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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테랑 마약반 형사 “극한직업처럼 위장하냐고요?”

    베테랑 마약반 형사 “극한직업처럼 위장하냐고요?”

    1000만 관객 사로잡은 영화 극한직업실제 마약반 형사 실상보니“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감칠맛나는 대사로 10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극한직업 속 주인공은 해체 위기에 놓인 서울 마포경찰서 마약반이다. 이들은 마약조직 검거를 위해 치킨집을 인수하고 위장 개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감수를 맡기도 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의 김석환(53) 팀장은 10일 “영화는 영화다”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2005년에 국내 1호 ‘마약류범죄 전문 수사관’으로 선정되기도 한 김 팀장은 마약 수사만 14년간 한 베테랑이다.김 팀장은 “치킨집을 열고 ‘맛집’ 장사한다는 설정은 극적인 재미를 위한 것”이라면서 “현실에서의 마약 수사는 지루하고 힘들 때가 많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약 수사를 담당했다. 국내에서 마약의 위험성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그는 1990년대 소매치기 업무를 맡으면서 마약 수사를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소매치기범이 마약류까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1997년 소매치기 일당이 식당에서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동료 경찰이 다치고, 아르바이트생 청년이 결국 죽는 일이 있었다”며 “그때부터 소매치기범들이 취급하는 마약 문제에 관심을 갖게됐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와 실제 마약수사의 닮은 점으로 체력과 인내심을 꼽았다. 영화에서 마약반은 유도 국가대표, 무에타이 동양 챔피언, UDT 특전사, 야구부 출신으로 이뤄진 ‘정예 부대’다. 김 팀장 역시 대학시절 전공이 태권도였고, 팀원 중에는 특전사 출신이 있다. 평소 체력 단련도 필수다. 김 팀장은 “한 달에 한번 무도 교육을 받는데 체포술, 합기도, 태권도 등을 배운다”면서 “기본적으로 대치 상태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각·환청에 시달리는 마약 투약자들은 머리 맡에 낫이나 칼 등 흉기를 두고 잠드는 경우가 있다. 실제 검거 과정에서는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약수사계 사무실 내 진술녹화실에는 흉기로 사용될 수 있을 법한 도구는 두지 않는다. 펜 한 자루조차 사무실에서 찾기 힘든 이유다. 그는 “마약 투약자들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고 자기를 죽이려한다고 느낀다”면서 “언제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극한직업 속 형사들처럼 위장하고 수사하는 경우도 있다. “직접 조직폭력배로 위장하기도 하고, 마약 투약자들만 사용하는 말투와 은어도 익힌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의심스러우면 바로 연락처를 바꾸고 거주지를 옮기기 때문에 철저하게 위장해야 한다.” 김 팀장은 스스로를 ‘의사’에 비유했다. 그는 “마약 투약자들은 범죄자이지만, 한편으론 환자”라면서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 똑같이 흥분했더라도 어떤 사람은 같이 소리를 질러서 조용히 시키고, 어떤 사람은 다독거려야 한다”고 전했다. 수술을 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태를 진단한 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의 역할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단순히 범인을 검거하는 것만 나오지만, 이들을 우리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마약팀 일의 일부”라고 말한 그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약을 아예 안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마약사범으로 형을 살고 나서도 다시 약에 손을 대 여러 번 처벌받는 사람이 많다.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위 사람들까지 모두 파괴하는 범죄이니 만큼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슈돌’ 심지호, 이안-이엘 남매 최초 공개

    ‘슈돌’ 심지호, 이안-이엘 남매 최초 공개

    배우 심지호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두 아이를 공개했다. 10일 방송된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 264회는 ‘너만을 위한 슈퍼 히어로’라는 부제로 꾸며졌다. 이날 방송에는 심지호의 두 아이 심이안-심이엘과 함께 등장했다. 심지호는 1990년대 KBS2‘학교2’로 데뷔해 SBS ‘당신은 선물’, tvN ‘아르곤’, KBS2 ‘끝까지 사랑’ 등에 출연했다. 지난 2014년 결혼에 골인했다. 아들 이안이와 딸 이엘이의 두 아빠이기도 하다. 심지호는 “이엘은 99% 저를 닮았다. 식탐이 조금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어릴 적 심지호와 딸 이엘의 모습이 담겨있다. 두 사람은 닮은 외모를 자랑했다. 또한 그는 아들 이안에 대해 “10개월부터 말을 했다. 관심이 많고 표현력이 좋다”고 소개했다. 곧이어 공개된 영상에서 이안은 “실패를 계속하면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심지호는 “비공개로 결혼했고 사람들이 아이 아빠인지 몰랐다고 하더라. 삼촌으로 오해 받기도 한다. 저는 두 아이의 아빠”라고 밝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플라멩구 유소년선수 10명 참변, 브라질 전역이 슬픔에 젖는 이유

    플라멩구 유소년선수 10명 참변, 브라질 전역이 슬픔에 젖는 이유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플라멩구 팬이 된다. 그 뒤 살면서 조금 멀어질 뿐이다.” 브라질 사람들이 곧잘 하는 얘기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 프로축구 클럽인 플라멩구 훈련캠프의 유소년 선수 기숙사에서 8일 새벽(현지시간) 화재가 발생, 14~16세 소년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불은 새벽 5시쯤 시작돼 2시간 만에 꺼졌으나 깊은 잠에 빠져든 시간인 데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새로 문을 열었는데 2개월여 만에 참극이 벌어졌다. 다친 3명도 모두 10대이며 한 명은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소방대는 전했다. 플라멩구는 상파울루의 코린치안스, 파우메이라스, 산투스 등과 함께 브라질에서 서포터가 많은 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우를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수천㎞ 떨어진 지역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해서 단순히 리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고 있다고 영국 BBC는 8일 전했다. 1898년 조정 클럽으로 출발한 플라멩구는 몇년 뒤 축구 팀을 만들어 초기 엘리트 선수 양성소로 역할했다. 하지만 1930년대 브라질에서는 삼바 음악인이 축구 스타보다 훨씬 더 각광받는 등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해서 플라멩구 클럽은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흑인 선수 셋을 한꺼번에 영입하는 등 격한 변화를 이끌었다. 리우가 연고였으나 라디오 중계를 일찍 시작해 멀리 떨어진 지방 팬들도 자신과 동일시하게 만들었다.참극이 발생한 유소년 선수 기숙사 ‘니뉴 두 우루부(urubu)’란 이름도 이런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주민 말로 독수리 둥지를 의미한다. 원래 인종차별적 용어였는데 플라멩구 클럽은 과감히 끌어안아 원주민과 노동 하층계급의 사랑을 받게 됐고 그들의 자부심을 대변하게 했다. 이 클럽은 유스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1970~80년대 최고의 스타 지코를 이런 식으로 길러냈다. 그가 이끌던 플라멩구는 1981년 일본에서 열린 유럽-남미 클럽 대항전에서 리버풀을 3-0으로 격파하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을 경험했다. 지금도 리버풀 팬들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 리버풀의 경기 기록에 포함시키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그 뒤 재정 위기 때문에 곧잘 궤도를 이탈했다. 1990년대 초반 호나우두 같은 젊은 공격수들을 해외로 빼앗긴 일이 대표적이다. 해서 니뉴 두 우루부에 많은 투자를 해 최근 공격형 미드필더 루카스 파퀘타를 AC 밀란에, 10대 윙어 빈시우스 주니오르를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시키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둘 다 플라멩구의 연령별 팀들을 거쳤고, 참극의 현장을 잘 안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을 떠난 이들과 알고 지냈을 것이다. 파퀘타는 숙소에 가까운 다리를 잊지 못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신을 다리 건너편에 데려가곤 했는데 어머니가 “내가 널 여기까지 데려왔다”며 “나머지는 네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참극을 당한 이들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이는 전도유망했던 골키퍼 크리스티앙 에스메리오(15)로 브라질의 17세 이하 대표팀에 콜업돼 유럽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돼 있었다. 7일 밤 베개에 머리를 뉘일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을텐데 너무 안타깝게 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여러 클럽들이 일제히 애도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리우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과나바라 컵 축구대회 일정도 연기됐다. 상파울루 시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길을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닥친 매우 슬픈 소식을 들었다”며 “유가족들과 고통을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아미우톤 모우랑 부통령도 “플라멩구를 응원하는 팬의 한 명으로 매우 슬픈 아침을 보내고 있다”며 “유가족과 클럽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펠레와 네이마르, 호나우지뉴 등 축구 스타들도 SNS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줄리아나 도쿄(한정현 지음, 스위밍꿀 펴냄) 1991~94년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던 클럽 ‘줄리아나 도쿄’. 지금은 사라진 클럽을 기화로 1970∼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과 현재를 사는 그 자식들의 삶, 과거와 현재, 한·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같은 궤적 위에 그리는 소설이다. 292쪽. 1만 2000원.책으로 만나는 21세기(한기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출판평론가 저자의 20년 칼럼 모음집. 1990년대 말부터 출판 잡지 ‘기획회의’에 이어 ‘학교도서관저널’의 발행인으로 활동한 저자는 IMF부터 디지털 혁명까지 다채롭게 변화한 한국의 지난 20년을 기술했다. 720쪽. 2만 8000원.프란츠 슈베르트(한츠요아힘 힌리히센 지음, 홍은정 옮김, 프란츠 펴냄) ‘가극 작곡가’라는 명성에 가려 교향곡, 현악 4중주,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남긴 불멸의 기악 유산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슈베르트를 재조명한 책. 스위스 취리히대의 음악학 교수인 저자가 모차르트·베토벤 시대 귀족 주도의 음악을 넘어 가정 중심의 음악 문화와 더불어 성장한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를 그렸다. 184쪽. 1만 7000원.정상성의 종말(마크 샤피로 지음, 김부민 옮김, 알마 펴냄) 더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 강수량이나 기온, 기상재해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온 ‘정상성의 종말’이라는 용어. 기후혼란은 자연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국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들었으며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를 재정의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탄소 거래제와 탄소 시장의 등장이 불러온 정치, 경제 및 환경 분야의 변화를 추적했다. 356쪽. 1만 8000원.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박사·이명석 지음, 파람북 펴냄) 철이,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은하계를 여행하다 발견한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담은 에세이. 서로 다른 성별에 서울과 대구라는 다른 공간에서 자란 북칼럼니스트와 만화평론가가 연이은 실수 속에서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는 소년 철이와 함께 어른이 되는 과정을 적었다. 344쪽. 1만 6000원.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펴냄) 휴고상 5회, 네뷸러상 6회 수상에 빛나는 판타지 소설의 거장이 블로그를 통해 남긴 40여편의 글을 담은 에세이 선집. 존 스타인벡과의 일화, 미국의 도덕성과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 노화와 삶에 대한 사려 깊은 사색이 돋보인다. 2017년 12월 책 출간 이후 한 달여 만에 저자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24쪽. 1만 3000원.
  • ‘시간 다이어트’ MLB의 실험

    ‘시간 다이어트’ MLB의 실험

    투수, 최소 3명 타자 상대 뒤에야 교체 NL 지명타자 도입안…팬들 반대 부담143년 전통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파격적인 규약 개정을 논의 중이다. 야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일 미 ESPN과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MLB 사무국이 선수노조에 제안한 ‘투수의 최소 3타자 상대 규정’ 방안과 선수노조의 내셔널리그(NL) 지명타자제 도입 요구가 협의되고 있다. 현 규정에는 마운드에 등판한 투수는 최소 1명의 타자만 상대하면 교체가 가능하다. 이 규정을 바꿔 투수 교체 자체를 줄이면 경기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2015년 취임한 롭 맨프레드(60)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일성이 경기 시간 단축이었다. MLB의 2017 시즌 평균 시간은 3시간 8분, 지난해는 평균 3시간 4분이었다. 1980~1990년대 2시간 40분대와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2017년부터 도입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도 한몫했다. 투수당 최소 세 타자 상대로 경기 방식이 바뀌면 좌완 투수가 강한 좌타자 1명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현행 ‘원포인트 릴리프’ 전술은 사라진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좌완 스페셜리스트’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대신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하라는 사인이다.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제 도입 역시 파급력이 크다. 1973년 지명타자를 도입한 아메리칸리그와의 유일한 변별력인 내셔널리그의 색깔이 바뀌게 된다. 야구의 전통을 중시하는 팬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투수 부담이 커지는 대신 팀타율과 홈런수 증가로 KBO 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이 내셔널리그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타자들의 일자리는 늘어나지만 좌완 투수들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투수의 최소 타자 상대 수가 바뀌면 감독의 투수 교체부터 수싸움 등 기존 작전을 쓸 수 없게 돼 승패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전통적인 야구의 본질도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선수노조와 달리 일반 선수들과 팬들의 반대도 거세 선수들 간 찬반 표결에 부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아울러 20초 투구 시간 제한 도입뿐 아니라 야구와 미식축구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카일러 머리와 같은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계약 보장, 승률 높은 팀에 신인 지명 우선권을 주고 승률 낮은 팀에 불이익을 주는 드래프트 개정안도 협의 중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중국 설 연휴 사상최대 온라인 세뱃돈 오가

    중국 설 연휴 사상최대 온라인 세뱃돈 오가

    오는 10일까지 공식적으로 일주일간 이어지는 올해 중국 설연휴에 휴대전화로 오고 간 세뱃돈 규모가 사상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위챗페이·알리페이 등 앱을 이용해서 휴대전화로 큐알코드를 찍어 결제하는 현금 없는 세상이 이미 중국에서는 구현된 것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최대 주주로 제삼자 결제를 총괄하는 왕롄청산유한공사(NUCC)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오간 세뱃돈 결제가 초당 최대 4만 4000건 이뤄졌다. 설 전날인 지난 4일에는 하루 35억 위안(약 5800억원)의 세뱃돈이 인터넷을 통해 오고 갔다. 지난해까지는 주로 중국 ‘국민메신저’인 위챗과 알리바바 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를 통해 세뱃돈이 오갔지만 올해는 검색사이트 바이두, 소셜 인터넷 사이트 시나 웨이보,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 등도 인터넷 세뱃돈 거래에 참여했다. 특히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를 통해서는 9억 위안의 디지털 세뱃돈이 뿌려졌다. 모든 중국 국민이 중국 중앙(CC)TV를 통해 시청하는 설 명절 특집 프로그램 춘완(春晩)이 방송되는 동안 바이두 앱을 통해 약 208억회 디지털 세뱃돈이 오고 갔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운영하는 알리바바는 지난해 춘완 방송 동안 거래된 디지털 세뱃돈 규모가 약 6억 위안 규모라고 밝혀 올해는 작년에 인터넷을 통해 오간 세뱃돈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중국에서는 홍빠오라 불리는 세뱃돈을 휴대전화로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세대는 다름 아닌 90년대생이다. 위챗측은 올해 설 전날인 4일 가장 활발하게 새해 소망을 담은 디지털 세뱃돈 홍빠오를 뿌린 세대는 1990년대생이었다고 밝혔다. 베이징과 충칭, 광저우 등 3개 도시에서 위챗을 통한 디지털 새뱃돈 거래가 제일 많이 이뤄졌다. 위챗은 또 4일 오후 8~9시 사이 설 특집 방송 춘완이 시작되는 시간에 디지털 홍빠오 거래가 확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고기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이 먹나? 일년에 한 사람이 소 반 마리?

    고기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이 먹나? 일년에 한 사람이 소 반 마리?

    설 연휴를 맞아 고기들 많이 들고 있나요? 늘 새해를 앞두고 고기 좀 적게 먹자고 허튼 맹세를 하곤 하지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고기 좀 덜 먹자고 맹세를 하지만 영국 BBC가 4일 전한 그래픽과 기사는 조금 놀랍기도 하다. 우선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육류 소비는 가파르게 늘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7000만 톤에 그치던 고기 생산이 2017년에는 3억 3000만 톤으로 거의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물론 50년 전에는 세계 인구가 30억명이었는데 지금은 67억명이니 그만큼 먹여야 할 입이 는 것이 이유일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왜 다섯 배 가까이로 늘었느냐는 것이다. 역시나 소득 향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50년 전에 견줘 세계인의 평균 수입은 세 배 정도가 됐다.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고기를 사먹게 된다.가장 근접한 과거 통계를 보면 2013년 미국과 호주가 가장 육류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연간 일인당 100㎏을 먹어치웠으니 닭고기 50마리나 소 한마리의 절반을 없앴다.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도 막상막하였다. 서유럽인은 80~90㎏로 엇비슷했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들, 에티오피아는 7㎏, 르완다는 8㎏, 나이지리아는 9㎏만 먹으면 끝이었다. 육류 소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국과 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1960년대 연간 일인당 5㎏ 미만이던 것이 1980년대 말 20㎏으로 치솟은 다음 30년 조금 넘어 세 배인 60㎏으로 늘었다. 브라질은 1990년대 육류 소비량의 곱절로 늘어 서구 국가 대부분을 앞질렀다. 소를 숭상하고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힌두교 영향으로 인도는 1990년 이후 평균 수입이 세 배로 치솟았지만 육류 소비는 전혀 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인도인 대다수가 채식주의자란 그릇된 믿음이 있지만 3분의2는 약간의 육류를 소비하는데 지금도 일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4㎏이 안돼 세계 최저 수준이다.그렇다고 미국과 유럽의 육류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아니었다. 견고하게 유지하거나 조금 늘었다. 다만 소와 돼지보다 닭 등 가금류를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바뀌고 있다. 1970년대 육류 소비 가운데 가금류 비중이 4분의 1에서 지금은 절반이 됐다. 붉은 살코기를 피하고 가금류 소비를 늘리는 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여주니 여러 모로 좋은 일이라고 방송은 지적했다. 닭은 같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기르는 데 필요한 면적의 10분이면 충분하고 물 오염, 온실가스 배출, 까다로운 사육 여건 등 여러 점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방송은 앞으로 육류 소비는 훨씬 더 사치스러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 BBC에 도움 준 이들. Hannah Ritchie is an Oxford Martin fellow,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 researcher at OurWorldinData.org. This is a joint project between Oxford Martin and non-profit organisation Global Change Data Lab, which aims to present research on how the world is changing through interactive visualisations.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흩어진 거제 조선업 가족들…중공업 유토피아는 어디에

    흩어진 거제 조선업 가족들…중공업 유토피아는 어디에

    기업들이 줄도산한 IMF 시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자리한 ‘조선업의 도시’ 경남 거제는 황금기를 맞았다. 2010년 중반까지 세계 1위 선박 수주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다. “거제에서는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2015년 하반기 선박 발주량이 급감하는 최악의 ‘수주 절벽’에 부딪히며 상황은 바뀐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은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고, 뒤이어 2016년 앙골라 국영회사인 소난골이 발주한 이동식 시추선인 드릴십 대금을 둘러싼 이른바 ‘소난골 프로젝트’가 유예되며 위기의 골은 깊어진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협력업체 70%가 폐업했다. 언론은 그들이 일을 마친 뒤 술을 기울이던 옥포동의 상황을 연일 보여 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많은 돈을 받는 ‘귀족노조’가 흥청망청했고, 돈 잔치에 빠진 회사는 방만하게 경영했다는 것이다.●양승훈 교수, 거제 조선업 ‘흥망’ 분석 신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이런 이야기의 뒤에 숨은 사정들을 들려준다. 저자 양승훈(38)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2년부터 5년 동안 대우조선해양 인사·기획팀에서 일했던 경험과 사회학자로서의 시각을 섞어 거제의 조선업을 분석한다. 한국이 1990년대 세계 조선 시장을 석권하기 전 유럽과 일본이 조선업 패권을 잡고 있었다. 유럽은 오랜 기술과 주변국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1960년대 전후 조선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일본이 1970년대 용접으로 강판을 조립하는 방식을 도입하며 주도권을 가져온다.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블록의 대형화·모듈화, 생산효율 극대화 등의 기술로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고에 올라선다. ●정부 적극 투자 등 90년대 시장 석권 저자는 이런 바탕에 ‘중공업 가족´이 있었다고 말한다. 옥포조선소를 비롯해 여러 조선소가 거제시에 들어서며 일감이 늘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끈끈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자 공동체, 직원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른바 ‘회사·가족 공동체’다. 그러나 이 가족은 위기를 맞으며 급격하게 무너진다. 2000년대 조선소는 불황과 함께 선박 대신 바다 위에 세워두는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눈길을 돌린다. 선박과 달리 해양 플랜트는 많은 공정을 요구했고, 이에 따른 많은 문제를 불렀다. 급할 때 불러 쓰는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을 가리키는 ‘물량팀’이 업무 시간을 넘어 밤샘하는 ‘돌관 작업’을 해야 했다.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는 위기 불러 2008년 경제 위기로 해운 물동량이 줄어든 데다가 해양 플랜트를 과하게 수주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회사·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짚어낸다. 고임금을 받는 직영업체 정규직과 더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적은 돈을 받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간의 갈등, 그리고 고교만 졸업하고 현장에서 고임금을 받은 과거 직원과 달리 수도권 대학을 나온 고학력 젊은 노동자는 호시탐탐 회사를 벗어나려 노력한다. 여기에 전통적인 남초 현상에 따른 각종 부작용 등으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였던 거제는 서서히 그 빛을 잃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조선업의 흥망에 맞춰 인구 유입 변화와 부동산 가격 등 각종 통계와 전 세계적인 산업 동향을 함께 엮었다. ●“거제 다음 주역은 누가 돼야 하는지…” 5년 동안 흥망을 바라보고 치밀하게 조선업을 분석한 저자는 이제 미래를 이야기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임금으로 덤비는 중국과 기술력으로 다시 조선업을 넘보는 일본이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한 동남아시아의 공세도 매섭다. 저자는 이와 관련,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장된 정년과 높은 연봉으로 대표되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고용 유용성과 저성장에 맞물려 있다. 악화한 시장에서 수주한 선박은 예전처럼 10%에 이르는 수익률을 담보하지도 못한다. 여기에 숙련된 직영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이룩했던 왕년의 높은 생산성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과제 등 여러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제의 다음 주역은 누가 돼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거제를 떠났던 딸들, 높은 연봉과 수도권을 향했던 젊은 엔지니어들이 일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1위 규모 ‘매머드급’ 조선사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과 노조의 반발 등 문제도 여전하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거제는 또다시 중공업의 유토피아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영화 ‘공작’ 영화기자들이 뽑은 ‘2018 올해의 영화’

    1990년대 활동한 대북 스파이 ‘흑금성’을 소재로 한 영화 ‘공작’이 영화 담당 기자들이 뽑은 ‘2018 올해의 영화’가 됐다. 한국영화기자협회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10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을 열고 ‘공작’을 작품상으로 선정했다. ‘공작’의 이성민과 주지훈이 각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으면서 ‘공작’은 3관왕에 올랐다. 감독상은 ‘버닝’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에게 돌아갔다. ‘미쓰백’의 한지민과 ‘독전’의 진서연은 각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신인남우상과 신인여우상은 ‘안시성’의 남주혁과 ‘마녀’의 김다미가 받았다. ‘죄 많은 소녀’는 독립영화상과 함께 배우 전여빈이 올해의 발견상 수상자로 뽑히면서 2관왕에 올랐다. 심사위원상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열연한 김혜수가 받았다. 외국어영화상은 ‘퀸’ 신드롬을 일으킨 ‘보헤미안 랩소디’가 선정됐다. 한편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상도 마련됐다. 정지영 감독과 배우 안성기 두 영화인에게 특별공로상이 주어졌다.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민족영화상에는 일제강점기의 항일 투쟁 영화 ‘아리랑’(1926), ‘먼 동이 틀 때’(1927), ‘사랑을 찾아서’(1928)가 선정됐다. 올해의 영화상은 미디어의 눈으로 영화의 예술적 가치와 산업적 의미를 조명하고 한국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제정됐다. 올해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협회 소속 64개 언론사 기자 90여명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과 수상자를 결정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R&B 거장 제임스 잉그럼 66세로 별세

    R&B 거장 제임스 잉그럼 66세로 별세

    1980~1990년대를 풍미하며 그래미상을 2번이나 거머쥔 R&B(리듬 앤 블루스) 거장 제임스 잉그럼이 별세했다. 66세. 미국 할리우드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고인의 오랜 친구 데비 앨런은 이날 트위터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자 창의적인 파트너 제임스 잉그럼이 하늘로 떠났다. 잉그럼은 그의 재능과 가족에 대한 사랑, 인간애로 언제나 사랑받고 기억될 것”이라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구체적인 사인과 장례 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미 동북부 오하이오주 애크런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키보드 연주자와 가수로 활동하다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에 의해 발탁되면서 본격 이름을 알렸다. 그는 존스의 앨범 ‘더 듀드’ 참여로 그래미상 신인상 후보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14차례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됐으며 2차례 수상했다. 앨범 ‘더 듀드’에 수록된 ‘저스트 원스’는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유명 CF 삽입곡으로 소개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또 마이클 잭슨의 1982년 히트 앨범 ‘스릴러’에 수록된 ‘P.Y.T’를 공동 작곡했으며, 잭슨의 ‘위 아 더 월드’ 싱글 앨범과 뮤직비디오 제작에도 관여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우주를 보다] 포천 하늘서 번쩍…편대비행하는 이리듐 위성 2대 포착

    [우주를 보다] 포천 하늘서 번쩍…편대비행하는 이리듐 위성 2대 포착

    마치 UFO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인공위성 2대의 모습이 경기도 포천의 하늘에서 포착됐다. 30일 포천아트밸리 천문과학관에 근무하는 김창섭 주무관(53)은 지상 800㎞ 상공에서 편대비행하는 이리듐 인공위성의 모습을 촬영해 본지에 보내왔다. 이 사진은 오늘(30일) 새벽 6시 17분께 남쪽 상공을 지나는 두 대의 위성을 촬영한 것으로 번쩍이는 두줄기 빛이 인상적이다. 사진 속 이리듐은 각각 이리듐32(사진 왼쪽)와 이리듐55(사진 오른쪽)로 밝기는 -6.9등급과 -6.5등급에 달한다. 한 순간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간혹 UFO로도 오인받는 이리듐 위성은 1990년대 위성전화 통신용으로 발사됐다. 당초 이리듐 원소번호와 같은 77개를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비용 탓에 66개만 발사돼 운영 중에 있다.김 주무관은 "이리듐 위성은 대체로 1대만 관측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2대의 위성이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공위성 추적 사이트를 통해 경로를 파악해 예상시각 15초 전에 셔터를 누르고 총 30초간 노출해 촬영했다"면서 "마치 하늘에서 고양이 눈이 번쩍이는듯한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서울서 경기로, 대전서 세종으로… 집 때문에 옮겼다

    서울서 경기로, 대전서 세종으로… 집 때문에 옮겼다

    서울 11만명·대전 1만 5000명↓ 경기 17만명·세종 3만 1000명↑지난 한 해 동안 서울에서 경기로, 대전에서 세종으로 각각 이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삶의 근거지를 바꾼 가장 큰 원인은 ‘집’ 문제가 꼽힌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2018년 국내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읍·면·동의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국민은 총 729만 7000명으로 1년 전보다 14만 3000명(2.0%) 늘었다. 시·도별로 보면 경기는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17만명이나 많았다. 세종(3만 1000명)과 충남(1만명) 등도 주민이 늘었다. 반면 서울은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11만명이나 많아 인구가 줄었다. 부산(-2만 7000명)과 대전(-1만 5000명) 등도 떠나는 주민이 많았다. 전체 인구 대비 순유입률은 세종이 10.6%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기·제주가 각 1.3%로 뒤를 이었다. 서울은 울산과 함께 순유출률이 1.1%로 가장 높았다. 대전이 1.0%로 그다음이었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서울에서 경기로, 대전에서 세종으로 인구 이동이 많았는데 조사 결과 주요 원인은 주택이었다”면서 “서울이나 대전에 살던 사람이 경기와 세종에 집을 새로 샀거나, 전월세 만기가 돼 이사했거나, 교통·문화시설 등 주거 환경 때문에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100명당 이동자 수를 뜻하는 인구 이동률은 14.2%로 1년 전보다 0.2% 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2016년(14.4%) 이후 3년 연속 14%대를 유지했다. 인구 이동률이 3년 연속 15%를 밑돈 것은 1971~1973년 이후 처음이다. 1990년대에는 20%대를 웃돌았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통계청은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과장은 “고령층은 이동이 적고 20~30대 인구가 가장 이동이 활발한데 20~30대 인구 자체가 줄고 혼인율도 낮아졌다”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문화예술 입힌 골목길… ‘동구 밖’으로 떠났던 사람들 돌아온다”

    “문화예술 입힌 골목길… ‘동구 밖’으로 떠났던 사람들 돌아온다”

    한때 광주의 중심이었던 동구는 199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과 인구 유출 등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침체가 더욱 심화됐다. 2015년 ‘인구 10만명’이 무너졌다. 지금은 9만 4000여명으로 줄었다. 광주 5개 자치구 중 규모가 가장 큰 북구(44만여명)의 4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인구 유턴’과 옛 도심 활성화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도심 곳곳이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젊음·패션의 거리인 충장로가 맞닿아 있다. 1980년 5·18 때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금남로와 무등산 등 역사·문화·생태 자산이 많다. 계림동 등 구도심 아파트 재개발과 재건축도 활발하다. 매년 가을 열리는 충장축제,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한 ‘야시장 프로젝트’ 등이 골목상권을 되살리고 있다. 초선인 임택(56) 구청장을 28일 서울신문이 만나 동구의 현안과 발전상을 들어봤다.→민선 7기 첫해 소감과 새해 포부는. -지난 7개월 동안 동구 발전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던 때와 많이 다르다. 단기적 성과도 내야 하고 행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깨가 무겁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외적 성장보다는 주민생활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 따뜻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민생과 마을 단위의 복지,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도심 공간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 주민 참여와 소통, 연대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역 발전의 디딤돌로 승화시켜 나가겠다.→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이웃이 있는 마을, 따뜻한 행복 동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일자리민생경제, 도시환경마을복지, 생활문화예술, 자치공동체 등 모두 5개 분야 41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청년을 위한 창업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취업과 창업을 꾀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 중장년층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이모작 평생학습센터도 건립한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생활기반시설 확충을 통한 정주 여건 개선에 힘쓰겠다. 산수동에 마을복지거점센터 1호점을 건립하고, 모든 주민이 어울릴 수 있는 ‘소통 경로당’ 사업도 추진한다. 주민들을 위한 책마을을 조성하는 등 도시공동체 재건에도 소홀하지 않겠다. →도심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노후 주택 재개발 등과 별도로 기존 도심에 문화와 예술을 입혀 리모델링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골목과 전통이 서린 건축물 등은 보존하면서 생활 편의와 경제적 활동을 장려하는 방식이다. 동명동 ‘카페 거리’에 대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부터 4년 동안 국비 등 200억원을 들여 거리와 건축물 등을 새롭게 꾸민다. 동명동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부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이후 쇠락하다가 보습학원이 들어서면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을 위한 카페가 하나둘씩 생겼다. 2015년 인근에 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등록문화재인 서석초 앞길과 방치된 공·폐가 등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청년과 예술가를 위한 ‘셰어하우스’, ‘공동 공방’ 등도 운영한다. ‘역사 이야기길’과 ‘예술 골목길’ 등도 만든다. 문화와 관광, 골목과 역사를 곁들인 공간 조성이 도심재생의 핵심 과제이다.→아시아문화전당 활용 방안은. -문화전당 개관 이후 “동구가 젊어졌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주말마다 전당 주변에서 펼쳐지는 프린지페스티벌과 국내 대표적 도시 거리 축제인 충장축제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가장 광주다운 맛과 멋과 역사가 서려 있는 위치에 있다. 금남로·충장로와 맞닿아 있고 인근에 궁동 ‘예술의 거리’, 동명동 ‘카페 거리’, 대인시장, 남광주시장이 있다. 이들 재래시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야시장 프로젝트’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걸어서 30~40분이면 다 돌아본다.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 양림동 근대문화역사 거리와도 마주한다. 문화전당을 단순히 관광객 유치에만 활용하지 않겠다. 민선 7기 들어 문화교류협력관을 신설했다. 문화전당과 협업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현재 함께 동명동 ‘디자인 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대 음식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등 상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골목상권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도시는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가 이끌고 가지 않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골목상권은 온몸에 피를 돌게 하는 혈관과 같다. 사람이 많이 찾아들고, 경제적 교환과 정보가 드나드는 삶의 공간이다. 급격한 신도시 개발 등으로 옛 도심 골목은 죽어가고 있다. 구도심인 동구는 더욱이 자영업자 비중이 90%에 이르고, 그중 서비스업 종사자가 90%에 육박한다.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상권은 지역경제를 이끄는 버팀목이다. 그래서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7대 상권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 등 전문가, 상인 대표, 청년 등이 참여한 전담팀(TF)을 꾸리고 경영혁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방안 등을 모색한다. 예컨대 무등산권역은 의재미술관 등을 활용해 문화와 예술을 결합하고, 충장로는 뷰티·패션 분야에 중점을 두는 등 특성화 전략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골목상권 택리지 제작, 공영주차장 확충, 상인·주민 상생협의회 구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제정 등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자치구 간 경계 조정이 지지부진하다. -몇 년 전 광주시가 자치구 간 경계 조정으로 북구 두암동 일부가 편입됐다. 그러나 소폭에 그쳤다. 시는 최근 다시 경계 조정에 나섰으나 진전이 없다. 시가 마련한 조정안은 자치구 간 인구 편차를 현재 23.5%(북구 대비 동구)에서 전국 광역시 평균인 18.6% 이내로 조정하고, 8개 국회의원 선거구를 유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우리 구는 인위적으로 조정해 적정 인구를 확보해야 한다. 소지역주의와 정치인들 사이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어 있는 만큼 대승적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윈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새해에 시와 5개 자치구가 열린 마음으로 경계 조정 문제를 논의해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임택 구청장은 시민단체 두루 거친 ‘민주 투사’ 학생운동권 출신인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지방의원 등을 거친 뒤 지난 6·13 선거에서 당선됐다. 광주시에서 기초·광역의원은 수차례 지냈지만 단체장은 처음이다. 전남 목포 문태고와 전남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왔다. 광주 동구의원, 광주시의원 등을 거치면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았다. 원만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지역 정계에서 ‘롱런’이 기대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참여자치21 의원포럼 대표, 사랑마루협동조합 기획이사, YMCA 좋은동네만들기 추진위 전문위원, 광주노동연구소 상임연구원 등을 지내는 등 튼튼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행복하고 따뜻한 동구 주민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이다.
  •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일본은 과거보다 더 높고 두터운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성난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피해’와 ‘가해’라는 역사의 대척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방향과 관점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두 나라 사이의 어두운 과거를 정리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추구한다는 당위론적 명제는 갈등과 대립 속에 좀체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일 연구에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도노무라 마사루(53) 도쿄대 교수(한국학연구센터장)를 지난 24일 도쿄 메구로구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나 100년 전 한국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의미와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위한 제언을 들어 봤다. 도노무라 교수는 지난해 국내 번역된 책 ‘조선인 강제연행’을 비롯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펴고 있다.→오랫동안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구를 해 오셨는데, 3·1 독립운동의 의미를 요약한다면. -3·1 독립선언은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탁월한 내용이 담긴 동아시아 평화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동양의 전통이 아닌데도,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누르며 그 평화적 전통을 깨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의 지배하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3·1 독립선언서를 제대로 읽어 본 일본인은 거의 없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3·1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특히 강조했는데. -독립선언서는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었다. 관련해서 일본이 한국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본의 통치로 조선이 발전하고 있다는 일본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시 일본은 철도와 도로가 놓이고 근대적인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농업생산이 늘었음을 통계적으로 보이며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는 그것이 조선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3·1 독립운동을 보는 일본 내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 언론에서는 ‘천도교라는 미신을 믿는 불온한 사람들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한국의 대중을 선동해 만세를 외친 사건’ 정도로 보도했다. 일본은 “천황(일왕) 아래에서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평등하다”고 선전했지만, 그렇다면 왜 조선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3·1 운동은 일본에서 어떻게 기억돼 왔나. -식민통치 기간 중에도 3·1 운동을 기념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당국의 거센 탄압 속에서도 지속됐다. 특히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계급투쟁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3월 1일을 전후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전단지 배포나 집회 개최 등을 시도했다. 일본 경찰들은 이것이 또 다른 민중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했고,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탄압이 한층 강화돼 거의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에는 어땠는가. -전쟁이 끝나면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되살아났다. 1947~48년 신문을 보면 재일 조선인들이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진보진영에는 3·1 운동을 세계혁명을 위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로 과거 한국 식민지배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된 일본인이 늘면서 3·1 운동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일본인들은 타국에 대한 식민지배에 찬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국민들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894년 청·일 전쟁 이후 제국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930년대 이후가 되면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침략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국을 침략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이 아니며, 소국주의와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식민지배에 반대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있었다. 물론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 주장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한계는 있었다. 패전 후 조선에 대한 불평등한 지배 관계를 깨닫고 이를 반성하며 속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일본인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식민자(植民者) 2세’로 불리는 한반도 출생자로 유명 소설가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이조잔영’과 같이 식민시대 조선의 아픔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에서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분위기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때는 물론이고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총리 등 시절만 해도 과거사와 관련해 반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자민당 소장파가 세력을 얻은 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역사수정주의 책들이 많이 나온 가운데, 1990년대 말 이후 보수우파의 현실참여 활동이 부쩍 늘어난 것 등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주된 이슈는 일제 징용 노동자에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징용’이라는 말은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전시노무동원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조선인 노무동원의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다. 직접 노동을 했던 당사자만이 아니다. 동원됐던 사람의 가족들, 강제동원을 피해 산골에 은신하느라 인간답게 못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다. 특히 미쓰비시니 신일철이니 장소와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인 경우다. 당시 조선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글조차 못 배운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홋카이도에 있었는지, 규슈에 있었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강제노동을 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재판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피해까지 다 고려해 구제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관계 미래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일본에는 정치인이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3·1 운동 100주년 기념을 통해 일본에 대한 반감과 반일 행동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3·1 운동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응원하고 한국인들 스스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벌인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중년 이후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오랫동안 군사독재가 지배했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미래 한·일 관계에 희망을 주는 부분이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도노무라 교수는 누구 1966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와세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세다대 사회과학연구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근대사.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학적 연구’(2010년 국내번역), ‘식민지 시기에 있어서 재일조선인의 문화활동’ 등이 있다.
  • 뱅크시가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 남긴 작품 누군가 훔쳐가

    뱅크시가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 남긴 작품 누군가 훔쳐가

    영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의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남긴 작품이 도둑맞았다. 2015년 11월 이 극장에서 록 콘서트가 열리고 있을 때 무장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고 인질극을 벌여 90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변이 있었다. 당시 뱅크시는 추모하는 표정이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극장 비상문 중 하나에 남겼는데 누군가 도려내 가져가버렸다고 극장측이 밝혔다. 극장은 26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지방은 물론 파리 시민, 전 세계인에게 속하고 회고의 상징인 뱅크시의 작품이 우리에게서 떠나갔다”며 전날 밤과 이날 새벽 사이 절도가 행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 소식통은 AF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절단기를 든 후드 일당”이 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뱅크시 작품을 트럭에 싣고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한다. 지난달 웨일스의 한 항구 허름한 창고에 그린 ’‘눈송이 먹는 소녀’도 수십만 파운드에 개인에 팔렸다. 지난해 10월에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을 사들인 다음 곧바로 훼손해버리는 퍼포먼스로 더욱 화제를 낳았다. 본명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뱅크시는 건물 벽처럼 누구나 공적인 공간으로 여기는 곳에 작품을 남겨놓고 조금만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고향 브리스톨의 열차나 담 등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남겼다가 2000년대 들어 브리스톨을 넘어 세계 곳곳에 작품을 남겨두고 있다. 이달 초만 해도 일본 도쿄의 모노레일 역 문에 자신의 시리즈 ‘우산을 든 쥐’와 비슷한 그림을 남겨놓아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4·16… 처리할 수 없는 ‘슬픔’

    4·16… 처리할 수 없는 ‘슬픔’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지음/문학과지성사/284쪽/1만 3000원디디의 우산/황정은 지음/창비/348쪽/1만 4000원작가들이 글을 쓰는 주된 동기는 슬픔을 처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쉬이 처리될 수 없는 슬픔이라면? 2014년 4월 16일은 모두에게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등단 29년 차의 대선배도 “2014년 4월 15일 이후 나는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세월을 똑 분질러 놓은 만큼의 경력을 가진 후배에게도 “어떻게든 소설로 쓰지 않으면 소설 쓰는 일이 여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주 어려워질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 두 작가는 비슷한 듯 각기 다른 답신을 보내왔다.윤대녕 작가의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는 죽음에 관한 보다 직접적인 서술이다. ‘서울-북미 간’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K’는 2015년 1월, 뿌리치듯 한국을 떠나 북미로 갔다는 작가의 분신 같다. 래프팅 사고로 딸을 잃은 K는 딸 생일 다음날 진도에서 침몰한 여객선으로 말미암아 도망치듯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그곳에서 역시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남편을 잃고 도망치듯 한국을 떠난 H와 만난다. 이후에도 6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세상을 뜬, 혈육은 아니지만 유년을 함께 보낸 삼촌(‘나이아가라’)과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연인(‘경옥의 노래’) 등을 떠나보내는 일련의 ‘애도 여행’이 이어진다.연작 성격의 중편 2편을 묶은 황정은 작가의 소설집 ‘디디의 우산’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굵직한 궤적들을 가만가만 따라간다. 중편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인물과 서사는 다르지만 시대상과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서로 공명한다. ‘dd’의 죽음 이후 세상을 향한 귀를 닫고 사는 ‘d’. 여지없이 쇠락한 세운상가에서 고된 물류 일을 하며 자신의 힘을 소진하고 있다. 그런 d에게 “나 알지?” 하며 다가온 남자. 세운상가가 활성화되든 재생되든 같은 자리에 몇 십 년을 앉아 기계 등속을 수리하는 ‘여소녀’다. 여소녀를 통해 d는 빈티지 전축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세상의 소리에 귀를 연다.‘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는 1996년의 연세대, 2008년의 ‘명박산성’, 2009년의 용산과 2014년의 세월호,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판결까지의 순간과 맞닿은 ‘나’의 경험이 주를 이룬다. ‘나’는 ‘명박산성’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 ‘폭력적인 시위대’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1996년 연세대 사태에서 끄집어낸다. 캠퍼스를 둘러싼 포위를 뚫고 탈출하려다가 전투경찰들에게 쫓겨 들어간 종합관에서 스스로 바리케이드를 쌓은 채 고립된 학생들. 찌는 여름 최루액에 범벅이 된 그들은 세수와 양치에 대한 끔찍한 갈망을 느끼고 생리혈로 얼룩진 바지를 내내 입어야 했다. 그 가운데 바리케이드를, 차벽을 뚫으려는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 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189쪽) 그 끔찍한 고립 속에서 ‘나’는 성실한 수신자이면서 답신자인 서수경을 만난다. 윤대녕과 황정은의 소설은, 세월호 국면에서 우리가 느꼈으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끄집어낸다. 8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시대에 동참하지 못했던 의대생 K는 오랜 세월 침잠해 있던 부채 의식과 자괴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95학번 서수경은 20년 전, 대학생 노수석의 사망으로 이끌리듯 연세대로 갔던 것처럼 다시 거리에 나선다. 그 자신도 누군가의 아버지였던 K는 섣부른 체념과 방관, 손쉬운 타협과 무관심이 업이 돼 돌아옴을 느끼고 ‘나’는 1996년 시위 참여 여학생들이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로 불렸듯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칭해서도 ‘惡女(악녀) OUT’이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dd’가 남긴 책의 주인 박조배라는 인물은 어떠한가. 세월호 1주기, 청계천 일대를 겹겹이 에워싼 차벽을 보고 그는 ‘d’에게 말한다. “이 상황을 봐라. 얼마나 투명하고… 얼마나 X같냐. 그리고 그 X같음이 눈에 보이잖아? 그냥 조용히 아닌 척하고 망해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혹시 자신을 해치기 위해 오신 건 아니겠죠? (중략)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는 계속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의 첫 작품 ‘서울-북미 간’에서 H는 K에게 이렇게 말하며 손을 그러쥔다. 남은 사람들끼리는, 너의 존재 자체가 내 삶의 기원이 된다는 얘기이리라. 황 작가는 ‘디디의 우산’의 두 중편 사이,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그런 손과 우산 같은 게 남겨진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가 보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美보수, 北신오리 미사일기지 쟁점화

    1990년대 알려진 한·미 공조 감시시설 NBC, CSIS 인용해 ‘비밀 기지’로 보도 “신오리 미사일, 한·일 선제타격 위한 것” 작년 ‘삭간몰’ 이어 北 불신 분위기 조장 미국 보수 싱크탱크와 보수 언론이 국내외에 이미 알려진 북한 신오리 미사일 기지를 ‘비밀 기지’라고 주장하며 북한에 대한 불신 분위기를 조장하고 나섰다. 이는 미 보수층 특히 대북 강경 매파와 보수 언론, 여기에 한반도 평화를 반기지 않는 일부 다국적 군산복합체 등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재’를 뿌리려는 의도가 작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 NBC는 21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한반도 전문포털 ‘분단을 넘어’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 “북한이 평안북도 신오리 지역에 한 번도 존재를 알린 적이 없는 새로운 미사일 비밀기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신오리 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에 비밀 미사일기지 본부와 미사일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 훈련장, 숙소 등을 표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2월 12일 처음 시험발사한 북극성 2호(KN15)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BC는 또 “신오리 기지에 배치된 노동미사일은 한반도 전역과 일본 열도 대부분을 핵이나 재래식 탄두로 선제 타격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SIS 보고서와 NBC가 언급한 북한 신오리 미사일 기지는 이미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북한의 대표적인 미사일 기지로, 한국과 미국 정보당국이 1990년대 후반부터 주목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22일 CSIS의 신오리 미사일 기지 보고서와 관련, “신오리 기지는 한·미 공조하에 감시하고 있는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정가 일각에서는 신오리 미사일 기지를 마치 북한이 숨겨 놓은 비밀기지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된다’는 CSIS나, 사실 확인 없이 이를 보도한 NBC가 ‘악의적’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CSIS는 지난해 11월에도 이미 잘 알려진 북한 삭간몰 미사일 기지를 비밀기지로 둔갑시킨 보고서를 낸 전력이 있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신오리 기지를 비밀기지로 둔갑시켰지만 보수가 아닌 미 조야에서는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128세에 사망한 세계 최고령자? 신뢰성 논란에 공식 인정은 난항

    128세에 사망한 세계 최고령자? 신뢰성 논란에 공식 인정은 난항

    러시아가 최근 세계 최고령자라고 주장해온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할머니가 12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모스크바타임스가 현지 행정당국을 인용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러시아 캅카스 지역 카라르디노발카리야 자치공화국은 박산스키 구역에 거주해온 최고령 여성 나누 샤오바 할머니가 이날 128세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판 기네스북인 ‘러시아 기록 책’은 2017년 7월 샤오바를 러시아 최고령자로 등록하고 관련 증명서를 수여했다. 지난해 4월 샤오바의 아들 후세인 샤오프는 리아노보스티통신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8명의 자녀와 19명의 손자, 33명의 증손자, 7명의 고손자를 포함해 모두 67명의 후손을 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미국 조지아주 샌디 스프링스에 있는 노인학연구그룹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자를 116세인 일본인 여성 다나카 가네로 인정하고 있다. 무명의 샤오바가 2017년 들어 갑자기 최고령자로 인정받게 된 데 대해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점과 러시아 기록 책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간다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남미 볼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줄리아 플로레스 콜케 할머니가 당시 118세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자라는 볼리바아 정부의 추정이 있었으나 콜케 할머니가 1900년에 태어났다는 볼리비아 정부의 출생 기록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아직까지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공식 출생증명서로 인류 역사상 최고령자라고 공인받았던 인물은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칼망이다. 이후 무수한 사람들이 120세를 넘겨 사망했다며 역사상 최고령자라고 주장했지만 공식 기록이 미비해 인정받지 못했다. 앞서 1986년에는 일본 남성 시게치요 이즈미가 120세 나이로 사망해 최고령 사망자로 기록될 뻔 했다. 그러나 나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실제 연령이 105세 정도로 추정되면서 기록은 무산됐다. 특히 얀 페이흐 박사가 이끄는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은 2016년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 수명이 115세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최고령자 나이를 살펴봤더니 1968년 111세였던 것이 1990년대 115세로 늘어났고, 이후 예외적인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115세보다 더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페이흐 박사는 당시 뉴욕타임스에 “장 칼망은 명확한 예외로, 한해에 125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 1 수준”이라며 “평균 기대 연령이 오랫동안 상승한 끝에 지금에서야 인간이 주어진 수명의 천장에 도달할 만큼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안양시, 다자녀 출산 공무원 인사가점 원할 때 부여

    경기도 안양시는 출산 공무원에게 인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지원폭을 확대한다고 22일 밝혔다. 최근 시는 다자녀 출산 공무원에게 부여되는 인사가점을 출산시점에서 본인이 원할 때 부여키로 개선했다. 남성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체인력 풀(POOL)을 운영해 휴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 할 계획이다.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복지포인트도 신설한다. 다자녀 출산 공무원에 대한 선호 부서 우선 배치는 계속 유지키로 했다. 둘째아 이상 출산 직원에게만 주어지던 축하 복지포인트를 첫째까지 확대한다. 산후조리 복지포인트를 추가해 첫째 50만원, 둘째 70만원, 셋째이상 100만원으로 기존보다 지급액을 2배 이상 증액한다. 이 제도는 신생아 출생일을 기준으로 경기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출산가정에 대해 50만 원을 지원해주는 출산장려형 복지 정책이다. 또 임산, 출산용품 일괄구입 지원 방식을 10만원 한도 내에서 개인이 선호하는 용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아울러 지방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른 특별승급 요건을 업무실적 뿐 아니라 다자녀출산도 포함 될 수 있도록 정부에 개정을 요청할 방침이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공직사회가 먼저 출산을 장려하는 모범을 보여 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2017년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35만 7800명으로 2016년과 비교해 4만 8500명(11.9%)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관가 블로그] 총리 의전비서관 ‘금녀의 벽’ 깨졌네

    [관가 블로그] 총리 의전비서관 ‘금녀의 벽’ 깨졌네

    “李 총리, 여성 챙기는 메시지 담은 것” 차관급 4명이나 배출 ‘승진코스’ 선망총리실에서 처음으로 첫 여성 의전비서관이 나오자 관가 안팎에서 ‘의외의 발탁’ 인사로 보고 있습니다. 장상 전 총리 서리, 한명숙 전 총리 모두 여성이었지만 여성 의전비서관을 두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의전비서관은 ‘금녀’의 자리로 인식돼 왔기 때문입니다. 의전비서관은 총리가 참석하는 대내외 행사와 일정, 경호, 의전 등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주인공은 윤순희(48) 국장입니다. 행시 38회인 윤 국장은 이미 총리실 첫 여성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총리실 관계자는 21일 “이 총리가 총리 이후를 내다보는 만큼 ‘여성을 챙긴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인사에 담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1980년대까지 총리의 의전비서관은 업무 성격상 외교부 출신들이 주로 맡았습니다. 노신영 전 총리가 외교부에서 반기문 의전비서관을 데려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90년대 이후 정치인 출신 총리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주로 정치권에서 자기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해찬 전 총리는 총리 비서실장 등에 측근들을 포진시키면서도 의전비서관만큼은 총리실 출신을 임명했습니다. 자신과 ‘총리실맨’들의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을 염두에 둔 인사였습니다. 그 이후 의전비서관은 총리실 내부 인사 기용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의전비서관이 되려면 실력과 성품 등에서 두루 세평이 좋아야 합니다. 특히 총리를 가까이서 모시는 만큼 ‘무거운 입’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총리실에서 3~4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총리가 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한 명을 낙점한다고 합니다. 의전비서관은 ‘승진 코스’로 통합니다. 반기문 전 의전비서관은 외교부 장관에 이어 유엔사무총장까지 올랐습니다. 참여정부 이후 현재까지 총리실 출신으로 의전비서관을 지내고 차관급까지 간 이들만도 김석민 전 사무차장(이해찬 총리 시절)과 오균 전 국무1차장(한승수 총리), 이호영 전 총리비서실장(정운찬 총리), 최병환 현 국무1차장(김황식 총리) 등 4명이나 됩니다. 윤 비서관도 이들 선배의 길을 따라가려면 여성 프리미엄이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겠지요.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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