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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디자인 현대”… 아반떼·45 美 ‘굿디자인 어워드‘ 수상

    “이젠 디자인 현대”… 아반떼·45 美 ‘굿디자인 어워드‘ 수상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 브랜드 현대차·기아차·제네시스 9개 제품이 30일 미국의 유력 디자인 상인 ‘2020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운송 디자인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현대차에서는 ‘올 뉴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전기 콘셉트카 ‘45’와 ‘프로페시’ 등 자동차 3종과 전기차용 초고속 충전 설비 ‘하이차저’가 뽑혔다. 올 뉴 아반떼는 기하학적인 알고리즘을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한 ‘파라메트릭 다이나믹스’ 테마를 적용해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 그릴’을 적용했다. 현대차 이니셜 ‘H’를 형상화한 ‘H-테일램프’도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다. 45는 1970년대 항공기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모노코크(차체와 프레임이 하나로 된 차량 구조) 방식의 차체를 통해 공기 역학과 경량화를 구현했다. 45는 이번 디자인상 수상으로 ‘iF 디자인상’ 본상, ‘IDEA 디자인상’ 동상, ‘레드닷 어워드’ 본상 등 세계 3대 디자인상을 포함해 올해 출품한 모든 디자인 관련 시상식에서 상을 싹쓸이했다. 이 45는 내년 출시되는 전용 플랫폼(E-GMP) 전기차 ‘아이오닉 5’로 구현된다. 지난 3월 공개된 프로페시는 미래 전기차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이차저는 부분 자동화 방식이 적용돼 사용자에게 간편한 충전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인정받았다.기아차는 3세대 K5와 4세대 쏘렌토가 디자인상을 받았다. K5는 헤드램프와의 경계를 과감히 허문 ‘타이거 노즈’ 라디에이터 그릴과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그래픽의 주간주행등이 디자인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쏘렌토는 기존의 강인한 디자인을 계승하는 동시에 세련되고 섬세한 이미지를 함께 담아내 기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디자인의 전형성을 탈피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제네시스는 G80, GV80,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카퍼 디자인 테마’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네시스가 굿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건 2015년 브랜드 출범 이후 6년 연속이다. ‘역동적인 우아함’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G80과 GV80은 방패 모양의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의 쿼드램프 등 독자적인 디자인 요소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카퍼 디자인 테마는 브랜드 상징색인 카퍼를 바탕으로 금속 특유의 질감을 시각화해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제네시스 카페이 등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내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의 시인성을 높였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다시 뜨는 역세권

    [최만진의 도시탐구] 다시 뜨는 역세권

    포틀랜드는 미국 서북부 오리건주에 있는 인구 60만의 대도시로, 25개의 광역권에 200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러한 광역권 형성은 자동차가 있기에 가능했지만 곧 문제를 야기했다. 출퇴근이나 도시 지역 내의 이동이 활성화되면서 승용차 수요와 교통량이 급증한 것이다. 교통체증이 한계에 달했고, 해결책으로 1970년대 중반에 8차선의 넓은 고속도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머지않아 여러 가지 문제점에 재봉착했다. 우선 1500개 이상의 멀쩡한 주택을 철거했고, 협상 및 보상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았다. 더 우려스런 점은 이 전용도로로 도심에 자동차 유입이 늘면 교통지옥이 될 것이 뻔했다. 또한 값싸고 쾌적한 교외지역이 무분별하게 확산해 도심의 공동화가 심화될 것이었다.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 이 정책은 고심 끝에 백지화됐다. 대안으로 ‘맥스’라는 이름의 경전철이 건설됐다. 핵심은 도시를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 중심으로 변환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사업 결과가 가시화해 다양한 노선과 수많은 정차역이 설치됐다. 그러고는 효율적 이용을 위해 역 주변 개발에 착수했다. 즉 역세권의 토지를 취득해서 공공이 전체 사업을 운영하는 식의 물리적 환경개선이 시작됐다. 그 결과 역에서 도보로 접근이 가능한 3000채 이상의 주택을 건설했는데 이 중 3분의1이 저소득층용이었다. 또한 상업 및 업무 용도의 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졌고 고품격 공공 공간을 조성해 쾌적한 복합도시를 창출했다. 즉 웬만한 활동은 도보로 가능한 자족도시를 만들어 교통수요 감소, 사람 중심의 공간 조성, 지역 특징 및 공동체 생성을 용이하게 했다. 활력이 넘쳐난 곳은 새로 개발한 역세권뿐만 아니라 쇠퇴하던 구도심도 마찬가지였다. 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이 일어나 대중교통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가로 상가 등이 형성됐다. 이로써 자동차가 득실대던 도심은 다시 사람으로 넘쳐났고 경기는 활성화했다. 그 결과 포틀랜드는 교통체증, 매연, 공해, 소음,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도시로 변모했고, 통행거리 단축으로 엄청난 사회적 편익도 생겨났다. 무분별한 도시 확산도 멈췄고 많은 토지가 절감됐다. 구도심은 다시 사람이 사는 곳이 되고, 역 주변이 고밀화로 개발되면서 가까운 곳에 녹지 등의 휴게 가용공간이 조성되기도 했다. 도시는 그야말로 매력적이고 지속가능한 곳이 됐고 많은 젊은이가 모여서 성공신화를 써내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신도시 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에 한계점을 발견하고 고밀화한 역세권 개발에 다시 눈을 돌렸다. 이는 주거지와 일터가 근접한 형태를 띠는 효과적인 주거정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청년, 신혼, 서민 등의 계층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을 부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포틀랜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교통체계의 근본적인 개선, 합리적인 토지이용, 고밀화에 따른 인근 녹지 공간 생성, 보행자 위주의 매력적인 공공 공간 조성 등의 다양한 종합세트로 구성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
  • 한 세기 패션 인생 마치고… ‘천상의 무대’로 떠나다

    한 세기 패션 인생 마치고… ‘천상의 무대’로 떠나다

    프랑스의 전설적 디자이너이자 패션 사업계 거장인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파리 근교 뇌이의 한 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98세. ●14세 패션계 입문… 98세까지 활동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 북부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인이던 부모를 따라 프랑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4세 때 재단사 견습생으로 패션계에 발을 들인 뒤 24세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자이너가 됐다. 이어 28세인 1950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피에르 가르뎅’을 설립했다. 피에르 가르뎅이 패션계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아간 여정은 ‘동전 던지기’ 일화와 맞물려 전해지고 있다. 먼저 파리 적십자사에서 일할지, 디자이너로 일할지를 선택해야 할 때 그는 동전을 던져 패션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제자로 일하던 중 디오르가 사망하자 회사에 남을지, 독립할지를 가늠하기 위해 피에르 가르뎅은 다시 동전을 던진 뒤 독립을 선택했다. 피에르 가르뎅은 한 인터뷰에서 “동전이 좋은 선택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일단 결정한 뒤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가면 좋은 선택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피에르 가르뎅은 1960~1970년대 초현대적 디자인으로 기존의 패션 스타일을 전복한 인물이라고 로이터통신은 평가했다. 실제 우주탐사 꿈이 커지던 1960년대 피에르 가르뎅은 반짝이는 페이턴트 가죽, 플라스틱, 메탈릭 보디 수트로 꾸민 ‘스페이스 룩’을 선보이며 미래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사업 수완 뛰어나 ‘오트 쿠튀르’ 대중화 앞장 피에르 가르뎅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의류)를 대중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8년 맞춤복을 전문으로 하는 ‘쿠튀리에’ 가운데 최초로 기성복 라인을 출시했고, 1983년 가을 시즌부터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이 피에르 가르뎅의 컬렉션을 취급했다. 피에르 가르뎅은 또 자신의 이름을 선글라스, 시계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하도록 라이선스를 허용하며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과시했다. 한때 프랑스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부호들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피에르 가르뎅은 최근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디자이너로서 활동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늘 다르려 노력했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늘 다르려 노력했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패션계의 전설, 기성복의 선구자로 불려온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8세. 유족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전 고인이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병원에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고 일간 르몽드와 프랑스앵포 방송 등이 전했다. 유족은 그가 “한평생 보여준 끈질긴 야망과 대담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세기를 넘나들며 프랑스와 세계에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7월 90세의 나이로 컴백 작품 발표회를 갖는 등 말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늘 패션 산업을 주도했고 앞장섰다. 그는 당시 “아직도 내일을 위한 가솔린(에너지)을 갖고 있다”면서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렸고 현재는 가장 나이가 많다. 난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평소 그의 말을 인용한 글이 올라왔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난 늘 스타일대로 일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달랐다. 늘 다르려고 의도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에서 일곱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넘어왔다. 생테티엔에서 14살에 처음 재단사로 실과 바늘을 잡은 그는 1944년 패션의 도시 파리로 옮겨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영화 촬영에 쓰이는 의상 등을 만들었다. 장 콕토 감독의 1946년작 ‘미녀와 야수’ 의상을 제작했고 콕토 감독의 소개로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알게 돼 1947년 그의 첫 번째 재단사로 일했다. 1950년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은 피에르 가르뎅은 1954년 엉덩이 부위를 둥그렇게 부풀린 모양의 ‘버블 드레스’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얻었고 1959년 처음으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비틀스 멤버들이나 여배우 로렝 바콜이 그가 디자이너한 옷을 입어 입소문을 냈다. 사업 수완도 뛰어나 1960년대부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셔츠를 비롯해 넥타이, 향수, 선글래스, 펜, 물병, 식품, 부동산 등 수백가지 제품을 선보였던 그는 잘나갈 때 1000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내 와인을 마시고, 내 극장에 가고, 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내 호텔에서 자고, 내 옷을 입을 수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던 그의 발언은 허풍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제품들이 ‘싸구려’, ‘구식’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그가 개척한 라이선싱 사업은 막대한 부와 명성을 안겨줬다. 초기에는 라이선싱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르마니, 불가리, 구찌 등 내로라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발을 걸치는 사업이 됐다. 그의 이름이 걸린 상점은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79년 중국 베이징(北京) 자금성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선보인 최초의 서양인이 됐고,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카르뎅은 2010년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나는 아마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고, 내가 선택하면 그곳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AFP 통신은 가르뎅이 앞을 내다본 창작뿐 아니라 유행을 주도한 의상을 대중에게 선보인 것으로도 생전에 주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그가 1960∼1970년대 초현대적 디자인으로 기존 패션 스타일을 뒤집어놓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르티에, 잡지 엘르 편집장이며 프로젝트 런웨이 심사위원인 니나 가르시아, 베네통 예술감독 장샤를르 드 카스텔바작, 사진작가 겸 전직 모델 니겔 바커 등이 잇따라 소셜미디어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대를 이을 후손이 없었던 고인은 2009년 일부 라이선스를 매각하면서 ‘제국’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회사 전체를 팔려고 했으나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향후 그의 유산을 정리하는 문제를 놓고 상당한 갈등이 있을 소지가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패션계의 전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별세…98세

    ‘패션계의 전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별세…98세

    이름 딴 브랜드로 세계 패션산업 주도 패션계의 전설로 불려온 프랑스 디자이너 ‘거장’ 피에르 가르뎅이 별세했다. 98세. AFP통신은 29일(현지시간) 가족 발표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 측도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파리 서쪽에 위치한 뇌이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가족들이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했다. AFP통신은 피에르 가르뎅에 대해 앞을 내다본 창작뿐 아니라 유행을 주도한 의상을 대중에게 선보인 것으로도 생전에 주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적 브랜드 피에르 가르뎅으로도 유명하다. 피에르 가르뎅은 2012년 7월 90세의 나이로 컴백 작품 발표회를 가지는 등 노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며 패션 산업을 주도했다. 로이터통신은 피에르 가르뎅에 대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현대적 디자인으로 기존의 패션 스타일을 뒤집어놓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美 보이스카우트vs걸스카우트 ‘상표권 전쟁 2년’

    美 보이스카우트vs걸스카우트 ‘상표권 전쟁 2년’

    보이스카우트 이름 변경 후 여성 회원 받자걸스카우트 2018년 11월 상표권 소송“여성 리더십 프로그램, 우리만 자격 있어”보이스카우트의 지난달 소송 기각 요청엔“이름 혼동으로 여자 아이들이 잘못 가입”‘회원수 급감에 양측 갈등 커졌다’ 분석도2년 넘게 상표권 침해 소송을 벌이는 미국 보이스카우트 연맹과 걸스카우트 연맹이 최근 다시 맞붙었다고 ABC방송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이스카우트가 여자 어린이들의 가입을 허용하면서 프로그램 명칭에서 ‘보이’(boy)를 없애자 걸스카우트측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낸 상태다. 걸스카우트가 보이스카우트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낸 건 2년전인 2018년 11월 6일이었다.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걸스카우트는 “오직 걸스카우트 연맹만이 여자 아이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서 ‘걸스카우트’와 ‘스카우트’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1910년 문을 연 보이스카우트는 2017년 10월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회원가입을 받기 시작했고, 만 11~17세가 참여하는 보이스카우트 프로그램의 명칭을 ‘스카우트 BSA’로 변경했다. 법정 갈등이 다시 표면화된 건 보이스카우트측 변호사들이 지난달 걸스카우트의 소송을 기각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다. 걸스카우트 측은 지난 24일 이를 반박하는 자료를 법정에 내고 “보이스카우트 측이 이름을 바꾼 2018년 이후 부모들이 자신의 딸을 걸스카우트인 줄 알고 보이스카우트에 잘못 등록시키는 경우가 생겼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스카우트의 명칭 변경으로 걸스카우트가 여기에 통합됐다는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게 해 달라고도 했다. 상표권 전쟁 등 양측의 갈등이 커진 데는 가입자 하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카우트의 경우 1970년대 500만명대의 회원수를 자랑했지만 최근에는 220만명 가량으로 줄었다. 또 수십년간 광범위하게 일어난 성적 학대 사건으로 수만명의 피해자에게 거액을 물어줄 처지가 되면서, 지난 2월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접수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취미생활서 국가대표로… 생활체육이 인생 바꾼다

    취미생활서 국가대표로… 생활체육이 인생 바꾼다

    주1회 생활 체육 5년간 12%P 늘어나 스포츠혁신위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 등생활-학교-엘리트 체육 균형발전 노력2023년 국립체육박물관 건립도 앞둬지난해 900만 관중을 돌파한 영화 ‘엑시트’는 유독가스를 피해 고층빌딩으로 올라가 생존을 모색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할리우드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초능력을 통해 건물과 건물을 오간다면 ‘엑시트’의 두 주인공은 대학시절 산악동아리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며 건물을 오간다. 생사가 걸린 중대한 상황에서 두 청춘남녀의 목숨을 구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생활 체육’에서 나온다. 취미로 하던 운동이 인생을 바꾸는 경험은 영화의 일만은 아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유도 여자 48㎏급 금메달리스트 파울라 파레토(아르헨티나)의 본업은 내과 의사다. 같은 대회에서 펜싱 동메달을 목에 건 게릭 마인하트(미국)는 컨설팅회사의 애널리스트로 새벽에 2시간씩 펜싱을 단련했다. 체육 중심이 ‘엘리트 체육’에 있던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례가 흔치 않다. 스포츠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은 1960년대, 일본은 1970년대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생활 체육을 활성화했지만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생활 체육 발전에 관심을 갖고 정책 지원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초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주 1회 생활 체육 참여율’은 2014년 54.8%에서 2019년 66.6%로 최근 5년간 11.8%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올해 체육 예산을 지난해 대비 15.2% 증가한 1조 6878억원으로 편성해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 스포츠클럽 육성 등 생활 체육 기반을 확대해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을 준비했다. 그러나 생활 체육 활성화는 아직 엘리트 체육 발전과 우수선수 양성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부 단위 체육업무의 분산과 학교 체육, 생활 체육, 엘리트 체육 단체가 각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데서 그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발전하는 선진형 체육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시도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문체부가 발족한 ‘스포츠혁신위원회’다. 체육인과 인권전문가로 구성된 스포츠혁신위는 7차례에 걸친 권고를 통해 생활 체육, 학교 체육, 엘리트 체육이 상호 유기적으로 균형 있게 발전하는 선진형 체육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지난해 5월 발표한 2차 권고는 공부하지 않는 학생선수와 운동하지 않는 일반학생으로 나뉘어 굳어졌던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학생선수의 학습권 등 인권 보장을 토대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체육특기자 선발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국가대표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위해 선수촌에 학습지원센터를 설치하도록 했다. 지난해 49% 수준에 머물던 주말대회 비중도 60%대까지 끌어올려 평일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권고했다. 3, 4차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스포츠 기본법의 제정과 ‘모두를 위한 스포츠’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5차 권고에는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위해 스포츠클럽법을 제정해 스포츠클럽이 일상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독일은 지역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독일인 대부분이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있다. 클럽 활동을 통해 우수선수가 클럽 대표, 지역 대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역시 생활 체육의 보급은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생활 체육에서 엘리트 선수가 선발된다. 종목별 경기단체는 엘리트 체육은 물론 생활 체육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제공한다. 6차 권고는 국가대표에만 적용하던 스포츠과학 지원 대상을 대폭 늘렸다. 연간 약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7차 안에서는 체육단체 구조 개편을 통해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24일 “생활체육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생활 문화일 뿐 아니라 엘리트 체육을 넘어 스포츠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기반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생활 체육 활성화와 맞물려 문체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23년 국립체육박물관 건립도 앞두고 있다. 체육박물관을 통해 스포츠 발전 역사와 주요 이벤트의 유산을 수집·보존하고 누구나 체육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활 체육 문화 확산을 도모할 계획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글로벌 In&Out] 자원의 저주와 중국, 북한이 얻어야 할 교훈/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글로벌 In&Out] 자원의 저주와 중국, 북한이 얻어야 할 교훈/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북한은 코로나로 인해 무역이 거의 중단됐고 시장에서는 이상 신호가 터져 환율과 유가 등의 가격변동과 이상한 움직임도 보인다. 사실 무역 중단은 내부 상황을 감안한 북한 당국의 코로나 확산 방지 대책으로 그만큼 국가 내구력에 자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라 장기화된 제재이다. 미국과 복잡한 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독자 개발한 백신을 북한에 제공하게 되면 코로나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 코로나가 급성질환이었다면 오히려 제재는 만성질환이 될 수 있고, 제재로 인해 대중 의존도를 높여 앞으로 북한의 주권 문제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에 중국은 친구이자 위협이다. 중국에 나라 경제가 먹히고 엘리트도 포섭돼 김씨 가문보다 중국 당국에 동조할 우려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재 완화를 구하는 것이 어떤가? 미국과 협상을 잘해서 비핵화의 경로에 진입하게 되면, 남북 교류가 활발해져 대중 의존도가 줄어들고 투자도 늘면서 광물이나 의류뿐만 아니라 고가 품목들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이는 경제구조도 개선되고 나라도 발전한다는 논리인데, 사실 한국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도 북한의 핵포기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같은 꿈이 있기에 이런 측면에서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이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상 유지보다 이런 방안에서 유일하게 불리해 보이는 것은 ‘김씨 가문’이다. 핵 보유가 체제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북한은 경제개발보다 체제보장을 우선시해 왔다. 하지만 제재가 장기화함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중국과 광물무역을 많이 해 온 나라들에 대해 학습할 필요가 있다. 자원은 축복이자 저주일 수 있다. 중국 투자 관련 연구에 따르면 어떤 나라는 외자도입으로 천연자원을 개발해 공업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그 나라 제도의 질이 중요하다. 비리가 적을수록 소유권제도와 법제도가 투명해지고, 공평할수록 공업 같은 복합적인 경제 생태계가 잘 발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이나 서구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1970년대 한국 정도, 혹은 1980년대 중국처럼 당국이 사적 자본의 축적과 사업가의 번창을 ‘사회악’이 아닌 필요한 것으로 보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어떤가? 현재 북한 당국은 시장을 때때로 탄압하면서 시장의 상위인 돈주(신흥자본가들)와 결탁하기도 하고 언제든 공개 총살로 위협할 카드도 갖고 있다. 소유권도 보장하지 않고 사적 자본을 반혁명적이라 선전하면서 거시적 차원에서 필요악으로 보면서도 시장이 당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사회악으로 일부를 척결하기도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보다 더 시급한 건 제도 정비다. 핵이 어렵게 이룬 성과라면 시장과 국가의 이상한 혼합은 비정상적이며 정비해야 할 제도이다. 코로나 위기에서처럼 앞으로도 시장을 탄압하고 사회를 사납게 억누를 수 있다는 잘못된 교훈을 얻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중국과 자원무역을 해 온 나라들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경제가 살아난다. 시장과 돈주가 주체혁명의 위업에서 흑사병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김 위원장은 돈주를 대대적으로 당에 입당시켜 주고 새로운 계층으로 인정하면서 소유권이 아니더라도 공동관리권과 같은 법적인 권리를 만들어 ‘하사’하고 실제로 그들을 혁명의 동반자로 인정해 주면 경제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자원의 저주에 빠져 경제개발의 경로를 개척할 리가 만무하다. 돈주가 출현한 지 20년이 지난 이제라도 북한 시장의 힘이자 북한 경제에서 주력이 된 세력을 법적으로 보호해 주면 제재와 코로나로 인해 사라진 경제 개혁과 경제 개발의 꿈을 되살릴 수 있다.
  • 中 동물원서 희귀 ‘백사자 네쌍둥이’ 탄생…야생에는 단 13마리뿐

    中 동물원서 희귀 ‘백사자 네쌍둥이’ 탄생…야생에는 단 13마리뿐

    중국 동물원에서 희귀 백사자 네 마리가 한꺼번에 태어났다. 21일 AFP통신은 중국 장쑤성 난퉁시 동물원에서 백사자 네쌍둥이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6일 난퉁시 난퉁숲야생동물원에서 ‘백사자 사둥이’가 태어났다. 지난 5월 이 동물원에서 암컷 3마리, 수컷 1마리로 구성된 또 다른 백사자 네쌍둥이가 탄생한 지 6개월 만이다. 쌍둥이는 모두 수컷으로 사육사들의 24시간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동물원 관계자는 “새끼 네 마리 모두 건강하다. 성장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밝혔다. 난퉁숲야생동물원은 오는 26일 백사자 사둥이를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동물원 측은 호기심 많은 새끼 사자들이 우리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도 함께 공개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털로 뒤덮여 있는 새끼들은 모두 얼핏 보기에는 알비니즘(백색증) 개체 같지만 알비노는 아니다. 멜라닌 색소 결핍으로 눈이 붉은색을 띄는 알비노와 달리, 파란색 혹은 녹색인 것에서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백사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팀바티티 지역에서 자주 목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단 13마리만이 야생에 남아있다. 동물원에 서식하는 개체도 200여 마리 수준으로 매우 희귀하다. 1970년대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 유입된 후 백사자를 마구잡이로 사냥한 탓이 크다.백사자보호단체가 나선 덕에 현재는 CITES(세계 동물거래 협약)에 의해 보호받고 있지만, 야생 개체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일반 사자로 분류돼 있는 탓에 보전 인식도 미흡하다. 백사자 보호단체는 “세계자연보전연맹 기준 백사자는 일반 사자와 다를 바 없다. 때문에 다른 사자와 마찬가지로 백사자도 멸종위기 ‘취약(VU : Vulnerable)’ 등급에 올라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구름은 물론 건물 뒤까지 엿보는 첩보 위성 등장

    구름은 물론 건물 뒤까지 엿보는 첩보 위성 등장

    지구 궤도를 공전하는 한 새로운 인공위성은 레이더 기술 덕분에 건물 벽을 관통할 만큼 강력해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장소에 관한 고해상도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B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위성기술기업 ‘카펠라 스페이스’(이하 카펠라)가 설계한 신형 위성 카펠라 2호는 합성개구레이더(SAR) 기술을 사용한다. 이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70년대 개발한 것으로, 가시성이 낮은 대기 상태나 구름 낌 또는 낮밤에 관계없이 지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SAR 기술은 강력한 무선 신호를 촬영해 관심이 있는 지점을 조명하고 되돌아오는 각 펄스의 반향에 의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해석해 이미지를 자세하게 생성한다. 구조물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위성이 자체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수집하기에 때때로 구조물을 관통해서 보여준다. 이 위성은 가로, 세로가 각각 50㎝까지 고해상도로 이미지화할 수 있으며 관심 영역(AOI)에서 최대 1분 동안 노출할 수 있는 집중 모드라는 최신 업데이트 기술로 수정처럼 선명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카펠라는 현재 단일 장치를 시험하고 있으며 미 국가정찰국(NRO)와 미 공군 등 정부 기관과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카펠라는 SAR 기술은 건물 내부의 사람을 감시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비록 레이더 전파는 벽을 관통할 수 있지만, 내부의 어떤 것도 이미지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카펠라는 “이 기술은 무선 전파를 이용하는 데 휴대전화나 와이파이처럼 벽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휴대전화와 와이파이 신호도 무선 기지국이나 와이파이 접속지대에서 멀어질 때 약해진다”면서 “레이더 신호는 이와 같다”고 설명했다.카펠라가 공개한 일본 도쿄도 치요다시의 고층 빌딩들을 보여주는 한 위성 이미지는 건물들을 투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건물 내부가 아닌 벽 너머 도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카펠라는 이런 건물을 유령처럼 보이게 하는 이미지 왜곡에 의해 이런 전환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흑백의 광학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실제로 레이더 자료의 시각적인 표현으로 지구 표면과 인공 물체에 관한 전파의 반사인 것이라고 덧붙였다.카펠라는 자사의 혁신적인 기술은 기후부터 농작물이 있는 밭이나 기반시설까지 모든 것을 관측함으로써 세계 사람들이 자기 사업과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공간을 활용하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상업용 위성은 구름을 통해 관측할 수 없고 밤에는 관심 지점의 상세한 이미지를 찍을 수 없지만 이 기업은 날씨나 빛의 조건에 관계 없이 이런 이미지를 촬영하는 SAR 기술을 사용한다. 카펠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매시간 감시할 수 있는 36개의 개별 위성으로 이뤄진 집단 위성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각 우방 국가나 민간 기업으로부터 세계의 어떤 지역의 이미지든 요청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진=카펠라 스페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시론] 바이든의 다자체제 복원… 국내 규제 개정을/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시론] 바이든의 다자체제 복원… 국내 규제 개정을/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1945년 12월 18일. 불과 4개월여 뒤 세상을 떠났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 상원에서 마지막 공식 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미국 주도로 형성되고 있던 다자주의 체계가 적대적 대립을 완화하고 상호 이익과 존중을 가져온다는 장점을 열거하면서 의회가 이런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동안 다자주의 경제체제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위기를 겪고 형해화돼 왔는지를 목격해 왔다. 197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서구 중심의 다자경제체제는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도출했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공산권의 몰락 이후 구 공산권 국가들을 대거 편입시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게 되는데, 이것으로 명실상부한 다자경제체제가 마침내 완성됐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다자주의가 잘 작동해 왔다고 생각하는 전후 40여년이 사실은 다수의 공산권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반쪽짜리 복수국 간 협정에 불과했으며, 다자경제체제 아래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의 무역자유화 협상은 관세장벽의 철폐라는 큰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비관세장벽에 관해서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명실공히 거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주의가 확립된 1990년대 중반 이후 WTO 중심의 다자체제는 부분적 성과에도 불과하고 가장 핵심적인 ‘도하 어젠다’를 합의하지 못하고 표류해 왔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보호무역주의의 도래, 미국과 중국 간 거친 경쟁을 목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 강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받아 들고 있다. 이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동맹을 중심으로 다자체제를 복원한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이 트럼프 시대와는 달리 WTO를 통해 산업보조금, 국영기업, 지식재산권 및 노동과 환경 이슈를 풀어 나가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를 요하는 지난한 경로이다. 미국이 인내심과 관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WTO의 개혁이 우리의 통상정책 방향과 큰 차원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내부적으로 WTO 개혁방향에서 걸림돌이 되는 국내 규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전향적인 개정을 고려해 볼 일이다. 디지털 무역과 관련해서는 양자, 다자, 복수국 간 협정을 모두 동원해 디지털 무역규범을 확립하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무역규범이 다자차원에서 확립되는 데 힘을 쏟아 규범 제정에 영향을 미치고 규제 조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우리나라의 FTA에서 디지털 분야에 관한 규정은 ‘미일 디지털동반자협정’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이나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 비해 훨씬 낙후돼 있다. 특히 데이터 지역화에 관한 입장,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 간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문제는 우리가 머지않아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이 확정한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하나의 모범 사례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 환경 관련 이슈는 파리협정과 더불어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다수의 양자 및 지역 FTA에서 이미 합의된 규정들이 있다. 이를 고려해야 하며 기존에 합의된 규범이 우리의 환경정책과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친환경 상품에 대한 전면 무관세는 과거 정보통신기술(ICT) 상품에 대한 무관세와 같은 획기적인 국제적 합의의 대상이라고 할 것이다. 기후변화 및 환경과 관련해서는 한중일 협력이 특히 중요하다. 공기오염의 국제 간 이동뿐 아니라 폐플라스틱 처리, 해상 및 육상 운송의 친환경화, 동북아 소재 원전 영향 공동평가, 탄소 배출 억제와 관련되는 천연가스 활용 협력, 신재생에너지의 국제 간 이동 등 지리적으로 인접 국가라서 더욱 중요해지는 친환경 협력의 의제는 너무나도 많이 있다. 다시 케인스로 돌아가 보자. 그는 상원에서의 마지막 연설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관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환경 분야는 미국과 중국 모두 관심을 갖고 추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 어, 피카소? 남미서 온 과야사민!

    어, 피카소? 남미서 온 과야사민!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에콰도르의 국민화가이자 문화영웅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실제 그의 모든 작품은 에콰도르의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정부의 승인 없이는 나라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의 대표 작품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이 지난 주말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양국의 문화교류 활성화 차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행사다.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태어난 과야사민은 1941년 키토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제2회 에콰도르 국립수채화 데생 살롱전’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상을, 이듬해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1등 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남미 대표 화가로 입지를 굳혔다. 남미 원주민인 케추아족 부모에게서 태어난 과야사민은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가난한 노동자와 빈민을 핍박하는 참혹한 현실에 분노했다.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등 분쟁과 독재로 인한 폭력과 비극에 대해서도 깊이 고뇌했다. “예술가라면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작품 활동을 50여년간 쉼 없이 펼쳤다.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애도의 길´(1940~1950년대), ‘분노의 시대’(1960~1970년대), ‘온유의 시대’(1980~1999년) 등 시기별 대표작을 아우르는 유화, 수채화, 드로잉 89점을 선보인다. 과야사민의 첫 연작인 ‘애도의 길’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를 직접 여행한 후 그린 시리즈로, 남미 원주민의 정체성과 희로애락을 담았다. ‘분노의 시대’ 작품들에선 반제국주의 성향이 확고했던 작가의 정치적인 색깔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인류의 미래를 움켜쥔 권력자 5명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펜타곤에서의 회의’ 연작, 스페인 내전으로 남편, 아들, 아버지를 잃은 여인의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한 ‘눈물 흘리는 여인들’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회화 기법에서도 피카소에게서 영향을 받은 입체주의로의 변화가 확연하다. 노년기에 그린 ‘온유의 시대’ 작품들에선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랑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내년 1월 22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1세대 아나운서·쇼호스트 고려진씨 별세

    1세대 아나운서·쇼호스트 고려진씨 별세

    1세대 방송인인 아나운서 출신 쇼핑호스트 고려진씨가 별세했다. 79세. 고씨는 1962년 KBS 제주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64년 TBS 개국과 함께 스카우트돼 회사를 옮긴 후 1987년까지 이곳에서 일했다. 고인은 1960~1970년대 브라운관을 주름 잡은 스타 아나운서였다. ‘가로수를 누비며’, ‘운전사 노래자랑’, ‘6대 가수쇼’ 등 프로그램에서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95년에는 CJ39쇼핑으로 이적해 쇼핑호스트로 변신했다. 국내 쇼호스트 1호라는 타이틀에 이어 해당 회사에서 이사직에 올라 동종업계에서는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자녀로는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23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남한강 공원묘원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코비 브라이언트 아내·장모 법정까지 간 ‘손주 돌봄비용’

    코비 브라이언트 아내·장모 법정까지 간 ‘손주 돌봄비용’

    아들·딸을 대신해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에겐 ‘월급’을 얼마나 줘야 할까. 미국 사회에서 가사와 돌봄노동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의 가치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미 프로농구(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지난 1월 딸과 함께 사고사한 후, 아내 바네사가 자녀 양육비를 놓고 친정 엄마인 소피아 레인과 법정 싸움을 시작한 게 알려지면서다. 19일(현지시간) BBC는 이 논쟁을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라고 하면서도 “개별 사안과 별개로 레인의 주장이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역사를 상세히 다뤘다. 레인은 “오랜 시간 보모 역할을 해 왔으며, 사위가 여생을 보살펴 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바네사는 “그녀는 18년간 하루에 12시간씩 아이들을 돌봤다며 그 대가로 시간당 96달러를 달라고 한다. 실제로는 갓난아기 시절 잠깐 봐준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 레인은 500만 달러와 집, 고급 SUV 차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내 육아와 집안일을 일반적인 노동의 범주로 보고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세기 이상 이어져 왔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1970년대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주축이 돼 ‘국제 가사노동 임금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일반적인 생산노동에서 여성이 배제돼 육아, 가사 같은 재생산노동에만 종사하며 남성의 우위가 생긴다”며 가사노동도 자본주의 임금 경제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하루 동안 직장과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는 ‘여성총파업’을 진행했는데,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이면 펼치는 여성 파업의 토대다. 50년이 흐른 현재,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많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영국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하루에 45분 더 일한다. 1년으로 치면 5.7주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학교와 보육시설이 문을 닫고, 가족 내 고령층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을 돌보는 데 여성이 내몰리며 성별 격차는 더 커졌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 3월 발간한 ‘불평등보고서’에서 전 세계 여성 가사노동의 가치를 약 10조 9000억 달러(1경 1900조원)로 추산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매출 500대 기업’에서 애플, 아마존 등 상위 50개 기업의 총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NBA 전설’ 코비 아내·장모가 양육비 전쟁 벌이는 이유는

    ‘NBA 전설’ 코비 아내·장모가 양육비 전쟁 벌이는 이유는

    아들·딸을 대신해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에겐 ‘월급’을 얼마나 줘야 할까. 미국 사회에서 가사와 돌봄노동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의 가치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미 프로농구(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지난 1월 딸과 함께 사고사한 후, 아내 바네사가 자녀 양육비를 놓고 친정 엄마인 소피아 레인과 법정 싸움을 시작한 게 알려지면서다. 19일(현지시간) BBC는 이 논쟁을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라고 하면서도 “개별 사안과 별개로 레인의 주장이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역사를 상세히 다뤘다. 레인은 “오랜 시간 보모 역할을 해 왔으며, 사위가 여생을 보살펴 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바네사는 “그녀는 18년간 하루에 12시간씩 아이들을 돌봤다며 그 대가로 시간당 96달러를 달라고 한다. 실제로는 갓난아기 시절 잠깐 봐준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 레인은 500만 달러와 집, 고급 SUV 차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내 육아와 집안일을 일반적인 노동의 범주로 보고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세기 이상 이어져 왔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1970년대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주축이 돼 ‘국제 가사노동 임금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일반적인 생산노동에서 여성이 배제돼 육아, 가사 같은 재생산노동에만 종사하며 남성의 우위가 생긴다”며 가사노동도 자본주의 임금 경제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하루 동안 직장과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는 ‘여성총파업’을 진행했는데,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이면 펼치는 여성 파업의 토대다. 50년이 흐른 현재,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많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영국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하루에 45분 더 일한다. 1년으로 치면 5.7주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학교와 보육시설이 문을 닫고, 가족 내 고령층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을 돌보는 데 여성이 내몰리며 성별 격차는 더 커졌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 3월 발간한 ‘불평등보고서’에서 전 세계 여성 가사노동의 가치를 약 10조 9000억 달러(1경 1900조원)로 추산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매출 500대 기업’에서 애플, 아마존 등 상위 50개 기업의 총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괴물이나 다름 없어”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괴물이나 다름 없어”

    “6년 전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필두로 ‘영 페미니즘’이 활발히 전개됐죠. 지금 여성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 이후 당신들은 행복해졌는지.” 페미니즘의 위세가 맹렬하다. 비판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도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1세대 여성운동가 오세라비(본명 이영희·사진) 미래대안행동 여성위원장은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괴물’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길 하면 페미니스트들에게 격하게 공격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나라도 나서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김소연 변호사, 나연준 ‘제3의 길’ 편집인과 함께 최근 출간한 ‘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글통)에서 ‘정치와 결탁한 금권정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특히,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들로 더불어민주당의 586세대 여성 의원들을 핵심으로 지목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자살했을 때 남인순 의원 같은 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갔죠.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야 한다고도 했고요. 남들은 마구잡이로 공격하지만, 정작 자기 진영의 부패에는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미자주를 외치던 윤미향 의원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는 또 어떻습니까. 1970년대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정치화한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책은 공저자인 김 변호사가 대전시의회 시의원을 지내면서 겪었던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카르텔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힌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성폭력 상담소의 각종 비리와 보조금 부정사용, 기부금 요구 등 실태를 제보받은 뒤 이를 감사하겠다고 하자, 단체는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두려워해 결국 자진폐쇄했다.나 편집인은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정대협부터 돌아보고, 이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정치적인 이득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정의연 사태 이후 보였던 여성계의 위선을 지적하고, 이들의 페미니즘을 ‘이념이 아닌 규율이자 사업, 당파투쟁기술’로 요약한다. 공저자들과 페미니즘의 문제를 짚은 오 위원장은 “이런 괴물 같은 페미니즘이 최근엔 학교로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년 동안 학교현장에서 제보를 받고 자료를 수집했고, ‘이러다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평등 교육 강사가 한 해에만 5000여명이 활동합니다. 이들에게 돈만 퍼줄 게 아니라 강의 내용을 꼼꼼히 잘 들여다봐야 해요. 자연스러운 성구별을 가르치지 않고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 잣대를 내세워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형성하고 또 강화하고 있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겁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확산한 페미니즘에 관해 “메이저 좌파 여성 단체들은 이익단체, 압력단체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면서 “페미니스트 중 극소수 여성들만 혜택을 받고 나머지 대다수 여성은 외면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괴물을 정상으로 돌리는 노력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첫 걸음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페미니즘도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열린세상] “내가 백신이다”/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내가 백신이다”/김세연 전 국회의원

    확실히 달라진 세상이다. 물리적 세계에서의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atom)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 정보 처리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의 시대가 왔다. 서로의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기관 내부쟁투에서의 진압 도구가 총칼의 물리력이 아닌 사이버 역량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11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를 둘러싸고 법무부와 대검찰청을 배경으로 벌어진 활극을 보고 12·12 사태의 기시감을 느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1979년 신군부에서는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국방부와 육본을 장악하기 위하여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육본 헌병감 등을 무력화시키며 수경사 헌병대와 특전사 2개 공수여단 등의 물리적 병력을 동원하여 거사하였다. 이번에 법무장관의 지시를 받은 대검 감찰부에서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할 때 서울중앙지검 소속 디지털포렌식팀이 긴급투입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1979년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 2020년에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놓고 당대 최고 권력기관 내에서 격돌이 발생한 공통점이 흥미롭다. 다만, 이번에는 유혈이 낭자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시시비비는 앞으로 가려봐야겠지만) 적법 절차 내에서 총 대신 컴퓨터를 가지고 충돌이 벌어진 점이 다르다. 학맥과 인맥으로 얽힌 사실상의 사조직이 이 거사에 동참하지 않는 직속상관이나 직속부하를 소위 퐁당퐁당 식으로 건너뛰면서 국가기관의 공적 의사결정 체계를 무너뜨린 점은 같으나 핵심적인 방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걸 보면서 대한민국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진척을 실감한다. 나라가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는데, 지금 나라를 이끄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너무 빨리 가는 데다 방향도 정반대로 잡은 것이 더욱 큰 문제다. 1970년대 세계관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나간 뒤 그 자리를 1980년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채우더니 불법 유턴을 하고 다시 1970년대로 역주행하는 형국이다. 지금은 2020년인데도 말이다. 양극단 한 줌씩의 새우 싸움에 가운데 있는 고래의 등이 터지는 기이한 상황이다. 미워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보자면 이 두 개의 새우 집단의 이상행동은 각각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권력을 쥐었을 때 민심과는 갈수록 멀어지는 한풀이 정치와 폭주가 그 증상으로 나타난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인데, 그 문제의식은 지금까지 죽은 권력만 물어뜯고 살아 있는 권력에는 복종하는 검찰의 행태가 문제였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는 수사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1993년 하나회 해체’와 같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질주하는 정권의 이성적 판단은 온데간데없다 쳐도 이 와중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감사원장, 검찰총장은 차치하고 평상시 같으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부장판사와 평검사 등 무명의 공직자들의 직무수행 근황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성’은 살아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니 그나마 안도가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나. 누구를 탓해야 하나. 그런데, 이제 남 탓 하지 말고 내 탓을 하자. 국가공동체, 정치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자랑스러운 민주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시민이 깨어나서 직접 항체가 되어야 한다. 병균과 바이러스, 각종 노폐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 책무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의 백신 역할을 할 것이다. 건강한 시민들로부터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 정치집단들은 스스로 그 수명을 다했음을 자각하고 권력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게 과감하게 넘겨줌으로써 역사적 책무를 완수하는 게 좋겠다. 애꿎은 동료 시민을 괴롭히지 말고 한발 물러나 각각의 상처를 잘 치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유모차

    [이경우의 언파만파] 유모차

    ‘동차’(童車)는 국어사전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다. ‘동차: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수레.=유모차.’(표준국어대사전) 일상의 말과 글에서 쓰이는 예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국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확인할 일도 없다. 사라져 간 말이 됐다. 1970년대 어느 국어학자는 ‘동차’가 표준어로 돼 있어도 ‘유모차’(乳母車)가 쓰이는 현실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에는 ‘유모차’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뜻풀이는 ‘동차’에 돼 있었다. ‘동차’에 더 중심을 둔 것이다. 그렇지만 아기가 있는 집에서 갖기를 원하는 수레의 이름은 ‘유모차’였다. 그것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라는 것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유모차’는 아기가 타는 것이고, ‘유모’와는 관련이 없으니 적절치 않다는 의견은 하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2018년 6월 서울시는 ‘성평등 언어사전 시민 참여 캠페인’을 벌였다. 말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취지에서 성차별적인 표현을 바꿔 보자는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에서 한 시민이 ‘유모차’ 대신 ‘유아차’로 바꿔 달라는 제안을 했다. 이유는 ‘유모차’라는 낱말에 ‘아빠’는 없고, ‘엄마’만 있어 평등 육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각계 전문가 회의를 거쳐 유아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乳兒車)로 개선하자고 발표했다. ‘유아차’는 곧 ‘서울시성평등생활사전’에도,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렸다. ‘유아’는 ‘동’(아이)에 들어간다. 말이 본래 지닌 의미만 보자면 ‘유아차’는 앞서의 표준어였던 ‘동차’로 돌아간 셈이다. 북녘의 ‘조선말대사전’에도 ‘동차’가 보이는데, 뜻풀이에는 ‘애기차’로 가라는 화살 표시가 돼 있다. ‘동차’가 한자어이니 고유어인 ‘애기차’를 쓰라는 표시다. ‘유모차’는 쓰지 말라는 뜻에서 가위표(×)도 돼 있다. ‘유아차’가 ‘유모차’를 대신할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다. ‘성평등’이란 차원의 의미를 담았다지만,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 알 수 없다. 공적인 언어들에서도 여전히 ‘유모차’가 절대적이다. 판매하는 쪽에서도 ‘유모차’를 버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유모차’의 ‘모’가 ‘어미 모’ 자인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젊은 엄마와 아빠들은 ‘유모차’를 줄여서 ‘윰차’라고도 한다. ‘유모차’가 본래 지닌 의미 같은 건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유아차’가 새로운 약속이 되려면 기존 약속인 ‘유모차’와 다른 게 충분해야 한다.
  • TV 보다가 “김일성 잘생겼네”…감옥갔던 90대 재심서 무죄

    TV 보다가 “김일성 잘생겼네”…감옥갔던 90대 재심서 무죄

    1970년대 당시 “김일성이 잘생겼다”는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불법구금돼 옥살이를 해야 했던 90대 여성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관용)는 최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95)씨의 재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978년 6월 초 경기도 소재 지인의 집에서 TV를 보다 북한의 대남 선전방송이 나오자 이를 시청한 뒤 “김일성이 늙은 줄 알았더니 잘 먹어서 그런지 몸이 뚱뚱하게 살이 찌고 젊어서 40대 같이 보이는데 잘 생겼더라”라는 말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나아가 A씨가 주변 사람에게 함께 선전방송을 보자고 권유한 혐의를 더해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보다 높은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1979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A씨는 40여년이 지난 올해 5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주변인의 진술에 따르면 A씨가 평소 북한에 대해 언급한 바 없고, 동네 사람들이 저녁 시간에 모여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북한 방송이 나온 뒤 공소사실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A씨가 1978년 당시 경찰에 체포된 후 열흘가량 불법 구금된 사실을 언급하며 과거 수사기관과 법정 진술도 임의성도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당시 참고인들의 진술은 동네 사람들이 연속극을 보려고 TV 채널을 돌려보다 우연히 북한 방송이 나온 뒤 손씨가 공소사실 기재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에 불과하다”며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구 반공법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으므로, 손씨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K1 전차, 美 허가 안하면 수출 못한다?…‘3대 조건’ 족쇄

    K1 전차, 美 허가 안하면 수출 못한다?…‘3대 조건’ 족쇄

    한국은 세계 11위 무기 수출국입니다. 수류탄, 지뢰 등 탄약류를 넘어 고성능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명품 무기가 잇따라 탄생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성능 좋은 외국산 무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며, 국산 무기를 낮춰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국산 무기를 개발해야 할까. ‘K1 전차’가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10일 한국국방연구원이 발간하는 국방논단에 실린 ‘방산수출지원과 정부기관 간 약정’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한국은 불안한 안보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자체 전차 생산 능력을 갖춘 북한은 신형인 T62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자 한국에 주둔 중이었던 미 7사단이 철수하면서 주한미군 규모가 2만명이나 줄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한국형 전차’ 개발에 나섰습니다. 국방부에 전차관리사업단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당시 국내 기술력만으로는 신형 전차 개발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생산기반도 없는데 갑자기 고성능 전차를 만들어야 했으니 정부도 골머리를 앓았을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크라이슬러 디펜스(1980년대 이후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설계한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바탕으로 한 국산 전차 개발사업이 진행됩니다. 1986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전차가 K1 전차입니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88전차’로 불리기도 했습니다.●무기 개발 박차… 한국 세계 11위 무기수출국 1978년 7월 한미 양국은 역사적인 ‘한국형 전차’ 양해각서에 서명했습니다. 사업 목표는 한국형 전차 시제품 2대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미국은 3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당시엔 이 조건들이 K1 계열 전차의 수출길을 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서둘러 전차부터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을 겁니다. 양해각서는 ‘K1 전차 및 그 계열전차를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미국에 대한 적성국가가 아니더라도 기술 유출 위험이 있거나, 자국 방위산업체들이 수출에 반대하면 해외 수출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어렵게 미국 동의를 얻더라도, 오랜 시간이 소요돼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미 정부는 해외에 수출할 경우 완성전차 1대당 5만 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국방연구원 연구팀은 “K1 전차와 계열전차 구매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가격이 특히 중요한 결정요소여서 로열티로 인한 가격 상승은 수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가격 문제로 수출에 실패한 사례도 나왔습니다.●동남아·중동 등 가격 중요… 막판 무산도 우수한 3세대 전차로 인정받은 K1 전차는 1997년 말레이시아가 추진한 7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전차 도입사업 입찰에 참여하게 됩니다.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K1과 폴란드 부마르 와벤데의 PT91, 우크라이나 KMDB의 T84가 경쟁했습니다. 현대정공은 정글이 많은 말레이시아 지형에 맞게 전차를 개량했습니다. 51.1t인 중량을 47.9t으로 크게 줄이고 적재 포탄수는 47발에서 41발로 줄이는 대신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양압장치’(차량 내부 압력을 높여 화생방 공격을 방어하는 장치)를 장착한 최신 ‘K1M’을 내세웠습니다. 말레이시아 측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계약이 성사되는 듯 했으나 막판에 폴란드의 PT91M에 밀려 수출이 좌절됐습니다. 연구팀은 “K1M의 탈락 원인은 성능보다는 가격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후 K1 전차 및 그 계열전차는 아직까지 수출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또 다른 문제는 당시 양해각서의 효력이 영구적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이 먼저 나서서 효력을 정지시킬 가능성은 ‘0%’일 겁니다. 결국 미국의 사전 동의와 로열티 지불이 계속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개발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 K1 전차를 구식 전차라고 여기는 분도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군에서 1000대 이상 운용하고 있는 주력 전차입니다. 뿐만 아니라 105㎜ 강선포를 120㎜ 활강포로 강화한 K1A1·K1A2, 전후방 감시카메라, 실시간 전차 간 정보 공유, 디지털 전장관리체계 등 각종 전장시스템을 대폭 강화한 K1E1 등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K2 전차 보급이 계속 확대되면 K1 전차는 개발도상국 등에 성능 좋은 중고전차로 수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미국과 협의해 양해각서 내용을 삭제하지 않는 한 수출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을 미국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반드시 넣어야 할 항목이었는지 모릅니다.●K2 기술 이전 계약… 터키 강력한 경쟁자로 이런 사례는 K1 전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에 맺었던 무기개발·생산과 관련한 약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관리해야 한다”며 “조율이 불가능하다면 문제가 되는 기술이나 부품의 국산화를 통해 문제의 소지를 미리 없애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약정 체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약정을 체결할 때 가급적 개조·개량품은 한국이 지식재산권을 소유하도록 하고, 외국이 지식재산권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도 유효기간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때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2008년 K2 전차 기술 이전 계약을 맺고 터키가 개발한 ‘알타이 전차’는 이미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됐습니다. 연구팀은 “지식재산권을 우리나라가 아닌 수입국이 가져간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수출하자마자 강력한 수출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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