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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연출하는 예술가, 비디오아트의 거장 빌 비올라를 만나다

    시간을 연출하는 예술가, 비디오아트의 거장 빌 비올라를 만나다

    극도의 느린 화면으로 삶의 본질적 문제와 인간의 내면을 성찰해 온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초기작부터 대표작까지 주요 작품 16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이우환과 그 친구들’ 기획전으로 열고 있는 ‘빌 비올라, 조우’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은 한국 현대미술 거장인 이우환 작가와 장르가 다르지만 예술관을 공유하는 작가들을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인 ‘이우환 공간’에서 소개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지난해 앤터니 곰리의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1951년 미국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 시러큐스대학에서 회화, 뉴미디어, 인지심리학을 공부한 비올라는 1972년부터 비디오 영상 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1973년 졸업 후 모교 에버슨미술관에서 비디오아트 기술자로 일하던 중 백남준을 만나 그의 조수로 일하며 비디오아트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다. 비올라는 초기작부터 시간을 재료로 삼은 다양한 실험적 영상 작업에 몰두했다. 일례로 ‘투영하는 연못’(1977~1979)은 숲에서 걸어 나와 물웅덩이 앞에 선 남자가 물을 향해 뛰어들려고 힘차게 도약하는 순간 화면이 정지한다. 언뜻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남자를 제외한 주변 풍경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시간을 물질로 보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작품이다.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극도의 슬로모션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작점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인사’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폰토르모의 회화 ‘방문’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고정된 하나의 카메라로 45초간 촬영한 영상을 10분 길이로 재생했다. 원작은 동정녀 마리아가 사촌에게 임신을 알리는 내용이지만 ‘인사’는 어떤 설명 없이 세 여인이 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 준다. 르네상스 회화를 닮은 화면의 색감과 구도 아래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미세하게 변화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감정이 관람객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세 명의 배우가 기쁨, 슬픔, 놀라움, 경악 등 4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을 1분간 촬영한 뒤 무려 81분으로 늘린 ‘아니마’(2002)는 흡사 초상화를 연상시킨다.비올라의 작품에는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등 명상적인 동양 사상이 짙게 배어 있다. 선불교, 이슬람 수피교, 기독교 신비주의 등에 두루 관심을 둔 덕분이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들과 영적 경험,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는 비올라의 영상 작품들을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지속해 온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감상하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이우환 공간에는 1970년대 작품 3점이 설치됐고, 본관 3층 대전시실에 ‘순교자 시리즈’(1994),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 등 1990년대 이후 작업들이 걸렸다. 내년 4월 4일까지. 부산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일산의 눈물/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일산의 눈물/김상연 논설위원

    이 얘기는 너무 유명해서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1990년대 초 1기 신도시 입주 때 서울의 집을 팔고 분당과 일산 가운데 일산을 택한 가정의 가장들 중엔 나중에 집값 때문에 배우자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심지어 이혼 위기까지 간 경우가 있다는 ‘웃픈’ 스토리다. 노태우 정부가 1기 신도시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일산은 분당과 난형난제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일산은 북한과 가까워 장차 통일시대에 뜰 미래성을 갖고 있었고 김대중(DJ)이라는 유력 대선 주자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정치적·인문학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등 주거지로서의 매력이 넘쳤다. 따라서 당시 일산을 택한 가장들의 판단력은 나름 합리적인 알고리즘을 갖고 있었다. 다만 분당에 비해 강남에서 멀다는 사실을 간과한 점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교통난만 빼면 일산의 주거 환경은 대한민국 어느 동네보다 밀리지 않는다. 드넓은 평지에 여유있는 아파트 간 거리, 아름다운 호수공원을 비롯해 곳곳에 접근성 높은 공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산은 출퇴근 걱정만 없다면 평생 살아도 좋은 곳이다. 그래도 집값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는 시대여서 일산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크다. 2020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따르면, 서울이 14.75%, 분당이 7.31% 오른 반면 일산은 5.29% 떨어졌다. 그런데 일산에 아파트를 가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꾸 ‘팀킬’을 해 일산 주민들의 서운함이 폭등한다. 김 장관은 취임 이후 3기 신도시를 발표해 일산 집값을 떨어뜨렸다는 지탄을 받은 데 이어 며칠 전엔 ‘5억원 이하의 주택을 살 때만 지원하는 디딤돌 대출을 일산에서는 받을 수 있다’고 발언해 일산 주민의 신경을 건드렸다. 김 장관의 주소지인 일산 하이파크시티 아파트 주민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수도권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물론 현재의 부동산 판세가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다. 일산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되면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행복한 나라가 될까. 강북은 강남에 박탈감을 갖고, 일산은 분당에 박탈감을 갖고, 지방은 수도권에 박탈감을 갖는 나라는 정상일까. 부동산이라는 불로소득이 모든 소득을 압도하는 이 시대에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오르면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는 걸까.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일산의 눈물이 마르더라도 다른 어딘가에서는 눈물이 비처럼 흘러 내릴 것이다.
  •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서울 중구 한길사 ‘순화동천’에서 그를 만났다. 새삼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이번에 신작 ‘그해 봄날’이 나왔기 때문이다.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에는 한국 현대사의 최전선에 섰던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가 담겼다. 그 책에 관한 이야기, 걸어온 책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김언호는 세상이 다 아는 우리나라 대표 출판인이다. 그는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그 이듬해에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45년 동안 우리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중요한 책들을 최량의 품격으로 펴낸 출판인이자 스스로 중요한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그동안 ‘책의 공화국에서’,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계보를 잇는 ‘그해 봄날’은 그의 정신적 수원(水源)이 돼 준 당대 현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현대 지성사라고 불릴 만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그해 봄날’의 현인들을 찾아 ‘그해 봄날’은 1980년 ‘서울의 봄’을 함축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봄이자 김언호 개인에게는 이 책 속 주인공들과 만나게 된 봄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어진 거인들을 그때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시대는 암담해져 갔지만 이분들과 새로운 미래를 구상했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감사하기만 하다. 코로나19와 함께 꼬박 1년여의 시간을 바친 이 책에서 그는 이분들에 대한 해설이나 논평을 가급적 삼가고 “해석을 앞세우지 않고 현인들 육성을 충실히 받아 적는 기록자”이고자 했다. 누군가의 치열한 생애는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역사가 된다. 이 책에 기록된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는 김언호의 시선을 통해 한 시대의 증언과 사표와 지도가 됐다. 그해 봄날부터 이분들이 건넨 정신사의 울림과 떨림이 아직도 깊고 융융하기만 하다. 그는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현대사의 인물지(誌)를 낱낱의 충실성과 정성스런 헌정으로 완성함으로써 스스로 ‘한 권의 책’이 됐다. 김 대표는 그분들과의 만남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공공재이고, 흘러간 옛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형임을 알려 준 것이다.“험난한 시절 저는 이 현인들을 만나고 책을 만들면서 불굴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길을 배웠습니다. 이 땅 젊은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현인들의 생각과 실천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목록은 함석헌, 김대중, 송건호, 리영희, 윤이상, 강원용, 안병무, 신영복, 이우성, 김진균, 이이화, 최영준, 이오덕, 이광주, 박태순, 최명희 선생들이다. 정치인, 사상가, 예술가, 언론인, 학자가 망라됐다. 그 가운데 그는 함석헌을 맨 앞에 수록했다. “인생의 스승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함석헌 선생을 꼽는다”는 그는 “선생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며 “지금도 우리에게 탕진되지 않는 감동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1980년대 지성사를 가로질렀던 함 선생은 걸출한 사상가이자 평화주의 종교인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특별히 내 기억에는 ‘수평선 너머’라는 시집을 남긴 시인으로 남아 있는 함 선생의 육성이 잠시 떠올랐다.●책과 함께하고 책을 확장해 간 삶 김 대표의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그는 거기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 밑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일과 책 만드는 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 손이 조금이라도 더 가면 반듯해지고 풍부해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책이 없었고 당연히 서점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 책방을 통해 책의 세계를 발견한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그야말로 황홀한 책의 난장이자 유토피아였다. 그곳에서 ‘사상계’를 만났다. 서울에서 대학 시절 동대문에 줄지어 서 있던 헌책방을 열심히 찾아 민족사적 해석과 전망을 내놓은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인문, 사회, 역사, 철학이 한 몸이라는 걸 배웠다. 그가 창립한 출판사 ‘한길’은 우리말로 ‘큰길’, ‘하나의 길’ 혹은 ‘마당’이나 ‘광장’을 함의한다. 어쩌면 그 ‘한길’로 김 대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엄혹한 시절을 걸어갔을 것이다. “너무도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시대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혹했던 시대가 더 치열한 사유와 고민과 전망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김 대표는 그러한 사유와 고민을 ‘책’이라는 전망으로 담아냈다. 책을 만드는 시간은 그에게 둘도 없이 귀한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시대정신이 사람들을 발견하게 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통찰하게 해 주었다. “1980년대를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때를 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시대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길사가 1979년 출간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당대의 금기를 깨면서 한국사의 실증과 해석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움직인 책인데 어쩌면 시대가 그 책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술회한다. 김 대표는 책을 만드는 일을 넘어 여러 출판 관련 일에 나선다. 그는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기 위원을 지냈고, 2005년부터는 한국·중국·일본·타이완·홍콩·오키나와의 출판인들과 동아시아출판인회를 조직해 출판운동에 나섰다. 1980년 후반엔 파주출판도시 건설, 1990년대 중반에는 예술인마을 헤이리를 설계에 큰 역할을 하면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출판 관련 운동을 확장하면서 그는 출판인들과 함께 출판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지속적인 실천을 해 왔다. 이 점, 김 대표를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축일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도, 예술인마을 헤이리도 모두 혼자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한 시대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운동으로만 가능했지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혼자 열 걸음 걷는 것보다 손잡고 함께 한 걸음 걷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책’이라는 단어에 꽂힌 사람이다. 원래 ‘冊’(책)이란 죽간을 끈으로 엮어 놓은 모양을 본뜬 일종의 상형문자가 아니었던가. 최근 책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문화가 발전했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책향’(冊香)과 함께 살아가는 ‘책’의 사제다. “책은 세계에 눈뜨게 해 주는 유일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그는 “책을 통해서만이 삶의 가치를 알아가고 개인과 사회를 설계해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그러한 믿음을 반세기 동안 책을 만들면서 굳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책’이라는 경이로운 발명품을 통해 인류는 진화해 왔고 한국 사회도 이만한 발전을 해온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디지털의 힘은 정보의 집적에 있고 종이책은 그야말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그의 움직일 수 없는 지론이었다. 책을 읽고 만들고 써온 그의 일생도 이러한 믿음 위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예술로서의 ‘한 권의 책’ 연전에 그는 출판인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통해 책에 바치는 헌사를 완성한 바 있다. 그는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서점에서 만났고 시간을 죽였으며 거기서 좋은 책을 발견하고 기뻐하지 않았던가. 옆구리에는 책을 끼고 가방에는 세계의 가능성을 담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렇게 한 시대의 빛으로 가득한 서점의 광휘를 아름답게 담은 결실이 ‘세계서점기행’이었다. 이제 그는 어떤 책을 읽고 내고 써 갈까? 그는 “고전 문제작을 읽음으로써 사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며 고전을 강조했다. 특별히 감염병과 관련해 재난의 근원과 진단과 처방에 관련한 인문학적 비전을 담은 책들을 생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책 만들기와 책 읽기 없이는 창조적이고 품격 있는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는 ‘한 권의 책’이 한 시대의 생각과 말씀을 담아낸다는 정신으로 쉬지 않고 책을 펴낼 것이다. 그는 국가가 개입해 도서관을 풍요롭게 구축해 가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역설했다.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 선진국들은 도시 곳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좋은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요. 책이라는 희망을 아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도서관 정책이 긴요합니다.” 김 대표는 ‘한 권의 책’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글이 아름답듯이 그것을 담아내는 책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영국 아티스트 윌리엄 모리스를 통해 ‘아름다운 책’을 배웠다는 그는 모리스가 말한 “인간의 예술품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 건축이고 그다음이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을 거듭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운명입니다. 운명을 걸고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그 고민은 제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의의이기도 합니다.” 책 만드는 운명을 사랑하는 ‘작가 김언호’의 생각과 실천이 ‘그해 봄날’처럼 쏟아지는 늦가을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97세대 트로이카’ 박용진·박주민·김종철 세대교체 기수 될까

    ‘97세대 트로이카’ 박용진·박주민·김종철 세대교체 기수 될까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70년대생을 가리키는 ‘97세대’가 최근 차세대 주자로 거명되는 등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배 그룹인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기득권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그 후배 세대들이 새로운 변화의 기수로 떠오른 것이다. 다만 일부 주자들의 약진만으로 세대교체를 말하기는 성급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70년대생은 42명으로 전체 300명 중 14%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 23명, 국민의힘 16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 시대전환 1명 등이다. 이들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건 민주당 소속 재선의 박용진(49)·박주민(47) 의원과 정의당 김종철(50) 대표 등 3인이다. 20대 국회에서 ‘유치원 3법’으로 이름을 알린 박용진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 세대교체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대권 도전 의사까지 밝힌 그는 15일 페이스북에 “정치인이 좌우의 논리와 여야의 진영을 넘어서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꽤 거시적인 메시지까지 썼다. 또 국민의힘 김세연 전 의원,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와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주제로 대담집도 발간한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세를 타며 20대 국회에 입성한 박주민 의원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주요 후보로 꼽힌다. 초선 때 득표율 1위로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재선에 성공한 뒤 당대표에 도전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당 지도부가 입법을 꺼리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법 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대표는 당대표 선거에서 현역 의원을 상대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며 ‘진보정당 2세대’ 시대를 열었다. 취임 직후부터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며 여야 거대 정당이 그동안 꺼려 온 정책 의제를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당 2중대’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했고 최근에는 낙태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에서 주도적 목소리를 내며 거대 정당들의 동참을 끌어내고 있다. 97세대는 민주화운동의 기수인 86세대의 바로 다음 세대로, 선배 세대의 전 분야에 걸친 왕성한 활동 탓에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그러다 몇 년 새 개인기와 정책으로 무장한 97세대 정치인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86그룹의 한 의원은 “운동권 출신들이 이제는 기득권이 됐다며 그만하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화 경험을 공유하는 86세대와 달리 97세대는 나이 외에는 공유하는 시대정신 등이 없다는 분석이다. 70년대생 한 의원은 “‘이제는 70년대생이 해 볼 차례’라고 말하기에는 왜 70년대생인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테헤란에서 암살된 알카에다 2인자, 젊을 적 이집트 프로축구 선수

    테헤란에서 암살된 알카에다 2인자, 젊을 적 이집트 프로축구 선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2인자로 알려진 아부 무함마드 알마스리(57, 본명은 압둘라 아흐마드 압둘라)가 딸 미리암(28)과 함께 지난 8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공작원들에 의해 암살됐다고 미국 정보 소식통들이 밝혔다. 놀라운 것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인 알카에다 수뇌부가 시아파 맹주 이란의 수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특종 보도한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전했다. 신문은 미국 정보 당국 소식통 네 명을 인용해 알카에다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며, 현재 알카에다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이어 2인자로 꼽혀온 알마스리가 미국의 의뢰를 받은 이스라엘 공작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 공격을 주도해 224명을 숨지게 한 인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현상금 1000만 달러에 지명 수배돼 있었다. 딸 미리암은 9·11 테러 주모자로 2011년 미군의 비밀 작전에 의해 살해된 오사마 빈라덴의 아들인 함자 빈라덴과 결혼했으나 그녀의 남편도 지난해 7월 미군 작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스라엘 공작원 둘은 지난 8월 7일 오후 9시쯤 테헤란 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탄 채 알마스리 부녀가 탑승한 르노 L90 세단을 뒤쫓아가 권총으로 사살했다. 공작원들은 총탄을 다섯 발 발사했는데 네 발은 차 안의 운전석으로 향했고, 나머지 한 발은 근처 다른 차량에 박혔다. 사건 직후 이란 관영 언론들은 레바논 역사 교수 하빕 다우드와 딸 마리암이 숨졌다고 보도했고, 레바논 뉴스채널인 MTV과 소셜미디어에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다우드를 헤즈볼라 멤버라고 밝혔다고 전했는데 알마스리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보당국은 알마스리가 2003년부터 이란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알카에다 2인자가 테헤란에 이토록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알카에다는 알마스리의 신변에 대해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으며 미국이나 이스라엘, 이란, 알카에다 등 어떤 나라도 그의 죽음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놀랍긴 한 가지다. 이란은 자국 내에 알카에다 대원이 없다며 NYT 보도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이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때때로 미디어에 거짓 정보를 퍼뜨려 이란과 알카에다 같은 조직을 연계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라고 비난했다.한편 알마스리는 1963년 이집트 북부 알가르비야 지구에서 태어나 이집트 프로축구 1부리그 선수로 뛴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이 침공한 뒤 아프간을 돕기 위해 지하디스트의 길에 뛰어들었다. 10년 소련이 물러난 뒤 그는 이집트로 귀국하려 했지만 거부당하자 아프간에 남은 뒤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 알카에다를 창립했다. 당시 170명의 발기인 가운데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초 빈라덴과 함께 수단 하르툼을 여행하며 군사 세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군벌 영웅 무함마드 파라 아이디드 수하로 들어가 무반동포 발사 훈련을 반군들에게 시켰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나온 1993년 미군의 모가디슈 작전 때 헬리콥터가 격추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마스리가 훈련시킨 성과였던 셈이다. 2000년 그는 알카에다 9인의 집행위원회 멤버에 올라 군사 훈련 책임을 떠맡았다. 동시에 아프리카 작전 책임을 맡아 2002년 케냐 몸바사 공격을 지시해 13명의 케냐인과 3명의 이스라엘 관광객 살해를 명했다. 2003년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란에 잠입해 초기에는 가택 연금에 처해졌으나 나중에는 자유롭게 나돌아다녔다. 2015년 이란당국은 알카에다 지도자 5명을 예멘에서 납치된 이란 외교관들과 교환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위장 술책이었다고 미국 정보당국은 결론 내렸다. 나아가 아프간, 파키스탄, 시리아까지 자유롭게 여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립 대테러 센터 국장 출신인 니콜라스 라스무센 같은 이는 알마스리의 죽음이 알카에다 기성 세대와 2011년 빈 라덴의 사망 이후 성장한 신세대 지하디스트들의 분절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그는 알카에다 운동이 작은 세포로 분절되고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고 갈파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박용진·박주민·김종철 ‘97세대 트로이카’…86그룹 교체시킬까

    박용진·박주민·김종철 ‘97세대 트로이카’…86그룹 교체시킬까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70년대생을 가리키는 ‘97세대’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7세대가 정치권은 물론 경제·사회 각 분야의 기득권으로 굳어진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을 상대로 세대교체의 물꼬를 틀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97세대의 특정 인물이 주목받을 뿐 세대교체는 이르다고 평가하는 등 97세대의 전면 등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70년대생은 42명으로 전체 300명 중 14%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23명으로 가장 많고 국민의힘 16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 시대전환 1명 등이다. 97세대 정치인 중 주목받는 건 민주당 소속 재선의 박용진(49)·박주민(47) 의원과 정의당 김종철(50) 대표 등 3인이다. 20대 국회에서 사립유치원 3법 등을 발의하며 이름을 알린 박용진 의원은 정치권 97세대 중 가장 직접적으로 세대교체론을 언급했다. 박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재벌 대기업들은 이미 세대교체가 이뤄져서 40대가 사장단을 차지했고 이들이 활력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정치가 제일 늦다. 정치권도 빨리 세대교체를 통한 시대교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공과 과를 별개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이 좌우의 논리와 여야의 진영을 넘어서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박 의원은 민주노동당 출신임에도 보수층 끌어안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세월호 변호사’로 유명세를 타며 20대 국회에 입성한 박주민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가 강점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힌다. 20대 국회에서 초선임에도 민주당 최고위원 득표 1위를 하면서 위상이 높아진 박주민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하며 체급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민감한 분야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현역의원을 상대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며 정의당의 세대교체를 이끌 구원투수로 주목된다.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닌 정의당만의 길을 가겠다고 강조한 김 대표가 내세운 건 ‘정책’이다. 거대 여야가 언급을 꺼리는 낙태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스타 항공 문제 등에 대해 김 대표가 목소리를 내면서 정의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직 세력은 없지만 개인기와 정책으로 무장한 97세대 정치인이 전면에 등장한 데 대해 환영한다는 평가가 있다. 86그룹의 한 의원은 “기득권이 된 운동권 출신들이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동질감으로 뭉친 86그룹과 달리 97세대는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 외에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없다는 이야기다. 70년대생 한 의원은 “‘이제는 70년대생이 해볼 차례’라고 말하기에는 왜 70년대생인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미국 대통령 선거 승패 가른 ‘인종·지역·교육수준의 분절’

    미국 대통령 선거 승패 가른 ‘인종·지역·교육수준의 분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아직 많은 우여곡절이 남아 있지만,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정리되고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관심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높았다. 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은 실시간으로 미국의 개표 동향을 보도했다. 미국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는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관심은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가 4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부터 시작해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등 다자간 국제기구의 무력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결정과 기존 체계의 무시가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은 미국이 주도했던 종전의 국제질서가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 다자간 협력 등 보편적 가치들 위에서 움직이던 그 시기가 소중했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됐다.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굳어지면서 향후 미국 정책의 변화 및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예측과 분석 보고서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매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예측과 전망은 큰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수많은 돌발 변수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책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와 이에 대한 반작용 등이 등장하고, 미국 내 정치권의 교착상태 등이 어우러지면서 흐지부지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변화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는 선거를 통해 확인된 미국 사회의 변화와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치에서 인물 위주의 접근에 익숙한 관계로 후보자 개인이 아닌 사회의 변화 자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국민의 의식과 힘의 균형을 보여 주는 창문 역할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016년 미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었으며, 2020년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향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대선 투표율 66.9%… 120여년 만에 최고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체 유권자 2억 3900만명 가운데 66.9%인 1억 6000만 2000명이 투표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이는 1900년 공화당 소속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을 때의 73.7% 이후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높은 투표율은 유권자의 적극적 참여를 상징하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측 지지자들의 동원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통해 본 미국 사회의 모습은 ‘분절’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인종, 지역 및 교육수준 등에 따라 미국 사회는 철저하게 분절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첫 번째 분절은 인종이다. 통상적으로 민주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지지율이 높으며, 공화당은 백인 지지율이 높은 정당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2016년 트럼프는 고졸 이하 백인 유권자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크게 힘입어 당선됐다. 이러한 인종에 따른 분절 현상은 2020년에도 큰 틀에서는 유지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인종에 따른 투표 성향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속되는 백인 인구 비중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투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비백인 유권자 가운데 고졸 이하의 학력을 보유한 경우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2016년 20%에서 25%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플로리다와 텍사스에 거주하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트럼프는 예상 외의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히스패닉계 전체로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30% 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였지만 쿠바에서 이주해 온 히스패닉계는 트럼프에게 과반의 지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각종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2016년 이후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8% 이상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은 점차 내부적으로 계층 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자산을 축적해 교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백인과 유사한 행태를 보여 주었다. 특히 종교적으로 낙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가톨릭과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묘한 연합이 이루어지면서 히스패닉계가 백인과 유사한 투표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비백인 유권자 사이에서의 분절과 변화 추세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애플·MS 진출한 네바다 민주 지지층 확대 두 번째 분절은 지역이다. 미국 정치의 도시와 농촌이라는 지역적 차원의 분절이 상당한 수준임을 극적으로 드러내었다. 전통적으로 2000년 이후 동부와 서부의 해안 지역은 민주당, 중부와 남부는 공화당으로 양분돼 왔다. 승자 독식제의 선거제도를 채택한 상황에서 일부 경합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는 20년간 변함없는 색깔로 표시되면서 정치적 역동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단조로운 색깔 밑에서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인구의 이동 등에 따라 지속적인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지속됐다. 1990년대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성장이 집중되면서 대졸 이상의 젊은층이 유입됐으며, 점차 대도시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 쪽으로 변화해 왔다. 반면 소규모 도시와 농촌은 인구 감소 및 기존 산업의 약화 등으로 인해 보수화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2200개 선거구의 득표율을 살펴보면 인구밀도가 평방마일당 100명 미만인 선거구 가운데 바이든은 평균 30% 내외의 득표율을 얻은 데 비해 인구밀도가 평방마일당 2000명이 넘는 170개 선거구에서는 55%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선거구별로 쏠림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1992년 선거에서는 특정 후부가 80% 이상을 득표한 선거구 비중은 1% 미만이었다. 또한 전체 선거구 가운데 민주, 공화 어느 한쪽에 60% 이상의 쏠림 현상을 보인 비중 역시 1992년에는 35%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전체 선거구의 절반 수준으로 증가했다. 후보들이 비슷한 수준으로 표를 나눠 가진 경합 선거구는 40%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당 쪽에 보다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0년간 민주당은 농업 지역의 정당에서 도시 중심의 정당으로 변화해 왔으며,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대도시의 성장은 더욱 유리하게 작용하게 됐다. 19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우드로 윌슨에 대한 농촌 지역의 지지는 도시 지역의 지지보다 훨씬 높았다. 정확히 1세기 이후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10대 대도시 가운데 9곳에서 승리했으며, 그 가운데 뉴욕·보스턴·덴버·애틀랜타·필라델피아·시카고에서는 과반 득표를 했다.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은 이러한 추세에 더해 대도시와 인접한 교외 지역의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트럼프가 농촌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역적으로 보면 전통적으로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간주됐던 지역들에서 민주당으로의 변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네바다주의 경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의 기업들이 진출한 지역을 중심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층이 증가하면서 민주당 지지층이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텍사스주의 경우 댈러스, 휴스턴, 오스틴 등 대도시에 동부와 서부에서 이주한 대졸 젊은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과거와 다른 접전 양상을 보여 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 번째 분절은 교육수준이었다. 교육수준에 따른 투표율 변화는 극적으로 나타났다. 유권자의 20% 이상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선거구의 경우 바이든에게 투표한 비중이 2016년보다 3.4% 증가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바이든에 대한 투표율이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 대졸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는 2016년에도 뚜렷하게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대졸 비율이 가장 높은 50개 선거구에서 2012년보다 9% 가까운 지지율 상승을 기록한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20년에도 반복됐다. 일반적으로 투표 성향과 소득수준의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득보다는 대학 졸업 여부로 대표되는 교육수준에 따른 투표 성향의 차이가 보다 두드러지면서 교육에 따른 분절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 지역과 소도시에 위치한 고졸 이하의 히스패닉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졸 이하 백인과 좀더 비슷한 투표 양상을 보인 반면, 도시에 거주하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소득수준은 낮은 20대들은 소득수준이 높으며 대학을 졸업한 유권자들과 유사한 투표 패턴을 보여 주었다. 세 가지 분절 가운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완화될 것으로 보이는 분절은 가장 분명하게 느껴지는 구별인 인종이다. 이제 백인 노조원들은 민주당의 확실한 지지자가 아니며, 자산을 축적해 교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히스패닉 유권자 역시 점차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임을 이번 선거는 보여 주었다. 반면 지역적 분절은 대도시 중심의 성장이 진행되면서 향후에도 계속 강화되며, 이러한 성향은 고학력자들의 대도시 선호로 인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트럼프 닮은 포퓰리스트 재등장 가능성 바이든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환경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유사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1990년 이래 지속돼 온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돼 왔던 계층과 지역들은 상실감에 시달려 왔으며,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을 키워 왔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 등의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이러한 포퓰리즘 등장의 흐름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조직화되고 더욱 강력한 발언권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된다.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점차 다양한 측면의 분절이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영·호남 지역갈등 구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수도권의 압도적인 영향력 강화 속에서 점차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소득의 양극화는 교육 및 거주 공간의 분절로 이어지고 있으며, 과거 존재했던 공통의 경험과 기억 대신 적대감을 키우고 있다. 복지 수요의 증가는 이미 문화적으로 단절된 세대들을 더욱 대립 구도로 몰고 갈 것이다. 정치가 이러한 분절의 확대 속에서 이를 부추길 것인지, 아니면 다시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될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여기는 인도] 생매장 됐던 신생아, 기적적으로 목숨 구한 사연

    [여기는 인도] 생매장 됐던 신생아, 기적적으로 목숨 구한 사연

    산 채로 땅에 파묻혔던 신생아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네팔과 맞닿은 인도 북부의 우타라칸드주 경찰은 농장에 파묻혀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다. 당시 아기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현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였다. 쿤단 싱 반다리라는 이름의 이 노동자는 아기의 얼굴이 흙바닥 밖으로 빼꼼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곧장 흙을 파헤쳐 아기를 꺼냈다. 성별이 공개되지 않은 아기는 돌과 흙, 나무와 풀뿌리 사이에서 미동도 없이 파묻혀 있었고, 얼굴을 포함한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최초 발견자와 동료들이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얼굴과 몸을 어루만졌지만 생명의 징후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농장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담요 등을 가져와 아기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마구 쏟아내며 아기를 살리려 애썼다. 이내 경찰이 도착했고 아기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은 아기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고, 현재는 안정적인 상태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이 아기를 산 채로 파묻은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인도에서 신생아, 특히 여자아이를 버리는 끔찍한 범죄는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난해 10월, 역시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채로 항아리에 갇힌 채 땅에 묻혔던 여자 아기가 구조됐었다. 2017년에는 역시 갓 태어난 여자 아기가 부모에 의해 가시덤불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한 인도에서는 여아 낙태나 생매장, 인신매매가 비일비재하다. 매년 50만 명의 여자아기가 낙태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는 초음파 기술이 도입되면서 여아 낙태가 급증했다. 2006년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1986년 이후 인도에서 낙태되거나 태어나자마자 살해된 여자 아기는 1000만 명에 이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쌍십일/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쌍십일/김상연 논설위원

    미국에서 매년 11월 넷째주 금요일은 연중 최대 할인행사와 대규모 쇼핑으로 떠들썩한 날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이날 부지런을 떨면 고가의 새 전자제품을 아주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 잠도 안 자고 줄을 서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국 유학생들이 목숨 걸듯 쇼핑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드디어 중국도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만들어 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이맘때쯤이면 화제가 되는 광군제(光棍節)다. 매년 11월 11일인 이날은 얼핏 들으면 중국 역사의 거창한 황제를 기념하는 날 같지만, 그 뜻을 알고 나면 좀 허탈해진다. 광군제의 한국식 발음은 ‘광곤절’이다. ‘곤’은 몽둥이를 뜻하는데, 연인이 없는 싱글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몽둥이 모양, 그리고 숫자 1과 비슷하다고 해서 11월 11일에 광군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상형문자를 발명한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한국에서 연인들이 11월 11일을 길쭉한 모양의 과자 이름을 따서 ‘빼빼로데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광군제는 ‘싱글들의 날’이다. 다만 광군제는 ‘광’이라는 글자를 ‘몽둥이’ 앞에 배치함으로써 철학적 깊이를 가미했다. ‘빛나는 싱글’이라…, 싱글은 외로운 것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형용모순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광군제 대신 ‘11’자 2개가 나란히 있다는 뜻으로 ‘솽스이’(?十一)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한국식 발음으론 ‘쌍십일’이다. 광군제는 원래 1990년대 초 중국의 일부 대학에서 여자친구가 없는 남학생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는 날로 시작됐는데, 2009년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대표가 쇼핑으로 외로움을 극복하자며 할인 이벤트를 시작한 이래 쇼핑 축제일로 변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 경제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광군제의 온·오프라인 총거래액이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의 그것을 훌쩍 넘어서 세계 최대 쇼핑의 날로 발돋움했다. 알리바바는 지난 1일부터 시작한 할인 행사로 11일 0시30분 현재 우리 돈으로 63조원어치나 팔았다. 주택 80만채도 판매되는 등 블랙 프라이데이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샤넬, 디오르 등 유럽 명품 브랜드와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도 가세해 매출을 올린다니 코로나19로 휘청거린 중국과 세계 경제에 광군제가 효자 노릇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외로운 싱글들이 본의 아니게(?) 세계 경제에 기여하게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신종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은 모두 연인들을 위한 날일 뿐 싱글들을 위한 날은 없다. 한국의 싱글들은 다 뭐하고 있나. 전국의 싱글들이여 단결하라! carlos@seoul.co.kr
  • [홍희경의 패스추리TV] #노필터… 는 아니고 진정성

    [홍희경의 패스추리TV] #노필터… 는 아니고 진정성

    우리가 진정성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쓰냐면, 빅카인즈 집계 54개 언론사에서 30여년 동안 이 단어를 쓴 기사가 18만 108개다. 게다가 점점 더 즐겨 쓰는 중이다. 1990년대 내내 560개 기사에 등장한 빈도가 2000년대엔 2만 1412개, 2010년대엔 14만 5233개로 는다. 아직 7주 남았지만 올해는 1만 2903개 기사에서 진정성이란 말을 썼다. 최근 기사량이 많다 해도, 예컨대 ‘무궁화’ 포함 기사는 90년대 7955개에서 2010년대 2만 7989개로 3.5배 정도로 늘었다. 진정성 포함 기사는 그동안 259.3배로 폭증했다. 그런데 실은 이 말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진실한 사정이라는 진정(眞情)이 있고, 참으로 틀림없다는 진정(眞正)도 있는데 여기에 ‘~성(性)’을 붙인 말은 사전에 없다. 그래도 누군가의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다들 용케 감별하고 주장도 한다. 사표가 반려된 부총리는 “진정성 담은 사의”라고 호소한다. 집단행동을 벌일 때 의사협회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갈구했다. 그 시기 간호사 격려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의사ㆍ간호사 갈라치기용이라고 의심받은 청와대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보다 집단 공통적인 감정도 있는데, 이를테면 일본은 한국에 진정성이 너무 없다. 진정성이란 말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2006년 9월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인물과사상에서 이 단어를 탐구했다. 그는 “그래도 노무현에게는 진정성이 있다”란 표현에서 단어를 발견했고 “북한 정권에 진정성이 안 느껴져”라는 보수 정당 회의 발언에서 유행을 예감했다. 북핵을 우려하는 보수와 노무현의 진정성을 믿는 진보. 즉, 보수 쪽은 말로는 한다 하지만 상응하는 실체가 없는 상황을 진정성 결여 상태로 봤다. 반면 진보 쪽은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도 헤아려야 할 ‘좋은 속마음’을 진정성으로 봤다. 동기가 좋다면 용서된다는 80년대식 품성론이 연상되는데, 그렇기에 ‘좋은 속마음’에 대한 믿음이 매일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의 일상성을 모욕한다고 우 교수는 우려했다. 이 지점에서 사고 친 연예인이나 기업도 ‘진정성 담아 사과하는’ 권리를 누리는데 유독 다주택자는, 의사는, 언론은 인증받지 못하는 지금의 진정성 작동공식이 이해될 듯 말 듯하다. 진정성을 꾸준히 연구한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진정성 권하는 사회를 ‘속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빗대 풀었다. 열사들이 희생한 시절에도 살아남아 속물이 된 채로 각자의 욕망에 맞춰 살기 때문에 상대에게 더욱 진정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러나 진정할 수도 없고 진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대라고 김 교수는 진단한다. 그는 “진정성의 이상은 ‘영광스러운 죽음’과 ‘부끄러운 생존’을 두 가지의 대조적인 삶의 형식으로 규정하고, 전자를 승인함으로써 삶의 세속적인 차원에 강한 ‘도덕적 폭력’을 행사한다”고 우려했다. 결국 진정성을 의심하고 감별하는 일은 상대를 향한 욕망이다. 필터가 기본값인 SNS 세상에서 벌어지는 #노필터 챌린지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욕망인 것과는 대비된다. 그럼에도 #노필터에서 진정성까지, 비록 사전엔 등재되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언젠가 둘 사이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요즘 SF 소재들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핵전쟁에 대한 공포나 핵전쟁 이후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다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가장 충격적인 SF는 1983년 미국 ABC에서 만든 TV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벌이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해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방영 당시 약 1억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역대 최고 시청률로 200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냉전 시대에는 미소 양대 강국이 핵전쟁의 키를 쥐고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이외 핵보유국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곳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입니다.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땐 소빙하기 올 수도 실제로 지난해 10월 미국 럿거스대, 콜로라도대 공동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발생 시 5000만~1억 2500만명이 숨지고 지구 전체 기온이 2~5도가량 떨어지면서 소(小)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에도 럿거스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인도·파키스탄 핵전쟁이 지구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핵전쟁 첫해 전 세계 식량 생산의 12%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듯싶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 미국 텍사스 리오그란데밸리대, 콜로라도 볼더대, 국립대기연구센터, 럿거스대,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연구소, 컬럼비아대,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캐나다 맥길대, 독일 라이프니츠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공동연구팀은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농업 생산 감소분을 어업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11일 밝혔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1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농업 생산량 20% 감소… 어류 큰 변화 없어 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간 핵전쟁 시나리오 5개와 미국·러시아 간 핵전쟁 시나리오를 갖고 지구 전체 농업생산량 변화, 어획량 변화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분석 결과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과 비슷한 파괴력인 16㏏급 핵폭탄 100개가 터지는 저강도 핵전쟁 상황에서도 낙진으로 인해 햇빛이 가려지고 온도가 떨어지면서 전 세계 농업생산량이 10~20%가량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어류 개체수는 크게 줄지 않아 전쟁 후 1~2년 동안 모든 동물성 단백질의 40%를 대체하는 등 농업생산량 감소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남획을 막고 어류 자원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입니다. 만약 이런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핵전쟁 발생 시 어류 자원도 30% 이상 줄어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이 발생해 국가·계층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핵전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 때문에도 식량 자원 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이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 새벽 예매로 들떴던 충무로, 그때 군밤 냄새… 영화 같은 추억 속으로

    새벽 예매로 들떴던 충무로, 그때 군밤 냄새… 영화 같은 추억 속으로

    지난 1월 시작된 코로나19가 11월이 되도록 지속되는 상황에서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4회 ‘추억의 극장가’ 편에 참여하기 위해 충무로역 1번 출구 앞에 모인 우리들은 눈앞의 대한극장을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1958년 개관해 초대형 스크린에 ‘벤허’, ‘마지막 황제’ 등 대작을 상영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테고, 2001년 11개 상영관의 멀티플렉스로 완전히 변신했을 때를 되돌아보는 이도 있을 터였다. 저마다의 나이에 따라 추억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기억은 바로 지난 11개월간의 일상일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고 올 초에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감염병의 습격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사람끼리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다는 것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절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그때 영화관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었고 오락 공간이었다. 돌아보면 어느새 전설처럼 그리운 시절이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앉아서 스크린 속의 이야기에 함께 빠져들며 같은 장면에서 소리 내어 함께 웃고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함께 울기도 했던…. 가을이 깊어 가는 주말 우리는 충무로를 거쳐 을지로와 종로까지 한때 ‘서울의 10대 개봉관’으로 불렸던 극장들을 따라서 걸어 보기로 했다. 사라지고 변화되고 그나마 남아 있기도 한 그 모습들을 찾아서.먼저 서울미래유산 산업노동 분야에 선정된 ‘충무로 인쇄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오래되고 활력을 잃은 듯한 분위기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영화산업의 발전과 함께 영화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형성된 충무로 인쇄골목은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인쇄산업 메카로서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산업과 함께 발전해 온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연말을 맞아 달력과 연하장, 다이어리 등을 진열해 놓은 가게 앞을 지날 때는 디지털 시대에도 인쇄물을 통해 시간을 관리하고 손글씨로 안부를 전하는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정겹게 되돌아보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만난 스카라극장 터. 지금은 아시아미디어타워 건물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 1935년에 1000석이 넘는 규모로 세워져 국내 초창기 극장 건축의 역사를 간직해 온 까닭에 2005년 문화재 등록이 예고되자 건물주가 재산권 침해라며 철거를 해 버린 것이다. 급속한 사회 변화로 근현대 서울 시민의 모습이 담긴 문화유산이 덧없이 사라져 버린 생생한 현장이다. 199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극장들이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해 갈 때도 스카라는 단관을 고수하며 국내 최대 스크린을 유지해 왔으나 반원형 현관 부분이 도로 쪽으로 튀어나온 독특한 모양새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전형을 70년 동안 보여 주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다. 서울미래유산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개별적 특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보전 방식이 그때도 있었다면, 문화재나 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이 그때도 지금처럼 높았다면…. 아쉬운 마음으로 대각선 방향의 명보극장으로 향하자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제는 뮤지컬과 연극 등의 공연을 주로 하는 명보아트홀로 바뀌었지만 1957년 개관한 이래 스카라극장과 마주 보며 관객몰이를 했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극장 앞 광장에 새겨진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은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오고, 광장 한쪽의 이순신 장군 생가터 표지석은 충무로라는 도로명의 유래까지 알려 준다.하지만 을지로로 접어들어 국도극장 터에 이르자 또다시 진한 아쉬움이 밀려든다. 문화재로 등록될 기미가 보이자 극장주가 건물을 허물어 버린 것은 이곳이 스카라보다 먼저였으니 1936년에 동양풍을 가미한 아름다운 르네상스식 대리석 건물로 세워진 국도극장은 1999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국도호텔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을 지나오면서 197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들 속의 인쇄 관련 업체들을 살펴봤고, 또한 1970년대에 완공된 세운상가 건물군을 지나쳐 온 까닭일까. 국도극장 터를 표시하는 기념 표석 앞에서 우리는 어느덧 1970년대를 추억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예매 시스템도 없이 단일 개봉관에서 신작 영화를 몇 달씩 상영했던 그 시절에는 이곳 국도극장에서도 아침부터 영화표를 예매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을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된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가 모두 이곳 국도극장에서 개봉됐으니 이른바 70년대 청년영화를 보기 위해 당시 을지로의 대표적인 극장이었던 이곳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을까.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70년대 산업화의 역군들은 극장에서 한국 영화가 보여 주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방황과 좌절에 공감하며 한편으로는 영화처럼 빛나는 삶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과 유신 시절의 억압을 잠시 잊은 채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이 극장 밖으로 나서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었듯 우리는 국도극장 터를 뒤로한 채 바로 앞 세운상가 3층 보행데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충무로와 나란히 종로로 이어지는 세운상가는 약 1㎞ 길이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로 일제강점기에 전쟁을 대비해 비워 둔 공터 자리에 세워져 각종 전자제품을 취급하며 명성을 날렸으나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고 강남이 부상하면서 급격히 침체에 빠졌다. 그래서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녹지축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있었으나 5년 전부터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다시세운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오디오와 비디오, 컴퓨터, 불법 복제 등 세운상가를 통해 보급되고 발달한 다양한 ‘신기술’과 ‘신문화’는 종합예술로서의 영화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시 정비된 세운상가의 3층 보행데크를 걸으면서 한국 영화와 극장 건물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이쪽은 기존의 제조 산업을 디지털 디바이스와 결합하고 우리가 지나온 인쇄골목 쪽 상가 구간은 인쇄산업과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을 결합해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다시 살리겠다고 하니 철거 대신 선택한 존치 재생이 다른 여러 산업과 문화에도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싶었다. 청계천을 지나는 구간에서는 세운상가군이 자연스럽게 공중 보행교로 연결되고 있어서 잠시 청계천을 내려다보는 시간도 가져 봤다.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지도 어느덧 15년. 산업화 시대를 지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진정한 현대화를 이뤄 가는 우리의 미래를 청계천 물길을 따라 상상해 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종로와 만나는 세운상가 끝자락에서 다시세운광장 건설 때 발굴한 조선시대 중부관아 터 유적을 둘러보고 9층 옥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종묘 숲을 보면서 서울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인가를 실감했다. 옥상에서 사방으로 둘러보는 도심은 현대식 빌딩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으니 다시 한번 개발과 보존에 관한 여러 생각이 교차한 순간이었다.다시세운옥상에서 서울의 기운을 가득 받아 안고 종로로 내려가서 서울극장 앞에 이르자 추억의 오징어구이와 군밤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길 건너 단성사는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새로 지은 빌딩의 이름 속에 흔적으로만 남았고, 피카디리극장도 광장의 핸드프린팅마저 지하로 내려가 옛 모습이 아니었지만 영화관으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다 하고 있다. 1960년대의 세기극장을 인수해 1979년 서울극장으로 개관한 이후 증축을 거듭하며 일찌감치 복합상영관 시대를 열었던 서울극장은 종로와 충무로 일대 영화의 역사를 대변하는 극장으로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은 허리우드극장 역시 서울미래유산인데, 1969년 낙원상가 건립과 동시에 개관했던 모습 그대로 이제는 노년층을 위한 실버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 방식으로 특화돼 어르신들을 위한 영화를 저렴한 관람료로 상영하는 그곳에는 모처럼 만나는 옛 영화들이 알록달록한 포스터로 가득했다.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낡은 게 된다.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이 시대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추억의 극장가를 걸어온 끝에 우리에게 다가온 화두는 결국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였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일정 - 제25회 경의선 숲길 걷기 ●출발 일시 11월 14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민주당 지지로 당선된 레이건… 매케인 부인 덕 본 바이든

    민주당 지지로 당선된 레이건… 매케인 부인 덕 본 바이든

    민주당 유권자 사로잡은 레이건 8년 집권2008년 부시 측근 40명 오바마 지지 선언올 공화당 유력 인사 750명 바이든 지지故매케인 텃밭 애리조나서 선거인단 확보양당정치 속 역사적 유연한 움직임 보여“이번 대선에서 저는 우리 당 후보가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이제 1년 6개월도 남지 않은 2022년 한국 대선에서 이 같은 선언을 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히틀러가 출마해도 같은 당이라면 지지할 것 같은 ‘정치적 부족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지만, 미국 현대사에서는 이 같은 정당을 초월한 선택이 선거는 물론 역사까지 바꾼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레이건 민주당원’과 ‘오바마콘’(오바마와 보수주의자의 합성어) 등 한국만큼 양극화된 미국 정치판에서 당파적 이해관계보다 후보의 자질을 먼저 살피고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했던 사례를 돌아본다. ●‘바이든 리퍼블리컨’의 탄생 미 대선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투표를 마친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가 취재진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찍고 온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그는 “평생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며 “당을 넘어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날인 2일에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USA투데이에 바이든을 지지하는 기고를 썼다. 그는 기고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모든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아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일에 자랑스러운 공화당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장면은 올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공화당 거물들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참군인’ 제임스 매티스까지 잇따라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 편에 서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인사는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과 전현직 상·하원 의원, 부시 행정부 인사 등 750명이 넘었다. 이들과 같이 바이든을 지지하기로 한 공화당원, 일명 ‘바이든 리퍼블리컨’은 이번 미 대선이 낳은 정치 신조어였다. 일부 외신들은 바이든 지지 의사를 투표일 전까지 숨긴 공화당 유권자를 4년 전 ‘샤이 트럼프’에 빗대 ‘히든 바이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제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 바이든은 공화당 텃밭이자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하며 11명의 선거인단을 챙겼다. 애리조나로서는 당의 ‘어른’이자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매케인을 조롱하는 등 정치적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준엄하게 심판한 셈이 됐다. 더불어 트럼프에게 실망한 일부 공화당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르몬교 성지이자 공화당 텃밭인 유타주의 이번 대선 투표율은 66%로, 이전 대선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 투표 열기가 다소 식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바이든이 유타주에서 받은 득표율은 1964년 이후 최고 수준인 37.2%였다. 비록 선거인단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공화당 텃밭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호평을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찰리 덴트 전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의제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온건·절제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안정시켜야 하며, 공화당은 이런 노력에는 협력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1980년대 대선 향배 가른 ‘레이건 민주당원’ 이 같은 공화당 인사들의 반트럼프 행렬은 과거 미 현대사를 관통한 초당적 지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임에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을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연 배경 가운데 하나도 바로 투표소에서 공화당 지지로 마음을 바꾼 민주당 유권자들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지역 등이 레이건의 강한 외교정책과 감세 정책에 동조하며 투표소에서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지로 탄생한 레이건 행정부는 냉전에서 승리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4년 재선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당신을 떠난 것이다’이기도 했다. 그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가 적지 않음을 알았고, 할리우드 배우노조위원장 출신답게 진보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레이건 덕분에 우파진영은 1990년대까지 더욱 공고한 지지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 공화당으로 돌아선 전통적 지지층을 되돌리기 위해 10년 넘게 분투해야 했던 민주당이었지만, 레이건의 사망 때는 당파를 초월해 깊은 애도를 보이기도 했다.●‘오바마콘’ 선거운동으로 집중 관심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경우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한 공화당 유권자를 의미하는 ‘오바마콘’이 그 좋은 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낸 찰스 프라이드 등 공화당계 인사 40여명이 오바마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오바마를 위한 공화당원’이라는 선거운동단체 등은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부시 행정부에 실망한 상태였고, 미국인들에게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실제 2008년 대선 출구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9%가 오바마를 찍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오바마콘’과 반대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매케인을 지지한 ‘매케인 민주당원’도 있었다.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민주당과의 입장 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 상원의원 신분으로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젤 밀러 전 조지아 주지사, 같은 민주당 소속 에드 코크 전 뉴욕 시장 등도 당 안팎의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파를 넘는 선택을 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시대를 막 내리게 한 배경 가운데 하나인 공화당 유권자들의 바이든 지지도 이러한 미 현대정치사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칼럼니스트 존 애블론은 올해 대선에 대한 CNN 기고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분열의 프리즘’으로 미국 정치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이런 초당적 인물들이 놀랍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미국 역사상 계속 있었던 위대한 초당적 움직임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레이건 민주당원, 오바마콘...미 대선 역사 바꾼 초당적 선택들

    레이건 민주당원, 오바마콘...미 대선 역사 바꾼 초당적 선택들

    “이번 대선에서 저는 우리 당 후보가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이제 1년 6개월도 남지 않은 2022년 한국 대선에서 이 같은 선언을 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히틀러가 출마해도 같은 당이라면 지지할 것 같은 ‘정치적 부족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지만, 미국 현대사에서는 이 같은 정당을 초월한 선택이 선거는 물론 역사까지 바꾼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레이건 민주당원’과 ‘오바마콘’(오바마와 보수주의자의 합성어) 등 한국만큼 양극화된 미국 정치판에서 당파적 이해관계보다 후보의 자질을 먼저 살피고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했던 사례를 돌아본다. ●바이든 편에 선 공화당원들 미 대선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투표를 마친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가 취재진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찍고 온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그는 “평생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며 “당을 넘어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날인 2일에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USA투데이에 바이든을 지지하는 기고를 썼다. 그는 기고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모든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아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일에 자랑스러운 공화당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장면은 올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공화당 거물들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참군인’ 제임스 매티스까지 잇따라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 편에 서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인사는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과 전현직 상·하원 의원, 부시 행정부 인사 등 750명이 넘었다. 이들과 같이 바이든을 지지하기로 한 공화당원, 일명 ‘바이든 리퍼블리컨’은 이번 미 대선이 낳은 정치 신조어였다. 일부 외신들은 바이든 지지 의사를 투표일 전까지 숨긴 공화당 유권자를 4년 전 ‘샤이 트럼프’에 빗대 ‘히든 바이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제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 바이든은 공화당 텃밭이자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하며 11명의 선거인단을 챙겼다. 애리조나로서는 당의 ‘어른’이자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매케인을 조롱하는 등 정치적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준엄하게 심판한 셈이 됐다. 더불어 트럼프에게 실망한 일부 공화당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르몬교 성지이자 공화당 텃밭인 유타주의 이번 대선 투표율은 66%로, 이전 대선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 투표 열기가 다소 식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바이든이 유타주에서 받은 득표율은 1964년 이후 최고 수준인 37.2%였다. 비록 선거인단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공화당 텃밭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호평을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찰리 덴트 전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의제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온건·절제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안정시켜야 하며, 공화당은 이런 노력에는 협력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이건도, 오바마도 초당적 지지 있었다 이 같은 공화당 인사들의 반트럼프 행렬은 과거 미 현대사를 관통한 초당적 지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임에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을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연 배경 가운데 하나도 바로 투표소에서 공화당 지지로 마음을 바꾼 민주당 유권자들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지역 등이 레이건의 강한 외교정책과 감세 정책에 동조하며 투표소에서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지로 탄생한 레이건 행정부는 냉전에서 승리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4년 재선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당신을 떠난 것이다’이기도 했다. 그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가 적지 않음을 알았고, 할리우드 배우노조위원장 출신답게 진보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레이건 덕분에 우파진영은 1990년대까지 더욱 공고한 지지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 공화당으로 돌아선 전통적 지지층을 되돌리기 위해 10년 넘게 분투해야 했던 민주당이었지만, 레이건의 사망 때는 당파를 초월해 깊은 애도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경우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한 공화당 유권자를 의미하는 ‘오바마콘’이 그 좋은 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낸 찰스 프라이드 등 공화당계 인사 40여명이 오바마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오바마를 위한 공화당원’이라는 선거운동단체 등은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부시 행정부에 실망한 상태였고, 미국인들에게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실제 2008년 대선 출구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9%가 오바마를 찍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오바마콘’과 반대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매케인을 지지한 ‘매케인 민주당원’도 있었다.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민주당과의 입장 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 밖에도 민주당 상원의원 신분으로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젤 밀러 전 조지아 주지사, 같은 민주당 소속 에드 코크 전 뉴욕 시장 등도 당 안팎의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파를 넘는 선택을 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시대를 막 내리게 한 배경 가운데 하나인 공화당 유권자들의 바이든 지지도 이러한 미 현대정치사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칼럼니스트 존 애블론은 올해 대선에 대한 CNN 기고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분열의 프리즘’으로 미국 정치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이런 초당적 인물들이 놀랍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미국 역사상 계속 있었던 위대한 초당적 움직임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내 나이가 어때서”… 지구촌 지도자 ‘70대 시니어’ 전성시대

    “내 나이가 어때서”… 지구촌 지도자 ‘70대 시니어’ 전성시대

    네타냐후·스가·두테르테·수치 모두 70대77세 우드워드·90세 버핏 현장서 맹활약유럽은 젊은 편… 마크롱 등 30~40대 여럿 다양한 경험과 경륜이 위기 대처에 도움변화·혁신 약하지만 극단 안 치우쳐 장점세대 격차 줄여 조화로운 공존 여부 관건70대 지도자 전성시대다.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인, 언론인까지 70대가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이 거의 70대다. 더욱이 지난 3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민주당 후보 모두 70대여서 도널드 트럼프나 조 바이든 중에서 누가 당선되든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세우게 됐다. 민주당 경선에 나왔던 버니 샌더스(79)와 엘리자베스 워런(71)도 모두 70대다.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나이와 리더십의 상관관계로 관심이 옮겨 가고 있다. ‘나이 70이 세계 지도자들에게는 50세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까지 등장했다. 70대가 50대처럼 아무 문제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2차대전 후 美베이비붐 세대 정부·의회 장기 포진 70대 정치 지도자는 미국만이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71) 이스라엘 총리, 스가 요시히데(72) 일본 총리,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75) 국가고문, 로드리고 두테르테(75) 필리핀 대통령도 모두 70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3년 뒤면 70대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의 야당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팔순이고, 2022년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년 뒤면 70세다. 이에 반해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확실히 젊은 편이다. 30대·40대 총리와 대통령이 여럿 있다. 또 51살에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60대 여성 지도자 3명이 유럽의 정치와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다. 20~30년 전에 비하면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철저한 체력 관리에 교육수준까지 높아져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길어졌다. 관건은 할아버지와 손주만큼이나 벌어진 세대 격차와 문화적·사회심리적 차이를 줄여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 평균 연령대가 199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올라갔다. 세대 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한국에 ‘386세대’가 있듯이 미국에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4년까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포진하고 있다. 1992년 47세의 빌 클린턴과 45세의 앨 고어가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하면서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보다 20년 이상 젊어졌다. 이어 빌 클린턴과 1946년생 동갑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50대에 대통령이 됐고, 이어 2008년에 1961년생인 버락 오바마가 48세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6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보다 한 살 적은 69세의 힐러리 클린턴과 70세의 트럼프가 맞붙어 트럼프가 당선됐다. 이로써 1946년에 태어난 미국 대통령은 세 명으로 늘어났다. 정치인이 제대로 활동하려면 체력과 판단력, 사고의 유연성과 포용력이 중요한데 과연 70~80대가 이런 자질을 유지하고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현실 앞에서 이 같은 추정은 힘을 잃었다. 트럼프는 현재 74세이고, 바이든은 78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959년생 61세로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80세이고,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두 살 적은 78세다. 펠로시는 2년 전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8시간이나 쉬지 않고 발언한 기록도 세웠다. 젊은 의원들도 따라오지 못할 강한 체력을 보여 줬다. 지난 3일 선거 결과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10월 말 현재 미 연방 하원의원 36명과 상원의원 14명의 나이가 75세 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신설할 ‘기후변화 차르’를 존 케리(76) 전 국무장관이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힐러리 클린턴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72)가 맡을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美 70대 지도자 공통점은 고학력 백인 남성 경제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마하의 현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90세이고, 루퍼트 머독은 89세다. 임원급 헤드헌팅회사인 크리스트콜더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새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나이가 15년 전보다 20% 높아졌고, 주요 기업 CEO 중 40%가 60대 이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국장은 77세로 50년 가까이 취재 현장에서 특종 보도와 책을 매년 펴내고 있다. 미 대선 후보 토론회를 진행했던 CBS방송의 레즐리 스탈도 79세다. 전문가들은 이들 70대를 베이비부머의 마지막 물결로 보고 있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 평균 나이는 미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은 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43) 프랑스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49) 캐나다 총리는 40대다. 핀란드 여성 총리는 35세이고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갓 마흔을 넘었다. 미 테네시대학이 수집 분석한 세계 지도자 자료에 따르면 세계 지도자들의 평균 나이는 1950년대 이후 꾸준히 높아진 반면 유럽 지도자들의 평균 연령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해 세계 평균에 크게 밑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의 총리나 대통령의 중간 나이값은 52세이고, 8명은 45세 이하라고 한다. 70대는 딱 한 명이다. 포린폴리시 최근호에 나이와 세계 지도자에 관한 글을 기고한 잭 골드스톤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미국의 70대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공통점으로 고학력의 백인 남성을 꼽았다. 미국 남성들은 확실히 윗세대보다 오래 건강하게 활동적으로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워싱턴DC와 뉴욕에 거주하는 남성의 2015년 기준 기대수명은 1990년보다 13.7년 늘어났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미국인들의 75%가 자신의 건강이 좋거나 매우 좋다고 답했다. 1991년에는 66%에 그쳤다.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 조직의 경직화 초래 우려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양호하지만 70대가 넘으면 가장 큰 걱정이 치매다. 트럼프나 바이든 모두 치매에 걸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 하버드대 의대가 올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75세가 넘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1995년 25%에서 18%로 크게 낮아졌다.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조기진단과 예방활동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골드스톤 교수는 여러 근거를 종합해 볼 때 70대 고령의 대통령이라고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이 현재 미국 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위기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젊은 세대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결단을 내리고 변화와 혁신에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지만,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은 낮은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적 차이가 있다지만, 최고 지도자의 고령은 주요 리스크 요소이고, 경험에서 나온 확고한 신념은 변화와 반대 의견을 수용하지 못해 조직을 경직되게 할 수도 있다. 인구 구성상 밀레니얼과 포스트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젊음과 변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지도층의 세대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밀레니얼과 포스트밀레니얼 세대는 나이나 성, 정체성보다는 개인 그 자체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또한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 조직에 대한 불신이 강한 편이다. 정당보다는 시민 사회단체에 더 관심이 많고 이데올로기보다는 기후변화와 같은 특정 이슈에 천착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젊은 세대를 제대로 알고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70대의 기성 정치·경제·사회 지도자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경험을 공유할 때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세대마다 전성기가 있고 역할이 있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파리 파사주는 자본, 베를린은 관료제·소비의 도시경성에선 선진 문물 동경과 식민지 우울 담긴 ‘산책’산책에 내재된 정주·유목… 우리 삶도 그와 닮은꼴“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 없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산책’은 그저 한가로운 단어 같다. 보고 즐길 것을 찾느라 분주한 여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근육도 제대로 쓰지 않고, 땀도 나지 않으니 운동에 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느긋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경성이라는 공간, 군중의 무리에서 식민지 근대인의 고독을 묘사했다. 이창남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신간 ‘도시와 산책자´는 1920~1930년대 파리, 베를린, 경성, 도쿄와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한 비평과 소설에서 산책의 의미를 찾는다. 산책은 부유한 이들 혹은 엘리트나 즐기는 행위였지만 근대 들어 대중에게까지 퍼졌다. 발터 베냐민은 ‘파사주 작품’을 통해 물신주의에 빠진 파리의 산책자를 포착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대대적인 재정비 사업으로 관통 대로가 뚫리고 기념비적 건축물과 거대 광장이 들어선다. 베냐민은 파사주(통행로)를 가리켜 ‘상품 자본의 신전’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은 사유하는 대신 파사주를 산책하며 새로운 물건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직장인’에서 베를린을 중심으로 관료화한 체제와 소비적 도취가 함께하는 대도시를 묘사한다. 체제 속에 붙잡힌 대중은 한편으로는 유목 생활을 꿈꾼다. 산책은 일상 탈출의 방식인 셈이다.일본 제국주의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 재정비 사업을 도쿄에 그대로 적용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도쿄는 파리의 아시아 버전이고,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경성은 식민지 로컬 버전이라고 봤다. 저자는 경성을 산책하던 이상, 박태원, 나혜석 같은 지식인들을 선진 문물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인의 우울이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상은 ‘오감도’와 ‘날개’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뚫린 길을 내달리면서도 공포에 젖은 아해들, 창부 아내를 두고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위에서 자살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근대인의 공포와 소외를 나타낸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작품들을 살펴본 저자는 도쿄의 외국인 산책자 슈테판 바크비츠의 기록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의 산책자까지 돌아본다. 산책이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경계 짓기를 허무는 긍정적 계기도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저자의 주관석 분석, 특히 독일 작품을 주로 소재로 삼아 난해한 부분이 다소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연구에서 1990년대로 바로 건너뛴 점도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느린 보행과 깊은 사색으로 상징되던 산책이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된 도시 속 삶과 함께 종말을 고하진 않았다는 주장은 생각해 볼 만하다. 저자는 산책에 내재한 ‘정주’와 ‘유목’의 개념을 뽑아내고, 두 개념이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교차하는 변증법적 삶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대도시로 대표되는 자본과 체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 다른 정주의 장소를 희구하는 탈출과 회복의 과정이 바로 산책인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7, 8마리밖에 없다” 초희귀 야생 검은 호랑이, 인도서 발견

    “7, 8마리밖에 없다” 초희귀 야생 검은 호랑이, 인도서 발견

    극히 보기 드문 검은 호랑이가 인도에서 카메라에 포착됐다. 5일(현지시간) ‘타임스나우’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오디샤주(州) 심플리팔 국립공원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흑호 한 마리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수멘 바지파이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당시 새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던 중 흑호를 발견했다”면서 “사실 처음에는 내가 본 호랑이가 흑호인줄 몰랐다”고 밝혔다. 작가는 또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몇 초간 머문 뒤 다시 나무 뒤로 걸어갔다. 야생이나 동물원에서 많은 호랑이를 봤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면서 “몇 초라도 직접 볼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도의 흑호는 벵골호랑이의 유전적 변이로, 1990년대 오디샤주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2007년 이곳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그 존재가 처음 보고된 뒤 대부분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8년 호랑이 개체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인도 흑호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즉 이들 흑호는 거의 멸종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 야생동물연구소의 전문가 비바시 판다브 박사는 앞서 타임스오브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흑호는 유전적 구조 때문에 특별한 존재”라면서도 “오디샤에 7, 8마리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흑호는 체모의 무늬가 굵고 짙어지는 가짜 멜라니즘인 ‘아분디즘’(Abundism)이 발현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난당카낭 동물공원에서는 검은색 줄무늬가 두껍고 짙어 흑호로 여겨지는 크리슈나와 슈브란슈라는 이름의 벵골호랑이 형제가 멜라닌 색소 과다증으로 모든 체모가 검어지는 흑색증인 ‘멜라니즘’(Melanism)이 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번에 야생에서 발견된 흑호 역시 외모를 보면 아분디즘이 발현한 아분디스틱(abundistic) 호랑이로 보이지만, 인도 쪽 전문가들은 이 역시 멜라니스틱(melanistic) 호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분디스틱 흑호의 탄생은 지금까지 벵골호랑이에게서만 보고됐다. 벵골호랑이 중에서는 이른바 백변증으로 불리는 루시즘(leucism)이 발현한 백호와 아분디즘이 발현한 흑호 사례가 많은데 이런 점으로 볼 때 백호 생산을 위해 호랑이간의 근친교배가 아분디즘 발현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수멘 바지파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밤 10시 전 잠들면 키 ‘쑥쑥’… 먹고 뿌리는 성장호르몬은 없다

    밤 10시 전 잠들면 키 ‘쑥쑥’… 먹고 뿌리는 성장호르몬은 없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키가 안 큰다 싶으면 혹시 모유를 덜 먹여서 그런 건 아닐까, 아침을 제대로 안 챙겨 줘서 그런 건 아닐까 죄책감을 느끼기 일쑤다.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품 등 관련 정보도 넘쳐난다. 그 가운데 하나인 성장호르몬을 살펴본다. 성장호르몬은 말 그대로 키를 자라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체내에서 뼈와 연골의 성장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을 분해하고 단백질 합성을 통해 근육량 증가를 촉진하는 구실을 한다.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처음으로 성장호르몬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건 1956년이었다. 1972년에는 성장호르몬의 생화학적 구조를 규명했고 1979년에는 성장호르몬 유전자도 발견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성장호르몬을 성장호르몬 결핍증 어린이에게 사용하는 것을 승인한 건 1985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성장호르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호르몬 결핍이 있는 저신장 아이들에서 키를 키우는 목적으로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호르몬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성장호르몬을 피하 주사로 투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은 성장호르몬결핍증(선천성, 뇌종양에 의한 기질성), 태어날 때부터 작은 아이, 만성신부전, 모든 것이 정상이지만 부모 키가 작아서 작은 아이로 성인이 됐을 때 남자 160㎝, 여자 150㎝ 미만으로 예측되는 아이 등이다. 서정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내분비과 교수는 3일 “성장호르몬 치료는 정확한 성장 속도를 측정해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면서 “성장 속도 평가는 적어도 3개월 간격으로 진행하며 성장 반응과 몸무게, 성장호르몬 농도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연령과 성별에서 키 순위가 100명 중 세 번째 이하로 작고 정밀 검사상 성장호르몬 결핍증으로 진단을 받은 경우, 골연령(뼈 나이)이 역연령(실제 나이)보다 어린 경우 등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성장호르몬 무분별한 치료 땐 부작용 많은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혹시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김재현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약을 투약했을 때 얻는 이득이 부작용 등으로 인한 손해보다 더 크다고 판단될 때 투약을 결정한다”면서 “성장호르몬은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약제”라고 말했다. 김진섭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가장 흔한 부작용은 5~10%에서 나타나는 손발이나 얼굴이 붓게 되는 수분 저류로 인한 말초 부종 증상이며 그 외에 이상감각, 관절 경직, 관절통, 근육통, 두통, 혈압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호르몬의 무분별한 치료나 검증되지 않은 약제들과 병용 사용할 경우 또는 기저질환을 고려하지 않은 치료 등에서는 이상반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 후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성장호르몬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많이 분비되기도 하고 적게 분비되기도 한다. 또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아이의 키 성장에 쓰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쓰일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영양 섭취, 충분한 수면, 즐거운 마음가짐,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신체 등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킴과 동시에 성장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불균형한 영양 섭취, 과식으로 인한 비만, 정신적 스트레스, 부족한 수면, 운동 부족, 질병 등은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저해하고 성장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창 키가 클 때는 하룻밤에도 3㎝씩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면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성장호르몬 하루 분비량의 약 60~70%가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분비되기 때문에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좋다. 아이들이 늦게 잠자리에 드는 이유 중 대부분은 부모의 생활습관을 닮기 때문이다.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아이는 키 성장을 위한 황금시간대를 놓치는 꼴이 되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보통 2~3세 아이들의 경우 하루 12~14시간 정도의 수면이 필요하고 4~6세 아이들은 11~12시간, 7세 이후는 매일 적어도 9~10시간의 수면시간이 필요하다. 몸이 아파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든지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설치게 될 경우 당연히 성장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 역시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심리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는다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저하돼 성장 속도가 늦춰지게 된다. ●스트레칭하면 성장판 주위 혈액순환 촉진 성장호르몬은 가만히 있을 때보다 몸을 일정한 강도 이상으로 움직일 때 더 많이 분비된다. 뛰어노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뛰는 것이 성장점을 자극해 성장호르몬 분비를 늘리는 것이다. 팔다리 관절을 쭉쭉 펴 주는 스트레칭 체조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시간, 장소 모두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몸을 쭉쭉 늘여 주는 효과 외에 성장판 가까이 위치한 관절과 근육을 자극해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키가 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운동은 단순히 아이의 키만 쑥쑥 늘여 주는 것이 아니다. 뼈와 마찬가지로 근육에도 성장판이 존재하는데 관절운동으로 인해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 근육 성장판이 자극을 받아 근육세포가 자라게 된다”면서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과 대사활동을 증가시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더욱 촉진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소아과 관련 전문의들은 ‘키가 커지는 비법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한욱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는 “성장호르몬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먹게 되면 분해돼 효과가 없어진다”면서 “많은 부모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먹는 약(한방약 포함)이란 없다. ‘먹는 성장호르몬’이나 ‘스프레이 성장호르몬’ 등은 성장호르몬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피해자 시계 들고 검문 통과”… 이춘재 ‘보여주기 수사’ 조롱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7)가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들추는 증언을 내놔 파장이 예상된다. 이춘재는 지난 2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8차 사건’ 재심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1980∼199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특별한 증거 은폐 행위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경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속한 수사 지시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에 연인원 200만명 이상의 경찰 인력을 동원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춘재 증언에 따르면 모든 게 보여 주기식 수사였다는 것이다. 이춘재는 “한 번은 한 피해자의 시계를 갖고 다니다가 검문에 걸렸고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파출소에 갔는데도 신분 확인만 하고 끝났다”면서 “시계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주웠다고 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들을 여러 번 마주치고 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 이상자에 대해 탐문수사를 했지 나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뭘 물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춘재는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같은 해 9월 첫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강간 범행을 저질러 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춘재가 강간 범행으로 처벌받았더라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찰서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강간 사건으로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받았고 피해자와의 대질 조사도 예정돼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자 신분으로 수사한 적은 없지만,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세 차례 조사하면서 혈액형과 족적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풀어 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보여주기식 수사를 한 것 같다”...이춘재 ‘경찰수사’ 조롱

    “보여주기식 수사를 한 것 같다”...이춘재 ‘경찰수사’ 조롱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7)가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들추는 증언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이춘재는 2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1980∼199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특별한 증거 은폐행위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경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속한 수사 지시와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 수사에 연인원 200만명 이상을 동원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춘재 증언에 따르면 그 모든 게 보여주기식 수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번은 한 피해자의 시계를 갖고 다니다가 검문에 걸렸고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파출소에 갔는데도 신분 확인만 하고 끝났다”며 “시계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주웠다고 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들을 여러 번 마주치고 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 이상자에 대해 탐문수사를 했지, 나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뭘 물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춘재는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같은 해 9월 첫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강간 범행을 해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춘재가 강간 범행으로 처벌받았더라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찰서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강간 사건으로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받았고 피해자와 대질 조사도 예정돼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앞서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자 신분으로 수사한 적은 없지만,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3차례 조사하면서 혈액형과 족적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풀어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춘재가 저지른 1989년 7월 발생한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에서는 당시 담당 경찰관이 실종된 초등학생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드러났고 8차 사건에서는 범인으로 지목한 윤성여(53) 씨를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아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혐의가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현장에서 확보한 혈액형과 족적이 이춘재의 것과 다르게 나온 이유는 지금과 비교해 정확도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당시 과학수사 기법의 한계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경찰의 잘못과 수사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발생부터 현재까지 상황과 과오를 담은 백서를 제작해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70∼80년대에는 전형적인 유형의 범죄, 동기가 뚜렷한 사건 위주로 수사하다 보니 이런 사건에 대한 수사기법에 의존해 피해자 주변에 대한 탐문이 중점적으로 이뤄져 동기 없는 범인을 추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춘재는 전날 법정에서 “나는 욕심이 없고 밖에 있을 때 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교도소에 있는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조두순이 나간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나간다고 하면 더한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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