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90년대
    2026-02-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474
  • 기왓장마다, 담벼락마다… 경성 건축왕의 애국, 모던 보이들의 예술혼 깃들다

    기왓장마다, 담벼락마다… 경성 건축왕의 애국, 모던 보이들의 예술혼 깃들다

    서울시민 상당수가 피서를 떠났을 무렵 서울 종로구 북촌을 찾았다. 오버투어리즘 논란이 일 정도로 관광객이 몰리는 곳. 하지만 절정의 휴가철이던 그날은 서울시내 교통부터 인파까지 기이할 정도로 한산했다. 그 덕에 모던 걸과 보이들이 질주하던 북촌을 외국인 관광객이라도 된 양 느긋하게 어슬렁댈 수 있었다. 역시 서울 구경은 피서철이 제격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 표현이다. 북으로 북악산이 둘러싸고 있고 남으로는 광화문과 돈화문을 잇는 도로가 경계다.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화동, 안국동 등이 모두 북촌에 속했다. 북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지난해 세상을 뜬 ‘뒷것’ 김민기의 뒤안길을 밟으면서다.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김민기는 5학년 무렵 서울로 전학을 온다. 10남매를 둔 어머니의 교육열이 남달라 막내인 김민기까지 모두 서울로 올려 보내 공부를 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김민기가 이사한 곳이 가회동이다. 북악산 앞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정세권, 개량 한옥 단지 지어 분양일본인 땅따먹기 막는 방파제로가회동 일대를 돌며 발견한 이야기는 김민기의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북촌의 방파제’ 정세권,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수근, 한국의 모던 포크를 함께 일군 양희은, ‘하얀 나비’ 김정호,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 등 위아래로 무수히 많은 갈래를 치며 뻗어 나갔다. 숱한 인물이 시차를 두고 북촌 일대를 오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거다. 그 시간의 층위를 모두 전할 수는 없다. 북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구간만 살펴도 책 수십권은 족히 쓰고도 남는다. 이번 여정에선 근현대의 인물만 소환하기로 한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었던 인물들이다. 우선 ‘북촌의 설계자’ 정세권(1888~1965,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엔 1966년 사망으로 기록)부터. 경남 고성의 능참봉에서 일약 ‘경성의 건축왕’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부동산 개발업자 정도로 여겨지다 지금은 민족자본가의 위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북촌’이란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의 지명이 생긴 것도 정세권의 한옥 단지 개발에서 비롯됐을 개연성이 높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한옥마을 누리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의 한옥 분양 광고에서 볼 수 있듯, 북촌의 한옥은 당시의 새로운 도시주택 유형으로 정착되어….” 쉽게 말해 북촌의 개량 한옥이 ‘당대의 아파트’였다는 얘기다. ‘조선집’이라 불리던 이 개량 한옥을 만든 이가 정세권이다. 시계추를 잠깐 당시로 돌리자. 종로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일본인들이, 북쪽엔 조선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어슴푸레하던 경계는 경성에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위협받기 시작한다. 개항장이던 전남 목포 등의 도시에서 보듯, 경성의 노른자위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던 일본인들이 급기야 나라님이 머물던 공간 언저리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때 정세권이 나서 북촌 일대의 주거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가회동, 계동 등의 대형 한옥을 인수해 대지를 잘게 쪼갠 뒤 작은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것이다. 정세권의 한옥 단지는 일본인의 확장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했다. 주택자금이 부족한 조선인을 위해 대출을 해 준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돈을 먼저 받고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먼저 집을 지어 분양한 뒤 이주 비용을 천천히 갚도록 한 것이다. 당시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1936년 5월 20일 자 ‘나는 엇디게 성공하얏나’(나는 어떻게 성공했나)라는 인터뷰 기사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다. 요즘의 건설사라면 그리할 수 있었을까. 북촌, 익선동뿐만 아니다. 왕십리, 신당동 등 서울의 한옥 지대는 거개가 정세권이 개발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만 고택을 잘게 쪼개 작은 한옥을 짓다 보니 담장이 사라지고 벽이 그대로 골목에 노출되는 경우가 생겼다. 인적이 드물던 예전에야 별문제 아니었겠으나 나라 안팎의 관광객으로 차고 넘치는 요즘엔 소음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재동초등학교에서 북촌 답사에 나선다. 김민기와 양희은이 1년 터울로 이 학교에 다녔다. 둘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생 때 다시 만난다. 그때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듯하다. 이후 이들이 한국 포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영웅으로 성장한 건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가수 김민기·양희은 꿈 키운 재동초건너편엔 상류층 저택 백인제 가옥왜색 오해에도 민족지사 손때 가득재동초등학교 건너 백인제 가옥은 윤보선 가옥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북촌의 양반 가옥이다. 윤보선 가옥이 현재 비공개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북촌에서 옛 상류층의 가옥 형태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건축물이다. 1913년에 처음 이 집을 지은 이는 ‘금융계의 이완용’이라 불리는 한상룡이다. 그가 이 집에서 지낸 시기는 15년 정도다. 금전 문제로 이 집을 넘기고 북촌의 다른 고대광실로 이사(이 과정에 야료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한다. 친일파의 손을 탄 탓에 백인제 가옥을 다소 떨떠름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영화 ‘암살’(2015)에서 친일파의 저택으로 등장하며 이런 인식이 짙어지기도 했다. 행랑채에 깔린 장마루만 보고도 왜색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본채의 마루는 우리 전통의 우물마루다. 일본 양식이 일부 가미됐다고 해서 전체를 왜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싶다. 게다가 한상룡 이후 백인제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이 몇 배 더 오래 이 집에 거주했다. 백인제 가옥과 이웃한 건물은 등록문화유산인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의 전신은 경기중·고등학교다. 우리나라 관립 중등교육기관의 효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관학의 최고봉이었다. 김민기의 어머니가 가회동을 선택한 것도 아마 이런 교육, 주거 환경이 주된 요인이었지 싶다. 정독도서관, 당대 건축 기술 총동원겸재인왕제색도 탄생한 자리기도인근엔 서민들 돈 모아 학교 설립도 당대의 건축 기술이 총동원된 건물이 무척 인상적이다. 도서관 뜨락엔 ‘겸재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 정선이 이 자리에서 본 인왕산을 토대로 걸작 ‘인왕제색도’를 남겼다고 한다. 당시 북촌은 중등교육의 중심지였다. 이른바 ‘5대 공립’(경기·서울·경복·용산·경동고) 가운데 경기고, ‘5대 사립’(중앙·휘문·배재·양정·보성고) 가운데 중앙고와 휘문고가 북촌에 있었다. 이 중 중앙고는 여전히 남아 한 세기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전설적인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쓰이면서 한국을 넘어 일본과 동남아의 팬까지 찾아올 정도로 명소가 됐다. 학생들의 수업 환경을 위해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되고 주말에만 들여다볼 수 있다. 요절한 ‘하얀 나비’의 가수 김정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곳도 이 일대다. 김민기가 미술에 미쳐 있었다면 김정호는 밴드부에 미쳐 고교 시절을 보냈다. 김정호는 김민기보다 한 살 어리지만, 상경은 2년 먼저 했다. 광주 금남로 인근에 살다 올라온 김정호가 자리잡은 곳은 익선동이다. 이곳 역시 정세권이 북촌과 비슷한 방식으로 개발했다. 익선동에서 교동초등학교를 나온 김정호는 북촌 계동에 있는 대동중,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혈기 방장한 시기를 보낸다. 이 학교도 설립 과정이 독특하다. 일제강점기 인력거꾼 3000여명이 경성차부(車夫)협회를 조직한 뒤 세운 학교다. 서민들이 자식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최준식 교수의 책 ‘동(東) 북촌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이들은 교사 신축에도 적극 나섰다. 건축자재를 이고 지고 좁은 골목길과 급한 언덕길을 쉴 새 없이 오갔다. 건물 앞에 있는 산을 파 운동장을 만들고 그 흙으로는 담장을 세웠다. 언덕길투성이인 계동에서 대동세무고가 좀처럼 보기 힘든 너른 운동장을 가진 이유다. 훗날 이 학교를 나온 김정호가 국악과 결합한 가요로 당대를 풍미했고, 대동중 20년 후배인 서태지 역시 록과 국악을 결합한 ‘하여가’(1993)란 곡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획을 긋는다. 창덕궁 앞 빨래터에 흐르는 비화들김지하·박인환·최승희 발자취 따라김수근의 ‘공간 사옥’서 차 한잔을 북촌 끝자락, 창덕궁과 경계를 이룬 곳에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가옥이 있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집은 종로구립미술관이 됐다. 현재 전시작 교체로 출입 통제 중이고, 오는 9월 4일 이후 다시 찾을 수 있다. 온라인에 정보가 넘쳐나는 고희동 가옥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건 골목 끝자락의 ‘원서동 빨래터’다. 이른바 북촌 8경 가운데 3경인데 느낌이 아주 독특한 공간이다. 빨래터 위는 궁궐이고 아래는 범부들이 사는 동네다. 창덕궁에서 흘러온 물이 선원전 담벼락 밑으로 흐르며 궁궐과 민가가 연결됐다. 여기서 궁인들과 평민들이 함께 빨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글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내용이었을까. 아니면 중전과 후궁들이 싸운 얘기였을까. 빨래터에서 돈화문 방면으로 쪼르륵 내려오면 ‘마고 싸롱’과 만난다. 김지하 시인이 이름을 지어 줬다는 카페다. 마고 싸롱 뒤에 시인 박인환의 집터가 있다. 그가 8년가량 머물며 ‘목마와 숙녀’ 등의 시를 빚어낸 장소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원 인제 출신의 박인환은 대단한 모던 보이였던 듯하다. 곱상한 외모에 술과 담배를 즐기며 명동을 주름잡았다고 한다. 그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시인 이상을 유난히 좋아했다. ‘죽은 아폴론’이라 부르며 추앙하던 이상의 기일만 되면 폭음을 했다. 그가 허무하게 떠나던 1956년의 그날도 그랬다. 이상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흘 밤낮을 폭음하다 자신도 술독을 못 이겨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생일을 맞지 못했으니 요즘 식으로는 스물아홉)이었다.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두 명을 거푸 끌어내린 헌법재판소 맞은편엔 우리 현대무용의 개척자로 꼽히는 최승희의 옛집이 있다. ‘동양의 이사도라 덩컨’이라 불리며 일제강점기 당시 세계 무용계에 돌풍을 일으킨 무용가다. 지금은 한식당이 된 이 집엔 흑요석처럼 깊고 검은 눈을 가졌다는 최승희와 ‘모란이 필 때까지’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사랑 이야기가 한 자락 깔려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비껴간 뒤 최승희는 사회주의에 심취한 남편과 함께 월북한다. 김일성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얼마 뒤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숙청되고 만다.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인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갤러리)은 북촌 여정을 마무리하기 맞춤한 곳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김수근이 짓고 사무실로 쓴 장소다. 나라 안팎의 건축 학도들이 즐겨 찾을 만큼 중요한 건축물이다. 건물 지하의 소극장은 역사적인 장소다. 여기서 최승희의 몸종이었던 공옥진이 곱사춤을 초연했고,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첫 공연을 열었다. 금싸라기 같은 건물에 돈 안 되는 소극장을 만들고 가난한 예인들에게 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난한 시절에 ‘공간’이란 문화잡지도 펴냈다. 부자나라가 된 지금 우리에게 없는 ‘잡지’를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만들었다. ‘공간 사옥’은 현재 갤러리, 카페 등으로 쓰이는데 옛 건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스승(김수근)과 제자(장세양)의 이야기가 묻힌 곳에서 차 한잔 홀짝대며 다리쉼하기 좋다.
  • 돈 많으면 어린 女와 재혼? 반전…61세 부자男 새아내 ‘깜짝 정체’

    돈 많으면 어린 女와 재혼? 반전…61세 부자男 새아내 ‘깜짝 정체’

    중국의 한 61세 사업가가 최근 동갑내기 여성과 재혼한 가운데, 현지에서 “나이 든 부자 남성은 이혼 뒤 아주 어린 여성과 결혼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며 화제가 되고 있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베이징대 출신으로 중국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온라인 서점 중 하나인 ‘당당’의 공동 창립자인 리궈칭(61)은 최근 새 부인 장단홍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1999년 리궈칭이 전 부인 페기 유와 함께 설립한 당당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들은 3개월간의 짧은 교제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이들은 불륜 의혹 등으로 2018년 이혼 소송이 시작됐고 합의로 지난 6월 최종 종결됐다. 2개월 뒤 리는 지난 16일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라며 새 부인 장단홍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에는 소후 주식회사의 CEO인 장차오양, 신동방교육기술그룹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유민홍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 장단홍은 독일계 중국인으로, 유명한 경제 저널리스트이자 도이체벨레 중국부 전 부국장이다. 또한 ‘샤를마뉴에서 유로까지: 유럽의 통합 꿈’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장은 베이징 대학에서 독일어와 문학 학위를 취득했다. 결혼식 초대장에는 “선물이나 붉은 봉투는 받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두 사람은 하객들에게 농촌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지원하고 불우아동을 돕기 위해 500위안(약 10만원)을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한때 서로 놓쳤던 두 기차가 마침내 60대에 같은 역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의 아름다움을 믿습니다”라는 초대장 문구가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는 장이 졸업 후 경력을 쌓기 위해 1990년대 초반에 해외로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에 장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나와 결혼하면 엄청난 부를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장은 “왜 다 돈 얘기만 하느냐”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거절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들은 30년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됐다. 일각에서 “결혼 생활 동안의 불륜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리는 2018년 12월에 시작된 전처와의 이혼 소송이 지난 6월 종결된 뒤에 재혼이 진행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존경한다. 돈이 많은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만난다”, “성공한 남자들이 여성의 젊음 대신 지혜를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사랑이 편견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
  • “고시 공부하듯 안 하면 장단 못쳐… 나를 뛰어넘는 ‘북재비’ 나왔으면”[서동철의 노변정담]

    “고시 공부하듯 안 하면 장단 못쳐… 나를 뛰어넘는 ‘북재비’ 나왔으면”[서동철의 노변정담]

    ‘판소리 고법 전수관’1000평 부지 기증… 9월쯤 착공논산·충남·국가유산청 예산 분담‘일고수 이명창’“판소리 서른다섯 유파 통달해야”소리꾼들 기량 발휘 최대한 배려‘천재 소년 설장고’13~14세 때 벌써 농악단 만들어“내 것 훔쳐 가라” 다그친 스승들“배워갈수록 어렵다”요즘엔 봉급 받는 자리만 잡으면 공부를 멈추는 것 같아 그게 걱정 판소리 북장단의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 일통(一通) 김청만 명인에게 전화를 드리니 논산으로 오란다. ‘오후 2시쯤이면 어떠냐’고 했더니 “먼 데서 오는데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다. 그렇게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계룡나들목에서 국도로 나선 뒤 벌곡면사무소를 조금 지나니 내비게이션은 왼쪽 진산 방향을 가리켰다. 갑자기 산세가 수려해지는데 길옆으로는 갑천이 흐른다. 갑천이라면 대전 시내를 관통해 신탄진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아닌가. 충남 논산과 금산, 전북 완주에 걸친 대둔산에서 발원한 물길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김 명인의 거연당(居然堂)은 마애미륵부처가 당당한 대둔산 자락 영주사로 오르는 길에 있었다. 김청만 명고수가 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왜 논산에 자리잡으셨냐’고 물으니 “정기도 좋았지만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전남 목포다. “제자가 전국에 있고 공연도 지역을 가리지 않으니 전수관이 대전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 그런데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새올전통타악진흥회로 전국을 누비는데 이곳 덕곡리를 숙소와 연습장으로 자주 이용하게 된 거야. 그때 아예 이곳에 터를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는 요즘 일주일의 절반은 경기 용인 집에서 보내고 절반은 논산에서 북을 가르친다. ‘논산에 계실 땐 하루 세끼를 어떻게 해결하시느냐’고 물으니 “아침은 과일 같은 것으로 간단히 먹고 점심과 저녁은 아랫동네 나눔터에서 해결하니 아무 걱정이 없다”고 했다. 나눔터는 정년퇴직한 부부 교사가 만든 일종의 문화복지 공간으로 귀촌한 노년층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분이 계시다니 신문에 날 일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지역에서 나눔터는 이미 유명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1999년부터 산골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나눔터의 존재가 김 명인이 덕곡리에 자리잡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김 명인은 거연당 옆에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고법 전수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저 창밖으로 보이는 대추밭 1000평을 전수관 부지로 기증했어. 9월이면 공사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 전수관은 논산시, 충남도, 국가유산청이 예산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지어질 것 같네. 50평과 30평짜리 전수공간하고 두 사람이 들어가 잘 수 있는 방을 스무 개 남짓 만들어 놓으면 구색이 맞지 않겠나 싶어.” 그는 북을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대둔산 기슭이 아니라 어디라도 찾아가야 하는 이 시대 판소리 장단의 최고수다. 1980년대 김명환, 김득수, 김동준 명고수의 뒤를 이어 1990년대부터는 사실상 독보적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얼마 전 국립무형유산원이 판소리를 알리고자 펴낸 책자에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 신영희 선생과 함께 등장했다. 판소리 장단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그에게 “수많은 명창과 함께하셨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깊이 새겨진 소리꾼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런 걸 말하고 다니면 다른 소리꾼들이 불러주겠느냐”면서 웃었다. 김 명인의 북장단은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소리꾼을 앞질러 가지도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제는 소리판의 최고 어른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는 소리꾼이 누구든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이승렬 선생은 “일통의 북은 스승인 김동준을 닮아 모나지 않고 소리꾼이 편안하도록 최대한 봉사한다”고 했다. 김 명인은 “지금도 공연이 있을 때마다 팸플릿을 반드시 챙기는데 헤아려 보니 어떤 해는 420개나 됐으니 어지간히도 많이 했다 싶었다”고 했다. ‘소리꾼들이 다투어 모실 수밖에 없는 북재비’라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에게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감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도 있다”면서 “청중이 없으면 안 되고 고수가 없어도 안 되니 선생님들이 농담조로 하신 말씀”이란다. 그러면서 “고수는 창자가 편하게 소리할 수 있게 보조하는 직분”이라고 했다. “소리꾼은 자기 소리를 하면 되지만 장단재비는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 바탕의 제각기 다른 서른다섯 개 유파를 통달해야 돼. 고시 공부하듯 하지 않으면 장단을 칠 수가 없어. 북을 쳐서 먹고살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지.”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결국은 북재비가 소리판을 아울러야 한다는 설명과 다름없었다. ‘일고수 이명창’이란 바로 이런 뜻이었나 보다. 거연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면의 사진 두 장이 눈에 띈다. 스승인 김동준 명인과 한일섭 명인이다. 일통은 1981년 국립창극단에 들어갔다. 앞서 두 해 남짓 객원으로 공연에 참여하다 정식 단원이 된 것이다. 국립창극단에서 스승으로 김동준 명인을 본격적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나이 사십 줄에 접어들어 7년 동안 운전도 하고 심부름도 했다고 한다. 스승은 늘 “내 것을 훔쳐 가라”며 다그쳤다. 그는 밤이고 낮이고 스승 곁에 머물며 스승이 가진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때 국립창극단에서 완창 판소리가 시작됐어. 박봉술, 정광수 같은 어른 명창이 먼저 나서고 김소희, 성창순, 한농선 같은 젊은 명창이 뒤를 이었지. 장단재비로는 내가 나이가 제일 적었으니 무대에도 먼저 나섰고. 앞자리에서 쟁쟁한 명인·명창이 지켜보고 있으니 떨리더라고. 스승인 김 명인에게 “무대에 나가면 손이 떨리고 죽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그게 다 사람 되려고 그러느니라” 하셨지. 오정숙 명창에게도 물어봤더니 칠십이 넘어서도 긴장 때문에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몇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린다고 하시더라고. 그런데 나는 팔십에도 여전히 떨리네.” 그는 1988년 국립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악 위주였던 국악원이 처음으로 민속악단의 장단 연주자를 모집했는데 여기에 뽑힌 것이다. 국악원 원로사범 성경린 선생은 이때 “김군은 시험 볼 게 뭐가 있나. 그냥 오면 되지” 했다. 실제로 지원서는 4명이 냈지만 실기시험장엔 자신을 빼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국립국악원 시절이 음악 하는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다잡은 시기였다고 술회했다. “어느 날 공연 리허설을 성경린 선생님하고 김천흥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셨어. 리허설이 끝나자 원로사범실로 올라오라는 거야. 두 분은 “김군, 지금 북을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물으셨지. 내가 “제 생명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했더니 북을 들고 무대에 들어오는 자세부터 틀렸다는 거야. 한손으로 고리를 잡고 북을 강아지 끌듯 하는데 무슨 자기 생명 같다 하느냐고 질책하셨지. 다음부터는 공연할 때 꼭 북을 두손으로 잡고 가만히 방석 위에 올려놓게 됐어. 장단을 따지기에 앞서 자세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이 고맙지. 지금은 내가 제자들에게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 그는 어린 시절 집 가까이 있던 목포 국악원 앞으로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농악에 빠져들었다. 곧 ‘천재 소년 설장고’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13~14세에 벌써 친구들과 유달농악단과 달성소년농악단을 결성했다. 당시 목포항에는 조기잡이 중선(中船)이 가득했는데, 풍어제가 수없이 열렸으니 농악단 수요도 폭발적이었다. 15세 때 123악극단에 들어갔는데 ‘천재 소년 김청만’을 선전문구로 썼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19세 무렵에는 보성에서 임춘앵여성국극단을 만났는데 마침 장구 연주자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합류하게 된다. 또 다른 스승 한일섭 명인은 여기서 만났다. 군에 입대한 것도 국극단 시절이다. 그는 운전병이 됐다. 나중에 먹고살게 없으면 운전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신조 남파간첩 사건이 터지며 군 복무가 35개월로 늘어났다. 그 무렵 마음이 다시 변해서 아쟁 공부를 시작한다. 수송부대 앰뷸런스 안에서 연습하다 대대장에게 들켜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국방부에 국악대가 생기자 선배들이 불렀다. 그런데 주임상사를 찾아갔더니 국악대에 오려면 3만원을 달라고 했다. 1968년이니 큰돈이었다. 군대에서 비리가 횡행하는 것에 기가 찼다. 인제에서 군용트럭을 몰고 향로봉을 오가는 일과는 제대할 때까지 이어졌다. 요즘도 대형 SUV를 가볍게 다루는 운전실력의 배경이다. 제대한 다음 한일섭 선생을 다시 찾아가 북장단은 물론 아쟁과 태평소를 배웠다. 아쟁은 박대성, 박종선, 윤윤석, 김일구 같은 대가를 모두 사사했다. 타악, 현악, 관악을 모두 섭렵했으니 성악에는 혹 관심이 없었을까. 목포 시절 강도근 명창에게 “저도 소리를 좀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강 명창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아서라 세상사 쓸 것 없다’는 유명한 단가 가락을 흥얼거리며 전라도 사투리로 “너는 안디겄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로는 소리를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 명인은 판소리 고수가 “그늘진 곳에서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추임새와 장단을 맞춰야 하는 고역 중의 상고역”이라고 했다. 지난 6월에는 팔순을 기념하는 제자들의 기념공연이 청와대 대정원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김청만의 일통고법 100인의 북산조’라는 제목처럼 100명의 제자가 갈고닦은 북산조를 스승에게 바치는 자리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새겨 고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 명인은 늘 제자들에게 “배워갈수록 어려운 것이 생겨나고,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불어난다”며 장단을 어느 정도 터득한 것처럼 느껴질수록 더 갈고닦아야 한다고 독려한다. ‘배워갈수록…’은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설립의 초석을 놓은 국악운동가 연정 임연수 선생이 직접 써서 자신의 손에 쥐여 주었던 문구라고 한다. “지금 마음속으로는 내가 이걸 안 했으면 뭘 해서 먹고살았을까 생각도 들어. 북을 쳐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거지. 남은 것이 있다면 제자들이 쑥쑥 자라나 나를 뛰어넘는 고수가 다투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지. 그럴수록 젊은 국악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네. 나는 창극단이나 국악원에 들어갔을 때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다짐했거든. 그런데 요즘엔 봉급 받는 자리만 잡으면 마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공부를 멈추는 것 같아 그게 걱정이야.” ■ 김청만 명고수는 1946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10대 시절 유달농악단과 달성소년농악단을 조직해 활동했다. 이후 123악극단과 임춘앵여성국극단·햇님여성국극단·박미숙여성국극단에서 악사로 일했다. 국립창극단 단원과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의 단원·지도위원·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서울예술대 대우교수, 목원대 강의전담교수, 서울대·한국예술종합학교·단국대·백석예술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5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로 인정됐다. 현재 일통고법보존회 이사장, 동초제판소리보존회 부이사장이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레깅스? 아줌마룩, 우린 안 입어요” 한물갔다는데…요즘은 ‘이것’ 뜬다

    “레깅스? 아줌마룩, 우린 안 입어요” 한물갔다는데…요즘은 ‘이것’ 뜬다

    ‘신흥부촌녀룩’ 레깅스의 쇠퇴…신흥 강자 등장“브라+레깅스 대신 크롭톱+낙하산 바지 입어요”“레깅스는 죽었다.” 레깅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레깅스는 촌스럽고, 흔해 빠졌고, 한물간 베이비부머 세대의 전유물 취급을 받는다. 20년 넘게 운동복의 제왕으로 군림한 레깅스는 헐렁하고 펑퍼짐한 오버사이즈 ‘빅 워크아웃 팬츠’(Big Workout Pants)에 자리를 내줬다. 요즘 젊은이들은 1990년대 댄서처럼 짧은 크롭톱(Crop Top), 이른바 배꼽티와 1980년대 유행했던 패러슈트 팬츠(Parachute Pants), 일명 낙하산 바지를 입는다. 미국 뉴욕 요가 스튜디오 ‘스카이 팅’ 대표 크리시 존스는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레깅스는 이제 죽었다”라고 설명했다. 존스는 WSJ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내 복장을 봐야 한다”라며 “나도 작은 탱크톱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복장이 수강생 사이에서 유행처럼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37살짜리 친구가 “어떤 레깅스를 사야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도 존스는 “이제 레깅스 안 입는다”라고 대답해줬다. 망설이는 친구에게 존스는 단호하게 “레깅스 입으면 베이비부머”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때 요가, 필라테스, 브런치, 심지어 재택근무 줌 화상회의에까지 등장한 딱 붙는 브라-레깅스 조합의 ‘웨스트빌리지 걸리’(뉴욕 신흥부촌 여성룩)는 구식 취급을 받는다는 게 ‘운동 고수’들의 전언이다. 애슬레저 브랜드 스포티 앤 리치(Sporty & Rich)의 설립자 에밀리 오버그는 “탄탄한 몸매의 여성이 몸을 꽁꽁 조이는 옷이 아니라 헐렁한 옷 안에 몸매를 숨기는 게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레깅스계 명품’ 룰루레몬 성장세도 둔화세‘신흥 강자’ FP무브먼트 강세…Z세대 선호 레깅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Z세대의 선호도가 오버사이즈 스타일로 기울면서, 최근 3년간 운동복 시장 내 레깅스 비중은 상당한 감소세를 보였다. 룰루레몬, 알로, 뷰오리, 비욘드 요가 등 주요 레깅스 브랜드의 제품군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 기반의 AI 리테일 인텔리전스 기업 ‘에디티드’도 지난 4월 ‘레깅스의 종말?’(The Death Of Legging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런 추세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46.9%였던 레깅스의 운동복 시장 점유율은 2025년 38.7%로 감소했다. 특히 룰루레몬의 성장세 둔화가 눈에 띈다. 룰루레몬은 1998년 캐나다에서 탄생, 2000년 미국 진출 후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며 레깅스계 명품으로 떠올랐다. ‘얼라인’ 레깅스 인기에 힘입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룰루레몬은 2007년 7월 나스닥에 상장하며 3억 2760만 달러를 조달하기도 했다. 룰루레몬은 여전히 나이키, 아디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나,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 10%보다 낮은 5~7%에 그칠 전망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룰루레몬과 알로도 부랴부랴 낙하산 바지 같은 빅 워크아웃 팬츠 제품군을 내놓는 중이다. 하지만 흐름 변화의 수혜는 이미 갭의 애슬래타(Athleta)와 조+잭스(Jo+Jax) 같은 니치(틈새) 브랜드, 그리고 URBN(어번 아웃피터스) 액티브웨어 브랜드 ‘프리피플 무브먼트’(FP Movement)가 받고 있다. FP 무브먼트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아나 하르틀은 “요즘 확실히 바지 실루엣이 커지는 쪽으로 큰 변화가 있다”며 “매출도 아주 좋다”고 설명했다.
  • ‘원조 책받침 여신’ 이상아, 반려견과 ‘상큼 커플룩’ 선보여

    ‘원조 책받침 여신’ 이상아, 반려견과 ‘상큼 커플룩’ 선보여

    배우 이상아가 반려견 ‘미뇽’과 커플룩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상아는 지난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얼마 만에 커플룩이냐 미뇽아”라며 “덕분에 함께 출근(했다). 우리 애들 다 입히고 싶어도 사이즈가 없다”는 글과 함께 반려견과 커플룩을 입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이상아와 그의 반려견은 똑같은 디자인의 하늘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어 훈훈함을 자아냈다. 이상아는 같은 옷을 입은 반려견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반려견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반려견과 커플룩을 입은 이상아의 모습에 팬들은 “예쁘다. 잘 어울린다” “색깔이 상큼해 보인다. 우리 아이도 입히고 싶다” “귀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배우 이상아는 1980~1990년대 각종 CF를 섭렵하며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린 원조 ‘책받침 여신’이다. 당시 수많은 남학생의 가방에는 ‘이상아 책받침’이 있었다. 어느덧 데뷔 40년 차를 맞은 이상아는 현재 애견 카페를 창업해 운영 중이다.
  • “몸매 부각은 그만”…제니도 빠진 ‘이 바지’ 열풍

    “몸매 부각은 그만”…제니도 빠진 ‘이 바지’ 열풍

    오랜 기간 운동복으로 사랑받아온 레깅스 대신 통 넓은 바지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빅 워크아웃 팬츠’라고 부르는 헐렁한 바지가 급부상하며 레깅스의 인기가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레깅스 판매율은 최근 들어 감소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 에디트(Edited)에 따르면 레깅스는 2022년 운동복 바지 매출의 46.9%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38.7%로 줄어들었다. 미국 뉴욕에서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크리시 존스는 “레깅스 유행은 끝났다”며 “최근 수강생들 대부분 탱크톱에 헐렁한 바지 차림”이라고 말했다. 레깅스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파라슈트 팬츠를 비롯한 헐렁한 바지다. 파라슈트는 낙하산이라는 뜻으로 낙하산의 소재인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져 파라슈트 팬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체적으로 통이 넓어 힙한 느낌을 주는 파라슈트 팬츠는 1990년대 래퍼들과 댄서들이 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그룹 블랙핑크 제니를 비롯해 많은 유명인들이 파라슈트 팬츠를 착용해 화제를 모았다. 이런 유행에 발맞춰 애슬레타, FP무브먼트, 조앤드잭스 등 패션 브랜드는 기능성을 강조한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출시하고 있다. 레깅스 유행을 이끌던 룰루 레몬과 알로 역시 헐렁한 하의를 선보였다.
  • 전 세계 휩쓸어버린 K콘텐츠… ESG 경영으로 ‘넥스트 레벨’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전 세계 휩쓸어버린 K콘텐츠… ESG 경영으로 ‘넥스트 레벨’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눈부신 성과 속 노동 문제 등 여전뉴진스 등 ‘탬퍼링’ 분쟁 증가 추세아티스트와 엔터사 상생 노력 필요디지털 앨범 발매로 플라스틱 감축도심 숲 조성 등 친환경 활동 확대 2025년은 대중문화계에 특별한 해다. K팝의 기틀을 다진 SM엔터테인먼트와 K콘텐츠의 성장을 이끈 CJ ENM, 한국 인디 음악 모두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 황금기인 1990년대의 다양한 장르적 토양을 기반으로 아이돌 산업이 탄생했고 K팝은 미국 빌보드차트를 석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주류 문화 반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K팝과 전통, 현대를 아우르는 우리 문화를 토대로 해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신드롬을 낳고 있다. K콘텐츠는 산업이 고도화하고 양적으로 급성장했지만 노동, 환경 문제와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특히 K콘텐츠 산업은 수많은 창작자가 함께 빚어내는 노동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전문가들은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성장하려면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다. K콘텐츠 산업이 해외 시장까지 겨냥하는 만큼 과거의 주먹구구식 운영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하이브가 엔터사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엔터 업계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4대 엔터사는 ESG위원회를 설립하고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K팝의 경우 이른바 ‘뉴진스 사태’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다. 과거에는 제작자의 불공정 전속 계약이나 불투명한 정산이 문제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 피프티피프티에 이어 뉴진스까지 아티스트 측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나 탬퍼링(계약 만료 전 사전 접촉) 논란이 늘어나는 추세다. 음반 제작자들은 “전속계약 파기가 빈번해지면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가 위축되고 결국 K팝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도 “탬퍼링은 엔터 산업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음악산업 5개 단체는 합동 간담회를 열고 K팝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연결, 존중, 배려, 보호’ 등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제작자와 아티스트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형평성을 담보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대중문화예술 표준전속계약서가 6년 만에 개정됐지만 탬퍼링 직접 규제에 관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2010년대 후반 이후 K팝 산업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며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했다”면서 “아티스트 권익뿐만 아니라 기획사의 안정적인 경영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이 표준전속계약서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엔터사 차원에서도 상생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SM은 아티스트의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고 하이브도 ‘사내 의원’을 통해 아티스트 및 직원 대상 전문 의료 및 심리 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JYP는 인성과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아티스트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YG도 인권 침해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환경 보호도 엔터 업계에 중요한 이슈다. 2023년 국내 음반 판매량이 사상 첫 1억장을 돌파했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도 증가했다. 팬 사인회 당첨을 위해 앨범을 대량 구입했다가 버리는 사례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이에 하이브는 지난해부터 실물 CD 대신 QR 코드를 통해 전용 앱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디지털 앨범인 ‘위버스 앨범’에 재활용·생분해 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음원이나 사진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는 QR 코드가 인쇄된 카드와 포토 카드 등이 종이 앨범 케이스에 담겨 있다. 2022년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의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RM, 지민, 슈가 등 소속 가수들의 위버스 앨범 발매를 확대하고 있다. SM은 소속 가수들의 주요 신보를 스마트 앨범 ‘스미니’로 발매해 주목받았다. 스미니는 CD 케이스 모양의 키링(열쇠고리) 안에 CD를 본뜬 NFC 칩이 들어 있다. 앱을 설치하고 스마트폰에 칩을 대면 곡을 감상할 수 있다. 플라스틱 및 종이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앨범으로 아이브, 크래비티 등 다른 소속사 아이돌도 동참했다. YG는 친환경 앨범 제조 자회사를 설립해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및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이브는 2022년부터 방글라데시에 맹그로브숲을 조성하는 ‘에코빌리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SM은 지난 4월 성동구 서울숲에 기부 정원 광야숲 3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새로 조성된 숲에는 관목 4종 150그루와 본류 14종 800포기가 식재됐다. 광야숲의 전체 면적은 총 1282㎡에 달한다. K콘텐츠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공정한 창작 환경 조성도 빼놓을 수 없다. 신인 창작자와 중소 기획사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TV 단막극 폐지로 신인 작가 등용문이 사라진 가운데 CJ ENM이 운영하는 ‘오펜’에서 발굴한 신예 작가들은 ‘갯마을 차차차’, ‘슈룹’ 등 인기 드라마 40여편을 발표해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문화 산업과 문화의 가치, K-다움’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 지원의 고도화를 주문했다. 피프티피프티의 소속사 어트랙트의 전홍준 대표는 “지역 창작 생태계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부 차원에서 송캠프를 지원해야 한다”면서 “인디 아티스트와 중소 기획사의 역량을 강화해야 양극화를 해소하고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록그룹 시나위의 리더이기도 한 신대철 바른음원협동조합 대표는 “대형 기획사, 플랫폼 위주의 정책이 K팝 양적 성장의 주요 동기가 됐다”면서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장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국민배우…19명 女아나와 성접대 모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국민배우…19명 女아나와 성접대 모임

    일본 국민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56)가 후지TV 간부와 함께 여성 아나운서들을 상대로 한 ‘성접대 모임’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18일 일본 주간지 여성세븐은 나카이 마사히로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실시된 후지TV 내부 조사에서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유력 프로그램 출연자’로 명시됐다고 보도했다. 조사 결과 후쿠야마는 2005년부터 후지TV 오오타 료 전 전무이사와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왔으며, 이 자리에는 최소 19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동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지TV 제3자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후쿠야마는 오오타 전 전무와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에서 “여성 아나운서들과의 모임을 기대한다” “신입 아나운서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직접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요청에 따라 매년 1-2회씩 모임이 주선됐고, 현장에서는 성적 농담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참석했던 여성 아나운서들은 조사 과정에서 “후쿠야마의 대화에 성적인 내용의 저질스러운 농담이 포함돼 있었다”며 “후지TV 전무도 이에 동조하며 함께 성적인 대화를 즐겼다”고 증언했다. 오오타 전 전무는 “1990년대부터 후쿠야마와 작품 관련 상담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친목 성격의 모임을 열었다”며 “제가 초대한 자리였고 후지TV 직원과 아나운서, 후쿠야마 측 관계자도 동석했다”고 해명했다. 후쿠야마 측 “깊이 반성”…성희롱은 부인 논란이 불거지자 후쿠야마 마사하루 소속사 아뮤즈는 해당 모임 참석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쿠야마 본인도 여성세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읽고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며 “불쾌한 기분을 느낀 분을 특정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모임의 호스트가 됐다고 생각해 자리를 북돋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분위기를 띄우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해명했고, 소속사 측은 “후지TV로 회자되고 있는 성희롱적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나카이 마사히로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실시된 후지TV 전사 조사에서 드러났다. 외부 변호사들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는 내외부 관계자 222명 심층 인터뷰와 아나운서 1263명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0건 이상의 성희롱 피해 사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설문 조사에서는 ‘접대 모임에서 신체 접촉이 있었다’ ‘호텔에 가자고 유혹했다’ 등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 더 심각한 것은 피해 사실을 상사에게 알렸을 때 ‘네가 알아서 대처하라’며 묵살하거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보너스 평가에 영향을 준다’며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는 점이다. ‘완벽한 남성상’에서 ‘성접대 의혹’…팬들 충격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드라마 ‘갈릴레오’ ‘료마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용의자 X의 헌신’ 등을 통해 ‘완벽한 남성상’으로 각인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1990년 가수 데뷔 후 1991년 연기자로 전향해 일본 엔터테인먼트계의 대표 스타로 자리잡았으나, 2015년 결혼 이후 인기는 다소 주춤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성접대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자 일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나운서를 성접대 도구로 취급한 것이냐” “후지TV의 부패한 문화가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세븐은 후속 보도를 통해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추가 인터뷰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1970년 히트곡 ‘봄비’ 부른 한국 최초의 솔 가수

    1970년 히트곡 ‘봄비’ 부른 한국 최초의 솔 가수

    ‘봄비’를 부른 ‘한국 최초의 솔 가수’ 박인수(본명 백병종)가 폐렴으로 별세했다. 78세. 18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 등으로 투병해 왔으며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도중 건강이 악화해 이날 세상을 떠났다. 1947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 도중 어머니와 둘이 피란길에 올랐다가 열차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쳐 고아가 됐다. 이후 고아원을 전전하다 미군 선교사의 도움으로 열두 살 때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외로움과 향수병에 시달리며 뉴욕 할렘가를 떠돌았다. 고인은 귀국 후 미국에서 접한 솔 창법을 앞세워 미8군 클럽에서 활동했고 1960년대 말 그룹 ‘퀘션스’에 객원보컬로 참여하면서 신중현 사단에 합류했다. 그는 1970년 신중현이 작사·작곡한 ‘봄비’를 불러 이름을 알렸다. ‘봄비’는 1967년 신중현이 발굴한 이정화가 먼저 불렀다. 고인은 이후 ‘나팔바지’, ‘펑크 브로드웨이’, ‘의심받는 사랑’, ‘꽃과 나비’ 등으로 인기를 얻었고 1992년 ‘해뜨는 집’과 2013년 ‘준비된 만남’까지 총 2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대표곡 가운데 6·25전쟁 당시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인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3년 모친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고인은 1970년대 중반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저혈당 증세와 파킨슨병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노래를 접고 무대를 떠나기도 했다.
  • 고양 대곡역세권 지식융합단지 개발… 기존 마을 제외하자 원주민 강력 반발

    정부가 신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마을을 개발계획에서 제외하고, 수용보상가가 낮은 농지만 포함하는 방식을 반복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8일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전철3호선·경의중앙선·서해선·교외선 등 5개 철도 노선이 지나는 덕양구 내곡동·대장동·화정동·토당동·주교동 일대 199만㎡에 ‘대곡역세권 지식융합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2035년까지 9400가구의 공공주택과 지식기반 자족시설을 공급하는 개발사업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발표한 개발계획에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논밭 중심의 토지만 포함됐고, 2016년 개발구상에 포함됐던 갈머리 마을 등 기존 취락지역은 제외됐다. 빠진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413가구 주민들이 산다. 고양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일대를 신도시로 만들고 주교동 구도심에 있는 시청사도 이전하겠다고 밝혀왔다. 최근 덕양구청에서 열린 전략환경영향평가 설명회장에서는 개발지역에서 제외된 마을 주민 70여명이 참석해 정부를 성토했다. 주민들은 “그린벨트 지역이라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 하고 기반 및 편의시설이 부족해도 참고 살아왔다”며 “이런 배신 행정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2019년에도 고양창릉 공공주택지구 발표 당시 덕양구 동산동·화전동 벌말마을 등 기존 마을들도 개발구역에서 제외됐다. 2006년 고시된 고양삼송택지개발지구 조성 당시에도 삼송역 인근 구도심은 수용 대상에서 빠졌다. 이들 지역은 사실상 택지개발지구 안에 있으면서도 보상가격이 높을 것으로 예상돼 기형적으로 제외됐다. 이러한 개발 방식은 지역 불균형과 슬럼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도심은 계획적인 교통망에서 제외되고 신도시 중심으로 생활권이 재편되면서 오히려 차별받고 있다. 일부 지역은 신도시와 기존 마을 간 지형차로 인해 상습 침수지역이 됐다. 김미경 고양시의원은 “그린벨트에서 반세기 넘도록 불편하게 살아온 원주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민간 건설업체들이나 하는 사업방식”이라며 “고양시가 중심이 돼 편입과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 오마카세와 이모카세, 한 끼 식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오마카세와 이모카세, 한 끼 식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영화 ‘심야식당’은 도쿄 뒷골목의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한 끼 식사가 단순한 배 채우기를 넘어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소중한 행위임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 속 가게들이 있다. 서울 신촌의 한 치킨집처럼 단순히 닭튀김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들 말이다. 그곳은 한 끼 식사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쌓고 위안을 얻던 특별한 장소였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오마카세’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를 휩쓴 오마카세 열풍은 이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오마카세는 손님이 아닌 요리사가 그날의 재료와 요리를 결정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손님은 요리사와 소통하며 특별하고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오마카세의 인기는 소비 문화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길어진 저성장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소확행’처럼 일상 속 작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한 특별한 한 끼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 것이다. 오마카세는 단순히 맛있는 식사를 넘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콘텐츠로 기능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더욱 높인다. 스시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오마카세 오마카세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시’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초밥과 스시를 같은 의미로 쓰지만 사실 초밥은 손으로 밥을 쥐고 그 위에 생선이나 해산물을 올리는 ‘니기리즈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니기리즈시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선을 소금과 쌀밥으로 숙성시켜 먹는 ‘나레즈시’가 있었고, 이후 식초를 활용한 ‘하야즈시’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19세기 일본에서 경제가 성장하자 빠르고 간편한 음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하나야 요헤이가 신선한 재료로 즉석에서 만드는 니기리즈시를 창안했다. 이는 스시를 ‘보존음식’에서 ‘즉석음식’으로 바꾸는 혁신을 가져왔고, 스시를 고급 요리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에는 후지모토 시게조가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손님에게 맞춤형 스시를 제공하는 ‘오마카세’를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메뉴 주문 방식을 넘어 요리사와 손님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수많은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나야 요헤이가 새로운 스시를 창조했다면, 후지모토 시게조는 스시를 즐기는 문화를 바꾸었다. 한 끼 식사가 주는 인간적 유대감 1990년대 유행하던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떠오른다. 손님에게 험한 말을 해도 사람들이 굳이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겉은 투박해도 속은 따뜻한 할머니의 정이 그리워서였다. 오마카세의 인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뉴판에 없어도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주는 한 끼 식사는 어린 시절 할머니나 엄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오마카세와 노포가 결합된 ‘이모카세’가 유행하는 현상은 이러한 정성 담긴 한 끼 식사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준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과 노포, 오마카세, 이모카세는 모두 ‘심야식당’처럼 소외감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적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없는 현대인들이 그곳에서 찾는 것은, 단순히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일지도 모른다.
  • 오마카세와 이모카세, 한 끼 식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한ZOOM]

    오마카세와 이모카세, 한 끼 식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한ZOOM]

    영화 ‘심야식당’은 도쿄 뒷골목의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한 끼 식사가 단순한 배 채우기를 넘어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소중한 행위임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 속 가게들이 있다. 서울 신촌의 한 치킨집처럼 단순히 닭튀김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들 말이다. 그곳은 한 끼 식사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쌓고 위안을 얻던 특별한 장소였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오마카세’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를 휩쓴 오마카세 열풍은 이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오마카세는 손님이 아닌 요리사가 그날의 재료와 요리를 결정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손님은 요리사와 소통하며 특별하고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오마카세의 인기는 소비 문화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길어진 저성장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소확행’처럼 일상 속 작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한 특별한 한 끼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 것이다. 오마카세는 단순히 맛있는 식사를 넘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콘텐츠로 기능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더욱 높인다. 스시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오마카세 오마카세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시’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초밥과 스시를 같은 의미로 쓰지만 사실 초밥은 손으로 밥을 쥐고 그 위에 생선이나 해산물을 올리는 ‘니기리즈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니기리즈시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선을 소금과 쌀밥으로 숙성시켜 먹는 ‘나레즈시’가 있었고, 이후 식초를 활용한 ‘하야즈시’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19세기 일본에서 경제가 성장하자 빠르고 간편한 음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하나야 요헤이가 신선한 재료로 즉석에서 만드는 니기리즈시를 창안했다. 이는 스시를 ‘보존음식’에서 ‘즉석음식’으로 바꾸는 혁신을 가져왔고, 스시를 고급 요리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에는 후지모토 시게조가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손님에게 맞춤형 스시를 제공하는 ‘오마카세’를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메뉴 주문 방식을 넘어 요리사와 손님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수많은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나야 요헤이가 새로운 스시를 창조했다면, 후지모토 시게조는 스시를 즐기는 문화를 바꾸었다. 한 끼 식사가 주는 인간적 유대감 1990년대 유행하던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떠오른다. 손님에게 험한 말을 해도 사람들이 굳이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겉은 투박해도 속은 따뜻한 할머니의 정이 그리워서였다. 오마카세의 인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뉴판에 없어도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주는 한 끼 식사는 어린 시절 할머니나 엄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오마카세와 노포가 결합된 ‘이모카세’가 유행하는 현상은 이러한 정성 담긴 한 끼 식사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준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과 노포, 오마카세, 이모카세는 모두 ‘심야식당’처럼 소외감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적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없는 현대인들이 그곳에서 찾는 것은, 단순히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일지도 모른다.
  • “시련 겪어…” ‘사망설’ 이연걸 병원서 포착, 10여년째 앓고 있는 병

    “시련 겪어…” ‘사망설’ 이연걸 병원서 포착, 10여년째 앓고 있는 병

    1990~2000년대 중화권의 대표적인 액션스타인 리롄제(62·이연걸)이 병원 치료를 받은 근황을 공개했다. 그는 10여년째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투병하면서 소셜미디어(SNS)에 ‘사망설’ 등 가짜뉴스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에 대해 “조회수를 늘려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바 있다. 18일 중화망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리롄제는 지난 16일 자신의 웨이보에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리며 “최근 한 차례 무상한 시련을 겪었다”고 밝혔다. 팬들이 우려의 메시지를 전해오자 그는 병원의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입원실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는 “하드웨어에 문제가 좀 생겨, 공장에 다시 가서 수리했다”면서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전했다. 이어 18일에는 퇴원 소식을 전하며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재차 밝혔다. 1963년생으로 올해 62세인 리롄제는 50대에 들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겪고 있다. 액션 스타의 면모를 찾아보기 힘든 수척해진 모습으로 팬들의 우려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더해 액션 영화 촬영 과정에서 입은 척추와 다리 등의 크고 작은 부상들이 겹쳐 한동안 작품 활동이 드물었다. 급기야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리롄제가 향년 60세로 사망했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확산돼 인터넷을 떠들석하게 하기도 했다. 리롄제는 일련의 가짜뉴스들을 비웃듯 지난해 ‘표인:풍기대막’ 촬영을 마치며 14년만의 무협 영화 복귀를 알렸다.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투병 사실에 대해 털어놓는 등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23년 펴낸 책에서 “죽음에 직면한 뒤 담담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내에게 내 장례를 치를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면서 “비석도 필요 없이 수목장이나 해양장(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것)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가짜뉴스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1인 미디어들은 트래픽을 늘려야 한다”면서 “사실이든 거짓이든 일단 ‘리트윗’하고, 내가 살았든 죽었든 그 글을 읽는 당신이 그들(1인 미디어)의 트래픽을 높여줬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자가면역 질환…방치하면 심장질환 등 합병증중국 태생이나 현재는 싱가포르 국적자인 리롄제는 1982년 영화 ‘소림사’를 통해 배우로 데뷔해 ‘황비홍’, ‘동방불패’, ‘보디가드’ 등의 작품으로 1990년대 홍콩 액션 영화의 전성기를 수놓았다. 2000년대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익스펜더블’, ‘로미오 머스트 다이’ 등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현재는 자선사업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편 리롄제가 앓고 있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갑상선 호르몬이 정상보다 많이 분비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신체의 여러 장기가 항진됨에 따른 증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심박동 수 증가 ▲혈압 이상 ▲정서 변화 ▲불면증 ▲설사·변비 등 소화기 증상 등이 있다. 피부가 건조해지고 머리가 빠지며, 눈이 튀어나오고 목 부위가 커지는 증상도 생길 수 있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장 질환 등 합병증을 유발하므로, 항갑상선 약 복용이나 방사성 요오드 치료, 수술 등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
  • [데스크 시각] 백범이 문화의 힘을 꿈꾼 이유

    [데스크 시각] 백범이 문화의 힘을 꿈꾼 이유

    우리가 문화의 경제 산업적 가치에 주목하게 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 아닌가 싶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공원’이 계기가 됐다. 1993년 6월 개봉한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9억 7816만 7947달러를 벌어들였다. 현재 환율로 따지면 1조 3596억 5344만 6330원이다. 몇 차례 재개봉 성적까지 보태면 수익은 11억 437만 9926달러로 늘어난다. 전 세계 역대 흥행 1위를 꿰찼던 이 영화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39위에 자리하고 있다. 물가 변동에 따른 티켓 가격 상승을 고려하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역대 흥행 50위 안에 든 21세기 이전 작품은 ‘타이타닉’(4위·1997),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49위·1999)까지 3편뿐이다. ‘쥬라기 공원’은 미국 개봉 뒤 한 달이 지나 국내 스크린에 걸렸다. 영화관 입장 수익이 전국적으로 집계되기 한참 전, 단관 개봉 시절이었는데 서울을 기준으로 관객 106만 3352명을 동원했다.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클리프 행어’(111만 명)에는 조금 뒤졌고, 판소리를 소재로 한 우리 영화 ‘서편제’(103만 명)에는 조금 앞서 그해 흥행 2위를 차지했다. ‘쥬라기 공원’은 영상 기술 측면에서도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전까지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쥬라기 공원’은 차원이 다른 기술로 6500만 년 전 사라진 공룡을 생생하게 재현해 경이로움을 전달했다.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그 웅장함은 지금도 떠오를 정도다. 사실 한국에서 ‘쥬라기 공원’이 끼쳤던 영향은 흥행 성적 그 이상이었다. 영화, 나아가 문화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꿔 버린 것이다. 1994년 5월 대통령 자문기구였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흥행의 귀재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65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쥬라기 공원은 1년 만에 8억 50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해서 얻는 수익과 같다.” 1993년 국내 자동차 업계가 해외에 내다 판 자동차가 64만 대 정도였다고 한다. ‘쥬라기 공원’과 자동차 수출 간의 비교는 이후 문화 산업 육성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마다 꾸준히 따라다녔고, 한국의 콘텐츠 산업 규모는 세계 7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말이 이곳저곳에서 자주 회자된다. 그는 ‘백범 일지’에 담긴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건 아니라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다. 대중음악을 필두로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문학, 음식 등 K컬처가 세계 곳곳에서 환대받는 요즘, 김구 선생의 말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선생이 그토록 바랐던 ‘문화의 힘’을 얼추 갖추게 됐다는 자부심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재명 정부도 선생의 소원을 언급하며 글로벌 문화강국 실현을 위해 K콘텐츠 국가전략산업화를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예술문화산업 시장 규모를 300조원대로 확장하고, 문화 관련 산업 수출 5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 높은 문화의 힘을 꿈꿨던 이유를 생각하면 문화강국의 목표를 단순히 숫자로, 경제적 가치로만 치환하는 것은 2% 부족해 보인다. 선생은 문화의 힘을 가지고 싶은 이유를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또 인류가 무력도, 경제력도, 자연과학의 힘도 부족하지 않은데 불행하다며 그 까닭으로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그리고 인류가 인의, 자비, 사랑으로 향하는 길은 오로지 문화라고 강조한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이뤄야 할 문화의 힘은 숫자 너머에 있는 것이다. 외적인 성장 못지않게 내실도 다져야 할 시점이다. 홍지민 문화체육부장
  • 형제원·JMS·지존파·삼풍百… 죽음보다 더한 지옥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OTT 리뷰]

    형제원·JMS·지존파·삼풍百… 죽음보다 더한 지옥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OTT 리뷰]

    “바깥에 나와서 (오히려) 더 힘들었죠. 사람같이 못 사니까.”(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023년 일명 ‘JMS’로 알려진 사이비 종교단체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이 벌인 끔찍한 성범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속편 ‘나는 생존자다’가 지난 15일 공개됐다. 속편은 JMS(왼쪽)뿐만 아니라 부산 형제복지원(가운데), 지존파, 삼풍백화점(오른쪽)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을 피해자 목소리를 통해 사건 하나에 2화씩 총 8화에 걸쳐 생생하게 재현한다. 공개 하루 만인 16일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3위에 올랐다. 1·2화에서 다룬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0년대 신군부의 허가 및 묵인 아래 이뤄진 인권유린 사건이다.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600명이 넘는다. 생존 피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살인·강간·낙태 등 복지원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증언한다. 횡령 등의 혐의만 인정돼 고작 2년 6개월의 형을 받은 원장 박인근은 2016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작진과 인터뷰한 그의 막내아들 박천광 형제복지지원재단 이사장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하면서도 “해당 사건은 원장만의 책임은 아니며 그걸 지시했던 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주장했다. JMS를 다룬 3·4화는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의 일들을 전한다. 정명석뿐만 아니라 2인자 노릇을 했던 정조은이라는 인물의 행태를 고발한다. 전작에서 얼굴을 공개하고 고발에 나섰던 메이플이 겪었던 2차 피해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섭리 안보리’, ‘국방부’라는 이름으로 탈퇴 신자에게 보복하거나 정명석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했던 JMS 대외협력국 직원의 증언도 나온다. 모든 국가기관에 JMS의 마수가 뻗쳤다고 주장하는 단체 ‘엑소더스’의 전 대표인 김도형 단국대 교수의 말과 함께 경찰 내 JMS 사조직 ‘사사부’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도 담겼다. 1990년대 초 연쇄살인 및 엽기적인 식인 행각으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지존파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모씨는 5·6화에 출연해 당시 상황과 30여년이 지난 현재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 증언한다. 7·8화에서는 올해로 정확히 30년이 된 삼풍백화점 붕괴와 함께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JMS 측은 이번에도 다큐 방영을 막아 달라며 넷플릭스 등을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지난 14일 이를 기각했다. 제작진은 전작 방영 이후 JMS 신도가 절반 이상 줄었지만 여전히 수만명에 이르는 걸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조성현 PD는 다큐 공개 전 진행됐던 제작발표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끝나지 않은 지옥 같은 사건을 다루고자 했다”며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가 다른 것들보다 낮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MRO 위탁·조선소 인수 등 한미 마스가 협력 방식 가능”

    “MRO 위탁·조선소 인수 등 한미 마스가 협력 방식 가능”

    오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양국 간 조선 협력이 유지·보수·정비(MRO) 위탁, 동맹국의 미국 조선소 인수·투자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미국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나왔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5월 발표한 ‘미국과 동북아 동맹국의 조선 협력 경로’ 보고서에서 미국과 동맹국 산업계,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미 해군 군함의 MRO 위탁’, ‘동맹국의 미국 조선소 인수’, ‘미국과 동맹국의 군함 공동 생산’, ‘동맹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함정 구매’ 등 4가지 경로가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안으로 도출됐다고 밝혔다. 미국 선박 MRO 업무를 한국에 위탁하는 건 이미 실행 중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 함정 두 척을 수주했고 올해까지 총 세 척의 정비 사업을 따냈다. HD현대도 마스가 프로젝트가 공개된 뒤인 이달 초 미 해군 함정에 대한 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보고서는 “동맹국에 유지보수 업무를 맡김으로써 미국 내 조선소가 설비와 공정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봤다. 한화그룹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처럼 동맹국 기업이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선 동맹국의 기술 이전과 비용 절감을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미국 내 규제와 노동 문화가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복잡하고 독특한 미 해군의 표준·절차도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 협력의 동맹국으로는 글로벌 군함 생산 능력 2, 3위인 한국과 일본을 지목했다. 한국에 대해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상선 조선 강국으로 부상했고 이후 경제 성장으로 인건비가 상승했음에도 경쟁력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조선업은 “최근 고부가가치 및 고속 건조 역량에서 뛰어난 한국, 중국과의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미국은 조선산업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에 의존하는 것과 자국 역량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 ‘새 박사’ 윤무부 교수, 투병 끝 별세… 향년 84세

    ‘새 박사’ 윤무부 교수, 투병 끝 별세… 향년 84세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15일 0시 1분쯤 경희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4세. 윤 교수는 2006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재활에 성공했지만, 지난 6월 재발해 경희의료원에서 투병해왔다. 경남 통영군 장승포읍(현 거제시 장승포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영고, 경희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한국교원대에서 ‘한국에 사는 휘파람새 Song의 지리적 변이’ 논문으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2006년 경희대 생물학과에서 강의했고, 2006~2014년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로 있었다. 어릴 때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고인은 열정적으로 탐조활동을 벌였다. 대학원 시절인 1967년 광릉수목원(현 국립수목원)에 탐조여행을 갔다가 폭우에 휩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1971년 4월 충북 음성에서 발견된 마지막 황새 암수 한 쌍 중 수컷이 밀렵꾼 총에 맞아 죽자 고인이 수컷 황새를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표본으로 박제한 일화가 전해진다. 1994년에 암컷마저 농약 중독으로 죽자 한국교원대는 1996년 러시아에서 황새 2마리를 기증받아 황새 복원에 나섰다. 고인은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해설위원로 활약하는 등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면서 새들의 생태를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전달해 ‘새 박사’로 이름을 알렸다. 1980~1990년대엔 TV 광고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저서로는 야생조류와 매미들의 소리를 녹음한 오디오북 ‘한국의 새’(1984), ‘한국의 새’(1987), ‘한국의 텃새’(1990), ‘한국의 철새’(1990), ‘한국의 새’(1992), ‘한국의 자연탐험’(1993), ‘WILD BIRDS OF KOREA’(1995), ‘대머리 독수리는 왜 대머리일까요(공저)’(1998), ‘개굴 개굴 자연관찰’ 등이 있다. 1994~1995년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회 전문위원, 1994~2001년 내무부 국립공원자문위원회 자문위원, 1994~2001년 서울시 환경보전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01년 유엔 평화홍보대사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김정애씨와 1남 1녀 등이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203호실, 발인 17일 오전 8시 30분, 장지 별그리다.
  • 충주시 신경림 시인 기념사업 추진...생가 주변 정비하고 흉상 제작 등

    충주시 신경림 시인 기념사업 추진...생가 주변 정비하고 흉상 제작 등

    지난해 5월 별이 된 신경림 시인 기념사업이 그의 고향 충주에서 추진된다. 충북 충주시는 오는 12월까지 신경림 시인의 생가(노은면 연하리 475의 3) 주변 정비사업을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시는 5500만원을 들여 생가 인근 부지 160㎡를 매입해 볼거리와 주차장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생가는 민간 소유 주택이다. 시는 앞서 마을 방문객이 생가 주변과 고인 묘소까지 둘러볼 수 있도록 ‘신경림 시인 길’ 안내판도 설치했다. 시는 신경림 시인 흉상 제작도 추진한다. 4900만원을 투입해 흉상을 만들어 충주문학관에 설치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부터 기부받은 소장 도서 1만권을 전시하고 시인을 기리는 기념 공간도 마련한다. 지난 3월 유족 측은 신경림 시인이 생전에 갖고 있던 서적을 기증하기로 시와 협약을 체결했다. 시는 시인의 유품 등도 기증받아 충주문학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지난해 5월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대학생 시절인 1956년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첫 시집 ‘농무’와 ‘새벽을 기다리며’(1885년), ‘가난한 사랑 노래’(1988년) 등이 대표작이다. 농민과 서민의 고달픈 삶을 따뜻하고 잔잔한 문장으로 담아 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1990년대 후반까지 대표적인 ‘민중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 ‘모아이 고향’ 이스터섬 사라지나?…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기

    ‘모아이 고향’ 이스터섬 사라지나?…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기

    거대석상인 ‘모아이’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이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2080년 안에 이스터섬의 명소인 아후 통가리키까지 계절적 파도가 밀려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캠퍼스 해양 지구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이 이스터섬 해안선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파도 영향, 그리고 문화 유적지가 받는 영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해 이루어졌다. 아후 통가리키는 폭 100m에 달하는 제단 위에 모아이 15개가 바다를 등지고 모여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관광객들로 인한 경제적 가치 외에도 섬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노아 파오아 연구원은 “해수면 상승은 실재하는 것으로 멀리 있는 위협이 아니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문화유산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중 최신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를 막을 수 있는 고육지책도 내놨다. 파오아 연구원은 “섬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해안선에 방파제를 건설하고 모아이 등 유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까지 다양한다”면서 “잠재적 위협에 사후 대응하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선제 대응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터섬은 1960년 이미 한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당시 칠레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5의 대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해 섬을 강타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모아이가 휩쓸려 내려가 손상됐으며 1990년대 와서야 복원됐다. 한편 화산폭발로 생성된 이스터섬은 전체 면적이 163.6㎢로 서울 면적의 4분의 1 정도다. 남미 서해안에서 무려 3500㎞ 떨어진 곳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외진 섬으로 꼽히며 원주민 사이에서는 라파누이(Rapa Nui)로 불렸다. 태평양 외진 곳에서 그들만의 문명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파누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722년 부활절로 이런 이유로 섬의 이름은 이스터(Easter)가 됐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디며 900개에 달하는 모아이와 1500~3000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고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후 이스터섬은 찬란하게 꽃핀 문명을 뒤로하고 수백 년 만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 ‘모아이 고향’ 이스터섬 사라지나?…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기 [핵잼 사이언스]

    ‘모아이 고향’ 이스터섬 사라지나?…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기 [핵잼 사이언스]

    거대석상인 ‘모아이’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이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2080년 안에 이스터섬의 명소인 아후 통가리키까지 계절적 파도가 밀려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캠퍼스 해양 지구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이 이스터섬 해안선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파도 영향, 그리고 문화 유적지가 받는 영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해 이루어졌다. 아후 통가리키는 폭 100m에 달하는 제단 위에 모아이 15개가 바다를 등지고 모여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관광객들로 인한 경제적 가치 외에도 섬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노아 파오아 연구원은 “해수면 상승은 실재하는 것으로 멀리 있는 위협이 아니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문화유산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중 최신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를 막을 수 있는 고육지책도 내놨다. 파오아 연구원은 “섬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해안선에 방파제를 건설하고 모아이 등 유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까지 다양한다”면서 “잠재적 위협에 사후 대응하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선제 대응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터섬은 1960년 이미 한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당시 칠레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5의 대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해 섬을 강타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모아이가 휩쓸려 내려가 손상됐으며 1990년대 와서야 복원됐다. 한편 화산폭발로 생성된 이스터섬은 전체 면적이 163.6㎢로 서울 면적의 4분의 1 정도다. 남미 서해안에서 무려 3500㎞ 떨어진 곳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외진 섬으로 꼽히며 원주민 사이에서는 라파누이(Rapa Nui)로 불렸다. 태평양 외진 곳에서 그들만의 문명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파누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722년 부활절로 이런 이유로 섬의 이름은 이스터(Easter)가 됐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디며 900개에 달하는 모아이와 1500~3000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고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후 이스터섬은 찬란하게 꽃핀 문명을 뒤로하고 수백 년 만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