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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개포동 笑劇/박재범 논설실장

    서울 개포동은 30, 40년 전 시쳇말로 사람 살 동네가 아니었다. 작은 아파트를 잔뜩 지어 도심에서 전월세 살던 사람들을 이사 가도록 정책으로 유도할 때였다. 교통수단은 물론 자녀교육 여건도 최악이었다. 이런 탓에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런 동네가 강남개발이 상승세를 타면서 1980년대 들어 “개도 포니 타고 다니는 동네”가 되더니, 금세 “개도 포텐샤 타고 다니는 동네”로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다시 “개도 포드 타는 동네”가 됐고 요즘은 “개도 포르셰 타는 동네”로 한단계 올라섰다는 것이다. 개포동에서 30여년 줄기차게 살아온 지인이 들려준 우스개다. 개포동의 10여평 남짓한 아파트 시세가 10억원대를 넘나드는 실정이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아왔음에도 사회악처럼 몰아붙이는 세상의 시선에 그러려니 하다가도 때로는 짜증스럽다.”고. 단순한 푸념으로 흘리기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40년 詩쟁이·책쟁이’ 이시영 시선집

    이시영은 1980년 창비에서 편집장으로 시작, 2003년 대표이사를 그만둘 때까지 23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했다. 또 그 기간을 포함,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개헌청원지지 문인 61인 선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01인 선언’ 등 유신 반대운동으로 시작해 30년 넘게 민주화 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떤 삶의 모습이어도 이시영의 몫은 시인(詩人).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시조), 월간문학(시)으로 등단한지 꼬박 40년이 됐다. 후배 시인들이 이를 기리며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창비 펴냄)를 냈다. 그가 40년 동안 펴낸 11권의 시집 중 김정환, 고형렬, 김사인, 하종오가 각각 20편 남짓 엄선했다. 1~3부가 각각 28편씩 담고 있다. ‘긴 노래, 짧은 시’는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좋다. 거의 모든 시를 관통하고 있는, 끈적하게 세상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가없는 애정이 우리네 편안한 입말의 옷을 입고 함빡 담겨 있다. 하지만 이시영의 시세계 40년을 쭈욱 따라가고 싶다면 첫 시 ‘만월’부터 마지막 ‘봄날’까지 한 편 한 편 꼭꼭 씹어서 읽어볼 일이다. 이시영은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쓰기 전인 1970년대부터 사람의 한 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며 시 같은 이야기, 이야기 같은 시로 풀어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후꾸도’, ‘정님이’를 보면 개인의 삶을 꿰뚫고 지나가는 시대가 읽혀진다. 머슴 신세 벗어나려 (도시로)도망가지만 결국 거리에서 사과 좌판 처지 이상 되지 못하고(‘후꾸도’), 정 많던 정님이는 도시로 가서 부엌데기로, 여공으로, 색싯집으로 전전할 수밖에 없다.(‘정님이’) 이시영은 농경사회에서도, 산업화사회에서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되고, 소외되는 형태로 반복됨을 가슴 먹먹함 감추며 애써 덤덤히 이야기한다. 이런 덤덤함은 치열함이 조금씩 걷혀지는 1990년대 시를 모은 2부에서 조금씩 변화한다. 이야기를 풀되 극단적일 정도로 짧은 시의 실험이 시작된다. ‘이 바람 지나면 동백꽃 핀다/ 바다여 하늘이여 한 사나흘 꽝꽝 추워라’(‘오동도’ 전문) 또는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사이’ 전문) 식이다. 이시영은 시선집 앞머리에 “시여, 지난 40여년간 나를 옥죄고 있던 사슬을 풀고 너도 이젠 좀 자유로워지거라.”라고 말하며 시와 또다른 관계를 맺어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은 “개인저축률 하락 큰 문제없어”

    한은 “개인저축률 하락 큰 문제없어”

    우리나라의 개인 저축률이 크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미국의 개인 저축률 상승과 맞물려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나온 주장이어서 시선을 끈다. 한국은행은 5일 내놓은 ‘저축률의 국제 비교와 평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인 저축률은 2006∼2008년 연평균 4.8%이다. 20년 전인 1986∼1990년 연평균 16.9%와 비교하면 거의 4분의1 토막이다. 개인저축률은 가계의 저축액을 국민 총처분 가능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4~16%의 두 자릿수를 유지했으나 2000년대 들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김민우 한은 국민소득팀 과장은 “개인들의 소비가 소득보다 빨리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며 “그러나 총저축률은 여전히 높아 투자재원 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총저축률은 가계 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저축까지 합친 총저축을 국민 총처분 가능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2006∼2008년 연평균은 30.8%이다. 과거(1986∼1990년 37.7%, 2001∼2005년 31.9%)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진입한 때의 총저축률을 국가간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의 총저축률(2008년 30.7%)은 미국(16.8%), 영국(16.2%), 독일(23.3%) 등 선진국보다 높다. 여기에는 기업과 정부의 힘이 컸다. 기업 저축률은 2006∼2008년 평균 16.0%로 2001∼2005년(15.3%)보다 오히려 0.7%포인트 올랐다. 정부도 2000년대 들어 10%선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의 저축 감소분을 기업과 정부가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김 과장은 “투자재원 자립에 문제가 없고 개인 저축률도 다시 올라갈 여지가 있는 만큼 경제구조 차이 등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낮은 개인저축률을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투자재원 자립도를 나타내는 총저축률과 국내총투자율 사이의 격차는 ▲2005년 2.3%포인트 ▲2006년 1.1%포인트 ▲2007년 1.3%포인트 ▲2008년 -0.5%포인트로 마이너스까지 갔다가 올 들어 1·4분기(1~3월)에 2.8%포인트로 플러스 반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초심자를 위한 클래식 길라잡이 나왔다

    초심자를 위한 클래식 길라잡이 나왔다

    클래식 초심자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나왔다.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DG)과 데카에서 발매한 음반을 총망라한 가이드북으로, 소속 아티스트와 음반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유니버설 뮤직은 DG와 데카의 소속 음악가와 주요 음반을 소개한 레이블 가이드세트인 ‘아티스츠 앤드 레코딩스(Artists & Recordings)’를 내놓았다. 1990년대에 선보여 큰 인기를 모았던 레이블 가이드를 10여년만에 재발매한 것. 당시에는 간략한 설명을 적은 노트와 CD 2장으로 구성했으나 이번에는 가이드북과 아티스트의 명곡들을 모은 CD, DVD 발매작을 소개한 카탈로그를 묶어 박스 세트로 만들었다. 가이드북은 레이블의 역사, 음악가들의 약력과 주요 앨범, 클래식 애호가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명연주, 불멸의 명반 100선, 레이블별 시리즈 등을 소개하고 있다. 111년 역사를 가진 DG의 세트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마르타 아르헤리치, 안네 소피 무터, 플라시도 도밍고,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아마데우스 4중주단 등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실내악단을 아우르는 아티스트 50여명을 수록했다. 1929년 영국에서 설립된 데카의 세트에는 에머 커크비, 호세 카레라스, 제닛 베이커, 샤를 뒤투아, 게오르그 솔티, 알프레트 브렌델 등 90여명의 아티스트를 담았다. 한국 음악가로는 지휘자 정명훈,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소프라노 조수미(이상 DG),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김지연, 피아니스트 백건우(이상 데카) 등이 포함됐다. 세트당 가격은 CD 1장 가격인 1만원선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이미지 제공 유니버설 뮤직
  • 살아나는 중랑천

    1990년대 ‘죽음의 하천’으로 불리던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1995년 중랑천 수질은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21으로 물고기조차 살 수 없었던 6급수였으나, 지난 5월 조사결과 BOD 3.7 수준으로 크게 향상됐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중랑천에는 희귀어종인 버들치, 밀어, 살치 등 14종의 어류와 호랑나비, 왕잠자리 등 곤충류까지 총 234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던 물고기 집단폐사도 이제 옛일이 됐다. 특히 내년엔 아이들이 중랑천에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하는 모습도 보게 될 전망이다. 중랑천 상류에 있는 의정부시 하수처리시설이 개선되면서 수질이 몰라보게 깨끗해졌다고 시는 설명했다. 의정부시 하수처리시설의 BOD는 2006년 12에서 올해 3급수 수준인 3~6으로 개선됐다. 권기욱 물관리정책과장은 “서울시와 도봉·강북·동대문·의정부 등 지자체들이 환경행정협의체를 만들어 수질·생태계 조사를 하고, 하수관 정비와 하천 정화활동을 벌인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시는 중랑천을 물놀이가 가능한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중랑 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의 고도처리수를 생물막 여과 등을 이용해 ‘먹는 물’ 수준으로 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말까지 총 1057억원을 들여 물재생센터에 ‘재생수 사용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요정정치 산실 ‘대원’ 역사속으로

    요정정치 산실 ‘대원’ 역사속으로

    1970~80년대 삼청각 등과 함께 ‘요정 정치’의 근거지였던 서울 종로구 교북동의 ‘대원’이 3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4일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달 말 돈의문뉴타운 제1구역에 대한 사업 시행인가가 완료돼 대원을 포함한 교남동 일대 건물들이 늦어도 연말까지 철거된다. 1975년 문을 연 대원은 1990년대까지 권력자들이 모여 ‘밤의 정치’를 하던 곳이었다. 군사정권시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정일권 전 국무총리 등 고위 관료들이 밀실 정치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5·16 군사 쿠데타 당시 1군 사령관을 지냈던 이한림 전 건설부 장관 등도 단골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대원은 지금은 문화시설과 사찰로 바뀐 삼청각, 대원각 등과 함께 정·관계 인사들이 각종 협상을 하기 위해 자주 찾았다. 대원은 외국에서도 유명했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도 대원을 찾아 한국의 전통음식을 맛보고 찬사를 연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왕실의 가족과 아프리카의 대통령 등 외국 귀빈들도 방한 때 빠지지 않고 이곳에 들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곳은 전통가옥에서 고급 한정식을 즐길 수 있어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상 접대장소로 각광받았다. 일본 등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아 한때 매달 1500~2000명이 이곳에서 식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 언론들은 요정이 ‘기생 관광’으로 관광객을 유혹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로써 서울의 요정집은 강북의 ‘오진암’을 비롯해 역삼동과 서초동 등 1980년대 새로 들어선 일부 업소만이 남아 명맥을 잇게 됐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희한한 택시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  미국 버몬트주 에섹스에서 ‘침체를 타는 택시(Recession Ride Taxi)’란 묘한 이름의 회사를 운영하는 에릭 하겐(46)이 주위의 우려와 달리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일간 ‘벌링턴 프리 프레스’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누구나 하겐이 운전하는 SUV 차량의 뒤쪽 유리창에 붙은 광고 문구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Pay What You Want)’를 보는 순간,살짝 미소를 짓는다.그리고 “정말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다.1990년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하겐의 이 말도 안 되는 사업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  지난달 초부터 중순까지 그가 주차장에 택시를 세워두고 사업 개요를 담은 명함을 뿌리자 많은 이들이 전화를 걸어와 “장난이 아니냐?”고 되물었다.그리고 지난달 중순부터 2주 동안 목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택시를 운행한 결과,비용을 제하고 600달러를 손에 쥐었다.미국 적십자의 벌링턴 지부에서 풀타임 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로선 이렇게 짬짬이 택시를 몰 수밖에 없는데 꽤 짭짤한 부수입인 셈.  ”승객들이 저를 밑지지는 않게 하더군요.고객들을 북돋아주기로 했지요.그랬더니 고객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좋아하더군요.”  요금은 주로 현금으로 받지만 하겐은 생수나 게토레이드,소다수 등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여섯 차례 요금을 내면 한 번은 공짜로 태워준다.단,벌링턴이 속해 있는 치덴덴 카운티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한 음악가에게선 CD를 요금으로 받은 적도 있으며 10달러짜리 슈퍼마켓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  하겐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사업이 먹힐 것이라 생각했어요.사람들이 내가 일하는 값어치를 매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너그러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난 그들이 결정하도록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워킹 푸어/함혜리 논설위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운이 억세게 좋아서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재산을 불리는 방법은 같다. 능력에 따라 소득을 올리고, 소비를 하고 남은 돈은 저축을 해서 그 저축에 붙는 이자로 재산을 불려나간다.그러나 아무리 악착같이 일을 해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잔고가 바닥인 ‘제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다. 일자리가 있지만 고용이 불안하고 저축이 없어 실직하거나 병이 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워킹 푸어는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용어다. 미국은 1973년에서 1995년 사이에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40% 가까이 늘어났지만 이런 성장이 계층별로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늘어난 대부분의 소득이 상위 20%의 노동력에 돌아갔으며 이들을 제외한 일반 직장인들의 소득은 오히려 14% 줄어들었다. 정보화·세계화·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지식근로자나 숙련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저학력자·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 공통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근로인구의 5.3%, 유럽에서는 6%가 근로 빈곤층이다. 다양한 신조어도 생겨나고 있다. 워킹푸어 인구가 2006년 1000만명을 넘어선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프리+아르바이트)’족,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PC방을 전전하는 ‘넷카페 난민’이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바쁘게 일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켜 충망쭈(窮忙族)라고 한다. 유럽에선 ‘1000유로 세대’가 최근 ‘700유로 세대’로 대체됐다. 워킹푸어의 확산은 한국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이어지면서 급격히 늘어나 약 300만명이 워킹푸어의 삶을 살고 있다. 워킹푸어 문제는 단순히 소득이 적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번 워킹푸어로 전락하면 구조적으로 그 덫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경제가 출렁일 때 첫번째 희생자가 되는 것도 이들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엊그제 “워킹푸어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게 도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모두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부자감세·SOC사업 논란 진단

    올해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366조원. 지난해보다 58조가 증가한 수치다. 우리의 재정건전성은 이대로 괜찮을까. 31일 오후 10시에 방송하는 KBS1TV 추적60분 ‘100조원 감세, 나라살림 문제없나?’(연출 강성훈)편은 현 정부의 재정운영 방향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국가재정 문제를 진단해 본다. 방송은 국가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을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재정지출 증가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먼저 지난해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부자감세’의 논란 현장을 소개한다.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양도세 등의 감세로 5년간 세수는 96조원이 줄게 된다. 정부와 여당은 감세만큼 경제활동이 활성화돼 세수가 증대한다고 했지만, 불과 반년이 못돼 여당에서도 감세 유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술·담배 등 간접세, 가전제품 에너지세로 세수를 늘리려는 정부의 대응에 “부자감세를 서민증세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난 목소리도 일고 있다고 전한다. 또 ‘4대강 살리기’로 대표되는 정부의 SOC사업의 타당성 논란을 따라가 본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향후 3년간 예산 22조 200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정부는 물 부족 해결, 홍수 방지,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의문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이에 방송은 지나친 SOC사업으로 경기 후퇴가 발생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한다. 1990년대까지 경제 2위국이었던 일본은 이후 124조엔의 예산을 SOC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파생 효과는 미흡했고 국가 채무는 늘어났다. 현재 일본은 국가 예산의 30%를 이자 상환에 쓰고 있다. 이를 근거로 방송은 향후 한국 정부의 재정 상황도 점검해 본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 자민당 몰락의 사회경제적 함축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열린세상] 일본 자민당 몰락의 사회경제적 함축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지난 1955년 이래 무려 반세기 이상 장기집권을 누려왔던 일본 자민당이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를 연상케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전후기의 극심한 이념갈등을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넘어 경제대국 건설에 성공했던 거대정당이 1990년대 초반의 버블붕괴로 초래된 ‘잃어버린 10년’에 뒤이어 계속된 경제침체로 끝내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고이즈미(小泉純一?) 총리의 우정(郵政)민영화를 내건 승부수로 2005년 중의원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적도 있지만 2007년의 참의원선거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정치가 부메랑의 역풍을 맞은 이래 잇따른 지방선거 참패로 거의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여당 자민당은 제1야당 민주당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치는 전례 없이 저조한 지지율에 머물고 있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8월30일 총선에서 정권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자민당 몰락을 초래한 요인으로는 국내외 환경변화와 개혁 요구에 대한 미온적 대응, 실효성 없는 재정낭비만 거듭해온 정책빈곤, 세습의원을 중심으로 한 인물빈곤 등 다양한 측면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성격변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1980년대까지 ‘1억총중류사회’로 불릴 만큼 빈부격차가 작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중류의식을 지녔던 시대가 끝나고 ‘1억총하류시대’라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국민 대다수가 격차확대를 실감하게 된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노력의 실패에 기인한다. 2006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격차는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며 격차가 생기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한 국회발언이 집권층이 지닌 일본사회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 적도 있었다. 고이즈미시대 이래 급증하기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수가 전체노동자의 30%를 넘어섰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근로빈곤층 문제도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고도성장기의 저축으로 고액의 금융자산을 지닌 노령은퇴층과 고용불안에 허덕이는 청년층 간의 격심한 세대간 격차가 서민대중들의 자민당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표출된 것이다. 글로벌시대에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격차확대에 대한 자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대응이 광범위한 지지계층의 이반을 초래함으로써 확고하고 차별화된 정책노선을 제시하지 못해 ‘자민당의 2중대’니 ‘이복동생’이니 하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와 최근의 세계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도 일본 못지않게 비정규직 문제, 소득분배의 악화, 근로빈곤층의 확산 등 심각한 계층간 격차문제를 안고 있어 사회경제적 갈등과 불만이 커가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사회적 갈등이 심한 편이어서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사회갈등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어떤 사회학자의 국제비교연구에서는 한국의 사회통합 양상은 선진국그룹보다는 남미나 동유럽국가들과 비슷한 유형에 속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 수준에 비해 사회통합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는 분석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가 현시점에서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양립시켜 나감으로써 선진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양적 성장 일변도의 정책방향이 아니라 양질의 고용기회 확충, 사회안전망의 정비를 포함한 사회보장의 내실화, 가난의 대물림을 막을 교육기회의 균등화 등 사회경제적 격차시정을 위한 대책들이 체계적으로 내실있게 추진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⑧ 전문가에 들어본 국내 블로거 약점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⑧ 전문가에 들어본 국내 블로거 약점

     “컴퓨터학원에 ‘프로블로거 반’이 다 있더라고요.”  1990년대 중반 개인 홈페이지 바람이 불었다면 몇년새 인터넷 유행의 진원은 단연 블로그다.국내 최초의 블로그 네트워크인 ‘태터앤미디어’를 이끄는 한영(36) 공동대표는 블로그 유행을 위와 같이 전했다.  블로그 관리 회사인 태터앤미디어는 130개의 파워 블로그를 파트너로 영입,기술 지원을 하고 광고 영업도 거든다.고커 미디어와 같은 미국의 블로그 네트워크 회사를 모델로 삼았다.  한국과 미국은 블로그의 시작부터 다른 데다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저널리스트와 같은 기존 전문가들이 먼저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인과 주부 등이 ‘온라인 일기장’으로 블로그 세상을 열었다. 즉 개인 홈페이지의 연장선에서 국내 블로그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블로그 시작 1년 만에 방문자 1000만명, 트랙백 1000개, RSS 구독자 1000명 등 ‘트리플 1000 대기록’을 달성하며 파워 블로그로 첫 손 꼽히는 ‘독설닷컴(poisontongue.sisain.co.kr)’의 고재열(34)씨는 ‘네트워크’를 들었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자신의 블로그에 써 넣은 뒤 트랙백을 주고받으면 원래 글 아래 새로운 글로 가는 링크가 붙게 된다. RSS 기능을 이용하면 신문을 구독하듯 수백개 블로그의 최신 글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블로그의 네트워크 활용에 국내 블로거들은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 같다고 고씨는 덧붙였다.  “아직 한국에서 블로그는 내 삶을 치장해서 슬쩍 보여주는 미니홈피 개념에 가깝다고 봅니다. 트랙백이나 RSS 같은 미디어 활용은 소수에 지나지 않죠. 하지만 블로그가 미디어 행위는 아니더라도 출판 행위라는 인식은 다들 하고 있어요.”  ‘1인 미디어의 대표주자’라 추앙받는 블로그지만 아직 한국 블로고스피어에서는 ‘프로 저널리즘’보다는 ‘아마추어리즘’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고씨의 진단이다.  고씨는 현재 시사주간 ‘시사iN’의 정치부 기자다. 기자, 정치인, 의사 등 소위 전문가 집단이 파워 블로거가 되려면 ‘맷집’이 중요하다고 고씨는 강조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기존 권위가 존중받고 거친 리액션도 없지요.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자기 존중감 없이 계급장을 떼고 붙어야 합니다. 성장통을 많이 겪어야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어요.”  특히 고씨 자신이 기자인 만큼 “기자들은 악성 댓글과 같은 리액션에는 훈련되어 있을지 몰라도 바쁜 일상업무 때문에 쉽게 소홀해지고 낙오한다.”면서 “블로그는 산수처럼 되는 게임이 아니니 꾸준하게 버티고, 새로운 방향으로 자꾸 틀어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블로그는 1등부터 1000만등까지 등급 매기는 게임  고씨의 블로그 철학은 나만의 특색있는 ‘온리 원’ 주제를 가진 블로그가 하늘의 별만큼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에 대한 꾸준한 정보를 축적한 블로그가 있었다면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대박’이 난다고 설명했다.  “블로그의 카테고리를 구체화해서 누군가에게 작은 아카이브(도서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블로그는 네티즌들이 관심을 두는 것에서,관심을 둬야 할 쪽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한 블로그에 대해서 네티즌들이 지치는 주기가 빠르거든요. ”  고씨의 블로그 ‘독설닷컴’의 주제는 시사 및 현장취재 뉴스다. ‘식은 피자는 내놓지 말자.’는 원칙 때문에 그동안 남들 밥 먹고 쉴 때 블로그에 글을 썼다.  블로그에 하루 투자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가족과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고씨 자신은 일 년 동안 900편 가까이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지치고 방전된 느낌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타점을 올리려면 타석에 많이 올라서 한번이라도 스윙을 더 해야죠.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전업 블로거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돈을 벌려고 왜곡된 블로그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요. 블로그의 광고 효용성이 높아지면 광고 단가는 올라갈 것이고 강의, 출판, 컨설팅과 같은 오프라인 비즈니스와의 연계도 내년 정도면 활발하게 형성되리라 봅니다.”  고씨는 블로그 전도사로 강연도 하고 있다. ‘독설닷컴’의 한달 수익은 100만원 내외다.  ●파워 블로거 한달 광고수익은 10만~100만원  태터앤미디어 공동대표 한영씨는 블로그 마케팅은 시장이 옮겨왔을뿐이라고 강조했다. 즉 예전에 지식인이나 미니홈피, 카페를 대상으로 했던 인터넷 마케팅이 블로그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온라인 광고비는 1조원이었다.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이 관심을 갖고, 광고와 같은 수익모델이 붙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앞으로 블로그 마케팅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게 공통된 예상이다.  태터앤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파워블로거들이 받는 광고 수익은 월 10만~100만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연예인과 기획사와 같은 전속계약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라고 한씨는 강조했다. 블로거들은 자유롭게 회사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일부 파워 블로거들은 태터앤미디어와의 계약 이후 오히려 광고 수익이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블로그 네트워크 회사의 도움없이도 자력갱생할 수 있다고 한씨는 설명했다.  미국의 파워 블로거들은 블로그 네트워크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고 의료보험을 제공받기도 한다. 월급 수준은 블로거가 일으키는 트래픽의 양이 감안된다.  블로그 네트워크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이유는 현실적인 면도 있다. 포털사이트 등에 블로그의 콘텐츠를 판매하려면 인터넷 매체로 등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심의와 같은 법적, 제도적 지원도 네트워크를 통해 보장받는다.  개인이 블로그를 통해 명성을 쌓고 부가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신문은 어떻게 블로그를 활용할 수 있을까.  “종이신문의 독자가 줄어드는 것은 정부가 법으로 해결 못합니다. 온라인에서 읽힐 만한 기사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지요. 기자 한 명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으로 매체 환경이 변했습니다.”  한씨는 기자들이 기사도 쓰고 블로그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밝혔다. 언론사에서 기자들의 블로그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좋지만 어려운 일이며,기자들은 블로그에 대해 모르거나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잘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블로그가 인터넷 검색과 광고 시장 강자될 것  한씨가 꼽는 블로그의 장점은 독특한 콘텐츠와 글쓴 이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열린 소통’이다. 기존 미디어에서는 블로거처럼 세분화된 주제의 전문 기자나 언론사별로 차별화된 기사가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일주일에 4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한국의 파워 블로거들은 어떤 사람일까. 20대는 전업 블로거도 있지만 30대 이상은 대부분 부업 블로거다. 직업과 관심사는 다양하지만 세대는 집중된 편이다.  블로그도 온라인 뉴스처럼 역시 연예 관련 주제가 방문자 수도 많고, 광고 수익도 높다. ‘독설닷컴’은 시사 블로그로는 방문자 숫자가 압도적이지만 연예 블로그의 절반 수준이다.  때문에 고재열씨는 “연예 관련 콘텐츠도 올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때 인터넷 유행을 선도했던 지식 검색은 현재 전문 블로그에 그 자리를 내준 상태다. 지식 검색이 트래픽을 불러모으면서 정보의 오용 현상이 나타났고, 지식인보다는 이제 이름있는 블로거에 몰리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의 블로그 시장은 완숙된 상태는 아니다. 고씨는 “지난 해는 전국노래자랑 지역대회 수준 정도로 아마추어 블로그가 사랑받고 우리끼리 즐거웠다. 앞으로는 프로들의 진중한 고민으로 블로고스피어가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옳으냐, ‘프로 저널리즘’이 맞느냐 하는 문제는 블로거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IT 관련 특정 주제에 있어서는 블로거의 영향력이 어떤 매체보다도 크게 성장했다.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와 같은 그룹 블로그는 정치분야에서 기존 매체의 영향력을 압도했다. 앞으로 블로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뻗어나갈지는 파워 블로거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열린세상]저탄소 녹색성장의 허와 실/박녹 한전원자력연료(주) 감사·영남대 겸임교수

    [열린세상]저탄소 녹색성장의 허와 실/박녹 한전원자력연료(주) 감사·영남대 겸임교수

    지금부터 17년 전 일이다. 1992년 여름 브라질의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이른바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전대미문의 지구 온난화 현상을 지구촌의 어젠다로 설정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세계가 함께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기로 다짐했다. 지구온난화라는 문제를 풀기 위한 세계의 발걸음은 결코 약해지거나 멈춰지지 않았다. 이어 1997년에는 교토에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를 열고, 2012년까지 1990년도의 그 나라 이산화탄소 총배출량보다 더 감축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런 연유로 선진국들은 이산화탄소 다배출 산업인 ‘고탄소 적색성장’ 분야에서 과감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정부는, 국민소득 증대와 GDP 성장의 미명 아래 씩씩하게 선진국들이 꺼리는 적색성장 분야에 줄기차게 투자하고 독려하면서 세계 10대 GDP국가로 성장시키는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 와중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대 대비 무려 두 배가 넘는 6억t 이상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세계 1위의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절실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선택이 없는 강요된 내몰림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발표해야 한다. 기후변화 쇄국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온난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몸부림이다. 정부는 늦게나마 새로운 환경시대에 나름대로 대비해 왔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 벌써 ‘기후변화 에너지대책 TF’를 두고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그렸다. 고탄소 적색성장 산업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저탄소 녹색성장의 틀을 찾느라 고심했다. 하지만 녹색성장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국민의 일반 생활은 불편해지고 산업계는 새로운 규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예컨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이른바 탄소세라도 부과한다면 이런저런 말들이 생길 것이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새로운 규제를 헤쳐나가야 하고 생산원가 증가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 시대의 과제를 지나쳐버린 업보를 이제와 어쩌겠는가. 지난 정치 지도자들이 야속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에 뒤처진 것에 조급한 나머지 서둘러 허둥대다 외형만 번드르르하게 단장하는 어리석음 또한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녹색성장 정책의 핵심 축으로 태양광 분야를 선정했다. 자그마치 2조원 이상을 태양광 발전 보급에 투자하였다. 태양광 발전차액 보조금이 4000억원을 넘어섰다.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앞으로 10년 이상 국민들의 피같은 세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의 핵심기술인 고효율 집열판 개발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 태양광 사업자들이 당장 효율이 높은 외국산 기기를 수입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외국의 태양광 기술 개발자금을 열심히 대주고 있는 셈이 됐다. 엉뚱하게도 우리 국민의 세금이 국내 태양광 기술과 외국 기업의 기술력 격차를 더 많이 벌려 놓았다. 태양광 발전 사업 권장에 앞서 기술개발과 소재 분야에 더 많은 연구자금을 투자해서 경쟁력을 키웠어야 했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요즘 자전거 타기가 한창이다.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자전거를 외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것이다. 자전거 산업을 먼저 발전시켜 놓고 자전거 타기를 해야만 했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과거의 허물을 교과서 삼아 역사의 잘못을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저탄소 정책 부재가 당장 그럴듯한 실적을 내야겠다는 실적 만능주의에서 비롯됐다면 다시는 실적주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대안이 없는 선택이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가끔은 허(虛)와 실(實)을 따져보아야 한다. 실적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두드려 보아야 한다. 박녹 한전원자력연료(주) 감사·영남대 겸임교수
  • 국산 자전거 ‘4년만의 귀환’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자전거 공장이 첫 삽을 떴다. 삼천리자전거는 24일 경기 의왕시에서 자전거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기공식엔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을 비롯해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형구 의왕 시장, 이동희 포스코 사장 등이 참석했다. 삼천리자전거 의왕 공장은 8000㎡ 부지에 연간 자전거 1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총 400억원이 투자돼 고급자전거를 중심으로 내년 초부터 생산된다. 삼천리 관계자는 “이번 기공식이 2005년 이후 해외로 이전했던 자전거 생산을 다시 국내에서 재개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자전거는 1990년대 이후 생산비용의 증가 등으로 중국 등지로 생산공장을 옮기면서 국내에는 공장이 없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女談餘談] 따뜻한 꿈/강아연 문화부 기자

    [女談餘談] 따뜻한 꿈/강아연 문화부 기자

    ‘따뜻한’이란 말은 언젠가부터 식상한 말이 되었다. 만약 누가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뭐야? CF 찍는 것도 아니고….’라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물론 1990년대 초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란 커피 광고 카피가 유행하긴 했다. 흔해 빠진 말도 때에 따라선 울림이 크다. ‘따뜻한’이란 말도 남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건 그녀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얼마 전 영화배우 하지원씨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다. 시간이 좀 남는지라, 보통 신인들에게 많이 하는 질문을 데뷔 15년차인 그녀에게도 해봤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저는…”이라 입을 뗀 그녀는 심중에서 생각을 길어올리듯 천천히 말했다.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답을 듣고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다. “가슴이 차가우면 어느 누구, 어떤 삶의 인생을 대신 살면서 연기할 때 그걸 풍부하게 표현 못할 것 같아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연기할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고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해요.” 바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잠시 멈추었다. 의외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얘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배우를 떠나서 같은 사물을 봐도 그냥 하나를 느끼기보다 하나를 ‘더’ 느낄 수 있을 때, 그 사물에 대해 얘기하거나 표현할 때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제서야 앞서 들은, 영화 ‘바보’에서 피아니스트 역을 맡았을 때의 일화도 새롭게 다가왔다. 당시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눈만 뜨면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를 끌어안기도 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었다. 심지어 피아노 아래에서 자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는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건 피아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연기를 하기 위해 기울인 그녀만의 따뜻한 몸부림이었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이제부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될 것 같다. 강아연 문화부 기자 arete@seoul.co.kr
  • [주말 데이트] 美 유학 6년만에 6집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 낸 윤상

    [주말 데이트] 美 유학 6년만에 6집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 낸 윤상

    중학교 때 삼촌이 물려준 기타로 혼자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국내 미디(전자음악) 1세대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도 고3 때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독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중성으로, 이후 실험성을 얹어가며 인정받는 대중음악가가 됐지만 정식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길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벌써 6년이 흘렀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보스턴 버클리 음대를 거쳐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버클리 음대 거쳐 뉴욕대 석사 밟아 윤상(41)이 6년 만에 6집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을 발표하며 팬 곁으로 돌아왔다. 시동은 진작 걸렸다. 배움의 결과물을 쏟아부어 지난해 프로젝트 음반 ‘모텟’을 냈던 것. 화성과 멜로디를 배제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라 낯설었다. 이러한 경향을 계속 치고 나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웬걸, 이번 앨범은 농밀한 전자음 사이사이에서 서정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이 떠올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랫동안 새 앨범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올해 초 동료와 후배들이 자신의 히트곡을 편곡해 부른 스페셜 앨범 ‘송북’을 선물받고 방향을 정했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털어냈다는 설명. “대중들이 외면하더라도 일렉트로니카 안에서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은 있어요. 하지만 초창기 윤상을 기억하는 팬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때문에 내 욕심만 채워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 시절 그 감성을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가수로 데뷔했던 1990년대 초반의 감성을 돌이킨 까닭 가운데 하나는 팝에 견줘 뒤지지 않고, 들을 만한 가요들이 쏟아지며 국내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이뤘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픈 노래 접고 햇살 내리쬐는 느낌 이전에는 막연하고, 두렵고, 슬프고, 고독한 정서가 강한 노래가 많았다. 이제는 햇살도 따사롭게 내리쬐는 분위기다. 그 사이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가족.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겼다. 그는 “슬픔을 노래하는 윤상을 기대한 분들은 실망할 수 있겠지만, 가족이 생기니 긍정적인 측면도 바라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앨범과 같은 제목의 노래 ‘그땐 몰랐던 일들’은 그래서 귀에 ‘쏙’ 들어온다. 윤상이 어른 입장에서 직접 부른 버전도 있고, 그의 첫째 아들과 콤비 작사가 박창학의 두 딸이 아이 입장으로 노랫말을 바꿔 앙증맞게 부른 버전도 있다. “2년 전 첫아이의 옹알이를 전자음과 함께 편집해 버클리 졸업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때는 말도 못했던 아이가 이제 노래도 부르니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아빠의 기분이 더욱 느껴져요.” ●졸업작품으로 첫아이 옹알이 음악 편곡 국내에 잠시 돌아와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둘째가 태어났다. 동영상으로만 얼굴을 접했다는 그는 “8월 말에 돌아가면 열심히 가족에게 봉사해야죠. 석사 마지막 학기라 논문도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라며 웃는다. 남들과 차별되는 사운드를 만들고 싶고, 유행을 따라 소비되는 음악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석사 논문을 매듭지으면 완전히 귀국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여러 나라로 수출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그는 음악 프로듀서로 외국에서 일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음악 팬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는다. “우리 30~40대들이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정서와 취미를 놓아버리고 다른 세대의 것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에 상관없이 또래의 정서를 담는 음악에 매진하는 음악가들도 있으니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바더 마인호프’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바더 마인호프’

    1968년, 세계의 젊은이들은 더 나은 세상과 미래의 희망을 위한 투쟁에 나서 자본주의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미완의 혁명인 ‘68혁명’이 40주년을 맞은 2008년을 전후로 발표된 몇 편의 영화는 당시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2003년), 필립 가렐의 ‘평범한 연인들’(2005년), 줄리 테이머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년), 그리고 올리비에 뒤카스텔과 자크 마르티노의 ‘‘68년에 태어나’(2008년)도 물론 좋다. 하지만 와카마쓰 고지의 ‘실록 연합적군’(2007년)과 울리 에델의 ‘바더 마인호프’(2008년)의 거대한 에너지 앞에서 다른 작품들은 한낱 유희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배우 피에르 클레멘티는 1968년의 5월을 다룬 단편 ‘혁명’(1968년)의 도입부에다 ‘혁명은 시작일 뿐이다. 계속 싸워 나가자.’라고 써놓았다. 클레멘티가 혁명을 꼭 낭만적으로 여긴 건 아니라 할지라도, 이상적인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당시 젊은이들이 품었던 건 사실이다. ‘실록 연합적군’과 ‘바더 마인호프’는 68혁명의 중심에 서는 대신, 혁명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자들이 서서히 스러지는 시간을 쓰라린 마음으로 포착한다. 두 영화는 영화의 많은 부분을, 혁명그룹의 조직원들이 활동의 명분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잃어가는 시기에 할애한다. 혁명적 사상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줄어들면서, 투쟁 수위에 변화를 줘야 했고, 그럴수록 혁명그룹은 고립되어 갔다. ‘바더 마인호프’는 (1990년대에 ‘신화의 시간’으로 번역, 소개된) 슈테판 아우스트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감독 울리 에델은, 진보 언론인인 울리케 마인호프, 열혈 혁명운동가 커플인 안드레아스 바더와 구드룬 엔슬린을 리더로 둔 ‘바더 마인호프 그룹’(일명 독일 적군파)이 형성되고, 도시 게릴라 투쟁을 펼치는 때와 이후 그들이 체포돼 오랜 수감 생활을 겪다 죽음을 맞는 과정을 때론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때론 한 편의 드라마처럼 묘사한다. 독일영화사에는 알렉산더 클루게,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 뉴저먼시네마의 기수들이 동일한 사건을 다룬 ‘독일의 가을’이라는 작품이 이미 존재한다. 울리 에델은 선배들의 기록에 어떻게 대답하고 싶었던 것일까. 독일 내에서 적군파의 역사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그들이 지울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바더 마인호프’는 ‘나치 잔재와 미 제국주의 청산, 반자본주의’ 같은 적군파 노선을 선뜻 지지하거나, 죽은 혁명가들을 감상적으로 대하지 못한다. 또한 어떤 면에서 패배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더 마인호프’의 기저에는, 올바른 사회와 역사를 이루고자 죽음도 불사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흐른다. 우리가 ‘바더 마인호프’를 봐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었던 자들의 시대를 불러내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혹자는, 현대가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한다. ‘바더 마인호프’에는, 내적으로 정부와 우익언론이 만행을 벌이고 외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이 나오는데, 어쩌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과 별로 다른 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걸음을 멈춰야 할까. 사회는 굳은 그릇과 같아서, 새 사상과 변화의 목소리를 담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자에겐 긴 시간이 흘러도 새 시대가 오지 않는 법이다. ‘바더 마인호프’는 무엇을 하라고 일러 주는 작품이 아니다. ‘바더 마인호프’는 우선 올바른 현실 인식과 소신의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원제 ‘Der Baader Meinhof Komplex’, 감독 울리 에델, 23일 개봉. 영화평론가
  • “출구전략 시기상조… 추가 경기부양 고민을”

    “지금은 출구전략을 생각할 게 아니라 제2의 경기부양을 이끌 여력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위기 극복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손교수 “올 한국성장률 -2.4% 예상”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과제’란 주제 발표에서 “10년 전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재정확대, 인프라 투자, 감세, 금리인하 등을 적절히 구사해 세계위기 속 ‘별천지’처럼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손 교수는 “해외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인이 낙관하는 것만큼 한국 경제를 낙관하진 않는다.”면서 “금리인상을 통한 유동성흡수 등의 ‘출구전략’을 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손 교수는 특히 “1920년대 미국, 1990년대 일본이 섣부른 출구전략을 써 대공황과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했다.”면서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이 추가로 경기부양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이 과연 있느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상당히 풍부해졌지만 아직 은행들의 소극적인 대출로 자금 회전율이 낮다.”면서 “자금이 활발하게 돌기 전까지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2014년쯤이나 돼야 각국이 유동성 흡수 전략을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마이너스(-)2.4%, 2010년 2.0%, 2011년 2.5%로 예상했다. ●노대래 차관보 “위기이전 회복 아냐” 토론자로 참석한 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성장률이 상승국면으로 돌아섰다고 해서 위기 이전으로 회복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상반기 성장은 정부가 이끈 만큼 이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야 잠깐 성장하다 더 깊은 침체가 오는 더블딥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중국을 위시한 동북아경제권의 부상, 녹색경제 등 시대의 조류에 잘 어울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현장 행정] 영등포구, 노인 친화 행정서비스

    [현장 행정] 영등포구, 노인 친화 행정서비스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는 김모(72) 할아버지는 얼마 전 주민센터에서 받은 승용차 부착 ‘실버교통스티커’가 안전운전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퇴직 뒤 아파트 경비 업무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김씨에게는 새벽에 출근했다가 밤 늦은 귀가로 야간 운전이 필수다. 도로가 한적한 시간대에 운전하다 보면 주변 자동차들의 무리한 차선 변경, 과속 운전 등 탓에 사고 위험에 노출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김 할아버지는 “차량 뒤 유리창에 붙여 놓은 ‘어르신 운전 중’이라는 노란색 스티커가 야간에 빛을 반사해 주변 차량들에 운전자에 대한 정보를 줘 정속 운전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21일 노인 운전자들의 교통안전을 위해 서울지역 자치구 중 최초로 대한노인회와 함께 실버 교통스티커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스티커는 야간에도 눈에 잘 띄게 형광물질로 제작됐으며,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받을 수 있다. ●실버 스티커 야간운전 시 큰 도움 이 스티커 사업은 지난 5월 한 지역주민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반영해 도입됐다. 노인들은 운전 중 위험상황 대처 반응이나 복잡한 교통상황에서의 판단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안 등으로 사고 발생 확률도 높을 뿐 아니라, 골다공증으로 사고발생 때 피해도 클 수밖에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구는 설명했다. 윤관중 사회복지과장은 “스티커 부착으로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 양보운전 분위기가 확산돼 더 안전한 교통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스티커 사업은 영등포구가 핵심사업 중 하나로 추진 중인 ‘노인친화행정’의 하나다. 지난해 말 기준 구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40만 7688명)의 9.5% 정도인 3만 8675명이다. 서울시 전체 노인인구 비율인 8.2%보다 20% 가까이 높아 도시 지역에서는 노인 인구가 많은 자치구 중 하나로 꼽힌다. 신길동 등 전통적인 노인 밀집지역이 많은 데다 1990년대부터 한국을 찾아 영등포구에 정착한 중국교포 대부분이 노인이 된 것도 한몫을 했다. 노인친화 자치구가 되지 않고서는 사회복지를 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영등포구는 노인종합복지관에 ‘독거노인의 자조적 지원체계 모델 개발’이라는 프로젝트 사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홀몸노인들이 혼자서도 여러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영등포구는 ▲독거노인 원스톱 지원센터 ▲노인돌봄 서비스 ▲무의탁노인 전화 안부 묻기 사업 ▲노인복지카드제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구가 자체적으로 연구해 개발한 것들이다. ●“노인 친화행정 1등구 될 것” 김형수 구청장은 “구청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아야 함에도 정보가 부족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면서 “초고령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우리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노인 친화행정은 시급히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추계예술대 석철주(59· 동양화) 교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다. 서울 인왕산 밑자락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목수일을 봐주던 집들 중에 청전(靑田) 이상범(1889~1972)의 집도 있었다. 야구선수로 막 이름을 날리던 아들이 부상으로 체육인의 길을 중도에 포기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청전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청천은 석 교수집으로 넘어와 아무 말도 없이 난 한그루를 쳐서 넘겨 줬다. 이른바 채본 하나를 받아든 것이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한달, 연습한 화선지를 모아 청전에게 가지고 갔다. 청전은 화선지를 넘겨 보면서 어디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도 없이 “아, 이건 아주 잘 됐다.”고만 했다. 그런 식으로 청전이 몰(歿)했던 1972년 봄까지 6년 간 도제식으로 동양화 공부를 했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대학진학을 생각했고 실행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27살 때. 추계대학 동양화과 같은 학번 동기 여학생들은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양화에, 먹물에 푹 담그고 있었기에 그의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어도 동양화의 향기가 물씬하다. 서울 소격동 학구재에서 오는 8월20일까지 구관, 신관 1· 2· 3층 전관에서 열리는 석철주 개인전은 서양 안료로 그려낸 동양화다. 특히 구관에 걸린 그림의 소재는 겸재 정선(1676~1759)의 ‘박연폭포’, 조희룡(1789~1866)의 ‘매화서옥도’, 전기(1825~1854)의 ‘매화초옥도’, 강희언(1710~1784)의 ‘인왕산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한국화의 고전들이다. 이들 고전의 원작은 작품의 크기가 대체적으로 반절로 접은 신문지만한데, 석 교수는 이것을 10배에서 20배씩 키웠다. 그랬더니 박연폭포의 줄기는 더욱 장중해지고, 매화 한 줄기를 서안 위에 올려 놓고 들여다 보는 선비의 품성은 더욱 고매해 보인다. 고전을 재해석해 아크릴화로 그려낸 석 교수는 잊혀져 가는 한국 고전 산수화의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우고,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1980년대 ‘탈춤’ 연작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는 항아리를 소재로 한 ‘생활일기-옹기’ 연작, 2000년대 ‘생활일기-식물이미지’ 연작에 이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사람들과 공유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화는 먹물이나 석채, 종이 등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편견에서도 그는 자유롭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것도 1990년 개인전부터였다. 당시 옹기에 있는 무늬를 그려야 했는데 실감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캔버스에 아크릴로 독을 그린 후, 독쟁이들이 손가락으로 유약을 훑어내 그림(지두화)을 그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안료를 훑어 내며 그린 것이 계기였다. 학고재 본관 뒤편의 신관에서는 도자기와 화분 등의 ‘자연의 기억’ 연작을 긁어 내기 기법을 이용해 그렸다. 캔버스 위에 바탕 작업을 대여섯 차례 한 뒤, 전체 물감을 다시 올려 대나무나 혁필, 판화 제작 도구인 스퀴즈(고무) 등으로 긁어 내는 것이다. 마치 어릴 적 미술 시간에 여러가지 색깔을 칠한 뒤 검은 색으로 도화지 전체를 입혀 동전 등으로 긁어 냈던 기법을 연상하면 되겠다. 바탕 작업을 몇차례 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깊이가 달라지는데 흐릿한 화분과 꽃, 풀들의 모습이 꿈 속처럼 아련한 것이 인상적이다. 8월1~10일에는 휴관. (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박중훈 “CG는 영화 일부분…핵심은 드라마” (인터뷰②)

    박중훈 “CG는 영화 일부분…핵심은 드라마” (인터뷰②)

    재난영화 속의 ‘박사’라는 기능적인 역할에 가족애라는 감성을 심은 박중훈은 ‘해운대’라는 영화 역시 기술이 아닌 감정적 드라마가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법’ CG VS ‘핵심’ 드라마 “‘해운대’는 시각적인 부분을 특히 공들여 만든 재난영화입니다. 이 시각적 구현이 ‘해운대’의 배우와 제작진 모두가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국내 영화에 관대했다. 한국영화가 이만큼 해낸 것도 대견하다는 ‘면죄부’가 사라진 것은 국내 영화 기술의 급속한 성장 때문이었다. “이제 관객들은 한국영화에서도 할리우드 수준을 기대하잖아요. 그리고 이런 시각적인 효과가 영화 자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데, 사실 컴퓨터그래픽(CG) 같은 기술은 영화를 이루는 문법적인 측면 중 하나일 뿐 아닙니까.” 맞춤법 상태가 훌륭하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오직 CG에만 치중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박중훈은 따끔하게 지적한다. ‘해운대’는 단순히 한국영화의 기술력만을 뽐내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해운대’는 CG에 아주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시각적인 부분도 아주 훌륭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하지만 관객들이 ‘해운대’의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23일 개봉을 앞둔 ‘해운대’ 이후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박중훈은 일단은 ‘해운대’에서의 활약을 차분히 지켜봐 달라는 당부부터 전했다. “기대했던 만큼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마냥 풀 죽지도 않을 겁니다. 모두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해운대’의 완성도만큼만 평가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4개월을 토크쇼를 통해 ‘인터뷰하는 사람’으로 지낸 박중훈은 오히려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역설했다. 누군가의 선택에 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일방적으로 선택을 받아왔던 과거에는 몰랐다는 박중훈은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의 실패도 아름다운 경험으로 바꾸었다. 앞으로도 인터뷰 의뢰를 받을 때면 매너 있는 자세와 적극적인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박중훈의 다짐에서 배우 본연의 자세는 어김없이 뿜어져 나왔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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