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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림의 필요성/박태식 서울대 명예교수 산림경영학(굄돌)

    금년도 48회의 식목일을 맞으면서 올해의 국내 조림예정면적을 살펴보니 3만여 정보에 약 8천만주의 나무를 심는 것으로 돼 있다.이 수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매년 심던 조림면적으로 볼때 적은 수치이다.우리나라에서 나무를 많이 심던 1970년대에는 매년 10만정보가 넘는 면적에 3억주 이상의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나무를 많이 심는 나라로 꼽혔다.과거의 나무 심는 일은 산주가 이익을 내려고 한것이 아니라 헐벗은 산림을 녹화하여 국토를 보전하려는 정부와 국민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꾸준히 노력한 결과 1960년대 정보당 평균 축적이 10㎥정도이던 것이 이제 40㎥정도로 증가되어 한일합방이 되었던 1910년대의 축적을 유지케 되었다. 세계 선진임업국의 평균 축적(독일 2백96㎥,일본 1백13㎥)에 비하면 보잘것 없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국토는 녹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과거에는 나무의 질은 생각지 않고 구하기 쉽고 잘 사는 나무위주로 심었던 관계로 용도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가 많았다.그러므로 앞으로할 일은 어느정도 자란 나무를 질이 좋은 나무로 바꾸어 심는 일과 이미 심은 어린 나무를 솎아 주어서 잘 키우는 일이다.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국민이 협력해서 나무를 심었으나 이제와서는 그러한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하여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제 조림은 이익을 전제로 한 경제원칙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부터 목재 수입을 자유화하고 국내 목재생산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간 목재수요의 90%가 수입되고 있어 국산 임목값은 10년전이나 다름이 없다.10여년전에는 산에서 나무를 1㎥ 매각하면 인부를 7∼8명 쓸수 있었으나 현재는 인부 한명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농산물 수입을 1997년까지 완전 자유화할때 초래될 결과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고 있으나 임업은 이미 10여년전에 자유화된 목재수입으로 현재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그래서인지 국내조림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므로 올해부터 해외조림을 시작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지만 나무심는 일의 이익은 물질적 이익만이 아니고 수원함양,자연보존,환경보호등의 공공적 이익이 있으므로 공공적 이익에 해당하는 일부를 기업에 보조하여 국내 조림의 진작을 도모하는 것이 요망된다.
  • 「재정립」의 방법론(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10·끝)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민족자존의 전통이념 생활화를”/고유철학의 실체 구명에 모두가 나설때/「옛것」의 긍정적 측면 되살려 실천해야 깨끗한 정부를 만들려는 새 정부의 개혁의지가 최근의 결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내각 구성에서 몇몇 공직자가 도덕성 시비에 걸려 자리를 떠나야만 했고 곧이어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과정에서 이와 같은 의지가 또한번 드러났다.국민들은 이제 막 출범한 정부에 대해서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그러나 이런 판단은 좀 이른감이 있다.우리는 그동안 새로 수립된 정권들이 처음에는 참신하게 시작하다가도 1년이 못되어 원래의 상태로 회귀하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그래서 신악이 구악보다 더 심각하다는 세평들이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개혁에도 근원은 필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어디있냐는 논리에 의하면 이번 개혁의지에 철퇴를 맞은 사람들은 재수 없게 걸린 사람들이다.그러나 이런 개혁의 결단이 통과의례처럼 한차례 겪는 진통으로만 여겨진다면 새 정부에도기대를 걸만한 것이 없다.지금 드러나고 있는 치부의 형태는 단연 권력형 부정 축재의 유형에 들어간다.이러한 권력 엘리트의 부정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빙산의 큰 덩치는 아직도 바다 깊숙이 잠겨 있다.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곪아 있다.한국정신의 원류를 찾고 그 올바른 실체를 규명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미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린듯이 까마득한 지난해 대통령선거때의 사회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과거 우리 한국정신의 부정적 측면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법과 편법주의,돈과 향응 대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금력과 금권주의,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인격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맹목적 이기주의와 상호불신주의,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찾아 자기 욕심을 채우는 연고주의나 계층과 지역간의 갈등 등이 난무했다.과시주의와 과대 망상주의에서 발로된 자기 분수를 넘어 소비하고 소유하는 문제,이것이 부동산 투기로 연결된다.그리고 도덕성의 부재,과정과 절차를 존중할 줄 모르는 준법 의식의 일탈행위 등이다.우리 사회의 교통상황만 보아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외국인들이 말하기도 한다.과연 우리는 이런 사회도 등잔불만한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진단하고 이에따라 여러가지의 정부 대책과 처방들이 나오기도 했다.1960년대 3공화국은 국민의 내핍 생활,근면정신,빈곤퇴치,생산과 건설의식을 고취하는 재건국민운동을 벌였고 동시에 정정법을 발동하여 한차례 정치사회의 정화를 기도한바 있다.1970년대에 또한번 정치 불안과 사회불안을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관기숙정(관기숙정)의 서정 쇄신 운동이 잠시 추진되기도 하였다.1980년대의 사회 정화운동역시 이러한 의도에서 진행된 처방이었다. 그러나 70년대의 관기 숙정과 서정쇄신 운동은 3선 개헌후에 밀어닥친 사회적 저항을 멈추기 위한 대책이었고 80년대의 사회정화 운동은 5공화국의 정통성 확립이라는 또 다른 방편으로 전개된 운동이었기에 잠시후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어떤 것도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처방으로서는 미흡하였다.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아마 이 모든 시도들 속에는 진정한 개혁의지가 결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불합리와 불의의 상태는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오히려 부정의 방법이 더욱 지능화되었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우리는 다시금 처음의 문제로 돌아온 것이다.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도 않는 우리 사회의 엄청난 난제들 앞에서 때때로 우리는 좌절해 버리거나 「우리는 안돼」 「이제 우리는 틀렸어」라고 자학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이럴때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행정부에다 기대를 걸어본다. ○단번에 해결할수 없어 그러나 정부는 언제나 불가능한 대책만 내놓는다.모든 일을 단번에 해결하겠다고 말하거나 모든 일을 뿌리째 뽑는다(발본색원)고 말하지만 그 뿌리는 너무나 깊어서 계속 존속된다.사회의 문제란 원래 단김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역사상 어떤 사회도 단번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은 없다.선진 민주주의 사회가 수세기의 역사적 과정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와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도 실험하듯 신중하게 걸어가고 있다.다시 말하면 선진사회는 수없이 많은 실험과정을 거치면서 성숙해온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정신의 부정적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들을 앞세워 그를 생활화하고 실천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의 문제들은 사회 지도층의 각성,그들의 솔선수범,정부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통치방식에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그렇다고 사회의 모든 문제가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에서만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언제나 제도 전반의 개혁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크게 시작하지만 갑자기 그것도 이유없이 중단하고 만다.이제 우리 사회의 희망을 건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또 한번 정치 권력층의 약속을 믿어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기대해도 좋은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디서든,누구에게서든 우리 스스로가 당장무엇이든 시작해야 할 것인가.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민주주의 사회는 결코 엄청난 계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사회의 곳곳에서 이루어진 조그마한 실험들이 어우러져 완결된다.그래서 사회 전체는 작은 실험들의 전시장일 뿐이다.「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의 속담에서처럼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문제로 다가오듯 느껴지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그 문제가 발생한 근원에서 차근차근 해결하려는 노력과 결단력이 우리에겐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욱 더 절실하게 요청된다.그래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가 속한 가정 속에서 풀고 내가 속한 직장에서,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나 지역의 모임을 통해서,내가 참여하고 있는 친목단체에서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가까운 곳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지금은 바로 이 작은 실험의 정신이 한국정신의 원류를 되찾으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이제 막 시작한거나 다름없는 우리 사회가 걸어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약력 ▲1943년경남 진주출생 ▲한국 신학대학 졸업 ▲연세대 대학원 졸업 ▲연세대 대학원 졸업 ▲독일 보쿰대(철학박사) ▲현연세대 교수 ▲저서:「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 「사회구조와 삶의 질서」등 다수.
  • 지구환경탐사 레이더 개발(지구촌)

    ◎13국 과학자들,우주선 적재 계획/해류·토양침식·화산폭발 등 탐지 지구환경탐사에 이용될 3억달러짜리 초첨단 우주레이더가 개발됐다. 미국·독일·이탈리아등 13개국의 과학자 52명이 만든 이 레이더는 내년부터 미국 우주왕복선에 실려 지구환경의 정밀탐사에 나서게 된다. 과학기술의 일대 진보작으로 평가되는 이 우주레이더시설은 제작이 끝나 현재 시험가동중에 있는데 내년 4월 미국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실려 첫 지구환경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중량 10.5t에 13m×4.3m 크기인 이 지구환경탐사장치는 모두 3개의 레이더로 구성돼 있으며 초단파를 지구표면에 반사시켜 세계 최초의 천연색 지구영상을 만들어 내게 된다. 앞으로 이 레이더는 지구의 오염,개발,자연현상이 지구의 생명체들과 기후에 미치는 영향등에 관한 자료를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광학적인 촬영장치와 달리 구름,사막의 모래,빙하,열대림을 뚫고 지구표면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이 거대한 우주환경탐사장치는 현재 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이 레이더를 구경하기 위해선 소독된 모자와 가운을 착용해야 하며 먼지를 털어 내기 위해 압축공기 샤워 속을 통과하도록 돼있다. 이 장치는 대양의 해류,식물과 토양의 수분함유량,침식현상,화산폭발,식물속의 탄소량등을 탐지해 낼 수 있다.또한 과학적으로 중요한 세계의 19개 지역을 집중 탐사하게 된다. 또 이 레이더는 미국 우주왕복선이 한번 왕복비행을 할 때마다 백과사전 2만권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의 지구사진을 찍게 된다. 3개의 레이더는 각각 다른 무선주파수를 사용한다.이들이 수집하는 자료를 종합하면 지상의 폭 11m 짜리의 미세한 물체도 잡히는 정밀한 천연색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물론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각종 인공위성과 우주왕복선이 지구탐사에 활용되고 있긴 하다.다만 이 초첨단 레이더 보다 정밀도가 떨어지는 레이더가 이용됐고 사진이 모두 흑백이라는 점이 다를뿐.
  • 해방이후 대표적연극 다시 본다

    ◎「…이중생」/「산불」/「국물…」/「초분」/「새들도…」/연우무대,「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시리즈2」 공연/연극·학계 중진,시대별로 1편씩 선정/윤광진·김철리·기국서씨 등이 연출 극단 연우무대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한국 현대 연극의 재발견2­해방이후의 문제작 시리즈」가 4월부터 8월까지 넉달동안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올해로 두번째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무대에는 연극계와 학계의 중진들의 추천을 받아 최종 선정된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작품 5편이 공연된다.이들은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1940년대·4월15∼5월9일),차범석의 「산불」(1950년대·5월13일∼6월6일),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1960년대·6월10일∼7월4일),오태석의 「초분」(1970년대·7월8일∼8월1일),황지우시·주인석 희곡「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0년대·8월5일∼29일)등이다. 지난 91년의 첫번째 무대는 1912년부터 45년사이 작품들 가운데 소개되지 않았던 조일제의 「병자삼인」,유진오의 「박첨지」,함세덕의 「동승」,송영의 「황혼」등 단막극 4편을 모아 마련한바 있다.이 공연에서는 그동안 우리 희곡사에 묻혀있던 함세덕의 「동승」이라는 보고를 발견 소개함으로써 크게 주목받았다.따라서 이번 두번째 무대에도 연극계 안팎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1949년 발표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전통적인 희극적 정서로 현실을 비판한 사회극.차범석의 초기 대표작인 「산불」은 6·25전쟁을 시대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리얼리즘 희곡의 모범으로 꼽힌다.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는 너무 평범해 취직도 결혼도 못한 청년의 출세행로를 통해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의 비리와 문명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태석의 「초분」은 70년대 발표당시 실험성으로 연극계에 충격을 던진 작품으로 전통적 「굿」형식을 현대적 무대에 접목시킨 오태석연극의 원형이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황지우의 동명시집에 실린 시들을 주인석이 희곡화한 것으로 80년대의 암흑기가 잉태한 연극적 산물이다. 이번 무대는 연우출신 연출가들만이 참여했던 첫해때와는 달리 연우와 직접적인 관계여부를 떠나 윤광진 김철리 박원근 기국서 김광림등 참신한 감각과 활동력이 있는 40세 전후의 연출가 5명을 참여시키고 있다.이로써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은 더 이상 단순한 연우무대의 행사가 아니라 범연극계의 행사로 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또 작품당 공연기간을 배이상 늘리고 출연자들도 공개오디션을 통해 뽑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이번무대가 우리연극사를 재조명하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내실을 기하고 있다. 연우무대는 한국 피자헛주식회사(사장 성신제)가 문예진흥원을 통해 후원금 5천만원을 지정 기탁해옴에 따라 예산상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덜게 됐다.더군다나 한국 피자헛측이 예산지원을 올해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나간다는 뜻을 분명히 해옴에 따라 연우무대는 보다 유리한 여건속에서 이 시리즈를 지속해나갈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4월15일부터 시작되는 첫 작품 「살아있는 이중생각하」공연에 앞서 연우무대측은 7일쯤 「2천년대를 향한 한국연극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어서 이론적인 고찰도 겸하게 된다. 지난해 정한룡 극단대표와 김광림 예술감독 중심으로 새진영을 갖추고 연우무대의 거듭나기를 모색해온 이래 첫행사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2」는 「연우무대의 재도약」선언의 가능성을 가름해보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여성문학/신세대사고 뚜렷/공지영「무소…」·조문경「시를 짓듯…」등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시각 담아/이전 경향과는 구분… 「노라 콤플렉스」 벗어 우리의 여성문학은 「노라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는가.박제된 인형처럼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노라.1970년대 중반이후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성에 관한 문제를 여성문제의 본질로 다루며 결혼·가족제도의 거부로 이혼과 가출등을 선택해왔던 오늘의 여성문학 현주소가 자못 궁금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 연말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여성문제를 다룬 여성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찾아진다.왜냐하면 이전의 경향과는 구분되는 소설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소설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주문경의 「시를짓듯 죄를짓다」,박완서의 중편 「꿈꾸는 인큐베이터」등이 그것이다. 앞의 두 작품은 3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으로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학교에서나마 교육받고 자란 세대의 시각을 담고 있다.여성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도 새로운 세대의 경험을 반영한다.이혼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남성과의 결합으로 이어지는식의 불완전한 해답을 제시했던 일부 기성작가들의 작품과는 분명히 새롭게 구분되는 것이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대학동창인 혜완,영선,경혜등 세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사고로 아이를 잃으면서도 홀로 서야했던 작가인 혜완,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과 재능에 대한 욕심을 유보시켰다 결국 자살한 영선,의사인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사는 경혜.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모두 「여성」이기에 받아야했던 상처를 안고있다.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혜완의 독백.무소의 하나뿐인 뿔처럼 고독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결연히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이 작품은 또 「모성」까지도 여성에 대한 족쇄로 삼는 억압구조를 폭로하고 있다. 조문경의 「시를짓듯 죄를 짓다」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선생을 하는 한 가정주부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허구를 파헤친다.아버지의 권위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유의 길」로 결혼했던 김인혜.그러나 결혼은 자신을 오히려 물화시키고 희생과 침묵,악쓰기만 강요한다.소통이 안되는 「불임의 언어」만 남긴 식민지생활과 다를게 없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결심한다. 「공의와 자비의 저울대가 반듯한 진짜 인간하고만의 간음을 통해서라도 자아를 탐색하려는 나의 혁명」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그러면서 훨씬 바람직하고 당당한 자아탐색법은 딸에게 넘기고 있다. 문명비평적인 시선에서 낙태를 다루고 있는 박완서의 중편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등에 이어 여성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품으로 보인다.남편의 외도나 남녀관계의 종말,가정에서 경험하는 중년여성의 소외등과 같은 위기를 통해서만 자신의 억압적 상태를 정확히 인식한 우리 여성문학의 주인공들.「집」을 박차고 나옴으로써 문제를 해결코자했던 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노라 컴플렉스」에서 서서히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항공모함/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

    ◎1992년 길이 155m·7.470t급 일서 첫 완성/미,2차대전때 136척 건조… 해상권 장악 항공모함은 기중기로 비행기를 함상에 오르내리는 수상기 모함에서부터 예고되었지만 19 11년 1월 18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민간조종사 유진 일리는 장갑순양함 펜실베니아호의 갑판에 나무로 플랫폼을 만들어 비행기를 이룩시키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1차대전 이후에 열강들은 이미 건조되었거나 건조중인 함정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였다.그러나 비교적 늦게 이 경쟁에 뛰어든 일본은 항공모함을 최초로 설계하여 건조한 국가라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일본은 19 19년에 착공하여 19 22년 12월에 호쇼(봉상)호를 완공하였다.호쇼호는 배수량 7천4백70t,길이 1백55·5m,폭 18m,엔진 3만마력,속력 25노트의 제원을 가졌다. 비행기가 무거워지고 속력도 빨라지자 함상착륙을 쉽게 하기위해 보다 나은 제동장치와 고압증기를 이용한 사출장치가 개발되고 또한 비행갑판을 선체에 비스듬한 각도로 설치하려는 등의 연구로 항공모함이 개선되었다.그러나 양차 대전까지만해도 미국과 영국 및 일본만 항공모함을 보유하였다.이중에서 미국은 선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한 뒤 조립하는 건조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짧은 기간에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그리하여 미국은 2차대전 중에 2만7천t급 22척,1만1천t급 9척,1만1천4백t급 19척,7천8백t급 50척,9천8백t급 36척,합계 1백36척에 상당하는 크고 작은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였다. 2차대전 이후에는 각국의 노력으로 항공모함이 훨씬 더 개선되었다.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충분히 경험하여 19 4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항공모함을 건조하였다.현재 미국은 5만t의 미드웨이급 3척,6만t급의 키티 호크급 8척,원자력 항공모함 3척 등 1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소련은 1970년대부터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여 현재 5척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소련에서 항공모함을 구입하는 중이며 2차대전때 항공모함을 보유하였던 일본은 공격형 함정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패전국 규제조항 때문에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그동안 쌓아 놓은 기술적 역량과 경제력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자체 건조가능한 위치에 있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0

    ◎단추와 옷고름/괴춤의 여유로 세계를 감싼다/재고 또 재는 합리뒤에 오는것/한국적 가변성·포용성이 새 문명 활로/산업사회의 양복은 긴장의 병리를 유발/한복의 융통성은 「푸는 사회」의 건강처방/「법적죄임」속의 메마른 인간관계/서구의 마약·에이즈·홈레스 유발/바지·저고리 품 닮은 신축적 사고/미래사회 기본정신으로 삼아야 □황규호문화부장=한복은 몸을 싸는 옷이요,양복은 몸을 넣는 옷이라는 지난번의 말씀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습니다.오늘은 보자기 문화에 뒤이어 양복과 한복의 비교문화론을 듣고 싶습니다.그리고 그 비교를 통해서 한국문화의 전망과 그 가능성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양복을 보면 근대 산업문명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산업화가 합리적인 수치에서 생겨났듯이 양복도 재단사가 인간의 몸을 정확하게 재는 데서부터 태어나게 되지요.인체는 아주 복잡하지 않습니까.그것을 일일이 자눈으로 재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몸에 꽉 맞추는 기술­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하고 매우 유사하지 않습니까. ○여우사냥복서 유래 □우리가 오늘날 입고 있는 양복과 근대 산업문명이 시작된 것과 어떻습니까.그 연대가 비슷한지요. ■연대만이 아니지요.산업혁명을 낳은 영국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입고 있는 그 양복의 고향이지요.즉 남자들의 양복 원형은 영국 지방귀족들이 여우 사냥을 할때 입던 옷이라고 해요.활동적이고 간편하고 기능적인 그 모드가 산업사회의 특성에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지요.산업혁명이 보편적인 세계시스템을 구축한 것처럼 양복 역시 이제는 거의 세계인의 의상으로 표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양복의 생명은 그 재단이고 그 재단기술은 인체를 정확하게 재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산업사회의 합리주의는 바로 이 재는 문화가 아니겠습니까.그런데 한복은…. ■맞아요.한복은 정확하게 치수를 재지 않아도 되는 의상이지요.만약 옛날 조선조시대의 우리 할아버지네들이 허리를 재고 또 재고 그러고도 모자라 가봉까지 하면서 허리통을 1∼2㎜ 따져가며 핀을 꽂는 양복점 재단사들을 보면 분명 미련한놈들이라고 한숨을 지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렇게 말하셨겠지요.『야 이놈들아 어디를 재는거냐.사람 배라는 것은 숨을 들여 쉴때 다르고 밥을 먹을 때 다른 것인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그렇게 재서 어쩌자는 거냐』.(웃음)그리고 한복의 괴춤의 자랑할 것입니다.한복의 바지는 배를 재지 않고도 입을수 있도록 아예 허리통보다 5㎝가량 넉넉하게 말라 놓은 것이지요.배가 나올때는 풀어 입고 들어갈때는 조여 입으면 그만입니다.이 융통성이 바로 전번에 말한 한국인의 융통성이요 가변성입니다. □서양옷처럼 일일이 치수를 따지지 않아도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것이 한복의 특성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사실 한복은 앞뒤도 없지 않습니까.(웃음)웬만하면 몸집이 달라도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포용성을 지녔지요.이 너그러움이 몸을 싸고 인생을 싸고 세계를 쌉니다.까다롭게 따지는 옷이 아니라 그윽히 품어주는 옷이지요.임어당은 언젠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그같은 시각에서 비교한 적이 있었지요.서양사람(일본사람도 여기에 속합니다마는)들은 굴을 뚫을 때에미리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양쪽에서 파들어 온다는 것이지요.그래서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도중에서 쌍방의 굴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문명이라는 겁니다.그러나 중국사람들은 양쪽에서 적당히 파들어 온다는 거지요.그러다가 굴이 서로 만나면 재수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굴이 두개 생기니 더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웃음) 이런 문명을 가지고는 물론 달나라에 갈 수는 없지요.그러나 정신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산업문명은 양복처럼 치수가 맞을때에는 좋으나 조금만 틀려도 거북하기 짝이 없지요.신사복을 입을 때마다 품이 째기도 하고 허리가 조여 후크를 풀어야 만 되는 경우도 많지요.산업사회라는 것도 꼭 그렇게 인간을 숨쉴수 없게 조일 때가 많아요. ■바지만이 아닙니다.양복과 한복의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단추와 옷고름입니다.나는 어째서 세상옷들이,중국옷도 마찬가지입니다.모두 단추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유독 한복만은 여자옷이나 남자옷이나 옷고름을 사용하였는가궁금하게 여겼지요.결국 이것도 치수를 초월한 융통성과 포용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금세 그 수수께끼가 풀립니다.단추는 그 구멍과 정확하게 대응되어야 합니다.단추와 구멍은 한치의 에누리도 용서되지 않지요.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 간격을 조일수도 풀수도 없습니다.그러나 옷고름은 그렇지 않아요.품이 크면 바짝 조여 맬수 있고 반대로 품이 째면 느슨하게 풀어 맬 수가 있습니다.바지통처럼 여분이 있지요. □옷고름의 길이도 여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흥부네 집 가난 묘사에도 있듯이 옛날 사람들은 기워 입을 헝겊조차 없어서 고생을 하였지요.그런시절이었는데도 어째서 옷고름을 그렇게 길게 만들었는지 미스터리중의 하나입니다.서양 리본을 보십시오.매고 난 끈은 짤막하게 자르지 않습니까.그런데 한복의 옷고름은 바람에 나부낄 정도이지요.옷감이 귀하면서도 왜 리본처럼 짤막하게 끊지 않았는가.그것이 한국인의 마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시골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감을 다 따지 않고 하나 둘 남겨 두지요.까치도 먹으라고말입니다. □시골에서는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부르지요. ■옷고름이나 까치밥이나 그것은 다 궁색한 가운데도 여분을 만들어 내는 한국특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여분의 사상속에서 정도 생기고 포용력이나 융통성 그리고 멋이 생겨난 것이지요.좀더 복잡한 말로 하면 「무용의 용」이라는 겁니다.이것이 바로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기능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정보적 가치와 결합될 수가 있습니다. ○도둑이 소송 내서야 □산업문명이 양복처럼 디자인된 것이라면 오늘날 이 옷이 인간의 품에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처음에는 잘 맞았지요.그런데 1970년대 오일 쇼크나 월남전이 끝나는 무렵만 되어도 점차 허리가 거북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옷이 되고 맙니다.몸이 달라진 것이지요.한치 두치 따져야 살아갈 수 있는 산업문명은 결국 미국사회처럼 70만이 넘는 변호사를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일인당 비율로 일본보다 17배가 넘는 수이지요.치수를 따지지 않고서도 입을 수 있는 바지처럼 법없어도 사는 것이 한국인이 그리는 이상사회였습니다.정철도 가사를 통해서 『강원도 백성들아 송사를 하지말라』고 소리 높이 외쳤지요.옷에 치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한국사람들은 소송은 물론 웬만한 경우에는 따지는 것을 금기시합니다.그래서 누가 따질 때 『지금 나한테 따지자는 거야』라고 하면 상대방은 대체로 좀 수그러들면서 『내가 꼭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라고 변명을 합니다.(웃음) 따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문화풍토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사회는 따지기를 좋아하는 로고스중심주의이며 법 만능사회입니다.법없이는 못사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미국의 희극영화에는 거지끼리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나의 고문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전문 변호사를 두지 않고서는 거지짓도 못하는 것이 미국사회라는 풍자지요.현실적으로도 미국에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소송사건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도둑이 도둑질하려고 학교 실험실에 들어가려 했다가 지붕에 난 창유리를 잘못 밟아 떨어져 척추를 다칩니다.반신불수가 된 이 도둑은 그 학교를걸어 소송을 제기합니다.지붕으로 낸 창문을 지붕색과 똑같이 칠해 놓았기 때문에 창인줄 모르고 밟게 되었다는 겁니다.그러니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한 건물주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지요.(웃음) 그런데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도둑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어 결국 합의로 위자료를 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웃음)그 뿐만이 아닙니다.심지어 교사가 성적을 나쁘게 주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소송을 제기한 학생도 있습니다.(웃음) □복용자로부터 소송이 걸려 올까봐 제약회사가 약품을 개발해 놓고도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들었는데요…. ■의료분쟁이 아주 심하지요.걸핏하면 환자로부터 소송이 걸려오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의사가 되려면 인술보다 법에 밝은 법술에 능해야 되지요.그러나 소송왕국이 된 미국의 진정한 불행은 법의 고삐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메마른 인간 관계속에 있다고 하겠지요.그러한 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질환에 걸리게 됩니다.「사이코」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되어 버립니다.한편 사이코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약물에 의한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미국은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하게되는 마약왕국이 되어버립니다.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미국에는 현재 홈레스(우리말로 하면 집없는 거지)가 전 인구의 1%로 2백50만이고 코카인같은 마약중독자가 또 1%라고 합니다.여기에 또 그만한 에이즈가 있습니다.이것은 미국의 사회를 좀먹는 삼각형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요.홈레스의 대부분은 약물중독의 결과에서 비롯되고 에이즈 환자의 대부분은 약물중독과 상관성이 있습니다.클린턴은 미국경제의 재생을 걸고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지만 그 최대의 난관은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재정적자입니다.그런데 바로 홈레스 에이즈 마약의 세가지 사회현상이 재정적자의 삭감을 불가능하게 하는 난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서구 산업사회의 궁극에는 그 세가지 나락의 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이시군요.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문화의 전철을 밟게 되면 우리의 모습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경고구요. ■그렇지요.우리는 그동안 경제 발전의 목표나 정치적 이상을 모두 미국을 모델로하여 한길로 달려 왔지요.그런데 아무래도 우리가 따라간 그 길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미국의 반수 이상은 신문을 읽지 않아 정치에도 세계문명의 전환에도 무관심하고 책을 한권도 구입하지 않은 가정이 6할이나 된다고 하니(92년 통계)미국내에서 새로운 미래의 길을 찾기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자신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양복을 벗어던지고 한복을 입으라는 복고주의가 아니라 급변하는 세계에 맞는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성패 달려 □그 문명의 디자인을 하는데 한복의 옷고름 바지의 포용력을 기본정신으로 해야 된다는 말씀이지요. ■구체적으로 「긴장사회」를 「푸는사회」로 만들어갈때 개인이고 사회고 건강해진다는 겁니다.그렇지 않으면 마약 에이즈 홈레스가 바로 우리의 현실 인류문명의 병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비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이 세가지 좀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여기에 21세기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아직은 에이즈도 마약도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홈레스의 사회문제도 세계에서 우리나라 처럼 작은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 말은 이 3대 좀의 온상이 되는 긴장문화가 덜하기 때문입니다.풀었다 조였다 할 수있는 바지와 저고리품처럼 신축성과 포용성이 우리 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까닭이라고 봅니다.일본만 해도 경제적 번영을하고 있습니다마는 정신질환이라는 면에서는 우리보다 심각하지요.어느날 갑자기 가출을 해버리는 중년 샐러리 맨,10대의 사망률 가운데 반수를 차지하는 자살자,변태성 잔악 살인자….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건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겉으로만 보던 미국사회 산업사회가 도달하는 궁극의 풍경을 이렇게 근접촬영을해보니 정말 불안과 공포가 생기는 군요.말끝마다 『미국에서는…』이라고 선진국모방에만 급급했던 것이 엊그제인데….느낌이 새로워지는군요.자 그러면 우리도 옷고름 자락을 남겨두고 다음에 다시 말씀듣기로 하지요.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0)

    ◎소년시절:1/중국학교 입학 「지원」으로 합리화/한인탄압 앞장섰던모아산소학교 다녀/주체사상에 흠결 우려 기술 제대로 못해/“가정교사 들여 중국어공부” 70살 넘어 자인 김형직 일가가 이주한 임강은 임강현의 현소재지였는데 당시는 임강이라 하지않고 모아산이라고 불렀다.그들이 정착한 곳은 현공서에서 압록강변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었던 정미소 옆에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70년 후반부터 언급 김형직은 여기에 순천의원이란 간판을 걸고 방안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걸었다.김일성은 자기 부친이 가짜 의사였던 일을 「세기와 더불어」에서도 자랑하면서 그가 몇달 후 「명의」로 평판났다고 쓰고 있다. 하여간 임강에 온 김일성은 만7세였으므로 학교에 들어가야 할 연령이다.그런데 종래 북한에서는 그가 소학교에 다닌 일조차 이리저리 변경하여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만들고 있었다. 임강에서 소학교에 다닌 것도 1949년에 발간된 조선민족해방투쟁사에서 「모아산의 소학교」에 다녔다고 한것이 처음일 것이다.그러나 이런 서술로써는 객관적으로 그 학교가 중국인의 학교인지 한인의 학교인지 알 수가 없다. 「장군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 압록강가의 중강진으로 가시었고 그후 임강을 거쳐 팔도구로 가시어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니시었다」 임강소학교가 북한에서 조심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1978년에 나온 「불명의 자묵을 따라」에서 「1920년 봄,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께서는 강안촌에 있는 임강 소학교에 입학하시었다」라고 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학교인 임강소학교를 전기에 내는 것은 「주체사상」에 저촉되는 일이었는지 어떤지 8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가정교육」에 열심이었다는 기술만 하고 임강소학교 입학문제는 언급을 피하였다. ○사상적 해결 시도 북한 어용학자들의 이러한 갈등은 이번 회고록에서 일단 낙착이 간 모양이다.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우리가 임강에 건너가자 아버지는 한 반년 남짓동안 중국교원을 붙여 중국말을 배우게 한 다음 나를 임강소학교 1학년에 입학시켰다. 나는이 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중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8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가정교육」에 열심이었다고 썼는데 여기서는 그가 자식에게 중국인 가정교사를 붙였다고 밝히고 있다.또 그가 정식으로 임강소학교에 입학한 것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서술로 되고 있다. ②「어째서 아버지가 나에게 서둘러 중국말 공부를 시키고 나를 중국인학교에 다니게 하였는지 그때로서는 미처 다 깨닫지 못하였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지원」사상에 기초한 아버지의 선견지명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일성은 이런 말로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임강소학교 진학문제를 「사상적으로」해결하였다.아마도 김일성은 1980년대 초까지 아버지가 시킨 중국학교 입학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그는 수십년이나 이 문제를 가지고 어용학자들에게 우왕좌왕시킨 끝에 「지원」을 가져와서 합리화시켰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전기의 불명확한 기술은 북한 어용학자들 뿐 아니라 필자에게까지 판단을흐리도록 만들어 놓았다.필자는 김일성 평전에서 임강에는 당시 모예산현립소학교와 한인이 경영하는 「모예산숙」이 있었는데 그 어느 쪽에 김일성이 입학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썼었다.이번 김일성의 회고록은 필자의 이런 궁금증도 풀어준 것으로 되어 있다. ○수십년 걸려 정리 필자가 당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모아산현립소학교가 1927년 당시 한인을 박해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반동소학교였기 때문이다. 1925년 조선총독부는 만주의 봉천군벌과 「불령(불령)선인취체협정」을 체결하였다.이 협정은 「삼시(미쓰야)협정」으로도 불리는데 일제는 이 협정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독립운동가와 운동단체를 마음대로 탄압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작림은 일제가 한인탄압을 구실로 1927년 안동령사관의 모예산분관을 설치할 책동을 부리게 되자 이것을 반대하기 위하여 뒷면에서 중국의 관청과 민중을 발동시켜 반일운동을 하도록 종용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반일운동은 그 직접적인 대상이 한인이었다.임강의 관헌은 모아산분관 설치의 주요인이 일제에 의하여 만주로 쫓겨 나온 한인에게 있다고 단정하고 중국민중을 동원하여 한인을 박해한 것이다.김일성은 이 악명높은 소학교에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싫어하여 70세 생일까지도 망설이고 있었다. 이번에 「지원」을 내세우고 입학사실을 공개한 것은 김일성연구의 진척으로 사실을 감추지 못하게 된 그가 택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 Ⅰ」59면 ②평전 39면 ③평전 38면 ④「세기와 더불어 Ⅰ」58면 ⑤같은책 59면
  • 「환경투자」 앞줄에 세우라/수질보전… 전문가의 제언

    ◎경제와 같은 맥락… 정부·기업·국민 함께 나서야 1960년대초 본격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된 이후 197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4대강의 수질오염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특히 1974년도에는 한강본류에서 취수하던 서울시 상수원을 상류인 팔당으로 이전하였으며,영남지방의 젓줄인 낙동강 또한 구미하류의 수질오염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1980년 환경청이 발족한 이후 환경행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고는 하나 전국의 주요상수원은 상수원수 2급이하가 되었으며 1989이래 연속적으로 매년 상수수질문제가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다.더욱이 1991년 3∼5월 낙동강 유역에서의 페놀누출사건은 매우 큰 사회적 충격이었다. 당국에서는 1989년이래 맑은물 공급대책의 일환으로 상수원을 정비하고 대도시와 주요 공업단지주변의 지천에 하수처리장을 건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나라경제사정상 경제개발을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실정에서 수질보전사업과 많은 마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공업지역에서는 경제불황을이유로 폐수처리장을 운영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에 대한 당국의 조치도 미온적이었던 때도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중화학·섬유등 에너지와 물을 다량사용하는 것이었으므로 하천수질오염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에 한강의 주요오염원인 경안천이 서서히 깨끗한 수질로 바뀌는 현상이 보도되고 있는 사실은 당국의 노력과 주변의 축산산업과 공장들의 이전 또는 업종변경 등으로 일부 산업구조조정에서도 그 개선효과를 찾아볼수 있다. 환경처는 수질보전종합대책을 마련하여 1996년까지 4계 주요수계에 총4조9천2백22억원을 투자하여 그 수질들을 상수원수 1∼2급수로 개선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환경처의 안대로 상수보호구역지정확대,오염원규제,오염물질 처리시설설치,수질감시강화등의 수질오염관리가 강화되면 수질환경의 개선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처의 계획은 매년 작성하여 새로이 제시되었왔으며 계획안의 실천을 뒷받침할 예산은 경제기획원에서 정부예산책정 과정에서 언제나 삭감되었고,전년도 대비의 몇%예산 증액만이 반영되었었다. 과거에 정부의 환경부문투자는 GNP대비 0.2%를 넘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선진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매우 낮다. 현재 세계적으로 모든 과학기술분야에서 환경오염을 시키는 기술은 많은 비용이 또한 처리비용으로 소모되므로 새로운 기술로서 채택될수도 없으며 경제적으로도 경쟁할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환경보전과 경제문제는 같은 선상에 있으며 환경보번을 위한 투자가 오히려 새로운 환경보전기술을 개발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환경보번문제 중 특히 수질보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우선 국가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단지 담당부처인 환경처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내세워도 그실행과정에서 종래와 같이 투자된다면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당국이 수질보전의 의지를 강력히 보일때 국민들의 환경보전에 대한 실천이 이루어질 것이다.현재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데 비하여 오히려 당국과 기업에서의 대처가 미흡한 면이 있다. 수질보전의 근본적인 해결은 국민 각자의 의식에서 출발하므로 당국과 기업은 환경보전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투자하여야 하며 시민들은 절제와 깨끗한 환경,안심하고 마실수 있는 물을 보전하는 정책에 적극 호응하여야 할 것이다.
  • 고르비와 옐친/정종석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과 옐친 현 러시아대통령은 1931년생의 동갑내기이다.농부와 공사장노동자의 아들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출신배경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사람의 성장과정이나 개성·기질은 큰 차이가 있다.옐친은 학교시절 몇차례 퇴교위기를 넘기는 등 말썽꾸러기에 싸움꾼이었던 반면 고르비는 모스크바대법과 졸업뒤 변호사를 거쳐 곧바로 고향의 공산당지구당위원장직을 맡는 등 옐친과는 달리 순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서민적 기질의 옐친에 비해 고르비는 귀족적인 화려함을 즐기는 쪽이었다. 두사람의 관계는 1970년대부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결과적으로 옐친은 고르비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난해 구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당시 실각됐던 고르비를 살려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옐친이었다.옐친은 거꾸로 고르비의 은인이 됐고 이 사태이후 크렘린궁의 주인은 옐친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정부가 최근 고르비에게 출국금지령을 내린 것을 계기로 지난 20년동안 유지돼온 양자간 공생관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느낌이 든다. 고르비와 옐친사이는 흔히 「애증병존」의 관계로 표현돼왔다.정치적 부침을 겪으면서 형성된 가깝고도 먼 관계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옐친은 사실 차분한 관리자라기보다는 뚝심있는 혁명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다.반면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창안자였으면서도 과감한 개혁을 머뭇거리다 물러난 비운의 풍운아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옐친이 쿠데타군의 탱크에 올라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순간 고르비와 옐친의 위치는 바뀌기 시작하고 말았다.그러나 러시아대통령 취임초기의 분홍빛 청사진과는 달리 잇따른 경제개혁실패,이에 대한 크렘린궁 복귀를 꿈꾸는 고르비의 강도높은 비판으로 다시 역전되고 있는 입장을 다혈질의 옐친이 감내해 내기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고르비의 퇴장은 그 개인은 물론 인류 현대사에 엄청난 변혁을 초래했던 구소련 74년 역사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아울러 갖는 것이었다.그런데 고르비에 대한 출국금지령은 이제 전·현직집권자간의 미묘한 관계를 비롯해 권력의 냉혹한 속성,정치와 우정같은 인간적인 문제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 80년대 의식변화/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14.끝

    ◎정치 무관심… “일·여가 똑같이 중요”/NHK,73년이후 5년단위 같은문항 조사/남편가사 긍정적… 국수주의 쇠퇴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일본인의 의식」을 19년에 걸쳐 조사해 오고 있다.NHK세론조사부는 1973년 6월에 처음으로 「일본인의 의식」조사를 기획,실시한 바 있는데,이와 같은 조사는 그후 5년마다 계속적으로 실시되었다.이 조사의 목적은 생활방식,가정,일,여가,내쇼널리즘 종교 정치등 광범위하게 일본인의 사물에 대한 사고 방식 가치관을 장기에 걸쳐서 파악하여 그 특징 및 변화의 모습을 밝혀 보려는 것으로 우리가 일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인의 의식」조사는 제1회의 조사 이래 매5년,같은 질문,같은 선택지 같은 연령대상 같은 조사방법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 질문영역은 ▲기본적인 가치로서 「능률­정서」,「권위­평등」「경제적 가치」「이상적 인간상」「생활목표」 ▲가족,남녀관계의 영역으로 「생활만족도」「가족( 부부관계·부자관계)」「남녀관계」「노후」.▲사회­문화 영역으로는 「일」「여가」「인간관계」「소비지향­저축지향」「종교­신앙」.▲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텔레비전의 필요성」「없어서는 안 될 커뮤니케이션」.▲정치 영역으로 「정치관심」「정치행동양식」「정치목표」「정당지지」「천황 내쇼널리즘」등이 포괄돼 있다. 이와같이 모두 48개의 질문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조사 주체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일본인의 의식이 변화하는 궤적을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의식변화에는 물론 사회전반적인 변화도 작용한다.예컨데 이 시기에 일본은 정치적인 면에서 1976년의 록히드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금권정치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되고,80년대에 들어서서는 전전(전신전화)공사,전매공사,국철의 민영화등의 행정개혁 및 세제개혁도 행해졌다.경제적인 면에서는 70년대 전반의 오일쇼크로 일본경제는 고도성장에서 「저성장」으로 이행되었다.그 후는 미국과의 무역마찰과 엔고(원고)현상등도 있었지만,80년대 전반까지는 안정성장을 유지,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일본인 1인당 GNP가 미국을 넘어서는 등,안정에서 경기(경기)의 확대로 이행했다. 이처럼 1973년으로부터 19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회 및 정치의 변동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이에 따라 일본인의 의식도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조사결과의 분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식변화의 커다란 특징을 뭉뚱그린다면,일본인의 기본적인 의식의 대부분은 지난19년간 일관성이 있다로 말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뜨이는 변화를 지적한다면,▲생활만족파가 증대하고 있는 동시에,▲「여유」를 구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또한 탈정치의 경향도 넓어졌다는 사실이다.그밖에,같은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변화해온 의식으로서는 「남편의 부엌일」및 「가정과 일의 양립」에서 볼 수 있는 것같이 가정을 중심으로 한 남녀평등을 긍정하는 의식,「직장」·「이웃」·「친척」의 인간관계는 「적당히」가 좋다고 하는 의식,「일과 여가의 양립」을 구하는 경향,정치 마당에서의 유효성 감각의 희박화등이 지적될 수 있다.19 80년에 들어서서 변화가 눈에 뜨이는 의식으로서는 「이상적인 일의 조건」으로서 「직장동료와 즐겁게 지내는 것」을 중시하는 의식의 확대,내쇼널리즘의 면에서 「외국으로부터 보고 배울 만하다」라고 하는 사고방식의 강화,노후는 「손주나 아이들에 둘러싸여」산다고 하는 생활방식의 후퇴,「지역,회합의 진행방식」에서 「능률」만을 구하는 의식의 약화등이 있다.
  • 조자양보좌관 비밀재판 회부

    ◎바오 퉁,「천안문」 연루돼 피체… 「조」복권 관심 중국은 조자양 전총서기의 고위 보좌관이었던 바오 퉁(59)을 오는 21일 비밀재판에 회부한다고 그의 가족들이 18일 밝혔다. 가족들은 이날 북경중급법원으로부터 재판이 비밀리에 열리며 가족들의 참관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받았다고 말했으며 이에 앞서 홍콩의 명보도 이날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전 공산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와 관련하여 체포된 사람들중 최고위 중국관리인 바오에 대한 재판은 지난 1970년대 4인방 재판후 최고로 중요한 정치재판으로 꼽히고 있다. 바오는 조자양의 연설 원고를 많이 썼으며 천안문사태후 해체된 개혁파들의 두뇌집단인 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을 역임했고 조자양의 복권문제도 그의 재판과 연계되어 극히 조심스럽게 관측되고 있다. 서방 외교관들은 당중앙의 수년간에 걸친 뒷거래로 바오에 대한 유죄판결과 선고가 이미 결정돼 있다고 지적하고 그는 조자양을 비난하는 당내 강경파들에게조대신 속죄양으로 희생됐다고 말했다. 중국 분석가들은 그에 대한 가혹한 선고는 등소평에 대한 역공으로 관측될 수있으며 보수파.좌파들의 세력을 측정하는 수단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평화통일의 토대 닦았다/「6·29」 5주(해외 특별기고)

    ◎비탈리 이그나텐코·이타르타스 통신사장 전 소대통령 대변인/한­소수교로 동북아해빙 서막올려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남은지 30년 되던 해부터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다.뿐만아니라 세계평화수호에도 큰 기여를 하는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냉전이 남긴 비극의 마지막 장인 한반도에서 동서의 운동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치러진 지난 88년의 서울올림픽은 경제면에서는 물론 세계평화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좋은 예가 됐다. 1987년 6월 29일 지금의 노태우대통령이 주도한 『민주개혁에 관한 선언』은 경제발전수준에 걸맞는 민주화를 갈망하던 한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켰다.6·29선언으로 한국은 급속한 속도로 민주화를 이루어나갔다.한국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지난 5년간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자유와 자율의 기풍이 사회 모든 분야에 퍼져나갔고 새로운 민주질서가 확립됐다. 과도기간중 사회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돼 사회의 안정과 질서가 침해됐던 것도 사실이다.몇몇 과격단체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했던 사실은 이곳 모스크바에서도 잘알고 있다.우리는 TV화면을 통해 관공서와 경찰관서까지 대상으로 삼아 벌어지는 폭력적인 행동들을 자주 목격했다. 민주주의는 법질서 준수의 바탕위에서만 얻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있다. 전두환씨가 1988년 자신의 통치기간중 저질렀던 전횡을 시인함으로써 한국에서 박정희식 통치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나는 그 시점이 바로 한국의 민주화에 중요한 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바로 이때 한국은 세계전역에서 전개되던 사회·정치의 진보적인 새 조류를 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앞으로 한국민은 다음의 3가지 과제를 우선적으로 완결시켜야 한다.첫째,노대통령이 시작한 자유민주주의를 모든 생활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둘째,계층간 격차를 점차적으로 해소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일.세번째로는 한반도에서의 냉전해소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남북한간 대결을 끝내고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이 일들은 매우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그 토대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노대통령이 대외정책부문에서 이룬 성과들은 물론 전세계적인 데탕트와 동유럽 및 구소련땅에서 스탈린주의체제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하지만 한국은 강대국들의 갈등이 빚은 자신들의 역사적 비극상황을 이 주변변화의 기회를 이용해 바꾸었다. 소련은 당시 한국이 급속한 속도로 변화를 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에 접근하게 됐다.물론 한국의 경제발전은 이때 소련이 접근하게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88올림픽 성공적 개최… 세계평화에 기여 구소련 공화국들은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기 위해 힘쓰고 있다.소련에서 한국에 대한 접근필요성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주간 「노보예 브례미야(신시대)」를 통해서였다. 당시 「노보예 브례미야」는 사설에서 『1970년대 중국이 일본에 접근했던 것과 같이 한국은 소련의 중요한 경제파트너가 될수있다.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통합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련과 한국의 접근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 됐다』고 썼다. 한국은 이제 자신들이 경제·정치면에서 어떤 나라와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관계를 유지할수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특히 모스크바 당국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한국의 민주화였다.당시 소련언론들은 『한국은 1987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이제 두나라 관계발전에 정서적 장애는 모두 제거됐다. 한국은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적체제로 성공적으로 이행한 경험을 가진 나라다.행정정치면에서 중앙통제체제를 청산하고 다원화 사회를 이루어야 할 소련으로선 유사한 과제를 이루어낸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6공화국의 주요업적으로 「북방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북방정책은 소련­한국관계 발전을 가능케한 한국측 새 정치상황의 주요한 한 요인이다.북방정책의 덕분으로 한국과 소련은 1990년9월 30일 『양국간 우호관계와 전면적인 협조를 기대하면서』외교관계를 수립했다.이 역사적 결정은 9월30일 유엔본부에서 있은 양국외무장관 공식회담에서 결정됐다.1904년 당시 조선과 러시아제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꼭 86년만의 일이었다.당시 필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변인으로서 이 뜻깊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수 있었다. 한국으로서도 소련과의 외교관계수립은 큰 외교적 성공이었다.이는 40년 이상 전쟁상태에 놓여있던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나라의 관계정상화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남아있는 냉전의 한 조각이 녹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동북아지역 안보상황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한 사건이었다.다시말해 한소관계 정상화는 바로 동북아지역에서 대결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5년전 노대통령의 6·29선언은 바로 이 대단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리우환경회의 계기로 본 실태·과제(우리가 살아야할 지구:3)

    ◎갈수록 더워지는 대기/극지얼음 녹아 21세기말 주요항구 “잠수”/공기중 이산화탄소 증가… 태양열 복사 막아/10년간 기온 0.3도씩,해수면 6㎝씩 상승 환경공해와는 거리가 먼 태평양상의 섬국가 사모아가 유엔환경관련회의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지난 4월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개도국(77그룹)환경장관희외에서도 사모아 관계자들은 기후변화협약체결을 강조하고 나서 눈길을 끈바 있다.공장굴뚝서 연료를 태울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량을 줄이자는 기후변화협약을 사실 다른 개도국들엔 별반 관심이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사모아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나라가 통째 바닷물속에 잠길지도 모를 우려속에 사모아 국민들은 살고 있다. 화석연금사용으로 나온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데워가고 있다는데 과학자들이 의견일치를 보았다.수차례의 관측과 실험을 통해 과학자들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량이 산업혁명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증가된 이산화탄소가 태양복사열이 지구에서 우주로 떠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보고서는 지난 1백년동안 지구기온이 0.3∼0.6도 정도 상승했다고 밝히고 있다.과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이른바 이산화탄소 등에 의한 「지구온난화」영향으로 기온이 다음 21세기에는 10년간 0.3도 씩 높아진다.2025년의 기온은 따라서 현재보다 1도 정도,21세기말에는 3도 정도나 높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온의 상승은 지구의 사막화를 불러온다.또한 남극대륙의 얼음을 녹이고 에베레스트나 알프스의 만년설을 녹여낼 것이다.과학자들은 이 추세대로 간다면 바닷물은 매10년마다 6㎝씩이 높아져 21세기말에는 65㎝정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섬나라 사모아는 심각하다.국토의 상당부분을 바다에서 얻은 네덜란드도 심각하고 항구도시 대부분이 다음세기 말쯤에는 폐허로 변하거나 수중도시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는 질소(78%)산소(21%)아르곤(0.93%)이산화탄소(0.03%)등의 기체로 형성돼 있다.이중 이산화탄소,수증기,메탄,이산화질소 등은 지구가 태양열을 받아 다시 우주로 방출하는 열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때문에 대기중의 이들 기체들이 증가하면 우주로 방출되는 열은 감소하고 그만큼 지구는 더워지게 된다. 일부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를 금성과의 대비를 통해 입증하려한다. 금성과 지구는 태양으로 부터의 거리에 큰 차이가 없다.그러나 지구의 평균기온이 약15도인데 비해 금성의 표면온도는 약5백도로 크게 차이가 난다.이처럼 기온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금성의 대기중에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존재해 태양열 반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산업혁명이후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급격히 증가했다.1950년대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15억5천만t이었던데 비해 1985년의 배출량은 50억8천만t으로 35년새 3.3배나 증가했다.이중 고체연료와 액체연료를 태울때 나온 것이 약60%,농경지경작과정에서 14%,열대림을 태우는데서 9%정도가 방출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구는 자체기능에 의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해간다.동물이 숨을 쉴때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광합성작용으로 흡수하고 산소를 내놓는다.과학자들은 지구의 대기권 산소량과 이산화탄소량이 2억년동안 같은 비율을 유지해왔다고 말한다. 그 비율이 산업혁명이후 깨지고 있고 지구온난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모든 화석연료(석유·석탄)를 태울때는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1970년대초만해도 세계 삼림은 약42억㏊.오늘날 그것은 40억㏊로 줄어들었다.열대림은 특히 그 감소가 심해 매년 한반도 크기의 열대림이 사라져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삼림파괴는 지구의 사막화를 해수면 상승이전에 가져오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1984년까지 사막화된 농지는 모두 35억㏊에 달한다고 밝혔다.매년 약6백만㏊의 농경지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2000년까지는 지구의 비옥한 토지중 3분1이 불모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대권후보 경선에 부쳐/강태훈 단국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제14대 총선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민자당의 대권후보경쟁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민자당은 5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하기로 결정하였다.경선에 의한 대권후보 결정은 여당사상 처음 있는 일로써 이는 물리적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한 뒤 대통령후보가 되었거나 현직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에 의하여 후보자가 결정되었던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치행태와 비교해 볼 때 적어도 절차상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발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유경선이 가장 바람직한 후보선출방법이기는 하나 한국적 맥락에서 이것이 가져다 줄 부정적 측면을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경선이 몰고올 부작용으로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못하고 부정부패로 얼룩질 수 있다는 점이다.대선후보자는 6천명 이상의 대의원 투표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후보지망자들이 당선에 필요한 대의원 확보에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흑색선전이 난무하게 될 개연성은높다. 경선과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몇 가지의 처방이 언론매체를 통하여 제시되곤 하였다.첫째,대의원의 선출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둘째,후보자들의 대의원 확보과정에서 초래될지 모르는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하며 셋째,민자당 대의원은 정실에 의하지 않고 도덕성이 투철하고 국가관리능력이 탁월한 인물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이렇게 민자당의 대권후보경쟁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경선과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처방이 제시되는 것은 민자당의 대권후보 선출이 민자당 내부의 행사만이 아니라 앞으로 5년간 국정을 담당할 대통령후보를 결정하는 국가적 행사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국가적 목표가 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신장과 경제재건,그리고 남북통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경륜과 능력,새로운 도전과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할 리더십을 국민들이 염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기한 처방적제안은 당위론적으로 흐르기 쉬우며 현실적으로 실현이 상당히 어렵다.선거로 후보자를 공정하게,또한 부작용 없이 선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일본 자민당의 총재선출과정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일본자민당은 원내 다수당으로서 자민당의 총재는 수상의 지위를 자연적으로 획득하게 된다.따라서 파벌단위로 경쟁하는 자민당의 총재선거는 파벌간의 정권쟁탈전의 양상을 띠게 되어 후보자들간의 중상모략은 물론 금전매수와 각료직 약속을 통한 다수파공작등 가능한 모든 권모술수를 동원함으로써 일본국민들의 지탄을 받곤하였다.특히 총재선출을 둘러싼 1970년대 중반의 대평·복전사이의 40일간의 쟁투는 자민당의 해체위기로까지 발전하였다.이러한 이유로 일본자민당은 선거에 의한 선출을 기본룰로 하면서도 가능한한 선거에 의한 총재선택을 피하고 대화로 후보자를 선정하여 상하원의원총회에서 이를 인준하는 형태로 당수를 선택하는 경향이 농후하다.이리하여 1955년 자민당의 출범이래 가이후(해부)수상의 탄생까지 21회의 총재선출이 있었으나 선거에 의하여 총재가 결정된 것이 11회,파벌영수들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것이 10회에달했다. 한국은 정치문화및 제도적인 이유때문에 일본보다 대권후보 경선과정이 더욱 과열되고 부패해지기 쉽다.문화적으로 한국에는 정치권력이 다른 어느 가치보다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권력중심의 정치문화가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의 만성적인 독재·반독재의 흑백투쟁은 한국에서 타협적인 정치문화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빼았아 가 버렸다.제도적으로도 한국은 임기5년의 강력한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임기2년의 수상을 정점으로하는 내각책임제를 운영하고 있다.일본의 경우는 또한 파벌간의 합의로 정치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수상의 권한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하다.이러한 면에서 우리보다 더 적합한 자유경선환경을 지니고 있는 일본에서 조차도 총재후보의 공선때 분당위기를 맞았던 점을 상기할 때 민자당의 대권후보경선과정에서 혼란과 타락이 초래될 가능성은 높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경선이 초래할지 모르는 부패와 혼란은 국가발전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도 한번쯤은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재벌 경제력 집중 완화가 제1과제”

    ◎한국 자본주의 어떻게 운영할까/개방화 대비,산업경쟁력 강화 시급/집단 이기주의 극복하게 조합주의 해볼만/「21세기 정책연」 세미나 강연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1일 21세기 정책연구원(원장 서상목민자당의원)이 주최한 제1회 정책토론회에서 「한국 자본주의,어떻게 운용해 갈것인가」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는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슨교수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로 버클리대교수와 중국연구소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과학·예술아카데미회원이다. 존슨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한국에 가장 적합한 경제운용의 틀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 문제는 한국경제발전에 가장 적합한 국가구조의 선택,그리고 이에 필요한 정책과제의 개발이라는 두 차원에서 접근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어떠한 국가구조가 현 시점에서 한국에 가장 적합한 국가구조인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유연한 권위주의적 사회조합주의(Soft authoritarian societal corporatism)로 요약된다. 20세기 세계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국가구조는 매우 다양하다.근대정치학은 이를 단순화,두개의 상이한 차원에서 국가구조의 유형화를 시도하고 있다.하나는 국가권력 형성과정의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 행사과정의 차원이다.첫번째 차원에서 한 나라의 국가구조는 권위주의적 혹은 민주주의적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두번째 차원에서는 조합주의 혹은 다원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권위­조합주의 결합 전체주의적 공산국가를 뺀 세계 여러나라들은 이러한 분류에 따를 때 권위주의­조합주의의 결합,민주주의­조합주의의 결합 그리고 민주주의­다원주의의 결합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민주주의­다원주의 결합의 대표적 예는 미국이고,민주주의­조합주의의 전형은 오스트리아·노르웨이·스웨덴·스위스등의 유럽국가에서,끝으로 권위주의­조합주의 결합의 예는 일본·한국·대만등의 동아시아국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한,1987년 이전 한국은 강력한 권위주의­국가조합주의 결합의 한 전형을 보여주던나라이다.잘 알다시피 한국은 제3∼5공화국을 거치면서 국가에 의한 자본동원과 사기업에 대한 국가지원을 효과적으로 결합,성공적인 자본주의적 개발국가를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 급격한 대내외적 변화를 맞고 있다.대내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으며,대외적으로는 탈냉전의 동서화합시대 그리고 자유무역을 위한 시장개방시대가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변화들은 현재 한국민들에게 경제운용의 틀에 대한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발전에 효율적 서구학자들은 흔히 조합주의를 일시적으로 권력분배의 불균형을 감추는 속임수라고 단죄한다.이들에 반해 나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다원주의 사회안에 존재하는 여러 산업연합간의 조직적 로비활동이 보여주는 비생산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나아가 나는 조합주의가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인정된 이익집단들이 국민을 포섭하는 폭을 넓힘으로써 국가생산성 혹은 국민총화를 해치는 속좁은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장점을 지닌 국가구조라는 점이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특히 나는 일본과 한국,대만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경험에 비추어 볼때 권위주의­조합주의 혹은 민주주의­조합주의의 국가구조가 민주주의­다원주의 국가구조보다 경제발전에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하에 나는 한국민들이 현재의 국가구조를 민주주의­다원주의로 변형시키기 위해 급격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오히려 나는 한국의 과거의 강력한 권위주의를 유연한 권위주의로 대체해가고 국가조합주의를 현재 북구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회조합주의로 서서히 대체해 가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구조의 전진적 개혁과 아울러 한국민은 현 한국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몇가지 주요 문제들을 극복할 정책을 서둘러 개발해가야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완화가 한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1970년대 한국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시책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재벌은 이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출만큼 비대해졌다.이는 기업집중의 측면 뿐 아니라 권력집중의 측면에서도 폐해가 적지 않으리라고 판단된다. ○“대국적 현실인식을” 재벌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이에 실패할 경우 한국경제의 활력은 멀잖아 소진되고 말 것이다.지난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자활을 위해 해외로 진출,오늘날 미국내의 심각한 산업투자부족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정부는 재벌들의 경제력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통제,이를 한국영토내 산업투자가 촉진되는데 활용하여 신규인력을 지속적으로 소화해 나가도록 해야한다.또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개방화에 대비,산업노동력이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재벌들이 보다 애국적이 되도록 하는데 정책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한국은 지금보다 한층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구체적으로 현재 EC통합,북미자유무역권 형성 움직임에 자극되어 동북아경제권이 형성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한국은 일본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주도적으로 관련된 협상을 추진할 수 있도록 모든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한국민은 현재 의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남북한 통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남북통일은 이 지역에서 한국이 일본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요건이기 때문이다. ○새 경제운용틀 요구 또한 한국은 이 지역의 힘의 균형을 위해 중국과 소련 극동경제의 발전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한국은 그들의 발전수준에 적합한 산업기술 뿐만 아니라 응용가능한 효율적인 정부조직과 경제정책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다만 이러한 경험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이의 필요성에 대한 보다 대국적인 현실인식이 요구되며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본다.
  • “방위체제 수술” 압력받는 펜타곤/워싱턴 김호준(특파원수첩)

    ◎“쿠데타 실패 이후 소 군사력 급속 강화/미도 군비 삭감·핵­항모감축 서둘러야” 지난 수십년간 단일 조직체로서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던 소련 군사력의 토대변화는 미국에 대해 곧 군사전략의 재검토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미군사전문가들은 엄청난 펜타곤 예산과 이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방위산업축소에 재검토의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1970년대에 미국방장관과 CIA(중앙정보국)국장을 지낸 제임스 슐레진저는 『소련의 쿠데타좌절은 세계의 변화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고 전제,『지난 45년간 미국이 사용해온 대외정책및 군사력 결정방법은 바르샤바조약 해체때보다 더 시급히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수세로 들어간 체니 국방장관은 2백만명 규모인 미국의 현 군사력을 가리켜 『한국전이래 최저수준』이라고 엄살을 떨며 『내년도 국방예산 2천9백10억달러는 GNP비율로 대비할 경우 진주만피습 당시 보다 적은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앞으로 체니장관은 군사비 삭감외에 초강국 핵무기의 대폭 감축여부,비용이 많이드는 전략방위 계획의 포기여부,해군 항모전단의 축소여부,육군과 해병대의 고위장교 감축여부등 주요방위 문제의 재검토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스텔스 전투기,폭격기,헬리콥터등의 신세대 기종을 비롯하여 전투순양함과 공격 잠수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내고있다. 체니장관과 콜린 파월합참의장이 발전시킨 새로운 전쟁 시나리오에 의하면 미국은 걸프전같은 전쟁과 이보다 적은 국지전에 동시 대처하고 소련군사위협 재발에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군사력과 무기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소련에 관한한 이 시나리오는 완전히 빗나갈 판이며 중동 시나리오도 현실성이 박약해졌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이들은 고르바초프축출 쿠데타실패후 소련에서 계속되고 있는 주요변화와 더불어 40년 묵은 동서군비경쟁 개념은 곧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그렇게 될 경우 미국은 자신과 군비경쟁을 하는 초강국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우주연구소장 출신인 로알드 사그디예프 같은 전문가는 『쿠데타 실패후 소련군 와해가 촉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수산업체의 용도 전환을 가로막던 장벽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련 군사력의 궁극적인 형태는 모스크바의 새로운 정치 구조에 의해 좌우되겠지만,미 군사전문가들은 4백50만 소련 병력이 지원병및 직업군인만으로 축소 개편돼 집단지도체제 아래서 순전히 각 공화국 방위 역할만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집단지도체제는 모스크바의 대외군사 개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펜타곤 관리들은 말한다. 주권 공화국들의 집합체로 변신할 소연방은 핵무기 감축 군축협정을 더욱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소련 내에선 군부 고위층의 대량퇴역과 숙청,군수산업 예산삭감,KGB및 국가보안군 해체와 더불어 군사 자원의 민수전환이 곧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미국에선 이같은 변화와 새로운 안보정책을 둘러싼 대토론이 불가피하게 전개될 판이다. 미국은 세계전 전략의 일환으로 편성한 12개 항모전단을 과연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MIT대 명예교수 윌리엄 카우프만은 전 세계에 걸친미국의 국가 이익을 보호하는데 6개 함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척당 건조비가 무려 20억달러에 달하는 시 울프 공격잠수함을 80∼90척이나 건조할 필요가 있는가? 제3차대전 발발시 소련 함대를 북극에 묶어 두는 것이 임무인이 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해 의회 일각에선 이미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중의 하나는 미국의 과잉 군수산업에 대해 펜타곤이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이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 크렘린 정변과 북 동향/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시대흐름 착각한 평양의 흥분/“대남 강경노선 구상은 커다란 오판” 소련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민주화노선을 힘겹게 달리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유폐되고 군을 등에 업은 보수파들은 끝내 전면에 나오고야 말았다.지구인의 눈 귀를 모으고 있는 TV화면에는 모스크바 거리를 달리는 탱크의 모습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하다.특히 옐친의 결연한 반대 성명은 역사의 기로에 선 소련 자체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장엄한 인류사적 대실험이긴 했어도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실험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레닌 혁명 후의 소련에서 한때 성행했던 아진 스타칸주의(한컵주의·목마르면 한컵의 물을 마시듯이 성생활도 그렇게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주의)가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배격,청산되었듯이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꿈도 그들 스스로에 의해 청산되지 않으면 안될 운명이었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개혁파인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야기함이 예사이듯이 소련의 대중들도 개혁의 선을 넘어 혁명적인 전진을 재촉했다.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은 그 대중들이 전진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70년동안 갇혀 왔던 새들은 새장 밖으로 내보내져도 제힘으로 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민주화개혁파의 고민은 그 혼란을 틈타고 대두하는 보수파의 역공에 의해 더욱 가중되어 오다가 이번에 당하고 만 것이다. 보수파란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멘크라투라들이다.당료·군·KGB들로 대표된다.KGB지배하의 국경경비대 20만과 최정예부대인 내무부직속 보안군 30만 및 4백만의 국방군등이 그 세력의 기반이다.미국은 장군 1인에 사병이 3천4백명이지만 소련은 1대7백이다.너무도 많은 별들이 특권의 포기를 거부해 왔다.공산당의 지도적 기능이 부정된 작년의 개헌이래 모든 조직에서 당위원회는 해체되었으나 군에서만은 그것이 온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어왔다.그래서 군의 등장이 예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쿠데타를 질타하고 있다.그러나 이 정변에 회심의미소를 머금고 있는 곳이 평양이다.수년전부터 평양에서는 「고르비놈」「소련 놈들」이란 욕소리가 공공연했다.소련의 개혁을,소련의 탈냉전 정책을 평양은 제국주의에의 투항이라느니 사회주의의 변절이라느니 하면서 매도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그 고르비가 실각하고 소련제국의 권세와 공산당의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평양은 세계정세에 일대 역전이라도 온듯이 고무되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우선 그 징후가 총리 회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27일부터 평양에서 있기로 했던 것인데 판문점에서 하자는 것이다.구실은 콜레라이나 속셈은 회담을 늦추자는 것이다.소련 정세의 귀추를 좀더 보고서 대남 작전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일 것이 뻔하다.본디 북한은 총리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것은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겨냥한 성동격서전술의 일막이며 남한의 사회주의혁명세력들의 범민족대회(하층통일전선)를 성사시킬 것을 겨냥한 상층통일전선의 일막으로 짜여진,그야말로 담담정정전술의 한 회전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층과의 회담은 하층의 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래서 회담(담)은 회담이고 투쟁(정)은 투쟁인 것이다.회담을 한다고 투쟁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다.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오히려 회담을 하는 것이다.모든 것은 투쟁이다.무엇을 위한 투쟁인가.김일성부자지배하의 통일을 쟁취키 위한 혁명투쟁인 것이다.이 금과옥조와 같은 원칙들을 관철하기 위해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총리 회담이지만 그것도 마다할 정도로 나오는 것은 소련의 정변에 대한 부푼 기대 때문인 것이다. 평양의 통일 원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노선전환이 있을 것을 저들은 모스크바에 걸고 있다.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의 길이라고 했던 지난 5월의 김정일의 담화를 뒷받침해 줄 권력의 정책을 평양은 모스크바에 기대하고 있다.그래서 요즈음의 평양의 신문 방송은 흥분하고 있다.마치 소련마저도 평양을 추종하고 있다는 듯이 들떠 있다.그렇다면 총리회담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조소 합작의 보다 근본적인 통일 문제 해결의 방안(남진)이 더 중요시될 것이다.평양은 그것을 거머쥐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허약심리에서 나오는 착각이다.소련의 정변은 성공하지 못한다.한번 자유와 민주에 눈뜬 대중은 반동을 허락하지 못하는 법이다.설사 쿠데타 세력이 일시 권력을 유지한다 해도 그들은 국내문제에 쫓겨 세계를 대상으로 할 여유가 없다.평양의 흥분은 곧 허탈을 불러올 것이다.그러한 비주체적인 기대는 일찍 버리는 것이 낫다.
  • 「하이테크」가 주도하는 「신종전쟁」/워싱턴서 본 걸프전 새 양상

    ◎정밀무기·TV생방등 과학기술발달 실감 지금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종전쟁」은 세계가 얼마나 빨리 바뀌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정치 지도가 바뀌는 바람에 이라크는 물자나 피난처,또는 강력한 정치적 지지를 보내주는 변변한 우방 하나없이 4방이 적에게 둘러 싸인채 고립돼 있다. 유엔 안보리의 12개 결의안을 등에 업은 미국은 서구 주요국과 아랍 강국들을 망라한 군사연합을 이끌고 있다. 물론 미국이 대부분의 군사력을 제공하며 주도권을 행사하지만 사실상 이건 한 국가를 응징하기 위해 세계가 후원하는 전쟁이 돼버렸다. 만일 냉전이 소멸되지 않았다면 소련은 미국과 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며 이라크와 정치 군사적으로 밀접한 유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련이 이라크에 대해 무제한 무기 지원에 나섰다면 현재의 상황은 한국전과 월남전 때처럼 어려워졌거나 1973년 중동전 때처럼 위험했을 것이다. 73년 중동전 때 모스크바는 이집트를 돕기위해 파병하겠다고 위협,미소간핵대결 우려를 고조시켰다. 과거와 구별되는 두번째의 큰 변화는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중공격에서 보여준 첨단과학기술의 이용이다. 군사 연구가들은 이번에 미국이 사용한 스마트폭탄과 크루즈 미사일을 2천3백년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정복에 이용했던 「신무기」인 장창과 이동식 쇠뇌(여러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는 활)에 비유하고 있다. 지금 대이라크전에 동원되고 있는 비핵 하이테크 무기의 대부분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그동안 본격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이라크에 대한 첫 공습 작전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전례가 없는 또 하나의 상황,즉 미국과 연합국 사령부가 5개월 동안 신중하게 공격목표를 연구,전투계획을 사전에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8월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서 시작돼 유엔이 이라크군 철수시한으로 설정한 지난 15일까지 이어진 걸프사태는 군사적 대비시간이 충분했던 「저속형 위기」였다. 마지막으로 지난주에 세계가 걸프전 발발을 지켜본 방법은국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동시성을 보여주고 있다. 월남전은 텔레비전 시대의 첫 전쟁이었다. 이때 위성중계 방송뉴스의 직접성이 미국 여론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대이라크전은 중요한 몇가지 측면에서 처음부터 월남전의 경험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월남전과 달리 걸프전쟁은 수일간의 초전 상황이 발생과 거의 동시에 보도됐다. 월남전 때 일부 방송이 인상적인 생중계를 했지만 이번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시의 전쟁 필름은 보통 사이공에서 도쿄로 옮겨져 편집을 한 뒤 위성을 통해 미국으로 보내 방영됐다. 통신위성의 무한이용과 세계동시연결 방영기술은 이번에 CNN 보도진으로 하여금 공격받는 이라크와 이스라엘,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진중브리핑 등 전쟁관련 사태를 생생하게 중계방송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젠 이스라엘에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을 미국 대통령이나 한국농부가 함께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태발전이 서서히 오래 계속됐다는 사실에도 원인이있긴 하지만 텔레비전의 보도량도 전례없이 엄청난 것이었다. 한 미디어연구소에 의하면 작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지난주 다국적군이 대이라크 공격을 개시했을 때까지 미국의 3대 TV방송인 ABC·CBS·NBC의 저녁 뉴스시간에 방영된 걸프사태 보도는 약 2천6백건에 이른다. 게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3대TV는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전쟁에 관한 보도를 40시간 이상 연속 방송했다. 이같은 중점보도는 미국TV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측 군사브리핑과 공식발표에 보도의 역점이 두어지고 미국적 시각이 지배적인 CNN의 세계적 시청은 새 시대의 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걸프사태를 미국의 렌즈를 통해 보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 “세계의 무기시험장” 중동

    ◎미ㆍ소 등 국경분쟁 틈타 앞다퉈 판매/불ㆍ중국도 가세… “각국 병기의 집산지” 지난 15년동안 세계적인 무기시장이 돼 왔던 페르시아만 지역에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무기 거래로 흥청거리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이래 중동은 탱크를 비롯해 전투기와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최첨단 살상무기들의 흐름에 주요 목적지가 돼 왔다. 그리고 이 지역내 최대 구매자인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로 흘러들어간 이들 무기들이 탈냉전의 반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분쟁으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상대방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미 의회의 정보자료 조사분석에 따르면 1982∼1989년 제3세계에 판매된 3억달러 이상의 무기중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가 거의 3분의 1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총 거래된 무기중 미국과 소련이 60%이상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양대 강국이 동맹국을 불문하고 대외정책의 한 도구로서 무기를 사용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은 순전히 상업적인 이유에서 무기 판매를 해왔으며 무기시장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에 따라 증가돼 왔다. 분석가들은 제3세계국가들이 무기를 강대국들에게 의존해 오던 태도를 점차 바꿔 무기산업을 개발해 왔다고 말한다. 이들 제3세계국가들이 제작하는 무기와 군비들이 양적으로 적고 값싼 전투ㆍ소모품에 불과했던 지난날에는 이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 브라질은 탱크와 전투기의 자체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 무기의 대외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는 대형군함과 대포 및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국ㆍ중국ㆍ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무기의 자체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재래식무기의 확산은 현금이 부족한 개발도상국들에서 수요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그 시장을 전세계로 넓혀가고 있다. 지난 1978∼79년 미국과 소련은 새로운 재래식무기의 기술확산에 대한 통제강화를 위한 협상을 가졌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협상이 결렬되었다. 무기시장이 광범위해진 이제 이와 같은 양국간의 상호노력이 실효를 거두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지난 2일 쿠웨이트를 강제점령한 이라크군들은 소련제 소총으로 무장하고 소련과 중국산 탱크와 대포를 앞세우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머리위를 나는 전투기들은 프랑스나 소련제일 수 있다. 브라질도 다연장 로켓과 공대공 미사일을 제공하고 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와 이집트,남아공에서 도입된 무기들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이라크의 국내 무기산업은 미국의 군사 전략상 가장 큰 고민거리중 하나이다. 후세인은 서방 전문가들을 고용,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고 화학무기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됐으며 심지어는 핵무기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놀란 연구원은 『그것은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콜럼비아 대학교의 스테파니 뉴먼씨는 비록 미국이 이라크에 직접적으로 무기를 공급하지는 않았지만 사담 후세인이 군사적으로 강대해진 것엔 미국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미국이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중 소련과 유럽국가들이 후세인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바그다드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으로 이라크가 군사강대국이 되도록 도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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