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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월드컵과 정전/박녹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간사·한전원자력연료㈜ 감사

    [열린세상] 월드컵과 정전/박녹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간사·한전원자력연료㈜ 감사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주 한·일전 축구대결이 벌어진 일본 최대의 경기장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환하게 비추던 야간 조명을 보면서 연초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올해 초 상영된 할리우드 영화인 ‘아바타’는 3D 입체영상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흥행을 일궈냈다. 이 영화가 한참 인기를 끌고 있을 무렵, 울산에 소재한 한 대형 영화관에서 웃지 못할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전기설비에 들어가 감전되어 정전되는 바람에 9시간 동안이나 영화상영이 중단된 것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입장권을 예매하고 상영을 기다리다 돌아갔을 수많은 관객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지난 3월 칠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강진은 1700만명이 암흑 속에서 공포에 떨어야 하는 정전 사태를 가져왔다. 2003년 8개주에 걸쳐 5000만명에게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60억달러에 이르는 정전 피해를 입었던 미국에서는 금년 2월 워싱턴을 비롯한 동부해안지역에 기록적인 폭설과 시속 150㎞에 달하는 강풍으로 또 한번 어려움을 겪었다. 50여만 가구가 고립되었고, 대부분의 기간시설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06년에는 유럽 전체의 정전으로 1000만명이 암흑 속에서 밤을 보냈다. 이러한 정전사태는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일수록 그 피해규모가 더 막대하다. 오랫동안 인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로 공기(산소), 물, 식량을 거론해 왔다. 늘 곁에 있어서 존재가치도, 고마움도 모르지만 이 세 가지가 없으면 바로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바로 전기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진보되면 될수록, 우리 삶에 있어서 전기에 의지하는 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전기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차치하고 공기, 물, 식량까지도 간접적으로 전기를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것을 감안하면 전기 없이는 거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요즘 세계 각국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재앙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4계절이 뚜렷한 것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도 근래 들어 이상기온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연출하고 있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폭설과 폭우가 빈번하고, 온화하던 봄 날씨도 영하와 영상기온을 넘나들며 국민들을 감기로 물들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기 소비 형태도 예측 불허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월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1시간 평균 전력수요가 6785만 5000㎾로 기록되어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6679만 7000㎾(2009년 12월18일 오후 6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특이한 것은, 과거 전력수요는 냉방기구를 많이 사용하는 여름철에 최대였던 반면 겨울철 추운 날이 계속되면서 전기로 작동되는 난방기구의 사용이 늘어 겨울에 최고치 신기록이 나오는 이상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여름철이 더 걱정인지도 모른다. 때이른 봄철부터 반팔 옷을 성급하게 꺼내 입게 만들었던 높은 기온이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모르는 일이며, 6월 중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전력이 사용될지 벌써부터 걱정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저녁시간대에 편성된 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각 가정과 식당 등 단체응원을 하는 장소에서의 전력사용량은 보지 않아도 뻔히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정전이라도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1970년대부터 원자력발전을 주요 전원으로 삼아 전기를 공급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해온 우리나라는 그 덕분으로 세계 선진국들에 비해서 전기료 또한 월등하게 저렴하다. 휴대전화 사용료와 문화비가 월평균 13만원을 웃돌지만 전기요금은 고작 4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우(遇)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기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전기절약에 온 국민이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자이언트’ 이범수-박진희, 첫 등장부터 키스씬..’강렬’

    ‘자이언트’ 이범수-박진희, 첫 등장부터 키스씬..’강렬’

    ‘자이언트’의 성인배우들이 아역배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에서 극 초반부터 ‘명품아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아역배우인 김수현, 남지현, 여진구, 박하영, 노영학의 마지막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 끝 무렵 주연배우인 이범수와 박진희가 본격적으로 첫 등장해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더했다. 극중 강모(이범수 분)와 정연(박진희 분)은 1970년대 ‘유신 독재 타도’를 외치는 군중들의 행렬 속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특히 강모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정연을 끌어당겨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해 첫 장면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편 이범수는 지난 26일 ‘자이언트’의 촬영 도중 상대 배우의 쇠파이프에 손을 맞아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사진 = SBS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티아라 보람 “엄마가 재혼했으면 좋겠다”

    티아라 보람 “엄마가 재혼했으면 좋겠다”

    걸그룹 티아라 멤버 전보람이 어머니 이미영의 재혼을 바란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전보람은 1일 오전 방송된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에 어머니 이미영과 함께 출연했다. 이날의 방송에서 전보람은 “내가 채워 줄 수 있는 부분과 곁에 있는 누군가가 채워 줄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전보람은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이 기분 좋지만은 않다.”며 “하지만 엄마는 우리의 버팀목이고, 이제 엄마도 버팀목이 돼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동안 감춰뒀던 속내를 드러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전영록의 딸 전보람, 전우람 자매는 고등학생 때까지 아버지 전영록과 함께 살았다. 이후 전영록, 전보람 부녀는 진로문제로 다툼을 거듭했고 전보람은 그 직후 어머니 이미영과 함께 살게 됐다. 한편 이날의 방송분에서 전보람은 혹독한 다이어트로 20kg를 감량한 뒤 걸그룹으로 데뷔한 사연도 밝혔다. 사진 =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 방송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 기자 legend@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신사의 나라/곽태헌 논설위원

    우리나라 고위층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다. 국무총리나 장관, 대법관의 청문회 등을 보면 깨끗하게 정도(正道)를 걸어온 공직자보다는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탈세 등 문제 있는 공직자가 훨씬 많다. 교수 출신이라면 여기에다 논문표절이 추가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의무를 하지 않은 고위층과 고위층 아들도 많다. 지난해 9월 M 대법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문제가 나왔다. M 대법관의 배우자는 야당의 공격적인 대변인이었다. 그 대변인은 위장전입 문제가 밝혀지기 한 달 전 “위장전입 한 번도 하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나는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인지 자괴감마저 든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관련한 멘트였다. 겉과 속이 다른 대변인의 뻔뻔함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잊었다. 한국에서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찾기 쉽지 않지만 영국은 다르다. 영국 왕실에는 오랜 군 복무 전통이 있다. 찰스 왕세자는 1970년대 조종사로 복무했다. 앤드루 왕자는 헬기 조종사로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영국은 신사(紳士)의 나라다. 중세 후기 영국에서 귀족은 아니지만 실력과 재산을 가진 존경받는 사람들은 젠트리(gentry)로 불렸다. 젠트리는 좋은 가문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남성을 의미하는 젠틀맨(gentleman)의 어원이다. 이달 초 실시된 총선을 통해 의욕적으로 출범한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립정부에서 비신사적인 일이 나왔다. 연립정부의 핵심인 데이비드 로즈 재무부 수석국무상(예산담당 장관)이 동성애 파트너의 집에 살면서 4만파운드(약 7000만원)의 주택수당을 의회에 청구해 받은 게 드러나 그제 물러났다. 로즈 장관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연립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 중인 각료임금 삭감을 포함한 62억파운드나 되는 공공지출 절감대책을 지휘해왔다. ‘허리 띠 졸라매기’에 앞장서야 할 주무장관의 파렴치한 행태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배신감은 어떨까. 지난해 5월 하원의원들이 주택수당을 부당 청구해온 사실이 공개되면서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이 사퇴하고 당시 집권 노동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신사의 나라도 이 지경이라는 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위안을 삼아야 할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김수로’, 200억 大작 불구 민망한 시청률

    ‘김수로’, 200억 大작 불구 민망한 시청률

    200억원이 투입된 대작드라마 ‘김수로’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9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김수로’의 첫 회 시청률은 9.6%로 저조한 기록을 냈다. 설상가상 이랄까. 30일 전파를 탄 2회 방송분에서는 ‘월드컵대표팀 친선경기 한국-벨라루스 전’이라는 큰 벽이 있었다. ‘김수로’는 8.5%로 시청률이 하락했지만 오후 9시40분에 방송된 이 친선경기는 24.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 반면 동시간대 경쟁 드라마인 SBS ‘인생은 아름다워’와 KBS ‘거상 김만덕’은 29~30일 방송에서 각각20.8%, 18.6%와 12.7%, 10.3%를 기록해 ‘김수로’를 먼 발치 따돌렸다. 한편 ‘김수로’는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1970년대 이후 유물이 쏟아지면서 주목을 받게 된 가야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지성, 배종옥, 유오성 등이 출연한다. 사진=MBC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詩’의 윤정희, 16년전 그녀를 만나다

    ‘詩’의 윤정희, 16년전 그녀를 만나다

    영화 ‘시’의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계기로 배우 윤정희(66)의 마지막 출연작 ‘만무방’이 방영된다. EBS는 새달 20일 오후 10시50분 한국영화특선으로 만무방을 선정, 고화질(HD) 방송을 선보인다. 1994년 개봉한 ‘만무방’은 변장호 감독이 제작하고, 엄종선 감독이 연출한 작품. 1960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오유권의 ‘이역의 산장’을 영화화한 것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접전지역 산골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비극을 다뤘다. 만무방은 예의나 염치도 없는 뻔뻔한 사람이란 뜻이다. 미국 마이애미 폴라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대종상영화제에서 6개 부문을 수상했다. 물론 윤정희에게도 여우주연상이 주어졌다.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를 걸면서 목숨을 구걸하던 시절, 한 40대 여인(윤정희)이 있는 산골 오두막에 두 남자가 피란 온다. 오두막은 전쟁의 비참함을 피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내 소란스러워진다. 바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한 남정네들의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사람이 살았던 강원도 대관령 횡계의 한 오두막을 세트장으로 그대로 옮겨서 촬영했다. 윤정희는 1967년 첫 출연작 ‘청춘극장’을 통해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는 등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었다.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휩쓸었다. 한편 EBS는 ‘만무방’에 앞서 변장호 감독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두 작품을 방영한다. 6일에는 과부의 억눌린 욕망을 다룬 ‘홍살문’(1972), 13일에는 김동인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감자’(1987)를 내보낸다. 변 감독은 1960년대 코믹멜로물을 찍는 흥행감독이었다. 2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눈물의 웨딩드레스’(1972)를 기점으로 문학작품을 밑그림으로 완성도 높은 문예영화를 선보였다. ‘홍살문’, ‘감자’ 외에도 ‘망나니’, ‘벙어리 삼룡이’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만무방’도 이런 흐름 속에 있는 작품이다. 변 감독의 예술세계 속에서 배우 윤정희를 조명해 보자는 것이 EBS의 의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中 금융2제] 美 정부부채 13조弗 돌파… 1분마다 수십만달러 늘어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13조달러를 넘어섰다고 미국 abc방송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bc방송은 미 재무부 자료를 인용, 지난 25일 현재 정부부채가 12조 9957억 7949만 444달러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abc방송은 1분마다 수십만달러씩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연방정부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꾸준히 줄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부터 늘었다가 클린턴 행정부에서 성장세가 꺾였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다시 급증해 2차 대전 이후 최대 기록을 계속 경신하는 실정이다. 정부부채 급증 뒤에는 언제나 감세가 있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기존 70%이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28%로 무려 3배 가까이 줄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39%로 높였지만 부시 행정부는 다시 35%로 낮췄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린제이 로한, 인퍼노 포스터 공개...’파격’

    린제이 로한, 인퍼노 포스터 공개...’파격’

    포르노 배우로 변신한 린제이 로한의 모습이 공개됐다. 미국 연예뉴스사이트 TMZ닷컴은 28일(한국시간) “린제이 로한이 ‘포르노 스타’ 린다 러브 레이스로 분한 영화 ‘인퍼노’(Inferno)의 포스터가 공개됐다.”고 밝혔다. 공개된 영화 ‘인퍼노’포스터는 총 2장으로 린제이 로한은 고수하던 긴 생머리를 버리고 검은 파마머리에 속옷차림으로 파격편신을 시도했다. 2장의 포스터 중 첫 번째는 속옷만 입은 채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린제이 로한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불안해 보이는 시선처리가 인상적이다. 또 노란색 바탕의 포스터 컷은 속옷 차림으로 유혹적인 표정을 짓고있는 린제이 로한의 모습을 담고있다. 이번 포스터는 유명 사진작가 타일러 쉴즈의 작품. 린제이 로한은 지난 2004년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마약, 폭행, 음주운전 등 돌출행동으로 ‘할리우드 퇴출설’까지 불어진 상황. 최근에는 음주운전으로 전자발찌까지 착용하는 신세가 됐다. 한편 ‘헐리우드 악동’ 린제이 로한은 그 명성에 걸맞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영화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 등 확정된 배역을 박탈당하는 굴욕을 맛본 후 1970년대 미국 최고의 포르노 스타 린다 러브레이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인퍼노’(Inferno)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사진 = 영화 ‘인퍼노’ 포스터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 기자 legend@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10 칸영화제 결산]이창동 ‘시’·홍상수 ‘하하하’ 첫 2편 동시수상

    [2010 칸영화제 결산]이창동 ‘시’·홍상수 ‘하하하’ 첫 2편 동시수상

    ‘시’는 웃고 ‘하녀’는 울었다. 아시아의 신예 거장들은 축배를 든 반면, 유럽 거장들은 쓴 잔을 들이켰다. 이창동(56) 감독이 24일 새벽(한국 시간) 프랑스 칸에서 폐막한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다섯 번째 연출작 ‘시’로 각본상을 받았다. ‘떠오르는 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40) 태국 감독은 ‘엉클 분미 후 캔 리콜 히스 패스트 라이브스’(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로 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영화로는 13년 만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활짝 웃었다. ●한국영화 칸 경쟁부문 5번째 수상 이 감독은 ‘시’를 통해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60대 여성 미자(윤정희)가 시 쓰기에 도전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감독은 전작인 ‘밀양’으로 칸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고, 이번에 또 다시 각본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 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 이 감독은 “윤정희 선생님이 여우주연상을 탈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받지 못해)안타깝다.”면서 “시나리오를 인정받았다는 게 참으로 기쁘다. 차기작 연출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주는 기회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뤘고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윤정희는 1994년 ‘만무방’ 이후 16년 만의 스크린 복귀로 여우주연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윤정희는 “각본상 수상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르몽드, 피가로 등 프랑스 유력지가 평론가 리뷰에서 영화에 대해 극찬한 것을 가족들과 함께 보고 너무나 뿌듯했다.”고 말했다. ●경쟁부문 진출 ‘하녀’ 수상 끝내 불발 ‘하하하’로 여섯 번째 칸 초청장을 받아들었던 홍상수(50) 감독은 비록 경쟁 부문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시선’의 대상을 받으며 5전6기만에 처음으로 칸 트로피를 가져가는 기쁨을 누렸다. 우리나라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경쟁·비경쟁 부문을 통틀어 2편 복수 수상 기록을 낸 것은 처음이다. ‘시’와 함께 경쟁 부문에 진출해 기대를 모았던 임상수 연출·전도연 주연의 ‘하녀’는 수상 대열에 끼지 못했다. 가장 큰 웃음을 터뜨린 이는 아피찻퐁 감독이다. 1997년 ‘체리 향기’(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우나기’(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황금종려상 공동 수상 이후 아시아 영화계에 큰 경사를 안겼다. 젊은 거장으로 평가받는 그는 2002년 ‘친애하는 당신’으로 칸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다. 2004년 ‘트로피칼 말라디’로 태국 영화 사상 첫 칸 경쟁 부문 진출을 일궈내며 심사위원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쾌거까지 태국 영화사를 고쳐 쓰고 있다. 방콕에서 태어나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녹여내는 한편, 태국에서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디어아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 ‘엉클 분미’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한 남자가 사별한 아내의 영혼과 오래 전 잃어버린 아들의 영혼을 만나며 자신의 전생을 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무속 신앙 가운데 하나인 애니미즘(자연숭배)이 녹아 있다. ●영국출신 거장들 한개의 상도 못건져 유혈이 낭자하고 과격했던 영화가 많았던 지난해에 견줘 올해 칸 영화제는 개인의 내면과 일상 생활의 잔잔함을 다룬 작품이 강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사회 때 높은 평점을 받아 황금종려상 수상이 유력했던 영국 출신 거장 마이크 리(67) 감독의 ‘어나더 이어’와 켄 로치(74) 감독의 ’루트 아이리시‘가 단 한 개의 상도 건지지 못했다는 점은 이변으로 통한다. 그러나 유럽 작품은 9개 부문(단편 경쟁 포함)에서 5개 부문을 휩쓸며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시’와 ‘엉클 분미’, 심사위원상을 받은 아프리카 차드 출신 마하마트 살레 하룬(49) 감독의 ‘어 스크리밍 맨’ 정도가 비유럽권 영화였다.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쥘리에트 비노슈는 칸 영화제에서 처음 여우주연상을 받아 활짝 웃었다. 다른 국제영화제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지만 프랑스 출신임에도 유독 칸과는 인연이 없었다. 비노슈에게 여우주연상 영광을 안긴 ‘서티파이드 카피’는 이란의 거장 키아로스타미(70) 감독이 만들었지만 그의 첫 영어 작품이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서양 연기자들이 주연을 맡아 아시아 영화로 분류하기가 애매한 편. 황금종려상의 뒤를 잇는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는 프랑스 출신 자비에 보부아(43) 감독의 ‘오브 갓스 앤드 멘’이 차지했고, 배우로 유명한 프랑스의 마티유 아말릭(45) 감독은 ‘온 투어’로 감독상을 받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도시와 길] (16) 부산 광복로

    [도시와 길] (16) 부산 광복로

    서울에 종로가 있다면 부산엔 광복로가 있다. 부산 중구 광복로는 규모와 길이 등에선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원도심에 있고 역사성을 담고 있어 ‘부산의 종로’로 통한다. 부산 토박이인 윤재웅(54) 씨는 “광복로는 어릴 적 부모님 손잡고 옛 고려당에서 빵을 먹고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미화당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고 기억을 되살렸다. ●광복로는 역사의 거리 광복로는 옛 부산시청 쪽에서 국제시장 입구에 이르는 너비 15~16m, 길이 1㎞인 그리 길지 않은 도로다. 하지만 부산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광복동 일대는 일본인의 주거지였고, 광복로는 일본인들의 상업 중심지였다. 도로 양쪽으로 요리집과 극장, 백화점, 서양식 건물 등이 들어서면서 번창했다. 당시 광복로는 벤텐조(辨天町) 거리라 불렸다. 벤텐조는 일인들의 수호신으로 용두산 신사에 모셔둔 변재천사(辯才天社)에서 따왔다. 1945년 이후 조국의 광복을 기리는 뜻에서 이름이 광복로로 바뀌었다. ‘광복(光復). 빛을 회복한다.’라는 은유적인 표현과 함께 독립이라는 뜻을 넘어 다시 주권을 회복하다라는 역사성을 담고 있다. 해방의 물결과 함께 만들어진 광복로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 최고의 거리로 명성을 날렸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 회사, 학교 등이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옮겨 왔으며 피난민들도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대한민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으며, 문인과 예술가 등이 이곳 다방에 문화의 꽃을 피웠다. 당시 ‘밀다원’ 다방은 소설가 김동리의 대표적인 소설 가운데 하나인 밀다원시대의 배경이 됐다. 소설가 이호철은 금강다방에서 황순원 선생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였으며 이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사라진 전원, 르네상스, 무아, 백조 사계 필하모니 등의 고전 음악감상실은 산업화시대 부산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공간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4·19혁명 때에는 이승만 정권의 상징으로 이곳에 있던 자유당 당사가 시위 군중에 점거되는 등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광복로 일대가 ‘데모의 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시위대에 점령당한 자유당 당사는 현재 한 유명 의류업체의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수년 전 증·개축을 거치면서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광복동 일대는 외환위기 이전 옛 미화당 백화점(현 ABC 마트)과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부산지역 최대 관광명소였다. 또 황금상권의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함께 1998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옮겨 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활하는 광복로 이 일대는 지난해 말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문을 열고 광복로 일원에 대한 시범 가로조성사업이 완료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특히 옛 부산시청 자리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인 롯데타운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기대가 더욱 크다. 지난 20일 찾아간 광복로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광복로 입구 초입인 옛 부산시청 쪽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팝송이 흘러나와 5월 한낮의 따스함과 여유로움을 안겨줬다. 또 보행자 편의를 위해 차도와 인도 높이를 같게 하고 곳곳에 쉼터와 조형물, 화단 등이 조성돼 있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일방통행인 기존 2차선의 도로가 1차선으로 줄어든 대신 보도 폭은 3.6m로 늘어났다. 한때 부산의 패션 1번 거리였음을 알려주듯 지금도 의류와 캐주얼 매장 등 로드숍이 길 양측으로 죽 늘어서 있어 전성기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맞춤양복의 대명사인 ‘국정사’와 귀금속 판매점인 ‘명보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광복로의 부활을 반기는 듯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중·장년층에게는 어릴적 향수를, 젊은이에게는 역사성을 되새기게 하는 곳이다. 작년 1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고 있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시민 임정규씨는 “광복로가 예전과 달리 차분하면서도 세련돼진 것 같다.”며 “보행자들을 위한 인도가 넓어져 걷기가 참 편하다.”고 말했다. 무질서한 간판과, 좁은 차도를 꽉 메운 차들이 내뿜는 매연, 마구잡이 불법주차로 걷기조차 힘들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이 같은 광복로가 지난 2004년 ‘광복로의 봄봄봄’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오늘날의 멋진 거리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거리가 깨끗해지고 밝아지면서 광복로를 찾는 이도 많이 늘어났다. 최근 하루 유동인구는 80여만 명으로 1980~90년 전성기 시절 100만여 명에는 못 미치지만 외환위기 때의 50여만 명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 광복로 문화 포럼 김태곤 사무국장은 “최근 20~30여개의 점포가 개장하는 등 상권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군소정당 ‘친박마케팅’

    “친박 바람아 불어다오~” 미래연합 이규택 대표가 2008년 총선 공천 때 불거졌던 ‘친박 탄압’ 논란에 불을 댕겼다. 최근 박근혜 전 대표를 내세운 당 신문 광고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 친이계로부터 ‘박 전 대표를 빼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대표는 18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나와 “최근 한 일간지에 당 후보자 공모 광고를 내기로 했는데, 신문사 실무자 쪽에서 박 전 대표의 사진과 ‘위대한 지도자 박근혜’라는 문구를 빼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 왜 빼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외부에서 전화가 왔다.’고 그러더라. 1970년대 신문 광고 탄압사태가 떠올랐다. 결국 문구는 빠지고 박 전 대표 사진만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외압의 출처와 관련, “언론사에서 사정하는 것을 보니 한나라당 친이 세력이나 청와대 같은 보이지 않는 큰 권력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친박 진영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을 ‘친박’을 표방하는 군소정당들의 ‘박근혜 마케팅’으로 보고 있다. 미래연대는 한나라당과 합당하기로 결정한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만든 당인 만큼 자신들이 친박연대의 후신임을 주장하기 위한 전략이란 것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자원의 저주로 최빈국 전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동쪽으로 3500㎞ 떨어진 나우루공화국. 국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21㎢ 면적에 인구는 고작 1만 3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민 절반이 비만이고, 매일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2명씩 죽어 나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197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뢰크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은 한 프랑스 기자가 현장취재로 담아낸 탐사보고서다. 19세기 후반부터 경제적, 생태학적, 그리고 인간적 ‘재앙’이 겹치면서 나우루가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인산염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나우루는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가는 철새들에게 점령당한 땅이었다. 철새들의 똥은 오랜 세월 나우루의 땅과 산호에 스며들었고, 그 결과 막대한 양의 인산염 매장층이 형성됐다. 인산염은 비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1896년 나우루에 정박했던 한 배의 선장 헨리 덴슨은 돌멩이 하나를 호주 시드니로 가져갔다. 그 돌에서 순도 100%에 가까운 인산염이 검출된다. 이 발견으로 나우루의 운명은 달라졌다. 당시는 서구 열강들이 패권 다툼을 벌이던 시기.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우루의 지배자도 인산염에 눈독을 들인 독일과 영국, 일본, 호주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인산염 채굴로 얻은 이익을 나우루 국민들에게 돌려준 것은 극히 적은 액수에 불과했다. 나우루 사람들이 인산염 채굴권을 확보한 것은 1968년 독립 이후부터. 갑작스레 부를 움켜쥔 나우루 사람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먹고, 즐기고, 끝없이 소비 했다. 여기에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부패가 더해졌고 인산염이 고갈되자 절망이 찾아왔다. 책은 2009년 국제저널리즘회의에서 수여하는 조사 및 탐구 부문 최고도서상을 수상했다. 9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세계 선거판 좌우… ‘소여 밀러 그룹’의 실체

    세계 선거판 좌우… ‘소여 밀러 그룹’의 실체

    조지 W 부시를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자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미국 타임지(誌) 편집국장 제임스 하딩의 작업은 이런 간단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하딩은 그로부터 꼼꼼한 자료 조사는 물론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정치 관계자 수백명을 인터뷰했고, 결국 전 세계 정치판을 뒤흔드는 한 정치 컨설팅 업체의 실체를 정리해 낸다. ●1960년대 정치 홍보 영상으로 시작 신간 ‘알파독’(제임스 하딩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은 정치 컨설팅 업체 ‘소여 밀러 그룹’의 활동을 통해 오늘날 정치 문화의 변화를 추적한 논픽션 드라마다. 알파독’(Alpha dog)은 ‘망보는 개의 무리를 이끄는 대장 개’라는 뜻으로,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각종 책략을 기획하고 실현하는 정치 컨설턴트를 지칭한다. ‘소여 밀러 그룹’은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소여와 카피라이터 스콧 밀러가 만든 업체다. 하딩은 부시를 두 차례나 대통령 자리에 앉힌 ‘알파독’ 칼 로브의 책략 역시 바로 이 그룹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TV의 위력을 미리부터 알아채고 1970년대부터 미국식 미디어 정치를 펼쳤다. 이미지 위주의 선거운동,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 등이 이들의 대표적인 ‘선거 운동 기술’이다. ●이미지 전략·네거티브 공세로 승리 저자는 우선 설립자 데이비드 소여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기록영화를 주로 만들던 그는 1960년대 후반 정치 홍보 영상을 제작하며 선거판에 뛰어든다. 여기서 이미지 선거의 힘을 실감한 그는 당시 카피라이터로 유명했던 스콧 밀러를 찾아가 동업을 제의한다. 이들은 1975년부터 힘을 모으고 급기야 1982년에는 공식적으로 소여 밀러 그룹을 창립하게 된다. 하딩이 먼저 소개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활약은 1978년 미국 보스턴 시장 선거다. 이들이 케빈 화이트 당시 시장후보의 선거운동을 맡았을 때 그의 지지율은 상대 후보보다 무려 26%포인트나 뒤져 있었다. 당시 유권자들은 그가 ‘오만한 계파 정치의 우두머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소여와 밀러는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시킨다. 이들은 후보들의 정책보다는 인격에 초점을 맞춰, 화이트는 오만하지만 능력 있는 인물로, 상대 후보는 사람은 좋지만 경륜이 부족한 인물로 규정했다. 이 네거티브 전술은 효과적으로 먹혀 들었고, 화이트는 짧은 시간에 지지율을 뒤엎고 보스턴 시장에 올랐다. ●부시·아키노·DJ 등 킹메이커로 소여 밀러 그룹은 1986년 필리핀 대선에서 독재자 마르코스에 대항하는 코라손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만들면서부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이들은 각지에서 대통령과 수많은 시장, 주지사를 당선시켰다. 또 달라이라마 등 5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며 명실공히 세계 정치의 ‘큰손’이 됐다. 한국과의 인연도 뗄 수 없다.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고 소개한다. 이들은 군부독재에 저항해온 민주화 투사로서의 김 전 대통령 이미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1992년 대통령 선거 패배로 김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당당하고 용감한, 그리고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물론 패배의 기록도 있다. 책은 1990년 페루 대통령 선거 등 소여 밀러 그룹의 실패를 통해 향후 선거운동 전략들이 가야 할 길을 묻는다. 또한 세계 선거판을 정책이 아닌 후보의 이미지 선거 일색으로만 만들어 놓은 이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잊지 않는다. 1만 6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대통령 DNA/이순녀 논설위원

    필리핀에서 세계 첫 모자(母子) 대통령이 탄생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은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정치 가문의 영향력이 막강한 필리핀은 이에 앞서 부녀(父女)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10년째 집권 중인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1960년대 재임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이다. 전직 대통령의 딸과 아들이 대권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됐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 대를 이어 최고 권력으로 선출된 사례는 흔치 않다. 미국에선 부자(父子)대통령이 두 번 등장했다. 2대 존 애덤스와 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41대 조지 허버트 부시와 43대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그들이다. 아르헨티나는 두 번의 부부(夫婦) 대통령 기록을 갖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남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에 이어 권좌에 올랐다. 앞서 197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세번째 부인 이사벨은 남편이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최초의 부부 대통령이 됐다. 그런가 하면 형제 대통령을 곧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쌍둥이 형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전 총리가 6월20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대로 유명 정치인을 배출하는 정치 명문가의 영향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막대하다. 미국의 케네디가(家), 일본의 하토야마가, 파키스탄의 부토가 등이 대표적이다. 성씨만으로도 주목받는 이점 때문에 정치 세습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엄존한다. 그러나 가문의 후광이 자손의 능력까지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명문가 출신 타이틀이 출세의 발판은 될 수 있어도 방패막이가 될 순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아무리 부자, 부녀, 모자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나라에서 ‘대통령 DNA’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되어지는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부모 잘 만난 덕에 저절로 권력자가 되는 운좋은 자식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세계 최장기 집권 독재자인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사망하자 아들 알리벤 봉고가 권력을 승계했다.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도 아들을 후계자로 점찍고 권력 세습 작업 중이라고 한다. 중국까지 가서 후계 문제를 상의하며 3대 부자 세습을 꿈꾸는 북한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나루터 복원/노주석 논설위원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치수(治水)를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로 여겼다. 하천을 파내서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고, 수로를 만들었다. 조선후기 한양이 인구 2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한 것은 대대적인 수로개척에 힘입은 바 컸다. 팔도의 화물이 황포돛배에 실려 한강의 주요 나루를 통해 들어왔다. 마포나루에만 작게는 하루 100척에서 많게는 200척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경강(京江)상인 혹은 강상(江商)이라 함은 한강 중에서도 한성부가 다스리던 광나루에서 양화나루 일대, 즉 경강을 주요 상권으로 삼던 객주세력을 이른다. 경쟁자였던 송상(松商)은 개성, 만상(灣商)은 의주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마포나루는 한강 하류로부터 올라오는 어물과 상품의 최대 집산지였고, 송파나루에는 한강 상류 서북지방 및 삼남으로부터 서울로 수송되는 상품이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들었다. 뚝섬에는 목재와 땔감이 산을 이뤘다. 19세기 초 ‘비변사등록’에는 “경강에는 각지에서 모여드는 상선이 해마다 1만척을 헤아렸다.”라고 기록돼 있다. 나루는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수상교통로. 후에 진지와 초소로서의 기능이 더해졌다. 한자로는 나루 진(津)을 주로 썼고, 강폭이 좁으면 도(渡)를 붙였다. 초소가 설치됐으면 진(鎭)을 썼다. 광나루는 광진(廣津), 삼밭나루는 삼전도(三田渡), 한강나루는 한강진(漢江鎭)이라고 각각 쓴 까닭이다. 광나루, 삼밭나루, 동작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가 조선 초기 한강의 5대 나루로 꼽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송파나루, 뚝섬나루, 한강나루, 마포나루 등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교통 요충지인 이들 주요 나루터에는 어김없이 다리가 들어서 나룻배 대신에 행인을 실어나르고 있다. 광나루에는 광진교와 천호대교가. 삼밭나루에는 잠실대교, 한강나루에는 한남대교, 동작나루에는 동작대교, 노들나루에는 노량대교가 각각 들어섰다. 정부가 어제 4대 강 유역의 유서깊은 나루터 37곳을 복원한다고 밝혔다. 한강 양화나루 등 7곳, 금강 백제나루 등 7곳, 영산강 사포나루 등 12곳, 낙동강 덕남나루 등 11곳 등이다. 선착장으로 조성하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으면 복원 후 원형 보전한다. 복원 후에는 황포돛배를 띄울 계획이라고 한다. 1970년대 전후만 해도 전국의 주요 강에는 수천 개의 나루터가 수상교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불과 30년 만에 나룻배와 행인은 간데없다. 사라진 나루터를 생전에 다시 보게 되려나.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황정음 “파란만장 여인의 삶, 긍정의 힘으로 연기”

    황정음 “파란만장 여인의 삶, 긍정의 힘으로 연기”

    톡톡 튀는 ‘깜찍 발랄의 대명사’로 대중문화계를 평정한 황정음(25).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꾼 그녀의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긍정의 힘’에 있었다. SBS 새 월화 드라마 ‘자이언트’를 통해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는 그녀를 지난 4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스타덤 “전 언젠가 꼭 잘될 줄 알았어요.” 두 눈을 반짝거리는 황정음에게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예전부터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잘될 거야’라고 수없이 생각했거든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그리 얄밉지 않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지붕킥)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지난 1년간 단 하루밖에 쉬지 않았을 정도로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전날도 영화 ‘고사2’ 촬영으로 거의 밤을 지새웠지만, 목소리는 밝고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은 그런 시기는 지났지만, 한때는 잠도 웃으면서 잘 정도로 행복했어요. ‘지붕킥’을 통해 연기하는 재미를 알게 됐고, 그 캐릭터에 빠져서 오직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땐 ‘네, 아니오’하는 대사 한마디도 망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했을 정도였으니까요.” 2002년 여성그룹 ‘슈가’의 멤버로 데뷔한 황정음은 2007년 연기자로 본격 변신했다. 그러나 연기생활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새’, ‘에덴의 동쪽’ 등에 출연했지만,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선입견에 연기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연예생활 가운데 ‘슈가’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데뷔했는데, 어리고 예민한 시기에 사회에 나오니 힘들었어요.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에도 일에 흥미가 없으니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지금 보면 표정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한때 연예인 포기하려 했죠” ‘슈가’ 탈퇴 이후 다시는 연예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황정음. 연예 기획사와 다시 연락이 닿아 연기자로 첫발을 내딛긴 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그때 찾아온 것이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다. 실제 연인인 김용준과 동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하는 일도 없었고 다음 작품을 할 때 좋은 기회로 삼자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그때 우연히 ‘지붕킥’ 감독님이 저를 보시고 시트콤에 캐스팅하신 거죠. 요즘엔 사람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시트콤 출연은 예상 밖의 반응을 불러왔다.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그녀는 ‘지붕킥’에서 술먹고 길거리에서 실신하고 온몸을 던지는 몸개그로 코믹하게 변신했다. 그동안 비호감을 보였던 대중들도 하나둘 호감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원래 4차원의 독특한 성격이고, 막내라 애교가 많은 편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아해 주신 것 같아요. 연기를 즐겁게 하게 된 이후에 정말 많은 것이 찾아왔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전 이제 TV만 봐도 자기 일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무당’처럼 대번에 알아낼 수 있어요.” ●“가장 얻고 싶은 것은 바로 연기력” 누군가 주변에서 안 좋은 소리를 할라치면 “그런 이야기는 전하지도 말라.”며 말릴 정도로 긍정적인 성격의 그녀는 이번엔 또한번의 쉽지 않은 도전을 준비 중이다. 경제부흥기인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한 대하 드라마 ´자이언트´를 통해 정극 배우 도전에 나서는 것. “‘지붕킥’ 이후에 비슷한 로맨틱 코미디 출연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대작을 하고 나면 힘은 들겠지만,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자이언트’를 선택했지요. 전도연, 고현정 선배님처럼 배우다운 이미지는 정말 값진 것 같아요.” ‘자이언트’ 연출자인 유인식 감독도 황정음이 정극 배우로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극중에서 이미주 역을 맡아 식모에서 미혼모, 당대 최고의 여배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연기하는 황정음은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다. “이번에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연기력이에요. 조금 무거운 역할이지만,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인물을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지붕킥’ 이미지를 굳이 잊으실 필요는 없구요. 좀 더 성숙해진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입고 나오는 옷과 소품마다 품절돼 ‘완판녀’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황정음. 줄 잇는 CF 출연에 통장 잔고도 487원에서 12억원으로 늘었단다. 지금은 꾸밀 시간도, 돈 쓸 시간도 없지만 앞으로 많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소중하다는 그녀는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녀의 ‘해피 바이러스’에 기꺼이 감염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동서 문명의 꼭짓점 터키 들춰보기

    동서 문명의 꼭짓점 터키 들춰보기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이자 거대했던 제국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터키.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은 고작 1만여명에 그쳤지만, 요즘 터키는 1년에 3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찾는 익숙한 나라가 됐다. 터키는 6·25전쟁 참전국의 하나로 한국과 오랜 인연이 있는 곳. 하지만 국내에는 터키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있게 소개한 안내서가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신간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유재원 지음, BM책문 펴냄)은 반가운 책이다. 터키 여행객이 드물었던 1970년대부터 그곳을 드나들었던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학과 교수가 현지 여행 경험과 역사적 지식을 총동원해 터키의 역사와 문화의 구석구석을 짚어낸다. ●저자의 깊고 풍부한 지식·생생 탐방기 언어학을 전공한 유 교수는 그리스 유학 시절, 세계사나 언어학 속에서 그리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터키를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대 젊은 나이에 처음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했던 그는 그동안 모은 자료에 최근의 터키 현지 조사를 토대로 책을 썼다. 구석구석을 두 발로 직접 찾아갔음은 물론, 참고문헌만도 헤로도토스 ‘역사’를 포함해 100권이 넘는다. 책의 많은 부분은 역시 제국의 오랜 수도였던 이스탄불에 할애했다. 이스탄불은 330년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된 이래, 오스만제국 등을 거치며 1923년까지 1600여년간 수도 역할을 한 유서 깊은 도시다. 유 교수는 이스탄불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는 그리스, 로마, 오스만튀르크 등 제국의 오랜 흔적을 찾아 전한다. 그가 대표적인 제국의 교차로로 제시하는 곳은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다.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성당은 6세기 것으로, 본래 기독교 성당으로 지어졌다. 그러다 오스만튀르크 시대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됐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처럼 성당 안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스와 로마, 터키의 문화가 혼재돼 있다. 유 교수는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문헌을 인용해 가며, 구석진 벽면에 남은 모자이크 하나까지도 상세한 설명을 붙인다.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여행은 하투샤, 콘야 등 과거 또 다른 제국들의 수도로 계속 이어진다. 현재 터키의 행정 수도인 앙카라에 대한 기록도 빼놓지 않는다. 수도로서의 역사는 짧지만 앙카라는 히타이트 등 기원전 1000년 이전에 명멸한 나라들의 유물을 간직한 독특한 도시이기도 하다. 책에는 서양철학의 근원지 밀레토스,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 트로이 전쟁의 배경지 트로이, 헤로도토스의 고향 보드룸, 노아의 방주가 서 있던 도우베야즈트 등에 대한 소개도 실렸다. ●6·25참전 군인 등 사람이야기 재미도 여행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같이 이스탄불의 길을 걸었던 소설가 이윤기 등 벗들과 얽힌 에피소드부터 터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옛 셀주크튀르크제국의 수도에서 만난 전통춤을 추는 수도승들, 6·25 전쟁에 참전했던 터키 군인 등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재미를 준다. 그리스정교회 최고 지도자인 총대주교를 알현한 기록도 담았다. 종종 등장하는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도 곱씹을 만하다. 1500년 역사를 가진 바실리카 저수조 유적 입구까지 들어선 찻집 등 상업주의에 물들고 있는 유적지 풍경, 모르는 사이 하나둘 사라지고 도굴당한 유물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다른 나라 얘기 같지 않다. 전 2권. 1권 2만 2000원, 2권 2만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올 교향악 축제 절반의 성공

    한국 교향악단 최대 축제인 ‘2010 교향악 축제’가 지난달 막을 내렸다. 1989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출발, 올해 22회째를 맞은 교향악 축제는 전국 18개 교향악단이 참여해 기량을 뽐냈다. 교향악 축제 22년사(史)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1991년 음대 입시 부정으로 협연자가 구속 기소되자 연주자를 부랴부랴 교체하는 촌극도 있었고, 준비 부족으로 막판에 참가를 포기한 악단도 있었다. 진전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는 ‘양적 확대’에 머물렀다면 2000년대에는 ‘질적 확대’가 이뤄졌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경제적 풍족함을 토대로 질 좋은 교육을 받았고, 클래식 음악계는 이들 수준 높은 협연자를 수혈받았다. 관객층도 두터워졌다. 무료 초대권으로 객석을 채웠던 과거와 달리 지난해에는 첫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단돈 1000원에 불과했지만 의미있는 흑자였다. ‘1000원 흑자’에는 대관료라는 기회비용이 포함됐다. 교향악 축제는 예술의전당이 기획·진행하는 까닭에 대관료가 실제 오고 가지 않지만 대관료 비용을 따져 셈한 것이다. 금액을 떠나 국·공립 단체의 음악 행사가 흑자를 남겼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는 관객이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었다. 천안함 사건과 6·2지방선거 여파로 주최 측은 해석한다. 지방 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은 지방자치단체의 대대적 홍보를 등에 업기 마련인데 올해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선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향악 축제는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악단 관계자는 6일 “지자체와 재경 향우회의 ‘공연 알리미’ 활동이 미약했다.”며 “정치 변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공연계 현실이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올해 교향악 축제에 젊은 인재들이 다수 발굴됐다는 점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3), 박지윤(25), 김혜진(26), 플루티스트 최나경(27) 등 20대 협연자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동혁 예술의전당 음악부장은 “관객이 다소 감소해 아쉬움도 있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훌륭한 연주를 선보여 실력 면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주말 데이트]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원작자 박흥용 화백

    [주말 데이트]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원작자 박흥용 화백

    원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다. 만화 시장이 회생하려면 애니메이션의 힘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영화나 드라마 러브콜에 손사래 치고 애니메이션 제작 계약을 맺었다. 10년을 기다렸는데 결국 무산됐다. 웬만한 영화보다 많이 든다는 제작비가 문제였다. 운명처럼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결국 영화로 옮겨졌다.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이야기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같은 제목의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2’에 맞서 선전하고 있다. ●10년 훨씬 넘은 만화 많이 팔려 놀라 원초적인 한계를 설정한 절대 존재를 찾아가는 달 같은 검객과 한계를 강요하는 제도를 뒤집으려는 구름 같은 검객의 이야기를 다룬 ‘구르믈’의 원작자 박흥용(51) 화백을 최근 서울 수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를 본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을 시집 보낸 아버지 같은 심정이라고 답한다. 영화가 액션과 대결을 강조하며 원작과는 다르게 만들어졌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감독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며 박 화백은 치켜세웠다. “창작자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쪽 동네 규칙대로 하시라고 했죠. 그 방면 코드도 모르는 제가 훈수를 둔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다르게 해석되는 독립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고 이 감독이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점을 느꼈죠.” 오래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도 잡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있었다고 했다. 대선배인 고(故) 고우영 화백의 말을 기억하며 자제했다고 싱긋 웃는다. “고우영 선생님이 예전에 자신이 하지 말았어야 할 세 가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만화가협회장을 한 것, 잠시 시사만화를 그렸던 것, 그리고 영화 감독을 한 것. 자신의 전공에 충실했어야 했다는 말씀으로 뼈 있게 들었지요.” 원소스멀티유스(OSMU)의 힘을 재차 깨닫게 됐다고도 했다. 영화화 소식에 10년도 훨씬 전에 나왔던 원작이 많이 팔려 놀랐다는 것. 다른 장르에 의탁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느낌도 있어 만화가로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하면서도 “시장이 위축된 탓에 만화가 홀로 살아남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영화 관객들이 OSMU를 통해 만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라고 말한다. 다만, 작품을 소개하는 마당이 크게 줄어드는 등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만화쟁이들이 OSMU 같은 넓은 계산까지 하기에는 여의치 않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박 화백은 1959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큰 절과 한옥을 짓는 ‘대목’(최고 목수)이었고, 아버지는 탱화를 그렸다. 형도 순수 미술을 했다.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를 타고난 셈. 중학교 2학년 때 서울 삼양동으로 이사한 게 ‘그림 본능’이 꿈틀거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삼양동에 만화가들이 많이 살았어요. 그때부터 만화 쪽을 슬금슬금 넘보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인근 송천동에 살고 있는 ‘도전자’의 박기정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1981년 ‘돌개바람’으로 데뷔했지만 신인이 작품을 발표하기에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각종 출판사와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공모전을 섭렵했다. 수차례 상을 휩쓸며 ‘공모전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를 조화시킨 중·단편을 발표하며 ‘작가주의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긴 호흡의 장편에 처음 도전했던 작품이 바로 1994년부터 연재한 ‘구르믈’이다. ‘내 파란 세이버’, ‘호두나무 왼쪽 길로’ 등도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이희재, 오세영 화백과 함께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지만 지금도 어리다며 앞으로 더 공부해 덜 부끄러운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한다. ●신작 이르면 새달 프랑스서 출판 “피아니스트 세계에선 3일 연습 안 하면 관객이 알고, 이틀 안 하면 스승이 알고, 하루 안 하면 본인이 안다는 말이 있대요. 만화쟁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연습하며 손을 풀어야 해요. 탄탄한 그림과 스토리를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요즘 만화계에는 너무 쉽게 그리려는 경향도 있어 아쉽네요.” 신작 막바지 작업도 한창이다. 제목을 ‘6일 천하’로 할지, ‘쾌지나칭칭’으로 할지 고민 중이다. 이르면 6월 프랑스 델쿠르 출판사를 통해 유럽에 출판될 예정이다. 기존 작품의 번역 출판이 아닌, 신작의 해외 직행 출판은 흔치 않은 일이다. 1970년대 충북 영동 지역을 배경으로 주인인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6일 동안 만화가게를 점령한 초등학생 꼬마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예전에는 반짝 대사나 멋진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당위성 있게 전달하고 이야기와 그림을 짜임새 있게 표현할까 고민이 많아요. 독자가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면 만화는 그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거울 같은 역할을 제 만화가 했으면 좋겠네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미소금융을 살리자] 해외 마이크로파이낸스 사례·현황

    [미소금융을 살리자] 해외 마이크로파이낸스 사례·현황

    외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마이크로파이낸스(저신용·저소득층 대상 소액 대출) 사업이 시작됐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주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진 특이한 케이스인 셈이다. 해외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례와 현황을 소개한다. ●미국1994년 클린턴 정부가 지역개발금융기관(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 기금법을 만들어 낙후지역의 지역밀착형 금융기관들에 보조금과 융자금을 제공하면서 미국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만개하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에서 CDFI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고, 또 시중 금융기관들이 수신 지역에 일정 비율 이상 투·융자해야 하는 지역재투자(CRA)법상 내는 기금의 일부도 지역의 서민금융기관에 지원된다. 시카고 쇼어(Shore) 은행을 비롯한 지역사회발전은행(CDB) 32곳, 신용협동조합(CDCU) 265개, 융자기금(CDLF) 159개, 벤처캐피털 21개 등 총 477개의 대안금융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쇼어 은행은 미국 최초의 지역개발은행으로 CDFI 기금을 법제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3년 로널드 글린스키 현 회장 등 시카고 지역의 은행원 4명이 “지역사회를 도우면서도 수익성을 살릴 수 있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설립했다. 1970년대 당시 인구의 70% 이상이 이민자였던 탓에 사회적·경제적으로 황폐화됐던 시카고 남부의 사우스 쇼어 지역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시카고 지역 건설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줘 낙후된 시카고 남부 흑인밀집 거주지역의 건물들을 재개발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또 흑인들에게 싼 이자로 주택 관련 대출을 해주거나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2005년 현재 총 자산 1563만 달러(약 170억원), 12개 지점, 34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마이크로파이낸스 단체는 ‘액시온(Accion)’이다. 1961년 ‘일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세워졌다. 주 사업무대는 남미였다. 1991년부터는 제3세계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 내에서도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시작해 이후 시카고, 뉴멕시코, 샌디에이고, 애틀랜타, 보스턴, 마이애미 등에 잇따라 지점을 냈다. 이들 지점은 액시온 인터내셔널 산하 액시온 USA 소속이지만, 인력과 자금을 별도로 운용하는 독립된 비영리법인들이다. 1991년부터 2006년 현재 15년간 액시온 USA의 전체 대출액은 1억 5400만달러(약 1720억원)에 달한다. 1만 6000여명이 대출혜택을 봤다. 그 공로로 액시온은 소규모사업 발전을 위한 혁신프로그램 대통령상(1998년)과 미국 100대 최고 자선상(2001년)을 받았고 2004년부터 3년 내리 사회문제해결에 공을 세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받는 사회책임상을 수상했다. ●영국 1993년 설립된 글래스고 갱생펀드(GRF·Glasgow Regeneration Fund)가 가장 대표적이다. 영국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글래스고의 7개 지역을 대상으로 ‘수익성이 있고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 지역 주민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해줘 창업을 독려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뤄졌다. 초기에 GRF에 자금을 지원한 기관은 글래스고발전청(GDA), 스트라스클라이드 지방의회, 글래스고 지역 의회,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 보디숍 인터내셔널, BP, 스코티시 홈즈 등이었다. GRF를 운용하는 기관인 DSL(Developing Strathclyde Ltd)도 1993년 설립됐다. GRF는 2001년 6월 청산될 때까지 372개의 고위험 기업에 300만파운드(약 50억원)를 투자, 2126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1000개가 넘는 기존 일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GRF는 2004년 ‘DSL 비즈니스 파이낸스(DSL Business Finance)’라는 브랜드로 통합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국자선은행(The Charity Bank Limited)도 유명하다. 1995년 자선보조재단(CAF·Charities Aid Foundations)이 사회투자의 한 방법으로 자선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재단 내 ‘사회투자자들(Investors in Society)’이라는 특별신탁기금을 설치한 데서 기원했다. 2002년 4월 금융감독청으로부터 수신 기능을 취득하고 자선은행이 됐다.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그 돈을 대출해 수익을 꾸리는 구조는 일반 은행과 똑같다. 자선은행이 다른 은행과 다른 점은 고객들로부터 유치한 예금을 싼 이자로 취약 계층에게 빌려준다는 것이다. 대출 이자가 2% 안팎의 저리이다 보니 예금이자는 그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자선은행에 돈을 맡기는 2000여명의 고객들은 수익성보다는 기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아디’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경제권리연합(ADIE·Association pour le Droit L´initiative Economique)’이 대표적 대안금융기관이다. 1988년 설립돼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 금융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등을 목적으로 저리의 소액대출 서비스를 한다. 약 4000유로(약 600만원) 이내의 창업자금, 장비·시설대여를 해주며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를 매긴다. 대출 기간은 2년으로 설정하고 대출금 50%에 대한 5명의 보증인을 요구하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대출심사, 사업진행 상황 정기보고 등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회수율은 7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세계 최초로 대안금융을 목적으로 설립된 시중은행인 ‘윤리은행(Banca Etica)’이 있다. 1994년 22개 이탈리아 금융기관들이 ‘윤리은행 설립을 위한 연대’를 결성해 은행 설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본금인 650만유로(약 95억원)를 모으고,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1998년 12월 윤리 은행을 시중 은행으로 공식 승인했다. 이후 1999년 3월 8일 이탈리아 파도바에 첫 지점을 내고 업무를 시작했다. 윤리은행은 은행예금을 토대로 사회책임투자(SRI)를 진행하는 투자회사 ‘Etica SGR’와 마이크로크레트 업무를 전담하는 ‘ETIMOS’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자본금은 일반 예금주의 저축과 초기 투자자들의 지분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 일반 예금주들의 저축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95%에 이를 정도로 안정적이다. 윤리은행은 ▲사회적 건강과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소외계층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 ▲환경과 시민사회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소득 창업자들을 돕는다. 윤리은행의 고객들은 윤리은행과 거래하는 이탈리아 내 금융기관의 창구를 통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투자분야나 이자율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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