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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종교 갈등 극복한 ‘거인들’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내용을 감잡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마이더스의 손’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14일 개봉)이 그렇다.밑도끝도 없이 ‘타이타닉’의 몇몇 장면쯤과 함께 복고풍 서사극이 연상될 수도 있겠다.하지만 전혀 아니다.제목의 유래는 197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고등학교 풋볼팀 ‘타이탄스’.당시 인종과 종교적 갈등이 극심했던 그곳에 화합의 씨앗을 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전설같은 팀이었다. 영화는 본격 스포츠 휴먼드라마다.잘 만든 독립영화 한편으로 브룩하이머에게 발탁된 보아즈 야킨 감독의 데뷔작. 덴젤 워싱턴이 실제 타이탄스팀을 이끌었던 흑인감독의 투지를 온전히 스크린에 재현해냈다. 백인과 흑인 학교의 갑작스런 통폐합 정책으로 생겨난 윌리암스 고교의 풋볼팀 타이탄.내부사정이 간단할 리 없다. 게다가 흑인인 허만(덴젤 워싱턴)감독이 백인인 빌요스트감독(윌 패튼)을 제치고 팀을 맡았으니 말썽은 더 심할 밖에.팀원들은 사사건건 흑백으로 나뉘어져 부딪치고,허만감독은 카리스마와 혹독한 지옥훈련으로 단합을 유도하려애쓴다. 지난해 9월 미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했던 흥행작이다.그러나 풋볼에 열광할 수 없는 국내 관객들이 그 위력을 재확인시켜줄 지는 의문이다. 특장없이 밋밋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음악이다.필드의 함성에 어우러지는 올드팝과 록의 사운드트랙이 좋다. 러닝타임 1시간53분. 황수정기자
  • 네덜란드 안락사 합법화…윤리 논란

    네덜란드가 10일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함으로써 전세계에 안락사 허용을 둘러싼 윤리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네덜란드는 빠르면 2주 후부터 이 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사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병원과 가정 등에서안락사가 몰래 행해져와 지난해만도 2,123명이 안락사했다. 은밀히 행해지던 안락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 효과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 네덜란드 정부의 의도. 네덜란드는 ▲환자가 불치병을 앓고 있고 ▲견디기 어려운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성적인 판단으로 안락사에 동의하는 등 3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로 안락사 허용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안락사 남용 등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날 법안이 최종 승인되자 네덜란드 의회 건물 주변에서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찬송가를부르면서 시위를 벌였다.법안 심의에 앞서 50여개 교회와각종 시민단체는 상원에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이들은 “인간의 죽음은 오직 신만이 결정할수 있는 문제이며 안락사가 허용될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심각히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폴란드의 타데우스 피로넥 주교는 “안락사는 일단 한번허용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원치 않는 사람과 장애인이안락사 대상에 포함되게 된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번 조치는 네덜란드와 유사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다른국가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1970년대부터 안락사를 공공연하게 시술해 온 호주에서는벌써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1996년 호주 노던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시행되자 환자 4명의 안락사를 도와줘‘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을 얻은 호주의 필립 니취게 박사는 지난 7일 “네덜란드가 법안을 승인하면 네덜란드 선박을 매입해 호주 외곽 공해에서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암말기 환자 130여명의 자살을 도운 죄로 99년 2급 살인죄 판명을 받은‘잭 케보키언 사건’을 경험한 미국 및 현재 안락사를 묵인하고 있는 스위스,콜롬비아,벨기에의 국민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미기자 eyes@
  • 개화기~90년대 민중시 연구서

    그동안 학문적 대상으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민중시가한 권의 문학 연구서로 정리되었다.경희대 강사인 시인 맹문재의 ‘한국 민중시 문학사’(박이정)는 독특한 시각을과시하기 앞서 성실한 자료 정리에 중점을 둬 민중시 연구에 든든한 바닥을 다졌다. 저자는 민중시를 민중문학의 한 영역으로 민중의 현실이나 문제를 감싸안고 극복하려는 시라고 정의한다. 민중의삶을 소재로 삼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민중을 둘러싸고 있는 왜곡된 사회구조와 현실을 개선·극복하려는 시란 것이다. 그러면 민중이란 무엇인가.민중은 일반 대중이란 범위를갖지만,자신의 계급적 모순을 깨닫고 극복하려는 의지의주체라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결국 대중 가운데서도 올바른 역사인식과 지향을 지닌 주체들이며맹문재는 그 민중을 노동자로 집약시킨다. 민중시는 1980년대부터 노동시로 불리면서 활성화되었으나 이 책은 보편성을 띠기 위해 민중시를 제목으로 택했다.개화기,일제 강점기의 이상화 임화 백석 이용악 오장환,1960년대 참여시시대의 김수영과 신동엽,1970년대의 신경림 김지하 조태일이시영 등을 먼저 살핀 뒤 1980년대의 노동시를 자세하게다룬다. 198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시가 활발하여 이 경향의 시로 많은 시인들이 등단했고,여러 시집 출간과 함께독자들의 관심도 높았다.저자는 노동시 시인들이 추구한시세계에 따라 산업노동시(박노해 김해화 백무산 정인화)지식인 노동시(김남주 곽재구 김정환 김명수 채광석 하종오 기형도 최두석)교육 노동시(도종환 이광응 김진경)농민시(김용택 이재무 고재종 이동순) 등으로 나누어 살핀다. 위축된 90년대(유용주 김시천 안용산) 고찰에 이어 대표노동시 30편을 실었다. 김재영기자
  • [씨줄날줄] 김운용 IOC위원장 후보

    스포츠의 ‘세계대통령’에 첫 유색인종이 나올 수 있을까.김운용(金雲龍)대한체육회장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집행위원이 향후 8년동안 국제 스포츠계를 이끌어 갈 제8대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오는 7월 16일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실시될 위원장선거에는 현재 벨기에의 자크 로게 등모두 5명이 출마했다.외신들은 김 회장과 로게 회장의 2파전,또는 캐나다의 딕 파운드를 포함하는 3파전이 될 것이라고 전한다. 1896년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가 시작된 이래올림픽은 숱한 곡절을 겪었다.1970년대 이후만 하더라도 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팀의 숙소를 습격,유혈참극을 벌였고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아프리카 진영이,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진영이,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 공산진영이 각기 정치적 이유로 보이콧해 ‘반쪽 올림픽’을 열기도 했다.그러다가 ‘88서울올림픽’에서야 비로소 이념을 떠나 거의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단합의 올림픽을 치렀다.작년 시드니 올림픽땐남북한이 ‘한반도 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하기도 했다. 근대 올림픽이 부활돼 1세기가 지나는 사이 올림픽 정신도많이 훼손됐다. 올림픽기가 상징하듯이 대륙과 인종을 뛰어넘어 화해와 평화를 추구해야 할 올림픽은 정치와 경제논리에 휘말려 크게 퇴색했다.역대 올림픽은 선진제국들이 거의독점 개최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사실상 최초로 열린 것이 바로 서울올림픽이었다.오는 2008년 올림픽도 과연 세계 최대의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베이징에서 개최될 수 있을 지관심거리다.역대 IOC위원장에 유색인종이 선출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거의 유럽중심의 서구가 독차지했다.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김 회장이 출마한 것은 국가적으로도 자랑스러운일이다. 김 회장은 출마를 선언하면서 “올림픽 기본이념은 지나친상업주의와 프로화로 훼손됐다”고 밝혔다. 옳고 타당한 지적이다.근년 들어 금메달에 집착한 나머지 선수들의 약물복용이 늘어나고 엘리트 중심의 체육교육,올림픽 운영의 이권화·상업화가 너무 심화되고 있다는 반성이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차기 IOC위원장은인류보편주의 입장에서 융화를다지고 올림픽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선출되었으면 한다. 이경형 수석논설위원 khlee@
  • 美선거자금법 개정안 상원 통과

    기업과 노조단체가 정당에 주는 기부금을 전면 금지하는미국의 선거자금법 개정안이 2일(현지시간)미 상원에서 찬성 59표,반대 41표로 가결됐다. 반대론자가 많은 하원의 통과가 남아 있고 조지 W 부시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최종 법안으로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마찰이 예상되지만 여론의 지지를받고 있어 입법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하원 상정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존 매케인(애리조나·공화)·러스 페인골드(위스콘신·민주)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 지지자들은 “1970년대 워터게이트사건 이후 처음으로 선거자금법에 큰변화를 주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반대론자들은“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유권자의 자유를 구속하는법안”이라며 위헌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기업·노조·압력단체·개인 등이 정당에제한없이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소프트 머니)의 전면금지 ▲선거법상 규제대상으로 후보 개인에게 주는 정치자금(하드 머니)의 경우 1인당 연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 ▲기업·노조·이익단체의 정책광고 금지 등이다. 한편 지난 대선에서 공화·민주 양당에 지원된 ‘소프트머니’는 총 5억달러(6,500억원)에 이른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北방송, 부시대통령은 ‘몹쓸자식’

    북한의 대미 비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선중앙방송은 25일 “일본인 대학 교수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몹쓸 자식’으로 비평했다”고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외신을 인용,“부시 대통령의 대학 교수였던일본인 쓰노미씨는 최근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1970년대에 당시 학생이었던 부시에게 ‘너는 우애회(친목단체)의 회장은 할 수 있어도 최고 행정관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그를 ‘몹쓸 자식’이라고 비평했다”고 전했다. 한편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방미중인 모리 요시로(森喜郞)일본 총리와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을 ‘못된 아이(a spoiled child)’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원상기자 wshong@
  • [씨줄날줄] 돌아온 은어

    은어는 청정수에서만 산다.이름처럼 그 맛이 담백하면서 오이 향이 은은하게 풍겨 여름날,선비의 술상에 은어회가 오르면 최고의 호사로 쳤다.도마에 오른 은어가 ‘죽는 것은 괜찮으나 상놈의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며 탄식했다는 얘기는아마도 어느 협량(狹量)한 양반이 아랫 것들 입에 들어가는것이 아까워 지어낸 말이리라. 1급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의 귀족’이 한강에 돌아왔다. 1999년,41년 만에 발견됐을 때만 해도 농반진반,“아마도 길잃은 은어인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어종으로서의 서식이 확인됐다. 또 1958년 이후 한번도 보이지 않던 버들메치,황쏘가리,젓뱅어,가숭어,점농어 등이 함께 나타난 것으로 보아 한강의 수질이 은어가 서식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고믿어도 될 것같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가 국립수산진흥원 청평내수면 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5월16일부터 12월20일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강에는 모두 56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것으로확인됐다.이는 1958년의 61종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한강의 어종은 1990년에는 21종까지 줄었다.1970년대의 한강 공유수면 매립공사와 1982년부터 5년간 시행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서식환경이 변한 데다 수도권인구 급증으로 수질이급격히 떨어진 탓이었다. 서울시가 1958년 이후 여섯 번의 한강 물고기 생태조사를통해 한번이라도 한강에 서식했거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확인한 어종은 모두 87종이다.따라서 싱어,묵납자루,쉬리,줄몰개,배가사리,꾸구리,버들치,갈겨니,종개,퉁가리,붕퉁뱅어,송사리,드렁허리,농어,둑중개,버들붕어 등이 더 돌아와야 할 한강의 물고기 가족이다.그동안 한강은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가 설치된 이후 유속이 크게 감소했다.그 결과 지수(止水)성 물고기가 늘어 1958년 조사 때 없었던 7종의 어종이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그 대신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계류성 물고기가 크게 감소해 앞으로 어떤 물고기는 한강에서영원히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어쨌든 은어와 함께 한동안 사라졌던 물고기 가족이 나타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앞으로 남획을 막으면서 더 많은 연구와 투자로 한강의 어종을더 불러들여야할 것이다.물고기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김재성 논설위원jskim@
  • [대한광장] 중년, 그리고 삶의 쓸쓸함

    지난 연초에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끔 만나는 친구들 말고도 30여 년만에 처음 보는 동창도 있었다. 주최측의 말로는,IMF 불황 이후 새로 얼굴을 내미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면,아무래도 꿈보다는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1970년대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보면,대부분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시골에서 낯선 서울에 올라와 뿌리를 내리기까지 한눈팔지 않고 생업에 전념해온 사람들이다.크게 돈을 번 녀석도 없는 편이니,고도성장기에 그 흔한 재주도 요령도 별로 피워보지 못했나보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실직했거나 실업의 불안에 시달리는친구들의 신세타령을 여러 차례 들었다.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지만,이미 명예퇴직을 하고서 뉴질랜드며 캐나다로 이민을떠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 친구들의 딱한 사정을 접하면서 나는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사실 3년 전 고용조정법이 통과된 이후,모든 매스컴에서 실업대책을 촉구하고 정부도 갖가지 방안을 마련한다고 부산하게 움직인 적이 있다.그후 정부가 IMF 불황을 벗어났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부터 실업문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어느새 사라졌다.이제 다시 경제 침체라고 아우성이다.정부는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구조조정을 채근한다.인력 감축만이만병통치약이라는 논조다. 돌이켜보면, 지난 고도성장기에 우리사회는 심각한 사회적실업을 경험한 적이 없다.실업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수립하고, 실업자와 그 주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대응하며,나아가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IMF 불황 이후 그런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그러니 우리 나름의 절실한 교훈을 얻었을 리가 없다.지금 다시 실업이 관심사로 떠오르고있다.정부는 여전히 3년 전의 대책 발표를 되풀이한다.그러나 일자리를 떠난 사람들의 애환이나 상처를 고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지난 20여년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던 그 중년의 친구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대부분 화이트칼라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선량한 시민으로,충실한 가장과 믿음직한 동료와 성실한 조직원으로 이 사회에 기여해온 사람들이다.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떠난 것이다. 술자리에서 쓴 소리를 내뱉는 그 몇몇 친구들의 모습에는분명 삶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믿었던 사회며 정부며 직장에 대해 어느 한순간에 밀려오는배신감으로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들 개인의 상처와 정신적 박탈감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그 상처 앞에서는 어떤 정책도,어떤 통계도 공허한 수사에지나지 않는다. 이전에는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면 기존 노동자들의 기능을 흡수하면서도,다른 한편으로는 그 혁신의 보급 및 응용과 관련된 새로운 직종을 만들었다.혁신은 반드시 노동의 대체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혁신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부문이면 어디서나 노동자들을 내쫓는다.정보화와연결된 일련의기술혁신과 정교한 소프트웨어 기술들에서 우리는 사람의 노동이 필요 없는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느낀다.이런 변화의물결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 직장인들이 구조조정의 첫 번째과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간 언론에서도 고학력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실태를 여러번 보도하면서 중산층의 몰락을 경고한 바 있다.이제 정부는 실업의 단기처방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경기 호전을 기다리고 실업통계에 집착하고 단기적인 구호대책만을 마련할것이 아니라,일할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의혼란과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이해하고 쓰다듬을 것인가를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서양사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4) 문순홍박사의 생태여성주의

    *“여성·환경문제는 둘이 아니다”. ●여성적 특성이 차별의 요인이라면 그 특성을 생물적 결정으로 봅니까,사회적 요인으로 봅니까? 양면이 다 있습니다.여성에게 생리·해부학적으로 여성적특성이 부여된 부분이 있습니다.여기에다 ‘여성다움’ 에대한 역사·사회적으로 강요된 부분이 있습니다.가정,학교,사회에서 부단히 여성적 특성만을 장려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거든요.초기 생태여성주의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고,파괴되는 자연의 아픔을 여성이 공감하고 이를 치유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를테면 1991년에 발생한 대구의 페놀방류 때도 태아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여성들이 더 격렬하게나섰습니다.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여성과 자연을 생물학적인 속성으로 연결짓는 논의에 회의가 생겼습니다.환경치유자로서의 구실이 여성들에게 삼중의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오늘과 같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아무리 여성의 권리와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더라도,경제활동여성들의 경우 여전히가사노동의 상당부분이 여성에게 남겨져 있습니다.서구 여성들에게 물어봐도 가사노동을 부분적으로는 남편과 분담하지만 이른바 ‘살림’경영은 여전히 아내 몫이라고 합니다.때문에 여성은 자기 일을 가져도 ‘살림’의 부담을 하나 더지게 되지요.이를 이중부담의 문제라 불러왔습니다.그런데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이 환경치유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에게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기대한다는 점에선긍정적이었지만,여성에겐 또 하나의 부담이란 생각이 들게됩니다.그 한국사례로,1992∼93년 제3세계의 열대림 파괴문제가 나왔을 때였습니다.나무 젓가락과 1회용 기저귀(육아용) 안쓰기 운동을 벌이는데 직장여성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불편한 거죠.그러면서 왜 이것이 여성만의 문제인가라는생각을 하기 시작했고,이런 의문은 여성=자연이라는 등식은“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문화 사회적으로 주입된 부분이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억압과 생태계의 위기를 다같이 가부장적 남성문화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그렇다면여성주의적 대안은 있습니까? 지금까지 서구근대가 무시했던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봅니다.그것은 세계를 생태적 시각으로 다시 보는겁니다.우리사회에 여성적 특성인 부드러움,곡선,평화,헌신,다양성,관계성을 불어넣는 겁니다. ●아까 여성의 특성이 가사노동,즉 살림에서 잘 발현된다고했습니다.그렇다면 생명친화적인 여성의 살림살이(죽임의 반대)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벌일 일이지,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나눠갖기 위해 투쟁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에게 여성적 특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이성,합리성등이 여성에게도 있습니다.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남성적 특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도 있습니다.그런데 18,19세기까지는 이성적 분별력,합리적 사고가 여성에게는 아예 없는것으로 단정했지요.이렇게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묶어 종속시켜 왔습니다.지금 지구적 위기는 여기서 비롯됩니다.이 구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에도 그대로 온존해 있습니다. 대안은 무엇이냐, 비지불성 가사노동에 남성이 들어오고 그대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곳에 여성의 특성을 도입하는 겁니다.사회구조에 감성지수를 높이는 거지요.이런 구조가 생태계의 원래 모습입니다.인간개체가 좌뇌(이성)와 우뇌(감성)의 균형을 이루고 있듯이 사회구조가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야 통찰력이 생기고 위기대처능력이 생깁니다. ●그동안 사회 참여에 성공한 여성들이 여성적 장점을 사회화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남북대화에 여성을 대표로 보낸다거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를 여성으로 하면 과연 평화가 올까요? 배려 차원에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결정권이 있는 자리,그리고 일정한 비율이 중요합니다.여성주의적 신념이 없는 여성 한 두명이 참여하는 것으로는 그들이 경쟁에 이기기 위해 남성화 돼버리거나 홍일점의 특혜에 안주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에코페미니즘이 문화구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에 대한 반성입니다.여성이 여성에게 표를 주지 않고정치자금을 만들지 못해 여성정치인이 발붙이기 어려운 남성구조 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의료기술이 여성을 임신 출산의 불안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준 점을 인정한다면 생명공학은 여성에게 복음일 수도있지 않을까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는 생명은 생(生)인 반면 생명공학은조(造)이기 때문에 생명공학은 반생명적입니다.따라서 생명공학은 시장에 의한 인간생식능력의 대체이고,특히 여성의생식능력의 상품화이기도 하지요. ●중세기 마녀로 지목된 여자들이 사실은 피임지식을 가진사람들이었고 국가의 다산정책이 이들을 마녀로 지목했다는학설이 있더군요.이런 것으로 봐도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돌려주는 생명공학이 여성해방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생태여성주의 입장에서는 다릅니다.불임부부에게 희소식이라는 생명복제에서 간과되는 것이 있는데 체세포 복제도 누군가 난자를 제공해야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그래서 반다나 시바(에코페미니즘 학자)는 난자(성)의 상품화 가능성을 말합니다.시술과정도 여성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치욕적일 뿐더러 탄생한 아이도 기형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전은 의료분야가 아니라유전자 변형을 통한 식량혁명인 것 같습니다. 인구 증가와 식량위기,그게 사실은 맬서스테제입니다.1968년에 맬서스적위기론이 제창됐는데 그때 어떤 학자는 제3세계에 식량원조를 중단해야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실제로 미국이 식량무상원조를유상으로 바꾼 것이 아마 1970년대 초일 것입니다.이 신맬서스이론에 대항해 나온 것이 신마르크스 이론인데 절대량보다 분배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요즈음 월드워치 보고서 같은 것을 보면 후자의 주장이 옳았습니다. ●개발과 성장의 중단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제1세계가 제3세계에 근대화 교리를 팔면서 “너희들도 우리처럼 잘 살게될 것”이라고 달콤한 말을 했지만 지금 제3세계가 그렇게 됐습니까? 안됐지요.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제1세계는 제3세계를 식민화했는데 제3세계는 식민지가 없잖아요.생태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인류가 제1세계처럼살려면 지구가 두개는 더 있어야 합니다.하나는 식민지로,하나는 쓰레기 폐기장으로 필요하니까. ●생태여성주의적 최종 대안,그리고 그 모델은 있습니까? 반다나 시바는 생태민주주의(Bio-Democracy)를 제시했습니다.지역단위 생명자치 모델이지요.지금 제3세계의 굶주림은서방세계의 패권다툼이 빚은 피해이기도 하지만 농업구조상문제이기도 합니다.전통적인 자급농들이 농작물 대신 커피나 맥주 원료의 대량생산농으로 바뀌면서 절대빈곤으로 떨어졌습니다.교묘한 착취지요.생태계는 소비가 없습니다.모든 것은 순환하지요.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그리고 전통적인자급농은 생태계의 순환에 배치되지 않습니다.생태(여성)주의적 세계관과 사회구조만이 자연의 회복능력을 재생시킬수있습니다. 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여성억압과 생태계의 위기…가부장적 남성문화의 산물.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생명’이라는 단어에 훨씬 민감하다. 여성이 더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초기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의 자유와 권리신장을 위해 남성 따라잡기에 치중하다가 차츰 반생명 구조의 뿌리인 문화로 관심의 영역을 넓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자연과 인간,남성과 여성,백인과 유색인,선진국과 후진국 식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 사고가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는 반생명적 억압구조를 낳는다고 보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의 이론 및 실천운동은 21세기의 주요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생태학과 페미니즘의 만남이다.생태여성주의에 따르면 가부장 구조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서구문명의 자연(환경)파괴는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다. 여성주의가 그려낸 여성해방의 유토피아적 대안이 생태론자들의 생태공동체와 그 이미지가 비슷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접목이 이루어졌다.그리고 사회운동 차원에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은 반핵,반군국주의 운동에서 자연스럽게 결합됐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본다.이는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면서 세계를 황폐화시킨 남성,서구,이성(理性)중심의 가치관과 삶의방식을 바꿔보자는 실천이기도 하다.따라서 여성을 자연과,남성을 문명과 동일시하는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의 특성에서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구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전자 조작,복제,그리고 게놈 프로젝트에 생태여성주의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생명공학이 근대과학적 신념에 터잡고 있는 남성성의 정형이고 여성에게서 생식의 특성을 박탈하는 전형적인 반생명 구조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생명 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문순홍(文順弘)박사는 정치,경제,문화 세 영역에서 동시에 자연과 여성의 회복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삼중과정론을 펼친다. △문순홍 박사는…. ▲1980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동대학원 박사▲호주 멜버른대,이화여자대학교대 여성학대학원 박사후 연구원(post doctor)▲이화여자대학교,성공회대학교 강사▲대화문화 아카데미 연구위원이언탁기자 utl@
  • 中 科技상 최고 상금액 7억여원

    중국에 노벨상의 상금에 버금가는 거액의 상금을 수여하는과학기술상이 등장했다.‘과학기술을 논함(論科學技術)’을펴내는 등 국가 과학기술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온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한 과학기술자들을 선정,사기를 앙양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19일 베이징 런민다후이당(人民大會堂)에서 국가과학기술장려대회를 갖고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의 첫시상식을 가졌다.첫 영예를 안은 수상자는 우원준(吳文俊)중국 과학원 계통과학 연구소 부소장(82)과 위안룽핑(袁隆平) 국가 잡교수도(雜交水稻) 공정기술연구센터 주임(71).수학의 기계화 영역의 권위자인 우 부소장은 1970년대 이후 컴퓨터기술이 급속히 발전·보급되는 과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한일종의 자동추리 기법인 ‘오공식(吳公式)’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일생을 벼 품종 개발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위주임은 새로운 3개의 벼품종의 재배·육성을 성공시킴으로써 벼 육종학연구에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정부가해마다 2명의 수상자를 선정,수여하는 ‘국가최고 과학기술상’의 상금은 500만위안(약 7억5,000만원).노벨상(100만달러)에는 못미치나 한국 과학상 상금(5,000만원)의 무려 15배나 된다.선정 조건은 당대의 과학기술 발전에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야 하고 첨단 과학기술 산업에 적용, 경제·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돼야 한다. 특히 수상자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기금 출연을 하려 해도50만위안(7,500만원) 이내로 제한된다는 점이 이채롭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민중미술’에 담긴 자유의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리얼리즘의 시대다.예술 자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마침내 미술이 ‘현실’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1980년 11월 일단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결성된 ‘현실과 발언’의 동인운동이 기폭제가 됐다. 그 전까지는 현실을 다루는 리얼리즘 미술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영남대)는 1970년대말까지만 해도 국내 미술계는 국전을 둘러싼 진부한 관학파와 상업화랑을 본거지로 한 인기작가,그리고 국제전을 무대로 현대 미술가임을 자처한 모노크롬 계열 작가들로 구성돼 있었다고 밝힌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된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을 한 자리서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의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전.가나아트의 소장품중 80년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대표작 100여점이 걸렸다.강요배 김호석 박불똥 손장섭 손상기 신학철 안창홍 오경환 오윤 임옥상 전수천 정복수 홍성담 등 45명이 작품을 냈다.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은 해방 이후 상실했던 예술의 사회성을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한국미술이 참된 의미의근대성을 확보함으로써 현대로 나아가는 미술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양식적인 면에서 볼 때 8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은 특정한 조형양식을 고집하지 않는다.극사실주의가 있는가하면 추상 이미지로 동시대의 정서를 거침없이 담아낸 작품도 적지않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은 민중미술로 대변된다.당국의 탄압속에서도 85년 민족미술협의회가 결성됐고, 인사동에는 ‘그림마당 민’이라는 독자적인 전시공간도 생겨났다. 민중미술은 지난 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민중미술 15년전’을 계기로 이른바 제도권에서 재평가를 받았다.이 전시는 ‘민중미술 장례식’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민중미술의 정신과 미학,그리고 예술성을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맥락에서 민중미술의 시대적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고 그 계승 가능성을 살펴본다는 데 의의가 있다.4월1일까지.(02)720-1020. 김종면기자
  • [기고] 새만금사업 환경친화적으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정부의 최종 결정이 2월 중순에 내려진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여 방조제 3분의2를 막아놓은 지금에 와서 공사 계속 여부를 재검토한다 하니,연유야 어떻든 정부 정책과 국책사업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새만금사업은 1970년대 식량부족 시대에 구상되어 81년의 쌀수입 사태를 겪으면서 계획이 수립되었고,91년 방조제를 착공하여 미래세대를 위한 농업기지 조성이라는웅대한 목표로 출발하였다. 전북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33㎞를 축조하여 1억2,000만평의 해수면을 8,500만평의토지(여의도의 94배)와 3,500만평의 담수호로 개발하는 동양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자부심도 컸다. 이 사업은 국토확장 효과뿐만 아니라 담수호 조성을 통해바다로 방류되는 담수를 가두어 연간 10억t의 수자원을 확보하고,방조제 축조로 금강 상류지역의 상습침수 피해를 방지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으며,육운(陸運)개선과 교통 편의로고군산군도·변산반도를 비롯하여 백제문화권의 관광수요가확대되는 동시에 방조제 자체로도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될수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반면에 간척이 구시대 유물처럼 퇴색하는 것도 부인할 수없다.간척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나 일본도 요즘 들어 신규 간척사업을 벌이지 않는 추세다.간척해서 쌀을 생산하는 것보다 개펄의 어패류 채취나 양식이 수익성이 높은 실정이며,최근에는 개펄의 환경보전 기능이 부각되면서 오히려생태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정부도 재작년에 농지조성 목적의 신규착공을 하지 않기로결정했다. 문제는 이미 벌여놓은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며,나아가 이를 원상복구할 수 있는가다.토목전문가들에 의하면 공사중단 시에는 이미 투입된 토석이 새로운 환경재앙을 초래하게 되며,방조제를 원상태로 걷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또 현상태에서 보강공사를 한다 해도 막대한 공사비와 유지관리비가 소요된다는 판단이다.정부로서는혈세를 낭비한 셈이 되고 어민들은 이미 지급받은 보상비를반환해야 하며 농지분배를 기대한 농민들의실망도 클 것이다. 이제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특히 환경단체가 제기한 새만금호의 수질오염 문제는 대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지난1년여동안 민관공동조사단이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새만금호는 시화호와 근원이 다르지만,상류부의 환경정화 처리시설을 확충함으로써 수질오염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농림부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특히 상류하천 수질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검사하여 담수호 수질보전과 연계한 환경친화적인 공사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새만금사업은 이미 절반 이상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따라서 당초 사업목적인농지조성 위주로 추진하되 관계부처가 합심하여 환경보전 대책을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농림부는일련의 문제제기를 짚어가면서 친환경 간척사업을 완성하는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정호 농촌경제연구원 농정분석실장
  • “”노래인생 40년 기념무대 꼭 보러오세요””

    “팬들의 성원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런 자리가 없었을 겁니다.아무쪼록 공연이 앵콜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물새 한마리’‘영암아리랑’‘날버린 남자’ 등 2,000여 곡을 내놓은 가수 하춘화(46)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경영센터에서 데뷔40주년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오는 23일과 24일 이틀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오를 특별공연의 설명회를 겸한 인터뷰에서 그는 “1961년 10인치 LP판 독집앨범을 처음 냈는데,지금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며 낡은 앨범을 보여주며 운을 뗐다. 그가 데뷔한 것은 6세때.‘효녀심청 되오리다’로 국내 가요사상 최연소 레코드 출반 기록을 세운 이후 지금까지 취입한 곡은 2,000여곡(음반 112집,CD 17매)에 이른다.5,000여회의 개인공연을 가져 지난 91년엔 최다 개인발표회 기록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1970년대 초반 발표한 ‘잘했군 잘했어’(지구레코드)는 30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기록했다. 자신이 부른 노래를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는 그는 “1985년 분단최초로 열린 남북예술인 교환공연때 우리측 여가수 대표로 섰던 평양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노래인생 40년을 돌아봤다. 문화방송이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후원하는 이번 무대는 한국대중가요 70년사를 두루 회고할 수 있는 장으로 꾸며진다.“히트곡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요가 출발했던 30년대 이후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노래들로 프로그램을 채울 것입니다.”“못해도 데뷔 70주년 기념공연까지는 할 수 있을 것같다”며 환히웃는 그는 “대중가요 전문학교를 세워 훌륭한 후배들을 배출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공연수익금 전액은 불우이웃돕기로쓸 계획이다. 황수정기자 sjh@
  • 손지창씨 ‘출생 비밀’ 밝혔다

    인기 탤런트 손지창씨(31)가 1970년대 최고의 아나운서로 꼽힌 임택근씨(71)의 아들임이 밝혀졌다. 손씨는 지난 24일 임택근씨가 아버지이며 자신과 아버지,이복형인 가수 임재범씨(37)3부자가 한달전 함께 만났다고 공개했다.손씨는 “아버지와 형에 대해 중학교 2학년때 알았다”며 “미국에 있는 친지를통해 3부자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손씨는 성이 다른 까닭을 “출생신고때 이모부 성을 따라 호적에 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손씨의 어머니는 미스코리아 충북 대표 출신이며 홀몸으로 손씨를 키웠다.
  • EBS ‘하나뿐인 지구’ 일본특집

    EBS의 환경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는 2월 3일과 10일 일본 특집편으로 ‘가스미가우라로 돌아온 철새들’과 ‘하천복원도 과학이다’를 각각 방송한다. 제1편 ‘가스미가우라로 돌아온 철새들’은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호수인 가스미가우라 호수의 자연생태계 복원을 위해 다양하게 이뤄지는 관(官)과 민(民)의 노력을 소개한다. 일본의 경제발전이 정점에 달했던 1970년대 이 호수는 극심한 오염에 시달려야했다.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해마다 찾아오던 철새들의 발길도 끊겼으며,주민들은 지독한 악취에 코를 막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권위있는 연구기관의 체계적인 이론적 뒷받침과 정부의 일관적인 정책,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등 하천정화를 위한 20년이 넘는노력 끝에 이 호수는 온갖 희귀동식물의 낙원으로 자리잡았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가스미가우라 시민협회의 활동.이들은 해마다 ‘가스미가우라 친환경전’을 자발적으로 개최해 무공해세제, 털실로 짠 수세미,대나무로 만든 친환경접시 등 갖가지 아이디어 상품을 전시,판매하고 있으며,호수 곳곳에 수초가 자라도록함으로써 수질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제2편 ‘하천복원도 과학이다’는 일본 각지의 하천복원 과정을 둘러보면서 무조건적인 개발에서 벗어나 이제는 환경파괴의 최소화에힘쓰고 있는 일본인의 모습을 살펴본다. 일본의 유명한 하천복원 연구단지인 나고야 자연공생센터,친자연하천공법을 도입해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에도 생태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설계된 닛코 국립공원,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하천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는 도쿄 주변 작은 하천의 지류 등이 소개된다. 특히우리나라의 하천복원이 단순히 미관에만 치우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의 하천복원 작업은 작은 동식물의 생태까지 고려해 이뤄지고 있어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장민수PD는 “일본의 생태계복원 작업이 성공적으로 달성되고 있는 것은 정부차원에서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기도하지만 자발적인 시민들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도 주변 자연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자각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윤주기자 rara@
  • [기고] 친일파 재산 비호 더 이상 없다

    우리나라 법정에선 친일 매국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 사유재산이란법리에 의해 보장돼 왔다.매국노 이완용의 재산도 사(私)소유권이라고 해서 자손만대에 걸쳐 법적으로 보장돼 왔다.항일투쟁을 통해 세운 나라라고 하면서 항일에 거역한 민족반역자들의 기득권이 보호되어 온 것이다.이러한 국적불명의 재조 법조계에서 그 사권(사유재산권)보장이란 형식적 허구의 법리를 깬 판결이 나왔다. 지난 16일 서울지방법원 14부(판사 이선희 오현규 서정)는 친일파매국노인 이재극의 상속인의 재산청구소송에서 기각판결을 내렸다.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이재극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협력하였으며,일제강점(합병)후에는 일제로부터 친일매국의 공로(?)로 거액의 합방 하사금과 남작 작위까지 받은 자이다.이러한 행적으로 미루어 봐이재극은 1948년 반민법의 처벌대상자임은 분명하다.그러나 그동안한국의 법원은 매국노 이완용 재산도 보호해 왔다.그러한 친일파 재산의 보장을 옹호하는 법리를 보면 개인의 사유재산권 보장이란 면에초점을 둔다. 가령 친일파 재산이라도 반민법은 한시법으로서 이미실효되었으니 그 재산은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취득,조성됐는지는 따질 일이 아니라는 논법인 셈이다. 참으로 그럴까? 우리의 상식이나 민족적 양심에 비춰봐도 납득이 안될 일이다.우선 무엇보다 법은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정의(正義)감정에 거슬린다.이번 판결은 이제까지의 그러한 법리의 허구를 깨버린것이다. 아무리 사권(私權)이라고 해도 정의를 무시 또는 초월해서존재할 수는 없으며,헌법 전문에 정한 항일구국·민족자주의 건국정신과 헌법 101조의 민족반역자 처벌과 그에 의거한 반민법 규정이 엄연히 국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위반하여 매국노의 재산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밝히고 있는데 1941년 제정한 임시정부 ‘건국강령’에는 부일반역자 처벌과 그 재산의 몰수를 명시하고 있다.헌법 101조와 그에 따른 반민법은 건국이념에 따른 것이다.그런데 이 법의 정신과 법규정을 통째로 배척한 채친일파의 재산을 옹호하는 것은 형식논리의 허구를 내세워 실질적 정의를 유린하고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반민법이 친일파의 훼방으로 말미암아 실시되지 못하였다고 해서 매국노의 반민족행위가 합법화된 것은 아닐 뿐더러 반민족적 매국행위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합법적 보호법익으로 둔갑한 것도 아니다.마치살인행위가 살인범의 방해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안되는,합법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다.미국 연방최고법원도 헌법규정에 위반한 계약약관을 법원이 집행하게 하는 것을 법원이 스스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사법적 집행이론’이란 법리를 일찍부터 판시해 왔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나치의 반인륜 범죄 처벌의 경우와 같이 실질적정의를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을 우선한다고했다.외국의 법리를 들 것도 없이 법원이 민족반역자의 재산을 감싸온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한편 그동안 법원의 ‘친일파재산 비호’판결은 우리 법조계의 친일잔재 온존현상과 무관치 않다.해방후 국내 사법부가 일제하의 사법관료를 주축으로 재편성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960년 4·19혁명으로 사법부의 일제잔재 청산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이듬해 5·16쿠데타로 죄절되고 말았다.이후 사법부 관료는 그야말로 군정관료로서,또는 법(法)기술자로서 군사독재에 복무해 왔다. 일부 기개있는 법조인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나마도 1970년대의 ‘사법파동’이란 진통을 겪고 1972년 유신헌법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사법부의 희미한 독립의 숨통마저 끊어 버렸다.결국 1993년 문민정부의 사법개혁 논의가 있기까지사법부 자체에 의한 민주화 개혁시도는 없었다. 이번 판결의 유지여부는 수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국민적 지지를 얻어낼 것인지,또 사법부의 민족적 민주적 법인식이 이루어지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우리가 이번 일을 강건너 불보듯 방관한다면 언젠가 또다시 친일파의 재산을 비호하는 형식논리의 도깨비 방망이가백주에 위세를 떨치게 될지도 모른다. [한상범 동국대교수·헌법]
  • [데스크 칼럼] 한국 재경부와 일본 재무성

    1970년대 ‘돈(金權)정치’바람을 불러일으킨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일본총리는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그가 주로 도쿄대학 출신 수재들이 모여있는 대장상(大藏相·우리나라 재경부 장관)에 올랐을 때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엘리트 관료집단인 대장성 관료들도 소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다나카를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임명한 것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취임식 날 다나카는 짧은 연설로 대장성직원들의 허를 찔렀다.“여러분은 천하가 다 아는 수재들이고,나는 소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그러므로 대장성 일은 여러분들이 하십시오.나는 책임만 지겠습니다…”.일본 관료사회의 최고 엘리트 조직인 대장성을 이렇게 다스릴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다. ‘나라의 살림을 맡는 큰 곳간(大藏)’이라는 뜻의 일본 대장성이새해들어 간판을 내리고 재무성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100년을 넘는 오랜 역사와 금융 재정 조세정책을 장악,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대장성의 퇴장은 일본 정부조직의 대대적인 축소개편에 따른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랜기간 경제발전을 주도했음에도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부패스캔들의 온상으로 지목받은 대장성의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예산편성 기능 등을 다른 부처로 이관,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했다.일본 경제위기의 중심에 정경유착이 자리잡고 있고,대장성의 과도한 권한이 비리의 근본원인이라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이 21세기를 시작하면서 관료집단 가운데 가장 전통있고 보수적인 대장성을 혁파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우리 재정경제부도 옛 일본 대장성에 못지 않게 엘리트 경제관료들이 모여있는 ‘관청 중의 관청’이다.또 지난 연말 경제부총리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새로운 위상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부총리제의 부활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와 98년2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3년 만의 일이다.재정경제원 해채 후 축소됐던 정책조정권한이 살아나는 등 재경부는 과거 ‘수장(首長) 경제부처’로서의위상을 되찾게 된다.옛 명예를 회복한다는 점에서일단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IMF 환란(換亂) 원죄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총리급부처에서 장관급 부처로 강등당했던 재경부의 권능부활이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위해서 재경부 관료들은 다시 옷깃을 여미고시대적 사명감을 살려야 한다.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옥상옥(屋上屋)’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예산은 기획예산처에,금융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에 떼준 상태에서 재경부가 정책기능 만으로는 경제위기 극복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힘을 몰아준 것이기 때문이다.재경부가 예뻐서가 아니고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긴급 처방적 성격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94년 문민정부가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전격 통합,재정경제원을 발족시킨 명분은 경제정책 수행의 능률과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예산 금융 세제의 경제3권을 재경원 한 부처에몰아넣는 바람에 급기야 공룡부처가 탄생,종래 기획원과 재무부가 나눠가졌던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사라지고 말았다.환란 원죄론도여기에서 파생한 것이다. 일본이 새해 대장성을 없애고 단촐한 재무성으로 출발한 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3년전 공룡 재경원의 폐해를 줄이려고 재경부를 장관급부처로 강등시켰던 것과 일맥상통한 느낌을 받는다.다른 것은 우리는3년의 시행착오 끝에 재경부를 다시 권한을 강화한 부총리급 부처로격상하는 것이다. 기능통합과 분리는 경제여건 및 시대상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있다.어느 것이 꼭 맞고,어디에 꼭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재경부는 앞으로 제2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총제적인 권한과 함께 실질적인 책임까지도 같이 지게 된다. 3년 만에 다시 몰아닥친 경제위기와 부처의 위상강화가 재경부로서는 ‘양날의 칼’이나 다름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일 수도 있는 까닭이다. △정종석 부국장 elton@
  • 佛 기메박물관 한국실 15일 공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동양미술 전문관인 기메 박물관이 108평 규모의 한국실을 마련하여 오는 15일 공개한다.그동안에도 20여평 남짓한 한국 관련 전시공간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에 한국국제교류재단의지원으로 크게 늘렸다. 이 박물관은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고려시대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김홍도의 풍속도병(風俗圖屛) 등 1,000여점의 우리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개관기념전에는 이 가운데 400여점이 출품된다.한국실은 1893년 외교관 콜랑 드 플랑시 등이 수집한유물들을 모아 처음 설치됐다.제1차 세계대전 때는 일부 유물이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1919년 없앴다가 1970년대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서동철기자 dcsuh@
  • [대한광장] 파리에서 본 한국 30년

    해마다 맞는 신년이건만 올해는 감회가 남다르다.파리에서 한국학을가르친 지 30년째라는 개인적 이유에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지난달 29일 프랑스·독일 합작방송 ‘아르테’는 불국사와 석굴암 불상,종묘 등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 세계문화유산을 심층 보도했다.임진왜란 때의 훼손 실태와 두 차례 복구 등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문화적 가치 평가를 덧붙였다. 이 프로를 보노라니 프랑스에서의 한국 이미지 변화와 그와 관련된개인적인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1972년 파리국립동양어대학에서시작,지금 파리7대학교 한국학과에 몸담기까지 한국 역사,고전·현대문학,한문 등을 가르치고 논문을 지도하는 동안 30년이 지나갔다.프랑스 문물을 최대한 배워서 한국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겠다는 계획으로 접어든 유학길이 뜻하지 않게 한국학 교수로 변신한 여정은 아이러니라기보다는 ‘운명’ 같다.힘든 때도 많았지만 한국을 프랑스의가슴에 심는 데 한몫했다는 점에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몇가지 기억을 통해한국 이미지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부각되어 왔는지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불관계는많이 변화해 왔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가는,프랑스에 비친 한국의 위상 변화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따른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내가 유학온 70년대 초만 해도 체류자는 대부분 유학생 및 외교관이었다.당시 프랑스에서 한국 이미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개발도상국 혹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정도였다.1974년에대한항공이 항로를 열고 외환은행을 비롯한 여러 회사의 지점이 들어오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토대가 만들어졌다.그러나 ‘독재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좋은 일로 입에 오르내리지는 못했다.이런 시각은 80년 광주민주화 항쟁때 정점에 달했고 때론 낯부끄러운 질문도많이 받았다. 정치적 오명을 만회하는 유일한 수단이 문화였다.이 역시 간헐적이고 개별적인 공연에 그쳐 큰 반응을 얻기엔 미약했다.그러다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행사와 88올림픽을 계기로 상황이 반전되었고 90년대 들어서눈에 띄게 나아졌다. 해마다 해외문학을 알리는 행사인 ‘벨 에트랑제’가 25주년을 맞은지난 1995년 프랑스는 한국문학에 애정을 쏟았다.시인 고은 황동규를 비롯,소설가 박완서 최인훈 이문열 조세희 윤흥길 등 한국 문인 13명을 초대했다.이 중에는 내가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절판이 될 정도로 호평받은 ‘바람의 넋’의 저자 오정희가 포함되어 개인적으로도뜻깊은 행사이기도 했다. 영화 쪽으로 기억을 돌리면 더 풍요롭다.1993년 퐁피두센터에서 ‘한국영화 70년제’가 열렸다.개관 프로그램의 하나인 ‘서편제’가반응이 좋아 파리시내 개봉관에서 재상영되었다.특히 판소리는 관심의 핵이었다.잔잔하게 퍼지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1999년 ‘파리가을축제’때 ‘한국영화 파노라마’로 이어졌다.‘문화국가’의 수도에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널리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지난해 주불한국문화원 개원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파리 시네마테크’에서열린 ‘춘향뎐’시사회는 장사진을 이뤘고,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이함께 입장하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한국 관련 방송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토론프로도 자주 열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3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1997년 경제위기때 유네스코 대표부를 축소해 한국 문화를 알릴 길이 좁아진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발전이다.이는 정치적 민주화에 힘입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외교의 구실도 무시못할 것이다. 그 속엔 한국의 외교관 및 문화단체 그리고 숨어서 일한 개인들의 노고가 깔려 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이곳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이 ‘문화외교관’자세로 ‘한국 열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도 세계화 혹은 미국화라는 경제 중심의 근시안적 정책개발에서 벗어나 문화를 통한 국력신장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이병주 파리7대학 교수·한국학
  • [외언내언] ‘따로국밥’ 2000년

    일반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중에 ‘따로국밥’이란 것이 있다.원래이 음식은 옛날 장마비가 뻔질나게 내리던 음력 6∼7월 개장국에 백반을 말아 먹거나 보리밥에 파국을 먹으며 각종 질병으로부터 건강을지켜온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제시대부터서민들이 즐겨 먹은 대구지방의 향토음식이다. 해방후 거리에서 국에 밥을 말아 팔던 국밥이 ‘국일관’이라는 건물 안으로 옮기면서 음식수준이 향상되고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밥과국을 따로 내놓은 데서 ‘따로국밥’이라 불리게 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 영남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진출하면서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따로국밥’은 한우 사골뼈 곤물에 우거지와 무·파 등을 넣고 조미료 없이 얼큰하게 끓여낸 국물맛이 일품이다. 밥과 국을 따로 내놓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처럼 ‘따로국밥’은 때로는 서로 전혀 다른 정서를 표현하는 비유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한다.29일 주부전용 포털사이트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이전국 가정주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를 풍자하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따로국밥’이 뽑혔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년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따로국밥’을 방불케하는 일들로 봇물을 이루었다.정치는 여당 따로 야당 따로,경제는 경영자 따로 노동자 따로,또 의약분업사태와 같이 각종 이익단체들이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대립하고 맞섰던 한 해였다.국민의 정서와는 완전히 따로 노는 정말 ‘따로국밥’같은 해였던 것이다. 〈옛날 그때는/따로국밥을 볼 수 없었다/그땐 그랬다/방 하나,부엌하나,뒷간 하나/또 하나 이불/모두 다 하나/지금은 따로국밥 세상/먹기 위해 잠시 몰려들어/잠시후 자신들의 자리로 사라진다/방,두 개세 개/텔레비전도 라디오도/하나는 하나도 없다/지금 여기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따로국밥이 판치는 세상이다.〉(이복순 시 ‘따로국밥’ 전문). 점점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새해에는 동서남북,여야,노사(勞使),국민 모두가 하나가 돼 맛을 내는 ‘섞어찌개’가 ‘올해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뽑혔으면 좋겠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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