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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쌍십일/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쌍십일/김상연 논설위원

    미국에서 매년 11월 넷째주 금요일은 연중 최대 할인행사와 대규모 쇼핑으로 떠들썩한 날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이날 부지런을 떨면 고가의 새 전자제품을 아주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 잠도 안 자고 줄을 서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국 유학생들이 목숨 걸듯 쇼핑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드디어 중국도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만들어 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이맘때쯤이면 화제가 되는 광군제(光棍節)다. 매년 11월 11일인 이날은 얼핏 들으면 중국 역사의 거창한 황제를 기념하는 날 같지만, 그 뜻을 알고 나면 좀 허탈해진다. 광군제의 한국식 발음은 ‘광곤절’이다. ‘곤’은 몽둥이를 뜻하는데, 연인이 없는 싱글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몽둥이 모양, 그리고 숫자 1과 비슷하다고 해서 11월 11일에 광군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상형문자를 발명한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한국에서 연인들이 11월 11일을 길쭉한 모양의 과자 이름을 따서 ‘빼빼로데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광군제는 ‘싱글들의 날’이다. 다만 광군제는 ‘광’이라는 글자를 ‘몽둥이’ 앞에 배치함으로써 철학적 깊이를 가미했다. ‘빛나는 싱글’이라…, 싱글은 외로운 것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형용모순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광군제 대신 ‘11’자 2개가 나란히 있다는 뜻으로 ‘솽스이’(?十一)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한국식 발음으론 ‘쌍십일’이다. 광군제는 원래 1990년대 초 중국의 일부 대학에서 여자친구가 없는 남학생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는 날로 시작됐는데, 2009년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대표가 쇼핑으로 외로움을 극복하자며 할인 이벤트를 시작한 이래 쇼핑 축제일로 변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 경제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광군제의 온·오프라인 총거래액이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의 그것을 훌쩍 넘어서 세계 최대 쇼핑의 날로 발돋움했다. 알리바바는 지난 1일부터 시작한 할인 행사로 11일 0시30분 현재 우리 돈으로 63조원어치나 팔았다. 주택 80만채도 판매되는 등 블랙 프라이데이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샤넬, 디오르 등 유럽 명품 브랜드와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도 가세해 매출을 올린다니 코로나19로 휘청거린 중국과 세계 경제에 광군제가 효자 노릇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외로운 싱글들이 본의 아니게(?) 세계 경제에 기여하게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신종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은 모두 연인들을 위한 날일 뿐 싱글들을 위한 날은 없다. 한국의 싱글들은 다 뭐하고 있나. 전국의 싱글들이여 단결하라! carlos@seoul.co.kr
  • [홍희경의 패스추리TV] #노필터… 는 아니고 진정성

    [홍희경의 패스추리TV] #노필터… 는 아니고 진정성

    우리가 진정성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쓰냐면, 빅카인즈 집계 54개 언론사에서 30여년 동안 이 단어를 쓴 기사가 18만 108개다. 게다가 점점 더 즐겨 쓰는 중이다. 1990년대 내내 560개 기사에 등장한 빈도가 2000년대엔 2만 1412개, 2010년대엔 14만 5233개로 는다. 아직 7주 남았지만 올해는 1만 2903개 기사에서 진정성이란 말을 썼다. 최근 기사량이 많다 해도, 예컨대 ‘무궁화’ 포함 기사는 90년대 7955개에서 2010년대 2만 7989개로 3.5배 정도로 늘었다. 진정성 포함 기사는 그동안 259.3배로 폭증했다. 그런데 실은 이 말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진실한 사정이라는 진정(眞情)이 있고, 참으로 틀림없다는 진정(眞正)도 있는데 여기에 ‘~성(性)’을 붙인 말은 사전에 없다. 그래도 누군가의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다들 용케 감별하고 주장도 한다. 사표가 반려된 부총리는 “진정성 담은 사의”라고 호소한다. 집단행동을 벌일 때 의사협회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갈구했다. 그 시기 간호사 격려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의사ㆍ간호사 갈라치기용이라고 의심받은 청와대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보다 집단 공통적인 감정도 있는데, 이를테면 일본은 한국에 진정성이 너무 없다. 진정성이란 말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2006년 9월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인물과사상에서 이 단어를 탐구했다. 그는 “그래도 노무현에게는 진정성이 있다”란 표현에서 단어를 발견했고 “북한 정권에 진정성이 안 느껴져”라는 보수 정당 회의 발언에서 유행을 예감했다. 북핵을 우려하는 보수와 노무현의 진정성을 믿는 진보. 즉, 보수 쪽은 말로는 한다 하지만 상응하는 실체가 없는 상황을 진정성 결여 상태로 봤다. 반면 진보 쪽은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도 헤아려야 할 ‘좋은 속마음’을 진정성으로 봤다. 동기가 좋다면 용서된다는 80년대식 품성론이 연상되는데, 그렇기에 ‘좋은 속마음’에 대한 믿음이 매일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의 일상성을 모욕한다고 우 교수는 우려했다. 이 지점에서 사고 친 연예인이나 기업도 ‘진정성 담아 사과하는’ 권리를 누리는데 유독 다주택자는, 의사는, 언론은 인증받지 못하는 지금의 진정성 작동공식이 이해될 듯 말 듯하다. 진정성을 꾸준히 연구한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진정성 권하는 사회를 ‘속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빗대 풀었다. 열사들이 희생한 시절에도 살아남아 속물이 된 채로 각자의 욕망에 맞춰 살기 때문에 상대에게 더욱 진정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러나 진정할 수도 없고 진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대라고 김 교수는 진단한다. 그는 “진정성의 이상은 ‘영광스러운 죽음’과 ‘부끄러운 생존’을 두 가지의 대조적인 삶의 형식으로 규정하고, 전자를 승인함으로써 삶의 세속적인 차원에 강한 ‘도덕적 폭력’을 행사한다”고 우려했다. 결국 진정성을 의심하고 감별하는 일은 상대를 향한 욕망이다. 필터가 기본값인 SNS 세상에서 벌어지는 #노필터 챌린지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욕망인 것과는 대비된다. 그럼에도 #노필터에서 진정성까지, 비록 사전엔 등재되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언젠가 둘 사이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요즘 SF 소재들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핵전쟁에 대한 공포나 핵전쟁 이후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다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가장 충격적인 SF는 1983년 미국 ABC에서 만든 TV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벌이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해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방영 당시 약 1억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역대 최고 시청률로 200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냉전 시대에는 미소 양대 강국이 핵전쟁의 키를 쥐고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이외 핵보유국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곳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입니다.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땐 소빙하기 올 수도 실제로 지난해 10월 미국 럿거스대, 콜로라도대 공동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발생 시 5000만~1억 2500만명이 숨지고 지구 전체 기온이 2~5도가량 떨어지면서 소(小)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에도 럿거스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인도·파키스탄 핵전쟁이 지구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핵전쟁 첫해 전 세계 식량 생산의 12%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듯싶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 미국 텍사스 리오그란데밸리대, 콜로라도 볼더대, 국립대기연구센터, 럿거스대,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연구소, 컬럼비아대,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캐나다 맥길대, 독일 라이프니츠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공동연구팀은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농업 생산 감소분을 어업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11일 밝혔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1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농업 생산량 20% 감소… 어류 큰 변화 없어 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간 핵전쟁 시나리오 5개와 미국·러시아 간 핵전쟁 시나리오를 갖고 지구 전체 농업생산량 변화, 어획량 변화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분석 결과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과 비슷한 파괴력인 16㏏급 핵폭탄 100개가 터지는 저강도 핵전쟁 상황에서도 낙진으로 인해 햇빛이 가려지고 온도가 떨어지면서 전 세계 농업생산량이 10~20%가량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어류 개체수는 크게 줄지 않아 전쟁 후 1~2년 동안 모든 동물성 단백질의 40%를 대체하는 등 농업생산량 감소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남획을 막고 어류 자원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입니다. 만약 이런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핵전쟁 발생 시 어류 자원도 30% 이상 줄어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이 발생해 국가·계층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핵전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 때문에도 식량 자원 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이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 새벽 예매로 들떴던 충무로, 그때 군밤 냄새… 영화 같은 추억 속으로

    새벽 예매로 들떴던 충무로, 그때 군밤 냄새… 영화 같은 추억 속으로

    지난 1월 시작된 코로나19가 11월이 되도록 지속되는 상황에서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4회 ‘추억의 극장가’ 편에 참여하기 위해 충무로역 1번 출구 앞에 모인 우리들은 눈앞의 대한극장을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1958년 개관해 초대형 스크린에 ‘벤허’, ‘마지막 황제’ 등 대작을 상영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테고, 2001년 11개 상영관의 멀티플렉스로 완전히 변신했을 때를 되돌아보는 이도 있을 터였다. 저마다의 나이에 따라 추억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기억은 바로 지난 11개월간의 일상일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고 올 초에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감염병의 습격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사람끼리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다는 것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절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그때 영화관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었고 오락 공간이었다. 돌아보면 어느새 전설처럼 그리운 시절이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앉아서 스크린 속의 이야기에 함께 빠져들며 같은 장면에서 소리 내어 함께 웃고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함께 울기도 했던…. 가을이 깊어 가는 주말 우리는 충무로를 거쳐 을지로와 종로까지 한때 ‘서울의 10대 개봉관’으로 불렸던 극장들을 따라서 걸어 보기로 했다. 사라지고 변화되고 그나마 남아 있기도 한 그 모습들을 찾아서.먼저 서울미래유산 산업노동 분야에 선정된 ‘충무로 인쇄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오래되고 활력을 잃은 듯한 분위기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영화산업의 발전과 함께 영화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형성된 충무로 인쇄골목은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인쇄산업 메카로서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산업과 함께 발전해 온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연말을 맞아 달력과 연하장, 다이어리 등을 진열해 놓은 가게 앞을 지날 때는 디지털 시대에도 인쇄물을 통해 시간을 관리하고 손글씨로 안부를 전하는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정겹게 되돌아보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만난 스카라극장 터. 지금은 아시아미디어타워 건물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 1935년에 1000석이 넘는 규모로 세워져 국내 초창기 극장 건축의 역사를 간직해 온 까닭에 2005년 문화재 등록이 예고되자 건물주가 재산권 침해라며 철거를 해 버린 것이다. 급속한 사회 변화로 근현대 서울 시민의 모습이 담긴 문화유산이 덧없이 사라져 버린 생생한 현장이다. 199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극장들이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해 갈 때도 스카라는 단관을 고수하며 국내 최대 스크린을 유지해 왔으나 반원형 현관 부분이 도로 쪽으로 튀어나온 독특한 모양새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전형을 70년 동안 보여 주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다. 서울미래유산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개별적 특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보전 방식이 그때도 있었다면, 문화재나 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이 그때도 지금처럼 높았다면…. 아쉬운 마음으로 대각선 방향의 명보극장으로 향하자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제는 뮤지컬과 연극 등의 공연을 주로 하는 명보아트홀로 바뀌었지만 1957년 개관한 이래 스카라극장과 마주 보며 관객몰이를 했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극장 앞 광장에 새겨진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은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오고, 광장 한쪽의 이순신 장군 생가터 표지석은 충무로라는 도로명의 유래까지 알려 준다.하지만 을지로로 접어들어 국도극장 터에 이르자 또다시 진한 아쉬움이 밀려든다. 문화재로 등록될 기미가 보이자 극장주가 건물을 허물어 버린 것은 이곳이 스카라보다 먼저였으니 1936년에 동양풍을 가미한 아름다운 르네상스식 대리석 건물로 세워진 국도극장은 1999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국도호텔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을 지나오면서 197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들 속의 인쇄 관련 업체들을 살펴봤고, 또한 1970년대에 완공된 세운상가 건물군을 지나쳐 온 까닭일까. 국도극장 터를 표시하는 기념 표석 앞에서 우리는 어느덧 1970년대를 추억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예매 시스템도 없이 단일 개봉관에서 신작 영화를 몇 달씩 상영했던 그 시절에는 이곳 국도극장에서도 아침부터 영화표를 예매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을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된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가 모두 이곳 국도극장에서 개봉됐으니 이른바 70년대 청년영화를 보기 위해 당시 을지로의 대표적인 극장이었던 이곳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을까.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70년대 산업화의 역군들은 극장에서 한국 영화가 보여 주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방황과 좌절에 공감하며 한편으로는 영화처럼 빛나는 삶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과 유신 시절의 억압을 잠시 잊은 채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이 극장 밖으로 나서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었듯 우리는 국도극장 터를 뒤로한 채 바로 앞 세운상가 3층 보행데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충무로와 나란히 종로로 이어지는 세운상가는 약 1㎞ 길이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로 일제강점기에 전쟁을 대비해 비워 둔 공터 자리에 세워져 각종 전자제품을 취급하며 명성을 날렸으나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고 강남이 부상하면서 급격히 침체에 빠졌다. 그래서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녹지축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있었으나 5년 전부터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다시세운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오디오와 비디오, 컴퓨터, 불법 복제 등 세운상가를 통해 보급되고 발달한 다양한 ‘신기술’과 ‘신문화’는 종합예술로서의 영화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시 정비된 세운상가의 3층 보행데크를 걸으면서 한국 영화와 극장 건물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이쪽은 기존의 제조 산업을 디지털 디바이스와 결합하고 우리가 지나온 인쇄골목 쪽 상가 구간은 인쇄산업과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을 결합해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다시 살리겠다고 하니 철거 대신 선택한 존치 재생이 다른 여러 산업과 문화에도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싶었다. 청계천을 지나는 구간에서는 세운상가군이 자연스럽게 공중 보행교로 연결되고 있어서 잠시 청계천을 내려다보는 시간도 가져 봤다.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지도 어느덧 15년. 산업화 시대를 지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진정한 현대화를 이뤄 가는 우리의 미래를 청계천 물길을 따라 상상해 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종로와 만나는 세운상가 끝자락에서 다시세운광장 건설 때 발굴한 조선시대 중부관아 터 유적을 둘러보고 9층 옥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종묘 숲을 보면서 서울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인가를 실감했다. 옥상에서 사방으로 둘러보는 도심은 현대식 빌딩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으니 다시 한번 개발과 보존에 관한 여러 생각이 교차한 순간이었다.다시세운옥상에서 서울의 기운을 가득 받아 안고 종로로 내려가서 서울극장 앞에 이르자 추억의 오징어구이와 군밤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길 건너 단성사는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새로 지은 빌딩의 이름 속에 흔적으로만 남았고, 피카디리극장도 광장의 핸드프린팅마저 지하로 내려가 옛 모습이 아니었지만 영화관으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다 하고 있다. 1960년대의 세기극장을 인수해 1979년 서울극장으로 개관한 이후 증축을 거듭하며 일찌감치 복합상영관 시대를 열었던 서울극장은 종로와 충무로 일대 영화의 역사를 대변하는 극장으로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은 허리우드극장 역시 서울미래유산인데, 1969년 낙원상가 건립과 동시에 개관했던 모습 그대로 이제는 노년층을 위한 실버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 방식으로 특화돼 어르신들을 위한 영화를 저렴한 관람료로 상영하는 그곳에는 모처럼 만나는 옛 영화들이 알록달록한 포스터로 가득했다.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낡은 게 된다.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이 시대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추억의 극장가를 걸어온 끝에 우리에게 다가온 화두는 결국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였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일정 - 제25회 경의선 숲길 걷기 ●출발 일시 11월 14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민주당 지지로 당선된 레이건… 매케인 부인 덕 본 바이든

    민주당 지지로 당선된 레이건… 매케인 부인 덕 본 바이든

    민주당 유권자 사로잡은 레이건 8년 집권2008년 부시 측근 40명 오바마 지지 선언올 공화당 유력 인사 750명 바이든 지지故매케인 텃밭 애리조나서 선거인단 확보양당정치 속 역사적 유연한 움직임 보여“이번 대선에서 저는 우리 당 후보가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이제 1년 6개월도 남지 않은 2022년 한국 대선에서 이 같은 선언을 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히틀러가 출마해도 같은 당이라면 지지할 것 같은 ‘정치적 부족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지만, 미국 현대사에서는 이 같은 정당을 초월한 선택이 선거는 물론 역사까지 바꾼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레이건 민주당원’과 ‘오바마콘’(오바마와 보수주의자의 합성어) 등 한국만큼 양극화된 미국 정치판에서 당파적 이해관계보다 후보의 자질을 먼저 살피고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했던 사례를 돌아본다. ●‘바이든 리퍼블리컨’의 탄생 미 대선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투표를 마친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가 취재진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찍고 온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그는 “평생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며 “당을 넘어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날인 2일에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USA투데이에 바이든을 지지하는 기고를 썼다. 그는 기고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모든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아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일에 자랑스러운 공화당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장면은 올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공화당 거물들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참군인’ 제임스 매티스까지 잇따라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 편에 서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인사는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과 전현직 상·하원 의원, 부시 행정부 인사 등 750명이 넘었다. 이들과 같이 바이든을 지지하기로 한 공화당원, 일명 ‘바이든 리퍼블리컨’은 이번 미 대선이 낳은 정치 신조어였다. 일부 외신들은 바이든 지지 의사를 투표일 전까지 숨긴 공화당 유권자를 4년 전 ‘샤이 트럼프’에 빗대 ‘히든 바이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제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 바이든은 공화당 텃밭이자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하며 11명의 선거인단을 챙겼다. 애리조나로서는 당의 ‘어른’이자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매케인을 조롱하는 등 정치적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준엄하게 심판한 셈이 됐다. 더불어 트럼프에게 실망한 일부 공화당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르몬교 성지이자 공화당 텃밭인 유타주의 이번 대선 투표율은 66%로, 이전 대선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 투표 열기가 다소 식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바이든이 유타주에서 받은 득표율은 1964년 이후 최고 수준인 37.2%였다. 비록 선거인단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공화당 텃밭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호평을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찰리 덴트 전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의제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온건·절제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안정시켜야 하며, 공화당은 이런 노력에는 협력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1980년대 대선 향배 가른 ‘레이건 민주당원’ 이 같은 공화당 인사들의 반트럼프 행렬은 과거 미 현대사를 관통한 초당적 지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임에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을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연 배경 가운데 하나도 바로 투표소에서 공화당 지지로 마음을 바꾼 민주당 유권자들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지역 등이 레이건의 강한 외교정책과 감세 정책에 동조하며 투표소에서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지로 탄생한 레이건 행정부는 냉전에서 승리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4년 재선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당신을 떠난 것이다’이기도 했다. 그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가 적지 않음을 알았고, 할리우드 배우노조위원장 출신답게 진보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레이건 덕분에 우파진영은 1990년대까지 더욱 공고한 지지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 공화당으로 돌아선 전통적 지지층을 되돌리기 위해 10년 넘게 분투해야 했던 민주당이었지만, 레이건의 사망 때는 당파를 초월해 깊은 애도를 보이기도 했다.●‘오바마콘’ 선거운동으로 집중 관심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경우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한 공화당 유권자를 의미하는 ‘오바마콘’이 그 좋은 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낸 찰스 프라이드 등 공화당계 인사 40여명이 오바마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오바마를 위한 공화당원’이라는 선거운동단체 등은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부시 행정부에 실망한 상태였고, 미국인들에게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실제 2008년 대선 출구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9%가 오바마를 찍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오바마콘’과 반대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매케인을 지지한 ‘매케인 민주당원’도 있었다.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민주당과의 입장 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 상원의원 신분으로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젤 밀러 전 조지아 주지사, 같은 민주당 소속 에드 코크 전 뉴욕 시장 등도 당 안팎의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파를 넘는 선택을 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시대를 막 내리게 한 배경 가운데 하나인 공화당 유권자들의 바이든 지지도 이러한 미 현대정치사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칼럼니스트 존 애블론은 올해 대선에 대한 CNN 기고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분열의 프리즘’으로 미국 정치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이런 초당적 인물들이 놀랍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미국 역사상 계속 있었던 위대한 초당적 움직임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레이건 민주당원, 오바마콘...미 대선 역사 바꾼 초당적 선택들

    레이건 민주당원, 오바마콘...미 대선 역사 바꾼 초당적 선택들

    “이번 대선에서 저는 우리 당 후보가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하겠습니다.” 이제 1년 6개월도 남지 않은 2022년 한국 대선에서 이 같은 선언을 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히틀러가 출마해도 같은 당이라면 지지할 것 같은 ‘정치적 부족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지만, 미국 현대사에서는 이 같은 정당을 초월한 선택이 선거는 물론 역사까지 바꾼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레이건 민주당원’과 ‘오바마콘’(오바마와 보수주의자의 합성어) 등 한국만큼 양극화된 미국 정치판에서 당파적 이해관계보다 후보의 자질을 먼저 살피고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했던 사례를 돌아본다. ●바이든 편에 선 공화당원들 미 대선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투표를 마친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가 취재진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찍고 온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그는 “평생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며 “당을 넘어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날인 2일에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USA투데이에 바이든을 지지하는 기고를 썼다. 그는 기고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모든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아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일에 자랑스러운 공화당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장면은 올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공화당 거물들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참군인’ 제임스 매티스까지 잇따라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 편에 서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인사는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과 전현직 상·하원 의원, 부시 행정부 인사 등 750명이 넘었다. 이들과 같이 바이든을 지지하기로 한 공화당원, 일명 ‘바이든 리퍼블리컨’은 이번 미 대선이 낳은 정치 신조어였다. 일부 외신들은 바이든 지지 의사를 투표일 전까지 숨긴 공화당 유권자를 4년 전 ‘샤이 트럼프’에 빗대 ‘히든 바이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제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 바이든은 공화당 텃밭이자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하며 11명의 선거인단을 챙겼다. 애리조나로서는 당의 ‘어른’이자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매케인을 조롱하는 등 정치적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준엄하게 심판한 셈이 됐다. 더불어 트럼프에게 실망한 일부 공화당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르몬교 성지이자 공화당 텃밭인 유타주의 이번 대선 투표율은 66%로, 이전 대선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 투표 열기가 다소 식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바이든이 유타주에서 받은 득표율은 1964년 이후 최고 수준인 37.2%였다. 비록 선거인단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공화당 텃밭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호평을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찰리 덴트 전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의제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온건·절제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안정시켜야 하며, 공화당은 이런 노력에는 협력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이건도, 오바마도 초당적 지지 있었다 이 같은 공화당 인사들의 반트럼프 행렬은 과거 미 현대사를 관통한 초당적 지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임에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을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연 배경 가운데 하나도 바로 투표소에서 공화당 지지로 마음을 바꾼 민주당 유권자들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지역 등이 레이건의 강한 외교정책과 감세 정책에 동조하며 투표소에서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지로 탄생한 레이건 행정부는 냉전에서 승리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4년 재선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당신을 떠난 것이다’이기도 했다. 그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가 적지 않음을 알았고, 할리우드 배우노조위원장 출신답게 진보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레이건 덕분에 우파진영은 1990년대까지 더욱 공고한 지지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 공화당으로 돌아선 전통적 지지층을 되돌리기 위해 10년 넘게 분투해야 했던 민주당이었지만, 레이건의 사망 때는 당파를 초월해 깊은 애도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경우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한 공화당 유권자를 의미하는 ‘오바마콘’이 그 좋은 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낸 찰스 프라이드 등 공화당계 인사 40여명이 오바마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오바마를 위한 공화당원’이라는 선거운동단체 등은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부시 행정부에 실망한 상태였고, 미국인들에게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실제 2008년 대선 출구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9%가 오바마를 찍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오바마콘’과 반대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매케인을 지지한 ‘매케인 민주당원’도 있었다.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민주당과의 입장 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 밖에도 민주당 상원의원 신분으로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젤 밀러 전 조지아 주지사, 같은 민주당 소속 에드 코크 전 뉴욕 시장 등도 당 안팎의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파를 넘는 선택을 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시대를 막 내리게 한 배경 가운데 하나인 공화당 유권자들의 바이든 지지도 이러한 미 현대정치사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칼럼니스트 존 애블론은 올해 대선에 대한 CNN 기고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분열의 프리즘’으로 미국 정치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이런 초당적 인물들이 놀랍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미국 역사상 계속 있었던 위대한 초당적 움직임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내 나이가 어때서”… 지구촌 지도자 ‘70대 시니어’ 전성시대

    “내 나이가 어때서”… 지구촌 지도자 ‘70대 시니어’ 전성시대

    네타냐후·스가·두테르테·수치 모두 70대77세 우드워드·90세 버핏 현장서 맹활약유럽은 젊은 편… 마크롱 등 30~40대 여럿 다양한 경험과 경륜이 위기 대처에 도움변화·혁신 약하지만 극단 안 치우쳐 장점세대 격차 줄여 조화로운 공존 여부 관건70대 지도자 전성시대다.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인, 언론인까지 70대가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이 거의 70대다. 더욱이 지난 3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민주당 후보 모두 70대여서 도널드 트럼프나 조 바이든 중에서 누가 당선되든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세우게 됐다. 민주당 경선에 나왔던 버니 샌더스(79)와 엘리자베스 워런(71)도 모두 70대다.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나이와 리더십의 상관관계로 관심이 옮겨 가고 있다. ‘나이 70이 세계 지도자들에게는 50세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까지 등장했다. 70대가 50대처럼 아무 문제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2차대전 후 美베이비붐 세대 정부·의회 장기 포진 70대 정치 지도자는 미국만이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71) 이스라엘 총리, 스가 요시히데(72) 일본 총리,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75) 국가고문, 로드리고 두테르테(75) 필리핀 대통령도 모두 70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3년 뒤면 70대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의 야당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팔순이고, 2022년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년 뒤면 70세다. 이에 반해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확실히 젊은 편이다. 30대·40대 총리와 대통령이 여럿 있다. 또 51살에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60대 여성 지도자 3명이 유럽의 정치와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다. 20~30년 전에 비하면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철저한 체력 관리에 교육수준까지 높아져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길어졌다. 관건은 할아버지와 손주만큼이나 벌어진 세대 격차와 문화적·사회심리적 차이를 줄여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 평균 연령대가 199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올라갔다. 세대 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한국에 ‘386세대’가 있듯이 미국에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4년까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포진하고 있다. 1992년 47세의 빌 클린턴과 45세의 앨 고어가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하면서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보다 20년 이상 젊어졌다. 이어 빌 클린턴과 1946년생 동갑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50대에 대통령이 됐고, 이어 2008년에 1961년생인 버락 오바마가 48세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6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보다 한 살 적은 69세의 힐러리 클린턴과 70세의 트럼프가 맞붙어 트럼프가 당선됐다. 이로써 1946년에 태어난 미국 대통령은 세 명으로 늘어났다. 정치인이 제대로 활동하려면 체력과 판단력, 사고의 유연성과 포용력이 중요한데 과연 70~80대가 이런 자질을 유지하고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현실 앞에서 이 같은 추정은 힘을 잃었다. 트럼프는 현재 74세이고, 바이든은 78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959년생 61세로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80세이고,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두 살 적은 78세다. 펠로시는 2년 전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8시간이나 쉬지 않고 발언한 기록도 세웠다. 젊은 의원들도 따라오지 못할 강한 체력을 보여 줬다. 지난 3일 선거 결과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10월 말 현재 미 연방 하원의원 36명과 상원의원 14명의 나이가 75세 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신설할 ‘기후변화 차르’를 존 케리(76) 전 국무장관이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힐러리 클린턴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72)가 맡을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美 70대 지도자 공통점은 고학력 백인 남성 경제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마하의 현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90세이고, 루퍼트 머독은 89세다. 임원급 헤드헌팅회사인 크리스트콜더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새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나이가 15년 전보다 20% 높아졌고, 주요 기업 CEO 중 40%가 60대 이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국장은 77세로 50년 가까이 취재 현장에서 특종 보도와 책을 매년 펴내고 있다. 미 대선 후보 토론회를 진행했던 CBS방송의 레즐리 스탈도 79세다. 전문가들은 이들 70대를 베이비부머의 마지막 물결로 보고 있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 평균 나이는 미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은 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43) 프랑스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49) 캐나다 총리는 40대다. 핀란드 여성 총리는 35세이고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갓 마흔을 넘었다. 미 테네시대학이 수집 분석한 세계 지도자 자료에 따르면 세계 지도자들의 평균 나이는 1950년대 이후 꾸준히 높아진 반면 유럽 지도자들의 평균 연령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해 세계 평균에 크게 밑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의 총리나 대통령의 중간 나이값은 52세이고, 8명은 45세 이하라고 한다. 70대는 딱 한 명이다. 포린폴리시 최근호에 나이와 세계 지도자에 관한 글을 기고한 잭 골드스톤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미국의 70대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공통점으로 고학력의 백인 남성을 꼽았다. 미국 남성들은 확실히 윗세대보다 오래 건강하게 활동적으로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워싱턴DC와 뉴욕에 거주하는 남성의 2015년 기준 기대수명은 1990년보다 13.7년 늘어났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미국인들의 75%가 자신의 건강이 좋거나 매우 좋다고 답했다. 1991년에는 66%에 그쳤다.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 조직의 경직화 초래 우려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양호하지만 70대가 넘으면 가장 큰 걱정이 치매다. 트럼프나 바이든 모두 치매에 걸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 하버드대 의대가 올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75세가 넘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1995년 25%에서 18%로 크게 낮아졌다.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조기진단과 예방활동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골드스톤 교수는 여러 근거를 종합해 볼 때 70대 고령의 대통령이라고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이 현재 미국 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위기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젊은 세대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결단을 내리고 변화와 혁신에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지만,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은 낮은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적 차이가 있다지만, 최고 지도자의 고령은 주요 리스크 요소이고, 경험에서 나온 확고한 신념은 변화와 반대 의견을 수용하지 못해 조직을 경직되게 할 수도 있다. 인구 구성상 밀레니얼과 포스트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젊음과 변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지도층의 세대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밀레니얼과 포스트밀레니얼 세대는 나이나 성, 정체성보다는 개인 그 자체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또한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 조직에 대한 불신이 강한 편이다. 정당보다는 시민 사회단체에 더 관심이 많고 이데올로기보다는 기후변화와 같은 특정 이슈에 천착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젊은 세대를 제대로 알고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70대의 기성 정치·경제·사회 지도자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경험을 공유할 때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세대마다 전성기가 있고 역할이 있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파리 파사주는 자본, 베를린은 관료제·소비의 도시경성에선 선진 문물 동경과 식민지 우울 담긴 ‘산책’산책에 내재된 정주·유목… 우리 삶도 그와 닮은꼴“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 없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산책’은 그저 한가로운 단어 같다. 보고 즐길 것을 찾느라 분주한 여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근육도 제대로 쓰지 않고, 땀도 나지 않으니 운동에 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느긋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경성이라는 공간, 군중의 무리에서 식민지 근대인의 고독을 묘사했다. 이창남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신간 ‘도시와 산책자´는 1920~1930년대 파리, 베를린, 경성, 도쿄와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한 비평과 소설에서 산책의 의미를 찾는다. 산책은 부유한 이들 혹은 엘리트나 즐기는 행위였지만 근대 들어 대중에게까지 퍼졌다. 발터 베냐민은 ‘파사주 작품’을 통해 물신주의에 빠진 파리의 산책자를 포착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대대적인 재정비 사업으로 관통 대로가 뚫리고 기념비적 건축물과 거대 광장이 들어선다. 베냐민은 파사주(통행로)를 가리켜 ‘상품 자본의 신전’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은 사유하는 대신 파사주를 산책하며 새로운 물건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직장인’에서 베를린을 중심으로 관료화한 체제와 소비적 도취가 함께하는 대도시를 묘사한다. 체제 속에 붙잡힌 대중은 한편으로는 유목 생활을 꿈꾼다. 산책은 일상 탈출의 방식인 셈이다.일본 제국주의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 재정비 사업을 도쿄에 그대로 적용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도쿄는 파리의 아시아 버전이고,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경성은 식민지 로컬 버전이라고 봤다. 저자는 경성을 산책하던 이상, 박태원, 나혜석 같은 지식인들을 선진 문물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인의 우울이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상은 ‘오감도’와 ‘날개’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뚫린 길을 내달리면서도 공포에 젖은 아해들, 창부 아내를 두고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위에서 자살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근대인의 공포와 소외를 나타낸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작품들을 살펴본 저자는 도쿄의 외국인 산책자 슈테판 바크비츠의 기록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의 산책자까지 돌아본다. 산책이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경계 짓기를 허무는 긍정적 계기도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저자의 주관석 분석, 특히 독일 작품을 주로 소재로 삼아 난해한 부분이 다소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연구에서 1990년대로 바로 건너뛴 점도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느린 보행과 깊은 사색으로 상징되던 산책이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된 도시 속 삶과 함께 종말을 고하진 않았다는 주장은 생각해 볼 만하다. 저자는 산책에 내재한 ‘정주’와 ‘유목’의 개념을 뽑아내고, 두 개념이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교차하는 변증법적 삶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대도시로 대표되는 자본과 체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 다른 정주의 장소를 희구하는 탈출과 회복의 과정이 바로 산책인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7, 8마리밖에 없다” 초희귀 야생 검은 호랑이, 인도서 발견

    “7, 8마리밖에 없다” 초희귀 야생 검은 호랑이, 인도서 발견

    극히 보기 드문 검은 호랑이가 인도에서 카메라에 포착됐다. 5일(현지시간) ‘타임스나우’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오디샤주(州) 심플리팔 국립공원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흑호 한 마리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수멘 바지파이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당시 새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던 중 흑호를 발견했다”면서 “사실 처음에는 내가 본 호랑이가 흑호인줄 몰랐다”고 밝혔다. 작가는 또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몇 초간 머문 뒤 다시 나무 뒤로 걸어갔다. 야생이나 동물원에서 많은 호랑이를 봤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면서 “몇 초라도 직접 볼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도의 흑호는 벵골호랑이의 유전적 변이로, 1990년대 오디샤주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2007년 이곳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그 존재가 처음 보고된 뒤 대부분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8년 호랑이 개체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인도 흑호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즉 이들 흑호는 거의 멸종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 야생동물연구소의 전문가 비바시 판다브 박사는 앞서 타임스오브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흑호는 유전적 구조 때문에 특별한 존재”라면서도 “오디샤에 7, 8마리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흑호는 체모의 무늬가 굵고 짙어지는 가짜 멜라니즘인 ‘아분디즘’(Abundism)이 발현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난당카낭 동물공원에서는 검은색 줄무늬가 두껍고 짙어 흑호로 여겨지는 크리슈나와 슈브란슈라는 이름의 벵골호랑이 형제가 멜라닌 색소 과다증으로 모든 체모가 검어지는 흑색증인 ‘멜라니즘’(Melanism)이 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번에 야생에서 발견된 흑호 역시 외모를 보면 아분디즘이 발현한 아분디스틱(abundistic) 호랑이로 보이지만, 인도 쪽 전문가들은 이 역시 멜라니스틱(melanistic) 호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분디스틱 흑호의 탄생은 지금까지 벵골호랑이에게서만 보고됐다. 벵골호랑이 중에서는 이른바 백변증으로 불리는 루시즘(leucism)이 발현한 백호와 아분디즘이 발현한 흑호 사례가 많은데 이런 점으로 볼 때 백호 생산을 위해 호랑이간의 근친교배가 아분디즘 발현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수멘 바지파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밤 10시 전 잠들면 키 ‘쑥쑥’… 먹고 뿌리는 성장호르몬은 없다

    밤 10시 전 잠들면 키 ‘쑥쑥’… 먹고 뿌리는 성장호르몬은 없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키가 안 큰다 싶으면 혹시 모유를 덜 먹여서 그런 건 아닐까, 아침을 제대로 안 챙겨 줘서 그런 건 아닐까 죄책감을 느끼기 일쑤다.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품 등 관련 정보도 넘쳐난다. 그 가운데 하나인 성장호르몬을 살펴본다. 성장호르몬은 말 그대로 키를 자라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체내에서 뼈와 연골의 성장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을 분해하고 단백질 합성을 통해 근육량 증가를 촉진하는 구실을 한다.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처음으로 성장호르몬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건 1956년이었다. 1972년에는 성장호르몬의 생화학적 구조를 규명했고 1979년에는 성장호르몬 유전자도 발견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성장호르몬을 성장호르몬 결핍증 어린이에게 사용하는 것을 승인한 건 1985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성장호르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호르몬 결핍이 있는 저신장 아이들에서 키를 키우는 목적으로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호르몬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성장호르몬을 피하 주사로 투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은 성장호르몬결핍증(선천성, 뇌종양에 의한 기질성), 태어날 때부터 작은 아이, 만성신부전, 모든 것이 정상이지만 부모 키가 작아서 작은 아이로 성인이 됐을 때 남자 160㎝, 여자 150㎝ 미만으로 예측되는 아이 등이다. 서정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내분비과 교수는 3일 “성장호르몬 치료는 정확한 성장 속도를 측정해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면서 “성장 속도 평가는 적어도 3개월 간격으로 진행하며 성장 반응과 몸무게, 성장호르몬 농도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연령과 성별에서 키 순위가 100명 중 세 번째 이하로 작고 정밀 검사상 성장호르몬 결핍증으로 진단을 받은 경우, 골연령(뼈 나이)이 역연령(실제 나이)보다 어린 경우 등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성장호르몬 무분별한 치료 땐 부작용 많은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혹시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김재현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약을 투약했을 때 얻는 이득이 부작용 등으로 인한 손해보다 더 크다고 판단될 때 투약을 결정한다”면서 “성장호르몬은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약제”라고 말했다. 김진섭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가장 흔한 부작용은 5~10%에서 나타나는 손발이나 얼굴이 붓게 되는 수분 저류로 인한 말초 부종 증상이며 그 외에 이상감각, 관절 경직, 관절통, 근육통, 두통, 혈압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호르몬의 무분별한 치료나 검증되지 않은 약제들과 병용 사용할 경우 또는 기저질환을 고려하지 않은 치료 등에서는 이상반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 후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성장호르몬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많이 분비되기도 하고 적게 분비되기도 한다. 또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아이의 키 성장에 쓰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쓰일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영양 섭취, 충분한 수면, 즐거운 마음가짐,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신체 등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킴과 동시에 성장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불균형한 영양 섭취, 과식으로 인한 비만, 정신적 스트레스, 부족한 수면, 운동 부족, 질병 등은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저해하고 성장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창 키가 클 때는 하룻밤에도 3㎝씩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면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성장호르몬 하루 분비량의 약 60~70%가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분비되기 때문에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좋다. 아이들이 늦게 잠자리에 드는 이유 중 대부분은 부모의 생활습관을 닮기 때문이다.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아이는 키 성장을 위한 황금시간대를 놓치는 꼴이 되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보통 2~3세 아이들의 경우 하루 12~14시간 정도의 수면이 필요하고 4~6세 아이들은 11~12시간, 7세 이후는 매일 적어도 9~10시간의 수면시간이 필요하다. 몸이 아파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든지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설치게 될 경우 당연히 성장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 역시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심리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는다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저하돼 성장 속도가 늦춰지게 된다. ●스트레칭하면 성장판 주위 혈액순환 촉진 성장호르몬은 가만히 있을 때보다 몸을 일정한 강도 이상으로 움직일 때 더 많이 분비된다. 뛰어노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뛰는 것이 성장점을 자극해 성장호르몬 분비를 늘리는 것이다. 팔다리 관절을 쭉쭉 펴 주는 스트레칭 체조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시간, 장소 모두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몸을 쭉쭉 늘여 주는 효과 외에 성장판 가까이 위치한 관절과 근육을 자극해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키가 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운동은 단순히 아이의 키만 쑥쑥 늘여 주는 것이 아니다. 뼈와 마찬가지로 근육에도 성장판이 존재하는데 관절운동으로 인해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 근육 성장판이 자극을 받아 근육세포가 자라게 된다”면서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과 대사활동을 증가시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더욱 촉진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소아과 관련 전문의들은 ‘키가 커지는 비법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한욱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는 “성장호르몬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먹게 되면 분해돼 효과가 없어진다”면서 “많은 부모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먹는 약(한방약 포함)이란 없다. ‘먹는 성장호르몬’이나 ‘스프레이 성장호르몬’ 등은 성장호르몬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피해자 시계 들고 검문 통과”… 이춘재 ‘보여주기 수사’ 조롱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7)가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들추는 증언을 내놔 파장이 예상된다. 이춘재는 지난 2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8차 사건’ 재심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1980∼199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특별한 증거 은폐 행위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경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속한 수사 지시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에 연인원 200만명 이상의 경찰 인력을 동원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춘재 증언에 따르면 모든 게 보여 주기식 수사였다는 것이다. 이춘재는 “한 번은 한 피해자의 시계를 갖고 다니다가 검문에 걸렸고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파출소에 갔는데도 신분 확인만 하고 끝났다”면서 “시계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주웠다고 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들을 여러 번 마주치고 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 이상자에 대해 탐문수사를 했지 나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뭘 물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춘재는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같은 해 9월 첫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강간 범행을 저질러 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춘재가 강간 범행으로 처벌받았더라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찰서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강간 사건으로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받았고 피해자와의 대질 조사도 예정돼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자 신분으로 수사한 적은 없지만,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세 차례 조사하면서 혈액형과 족적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풀어 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보여주기식 수사를 한 것 같다”...이춘재 ‘경찰수사’ 조롱

    “보여주기식 수사를 한 것 같다”...이춘재 ‘경찰수사’ 조롱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7)가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들추는 증언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이춘재는 2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1980∼199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특별한 증거 은폐행위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경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속한 수사 지시와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 수사에 연인원 200만명 이상을 동원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춘재 증언에 따르면 그 모든 게 보여주기식 수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번은 한 피해자의 시계를 갖고 다니다가 검문에 걸렸고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파출소에 갔는데도 신분 확인만 하고 끝났다”며 “시계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주웠다고 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들을 여러 번 마주치고 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 이상자에 대해 탐문수사를 했지, 나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뭘 물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춘재는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같은 해 9월 첫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강간 범행을 해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춘재가 강간 범행으로 처벌받았더라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찰서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강간 사건으로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받았고 피해자와 대질 조사도 예정돼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앞서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자 신분으로 수사한 적은 없지만,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3차례 조사하면서 혈액형과 족적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풀어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춘재가 저지른 1989년 7월 발생한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에서는 당시 담당 경찰관이 실종된 초등학생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드러났고 8차 사건에서는 범인으로 지목한 윤성여(53) 씨를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아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혐의가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현장에서 확보한 혈액형과 족적이 이춘재의 것과 다르게 나온 이유는 지금과 비교해 정확도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당시 과학수사 기법의 한계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경찰의 잘못과 수사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발생부터 현재까지 상황과 과오를 담은 백서를 제작해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70∼80년대에는 전형적인 유형의 범죄, 동기가 뚜렷한 사건 위주로 수사하다 보니 이런 사건에 대한 수사기법에 의존해 피해자 주변에 대한 탐문이 중점적으로 이뤄져 동기 없는 범인을 추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춘재는 전날 법정에서 “나는 욕심이 없고 밖에 있을 때 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교도소에 있는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조두순이 나간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나간다고 하면 더한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이춘재 “피해자 시계 들고 검문도 당했지만 잡히지 않아”(종합)

    이춘재 “피해자 시계 들고 검문도 당했지만 잡히지 않아”(종합)

    연쇄살인 자백한 이춘재, 부실수사 증언“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 못 해…경찰 수사가 보여주기식 아니었나 싶다”살인 전 강간 범행으로 경찰 조사받기도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온 1980~199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주로 발생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서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들추는 이춘재의 여러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춘재는 지난 2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당시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을 모두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특별한 증거 은폐행위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났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내로라하는 경찰 수백명이 왔다 갔는데 조금 지나면 싹 빠져나가고 그런 식으로 수사가 진행돼 보여주기식 아니었나 싶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속한 수사 지시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 수사에 연인원 200만명 이상을 동원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춘재 증언에 따르면 그 모든 게 보여주기식 수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번은 한 피해자의 시계를 갖고 다니다가 검문에 걸렸고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파출소에 갔는데도 신분 확인만 하고 끝났다”면서 “시계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주웠다고 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들을 여러 번 마주치고 했지만,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 이상자에 대해 탐문수사를 했지, 나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뭘 물어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아울러 이춘재는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같은 해 9월 첫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강간 범행을 해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춘재가 강간 범행으로 처벌받았더라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찰서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강간 사건으로 화성경찰서에서 조사받았고 피해자와 대질 조사도 예정돼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강간 사건으로 처벌받았더라면 연쇄살인 사건을 벌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춘재가 검문당한 사례와 살인 전 강간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내용 등은 이번 재판을 통해 일반에 처음 알려졌다.첫 번째 살인 사건 발생 34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는 1980년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 일대에서 벌어진 14건의 연쇄살인 사건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또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에게 사건 발생 32년 만에 사과했다. 그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범행 당시 현장 은폐 등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경찰에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이춘재는 “나는 욕심이 없고 밖에 있을 때 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교도소에 있는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조두순이 나간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나간다고 하면 더한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영화 속 90년대 여성노동자, 지금 현실과 다르지 않아”

    “영화 속 90년대 여성노동자, 지금 현실과 다르지 않아”

    “제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주인공 이자영(고아성)의 모델이라고요? 잘 모르겠던데요.” 개봉 12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킨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임종린(36)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을 모델로 삼아 주인공 이자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지회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임 지회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구나’ 했다”며 “주인공은 굉장히 거창한 일을 해내는데 ‘아이고, 난 저렇지 않은데…’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연출가의 생각은 달랐다. 영화 속 이자영과 임 지회장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저 정해진 룰대로 성실하게 일하다가 회사의 불합리한 관행을 겪고 잘못을 고치는 데 몰두한다. 영화 안에서 1990년대를 사는 말단 고졸 사원 이자영은 회사의 폐수 무단 방류의 범인을 찾는다. 영화 밖 임 지회장은 파리바게뜨 협력업체에 입사해 가맹점에서 빵을 만들던 중 임금 꺾기(출퇴근 시간을 조작해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 편법 행위)로 상담을 받다가 스스로 불법 파견을 고발하고 2017년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다. 임 지회장은 어쩌다 내부 고발자가 된 당시를 회상했다. “회사와 싸우겠다는 큰 결단을 하고 시작한 게 아니다 보니 걱정이 많았어요. 본사 직원들이 목에 거는 파란색 사원증 목줄만 보면 빵을 못 만들 정도로 손이 떨리더군요.” 긴 싸움 끝에 결국 자회사 직고용이 결정됐을 때는 “영화 속 해피엔딩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때부터 사측과의 지난한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임 지회장은 “어렵게 합의문을 만들면 그 합의문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시 싸워야 한다는 걸 몰랐다”면서 “그나마 지금은 잘못을 지적하고 항의할 수 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영화와 현실은 30년의 시간 차가 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임 지회장은 “관리자는 임신한 여성 제빵기사에게 법적으로 단축근무를 할 권리나 절차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단축근무를 하지 못하는 등 손해를 보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전했다. 젊은 여성 노조 지회장으로 주목받는 그는 “남성 조합원도 많고 제가 여성 조합원만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연임한 그는 “노조가 자리를 잡으려면 10년이 걸린다던데, 남은 임기 동안 영화처럼 연장 수당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웃었다. 영화처럼 노동자들에게 행복한 결말은 올까. 임 지회장은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싸운다.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자영처럼…우리 곁의 ‘어쩌다 영웅’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자영처럼…우리 곁의 ‘어쩌다 영웅’

    “제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자영’(고아성)의 모델이라고요? 잘 모르겠던데요.” 개봉 12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인물을 모델로 삼아 주인공 이자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바로 임종린(36)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 만난 임 지회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임 지회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구나 했다”면서 “영화를 봤는데 굉장히 거창한 일을 하던데요. 보면서 ‘아이구 나는 저렇지 않은데’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이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영화 속 이자영과 임 지회장 모두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다 회사의 불합리한 관행을 겪고 문제 해결에 몰두한다. 고졸 말단 사원 이자영은 회사의 폐수 무단 방류의 범인을 찾는다. 파리바게뜨 협력업체에 입사해 가맹점에서 빵을 만들던 임 지회장은 임금 꺾기를 당한 뒤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 노동 상담창구)에서 상담을 받다가 불법 파견을 고발하고 2017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이 감독은 서울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1990년대에 벌어진 사건을 영화화하는데 기록되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임 지회장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영화 속 인물들도 정의감에 불타던 게 아니라 참으려 하다가도 괴로워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내부 고발자’가 됐을 때 “본사 직원들이 목에 거는 파란색 사원증 줄만 보면 빵을 못 만들 정도로 손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회사 직고용이 결정됐을 때는 ‘영화 속 해피엔딩’인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도 연장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제빵·카페기사들이 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뒤 일은 줄지 않아서다. 임 지회장은 “합의문을 만들면 이행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걸 몰랐다”며 “협력사 시절에는 월급이나 상여금 기준이 오락가락했지만, 지금은 항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0년에 199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이자영처럼 후배 남직원이 먼저 승진하는 일은 클리셰다. 임 지회장은 “최근에도 관리자가 임신한 제빵기사에게 모성보호를 위한 단축근무 관련 규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피해를 입는 일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영화에서 말단 직원들이 회사를 지켜냈듯 노조가 회사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전국 점포에서 일하는 제빵·카페기사들에게 노조를 알리고 교육하는 이유다. 임 지회장은 “직원들이 퇴사하면 고객이 되는데,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직원들이 고통받지 않고 회사를 다닌다면 브랜드 이미지도 개선된다”고 했다. 젊은 여성 노조 지회장으로 주목받는 그는 “남성 조합원도 많고 제가 여성 조합원만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20대 초반 조합원이 들어와 세대차이도 느낀다”고 했다. 지난 8월 연임한 그는 “노조가 자리를 잡으려면 10년이 걸린다던데, 남은 임기 동안 연장 수당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노조 활동에 “행복한 결말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임 지회장에게 이 감독의 말을 전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싸우세요’라는 말은 무책임하겠지만,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최고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 74세에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최고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 74세에

    1970년대 중동 지역에 파견돼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로버트 피스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고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자택에서 실신해 세인트 빈센트 병원에 입원한 뒤 얼마 안돼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중동 보도로 많은 상을 받았고,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외교 정책의 위선을 폭로하는 등 서방의 대중동 외교를 비판한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50년 넘게 중동뿐 아니라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 등을 돌며 영국 신문들에 기고했는데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는 2005년에 그를 “아마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외 파견 기자”라고 표현했다. 마이클 D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1일 고인의 부음을 듣고 성명을 내 “커다란 슬픔”을 느꼈다며 “저널리즘의 세계에 그가 끼친 족적과 중동 문제에 대한 코멘트 등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해설가 중 한 분을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1946년 켄트주 메이드스톤에서 태어난 그는 나중에 아일랜드 시민권을 얻어 더블린 외곽 달키에 집을 마련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2년 벨파스트로 거처를 옮겼는데 타임스의 북아일랜드 특파원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4년 뒤 같은 신문의 중동 특파원으로 임명돼 레바논 베이루트로 파견돼 레바논 내전, 1979년 이란 혁명과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을 취재했다. 1989년 타임스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과 불화로 회사를 그만 뒀다. 1988년 미 해군의 이란항공 655 여객기 격추 사건을 취재한 자신의 기사가 잘려나가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 뒤 인디펜던트로 옮겨 나머지 기자 경력을 그 곳에서 마쳤다. 특히 이스라엘의 사브라-샤틸라 학살과 시리아의 하마 대학살을 직접 잠입 취재했고, 1990년대 오사마 빈 라덴을 세 차례나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빈 라덴을 “부끄러움 타는 남자”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1993년 첫 인터뷰 때 “어느 모로나 무자헤딘 전통을 지키는 산악전사”라고 바라봤다. 9·11 테러가 일어난 뒤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의 갈등 현장을 누볐다. 아랍어에 능통했고, 책상물림을 끔찍히 싫어하고 자신의 지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최고로 쳤다. 2005년 책 ‘문명에 이르는 위대한 전쟁-중동 정복’을 집필했는데 이 지역의 역사를 꿰뚫으며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미군의 공격에 분노한 난민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고,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영구적인 부분 청각 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보고 들은 걸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나쁜 녀석들의 이름을 적어두는 목격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여기자 라라 말로우와 결혼했다가 2006년 이혼했는데 자녀가 없었다. 영국 BBC의 중동 편집자 제레미 보웬은 “너무 젊을 적 일이다. 난 로버트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어느날 옛 유고슬라비아 취재를 마치고 레바논 남쪽에 도착했는데 그가 내 재킷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더니 체코의 자두주인 슬리보비체(slivovitza)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난 학교 다닐 때도 그의 기사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복했다.(그런데 아직도 기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타박한 듯하다) RIP(평화롭게 영면을) 피스크”라고 추모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In&Out] 열병식에 선보인 무시 못할 北 재래식 무기와 정부의 대응/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In&Out] 열병식에 선보인 무시 못할 北 재래식 무기와 정부의 대응/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북한은 지난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통해 신형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최대급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 4ㅅ’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한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재래식 무기는 더 관심이었다. 공개된 영상과 사진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한 수 아래로 봤다. 구식 무기인 데다가 수명 연한도 지났기 때문이다. 북한 재래식 무기의 임계점은 1990년대 말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1996년 9월 강원 강릉 부근에서 좌초되고 유고급 잠수정이 1998년 6월 강원 속초 동해상에서 한국의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벌어졌을 때 북한의 낡은 해군 함정은 한국 함정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북한군이 2010년 11월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을 했을 때도 낙후성을 드러냈다. 북한군은 두 차례에 걸쳐 포격도발을 자행했지만, 포탄 대부분은 연평도가 아니라 바다에 떨어졌다. 구형의 낡은 포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포탄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것이 북한 재래식 무기의 현주소였다. 이런 연유로 한국의 우수한 재래식 무기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에 나타난 북한의 신형 재래식 무기는 이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었다. 열병식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지난 3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시험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북한판 에이테킴스(ATACMS), 그리고 400~600㎜ 구경의 초대형 방사포 등이 공개됐다. 이 무기들의 특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여 고도 50㎞ 이하에서 마하6 이상의 속도로 수평 및 변칙기동을 하며 400~600㎞를 비행하여 유도조종을 통해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한다는 점이다. 고체연료는 발사 소요 시간을 단축시켜 은닉성을 보장하고, 낮은 고도는 레이더 탐지 확률을 감소시키며, 가공할 속도와 변칙기동은 요격의 가능성을 줄여 준다. 이외에도 신형 전차와 북한판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공개되었고 한국군이 추구하고 있는 워리어 플랫폼도 선보였다. 특수전 병사는 중국제(QBZ95)와 유사한 신형 불펍(bullpup) 소총, 위장력과 적외선 차단이 뛰어난 멀티 캠 위장복, 야간투시경, 표적지시기(PEQ) 등으로 무장했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체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초대형 방사포를 비롯한 신형 전술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3K’(선제타격, 미사일방어, 응징보복)와 ‘한국형 아이언 돔’(Iron Dome) 개발사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무기와 유사한 북한 무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해킹에 대한 실체 분석과 함께 군 관련 기관의 사이버 방호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산과 유사한 무기가 많다는 점에서 대북제재의 허점도 적극적으로 메워 나가야 한다.
  • ‘빨간 마후라’부터 ‘n번방’까지… 삐뚤어진 호기심이 낳았다

    ‘빨간 마후라’부터 ‘n번방’까지… 삐뚤어진 호기심이 낳았다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 10대 생각 없이 성 콘텐츠 쉽게 모방 경향 왜곡된 성인식·성범죄 묵인 풍토 고쳐야“일본 음란물을 따라 재미 삼아 찍었어요.” (10대 성착취물 ‘빨간 마후라’ 제작자 김모군, 1997년)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텔레그램 성착취 ‘프로젝트n방’ 운영자 배모군,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사건의 10대 성범죄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10년, 20년 전에도 이름만 다른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성범죄는 통계상 청소년이 저지르는 흉악범죄 중 유일하게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소년범죄 가운데 살인·강도·방화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성폭력은 2010년 2107건, 2014년 2564건, 2018년 3173건으로 늘었다. 청소년 성범죄는 집단 가해 형태로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1990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10대 폭력서클 일당이 구속됐고 2004년 경남 밀양에서 고교생 40여명이 벌인 집단 성폭행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성범죄를 보는 사회의 왜곡된 시각은 고스란히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쳤다. 1997년 7월 ‘빨간 마후라’ 비디오는 영상 속 10대 피해자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범죄가 아닌 피해자의 문란한 일탈 정도로 여겨졌다. 비디오방에는 빨간 마후라 영상을 구하려는 어른들이 넘쳤고 각종 패러디물이 제작됐다. 1990년대 인터넷 보급과 함께 몸집을 키운 디지털 성범죄에서도 10대들은 성착취의 계보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비디오에서 PC통신, 소라넷, 웹하드, 카카오톡을 거쳐 텔레그램과 다크웹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성범죄의 제작과 유통에 가담한 10대 가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적발됐다. 성범죄를 주로 다룬 한 검사는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강하고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아 자극적인 성 관련 콘텐츠를 쉽게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를 묵인하고, 왜곡된 성 인식을 공유하는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청소년의 성이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바르지 않은 경로로 여성이 성적 도구화되는 콘텐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면 왜곡된 성 인식을 갖게 된다”며 “교화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기에 올바른 젠더 교육을 통해 이들이 소년범, 더 나아가서는 성인범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 작전 실패· 과거 마인드·IP 소홀… ‘대마 퀴비’ 폐업 이유 있었네

    작전 실패· 과거 마인드·IP 소홀… ‘대마 퀴비’ 폐업 이유 있었네

    “우리는 차세대 스토리텔링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퀴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업을 끝낼 것이라고 발표하게 돼 가슴이 아픕니다”(제프리 캐천버그, 멕 휘트먼) 놀랍지만 놀랍지 않은, 갑작스럽지만 갑작스럽지 않은 기업의 부고(訃告)였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에서는 빅네임인 제프리 캐천버그 전 디즈니 및 드림웍스 최고경영자(CEO)와 멕 휘트먼 전 이베이 및 HP CEO의 실패 선언이었기에 큰 화제가 됐다. 주주와 직원들에게 폐업을 블로그를 통해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퀴비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에서 영향력이 큰 경영자가 만나 사업을 만들기도 전에 대규모 펀딩을 받아 시작한 회사로, 퀄리티 높은 짧은 동영상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과 워너브러더스, NBC 등 기존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있었다. 기존 스타트업이 가질 수 없는 많은 자산을 갖고 시작했는데도 퀴비는 서비스 시작 6개월 만에 종료 및 폐업이라는 기록을 만든 기업(서비스)이 됐다. 과거에 ‘가진 것’, ‘누린 것’이 짐이 되는 시대를 상징한다는 평가다. 크고 낡으면 실패한다.그렇다면 퀴비란 무엇인가? 퀴비(Quibi)란 짧고 빨리 먹는다는 의미의 퀵 바이트(Quick bite)의 조어로 만든 회사로 5~10분짜리 짧은 동영상 구독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회사다. 퀴비는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시간당 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높은 퀄리티와 새로운 포맷으로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 틱톡 등 소셜미디어 서비스 이용자까지 잡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했다. 스티브 스필버그, 샘 레이미 등 할리우드 레전드급 감독과 리스 위더스푼, 덴절 워싱턴 등 블록버스터에나 등장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를 상영했다. TV가 아닌 스마트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타깃도 18~34세 밀레니얼 및 Z세대에게 맞췄다. ‘뉴스’도 준비했는데 아침과 저녁 2개의 NBC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스마트폰 미디어답게 ‘턴 스타일’이란 기술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보면 가로 형태로 화면이 보이고 세로로 세우면 연기하는 배우들을 세로로 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가격은 한 달 4.99달러(광고 없는 버전 7.99달러)로 디즈니의 디즈니+(Disney+), 애플 TV+, HBO MAX와 경쟁하려고 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4가지가 있어야 한다. 자본, 창업가, 신기술 그리고 네트워크. 퀴비는 이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폐업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은 타이밍을 놓치고 작전도 실패했다. 사업은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퀴비는 출시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재를 만나고 소비자들이 자택격리돼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악재를 만났다. 제프리 캐천버그는 폐업 선언 블로그에서 “퀴비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이디어가 독립형 스트리밍 서비스를 수용할 만큼 강력하지 않았거나 타이밍 때문일 수 있다. 퀴비를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출시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른 기업들은 전례 없는 도전에 길을 찾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하지만 ‘타이밍’보다 ‘작전 실패’란 평가가 많다. 같은 기간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NBC유니버설은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을, AT&T는 HBO맥스를 새로 시작했다. CBS올억세스는 ‘파라마운트 플러스’로 이름을 바꿨다. 퀴비의 가설은 “모바일 온리 형식으로 HBO급 영화, 드라마를 보는 수요가 있을 것이다”였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도 짧게 퀄리티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그러나 미국 뉴욕 등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퀴비는 선택받지 못했다. 이용자는 집에서 TV로 ‘넷플릭스’를 보고, 이동하면서도 넷플릭스의 모바일 버전을 보길 원했다. 콘텐츠가 월 5~8달러를 청구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둘째로 90년대 마인드로 2020년 서비스를 했다. 퀴비는 단숨에 소비할 수 있는 퀄리티 드라마를 추구했다. 경쟁자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로 설정했다. 시간당 600만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고급 콘텐츠들을 공개했다. 고품질이지만 모바일로 보기엔 길고 포맷도 대화면 TV에 최적화돼 있다고 판단한 것. 디즈니 제작자 시절 ‘인어공주’와 ‘라이언 킹’으로 회사를 일으키고 드림웍스를 창업한 후 ‘이집트의 왕자’와 ‘슈렉’으로 회사를 성공시킨 경험을 가진 제프리 캐천버그 창업자는 1990년대의 전설이었다. 그는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공급하면 소비자가 환호할 줄로 알았다. 캐천버그는 그동안 쟁쟁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경쟁,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서비스를 시작하니 실제 경쟁자는 기존 업체가 아닌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 스냅과 같은 소셜미디어 콘텐츠였다. 퀄리티는 낮을 수 있으나 이용자들이 스스로 만든 재미있는 동영상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틱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매각’ 명령을 받았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더구나 퀴비엔 시청자가 영상을 퍼뜨릴 수 있는 ‘공유’ 기능이 없었다. 모바일은 공유가 기본적인 서비스. 공유 기능이 없으니 ‘입소문’을 타기도 어려웠다. 과거 성공이 미래를 약속해 주지 않지만 그의 ‘성공 경험’은 실패의 원인이었다. 성공 경험은 자만으로도 나타났다. 캐천버그는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밀레니얼, Z세대를 잘 모르지 않나”란 질문에 “나는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일을 했다”(I‘ve been doing this before you all were fucking born)고 대답,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바일 기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끄는 회사”였다고 혹평했다 셋째 실패 원인은 없는 문제를 만들어 풀려 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회사)이다. 퀴비는 숏폼(shortform) 모바일 동영상 시장을 개척하려 했고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가 지식재산권(IP)를 보유하지 못해 기업이 영속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숏폼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원치 않는 것을 보인다. 숏폼이 실패한 것은 퀴비가 처음이 아니다. 버라이즌이 투자하고 공격적으로 사업했던 ‘Go90’은 2018년 운영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제작자의 지식재산권을 풀려 했던 퀴비는 그 문제 때문에 폐업에 이르게 됐다. 현금이 떨어지고 가입자가 급격히 이탈하자 매각에 나섰다. 애플, 페이스북, 워너미디어 등이 퀴비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퀴비 인수를 추진하던 기업들은 ‘저작권’ 때문에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다. 퀴비는 외주 제작사와 독특한 저작권 계약을 했기 때문. 외주 제작사가 퀴비에 프로그램을 공급한 지 2년이 지나면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공급할 수 있게 하고 7년이 지나면 아예 저작권을 돌려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외주 제작자에게 혜택을 줘서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 시도였다. 하지만 인수를 추진한 기업 입장에서 퀴비는 ‘깡통’ 기업과 같았다. 콘텐츠 기업의 핵심은 지식재산권인데 이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퀴비는 ‘턴 스타일’이라는 기술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가로, 세로 방향에 맞춰 동영상이 변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에 대해 인터랙티브 비디오 회사인 에코(Eko)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헤지펀드 ‘엘리엇’이 소송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주기로 하면서 소송의 판이 커졌다. 턴 스타일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엇갈렸다. 열광하는 소비보다 어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퀴비는 이처럼 없는 문제를 만들어 해결하려다 외면을 받게 됐다. 이처럼 퀴비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2020년대는 크고 많이 가진 것보다 민첩하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무덤에 묻혔다. 더 밀크 대표
  • 미 연방판사 “트럼프 성폭행 명예훼손에 법무부 피고 될 수 없다”

    미 연방판사 “트럼프 성폭행 명예훼손에 법무부 피고 될 수 없다”

    미국 연방판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미국 법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변호하려는 노력을 좌절시켰다고 영국 BBC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원고는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한 백화점에서 트럼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칼럼니스트 E 진 캐롤(76)이다. 캐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제기한 혐의를 딱 잡아떼면서 자신이 “총체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해 자신의 명예를 깎아내렸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피소된 연방정부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토르트 법(Tort Claims Act)’을 근거로 들며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변호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난 루이스 카플란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이날 해당 법이 규정한 공직자에 대통령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소송은 지난해 11월 뉴욕주 법원에서 시작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개인 변호사인 마크 카소위츠를 기용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법무부는 이 소송을 연방법원으로 끌고 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격으로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변호에 나서려고 한 것이다. 카플란 판사는 61쪽이나 되는 판결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취임하기 수십년 전의 성폭행 혐의가 제기된 것을 우려하고 그 의혹이 미국의 공적 임무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여성잡지 엘르의 상담 칼럼을 기고했던 캐롤은 이날 판결 이후 성명을 내 “도널드 트럼프가 날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날 거짓말쟁이라고 불렀을 대 그는 미국을 대신해 말한 것이 아니었다. 난 카플란 판사가 이런 기본적인 진실을 인정해 줘 기쁘다”고 밝혔다. 그의 변호인 로버타 카플란은 이제 소송은 연방법원에서 다투게 됐다며 “그 잔인하고 개인적인 공격은 대통령이란 공직에 어울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에게 DNA 샘플을 제출해 캐롤이 성폭행 당했을 때 입었던 디자이너 도나 카란의 검정색 드레스에 묻어 있던 물질과 일치하는지 확인하자고 요청했다. 캐롤은 1995년 말 아니면 이듬해 초 버그도프 굿먼 백화점을 쇼핑하다 트럼프와 만났으며 그가 다른 여성에게 사줄 린제리를 골라달라고 한 뒤 농담 조로 한 번 입어보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해서 옷을 갈아 입고 있는데 트럼프가 탈의실에 들이닥쳐 벽에 밀어붙인 뒤 겁탈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완전히 드잡이”를 벌여 겨우 빠져나왔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당시 50대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부인 마를라 메이플스와 지내던 때였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공개 석상에서 부인해왔는데 캐롤이 “완전히 거짓”을 말하고 있으며 “내 타이프도 아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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