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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파리에서 본 한국 30년

    해마다 맞는 신년이건만 올해는 감회가 남다르다.파리에서 한국학을가르친 지 30년째라는 개인적 이유에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지난달 29일 프랑스·독일 합작방송 ‘아르테’는 불국사와 석굴암 불상,종묘 등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 세계문화유산을 심층 보도했다.임진왜란 때의 훼손 실태와 두 차례 복구 등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문화적 가치 평가를 덧붙였다. 이 프로를 보노라니 프랑스에서의 한국 이미지 변화와 그와 관련된개인적인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1972년 파리국립동양어대학에서시작,지금 파리7대학교 한국학과에 몸담기까지 한국 역사,고전·현대문학,한문 등을 가르치고 논문을 지도하는 동안 30년이 지나갔다.프랑스 문물을 최대한 배워서 한국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겠다는 계획으로 접어든 유학길이 뜻하지 않게 한국학 교수로 변신한 여정은 아이러니라기보다는 ‘운명’ 같다.힘든 때도 많았지만 한국을 프랑스의가슴에 심는 데 한몫했다는 점에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몇가지 기억을 통해한국 이미지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부각되어 왔는지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불관계는많이 변화해 왔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가는,프랑스에 비친 한국의 위상 변화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따른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내가 유학온 70년대 초만 해도 체류자는 대부분 유학생 및 외교관이었다.당시 프랑스에서 한국 이미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개발도상국 혹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정도였다.1974년에대한항공이 항로를 열고 외환은행을 비롯한 여러 회사의 지점이 들어오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토대가 만들어졌다.그러나 ‘독재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좋은 일로 입에 오르내리지는 못했다.이런 시각은 80년 광주민주화 항쟁때 정점에 달했고 때론 낯부끄러운 질문도많이 받았다. 정치적 오명을 만회하는 유일한 수단이 문화였다.이 역시 간헐적이고 개별적인 공연에 그쳐 큰 반응을 얻기엔 미약했다.그러다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행사와 88올림픽을 계기로 상황이 반전되었고 90년대 들어서눈에 띄게 나아졌다. 해마다 해외문학을 알리는 행사인 ‘벨 에트랑제’가 25주년을 맞은지난 1995년 프랑스는 한국문학에 애정을 쏟았다.시인 고은 황동규를 비롯,소설가 박완서 최인훈 이문열 조세희 윤흥길 등 한국 문인 13명을 초대했다.이 중에는 내가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절판이 될 정도로 호평받은 ‘바람의 넋’의 저자 오정희가 포함되어 개인적으로도뜻깊은 행사이기도 했다. 영화 쪽으로 기억을 돌리면 더 풍요롭다.1993년 퐁피두센터에서 ‘한국영화 70년제’가 열렸다.개관 프로그램의 하나인 ‘서편제’가반응이 좋아 파리시내 개봉관에서 재상영되었다.특히 판소리는 관심의 핵이었다.잔잔하게 퍼지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1999년 ‘파리가을축제’때 ‘한국영화 파노라마’로 이어졌다.‘문화국가’의 수도에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널리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지난해 주불한국문화원 개원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파리 시네마테크’에서열린 ‘춘향뎐’시사회는 장사진을 이뤘고,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이함께 입장하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한국 관련 방송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토론프로도 자주 열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3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1997년 경제위기때 유네스코 대표부를 축소해 한국 문화를 알릴 길이 좁아진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발전이다.이는 정치적 민주화에 힘입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외교의 구실도 무시못할 것이다. 그 속엔 한국의 외교관 및 문화단체 그리고 숨어서 일한 개인들의 노고가 깔려 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이곳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이 ‘문화외교관’자세로 ‘한국 열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도 세계화 혹은 미국화라는 경제 중심의 근시안적 정책개발에서 벗어나 문화를 통한 국력신장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이병주 파리7대학 교수·한국학
  • [외언내언] ‘따로국밥’ 2000년

    일반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중에 ‘따로국밥’이란 것이 있다.원래이 음식은 옛날 장마비가 뻔질나게 내리던 음력 6∼7월 개장국에 백반을 말아 먹거나 보리밥에 파국을 먹으며 각종 질병으로부터 건강을지켜온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제시대부터서민들이 즐겨 먹은 대구지방의 향토음식이다. 해방후 거리에서 국에 밥을 말아 팔던 국밥이 ‘국일관’이라는 건물 안으로 옮기면서 음식수준이 향상되고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밥과국을 따로 내놓은 데서 ‘따로국밥’이라 불리게 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 영남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진출하면서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따로국밥’은 한우 사골뼈 곤물에 우거지와 무·파 등을 넣고 조미료 없이 얼큰하게 끓여낸 국물맛이 일품이다. 밥과 국을 따로 내놓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처럼 ‘따로국밥’은 때로는 서로 전혀 다른 정서를 표현하는 비유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한다.29일 주부전용 포털사이트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이전국 가정주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를 풍자하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따로국밥’이 뽑혔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년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따로국밥’을 방불케하는 일들로 봇물을 이루었다.정치는 여당 따로 야당 따로,경제는 경영자 따로 노동자 따로,또 의약분업사태와 같이 각종 이익단체들이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대립하고 맞섰던 한 해였다.국민의 정서와는 완전히 따로 노는 정말 ‘따로국밥’같은 해였던 것이다. 〈옛날 그때는/따로국밥을 볼 수 없었다/그땐 그랬다/방 하나,부엌하나,뒷간 하나/또 하나 이불/모두 다 하나/지금은 따로국밥 세상/먹기 위해 잠시 몰려들어/잠시후 자신들의 자리로 사라진다/방,두 개세 개/텔레비전도 라디오도/하나는 하나도 없다/지금 여기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따로국밥이 판치는 세상이다.〉(이복순 시 ‘따로국밥’ 전문). 점점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새해에는 동서남북,여야,노사(勞使),국민 모두가 하나가 돼 맛을 내는 ‘섞어찌개’가 ‘올해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뽑혔으면 좋겠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백문일의 국제경제 읽기/ 부시 감세정책은 선거용?

    미국경기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연착륙’,‘경착륙’하면서 시끄럽다.비행기가 부드럽게 내리면 승객과 항공기 모두가 안전하지만급강하하면 추락할 수 있다.경제도 갑작스레 둔화하면 치유불능의 상황에 빠진다는 얘기다.그래서 모두 ‘경착륙’을 우려한다. 경기는 왜 후퇴하는 것일까.1970년대 미국경제는 사상 초유의 혼란에 빠졌다.호황을 구가하던 경제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을 보였다.2∼3%를 유지하던 평균성장률은 1%대로 주저앉았다.73년의 석유파동 때문이거니 하던 경제학자들도 기존의 분석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MIT 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세가지 원인이 대두됐다.첫째,기술의 고갈이다.생산력의 원동력으로서 ‘새로운 기술’이 생산현장에 접목되지 못했다.둘째,교육의 질적 저하다.전후 ‘베이비 붐’으로 노동력은 증가했으나 풍요속에서만 성장,미국경제를 재도약시킬 힘은 부족했다.셋째,지나친 과세와 규제다.세금을 많이 물려 기업과 근로자의 의욕을 저하시켰다. 지금은 어떤가.컴퓨터와 유전자 등 각부문에서의 기술개발은 비약적이다.빈곤층 확대와 교육수준 정체라는 문제가 남아있으나 노동력 수준은 크게 개선됐다.그러나 높은 세금과 규제는 여전하다.그동안은호황 때문에 감세(減稅)주장이 먹혀들지 않았으나 최근 경기후퇴의조짐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10년간 1조 3,000억달러의 세금을 줄이겠다고 다짐했다.당장은 세수가 줄지만 세금을 줄이면 소득과 소비가 늘고 이에 따라 기업투자도 되살아나 경기가 회복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와 맥을 같이 한다. 과연 그럴까.이론적으론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세금과 기업활동의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은 하버드대교수 당시 기업세금을 전액 삭감해도 생산성을 1% 늘리는 데 10년이걸린다고 밝혔다.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은 재임 당시,감세정책을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서인도제도의 주술적 종교 ‘부두(voodoo)’에 비유할 정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전문가들은 기술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무게를 싣는다.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아침을 거르고 점심과 저녁을 햄버거로 대신하며 경영과 시간관리에 철저했다. 20세기 최고의 경영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시스코시스템의 존 챔버스 사장은 ‘1,2등을 할 수 있는 시장에만 투자한다’는 신념으로불황에도 성공신화를 이뤘다.감세정책은 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발상이 아니였을까. 백일문 국제팀기자 mip@
  • 애니콜프로농구/ LG, 14승 가운데 9승이 역전승

    ‘LG는 역전의 명수’-.1970년대 고교야구를 주름잡은 군산상고는역전승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패색이 짙은 9회말 투아웃 이후 기적같은 승리를 엮어내 팬들을 열광시키며 고교야구 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00∼01프로농구에서 LG 세이커스가 연일 군산상고를 연상시키는 뒤집기 승을 연출해 홈팬들은 물론 농구 매니아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14일 현재 단독선두(14승3패)를 질주하고 있는 LG는 14승 가운데 9승을 역전승으로 장식했다.지난달 12일 골드뱅크와의 여수 원정경기에서는 17점차까지 뒤진 경기를 뒤집었고 13일 2위 삼성과의 한판승부에서도 한때 16점차까지 밀린 경기를 연장전으로 몰고가 결국 승리를 거머 쥐었다. LG의 이러한 뒷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전문가들은 즐비한 3점포와 스피드,자신감 등 세가지를 꼽는다. 조성원-조우현-에릭 이버츠로 짜여진 LG의 3각포는 10개팀 가운데가장 화력이 뛰어나다.세선수가 동시에 터지면 물론 걷잡을 수 없지만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보듯 주포 조성원이 막히면 조우현과 이버츠가 몫을 대신해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다.이날 조성원은단 1개의 3점슛만을 성공시키며 18득점에 그쳤지만 이버츠가 3점슛4개 등으로 36점을 몰아 넣었고 1·2쿼터에서 무득점에 그친 조우현도 3·4쿼터에서만 3점슛 6개를 포함 26점을 쏟아 부었다. 식스맨으로 나서는 이정래와 구병두의 슛 적중률이 만만치 않은데다주전 대부분의 발이 빠르다는 것도 15점 안팎의 점수차를 2∼3분만에 뒤집는데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 스스로가 10여점 이상 뒤져도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때문에 LG와 겨루는 팀들은 “초반부터 줄곧 10점차 이상으로 앞서나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정도이며 이같은 불안감이 막판 LG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역전의 명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LG가 프로농구 흥행의 새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오병남기자 obnbkt@
  • [외언내언] 반달가슴곰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발견됐다고 한다.참으로 반가운 일이다.반달가슴곰은 1983년 설악산에서 사냥꾼의 총에 맞아 거의 숨이져 가는 상태로 발견된 이후 처음이다.올해 봄에도 충북 영동의 한야산에서 반달가슴곰이 발견됐다는 보도로 소란을 떨었으나 우리에서도망친 사육곰으로 판명나 실망한 적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야생 반달가슴곰은 진주MBC가 지리산에서 곰을 봤다는 제보를 받고 1998년부터 무인 디지털카메라를 설치,촬영에 성공한것이다. 바위샘에 물을 먹으러 내려왔다가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반달가슴곰은 몸무게 180㎏ 정도에 10∼15년생으로 추정되는 다 자란 곰으로 3차례에 걸쳐 촬영되었다고 한다.국립환경연구원측은 촬영내용을 확인한 결과 반달가슴곰이 확실하다고 밝혔다.이로써 그동안 설악산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던 야생 반달곰의 지리산 서식이 확인된 셈이다. 반달가슴곰은 몸통의 색깔이 검고 가슴에는 V자 모양의 흰색 털이있는 것이 특징이다.몸 길이는 대략 150∼180㎝이며 잡식성으로 겨울에는 동면한다.도토리나 활엽수의 어린 잎,봄철 새로 돋아나는 연한풀잎이나 버찌,산딸기 등을 먹으며 벌 개미 가재 등 작은 동물도 잡아 먹는다.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곰이 포획된 수는 1915년 261마리,1916년 168마리에 달했고 1940년대에는 100여 마리로 감소했다.반달곰은 해방 및 6·25후에도 상당수 서식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에서 곰사냥을 했고 1960년대에는 지리산에서만 40여 마리가 잡히기도하였다.또 1974년 12월 강원도 홍천에서 반달곰 새끼 두 마리,1978년에는 경북 문경시 조령에서 새끼 한 마리,지리산에서 새끼 두 마리가촬영된 적이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은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되었다.과거에는 지리산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전국의 고산지대에서많이 서식했으나 곰 쓸개를 노리는 사냥꾼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포획되고 서식지도 파괴된 결과 지금은 지리산과 강원도 일대에 6∼10 마리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북한에서는 1960년대 묘향산에서버찌를 따먹기 위해 벚나무 가지를 꺾어 놓은 것을 흔히 볼수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실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 세계 130여개국 동물보호단체에서 미국 연방정부에 한국의 곰쓸개거래를 막아달라고 탄원서를 낼 정도로 한국인의 웅담복용은 악명을떨친 바 있다.이번 지리산 반달가슴곰 서식확인을 계기로 당국은 밀렵꾼들로부터 반달가슴곰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철저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대한시론] 바람직한 통일에의 길

    1970년대까지 통일론은 상대방을 흡수 대상으로 하는 흡수통일 방안이 대세였다.‘인민해방전쟁’과 ‘북진통일’이 이를 대변한다.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통일론은 통일의 당위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흡수통일 방안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하였으나 통일시기에 관해서는 큰 견해차를 보인다. 신중론은 남북의 체제와 경제적 차이가 해소될 때까지 통일 시기를늦추자는 것이고,적극론은 우선 통일한 다음에 체제와 경제적 차이를해소하자는 것이다.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의 존재를 상호 인정한 터전 위에 통일기구를 두어 통일의 형식을 취하자는 견해는 절충론이라할 수 있다.신중론은 통일 자체를 부정하는 통일부정론이라 할 수 있고,적극론은 현실을 무시한 망상적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의 사회는 과거의 산업사회를 뛰어넘은 정보화사회다.정보화사회에서 부의 기초는 재화가 아니라 정보이므로 인구수와 영토 크기는 국가의 부를 창조하는 데 절대적 요소가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통일 욕구는 산업사회이던 20세기 후반보다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국가는 부의 크기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웃 중국의 역사에서 송과 명이 몽고와 청에 멸망당한 것은 가난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 국가의 발전과 존속은 자족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대외적·지정학적 요소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그런데 현재의 남북 분단은 남에게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지 않는 도서화(島嶼化)를 강요하고,북에게는 대륙의 꼬리에 그치게 하여 해양과의 연결을 차단한다.이러한 상태의 지속이 남북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초래할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으로 하여금 대륙과 연결되게 하고 북으로 하여금 해양에진출하게 하여 상호 발전의 길을 가게 하는 길은 통일 이외에 다른방법이 없을 것이다.다만 통일 방법이 상대방을 흡수하는 것일 경우에는 제2의 남북 무력투쟁이 예고되므로 남북의 체제를 각각 유지하는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체제를 달리하는 여러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이웃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하지만그 체제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수교와 우호관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또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군주국가이면서 이슬람사회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와의 교역과 친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그렇다면 피를 같이나눈 남과 북 사이에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조하는 형태의 통일을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중론과 적극론을 지양하고 절충론에 입각하여하루 빨리 남북을 통일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강대한 중국의 바로 옆에 존재하면서도 5,000년 동안 민족과 국가의 동질성을 유지한 바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반도에서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삼국정립 시대에 신라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제대로 되지 아니하였다면 과연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인 당나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 우리는 현재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장차 후손들에게 국가의 번영과 존립을 남겨줄 숭고한 의무를 지고 있다.현재 우리에게 통일은지상 과제이다. 강현중 국민대 교수·변호사
  • [사설] 부패 뿌리 뽑는 司正을

    정부가 ‘비리·부패와 전면 전쟁’에 발벗고 나섰다.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는 20일 김정길(金正吉)법무장관 등으로부터 고위 및 중·하위 공직자 기강확립 계획을 보고받은 데 이어 21일엔 사정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마련,각급 관련기관에 시달할 예정이다.이번 부패 척결은 공직자 뿐만 아니라 공기업·정부투자기관 임직원과 사회지도층 인사까지 대상으로 하여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금융감독원 등 정부의 사정 능력을 총동원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이번 사정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임기 중 사실상 ‘마지막 결전’이라는 비장한 결의를 갖고 있고 관련기관도 총체적인 국정개혁 차원에서 임하고 있어 일단 기대를 걸게 한다.그러나 국민들 가운데는 최근 잇단 권력기관,감독기관 소속 공직자의 범법행위로 “누가 누구를 사정한단 말인가”하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고 이번사정이 집권여당의 정치적 난국 탈출을 위한 충격요법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각도 없지 않다.따라서 이번 비리·부패 척결은 ‘입’으로만하는 사정이 아니라, 부패의 뿌리를 뽑는 사정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고위직,중·하위직 공직자 뿐만 아니라 엄청난 경영부실로 해당기업은 물론 나라 경제까지 망치고 있는 부실 기업주,부실 경영인들에 대한 추상같은 비리추궁도 바라고 있다.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어도 기업을 회생시킬 수 없도록 만든 부실 경영인들의 개인 비리는 과연 없었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인의 솔직한심정인 것이다.미국도 지난 1970년대 말 경제·금융위기를 맞아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부실 금융인과 부실 경영인 2,000여명을 감옥에보냈다고 한다.그래서 이번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상을 광범위하게 잡아 ‘전방위(全方位)사정’이 돼야 할 것이다.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항상 사정의 사각(死角)지대로 남게 되는 정치인의 비리 문제다. 요즘처럼 여야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우 사정기관의 접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결코 사정의 성역(聖域)으로 남을 수 없음은 당연하며 따라서 분명한비리·부패 증거가 있다면 해당 정치인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부패 척결의 사정 효과가 지속되고 같은 비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반부패기본법,공직자 윤리법,돈세탁방지법 등 일련의 입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 [네티즌 이슈] 朴正熙 전대통령 평가

    *”혹평은 지나친 편견이다”. 역사의 전개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인과적이지 못하다는 예를 본다.만주군관학교 출신·친일파라는 식으로 비판하며 박정희 흉상에 일장기를 씌우는 것은 국수주의 짓이고 철없는 행동에 불과하다.국수주의적인 관점과 민족주의적 관점의 싸움에서 어느 한쪽이 승리한다고 해서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상반된 관념이 싸우면 어느 한쪽이 이기기보다 엉뚱한 제3자가 득을 보기도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박정희 출현은 단연 혁명에 가깝고,항일과 친일의이전투구 판을 종식시킬 수 없던 역량부재의 시대에 등장한 한국현대사의 ‘개척자’라는 점이다.그런데 먹고 살만해져서 인지 물질과 정신이라는 황당무계한 논리까지 들이밀면서 그를 혹평한다.일본제국주의니 미국제국주의니 하는 류는 식민주의사관의 연장에서 한치도벗어나지 못한 딸깍발이들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소리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히는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한국전쟁을 일으킨 북쪽 책임자의 거대한 동상들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그가 항일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런가?역사적으로 기억하고 추억할만한 인물이라면 기념관이 무에 대수인가.국민 상당수 심지어 대학생들까지 손에 꼽는 지도자로 박정희가빠지지 않는다.반대 여론은 그야말로 소수의 운동권적 시각이라고 본다. 혁명은 그 자체로 한 시대를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인 것이다.분단의 상처와 그로 인해 만연한 이데올로기 싸움도 박정희가 종지부를찍었다.그뿐인가.모두가 가난에 허덕일 때,뭔가 총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했던 시대에 그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경제개발이다 뭐다 하는 건 박정희시대가 이룬 이념에 비춘다면 각론에 불과한 것이다.특히 유감인 것은 특정정파나 지역색마저 가미된 듯한 점이다.시대를 풍미한 인물이 일단의 시류에 휩쓸려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보이지 않는 국가의 손실이다.이런 일들은 이제 멈춰야 할 것이다. 박종환 GTVnet이사. * “청산위한 행동 정당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훌륭한 지도자였는가?그는 권력유지를 위해 1970년대에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260여명,긴급조치9호위반으로만580명을 구속했다.‘인혁당 재건 주동자’라는 덫을 씌워 사형선고받은 양심수들을 다음날 바로 사형시켜 ‘(국제)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오명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테러·납치도 서슴지 않았다.김대중대통령도 당시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중앙정보부로 대변되는 고문·공작 정치는 바로 그의 유산이다. 경제성장만큼은 이뤘지 않느냐며 칭송하는 사람이 있다.경제성장은가난한 노동자·빈민·농민의 뼈빠지는 노력이 이뤄낸 것이다.그럼에도 박정희는 성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주지 않고 소수 자본가에게 나눠주었다.당시 100대 기업에는 세금으로 세운 공기업이 많았는데 이것이 몇사람에게 헐값으로 넘어가 오늘날 재벌이 성장한 것이다. 결국 박정희정권 말기 빈부격차는 사상최대에 이르렀다.이에 따라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된 노동자의 생존권 저항은 점점 커져 79년저 유명한 YH사건으로 이어지며 박정희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경제성장에 성과가 있다 해도 권력유지를 위한 인권유린이 용서받을 수는없다. 70∼80년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도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처벌을 요구받지 않은가. 우리는 단 한번 박정희의 인권유린을 평가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정부는 박정희기념관을 지원하겠다고 한다.세금으로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기념관'을 지원하겠다니 당연히 항의해야 하는 것이다.이번 철거는 지역감정을 무마하려고 독재자 미화에 앞장서는 현정부를 규탄하는 성격도 매우 크다.더구나 흉상은 5·16쿠데타,즉 불법적 역사를찬양하는 기념물이다.이런 기념물을 철거하지 않는 것은 ‘쿠데타를하더라도 그 뒤 잘하면 그만'이라는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흉상철거를 계기로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 오늘날겪는 고통을 극복하는 데 교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종철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 [외언내언] 시내전화의 운명

    1970년대 중반,전화를 집에 처음 놓았을 때의 감격을 생각하면 요즘집 전화기를 홀대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가끔 든다. 이동전화를많이 쓰는 데다가 지난달부터는 인터넷 연결마저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의 회선을 통해서 하게 되니,이제 집 전화기는 낮에 아무도 없을때 전화 받아주는 자동응답기로밖에 별로 쓰이지 않게 됐다. 당연히 한국통신의 ‘위풍당당 행진곡’도 끝나가고 있다.유선전화사업은 오랜 세월 체신부를 거쳐 한국통신이 독점해 왔으나 그 독점도 이제는 시내전화 정도에서만 유지되고 있을 뿐인데,한통이 10일공청회에 내놓은 ‘유선통신 요금구조 조정방안’을 보면 시내전화독점의 영화마저도 물러가고 이동전화와 겨뤄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르기만 하던 시내전화 통화료가 1982년 이래 처음으로 내린다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도시지역 기준 45원인 통화료는 36원 또는 38원으로 낮추고,컴퓨터통신과 인터넷 사용을 위한 014XY 요금도 11% 내리겠다고 한다.소비자 처지에서야 요금이 내리면 내릴수록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기본요금은 2,500원을 4,500원으로(도시지역 기준) 올린다는것이다. 기본료가 너무 싸고 통화료가 너무 비싸게 되어 있는 지금의불균형한 요금체계를 균형 있게 바꾸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요금체계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말은 맞지만 이것이야말로자업자득 아닌가.한국통신은 무경쟁 독점시대에 손쉬운 방편으로 통화료 인상만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기본료 인상은 그 취지를 가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반발을 받을 수밖에없을 것이다. 한국통신은 각종 유선 선로의 소유자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통신회사다.또 초고속망 구축 경비 80%를 부담해야 하는 기관이다. 이런 막중한 임무에 비하면 국민의 신뢰는 그리 높지 못한 듯하다. 한 예를 들면 설비비형 가입자를 가입비형 가입자로 전환하도록 열성적으로 권유하면서 그럴 경우 기본료가 갑절로 오른다는 설명을 빼놓아 원성이 높다. 시내전화의 음성통신 이용이 계속 줄어든다지만 데이터 통신 이용은날로 늘고 있다. 그렇다면 014XY 요금을 11%만 내릴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로 확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이 요금에 마음 졸이며 접속하고있는 사용자들을 지금 잡지 않으면, 이 글 쓰고 있는 필자처럼 다른서비스를 찾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값싸고 확실한 통신 수단으로는 시내전화만한 것이 없다.이런 장점을 살려 부단히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앞날의 운명이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박강문 논설위원 pensanto@
  • 세계적 행위예술 ‘21세기 몸짓’

    세계적인 행위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행위예술축제가 서울 인사동일대에서 펼쳐진다. 한국미술협회 주최로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제1회 서울국제행위예술제.한국 행위예술사상 최대의 퍼포먼스가 될이 행사에는 폴란드,스웨덴,프랑스,독일,호주,인도네시아,중국,일본,한국 등 9개국 90여명의 행위예술가들이 참여한다.주제는 ‘이동(移動)’.인터넷이 지배하는 컴퓨터사회의 문화예술 담론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형태로 소통되는지를 퍼포먼스를 통해 살펴본다는 게 기획의도다. 행사는 ‘퍼포먼스’‘스트리트 퍼포먼스’‘영상’등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다.퍼포먼스는 인사동 놀이마당과 밀레니엄 플라자 등을중심으로 이뤄지며,스트리트 퍼포먼스는 인사동 일대 거리에서 산발적으로 펼쳐진다.야간에 진행될 영상 섹션은 경인미술관 야외공연장등에서 볼 수 있다. 개막식은 17일 오후 4시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개막식이 끝나면 공평아트센터 앞에서 30여대의 오토바이가 일제히 굉음을 내며 이동하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로드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행사 자체를‘사건화’해 관심을 끌어모으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행사에는 일급 행위예술가들이 꽤 많이 참여했다. 인터넷으로원격조종되는 ‘로봇팔’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호주의 스텔락과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대가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올랑,얼굴에 붙인 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브레드 맨(빵 인간)’ 퍼포먼스로유명한 일본의 다스미 오리모토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한국작가로는 이건용,안치인,김석환,이은정 등이 나온다.김석환은 소독연기를뿜어내는 관을 메고 거리를 누비는 기괴한 퍼포먼스를 통해 부정부패일소를 외치며, 이건용은 현대문명의 속도지상주의를 꼬집는 ‘달팽이걸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이은정은 여성을 상징하는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한 ‘드림패션’이란 도발적인 거리 퍼포먼스를 벌인다. 예술제 운영위원장 겸 예술총감독을 맡은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폴란드의 ‘상상의 성’이나 미국의 ‘클리블랜드 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벌’등 외국의 유서깊은 국제행위예술제에 비해 때늦은 감은 있지만 미술계의 큰 흐름에 동참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며 “영국 에딘버러 축제처럼 견본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예술제를 비엔날레형식으로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02)739-1425김종면기자 jmkim@. *퍼포먼스란…관중앞에서 작가가 직접 실연. 퍼포먼스는 실제 관중 앞에서 작가가 실연을 통해 예술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다양한 행위양식을 포괄하는 말.그것은 1970년대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 놓인다.거슬러 올라가면 다다이즘,미래파,러시아 아방그르드의 행위에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반예술,예술의 기성 관념에 대한 도전과 파괴,전위적인 제스처,반대중적 데먼스트레이션, 정치적 강령 등이 수많은 행위예술가들에 의해 실천돼 왔다. 예술계 거장들 중에는 퍼포먼스 작가 출신이 적지 않다.마르셀 뒤샹,백남준,존 케이지,요셉 보이스,볼프 포스텔,이브 클랭,오노 요코,잭슨 폴록,알란 캐프로,헤르만 니취,비토 아콘티,브루스 나우만,레베커혼, 로버트 라우젠버그,빌 비올라 등 많은 유명 작가들이 지위를 굳히기에 앞서 퍼포먼스로 명성을 쌓았다.한국에서는 60년대 후반 정찬승 정강자 김구림 강국진 등이 해프닝을 시도했다.70년대에는 이건용성능경 장석원 김용민 등이 이벤트를 벌였으며,80년대 이후에는 안치인 이불 홍오봉 이상진 등이 다양한 형식의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다. 관객의 참여와 매체의 다양한 결합,테크놀로지의 활용,즉흥성과 우연성 등 퍼포먼스만이 가진 장점은 예술을 늘 새로운 형태로 바꿔놓고 있다.
  • 북·일 수교협상 안팎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 제11차 본회담은 두나라의 기대수준에는 못미쳤지만,관계정상화를 위한 ‘기본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북·일 양측이 관계개선을 위한 최대의 이슈인일본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과거 청산’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일정한 접점을 찾은 것이다. 일본측은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 완강하게 주장해온 서로 주고받을것이 있으므로 정산해 상쇄하는 이른바 ‘청구권 카드’를 철회하고1965년 한국과의 관계정상화 때와 같은 경제협력 방식을 제시하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북한측은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으나,이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같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나라 사이에 최대의 걸림돌이 어느정도 제거된 마당에 관계개선의큰 진전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북한측이 유리해진 한반도 주변정세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측은 4월 평양과 8월 도쿄에서 열린 9·10차 회담과는 달리 양국의입장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것이다. 침체된 국내 경제를 회복시켜 체제안정을 바라는 북한측은 이전까지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 ‘운신의 폭’이 비교적 좁았다.반면 일본측은 “빠르면 좋지만 뒤처지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어서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들어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속하게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며 처지가 서로 뒤바뀌었다.북한측은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으로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데다,영국·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잇따른 대북(對北)수교 발표로 대일 수교협상에서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이에 비해 1970년대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때‘닉슨 쇼크’를 경험한 일본측은 대북수교에서만은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조급한’ 입장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일본측은 대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쌀 50만t을 지원하는한편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가 “납북된일본인은 제3국에서 발견됐다는 식으로 하자”고 대북 타협안을 언급했으며 ▲대북 경제협력에 1조엔 지원설을 공공연히 흘리는 등 총공세를 펴왔다. khkim@
  •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 2인의 사연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신청에 8,359건이 접수됐다.한화갑·김영진 의원,박준영 대통령공보수석등 지금은 양지에 선 신청자들도 있지만 말없이 생업에 종사하거나 죽은 이들의 명예회복을 기다리며 조용히 신청대열에 선 이들도 적지않다.‘윤석양 이병’등의 근황을 취재했다. *심재면씨의 사연. “죽기전에 아들 놈의 뼈라도 찾았으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을 신청한 심재면씨(77·대구시 수성구 수성3가)는 요즘 24년전 실종된 둘째 아들 생각뿐이다. 서슬 퍼렇던 1970년대 유신말기.경북대 의대에 다니던 심씨의 둘째아들 오석씨(당시 24세)는 유신과 교련반대운동을 주도하다,경찰로보이는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 영영 소식이 끊겼다. “아들 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76년 11월14일이었습니다.친구로부터 ‘피해야 되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당시 내가 사 준 새가죽점퍼를 7,000원에 전당포에 잡혀 부산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경남 삼랑진으로 떠났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오석씨는 잠시 머물기로 했던 삼랑진에서 친구에게보낸 편지 때문에 정보형사에게 붙잡혀 다시 대구로 올라오게 됐다고 한다. 당시 친구를 바래주러 동대구역에 나갔던 여동생이 우연히 건장한남자 2명과 함께 차를 타고 사라지는 오석씨를 목격했던 것. 그동안 공무원인 큰아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근근이 살았던 그는이 일로 큰아들이 신분상 화를 입을까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 속에한만 쌓였다고 한다. “아들 놈이 민주화 운동가니 뭐니 그런 것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좋으니 왜 죽었고 또 어디에 묻혀 있는지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 윤석양씨의 사연. 90년 보안사가 3김(金) 등 정치인은 물론 김수환(金壽煥)추기경 등민간인 1,300여명에 대한 사찰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한 뒤 군무이탈죄로 2년을 복역한 윤석양(尹錫洋·34·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씨는 마감날인 지난 20일 부인 김미화(金美花·34)씨를 통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감날에야 신청서를 제출한 것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윤씨는 “독재에 항거하는 국민의 저항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고자 신청서를제출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농민·노동운동가와 수배자 등이 신청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94년 3월 출감한 이후 대학(외국어대 러시아어과)을 마치고 줄곧 “미학(美學)을 연구해 왔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인터넷 대학 ‘메트로폴리스’의 컨텐츠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윤씨는 “독재에 항거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사회혁명을 이끄는 디지털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밝혔다.또 자신의 민주화운동이 인정받으면 “추후 필요한 보상도 떳떳이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오늘 단기 4333년 개천절 되짚어 본 단군

    ‘단군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신화의 우상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체인가’최근 언론사 사장단과 문화계 인사 등 남측 인사들의 잇따른 북한 단군릉 방문을 계기로 강단 학자와 재야 사학자들의 논쟁이 다시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또 단군학회는 2일 단기4333년 개천절을 앞두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상고사 관련 교과서 개정을 위한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어 학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가열되는 단군논쟁은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군이 신화적 존재든 역사적 사실이든 그 실체를 규명해야 하며 그것이 민족구심을 위한 사상정립의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요체다. 우선 실체 규명의 차원에서 일고있는 단군실재론 재조명론은 주류학계의 입장을 강하게 비판한다.현행 초·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는 주류 학계의 고조선 건국과 단군조선의 기원,강역에 대한 기술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이들은 ▲초·중학교 교과서가단군의 건국과 관련 “곰이 웅녀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화된 내용만을 싣고 있고 고교 교과서에선 ▲고조선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규정하며 ▲한반도의 청동기를 기원전 10세기로 보면서 단군 건국은 기원전 24세기(2333년)로 적고 있음은 모순이라고 말한다.기원전 2500년경의 역사를 입증하는 고조선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이같은 기술이 나오고있는 것은 주류 학계가 일제의 황국사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재야학자들 사이에선 단군조선의 세력범위에 대해서도 만주·한반도 일대에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있다. 이같은 논의는 최근 북한의 접근방식과 맞물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학계는 단군이 민족의 시조임을 부정했으나 단군릉에서 5,011년 전의 단군유골이 출토됐다며 93년 단군릉발굴보고를 내고,94년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재건,공개했다.이후 관련유적과 기념물을 정비하면서 매년 전 학계를 동원해 단군과 상고사 학술회의를 개최해오고있다. 남측 학계는 이에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시각이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남북간 관련정보를 공유하고 양측 주장을 검증할 공동연구의 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않게 제기되고있다. 또다른 논의는 단군의 역사적 실체를 재해석,민족통일과 세계의 미래에 기여할 보편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단군은 학파와 종교를 초월해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정체의식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같은 단군의 실체규명에 대한 논의는 더욱번져나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논의가 ▲학문으로의 기본요건에 충실해야하고 ▲단군의 모습을 시대과제에 맞게 재해석,민족성원들을 실천의장으로까지 이끌어내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즉 민족에 대한 애정은 덕목이 될 수있지만 그 애정이 과학적 엄격성을 약화시키는 명분이 돼선 안된다는것이다. 한말·일제기의 단군은 저항민족주의의 요구에 부응했지만지금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현재 단군에 대한 인식은 혼란 그 자체다.강단 학자들 간 뿐만 아니라 ‘강단학계’와 ‘재야학계’,그리고 국민들의 편차가 너무 크다. 실제로 최근 월간 ‘뉴휴먼丹’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54%가 단군을 역사속의 실존인물,34%가 신화속의 인물이라고 답했다.종교별로도 개신교신자는 32%만이 실존인물이라고 한 반면 비개신교 신자는 50∼68%가 실존인물로 보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영훈 교수(정치학)는 “지금의 단군연구는 전체적으로 만연한 혼란상 정리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학계는 엄격한 사료를 근거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해 문을 여는 개방적인 자세로 공동연찬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교과서에 나타난 단군. “1970년대 시험문제를 1990년대 교과서 내용에 근거해 채점한다면정답이 바뀌거나 문제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도 적지않다.지난 20∼30년 동안 국사교과서의 무책임성을 교정하지 않고 되풀이 한다면 언젠가는 이 문제로 소송이 벌어지는 사태도 올 것이다” ‘한국 상고사의 쟁점-국사교과서 개편방향과관련하여’를 주제로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우리나라는 국사교과서를 1974년부터 국정으로 편찬하고 있다.정교수의 지적은 그동안 우리 국사교과서가 다루어 온 상고사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문제점은 고조선 및 단군에 대한 기술에서도적지않게 나타난다.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고조선의 중심지를 놓고 74년판은“고조선의 옛 지역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면서 지도에 낙랑을 평양지역에 표기함으로써 중심지가 평양지역임을 나타냈고,이런 서술은 82년판까지 이어졌다.90년판부터 “고조선은 랴오닝(遼寧)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군장사회들을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발전하였다”고 하여 중심지가 이동해왔음을 밝혔다.96년판부터는 “초기에는 요령지방에 중심을 두었으나,후에 대동강 유역의 왕검성을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고 이를 분명히했다. 단군이 고조선의 건국자인가 하는문제를 놓고도 미묘한 차이가있다.74년판은 그저 단군신화가 존재했고 단군신화가 고조선사회를이끌어가는 세계관의 구실을 했다고만 언급했다.그러나 82년판에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족장이었다고 적음으로써 고조선의 건국자가 단군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연대를 소개했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지만,단군왕검을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해석함으로써,고조선의 건국시조로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이같은 서술경향은 90년판과 96년판에도 이어지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북한 단군릉 답사기. 98년 11월 첫 방북취재 중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을 방문했다.북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능입구에 도착한 순간 그 규모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눈부신흰색 화강암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그 정상에는 피라미드를연상시키는 단군릉이 우뚝 솟아 있었다.그런데 능 입구에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높이는 2m 정도.1936년에 세워진 ‘단군릉 기적비(紀蹟碑)'였다.비석에는 수많은 한자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일제가 이 곳에 위치한 단군릉을 파괴하자 이에 분노한 뜻있는 조선인 인사들이 단군릉 수축기성회(修築期成會)를 조직,단군릉을 보존 관리하기 위한 기금을 모았는데 성금을 기부한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었다.기자는다시 한번 놀랐다.그러면 일제하에서도 이 곳에 단군릉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말인가.해설 강사는 일제하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조선시대에 간행된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평양의 단군릉에 대한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숙종·영조·정조 조에 강동의 단군묘를 수리,관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또한 단군릉 주변의 지명도 대박산(밝은 산),단군호,단군동,아달동 등 단군과 관계있는 것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북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평양 단군릉의 실재 여부를 두고 논쟁이 많았는데 김일성 주석이 단군릉으로 알려진 강동군의 작은 무덤을 실제로 발굴해 진위를 과학적으로 밝히라는 교시를 내렸다. 역사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한 결과 사람의 뼈가 나왔는데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었다.유럽의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서 전자스핀공명법으로 뼈의 연대를 추정한 결과 5011년전(오차 267년)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 이 뼈를 단군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해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화강암 계단을 올랐다.계단은 무려 279개.돌계단 중간에는 선돌을 연상시키는 돌기둥이 대문처럼 세워져 있었고 양쪽 끝으로는 단군의 네 아들과 여덟명의 신하상이 능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모두 눈부신 흰색 화강암들이었다.279개의 계단을 다오르자 한 변이 50m, 높이 22m,9층 계단식 무덤인 단군릉이 위용을드러냈다.1994년에 준공되었음을 기념해서 모두 1,994개의 화강암 돌로 짜맞추었다고 했다.이처럼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건축하는 것은북의 건축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단군릉의 모양은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퉁거우의 장군총을 본뜬것이라 했다.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코끼리 만한 돌호랑이상이 세워져있었고, 그 앞에는 높이7m의 비파형 동검이 서 있었다.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 무기다.능 뒤쪽에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었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이곳에서 발굴된 86개의 단군과 그아내의 뼈가 나무관 내부의 밀폐된 유리관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빛과 습기·공기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유골은 참관시키지 않는다고했다. 평양 단군릉에 대해서는 실재성에 대한 근거도 있고,또 그에 대한반론도 있다.이 문제는 앞으로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합동연구로 밝혀내면 될 일이다.또한 북이 ‘민족의 시조' 단군릉을 그처럼 거대하게개건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민족'을 내세우기 위함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합리적인 시각일 것이다. 평양 신준영기자 junyoung@
  • [외언내언] 쌀눈쌀

    쌀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고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토탄층에서 기원전 2400년대의 최고(最古) 볍씨가 출토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보리나 조,수수보다 재배가 늦기는 했지만 잘 익고 먹기가 좋다는 점 때문에 금세 곡식중에서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구려 안악3호 고분에 곡물을 시루에 찌는 장면이 나오는 벽화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이 밥을 지어먹기시작한 것은 대략 1,500년전쯤으로 짐작된다. 쌀의 한자어인 ‘미(米)’는 ‘여덟 팔(八)’자 두개가 합쳐져 있는모양새다. 쌀을 거두려면 모내기에서부터 하얀 쌀이 되기까지 여든여덟번의 손이 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그만큼 농사짓기가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고려가요인 ‘상저가’에는 “들커덩 방아나 찧어게궂은 잡곡밥이라도 부모가 잡수시고 남으면 내가 먹겠다”는 구절이 나온다.쌀이 무척이나 귀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조선시대에도 쌀밥은 ‘옥밥’이었고 명절이나 제삿날,생일에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그래서 물에 만 흰밥을 하늘에 뜬 흰 구름에 비유해‘운자백(雲姿白)’이라고 숭앙했다.따지고 보면 ‘키를 켤 때 쌀을날리면 남편이 바람난다’거나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는속담도 쌀에 대한 외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쌀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은 ‘만들어 놓으면 무조건 먹는 밥’이었다.‘맛과 영양이 좋아 먹는 밥’이 아니라‘배고파서 먹는 밥’이었던 셈이다.쌀이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20세기에 와서야 쌀이풍부한 탄수화물과 단백질,무기질을 갖고 있음이 알려졌다.과학자들은 쌀이 대장(大腸)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낙산(酪酸)이 생겨나 대장암 발생을 억제한다거나,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준다는 사실을밝혀냈다.최근에는 쌀 윗부분에 붙어 있는 쌀눈(배아)에 토코페롤과비타민 성분이 많아 노인의 치매를 예방하고 말초혈관의 혈액순환을촉진한다는 것이 입증됐다.그래서 영양학자들은 쌀눈을 ‘영양의 보고(寶庫)’라고 일컫는다.그런데도 쌀 가공과정의 불가피성 때문에그동안 우리는 영양덩어리인 쌀눈을 정작 식탁에서 만나지 못했다. 최근 쌀눈이 80% 이상 붙어 있는 ‘살아있는 쌀’ 가공법이 개발되어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쌀의 고부가가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2∼3년전부터 ‘쌀눈쌀 열풍’이불고 있는 일본에 견주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쌀눈쌀이 2004년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외국산 쌀에 대항할 수 있는 새 상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세계적 知性 릴레이 인터뷰] (3)피에르 부르디외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이자 현실참여 지식인운동의 선봉에 서고있는 피에르 부르디외(70)는 ‘예술의 규칙’ ‘재생산’ ‘텔레비젼에 대하여’ ‘세계의 비참’ 등 여러 저술서가 국내에 소개되었지만방한은 이번이 처음. 27일 서울 국제문학포럼의 ‘위기속의 문화’발제강연에 많은 청중이 몰려 신자유주의,세계화 비판에 앞장서온 그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는데. 마침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되었지만 내 책 ‘세계의 비참’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연구를 자세히 밝힌 바 있다.이신경제 정책은 1970년대부터 진행되었으며 한마디로 국가 역할의 퇴행을 뜻한다.감옥을 제외하곤 공공교육 사회보장제 의료복지 등 국가가 제공하는 것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따라서 국가의 영향력도줄어드는데 프랑스의 경우 하층민과 이민자들이 이것의 희생물로 큰곤란을 겪고있다.미국식 세계화를 비판한 나의 오전 발제를 두고 너무 비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통계적 증거가 명확하다.빈국과 부국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간 격차가 더 커지고있는데, 과연 세계화는 선의 현상인가 악의 현상인가.그리고 이것은누구에게 이익인가,어느 계층,어느 국가에게 유리한 것인가. ■오전에 문화의 위기를 지적했다.벗어나는 길이 있는가. 학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며 본래 사회학자는 현상을 알리는것일뿐 무엇을 하라는 정언적 명제는 내리지 않는다.그럼에도 학자로서 금지된 ‘참여’ 자세를 택하게 된 것은 학자로서 혼자 알 것이아니라 예측가능한 신경제의 병폐를 알려야 한다는 지식인의 의무에서다.문화 위기의 원인인 신경제는 지금 즉각적 반응이 뚜렷하지 않을 따름이지 결과는 확실하다.결과가 유예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폐해를 느끼지 못한다. 모르니까 좋아라 하고 있을뿐 신자유주의로우리가 물어야할 대가는 너무 크다. ■문화의 위기를 지적한 많은 학자들과 달리 로비스트,세계무역기구서비스업협정,미국주도 세계화 등 구체적인 타겟을 지적한 점이 강연의 큰 특징이었다.상업화,경제논리 등 추상적 문제를 너무 제한적으로 본 것은 아닌가. 문제를 막연하게 봐서는 안되고 구체적인 증거를 대야 한다.세계화작업은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다만 어떤 방향성이나목표를 가지고 행해지고 있지는 않다.비유하자면 조종사없는 항공기라 할 수 있다.즉 세계화를 조종하는 구체적인 인자가 없는 것이다. 미국이 조종하는 것도 아니다.금융시장의 힘이 조금 뚜렷하다.금융이나 경제는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일뿐 정해진 목표가 없다.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세계의 이런 우왕좌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극우보수성을 문제삼아 특정언론에 인터뷰나 기고를 거부하기로 지식인들이 시민운동을 한다면,‘텔레비젼에 대하여’ 등 언론에 관한명저를 쓴학자로서의 의견은. 학자의 언론 기고는 어떤 조건인가 등 기술적인 문제인데 인종차별이나 극우 신문에 지식인이 기고하는 것은 지식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이 신문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조차 명예실추인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인종차별 정강을 앞세운 오스트리아 하이더당수를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명예로 아는데 입에 올리면 그를 알려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사설] 부풀린 경제위기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경제위기론의 지나친 증폭을 우려한다”고 지적한 것을 여론주도층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국제유가급등,주가급락과 자금시장경색 심화 등 경제불안요인이 전보다 많아진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호·악재가 혼재된 상황에서 악재를 너무 심각하게 간주하고 단편적인 해석에 치중해 위기론을 부풀리는 부작용은크다.경제란 본래 ‘좋다면 좋아지고 나쁘다면 나빠지는’자기암시적인 영향이 큰 점에서 위기론 증폭은 필요이상으로 국민들의 심리를위축시키고 실물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은 낮아졌지만 기업경기는 3·4분기에도 여전히 상승기조를보이고 있다.물가상승은 올초까지 이어진 호황과 근로자 임금상승의‘당연한’결과이며 반드시 문제만은 아니다.골칫거리인 유가급등만해도 산유국과 비(非)산유국 모두 겪는 고통으로 우리만 당하는 악재는 아니다.또 악재라도 대응 여부에 따라서는 호재로 귀착되는 게 경제현상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지난 1970년대 초반 1차 오일쇼크를 겪었지만 산유국의 축적된오일달러의 덕으로 우리 나라 경제는미증유의 중동특수를 누렸다.특히 거시 경제변수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장기 호황을 누리는 미국의 2·4분기 경상수지적자가 사상최대인 1,060억달러를 기록했다.큰 취약점이지만미국이 당장 망할 것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편협된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외환보유고가 900억달러에 달하고 성장률,물가,금리와 환율에서 환란전보다는 여건이 크게 나아졌다.정보통신업의 성장,수출흑자기조 지속과 저금리 등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따라서 제2의 경제위기론에만 골몰한 것은 지나친 비관론이다. 더욱이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 경제위기론을 증폭시키는 것은 사실을 잘못 해석한 실수를 넘어 의도적인 편향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경제현상에 둔감하거나 좋은 거시경제지표에만 취해서도 안되지만 실상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있는 그대로를 살펴 적절히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현재 자금경색과 주가급락 등의 주요 원인은 금융구조조정의 여파 때문이며 체질개선을 위해 앞으로 상당기간 감수해야할‘고통’이다.포드사의 대우차 인수 포기가 큰 문제이지만 인수자가나설 경우 바로 제거될 수 있다.재계의 지적대로 “경제주체가 합심하면 현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강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진통과 혼란을 균형감각을 갖고 감수할 필요가 있다.
  • [외언내언] 敬老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77세 노인에게 꾸중을 들은 중3학생(15)이 노인을 따라 전철에서 내린 뒤,뒤쫓아가 승강장 계단에서밀어뜨린 사건이 최근 있었다. 등을 차인 노인은 10여m 아래로 굴러떨어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불행히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철부지소년이 욱하는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나 참으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미덕인 경로(敬老)사상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아픔을 느낀다. 충효(忠孝)와 더불어 경로사상은 우리가 오래 가꾸어온 가치관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같은 가치들을 이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폐습인양 홀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그 밑바닥에는 충효 등의 기성 가치체계가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악용돼 왔다는 불신이 깔려 있는 듯이 보인다.그러한 생각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하기는 어렵다.멀리 조선시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1960∼1970년대 통치자는 ‘충’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교묘히 변질시킨 바 있다.‘효’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는 점도확실하다. 그렇더라도 ‘충’과 ‘효’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21세기 어느 문명사회건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의 효도를 주요 덕목으로 삼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차이가 있다면 이를 구현하는 방식과 가치의 우선순위 정도일 것이다.‘경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마침 지난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였다는 사실은 ‘노인 존중’이 전 문명의 공동관심사임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다만 이시점에서 고려할 사항은 “나이 많은 분이니 ‘무조건’공경하고 따르자”는 식의 주장이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왜 노인을‘우대’해야 하는지 기본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노인은 우선 어린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다.신체·정신적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력도 대부분 갖추지 못했다.따라서 약자인 노인을 부축하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의무다.경로 대상인 이 시대 노인들의 삶도 되짚어 보자.올해 만65세(1935년생)가 넘는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에 태어나 소년·청년기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다.경제성장기에는 베트남의 정글에서,중동의 열사(熱砂)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사회적 부를 축적했고 민주화를 뒷받침했다.한마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형성한 선배일꾼들이다.그들은 젊은 세대에게서 존경받고 보상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그러므로 우리는 ‘해묵은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때문에 노인을 우대해야 한다.그리고 그것은 장래 우리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인사동 선화랑 ‘현대미술 12인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2000년 현대미술12인전’ 이 20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정창섭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윤명로 김봉태 최명영 하동철 이강소오수환 이두식 박승규 등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대표급 작가 12명이 각각 2,3점씩 모두 30여점의 작품을 낸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주목할 만한 것은 모노크롬,즉 단색화다.단색화는 1970년대 후반 한국 현대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국제적으로 미니멀리즘과 맞물리면서 크게 유행했다.백색 모노크롬 계열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가는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김홍석 이동엽 허황 곽남신 윤명로 진옥선등.흑색 혹은 기타 색채에 의한 모노크롬 작가로는 김기린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최명영 김진석 최대섭 박장년 등이 꼽힌다.이번 전시의감상 포인트는 바로 모노크롬 작가의 작품과 그 자취를 더듬어 보는데 있다. 모노크롬 쪽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묘법’시리즈의 박서보다.그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선배 추상작가들과는달리한국의 미술대학에서 배출된 첫 세대로,그의 화력은 한국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그가 30년 이상 매달려온 ‘묘법’은 한지를 통해 묻어 나오는 부드럽고 고아한 맛,도자기에서나 볼 수 있는 담백하고 거친 표면의 질감,숨을 고르면서 서예를하듯 절제된 행위 등이 특징. 한국 현대미술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평이다. 이강소와 오수환은 동양의 서체적 특징이 담긴 작품으로 눈길을 끄는 작가.이강소의 획은 동양의 서체처럼 어떤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한결 자유롭고 추상표현주의적인 기운이 강하다.그가 흔히 사용하는 제한된 흰색이나 회색 또는 청색은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노크롬 미술과도 연관된다.오수환은 기호를 즐겨 사용한다.그기호들은 서예의 필법을 연상케 한다.본래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글자를 새로 쓰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양식이야말로 오수환 회화작업의 색다른 점이다. 참여 작가중 박승규(49)는 가장 젊지만 나이에 비해 다채로운 화력을 쌓은 화가로 주목된다.그의 회화세계는 ‘확산 공간’과 ‘확산이미지’로 요약된다.그는 오토마티슴(automatisme,자동기술법)이나콜라주,데콜라주(deacollage,붙였다 떼어내기)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독자적인 ‘이미지-공간’의 세계를 구축한다.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역시 ‘확산 이미지’다. 격정과 관조의 미학이 어우러진 현대미술의 대표작들을 통해 잡동사니화해가는 현대미술의 품격을 되찾도록 한다는 게 이번 전시의 의도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각료 에세이] 열린마음으로/ 미래지향적 금융감독

    필자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많이 강조해온 용어가수요자 중심, 시장친화적인 금융감독이다.이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서받아들이는 느낌은 다양한 것같다. 일부에서는 이제 금융구조조정이나 개혁보다는 금융시장안정에 우선을 두는 보호적인 감독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요자 중심·시장친화적인 금융감독정책을 추진한다 하여 금융개혁이나 구조조정을 도외시하거나 등한시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오히려 금융개혁을 더욱 촉진하여 우리 금융의 선진화와 국제경쟁력 제고를 조기에 이룩하자는 것이다. 금융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개혁은 이를 필요로 하는 측의 요구(Needs)와 시장환경의 변화과정에서 야기되는 것이다.20세기 후반부터 세계금융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금융개혁 과정을 보자.미국 금융기관들은 1970년대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및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수익력이 급속히 악화됐다.그러나 기존의 금융규제를 완화해 금융기관의 변혁 노력을 수용하고 지원한 것이 금융혁신으로 이어지고 세계금융을 주도하는 수준의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금융개혁과 구조조정의 핵심은 금융수요자의 편익제고와금융의 국제경쟁력 향상이다.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이요구되고 있다.금융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보다 활성화하여 금융의 선진화를 앞당겨야 한다.이것이 수요자 중심·시장친화적인 감독이다. 우선 금융감독관련 법규와 규제가 디지털 경제,인터넷 거래,글로벌금융시대 등 변화된 금융시장 환경에 맞게 재정비되어야 한다.이를위해 시장원리에 의한 자유로운 경쟁이나 금융기관의 창의와 혁신을제약하는 규제들은 없애나갈 생각이다.그대신 겸업화,대형화,국제화그리고 사이버 금융거래의 활성화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갈 것이다.불공정거래나 도덕적 해이 등 반시장적인 금융활동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에 군림하는 기관이 돼서는 안된다.금융의 원활한 시장흐름을 지원하고 금융의 선진화를 유도하는서비스기관이 돼야한다.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시장의 룰과 규칙을엄격히 적용해나가야 한다.수요자 중심,시장친화적인 감독은 우리 금융의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하는 미래지향적인 감독을 의미하는 것이다. 李瑾榮 금감위원장.
  • [매체비평] 권력형 범법자 사면에 왜 침묵하나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혐의로 유죄가 확정됐으나 지난해 8월15일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사면됐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전형적인 인물로 비판받은 김현철씨에게 서둘러사면조치를 취하자 당시 여론은 들끓었다.그후 1년,올해 광복절에 김현철씨는 역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당당하게 복권됐다.두 번의광복절을 거치는 동안 국정을 문란케 했던 권력형 범법자는 사면권의최대수혜자가 됐다.남들은 사면 특혜 한번 보기도 힘든 판국에 그는왜 광복절마다 사면의 특혜를 누려야 하나? 사면권을 행사할 때마다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내세운다.국가형벌권을 혼란시키고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올해 그 수혜자가 사상최대라고 자랑했다.그러나 지난주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문제는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겨우 언급하는 정도였다.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침묵했다.대통령의 사면권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행사는 사법권에 대한 행정권의 개입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한계규정을 두고 있다.미국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시키거나 덴마크의 경우장관들의 사면은 금하고 있다.절차적인 면에서 최고재판소의 자문이나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면권의 한계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다.따라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원칙도 기준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현철씨가 두차례에 걸쳐 사면특혜를 받은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아니다.사면권이 정치적 흥정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1970년대 종신형을 받고 수감됐던 김지하씨는 불과 1년만에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나자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시간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둘 중 하나가 미친 것 같다’며 사면권에 따른 법집행의 모순을 꼬집었다.97년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수괴죄 등으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확정했다.특별법까지 만들어 중죄를 선언한 이들에게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면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1심부터 대법원까지 연속적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대한항공폭파범김현희는 애당초 구속조차 된 일이 없다. 이같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해 언론이 이번에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것은 단순히 이산가족문제 때문만은 아니다.이번 사면에는 두 전현직 언론사 사주들이 포함돼 있었다.해당 언론사는 당연히 보도할 수 없었고 타언론사들은 동업자 봐주기식의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다.언론의 권력 감시기능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세금포탈 혐의로 기소돼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벌금 30억원이 확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도 이번에 사면대상에 포함됐다.대법원의 유죄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떨어지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법관들의 고뇌에 찬 판결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그 권위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공영방송 사장 시절 1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역시 지난해 구속기소돼 징역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홍두표 전 KBS사장도 사면권의 특혜대상이 됐다.부도덕한 언론사 사주들이 이처럼 대통령의 무분별한 사면대상이 될 때 사주의 힘은 세지는 반면 한국언론은 초라해진다.사면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은 아무리 개혁과 사회정의,법치사회를 외쳐도 그 목소리에 호소력이 없다. 김현철씨같은 권력형 비리사범에게 반복되는 사면특혜.그 부당함을지적해야 할 언론사의 사주 역시 ‘사면동기생’이 될 때 한국언론은‘할 말도 못하는 부끄러운 언론’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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