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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구로 디지털단지/임태순 논설위원

    구로 디지털단지만큼 한국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없다. 도시 팽창, 공업화·산업화, 노동운동, 디지털화 등 시대상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옛날 아홉명의 노인이 정착해 사이좋게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구로(九老)는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서울로 편입된 뒤 개발시대에는 수출의 전진기지가 된다. 수출 진흥을 위해 공업단지 조성에 나선 정부가 1964년 이곳에 최초로 수출산업공단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상경한 여공들이 고되게 일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우던 구로공단은 1980년대 이후에는 노동운동의 진원지가 된다. 압축·고도성장에 따른 저임금, 착취 등의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학력을 낮춰 공단 근로자로 위장취업해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반정부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1970년대 후반 11만명이던 근로자는 1995년 4만 2000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쇠락의 길을 걷던 구로공단은 2000년 정보기술(IT) 시대를 맞아 정보서비스·영상·방송통신 등 첨단산업과 제조업, 물류업 등이 어우러진 디지털단지로 변신, 활로를 찾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구로 디지털단지를 찾았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는 그로선 첫 행선지로 이곳이 적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경제성장을 통해 취업난을 없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지나치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만 인사를 했다. 그 자신 유신 시절 시위로 저항하고, 또 이런 전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하는 등 피해를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선거는 고용 창출이 제일의 화두가 되고 있다. 대학교 9학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하니 당연하다.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박근혜 후보,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문재인 후보, 비제도권 세력을 대변하는 안철수 교수 등 모두 일자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세계화, 정보화 시대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 대신 민주, 자유 등은 억압을 받아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맹자는 ‘항산(恒産)에 항심(恒心)’이라며 일정한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염치, 양심 등 정신적 기반이 유지된다고 했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젊은 유권자들은 항산과 항심을 함께 거둘 수 없었던 우리의 과거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일본 B급 영화의 대부 스즈키 세이준 감독 초기작 등 29편을 만나다

    일본 B급 영화의 대부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명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회고전이 열린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사인 닛카쓰 창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10월 21일까지 닛카쓰의 대표작 9편과 닛카쓰의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 29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연다. 이번 행사는 특히 ‘스타일의 혁신’이라는 부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닛카쓰의 대표 감독이자 일본 B급 영화의 기인으로 불린 스즈키 감독의 영화를 돌아보는 데 초점을 뒀다. 1956년 ‘바다의 순정’으로 데뷔한 스즈키 감독은 특히 적은 예산과 저급한 시나리오, 열악한 환경에서 만든 ‘B급’ 영화를 통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와 잔혹한 폭력, 익살스러운 설정이 공존하는 실험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일본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그는 왕자웨이, 쿠엔틴 타란티노, 짐 자무시 등 세계적인 유명 감독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그의 초기작 ‘항구의 건배, 승리를 나의 손에’ ‘악마의 거리’ ‘8시간의 공포’ 등이 소개된다. 그의 작업 터전이었던 닛카쓰는 1912년 일본 영화의 여명기에 설립된 ‘일본 활동사진 주식회사’, 약칭 닛카쓰(日活)로 불리는 영화 제작사다. 신파 영화에서부터 리얼리즘이나 문학성을 살린 현대극에, 전후의 액션 영화와 ‘태양족 영화’로 불리던 청춘 영화, 1970년대의 ‘닛카쓰 로망 포르노’까지 시대와 영화 산업의 변모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며 스타일의 혁신을 이뤄냈다. 스즈키 감독 외에도 미조구치 겐지, 이치카와 곤, 이마무라 쇼헤이 등의 감독들이 닛카쓰에서 활동하며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스즈키 감독의 작품 외에 미조구치 감독의 ‘후지와라 요시에의 고향’, 이마무라 감독의 ‘끝없는 욕망’, 이치카와 감독의 ‘나홀로 태평양’ 등 닛카쓰의 대표작 9편을 더해 총 38편을 상영한다. 회고전 기간에는 일본 영화 연구에 정통한 영화 연구자들과의 시네토크 행사도 세 차례 마련된다. 이번 특별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여는 행사를 시작으로 10월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 12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되는 등 전국 순회 상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시베리아 크레이터에 ‘수조 캐럿’ 다이아몬드 매장

    러시아 시베리아에 향후 3000년은 시장에 공급할 분량의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 현지언론은 “지난 주말 러시아 정부와 과학자들이 3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생성된 시베리아에 있는 거대 크레이터(crater·분화구 모양의 운석충돌 흔적) 탐사를 위한 첫 미팅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포피가이 에스토로블럼(Popigai Astroblem)으로 불리는 이 크레이터는 약 100km 크기로 그간 행성 충돌로 생긴 많은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번 연구의 책임을 맡은 니콜라이 포클리넨코는 “이 크레이터에는 수조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서 “일반 보석보다 두배나 단단하며 산업과 과학적 용도로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가 이 크레이터에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당시 소련 정부는 이미 이 크레이터의 ‘비밀’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판매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던 소련 정부가 가격 하락을 우려해 탐사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었다는 것. 포클리넨코는 “아마도 이번 탐사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이 발칵 뒤집어 질 것”이라면서 “현재 시장에 쌓아둔 다이아몬드 양의 10배 이상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해외건설 5000억弗 달성과 과제/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 시대] 해외건설 5000억弗 달성과 과제/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지난 6월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건설 수주 누계 금액 5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현대건설이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로 해외진출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47년 만에 이룬 쾌거다. 해외 건설시장은 제반 여건이 국내와는 판이하게 달라 위험요소에 대한 예측이 어렵고,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곳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5000억 달러를 수주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해외수주에서의 이 같은 성과는 건설업뿐만 아니라 제조·물류·금융·보험·인력 분야 등 연계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경기 부양이 필요할 때는 파급 효과가 아주 큰 건설분야를 우선적으로 택하곤 했다.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수주 5000억 달러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이룬 공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된 1차 중동 붐 시절에 외화벌이 창구가 되어 산업화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기여했다. 1982년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액이 70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가 21억 달러에 달했는데, 당시 우리 건설업체들은 해외에서 133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고, 2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우리 건설사들이 국민경제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해외건설이 단일 품목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우리나라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했을 만큼 국민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둘째, 세계화·국제화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우리 건설 기술자가 외교관보다 발을 먼저 디딘 나라가 많다. 1982년 통계를 보면 해외에 취업한 한국인 건설 근로자가 17만명이 넘고, 가족 동반으로 나간 경우도 부지기수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건설업체들이 해외공사를 수행하는 동안에 발주처, 기술회사, 협력사 관계자 등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해외건설을 통해 우리 업체들은 첨단 건설기술과 비즈니스 관행, 외국 언어와 문화 등 세계화에 필요한 기본양식을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우리가 무역 1조 달러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1965년부터 연인원 수백만명이 지구촌을 누비고 견문을 넓히면서 세계화의 초석을 놓은 덕택이 아닐까? 어쩌면 해외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도 근면과 성실로 고품질의 결과물을 적기에 발주처에 인도해 찬사를 이끌어낸 건설인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2, 3년 전부터 우리나라 업체들 간에 벌이는 과당경쟁에 대해 우려하는 한편,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즈음 어느 건설사가 공사를 수주했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어림짐작으로 손익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리(財利)에 밝은 화상(華商)들이나 선진 기업들은 매출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한다. 그들은 누구의 시가총액이 더 큰가? 누가 이익을 더 창출했나? 즉, 시가총액과 이익으로 회사를 평가한다. 우리 건설사들은 그동안 시장 선점과 지역 다변화, 규모의 경제 시현을 위해 앞만 보며 힘차게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생긴 다소 무리한 수주 경쟁과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관용해 주기로 하자. 그러나 이제는 자숙할 때다. 국내 시장에서 저가 수주를 할 경우 업체로서는 손실을 입지만 그 손실만큼 정부나 사업주가 득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니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해외 공사는 그렇지 않다. ‘무조건 수주하고 본다.’는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더욱이 땅 속에 파이프만 꽂으면 기름이 나오는 산유 부국(富國)까지 가서 우리 업체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며 이익을 깎아먹는 잘못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건설사들이 과거 수십년 동안 열심히 땀 흘린 결과 규모는 충분히 커졌다. 이제는 외형 키우기에 치중하기보다는 사업구조 고도화와 기술개발에 매진해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해외건설 수주 1조 달러 달성과 해외건설 5대 강국 진입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에서 골초가 확 줄어든 진짜 이유…

    미국에서 골초가 사라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성인 1014명을 대상으로 7월 9~12일 흡연 행태와 경향을 전화설문 조사한 결과 흡연자 중 1%만이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이상 핀다고 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44년 갤럽이 첫 조사를 한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이다. 한 갑 이하를 핀다고 한 사람이 68%, 한 갑을 핀다는 사람이 31% 였다. 미국에서 골초 비율은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줄었는데 1979년 30%를 기점으로 1987년 20% 이하로 줄었고 1999년에는 결국 10% 이하로 떨어졌다. 한편 흡연자의 68%는 자신이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며, 78%는 담배를 끊고 싶다고 했고, 88%는 시간을 되돌릴 수 만 있다면 담배를 아예 배우지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 갤럽은 이같은 결과는 담배의 폐해에 대한 많은 정보 제공과 흡연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뉴스팀
  •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를 강조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과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 문학은 세계적 조류와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김정일이 1970년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면서 문학 속 우상화 작업도 마무리됐지요.” 14일 경북 경주에서 폐막한 제78차 국제펜(PEN)대회에서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망명 북한 펜 본부’의 정해성(67) 이사장은 탈북 이후 작품 활동을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1996년 탈북 전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에 소속된 28명의 탈북 작가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왔고, 그런 인연으로 이사장을 맡았다. 정 이사장은 “북한 문학 속 등장인물은 한번 타락하면 벗어나지 못하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다.”며 “친일파가 회개해 해방 이후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설정은 상상도 못하고 아예 친일 반동분자의 등장을 금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성의 기준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느냐이고,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해 인민의 충성을 끌어내는 정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직접 쓴 대본에서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집행하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대사를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 국제펜 정식회원 가입 이어 북한에도 시·소설·희곡 등 분과가 있는데 남측 글쓰기와의 공통점은 권선징악이며 차이점은 표현의 자유라고 덧붙였다.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하는 4·15 문학창작단의 현승걸 단장을 예로 들어, 그가 사석에서 “언제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나.”라고 푸념했다가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적시했다. 엘리트 작가였던 정 이사장은 북한에서 즐겨 읽던 남한 작품으로 소설 장길산·토지·허준 등을 꼽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발간한 ‘시대’라는 잡지에 실린 시인 김지하의 시도 모두 섭렵했다고 했다. 1970년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희곡 특등상을 받은 이진명(59)씨는 “북한의 정형화 작업에 신물이 났다.”면서 “북한에서 문학 한다면 체제수호의 선봉장쯤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의 문학기자(통신원) 출신인 김정근(44)씨는 “또래인 임수경 의원이 1989년 6월 방북했을 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다.”면서 “체제의 위대성을 선전할 각오가 없다면 북한에선 작가나 기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일했던 림일(44)씨는 “김정일은 사실 문학에 관심이 없고 무용·노래·영화 등 극예술에 치중했다.”면서 “해외유학파인 김정은도 일종의 ‘쇼’를 하고 있고 결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림씨는 평양출신으로 쿠웨이트의 조선광복건설회사에 파견돼 일하다 탈출해 1997년 한국에 왔다. 탈북 뒤 소설 김정일 1, 2권을 잇달아 내놓았다. ●‘절반의 성공’ 그친 경주 국제펜대회 한편, 북한출신 문인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던 경주 펜대회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은 널리 알렸지만 정작 국내 문학계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는 침묵했다. 진보성향의 젊은 문인들을 끌어안는 데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유신체제로 정경유착·재벌 탄생… 결국 외환위기 대재앙 불러”

    “유신체제로 정경유착·재벌 탄생… 결국 외환위기 대재앙 불러”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박 후보는 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에 대해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역사적 선택’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홍사덕 전 의원은 지난달 29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유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근대화의 토대를 완성했다는 경제적 성과를 놓고는 평가가 갈린다. 이런 가운데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유신체제가 정경유착은 물론 1997년 외환위기를 불렀다고 비판하면서 진보·보수 간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시켰으며, 일부 헌법의 효력을 중지한다는 제1항을 시작으로 모두 4개 항의 ‘특별선언’도 발표했다. ‘10월 유신’의 시작이었다. 올해는 10월 유신과 유신헌법 공포 40주년이 되는 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등 진보 성향의 4개 역사 단체는 ‘역사가, 유신 시대를 평하다’를 주제로 오는 14~15일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연합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유신체제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학)는 ‘8·3 사채 동결 조치와 재벌의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유신체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면 성립과 유지가 어려웠다.”면서 박정희 정권과 기업의 유착 고리를 “1972년 긴급조치 14호로 발효된 8·3 사채 동결 조치와 500억원의 산업합리화 자금 방출”에서 찾았다. 이론상으로는 고리사채의 성행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대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였다. 정부는 사채 동결 조치에 따른 자금난 해소로 2000억원의 특별 금융채권, 200억원의 긴급 금융, 500억원의 합리화 자금 등을 방출하면서 8%의 금리를 적용했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19%, 사채금리가 36.5%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특혜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특혜 금리로 기업은 연간 1500억원의 자금 지원 효과를 얻었다. 특히 이 특혜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전체 사채의 60%를 끌어다 쓰던 대기업과 공기업에 집중됐다. 1971년 대기업의 타자본 의존도는 79.5%로 중소기업의 67%보다 12.5% 포인트나 높았다. 위장 사채까지 활용한 부실 기업을 정리하지도 않고 정책자금을 마구 쏟아부었다. 정책자금이 방출되면서 조선, 석유화학, 방위산업, 철강, 석탄, 자동차 등 중화학 공업을 하는 공기업과 대기업만 100% 혜택을 보았다. 대마불사식의 기업지원 정책은 대기업의 서열을 바꾸었고, 재벌의 탄생을 이끌었으며, 결과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위기를 초래했다고 박 교수는 규정했다. 박 교수는 “8·3조치는 부실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기업을 유신을 지탱했던 경제적 토대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전남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진우씨는 유신체제의 시작이 19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 폭동부터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박정희가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농촌은 빈곤에 빠지고 급격한 이농이 발생한다. 1960년대 초반 연 19만명에서 1960년대 후반 연 50만명으로 이농 인구가 급증한다. 도시 인구의 비중이 1960년대 29.9%에서 1970년 41.2%로 증가한다. 농촌을 떠난 농민들은 서울 청계천 주변 등 대도시의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게 된다. 정부는 위생 문제를 내세워 청계천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1969년부터 광주로 대규모 강제 이주를 실시했다. 열악한 생활환경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광주 이주민들이 폭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1971년 8월 10일에 발생한 광주대단지 폭동이다. 이는 시민 저항의 신호탄으로, 그해 8월 16일 서울대 교수의 대학자율화 운동과 8월 26일 인천 부평시장 노점상 500여명과 노점철거반의 투석전으로 이어졌다. 3일 전인 8월 23일에는 북파부대원들이 벌인 ‘실미도 사건’이 벌어졌다. 도시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15일 위수령을 발동하고, 12월 6일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8·3 긴급경제조치 등이 10월 유신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 강남개발이야말로 2012년 ‘토건족’의 모태이자 ‘부동산 불패신화’의 근원이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은 도시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의 도로용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면서 “박정희 정권은 1970년 평당 5100원에 산 강남의 토지 약 18만평을 1년 뒤인 1971년 5월에 1만 6000원에 매각해 20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다.”고 했다. 특히 잠실아파트 단지 등 대단지의 연안공유수면 매립 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립면허를 내주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거뒀다고도 주장했다. 4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해 ‘강남 8학군’이 탄생하게 됐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강남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강북지역 개발 억제책도 실시해 ‘강북=낙후지역’이라는 인식도 생겼다. 특히 잠실지구 개발과정에서는 구획정리를 하면서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강남개발 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정권 담당자들이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직접 투기에 가담했다.”면서 “결국 한국이 땀흘리는 사람의 사회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통해 지대를 추구하는 ‘짜릿한’ 사회로 변질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없었다.’는 식의 인식에 대해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겸 역사문제연구소장은 “왜곡된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국 경제의 좌표와 과제를 제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서 “유신체제가 왜 붕괴했나 생각해 보자. 명확하다. 국민이 저항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박정희의 업적이 친일행적, 유신독재, 인권탄압, 민주주의 억압 등의 실정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준에서의 경제성장이었다.”면서 “박정희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더 이상의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파이를 키워야 분배가 가능하다.’든지 ‘선 경제성장, 후 민주화’, ‘경제성장은 독재 덕분에 가능했다.’는 명제들은 모두 착시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오히려 경제발전이 질적 변화를 보인 것은 민주화 운동이 확대된 1980년대 이후”라면서 “박정희 시기 무역적자가 233억 달러였던 반면 재임 기간이 4분의1 정도에 불과했던 김대중 시기에는 84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오동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최헌 노랫말처럼 떠나다

    오동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최헌 노랫말처럼 떠나다

    ‘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 등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 최헌씨가 10일 오전 2시 15분 식도암으로 별세했다. 64세. 고인의 아들 호준씨는 “아버님은 지난해 6월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입·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생활을 하셨다.”면서 “최근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1948년 함경북도 성진 출신인 고인은 명지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1960년대 말 ‘챠밍가이스’ 등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1970년대 초 밴드 ‘히식스’(He6)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합류해 ‘초원의 빛’을 히트시키며 얼굴을 알렸다. 당시 김홍탁이 이끌던 히파이브는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헌을 영입해 히식스로 팀 명을 바꿨다. 김홍탁은 “아침 일찍 전화를 받고 안타까웠다. 최헌은 국내에서는 극히 드문 허스키한 탁성을 지닌 보컬이어서 그룹사운드들이 모두 탐냈다.”면서 “현재 히식스 멤버 중 셋은 한국, 둘은 미국에 있는데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김홍탁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팀이 해체되자 1974년 새로운 멤버 7명으로 구성된 ‘검은나비’를 결성했다. 히식스 시절 김홍탁이 작곡한 ‘당신은 몰라’를 다시 불러 크게 히트시켰고, 1976년 새로운 그룹 ‘호랑나비’를 결성해 ‘오동잎’ 등의 노래로 사랑받았다. 1977년 솔로로 전향한 고인은 1978년 ‘앵두’, 1979년 ‘가을비 우산 속’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와 신사적인 외모로 1970~80년대 최고의 ‘로맨스 가이’로 통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서울 종로 단성사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펼치기도 했고, 1978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 1978년 TBC ‘방송가요대상’ 최고가수상 등을 수상하는 등 1970년대 중후반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1979년에는 고인의 히트곡을 석래명 감독이 영화 ‘가을비 우산 속에’로 개봉해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1983년 그룹 ‘불나비’를 결성해 미국 팝가수인 버티 허긴스의 곡을 번안한 ‘카사블랑카’로 활동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3년 ‘돈아 돈아’, 2006년 ‘이별 뒤에 남겨진 나’, 2009년 ‘울다 웃는 인생’ 등을 발표했다. 대한가수협회 태진아 회장은 “소문으로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시다니 안타깝다.”며 “나도 최헌 선배가 그룹사운드로 서울 무교동 등에서 공연할 때 노래를 들으러 가곤 했다. 가을이 되면 KBS ‘가요무대’에서는 ‘오동잎’, ‘가을비 우산속’을 많이 선곡하는데 이제 선배의 음성으로 들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배영혜씨와 딸 서윤, 아들 호준씨가 있다. 빈소는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30분. (02)2030-7902.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가수 조미미(본명 조미자)씨가 9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5세. 1960~70년대 트로트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고인은 한두 달 전까지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했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음 소식을 듣고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부천 성모병원으로 달려온 지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한 달 전 급성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47년 전남 목포 출생인 고인은 1965년 동아방송 주최 민요가수 선발 콩쿠르인 ‘가요백일장’에서 김세레나, 김부자씨와 함께 발탁돼 데뷔했다. 1965년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한 뒤 1969년 ‘여자의 꿈’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50여장의 앨범을 통해 ‘바다가 육지라면’ ‘선생님’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애수 어린 정조를 아름다운 음성에 담아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73년 6월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인 안성기씨와 서울에서 결혼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다. 결혼 후에도 틈틈이 귀국해 1976년 ‘연락선’ 등을 발표하며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됐다. 이후 가수 활동은 접고 두 딸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지내왔다. 그러다 1986년 긴 공백을 깨고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노래 ‘임진각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 일본에서 귀국해 그해 KBS ‘가요무대’ 25년 특집 방송에 출연해 옛 팬들의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현재 경주 나정해수욕장에 ‘바다가 육지라면’, 서산 왕산포구에 ‘서산갯마을’, 서귀포시에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 고인이 부른 히트곡 세 곡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태진아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불과 한두 달 전에 ‘가요무대’에 함께 출연했는데 투병 중인지 전혀 몰라 갑작스럽다.”면서 “1970년대 초 서대문 영등포 등의 극장쇼 무대에서 자주 뵌 선배로 대한가수협회를 이끌어가느라 애쓴다고 격려해 주던 따뜻한 선배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안애리·애경씨 등 두 딸이 있다. 발인은 11일 오전 6시. (032)340-7301.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과거·현재를 말하다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과거·현재를 말하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353쪽) 중국 현대 소설가를 대표하는 위화(余華·52)가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펴냄)를 냈다. 2009년부터 단속적으로 써내려 간 비허구성 글을 모아 2010년 프랑스어판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해외판에 이어 2012년 가을 비로소 한국어판을 냈다. 위화는 인민, 영수(領袖),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라는 10개의 표제 언어를 제시하고 그와 관련한 자신의 50년 인생 경험을 써내려 간 것 같다. 영수란 마오쩌둥과 관련된 최고의 지도자를 의미하고, 산채는 ‘풀뿌리문화가 엘리트 문화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민간이 정부에 던지는 도전장’이란 뜻도 있지만 산채 스타, 산채 유행가, 산채 TV프로그램과 같이 중국 사회의 혼란을 드러내는 가짜, 모조품을 말한다. 홀유는 또 뭔가 싶을 텐데,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뭔가를 덮어씌우는 일로 산채와 마찬가지로 현대 중국인들의 처세법으로 이를 활용해 사회적·경제적 이득을 노리는 현상이란다. 산채가 모조품과 해적판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 주듯 홀유도 속임수와 헛소문에 합리성의 외피를 입혀주는 것이다. 위화의 표현에 따르면 이 책이 “열 개의 단어를 열 쌍의 눈으로 삼아 열 개의 방향에서 중국을 응시하는 책”이라고 했는데, 읽으면 면도날로 피부를 살짝 베이는 듯한 예리한 고통이 묻어난다. 그는 이 책의 후기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문화혁명기를 맞아 홍위병이 됐고,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77년 문화혁명의 끝을 경험한다. 29살이던 1989년 저장성의 작가였던 그는 베이징에서 톈안먼 사건을 경험한다. 중국에서 절대 검색되지 않고, 검열의 단어인 ‘6월 4일’ 아침 그는 침대 열차를 타고 베이징 역에 도착해 총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는 6월 7일 베이징을 떠났다. 그 후 위화는 6월 4일을 ‘5월 35일’로 표현하며 자유롭게 글을 써 왔다. 또한 30년도 되지 않은 세월에 정치지상주의였던 중국과 중국인들이 금권지상주의로 변해 가는 모습을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위화가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통과하면서 겪어내는 고통을 한국인 독자들은 망각하고 떠나 보낸 한국의 1970년대를 떠올리며 고통스럽게 회고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중국의 과거와 현재가 20~30년의 격차를 두고 그들보다 앞서가는 한국의 과거·현재의 모습과 똑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실려 있는 ‘인민’ 편에서 위화는 “1989년 봄과 여름에 가두시위를 경험한 사람들조차도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중략)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나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상황이 나타났다. 오늘날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1989년 톈안먼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라고 했다. 위화의 ‘불안에 떨게 할 상황’에 맞장구를 치며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탱크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학생들을 짓밟았던 톈안문 사건을 잊을 수 있느냐고. 그러나 이런 질문은 한국의 19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위화는 이렇게 지적했다. “30여년 동안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각종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초고속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낙관적인 정서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국적 상황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히려 위화처럼 중국이 톈안먼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을 불안해하는 작가가 한국에는 있는지 하고 반문하게 한다. 인민 편에서 위화는 1989년 5월 하순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한밤중 기온이 뚝 떨어진 베이징 시내를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다 멀리서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에 그는 몸이 와락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중략)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문화혁명기 시절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발자크 등 외국작가의 작품이 ‘독초’로 찍혔지만 그 명작들은 몰래몰래 전해져 위화에게도 돌아갔다. 다만, 앞·뒷장이 떨어져 나간 이들 명작은 위화에게 ‘밑도 끝도 없는 작품’이 되고, 덕분에 밑과 끝을 위화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이어 붙이면서 위화라는 작가가 탄생했다는 ‘독서’ 편은 낄낄거리지 않고는 읽을 수 없다. 문화혁명기에 읽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읽어야 했던 지겨운 루쉰이 위화의 나이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 “마침내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작가로 돌아왔던” 경험을 다룬 ‘루쉰’ 편은 슬프기도 하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정보기관 감시받던 영국인 가족 佛 휴양지서 청부살인 당한 듯

    프랑스 알프스 휴양지에서 영국인 일가족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TF1 TV 등 프랑스 언론은 지난 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동남부 안시 호수 인근 알프스 자락의 슈발린 마을 숲길의 한 주차장에서 남자 시신 2구와 여자 시신 2구를 발견했다고 6일 보도했다. 숲길 한쪽에 주차돼 있던 BMW 차량 운전석에 남자 1명과 뒷좌석에 성인 여자 2명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져 있었다. 또 피격 당시 현장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프랑스인 남자 1명도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이라크 바그다드 태생의 사드 알 힐리(50)이며 뒷좌석에 타고 있던 두 여자는 이 남자의 아내와 장모라고 밝혔다. 이 가족의 둘째 딸로 보이는 4세 여자 아이는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 만에 차량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 숨진 엄마의 치마 속에서 발견됐다. 또 7세의 큰 딸은 차량 밖에서 총을 맞아 중상을 입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은 뒤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 검찰은 목격자를 확보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개인적인 원한이나 청부 살인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엔지니어인 사드 알 힐리는 1970년대 사담 후세인이 이끌던 정당인 바트당의 박해를 피해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와 치과의사인 부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경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숨진 사람들이 모두 이마 한 가운데 총을 맞은 채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전문 살인청부업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가족 간의 불화가 그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알 힐리의 지인의 말을 인용, 영국으로 피신한 알 힐리의 가족이 영국 정보기관의 특수 요원들로부터 집중 감시를 받아 왔으며 이런 가족의 이력이 피살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Weekend inside] 마포나루 어제 그리고 오늘

    [Weekend inside] 마포나루 어제 그리고 오늘

    200년 전 한양 변두리 경강(지금의 한강)의 마포나루, 먼저 여기서 활동한 어물전 상인 오세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당시 마포나루는 삼남지방의 물자가 모여드는 한양의 문턱으로 대규모 도매시장이 서 있었다. 전국에서 뱃사공, 장사꾼들이 배를 타고 몰렸고, 경강 상인들은 배로 물자를 날라오거나 거간꾼 노릇을 하며 부를 축적했다. 여기서 ‘짠돌이 곰보 오 객주’라 불렸던 오세만은 처음으로 민간 상인 조직을 만든 인물이었다. 관에서 허가받은 상인인 시전상인들에게 어릴 적부터 멸시를 당했던 그는 직접 장삿길로 나선 뒤, 신분상의 특혜를 활용해 사상인(私商人)에게서 부당 이익을 취하는 시전상인들과 맞설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가 찾은 답은 ‘자본력’과 ‘로비’였다. 그는 주변 상인들을 규합해 조직화하고, 평소 알던 관리들에게도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은 경강상인들이 수원 헌릉원을 행차하는 정조를 위해 배다리를 놓아주는 기회를 얻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2년, 마침내 정조는 육의전 이외의 시전의 특권을 폐지하고 사상인의 자유로운 상업을 인정하는 신해통공 정책을 발표한다. 오세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동료들을 계속 모아 마포나루의 난전을 품목별로 정리하고 거리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상인 조직의 뜻을 모아 특정 물품의 유통 시기와 물량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시전상인들은 오세만과 그 동료들을 ‘강상대고’(江商大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세만으로부터 시작된 강상대고들은 물자 유통 뿐 아니라 생산에까지 관여했고 나아가 마포나루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역할까지 했다. 16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마포나루의 상권은 지금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용강동 일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물자의 집산지였던 마포나루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로 운송의 발달과 마포대교의 건설 등으로 조금씩 쇠퇴해 갔지만, 여전히 수많은 상인들은 이곳에서 삶을 꾸리며, 200년 전 이곳을 주름잡았던 오세만과 같은 강상대고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도화동상점가상인회와 용강동상가번영회가 있다. 7일 서울 마포구에 따르면 강상대고의 후예를 자처하는 도화·용강동 상인들은 2011년 서울에서 유일하게 중소기업청 주관 상권 활성화사업 시범구역 지정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들은 이 사업을 위해 마포나루상권활성화법인을 조직하고, 최근에는 마포의 역사와 문화, 또 지금의 마포나루를 터전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묶어, 스토리북 ‘강상대고 활(活)’과 ‘마포나루 활(活)’을 펴내기도 했다. 이매숙 마포나루상권활성화법인 대표는 “마포나루가 조선시대 수상교통의 요충지였던 덕에 도화·용강동 상권도 발달할 수 있었다. 마포나루의 역사가 곧 우리 상인들의 문화 역사의 깊이”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상인들만의 자부심을 곧추세우는 일이 우선이다 싶었다.”고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마포나루의 상인들은 이곳의 역사를 짠맛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다. 전성기 마포나루에는 곡식, 목재, 어물 등 다양한 물자들이 전국에서 올라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것이 바로 소금, 그리고 새우젓이었다. 마포나루에서 소금이 날 리도 없건만 조선시대 마포나루에서 거래되던 소금은 ‘마포염’이라고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를 정도로 유명했다. 질 좋은 소금이 모이는 곳이다보니 더불어 젓갈의 명성도 높았다. 도화동 토박이인 임인식(74) 제일전파사 사장은 마포나루 일대에 새우젓 냄새가 진동하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전차에서 내려 나루터까지 죽 다 새우젓 도가가 있었지. 서울 사람들이 새우젓 사러 여기로 왔잖아. 나루터에 나가보면 새우젓 항아리가 수백 개지 뭐. 보기는 장관인데, 냄새가 말도 못해. 공덕동 로터리에 철길 굴다리만 넘어오면 온 동네가 비릿한 바닷가 냄새로 가득했어.”(‘강상대고 활’ 152쪽) 마포나루 상인들은 새우젓이 짜지도 맵지도 않고 담백한 서울의 음식문화와 궁합이 맞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새우젓은 짠맛을 내되 자극적이지 않으며 색깔 역시 깔끔하기 때문이다. 마포구는 이러한 새우젓의 역사를 2008년부터는 축제판으로 되살렸다. 지난해 4회를 맞은 한강마포나루새우젓 축제에는 4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3일간 열린 축제 현장에서 거래된 새우젓만 해도 충남 강경, 인천 강화, 전남 신안 등 총 5대 산지 15개 업체에서 가져온 물량 7억여원어치가 거래됐다고 하니 왕년의 전성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올해 제5회 새우젓축제는 새달 19~21일 열릴 예정이다. 강상대고의 후예들은 지금도 함께 소금을 구입하고 있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짠맛을 전통으로 이어가겠다는 생각에서다. 상인회에서 직접 전남 신안군 일대에서 사오는 소금은 새우젓 도가를 대신해 지금의 마포나루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깃집들이 사용한다. 갈비, 껍데기, 주물럭 등 마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메뉴판을 채운 수십년된 고깃집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퇴근하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축제 현장에서나 재현되는 새우젓 도가의 끄트머리는 본래 마포종점과 닿아있었다. 마포나루 상인들은 소금의 맛과 함께 마포종점의 감성도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1899년 청량리에서 출발한 전차는 1968년 11월 마포에서 멈췄다. 그 즈음 마포나루 설렁탕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작사가 정두수와 작곡가 박춘석은, 유학을 갔다 유해로 돌아온 남편을 잊지 못해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전차역 종점에 나온다는 바걸(bar girl)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명곡 ‘마포종점’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사랑했던 마포의 밤과 애달픈 이야기는 상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마포종점 가요제’로 이어지고 있다. 도화동 상가상인회는 지난해 10월 상인들이 마련한 기금과 재능 기부로 행사를 직접 기획, 이를 성공리에 치러냈다. 강상대고로 내려온 문화적 유전자가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마포종점 가요제를 기획한 김만식(60·도화동·부동산중개소 운영)씨는 “마포종점 가요제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사이사이에 작은 공연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그게 이 지역만의 문화가 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도 말했다. 마포구는 새우젓축제 외에도 다양한 행정 지원을 통해 강상대고의 부활을 돕고 있다. 구는 경관 조명을 새로 설치해 밝고 활기찬 이미지의 마포나루 길을 조성하고 상징탑도 설치할 계획이다. 또 상인교육장, 커뮤니티 공간 등 상인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이곳은 조선실학자 토정 이지함의 실사구시 정신이 깃든 곳으로 한강변 상인들을 하나로 묶고 인간 중심의 문화를 펼쳤던 강상대고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라며 “미래의 마포나루는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와 전통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문화 상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나루는 변하고 있다. 전국의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던 강상대고의 무대였던 이곳은 이제 그 후예들의 노력으로 풍부한 역사와 문화, 또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포나루에는 세대를 이어가는 음식점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마포나루의 완성을 위해서는 거기에 끊이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드럼통에 둘러앉아 마포나루의 고기 굽는 냄새와 짠맛의 역사를 맛보는 건 어떨까.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선수’가 인정하는 진짜 기타 고수 내한

    ‘선수’가 인정하는 진짜 기타 고수 내한

    등수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계 3대 기타리스트’ 같은 말을 곧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가수나 연주인 등 동종업계에서 인정하는 숨은 고수는 따로 있다. 기타 실력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궁극의 고수들이 이달 한국을 찾는다. 퓨전재즈와 블루스, 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래리 칼튼(64)은 전설적인 가수들이 스튜디오 녹음과 순회공연 때 0순위로 찾았던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1968년 데뷔앨범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로 주목 받은 칼튼은 1970~80년대 주로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한해 레코딩 숫자만 500장에 이를 만큼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스틸리 댄, 조니 미첼, 빌리 조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했다.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는 한편, 1970년대 재즈록 그룹 더 크루세이더스의 멤버로, 1998년부터 리 릿나워에 이어 재즈그룹 포플레이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칼튼을 흘러간 뮤지션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0여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4개의 트로피를 수집했는데 그중 마지막은 지난해였다. 2010년 일본의 인기그룹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다카히로와 함께 작업한 ‘테이크 유어 픽’ 앨범으로 지난해 그래미에서 최고 팝 연주 부문 상을 받았다. 2010년 포플레이를 탈퇴하기 전까지 네 차례 내한공연을 했던 칼튼이 이번에 첫 단독공연을 갖는다. 8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무대에서 분신과도 같은 깁슨 ES335 기타로 ‘룸 335’를 비롯한 명곡을 들려준다. 9만9000~11만원. (02)3143-5156 팝, 록, 재즈 등 장르의 구속을 당하지 않는 음악인 웨인 크랜츠(56)는 국내에선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통한다. 피아노로 시작해 기타로 전향한 그는 1991년 데뷔작 ‘시그널스’를 시작으로 여러 장의 라이브 앨범을 선보였고,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뉴욕의 라이브클럽 ‘바55’에서 공연을 했다. 같은 시기 버클리음대(보스턴) 등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학했던 한국의 실용음악 유학생들 사이에 ‘바55에 가면 기타 귀신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0년 첫 내한공연 당시 한국에서 기타 좀 친다는 사람은 다 모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가장 오랫동안 트리오의 구성원으로 크랜츠와 호흡을 맞춘 멤버는 베이시스트 팀 르페브르와 스팅 내한 공연 때 드러머로 참여했던 키스 칼록이다. 하지만 27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무대에는 칼록(드럼)과 네이트 우드(베이스)가 함께한다. 르페브르의 일정이 맞지 않은 탓에 아시아·미국투어의 드러머로 우드를 긴급 섭외한 것. 우드는 요즘 미국 재즈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밴드 가운데 하나인 니바디(Kneebody)의 멤버로 주로 드럼을 두드리지만, 베이스·기타는 물론 앨범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주무르는 만능 음악인이다. 지난 4월 발표한 신작 ‘호위 61’을 비롯한 크랜츠의 대표곡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4만~6만원. (02)941-115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하반기 한국경제 어디로] 설비투자 감소로… 잠재성장 3%대 추락

    [하반기 한국경제 어디로] 설비투자 감소로… 잠재성장 3%대 추락

    1990년대까지 우리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설비투자가 오히려 경제의 ‘짐’이 되고 있다. 저조한 투자로 인해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잠재성장률(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은 3%대 중반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기업의 투자 의지를 북돋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기술 혁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획재정부는 6일 경제동향 9월호의 ‘최근 설비투자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환란 이후 기업들이 경기확장 국면을 확인한 뒤 투자하는 등 투자 양상이 보수화됐다고 지적했다. 1990~1997년 설비투자는 경기 국면에 3분기 정도 앞서고 2분기 정도 후행했지만, 1998년 이후에는 선행성·후행성 모두 1분기로 짧아졌다. 특히 기업들의 내부자금 투입 비중이 1998년 29.9%에서 2010년 67.9%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실패를 무릅쓰고 창조적 파괴를 통해 가치를 혁신하는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고 재무 안정성만을 중시하는 기조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전기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1991~2000년 평균 9.1%에서 지난해 3.7%로 둔화됐다. 특히 지난해 4분기(-3.2%)와 올해 2분기(-2.9%)에는 되레 뒷걸음질 치며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저조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커질 때 설비투자 증가율은 ▲미국 8.5% ▲프랑스 9.7% ▲일본 7.4%였지만 우리나라는 6.7%에 그쳤다. 설비투자 부진은 생산능력 감소로 이어져 잠재성장률 하락을 불러온다. 1970년대 연평균 15.6%였던 제조업의 생산능력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4% 정도로 추락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와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까지 더해져 4% 안팎으로 추산되던 잠재성장률이 더 떨어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3%대 중·후반, 현대경제연구원은 3.8%를 각각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올해부터 2025년 사이의 한국 잠재성장률을 2.4%로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1%대 추락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7%대였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고, 향후 경기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있다면 국내 기업들의 투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국내외 경제가 지식기반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는 만큼, 잠재성장률 상승을 위해서는 투자 확대와 더불어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번달 전기료 최고 5배 ‘폭탄’

    이번달 전기료 최고 5배 ‘폭탄’

    지난 7~8월 1994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염을 견디기 위해 냉방기 등에 의존했던 가정에 9월 들어 요금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달 들어 각 가정에 전달보다 4배가량 오른 전기요금 고지서가 전달되면서 한국전력 등에는 “이게 웬 날벼락이냐. 전기요금체계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항의성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가정용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와 산업용보다 비싼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일 전력당국에 따르면 9월 각 가정에 고지된 전기요금(7월 14일~8월 15일 사용분)은 8월 평균요금보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더 나왔다. 7월 중순부터 폭염과 열대야 등으로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각 가정의 전기사용량이 2배가량 늘어난 데다가 누진제가 적용되면서 전기요금이 10만원대를 훌쩍 넘어선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나상만(42·서울 은평구)씨는 “7월보다 8월에 전기를 2배가량 더 썼는데 요금은 6만원대에서 20만원으로 4배 가까이 더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김천태(39·서울 강서구 화곡8동)씨는 방학 중에 자녀들이 에어컨을 틀면서 평균 2만원대 후반이던 요금이 10만원이 넘게 나왔다. 김씨는 “습기가 많은 반지하라 벽걸이형 작은 에어컨을 낮과 밤에 잠깐씩 틀었다.”면서 “전기사용량은 전달(234㎾)에 비해 약 2배(464㎾)가 늘었는데 요금은 3배가 넘게 나왔다.”고 했다. 이는 폭염으로 각 가정의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 데다가 8월 초 요금 인상(2.7%), 가정용 전력에 적용되는 누진제 때문이다. 실제로 ㎾당 가정용 전기요금은 최고 677원으로 일반·산업용 180원대보다 4배 가까이 비싸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에는 기본요금과 비교하면 최대 11.7배에 달하는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체 등에 싼 전기를 공급하던 시스템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반 가정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전해 주는 전기요금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경한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정부는 40여년 전에 만든 주택용 누진제의 기본 구간을 늘리고 누진단계도 3~4단계로 축소하는 등 서민 가구의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요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용어 클릭] ●전기요금 누진제 1974년 석유파동 이후 전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도입한 누진제. 사용량에 따라 요금 단가를 높였다.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사용량 요금(㎾당)이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월 사용량이 500㎾를 초과한 6단계 요금 단가는 677.30원으로 100㎾ 이하인 1단계 57.90원보다 11.7배 더 높다.
  • [아동 성범죄 무방비 도시] (2)‘포르노 천국’ 대한민국

    [아동 성범죄 무방비 도시] (2)‘포르노 천국’ 대한민국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형사님도 포르노 보면 더 자극적인 것 원하잖아요.” 2007년 12월 경기 안양에서 초교생인 여아 2명을 성폭행·살해한 범인 정성현(43)은 검거 뒤 범행을 실토하며 이렇게 말했다. 압수한 그의 컴퓨터 속 ‘로리 사진’(소아애호증을 뜻하는 로리타 콤플렉스에서 따온 말로 추정됨) 폴더에는 미성년 나체 사진 441개와 포르노 780여편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정성현이 내뱉은 인면수심의 발언 뒤에는 포르노에 중독돼 뒤틀린 성범죄자들의 비뚤어진 심리가 깔려 있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자 3명 중 1명은 범행 직전 아동 음란물을 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주 여아 성폭행 사건의 범인 고종석(23)이 “평소 어린이가 등장하는 일본 포르노물을 즐겨 봤다.”고 진술하면서 아동 음란물이 성범죄를 부추기는 촉매제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국내 주요 웹하드 사이트 10개를 조사한 결과 1분마다 한 건 이상 음란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인터넷 다운로드의 35%가 음란물이며 학계에서는 한 해 국내에서 내려받는 아동 포르노가 400만편이 넘는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진화로 포르노물은 청소년들의 손바닥 위까지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포르노물에 중독 수준으로 빠져들면 왜곡된 성관념과 범죄관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외국 연구 결과 음란물을 많이 시청한 집단은 ‘아이나 여성은 성폭행당하기를 원한다’거나 ‘성폭행의 책임은 피해 여성에게 더 많다’는 등의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음란물 몇 편 본다고 당장 성범죄 의지가 생기지는 않지만 포르노를 지속적으로 시청하면 잠재적 성범죄자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범죄욕이 발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성범죄자 중 소아애호증 등 성도착증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라면서 “성인 여성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남성이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성적 호기심을 키워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970년대 30여명의 미국 여성을 연쇄 성폭행·살해했던 살인마 테드 번디는 범행 수법 대부분을 가학적 포르노에서 배웠다며 “성폭행과 연쇄살인을 막을 최상의 대안은 포르노 규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성장기의 아동·청소년들이 포르노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발표한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초·중·고교생들은 대부분 ‘성인용 매체를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5점 만점에 3.87점)하고 있었다. 고교생 백모(17·서울 사당동)군은 “일대일 파일 공유 사이트에 검색어만 입력하면 포르노 수백 편이 뜬다. 요즘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야동’(야한 동영상)을 어디서 내려받느냐고 묻는 어른도 있다.”고 전했다. 김봉한 청주대 교수(컴퓨터정보공학) 등이 최근 고교생 15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이버 음란물 접촉 경험이 있는 학생이 성범죄를 저지른 비율(25.4%)이 그렇지 않은 학생(5.4%)보다 4배 이상 높았다. 특히 고종석처럼 폭력성 강한 게임에 빠지면 충동적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내면의 폭력성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0년에는 미 명문대를 중퇴한 20대 청년이 “게임 중 집 밖으로 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행인을 묻지마 살해하는 사건이 서울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유대근·이범수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의대의 책임, 정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장

    [열린세상] 의대의 책임, 정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장

    지난주 춘천에서 국립의대학장협의회가 개최되었다. 서울의대를 비롯한 전국 10개 국립의대 학장단이 참석해 ‘국립의대의 상호협력방안’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과를 전공할까를 고민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직업 안정성과 장래 전망이다. 1960년대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던 학과는 화학공업학과였다. 1970년대에 기계공학과와 조선공학과, 1980년대엔 전자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에 전국 최고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대학 졸업 후 그들은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1980년부터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전자, 정보기술(IT)분야에서 국부 창출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의학과는 꾸준히 인기가 높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의대의 인기가 거의 폭발적인 수준이다. 국내외 경제 불안과 직업 안정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국 상위 0.1% 이상의 수재들이 대거 의대로 몰리고 있다. 매년 전국 41개 의과대학에서 약 3100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의대 졸업생이 국가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매년 의대 졸업생 중에서 생리학이나 병리학과 같은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졸업생은 전국에서 고작 30명 정도이다. 질병의 진단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역할을 하는 병리과 전문의는 매년 10명 정도가 배출되는데, 종합병원 전체 숫자에도 모자라는 수준이다. 병리과 의사가 하는 일 중에는 수술 중에 잘라낸 조직의 가장자리에서 암세포가 있는지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외과의사에게 알려주는 일이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알려 주어야 수술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다면 우리 의료의 질적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의과대학은 최신 의료지식과 기술을 갖춘 실력 있는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일차 목표이다. 그러나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도 단말마적 쾌락 추구의 극단까지 가서 ‘우유주사’로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만삭의 부인 살해 의혹을 받는 의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기본적인 인성과 품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의사가 지식과 기술만 갖추면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도 중국의 행림촌과 편작에 버금가는 장기려, 이종욱, 이태석과 같은 의도의 표상이 되는 의사가 있었다. 앞으로 우리 의대는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 통일 한국을 준비하고, 글로벌 의료계를 리드하고, 미래 먹거리의 핵심인 바이오 생명과학에 앞장서는 의사 등을 배출하도록 해야 한다. 매년 의대 졸업생의 10%를 공공 및 글로벌의학 분야 인재 양성에, 10%를 기초의학 기반의 임상의학과 생명과학을 연계하는 중개의학 전문가 육성에, 나머지 10%는 신약 개발 및 병원 수출의 역군이 될 바이오의료산업계 리더로 키우자. 소위 ‘Three Ten Project’의 시작을 알린다. 이런 일들은 대학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의 의료정책은 규제와 관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이 어렵다 보니 의료계나 시민들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의 협조를 구하고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포괄수가제나 응급실 전문의 근무제 같은 것은 정책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충분한 제도이다. 다만 현실적인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확대 시행 시에 예상되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시행당사자인 의료계의 불만이 어디에 있는지 겸허하게 들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인턴제 폐지에 따른 의학교육 과정의 개편이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의료인력 수급 계획에 대한 방향, 더욱 심해지는 의료전달체계의 왜곡 현상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 의료계와 긴밀히 협조해야만 한다. 의료계에 책임만 지울 게 아니라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신뢰할 만한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의료계 내부의 뼈아픈 반성과 자정 작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상위 0.1%의 수재들을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키워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산불 공중진화 능력 세계최고 수준… ‘숲의 파수꾼’

    산불 공중진화 능력 세계최고 수준… ‘숲의 파수꾼’

    산림청 소속 기관인 산림항공본부가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지금은 산림 현장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가냘픈 묘목이 낙락장송으로 성장한 격이다. 일제의 산림 수탈과 6·25 전쟁으로 전국의 산림이 파괴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산림이 솔나방 등 병해충으로 피해를 입자 ‘방제’를 목적으로 1971년 창설된 산림청 항공대가 뿌리다. 헬기 3대와 조종사·정비사 각각 3명으로 출발해 설립 41주년을 맞은 지금은 47대의 헬기와 317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을 제외하면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항공 운영 기관이다. 산불 진화와 항공방제, 산악구조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숲의 파수꾼’이자 ‘하늘의 일꾼’으로 전천후 활약상을 자랑한다. 초기 산림 헬기의 역할은 항공방제에 집중됐다. 당시 보유 헬기도 방제에 적합한 기종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산불 계도 비행이 추가되고, 1981년 서울 양재동 산불 진화에 처음 투입되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역할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전국적인 산림녹화로 숲이 울창해지고, 낙엽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아지면서 산불 피해가 확산되던 1980년대 후반 중요 업무가 산불 공중진화로 전환됐다. ●대형산불 경험 후 초동 진화체계 구축 산불 역사에서 러시아제 대형 헬기 카므프(KA32T)와 강원 고성 산불, 동해안 산불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3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카므프는 산불 공중진화 역량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남산(339㏊)의 11.3배에 달하는 3834㏊의 산림 피해가 발생한 1996년 고성 산불은 화재 현장에 신속히 접근하는 항공관리소의 필요성 인식과 함께 실질적인 현장 진화를 전담할 공중진화대 신설(97년)로 이어졌다. 산불 피해 집계가 이뤄진 이래 최악인 2만 3794㏊의 피해가 발생한 2000년 동해안 산불은 그해 4월 7일 강원 고성에서 발화해 15일 경북 울진까지 산림을 초토화시켰다. 쓰레기 소각에서 돌변한 화마를 잡기 위해 194대의 헬기가 투입되는 기록도 남겼다. 이를 계기로 산불 진화 체계가 초기진화로 재구축되는 한편 국민들에게 산불의 위험성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항공사고 62% 방제 중 발생 산림 헬기의 역할은 11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는 산불, 6~8월은 항공방제, 9~10월은 인명 구조와 산림현장 화물운송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 중 2~8월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산불조심 기간인 봄에는 산불에 맞서 숲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여름철에는 숲을 치유하는 ‘에어힐링’(방제)으로 탁월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산림항공본부는 현재 본부와 8개 지역관리소 체계로 헬기 47대와 조종사 75명, 정비사 70명, 공중진화대 46명을 분산 배치하고 있다. 30분 내 산불 현장 도착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연간 비행 시간 가운데 산불진화 작업이 전체의 35%를 차지하며 이어 방제(25%), 구난·구조·화물운송(15%) 순이고 나머지는 계도 및 비행훈련 등이다. 태안 기름 유출 피해 현장에는 초대형 헬기(S64E)가 투입돼 물대포로 바위에 붙은 기름때를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산림 헬기의 연간 비행 시간은 2009년 8094시간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해 말 기준 6402시간으로 줄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효율성이 검증된 헬기를 임대해 산불조심 기간이나 병해충 방제 기간에 자체 투입하면서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조종사 1인당 연간 평균 비행 시간은 150~200시간으로 군을 포함해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길다. 지난 40년간 발생한 항공사고는 34건. 이 중 62%(21건)가 항공방제 과정에서 발생했다. 항공방제는 폭염 속에서 최대의 방제 효과를 내기 위해 70~100㎞로 저공 비행(나무 초두부에서 10m)하므로 위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전 5시에 시작해 오전 11시 이전에 마쳐야 하는데 이 시간대에는 안개와 구름, 돌풍 등 기상악화 변수가 잦다. 베테랑 조종사들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시간대다. 방제에 파견되면 평균 7~10일 꼼짝없이 근무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박영빈 진천 산림항공관리소 운항실장은 “화물 공수는 비행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산림헬기 조종 8년차 이상 경력자만 투입되는 등 난이도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비행술·기술력은 세계 최고 우리나라의 산불 공중진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경우는 우리의 항공진화 체제를 벤치마킹해 현재 국내 민간 항공사에서 헬기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군 작전용 헬기로 개발한 ‘카므프’를 국내 지형에 맞춰 산림용으로 개조해 120% 활용하는 능력도 발휘했다. 조종사들의 비행 역량도 뛰어나다. 군에서 2000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이더라도 산림 헬기 조종에 바로 투입되기는 어렵다. 입사 후 기종전환(10시간)과 지상교육(40시간) 등 평균 2개월 교육을 마치고 실전에 투입된다. 미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산악 착륙이 위험한 업무여서 별도 훈련까지 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업무에 속한다. 초대형 헬기 시범 조종을 위해 산불 현장을 찾았던 미국의 조종사가 강풍이 부는 현장에서 대형 헬기를 조종해 이륙하는 산림 조종사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근무 체계는 불안정하다. 조종사가 시트당 1명에 불과해 대형 산불이나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업무 과부하를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8시간 비행 후에는 24시간 휴식이 필요하지만 다음 날 정상 근무를 해야 한다. 정비사도 분산 배치되면서 헬기 1대를 1명이 맡는다. 300시간 후 이뤄지는 중정비는 본부에서 시행한다. 신원주 산림항공본부 안전감독관은 “현장에서 조종사와 정비사는 비상시 절대 아프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면서 “아픈 사람이 생기면 대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공중진화대도 인원 부족으로 산불 시즌에는 2개조(1개조 23명)의 특수진화대로 임시 편성해 산불 위험 지역에 배치하는 실정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후원 : 산림항공본부
  • 태풍 발생지 동진… 中 안거쳐 위력↑

    태풍 발생지 동진… 中 안거쳐 위력↑

    한반도를 찾는 태풍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1990년대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들의 평균 최대풍속은 초속 36.2m였지만 2000년대에는 초속 41.7m로 상승했다.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남기고 29일 소멸한 15호 태풍 볼라벤도 역대 5위 급인 강풍(최대풍속 초속 51.8m)을 동반해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최근 태풍이 한반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힘과 몸집을 키울 수 있는 기상학적 변수들이 생겨나 초대형 태풍이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 이유는 태풍 발생 지점이 과거보다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국가태풍센터의 최기선·차유미 연구사 등이 최근 발표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빈도수의 10년간 변동 특성’ 논문에 따르면 최근 60년간 한반도를 거쳐 간 태풍의 최초 발생 지점은 1981년을 기점으로 동진했다. 동진의 원인은 학술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눈에 띄는 변화를 나타냈다. 북태평양의 태풍 발원지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다수의 태풍이 한반도 서쪽의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다를 따라 북진했다. 태풍은 육지로 상륙하면 마찰력 때문에 급격히 힘을 잃는데 최근의 태풍은 땅을 밟지 않고 브레이크 없이 한반도로 돌진했다. 이런 현상은 2000년 이후 더 뚜렷해졌다. 매미(2003년, 초속 60.0m)를 비롯해 프라피룬(2000년, 초속 58.3m), 루사(2002년, 초속 56.7m), 나리(2007년, 초속 52.4m)와 볼라벤(초속 51.8m) 등 최대풍속 초속 기준으로 역대 5위권에 속하는 태풍이 모두 바다 위로 이동해 한반도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해수 온도가 상승한 것도 대형 태풍이 증가한 원인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태풍은 단순하다. 수증기가 주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바닷물 온도가 높을수록 힘이 세진다.”고 설명했다. 볼라벤이 제주도를 통과해 서해상으로 북상하는 동안 줄곧 중심기압 약 960h㎩, 최대풍속 초속 40~50m의 강력한 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달 서해안 수온이 평년보다 1~2도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 한반도 인근 해수면 온도는 1970년대 평균 16.5도에서 2000년대 평균 17.2도로 올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수화 배운 고릴라 “이 아파”… 인간과 通하다

    수화 배운 고릴라 “이 아파”… 인간과 通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갑자기 울어대면 부모는 당황하게 마련이다. 부모의 경험이 쌓이면서 아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졸립다거나 하는 등의 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지만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같은 고생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 곧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은 다르다. 갑자기 짖기 시작하는 강아지나 시름시름 앓는 고양이는 결코 스스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말’과 ‘의사소통’은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다. 1972년생인 암컷 고릴라 코코는 밀렵꾼에게 어미를 잃고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 자랐다. 올해 마흔살인 코코는 현재까지 알려진 동물 중 ‘사람의 말’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릴라 재단의 페니 패터슨 박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코코에게 말을 가르쳤다. 구강 구조가 사람과 다른 코코는 말을 하는 대신 영어로 된 수화를 배웠고 2000단어를 알아들으며 1000단어를 미국식 수화로 나타낼 수 있다. 코코는 기쁨, 슬픔, 사랑, 고민, 어색함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코코는 스스로 ‘이가 아프다.’를 수화로 전달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2007년 세상을 뜬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알렉스는 150개의 영어 단어를 조합하는 역사상 가장 똑똑한 새였다. 1977년 아이린 페퍼버그 브랜다이스대 심리학과 교수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사 온 알렉스는 특수훈련을 통해 단어를 이해하고 숫자를 세는 것은 물론 색깔과 모양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인간과 대화하는 동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환호했고 동물학자들은 ‘새의 두뇌’에 대해 새로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다른 앵무새들과 달리 ‘더 큰’ ‘더 작은’ ‘위쪽’ ‘아래쪽’ 같은 판단을 표현할 수 있었다. 죽기 전날 알렉스는 새장에 들어가면서 페퍼버그 교수에게 “잘했어요. 내일 봐요. 사랑해요.”라고 말했고 다음 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의사소통은 물론 ‘사투리’까지 하는 프레리도그 코코와 알렉스뿐 아니라 지난 50년간 인간의 말을 이해하거나 말할 수 있는 동물에 대한 연구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1960년대에 수화를 배운 최초의 침팬지 와쇼는 130개가 넘는 수화를 배웠을 뿐 아니라 다른 침팬지 롤리에게 이를 가르치기도 했다. 오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와쇼는 ‘초록 바나나’라는 조어를 사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영장류의 일종인 보노보 원숭이 칸지는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불을 피울 수 있고 회색돌고래 아케아카마이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부터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은 없었고 모두 실험실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사례들이다. 인간은 스스로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고 자신한다. 바꿔 말하면 동물에게 인간의 말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동물의 말을 인간이 이해하는 편이 더 쉽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언어는 인간이 동물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동물의 의사표현을 언어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돌고래, 코끼리, 고릴라, 개 등을 상대로 그들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콘스탄틴 슬로보치코프 애리조나대 교수다.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지난 15년간 북미 지역에 널리 서식하는 설치류인 ‘프레리도그’들의 사회생활을 연구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그는 스스로를 동물과 대화하는 소설 속 수의사 ‘닥터 둘리틀’에 비유한다. 야생의 약자인 프레리도그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소리로 의사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나타날 때와 독수리나 코요테 등이 나타날 때 내는 소리가 다르다. 심지어 인간에 대해서도 총을 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내는 소리가 구분된다. 특히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명사와 동사, 형용사 등으로 프레리도그의 소리가 만들어져 있으며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조합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연구팀이 프레리도그의 소리를 녹음한 뒤 조합해 아무런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들려주자 곧바로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현재까지 프레리도그가 사용하는 최소 50가지 이상의 단어를 찾아냈다.”면서 “사람을 대상으로 ‘뚱뚱하고 키가 큰 사람이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고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미에 사는 프레리도그와 중남미 등 다른 지역에 사는 프레리도그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각자가 ‘고유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최근 프레리도그가 이 같은 언어를 공유하려고 대를 물려 교육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프레리도그는 동물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할 수 있게 한 로제타 스톤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꿀벌·코끼리 등의 의사소통법 찾는 연구 한창 동물들이 의사소통을 한다는 게 처음 입증된 것은 꿀벌을 통해서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카를 폰 프리슈는 꿀벌들이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과 명령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점을 무려 40년간의 연구 끝에 밝혀냈다. 꽃이 있는 곳을 찾은 꿀벌이 동료들에게 8자를 그리는 춤을 추면서 거리와 방향 등을 알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향 자체를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이후 집단을 이뤄 사는 동물들의 행동과 소리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연구가 이어졌고 많은 것이 새롭게 밝혀졌다. 사바나 원숭이들은 표범이나 독수리 등 포식자의 종류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또 코끼리는 밀렵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단체로 인간 마을을 찾아 공격하며 침팬지도 마찬가지다. 늑대들은 사냥을 위해 사전에 의논을 해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인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 명확한 의사소통이 우선돼야 가능한 일들이다. 스탄 쿠자 미시시피대 교수는 “우리는 수십년 전보다 동물의 언어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동물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먼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물학자는 “동물의 의사소통 시스템 자체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동물의 언어를 해독하는 것은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라면서 “하지만 언젠가는 동물 언어의 ‘상징’이나 ‘문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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