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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견이 요리 훔쳐 먹는데 그녀의 보고서가 왜 필요할까”

    “반려견이 요리 훔쳐 먹는데 그녀의 보고서가 왜 필요할까”

    “누가 스트로가노프(쇠고기 요리의 일종)를 먹었는지 우리는 예단하기 전에 그레이의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라온 포스트다. 반려견이 요리를 훔쳐 먹고 있는데, 너무도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제시돼 있는데도 정부 보고서를 기다려야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비아냥대는 밈(meme)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롯해 총리실과 내각부, 교육부 간부와 직원 등이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발표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적어도 네 차례 와인 등을 홀짝거리는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언론의 지적에 ‘드링크스(Drinks)’란 희한한 표현을 갖다대거나 ‘업무 모임’이라고 호도하며 파티가 아니라고 얼토당토않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른바 ‘파티 게이트’ 내막을 조사하는 수 그레이(65) 내각부 제2 차관이 굉장히 눈길을 많이 끄는 존재다. 대학 문턱도 가보지 못한 그가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해 지난해 5월 차관에까지 올랐는데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출신이 수두룩한 영국 정치인과 관료들이 쩔쩔 매는 존재가 됐다. 적지 않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실세 정치인들이 그레이의 윤리 조사를 받고 내각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존슨 총리가 이미 그레이의 대면 인터뷰를 받았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레이 차관은 총리 관저와 내각부, 교육부 건물 등에서 열린 직원 파티의 참석자, 목적 등을 파악해 방역지침 위반 여부를 따져 보고서를 내게 된다. 제출 시한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영국 언론들은 몇 주 내지 몇 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레이의 보고 라인은 사이먼 케이스 내각부(Cabinet Office) 장관→존슨 총리인데 내각부에서도 파티가 열린 것이 드러나 케이스 장관은 배제됐다. 존슨 총리도 당사자여서 보고서가 내린 결론을 배척하기 힘들다.영국 관료들이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은 것은 최근 들어서다. 그만큼 철저히 숨어 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참모였던 올리버 레트윈 전 보수당 의원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최고 실력자”라며 “그레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 우리 회고록도 그가 다 검열한다”고 말했다. 2010년 연립정부 시절 자유당 출신 재무차관을 지낸 데이비드 로스는 의회에서 그레이에게 “신의 대리인(deputy God)”이란 호칭을 선물했다. 그는 회고록에 “위대한 영국을 누가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바로 수 그레이라는 여성”이라고 썼다. 거스 오도넬 내각부 차관은 2017년 BBC 방송에 “만약 영국 공무원 중에 누군가 회고록을 쓴다면, 수 그레이의 것이 가장 값지고 화제를 일으킬 것이지만 수는 결코 쓰지 않고 모든 비밀을 안고 무덤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털어놓았다. 내각부는 총리를 보좌해,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고 직원들의 윤리를 감찰하고 정부개혁을 주도하는 부처다. 그레이 차관은 고위 공직자들의 행동 규범을 정하고 비위 사실을 냉혹하게 판단하는 조사관으로 ‘악명’ 높다. 내각부 국장 시절, 의원 출신 장관과 차관 셋의 비리를 파헤쳐 물러나게 했다. 그레이는 2017년 수석장관(First Secretary of State)으로서 테리사 메이 총리의 강력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데미안 그린의 여기자 성추행을 조사하면서 “양쪽 주장이 상반되지만, 여기자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plausible)”는 보고서를 냈다. 그레이는 정치적 압력을 이겨내며 “설득력이 있다”는 표현을 관철시켰다. 심지어 2008년 그린이 업무용 의원 컴퓨터로 포르노물을 본 것도 밝혀냈고, 그린은 결국 사임했다. 2012년엔 경찰관에게 “하류인생(pleb)”이라고 욕을 퍼부은 보수당 의원 앤드류 미첼이 그레이의 조사를 받은 뒤 정치권을 떠났다. 그레이는 1970년대 말 공무원이 됐다가 한동안 북아일랜드 뉴리에서 컨트리 가수인 남편과 함께 선술집(pub)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내각부에 다시 합류했다. 그래서 총리실 직원들이 ‘파티’가 아니라 ‘업무의 연속’ ‘업무 모임’이라고 강변하는 것을 놓고, 영국인들은 “선술집 주인이‘술 파티’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하면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농을 해댄다. 해서 그레이의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밈의 풍자가 더욱 신랄해 보인다. 트위터에는 “내가 냉장고의 마지막 치즈 조각을 꺼내 먹었는지 수 그레이에게 조사를 부탁했다”는 비아냥도 나돈다.
  • 나그네새 ‘흰배뜸부기’를 아시나요

    나그네새 ‘흰배뜸부기’를 아시나요

    과거 우리나라에서 ‘나그네새’라고 불렸던 흰배뜸부기를 아시나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올해 첫 테마 전시로 ‘흰배뜸부기가 제주에서 첫 번식에 성공했어요’를 18일부터 4월 30일까지 제주 체험관 입구 테마 전시 코너에서 선보인다고 17일 밝혔다. 하얀 배가 불룩 튀어나온 흰배뜸부기는 주로 동남아시아권에 분포하며, 일본과 한국에는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지역에서는 지난 1990년 김녕리에서 사체가 발견됐으며, 1998년 12월 김기삼 씨가 구좌읍 습지에서 처음 촬영했다. 2007년 7월에는 제주를 찾은 흰배뜸부기 한 쌍이 제주시 한경면 조수1리 용선달이 습지에서 둥지를 틀었으며,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난 것이 확인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흰배뜸부기의 번식과정을 비롯해 뜸부기류 박제 표본과 둥지, 동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뜸부기과 조류는 전세계적으로 152종이 분포하며, 제주에는 흰배뜸부기 외에도 알락뜸부기, 흰눈썹뜸부기,쇠뜸부기 등 9종이 보고됐다. 노정래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마을 연못은 생물자원의 보고이자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최적지”라면서 “우리 주변의 생태·과학 이슈를 박물관에서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를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핵잼 사이언스] 中서 2500년 전 ‘물고기 비늘’ 디자인 갑옷 발견

    [핵잼 사이언스] 中서 2500년 전 ‘물고기 비늘’ 디자인 갑옷 발견

    중국에서 약 2500년 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 갑옷이 발굴됐다.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해외 언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진은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투르판 인근 지역에서 가죽 의복을 발굴했다. 가죽 의복이 발굴된 묘지는 1970년대에 처음 발견된 뒤 꾸준히 발굴작업이 이어진 곳이다. 고고학 연구진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기원전 12세기부터 약 1400년 동안 공동묘지로 활용돼 왔으며, 이곳에서 500개 이상의 무덤이 발견됐다. 이 지역을 공동묘지로 활용한 당시 사람들은 천막을 짓고 농업에 종사했으며, 동시에 소와 양 같은 가축을 기르고 말타기에 능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에 발굴한 갑옷이 2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며, 물고기의 비늘이 겹쳐진 것처럼 디자인된 생체공학적 가죽 갑옷으로 평가된다. 갑옷은 각각의 가죽 조각 5444개를 이어 붙여 제작됐으며, 여기에는 모두 소가죽이 이용됐다. 연구진은 “이 갑옷의 외형은 인간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생체공학적 디자인의 초기 버전과도 같다. 외부로부터의 타격과 찌르기 등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며 “이러한 디자인의 갑옷은 고대 유물 발굴사에서도 매우 희귀하다”고 설명했다.연구진에 따르면 가죽으로 만든 물고기 비늘 디자인의 갑옷 중 가장 잘 보존된 것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미국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비교적 잘 보존된 가죽 비늘 갑옷이 전시돼 있다. 이 갑옷의 역사는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정확한 제작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해당 갑옷의 기원이다. 연구진이 가죽 갑옷에 박혀있는 식물의 가시를 상대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전 786~기원전 543년으로 추정됐다. 이는 페르시아인이 물고기 비늘 형태의 갑옷을 착용했던 시기보다 훨씬 앞선다. 중국에는 해당 시기에 이러한 형태의 가죽 갑옷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대신 연구진은 이 갑옷이 메소포타미아 역사에 등장하는 신아시리아 제국의 갑옷과 훨씬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아시리아제국은 서로 기원이 다른 여러 민족과 부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기원전 934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존재했다. 연구를 이끈 취리히대학 아시아동양학 연구소의 패트릭 베르트만 교수는 “우리의 예측이 사실이라면 해당 갑옷은 기원전 1000년 전반기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술 이동’의 드문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500년 전 갑옷은 언뜻 보기에 먼지가 뭉쳐 있는 가죽 조각처럼 보였다. 그래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유물이 발굴된 지역에서는 극도로 건조한 기후가 이어져 왔고, 이러한 날씨가 가죽이 오랜 시간 양호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학술지 쿼터너리 인터내셔널(Quaternary International) 최신호에 실렸다.
  • [씨줄날줄] 위문편지 유감/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문편지 유감/김성수 논설위원

    “국군 아저씨께… 월남에 갔다 돌아오신 국군 장병 이야기를 들으면 어서 군대에 가고 싶습니다. …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보내고 싶습니다마는 아저씨가 계시는 곳과 이름도 몰라 대단히 섭섭합니다. … 새가 지저귀고 숲이 우거진 곳에 잘 계십시오.” 육군 기록정보관리단이 공개한 1969년 당시 전남의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파월 장병에게 쓴 위문편지다. 쉰 살을 훌쩍 넘은 기자도 1970년대였던 국민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를 연필로 꾹꾹 눌러썼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 차라야 열 살 안팎이라 ‘아저씨’는 아닌데 인사말 시작은 언제나 ‘아저씨’였다. 어차피 누가 받을지 모르는 편지를 쓰니 내 얘기만 잔뜩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생이 수업시간에 총검술을 배우던 시절이다.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건 군 위문공연만큼 이상할 게 없었다. 군 위문편지가 일제 잔재라는 시각도 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와 황군에 의해 당시 어린 소학교 학생들이 수업 중에 단체로 전방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썼고, 군인들이 이를 받아서 읽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던 것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위문편지는 해방 후에 없어졌다가 1949년에 부활했다고 한다. 최근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썼다는 군인을 조롱하는 투의 위문편지가 공개됐다. 학교가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해 주겠다며 반강제적으로 편지를 쓰게 했는데, 일부 학생이 “눈 오면 열심히 치우라”, “목욕탕에서 비누 줍지 말라”는 등 조롱하거나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욕설을 하고 성희롱성 댓글을 남기며 공격했다. 미성년인 여학생들에게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쓰게 하는 건 잘못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병영 생활에서도 스마트폰을 쓰는 요즘 시대에 여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하는 건 금지해야 한다는 청원이 쏟아진다. 그러자 이번엔 “여자도 군대에 가라”며 느닷없이 징병제를 놓고 남혐·여혐 갈등이 번진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는 건 애초에 시대착오적인 지시를 한 학교의 잘못이 크다.
  • [씨줄날줄] ‘늙은 호랑이’ F5E 전투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늙은 호랑이’ F5E 전투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1950년대 말 옛소련이 미그21 전투기를 실전에 배치했다. 무기 탑재량이나 작전 반경이 작아 성능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동력이 좋고 초음속 비행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쌌다. 유지 보수도 간단해 정작 소련보다는 가난한 친소련 국가한테 더 인기가 많았다. 미그21이 대량 공급되자 미국도 친미 국가에 무상이나 저가에 공급할 경량 전투기가 절실해졌다. 정부의 의중을 꿰뚫은 미국 전투기 제작사 노스럽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저가 전투기 베스트셀러 원조인 F5A의 탄생 순간이다. 미그21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동구권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잡자 미국도 F5A의 성능을 꾸준히 보강했다. 마침내 1970년대 레이더 등을 장착한 F5E가 등장했다. 호랑이(tigerⅡ)라는 별칭이 붙은 F5E는 1975년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월남군이 쓰던 19대를 미국이 넘겨주면서다. 1983년부터는 우리 기술로 국내에서 자체 조립, 생산(F5F)도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F5 계열 전투기를 80여대 운용 중이다. 대부분 제작된 지 30년이 넘어 늙고 낡았다. 전투기 정년은 통상 30년으로 불린다. 미국은 1986년 바레인 공군에 2대 넘겨준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F5E를 만들지 않는다. 그제 경기 화성시의 한 야산에 우리 공군의 F5E 전투기가 추락했다. 20대 조종사는 두 차례나 “이젝션”(ejection)을 절박하게 외쳤지만 끝내 비상 탈출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추락하거나 충돌 사고가 난 F5 전투기만 15대다. 이 과정에서 생때 같은 조종사가 16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만 5조원이 들어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25만원 약속을 잊을 만하면 꺼낸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병사 월급 올리고 재난지원금 줄 돈으로 낡은 무기부터 바꾸자”는 분노가 들끓는다. F5E를 당장 퇴출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공군은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퇴역시킨다고 한다.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면 중고 F16 전투기를 한시적으로 리스(대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전투기 목숨이 조종사 목숨보다 귀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씨줄날줄] 퇴행적 ‘멸공’ 챌린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퇴행적 ‘멸공’ 챌린지/임창용 논설위원

    1970년대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집 가까이에 군부대가 있었다. 새벽마다 군인들의 함성 소리에 잠을 깼다. 군인들은 기상과 함께 연병장에 집합해 점호를 하면서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4구절의 구호를 외쳤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이른바 박정희 정권의 유신과 결합한 ‘멸공’ 표어였다. 고요한 새벽에 장정들이 입을 맞춰 외치는 함성은 담장 밖 마을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자주 듣다 보니 어린 마음에 김일성은 괴물이고 공산당은 괴물집단쯤으로 여겼다. ‘멸공’은 경례구호로도 쓰였다. 내가 군 복무했던 1980년대에 ‘충성’과 함께 가장 많은 부대에서 사용한 듯싶다. 육군의 경례 규정에 따르면 기본 구호는 ‘충성’으로 하되 장성급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바꿔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맹호’(수도기계화보병사단) ‘청성’(6사단) 등 각 부대를 상징하는 구호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멸공(滅共)은 사전적으로 공산당이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반대나 승리를 넘어 아예 박멸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이면서 잔인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면서 군에서 사라졌던 ‘멸공’ 구호가 부활했다. 군대가 아닌 인터넷에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5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라는 글에 ‘멸공’ 해시태그를 붙인 게 도화선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를 필두로 국민의힘에서 멸공 챌린지가 시작된 것이다. 나경원·김진태 전 의원과 김연주 상근 부대변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 멸치와 콩을 구입한 사진이나 먹는 사진을 올리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번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멸공’이란 단어가 들어간 글을 올려왔다. 개인 소신을 밝히는 건 자유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어제 신세계 주가가 폭락해 ‘개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정 부회장은 평범한 개인이 아니다. 더욱이 국민의힘의 멸공 챌린지는 걱정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뜩이나 좌우 갈등이 심화된 마당에 분열만 더 부추길 수 있어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죽창가’를 부르짖던 것과 뭐가 다른가. 시대착오·퇴행적인 멸공 챌린지를 멈춰야 한다.
  • [기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시행에 즈음하여/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

    [기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시행에 즈음하여/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하고 1월 11일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찬성 입장이라 시행이 눈앞에 다가왔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란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인 비상임 이사를 1명 선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 개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같이 정치권력이 공공기관의 자원배분을 왜곡해 왔다는 지적은 진보ㆍ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계속됐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공공기관 내부의 노사 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영권과 주주이익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이사제는 1920년대 독일 사민당의 경제민주주의 노선에서 출발한다. 사민당은 카를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공산혁명 노선을 폐기하고 노동조합 운동, 노동자의 의회 진출 등 사회민주주의를 제창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프탈리가 최초로 경제민주주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노동이사제를 주장한 것이다. 1951년 독일에서 노동이사제가 시행돼 유럽 19개국에서 이를 도입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은 우리와 같이 공공부문에만 적용했다. 독일의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해 회계부정 등을 감시하는 역할만 수행하고 경영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우리의 공공기관 노동이사는 경영에도 참여한다. 독일은 산별 노조를 기반으로 협력적 노사문화가 정착된 데 반해 한국은 기업별 노조 중심의 대립적 노사관계여서 이사회에서 노사 갈등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1981년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정치적 민주주의 이외에 경제 영역에서도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노동자들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자치기업이론을 주장해 노동이사제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사 간 상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노사 갈등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인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자유주의를 억압했으나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를 시작했고 1970년대 박정희 역시 저소득층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해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의 건강보험제도의 기틀을 갖추었다. 인간의 역사는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었다. 2022년 7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역시 경영의 공정성 확보와 경영권 침해라는 측면이 대립하고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변증법적 과정인 것이다.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신문·라디오·TV·SNS…변하는 미디어, 변하지 않는 선동 원리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신문·라디오·TV·SNS…변하는 미디어, 변하지 않는 선동 원리

    1977년, 아직 대형 히트작을 낸 적 없는 젊은 감독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라는 SF영화를 들고 나왔을 때 미국 관객들은 영화 속 낯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옛날 옛적 머나먼 은하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관객에게 익숙한 전쟁 영화, 서부영화, 그리고 사무라이 영화의 세계관이 ‘외계’라는 옷을 입고 나왔을 뿐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 속 제국군이 입은 옷은 나치 시절 독일군 제복 디자인을 차용했고, 제국군을 이끄는 다스베이더의 헬멧 디자인은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에서 가져왔다. 누가 ‘악당’인지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당시 관객들은 눈치 채지 못한 나치 특유의 비주얼이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인공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장면에서 도열한 반란군과 단상 위에 선 공주와 영웅을 천천히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워크다. 이때 사용된 구도와 카메라 이동은 나치의 선전영화를 제작한 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방법이다. 흥미로운 건 루카스가 이를 제국군이 아니라 그들에 맞서 싸우는 반란군, 즉 ‘우리 편’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루카스는 이를 리펜슈탈에 대한 오마주로 사용한 게 아니다. 아군과 적군, 선악을 떠나서 위대한 순간, 감격에 찬 장면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방법이었기 때문에 차용했을 뿐이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어우러진 그 장면은 ‘스타워즈’의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남았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공업의 표준화를 이끌어냈다. 인간을 달로 보낸 로켓 기술도 결국 당시 독일의 V2 로켓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 독일이 만들어 낸 영상기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 모르긴 몰라도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인류사회는 지난 몇 세기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고, 진보라고 할 만한 업적도 이뤄 냈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작동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의 영역이고, 진화는 사회변화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리펜슈탈이 1930년대에 독일인을 흥분시킨 카메라워크가 40년 후에도 전혀 문제없이 전 세계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갑부의 소셜미디어 사용 지난 2021년은 ‘밈(meme) 주식’의 해였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뭉친 개미투자자들이 재무건전성과 향후 수익전망이 나쁜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소위 ‘기업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주가가 치솟는 기업들이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뒤에는 세계 최고의 갑부라고 하는 테슬라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있었다. 그의 팬들은 머스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날리는 트윗에 열광했고, 단결해서 기관투자가들과 힘겨루기를 했다. 머스크가 밈 주식 현상을 지지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업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자신을 믿고 따라 준 개미 투자자들의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미국에서 2030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자신의 충성스런 팔로어들과 완벽에 가깝게 동기화(sync)돼 있다. 그들이 관심 갖는 이슈는 머스크의 트윗을 통해 확산되고, 머스크의 주장은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여론의 모습을 띤다. 그리고 머스크는 이렇게 이룩한 ‘소셜 자산’을 자신의 어젠다에 십분 활용한다. 그는 지난달 갑부들에게 중산층보다 낮은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상황을 고치자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의 트윗을 두고 “담당자 부르지 마세요, 캐런 상원의원님”이라는 트윗을 했다. ‘캐런’은 아무데서나 자신의 특권을 내세우며 “담당자 나오라고 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백인 중년 여성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워런 상원의원의 주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워렌이 백인 중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불렀고, 그의 팔로어와 공화당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발언을 트윗 하나로 ‘자기 분수를 모르는 김여사’로 만든 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 못지않게 소셜미디어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람들은 이걸 어디에서 배웠을까?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라도 있는 걸까? 물론 그런 교과서는 없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작동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쓰던 방식은 여전히 유용하다. 리펜슈탈과 함께 히틀러의 어젠다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쓴 프로파간다(선전)를 사용하는 19개의 원칙을 하나하나 읽어 보면 시대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지금도 사용 가능하고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원칙들임을 알 수 있다. ●괴벨스는 천재? 그런데 괴벨스의 원칙 중 첫 번째는 “선동가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대중의 의견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이다. 근대 이전의 왕도 다르지 않았지만 근대 이후의 독재자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걸 자신에게 유리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트럼프가 쏟아낸 말은 궁극적으로 그가 소셜미디어에서 읽고 폭스뉴스에서 들은 극우주의자들의 말이었다는 분석도 이를 보여 준다. 지난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서 했던 ‘멸공’ 발언이 롤러코스터처럼 진행되는 대선 정국을 또 한 번 흔들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팔로어를 거느리고 올리는 포스트마다 몇만 개의 ‘좋아요’를 받는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은, 곧바로 보수당 후보가 받으면서 한국 사회를 1970년대로 돌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2030세대 남성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혐북’(북한 혐오)에 익숙하다. 정 부회장의 발언 이후에도 이들 커뮤니티에는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결국 김씨 일가’라는 옹호 발언이 쏟아졌다. 결국 정 부회장의 발언이 보여 주는 건 그의 투철한 반공정신이라기보다는 그가 평소 온라인 남초 사이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50대 경영인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다른 50대 남성 경영인 중에 소셜미디어에서 정 부회장만 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걸 보면 그런 대중에 대한 이해가 그를 그렇게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영향력을 머스크처럼 자신의 사업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물론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괴벨스는 또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매체를 사용해야” 하고, “공격 대상을 분명한 증오의 대상으로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어구나 슬로건”을 사용하라고 충고했다. ‘#멸공’ 같은 해시태그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런 충고들은 괴벨스가 천재라서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니라, 인류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거다. 1930년대의 방법론과 2022년의 방법론이 다르지 않은 건 인간의 작동 방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 소셜미디어에 ‘똑같은 실수’ 정용진의 할아버지 이병철이 ‘삼성상회’를 설립한 1938년, 괴벨스는 ‘세계 제8대 강국, 라디오’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괴벨스는 현대 세계에서 권력은 라디오에서 나온다면서, 19세기에 나폴레옹은 “인쇄물은 세계 7대 강국”(press as the seventh great power)이라고 말했지만, 20세기에는 그게 바로 라디오라고 주장했다. 그는 “라디오와 비행기가 없었으면 우리(나치)가 권력을 얻거나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을 만큼 라디오라는 신기술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신기술’이다. 대중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미디어에 항상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20세기에 이르면 대중은 이미 신문, 책 등의 출판물을 통한 선전선동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나오자 거기에서 들은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라디오에 속지 않게 될 즈음 TV가 등장했고, 이번에는 광고 상업주의가 잘 속는 대중 덕에 이득을 누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TV에서 보고 듣는 것을 무조건 믿지 않을 만큼 영리해진 21세기가 되자 소셜미디어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학습했던 것을 모두 잊고 똑같은 실수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오터레터 발행인
  •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1970년대 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했다. 특히 미국의 70년대는 60년대의 혼란을 물려받은 악몽 같은 세월이었다. 격동의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정치적 지형은 새로 조성됐고 이를 토대로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했다. 미국 정치의 ‘보수화’가 이 시기에 결정됐고, 시공간을 확장해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도 잉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70년대를 재조명해 지금 미국을 이해하는 장기 연재를 맡았다.존 F 케네디가 1963년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1908~1973)은 흑인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켰고 ‘위대한 사회’라고 불리는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남북전쟁 후 인종 분리 제도를 유지해 온 남부의 반발은 거셌다. 존슨은 케네디가 시작한 베트남전쟁을 물려받았다. 존슨과 그의 안보팀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한 존슨은 1965년 초부터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고 지상군을 베트남에 증파했다. 그러나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중국의 개입을 우려한 존슨은 북베트남의 심장부는 그대로 두고 주변만 공습했다. 미군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67년 말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은 50만명이었다. 1965년 2000명 수준이던 미군 전사자는 1966년 6000명, 1967년 1만 1000명을 넘어섰다. 미군의 항공 전력도 북베트남의 정교한 대공 방어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미군 사령부는 베트남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로버트 맥너마라(1916~2009) 국방장관은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존슨 대통령에게 사임을 청했다. 전쟁에 지친 존슨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구정 대공세’로 미국 여론 반전 1968년 1월 31일 구정(舊正)을 기해 북베트남군은 정규군을 동원해 베트남 전역에서 대공세를 취했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에 의해 뚫렸고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후에가 북베트남군에 장악됐다. 미군은 반격해 사이공을 확보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후에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에는 완전히 파괴됐고 포로가 된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수녀 등 3000명이 학살됐고 2000명이 실종됐다. 두 달 동안 계속된 전투로 북베트남군 6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미군 4000명, 남베트남 정부군 5000명, 한국군 200여명도 전사했다. 케산 고지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원 500명이 전사했고 북베트남군은 전사자 1만명을 내고 후퇴했다.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승리였다. 하지만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은 모습을 TV로 본 미국민은 정부가 거짓말을 해 왔다고 믿게 됐다. 게다가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는 전투가 한창일 때 남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이제 미국이 협상으로 전쟁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방송했다. 모든 언론이 베트남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맥너마라 국방장관은 2월 말 퇴임했고, 존슨은 오랜 친구인 클라크 클리퍼드(1906~1998) 변호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이 중심이 된 진보적 청년계층은 군산 복합체가 움직이는 미국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었다. 1965년에 이들은 UC 버클리, 하버드, 위스콘신 등 캠퍼스에서 집회를 열었고 10월에는 버클리에서, 11월에는 백악관 앞에서 큰 시위를 벌였다. 그해 8월 LA 남쪽 흑인 거주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건물이 불타고 수십명이 사망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흑인 시위와 폭동이 빈발했다. 민권법 통과를 위해 존슨 대통령을 지지했던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가 이끌던 온건한 흑인단체도 반전대열에 가담했다. 1967년에는 학생 시위대가 국방부와 백악관을 포위하는 대형 집회로 발전했다.●유진 매카시, ‘반전 후보’로 나서다 학생운동 그룹은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1968년 대선에 나설 민주당 후보로 밀고자 했다. 이들이 접촉한 로버트 케네디(1925~1968) 상원의원 등은 정부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현직 대통령에 도전하기를 꺼려했다. 이때 나선 사람이 미네소타 출신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1916~2005)였다. 세인트존스대와 미네소타대에서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하원의원을 지낸 후 상원의원이 된 그는 학구적이고 종교적이며 양심적인 정치인이었으나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1968년 1월 초 매카시가 베트남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매카시 돌풍’이 일었다. 그해 3월 12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매카시는 42%를 획득해 49%를 얻은 존슨 대통령을 바싹 추격했다. 그러자 며칠 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매카시를 돕던 젊은이들은 케네디가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3월에 열린 매사추세츠 등에서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선 매카시가 1위를 달렸다. 존슨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클리퍼드 국방장관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존슨에게 보고했다. 3월 31일 존슨은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 중단을 선언하고 하노이에 협상을 제안하면서 자신은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월 4일, 멤피스에서 킹 목사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워싱턴,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DC 등 미국 120개 도시에서 흑인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경찰과 주 방위군이 무장을 하고 폭동에 대처했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선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컬럼비아대는 인근 할렘에 거주하는 흑인 주민들과 체육관 건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이 주도하는 신좌파 계열의 학생들이 베트남전쟁 반대와 징집 거부를 주장하면서 총장실을 점거했고 학장을 인질로 감금했다, 캠퍼스에는 체 게바라(1928~1967)와 맬컴 X(1925~1965)의 사진이 곳곳에 붙었고 무장한 경찰이 캠퍼스를 포위했다. 뉴욕시는 내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케네디 상원의원 암살로 좌절된 열망 로버트 케네디가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갖고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매카시의 선거운동은 동력을 상실했다. ‘케네디’라는 빅 네임은 미디어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1968년 6월 5일,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다. 그날 밤 12시 넘어 케네디는 로스앤젤레스의 앰배서더 호텔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호텔 주방을 거쳐 이동하던 중 아랍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던 젊은이들의 꿈마저 좌절되고 말았다. ■이상돈 명예교수 1951년생. 서울대 법대를 거쳐 미국 툴레인대와 마이애미대에서 유학한 뒤 1983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대 법과대학 교수로 헌법 등을 가르쳤다.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활동도 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외할아버지.
  • ‘아름다운 강산’ 원조 가수 박광수 별세

    ‘아름다운 강산’ 원조 가수 박광수 별세

    1970년대 신중현 밴드 ‘더 멘’에서 활동하며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던 가수 박광수가 지난 8일 별세했다. 82세. 경북 포항 출신으로 학창 시절 밴드부였던 그는 미8군 공연을 위한 오디션을 통과해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걸었다. 또 당시로는 보기 드문 정통 R&B를 부르는 보컬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1972년 신중현이 결성한 그룹 더 멘(The Men)에 리드 보컬로 합류했다. 대표곡 ‘아름다운 강산’은 1988년 가수 이선희가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이름을 단 음반이나 기록은 많지 않다. 1973년 신중현의 곡으로 독집 앨범을 냈으나 창법이 왜색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정지를 당했고 음반도 전량 수거됐다. 그는 라이브 무대 등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 가며 2007년 67세에 사실상 첫 솔로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박광수 2007 아름다운 날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 “쇠락하는 일본, 겸손해져야 부활의 미래 있다”...日 원로학자의 호소 [김태균의 J로그]

    “쇠락하는 일본, 겸손해져야 부활의 미래 있다”...日 원로학자의 호소 [김태균의 J로그]

    “내가 한국의 가파른 성장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 ‘한국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냐?’는 비난이 돌아온다.” 자국 경제의 쇠락에 대해 경종을 울려온 일본의 원로 경제학자가 “일본인은 겸손한 태도를 상실했다”고 지적하며 1960년대의 겸허함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 일본 경제의 부활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의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81) 국립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유력 경제 주간지 도요케이자이(東洋經濟) 최근호에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현격하게 하락한 뼈아픈 사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8일 도요케이자이에 따르면 그는 칼럼에서 일본이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불필요하게 자존심만 내세우며 변화와 혁신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런 식이어서는 일본의 재생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 하락을 논할 때 많이 사용되는 근거 데이터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라며 “지난해 일본의 1인당 GDP는 4만 704달러로 세계 24위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세계 1위인 룩셈부르크(13만 1301달러)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며 미국(6만 9375달러)에 비해서는 59% 수준, 아시아 1위 싱가포르(6만 6263달러)에 비해서는 61% 수준이다. 독일(5만 787달러), 영국(4만 6200달러)보다도 낮다. 노구치 교수는 “한국(3만 5195달러)에는 앞서지만, 한국의 성장률이 높아서 머잖아 역전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1인당 GDP는 2000년에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였다. 5위 미국보다 8%가량 더 많았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2년만 해도 13위로 미국(10위)의 95% 수준은 됐고, 20위 독일보다는 12% 더 많았다. 결론적으로 지금과 같이 국제적 지위가 낮아진 것은 아베노믹스 기간 중에 벌어진 일이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의 지위가 떨어지면서 일본과 미국의 부(富)의 격차는 1970년대 말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된 첫번째 이유는 엔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며, 두번째는 세계 각국이 성장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일본은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의 지위가 이렇게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언제부터인가 겸허함을 상실했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동양의 한쪽 구석에 있는 초라한 섬나라’ 취급을 받던1950~60년대를 언급하며 공업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람을 스스로 각성하고 있던 당시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1인당 GDP 순위 하락 등) 낮은 경제 성과를 지적했더니 ‘제 나라의 흠집을 그렇게 들춰내니 기분이 좋으냐?’라는 비판이 돌아온다. 미국의 높은 소득을 언급하면 ‘그 나라는 분배 불균형이 심각한 것을 모르느냐?’고 반박한다. 한국의 높은 경제 성장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자 ‘한국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냐?’라는 반론에 직면한다.” 그는 “자국의 문제점을 들추는 것은 그것을 개선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타국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그것이 자국에 참고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1960년대의 겸허함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재생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 서울 의원 33% 강남 3구에… 우리 동네선 맘놓고 아파도 될까요

    서울 의원 33% 강남 3구에… 우리 동네선 맘놓고 아파도 될까요

    강남 의원 1728곳… 용산의 11.9배피부·성형외과 진료 의원 빼고도자치구별 의원 분포 불균형 여전 의원 과밀지역 강남, 경쟁도 치열서울 평균보다 3년 더 빨리 폐업50년 전 의료법 현실과 동떨어져서울 강남구 한남IC부터 서초구 염곡사거리를 잇는 강남대로 6.4㎞에는 크고 작은 480개의 의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의원 수 하위 3개 구인 용산구(145개), 금천구(161개), 도봉구(164개)의 모든 의원을 합한 수보다 이 단일 도로에 있는 의원의 수가 많은 셈이다. ●의원 5곳 중 1곳 강남에서 환자 받아 6일 서울신문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지역 8999개 의원 중 20%에 가까운 1728곳이 강남구에서 영업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의원 5곳 중 1곳이 강남구에서 환자를 받는 것이다. 이른바 강남 3구로 지역을 확대하면 의원 쏠림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자치구별 의원 수 상위 3곳인 강남구, 서초구(689곳), 송파구(587곳)에 3000곳 이상 몰려 있다. 이 비율은 서울 전체 의원의 33%에 해당한다.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마저 강남과 비강남의 지역 격차가 확연하다.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원은 의료법상 병상이 30개 미만인 의료기관을 말한다. 병상이 30개 이상이면 병원, 100개 이상이면 종합병원이 된다. 즉 의원은 몸이 아플 때 제일 먼저 찾아가는 1차 의료기관으로 국민 보건 서비스의 제일 첫 줄에 서 있다. 의원에서 정확한 진단과 처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큰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환자는 의원에서의 의료 서비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전문성마저 강남 3구가 높아 의료 접근성뿐만 아니라 전문성에서도 격차가 드러났다. 강남 3구의 경우 의사의 전문 분야만을 진료과목으로 등록한 비율은 39.3%(1179곳)로, 비강남권 자치구의 28.5%(1711곳)보다 높았다. 이런 격차는 과목을 적게 볼수록 전문성이 높아지는 의원별 진료과목 수에서도 확인됐다. 강남 3구는 의원당 평균 진료과목 수가 2.8개로 서울 전체 평균(3.4개)보다 낮은 반면 비강남 지역은 3.8개로 평균을 웃돌았다. 강남구에 많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부과·성형외과 의원을 제외하더라도 자치구별 불균형은 여전했다. 강남구에서 성형외과·피부과 진료를 보는 의원은 874곳으로, 서울 자치구 중 의원 보유 수가 적은 하위 5개 지역의 의원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많다. 특정 진료과목의 쏠림을 제외하고 살펴보면 강남 3구에서 피부과·성형외과 진료를 보지 않는 의원은 1565곳으로 서울 지역 전체에서 피부과·성형외과 진료 의원을 제외한 4946곳의 31.6%에 달한다. 피부과·성형외과를 모두 포함해 비교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강남 2888일·‘비강남’4544일 영업 다만 강남구 의원의 수명은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 확연히 짧았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에 1963년부터 등록된 서울 의원 1만 6624개의 평균 운영 기간은 4084일이었지만 강남 의원의 평균 영업일은 2888일로 평균보다 3년 이상 폐업이 빨랐다. 의원이 밀집해 있는 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의원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강남 3구 이외 지역 의원의 평균 영업일은 4544일로 강남구 의원보다 4년 6개월 이상 오래 환자를 받았다. ●환자 10명 중 7명 전문의 구별 못해 의료 서비스 이용자의 입장에서 전문성은 의원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지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2017년 성형 상담을 위해 성형외과에 방문한 6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성형수술을 비전문의에게 받지 않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77.7%에 달했다. 그러나 전문의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한피부과학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4월부터 6월까지 최근 6개월 내 아토피, 습진 등 피부 문제로 병원에 방문한 이력이 있는 1000명 중 절반 이상인 53.1%가 ‘피부과 전문의를 구별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전문의 자격 구분과 간판을 구별할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 10명 중 3명만 가려냈다. 이렇다 보니 1973년 개정된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의료법이 변화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1970년대에는 의사가 부족해 전공과 상관없이 여러 진료를 다 봐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요즘은 의사도 많아졌고, 전문의도 많아졌는데 의료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충격적이고 잊고 싶은 기억, 지우는 방법 찾았다

    충격적이고 잊고 싶은 기억, 지우는 방법 찾았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참전 후 귀국한 군인들 중에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거나 과도한 폭력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증가했다. 이전까지는 전투피로증으로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전 이후 정신과학계에서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신경정신과질환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PTSD는 전쟁 뿐만 아니라 대형사고, 자연재해를 만나거나 가정 및 학교폭력, 학대 등으로 인해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적이고 잊고 싶은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하고 알콜중독이나 우울증, 조현병 등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잊고싶은 충격적인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잊고 싶은 공포기억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연구진은 뇌신경회로 내 억제성 시냅스 기능이 공포기억 형성에 관여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단백질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생물 정신과학’ 지난해 12월 31일자에 실렸다. PTSD는 남성 20명중 1명, 여성은 10명중 1명 꼴로 경험하는 의외로 흔한 신경질환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인지행동치료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계통의 우울증 약물치료가 병행되고 있을 뿐 PTSD를 직접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연구팀은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 안쪽 흥분성신경세포에서 특정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생쥐를 이용해 실험을 했다. 그 결과, IQSEC3라는 단백질 활성을 억제하면 해마 신경세포의 억제성 시냅스 숫자, 신경전달, 장기가소성이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 PTSD의 주요 원인인 충격적이고 나쁜 기억을 IQSEC3 단백질을 이용해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연구를 이끈 엄지원 DG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공포기억 형성을 매개하는 핵심인자를 밝혀내 PTSD를 수반하는 뇌질환의 신규 치료전략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유독성 물질에 잠식된 루마니아 마을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유독성 물질에 잠식된 루마니아 마을

    수십 년 동안 유독성 오수에 잠식되고 있는 루마니아의 한 마을 모습이 공개됐다. 폐허가 된 마을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만들어낸 지옥과도 같은 모습이다. 1970년대 당시 루마니아 북부 트란실바니아주(州) 게마나 마을 인근에서 대형 구리 광산이 발견됐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광산으로서 연간 1만 1000t의 구리를 채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이 광산은 당시 정부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이었다. 귀중한 광석에서 광물을 분리한 뒤 남은 찌꺼기를 버릴 곳이 필요했던 당국은 광산 인근에 있는 게마나 마을을 폐기물 매립지로 활용했다. 1970년대 후반, 해당 지역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인근 계곡이 범람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광산과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유독성 물질에 오염된 호숫물과 계곡물로 가득찼다.광산 폐기물에는 비소, 카드뮴, 크롬, 납 등 다양한 중금속 성분이 녹아있으며, 빗물에 녹으면서 극심한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8년까지만 해도 이 마을 주민 약 1000명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삶의 터전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광산업체의 개발이 시작된 뒤 일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주민들은 이주를 결정했지만, 정부는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터전을 옮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 정도만 손에 쥔 채, 유독성 물질로 뒤덮인 고향을 떠나야 했다.이후 마을은 말 그대로 지옥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현지 환경보호단체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마을의 수위는 연평균 0.9㎝씩 높아졌다. 마을 언덕 꼭대기에 있던 교회 건물도 잠기기 시작했고, 현재 첨탑만 간신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치명적인 ‘중금속 녹은 물’이 마을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동안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한 몇몇 주민들이 있다. 20명 남짓의 주민들은 정부의 불충분한 보상 등에 불만을 품고, 오수가 닿지 않은 높은 지대로 이사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수위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남은 주민들도 강제 이주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해당 마을이 치명적인 오수에 잠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크리스찬 리포반(36)은 “비현실적인 호숫물 색깔처럼, 이 마을은 오수에 잠식된 유령 마을이다.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 물은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풀과 나무, 채소, 동물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독에 중독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간에도 유독성 호수는 점차 더 커지고 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독이 섞인 물에 집이 잠식될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 데이비드 보위 저작권 3000억원에…앞날 불투명한데 왜 베팅하는 걸까

    데이비드 보위 저작권 3000억원에…앞날 불투명한데 왜 베팅하는 걸까

    2016년 암으로 69년 생을 접은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생전에 발표한 ‘스페이스 오디티’, ‘체인지스’, ‘렛츠 댄스’ 등 400여곡의 저작권이 워너 뮤직 그룹(WMG)에 넘어갔다. 이번 매각이 특별한 것은 사망한 뮤지션 가운데 최고액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WMG가 저작권 판매 자회사 워너 채플 뮤직(WCM)을 앞세워 보위의 유산 관리인과 저작권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계약 액수와 기간 모두 공개하지 않았는데 미국 연예잡지 버라이어티는 2억 5000만 달러(약 2983억 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앞서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각각 3억 달러(약 3580억원)와 5억 5000만 달러(약 6564억원)에 저작권을 매각했지만 이미 세상을 등진 뮤지션 중에선 그의 매각액이 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위 작품의 저작권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매각됐는지 소개하기 전에 궁금증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영국 BBC는 지난 20년 동안 컴팩트디스크(CD) 판매가 현저히 줄고 음원 스트리밍이 이를 충분히 대체하지 못했으며, 음악산업의 미래가 어떨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이 시점에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유산’들을 거둬들이는 데 매달리는 이유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BBC의 미디어와 예술 전문기자 데이비드 실리토는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은 꾸준히 스트리밍되며 ‘불황에도 끄덕없는(recession-proof)’ 것으로 여겨지며 새로운 레코드 레이블과 회사들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고 있어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수지 맞는 자산으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음악산업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수입원, 예를 들어 스트리밍, 광고, 영화, 비디오게임, 온라인 비디오 등으로 활로를 뚫을 수 있어 아티스트와 유산 관리인, 가족들에게 은행에 예치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음악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골치 아픈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스포티파이에 매일 6만곡이 새로 추가되는데 그 중 한 곡을 히트시키는 일은 (보위처럼) 50년 동안 명성을 쌓아온 아티스트에게도 힘겨운 일이 될 것이며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넘기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베팅이란 점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보위는 1967년 데뷔 앨범 ‘데이비드 보위’ 이후 사망 직전 발표한 앨범 ‘블랙스타’까지 50년 가까이 록음악계에서 늘 첨단을 걸은 뮤지션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동료 가수들이 존경하고 좋아했던 뮤지션이었다. 폴 메카트니 경, 롤링 스톤스, 브라이언 이노, 마돈나 등이 그를 흠모했고, 그의 천재성을 찬양했다. 1970년대 초반 양성적인 매력을 도드라지게 연출한 글램록 시기를 거쳐 유럽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베를린 3부작’을 발표했다. 1980년대에는 ‘렛츠 댄스’ 등 히트곡을 앞세워 팝계의 정점에 올랐지만, 돌연 솔로 활동을 중단하고 밴드를 결성하는 등 꾸준하게 변화를 추구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에는 인더스트리얼 록과 드럼앤드베이스,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은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한 그가 69세를 일기로 암 투병 끝에 사망하자 ‘역대 최고의 록스타’에 선정했다.이번에 WCM과 합의한 것에는 생전에 발표한 26장의 스튜디오 앨범들과 사후 발매한 스튜디오 앨범 ‘토이’, 여기에 자신이 이끈 록 슈퍼그룹 틴 머신의 스튜디오 앨범 두 장이 포함된다. 아울러 영화 사운드트랙 음반의 싱글들과 다른 프로젝트 작업들이 망라된다. 보위는 음악 인생 50년 동안 한 해 평균 두 곡의 싱글을 남겼으며 뮤직비디오만 51개를 남겼는데 WCM과의 계약은 1968~1999년으로 한정됐다. 늘 앞날을 내다봤던 보위는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향후 10년의 로열티 수입 중 일정액을 배당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미국의 거대 보험사 프루덴셜 파이낸셜이 5500만 달러에 이 채권을 사들여 연간 확정 이자율 7.9%를 보장했다.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EMI 레이블과 1969~1990년 발매한 25장의 앨범 로열티를 채권으로 묶어 팔도록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2004년 무디스는 보위의 채권이 “정크(쓰레기” 바로 윗 단계라고 평가했다. 보위는 전통적인 음악 시장이 쇠퇴할 것을 미리 내다봤는데 2002년 NYT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는 음악이 “수돗물이나 전기처럼 흐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서울 14배 면적 파괴…숲 사라진 세하도 열대초원의 충격적인 모습

    서울 14배 면적 파괴…숲 사라진 세하도 열대초원의 충격적인 모습

    세계에서 가장 넓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열대초원 지대인 브라질 중부 세하도 사바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1년 새 파괴된 면적만 서울의 14배다. 지난 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브라질 정부 통계를 인용해 2020년 8월부터 2021년 7월까지 파괴된 세하도 사바나 면적이 8531㎢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해 파괴 면적으로는 2015년 이후 가장 넓은 것으로 서울 면적(605㎢)의 14.1배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사바나 면적이 이렇게 빠르게 파괴되는 이유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친개발 정책을 꼽았다. 이 정책으로 풍부한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온실가스 흡수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숲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옥수수 농장 열대우림과 달리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곳에 나타나는 사바나는 식물이 건기를 견디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어 ‘거꾸로 된 숲’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최근 숲은 사라지고 물도 말라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농업·축산업을 위한 개간이 본격화하면서 2000년대 초까지 파괴 면적이 계속 증가해 전체의 절반 정도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열대우림과 사바나 보호 움직임으로 파괴 면적이 줄다가 2019년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뒤 친개발 정책을 펴면서 다시 늘고 있다. 고이아스연방대학 지리학자 마누엘 페레이라 교수는 “매년 수천㎢의 사바나가 농지 등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지구에서 이처럼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비영리단체 아마존환경연구소의 안네 알렌카 국장 역시 “삼림파괴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끔찍한 환경정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브라질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논평 요구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M의 부모 60년대생 vs Z의 부모 70년대생

    ‘M≠Z. M과 Z는 다르다.’ 꽤 오랫동안 하나의 세대 현상으로 취급되던 밀레니얼(M세대·1980~1994년생)과 젠지(Z세대·1995~2009년생) 간 구별 짓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디지털 세대로서 사고가 자유롭다는 M과 Z의 공통점에 공감하면서도 “M은 부모를 권위적이라 여기지만 Z는 친구처럼 여기고 소비에서 M은 가격을 중심으로 판단한다면 Z는 디자인과 포장을 본다”고 설명한 신한카드의 지난해 전략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M의 사회 진출 이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추구됐다면 Z의 본격 등장 이후 ‘플렉스’(Flex·과시소비)로의 분위기 전환이 이뤄진 것은 이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난도 교수가 이끈 ‘트렌드코리아 2022’는 나아가 ‘엑스틴’이란 신조어를 제안했다. M을 포위하고 있는 세대인 X세대와 10대(teen)를 합친 말인 엑스틴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10대 시절을 보내며 형성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간직한 채 어른이 돼 10대 자녀와 일상을 공유하는 세대를 말한다. 현재 10대가 Z와 알파세대(2010년생~)에 걸쳐 있는 점에 착안하면 MZ에서 Z를 분리시킨 뒤 그 배경으로 X 부모의 영향력에 주목한 분석이다. 1970년대생들은 실제 자녀를 이전과 다르게 키웠다. 경력변화(HRD) 유튜브 ‘신코치TV’의 신현종 코치는 “주5일 근무가 도입되고 십여년이 지나 2013년 ‘아빠, 어디가’ 같은 가족 예능이 인기를 얻자 부모들은 경쟁적으로 자녀와 주말을 보냈다. 이후 한국에 전례 없었던 ‘부모와 소통하는 자녀들’이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큰 자녀가 지금 스무 살 안팎 Z부터인데 부모를 넘어 기성세대를 향한 반감이 덜하다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Z의 성향은 2년 전 ‘트렌드모니터 2020’에서 통계로 드러난 바 있다. 세대별로 200명씩에게 ‘청소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를 묻고 ‘좋은 편’ 응답률을 헤아려 보니 X(52.0%)와 M(52.5%)은 비슷했고 Z(67.5%)에선 확실히 높았다. Z가 가족과 함께하던 나이에 M은 아마도 학원 셔틀이 가장 분주했던 시대를 살았다. M이 중고교생이던 2000년대 그들의 부모 세대인 1960년대생들은 ‘대입 성패는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에 달렸다’고 복창하며 심야에 학원에서 쏟아지는 자녀를 실어 날랐다. M들은 홀로 있지도 동행자와 소통하는 것도 아닌 채 n번째 학원으로 향하는 셔틀과 자가용을 견뎌 냈다. 60년대생 학부모와 70년대생 학부모를 가른 차이는 그들의 집단경험에서 비롯됐다. 공교롭게도 1981년 과외 금지 조치가 단행됐기에 60년대생에게 과외란 기득권자만 은밀하게 할 수 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반면 1990년대 과외 금지 해제 이후 청소년기를 보낸 70년대생들에게 학원은 ‘다닌다고 꼭 성적 상승을 보장하진 않는 선택지’가 됐다. MZ를 싸잡아 묶어 왔듯이 60년대생과 70년대생도 ‘중년’으로 묶인다. 그러나 격변기 한국의 청년이었던 그들의 집단경험은 몇 년의 시차만으로도 갈려 서로를 이질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서울신문과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지난달 17~30일 743명 설문조사에서 중년의 연령대와 확실한 이미지가 여전히 모호한 이유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 [대만은 지금] ‘첨밀밀’ 부른 대만 가수가 죽은 지 25년만에 중국TV 에 등장?

    [대만은 지금] ‘첨밀밀’ 부른 대만 가수가 죽은 지 25년만에 중국TV 에 등장?

    대만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가수 덩리쥔(鄧麗君, 1953~1995)이 12월 31일 중국 장쑤위성TV에서 열린 연말 행사로 열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대만에서 논란이 됐다.  대만 출신 덩리쥔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를 아우르며 대만,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은 물론 일본, 태국 등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 전설적인 가수로 꼽힌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첨밀밀(甜蜜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넘은 덩리쥔은 가상현실(VR) 기술로 완벽히 재현되어 장쑤위성TV 주최 무대에 올랐다. 지난 1일 대만 싼리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 무대에 오른 덩리쥔은 샤오청구스(小城故事), 만부런성루(漫步人生路), 다위(大魚) 등 대표곡 3곡을 중국 남자 가수와 열창했다. 이를 시청한 중국인들은 “영원한 덩리쥔이 돌아왔다”며 소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대만인들은 “중국이 덩리쥔을 무대에 ‘강제로’ 세웠다”며 “고인에 대한 무례한 행동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대만 네티즌들은 중국에서 강제로 무대에 서게 된 덩리쥔을 보며 분노했다. 네티즌들은 "사실 덩리쥔은 중국 대륙을 수복하지 전에 대륙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덩리쥔이 무대에 강제로 올랐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덩리쥔 가족의 허락은 받았는가", "그가 생전에 중국 본토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 중국이 재현한 건 가짜다", "덩리쥔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만에 있었다", "덩리쥔은 생전에 반공 노선에 서 있었다. 중국인이 덩리쥔을 좋아하는 것은 반공 주의자 아닌가”, “반공, 애국 가수가 상처를 입었다”, “덩리쥔은 공산당에 대항하는 가장 애국적인 가수였다”, “어찌 공산당에 붙어 밥 먹는 가수들과 비교할 수 있는가”, "뻔뻔하기 그지없다"라는 등의 댓글을 쏟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덩리쥔이 생전에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중국에서 공연하는 그 날은, 우리의 삼민주의(三民主義)가 중국에서 실현되는 그 날일 것”이라고 말했다. 덩리쥔의 이러한 발언은 중국 본토 수복을 꿈꾸는 중화민국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덩리쥔의 노래는 중국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가 중국 개혁개방 운동이 시작되면서 그의 노래도 금지가 풀렸다. 그는 중국의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한 콘서트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삼민주의는 대만에서 ‘국부’로 불리는 쑨원(孫文)이 제창한 것으로 ‘민족’, ‘민권’, ‘민생’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국민당 정부의 중화민국의 정치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 [자치광장] 미래패러다임의 시작, 강남의 백년대계/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

    [자치광장] 미래패러다임의 시작, 강남의 백년대계/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

    강남은 새로운 100년을 가를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1970년대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부터 시작된 강남구는 지난 50여년간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제1의 도시로 자리매김해 왔다. ‘대한민국 대표 도시’, ‘1등 도시’ 강남은 이제 ‘스마트 글로벌도시’로서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강남의 동쪽 세로축 영동대로를 기점으로 진행 중인 7~8개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완료되는 2028년이면 강남은 미국 뉴욕 맨해튼 같은 세계적인 도시로 천지개벽하게 된다. 그야말로 ‘영동대로 시대’가 도래한다.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거듭날 현대자동차 GBC, 코엑스 앞 지하 52m에 조성될 국내 최대 지하도시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삼성동과 잠실운동장 일대를 아우르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영동대로를 관통할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사업, 업무·상업·주거기능을 집약해 동남권 요충지로 재탄생하고 있는 수서역세권개발, 구룡마을개발사업 등이 모두 영동대로 시대의 주역들이다. 영동대로 개발의 핵심은 어디로든 연결되는 교통망이다.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는 철도, 버스, 자동차가 한데 모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교통 중심지다. 지하 1층은 도로시설과 버스정류장, 지하 4~7층은 기존의 지하철 2·9호선, GTX-A·C노선, 위례신사선과 SRT고속철이 들어선다. 강남이 서울의 새로운 관문이자 철도의 한 축이 되는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철도의 중심은 용산역과 서울역이었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에 수서~삼성역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철도 중심이 된다. 남북평화시대가 열리면 삼성역은 의정부~평양~시베리아를 거쳐 유럽대륙으로 이어지는 대륙철도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될 것이다. 여기에 GBC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자동차와 하늘택시로 불리는 UAM(Urban Air Mobility)이 추가되면 그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의 힘과 치세를 보여 주는 격언이다. 이제 곧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할 것이다. 강남구는 광역교통의 중심지이자, 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스마트 글로벌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동시에 민선 7기 강남구는 외형적 발전에 걸맞은 내면의 품격을 지향한다. 이것이 ‘나 너 우리가 함께하고,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스타일브랜드 ‘미미위 강남’(Me Me We Gangnam)을 도입한 이유다. 강남이 그동안 받아 왔던 혜택을 우리 사회에 나누는 ‘마더시티’(Mother City)로서의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50년을 돌아 다시 영동대로 앞에 섰다. 이제 강남을 넘어 미래 100년으로 도약할 시간이다.
  • ‘중국도 내집 마련 힘들어’...첫 매수 36세, 소형 주택 선호 현상 뚜렷

    ‘중국도 내집 마련 힘들어’...첫 매수 36세, 소형 주택 선호 현상 뚜렷

    중국인의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연령이 평균 36.9세로 조사됐다. 베이징, 상하이 등 1선 대도시 소재의 주택을 첫 구입한 생애 최초 부동산 소유 평균 연령은 36.9세로 일명 신(新)1선 도시로 불리는 충칭, 난징 등 15곳의 중대형 도시 대비 2.7세 더 높았다. 중국 부동산 전문 연구 플랫폼인 베이커연구원(贝壳研究院)은 올해 1985~1990년대 출생한 세대가 기존의 1970년대 출생 세대를 대신해 주택 소비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했다면서 29일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연구원이 공개한 ‘2021년주거소비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 1~10월 기준 각 도시별 주택 구입자 평균 연령은 1선 대도시가 타도시 대비 비교적 높은 연령(36.9세)을 보였으며, 신1선 대도시는 그보다 낮은 34.2세, 2선 도시는 34.8세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 보고서는 초대형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일수록 생애 첫 주택 구입 시 높은 문턱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1선 대도시 거주 주민일수록 주택을 구입하기까지 받는 스트레스가 크고, 그로 인해 주거부담지수 역시 높은 수치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주거부담지수는 주거안정성을 기준으로 각 지역 주민들이 가계에 비합리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일정 수준의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는 측정하는 지수다. 주거부담지수가 높을수록 각 가계가 주거비에 과도한 지출을 하는 것으로 그 외의 식료품과 의료비, 교육비 등이 영향을 받게 돼 전반적인 삶의 질이 하락하게 된다.이와 관련, 베이커연구원이 전국 114개 중대형 도시를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1선 대도시의 평균 주거부담지수는 89.1을 기록, 신1선 도시(65.2)와 2선 도시(63.5) 대비 큰 폭의 차이를 보였다. 이어 3선 도시와 4선 도시의 주거부담지수는 각각 59.3, 55.1로 비교적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때문에 1선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일수록 주거 불안과 주택 구입으로 인한 가계 재정 악화 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애 첫 주택 매수 연령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조사된 지역에서도 각 도시별로 그 이유가 상이하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공개됐다. 실제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으로 대표되는 1선 대도시의 경우 주택 구입 시 대출 규제과 제한이 크다는 점이 생애 첫 주택 구입 연령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주하이, 샤먼 등의 도시 주택 구입자 중 절반 이상이 외지 호적자들로 구성, 이들이 주로 투기를 목적으로 한 주택 매수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타도시 대비 주택 구매자 연령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텐진 등 과거부터 대출 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 알려진 도시에서는 주택 매입 시 현금 매수를 진행하는 사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이 주택 구매자 연령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됐다. 이 시기 1선 대도시의 평균 매매가격은 368만 위안(약 7억 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신1선 도시와 2선 도시가 각각 143만 위안(약 2억 7천만 원), 121만 위안(약 2억 3천만 원) 등으로 조사됐다. 1선 도시의 집값 고공행진의 주요 원인은 매년 지역으로 유입되는 청년 인재들의 인구 증가가 집값 상승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또, 이 시기 중국 주택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주택의 소형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이 꼽혔다. 이 연구원은 지역별로 하얼빈, 장춘, 선양 등 동북지역의 경우 방 2개 규모의 주택 거래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집계했다. 때문에 이 시기 방 2개 규모의 소형 주택이 이 지역 평균 주택 공급 평형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이 같은 소형 주택 거래 물량 증가는 베이징, 상하이 등을 비롯한 1선 대도시에서도 발견됐다. 이 시기 주택 구입에 대한 스트레스 증가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방 2개 규모의 소형 주택을 찾는 구매자들의 수를 증가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반면, 주거부담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불산, 난창, 창사 등 35개 도시에서는 방 3개 이상의 중대형 규모의 주택 매수자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시기 주거부담지수가 54.44를 기록하며, 전통적으로 부동산 매매 가격이 낮은 지역으로 꼽히는 창사에서는 방 3개 이상의 중대형 주택 선호 현상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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