주는 것도 있겠으나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금융지원을 계속한다는 것은 이미 위험수준에 도달해 있던 부실채권의 규모를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산업전반의 체질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사회정의에도 배치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써 해당기업도 살리면서 능력있는 제3의 기업을 찾아 인수를 종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만 그 과정이 비공개로 처리되어 많은 의혹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정리할 경우 부실의 내용이 공개되어 즉각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워지게 되는 등 부실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으며 인수자 선정에도 애로가 있어 부득이 내부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정부에서 인수자를 선정하게 된 것입니다.○사심 작용한 적 없다 인수기업의 결정은 경영능력,재무구조,업종 관련성,지역연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재무부장관 주관하에 주거래 은행과의 협의를 거쳐 산업정책 심의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그 최종단계에서 재무부장관이 본인에게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각종 의혹과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이 몇가지 방안중에서 결정을 해야 할 경우도 있었으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여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피인수기업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등의 감정을 지니게 되고 정리절차의 비공개성으로 인해 일부 의혹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으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이러한 비난보다는 국가경제란 측면을 더욱 고려해야할 입장이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부실기업 인수와 관련한 부채경감,세제지원,금융지원 등이 특혜라는 오해는 자산의 몇배가 되는 부채를 인수하는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조치로써 상당수의 기업이 인수에 소극적임에도 국민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여 떠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은행감독원장이 부실기업 정리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주거래은행과 재무부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은행감독원장으로서 관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나 질문과 같이 총괄지휘 등은 정치적인 오해라 생각합니다. 국제그룹 정리과정에서도 본인은 당시 재무부장관으로부터 국제그룹 정리의 필요성과 그 처리대책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부실기업 정리라는 일반원칙에 따라 행해졌던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10대 재벌에 속하고 있었던 국제그룹의 정리는 정부로서도 신중한 결정을 필요로 하였으며 해외에서의 한국기업의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하여 부도처리에 의한 정리보다는 부분별 제3자 인수방식을 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그룹의 부실은 부채비율이 거의 1천%에 이르렀고 그 중 상당부분이 단기고리인 완매채에 의존하는 등 부채의 성격 또한 악성이었다고 보고 받았었습니다. 정부는 84년 가을부터 85년 2월까지 2천5백억원의 자금지원을 함으로써 그룹의 회생에 노력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경영상태는 악화되어 경제부처의 관계장관들이 수차에 걸쳐 본인에게 회생불능의 보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선주의 정리과정도 통상의 정리절차와 마찬가지로 재무부장관의 건의를 승인한 것이며,당시 해운업의 부실규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서 선사별로 합리화 조치로 부족운영자금 지원,자구노력추진 등으로 경영정상화를 모색하였으나,대한선주의 경우 제1차 해운합리화 조치시 금융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실규모나 당시 해운시장 여건 등으로 보아 자체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정리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한진해운에 인수시키는 과정에서 조양상선과 경합시킴으로써 인수조건을 유리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는 당시 경제여건상 기업 및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일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절차의 비공개,피인수기업의 불만 등으로 많은 의혹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결코 개인적인 사심이 국가정책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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