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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우룬파 “세상 떠난 뒤 재산 99% 기부”

    저우룬파 “세상 떠난 뒤 재산 99% 기부”

    홍콩 스타 저우룬파(周潤發·55)가 사후에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했다. 14일 중국과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저우룬파는 최근 홍콩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세상을 떠난 뒤에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기부운동을 펼치고 있는 워런 버핏 등을 본받아 사회환원을 결심했다.”면서 “내 재산은 내가 벌어들인 것일지라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재산 환원 계획에는 부인과 가족들도 모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승에서 먹을 것이 있고 살 집이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생로병사는 매우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로, 나의 좌우명은 평범한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평소 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TV 드라마를 본 뒤 10시30분 쯤에 잠자리에 든다는 그는 낡은 휴대전화를 쓰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자주 타는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1980~1990년대 ‘영웅본색’ 등으로 홍콩 누아르의 대표주자로 주목받은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해 ‘와호장룡’, ‘캐리비안의 해적3’ 등으로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한·중 카페리항로 개설 20년 됐 다

    한·중 카페리항로 개설 20년 됐 다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 카페리 항로가 15일로 개설 20주년을 맞는다. 이 항로는 1990년 첫 취항 후 연간 여객 71만명, 컨테이너 27만개 이상을 수송할 정도로 성장해 한·중 교역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중 카페리 항로가 최초로 개설된 것은 1990년 9월15일. 1949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 끊겼던 뱃길이 41년 만에 다시 열리는 순간이었다. 당시는 한국과 중국이 정식수교(1992년 8월24일)하기 전으로, 항로 개설은 양국간 화해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20년간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가 10개나 개설돼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 도시들을 이어주고 있다. 한·중 합작기업인 위동항운의 8000t급 ‘골든브릿지호’가 인천∼웨이하이(威海) 간을 처음 운항한 것을 시발로 1990년대에 인천∼톈진(天津), 칭다오(靑島), 다롄(大連), 단둥(丹東)을 잇는 5개 항로가 잇따라 개설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천∼옌타이(煙臺), 스다오(石島), 잉커우(營口), 친황다오(秦皇島), 롄윈강(連雲港) 등 5개 항로가 추가로 열렸다. 현재 국내에는 인천 외에도 평택, 군산 등에 중국을 오가는 4개 카페리 항로가 개설돼 있지만 인천∼중국 항로가 전체 화물의 80%, 여객의 60%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개설 첫해 9412명이던 여객은 지난해 71만 3000명으로 늘어났다. 화물은 409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에서 27만 1000TEU로 급증했다. 이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수송하는 카페리가 화물선에 비해 우선적으로 접안하고 통관받는 등 신속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누적 수송실적은 여객 774만 9000명, 화물 258만 2000TEU에 이른다. 카페리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소규모 무역업에 종사하는 소위 ‘보따리상’의 주요 이동수단으로 자리잡아 이들은 인천항의 특이한 풍경이 되었다. 카페리 이용객의 절반 이상이 보따리상이다. 이들은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화를 거듭하며 끈끈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날 농산물만 취급하던 것과는 달리 공산품으로 영역을 확장, 중국으로 갈 때는 기업 부자재나 가전제품을, 한국으로 올 때는 생산품 샘플이나 농산물 등을 가져오고 있다. 보따리상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국내를 잇는 ‘퀵서비스’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486 단일후보 이인영 추대… ‘빅4’ 압축

    486 단일후보 이인영 추대… ‘빅4’ 압축

    민주당의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이 당권에 도전하고 있는 이인영 전 의원을 단일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단일화의 한 축인 최재성 의원이 후보 사퇴를 거부, 실질적인 단일화가 되지 못했다. 당내 486 그룹의 좌장인 우상호 전 의원은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당대회에 출마한 486 세 후보(최재성·백원우·이인영) 중 예비경선에서 다득표자로 확인된 이 후보를 젊은 정치인 그룹의 단일후보로 인정키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우 전 의원은 이 후보가 다득표자라는 구체적인 근거는 밝히지 않고 “어제(12일) 간접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486 그룹은 전대 예비경선(컷오프) 전 “486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하면 득표순에 따라 한 명만 본선후보로 등록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전 의원이 단일후보로 추대되긴 했지만 단일후보에 오른 것은 아니다. 최재성 의원이 후보를 사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의원 측은 “지난 12일 백원우 의원이 후보를 사퇴했기 때문에 세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반발했다. 최 의원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우 전 의원도 “애초 약속한 단일화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으로 김근태계인 이 전 의원은 일단 힘을 얻게 됐다. 당내 486그룹의 선두주자로 각인돼 ‘빅3’(정세균·손학규 전 대표·정동영 상임고문)와 대표 자리를 놓고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계파색이 엷어 1인2표로 진행되는 전대 투표에서 정 전 대표는 물론 손 전 대표와 정 고문의 표도 흡수할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다. 한 재선 의원은 “486 그룹이 목표를 지도부의 ‘끝자리’에 ‘우두머리’로 상향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6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3~4위만 차지해도 486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친노 핵심인 백원우 의원은 전날 이인영으로의 단일화 요구를 접한 뒤 후보를 사퇴하면서 “나머지 두 후보가 완주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일화 압박에 대한 반발로도 비춰져 친노 진영이 모두 이 전 의원을 지지할지 미지수다. 최재성 후보가 정세균 전 대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완주한다면 당내 젊은 표심도 온전히 이 전 의원으로 돌아서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486 그룹이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아름다운 단일화’을 약속했지만 결국 계파와 개인적 유·불리에 따른 행보를 보여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윤희석, 아저씨로 변한 나를 꿈꾼다(인터뷰)

    윤희석, 아저씨로 변한 나를 꿈꾼다(인터뷰)

    윤희석,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건강한 빛이 역력했다. 활짝 웃을 때 반전처럼 등장한 하얀 이에서는 순박함이 보였다. 하지만 두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가지런히 넘길 때 그는 성 정체성을 의심케(?)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캐릭터를 향한 밀도 강한 몰입이었다. 수개월 전에 끝낸 공연의 흔적은 아직 그를 감싸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생 이뤄야 할 업적을 이미 다 해치운 듯 배시시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윤희석은 아직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의 활약도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무대에서 첫 출발을 했고,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성장해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욕심이 앞서지 않는다. 돌아가더라도, 혹은 늦더라도 이 길을 가고 있는 그 자체가 행복하다. “최근에 끝낸 드라마 ‘구미호 여우 누이뎐’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했어요. 그전에 팬들이라고 하면 딱 팬층이 정해져있었는데, 역시 드라마의 파급효과가 상당하네요. 초등학생 어린 팬부터 중장년층 아주머니들까지…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신기하고 재밌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윤희석이 배우라는 직업을 택하는 순간부터 그건 곧 대중과의 소통이었다. 그걸 거스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또 드러낼 수 있는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마주하는 상대들과 함께 의견을 주고받고, 자극을 전달하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익혔다. “뮤지컬 ‘헤드윅’ 공연을 하면서 윤도현 형이 무조건 트위터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솔직히 그 이유를 몰랐는데, 제가 해보니까 미니홈피랑은 또 다르게 재미있어요. 기계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자꾸 스마트폰을 보게 되고. (손에 들고는)이놈 참 괜찮아요.” 윤희석을 아는 사람은 그의 이름과 함께 뮤지컬 ‘헤드윅’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너지가 무대 위에서 발현됐다. 트렌스젠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는 수개월 전 캐릭터에서 빠져나왔음에도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전 ‘헤드윅’을 할 때 마다 감히 ‘내 연기인생의 절정을 이 작품을 통해 완성시켰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전 뮤지컬 장르를 제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연기도 노래도 춤도 다 섞여 있어서 하는 제 입장에서는 왠지 모를 갈증을 느끼게 되거든요. 좀 더 밀도 있는 장르를 하고 싶어요. 한 가지에 몰입하면서…” 윤희석은 요즘에도 순간순간 신기하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의 얼굴로 화면에 모습을 비추는 일은 실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배우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제 얼굴이 못나서 배우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실제로도 무시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 역시도 화면매체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외모로만 평가받는 게 싫었습니다.” 윤희석과 장동건의 출발점은 비슷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인 두 사람은 연기를 향한 열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윤희석에게는 외모 콤플렉스가, 장동건에게는 대한민국 대표미남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저는 안 되고, 장동건만 연기를 할 수 있는 시대였어요. 사실 좌절도 많이 했었죠. 그러다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어요. 영화배우 송강호, 월드스타 비가 그 역할을 해준 거죠. 다양화를 선호하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시대가 되니 저도 배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좋은 시기를 타고 난거죠. 하하” 윤희석을 짓누르는 콤플렉스는 성형수술에 대한 막연한 욕심도 품게 했다. 하지만 배우에게 콤플렉스는 필요악이 될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극복하기 위해 발생하는 에너지가 연기 인생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시스템이 바뀔 수 없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저는 아저씨가 되고 싶어요.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판타지 속 아저씨 원빈이 아닌 손현주 선배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그런 아저씨요. 옆집에 실제로 살고 있을 그런 친숙한 느낌의 배우요. 뭐 실제로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린 아저씨도 되고 싶네요. 하하”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이대선 기자 ▶ 엠넷, 4억 명품녀 김경아 조작설 반박 "4가지 증거 확보"▶ 유재석, 김태희 매력에 시크남 변신 실패한 사연▶ 이선균+최강희, 빗속에서 ‘벼락키스’…’쩨쩨한 로맨스’▶ ’30대’ 김나영, 사람들이 ‘20대’로 알고 있는 사연 공개▶ ’쪼쪼 브라더스’ 뇌구조 공개…김현중 머릿속에는?▶ 한국계 힙합그룹, 美빌보드 21위 돌풍 ‘성공시대’
  • [新 차이나 리포트] (2) 2010 중국인을 말한다 ⑩ 안팎서 본 중국·중국인

    [新 차이나 리포트] (2) 2010 중국인을 말한다 ⑩ 안팎서 본 중국·중국인

    13억명이 넘는 중국인을 한두 문장으로 정의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인을 폭넓게,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의 눈을 통해 본다면 조금은 실제에 가까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67년 처음 중국 땅을 밟은 이후 중국을 100여 차례 방문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박사와 그의 부인이자 ‘메가트렌드 차이나’의 공동 저자인 도리스 나이스비트, 그리고 상하이외국어대학의 셰톈전(謝天振) 교수로부터 ‘2010년 중국인의 오늘’에 대해 들어봤다. ■ 밖에서 보니… →최근 10년간 중국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존 나이스비트·이하 존) 사람들의 에너지다. 1990년대 이미 중국은 비상하기 시작했고,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가장 빠르고 다이나믹한 성장을 이뤘다. -(도리스 나이스비트·이하 도리스) 2000년쯤 그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은 세대가 등장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하고, 세상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어서 중국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세대다. →중국과 미국은 정치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는데, 미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은 어떤가. -(도리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서구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모든 게 서구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구가 자신들을 비판하면 자존감을 더욱 높이고 비판 당하면 똑같이 비판하기를 원한다. →구글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서구 언론들은 정보를 통제하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데. -(존) 사업적인 갈등 문제인데 정치논쟁화됐다. 구글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서 검열에 동의했지만 ‘딜’을 깼다. 그런데 서구는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힐러리 클린턴까지 거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인터넷 통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존) 중국 정부는 억누르려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이건 정부가 지는 싸움이다. -(도리스) 컴퓨터가 중국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등 온갖 기술을 동원해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달라이 라마가 어제 뭐했나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인의 개념은 어떤 것인가. -(존) 중국인들도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지도부 역시 늘 고민한다. 미국의 민주주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다. 미시시피주는 1995년까지도 노예법을 갖고 있었다. -(도리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은 민주주의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성숙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중국 언론에 대해 얘기해보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도리스) 예전에 언론은 선전도구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통제되고는 있다. 서구 언론에 너무 많이 얻어 맞아서 과잉 반응하는 부분도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교육이 부모들에게는 가장 큰 이슈다. -(도리스) 가장 큰 문제는 호적제도 때문에 도시에서 태어나면 여러 지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좋은 교육을 포기하거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구 기자들이 중국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점이라면. -(존) 우선 중국에 대해 많이 모른다. 중국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이 많을 뿐이다. -(도리스) 어떤 때는 정말 당황스럽다. 경찰이 곳곳에 있고 이동의 자유가 없고, 아직도 중국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서는 ‘중국에서는 여기서 가져간 음식을 먹는다면서요?’라는 질문도 받았다. →소수 민족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도리스)티베트인들도 지금의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정부 영향에서 벗어나, 예전 방식대로 살려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좋은 집, 차를 갖고 싶어 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곳은 다른 대도시와 다르지 않지만, 조금만 떨어진 지역으로 가면 상황은 다르지 않나. -(존) 도농과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도리스) 시장에만 맡기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뒤처지게 되고, 사람들에게만 맡기면 다들 자신만 생각하고, 정부에만 맡기면 상명하달식이 된다. 이 셋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모두가 혜택을 입을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책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예를 들어 여전히 사형 집행이 가장 많은 국가라는 점을 포함해, 인권 문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도리스) 사형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사형 집행 횟수만 보면 중국이 분명 높지만, 인구 당 비율로 보면 그렇지 않다. 어쨌든 중국은 인권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베이징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영화리뷰]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 3D’

    [영화리뷰]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 3D’

    추석 연휴 국내 극장가에 곧잘 명함을 내밀곤 하던 해외 블록버스터가 올해엔 단 한 작품만 눈에 띈다. 1990년대 인기 비디오 게임 ‘바이오해저드’를 모태로 한 ‘레지던트 이블 4-끝나지 않은 전쟁 3D’이다. 2002년 공상과학(SF)과 호러, 액션을 혼합해 첫선을 보인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장르적으로 따져 봐도 연휴 기간 비슷한 유의 경쟁작이 없어 ‘골문 앞 단독 슈팅’ 기회를 잡은 셈이다. 과연 골을 터뜨릴 수 있을까. 거대 기업 엄브렐러사가 만든 T바이러스가 유출돼 사람들은 정신은 죽되, 육체는 죽지 않는 좀비 상태로 변한다. 세계는 멸망의 위험에 빠진다. 엄브렐러사의 생체 실험 과정에서 초능력을 얻게 된 앨리스(밀라 요보비치·가운데)가 엄브렐러사와 좀비에 맞서 싸운다는 큰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 점점 강해지는 적들을 상대로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구도의 대결이 싫증날 정도로 반복된다는 게 이 시리즈의 양날의 검. 그래서인지 영화 제작사는 3편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으나, 역대 최고 제작비인 6000만달러(약 710억원)를 들이며 3차원(3D) 입체영상을 입혀 다시 돌아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부담 없이 즐기기에 제격이다. 억지스러운 설정과 시나리오상 허점이 간간이 눈에 띄지만 킬링타임용 작품을 놓고 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듯. ‘매트릭스’, ‘킬빌’의 인상적인 액션 장면을 3D로 만들어 놓은 듯한 도입부부터 그런 단점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다소 황당하면서도 잔뜩 폼 잡은 액션 장면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제5원소’(1997), ‘잔 다르크’(2000)로 유명해진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 요보비치가 21세기 대표 여전사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1편에서 연출 및 각본을 담당했고, 2~3편은 시나리오만 쓰며 한발 물러섰던 폴 앤더슨 감독은 다시 연출까지 맡았다. ‘이벤트 호라이즌’(1997), ‘에이리언 vs 프레데터’(2004) 등으로 SF·호러·액션 혼합 장르에 일가견을 보여주는 앤더슨 감독은 요보비치와 지난해 여름 웨딩마치를 울리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신작 ‘삼총사’에서도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탈옥 소재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로 국내에 ‘석호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웬트워스 밀러가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리 라터, 시에나 길로이, 스펜서 록 등 전작의 반가운 얼굴들이 시리즈 마니아들을 즐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 가수 겸 배우 나카시마 미카가 깜짝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도 잔재미. 영화 초반 여러 명의 앨리스가 등장하는 장면에 의아함을 느낀다면 예습이 필요할 듯. 속편에 대한 복선을 너무 많이 깔아놨다. 4편의 흥행성적이 형편없지 않다면 5편도 나올 것 같다. 16일 개봉. 96분. 청소년관람불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윤희석 “콤플렉스 많은 내가 좋다”(인터뷰)

    윤희석 “콤플렉스 많은 내가 좋다”(인터뷰)

    한쪽으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일자 단발머리, 여성스러운 손동작, 친절하고 사려 깊은 말투.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자칫 오해(?)할 뻔 했다. 그의 여성적인 행동과 분위기만으로는 도저히 조 현감을 떠올릴 수 없었다. KBS 2TV 납량특집 ‘구미호 : 여우누이뎐’에서 썩소를 날리던 악랄한 조 현감 역의 윤희석을 만났다. “머리는 뮤지컬 ‘헤드윅’때부터 길렀어요. 그 후 바로 ‘구미호’에 합류하게 돼 상투를 틀려고 자르지 않았고요. ‘헤드윅’ 시절 트랜스젠더 역에 몰입하려 네일숍에서 손톱도 붙이고 다니고 애를 많이 썼었죠. 그 때 강박관념처럼 익힌 여성스러움이 아직도 배어있나 봐요.” ◆ 착한 것 보단 나쁜 게 매력있죠 억지스러운 조합처럼 보였다. 다작을 하진 않았지만 대중들의 기억 속 윤희석은 대부분 바르고 착한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미지가 강했기에 ‘악함’은 무리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데뷔 이후 거의 최초로 도전한 악역을 그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익살스럽게 펼쳐보였다.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부터 착한 역할만 해온 게 사실이에요. 착한 역할은 감정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 어려워요. 악역은 감정의 기복이 크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역할을 위해 본인이 직접 만들어내 화제가 된 일명 ‘썩소(썩은 미소)’에 대해 묻자 “사실 저 처음에는 하기 싫었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연극, 뮤지컬과 달리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저에 대한 정보가 없어요. 단지 브라운관에 비치는 그 순간의 장면만을 기억하는 거죠. 그래서 그 찰나의 순간에 ‘조 현감은 이런 사람’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표현해야 돼요. ‘썩소’도 그 일환이었죠.” ◆ 공채 3번 낙방…비에게 고마워 상대를 배려하는 깊은 마음 씀씀이는 이렇듯 작품에 임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묻어났다. 사실 그에겐 아직 브라운관보다 무대 위가 더 익숙하다.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재학시절부터 꾸준히 서왔던 ‘그리스’, ‘록키 호러쇼’, ‘헤드윅’ 등 뮤지컬과 연극 무대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런 무대를 뒤로 하고 브라운관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공채 탤런트 시험에서 3번이나 떨어졌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흔히 ‘장동건 스타일’로 생긴 사람만 TV에 나올 수 있었죠. 저 같은 얼굴은 브라운관이랑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포기했었어요. 쌍꺼풀 없는 동양적 얼굴이 매력적으로 비쳐진 건 ‘월드스타’ 비 덕이 커요. 저 같은 연예인들이 제일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죠.(웃음)” ◆ 이선균, 오만석 ‘우유부단’ 멤버들 이선균과 오만석, 그리고 윤희석은 한예종 연극원 1기 동기들이다. 셋 다 어리바리하고 우유부단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 만든 모임 이름조차 ‘우유부단’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셋 다 백수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8번은 만났어요. 다 쫀쫀하고 우유부단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죠. 어디 가려면 장소 정하는데 4시간, 어느 찜질방으로 갈까 정하는 걸로 3시간 고민하는 건 예사예요.” ◆ 요즘 가장 심취한 건…볼링과 농사 윤희석은 굉장히 정적인 사람이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보통 농사짓느라 바쁘단다. 취미라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농작물들을 심고 가꾸고 있었다. 그야말로 판(?)이 컸다. 부모님과 함께 경기도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활동을 쉴 때는 거의 밭에서 하루를 지낸단다. 또 최근 들어 볼링에 심취해 있다고 했다. 볼링장에서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과 멤버를 구성해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다. 이젠 제법 아마추어 선수수준으로 실력이 늘었다고 자랑했다. 이날 윤희석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퍼펙트 게임 동영상을 재생시키며 뿌듯해했다. ◆ 콤플렉스는 내 원동력…내가 좋아 “콤플렉스 많은 제가 좋아요.” 의외의 말이었다. 걱정도 불안도 없을 것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윤희석에게 콤플렉스는 오히려 ‘힘’이었다. “배우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그게 연기를 하는 원동력이고 에너지죠. 부족한 걸 너무 잘 아니까 더 노력하게 되거든요. 끊임없이 자기를 발견하고 훈련하는 게 중요한 직업이니까요.” 윤희석을 만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잘생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인생을 폭넓게 바라보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 종방연을 끝내고 그가 홀로 무전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팬들과 소통하는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니 어김없이 여행에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계획도 목적도 없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깨달음들을 이 욕심의 도시에서 얼마나 유지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윤희석 미니홈피 중에서- 보여주기 위해 먼저 채워야 함을, 또 채우기에 앞서 비워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배우 윤희석. 그의 다음 목적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서울신문NTN 오영경 기자 oh@seoulntn.com / 사진=이대선 기자 ▶ 함소원, 3살연하 중국 부동산 재벌 2세와 열애중▶ 한선화 해명 "류담 닮은 과거사진은 살 빠지기 전"▶ 방미, 700만원->200억 성공비결 "성격이 급해서.."▶ 이희진 "짝사랑 男연예인과 지금 함께…" 깜짝고백▶ 일병 붐, 소속사 사장님 토니안 전역에 ‘깍듯 배웅’▶ 한국계 힙합그룹, 美빌보드 21위 돌풍 ‘성공시대’
  • 日민주당 경선 D-1… 막판까지 대혼전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할 민주당 대표 경선을 하루 앞두고 간 나오토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대결이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1일 우편 투표가 끝난 지방의원이나 당원·서포터(지지자) 표 경쟁에서는 간 총리가 크게 앞섰다는 점에서는 모든 언론의 보도가 일치하지만 국회의원 지지양상은 매체마다 엇갈렸다. 민주당 중의원·참의원 411명의 표심은 1인 2표를 행사, 전체 1222점 가운데 67.5%를 차지함에 따라 승부의 최대 변수다. 12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간 총리는 국회의원 411명 중 186명의 지지를 확보해 195명의 표를 끌어모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에게 다소 뒤져 있다. 다만 당원·서포터와 지방의원 지지도에서 차이를 벌려 전체적인 판세에서는 앞서가고 있다. 아사히신문 역시 국회의원 표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이 193명, 간 총리가 183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방의원이나 당원·서포터 표에선 간 총리가 50% 정도의 지지표를 모았다. 반면 오자와 전 간사장은 30%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간 총리가 승리할 경우 지난해 8월 출범한 이래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집권 2기를 맞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을 이끌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은 사실상 정권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일본 정치의 이합집산을 주도해온 오자와 전 간사장이 당을 뛰쳐나가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오자와 전 간사장이 승리하면 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자의 배후에서만 활동하던 오자와 전 간사장이 전면에 나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출범 이후 난맥상을 보이던 미·일 관계, 재정문제, 아동수당 등에 대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공산이 크다. 나아가 2007년부터 9월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하토야마 전총리로 교체되는 악몽도 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국과의 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시론] 2000년전 왕성유적을 저주하게 만드는 나라/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시론] 2000년전 왕성유적을 저주하게 만드는 나라/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지난 2004년, 수도 이전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할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의 서울이 한성백제 수도로 시작하여 정도 2000년에 이른 세계적인 수도이기 때문에 ‘천도’는 역사적으로도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연장선상에서 기원전 18년에 서울에서 건국하여 500년 가까이 도읍했던 한성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데 모아 전시하고 교육하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서울에 건립하겠다고 천명했다. 그 결과 오늘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한성백제박물관 건설공사가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이 문을 열면 아직은 서울시민조차 잘 모르는 한성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보여주고 알려주는 훌륭한 장소가 될 것이다. 필자는 1980년대 서울 강남이 개발됨에 따라 도로가 나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한성백제 시기의 왕릉과 유적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보고 보존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한성백제 유적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519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은 1985년 7월1일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잘려나간 석촌동 백제왕릉을 지하도를 파서 연결하고, 사라질 뻔했던 방이동 고분군도 다시 역사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재개발되면서 성 내부의 유적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관계기관에 건의서를 내고 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여기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더해졌고, 결국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후손들이 조상의 귀중한 유산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백제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자리 잡은 근거지였는지를 확실히 파악해 후회하지 않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풍납토성 내부의 재건축은 사실상 전면 중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풍납토성은 학계의 노력이 뒷빋침되면서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확실하게 규명되었다. 그러나 풍납토성 내부에서 살아가는 5만명 남짓한 주민들은 이때 공포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묶여 낡은 집을 재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웃 동네에 비하여 부동산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등 재산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 정부가 ‘8·15부동산대책’으로 송파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을 때 문화재 보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풍납토성 주민의 이주계획도 함께 세우도록 당시 국무총리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이 건의는 당시 건설교통부로 넘겨졌고, 송파신도시는 주민 이주대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앞으로 일부 행정기관이 세종시로 옮겨 간다고는 해도 서울은 수도의 정통성을 이어 나갈 것이다. 지난 광복절에는 광화문이 제 모습을 찾았고, 내년에는 남대문이 아름답게 재건된다. 서울은 풍납토성을 비롯하여 몽촌산성, 석촌동과 방이동의 백제고분 등이 조선시대 수도 유적과 함께 공존하면서 2000년 수도로 명실상부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듯 500년에 이르는 한성백제의 왕경유적은 경주나 공주·부여와 다르지 않은 역사적인 도시유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185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는 유적보호와 관광개발에 수조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그 뿌리인 한성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 내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주 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풍납토성의 한성백제 왕경유적은 풍납동 주민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유적이다. 보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풍납토성 주민들에게만 고통을 안겨줄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조금씩 고통을 분담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땅 밑에서 2000년 전의 왕성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축복은커녕 저주로 받아들이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한성백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이 풍납토성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고, 그래서 한성백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통큰 결단을 다시 한번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
  • 서울 음식점 등록1호 ‘오진암’ 57년만에 역사속으로

    서울 음식점 등록1호 ‘오진암’ 57년만에 역사속으로

    서울시 음식점 1호 업소로 등록된 종로구 익선동의 오진암이 문을 연 지 5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8일 서울시와 종로구에 따르면 오진암은 1900년대 초 지어진 2310㎡ 의 단층 한옥으로 1953년 조모(92)씨가 인수해 운영해 오다 지난달 건강 문제로 폐업하고 매각했다. 삼청각, 대원각 등과 함께 1970~1980년대 요정정치의 근거지로 꼽혔던 오진암은 정치인과 기업인 등 유명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이곳에서 만나 7·4공동성명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져 더욱 유명해졌다. 1990년대까지도 각계 유력 인사들이 오진암을 자주 찾았다. 이달 초 철거된 오진암 터에는 호텔이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오진암이 문화재 보존 가치가 있는지를 검증하려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다가, 오진암이 개인 재산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용훈 대표 “아웃소싱 산업 표준화 ‘유니에스’로 부터…”

    이용훈 대표 “아웃소싱 산업 표준화 ‘유니에스’로 부터…”

    “머지않아 기업들은 채용이나 HR운영에서 적재적소에 ‘맞춤형 인적자원(HR)’을 대여해 주는 전략적인 파트너를 찾게 될 것이다. 전문 인재서비스 기업이 임직원들의 ‘급여와 법정 제권익’에 책임을 지고 이에 따른 서비스 수수료를 인적자원을 받아쓴 기업들에게 청구할 것이다.”[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현재 기준으로 보면 꿈같은 이야기다. 아직 아웃소싱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다양하지 않은 분야에 한정된 인력을 다룬다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몰개성의 인력 집단을 주로 공급하는 데 한정되고 공급받는 업체와 대등하지 않은 이른바 ‘을’의 지위에 있다는 인식도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상상이 유니에스 이용훈 대표로부터 나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유니에스는 국내 HR 영역과 아웃소싱 산업의 발전사를 지켜봐 온 산증인격인 회사다.지난 1990년대 당시 아웃소싱이란 말 자체는 생소했고 관련 법안도 없었다. 인력 외주화에 대한 사용 기업들의 인식 역시 저단가를 위한 것이거나 단순지원 업무를 맡기는 데나 적합하다고 인식되던 상황이었다.하지만 이 같은 불모지에서 이 대표는 국내 용역회사 시초인 ‘산업안전’ 회사에서 위탁 업무를 대행하면서 다양한 유휴인력의 활용과 고용창출까지 하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접하고 개안(開眼), HR아웃소싱을 필생의 업으로 정했다.◆ 영역 세분화·전문성 늘어 ‘시장 급성장’이 대표가 이 분야에 뛰어든 지 두 번 강산이 바뀐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면서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개인경호원, 청소대행 등 많은 영역에서 아웃소싱 서비스를 활용하는 게 일반화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기업 차원에서 보더라도 HR 아웃소싱 부문이 기존의 비용구조 개선이나 조직의 유연성 차원보다는 ‘외부 자원’을 통한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재인식되고 있는 것.즉 영역도 다양해지고 전문적 역량까지도 제공받고 싶어 하는 니즈(needs)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유니에스는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잘 읽고 그 조류를 탄 케이스다. 창립 20주년을 맞는 올해 유니에스는 본사-현장직원 1만 명, 매출(2010 예상매출) 2500억 원 시대를 앞둘 정도로 성장했다. 아울러 국내 HR아웃소싱 부문에서 콜센터, 유통물류, 공항 보안검색 부문, 의료지원서비스 등 유니에스 인력풀이 이미 업계 서비스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스템 전문화에 매진 성과 ‘물 만난 고기’이처럼 흐름을 타게 된 것은 단순히 시장이 커지는 데 따른 반사적 효과를 본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HR아웃소싱의 시장 성장을 예상한 유니에스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 왔다.유니에스는 자체 취업센터 구축에 이어 업계 최초 통합전산망 구축(2004년), 그룹웨어 구축(2008년) 등 전사적 차원의 시스템 통합과 오프라인상의 전국 8대도시를 아우르는 HR 및 경영정보 관리시스템 등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다.지난 8월 27일에는 중견 서치펌(헤드헌터 회사)인 프로핸즈코리아를 전격 M&A해 고급 두뇌 관련 영역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넓히고 인력 관련 수평 계열화를 도모했다.이 대표는 “향후 기존 부문별 아웃소싱의 사업축을 기반으로 헤드헌팅과 채용대행, 재취업지원을 포함한 HR지원서비스, 고용서비스, 교육연수사업, 취업포털사업 등 종합 인재서비스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혀 인력에 관한 모든 것을 유니에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람이 재산’ 모토로 최상의 투자 유니에스는 이렇게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극대화된 회사다. 하지만 이 같은 유형적인 가치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유니에스는 경영에 있어 직원의 복지와 소통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 자기계발 지원제도 강화, 근로자 커리어상담, 전 직원 헬스센터, 직원용 복지몰 운영을 준비하는 한편, 이 대표가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직접 사내 오렌지밴드에 합류해 스스럼없이 교류하기도 한다.이 대표는 드럼을 맡아 직원멤버와 함께 교감하면서 지난 2일 창립행사 축하공연을 통해 선보이며 경영자(CEO)이기에 앞서 직원들이 항상 마음을 열고 상의할 수 있는 멘토를 자임한다.이를 토대로 유니에스는 고객맞춤형 서비스에 의한 고품질경영에 더욱 집중하여 2015년 내 아데코나 맨파워 그룹에 버금갈 대한민국의 글로벌 인재비즈니스서비스 브랜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아웃소싱 분야는 논란은 있으나 폭과 깊이에 있어 확장을 계속해 나가고 있고, 이 같은 확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단순히 가까운 관련 뉴스들만 살펴보더라도 이 대표가 앞장서 2005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의 세계 인재서비스연맹(CIETT) 가입에 이어 2007년 아시아지역 인재서비스연맹회의(A-CIETT)를 주관했다.이용훈 대표는 파견근로의 순기능을 알려가면서 당시 비정규직 논란의 중심이 됐던 파견근로 직종을 32개 직종으로 확대하는 단초를 마련하기도 하는 등 국내 아웃소싱이 세계 기준으로 성장하고 그 영역과 역량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이렇게 기업마다 HR 기능을 비용효율적인 관점(Cost center)이 아니라 성과관리의 관점(Profit center)으로 인식이 전환되면서 필연적인 선택의 일환으로 HR 아웃소싱의 활용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주도적, 창조적으로 응하고 있는 유니에스의 발전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내고장 인재 산실] 청주 세광고

    [내고장 인재 산실] 청주 세광고

    1953년 충북 청주지역 최초의 인문계 사립고로 출발한 세광고가 입시의 명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평가받는 송진우와 홈런왕 장종훈을 배출하며 1990년대까지 야구의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공부 잘하는 학교로 더욱 유명하다. 6일 세광고에 따르면 이 학교는 최근 10년간 명문대 합격률이 전국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충북의 1등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9년 17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킨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해마다 두자리 숫자의 서울대 합격생을 기록하고 있다. 2009학년도 입시에선 서울대와 전국 의대·치대·한의대 38명, 연세대 35명, 고려대 33명을 합격시키는 등 수도권 지역 대학에 모두 306명을 진학시켰다. 또 미국 듀크대학 1명, 경찰대 1명, 사관학교 6명, 카이스트에 4명을 합격시켰다. 최근 5년간 배출한 서울대 합격생은 총 80명. 충청권 고등학교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전국에선 17번째.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 특수목적고를 제외하면 평준화 지역 일반계고 가운데 전국 최고 성적이다. ●‘한빛학사’·심화반 효과 이런 성과는 특화된 기숙사 운영과 수준별 맞춤형 수업이 밑거름이 됐다. 세광고는 1989년 ‘한빛학사’라는 기숙사를 만들어 학년별 성적 상위 40명으로 학사반을 편성했다. 학사반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거쳐 6개월마다 재편성된다. 학사반이 되면 1, 2학년은 1주일에 한 번, 3학년은 한 달에 한 번만 집에 갈 수 있어 학원은 다닐 수가 없다. 한달에 숙식비 30여만원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학사에 입사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맞춤학습과 함께 서울대에 진학한 선배들과 1대1 멘토관계를 맺고 수능 고득점의 비결을 전수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혜택 때문에 학사에 들어가려는 학생과 퇴출되지 않으려는 학생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데, 이 같은 선의의 경쟁이 자연스레 뜨거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학생들의 놀라운 성적 향상을 가져온 것이다. ●명문대 선배와 1대1 상담도 세광고의 기적이 알려지자 현재 충북도 내 상당수 학교들이 세광고를 모델로 해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고, 전국에서 한빛학사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세광고는 학사반과 더불어 방과 후에 심화반과 기초반을 운영한다. 심화반은 학사반에 들어가지 못한 차상위 성적 학생들로, 기초반은 나머지 학생들로 구성된다. 영어와 수학 등 주요 과목은 정규 수업시간에도 이동식 수업을 통해 맞춤형 지도를 하고 있다. 세광고가 학력신장에만 주력하는 것은 아니다. 명사 초청 강연과 학교추천도서 감상문 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김병완 교장은 “세광고는 한빛학사 등을 통해 사교육을 이기는 공교육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수리와 과학에서 다른 학교보다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학교 특성을 살려 본교를 과학중점고교로 특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가족특채·가산점제 폐지 공기업 대부분 공채전환

    공기업 특별채용(특채)은 최근 수그러들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국정감사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대부분 공개채용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다만 계약직의 경우 특채를 진행하는 공기업이 더러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특채 형식의 직원 채용이 없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에 따른 인원 과잉으로 공채도 2008년부터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까지 다른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공을 세운 직원의 자녀가 입사할 때 가산점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계약직은 부서 필요에 따라 수시로 뽑지만 낮은 임금에 잔무 처리가 많은 비정규직이다. 2006년까지 직원 자녀에 대한 입사 우대로 도마에 올랐던 수자원공사는 입사 전형에서 가산점제를 폐지했다. 대신에 보훈가족 등 국가유공자 자녀에 대한 특채는 관련 법률에 따라 이어가고 있다. 월남전과 6·25전쟁의 참전자 자녀에게는 입사전형에서 5~10%의 가점을 부여한다. 또 국가보훈처에서 2배수로 추천하는 지원자들에 한해 서류와 면접을 거쳐 특채한다. 철도시설공단은 지난달 35명을 공채 형식으로 뽑았고 특채는 실시하지 않는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도 특채에 대한 여론 질타로 대거 축소됐다. 2008년만 하더라도 노사 단체협약에 ‘가족 특채’도 있었지만 지난해 모두 폐지됐다. 한전의 경우 특별채용이 가능한 곳은 임원실의 비서직 정도다. 결원이 생겨야 특채가 진행되는 만큼 수년에 한 번 정도 진행된다. 한국가스공사도 특채가 거의 사라졌다. 지난 4월 국가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령에 따라 보훈대상자 2명을 특채로 뽑았다. 반면 산업은행은 계약직 특채가 있다.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종이 주요 대상이다. 해마다 성과평가를 통해 1년 단위로 재계약한다. 김경두·유대근기자 golders@seoul.co.kr
  • 구글 안드로이드 로봇, 90년대 게임과 유사…표절?

    구글 안드로이드 로봇, 90년대 게임과 유사…표절?

    [서울신문NTN 뉴스팀] 구글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2일(현지시간) IT전문 블로그 사이트 인가젯에서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한 한 매체에 따르면 이 캐릭터의 유사한 점을 들어 의혹을 제기했고 구글 측은 답변을 안 하고 있다고 전했다.이는 스마트폰 광고에 등장한 SKT ‘안드로보이’ 등의 로봇 캐릭터가 지난 1990년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유사하다는 것.게임은 ‘Gauntlet: The Third Encounter’로 유튜브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 동영상에서 안테나 모양과 몸의 형태 등 전체적인 모습이 유사하며 게임 속 개릭터 역시 ‘안드로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구글이 스마트폰에 운영체재로 탑재한 안드로이드는 캐릭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활용하고 있다.만일 구글의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1990년대 게임속 캐릭터를 표절한 경우 파문은 확산될 것으로 업체관계자는 주시하고 있다.특히 표절로 밝혀질 경우 구글뿐만 아니라 국내 이통사인 KT와 SKT에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사진=’안드로보이’, ‘Gauntlet: The Third Encounter’ 캐릭터뉴스팀 ntn@seoulntn.com
  • 개그맨 서인석, 참담했던 과거사…수양딸과 새 삶

    개그맨 서인석, 참담했던 과거사…수양딸과 새 삶

    1990년대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 서인석이 캄보디아 봉사를 통해 과거를 참회하고 ‘수양딸’ 레아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한 때를 공개했다. 9월 3일 방송된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에서는 앙코르와트 사원을 배경으로 봉사활동에 나선 서인석의 모습이 그려졌다. 서인석은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고백했다. 서인석은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을 만났고 미소가 예쁜 레아를 수양딸로 삼았다.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는 레아에게 캄보디아에 머무는 3일 동안 아빠의 빈자리를 지켜주겠다고 나선 것. 두사람은 함께 집을 청소하고 간식을 먹으면서 부녀의 정을 나눴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는 법. 서인석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아무것도 모르는 레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한국에 있는 두 자녀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한 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인석은 “쉽게 말해 아이들을 돈으로 키웠다. 부끄럽단 이유로 책임도 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간 사업실패와 가정파탄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었던 삶에 참회하는 모습 속에서 인생의 무게가 느껴졌다. 서인석은 빚 독촉과 부담감에서 도피하듯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 갔다. 그곳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1년여의 노숙생활을 거쳐 인생의 밑바닥을 봤다. 서인석은 돈과 출세를 바라고 살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나는 지금 돈도 없고 집도 없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은 나를 더욱 편안케 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다음을 다잡았다. 사진 = SBS ‘좋은아침’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여자 아이돌 교복포스 지존은 누구?▶ "뭐 드실래요?.." 김민종·강타, SM 일일승무원 변신▶ 이해인, 귀여운 얼굴-풍만한 가슴 ‘반전몸매’▶ ’요일별 직장인 표정’ 공감 백배?…"백수는 웁니다"▶ 성유리, 통통해진 볼살…동안스타 대열합류
  • [박건형 순회특파원 좌충우돌 유럽통신] 파리 거리에 예술을 두르다

    [박건형 순회특파원 좌충우돌 유럽통신] 파리 거리에 예술을 두르다

    ‘가치’에 대한 평가는 보통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된다. 선 안쪽은 음악 또는 예술이고 바깥쪽은 소음이나 낙서라는 식이다. 그러나 선의 경계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바깥쪽에서는 선을 넘어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일부는 어느새 선 안에 들어와 있다. 피카소가 그랬고, 앤디 워홀이 그랬듯 선을 넘은 사람들은 선각자, 개척자로 추앙받는다. 키스 헤링과 장 미셸 바스키야가 미국에서 ‘그래피티’(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개척하던 1980년대 파리에도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파리 남쪽의 카이 언덕을 찾았다. 언덕 곳곳의 거리 표지판 아래나 상점 담벼락 구석에서 이제는 거장으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실연 뒤의 쓸쓸함을 달래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하는 문구를 담은 그림을 카이 언덕 이곳저곳에 그렸던 ‘미스티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유하는 것은 갇히는 것이다.’ ‘나를 잠들게 하기 위해, 너는 꿈을 꾸게 한다.’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함께 적혀 있는 문구들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느낌이 와닿지 않지만, 작품 속의 눈빛만으로도 미스티크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느껴졌다. 1980년대 초반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래피티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조차 낯선 분야였다. 경찰들은 그의 그림을 단순한 낙서로 여겨 지우기 바빴고, 그렇게 초창기 작품들은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 미스티크는 상점 주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겠다는 허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티크가 그린 검은색 드레스의 여인들은 카이 언덕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회를 갖는 유명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화살표 사인으로 유명한 ‘길거리 예술의 전설’ 제프 에어로졸의 작품이나 블렉 르 라, 스피디 그라피토, 자나 & JS 등의 그림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던 제롬 메나제의 작품은 예술가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찾았다. 벽에 그려진, 자유를 갈망하는 듯이 움직이는 메나제의 역동적인 남성들은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거침 없이 허물었다. 권총을 든 여성을 담은 빨간 배경의 작품에다 미스티크는 ‘인정받는 예술은 이미 죽은 예술이다.’라고 적었다. 담벼락을 캔버스로, 길거리를 화랑으로 삼아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지워지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피티가 예술이라는 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도시 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만남이었다. kitsch@seoul.co.kr
  • 이유있는 ‘복수극 쓰나미’

    이유있는 ‘복수극 쓰나미’

    2010 대중문화가 복수에 빠졌다. 복수는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자주 통용되는 전통 소재이긴 하지만 최근들어 구조의 복잡성이나 표현의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대중문화계는 왜 거대한 복수극에 휘말린 것일까. ●막장·스릴러 코드와 맞물려 더 세지고 더 잔혹화 복수극의 난립은 장르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람 피운 남편에 대한 서슬퍼런 복수극을 그린 ‘아내의 유혹’(2008)의 성공을 전후해 TV 드라마는 이른바 ‘막장’이 주도하는 분위기다.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복수’는 뚜렷한 갈등구조와 과장된 캐릭터로 몰입하기 쉽고 흡인력도 강하다. 때문에 종종 ‘통속극의 재발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같은 복수극 계보는 지난해 ‘에덴의 동쪽’과 ‘천사의 유혹’을 거쳐 올해 MBC 일일극 ‘황금물고기’와 SBS 월화극 ‘자이언트’로 이어지고 있다. 황금물고기는 한 드라마 안에서 남녀 주인공의 복수가 물고 물리며 펼쳐지는 다중 구조로 눈길을 끌고 있고, 자이언트는 삼청교육대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강모(이범수)의 복수가 본격화되면서 같은 시간대 부동의 시청률 1위였던 MBC ‘동이’를 제치기도 했다. 스크린도 핏빛 복수 일색이다. 이는 스릴러 장르 열풍과 맞닿아 있다. ‘추격자’(2008)의 흥행 이후 충무로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나 당대의 트렌드에 맞춘 기획영화보다는 영화 자체가 주는 쾌감과 완성도에 집착하는 장르 영화가 득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복수를 기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스릴러가 단연 인기다. 옆집 소녀 납치범에 대한 원빈의 복수극 ‘아저씨’는 관객 40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연쇄살인범에게 약혼녀를 잃은 주인공의 복수를 다룬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도 15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복수극의 범람은 잔혹성 논란을 수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스릴러가 범람하다 보니 전작들과의 차별성이나 관객의 높아진 역치(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자극의 세기)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충격적인 영상이나 잔혹한 표현 방식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논란 속에서도 왜 복수 코드는 잦아들기는커녕 더 만연하는 것일까. 우선 배우에게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이유를 찾는 시각이 있다. 배우 입장에서는 ‘센’ 연기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는 복수극을 마다할 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 ‘자이언트’의 이범수는 “강모라는 캐릭터가 아버지의 원수를 알기 전과 후,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뚜렷한 단독 주연작이 없던 원빈도 ‘아저씨’의 연기 변신을 통해 원톱 주연으로 올라섰다. 복수 연기의 대리만족을 꼽는 이도 있다. ‘황금물고기’의 이태곤은 “그동안 당했던 인물의 복수 장면을 연기할 때는 배우로서 통쾌하기도 하고 희열감이 들어 리액션이 자연스레 나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막장드라마나 스릴러의 ‘쏠림현상’ 속에 스타 감독이나 PD들조차 강한 갈등과 반전이 있는 복수극에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폭력·선정성 상업적으로 왜곡될수도 전문가들은 사회문화적으로 도덕적 원칙이 사라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응징하고 싶은 대중의 대리만족 욕구가 반영된 산물이라고 풀이한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서적으로 황폐화되고, 도덕적으로 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면서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에 대한 고민을 예술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서 복수의 과정 자체를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역사적으로 근대사까지 폭력으로 얼룩진 사건이 많은 데다 사회 분위기가 억압적이다 보니 한국 영화가 폭력에 관대한 측면이 있다.”면서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문화적 카타르시스로 해소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에만 치중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강 평론가는 “지금처럼 보여주기식 스릴러가 반복된다면 1990년대 조폭 코미디처럼 신선함을 잃고 오히려 식상함만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교수도 “이 과정에서 폭력성과 선정성 등 상업적으로 왜곡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기후 변화때문에 몸도 시름시름

    기후 변화때문에 몸도 시름시름

    이상 한파에 따른 냉해와 폭염 등 최근 잇따르는 기상 변화가 실제로 국내에서도 각종 질환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염에 의한 사망자 증가와 각종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가 급격한 날씨 변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1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환경·보건 전문가 학술대회에서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후변화가 공중위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보고를 통해 1971년 이후 2007년까지 한국의 7대 도시 평균 기온은 1.44도가 상승했으며, 강수량도 무려 21%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온 상승이 주로 폭염기인 여름철에 집중돼 7~8월 평균 최고기온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며, 이에 따라 사망자도 상당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 평균기온이 25.3도로 유래없는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7~8월 전국의 사망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77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서울과 경기의 초과사망자는 각각 907명과 642명으로 조사돼 대도시가 폭염에 더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4년 전체 사망자는 전년보다 3만 2559명 늘어난 72만 1074명이었다. 장 교수는 “폭염 자체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각종 질환의 발생률을 높이거나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했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질병의 유형도 뚜렷한 변화 양상을 보였다. 말라리아와 쓰쓰가무시증, 렙토스피라증, 비브리오패혈증 등 열대 및 아열대성 질병이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쓰쓰가무시증의 매개체인 털진드기는 1996년 조사에서는 충청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했지만 2008년에는 경기 이남 지역까지 북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쥐 등 설치류의 증식과 야외활동 증가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가 하면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수목류의 꽃가루에 노출되는 환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2002년 294만명에서 2007년 443만명으로 무려 50.7%나 늘었다. 천식, 아토피 피부염 환자도 큰 증가폭을 보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신재민, 연타석 비리에… 위장전입·투기의혹 발목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4일 진행된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YTN 녹취록 파문, 부동산 투기의혹, 부인의 위장취업 의혹 등이 연달아 제기되면서 사퇴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29일 자진사퇴함으로써 청문회제도가 도입된 뒤 문화부 장관으로서는 첫 사퇴자로 기록됐다. 신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낮은 자세로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으나 물거품이 된 셈. 신 후보자는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거쳐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청문회 때 “후보자가 기자라면, 이런 의혹에 대해 뭐라 쓰겠는가.”(천정배 민주당 의원)라는 질문이 나온 이유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1990년대 말 선거법 위반혐의 때문에 의원직을 잃고 미국에 머물던 ‘정치낭인’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권 출범과 함께 문화 2차관과 1차관을 역임했다. 임명 뒤 거칠 것 없는 강경발언은 논란을 키웠다. 이런 전력 때문에 신임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것도 예정된 수순이었고, 때맞춰 각종 문화예술단체와 언론단체에서 반대성명을 내놓은 것도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뉴에이지 거장 ‘데이비드 란츠’ 새달 3~5일 내한공연

    뉴에이지 거장 ‘데이비드 란츠’ 새달 3~5일 내한공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뉴에이지 음악의 온기가 국내에 서서히 번져오던 시기, ‘디셈버’의 조지 윈스턴과 함께 그 온기를 열기로 바꿔버린 피아니스트가 바로 ‘크리스토포리스 드림’의 데이비드 란츠(60)다. ‘크리스토포리스 드림’은 1988년 발표돼 무려 27주 동안 빌보드 뉴에이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란츠가 전설의 영국 록그룹 비틀스를 주제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새달 3일 오후 8시와 4일 오후 5시 서울 구로동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5일 오후 5시에는 제주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건반을 울린다. 란츠는 최근 비틀스를 재해석한 앨범 ‘리버풀 : 리-이메지닝 더 비틀스’를 발표하며 그동안 얻었던 음악적 영감과 관련해 비틀스에게 헌사를 바쳤다. 란츠는 앨범 작업을 함께한 플루티스트 게리 스트라우소스, 첼리스트 월터 그레이와 프로젝트그룹 데이비드 란츠 트리오(일명 리버풀 트리오)를 결성해 전 세계 투어를 하고 있다. 3만~5만원. (02)582-4098.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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