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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구 연예인 홍보대사 모시기 ‘진땀’

    자치구 연예인 홍보대사 모시기 ‘진땀’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된 용산구 이태원은 외국인들이 찾던 대표 관광지였으나, 2000년대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상인들의 노력에 맞물려 그룹 UV가 부른 노래 ‘이태원 프리덤’이 몰고 온 홍보 효과 덕분이었다. 이에 용산구는 발빠르게 지난 5월 UV를 용산구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2일 자치구 등에 따르면 민선 5기 출범 이후 현재 20명에 가까운 연예인들이 구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구 자체 이미지 제고나 구에서 추진 중인 특정 구정을 널리 알리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대다수가 일회성에 머무르고 위촉 자체에 급급한 경우가 많아 심도 깊은 선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구 관계자들은 연예인 홍보대사는 위촉이 어려워 말 그대로 ‘모셔오기’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부처 홍보는 연예인들 입장에서도 홍보효과가 크고 신뢰성·공공성 이미지까지 더할 수 있어 구미가 당기는 자리이지만, 구 홍보대사는 일단 작은 규모 탓에 자신들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홍보대사는 공히 금전적 보상이 없는 명예직이라 바쁜 스케줄까지 미뤄가며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는 홍보대사 모시기에 진땀을 뺀다. 그나마 대부분 ‘연줄’을 통해서다.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지연’, 즉 관할 내 거주 연예인을 위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동장들이 관할 내 연예인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구가 취합한 뒤 접촉하는 식이다. 서초구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됐던 최수종·하희라 부부, 용산구 아이낳기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엄앵란 등이 그런 예다. 군대 인맥도 유용하다. 서대문구는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구 문화체육과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던 인연을 연결시켰다. 송파구도 구 공익요원으로 복무 중인 탤런트 고주원에게 일자리 홍보대사 자리를 맡겼다. 그 외에도 송파구 리브컴어워즈 홍보대사인 가수 은지원, 구로구 홍보대사 개그맨 정찬우처럼 구 고위직과의 혈연 관계, 개인적 친분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어렵게 위촉한 홍보대사지만 효과는 미미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부분 활동이 일회성에 그치고 특정 행사의 구색 맞추기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책의 성격과 연예인 이미지를 잘 맞춰야 둘 사이의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용산구는 UV 활동으로 인한 이태원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구 관계자는 “주말이면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다시 젊은 층이 붐빈다.”며 “노래의 인기와 맞물려 상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에 따르면 이태원의 최근 하루 유동인구는 4000여명으로 1990년대 5000여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홍보의 연속성과 함께 연예인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한 구 관계자는 “홍보대사를 위촉해 놓고도 연예인 스케줄 때문에 후속 행사를 벌이기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구로구는 지난달 정찬우를 홍보대사로 위촉하면서 아예 계약기간을 3년으로 정했다. 유명무실한 홍보대사로 무한정 있느니 적어도 그 기간만큼만은 열심히 해 달라는 의미다. 구로구 관계자는 “강제성 있는 계약은 아니지만 기간을 정하는 게 서로 편하다고 생각했다.”며 “계약 기간 동안엔 가을 축제 등 각종 지역 행사에서 구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옥스퍼드大 루이스 교수 “한국학 뿌리내리려면 10년 넘게 지원해야”

    [이제는 공공외교다] 옥스퍼드大 루이스 교수 “한국학 뿌리내리려면 10년 넘게 지원해야”

    “한국학이 해외에서 뿌리내리려면 기관과 기업 등이 나서 10년 넘게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 제임스 루이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한국사)는 해외 대학들의 한국학 과정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초학문 위주의 장기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2007년 옥스퍼드대의 한국학 과정이 폐지 위기에 처했을 당시 이는 대학보다 한국의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한국의 지원 기관들이 정치학이나 경제학에는 관심이 있지만 역사나 언어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가장 취약하고 어려운 학문에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알아야 학생들이 (한국) 신문도 읽고, 그래야 한국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한국학 과정이 유럽 대학 내에서 불안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원 문제가 가장 크다. 영국 대학에서는 어떤 학문 과정이 10년 넘게 유지되면 영구적인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이하라면 불안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뿌리를 내릴 때까지 지원해야 한다. →일본은 기업들이 일본학 지원에 적극적이라던데. -그렇다. 자동차 제조업체 닛산의 산하기관인 ‘닛산 연구소’는 1980년대 우리 대학에 300만 파운드(약 52억원)를 지원했고 5년 전 추가로 250만 파운드를 줬다. ‘자동차 회사가 문화에 신경을 쓴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 학자를 육성하는 것이 한국 정부 입장에서 왜 필요한 일인가. -예컨대 1990년대만 해도 영국 내 한국 전문가가 많지 않아 영국 언론이 한국 소식을 전할 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엉뚱한 내용을 싣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내가 언론사에 일일이 전화해 해당 사실을 설명하고 바로잡았다. 지금은 기자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한국 관련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 ‘폭우’ 자연재해 주범…재산피해 10년새 3배↑

    ‘폭우’ 자연재해 주범…재산피해 10년새 3배↑

    200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기상 이변으로 인한 연평균 재산피해가 1990년대의 3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16년 이후 연간 재산피해액이 가장 많은 1~3위가 모두 2000년대였다. 대형 재산피해는 폭설이나 태풍보다 대부분 호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의 일상화’를 인정하고 인명 피해뿐 아니라 산업전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일 본지가 이지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1960년대부터 지난해까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산피해액을 분석한 결과 2000년대 연평균 피해액은 1조 9045억 7000만원으로 1990년대 연평균 피해액(6953억 8000만원)의 3배에 육박했다. 원자료는 소방방재청의 재해연보를 인용했다. 2000년대 연평균 재산피해액은 1960년대(1276억 7000만원)의 15배에 이른다. 통계작성 이후 가장 많은 피해액을 기록한 연도는 태풍 ‘루사’가 몰아쳤던 2002년이며 재산 피해액은 7조 5239억 5000만원이었다. 이외 태풍 ‘매미’가 온 2003년(5조 3059억여원), 2006년(2조 1393억여원), 1987년(1조 9680억여원), 1998년(1조 9303억여원) 순이었다. 피해액 상위 10위 안에 포함된 연도중 6개가 2000년대에 집중돼 있었다. 큰 피해는 대부분 폭우가 주원인이었다. 역대 피해액으로 상위 3위인 2006년의 경우 호우 피해가 98.1%였으며 대설(0.3%), 태풍(0.6%), 강풍(0.7%), 풍랑(0.3%) 등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경미했다. 최근 기상이변으로 인해 경제적 피해가 늘어나는 이유는 온실가스 증가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2001년 이후 500명 이상 사망자 또는 5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대형 기상이변 발생 건수(연평균)는 24.5건으로 1980년대의 12.7건보다 2배로 증가했다. 난개발 및 산업 발달과 물가 인상으로 같은 피해에도 재산 피해액과 재해복구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향도 있다. 재해복구비는 2005년 재산피해액의 153% 정도였지만 2009년 258%까지 늘었다. 문제는 기상이변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은 기상이변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2100년까지 세계 총생산(GDP)의 5~2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의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 충격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보험업계는 늘어나는 재연재해에 따라 올해 상반기 1.6% 성장에 그치면서 6년 6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배산임수가 명당이라는 부동산의 오랜 투자가치도 다소 바뀔 것으로 보인다. 농업계의 타격으로 추석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고 도로교통 체증 및 항공기·선박 결항 역시 수송업에 악영향을 주었다. 2008년 기상악화로 27개 고속국도에서 발생한 교통혼잡 비용은 3981억 5000만원에 달했다.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국토기본법,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자연재해대책법 등 산발적으로 운영되는 기상이변 관련법규를 연계해 긴급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또 인명 피해 및 재산 피해,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종합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2014 월드컵 3차 예선 쿠웨이트·UAE·레바논과 한 조] 중동은 없다

    중동의 모래바람을 뚫어야 브라질에 갈 수 있다. 한국은 31일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륙별 예선 조추첨 결과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레바논 등 중동 3국과 B조에 편성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장거리 이동과 낯선 환경의 부담을 안고 오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최종 예선 진출을 위한 3차 예선전을 치르게 됐다. 한국은 9월 2일 레바논과 홈에서 1차전을 치르고, 나흘 뒤인 6일 쿠웨이트와 원정 경기로 2차전을 벌인다. 한 달여의 휴식기인 10월 7일 국내에서 한 차례 평가전을 가지고, 10월 11일 UAE와 홈에서 3차전, 11월 11일 UAE와 원정 4차전을 한다. 연이어 11월 15일 레바논과 5차전 원정경기를 치르고 나서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를 홈으로 불러들여 3차 예선 최종전을 벌인다. 쿠웨이트(95위)는 역대 A매치 전적 8승3무8패로 한국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단 1990년대 중반까지만이었다. 한국은 2004년부터 치른 쿠웨이트와의 세 차례 A매치에서 3연승(10골·무실점)을 거두면서 한 수 위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 2005년 6월에 치러진 쿠웨이트와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5차전에서 무려 4골을 넣어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UAE(109위)도 역대 전적 9승5무2패로 한국의 일방적 우세다. 한국은 2009년 6월 UAE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대기록을 달성한 좋은 추억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레바논(159위)에도 역대전적 5승1무의 압도적 우위다. FIFA 랭킹 상대전적도 한국(28위)이 우위인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는 여건이다. 장거리 원정경기에 따른 피로감과 중동의 기후와 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홈 앤드 어웨이라 해도 쿠웨이트, UAE,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자기들끼리의 이동 거리가 얼마 되지 않지만, 한국은 원정길을 떠나면 왕복 비행시간만 24시간이다. 게다가 한국은 유럽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에 경기에 앞서 호흡을 맞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최근 중동축구의 전력이 평준화되고 있어 FIFA 랭킹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면서 “중동 원정에 따른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중동 원정에 맞춰 해외파 소집 일정은 물론 최단 거리 이동을 위한 항공권 예약과 최고의 숙소 선정 등 선수들의 체력을 지켜낼 다양한 방법을 짜내겠다.”고 덧붙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한화그룹 30년새 자산 50배 키워

    한화그룹 30년새 자산 50배 키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일 취임 30주년을 맞는다. 부친인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개로 20대에 그룹 총수에 올랐던 김 회장은 지난 30년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검찰 수사 등의 위기를 맞았지만 한화그룹의 자산을 50배 키워내며 재계 10위의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시켰다. 31일 한화그룹에 따르면 김 회장은 1일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김 회장은 1981년 한국화약그룹(현 한화그룹) 설립자인 김종희 회장이 타개하자 29세의 나이에 그룹 총수가 됐다. 김 회장 취임 이후 한화는 금융과 전자, 유통, 레저 등 3차산업을 강화하면서 제2의 창업기를 맞았다.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규모와 내실을 키웠고, 첨단산업 분야에 진출하면서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이에 따라 1981년 자산규모 5000억원, 매출 7300억원, 계열사 19개에 불과하던 한화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4조 5000억원(금융자산 포함 때 81조원), 매출 34조원, 계열사 44개의 재계 순위 10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한화그룹이 순조로운 항해만 계속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1990년대 초반 세계화 물결에 따라 추진했던 해외투자 등이 발목을 잡았고, 1999년 알짜배기 계열사였던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를 울며 겨자먹기로 현대정유에 넘겨야 했다. 야심차게 진행했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스스로 물러섰다. 김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제2차 석유화학 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을 전격 인수,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키웠다. 지금은 그룹의 성장축으로 자리매김한 대한생명 역시 인수를 강행했다. 주위의 만류가 빗발치던 M&A건이었다. 최근에는 그룹의 주력 신사업인 태양광 분야에 집중하며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8월 세계 4위 규모의 태양광 업체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사명을 ‘한화솔라원’으로 변경하고 태양광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 취임 30주년 대신 내년 10월 그룹 창립 60주년에 초점을 맞춰 각종 기념식이나 행사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10년새 100대 기업 41곳 순위 밖으로

    국내 100대 기업 중 40% 정도는 10년 사이에 100대 기업에서 밀려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발표한 ‘100대 기업 변천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41개가 지난 10년(2000~2010년) 동안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년간(1990~2010년)은 58개, 30년 사이(1980~2010년)에는 73개 기업이 100대 기업에서 탈락했다. 100대 기업을 구성하는 업종도 변화가 컸다. 1980년에는 건설(13개), 섬유(11개), 식품(8개), 금융(7개), 제약(6개) 분야가 강세였지만 30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금융(15개), 전자·통신(12개), 건설(7개), 조선(5개), 자동차(5개) 분야로 재편됐다. 30년 사이 100대 기업의 자리를 내준 곳으로는 대한전선(1980년 3위), 쌍용양회공업(4위), 한일시멘트(15위) 등이었다. 이들을 대신해 LG디스플레이(2010년 12위), NHN(20위), OCI(34위) 등이 100대 기업에 들었다. 시가총액 1위는 1980년대에 삼성전자와 대림산업, 현대차, SK 등이 각축을 벌였지만 1990년대에는 민영화한 한국전력과 한국통신이 수위를 놓고 다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삼성전자가 1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2010년 기준 100대 기업의 평균 나이는 34년으로 101~300위 기업(36년)보다 2년 젊었고, 코스피와 코스닥 기업의 나이는 각각 36년, 20년으로 조사됐다. 한편 대한상의가 포천지 발표 미국 100대 기업(매출액 기준)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2000~2010년) 사이 47개 ▲20년간(1990~2010년) 74개 ▲30년간(1980~2010년) 81개 기업 등이 바뀐 것으로 나타나 미국 100대 기업의 자리다툼이 국내보다 심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기고] 더 고민해야 할 北수해 지원/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기고] 더 고민해야 할 北수해 지원/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북한 중남부 지역 홍수로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일부 민간단체가 기다렸다는 듯 40억원 상당의 대북 수혜지원을 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또 일부에서는 이번 수해물품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AP통신에 수해 피해를 부풀린 조작된 사진을 제공하면서 정확한 북한의 피해규모와 수해를 부풀려야만 했던 속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 홍수 피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6월 30일 재일 친북 단체인 조선신보의 ‘200㎜의 비가 내렸지만, 태풍 메아리가 큰 피해 없이 소멸했고, 농사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복비’가 되었다.’는 보도이다. 그런 북한이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마치 큰 피해가 난 것처럼 대동강의 수해사진을 조작했다. 이는 피해상황을 부풀려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1990년대 중반의 수해 이후 만연한 북한의 ‘구걸근성’이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특히 평양주변 대동강 지역의 사진을 조작한 것은 대표적인 쌀 농사지역의 피해를 부풀려 지난 두 차례 최악의 홍수 때와 같이 국제사회로부터 쌀을 비롯한 수해물품을 지원받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수해지원을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분배되지도 않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우리 적십자사가 신의주 지역으로 보낸 수해물품이 군부대로 보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은 권력층의 호화 사치 생활을 위한 명품과 기호품의 수입을 늘리고 김정일 부자의 우상화를 위해 돈을 마구 쓰면서도 식량수입 규모는 제자리걸음이다. 또한 우리가 대북 수해물품을 지원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개선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우리 적십자사가 준비한 대북 수해물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북한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하여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 대북지원단체는 정부가 앞서서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북지원단체들은 수해지원이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냉철히 판단하고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홍수피해는 자연적 원인보다는 1976년부터 5대 자연개조 사업의 하나로 야산을 계단식 농지로 만들었던 농지개량사업에 기인한다. 주체농법에 따라 만들어진 경사면 농지에서 토사가 흘러나와 하천에 퇴적되고 하천의 범람을 유발하여 홍수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북한에 반복되는 홍수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우리가 4대 강 사업을 통해 하천을 정비함으로써 이번 기록적인 폭우에도 수해 피해가 미미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많지 않은 비에도 가옥이 잠기고 농경지가 침수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의 수해를 해결하려면 일시적인 지원이 아닌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은 이제라도 시대착오적인 주체농법을 폐기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치수 기술을 받아들여야만 매년 반복되는 수해를 예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지방시대] ‘도시재생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도시재생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도시빈민문제가 심각하다. 전통적 빈민도 문제지만 도시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신 빈민층’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신 빈민층의 발생은 도시개발 및 정비사업과 관련이 있다. 현재 전국의 2239곳이 재개발·재건축 등 각종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도시면적의 평균 10%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넓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38% 정도가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돼 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심하다. 정비사업의 절반이 넘는 55%가량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비제도의 취지와는 영 딴판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원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근거가 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2003년에 제정된 배경은 1970년대 건설된 공동주택들이 본격적으로 노후화됨에 따라, 재건축사업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심의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지정되었고, 나아가 이는 소규모 단위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재정비촉진법(2006년)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비사업이 제도의 취지와는 다르게 주민들의 빈민화를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면서도 나타나고, 추진되어도 문제로 나타났다.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과도한 정비구역의 지정, 건설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성 저하, 국가의 재정지원 미흡, 이해당사자 간 갈등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해당 지역의 주거여건은 더 열악해지고 더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또 사업이 추진되어도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10%를 넘지 못하고, 이들 원주민은 또 다른 빈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방식의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재개발에서 재생방식으로의 정책전환이 절실하다. 도시재생은 획일화된 방식이어선 안 된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신축과 보존의 병행, 공공시설 적극 도입을 통한 소단위 재생,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혼합, 수익성 있는 곳과 수익성은 없지만 반드시 정비해야 할 곳의 결합개발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 재생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이른바 ‘재생의 지역특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정비구역의 출구전략으로서 사업조정 및 해제를 쉽게 하고 무엇보다 공공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이러한 도시재생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보존, 보충, 보완이라는 ‘3보’의 원칙이 필요하다. 낡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보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들 취약지역에 부족한 공공기능과 시설을 적극적으로 ‘보충’해야 한다. 이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공공기능과 민간기능의 상호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공공의 역할을 담보할 재원과 제도를 규정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도정법과 도촉법의 민간주도적 틀로는 이러한 도시재생의 제도적 지원을 담보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들 법을 적당히 버무려서는 더욱 힘들다. 도시정비와 도시재생은 지향하는 목표와 수단이 전혀 다르다. 지난 1990년대, 농어촌 주거환경개선에 관한 다양한 법제도 지원을 통해 오늘날 농어촌의 면모를 일신했듯이, 이제는 도시빈민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도시빈민과 서민의 주거복지를 위한 ‘도시재생특별법’ 제정이 해답이다.
  • “하이닉스 인수는 STX 안정성장 승부수”

    “하이닉스 인수는 STX 안정성장 승부수”

    “10년 만에 100배 성장한 STX그룹에 향후 10년의 패러다임은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찾는 것이죠.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한 또 하나의 승부수입니다.” 대표적인 ‘경제기획원(EPB) 라인’ 공직자에서 STX그룹의 미래 전략을 직접 그리는 기업인으로 변신한 신철식(57) STX미래연구원장(부회장)을 25일 만났다. 서울역 주변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시티타워 16층 원장실에서 그는 과거 공직 시절과 다를 것 없이 호탕한 웃음과 시원한 말투로 STX의 미래와 최근 정부 정책 등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신 원장이 STX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2월. 1978년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8년 3월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관복을 벗었다. 30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예산과 기획 파트에서 일한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경제 관료의 대부로 손꼽히는 고 신현확 전 총리의 외아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STX에서 그가 할 역할은 STX의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미래연구원을 이끄는 것. 평생 국가재정 기획에 몸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최근 신 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이닉스 인수. 강 회장, 이종철 ㈜STX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들과 함께 이번 달 초 인수의향서(LOI) 제출을 손수 결정했다. STX의 하이닉스 인수 추진의 가장 큰 이유는 그룹 전체 사업의 90%가 조선과 해운 등에 쏠려 있기 때문.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이 닥치면 충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신 원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조선·해운의 비중을 30~40%로 줄이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조선해운과 반도체는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지만 사이클에 민감하고 이를 대처하는 방법도 같은 만큼, 실제 경영에서의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찾는 것도 하이닉스 인수의 배경이 됐다. STX는 2001년 출범 이후 자산 규모가 4400억원에서 2010년 32조원으로 100배 가까운 성장을 일궈냈지만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회사로 변모하는 게 가장 큰 화두라고 그는 말한다. “회사가 급성장하다 보면 다양한 구성원들이 동질화되지 못한다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조직을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게 시급하죠. 여기에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성장이 둔화되면 회사는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느냐가 STX의 앞으로 10년의 패러다임이 될 것입니다.” 신 원장이 지난 4월 중국 다롄에서 공식 발표한 ‘비전 2020’은 10년 후 STX의 비전이라는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 특히 에너지 자원 분야를 새 성장동력으로 설정했다. 신 원장은 “STX는 유럽에서 크루즈 선사를 인수하는 등 다른 기업보다 발빠르게 세계화를 단행했다는 점이 강점”이라면서 “아프리카 등 자원부국들도 과거 피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를 자원 개발의 파트너로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획과 예산 전문가로 살아온 신 원장은 최근 국가 정책, 특히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신 원장은 “국가채무비율이 최근 10년 간 6~7% 올라갔지만 (국가의) 곳간 열쇠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서 “잘못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 1990년대 말부터 계속됐고, 현 정부에서는 분위기가 바뀔 줄 알았지만 결국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통일 등을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면서 “지도층이 장기적인 이익과 건전성에 가치를 두는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국민들이 존중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신철식 부회장은 ▲1954년 경북 칠곡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국방대학원 ▲22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산업4과 관리총괄과장, 재정경제원 통상과학예산담당관·건설교통예산담당관, 기획예산처 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사회예산심의관·산업재정심의관·정책홍보관리실장,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STX미래연구원장(부회장)
  • “명동성당 재개발 장애인 시설 보완”

    중구는 명동성당 개발계획 1단계 사업안을 승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14일 건축심의회를 열어 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이 제출한 사업안을 조건부 가결한 것이다. 건축위는 우선 성당 진입로와 인근 주차장 부지에 계단형 광장을 만들기로 한 데 대해 성당 앞길을 지나는 시민이 광장에 가려지지 않고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해 달라고 주문했다. 진입로를 장애인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보완하라는 조건도 달았다. 현재 사업안대로 비교적 빨리 자라는 느티나무를 조경 수종으로 심을 경우 근처를 지나다 성당 건물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을 수도 있어 수종을 바꿀 것도 주문했다. 명동성당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은 사적 258호인 명동성당을 포함해 종교·역사·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이 밀집한 명동2가 1-1 일대를 2029년까지 4단계에 걸쳐 재단장하는 사업이다. 2014년까지로 예정된 1단계 사업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업무공간으로 쓰이는 교구청 신관을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로 증축한다. 또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성당 앞 경사로가 복원된다. 지금 주차장 등으로 쓰이는 성당 진입부는 광장으로 조성되고 지하에는 205면 규모의 주차장이 마련된다. 2019년까지 2단계 사업에서는 교구청 별관을 수선한다. 이어 2024년까지 3단계 사업에서는 교구 업무타운을 조성하고 대강당을 증축한다. 마지막으로 2029년까지 가톨릭회관을 수리하고 교육관을 철거해 회관 필로티에 쌈지공원과 광장을 조성하며 선교센터를 새로 지을 예정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일본통신] 퍼시픽리그의 강자 세이부의 추락

    [일본통신] 퍼시픽리그의 강자 세이부의 추락

    일본프로야구는 1950년부터 양대 리그(센트럴-퍼시픽)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이 기간동안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팀은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요미우리는 리그 우승 42회, 이 가운데 일본시리즈 패권을 21차례나 차지했다. 일본야구에서 요미우리를 상징하는 강자의 이미지는 때론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요소까지 포함돼 있긴 하지만 명문구단이란 사실엔 큰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양대리그 시행 이후 퍼시픽리그의 절대강자는 어느 팀일까. 이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다. 비록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와 비교해 우승 횟수에선 부족하지만 세이부는 21번의 리그 우승과 더불어 13번의 일본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팀이다. ‘황금시대’라 일컫는 세이부의 1980년대 그리고 이후 1990년대까지 8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은 요미우리의 대항마로 불리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결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2004년 명포수 출신의 이토 츠토무 감독시절과 더불어, 투수 출신인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부임 첫해(2008년) 요미우리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는 성과를 올리며 변함없는 강자의 이미지를 누려왔다. 지난해 세이부는 단 2리의 승률차이로 리그 우승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넘겨줬을 정도로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팀이다. 세이부는 우승을 차지하기 위한 조건에 있어 매우 부합된 전력을 갖춘 팀이다. 지난해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일본최고의 수비형 포수인 호소카와 토오루를 소프트뱅크에 내주긴 했지만 이것은 전도유망한 스미타니 긴지로(24)가 존재했기에 그렇게 큰 전력누수는 아니었다. 국가대표 출신의 리드오프인 카타오카 야스유키를 위시해 쿠리야마 타쿠미 그리고 나카지마 히로유키와 나카무라 타케야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은 어느팀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는 전력이 아니다. 와쿠이 히데아키-키시 타카유키-호아시 카즈유키로 이어지는 3선발 역시 리그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투타밸런스가 완벽한 팀중에 하나가 세이부다. 하지만 시즌 전 전망했던 세이부의 우승권 전력평가는 전반기가 끝난 지금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 세이부는 5위 오릭스 버팔로스에 4.5경기나 뒤진 리그 꼴찌(28승 2무 43패, 승률 .394)로 추락한 상태다. 최근 9연패 포함, 7월 성적은 3승 15패로 한때 상위권 도약도 노려볼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젠 꼴찌 탈출을 목표로 해야 할 정도로 팀 자체가 엉망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세이부는 도대체 왜 단 1년만에 전혀 다른 팀으로 변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짜임새가 없어진 공격력과 선발진들의 연이은 부진이 팀 성적 추락을 부채질했다. 3년연속 50도루, 그리고 지난해 도루왕(59개)을 차지했던 1번타자 카타오카의 부진은 전반적인 팀 득점력 빈곤을 일으키게 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올해 카타오카는 타율 .226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전혀 못했다. 18도루로 발은 건재했지만 .289의 출루율이 말해주듯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 지금은 팀에서 유일한 3할타자(.300)인 쿠리야마가 카타오카 타순에 배치돼 있지만 쿠리야마는 1번타자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모두 겸비한 나카지마와 일본최고의 홈런타자인 나카무라(홈런 26개, 1위)가 있음에도 득점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카타오카의 부진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셈이다. 세이부는 팀 홈런 59개로 이 부문 리그 1위팀이다. 하지만 야구는 홈런과 더불어 짜임새 있는 연타와 섞여야 공격력이 배가 되는데 최근 세이부 경기를 보면 이런 야구 자체가 실종돼 있다는 느낌이다. 전반기 막판 세이부가 9연패를 당하는 동안 팀이 올린 총 득점은 14점에 불과하다. 경기당 1.56점으로 2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후반기 팀 타선의 정비없이는 꼴찌 탈출이 힘들다는 뜻과도 같다. 세이부 선발전력 역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전반기였다. 2009년 사와무라 에이지상에 빛나는 ‘에이스’ 와쿠이 히데아키는 5승 7패로 부진했다. 평균자책점은 2.98로 준수한 편이지만, 올 시즌이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극심한 투고타저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이다. 각팀 에이스들인 다르빗슈 유, 타케다 마사루(이상 니혼햄), 타나카 마사히로(라쿠텐),와다 츠요시, 스기우치 토시야(이상 소프트뱅크), 카라카와 유키(지바 롯데)가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일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하지만, 와쿠이는 일본야구의 투고타저 바람을 전혀 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시 역시 3승 3패(평균자책점 3.19), 그리고 일본 최고의 ‘팜볼러’인 호아시 역시 4승 5패(평균자책점 3.24)에 머무는 등, 타팀 선발진과 비교해 보면 암울할 정도의 성적이다. 2.08의 믿기지 않은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니혼햄과 비교해 보면 3.26의 세이부의 팀 평균자책점은 지금 팀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할수 있다. 세이부는 1979년 네모토 리쿠오 감독시절 꼴찌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까지 31년동안 최하위를 경험한 적이 없는 팀이다. 우승을 하는것도 어렵지만 그만큼 꼴찌를 한다는 것도 어렵다는 표본이 세이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 그 힘든 꼴찌를 다시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요미우리가 부진하다고는 하지만 이 리그엔 ‘절대약자’ 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있기에 요미우리가 꼴찌로 추락하는 일은 힘들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팀간 전력편차가 적은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와는 다르기에 올 시즌 지금까지 보여준 세이부의 경기력이라면 충분히 꼴찌를 해도 이상할게 없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中인민해방군 ‘최정예’ 의장대 훈련 첫 공개

    中인민해방군 ‘최정예’ 의장대 훈련 첫 공개

    “제자리 서, 우로 정렬…. 인민해방군 의장대 사열준비 끝!” 지난 21일 오전 베이징 시쓰환(西四環) 바로 옆에 위치한 중국 인민해방군 3군의장대 부대 연병장. 막 선발된 ‘초짜’ 의장대원들이 선임병들의 구호에 따라 착검한 의장용 소총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온 몸을 축축 늘어지게 만드는 습도 높은 한여름의 섭씨 35도 무더위 속에서도 의장대원들의 혹독한 훈련은 반나절 넘게 계속됐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땀이 폭포같이 흘러 눈을 파고들지만 선임병들은 찰나의 깜빡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185㎝ 신장·근육질 체형 필수 중국 군은 건군 84주년(8월 1일)을 앞두고 3군의장대 부대와 훈련 모습을 국내외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국 언론 가운데는 서울신문과 SBS만 참여했다. 첫눈에 비친 중국 군 의장대는 여느 국가 군 의장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훤칠한 체구와 절도 있는 동작, 우렁찬 구호, 조금의 오차도 없는 합창 같은 걸음걸이 등은 이곳이 250만 중국 군 병사들 가운데 뽑힌 최정예 의장대원들의 본산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1952년 3월 창설한 중국 군 3군의장대는 59년 동안 3200여 차례에 걸쳐 외국 귀빈 사열식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갓 창설했을 때는 연간 겨우 다섯 차례의 행사에 참여했을 뿐이지만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매년 130여 차례 이상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병 선발과 훈련은 매우 엄격하고 혹독하다. 국가 지도자들을 지근거리에서 접촉하는 만큼 엄격한 사상 검사를 거쳐야 비로소 선발된다. 185~190㎝의 신장과 근육질 체형도 필수조건이다. 선발됐다 해도 1년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의장 정복을 갖추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한여름 땡볕과 겨울 혹한 속에서 선 채로 3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기, 40초 이상 눈 깜빡이지 않기 등은 기본이다. 3군 의장대장인 류스쉬(劉士胥) 대교(대령급)는 “매년 군사이론, 사격, 체력훈련 등으로 1164시간, 의장 훈련으로 800시간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면서 “신병은 특히 5개월 동안 기본 군사 과목을 성공적으로 이수해야 비로소 의장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고 소개했다. 의장병 한 명이 매년 1t의 땀을 흘리고, 2~5년의 복무기간 동안 도보 거리가 혁명시기 홍군(紅軍)의 대장정과 맞먹는 2만 5000리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매년 일곱 켤레의 의장용 부츠가 해진다고도 한다. 류 대장은 “의장대 전체가 100m를 뛰어도 동작과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는 훈련이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1년 훈련 거쳐야 ‘의장복’ 지급 700여명의 의장대원들은 4개 중대로 편성돼 150여명 단위로 각종 행사에서 중국 군의 위용을 과시한다. 올해 멕시코 독립100주년, 이탈리아 통일 100주년 행사 등에 참여하는 등 국제교류도 활발하다. 류 대장은 “한국 군 의장대와는 아직 교류가 없다.”면서 “한국 군 의장대와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머리에 핀 꽃 모자 손끝에 욕망 가방

    머리에 핀 꽃 모자 손끝에 욕망 가방

    지난 4월 열린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은 많은 볼거리를 쏟아냈지만 그중에서도 하객들의 기기묘묘한 모자가 압도적이었다. ‘패션 아이콘’ 빅토리아 베컴은 비교적 단정한 스타일의 검은 모자를 썼고, ‘사슴 뿔’ 또는 ‘변기 시트’ 같다는 평을 들은 비어트리스 공주의 모자는 인터넷 경매에서 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비어트리스 공주의 모자를 디자인한 필립 트리시(44)는 화려하고 전위적인 모자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디자이너다. ‘세상을 바꾼 50가지 모자’(디자인 뮤지엄 지음, 정지인 옮김, 홍시 펴냄)에 따르면 그는 ‘모자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모자 부흥’을 이끄는 트리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을 법한 18세기의 휘황찬란한 궁정 모자의 전통을 되살렸다. 독특하고 초현실적인 그의 작품 가운데는 밧줄이나 쇠사슬 같은 삭구를 모두 갖춘 범선 형태의 모자도 있었는데, 너무 커서 모자를 쓰고는 문을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트리시 모자의 단골은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좋다.”라고 예찬론을 편다. ‘세상을 바꾼’은 제목 그대로 멋지거나 역사적인 모자를 소개하고 있다. 책을 낸 디자인 뮤지엄은 영국의 저명한 디자이너 테런스 콘란 경이 1989년 런던에 세운 세계 최초의 디자인 박물관이다. 가구부터 그래픽, 건축, 산업 디자인까지 재미있고 창조적인 디자인이라면 모두 다룬다. 세상을 바꾼 모자 가운데는 한국계 디자이너의 작품도 있다. 2009년 열린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에게서 패션 주인공 자리를 뺏은 것은 가수 어리사 프랭클린의 커다란 회색 리본 모자였다. ‘솔의 여왕’ 프랭클린과 꼭 어울렸던 크고 과감한 모자를 디자인한 이는 한국에서 태어난 루크 송(한국명 송욱·39)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비둘기색 리본에 보석까지 단 화려한 모자를 ‘크라운’이라고 부르는데, 교회에 갈 때 경건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썼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는 종교적 행사나 다름없었기에 루크 송의 모자는 큰 성공을 거뒀다. 취임식 이후 여러 달 동안 프랭클린의 모자와 똑같은 걸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물밀듯 들어왔지만, 루크 송은 모두 거부하고 좀 더 작은 모자만 만들었다. ‘세상을 바꾼 50가지 가방’도 디자인 뮤지엄 시리즈로 함께 나왔다. 모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격식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퇴했다면, 실용성을 강조하는 요즈음 가방은 가장 주목받는 패션 아이템이다. 책은 ‘핸드백은 한 여성의 인생을 아주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의 길동무 역할을 할 수도, 비밀의 저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지위를 나타내는 물건이자 자기 과시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1860년 이후 수십명의 영국 재무장관이 사용한 글래드스턴 상자부터 2010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볼링 백까지 역사적인 가방을 조망한다. 1990년대부터 수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잇 백’(It bag)이란 이름으로 유행 가방을 내놓은 것은 오늘날 패션 문화에서 가방이 차지하는 위치를 설명해 준다. ‘잇 백 중에서도 잇 백’으로 불리는 샤넬 2.55백은 1955년 2월에 만들어져 붙은 이름이다.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가방의 마름모꼴 누빔을, 수녀들이 허리에 매달아 늘어뜨리던 열쇠고리에서 손으로 꼬아 만든 체인 어깨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디자인 뮤지엄은 샤넬 2.55백에 대해 “가방의 지퍼로 잠그는 부분은 샤넬이 연애편지를 넣어두던 비밀공간을 참고해 만든 것”이라면서 “이를 알고 나면 가톨릭적 아우라와 사치의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느낌이 한층 강화된다.”고 평했다. 지난해 출간된 50가지 의자, 자동차, 신발, 드레스에 이어 나온 모자와 가방 편은 단순한 명품 안내서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모자와 가방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각 권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울광장] 중산층은 누가 일으켜 세울 건가/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중산층은 누가 일으켜 세울 건가/오병남 논설실장

    분배의 정의를 외친 노무현 정부도 외환위기와 함께 무너진 중산층을 되살리지 못했다. 집권 후반기 들어 친서민을 내건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부터 세계경제 흐름을 이끈 신자유주의와 거대시장 중국의 부상은 고성장·저물가의 달콤함과 함께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만이 나홀로 성장하고, 중소기업을 비롯해 자영업·농업·가계는 소득이 정체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슬로건까지 내걸었지만, 주저앉은 중산층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자영업 구조조정, 가족제도 해체에 이은 고령층 중심의 빈곤 1인가구 증가, 복지전달체계 오작동 등이 부담을 준 까닭이다. 지난 10년간 기업의 부채 비율은 400%에서 100%로 줄고, 10대그룹의 유보율은 현재 1200%에 이른다. 이에 견줘 지난해 가계저축률은 2.8%에 불과하고, 가계부채는 올해 1000조원에 근접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커지기 마련인 노동소득 분배율이 2005년 61%에서 지난해 59%로 낮아진 것과는 달리 엥겔계수(가계지출 중 음식물비 비중)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의 또 다른 방증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해당하는 소득 가구) 비중은 1996년 68.5%, 2000년 61.9%, 2006년 58.5%, 2009년 56.7%로 줄었다. 이 기간 중 국민 100명 가운데 8명은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중산층의 붕괴는 글로벌 증후군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OECD는 올들어 “중산층 몰락과 소득 불균형이 지구촌의 공통된 현상이며 심화되는 추세”라고 경고했다.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내수의 기반인 동시에 성장의 동력이다. 사회갈등을 통합하는 매개이자 민주주의 버팀목이다. 중산층 복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중산층을 일으켜 세우려는, 실현 가능하고 효율적인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성장을 강조하면 대기업, 분배를 강조하면 빈곤층이 정책의 득을 보았을 뿐이다. 중산층을 위한, 특히 중산층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한 계층을 염두에 둔 정책은 별로 없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념전쟁이 격화되면서 누구도 중산층을 챙기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불편한 진실이다. 더구나 내년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횡행하면서 저소득층에 현금을 나눠 주자는 식의 정책만이 난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산층이 줄면 성장보다는 분배 욕구가 분출할 수밖에 없지만, 이념적·정략적 이해를 좇아 저소득층 위주의 복지에만 매달리는 건 위험하다. 쉽게 해법을 찾을 수도, 쉽게 정책의 효과를 볼 수도 없는 것이 중산층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래도 집요하게 국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를 되살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서비스산업, 노사관계 혁신은 필수다. 평생교육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기술변화에 걸맞은 인력을 배출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40년간 입시제도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교육정책은 과감하게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다. 노동시장에서의 교육훈련 예산을 늘려 워킹푸어(working poor)의 고착화를 막고, 실직자도 중산층으로 복귀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관련부처끼리 수년째 입씨름만 벌이고 있는 서비스산업 관련 각종 규제를 혁명적으로 풀어야 한다. 물가, 특히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을 확 줄이는 것 또한 핵심이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소득에 대한 체계적 감세와 공적연금의 기능 강화도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얼마 전 ‘내 부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란 중산층의 꿈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2011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중산층은 누가 일으켜 세울 건가. obnbkt@seoul.co.kr
  • 1·2분기 연속 20대 고용률 ‘女 > 男’

    1·2분기 연속 20대 고용률 ‘女 > 男’

    20대 여성 고용률이 올해들어 1·2분기 연속 20대 남성 고용률을 앞질렀다. 사회 인식의 변화로 20대 채용 시장에서 여성들이 우위에 서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59.2%를 기록, 20대 남성 고용률인 58.5%보다 소폭 높았다. 20대 여성 고용률은 올해 1분기에 57.5%로 20대 남성 고용률 57.3%를 추월한 데 이어 2분기에도 연속으로 20대 남성 고용률을 넘어선 것이다. 20대 남성 고용률은 1980년에 77.9%로 20대 여성 고용률인 41.4%의 배 가까이 높았다. 이후 20대 남성 고용률은 꾸준히 하락해 1998년 60%대로 떨어졌고, 2008년에는 50%대로 내려갔다. 하지만 20대 여성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여 1989년에 50%대를 돌파한 뒤 2005년엔 60.2%를 기록, 정점을 찍었다. 취업자수로는 20대 여성이 20대 남성을 따돌린 것이 10년 전이다. 2001년 4분기 20대 여성 취업자 수가 222만 9000명을 기록, 20대 남성 취업자(221만 9000명)를 처음 넘어선 이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20대 남성 취업자는 1980년 214만 5000명에서 1990년대 중반에 270만명까지 늘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빠르게 감소해 2005년 2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20대 여성 취업자 수는 1990년대에 비로소 200만명을 돌파했고, 1990년대 중반엔 230만명대에 오른 뒤 2008년까지 200만명대를 유지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한국 문학에서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두명의 난쟁이가 있다. 1970년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에서 억압받다 굴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최수철의 ‘고래 뱃속에서’의 난쟁이는 진공에서 정상인과 함께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두 난쟁이를 연속선상에 놓고 보면 한국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고래뱃속’ 같은 닫힌 공간이 부자와 빈자, 정상인과 비정상인,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항 대립에 기초해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는 사회라면, ‘진공’ 같은 열린 공간은 양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이다. 차별과 배제, 억압과 착취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야말로 한국 사회의 올바른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1970년대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거해 일어난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그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국제 스포츠 대회 4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K팝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 이러한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치 척도가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네팔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된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돼지 축사를 개조한 집에 살면서 한국인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멸시를 당한다. 마치 1970년대 전태일이 당한 것처럼. 주인공의 그 비참한 모습에서 독일에 광부로 간 우리의 아버지와 일본 병원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우리 어머니의 거친 손과 한숨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더 이상 원조 받는 나라가 아니다. 원조를 해 줄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계량화된 지표만으로 잘사는 나라를 판가름하는 것은 지극히 편향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코끼리’에 등장하는 까만 피부를 가진 아들은 백인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한국 사회의 속성을 알고 자신의 피부를 탈색하기 위해 표백제로 얼굴을 문지르다 얼굴 껍질이 벗겨진다. 이를 소설적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현실이 이보다 더 처참하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난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아시아인들을 소나 말과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였다.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한국은 그런 멸시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한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 서구의 물질 만능주의와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의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우리가 꼭 그런 셈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그들이 ‘잘사는’ 나라는 될지언정 ‘존경받는’ 나라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이 아닌 정신적 풍요로움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보면 히말라야에서는 모두가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 의식도, 서구 보편주의도, 제국주의적 우월성도 없다. 모두가 하나라는 인류애. 그것이 ‘나마스테’라는 인사에 담겨 있다. 중국에서 교사를 하던 조선족 어머니가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자식이 그리워 눈물짓고 차별 대우에 피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모든 소외된 난쟁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진공 같은 사회로 나아갈 때 한국은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서 “삼년 겪은 일, 삼십년 동안 악몽으로 남아”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패션 한류 이젠 때가 됐죠!”

    “패션 한류 이젠 때가 됐죠!”

    “이제 우리나라 패션도 뜰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의 무대 의상이나 드라마에서의 패션 감각이 인정받지 못했다면 한류가 있었을까요?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은 빠르고 부지런합니다.” ‘김연아 블라우스’로 유명해진 박정예(작은 42) 디자이너는 K팝(POP) 붐의 숨은 주역 가운데 하나는 패션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의류 브랜드 ‘꼼빠니아’의 디자인실장이기도 한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더반 프레젠테이션에서 김연아 선수가 입었던 흰 블라우스를 디자인했다. ‘완판녀’라는 김 선수의 별명답게 풍성한 소매와 큼지막한 리본이 포인트였던 이 블라우스는 모두 팔린(완판) 상태다. “심사위원들에게 성숙한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던 디자인 전략이 주효했다.”는 박 실장은 “3~4년 전부터 시장 조사를 위해 해외 출장을 가면 우리 패션이 유행을 같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에 가더라도 외국의 패션이 새롭게 다가오기보다는 한국의 패션과 같이 가는 느낌이라는 얘기다. ●한국인들 패션 관심↑ 충성도↓ 196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기 시작했던 일본의 디자이너 가운데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등은 1980년대 세계 유행을 선도하며 여러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파리에서 여러 차례 패션쇼를 연 장욱진 디자이너는 “세계인들은 1980년대에 일본 디자이너들로부터 찾았던 ‘새로운 패션’을 이제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실장이 파악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유난히 까다롭고 변덕이 심한 데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에 비해 브랜드 충성도는 낮다. 여름에 자주 입는 흰색 면티나 청바지와 같은 편한 옷도 몸에 잘 맞는 피팅감 등 높은 품질을 요구한다. 한때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 등 유명 도시에서 열리는 패션쇼인 해외 컬렉션을 그대로 베낀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부도가 나는 등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베끼기만 하는 브랜드는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외 패션쇼가 동시에 생중계되거나 사진이 바로 뜨면서 소비자들의 눈도 더 높아지고 예리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더반에서 김 선수가 입었던 겉감과 속감의 색깔이 다른 망토도 해외 브랜드 ‘셀린느’의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가 올봄·여름을 겨냥해 내놓았던 의상과 흡사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망토는 재작년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복고풍 의상입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 선수의 검정 망토에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던 리틀 에인절스의 단복이 떠오르지 않나요. 단순하게 디자인을 베끼기에는 이미 정보가 공개됐고,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유행에 따라 각 브랜드마다 비슷비슷한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지만 고유의 브랜드 색깔이 디자인에 반영된다는 게 박 실장의 얘기다. 패션 관계자들이 김 선수의 패션을 높이 사는 부분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 브랜드의 옷을 입는다는 점이다. 더반에서는 꼼빠니아, 제일모직 구호, 한섬의 타임, 플라스틱 아일랜드 등의 옷을 입었다. 배우 소지섭과 함께 특별 공로상을 받은 ‘2011 한국 관광의 별’ 시상식에서도 국내 브랜드 미니멈의 검정 원피스를 입었다. ●김연아·미들턴·미셸의 공통점은… “영국의 왕자비 케이트 미들턴이 톱숍, 알렉산더 매퀸과 같은 영국 브랜드의 옷을 입고,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갭이나 미국 디자이너 바버라 티프랭크의 원피스를 입는 것은 사소하지만 파급 효과가 무척 큽니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자리에 갈수록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김 선수가 국내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이기에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또래 젊은 층이 엄두 내기 어려운 값비싼 해외 유명 상표의 옷을 걸쳤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퇴색됐을 것이라고 박 실장은 말했다.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김연아 스타일’이 화두다. 김 선수처럼 ‘블랙&화이트’로 무장해 세련되고 우아한 감각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남녀를 떠나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박 실장이 들려주는 핵심 비결은 “티피오”였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게 입어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는 조언이다. 박 실장은 “요즘 젊은 여성들은 꼭 파티에 가는 것처럼 예쁘게만 차려입는 경향이 있다.”고 쓴소리했다.“그동안 베꼈든, 베낀 것에서 재창조했든 한국 패션도 정보기술(IT) 산업만큼 발전했습니다. 제일모직의 구호 등은 세계화가 충분히 가능한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박 실장은 ‘패션 한류’ 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세계와 유행을 함께한다’는 한국 소비자들의 자부심도 잊지 않고 주문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시론] 재정건전성, 준칙 도입으로 풀자/백웅기 상명대 부총장·금융경제학과 교수

    [시론] 재정건전성, 준칙 도입으로 풀자/백웅기 상명대 부총장·금융경제학과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지만 궁극적 해법은 금융이 아닌 재정에서 찾았다.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 수 없었다. 의회가 대규모 감세와 재정투입을 시작하자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재정이라는 위기극복수단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나라마다 달랐다.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한 국가들은 비교적 빨리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아직도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등이며, 후자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와 일본 등이다. 최근 이탈리아 재정감축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이탈리아 은행들이 모두 스트레스테스트를 통과함에 따라 유럽 재정위기의 심각성은 다소 약화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미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부채는 법정 차입한도인 14조 2940억 달러에 도달해 있다. 만약 8월 2일까지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는 8월 초 만기가 돌아오는 약 300억 달러의 국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공화당과 부채한도 증액을 위한 정치적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재정 난국에 처해 있지만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행이 지난주에 발표한 경제 전망은 정부 전망치와 큰 차이가 없고 내년 전망치도 올해의 상승 기조를 이어간다. 정부와 한은은 우리 경제가 내년까지는 잠재성장률에 가까운 성장을 보이며, 인플레이션도 물가안정목표 상한인 4%에 묶어둘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재정 전망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빠른 위기 극복 덕분에 지난해 재정적자(관리대상수지)는 국내총생산(GDP)의 1.1%에 그쳤다. 당초 목표치는 2.7%였는데 선전했다. 국가채무 목표치도 GDP의 34.7%였는데 33.5%로 개선됐다. 올해 이후의 재정 전망은 지난해의 전망치보다는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우리 경제를 장밋빛으로 보고 있다. 전망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구미(歐美)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미 두번의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외부 여건의 변화에 대단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원화의 변동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앞으로도 경제위기가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를 강타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우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남보다 빠르게 극복한 것은 선제적이고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주요20개국(G20) 국가가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서 2008년 이후 3년간 쏟아부은 재정규모는 GDP의 4.1%였지만, 우리나라는 6.5%다. 재정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우리나라가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GDP의 100%가 넘는 나랏빚과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지출예산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초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새 제도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복지지출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5%에서 2030년에 50%에 육박할 전망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무상 또는 선심성 복지 프로그램 제시는 극에 달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과 관련된 고등교육재정과 지방재정 지원에 대한 요구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산재한 재정위험으로부터 재정 건전성을 지켜내려면 하루빨리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 복지지출과 같은 특정 의무지출을 증액하려면 다른 항목의 지출을 반드시 줄여야 하며, 재량지출의 증액은 총액으로 묶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준칙에 따라 스스로의 손발을 묶지 않으면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경제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재정 여력을 확보할 길이 없다.
  • [뉴미디어와 신문 미래] 닷컴 열풍 이후 뉴미디어 변천사

    [뉴미디어와 신문 미래] 닷컴 열풍 이후 뉴미디어 변천사

    신문과 잡지가 독점하던 미디어 시장은 1920년 라디오방송, 1936년 TV방송이 등장하면서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볼거리와 신속성을 앞세운 방송에 맞서 인쇄매체가 신뢰와 깊이를 무기로 맞서면서 이들의 공존이 60년 이상 이어졌다. 이런 미디어 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온 것이 인터넷의 등장이다. 당초 1960년대 말 군사 목적의 네트워크에서 시작된 인터넷은 ‘전 세계의 정보를 하나로 묶는다.’는 취지 아래 1990년대 초반 대중적인 서비스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곧바로 ‘킬러 서비스’로 떠올랐다. 1980년대부터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공통의 뉴스를 게재하고 공유하는 ‘유즈넷뉴스 그룹’이나 ‘텔넷뉴스’ 등이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인터넷은 개방성과 확장성을 앞세워 이들 뉴스서비스에 날개를 달아주는 한편, 스스로도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1995년 등장한 최초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는 분류된 메뉴를 따라 정보를 일일이 찾아가야 했던 ‘고퍼’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인터넷이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침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문이나 TV 등 전통매체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인 반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통매체의 콘텐츠를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홈페이지 형태의 인터넷 신문은 언론사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방송 영역에서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다양한 채널과 인터렉티브(쌍방향) 서비스를 기반으로 가입자 수에서 기존 미디어 시장의 절대강자인 지상파TV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미디어서비스의 명멸이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전문매체는 비용절감과 신속성을 무기로 전통매체에 도전장을 던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매체는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는 개방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형식과 신뢰도 측면에서 전통매체 독자층을 흡수하는 데 한계를 보이며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뉴미디어 시장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은 1인 미디어의 확산과 플랫폼(기기)의 다변화다. 1인미디어의 대표격인 블로그는 검색 노출을 쉽게 해주는 RSS피드의 등장으로 새로운 미디어 형태를 갖춘 지 오래다. 또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확산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결합하면서 ‘미디어 혁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SNS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정보를 올릴 수 있고 확산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반면 서비스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싸이월드나 마이스페이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넷 서비스는 급격히 확산되는 동시에 급격히 외면받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매체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수익모델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국내 신문은 물론 글로벌 유력매체들도 아직까지 뉴미디어 시장에서 신문판매 수익을 대신할 뚜렷한 모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홈페이지 유료화를 시작, 10만명 정도의 회원을 모집했지만 유료화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웹사이트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태블릿PC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애플은 뉴스코프와 손잡고 올 초 아이패드 전용 신문 ‘더 데일리’를 시장의 기대 속에 선보였지만, 유료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분명 전통매체의 위기”라며 “그러나 뉴미디어가 겪고 있는 재정난을 보면 언론시장이 급변할 것이라는 뉴미디어 열풍도 상당 부분 허상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미디어 시장에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통매체와 뉴미디어의 발전 방향은 미디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수용자와의 접점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이고, 수익모델 역시 이 범주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산업계, 고령화에 맞춘다] 주력사업 올인 대신 시니어용품으로 영토 확장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는 아동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에 위기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 1990년대 말 60만명에 달했던 신생아 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40만명 대에 그치고 있다. 아동 시장은 당연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어 관련 업체들은 현재 사업다각화에 몸부림치고 있다. 기저귀 브랜드 ‘하기스’로 유명한 유한킴벌리는 최근 시니어케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앞으로 크게 성장할 시니어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른 일본의 경우 지난해를 기점으로 시니어 시장이 아동시장의 규모를 넘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주력 제품인 기저귀의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해 4900억원대. 4년 전에 비해 6% 감소했다. 다행히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있어 한시름 덜었지만 시대 흐름에 맞춰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TF의 과제는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한 노년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일부 위생용품만 생산하고 있는데 향후 노인생활 전반에 관련한 모든 용품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올 초 충주에 완공한 공장은 현재 여성 위생용품이 주력이지만 점차 시니어용품 생산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관계자는 말했다. 8개의 유아동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아가방앤컴퍼니도 고민이 크다. 저출산과 더불어 수입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2009년 영유아 화장품을 출시한 데 이어 최근 미국 최대 임부복 전문 기업과 국내 독점 판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영도 본부장은 “아동복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해 수출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는 유아용품 쪽으로 사업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한킴벌리도 2007년 영유아 화장품 ‘그린핑거’를 내놓고 지난해 젖병, 컵 등 유아용품 브랜드 ‘더블하트’를 출시, 아동용품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앞으로 아동 시장에서 한우물만 파는 기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모든 회사들이 결국 옷부터 용품까지 다 취급하는 토털업체로 탈바꿈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유가 대표 사업이었던 남양유업이 지난해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든 것도 저출산으로 인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현재 이 회사의 분유생산량은 20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분유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대 중반 40.8%였으나 2005년부터 17%대를 유지하고 있다. 신사업으로 커피믹스에 사활을 걸고 있는 남양유업도 식음 분야에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유업체라는 간판을 버리고 향후 종합식품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게 남양유업이 추구하는 바”라고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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