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90년대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녹음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다리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비밀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몰래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492
  • 정윤기 “장동건, 고소영 결혼식은 클래식하게..”(인터뷰)

    정윤기 “장동건, 고소영 결혼식은 클래식하게..”(인터뷰)

    스타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마이더스의 손’김혜수, 고소영, 차승원, 정우성, 김희애, 수애, 이혜영, 권상우, 고현정, 비 등 국내 내로라하는 톱스타들. 항상 대중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패셔니스트 스타들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들 뒤에는 패션 스타일링의 ‘마이더스 손’ 정윤기가 있다.’국내 남성 스타일리스트 1호’인 정윤기는 국내 최고의 톱스타들의 패션을 책임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장동건 고소영 커플 결혼식의 총 디렉터를 맡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어떻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지 스타일리스트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정윤기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청담동에 위치한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사무실. 들어서는 순간 이쁘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공간 한 가운데 버젓이 놓여있는 큰 거울이 눈에 띈다. ‘마술의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면 누구든 톱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거울 앞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스쳐갔을까.차승원, 정우성, 이정재, 김희애, 수애, 김혜수, 이혜영, 이소라, 김정은, 이미연, 박용하, 송윤아, 설경구, 권상우, 비, 김성수, 황신혜, 고소영, 천정명, 윤은혜, 김선하, 고현정…. 셀수없다. 이들은 정윤기가 스타일링 해준 스타들의 일부다.“저는 한 스타를 스타일링 해주기 위해 그 스타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함께 합니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가족처럼 대하기도 하죠. 그래야 그 사람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나올 수 있고 더욱 빛을 바랄 수 있죠.”이들 스타들은 정윤기와 때론 가족같이 때론 친구처럼 많은 부분을 나눈다고 한다. 때문에 정윤기는 스타들의 속속까지 자신있게 알고 있다고.그간 스타일링 했던 스타들에 대해 정윤기는 “김혜수 씨는 따뜻한 여자로 순순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을 좋아하며 밝고 용감한 스타이죠. 그리고 사랑이 어울리는 스타죠. 가수 비(정지훈) 씨는 너무 똑똑해서, 그래서 월드 스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희애 씨와 이미연 씨는 의리파로 지적이면서 많은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스타죠. 그리고 여성스러워요. 수애 씨는 단아하고 몸매가 가장 이쁜 여배우입니다.”고 말했다.특히 최근 결혼을 앞둔 고소영에 대해서도 “제가 본 스타 중 얼굴이 가장 이쁩니다. 화장을 지워도 이뻐요. 옷도 잘 입는 스타이죠. 자기 일에 있어서도 완벽합니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윤기에게 옷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사람의 인격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이렇게 스타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야 스타일도 어울리게 매치 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고소영 장동건 결혼식의 총 디렉터를 맡고 있는 면에서도 정윤기는 이들의 평소 지켜봤던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클래식한 결혼식이 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을 위한 축복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스타일이 될 것 같습니다.”라며 조심스레 말을 했다.평소에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빠 보이는 정윤기. 1970년 인천 출생으로 1990년대 중반 광고대행사에서 프리랜서 스타일링 일감을 따내 스타들에게 옷을 입히며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패션 홍보대행사 ‘인트렌드’를 설립해 대표로 활동 중이다. 이쯤 되면 여유를 갖고 일을 해도 될 텐데 그렇지 않다. 정윤기는 아직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불사르며 쉴새없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다.“한 분야에서 16년 동안 열심히 일한 노하우를 평가해줘서 국내 남자 스타일리스트 1호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같아요. 처음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더욱 열심히 뛰어다녔죠. 당시 생각하면 희노애락을 즐기면서 일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 연예인 옷을 챙겨주는, 어찌보면 단순한 허드렛일을 젊은 세대가 선망하는 전문직으로 바꿔놓은 셈이다.정윤기는 이런 바쁜 와중에도 한 달 평균 30권의 독서와 여행을 즐겨한다. 책도 냈다. ‘All about style (올 어바웃 스타일)’이란 책으로 정윤기 씨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가 되기까지의 성공 비결과 그의 24시간 따라잡기, 자신의 스타일링 노하우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다.“제게 있어 패션은 하나의 라이프, 삶과 같아요. 단순히 입고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닌 느끼고 보여주며 그로인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런 행복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5~6년 후에는 은퇴 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정윤기의 꿈은 아주 소박했다. 그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멀티샵이나 지인들과 마음껏 어울릴 수 있는 음식점을 갖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라고. 사진 = 서울신문NTN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재범 칼럼]분노와 애도를 넘어

    [박재범 칼럼]분노와 애도를 넘어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남짓 됐다. 승조원 46명의 꽃다운 생명이 ‘수중 비접촉 폭발’로 인해 스러졌다. 우리는 오늘 영결식을 끝으로 이들 희생자를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바야흐로 이제 사건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향후 파장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침몰 원인의 과학적 분석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6자 회담의 재개 문제, 북한의 관련성 입증, 국제적 제재방안 마련 등 고비마다 불꽃이 튀길 가능성이 높다. 사안마다 의견이 갈리고 힘겨루기가 빚어질 수 있다. 한국사람의 성정이 남을 인정하지 않고 다분히 다혈질이기에 혼란과 분열은 더 클 수 있다. 문제에 직면해 감정이 과잉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의 모색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럽이 아시아와 달라진 기점인 르네상스 때 데카르트의 방법론서설이 나온 것은 시사점이 크다. 난제일수록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뜨거운 분노와 들끓는 애도에 바탕을 둔 공감을 오래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차가운 분노와 차분한 슬픔을 다져야 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나라와 국민다운 수준을 보여야 한다. 먼저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국가 전체 차원에서 제기된 여러 과제를 정리해야 하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국민답게 합리적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이번에 도출된 가장 큰 과제는 국가와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 북한의 개입을 예단하거나, 미리 그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작위적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술자리 등에서 논란을 벌인 수많은 화제의 중심에는 불신과 의심이 관통돼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국민들이 정부를 못 믿는 속성에서 비롯된 점도 있지만, 정부와 군의 초기 대처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건 초기에 발생 시간이 오락가락한 탓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부정적 인상이 대두됐다. 이런 설, 저런 추정이 두서없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군이 과연 나의 아들을 지켜줄 역량이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을 야기했다고 본다. 물론 이는 정부와 군, 국민 세 당사자가 역사적으로 항상 직면하는 도전이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제법 잘 풀어나간 사례가 있다. 비근한 것이 바로 미 국방부이다. 미 국방부는 1975년 베트남전 패퇴 이후 패닉에 빠졌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은 제로베이스에서 자신들을 돌아봤다. 작전수행 능력보다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미 국방부는 이의 해소를 위해 30년 가까이 노력했다. 원칙은 대략 세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거짓을 국민에 말하지 않으며 즉답이 어려운 사안은 노 코멘트(no comment). 두번째로, 발표 사항을 좀더 깊이 알고자 원할 경우 단계적으로 더 깊은 팩트와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과 단위까지 공보관을 배치해 대외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만 나오도록 했다. 1990년대 사막의 폭풍 작전 등에서 국민적 저항이 의외로 적었던 이유다. 국가의 고민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미국이 벌인 전쟁에 대한 가치의 판단은 차치하고, 우리는 인간 본연의 속성인 의심과 불안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다루고 있을까. 공감과 지지를 위해 어떤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아픔 없이 성숙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국민과 국가의 현주소와 과제를 솔직히 드러내 주었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확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자성하며 역량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만 많고 배우지 않으면 허황해 위태롭다(學而不思 則罔 思而不學 則殆).’고 했다. 냉정하게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고 할 일엔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이다. jaebum@seoul.co.kr
  • [씨줄날줄] 중화굴기와 천안함/구본영 논설위원

    최근 사업차 중국을 다녀온 지인이 ‘떠오르는 중국’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는 올해 포드로부터 볼보 자동차를 인수한 지리(吉利) 그룹이 상하이 인근에 조성 중인 공장부지를 둘러봤단다. 일본이 자랑하던 골프용품 브랜드 혼마도 오래 전에 중국 기업에 인수·합병됐다고 한다. 구문임에도 중국의 엄청난 ‘식탐(食貪)’에 새삼 놀랐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은 강대국의 견제를 의식해 힘을 과시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외교전략을 폈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장쩌민 시대를 거쳐 현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起)’란 기치를 내걸었다. 산이 우뚝 솟는 모양을 가리키는 ‘굴기(?起)’가 상징하듯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깔고 있다. 다만 평화적(和平)이란 수식어에서 보듯이 여전히 조심스러움은 유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내부의 기류는 화평이란 꼬리표마저 뗄 참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앞다퉈 전하고 있지 않은가. 내달 1일 개막되는 상하이 엑스포는 중화굴기(中華?起·중국이 떨쳐 일어남)의 현장인 셈이다. 192개국이 참가하는 이 박람회에 예상 관람객이 외국인 500만명에 내국인 6500만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중국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거나’ , ‘평화롭게 일어서는’ 노선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형국이다. 그 대국굴기(大國?起)의 낌새에 얼마간 착잡해지는 요즘이다.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선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호시절이 짧은 봄날처럼 가고 있다는 감상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중국 변수’의 영향력이 세진 만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외교적 과제도 커졌다. 당장 천안함 사태가 1차적 시험대다. 정부는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대응 과정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특히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미국조차 중화굴기의 위력을 실감하는 듯하다.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중국과 대책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두 번의 핵실험으로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중국이 미온적이라 제재의 효과는 미미하다. 중국이 북한의 탈선까지 비호하는 한 진정한 세계의 지도국가로 떨쳐 일어설 수 없음을 중국 지도부가 깨달았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脫기초생보자 12.5% 3년내 다시 수급자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에서 벗어난 사람 10명 중 1명은 3년 안에 다시 수급자로 전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급자 신분을 벗어난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 오히려 생활수준이 열악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7일 서울신문이 분석한 ‘서울 기초생활보장 일반수급자 탈수급 및 재편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서울 기초생활보장 일반수급자는 12만 1047가구(20만 877명)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급자 신분을 벗어난 가구는 7683가구(6.2%)에 불과했다. 특히 과거 탈수급에 성공했던 가구 중 961가구가 지난해 수급자로 다시 편입됐다. 2008년과 비교해 탈수급 가구 비율은 1.6%(1429가구) 줄어든 반면 재편입 비율은 10.3%에서 12.5%로 늘어났다. 재편입자 연령대는 46.9%가 49~59세였고, 탈수급 기간별로는 3년 이내가 71.8%를 차지했다. 황치영 서울시 복지정책과장은 “지난해 수급자 수와 재편입자 수가 높아진 것은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1차적인 원인”이라며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급격히 수급자가 늘어난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및 지원정책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 자체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설계돼 차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수급자 선정 기준은 4인가구 월소득 132만 6000원. 초과하는 소득을 올리면 모든 지원이 끊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초생활지원자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생계, 교육, 주거, 해산·장제비 등 모든 지원이 중단된다.”면서 “결국 수급자를 갓 벗어난 계층에서는 수급자 때가 오히려 소득이 나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도 탈수급자 지원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권병기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차상위 계층을 최저생계비의 150% 정도로 보면 무려 100만여명에 이르는데 지원할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면서 “교육비나 통신비 감면 역시 소득에 대한 증빙이 쉬운 수급자들은 지원이 가능하지만, 차상위계층은 확인 자체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현금은 아니더라도 의료 급여 등을 3년 정도 한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건형 안석기자 kitsch@seoul.co.kr
  • [오은선 ‘히말라야 女帝’ 되다] 한국 여성 산악 도전사

    한국 여성산악인의 해외원정은 다른 나라들보다 10여년 늦은 1980년대 비로소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마카세코 나오코가 1974년 히말라야 마나슬루(8163m) 등정에 성공했다. 이어 다베이 준코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와 시샤팡마(8027m) 두 곳의 정상을 정복하면서 일본 여성들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중 3곳을 등정했다. 한국여성산악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최초로 참여한 히말라야 등정은 1982년이었다. 선경산악회 람중히말(6986m) 원정대의 기형희(당시 26)·윤현옥(당시 24)이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여성은 남성원정대의 홍일점에 그쳤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최초 원정대는 한국매킨리원정대(6194m·대장 조희덕)였다. 1988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 도전한 일행 중 지현옥·김은숙·이연희가 정상을 밟았다. 히말라야 8000m급 여성 도전은 1990년대 들어 시작된다. 1984년에 김영자(당시 31)가 안나푸르나(8091m)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산길에 카메라를 잃어버려 공인받지 못했다. 여성 히말라야 도전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은 199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서원대 출신 고(故) 지현옥. 그는 1997년 가셰르브룸 1봉(8068m)을 처음으로 올랐다. 이듬해에는 여성 세계 최초로 가셰르브룸 2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에 성공하는 쾌거를 일궜다. 1999년에는 안나푸르나 정복으로 8000m 4좌를 완등한 한국 최초의 여성 등반가로 기록됐다. 하지만 그는 하산길에 안나푸르나에 묻혔다. 2000년대 들어 여성들의 활동 영역은 히말라야 8000m 단독 등정, 거벽 등반 등 보다 다양해졌다. 2003년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여성 최초로 매킨리 단독 등반에 성공했다. 그는 7대륙 최고봉 등반도 비슷한 시기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6년 말부터는 고(故) 고미영과 오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랑을 위하여’ 김종환, 장윤정-박현빈과 한솥밥

    ‘사랑을 위하여’ 김종환, 장윤정-박현빈과 한솥밥

    가수 김종환이 장윤정, 박현빈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존재의 이유’ ‘사랑을 위하여’ ‘백년의 약속’ 등으로 7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김종환이 장윤정 박현빈 윙크 등 ‘신세대 트로트 트로이카’가 속한 인우기획과 계약했다. 인우기획 측은 “한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종환을 전격 영입, 한국 가요계에 새 역사를 쓰게 됐다.”며 “발라드 포크 부문에서 최고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김종환과 함께 국내 성인가요계에 대변혁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했다. 김종환과 인우기획 홍익선 대표의 특별한 인연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의리로 맺은 친구 사이로 2000년 홍 대표가 가요계 제작자로 갓 입성했을 때 당시 최고의 가수왕인 김종환에게 10년 뒤 제작자가 되어 매니저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김종환은 “큰 사랑을 받았을 때가 IMF 당시였다. 그때 노래를 부르며 대중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다는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홍 대표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날의 우리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 신인의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사진 = 인우기획 제공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슬래시 발매되자마자 록차트 1위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슬래시 발매되자마자 록차트 1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미국 록밴드 ‘건스 앤드 로지스’는 보컬 액슬 로즈(48)와 기타리스트 슬래시(45)가 핵심 구성원이었다. ‘리모델링’된 건스 앤드 로지스가 지난해 12월13일 첫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열혈 팬들은 로즈의 기행(奇行)으로 2시간 이상 공연이 지연된 점보다 슬래시를 볼 수 없다는 점에 더욱 아쉬워했다. 건스 앤드 로지스를 떠난 뒤 그룹 ‘슬래시즈 스네이크핏’, ‘벨벳 리볼버’를 거친 슬래시가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을 터. 그는 올해 1월 그래미 시상식 축하공연 무대에 올라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라면 머리’에 얹은 탑햇(일명 마술사 모자)과 쉬지 않고 뿜어대는 담배 연기가 트레이드 마크인 슬래시가 생애 처음 솔로 앨범을 내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의 이름을 내건 앨범 ‘슬래시’다. 발매되자마자 미국 종합앨범차트 빌보드 핫 200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각종 록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다. 너바나 출신의 데이브 그롤, 키드 록, 사운드가든 출신의 크리스 코넬, 얼터 브리지의 마일스 케네디, 푸시캣돌스의 니콜 셰르징거, 컬트의 이언 애스트버리, 울프마더의 앤드루 스톡데일 등에 이르는 올스타 프로젝트로 모두 17곡을 담았다. 건스 앤드 로지스의 명곡 ‘파라다이스 시티’는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 홍일점 퍼기의 랩 등을 입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구성했다. 원곡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호불호(好不好)가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도시와 길] (12) 수원 팔달로

    [도시와 길] (12) 수원 팔달로

    경기 수원시 팔달로는 200여년전 조선 22대 왕인 정조가 행차할 때 다니던 길이다.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경기 양주에서 수원 화산(현재 경기도 화성시 융륭)으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했다. 이후 융릉을 참배하러갈 때 화성 장안문에서 팔달문을 지나 교통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를 이용했는데, 바로 지금의 팔달로(길이 1.9㎞) 이다. 이 도로는 수도 한양과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조선의 6대로 중 제 5대로인 ‘제주대로’와도 겹친다. 팔달로 명칭은 해방 이후 붙여진 것인데, 팔달문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폭 12.5m로 확장됐으며 1970년대 지금의 왕복 4차선 도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796년 화성이 축성되면서 수원은 한양 남쪽의 군사와 행정, 농업, 상업 중심도시로 자리잡았다. 화성의 주간선도로 역할을 한 팔달로를 따라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규모와 형태도 대형화됐다. 특히 팔달문 주변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성문 바로 밖에 형성된 수원장은 사방 100여리 경기남부지역 상권 중심지였다. 지금의 ‘팔달문’시장이다. ●수도권 대표 ‘팔달문 시장’ 자리잡아 팔달문 시장은 현재 남문상가, 영동시장, 지동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1980~90년대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전통상가와 금융기관, 다양한 공산품 등 소비업종이 복합적으로 들어서며 수원은 물론 수도권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성장했다. 이중 영동시장은 한복·포목 등 혼수 업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지동시장은 순대를 비롯해 농·수·축산물, 건어물, 식품 등 먹을거리 위주로 운영됐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수원 곳곳에 갤러리아 백화점, 신세계이마트,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 20여곳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홈쇼핑 등 통신판매 활성화와 함께 대단위 택지개발로 영통·정자·인계지구 등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더욱 휘청거렸다. 이에 상인들은 수원시의 지원을 받아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영동시장에서 남문상가에 이르는 141m 구간에 ‘아케이드’거리를 조성했고, 지동시장으로 연결되는 100m 구간은 도로 바닥을 타일로 교체하는 등 초라했던 옛 시장의 이미지를 털어버리려 애를 썼다. 수원하면 생각나는 것이 ‘수원갈비’다. 수원갈비는 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60∼70년대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원조는 1940년 팔달문 인근 영동시장 싸전거리에 문을 연 ‘미전옥’이며 이후 화춘옥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56년 처음으로 양념갈비를 팔기 시작했다. 1979년 화춘옥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화춘옥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화춘옥 명성을 잇고자 인근에 잇따라 갈비집이 생겼다. 현재 수원에는 100여개의 갈비집이 성업 중이다. ●외곽 도시개발로 1990년대 이후 쇠퇴 팔달문 주변엔 음악다방도 즐비했다. 70~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까지 팔달문을 중심으로 음악다방이 속속 들어섰다. 중앙극장 지하 중앙다방을 비롯해 약속다방, 한일다방, 아카데미다방 등은 마땅히 갈 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사회초년생들이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하지만 가정에 오디오가 보급되면서 휘청거리던 음악다방은 노래방 등장과 함께 MP3 등의 보급으로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1952년 수원에 처음으로 들어선 중앙극장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2004년 폐관하고 그 자리에 쇼핑몰이 생겨났다. 외곽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80~90년대 팔달로의 영화는 역사 이면으로 사라져가는 상황.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리를 200년 전의 자취가 다시 채워주고 있다. ●영화·드라마 등 인기 촬영장소로 부상 팔달로 종로4거리에서 팔달산쪽으로 화성행궁이 복원돼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행궁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것을 수원시가 주요 건물 482칸을 복원해 2003년 일반에 공개했다. TV 드라마 ‘대장금’, ‘이산’과 영화 ‘왕의 남자’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는 등 영화 촬영장소로도 인기다. 화성행궁 앞에는 2만 2331㎡ 규모의 열린 광장도 조성됐다. 780억원을 들여 조성된 광장에는 정조가 행궁을 행차하며 오가던 어도가 복원됐다. 광장에는 화성문화제가 열리는 등 수원 문화행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궁앞 길 건너편에 6·25 때 사라진 종각도 만들었다.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당시 만든 종각이 완성되면서 종로라는 이름의 거리가 원래 취지를 회복하게 됐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우수성과 정조의 개혁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수원 화성박물관도 팔달로변에 세워졌다. 화성행궁 앞 매향동 일원에 부지 2만 3173㎡, 연면적 5635㎡의 규모로 건립된 화성박물관은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 기획전시실 등 3개의 전시실에 야외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시민 구본각(49·사업·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씨는 “40~50대에게 팔달로는 젊음의 거리였다.”며 “도시가 슬럼화하면서 그때의 향수가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수원이 역사의 도시로 탈바꿈 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美, 中을 배우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미국 행정부의 국장급 고위관료 20여명이 중국 베이징의 칭화(淸華)대에서 중국을 배우고 있다. 미 정부 고위관료들이 단체로 중국에서 연수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미 고위정부관료 연수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연수는 지난 17일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연수생들은 국방부, 국토안전부, 해군부, 핵통제위원회, 항공우주국 등의 국장급 간부들로 구성됐다. 미국의 대(對)중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연수 커리큘럼은 빡빡하다. 3시간 동안 칭화대 석학들의 강의를 들은 뒤 한 시간 동안 자유토론이 이어진다. 지난 19일 칭화대 중미연구센터 쑨저(孫哲) 주임의 강의 주제는 ‘중·미관계와 중·미 정치시스템’. 강의를 들은 미 관료들은 중국의 정치시스템, 중국민의 대미관 등 기본적인 궁금증은 물론 중국의 글로벌 전략, 타이완(臺灣)문제와 중·미 관계, 중국의 군사력 증강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쑨 주임 등 중국의 전문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과정 개설을 주도한 쑨 주임은 “미국 측과 2년에 걸쳐 매달 전화회의를 하고, 여러차례 왕래하면서 커리큘럼 등을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90년대 이래 중국은 해외, 특히 미국에 많은 공무원들을 보내 상대방을 알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면서 “최근 미국 쪽에서 중국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수 참여 고위관료들을 선발한 미 연방행정학원 책임자 조지프 크레이머는 “올바른 대중 정책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미국은 앞으로도 더욱 많은 고위관료들을 중국에 보내 배우고 익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전시리뷰] ‘젊은 모색 30’ 전

    [전시리뷰] ‘젊은 모색 30’ 전

    젊은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을 과감히 미술관에 수용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기 기획전 ‘젊은 모색’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한때 빛나는 젊음을 자랑했던 작가들은 이제 반백이 되어 마이크를 들고 당시 작품을 만들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1980년대 극사실주의 경향을 주도했던 한 작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화실에서 막막한 감정을 담아 극 사실로 벽을 그렸다.”고 말했다. 졸업한 미대생이 먹고살기 힘든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젊은 모색’을 거쳤던 327명의 작가 가운데 이불, 최정화, 서도호, 이형구 등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김호석과 정현, 이영배, 노상균, 서용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됐다.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반영한 거울이 ‘젊은 모색’인 셈이다. 30주년을 기념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에서 6월6일까지 열리는 ‘젊은 모색 30’ 전에는 그동안 젊은 모색 전을 거쳐 간 작가 중 43명의 작품 200여점이 나와 있다. 1981년 1회 전시에 참여했던 김용익(63)부터 2006년 14회 전시에 참여했던 진기종(29)까지 신·구 세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다. 모노크롬 회화(흑색 또는 백색의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화단에 새롭게 등장했던 극사실주의와 소그룹 활동을 통한 실험적 설치작업을 엿볼 수 있는 1980년대 미술, 사진과 미디어 영상 설치작업 등이 활발했던 1990년대 미술 등 당시 출품작과 해당 작가들의 대표작, 신작 등도 함께 보여준다. 세계 최대의 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1995년 전수천,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이 3회 연속 특별상을 받은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이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하였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1994년 같은 장소에서 민중미술 역사를 정리한다는 취지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연 ‘민중미술 15년’ 전이 “민중미술 장례식”이란 비난을 받은 것처럼 ‘젊은 모색’ 전 역시 전시의 재미나 참신성은 떨어진다. 줄거리나 맥락이 있기보다는 젊은 모색 30년 역사를 정리하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국화가 허진 전남대 교수는 “80년대 그림은 거꾸로 걸고 90년대 그림은 바로 걸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도 구본창, 최정화, 고영훈 등 스타 작가들의 오늘을 만들어 준 초기작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신사동 가로수길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신사동 가로수길

    2000년대 초반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온 컨설턴트 김병준(37)씨는 주말이면 유학시절의 향수에 빠지곤 했다.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와 브런치,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멀티숍 사이를 거닐던 때를 잊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그때 못잖은 즐거움을 찾았다. 요즘 ‘가장 뜨는 곳’으로 꼽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2006년 유학파 빈티지숍 열며 시작 지하철 4호선 신사역 8번 출구부터 신사중학교까지 이어지는 가로수길은 과거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압구정문화의 변두리이자 고급문화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자리잡은 화랑이나 젊은 의상 디자이너들의 멀티숍들이 한국판 ‘소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본격적인 변신은 2006년 후반 시작됐다. 해외 유학파가 문화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빈티지숍과 카페 등을 열면서부터다. 가로수길에는 갤러리 8곳, 의상 디자이너숍 128곳, 잡화숍 25곳, 커피 및 카페 109곳 등 515개의 아기자기한 숍들이 자리잡았다. 처음 찾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 취하고, 다시 찾으면 가게로 들어가서 만나는 풍경에 취하게 된다. 자신의 옷을 설명하는 디자이너들과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는 멀티숍 주인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영화 ‘프리티우먼’의 줄리아 로버츠가 된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숍을 운영하는 정빛나(33·여)씨는 “가게 주인들 대부분은 무조건 옷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여유를 가졌다.”면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눈총을 주거나 불친절한 상점은 찾기 힘들다.”고 소개했다. 광고회사 TBWA코리아의 젊은이들이 이 길을 무대로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책을 쓴 것도 이같은 독특함 때문이다. 이들은 책에서 “가로수길에는 느림과 여유를 지배하는 인간 중심 시스템이 있었고, 세상과 생산자·소비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새로운 사회학을 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윈도 쇼핑에 지친 사람들은 베트남 음식점 ‘리틀 사이공’, 파리 센강변 카페를 벤치마킹한 ‘부첼라’, 이북식 만두와 서울식 백반으로 유명한 ‘모던밥상’ 등을 찾아볼 만하다. 식물원처럼 꾸민 ‘블룸앤구떼’, 정통 영국식 홍차가 나오는 ‘말리’ 등의 커피숍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의상숍 등 500여 상점 몰려 있어 대로변에는 점차 대기업과 패션 빅브랜드,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호형 빈티지숍들은 점차 가로수길 사이의 세로 골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세로수길’의 탄생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개성 강한 인테리어가 형성된 가로수길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고급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유흥과 소비문화로 변질되지 않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글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중견기업 키울 경영닥터 뜬다

    중견기업 키울 경영닥터 뜬다

    경기도내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경영닥터’가 출범한다. 도는 서울대와 손잡고 도내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지원사업을 펼쳐 나가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를 위해 22일 도청에서 서울대,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와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경영닥터 지원 협약식’을 갖는다. 협약에 따라 도와 서울대는 도 공무원, 서울대 경영대학 소속 교수와 석·박사 과정의 학생 45명으로 경영닥터를 구성할 예정이다. 경영닥터들은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전략, 마케팅, 재무, 인사·조직 관리 등에 대해 컨설팅한다. 도는 우선 올해 경영닥터를 2~3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내년부터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도가 중견기업의 성장 지원에 나선 것은 해당 기업들이 뛰어난 기술력 보유 등에도 불구하고 비전과 전략, 체계적 인재육성 시스템 부족 탓에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역대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나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펼치면서 중견기업의 경우 정책적 관심에서 밀려나 성장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분석도 작용했다. 과거 개발연대(1960~1980년)에는 대기업 중심 정책을 통해 고속성장을 지속해왔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 기업 집단이 출연하지 못해 고작 5개의 대기업이 탄생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모두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이거나 삼성테스코 등 외국계 기업이었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종업원 1000명 미만 또는 매출액 1조원 미만의 기업을 말하며, 도는 관내에 70개 기업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월드리조트 100배 즐기기

    │사이판 이은주특파원│1990년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사이판은 2000년대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하다 최근엔 가족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사이판 월드리조트는 섬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를 보유하고, 해변에 바로 인접해 있어 온가족이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사이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수수페 지역에 위치한 사이판 월드리조트는 265개의 전 객실에서 남태평양의 맑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호텔에서 바닷가까지 걸어서 불과 5분 거리로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다. 투숙객은 리조트 안의 대형 워터파크 ‘웨이브 정글’의 다양한 레저 시설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2m 파도가 몰아치는 파도풀을 비롯해 유수풀 등 6곳의 풀장과 순식간에 원형 통 속으로 빠져드는 스릴감을 자랑하는 블랙홀 등 4개의 최신 슬라이드로 구성돼 있다. 사이판 월드리조트는 지난 1월 한화호텔&리조트가 인수해 100% 한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만큼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특히 돋보인다. 안내 데스크는 물론 업장마다 한국인 매니저가 있어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리조트 안의 한식당 ‘명가’에서는 한식요리사가 만든 각종 한국음식이 푸짐하게 제공된다. 월드리조트는 전문강사 프림즈(Prims)를 배치해 스노클링, 워터바이크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팀별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어린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키즈칼리지도 운영한다. 정통 타이·인도 마사지숍과 스파 및 피트니스 시설도 있어 여행 피로를 풀 수 있다. 사이판 월드리조트 이용 문의 (02)729-5937. eri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조총련은 지금

    │도쿄 이종락특파원│ 조총련은 교포 사회의 한 축이다. 조총련이 창립된 1955년만 해도 동포의 80%에 달하는 43만명이 조총련 소속이었다. 하지만 남북한 간 경제력이 벌어지면서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한국 국적행이 진행되고 있다. 조총련 소속원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으면 일본내 외국인등록 서류에는 무국적(조선족)으로 분류된다. 해외여행이 금지되고, 은행 대출 등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무기 발사 등 일본과 북한의 뒤틀린 관계 때문에 일본 내 조총련 활동에 대한 제재가 만만찮다. 이런 이유로 최근 들어 한국 국적 취득자가 부쩍 늘었다. 조총련은 조직 가입자가 2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매년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는 9만명 정도라는 게 정설이다. 이들 중 조선족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3만~4만명에 불과하다. 도쿄에 중앙본부를 두고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본부를 별도로 설치하고 있다. 조총련은 일본 사회에서 ‘민족교육’에 치중했다. 교육기관만 조선대학교를 비롯, 전국에 초·중·고 103개교를 두고 있어 6000~70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절정기였던 1970년에는 158개교 4만여명에 이르렀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수 감소로 통폐합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달부터 공립고의 수업료를 걷지 않고, 사립고의 경우에도 학생 1명당 연간 11만 8800엔(저소득 가구는 최대 23만 7600엔)을 지원하는 고교 무상화를 실시하면서 조선학교를 일단 제외했다. 이에 대해 조총련 간부는 “조선인들이 일본인과 동등한 납세자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데도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jrlee@seoul.co.kr
  • [名士의 귀향별곡]예산 민족음악원 이광수 이사장

    [名士의 귀향별곡]예산 민족음악원 이광수 이사장

    전형적 농촌 마을인 충남 예산 오가면 양막리. 밭 사이로 난 고샅길을 따라가자 기와가 얹혀진 2층짜리 슬라브 건물이 나온다. 좀 어색했지만 전통의 멋은 풍긴다. 건물 아래에 잔디 깔린 운동장이 있고, 태극기가 펄럭인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꽃이 핀 개나리와 향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운동장 옆에 나란히 세워진 정자와 ‘풍류천하(風流天下)’라고 쓰인 장승 한쌍이 한국적이다. 건물 벽에 ‘민족음악원’이란 나무 간판이 붙어 있다. 이 음악원 주인이 ‘김덕수사물놀이패’의 상쇠로 꽹과리를 쳤던 이광수(58) 이사장이다. 19일 4·19 기념공연을 끝내고 돌아온 이 이사장을 만났다. 음악원 터의 유래를 묻자 그는 “1999년 폐교된 양막초등학교를 군청이 사들여 내게 영구불하했다.”고 말했다. 1993년 김덕수사물놀이패에서 나온 뒤 이곳 고향에 살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1990년대 평양에서 공연하고 조총련 소속 금강산가곡단과 함께 협연을 하다보니 사물놀이야말로 멀어진 남북을 이어주는 교감 역할을 해줄 것 같아 후배들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귀한 소리가 온다’ 플래카드 걸려 고향은 그의 귀향을 쌍수들어 환영했다. 귀향(歸鄕)이 아닌 ‘귀한 소리가 온다.’며 귀향(貴響)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동네 주민들이 음악원 운동장 등의 잡초를 뽑아주고, 돼지를 잡아 잔치도 해줬다. 이 이사장이 이날 동네 슈퍼를 들러 인사를 건네자 주인 아주머니는 “목포에 안 가셨슈.”하고 묻는다. 이 이사장이 목포 대불대 전통연회학과장으로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길을 가다보면 주민들이 ‘어이, 막걸리 한 잔 허구가슈.’하고 부른다.”면서 “동네 한복판에 우사가 있는 등 어릴적 고향 모습은 많이 훼손됐지만 인심은 여전하다.”고 웃는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가 들르던 단골 곱창집을 가면 주인이 알아보고 옛날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예산의용소방대를 창설할 때 걸립패를 만들어 난장을 벌였고, 동네 주민들은 이 이사장을 여섯살 때부터 ‘상모 쓰고 꽹과리 치던 꼬마’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마다 500~800명 배우러와 민족음악원에는 해마다 학생 등 내국인 500~800명과 외국인 50여명이 찾아와 사물놀이를 배운다. 이 이사장은 리모델링한 교실과 운동장을 연습실과 공연장, 숙소 등으로 쓰고 있다. 그는 “사물놀이는 전 세계에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됐다.”면서 “돈을 많이 벌면 고향을 깨끗하고 전통적인 농촌 마을로 가꿔 ‘사물놀이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꿈을 내비췄다. 글·사진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약 력 << ▲충남 예산 출생(1952년) ▲남사당패 입문(1958년) ▲예산 오가초 졸업(1965년) ▲사물놀이 창단(1978년) ▲국악대상 3회 수상 ▲민족음악원 설립(1993년) ▲대불대 전통연회학과장(2005년~현재) ▲방송대상 국악부분 수상(2009년) ▲국내공연 3000회 ▲해외공연 2500회
  • [4·19혁명 50주년] 주역들 지금은 뭐하나

    4·19혁명을 이끈 역사의 주역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반세기라는 물리적 시간이 흐른 만큼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 되어 상당수가 정치·산업 일선 현장에서는 물러나 있다. 4·19 주역 가운데에는 정치권에 진출했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30명 가까이 국회에 등원했지만 18대 현역 의원 중에는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 의원은 18일 “4·19 혁명의 주역들이 산업화 현장에서 역할을 하면서 민주화는 물론 산업사회로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법 질서의 확립, 전(全) 국민의 행복 추구권 확보, 통일의 완성 등 여러 가지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의원은 현재 4·19혁명 50주년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광화문에 기념 조형물 건립, 4월19일의 공휴일 지정 등 다양한 4·19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처음 4·19를 ‘의거’에서 ‘혁명’으로 인정하고 수유리 묘지를 국립 4·19민주묘지로 격상시킬 때 청와대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이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이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다면 김 전 의원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쪽 사람으로 분류된다. 당시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이던 이세기 전 의원은 서울에서 4선 의원을 지낸 뒤 지금은 한·중친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재환 전 의원은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정치권의 4·19 세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퇴조에 접어들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16대 총선에서 패배한 후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졌다. 한나라당 김중위 전 의원은 낙선한 뒤 17대 총선 때 공천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우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출마 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뒤 한국마사회장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중앙대 학생회 간부였던 민주당 유용태 전 의원도 17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한 뒤 정치 일선에서 멀어졌다. 중동고 3학년 신분으로 고교생 시위를 주도했던 설송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광의 역사만큼 오욕도 적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윤식 전 의원은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며 변절 논란에 휘말렸다. 각각 연세대와 동아대 재학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김원기·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까지 지냈지만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리는 시련을 겪었다. 김 전 의장은 지금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중이다. 경제계에서는 롯데관광개발 김기병 회장과 경동제약 유덕희 회장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4·19 세대’로 꼽힌다. 김 회장은 한국외대 3학년 학도호국단 부위원장으로 있었고, 유 회장은 성균관대 학생운영위원장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함께 4·19혁명기념사업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3시간으로 압축된 ‘15주년 표류기’ 쓰러질 때까지 놀아봅시다

    3시간으로 압축된 ‘15주년 표류기’ 쓰러질 때까지 놀아봅시다

    “처음엔 나침반도, 아무것도 없이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었죠. 지금 멋지게 항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평가한다기보다 그동안 살아남은 게 대견하다, 휴~ 다행이다 하는 느낌입니다.”(이상면) 1990년대 후반 ‘말 달리자’의 깃발을 들어 올리며 국내 인디 음악의 태동을 이끌었던 크라잉넛이 데뷔 15주년을 맞았다. 이들이 좀 특별한 순간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15주년 표류기’다. 23~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다. 약 3시간 동안 팬들과 쓰러질 때까지 놀아보겠다는 박윤식(보컬·34), 한경록(베이스·33), 쌍둥이 형제 이상면(기타·34)·상혁(드럼·34), 김인수(키보드·36)를 최근 그들의 작업실인 서울 서교동 ‘토바다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초·중·고등학교 동창끼리 뭉쳐 1995년 서울 홍대 앞 클럽 드럭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이들이다. 외제 펑크만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레게, 스카, 폴카, 보사노바, 트로트 등을 섞어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조선 펑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홍대 앞은 정말 작은 동네였어요. 이제는 흥청망청 쇼핑 문화가 들어와 정작 홍대 앞에는 예술하고 음악하는 사람이 없어요. 예술 카페, 음악 클럽이 골목골목으로 들어가고 연남동, 상수역까지 넓어졌어요. 그래서 요즘엔 홍대 앞이 아니라 홍대 옆이라고 합니다.”(김인수) 콘서트만 여는 것은 아니다. 공연 실황 DVD로도 만든다. 인디 밴드로는 드물게 베스트 앨범도 낸다. 신곡 1곡을 포함해 크라잉넛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는 15곡을 추릴 예정이다. 기존 곡들은 새로운 편곡으로 모두 다시 녹음한다. 직접 프로듀싱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노래도 다시 제대로 녹음하겠다며 싱글벙글이다. 이르면 여름쯤 선보이게 된다. 베스트 앨범 발매에 맞춰 ‘크라잉넛처럼 놀고 크라잉넛처럼 즐겨라’라는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후배 밴드들에게 클럽 라이브가 불법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쳐다봐요. 형님이라는 생각에 어깨에 힘을 주면 젊은 밴드들이 안 놀아줘요. 살짝 묻어가야죠. 하하하.”(박윤식) 형님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선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매달 ‘크라잉넛쇼’의 오프닝 무대에 후배 밴드를 초대하는 등 인디 뮤지션들의 소통과 교류 마당을 제공한다. 인디 1세대로서의 책임감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사뭇 진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인디도 우물 안에서 꾀꼬리 소리를 내지 말고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느 게 표절이고 어느 게 진짜배기인지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문화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메이저에서 인디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름이 높아지고 인기를 얻었다고 인디 시스템을 버려서는 안 된다…. “현재 메이저 음악은 포화 상태인 것 같아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무너질 때가 있을 겁니다. 몇몇 작곡가 집단이 쏟아내는 비슷한 노래에 질린 대중들이 새 노래를 찾아 듣는 문화가 생겨나겠죠. 인디들은 그때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이상혁) 초창기에 김인수가 합류해 식구가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 멤버 구성에 변화가 없다. 동반입대·동반제대를 하며 팀을 탄탄히 유지했다. 음악을 일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는 점이 끈끈한 유대감의 원동력이다. 요즘 팀워크 개념이 달라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분위기보다 그때 그때 부속품 갈아끼우듯 교체하는 분위기가 서글프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같이 해야 나올 수 있는 멤버들 사이의 교감은 정말 달라요. 감동은 아무 곳에서나 오는 게 아니죠. 비틀스보다 롤링스톤스처럼 오래 가는 게 좋습니다. 믹 재거, 키스 리처드 등 롤링스톤스 형님들은 60세가 넘어도 여전히 날아다니잖아요.”(한경록) 10년 혹은 15년 뒤의 모습을 물었더니 다시 한 번 왁자지껄이다. 공통된 이야기는 이 멤버 그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 같다는 것. 문득 팀에 유부남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한 명은 벌써 일곱 살배기 딸이 있다. 박윤식, 한경록에게 언제 장가가느냐고 물었더니. 한경록이 씩 웃으며 답한다. “우리 ‘꼰대’ 같이 말씀하시네. 하하하”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어도 악동들은 여전히 악동들이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미스터리 수사극 ‘프린지’ 시즌2 상륙

    미스터리 수사극 ‘프린지’ 시즌2 상륙

    1990년대 신드롬을 일으켰던 ‘X파일’을 연상케 하는 미스터리 수사극 ‘프린지’의 두 번째 시즌이 국내에 상륙한다. 19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에 온미디어계열 영화채널 OCN을 통해 두 편 연속 방송된다. 2008년 9월 첫선을 보인 ‘프린지’는 80분짜리 파일럿(첫 회)에만 무려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쏟아 부은 야심작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3’와 ‘스타트랙-더 비기닝’, 인기 미드 ‘로스트’ 등으로 유명한 JJ 에이브람스가 제작과 각본, 프로듀싱을 맡은 시리즈다. 지난해 9월 시작한 프린지 시즌2는 모두 22회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현재 미국 FOX TV에서 18화까지 방송됐다. 평균 시청자 996만명의 첫 시즌에 견줘 두 번째 시즌은 760만명으로 시청률이 조금 떨어지고 있으나 세 번째 시즌 제작이 일찌감치 확정됐다. ‘X파일’이 온갖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원인을 외계인의 존재에서 찾으려고 했다면, 프린지는 황당하게 보일지라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점에서 다르다. 물론 정통 과학은 아니다. 염력이나 순간이동, 유체 이탈, 예지, 투명 인간 등을 연구하는 프린지 사이언스(비주류 과학)다. 세계를 위협하는 잇단 이상 현상(극중에서는 ‘패턴’으로 불림)의 근원을 파헤쳐 가는 FBI 요원 올리비아 더넘(안나 토브)과 17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해금된 프린지 사이언스의 권위자 월터 비숍 박사(존 노블), 아버지인 비숍 박사와 애증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천재 피터(조수아 잭슨) 등이 드라마를 이끈다. 현실 세계 이면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인 평행 우주에서 모든 음모의 진원지로 보이는 거대기업 ‘메시브 다이내믹’의 창립자이자 비숍 박사의 동료였던 윌리엄 벨 박사(레너드 니모이)를 만난 뒤 행방불명됐던 올리비아가 교통사고로 부서진 차 안에서 갑자기 앞 유리를 뚫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며 시즌2는 시작된다. 시즌1에서 밑밥만 뿌려졌던 피터에 대한 비밀이 새 시즌 들어 서서히 구체화된다. 완소 캐릭터인 찰리 프란시스 요원(커크 에이스베도)은 안타깝게도 극을 떠나게 된다. 또 첫 시즌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옵저버(마이클 세버리스)는 한 사람에서 가족 단위로 늘어나 미스터리를 증폭시킨다. 시즌2에도 유전적 돌연변이와 생김새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신체 변형자, 순식간에 사람이 고체가 되어 폭발하는 현상, 사람이 갑자기 재로 변해 버리는 현상, 사람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다른 언어로 말하는 현상 등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영화리뷰] 일라이…종교로 빠져버린 화려한 액션

    [영화리뷰] 일라이…종교로 빠져버린 화려한 액션

    1990년대 이 사람을 빼놓고 악역을 논할 수가 없었다. ‘레옹’(1994)에서 보여줬던 그 ‘악역 포스’는 쉽게 잊을 수 없다. 앞서 ‘드라큐라’(1992)가 있었고, 이후 ‘일급살인’(1995), ‘에어포스원’, ‘제5원소’(이상 1997), ‘한니발’(2001)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랬던 악역의 대명사가 요즘 들어선 착해졌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시리우스 블랙 역과 ‘배트맨 비긴스’(2005), ‘다크나이트’(2008)의 제임스 고든 반장 역은 그에게 선량한 이미지를 입혔다. 15일 개봉한 ‘일라이’는 게리 올드먼의 ‘악역 포스’를 오랜만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딴다. 여기에 올드먼의 상대역이자 주인공인 일라이 역은 덴젤 워싱턴. 이쯤 되면 영화가 기본 이상은 하겠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1983년 ‘플래시 댄스’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제니퍼 빌즈의 얼굴도 반갑다. 게다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덤블도어 교장으로 나오는 마이클 갬본과 ‘시계 태엽 오렌지’의 명배우 말콤 맥도웰까지 가세했으니 캐스팅은 최고다. 이야기는 다소 낡았다. 포스트 묵시록의 무법천지 세계는 멜 깁슨 주연의 ‘매드맥스’ 시리즈나 일본 만화 ‘북두의 권’이 보여주던 것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매드맥스’와 사무라이극 또는 서부극 구도를 1930년대 금주법 시대로 가져온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라스트맨 스탠딩’을 섞어 놓았다. 이야기와 비주얼이 새롭지 않더라도 아예 봐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액션 장면도 팔, 다리, 머리가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잔혹한 부분을 빼면 호쾌한 편이다. 포스트 묵시록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화면이 잿빛 톤으로 처리된 점도 흥미롭다. 주인공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책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해 개봉했던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재난 영화 ‘노잉’이 보여준 휴거식 결말을 보는 느낌이다. 종교색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앞에서 쌓아 놓았던 즐거움이 반감된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트릭마저 허무해질 정도다. 앨버트 휴즈, 알렌 휴즈 형제가 연출했다. ‘사회에의 위협’(1993)과 ‘데드 프레지던트’(1995)로 각광받았던 이들은 작품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초창기 견지했던 사회성이 옅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원래 제목은 ‘더 북 오브 일라이’(The Book of Eli)다.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기고] 유전자변형 작물을 다시보자/서석철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농학박사

    [기고] 유전자변형 작물을 다시보자/서석철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농학박사

    세계는 곡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증가,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식량수요의 증가와 유가급등,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에 대응한 바이오에너지의 수요 증가 등으로 곡물가의 상승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곡물 수요 증가를 충족시키고자 세계는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날로 줄어드는 경작면적에서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 닥쳐온 새로운 도전에 슬기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전자변형 작물 시장을 다시 한번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업화된 유전자변형(GM) 생물체의 대표주자는 아무래도 유전자변형 작물(GMO)일 것이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후 면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9년에는 25개국에서 1억 3400만㏊에 걸쳐 재배되었다. 1996년의 170만㏊에 비하면 79배 증가한 것이다. GMO가 지니고 있는 장점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며 지속 가능한 작물생산체계에서 식용과 사료 및 섬유 안보를 향상시키기 위한 작물 생산성 증대, 빈곤과 기아 완화, 환경에 미치는 농업의 영향 감소,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소 및 바이오연료의 효과적인 생산에 기여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대다수 국가는 GMO를 재배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농업이 식량공급 산업에서 다양한 고기능성 소재를 생산하는 고부가 기반산업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초반부터 생명공학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생명공학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선정하여 기술 수준이 양과 질적인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농촌진흥청은 2009년 현재까지 18작목 88종의 GMO와, 2가축 9종의 형질전환동물을 단계별로 개발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개발된 GMO의 품종화·산업화는 아직 이루지 못한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유전자변형 생물체를 바라보는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유전자변형 생물체에 대한 여론이 가장 나쁜 나라 중 하나이다.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장점보다는 위해성 등 부정적인 측면에 동조하는 비율이 높아 GMO의 식품 및 환경 안전성 혹은 안전관리와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면서 유전자변형 생물체 및 생명공학이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실제적인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위해성에 비해 매우 엄격하고 복잡한 규제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의 국책사업을 통해 GMO 개발과 관련된 기반 기술 체계를 구축하였고 안전한 GMO의 실용화를 위한 역량을 키웠다. 또한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코자 GMO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GMO 규제 제도가 합리적으로 조정되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 지침도 나와 우리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농업생명공학과 GMO는 우리의 농업과 경제를 선도하는 핵심 기술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