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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에 대한 투자/박동은 한국유니세프 사무총장(굄돌)

    90년대는 국제적으로 어린이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고 국제사회의 노력이 이에 집중되는 시대이다. 90년 유엔의 어린이국제권리협약이 국제법으로 발효된데 이어 그 해 9월엔 역사상 처음으로 「어린이를 주제로 한 세계정상회담」이 뉴욕에서 열렸다.군축문제나 정치·경제·외교문제만이 정상회담의 주제로 등장했던 80년대의 관행을 깨고 세계 78개국 대통령과 수상이 한자리에 모여 어린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연 것이다.쉽게 예방될 수 있는 질병으로 5세 이하의 어린이가 하루에 4만명,1년에 1천4백만명씩 죽어가고 있는 비극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보건사업이나 영양개선,교육사업등은 단순한 보건·의학적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치·경제·사회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져 종합적인 개발문제로 다뤄져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유니세프는 88년말 「아동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을 제의했다.이때 세계의 매스컴은 이 제의를 냉소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 회담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년후 어린이를 위한 세계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이 회담에서 채택한 1990년대 어린이의 생존,보호발달을 위한 세계선언과 행동계획은 각국 정부의 아동복지 10개년 계획수립으로 이어지고 현재 1백20여개국에서 이 행동계획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고 있다. 2000년까지 어린이 사망률은 3분의1이 감소되고 영양실조 어린이는 절반으로 줄어들며 예방접종률은 90%에 도달하여 천연두와 소아마비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국민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의 수는 현재의 1억명에서 2천만명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이러한 목표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다.이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재원이며 좀더 많은 지원이 선진국들로부터 요청되고 있다. 건강한 가정환경에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는 어린이야말로 우리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갖다 줄 미래인 것이다.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어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 외채·인플레 “해방”/중남미경제 되살아난다(현장 세계경제)

    ◎브라질 인플레 월1∼3%로 진정/페루 성장률 12%… 평균3% 상회/통화긴축·무역자유화 주효… 해외자본 유입도 급증 공룡같은 외채와 인플레 압박에 오랫동안 숨이 막혔던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파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80년대는 중남미의 30여 모든 나라에게 「절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둠의 시대였다.1950년부터 80년까지 중남미 전지역은 연평균 5.5%의 우수한 경제성장률을 자랑했으나 계속된 정정불안과 국가경제 관리미숙으로 곧 구제할 길 없는 「제3세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정보불안으로 점철 초 인플레율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80년부터 90년 사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브라질 2천7백50%,아르헨티나 3천80%,페루 7천5백%,볼리비아 1만1천8백%,니카라과 1만4천3백% 등이다.또 개도국의 외채는 81년 총 6천억달러에 이르러 10년새 6배로 불어났는데 중남미 제국들의 채무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80년대 말경엔 중남미 각국에서 외국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원리금상환과 이익배당금으로 흘러나간 돈이무려 연 2천억달러를 넘어설 지경이었다.만성적 경기침체,대량실업,실질임금 감소로 점철된 80년대는 상실의 시대였으며 당연히 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년 전 수준을 밑돈 형편이었다. 그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가 견실하게 되살아나는 중이다.브라질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인플레 증가율이 30∼50%에 달했지만 지난 7월 새 통화단위와 함께 강력한 통화안정정책을 실시한 후 월 인플레가 1∼3%로 낮아졌다.지난해 1년새 물가가 10배 가까이 치솟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경제 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할 경우,올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1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도 만만찮게 이루어지고 있다.중남미 전지역은 올해 3% 이상의 성장률을 4년 연속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특히 페루는 12%를 웃돌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6% 성장을 장담한다.멕시코의 세디요 새 대통령은 내년 4% 성장을 목표로 하고있고 브라질도 안정화시책이 자리잡히면 현재의 갑절인 7∼8% 경제성장이 확실시된다. ○브라질도 흑자 재정 한때 세계경제의 문제아였던 라틴아메리카가 「제3세계답지 않게」 이처럼 낮은 인플레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긴축재정·무역자유화·민영화로 연결되는 개혁시책을 끈기있게 추진한 결과이다.칠레와 콜롬비아가 이같은 개혁의 선두주자이며 브라질,베네수엘라,우루과이,에콰도르 등이 다소 뒤쳐져 있다. 멕시코는 87년 당시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누계가 GDP의 15%에 달했으나 91년부터 긴축예산으로 흑자재정을 달성,적자누계를 반으로 줄였다.아르헨티나가 지난해 이를 뒤따랐으며 브라질도 올해 흑자재정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자국산업 과보호와 수입품 고율관세 경향도 뚜렷이 퇴색했다.93년 현재 전지역의 평균관세가 12%로 2년 전의 26%보다 크게 낮아졌다.상호간 교역량 역시 급속히 늘어나 주요 11개국 사이의 무역이 89년 이후 배 이상 불어난 데 이어 전지역간 교역은 83년 70억달러에서 현재 2백60억달러로 급증했다. ○민영화 꾸준히 진행 정부재원을 풍부히 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국영기업 매각정책은 중남미 개혁의기치로서 지금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칠레와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간에 팔았으며 아르헨티나는 원전,우체국,조폐공사,석유화학사 등 마지막 남은 정부기업마저 내년 안에 완전 매각할 계획이다. 해외자본 유입만큼 라틴아메리카의 달라진 모습과 높아진 위상을 반증하는 실례도 없을 것이다.국제채무 상환포기선언의 불명예와 그에따른 외국자본 단절로 압축되는 중남미의 「외채위기」는 4천9백억달러의 외채상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거의 과거지사로 여겨진다.지난 90년부터 93년까지 라틴아메리카로 흘러온 해외자본의 순액은 1천7백억달러를 웃돌 뿐 아니라 외채적 성격이 짙은 상업차관은 단 5%에 불과하고 각국 유망산업과 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옛 영화 되찾자” 힘찬 발진/메넴정부,무역·외환정책 획기적 전환/90∼94년 30%이상 성장… 세계3위 기록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는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20세기초 풍부한 광물자원과 농장을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무역규모 세계 10위의 아르헨티나가 근 1백년만에 완전히 피폐한 상태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추진된 아르헨티나의 개혁작업으로 「군화발 자객」「고인플레」「보호주의」등의 오명과 함께 이같은 역설도 이젠 실효성을 잃을 것같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은 다시 소비열을 느끼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달러화시세를 전광판으로 즉시 게시한다.과거 정부와 가격인상을 위한 협의에만 능했던 기업인들은 마켓팅 방법을 논의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 모든 변화가 89년 「메시아」처럼 등장한 메넴정부가 이룩한 공적이다.그의 개혁정책을 떠받치는 3대지주는 수입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 철폐로 시작된 경쟁도입이 그 하나요,연간 운영비로 수십억달러를 삼키던 공기업 민영화가 둘째다.메넴정부는 우편,항공,전기 등의 민영화로 2백40억달러를 조달했다.민영화는 외국인투자 러시를 촉발해 90∼93년 사이 무려 2백45억달러의 외자를 거두어 들였다. 세번째는「메네노믹스」로 불리는 외환정책이다.하버드대 경제학자 출신인 카발로를 재무장관으로 등용,자국통화인 페소와 달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한 이른바 「태환 플랜」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개혁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90년 이후 4년동안 30%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중국,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80년대 연평균 4백%를 유지하다 90년 연간 2만%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도 수그러들어 올해엔 4%를 맴돌고 있다.노동생산성도 91년 이후 42%나 증가해 메넴은 다른 나라가 20년 걸릴 일을 아르헨티나는 5년만에 해치웠다며 자신에 차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개발도상국으로 보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아르헨티나는 「회복하는」국가라는 것이다.물론 이같은 회복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끄떡없이 견뎌냈던 아르헨티나는 49년부터 74년까지 집권한 후안 페론 정권 하에서 불구가 됐었다. 무모한 반미외교정책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고 국내의 계급투쟁으로 국민은 사분오열됐다.기업국유화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은 국고를 탕진했다. 또 70년대초 군부와 좌익반군간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과 뒤이은 군부 쿠데타는 아르헨티나를 부패와 초고인플레 아래 허덕이게 했고 급기야 80년대 5백억달러 재산의 해외도피를 몰고왔다. 메넴정부의 「기적」은 암울한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다만 아직 부패척결과 공공부문의 개혁이 과제로 남아있고 폐소화의 평가절상으로 올해 60억달러까지 무역적자폭이 확대될 전망이어서 외환정책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게다가 GDP의 17.6%에 불과한 저축률은 기업의 자본부족을 부채질하고 있어 메넴의 승리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미완의 혁명인 메네미즘이 「기적」이란 이름값을 할지 국제적 관심사이다.
  • 미 이민자,뉴욕 선호 여전/뉴욕시 자료공개

    ◎매년 11만명… 80년후 30% 증가/도미니카인 최다… 중·러순 정착 뉴욕시에 들어오는 이민수가 1980년대 이후 약 30% 증가했으며 도미니카인 중국인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은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뉴욕시의 도시계획국이 종합한 자료에 의하면 뉴욕시에는 해마다 약 11만1천5백명의 합법적인 이민이 정착하고 있다.이는 1980년이후 약 30%,그리고 1970년대 이후 40%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뉴욕시는 미국 전역에서 이민들의 제1 목적지가 되고 있다.미국에 들어오는 이민가운데 7명중 한명이 뉴욕을 정착지로 삼고 있다. 일부 유럽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은 1990년대에 와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1990년부터 1993년 사이 근 5만명의 러시아 난민이 뉴욕시에 도착했다.이는 1980년에 뉴욕에 들어온 러시아인 1만1천명보다 4배나 많은 것이다. 어느 다른 이민그룹보다 도미니카인들이 더 많이 이곳에 정착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해마다 약 1만4천명의 도미니카인들이 이곳에 들어왔으나 1990년대초에는 약 2만1천명으로 증가했다.
  • 미국서 현대판 「솔로몬재판」 화제/아빠에 양육권 부여 잇달아

    ◎직장에만 매달리는 아기엄마엔 패소 판결/공동양육 방안 대두… 아이탈선 조장 비판 갓난 아기를 두고 서로 친어머니라고 주장하는 두여인 사이에서 진정한 모성애를 확인하는 기지를 발휘,친모를 가려낸 고대 솔로몬대왕의 현명한 판결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그로부터 5천년이 지난 현대 미국 사회에서 「1990년대판 솔로몬 재판」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근간 뉴욕타임스지는『최근 가정법원에서 이혼한 남녀가 자녀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경우 경제력이 있는 여성에게 양육권을 부여했던 관례를 깨고 아버지쪽에 승소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계속 생겨나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미 상원의회 보좌관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워싱턴의 한 여성과 명문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하느라 아이를 탁아소에 맡긴 한 여성의 패소가 대표적인 사례. 미국 법원은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20세기들어 지난 70년대까지는 여성에게 양육권을 부여하는 판결을 보편적으로 내려왔었다.그러나 최근의 판결변화 배경에는 바로 가정에 보조적인 정도로 직장활동을 하던 여성들이 요즘은 맹렬한 직업인이 되길 원하는데다 기꺼이 육아를 담당하겠다는 남성들이 느는 등 남녀의 성역할이 기본적으로 바뀌어가는데 있다. 일련의 남성승소 판결이후 여론은 들끓기 시작,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만으로 양육권을 정할 수 없으며「누가 먼저 아이가 땅에 넘어질때 뛰어나가느냐」는 기본적인 애정으로 판단해야하는 문제라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미 재판부는 골머리를 앓고있다. 여성주의 법학자들은 『많은 법관들이 남성의 직장생활을 양육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찬양하는 한편,여성의 직장생활은 반모성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여성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부권 옹호론자들은 『과거 여성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과 모성애를 연결,대접을 받았듯이 최근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남성들 역시 부성애로 그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쪽의 의견이 팽팽해지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양부모의 집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아이문제의 중요한 사안은 공동 협의,결정하는「공동양육」방안이 제시되고 있다.워싱턴 소재「어린이 권리옹호 협회」회장 데이비드 레비씨는『이혼한 부모 둘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공동양육이 아이에게 가장 상처를 덜 주고 비교적 바르게 키울 수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공동양육에 따른 부작용 사례도 만만찮게 보고되고 있다.즉 이혼한 부모 사이에 쌓인 「악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경우 이집 저집을 왔다갔다 하는 아이는 탈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와 남녀 성역할이 크게 변모하는 미국 사회에서 훌륭한 부모를 가려주는 역할은 재판부의 결정에 달려있으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혼한 남성과 여성이 양육권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하는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미국내 사회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일인 닮아가는 청소년/박영(굄돌)

    압구정동이나 대학로등지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패션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좀 찜찜하다.업무상의 일로 자주 도쿄를 드나드는데 그곳의 신주쿠나 하라주쿠에서 볼수 있는 젊은이들의 차림새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아니 똑 같다.구두·옷·장신구·모자등등. 그뿐 아니다.카페·음식점·커피점등의 인테리어도 도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가게의 이름까지도 비슷한 것이 많다.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일본노래를 들을 때도 있다.TV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젊은 가수들의 패션·율동·음색·곡조도 흡사하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일본인 친구들이 이런 현상을 목격하고 빙긋이 웃을때 참 기분이 나쁘다.그 웃음의 내용이 어떠한지 대략 짐작가기 때문이다. 일본문화의 한국상륙에 대해서 요즘 논란이 있는데 논란 이전의 현실적 상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왜냐하면 이제 도쿄와 서울은 1일 생활권내에 있기 때문이다.현실을 우선 직시하고 현실 자체를 받아들인 다음 이런 현실의 앞날을 용의주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찬성·반대의 흑백논리가 불가하다는 생각이다. 10대의 일본인 젊은이 10명과 한국인 젊은이 10명을 섞어서 세워놓고 한국인 젊은이 10명을 골라내라고 하면 정확히 집어 낼수 있을까?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그들 20명의 눈빛·표정·느낌·체격·옷차람 다비슷하기 때문이다.물론 50대의 일본인과 한국인을 20명 세워놓고 분류해 내라고 하면 간단히 구별이 될 것이지만.50대의 그들이 살아온 세월이 그 얼굴과 체취에 묻어나고 있을터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1990년대의 일본과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50대 이상의 그들이 살아온 세월과는 전혀 다른 시간들만 기억 돼 있지 않은가.이렇게 우리는 가까이 있는 일본에서 지난 세월속의 역사때문에 먼 일본이라는 의식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정치·경제·사회적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이 복잡해진다.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 이웃인 것일까.
  • 인도·브라질·이스라엘(세계의 우주로켓 발사기지:5·끝)

    ◎「우리별2호」 계기로 살펴본 현장/인도 3곳,브라질·「이」 1곳씩 운영/80년 첫 우주 진출… 미·불 등에도 발사의뢰/인도/61년 추진… 최근 연23회 기상관측용 띄워/브라질/88년 자장·우주환경 연구위성 쏘아 올려/이스라엘 우주는 선진국의 전유물만은 아니다.개발도상국의 지분도 남아 있다.이번 호에서는 우주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도·브라질·이스라엘등 개도국의 우주발사현장을 가본다. ○1t이상 운송 능력 ▷인도◁ 자기자신의 우주발사체로 인공위성을 띄워올린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다.우주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은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다.그리고 인도 국적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출가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은 스리하리코타발사장과 싱바발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인도 남동쪽 벵골만에 위치하고 있다.안드라 페데쉬의 동쪽해안에 있는 스리하리코타섬에 자리잡고 있다.정확한 위치는 동경 80.4도,북위 13.9도.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ISRO가 책임,운영하고 있다.이 발사장의 최초의 우주진출식은1979년8월10일 거행되었다.인도 국적의 로히니 1A 인공위성의 우주출가식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우주에서 꽃을 펴보지도 못하고 운명한 수명 1년2개월짜리 로히니는 발사체및 자신을 모니터하는 임무가 주어졌었다.이때 우주행 버스구실을 한 것은 인도산 SLV­3호 로켓이었다.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의 첫 쾌거는 1980년7월18일 찾아왔다.즉 꿈에 그리던 로히니1B의 우주진출식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무게 35㎏의 이 위성은 당시 5억 인도인의 자긍심을 치켜올렸다.그 뒤 잇따라 로히니 시리즈가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을 출발했다.발사방위는 북향.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극궤도로 우주행 화물을 수송할 때만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극히 짧은 시간대와 좁은 발사폭으로 썩 적합한 우주창구는 못되는 편이다.발사때마다 북쪽에 있는 인구밀접지역인 인도 본토와 남쪽에 자리잡은 스리랑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발사관계자들이 가슴을 죄는 경우가 많다. 한편 캘커타 근처에는 극궤도위성인 태양동주기궤도로 궤도경사각99도까지 로켓 발사를 실행할 수 있는 곳이 있다.바로 발라소레발사장이다. 그리고 싱바발사장은 동경 77도,북위 8도 상에 있다.발사방위를 동향과 남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소형 로켓 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도는 우주행 버스인 로켓 개발국으로서 당당히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나라다.인도가 내놓은 로켓은 SLV,ASLV,PLSV,GLSV등이다.SLV로켓은 4단 고체추진제 로켓으로 성능면에서는 미국의 스카우트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ASLV는 SLV보다 한 단계 상위등급이다.2개의 고체추진제 부스터를 추가하는 등 추진력을 보강,1백50㎏의 우주행 화물을 거뜬히 저고도 지구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그리고 PSLV는 1천㎏을 1천m의 극궤도에,GSLV는 1천3백∼1천7백㎏의 화물을 지구정지궤도까지 싣고 갈 수 있는 수송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발사장과 운송수단인 로켓등 발사장비를 모두 갖춘 인도는 자국발사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1987년말까지 발사된 9개의 인공위성 가운데 3개는 (구)소련에 의뢰해 우주로 진출했으며,1개는 미국,1개는 유럽의 아리안,그리고 4개는 인도 국내 발사체에 의해 우주행을 시도했다. 1980년대 중반 인도의 우주개발예산은 30억루피아(약8백억원)를 넘어설 정도로 우주개발열기가 뜨거운 나라다.이 가운데 60%는 인도내의 기업체에 배분된다.ISRO는 통신·TV·기상·원격탐사 등을 국가적 혁신기술사업으로 지정하고 있다. 인도의 우주기술개발은 국가 주도 아래 산업체 이전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1987년 현재 IRSO가 개발한 80여가지의 우주기술은 인도의 산업체들에 기술이전되었다.우주개발도상국인 인도는 기술축적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도의 기술영역으로 곧바로 직행,확실히 성공한 나라다. ▷브라질◁ 1961년 브라질은 우주과학및 위성연구분야에서 브라질의 우주개발을 맡는 INPE연구소를 설립했다.그리고 70년대 중반부터 때때로 브라질이 인공위성을 자체 능력으로 우주에 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정작 브라질이 인공위성 발사계획을 확고하게 잡은 것은 1986년이었다.그러나 여러가지의 국내 문제로 여러차례 수정을 거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로켓 미·독에도 수출 1985년,1986년 「브라질셋」위성을 아리안에 의뢰,발사하였다.이 두 위성은 통신위성으로서 1만2천개의 음성채널과 24개의 컬러TV채널 용량을 갖추고 있어 브라질 방송문화에 기여하고 있다. INPE에는 1천6백여명의 직원이 종사하고 있다.그리고 우주사업기구(IAE)가 설립돼 발사체개발을 맡고 있는데 1천여명의 기술자를 포함해 3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1989∼1993년 사이에 4개의 위성발사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이 가운데 2개는 자료수집용이고 2개는 지구궤도 원격탐사위성이다. 브라질은 바라이라D,인펠른발사장을 보유하고 있다.위치는 서경 36도,남위 4도 지점이다.이 발사장은 브라질 우주연구소인 INPE가 관리,운영하고 있다.동쪽으로 발사방향을 갖고 있는 이 발사장에서는 우주버스로 소형로켓인 손다Ⅰ·Ⅱ·Ⅲ·Ⅳ를 이용하고 있다.1990년대 후반에는 알칸다라로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주산업에 일찍 뛰어든 브라질은 1964년에 이미 발사체개발계획을 세우고 손다 과학관측용 로켓 제작에 힘을 기울였다.1백㎞ 고도에 4.5㎏ 탑재물을 올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손다ISMS는 주로 기상데이터 수집을 위해 2백번이상 발사되었다.현재는 손다Ⅱ를 사용하고 있는데 지난 15년동안 60개 이상이 발사되었다.요즘은 1년에 23개 이상을 발사하고 있다.손다Ⅲ모델은 1976년 개발을 끝내고 약20개 정도가 발사되었으며 미국과 서독등에 판매하고 있다. 한편 1974년 손다Ⅳ로켓 개발을 수행,1984년 첫 시험비행을 성공했다.이때 6백11㎞의 고도까지 올라갔다.탑재물은 5백㎏.두번째는 이 무게를 싣고 7백㎞까지 상승했으며 1987년10월 세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유도탄 개량한 「혜성」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네게브 사막의 팔마신 공군기지는 지형학적으로 세계에서 보기드문 우주창구다. 위치는 동경 34도27분,북위 31도31분 상에 있다.1983년 설립된 이스라엘 우주기구(ISA)가 총괄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1988년9월19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위성을 우주로 보냈다.뒷날 밝혀진 이 위성은 Offeq­1.수평선이라고 번역된 이 위성은 우주환경조건과지구자기장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위성의 총무게는 1백55㎏,고도는 2백50㎞에서 1천1백50㎞까지 궤도를 경사각 1백42.9도로 지구주위를 회전한다. 1990년4월2일 무게 1백69㎏의 Offeq­2가 발사되었는데 고도는 2백10㎞에서 1천5백㎞ 궤도를 경사각 1백43도로 지구주위를 돌고 있으며 임무는 전임 Offeq­1호와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자력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세계 8위국이다.이스라엘 전용 우주행 버스 사비트.「혜성」이라고 불리는 이 로켓은 3단계 고체 로켓이며 중거리 탄도유도탄인 에리코Ⅱ의 개량형이다.이 로켓은 아랍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구자전과 반대방향인 네게브사막에서 서쪽 방향으로 발사하고 있다. 이 사비트로켓은 이스라엘 우주국에서 관장하며 이스라엘 항공회사에서 제작한다.1992년 지구정지궤도에 아모스Ⅰ 통신위성을 발사했으며 몇개월 뒤 아모스Ⅱ가 같은 위치에 올라갔다.이 위성들은 주파수대역인 C밴드가 아랍 위성에 의해 점령,사용되므로 Ku밴드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인도와 호주 이밖에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발사장이 있다.호주 우메라발사장은 동경 1백36도48분,남위 31도15분으로 일본 가고시마우주센터와 정반대에 있다.면적은 기아나우주센터를 제외하고 두번째인 7백50㎦에 이른다. ○76년엔 잠정폐쇄돼 호주와 영국이 관리,운영하고 있는데 유럽 Ⅰ,Ⅱ,Ⅲ등의 로켓을 사용하고 있다.이 센터는 1946년 출발해 76년 잠정폐쇄되었다가 1987년 일부재개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이곳에서 출발한 인공위성용 로켓은 2기(1989년2월 현재)였다.
  • 중국·일본(세계의 우주로켓발사기지:4)

    ◎전용발사장 중 3곳·일 2곳 보유/70년 「장왕1호」 첫 성공… 5번째 자체발사국/중국/소형 H­1로켓 주류… 3단분리형까지 개발/일본 아시아에 있어서 두 우주개발맹주는 중국과 일본을 꼽을 수 있다.중국은 자국전용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3개 발사장을,일본 또한 2개의 발사장을 갖추고 있다.뿐만아니라 우주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중국과 일본의 우주발사무대를 가본다. ▷중국◁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항공기공업을 거쳐 우주사업을 시작하는 예를 깨고 로켓개발을 먼저했다.중국의 로켓개발은 미 칼텍의 본카만교수밑에서 훈련을 받은 쳰 슈 에센등이 중심이었다.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 활동한 이들은 55년 중국의 로켓개발에 기여했다.초기 중국의 로켓개발은 소련의 SS­3 유도탄을 개조,설계한 것으로 일본보다 두달 늦은 1970년4월14일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인공위성을 자체발사한 다섯번째 국가였다.사용된 발사체는 「장정1호」라는 3단액체추진로켓이며 쏘아올린 인공위성은 1백73㎏에 고도 4백39∼2천3백84㎞의타원지구궤도이고 1백14분에 한번씩 지구를 돈다. ○84년 통신위성 첫 발사 중국은 LM(Long March·대장정)발사체로 우주진출의 꿈을 모두 실현시키고 있다.이 LM발사체를 위해 3군데의 발사장소를 가지고 있다.시창(서창)우주발사센터(XSLC)·즈추안우주발사센터(JSLC)·타이위안(태원)우주발사센터(TSLC)등. 이 가운데 XSLC는 1984년 중국 최초의 통신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이 XSLC는 사천성의 시창시의 북서쪽 64㎞에 위치한 산악지대다.이 발사장은 해발 1,800m에 있다.동경 1백2도,북위 28.2도. XSLC의 기후는 아열대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이 섭씨 16도이고 여름에 가장 더울 때의 평균기온은 섭씨 25도를 웃돈다.겨울에 가장 추울 때의 평균기온이 섭씨 2도가량 된다.그리고 서리가 내리는 기간이 짧고 건조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이상적인 기상조건을 갖춘 곳이다.우기는 6월에서 9월까지 계속된다. XSLC는 교통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먼저 시창교외 북쪽에 있는 시창공항은 보잉 747여객기 등이 자유자재로 이·착륙할 수 있다.또한 철도와 고속도로망이 이곳을 통과하도록 설계돼 있어 덕분에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특히 철도와 고속도로분지선은 발사장소로 곧장 인도되도록 설계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철도의 최대경사각은 3도이하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속도로 또한 최대경사각 5·6도이하로 시공하는 등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다. XSLC는 발사체와 탑재물의 검사와 점검을 실시하는 기술센터를 비롯해 발사체검사빌딩·탑재물준비빌딩·위험과정검사빌딩 등으로 구성돼 있다. LM발사체는 기차편으로 발사장소에 운반된다.발사체는 발사장소인 약 2.2㎞ 북쪽으로 분해된 상태로 트럭으로 운반되기 전에 점검을 위해 발사체점검 격납고안에서 수평상태로 약 5주정도 머문다. 탑재물준비빌딩에서는 우주선의 완성과 시험조작이 진행된다.필요할 경우 상공에서의 실험도 실시한다.이 건물은 최소한 2대의 우주선을 조립할 수 있을만큼 넓고 검사홀의 청정도는 10만이내의 청결도를 유지한다.우주선조립실은 이보다 열배나 깨끗한 청정도 1만이하다. 위험과정검사빌딩에서는 우주선추진연료 및 압축고체연료 제작,전력추진장치의 설치,탑재물의 스핀균형등을 잡는 일이 이루어진다. XSLC에서 우주행 로켓등이 발사되는 동안 발사장주변 6㎦이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완전히 집을 비우고 발사장 밖으로 대피해 있어야 한다.주민들이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시각은 발사완료 10분뒤.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또한 JSLC는 원래 서구 자유진영에 솬 청 쥬로 알려진 중국의 유명한 발사장이다.대부분의 중국산 위성이 그곳에서 발사되었다. JSLC는 북경에서 서쪽으로 약 1천6백㎞에 위치하고 있다.고비사막의 가장자리인 만리장성의 변두리에 있다.위치는 동경 1백도,북위 40.7도. 해발 약 1,000m를 기록하는 이곳은 궤도진입을 시도할 때 몽고와 소련의 영공침범을 피하기 위해 남동쪽으로 발사하고 있다.발사폭은 56.9도에서 69.9도로 매우 좁은 편이다.JSLC에서 출발하는 우주행 화물들은 자원탐사위성과 정찰위성이 대부분이다. 이곳의 교통사정 역시 완벽하다.발사장의 남쪽에 있는 공항은 철도로 연결돼 있어 기술센터와 발사장 교통이 원활한 편이다. 그리고 TSLC는 북경 남서쪽 5백㎞지점에 위치한다.산시성의 한복판에 있는 이 발사장은 바위투성이 위에 세워져 있다.이 발사장에서는 발사체를 우주 남쪽으로 출가시켜 극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이용된다.1988년9월 중국 최초의 기상위성을 우주로 파견할 때 이 발사장을 이용하였다. ○다네가시마 취대규모 ▷일본◁ 최대인공위성발사장은 다네가시마(종자도) 우주센터로 섬인 다네가시마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다네가시마는 인구 4만3천명,섬길이 약 58㎞인 작은 섬으로 일본열도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에서도 남쪽으로 약 80㎞ 더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위치는 동경 1백30도58분,북위 30도24분. 발사장에는 소형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와 H­1로켓과 H­2로켓을 발사하는 전용발사대가 있다. 이 센터안에는 마쓰다 추적및 자료수신소,노기 우쓰가오카 레이다기지,그리고 3개의 광학추적 스테이션이 있다. 이 센터의 넓이는 8.64㎦.이곳에는 고체와 액체로켓엔진의 연소실험을 할 수 있는시설도 있다.이 센터는 로켓을 조립하고 발사하며 제어와 추적을 하는 일이 주임무다.발사방향은 동쪽. 단점이라면 인근에 어장이 있다는 것.로켓발사 때마다 소음과 어장피해우려로 인해 어부들이 항의, 마찰을 빚고 있다.따라서 어부들의 강경한 항의 때문에 매년 1월15일부터 2월말까지,그리고 8월1일부터 9월15일까지로 발사기간이 극히 제한돼 있다. 또한 가고시마(녹예도)우주공간관측소(KSC)가 있다.위치는 동경 1백31도04분,북위 31도15분.다네가시마우주센터의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2㎦로 간단한 발사장이다. 일본의 우주과학연구기관(ISAS)이 관리,운영하고 있다.1989년2월 현재 16차례의 인공위성용 로켓이 발사되었다.이 센터는 소형로켓과 바루소로켓이 발사의 주류를 이룬다. 한편 오사카지역에는 H­1발사를 돕기 위한 여러가지 시설들이 있다.여기에는 2개의 연료주입관과 연료공급탑이 있다.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발사대는 길이 6.4m,너비 12m이며 무게는 17t에 이른다.2개의 마스트에서 발사직전까지 여러개의 관을 통해 발사체에 주입한다.1번마스트의 크기는 높이 35m,너비 3.5m이고,2번마스트는 높이 49m,너비 4m다.연료공급탑은 발사체의 조립과 점검,발사준비에 사용되며 모든 발사준비가 완료되면 1백m 정도의 레일위를 이동하게 된다.연료공급탑은 높이 67m,너비 26m,무게 2백80t이다.이 센터는 추진체저장실과 공급실,지상발전소 수력시설등 비행보조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로켓조립공장에서는 H­1로켓의 1,2단계 엔진을 조립하고 점검하며 발사대에 설치하기 전에 조정하는 일을 한다.고체모터 테스트빌딩에서는 보조부스터와 3단계 고체로켓의 점검과 점화,조립등을 실시한다.스핀 테스트빌딩에서는 H­1로켓의 3단계 모터와 위성체가 조립되고 점검되며 분리장치가 제대로 결합되었나를 살핀다. 일본의 우주개발역사는 195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이해 도쿄대 히데오 이토가와교수가 대기중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연필로켓」제작팀을 구성한 것이 그 효시다.그러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일본정부가 이토가와교수의 로켓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방송한 미국의 통신위성이 계기가 되었다.일본 과학기술청은 부랴부랴 우주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국립우주개발센터를 발족시켰다.이 센터는 1969년 NASDA로 명칭을 바꾸었다.그리고 같은 해 일본정부는 미국정부와 델타발사체의 기술이전과 N자형 발사체의 개발을 내용으로 한 협의서를 체결했다.1977년 대형로켓연구계획이 수립돼 H형로켓개발이 시작되었다.H형시리즈는 1986년이후 줄곧 성공을 거두었다.그해 8월13일 2단 로켓발사를 수행했고 8월27일 3단 로켓발사를 끝냈다.3단 H­1로켓은 5백50㎏의 무게를 정지궤도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1992년까지 모두 9대의 H­1로켓이 발사되었다.일본은 1990년대의 주력사업으로 H­2로켓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는 NASDA이외에 일본우주개발연구소(ISAS)등 2개의 기관에서 우주산업에 몰두하고 있다.NASDA가 통신위성 등 응용부분의 우주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에 ISAS는 천체관측용 위성등 연구용 인공위성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화제의 책)

    ◎해방후의 북한사 포함,반쪽역사 복원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18 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격동과 변혁의 시대사를 쟁점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민족사적인 흐름속에서 살펴본 학술 교양서. 지은이는 이 책에서 흥선 대원군이 집권하기 시작한 1860년대를 근대사의 기점으로 잡고 1919년 3·1운동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와 그 이후로 현대사를 양분해 쟁점별로 간단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특히 8·15 이후의 북한사를 5천년 한민족사에 대동합류시켜 반쪽역사가 아닌 한겨레 한핏줄로서의 통일 근·현대사를 이룩하고자 고심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이현희 지음 삼영 8천원.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1)

    ◎소년시절:2/“김형직에 워싱턴행적 배웠다”/82년엔 없던 “가정교육” 이번전기 삽입/“중국귀화 교육” 팔도구소학교에 편입/김일성 “공부잘했다” 회고록서 자랑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진석이 1921년 4월에 평양에서 체포된 후 더 이상 임강에 살 수 없게 된 김형직이 장일현팔도구로 이사하셨다고 쓰고 있다. 임강은 독립운동단체들의 활약이 맹렬한 지방으로 1920년 7월에는 봉천군벌 고문으로 있었던 판본준마(사카모토)의 사간도탐사반이 독립운동가들을 대거 검거하는 「모예산사건」이 있었다.김형직과 같은 자산가였던 이두희,그리고 정단등 10명이 체포되었는데 모두 유하현삼원포의 독립군중앙총단장 조맹희계통이었다. ○친지 검거로 이사 사카모토 수사반은 백산무사단 계통인 팔도구소학교 교사 김관계(김보안)는 체포하지 못하였다.그러나 같은 백산무사단 계통인 김형직이 수사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독립운동에 관여한 혐의가 그에게는 그만큼 적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강진석이 체포되면서 김형직도 임강을 떠나지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팔도구까지 2백50리를 이사 갈 때는 전도사 방사현이 동행했는데 압록강과 팔도구하의 합수목에 있는 마을에 광제의원을 차리게 되었다.김일성은 21년 여름에 이곳 팔도구소학교 2학년에 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말하는 임강소학교의 정식명칭이 모예산현립소학교였던 것과 같이 팔도구 소학교도 그 정식명칭은 장백현립제칠분교이다.장백현의 동남단에 현치인 장일부가 있는데 거기에 현립제1분교가 있었고 거기에서 압록강을 따라 대체로 서쪽 하류로 나가면서 제3·제4 등 분교가 설치되어 임강현경인 팔도구에 제7분교가 있었던 것이다.중국측에서는 이 학교들을 정몽학교로도 불러 팔도구소학교는 제칠정몽학교라 하였다. 팔도구의 제7정몽학교는 1917년에 설치되었다.그 12년 후가 되는 1929년의 통계에 의하면 귀화한인인 교원이 1명만 있었고 아동은 8명 밖에 되지 않았다.당시는 4년제 소학교였으므로 단순계산으로는 한 학년에 2명 꼴이었다.너무 학생수가 적어서 새삼스럽게 놀랄 정도이다. 1927년 일제가 영사분관을 모예산에 설치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임강현 지사장극상은 이를 재만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임강현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퇴거를 강요하였다.이러한 압박으로 당시 임강현에서는 한인 5백∼6백명이 현경 밖으로 도피했다. 팔도구는 임강현 바로 동쪽에 있는 한인촌락이므로 이러한 영향을 받아 1929년에는 그곳의 주민들이 아주 적었던 모양이다.이것이 팔도구소학교의 학생수 8명이란 통계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러나 일제의 영사분관 설치책동이 없었던 1925년의 인구통계를 보더라도 팔도구의 인구는 4백명,호구는 75호였다. ○학생 겨우 15∼16명 당시의 취학률은 인구의 4%정도로 추정되므로 김일성이 있었던 1921∼2년 께의 팔도구소학교는 학생수 15∼16명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이 학생수로는 4개 학년으로 나누어 1개 학년에 각각 4명 정도인데 이 4개 학년을 교원 1∼2명이 복식수업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당시 공부를 잘 했다고 자랑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있다. 「내가 다니는 팔도구소학교는4년제 중국인학교였는데 수업도 중국말로 하고 취급하는 과목도 중국의 것이었다.시내에는 조선학교가 없었다」. 장백현은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빠져 나온 한인이 거의 전부였으므로 소학교에는 중국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그러나 이 학교는 한인을 귀화시켜 중국에 정착하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이 있었던 1921년 당시 이 학교의 주된 교과목은 수신·국문·사회·산술 등이었는데 수신이란 유교사상이며 국문이란 한문이었다.당시는 아직 백화문(보통 중국말)은 가르치지 않았다. 필자는 평전에서 이 학교에서는 한국어도 약간 가르친 것이 아닌가고 추측했지만 김일성은 이상의 글에서 이 학교에서는 한글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글과목은 없어 그 대신 그는 김형직으로부터 개별교육을 받았다고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우리 글과 지리,조선역사를 배워주고 레닌·손문·워싱턴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그 덕으로 나는 그 때 「조선문위인」「조선영웅전」「노국혁명사와 레닌」같은 좋은 책들과 신문·잡지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의 말은 북한의 이전 전기에는 없었던 말들이다.8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임강에서 가정교육에 열심이었다는 말이 나오지만 팔도구에서까지 그랬다는 말은 없다. 팔도구소학교 시절 그가 레닌·손문·워싱턴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의 위인이나 영웅,그리고 노국혁명사와 레닌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다. 강진석이 체포되자 같은 우익단체인 백산무사단에 관계하였던 김형직은 겁을 먹고 팔도구에 피난하였다.그러나 김형직이 「노국혁명사와 레닌」같은 책을 자식에게 가르쳤다는 선전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가 되어도 이런 식의 날조가 진행중이다. ①「세기와 더불어Ⅰ」72면 ②같은 책 72면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1)

    ◎김형직의 사망신화:2/“아사·타사·동사 3대각오 지시” 등 꾸며/사실은 급사… 많은 재산 남긴것엔 함구 김일성은 부친 김형직이 죽기 직전에 「유언」을 받았다고 선전하고 있다.「세기와 더불어」는 이 유언을 김일성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유산」이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원의 사상,3대 각오,동지획득에관한 사상,두자루의 권총,이것이 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였다」
  •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요지

    ①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제24차 안보협의회의(SCM)가 1992년10월7∼8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②양측은 범세계적인 화해와 협력의 추세에도 불구하고,동북 아시아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포함한 불안정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미국은 지역내 미국의 이익을 감안하여 아시아 안보와 관련된 지속적 역할과 동지역에 미군의 장기주둔을 재천명하였다. ③양측은 지난 23차 SCM 이후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몇가지의 긍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했음에 유의하고,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기반을 제공하는 뜻에서 이러한 합의들이 즉각적이고도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④양국은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다짐하였다.양측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동 협정을 이행하며 IAEA 핵사찰을 수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1단계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⑤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관련하여 최장관과 체니장관은 북한이 강제사찰을 포함한 신뢰성있고 효과적인 남북 상호사찰에 동의하고,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핵재처리 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공약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⑥미국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안보공약을 재천명하였다. ⑦최장관과 체니장관은 향후 주한미군 감축과 현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의 역할 조정등 한미간 군사현안은 「한미연합 억제력 유지」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단계적,신축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⑧양측은 주한미군에 대하여 「한미양국 정부와 국민이 대북억제력을 제공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고 믿는 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하였으며,주한미군의 추가감축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이 철저하게 규명될 때까지 계속 유보하기로 합의하였다. ⑨양측은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을 늦어도 1994년 12월31일까지 한국에 전환하기로 합의하였다.또 남북관계 특히 상호핵사찰 등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전이 없을 경우 93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조치를 계속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⑩양측은 한국정부가 93년도에 2·2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주한미군에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⑪양 장관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아태지역의 안정과 한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공동 인식하에,한미안보협력도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유지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양측은 1953년 군사정전 협정은 남북간 직접협상에 의해 평화체제로 대체될 때까지 존속되어야 하며 군비통제도 남북간 직접대화에 의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⑫양측은 1990년대 기간중 한미 쌍무관계는안보동맹에서 점차 한미 쌍무적,한반도,지역,세계 차원에서의 상호 존중과 협력에 기초한 보다 포괄적인 정치,경제,안보 동반자 관계로 진전될 것임을 확인하였다. ⑬양국 대표단은 한미간 방산,군수,기술 협력이 양국의 국가이익에 최대한 기여하는 방향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는데 합의하였다. ⑭금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특히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아태지역내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하여 미래 지향적인 장기 안보협력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데 합의하고 차기 안보협의회의는 1993년 상호 편리한 시기에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 일본/고령인구 급증 사회문제 대두/65세이상이 전체인구의 12%

    ◎복지시설 확충 늦어 노인들 소외감/사회보장설 늘어 노­소 갈등도 우려 요즈음 일본에서는 1백세 쌍둥이 할머니가 「유명한」 TV광고모델로 활약,화제가 되고 있다.그들의 밝고 건강한 웃음은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쌍둥이 할머니들은 아직도 정정하다.그들은 자신의 노래를 취입한 컴팩트디스크(CD)를 선전한다.그들의 건강한 모습은 일본사회의 고령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일본 거리에서는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들이 안쓰럽게 걷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은 이미 80년대 중반에 「인생 80년시대」를 맞았다.일본 후생성 통계에 의하면 일본여자의 평균수명은 지난 84년에 80·18세를 기록,「80세 시대」의 막을 열었다.지난 89년 여자의 평균수명은 81·77세였으며 남자는 75·91세였다.일본은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져 세계 제1의 장수국이 되고 있다. 평균수명의 증가와 함께 일본인들의 고령화율(전체인구중 65세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90년의 고령화율은 대략 12%정도였다.이는 서구사회보다는 아직 낮은 편이다.그러나 2000년에는 고령화율이 16%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고령화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들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율이 7%에서 14%가 되는데 미국이 75년,스웨덴이 85년,프랑스가 1백15년이 걸렸다.그러나 일본은 25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고령화는 국민생활 및 공중위생의 향상,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평균수명이 크게 길어진 반면 출생률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화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일본은 고령자의 노동력 활용을 위해 정년을 연장하고 정년퇴직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실버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일본의 많은 기업은 정년이 60세이상이며 멀지않아 그 비율이 8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정부는 더 나아가 기업들에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통산성은 광디스크나 IC카드에 의한 노인들의 건강관리,고용 등을 지원하는 정보시스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또 고령자의 배설·목욕·이동을 보조하는 침대나 보조로봇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구의 고령화는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더욱이 고령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노인을 위한 시설 건설이나 정책·사회제도 등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식이나 가치관도 아직 고령화 사회를 맞을 준비가 부족하다.은퇴한 노인들과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확보되지 않아 고령자의 고립화가 우려되기도 한다. 고령자의 증가는 사회보장비와 의료비의 증가를 가져와 국민들의 조세 및 사회보장 부담률을 늘리지 않을 수 없다.이같은 부담률은 2025년에는 6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령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지난달 부시 미대통령의 방일때 발표된 행동계획에는 노인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가 발행한 「1990년대의 일본」이라는 책의 전망은 매우 시사적이다.『고령화사회가 되어 노인이 늘어나면 노인들은 저축에 더하여 연금도 타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부채와 교육비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젊은 세대들은 결국 노인을 위한 세금을 거부,「노소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 아시아계 미국인 「증오성 테러」수난/미 인권위원회 보고서 발표

    ◎대일 감정 영향… 황인종 배척 확산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미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다고 미국인권위원회가 28일 밝혔다. 인권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1990년대 아시아계 미국인이 당면한 인권문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성 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경찰의 보호,의료혜택,소송 체계 등의 공공 서비스 부문에서 동등한 권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들 아시아 및 태평양 도서국 출신 이민들의 수가 지난 80년대에 7백30만명으로 배가됐다고 지적하고 『인종간의 갈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또 최근들어 미­일 무역마찰로 미국 전역에 「일본 두드리기(JAPAN­BASHING)」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현재 대권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유발할 소지가 있는 선거전략을 채택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보고서는 이어 아시아인들이 겪고있는 이같은 불평등과 폭력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연방및 지방 정부가 공동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주요 정당과 시민단체 역시 이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치활동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와 관련,일본계 미국인 연맹의 데니스 하야시 회장은 『작년에 모범적 소수민족으로 존경받던 일본인들이 오늘날에는 정치­경제적 희생양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미국내 반일감정에 유감을 표시했다.
  • 노 대통령 경찰청 개청식 치사 요지

    나는 오늘 우리 경찰을 새로운 위상위에 서게 할 경찰청이 발족하게 된 것을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합니다.경찰청의 출범으로 14만 경찰관의 바람과 국립경찰 45년의 숙원이 실현되었으며,이제 우리 경찰은 선진민주경찰로 발전할 확고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오늘의 이 보람은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경찰관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바친 피와 땀의 결정일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시각에도 투철한 사명감으로 치안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경찰관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범죄와 폭력,불법과 무질서로 부터 국민 모두가 안전하며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그러기에 경찰관 여러분이 하는 일은 영예롭고 자랑스런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상황은 경찰의 모습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권위주의의 낡은 옷을 벗은 경찰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봉사자로서 그 상을 확고히 정립하고 있습니다.그동안 민주주의를 여는 전환기적 상황속에 우리 경찰은 엄청난 희생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민주주의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극렬세력의 도전 또한 끊이지 않았습니다. 급속한 도시화·산업화로 치안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경찰관은 가정을 돌볼틈도 없이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경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전환기적 상황은 가셨습니다. 국민적 합의위에 법과 질서가 바로 서고 안정의 기반은 굳건해졌습니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욱 진전될 것이며 우리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이 세기안에 대망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것입니다. 오늘 경찰청의 출범으로 그 막중한 임무와 방대한 규모에 상응한 기구와 조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운영과 업무의 처리에 있어 더 큰 독자성과 자율성을 갖게 되었으며,정부안에서도 그 위치가 달라졌습니다.경찰의 조직이 효율화되고 특히 일선관서의 인력과 장비가 확충됨으로써 민생치안도 크게 나아질 것입니다. 정부는 경찰의 정예화·전문화·과학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치안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이와함께 경찰관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여러분이 보람과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입니다.1990년대는 경찰이 새로운 위상위에서 획기적 발전을 이룩하는 빛나는 연대가 될 것입니다. 제도의 개선과 조직의 강화만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이제 여러분은 국민의 큰 기대에 부응해야할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부단한 자기혁신으로 여러분 스스로 새로워져야 합니다.언제나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의 경찰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공명정대함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국민의 지지와 참여속에 일하는 민주경찰만이 진정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선진민주경찰로 발돋움할 새로운 전기를 맞은 우리 경찰을 국민여러분께서도 적극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미·소 정상 오늘 회담/모스크바서 이틀간/냉전이후 협력방안 논의

    ◎양국대표,전략무기감축협정 가조인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한국시간 30일 새벽) 미소정상회담을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30일부터 이틀간의 정상회담에 들어간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31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의 조인식을 갖는 것을 비롯해 대소 최혜국지위부여등 곤경에 처한 소련경제의 회생을 돕기 위한 미국의 경제협력문제,중동평화문제및 남북한의 통일과 북한의 핵사찰과 같은 한반도문제를 포함한 지역문제등에 관해 폭넓은 논의를 갖는다. 부시대통령은 이미 고르바초프와 3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진바 있으나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모스크바로 떠나기에 앞서 부시는 『어떤 의미에선 이번 정상회담이야말로 냉전종식이후 최초의 미소정상회담이라 할수 있다.이제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지금도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의 조인은 매우 중요한 일로 우리에게 희망을 제기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금 소련은 놀라운 변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으며 미소관계 역시 크게 변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소련이 믿을수 없을만큼 급속한 정치·경제적 변혁을 겪고 있는 1990년대에 있어 미소관계가 어떤 경로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게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과제중 하나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타스통신은 부시대통령의 도착을 앞두고 『냉전이 역사속으로 사라짐에 따라 무역및 경제문제가 미소관계의 전면으로 부상하게 됐다.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경제문제가 제1의제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타스통신은 또 『미소간의 경제관계는 결코 만족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소련에 대한 최혜국대우 부여를 거부,미소간의 무역량이 저조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소련에 최혜국대우를 부여하는데 대해 『아직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가까운 시일내에 이문제가 해결될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부시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뒤 8월1일 우크라이나공화국의 키예프를 방문,연설을 가질 예정인데 미국대통령이 소련에서 러시아공화국 이외의 곳을 방문하기는 지난 45년 루스벨트가 얄타를 방문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제네바 로이터 연합】 미소 군축협상대표들은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의 정식 조인을 받게 될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29일 가조인했다. 미국측 수석대표 린튼 브룩스와 소련측 수석대표 유리 나자르킨은 이날 제네바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마주 앉아 양국 전략 핵무기의 거의 3분의1을 감축하게 될 6백페이지에 달하는 START 문서 4부에 가조인했다. 이 문서는 30일 밤 모스크바로 보내지며 31일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정식조인하게 된다.
  • 경제블록화 대비/아태경협 강화를/김 한은총재

    김건 한국은행총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일본의 동해경제권 구상 등에 대비해 한국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협력에 관한 준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총재는 23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능률협회 주최 제17차 하계최고경영자세미나에 참석,「1990년대 국제경제환경 변화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총재는 90년대 세계경제는 미국·일본·EC(유럽공동체)등 3대 경제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협력체제가 지속되나 권역내의 경제블록화도 동시에 추진될 것이며 아시아 4개 신흥공업국가의 세계수출시장 점유비중이 1990년의 8%에서 2000년에는 11%로 높아질 전망이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총재는 또 외환 및 자본시장개방이 본격화되면 국내금융시장과 해외시장간의연계성이 심화돼 금융정책의 파급경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국내 금융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남북교류 부진은 북의 선별초청 때문”/10일 본회의(의정중계)

    ◎「남북 유엔협력기금」 설치할 용의는/미군 핵과 북의 핵사찰은 별개문제 ◇김중위의원(민자)=유엔가입이후 북한의 외교전략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가.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남북한 유엔대표부 협의체 산하에 「남북한유엔협력기금」을 설치,유엔이 결의하는 모든 국제적 부담금을 공동으로 부담토록 할 용의는 없는가.북한의 대일·대미관계개선노력에 우리정부는 어느정도,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밝혀라.남북한간의 민간교류를 강화키 위해 서울대학교와 평량금일성대학간의 자매결연과 대학생의 남북유학교류까지 추진할 의향은.전쟁억지력의 지렛대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미 조야에서 대두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속에서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복안은. ◇유인학의원(신민)=대소경협의 대가는 무엇이며 소련과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한반도의 비핵화지대를 위해 우리나라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사정거리 5백㎞이하의 전술핵의 전면철수를 단행할 의향은 없는가.통일비용의 산출근거는 무엇이며 1∼2년내에 통일돼도 비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대일무역 역조의 시정책과 일본문화의 침투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일제 징용 미불임금을 환불받을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수교를 미루는 이유가 무엇이며 대만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상회의원(민자)=북한은 이미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전제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이 70년말부터 계속 주장해온 「한반도비핵지대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북한은 앞으로 2∼3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서 철수시키기만 하면 앞으로 핵개발을 완전포기할 것으로 보는가.주한미군의 연차적 감축과 핵무기철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본노선에 입각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정부의 견해는.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정상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는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사항으로 규정짓고 북은 무조건 핵사찰을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군의 핵무기철수는 기정사실이 아닌가. ◇정 웅의원(신민)=남북한 유엔가입에 따라 대두되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포함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복안이 있는가.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유엔가입에 대한 절차를 북한측과 긴밀히 협조하여 동시신청,단일안건으로의 처리 등을 타결지어야 한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장관은 신민당의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의 내용을 검토한 바가 있는가.6공들어서 북한을 방문한 인사는 총3백23명인데 이중 순수한 민간인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이렇게 인적교류사업이 부진한 것은 정부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김제태의원(민자)=남북한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정부입장은 무엇인가.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베를린개최 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의 실체는.북한의 대일수교추진현황및 대미접근속도,미국의 태도 및 향후 전망을 말해달라.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중관계의 수교시기 및 수교이후의 전망은.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적정방위비와 이를 위한 확보대책은.소련및 중국의 대북군사원조현황과 우리정부의 대응책은. ◇정원식국무총리=정부는 국가안보·공공질서·남북관계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민간인들의 방북을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재야인사들의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북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체험,통일문제에 올바른 이해를 갖게될 것이다. 쌀·금융시장 개방문제는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있으며 구속자들은 지난 87년까지 모두 사면복권돼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고있지 않다.광주시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묘지공원화·위령탑건립및 관련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단체들과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천지무역과 금강산개발국제상사간에 남한의 쌀과 북한의 시멘트·석탄을 직교역하는 작업이 추진됐으나 북한이 시멘트·석탄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며 연기를 요청했다.그렇다고 직교역길이 막혔다고 보진 않으며 그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일부 국내학술기관에서는 우리의 통일비용을 2천∼4천억원정도로 추정,통일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검토된 적은 없다.독일도 통일이후 당초 예상보다 통일비용이 2∼3배 더 소요되는등 통일시점에 따라 그 비용규모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북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도 어렵다.정부는 앞으로 통일비용규모와 재원조달방안을 신중히 연구하겠다. 남북간 인적교류가 부진한 이유는 북한이 친북 성향의 재야인사나 단체를 선별 초청 했기 때문이다. ◇이상옥외무부장관=북한과의 유엔대표부협의체구성문제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시각에 따라 평화를 지향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지난 5월 정부는 유엔가입안을 동시제출하는 문제를 논의키 위해 유엔주재 남북대표부간 협의를 제안했으나 북측의 긍정적 호응이 없었다.북한이 이미 유엔가입안을 제출했고 우리는 이달말이나 8월초에 가입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과거 동서독의관례 등으로 미뤄볼 때 유엔총회나 안보리에서는 단일결의안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원폭피해자의 치료·요양이 이뤄지도록 일본 정부와 교섭한 결과 현재 일본측이 40억엔 지원을 약속하는 등 가능한 범위내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상연내무부장관=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현재 내무부 소관업무 1백66종을 시도에 이관했고 시 도에서는 3백82종을 시 군 구에 이관해 자율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지방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담배판매세 1조5천억원을 지방에 이관했고 내년에는 지방양여금을 1조원이상으로 확대해 재정자립에 기여토록 하겠다. ◇이종구국방부장관=1990년대 말까지는 국방연구비를 국방비 대비 5%로 확대해 첨단기술장비를 개발토록 하겠다.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NCND정책에 정부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스커드미사일 전환배치문제를 연계해 주한미군의 핵정책을 다루는 것은 불합리하며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와 대북군사정책을 연계시킬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증강문제는 지역내 균형유지,전쟁억제력강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미군의 타지역이전,소련의 정책과 마찰을 빚을 우려도 있다.한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제한적인 교류협력에서 탈피해 외교적 측면에서 전향적인 협력으로 강화해 나가겠다.일본의 군사력증강에 대한 목적,군사력사용 용도 등에 유의하면서 대처하겠다.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순수한 민간목적이며 주기적으로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영변발전소는 송전선이 없고 재처리시설을 건설중이며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어 군사목적임이 분명하다.남북간 군비통제 협의는 북의 주장처럼 미군철수 등을 전제로 한다면 지루한 논쟁에 불과하다.군사정보교환·군인사교류·핫라인설치·대규모 군사훈련 상호참관 등 신뢰가 조성된 뒤 성과에 따라 군비통제 협상으로 진전돼 나가야 한다.
  • 「신세계질서와 방위산업 육성」 토론회

    ◎“군비통제엔 한계… 남북 군사경쟁 불가피”/통일 후에도 주변국에의 대응력 긴요/첨단기술·장비의 독자개발 서둘러야/전문인력 양성·국방기술의 민간이전등 필요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학계·연구기관·방위산업체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세계질서와 한국의 방위산업」이란 대주제로 2천년대의 한반도 주변상황의 변화에 부합하는 방위산업 정착과 경영전략을 개발하기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제1부 「신세계질서와 한반도」,제2부 「방위산업의 현재와 미래」,제3부 「전환기의 방위산업육성정책과 경영전략」 순으로 나눠 진행됐다. 다음은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신세계질서와 남북한 관계(정용석 교수·단국대)=『자유·평화·법이 지배하며 도덕적이고 정당하며 정의로운 국제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신세계질서」에 입각한 「신속대응군」의 전략개념은 북한의 호전성에 경고적 메시지 역할은 되었으나 북한의 대남군사도발을 억제하는 데는 충분치 않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가속화시키고 방위비 분담비중을 높인다는 안보적 부담이 예상된다. 한국은 「신세계질서」가 추구하는 평화수호 결의와 방법에 의존하고 방심할 수 없으며 나름대로의 경계와 적절한 방위체제가 요구된다. □남북한의 군비통제 교섭 전망과 방위산업(오관치 박사·국방연구원)=남북한 군비통제 교섭전망은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무력적화 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체제전복 전략으로 대남전략을 전환하게 됨에 따라 군비통제가 제한된 범위내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으나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정착되지 않는 한 양적인 군비통제하에서도 남북한간에는 정치 및 군사적 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군사장비의 질적 개선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돼 우리의 방위산업은 이와 같은 남북한 군비통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첨단기술 개발과 이의 활용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한국방위산업의 현황(안치한 사장·금성정밀)=방위산업의 발전방향으로 정부의 방위산업에 관한 장기비전의 제시와 국방연구개발 투자확대 및 업체주도 연구개발 사업의 확대,무기체계의 해외 직구매정책의 지양,방산기술 인력에 대한 지속적 유지 및 새로운 기술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 □한미 안보협력과 방위산업다변화(황동준 박사·국방연구원 무기체계연수센터 소장)=군의 장기 전력증강 소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1990년대 방위산업의 제2도약을 위해서는 방위산업에 대한 국제협력의 강화가 절실하다. 한미간의 방산국제협력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한미 양국의 방산협력사업 추진시 미국의 대외안보지원 법규를 적용하려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하고 한국은 한미방산협력 사업추진시 장애가 되는 각종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협의하여야 하며 미국과의 방산협력에 정책의 중점을 두되 유럽국가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하는 기술도입원으로서 방산협력을 추구하도록 하고 개발도상국가와의 방산협력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과의 교류,자료교환 등을 통하여 호혜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과감한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적극적인 시장개척 노력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를 향한 방위산업 구상(민성기 박사·국방부 획득정책 과장)=지금 우리는 막연한 남북한 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남북대결의 실질적 종식을 나타내는 통일을 달성할 때까지의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주변 강대국가 속에서 한국이 새로운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방위산업의 육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방향은 고도 첨단병기 개발과 확보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방연구개발투자의 증가와 방위산업 육성차원의 정책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접목할 방위산업 기술을 개발정책으로의 전환과 함께 2000년대를 향한 국방첨단기술과 더불어 방위산업의 내용과 질의 변화,국방과학기술의 민수과학기술 이전 등이 있다. □전환기의 방위산업 육성정책과 경영전략(백영훈·한국산업개발원장)=한국방위산업 활성화의 저해요인은 국내외 경제환경 여건의 변화보다 국가적 의지 퇴화,연구개발투자 미흡 등이 가장 큰 요인이다. 현시점에서는 국가의지와 성장잠재력에 의한 전력의 재평가,연구개발의 활성화,방산기반의 재정비 육성 등의 새로운 정책방향을 설정,추진하여 독자적 고도정밀병기 및 핵심품목의 개발생산을 유도하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첨단과학기술에 도전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산업구조 고도화 정착의 일환으로 2000년대를 가늠하는 국가경제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의 확고한 정책이념을 재정립하여야 하고 방산업체는 국가생존과 방위력 배양이라는 국가적 목표추구에 헌신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자생적인 경영풍토를 정립해야 한다.
  • 남·북한 「통일물꼬」트이고 있다/일지서 「한반도 통일의 고동」특집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정상회담/밀사접촉 빈번… 「김우중 창구」 추정/작년엔 남한쌀 1천t 평양에 무상지원 노태우 대통령과 북한 김일성 주석간의 남북 정상회담이 빠르면 내년 상반기중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 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10일 보도했다. 이 보도는 어떤 정확한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1년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현재 남북간에 얼마든지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같이 점쳤다. 그 한 예로서,지난 여름 남한에서 북한으로 트럭 수백대분의 쌀(총량 1천t 정도)이 비밀리에 흘러들어 갔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홍콩을 경유,북한에 운반된 이 쌀은 한국의 자선종교단체가 보낸 것으로 보통은 국내의 빈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의 쌀」이지만,이것을 무상으로 북한에 보내도록 한국정부 당국이 허가했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에 대해 북한측 관계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정부관계자·정재계·언론관계자들에게 물어 보아도 대부분 얼버무리고 속시원히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어느 재벌회사 간부는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표면화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자존심 강한 김일성주석의 프라이드를 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3차 남북 총리회담에서 한국측은 한국의 남아도는 쌀과 북한석탄 교환을 제의할 방침인데 이 「사랑의 쌀」이 계기가 되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10일자부터 「한반도 통일의 고동­아시아는 움직인다(제1부)」라는 제하의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남북을 맺는 지하수맥(비밀접촉)문제를 다루었다. 이 연재물은 몰타에서의 미·소 정상에 의한 냉전종식 선언 이후 1년,독일통일이 실현되고 페르시아만 정세도 새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대결과 긴장이 계속되어온 아시아 태평양지역에도 변혁의 물결이 닥쳐오고 있다고 지적,제3차 남북 총리회담 등 급전개되는 한반도정세에 초첨을 맞추어 이 지역의 구조변화를 다루고 있다. 현재 남북간에는 술·담배·김 등 최근 1,2년 사이 홍콩·마카오를 경유하는 간접무역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년동안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수출은 1백19건 4천만달러어치,한국으로부터는 3건 16만달러어치가 북한으로 들어 갔다. 『지금 한국측의 밀사로 활약하고 있는 것은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이 아닐까』라고 한반도 정세에 밝은 관계자는 말한다. 특히 지난 10월 실현됐던 남북 축구교류를 가능케한 것은 김회장이라는 견해가 서울에서는 지배적이다. 북경 아시아대회에서는 남북통일응원단이 결성됐다. 물론 남북통일이 단숨에 진전되리라고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정치·외교·군사문제의 전문가라면 더욱 부정적이다. 『소련이 변화하고 독일이 통일되었더라도 한반도는 다르다』(강인덕 극동연구소 소장)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에 한장의 극비 리포트가 제출됐다.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보고서로 「1990년대의 안보정책」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분석테마는 남북통일을 향한 시나리오이다. 제1단계는 95년까지로 이 시기에 남북교류는 서서히 심화된다. 이와 함께 고령인 김주석이 이끄는 체제에 그 어떤 변화를 상정,95년에는남북 2개의 군대를 가진 공동체가 가능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 2000년에는 하나의 군대를 가진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완전통일을 달성한다는 2단계 10년 구상이다. 이같은 장래의 통일을 위한 조사가 지금 한국내에서는 잇따르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전되는 세계,한반도도 그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통일에의 고동은 착실히 그러나 크게 울리고 있다』
  • “핵비확산조약 의무이행땐/미­북한 관계개선”/솔로몬차관보 연설

    【워싱턴=김호준 특파원】 미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차관보는 30일 『미국은 한반도의 핵확산을 동북아 안정에 대한 첫번째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이 핵 비확산조약 의무를 이행할 경우 미­북한 관계개선의 주요장애가 제거돼 미국이나 한국으로부터 부족함이 없는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솔로몬 차관보는 『미국은 미­북한 관계개선을 한반도 긴장완화 및 통일에 도움이 되는 분위기 조성 과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으며 남북한 주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통일방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캘리포니아대에서 행한 「1990년대의 아시아 안보」라는 주제연설에서 『북한의 핵안정협정 체결 문서는 미ㆍ소ㆍ중ㆍ일 등 4강의 공동관심사라고 밝히고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협조결여는 동북아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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