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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삼베로 富農의 꿈★ 이뤘죠”/ 전남 벤처농업연구클럽 연합회장 이찬식씨

    1970년대 말만 해도 ‘철커덕 철커덕’하는 삼베(마포)베틀 소리가 농촌 골목을 가득 채웠다.‘삼베바지 방귀 빠져나간다.’는 말처럼 삼베는 시원하고 까실까실해 옛날 남정네들이 여름을 지내기에 그만이었다.하지만 여인네들에게는 한(恨)의 상징이요,끔찍한 유산이었다.물레질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 일쑤였으니 오죽하면 삼밭이 많은 보성으로는 시집가기 싫다고 했겠는가. ●수익 쌀의 3~4배… 염색 삼실 中수출도 이처럼 여인네의 ‘등골을 빼먹던’ 삼베를 예찬하며 ‘잘사는 농촌’을 외치고 있는 자칭 ‘문화대사’가 이찬식(58·전남 보성군 복내면 유정리 옥평마을)씨다.7년 전인 97년부터 ‘보성 삼베랑’이란 상표를 붙여 삼베 한복 등을 지어 판다.누구나 사양사업으로 여기는 삼 농사를 “환금성이 좋아 희망이 있다.”고 고집한다. 그는 “3월 초에 씨를 뿌렸다가 7월 중순이면 수확해 토지 이용률이 높고 자금 순환이 빠르다.”고 말한다. 그가 사는 보성 복내면에는 300여 농가가 대마밭 40㏊를 경작,벼농사보다 최고 3∼4배의 이익을 남기는데,그는 올해 수입된 중국산 삼실에다 전통방식으로 천연염색을 해 중국시장에 700만원어치를 역수출했다고 자랑한다. 지난해엔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4년 만에 한 번씩 윤달(공달)이 들어 뭣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아 수의를 사두려고 한다는 것.이 때 수의(12m짜리 8필)는 한 벌에 250만∼500만원이나 돼 매출액이 서너배 뛴다고 귀띔했다. ●20년 입는 삼베팬티 1장에 7만원 “삼은 자연통풍이 잘되고 항균성·방염성·흡수성·내구성이 좋아 어떤 화학섬유보다 경쟁력이 있지요.통기성이 좋아 자궁암을 예방하고,삼 자체가 레이더에 걸리지 않아 군복으로도 제격입니다.” 그의 삼베 예찬은 끝이없다. 자신이 직접 지은 삼베 팬티 1장에 7만원을 자신있게 요구한다.“비싸지 않느냐.”는 지적에 “한 번 사면 20년을 입을 수 있고 습진도 안걸린다.”며 손사래쳤다. 할머니·어머니가 삼베짜는 걸 보고 자란 그다.농고·농대를 나와 천생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그는 68년 대학 졸업 후 출판사,제과점 등 12년 봉급생활을 청산하고 80년 고향인 보성에 정착했다.이주 3년 동안 공들였던 산간지 개간이 물거품이 되고 빈털터리로 전락했다.예부터 고향인 복내면과 인근 겸백·미력면 등은 삼베 특산지.삼굿(삼을 삶은 솥)이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번성했다. 삼베하면 안동포가 알려져 있지만 지금도 보성산 삼베는 전국 유통량의 절반을 웃돈다.97년부터 저질의 값 싼 중국산 삼베가 밀려오면서 그나마 있던 삼밭들이 문을 닫았다.이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300㏊ 정도이던 삼밭이 80㏊로 줄었다.국내산은 일교차와 토질 등 영향으로 중국산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고품질이다. 그는 97년 정책자금 2000만원과 융자 등 1억여원으로 집 마당에 공장 겸 연구실을 짓고 재봉틀을 들여놨다.전통방식대로 삼베를 짜고 부인(56)이 직접 디자인한 뒤 수를 놓아 한복과 수의,팬티,침대보 등 20여가지를 만든다. 삼 농사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7월이면 2∼3m로 자란 삼 줄기를 잘라 통째로 삶는다.그런 다음 껍질을 벗겨 삼실을 자아 베틀에 올려 베짜기까지 50여차례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기계화가 안돼 예나 지금이나 수작업이다.이씨는 지난 5월부터 삼베에다 쪽으로 천연염색하기와 길쌈놀이 체험 등 전통문화 추억만들기 프로그램을 손수 마련해 삼베 알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불량깻잎 1장도 반품… 유통인식 새롭게 시대가 급변하면서 전통농법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그가 틈만나면 “우리 들과 산에는 돈되는 식물이 무궁무진하다.”면서 ‘고부가가치 농법’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월드컵 땐 직접 목화 화분을 만들어 개당 2만원씩 받고 200개를 팔았다.꽃이 하얗게 핀 목화를 줄기째 잘라놨다가 송이당 600원씩 꽃꽂이용으로도 넘겼다.단옷날 머리감는 창포를 샴푸처럼 만들어 각 가정에 팔면 돈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8년부터는 도내 벤처(틈새) 농업인 500여명이 회원인 도 벤처농업연구클럽연합회 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이들 가운데 3∼4명은 송이버섯과 불미나리즙 등으로 연간 매출액이 억대에 이른다. “전남 장성에 사는 젊은 농사꾼들은 깻잎 한묶음(700원)에도 하자가 있으면 리콜(반품) 합니다.” 이게 바로 감동 판매요,유통의 기본이라고 들었다.외부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그는 어김없이 이를 사례를 든다.면사무소 2층에서 하는 농민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농민들이 유통을 알아야 합니다.유통이란 게 별겁니까.내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팔면 되지요.” ●모시·목화등 자연섬유학교 운영이 꿈 그래서 그는 주문이 들어오면 제주도까지 직접 날아가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고 기어이 ‘단골고객’으로 만든다.한 때 그는 삼베 지키는 일에 매달렸다가 가족들한테 외면당했고,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꿈도 소박하다.삼베와 목화·모시 등을 연구하는 자연섬유학교를 지어 선조들의 얼과 문화가 깃든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이어가는 게 여생에 할 일이란다. 글·사진 보성 남기창기자 kcnam@
  • 포스코 일관제철 가동 30주년

    포스코가 3일 국내 최초의 일관(종합) 제철소인 포항 1기 설비가동 30주년을 맞는다. 일관제철 30주년을 맞는 포스코는 지구둘레를 289바퀴 돌 수 있는 1154만㎞의 열연코일,63빌딩 2331개를 건설할 수 있는 5376만t의 후판제품,소형승용차 2억 8073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1억 843만t의 냉연제품 등 각종 철강재를 공급해 오며 한국 산업발전을 뒷받침해 왔다.30년 포스코 지킴이와 성공신화의 비법 해부 등을 통해 포스코 30년을 되짚어 본다. ■‘30년 고로맨’ 이석인 주임 “정말 일 많이 했습니다.별을 보며 출퇴근하는 것은 당연했고 휴가는 감히 생각도 못했죠.사명감이 없었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로맨’인 이석인(54) 주임은 포스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1973년 2월 입사해 30년을 고로와 함께 살았다. 그는 “고로의 쇳물을 똑바로 보내기 위해 각목을 이용했는데 무더운 여름철에는 숨이 헉헉 막힐 정도”라며 “화장실 수돗가에는 찬물을 끼얹기 위해 직원들이 줄서며 기다리곤 했다.”며 옛날을 회고했다.지금이야 에어컨 시설과 자동화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졌지만 당시에는 사시사철 땀띠를 달고 지냈다고 덧붙였다. 이 주임은 당시에는 기술을 보유한 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반장들에게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 정강이를 맞으면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일을 시킨다면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당연시했고 또 그 만큼 일도 빨리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 사고는 항상 있었다. 1977년 4월 야간 작업중인 직원이 크레인에서 졸다가 쇳물이 쏟아져 바닥 케이블이 타버린 사건이 터졌다.그 결과 작업은 한달간 중단되고 한동안 임직원들이 야간 순찰을 강화하며 눈이 충혈된 직원들을 보며 ‘당신 졸았지.’라고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그 이후부터 포스코는 매년 4월을 ‘안전의 달’로 선포했다. 이 주임은 또 포스코 직원들의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공장 가동 초기에는 직원들이 30∼40분씩 걸어서 출퇴근하다가 점차 자전거·오토바이로 변하다가 지금은 승용차 이용이 많다. 술에 얽힌 얘기도빼놓을 수 없다.포스코의 노란색 유니폼은 술집에서 보증수표였다.노란색 제복을 입고 포항시내 웬만한 술집에 가면 외상이 통할 정도여서 요즈음의 신용카드가 부럽지 않았다. 한번은 사측에서 술로 인한 각종 말썽이 잦자 ‘퇴근후 술을 마시고 싶으면 유니폼을 벗고 마셔라.’는 엄명을 내렸다.반응은 포항 상가에서 먼저 나타났다.장사가 안된다며 들고 일어나 회사측에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요즘에는 일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졌다고 말한다.1970년대에는 3교대로 24시간을 일했으며 작업도 대부분 고로 근처에서 했지만 지금은 4교대로 바뀐데다 작업도 기계가 대신 처리해 격세지감이 들 정도란다. 특히 주5일 근무제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좋지만 정년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벌써 퇴물인가.’하는 불안감도 커졌다고 밝혔다. 이 주임은 “아쉬운 것도 많지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은 평생 남을 것”이라면서 “1973년 6월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나오는 순간에 터졌던 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 ■‘포스코 신화’의 비결 ‘포스코 신화의 비결은.’ ‘산고’끝에 태어난 포스코는 기술·경험·자원이 없는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출발해 지금은 세계 철강업계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외형적으로는 지난 30년간 총 4억 1878만t의 철강재를 생산,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철강 생산국으로 끌어올렸다.또 조선 1위,가전 2위,자동차 6위 등 우리나라 수요산업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내부적으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하에서 성공적인 민영화의 기업 모델로 자리잡았다. ●기적의 주춧돌은 ‘우향우 정신’ 포스코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향우 정신’이 큰 보탬이 됐다.제철소 건립이 실패할 경우 몇몇 사람의 사표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을 각오로 매진하자는 것.당시 건설 현장사무소(롬멜하우스)에서 우향우하면 바로 영일만에 닿기 때문에 우향우 정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은 “4전 5기 끝에 시작한 민족 숙원사업에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선조들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고 책임정신을 역설했다. 당시 103만t 규모의 포항 제철소 1기 사업 규모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경부고속도로 사업 비용의 3배로 모두 1205억원이 투자됐다. ●인사가 만사(萬事) 포스코의 인사 원칙은 청탁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패가 망신’ 정도는 아니지만 인사 청탁자에게는 철저하게 승진,보직,근무지 조정에 불이익을 줬다.일례로 박태준 전 회장이 청와대 고위직에서 인사 청탁을 하자 바로 그 사람을 인사위원회에 회부,권고 사직을 시켰다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인사뿐 아니라 설비와 자재 구매에서도 철저하게 청탁을 배제시켰다.결국 이같은 원칙은 우수한 인재를 적소에 쓸 수 있는 전통이 되었고 오늘날 포스코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시킨 밑거름이 됐다.특히 공기업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무사안일주의도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완벽주의 포항제철소 1후판공장에 참여한 고려개발은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하고 볼트 조립작업도 대충하다 다른 업체로 교체됐다.또 삼부토건은 자재절약이라는 기본 방침을 어겨 공사 도중에 그만둬야 했다.1977년 발전송풍 설비 공사는 도면보다 콘크리트 기초 작업이 10㎝ 정도 덜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폭파를 시키기도 했다.포스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마다 1∼10개월 가량 공기를 단축시켰다.1기 설비는 3년 3개월,2기는 2년 6개월,3기는 2년 5개월만에 준공시켜 갈수록 시간을 줄였다. ●실패에서 배운다 영일만 신화에는 실패도 있었다.그러나 포스코는 과감히 돌아가거나 물러서면서 신축적으로 대응,피해를 최소화했다. 포스코는 1997년 잘못된 설비 확장으로 경영상의 부담을 초래했다.스틸캔 소재 증강사업은 취소했고,광양 2미니밀,광양 5고로 등 건설중인 사업은 중단시켰다.또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한 광양 1미니밀은 전기로를 폐쇄하기도 했다.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거품경제 때 투자된 과잉설비와 저수익 자산은 98년부터신속하게 처리,경영 손실을 최소화했다.”면서 “그러나 철강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없이 투자에 나선 것은 경영상의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근로자가 먼저다” 포스코는 당시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철소 건립에 앞서 직원용 주택단지를 먼저 조성했다.고급인력 유치와 정착을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박 전 회장은 “직원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면서 “직원들을 현장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자녀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포항은 현재 7200가구,광양은 5384가구 등 1만 2584가구가 들어섰다.포스코 임직원이 모두 1만 9169명이니 주택 문제는 사측이 해결해준 셈이다. ●굴뚝과 환경 그리고 IT 포스코는 공해없는 제철소 건설을 위해 지난해까지 무려 2조 3931억원을 쏟아부었다.지난해는 환경설비 운영비로 5000억원을 투자,철강업 고유의 환경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광양제철소 건립 당시에는 한려수도 청정지역의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첫 240m의 오염방지막을 설치했다.포스코는 이와 함께 1998년부터 ‘프로세스 혁신(PI)’을 추진,굴뚝과 IT를 접목시킨 디지털 경영체제를 구축했다.PI는 고객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최적의 통합시스템을 구축,조직 설계와 기업문화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기술의 원조격인 신일본제철이 PI를 배워가 기술을 역수출하는 사례를 낳았다. 포스코는 현재 전사 통합 온라인 경영시스템인 ‘POSPIA’를 가동,납품에 걸리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또 신제품 개발 기간도 종전 4년에서 1.5년으로 단축시켰다. 김경두기자
  • 한국경제 ‘1만弗의 덫’ / 새 성장동력 못찾아 ‘8년 허송’

    한국경제가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95년 이후 8년째 1만달러(지난해 1만 13달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도 경제주체들은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두산중공업 분규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화물연대 및 철도파업 등 일련의 사태에서 보듯 집단·계층·세대간 갈등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재계는 이익집단의 ‘내 몫 챙기기’가 계속 기승을 부리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5월 생산·소비·투자 등 3대 핵심 경제지표는 98년 10월 이후 4년7개월 만에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올들어 5월까지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국내 산업투자의 공동화마저 우려된다.국가경제의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 진입과 중국의 급부상 등 대내외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한국이 앞으로 4∼5년내 2만달러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성장 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1만달러 벽 왜 못 넘나 현재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은 선진국이 경험한 국민소득 1만달러의 함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원은 “1만달러는 한 국가의 발전단계에서 양적 팽창과 질적 성숙의 경계선”이라며 “이 시기에는 의식수준이 높아져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고 성장잠재력이 감퇴된다.”고 설명했다.또 고령화의 진전으로 노동시간이 줄고 규모의 경제효과가 반감되는 반면,성장과 분배논쟁이 치열해져 각 계층의 내 몫 찾기와 이념갈등이 치열해진다고 설명했다. 1만달러 함정에 빠진 것이 저임금을 토대로 국가 자원을 총동원했던 개발시대의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경제주체들이 말로만 경제개혁을 외친 나머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단계로 이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이어 “90년대 초반부터 경제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수차례 개혁을 단행했지만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실패했다.”며 “여전히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이 성행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르헨·타이완의 교훈 아르헨티나는 80년 국민소득이 8000달러선까지 올라갔지만 곧 20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이후 17년 만인 97년 8000달러를 회복한 뒤 지난해 또 20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20년째 반짝 회복과 급락을 거듭하는 ‘M자형’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M자형’ 곡선을 타는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기득권층의 개혁 저항 ▲경제정책 혼선 ▲정치적 공감대 형성 실패를 꼽는다. 실제로 83년 알폰신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화폐개혁 등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으나 기존 경제체제를 고수하려는 노조와 자본가,관료 등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혀 급격한 경제 혼란을 겪었다.지난해에는 마이너스 12%라는 최악의 경기침체를 기록했다. 타이완도 92년 1만달러를 돌파한 뒤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2001년에는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IT산업 침체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2.2%를 기록했다.1인당 국민소득도 2000년 1만 4200달러에서 1만 2900달러로 떨어졌다.수출증가율도 2000년보다 17%가량 하락했다. 타이완의 문제점은 IT산업을 대체할 만한 신수종 산업을 아직 발굴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2만달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새 성장 엔진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되면 국가경쟁력이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새 성장동력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야 하는데도 1만달러 시대에서 내 몫을 찾겠다고 서로 나서면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이어 “지금은 성장에 역점을 둬야지 나눌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지금은 제 몫찾기보다 파이를 서둘러 키워야 할 때”라며 “국민과 정부,근로자,경영자가 한발씩 양보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이 (복지·분배를 강조하는) 유럽형 정책을 따라 간다면 4% 성장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독일·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조 편을 들 경우 생산성이 감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1만달러 시대를 이끌어 온 전통산업을 대체하는 세계 1등기업,1등상품을 많이 육성하지 않으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2만달러 시대 진입의 선결조건으로 금융시스템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꼽았다.김 교수는 “금융개혁은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 변동에 따라 휘둘리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단기적인 처방으로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어렵다.”고 밝혔다. 박건승 김경두기자 ksp@ ■‘2만弗 돌파’ 선진국 사례 ‘2만달러 돌파,지금이 중요하다.’ 영국,스웨덴,핀란드는 모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의 기준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아일랜드는 외환위기 직전에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선진국에 도달했다. 이들 국가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기까지 추진했던 정책과 국민 대화합은 최근 ‘마(魔)의 2만달러’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특히 시장,자본,생산시설 등 모든 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2만달러의 벽을 넘었던 이들 국가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대상이다. ●아일랜드 ‘유럽 변방에서 정보기술(IT) 대국으로’ 유럽의 변방인 아일랜드는 1987년 실업률이 20%를 상회했고 국가 채무도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할 정도로 국가 경제가 파산 직전이었다. 그러나 현재 영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앞다퉈 투자를 하고 있다. 비결은 뭘까. 우선 외국인 투자 유치를 들 수 있다.아일랜드는 독자적으로 산업을 일으킬 만한 자본이 없다는 판단 아래 외국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제도와 법을 뜯어고쳤다.IBM,애플 등 IT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섰고 그 결과 전체 제조업 생산의 40%가 외국 투자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특히 해외 투자 유치는 1990년대 중반 30억달러에서 2000년에는 200억달러 이상으로 늘어났다.이와 함께 노동자,기업,정부가 고통 분담에 나서며 임금인상 제한,일자리 창출,조세 감면 등을 통해 사회안정에 성공했다. ●금융구조조정에 성공한 핀란드 휴대전화 ‘노키아’로 상징되는 핀란드도 1990년대 초반 현재의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기업은 문어발식 경영,국민들은 저금리를 이용,부동산 투기와 사치성 소비를 일삼았다.결과는 외환위기로 나타났다.옛 소련이 붕괴되고 유럽 대륙이 경기 불황에 시달리면서 거품 경제는 급속도로 무너진 것.방만한 대출로 은행들은 부실 덩어리로 바뀌었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이를 극복하는 구조조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정부는 부실 금융을 정리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은행간 대규모 합병에 나섰다.노조도 불가피성을 인정,인력 감축과 임금 동결에 동의했다.과감히 실업수당을 제시하며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했다. 이같은 금융구조조정은 핀란드를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들었다. ●‘영국병’을 치유한 영국 1970년대 노사분규와 외환보유고 부족에 시달렸던 영국은 대처 총리가 등장하면서 과도한 복지로 인한 ‘영국병’ 치유에 나섰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복지분야 축소 등 10년간의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은 병든 영국을 젊은 영국으로 변화시켰다. 2000년 현재 영국은 경제성장률 2.8%,실업률 3.5% 등 유럽국가중에서도 견실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김정일 좌충우돌 성격”처형 성혜랑씨 타임인터뷰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극단적이며 일률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김정일의 처형 성혜랑(成蕙琅·사진·67)씨가 23일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성씨는 서방 언론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위험한 미치광이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해 “만약 당신들이 그에 대해 악의 편이라는 한 측면만 기술한다면 나머지 절반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성혜림은 북한의 영화배우 출신으로 지난 1970년대 김정일 위원장과 사귀다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31)을 낳았으나 김일성 주석에게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연합
  • [길섶에서] 앵두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유행가 가락을 조리며 종로를 지나다 무심코 보신각공원을 들여다보니 빨간 열매가 가득한 앵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랫말이 있듯 공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초 농촌마을 우물가에서 서울로의 줄행랑을 모의하던 시골 처녀들과 함께 앵두나무도 도망왔나 하는 생각에 실없이 웃는다. 조선 초기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앵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해서 효자인 문종은 세자시절 경복궁 안 울타리마다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를 따다 바쳤다.이에 세종은 ‘다른 앵두가 맛있다 해도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겠느냐.’며 흐뭇해했다고 한다.한양 궁궐의 앵두나무 역사도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성종때 철정이란 관리가 임금에게 앵두를 진상해 활을 하사받았다는 기록도 있다.앵두 한 쟁반으로 임금의 환심을 샀다는,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앵두나무 하나에도 이렇듯 얽힌 사연이 구구하다. 김인철 논설위원
  • [스포츠 라운지]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여고생 이·해·림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고생 이해림(17·개포고 2년)의 꿈은 ‘철녀’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국내 유일의 트라이애슬론 여자 국가대표선수다.아직 나이가 어려 공식적으로는 주니어대표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실력만큼은 국내 최고다.시니어엔 아직 여자 대표선수가 없다.지난 4월 대표선발전에 몇 명의 여자선수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이 정한 기준기록에 미치지 못해 탈락했다.때문에 여자 트라이애슬론의 선두주자로서 이해림의 존재가치는 높다. 학교에선 말수가 적고 얌전한 편이다.같은 반 친구들은 ‘철인’ 또는 ‘철녀’라고 부르지만 교복을 입은 그녀는 영락없는 ‘범생이(모범생)’ 타입의 보통 여고생이다.그러나 일단 훈련을 시작하면 180도 달라진다.이를 악물고 쓰러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트라이애슬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당시 집 근처에서 수영을 배우면서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나가게 됐다.수영은 자신 있었고 사이클과 달리기는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할 수 있다는생각에서 겁도 없이 도전했다.그러나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첫 출전한 경기에서 생각보다 좋은 기록이 나오자 금세 트라이애슬론에 빠져들었다.본격적으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현 국가대표 주니어감독 곽경훈씨의 눈에 띄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곧바로 주니어대표에 발탁됐다. 그녀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그것도 비인기종목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힘이 컸다.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는 운동을 통해 딸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견문을 넓히기를 바란다.요즘은 저녁훈련이 끝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회화 학원에 간다.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출전 등으로 외국 나들이가 잦은 만큼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정상을 위해 늘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들 부녀의 공통점이다. 친구들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그녀의 대답은 한결같다.“재미있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즐거움은 대단하다.부모님도 훈련이 너무 힘들어 보여 그만두라는 말을 자주했지만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는다. 훈련은 일찍 시작된다.새벽 6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사이클과 달리기를 한다.온몸은 녹초가 되지만 샤워를 한 뒤 학교로 향한다.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오후 4시부터 또다시 훈련이 시작된다.이제는 수영연습까지 한다.요즘에는 낮기온이 한여름과 다를 바 없지만 훈련을 멈추지는 않는다.경기가 한낮에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전적응을 위해 더욱 열심이다.4시간의 훈련이 끝나면 파김치가 된다.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일요일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사이클 훈련을 할 때가 많다.빡빡한 훈련 때문에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이 없다.그녀의 가장 큰 불만이다.하지만 트라이애슬론을 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자신감이라는 큰 재산을 얻었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전체 상위 15% 안에 들 정도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한다.남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적은 탓에 수업시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선생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녀의 1차 목표는 올림픽 출전.우리나라는 아직 올림픽 출전권을 딸 정도의 수준도 안 된다.올림픽은 세계랭킹순으로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우리나라 선수는 세계랭킹에 올라 있지도 않을 정도다.모두 200위권 밖이다.나이가 아직 어린 그녀는 2008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물론 기회가 오면 내년 아테네올림픽 출전도 노려볼 참이다.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의 메달을 따내 진정한 ‘철녀’가 되는 게 그녀의 꿈이다. 글 박준석기자 pjs@ 사진 도준석기자 pado@ ■트라이애슬론이란 트라이애슬론(Triathlon)은 라틴어의 ‘Tri(3가지)’와 ‘Athlon(경기)’을 의미하는 단어의 합성어로 한 선수가 수영 사이클 달리기 등 세 가지 경기를 하는 것이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됐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급속히 확산돼 현재 130여개국 2000만명 이상의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수영과 사이클 및 달리기는 유산소 운동으로서 운동을 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를 우리 몸에서 만들 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줘야 하는 운동이다.이처럼 트라이애슬론은 3대 유산소성 운동을 한 사람이 연속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심폐기능과 지구력이 강해야만 완주할 수 있다. 거리에 따라 아이언맨코스(수영 3.9㎞,사이클 180.2㎞,마라톤풀코스 42.195㎞)와 올림픽코스(수영 1.5㎞,사이클 40㎞,달리기 10㎞)로 구분된다.주니어코스는 올림픽코스의 절반거리다.요즘은 올림픽코스를 보통 트라이애슬론이라고 부르고 아이언맨코스는 ‘철인 3종경기’라고 일컫는다. 국내 등록선수는 2000여명이며,40여개 동호회에서 3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2004년 전국체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일본은 등록선수 5만명과 동호인 50여만명을 거느리고 있으며,한 해 120여개의 대회가 열린다.
  • 안산시, 드라마세트장 유치

    경기도 안산시 고잔신도시 한복판에 1만 9000평 규모의 대단위 드라마 야외세트장이 설치된다.시는 오는 10월부터 방영될 SBS 정치 드라마 애정만세(가제)의 촬영 세트장을 고잔신도시 호수공원 인근 공공청사 부지(1만 9000평)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8월 말까지 35억원을 들여 경무대,궁정동 안가,선운각,한옥마을 등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시대상황을 생생히 보여줄 세트장을 건립하기로 했다.특히 청와대 뒷산 인왕산과 경무대의 모습을 호수공원 가운데 있는 동산을 배경으로 지상 2층,연면적 200평 규모로 재현할 방침이다. 시는 촬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후속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하고 안산에 소재한 서울예술대학 학생들이 세트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시 관계자는 “세트장은 20만평 규모의 호수공원과 인접해 있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
  • [LOOK 아시아]4부 21세기 변해야 한다 - 동북아 경제질서 재조명 좌담

    21세기 세계경제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미국·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이 3대 경제중심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속의 동북아’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한국·중국·일본의 역할은 무엇이고,3각 협력체제가 가능할 것인가,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전문가 좌담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과제 등을 재조명해 본다. ●동북아 시대의 개막 전홍택 부원장 새 정부는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채택했다.그 핵심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허브(Hub)가 되는 것이다.중국은 급속한 발전을 통해 세계 경제의 중심 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동북아의 번영과 정치적 안정,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네트워크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이는 단순히 시장개방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장점 등을 활용해서 네트워크의 연결고리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 논의의 요체다. 이석영 부회장 우리가 갖고 있는 조건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인력과 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즉 어떻게 하면 유능한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느냐가 당면한 과제다.패러다임(Paradigm)을 바꿔야 한다.개인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려면 지금까지 알고 행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김칠두 차관 우리는 개인소득 1만달러에 8년째 머물고 있는데,이제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을 때가 됐다.동북아 시장의 잠재력은 크다.중국의 경제적 가치는 1960년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0%나 되고 있다.우리는 주변국들과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중국의 허와 실 전 부원장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하고 있으나 그 나름의 그늘이 있다.오늘날에 와서 거대한 국영기업을 구조조정하려니까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국영기업의 부실채권 등은 금융권의 부담으로 넘어갔다.이 점은 지금 중국 경제의 뇌관과도 같다.정치적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에서도 드물게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나라이다.하지만 최근 ‘서부대개발’ 사업을 보면 경제논리 보다 여전히 정치논리가 앞서고 있다. 이 부회장 중국은 우리가 1970년대에 겪었던 용광로와도 같은 성장시대를 맞고 있다.고도성장이 끝나면서 우리에게 드러난 문제점이 중국에서도 가시화될 것이다.하지만 빈부격차,인종격차 등 중국 스스로 감내할 문제도 있으나 이는 차후의 문제다.우리가 중국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경쟁 상대국으로 대하면 된다. 김 차관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중국의 지역간,계층간 갈등 문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으나 출장 등을 가보면 최고 지도자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더라.성장 주도의 정책을 펴면서 그것의 역작용이 부각되지 않도록 조직력이나 행정력을 동원,조정할 것이다.규모가 크고 다양한 국가인 만큼 정치와 경제를 합리적으로 분리한 시스템을 갖췄고,권력교체도 어느 민주주의 국가 못지않게 평화적으로 쉽게 이뤄냈다. 전 부원장 중국의 ‘놀라운 리더십’ 외에도 미시적인 제도중에는 우리가 배울 점들이 도처에 있다.베이징대학 등의 고급두뇌 교수들을 보면 교수마다 연봉의 격차가 매우 크다.우리 현실로는 어려운 얘기다.경제특구의 고용계약을 봐도 근로자 각자와 맺은 개별적인 계약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우리가 중국과 아직은 기술격차가 있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한·중·일 경제협력 모색 이 부회장 한·중·일간의 경제협력이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는 3개국이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데 있다.우리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웃 일본도 변화·발전해야만 한다.서로가 윈·윈(Win·Win)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이렇게 되려면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아시다시피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도 상당한 불신이 깔려있다.그래서 부드러운 문화적 협력이 우선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독일과 프랑스도 널리 알려진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으나 지금은 유럽연합의 핵심 축으로 잘 협력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관계를 맺기에 앞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서로의 관계가 종속적으로변질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일본과 경제협력을 한다면 당장의 문제로 대일 무역적자 해소의 어려움,국내 산업의 예속화,농산물의 비관세 문제 등이 고민될 것이다.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가 3개국의 리더가 되려면 과감하게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 김 차관 지금 3개국은 모두 세계화를 주장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외치고 있다.이것이 근본적인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지정학적 구조만 보더라도 언젠가 3개국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가능한 부분부터 지금 시작을 해야 한다.이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3개국이 막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일본과는 FTA 등을 우선 푸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FTA 문제는 그동안 민간과 학계 중심의 논의에 그쳤으나 이제 정부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양국의 기업은 서로 이익이 남는 쪽을 찾으려 할 것이다.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어떤 베이스(Base)를 찾으면 국가간의 관세장벽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일본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으나,부품·소재 산업의 경우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기술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생산거점을 아예 한국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리의 생산기지가 기업환경이 나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상황이다.한·중 관계는 한·일 관계보다 풀기 쉬운 편이다.결국 우리가 중심이 되기 위해선 먼저 얘기를 꺼내고 중간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 강화 전 부원장 우리나라가 동북아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한 전략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이 동북아 경제물류의 중심이 돼야 한다.세계적인 물류 기업을 적극 유치해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둘째 우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물류산업의 구성만으론 발전의 한계가 있다.전통 주력산업의 클러스터(Cluster)를 육성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셋째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는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와 관련된 전문 비즈니스 인력을 개발해야 한다.해외의 고급두뇌 유치가 핵심이 될 수 있다.연구개발(R&D)센터,산업제휴단지 등도 조성해야 한다. 이 부회장 이제 ‘제조업 베이스’만으론 어렵다.제조업에다 서비스가 바탕이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내·외국인들이 함께 우리 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관치 경제가 민간자율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싱가포르는 2018년까지 내다본 장기발전전략을 만들고 있다.우리도 내 임기동안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선택과 집중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 차관 중국은 경제성장의 방향을 자국에서 조립생산해 다양한 완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일본은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의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여기서 우리의 갈 길에 대해 “잘못하면 양국의 중간에 끼어서 제대로 방향도 잡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할 수도 있으나 이는 기우다.우리의 부품·소재산업 등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자부는 그가능성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물류 중심의 거점 확보는 남북한과 동·서로 이어지는 1일 생활권이 보장되면 가능하다.인천국제공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동북아 경제권의 과제 이 부회장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을 중국이나 일본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따라서 쓸데없이 말 잔치만 요란한 것은 그들의 불필요한 경계심만 부른 뿐이다.우리가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양보할 것을 양보한다면 그들이 먼저 한국이 중심이 되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정부가 너무 외형적인 부분에 치우쳐 중심을 잃어선 안 된다.물류 규제를 하나 더 풀고,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면 실속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요란만 떨지 말고 반성하자는 말이다. 전 부원장 물류 중심으로 가든,아이덴티티(Identity) 중심으로 하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자는 것이 결론적인 메시지다.과거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던 경제협력이 FTA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논의의 핵심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여기엔국제정치적 고려와 미·일의 역학적 관계 등에 대한 분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김 차관 이제는 우리가 함께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더 이상 파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주변국에 우리 것을 나누어 주고 배울 것은 배우고,이용할 것은 이용하자는 자세가 필요하다.M&A(기업 매수합병)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낫다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우리가 중심국으로 서는 데 스스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경제를 아는 사람은 말보다 내용을 하나하나씩 개선하는데 더 큰 무게중심을 둔다.다만 동북아의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데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중한 고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담 진행·정리 주병철 김경운 기자 kkwoon@
  • 아니시 카푸어 조각전 / 虛공간 實공간 그 조화의 세계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원반.그 매끄러운 은빛 표면 앞에 서면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 것 같다.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 속 이미지는 어지럽게 일그러지고 요동을 친다.작품과 환경과의 기기묘묘한 조응…. 인도 출신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49)의 작품 ‘무제 2003’은 ‘뒤집어진 세상’을 풍자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카푸어는 물질을 물질로만 바라봤던 기존의 오브제 작업을 넘어선다. 눈에 보이는 물질의 속성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물질의 속성까지도 오브제 자체에서 드러나게 한다.요컨대 허공간과 실공간을 함께 보여주며 그 상호관계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그의 작품이 착시를 일으키며 ‘요술’을 부리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니시 카푸어’전은 이같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다. 카푸어는 1970년대 초 고국인 인도를 떠나 영국 런던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그곳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브론즈·사암·대리석·석판·유리섬유 등 다양한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는다. 자신의 작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길 꺼리는 그는 “의미를 앞세워 작업하는 게 아니라,작업하다 보면 의미가 저절로 생겨난다.”며 느끼는 그대로 봐줄 것을 당부한다.전시는 29일까지.(02)735-8449. 김종면기자
  • 클로즈업 / KBS1TV ‘역사스페셜’

    KBS1 ‘역사스페셜’(연출 공연철·오후 8시)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아프리카 가봉의 봉고 대통령의 이야기를 통하여 당시 남북한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외교전을 되돌아본다. 세 차례나 한국을 찾아 국가원수로는 가장 많은 방한 횟수를 기록한 봉고 대통령.1975년 방한 때는 기념 우표와 기념 담배가 만들어졌을 만큼 극진한 국빈 대우를 받았다.3박4일 체한 일정 내내 일간지의 1면과 TV의 톱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1960∼1970년대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과 북한은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의 지지를 얻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봉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과 접촉하고자 선택한 ‘접속 채널’을 봉쇄하기 위한 견제책이기도 했다. 제작진은 봉고 대통령이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받은 김일성의 친서를 공개하고,현재까지도 가봉의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봉고 대통령을 찾아가 당시의 외교 비사를 직접 듣는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씨줄날줄] 마천루의 저주

    구약성서 창세기에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노아의 후손들이 시날(바빌로니아)에 정착했다.그들은 벽돌을 굽는 신기술을 발견했다.도시를 건설하고 하늘에 닿게 탑을 세워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려 했다.하늘에서 내려다본 하느님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하느님은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란시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건축이 중단되게 했다.바벨탑의 붕괴는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그러나 하늘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계속됐다. 거대한 건물을 세우려는 배경에는 인간의 과시욕과 도약정신 그리고 권력 의지가 있다.건축물을 통한 권력 의지와 욕망의 과시는 고대뿐만이 아니라 현대에도 마찬가지다.그러한 시도는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인류의 삶을 향상시킨 과학기술 발달의 원동력이었다. 미국은 1931년 뉴욕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축했다.102층의 381m다.1971년에는 뉴욕에 417m,415m 높이의 110층짜리 쌍둥이 건물인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졌다.1974년에는 시카고에 110층 443m의 시어스 타워가 건축됐다.1998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421m 높이의 진마오 타워가 등장했다.현재 가장 높은 건물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 있는 452m 높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다. 그 건물보다 더 높은 세계 최고의 건물이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건설된다.130층 580m 높이의 국제비즈니스센터다.2008년 완공 예정이다.그러나 세계 최고 건물이 지어질 때는 바벨탑의 저주처럼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가 있었다고 한다.블룸버그 통신의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세계 최고 건물 건설에 나섰던 나라들은 금융위기를 맞았다고 밝혔다.초대형 빌딩의 건설은 과잉투자 등의 경제거품을 유발하기 쉽다는 것이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완공된 1990년대 후반에는 말레이시아에 금융위기가 왔다.세계무역센터와 시어스 타워가 건축된 1970년대에는 미국의 물가가 폭등하고 뉴욕시가 재정위기에 빠졌다.페섹 칼럼니스트는 그러나 한국은 어려운 작업을 잘 수행하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마천루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순 논설위원
  • 미 언론소유규제 철폐 / 5년내 신문·방송 절반 문닫는다

    미국의 미디어시장을 감독하는 정부기구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일(현지시간) 텔레비전의 시청자수를 제한하고 신문·방송 교차소유를 금지하는 규정을 대폭 완화화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미디어 소유제한 완화 결정으로 미 미디어업계에는 수개월 안에 인수·합병바람이 불기 시작해 5∼10년 안에 새 미디어 지도가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다.경우에 따라 한국을 포함,전세계 언론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번 결정의 파장을 살펴본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아들인 마이클 파월 위원장 등 FCC의 위원 5명은 이날 회의에서 3대 2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민주당 위원들은 규정 개정에 반대표를 던졌다. FCC의 이번 결정으로 인수합병 러시가 예상된다.그러나 경기침체로 경영사정이 나쁘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들이 많아 인수작업이 급속하게 진행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미디어그룹들.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NBC,CBS,ABC,폭스 등 4대 지상파 방송사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애틀랜타·디트로이트·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에서의 AOL타임워너를 포함한 ‘빅5’의 지역 방송국 인수가 매우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카고 트리뷴과 LA타임스 등을 소유하고 있는 트리뷴그룹과 가네트,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도 지역 방송사 인수에 나설 채비다.대부분 100대 방송사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어 5년 안에 문닫는 중소 방송국과 신문들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1996년 단행된 라디오 방송국 소유제한 완화로 7년 만에 라디오 방송국은 30%나 준 대신 클리어 채널은 방송국 수가 43개에서 1200개로 급증했다. ●대형 미디어그룹들 큰 수혜 미디어그룹의 대형화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지방화·다양화·경쟁 촉진 대 중앙집중화·획일화·독점 등 입장이 완전히 상반된다. 파월 위원장은 이날 “이번 결정은 다양성과 지방화라는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라면서 뉴미디어가 출현하기 전인 19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규정은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데다 법원으로부터 재검토 판결이 내려진 만큼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규모의 경제를 적용,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미디어그룹들이 지방 방송사들에 보다 질높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또 누구나 수백개의 케이블과 위성TV채널,인터넷에 자유롭게 신청,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 독점과 여론의 획일화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다.지상파 네트워크사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지방 방송사들은 이들의 입김이 거세져 지역뉴스가 설 자리를 잃고 방송이 획일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매체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CBS(비아콤),ABC(제너럴 일렉트릭),NBC(월트 디즈니),폭스(뉴스코퍼레이션),CNN(AOL타임워너) 등 소수 대형 미디어그룹들이 이미 이들 매체에 제공하는 콘텐츠의 70%를 점유,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다.따라서 소유제한이 완화되면 지상파 방송에서 케이블 방송,영화제작사,인터넷까지 거의 모든 미디어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 극소수 언론 재벌의 영향력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다양한 목소리는 제한되고,극소수 미디어엘리트가 무엇을 읽고,보고,듣는가를 결정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민주당측 위원인 마이클 콥스는 “FCC는 미국의 새 미디어 엘리트들에게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가 의존하고 있는 아이디어와 정보에 대한 허용할 수 없는 수준의 영향력을 부여했다.”고 비난했다. ●반대 목소리 커 후유증 심각할 듯 공화·민주 양당 모두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미국여성기구(NOW),전미가톨릭추기경위원회,시민권리위원회,미국작가협회,TV학부모위원회 등 소비자와 민권단체 등은 물론 심지어 보수집단의 대명사인 미국총기협회(NRA)까지 반대대열에 가세했다. 상당수의 공화·민주 의원들은 결정 직후 언론사 소유제한 규정을 원래대로 복귀시키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공화당 상원 지도자를 지낸 트렌트 로트 의원은 “이것은 소속당이 어디냐의 문제가 아니다.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150여명의 상·하원 의원들은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에 대한 심도높은 검토를 할 수 있도록 FCC에 최종결정을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시민단체와 미디어그룹 모두 이번 결정에 불만,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어서 법원의 최종 결정을 남겨놓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소유규제 완화 주요내용 ●TV -미디어 기업이 텔레비전 전파로 도달할 수 있는 시청가구를 미국 전체 TV 시청가구의 35%에서 45%로 높임. -TV방송국이 5개 이상인 지역의 경우 한 기업이 2개까지 소유 가능,뉴욕과 로스앤젤레스처럼 18개 이상의 방송국이 있는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3개까지 소유 가능.단,4대 공중파 방송사간 합병 금지. ●신문·방송 교차소유 -도시 등 한 미디어 시장(9개 이상의 TV방송국이 있는 지역)에서 한 기업이 신문과 방송을 동시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규정 사실상 폐지.단 3개 이하의 텔레비전 방송국만 존재하는 최소 규모 시장에서는 신문·방송 교차소유 계속 금지. ●라디오 -라디오 방송국이 45개 이상인 지역에서는 최대 8개까지 소유 가능.
  • [대한포럼] 1000억 달러의 행방

    ‘무역흑자가 나면 부동산 값이 폭등한다.’ 대다수 경제학자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아마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나라경제의 대외적 수입과 지출인 국제수지와 국내의 부동산 가격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혹시라도 이에 관한 연구논문이 있지 않을까 싶어 관련 기관들의 자료DB를 검색해 보았으나 단 한편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 말이 맞는 것 같다.두번의 경험이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97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우리 경제가 무역흑자 기조를 유지했던 때는 딱 두번 있었다.두번 다 엄청난 부동산 값 폭등을 가져왔다.우연의 일치라고 넘기기에는 두번의 사례가 너무도 닮은꼴이다. 첫번째는 1986∼1989년 사이다.우리 국민들은 당시의 ‘3저 호황’을 잘 기억할 것이다.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다 올림픽 특수까지 겹쳐 우리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렸다.그 4년 동안에 3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문제는 그 다음이다.1990∼1991년 사이에 전국은 극심한 투기열풍에 휩싸였다.자고 나면 집값,땅값이 뛰고 전셋값까지 덩달아 치솟아 거리에 나앉게 된 서민들이 속출했다.정부는 당시 위헌논란을 감수해가며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기업이 보유한 비업무용 토지를 강제 매각토록 하는 등의 초법적 조치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똑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다.우리 경제는 지난 1998∼2002년까지 5년 연속 총 10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흑자기간이 끝나자마자 수도권과 충청지역 일대에서 그 망국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지난주 서울 강남에는 분양가가 28억원이나 되는 아파트가 등장했고,평당 3000만원이 넘는 아파트도 곧 분양될 것이라고 한다.서민들은 1년간 번 돈을 한푼도 안 쓰고 저축해도 이 아파트 한 평을 못 산다는 얘기가 된다.정부가 무려 3000명에 달하는 국세청 직원들로 투기억제 기동타격대까지 편성해 부동산 시장에 투입하는 등 열심히 뒷북을 치고 있지만 투기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망국병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 열풍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두번의 사례를 근거로 무역흑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대외무역에서 수년동안 누적된 흑자가 기업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고스란히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투기 열풍의 에너지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마치 적도 부근에서 생긴 열대성 저기압이 점차 북상하면서 뜨거운 습기를 빨아들여 무시무시한 태풍으로 발전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지난주에 발표된 한 통계자료는 이런 상황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잔액은 지난 99년말 130조원이었다.이것이 지난 4월말 현재 260조원으로 무려 130조원이나 늘어났다.어디에서 그 많은 자금이 한꺼번에 부동산 시장에 흘러갔을까.지난 5년간의 무역흑자 1000억달러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20조원.우리나라가 외국과 장사를 해서 어렵게 벌어들인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돼 집값과 땅값 폭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가 유난히 강하다.‘한푼 두푼 벌어 땅에 묻어두라.’는 재테크 격언에는 한국인의 이런 성향이 잘 나타나 있다.우리는 무역에서 번 돈을 기업에 끌어들여 설비확장과 기술개발 등 지속 성장을 위한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대신 고스란히 아파트와 땅에 묻었다.정부는 1986∼1989년의 뼈아픈 실책을 경험하고도 소중한 무역자본이 투기자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두번의 흑자관리 실패 경험을 통절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염 주 영 논설위원 yeomjs@
  • [녹색공간] 치산녹화 30주년의 의미

    올해는 국토를 본격적으로 녹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한 세대 만에 일구어낸 국토의 완전녹화는 지난 수백년 동안 지속된 산림황폐의 질곡에서 이 땅을 해방시켰다.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그 사업의 성격이나 의미에 대해 관심이 없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푸른 숲을 자연이 만들어 준 선물인 양 치부하며,그저 휴양과 위락의 대상으로 즐길 뿐이다. 1973년부터 시작된 제1차 치산녹화 사업은 속성수와 유실수 조림으로 국토재건과 농촌소득 증대를 꾀했고,1979년부터 시작된 2차 치산녹화사업은 21개 조림수종으로 경제림 단지를 조성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1차 및 2차 치산녹화사업은 212만㏊의 인공림,20만㏊의 연료림,12만㏊의 산지 및 해안사방림 조성으로 이어졌고,새롭게 조성된 이들 산림은 1988년부터 10년 단위로 전개된 3,4차 산지자원화 사업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치산녹화 30주년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먼저 국토녹화로 얻게 된 민족적 자긍심을 들 수 있다.각국의 산림학자들은 한국을 독일·영국·뉴질랜드와 함께‘세계4대 조림 성공국’의 반열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그리고 국제기구나 세계 유수의 언론은 한국의 국토녹화 사례를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다.30년이란 짧은 시간에 국토를 녹화한 것이 그렇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루어낸 성취이기에 그렇다. 치산녹화 30주년의 의미는 생명 환경자원의 확충에서도 찾을 수 있다.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고자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맑은 물,깨끗한 공기,아름다운 풍광 같은 소중한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다.지난 세월의 압축 고도성장은 엄청난 국토훼손과 환경악화를 불러왔지만 다행스러운 사실은 헐벗은 산들을 이 기간에 푸르게 녹화하여 국부의 원천인 산림을 생명 환경자원으로 확보한 점이다. 치산녹화 30주년의 또 다른 의미는 북한의 헐벗은 산림을 생각하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남한보다 더 울창한 산림을 보유했던 북한은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던 1970년대에 다락밭 개간과 무분별한 벌채로 산림 황폐를 심화시켰으며,오늘날은 우리 산림축적(㏊당 70㎥)의 절반 수준으로 전락하여 가뭄과 홍수의 고통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재생적 산림이용’과 ‘약탈적 산림이용’으로 대별되는 남북한의 산림 이용 방식은 남한의 울창한 산림이 생태적 재앙의 완충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에 북한의 헐벗은 산림은 생태적 재앙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치산녹화 30주년의 의미는 오늘날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녹화경험의 해외전수에서도 찾을 수 있다.중국과 몽골의 사막화 방지 사업에 정부와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실이나 산림이 훼손된 제3세계의 산림전문가들을 교육시킴으로써 국가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는 현실은 앞선 세대의 국토녹화 덕분에 오늘의 세대가 누리는 민족적 긍지이다. 산림의 속성상 치산녹화는 한 세대의 사업으로 완료될 수 없다.앞선 세대가 기반을 조성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쏟았으면 오늘의 세대는 내일의 세대를 위해 가꾸고 지킬 책무가 있다.옳은 산림은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낼수 없다.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고 밝히는 산림헌장을 상기하면서 치산녹화 30주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전 영 우 국민대 교수 산림자원학
  • [열린세상] 남미형 경제추락?

    기업인들은 경제가 IMF 시절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화물연대 파업이니 NEIS 파동이니 사회가 요동친다.인터넷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변절’을 둘러싸고 연일 공방전이 오간다.뭐가 한참 꼬였다.이럴 즈음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소위 경제의 ‘남미화’다.유럽형으로 갈 것인가,남미형으로 갈 것인가?우리는 카산드라 크로스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N자 커브냐,M자 커브냐 그것이 문제라고 한다. 학자나 언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마치 애국자처럼 해댄다.이들 논리를 요약해 보자.“남미형 국가 특징은 분배 지향적,인기 영합주의,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상승”이라고 지적한다.“인기에 매달리면 남미처럼 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며 “인기 영합주의 정책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이들이 즐겨 애용하는 M자 커브 사례는 아르헨티나다.“아르헨티나는 1980년 1인당 국민소득 8000달러 가까이 달성한 뒤 2000달러 밑으로 내려 갔다가 20년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논법은 너무 피상적인 관찰과 아전인수식 해석에 기초해 있기에,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노·사·정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할 구조조정의 문제를 근로계층의 임금상승 압박 문제로만 보는 근시안적인 태도이다.하나씩 따져보기로 하자.첫째 분배지향을 남미형 국가의 특징으로 삼고 있지만,지난 20년간 중남미 사회의 분배는 크게 악화되어 왔다.그 결과 인구의 절반 수준이 빈곤층에 속한다.둘째 인기 영합주의란 표현도 지난 20년의 중남미 경험과는 별로 맞지 않는다.중남미 국가들처럼 월스트리트-재무부-IMF가 제시한 경제 개혁과 개방 스케줄을 모범적으로 적용한 경우도 없었다.민영화,규제완화,개방 모두 원하는 대로 들어주었다.아르헨티나는 메넴 대통령 시절에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지 않았던가?작년에 경제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서 국제 금융권은 국세청을 팔라고 요구할 정도였다.셋째,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 운운도 지난 20년간의 경험과 너무 거리가 멀다.멕시코,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은 대부분 꾸준히 개혁의 이름 아래 노동시장의유연화,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했고,그 결과 고용불안이 대단히 높은 사회로 바뀌었다.비공식 부문이 과도하게 팽창했고,가족 전체가 노동판에 뛰어들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사회로 바뀌었다.실업과 고용의 불안정은 곧 사회적 안정을 해치고,치안 부재로 둔갑한다.상파울루와 멕시코시티의 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문제였단 말인가? 남미형을 억지로 정형화한다면,그것은 잘못된 개방정책,사회개혁의 부재,정실 자본주의로 추락한 경제라 요약할 수 있다.‘개방은 곧 경쟁력 강화’란 도식에 집착하여 국내의 중소기업들이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시장을 일방적으로 너무 빨리 열었고,그 결과 내수 산업은 대부분 무너지고 말았다.농지개혁,세제개혁 등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양극화 체제가 지속되고,또 재정의 기반도 허약한 것이다.중남미 국가들의 수세구조에서 직접세의 비중은 대단히 낮다.부자들은 돈을 많이 벌지만,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다.대신 소비자는 부가가치세 16∼18%를 부담한다.그만큼 공정성이 결여된 사회이다.기업인들의 능력은 정치인 로비 능력과 거의 일치한다.그렇기에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중남미에서 정치는 ‘시장 바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정리해보자.남미형 경제가 추락한 이유는 결국 정치적 부패,사회개혁의 부재,잘못된 개혁과 개방정책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남미 사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배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단한 사회개혁,투명한 정치와 행정,잘 조정된 개혁 프로그램일 것이다.더 이상 ‘분배지향적,인기 영합주의,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상승’같은 1970년대의 낡은 가락은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그런 ‘남미’는 지구 어디에도 없다. 이 성 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사진·회화·조각 경계허문 거장들 / 갤러리현대 ‘독일 현대미술 3인전’

    게하르트 리히터(71),고타르트 그라우브너(73),이미 크뇌벨(63).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3인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독일 현대미술 3인전’(6월 22일까지)에서는 현대미술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세 작가는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다.이들은 1960년대와 70년대 독일 현대미술의 중심축이었던 뒤셀도르프에서 공부하고 작업한 인연이 있다.모두 옛 동독에서 태어나 훗날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는 것도 이들의 회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양 독일 체제를 경험한 이들은 독일사회에 몰아친 뜨거운 정치적 담론에서 한발 비켜선 국외자로서 경계와 경계,중심부와 주변부의 조화와 균형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리히터가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됐던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무너뜨려 ‘불가사의’라는 평가를 받았다면,크뇌벨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주목해 ‘추상회화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그라우브너는 색채와 색채의 경계를 관계로 승화시키면서 ‘색채신체(Farbekoerper)’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이중 특히 주목받는 작가는 리히터다.한국에도 잘 알려진 리히터는 1959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잭슨 폴록,루치오 폰타나 등 미술작가들에 매료돼 서독행을 결심했고,1970년대를 전후해 미국 화랑과 작가들을 찾아다녔다. 한때 미국의 팝아트에 빠진 그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신표현주의를 주창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이번 출품작에서 보듯이 그는 사진과 회화의 만남을 시도,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크뇌벨은 날카로운 직관과 치밀한 계산으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다.1960년대 초반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회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검은색 사각형’에서 찾아냈다.평면과 사각틀,그리고 원색을 바탕으로 건축적 풍경화를 그렸다.그의 작품은 흔히 ‘공간 19’로 불리는데,이는 스승인 요셉 보이스가 1960년대에 그에게 제공한 방이 19번이었던 것과 무관찮다.‘시간은 인간이 찾아냈고,공간은 신들의 궁전이다’ ‘색채는 상상의 궁전이다’라는 지론의 크뇌벨은 이번 전시에서 ‘조각적 회화’의 본령을 보여준다. 모네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되는 그라우브너는 형식실험에 앞서 전통에 입각해 회화의 본질을 파고든다.빛과 색채라는 회화의 대명제에 충실한 가운데 ‘색채신체’ 또는 ‘색채체’라는 세계를 개척했다.각진 모서리의 캔버스가 아니라 부드러운 쿠션으로 처리된 화면이 미묘한 색채와 어우러져 에로틱한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입장료는 일반 3000원,초중고생 2000원.(02)734-6111∼4. 김종면기자 jmkim@
  • 탈북2명 美청문회 증언 내용/ “北, 이란에 무기팔고 원유 구입”

    |워싱턴 백문일특파원|2명의 탈북자가 20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각각 증언한 북한의 마약 밀매와 미사일 개발·수출 실태 내용을 요약한다. ●북한의 마약 커넥션(전 북한 고위관리) 1998년 남한으로 망명하기 이전까지 북한 정부에서 15년간 일했다.북한은 1970년대 말부터 함경도와 양강도 등의 산간지대에서 비밀리에 마약을 생산,밀매했다.아편을 대대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당시 김일성이 함경도 연사군에서 아편을 재배해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지시했다. 이후 함북 연사군,무산군,온성군,회령 등지의 협동농장에서 아편을 재배,헤로인 등을 만들었다.일반 주민들이 모르게 아편꽃을 ‘백도라지’로 불렀다.1997년 말에는 협동농장마다 10정보씩 아편을 재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아편을 수확해 함북 청진시 나남구역에 있는 제약공장에서 마약을 만들었다.태국에서 데려온 7∼8명의 마약 전문 제조업자들이 참여했다.중앙 정부의 통제와 감독아래 진행됐으며 평양 근교에도 마약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고 들었다.무력성 보위국 산하의 현역군인들이 경계를 선다. 북한은 헤로인과 필로폰을 생산한다.한달에 1t씩 만들며 헤로인은 330g짜리 태국산으로,필로폰은 1㎏짜리 국적불명으로 포장된다. 마약시장이 커지자 북한은 현재 일본 야쿠자,러시아 마피아 등의 국제 범죄조직과 결탁,마약 밀매를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커넥션(가명 이복구·전 북한 미사일 기술자)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자강도 미사일 공장에서 유도장치의 부품 생산을 담당했다.청년전기연합기업소 산하 소공장 가운데 603,604 분공장을 맡은 기술과장이었다.이곳에선 전자제품을 만들며 미사일 유도장치의 생산과 조립,개발에 관련된 일을 했다. 1989년 여름에는 5명의 다른 기사들과 이란에 가서 미사일 유도차량 발사실험을 했다.남포항에서 출발했으나 15일 동안 선창에서 외부와 차단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도착지에서 아랍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사일 유도차량에 탑승,20분간 전파를 발송했다.미사일 발사체는 다른 곳에 있어 직접 보지 못했다. 평양에 돌아온 뒤 김철만 제2경제분과위원장이 “이란에 갔다오느라 수고많았다.”고 해 처음 알았다.당시 연형묵 총리가 이란에 미사일 유도장치를 팔고 22만t의 원유를 받아 왔다. 이후 미사일 유도장치 생산이 본격화했으며 여러해에 걸쳐 아랍국에 팔았다.이란이 아닌 다른 아랍권에 판 중장거리 미사일 중 일부가 걸프전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mip@
  • 제작비 80억원… 초대형 뮤지컬/ ‘맘마미아’ 공동 제작발표회

    예술의전당,에이콤인터내셔널,신시뮤지컬컴퍼니 등 3사가 80억원을 들여 공동제작하는 초대형 뮤지컬 ‘맘마미아’가 최근 캐스팅을 끝내고,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영국에서 온 현지 스태프들과 공연 관계자들은 물론 연출가 임영웅,‘난타’ 제작자 송승환,연기자 정동환 등 공연쪽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연출가와 출연배우,취재진의 조촐한 자리로 마련되는 보통 뮤지컬 제작발표회와는 규모가 사뭇 달랐다.‘오페라의 유령’‘캐츠’의 성공으로 불붙은 한국 뮤지컬산업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맘마미아’는 현재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에 성공한 채 롱런중인 뮤지컬.1970년대를 풍미한 스웨덴출신의 세계적인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작품이다.지난 99년 런던 초연 이후 미국,캐나다,호주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관객몰이에 성공했으며,일본은 극단 사계가 지난해 12월 무대에 올린 이후 지금까지 공연중이다. 3주간 진행된 오디션에는 260여명의 배우들이 몰렸다는 후문.전문 뮤지컬배우뿐만 아니라 가수,일반 연기자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주인공인 엄마 도나와 딸 소피 역에 박해미와 배해선이 각각 낙점됐다.이건명,전수경,이경미,성기윤,박지일 등 중견 연기자들도 비중있는 역할을 따냈다.연출자 폴 개링턴은 “춤 노래 연기력을 두루 갖춘 재능과,배역에 걸맞은 따뜻한 인간미,에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공연은 내년 1월25일부터 4월18일까지 13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티켓 가격은 4만∼12만원.예술의전당 등 3사가 제작비를 똑같이 분담하고,2008년까지 5년간 판권을 공동보유한다. 윤호진 에이콤대표는 “국내 뮤지컬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국내에 이런저런 뮤지컬 공연이 홍수를 이루지만 관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번 ‘맘마미아’는 그룹 ‘아바’의 노래를 즐겨 들었지만,공연장 발걸음이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불러모을 수 있을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 같다. 이순녀기자
  • “北정권 동의·신뢰 않지만 교체땐 더 위험 중국식 개방 유도 바람직”/ 盧대통령, 美 PBS방송 회견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방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미국 공영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북한을)신뢰할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같은 북한의 체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남북한 관계에 큰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관련기사 3·4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다음날 PBS의 앵커인 짐 레러와 가진 이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의 정권과 체제에 대해서도 언급,“북한은 너무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고 추구하는 가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듯하고,여러 가지 주장과 행동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의 정권교체 문제와 관련,노대통령은 “미국내에 그런 주장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미 행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한정권의 제거 및 정권교체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핵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정권을 제거하는 것은 큰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노 대통령은 이어서 “이것이 바로 1970년대 미국이 중국의 개방을 도울 때 했던 일”이라고 말하고 “나는 이같은 일이 한반도에서도 되풀이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북한정권이 미국으로부터 느끼고 있는 안보불안과 관련,노 대통령은 “북한이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전쟁수행능력의 가공할 위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위협이 북핵문제에 도움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위협이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자기의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으로 개혁·개방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은 자존심 때문에도 북한의 핵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핵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반적·도덕적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지금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느냐,있다면 어떻게 폐기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 확인중”이라고 전제,“현재 한·미간,미·중·일간 회담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미리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노 대통령은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은 핵무기 수출을 시도할지 모른다.”고 말하고 “정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mip@
  • 숙소서 키신저前국무 환담/키신저 “북한이 한·미 이간질” 盧대통령 “北의도 성공 못할것”

    |뉴욕 곽태헌특파원| 노무현 대통령이 12일 오후(한국시간 13일 새벽) 숙소인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30분간 접견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초 ‘핑퐁외교’로 중국과 수교하는데 성공해 외교협상의 귀재로 통한다. 키신저 전 장관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중요한 시기에 노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인사했다.노 대통령은 “우리로서는 중요한 것 이상”이라면서 “70년대 초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와 관련,“북한이 재처리를 하지 않는 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역으로 해석하면,이미 재처리를 했다면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키신저 전 장관은 “현재 북한은 70년대의 중국보다 훨씬 어려운 상대인 것 같다.”면서 “그래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과 미국이 긴밀히 협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가장 큰 목적은 평화적 해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51년한국전 당시 한국에 가봤기 때문에 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고 있다.”면서 “한국민들이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것을 잘 알지만,북한의 기본 전략은 한국과 미국간을 이간시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한·미간 긴밀히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에 노 대통령은 “이간하려는 (북한의)의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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