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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진정성 회의적… 핵개발 포기한 적 없어”

    “北 진정성 회의적… 핵개발 포기한 적 없어”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16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 북한의 북·미 고위급 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 시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진단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진정성에는 회의적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열린 한·미, 미·중 정상회담과 이달 말 열릴 한·중 정상회담 등 주변국의 공조 움직임에 압박을 느껴 회담을 제의한 것은 아닐까. -한·미·일이 제재를 포기하지 않고 압박을 지속해 온 것은 맞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중국의 대북 정책이 실제 얼마나 변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이 변했다는 추측성 언론보도는 많지만 아직 중국이 변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온건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뿐이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8일 미·중 정상의 대북정책 합의 사실을 강조했지만, 거기에서도 중국이 제재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는 빠져 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회담 제의를 수용할까. -미국 정부도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적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중요한 대화 시도가 두 번이나 무산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2·29 북·미 합의 무산은 충격이 컸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지함이 결여된 대화 제의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실제 비핵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나. -김일성은 생전에 한반도 비핵화를 말했지만 뒤로는 핵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까지 김일성 통치하에서 북한은 계속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 이후 김정일 정권 들어서도 북핵 6자회담에서 핵 포기를 약속해 놓고 뒤로는 핵 개발을 계속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힐링 창신동/정기홍 논설위원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1980~1990년대 대학가에서 불렀던 운동 가요 ‘사계’의 가사다. 이 노래는 재봉틀(미싱)을 돌리던 동대문시장 의류공장 어린 여공들의 고달픔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엔 인근 창신동 여공들의 ‘애환과 꿈’이 자리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서울 종로의 창신동은 골목의 쪽방에서 미싱을 돌리며 옷가지를 만들던 곳, CD 가게가 여공들의 발길을 잡던 곳, 겨울 골목길에 하얀 연탄이 뒹굴던 곳, 골목길 보름달에 ‘시다’의 그리움이 머물던 곳이었다. 지금도 창신동 채석장 바로 밑 봉제 골목에는 동대문 의류시장의 모태 같은 역할을 하면서 미싱은 돌아가고 있지만···. 창신동은 조선시대만 해도 도성에 인접해 유서깊은 동네였다. 낙산을 낀 마을에는 붉은 열매인 복숭아와 앵두나무가 많아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으로 불리며 도성 안 사대부의 ‘별저’(別邸)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의 실학 선구자인 이수광도 경치 좋은 이곳에서 ‘지봉유설’을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에 들어서는 이곳의 돌을 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역(현 서울역), 경성부청(서울시청)을 지었다. 근자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과 화백 박수근이 살면서 인연을 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 법인가. 동대문시장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1970년대 들어 봉제공장이 들어서면서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이때부터 창신동은 여공의 ‘꿈’이 영그는 대표적인 쪽방촌으로 각인된다. 지금은 이곳 3000여개 봉제공장에서 생산된 의류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대표되는 동대문 시장 고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40년 전 그날의 창신동 여공들이 어엿한 봉제공장의 안주인으로 들어앉은 사례도 많다. 창신동을 아는 이들은 말한다. 쪽방의 재봉틀 소리를 뒤로하고 낙산에 올라 본 사람만이 창신동의 골목 이야기를 안다고. 낙산은 창신동·숭인동 달동네를 품고서, 저 너머 동대문 시장의 화려한 불빛을 주시하고 있다. 이처럼 낙산은 쪽방촌의 애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요즘 창신동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열고 있는 창신동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한 ‘Made in 창신동’전이 연일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에는 창신·숭인지역 뉴타운 개발지구가 해제되면서 창신동을 ‘힐링 골목’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봉제 골목과 백남준·박수근이 만날 날이 언제쯤일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폐암 조기진단 55세부터 저선량CT가 효과적

    폐암 조기진단 55세부터 저선량CT가 효과적

    우리나라에서 폐암은 10만명당 31.7명이 숨져 암사망률 1위에 올라 있다. 진단이 어려워 다른 장기로 전이된 후에 진단하는 사례가 흔하고, 치료 예후도 좋지 않아 조기에 수술을 받아도 50%가 5년 안에 재발하며, 5년 생존율도 15%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처럼 위험한 폐암의 조기 진단을 두고 논란이 많다는 것. 현재까지는 CT(컴퓨터단층촬영)가 조기 진단에 가장 유용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방사선 노출과 과잉 진단 등의 부작용 때문에 나라마다 이용률에 큰 차이가 있다. 실제 유럽에서는 3000명을 CT로 촬영하면 1명의 백혈병 환자가 생길 수 있다며 부작용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방사선량을 기존의 6분의1 정도로 줄인 ‘저선량CT’를 개발했지만 이 장비도 검사 연령대와 진단의 효용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세계흉부영상의학 학술대회(WCTI)에는 저선량CT로 폐암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처음 보고한 미국 국가폐암검진연구 책임연구자인 애벌리 교수 등 흉부영상의학 권위자들이 대거 참석해 주목됐다. 애벌리 교수와 대회 조직위원장인 임정기(서울대의대) 교수, 구진모(서울의대)·이기남(동아대의대)·성동욱(경희대의대) 교수 등으로부터 폐암 조기 진단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국내에서는 2011년 한 해에 폐암으로 1만 5800여명이 사망했다. 그만큼 암 중에서도 악성도가 높다. 치료법으로는 외과적 절제와 항암요법, 방사선 치료 등이 있지만 조기 발견되거나 수술이 가능한 경우에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이 가능한 단계의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폐암은 다양한 영상 형태를 보이지만 작고 둥근 형태의 폐결절(혹)이 가장 흔하며, 이 폐결절을 찾아내는 데 가장 탁월한 장비가 CT다. 특히 저선량CT는 일반 CT보다 방사선량을 줄인 것이 특성이다. 방사선량을 줄이면 보통은 영상의 선명도가 떨어지지만 폐는 자연적인 대조도가 높아 폐결절을 찾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폐결절의 상세한 모양을 평가하거나 림프절과 주위 장기로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려면 저선량CT로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폐암이 의심되거나 조직검사에서 폐암으로 진단되면 조영제를 주입해 다시 CT를 촬영하기도 한다. 폐암에 대한 저선량CT의 효용성은 미국 국가폐암검진연구에서 확인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55~75세이면서 30년 이상 하루에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운 사람이 저선량CT 검사를 하면 기존 X선 검사보다 폐암 사망률이 20% 감소한다. 이후 많은 학술 단체가 저선량CT를 폐암 검진을 권고하고 나섰다. 권고안은 미국 국가폐암검진 대상자였던 55세 이상 연령대의 경우 폐암 검진으로 저선량CT를 추천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은 사람은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내에도 적용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등지에서 흉부 X선으로 폐암 조기 검진이 가능한지를 보기 위한 다수의 임상연구가 있었지만 어떤 연구에서도 폐암 사망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은 없었다. 이 때문에 전문의들은 흉부 X선 검사가 폐질환을 찾아내 추적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폐암 검진 방법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EH 폐암이 진단됐을 때 림프절 등의 전이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폐암 조기 검진에 유용하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 방사선 노출이 저선량CT보다 크다는 점도 부담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연방사선에 노출되는 양은 연간 2~3mSv(밀리시버트) 정도로, 저선량CT로 피폭되는 양보다 많다. 방사선에 다량 노출되면 암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진단용 검사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은 대부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 X선은 잠재적 위험보다 검사로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진단용 검사에서는 X선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사선 노출은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므로 질병 진단 목적으로만 활용해야 하며, CT 촬영 전에는 의료진과 상의하는 게 좋다. 폐암의 원인으로는 흡연·가족력과 석면·우라늄·라돈 노출 등이 꼽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흡연이다. 흡연은 폐암 발생 확률을 높일 뿐 아니라 흡연과 연관된 폐암은 악성도도 높다. 따라서 아예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흡연 중이라면 담배를 끊는 게 최선의 예방이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김하정 전 남편’ 신선삼, 과거 사건·사고들은…

    ‘김하정 전 남편’ 신선삼, 과거 사건·사고들은…

    지난 14일 한 종편 채널에 출연해 굴곡진 과거사를 털어놓았던 가수 김하정의 전 남편인 코미디언 고(故)신선삼(1940~2002)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선삼은 1960~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유명 코미디언으로 ‘쓰리보이’(이름에 알파벳 S가 세 번 들어간다는 뜻으로)란 예명으로 활동했다. 1959년 미8군 영내 행사인 ‘김 시스터스 쇼’의 진행자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신선삼은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함께 원맨쇼의 달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한국연예협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 2002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김하정은 방송에서 신선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 첫날밤부터 카지노에 가서 들어오지 않는가 하면 따지는 김하정을 베란다로 쫓아내기 까지 했다는 것. 또 가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무대 의상을 찢어버리는 등 의처증 증상도 있었다. 결국 김하정은 1976년 12월 신선삼의 불륜 현장을 급습해 간통으로 고소했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이혼했다. 신선삼은 생전 각종 사건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1974년 3월에는 밤 늦게 승용차를 운전하다 길을 건너던 행인을 치어서 전치 16주의 상해를 입혔다. 신선삼은 경찰에서 “공연을 마치고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던 중 통행금지에 쫓겨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1986년 6월에는 무면허 운전을 하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신선삼은 내연녀의 동생 김모(당시 29)씨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자동차 사고 뿐 아니라 도박과 폭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81년 1월에는 상습도박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1990년에는 식당에서 만난 선배 코미디언이 “너 오랜만이다”라며 악수를 청하자 “내가 네 부하라도 되느냐”며 얼굴을 때려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신선삼은 이 코미디언의 고소로 수배를 받던 중 부산 모 호텔에서 2달 동안 머물면서 숙박비 400여만원을 지불하지 않은 혐의(사기)로 1993년 경찰에 검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현, “24살 차이 김혜수가 멜로 연기 상대였다”

    노주현, “24살 차이 김혜수가 멜로 연기 상대였다”

    배우 노주현이 과거 전성기 때 멜로의 제왕임을 입증했다. 17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서 노주현은 그 동안 함께 멜로 연기 호흡을 맞춘 상대 여배우들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날 MC들이 “당대 인기 절정의 여배우들과는 모두 연기하지 않았냐”고 묻자 노주현은 “안은숙, 김창숙과 연기했다”면서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1970년대 당시 트로이카로 불리던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멜로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혜수와도 부부 연기를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노주현과 김혜수는 1990년 KBS 주말연속극 ‘꽃 피고 새 울면’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노주현은 41세, 김혜수는 21세였다는 점. 노주현 멜로 연기 상대를 접한 네티즌들은 “노주현, 김혜수와 멜로 연기라니, 상상이 안 간다”, “노주현, 당시에는 브라운관의 신사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센카쿠 분쟁 해결 유보론 시진핑, 오바마 만나 언급”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의 해결을 미루는 ‘유보론’을 거론했다고 일본 NHK가 14일 보도했다. NHK는 미국과 일본 외교 관계자들을 인용, 시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은 센카쿠 영유권 문제의 유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측이 (영유권과 관련한) 입장 차를 인정하지 않아 대화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1970년대 중·일 국교정상화 협상 때 센카쿠 영유권 갈등의 해결을 뒤로 미루기로 ‘이면합의’를 했다는 것이 ‘센카쿠 유보론’의 내용이다.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한 노나카 히로무 전 일본 관방장관이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 간에 “센카쿠 문제 논의를 유보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재부각됐다. 이 발언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색한 반면 일본 정부는 “유보론에 합의한 적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해 “동맹국인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며 중국에 센카쿠와 관련한 ‘세 과시’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고 NHK는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해 시 주석과의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독일 ‘쌍둥이칼’은 280년 전 군인용 단검을 만들던 대장장이 마을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출발했다. 산업혁명 때 민수용으로 전환했다. 오롯한 장인 정신에 생산환경 변화에 맞춰 디자인과 기술 개발이 덧칠됐다. 러시아 목각인형 ‘마트료시카’는 120여년의 역사를 뽐낸다. 일본 목각인형에 착안했다. 예술가들이 수작업으로 만들면서 러시아 상징 민예품이 됐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명품이나 한 나라의 상징물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제품들은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 보잘것없는 규모로 출발했을 가내수공업이 전통의 두께를 더하고, 현대 감각에 맞게 발전하면서 세상 사람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최고 명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통 가내수공업은 딴판이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수공업 제품조차 ‘몰락’했다고 할 만하다. ‘화문석’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산리 강화토산품판매장이 몇해 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재래 돗자리 중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다. 화문석체험장을 운영하는 고미경(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씨는 “예전에는 강화 5일장에 화문석시장이 따로 마련됐는데 줄어든 거래량 탓에 아예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1880년대 강화 일대에는 화문석 재료인 왕골 재배 농가가 1000여 가구나 됐으나 지금은 고작 100가구 남짓이다. 그나마 가구당 재배 면적은 330~660㎡뿐이다. 대개 부업에 그치고 송해·양사면 일부 가구에서 주문을 받아 연간 2000~3000장 짜는 정도다. 1970년대 강화에서만 연간 5만여장이 생산됐는데 말이다. 39년간 수도 역할을 한 고려 중엽 왕실에까지 공급했던 화문석이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것이다. 화문석의 몰락은 1980년대 이후 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카펫이 대세를 이룬 탓이다. 전북 전주 부채도 에어컨과 선풍기에 자리를 내줬다. 부채는 일부 무형문화재들이 소량 생산하고 있다. 양반들은 합죽선, 서민들은 태극선을 무더위를 날리는 필수품으로 삼았지만 이젠 장식품, 소장품, 선물용으로 나가는 정도다. 반면 제작 과정은 복잡해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가내수공업은 원형만 고집하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산업화가 자신의 역사인 외국에선 가내수공업도 자연스럽게 진화했지만 우리는 새것을 급히 받아들이면서 전통 수공업을 버리다시피 한 게 큰 이유다. 외국인들이 선뜻 구입할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전통 제품이 없는 게 아쉽다. 관련 통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때 1만 4000가구에 이르던 전남 보성삼베 제작 농가는 10가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원료인 대마 생산량은 2004년 40t(30㏊)에서 2011년 7.1t(4.3㏊)으로 줄더니 올해 5농가에서 겨우 2㏊를 재배한다. 보성삼베 영농조합 이찬식(70) 대표는 “36년째 종사하는데 너무 힘들고 일손도 부족해 버티기 힘들다”면서 “삼베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고, 일당이 5만원도 안돼 일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남 담양 죽세품의 명성도 옛날얘기다. 대나무공예 명인 9명, 준명인 4명, 무형문화재 6명과 일부 농가에서 만들지만 31개 판매 업소에서도 중국산을 팔 정도로 위상은 초라하다. 경기 안성 유기는 현재 3곳만 가족 공방을 운영 중이고, 경북 안동포는 100여명이 삼베를 짜고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권구찬 안동시 주무관은 “삼에서 실을 만드는 삼삼기가 삼베 짜기의 95%를 차지하는데 기계화가 안 돼 있다”면서 “그렇다 보니 값이 비싸 일부 부유층의 옷과 침구 등으로만 만들어지고 청바지 등 현대 의류 제작은 엄두도 못 낸다. 정부가 기계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안동포 부활은 꿈도 못 꾼다”고 내다봤다. 명성이 덜한 가내수공업은 더 쪼그라들었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고살메마을의 ‘갈꽃비’가 그 예다. 한때 농한기 최고 농가소득원이었던 이 빗자루가 청소기와 플라스틱 빗자루에 밀린 것이다. 농촌 고령화도 한몫했다. 갈꽃의 부드러움으로 자잘한 먼지까지 쓸어 내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은 10명 남짓한 주민이 해마다 3000자루를 만든다.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장식용으로 많이 팔린다. 이장 한병우(51)씨는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면서 빗자루를 만들던 옛날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요즘은 강원 철원 등에서 조금씩 갈대를 사와 빗자루를 만들지만 이마저 머잖아 사라질 판”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스위스는 한 마을 전체가 가위만 만들어 유명해졌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유리공예, 일본은 도자기 마을을 상품화해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면서 “우리 가내수공업은 외국인 특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생산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최고 명품은 수공업에서 태어난다. 우리도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나전칠기가 명함 케이스 등으로 상품을 다각화하는 것에 주목했다. 충남 서천 한산모시도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150년간 양반들 바지저고리를 만들던 데서 벗어나 청바지, 와이셔츠, 팬티, 양말 등 현대 제품까지 제작한다.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고 브랜드화해 모시떡과 모시막걸리 등 먹거리까지 제품을 확대했다. 모시풀 재배 농가도 지난해 150곳에서 올해 190곳으로 늘었다. 2005년 서천군이 한산모시세계화사업단을 만들어 지원한 뒤 모시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돼 팔리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돈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간 소득은 20억원으로 늘었고, 고용 33명 등 부수 효과도 생겼다. 김맹선 군 한산모시계장은 “아직 해외 지명도가 낮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고급화해 부유층이 찾다 보면 외국에서도 알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 정명철 박사는 “(전통 가내수공업은) 지금 없어지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많이 사라졌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부활을 꿈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강화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한국사 교육의 파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최근 일선 교사 출신을 포함시켜 한국사 교육 강화를 위한 추진단을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추진단은 한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 학생이 역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함한 대학입시 과목에 한국사 과목 비중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른 교과목과의 형평성을 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과 같은 제도적인 대책 외에도 학생들이 역사 과목에 대해 스스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수업 내용과 방식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13일 “국어, 영어, 수학도 (수험생들의 지망 대학에 따라) 수능 필수과목이 아닌데 한국사를 예외로 두기 어렵고, 대학들이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수능 필수 응시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입시에서 어떤 과목 성적을 반영할지는 대학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입시를 위해 한국사 지식을 암기한 뒤 입시가 끝나면 넌더리 나서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만들던 과거 교육도 문제였다”면서 “학생들이 한국사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소극적인 대책만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장인 이두형 서울 양정고 교사는 “한국인이 한국사를 알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없고, 역사 과목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도 많다”면서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대입에 포함되지 않은 역사 과목을 공부하라고 무조건 권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역사 교사들이 편향된 이념 논쟁을 걸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진도 맞추기에 급급해 1년 동안 체험학습 한번 못 하는 지금의 역사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0~2011년 역사 과목이 고교 필수과목에서 빠지고 서울대만 수능 중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는 일련의 조치가 이뤄진 뒤 수능에서의 한국사 선택률은 2005년 27.7%에서 지난해 6.9%로 줄었다. 학계 역시 교육부의 역사 교육 강화 의지를 의심한다. 대입 반영률 축소 외에 ▲2009년 총 102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어들어 역사 체험활동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한 수업 시간 ▲최근 매년 바뀌다시피 한 역사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한 수업 연구 미비 등이 역사 교육 황폐화를 불러왔는데, 이 같은 현상을 유도한 게 다름 아닌 교육부라는 지적이다. 김창성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사실만 나열한 역사 교과서를 보며 지금 시대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고, 학생들의 흥미도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사전’이었다면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책’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역사를 홀대하는 교육 당국은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어떤 방식의 역사 수업을 선호하는지 연구한 경기 화성시 동탄국제고의 이해영 교사는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설명식 수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지만 제한된 수업 시간에 진도를 맞추고 입시까지 고려하면 다른 수업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역사 교육이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학생들이 제대로 우리 사회를 이해할 것”이라면서 “19세기 이전의 한국사는 동아시아사 속에서, 20세기 이후의 현대사는 세계사 속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 이후의 현대사는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1970년대 이후는 국사에서 다루기보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과목에서 폭넓게 다뤄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기고] 우리 사회기반산업에 대한 편견과 진실/장연수 동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기고] 우리 사회기반산업에 대한 편견과 진실/장연수 동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우리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사회통합의 저해와 장기적인 국가성장동력의 손실을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예측경제성장률을 3.2%로 낮춘 가운데 정부에서는 2%대 성장률이 고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장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묘책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사회적으로 건설분야에 대한 편향된 시각의 영향으로 정부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수년 동안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철도와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을 설계시공하는 토목사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투입 감소는 건설산업의 후퇴를 가져왔다. 지난해 이후 건설 설계에 주력하는 국내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수년 전에 비해 30% 이상의 대규모 인력 감축을 실시하였으며, 앞으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인력 구조조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국내 건설기술수준 5위 이내의 A 건설사의 예를 들면 금년 예측 토목 수주물량은 해외 6조원, 국내 1조원으로 국내 수주량을 예년에 비해 60%가량 축소해 계획하고 있다. 작금의 부동산 경기침체와 함께 국가기간시설물에 대한 투자 축소는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경기 축소로 이어져 국가경제의 저성장 구조를 고착화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기반산업에 대한 국내의 부족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건설산업 종사자들은 대규모 건설사와 엔지니어링회사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고부가가치의 건설프로젝트 수주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설계 및 시공능력을 향상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증가하고 있는 자연재해를 줄이기 위한 투자,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를 대심도 광역급행철도(GTX)로 연결해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서민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투자, 풍력과 지열 발전 등 친환경에너지시설물에 대한 투자 등 우리사회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투자를 국가가 일으켜 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건설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 경부고속도로·KTX·인천국제공항 등 경제부흥을 일으키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사회간섭자본 시설을 구축하며, 우리나라를 1960~1970년대 빈곤국가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토건산업이라는 명칭으로 건설산업을 비하하며 국가의 잠재적인 경제성장 동력산업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동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개발과 예산집행 사례가 다수 있어 국민들에게 불신을 주고 여론의 압박으로 투자가 축소된 측면이 있었다. 국내경기의 활성화에 파급력이 큰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정부 투자는 명품국가시설물 설계·시공 경험을 배양,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건설경쟁력을 키워 그 기술을 수출하려는 건설기술자의 의지와 노력을 다시금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장려해 줄 것을 기대한다.
  • “이 도로 내 땅이야”

    광주시와 각 자치구가 도로에 포함된 사유지를 보상해 달라는 주민들의 잇단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3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와 자치구가 도시계획도로(폭 6m 이상) 내 무단 점용하고 있는 사유지는 102만 9764㎡(6691필지)로 공시가액이 1546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시가 관리하는 도로 내 사유지만도 49만 5061㎡(1851필지)에 이른다. 자치구별로는 서구가 14만 7697㎡(2217필지)로 가장 많고, 광산구 12만 9456㎡(780필지), 남구 11만 2654㎡(1267필지), 북구 8만 1644㎡(781필지), 동구 6만 7362㎡(613필지) 등이다. 그러나 이는 도시계획도로만을 대상으로 산출한 면적과 예산으로, 일반 도로까지 포함하면 무단 점용 토지는 2~3배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자치구 등은 최근 토지 소유주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도로 내 사유지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 강제 편입되거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 도로를 개설한 곳이다. 하지만 새롭게 땅을 사들인 소유주나 토지를 물려받은 자녀들이 민사상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5년간 사용료) 등을 시와 자치구를 상대로 제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와 5개 구가 최근 3년 동안 부당이득금으로 지급한 예산은 22억원에 달한다. 구별로 현재 진행 중인 소송도 5~7건에 이른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사유지 내 도로를 개설한 만큼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발견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발견

    1970년대 이후 소 사육 방법이 달라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긴다리소똥구리(사진)’가 강원도 영월에서 20여년 만에 발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까지 분포가 확인되지 않았던 긴다리소똥구리 2마리가 강원도 영월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소똥구리는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경단을 만드는 곤충으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류는 우리나라에서 ‘말똥구리’, ‘꼬마쇠똥구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분포한 기록은 있지만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이후 최근까지 구체적인 분포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긴다리소똥구리는 뒷다리 발목 마디가 매우 가늘고 길며 어른벌레의 몸은 둥근 알 모양에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다. 5월쯤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이용해 약 12㎜ 크기의 경단을 만들고 경단 한 개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대부분의 곤충은 번식을 위한 생식활동에만 수컷의 역할이 한정돼 있지만 긴다리소똥구리는 부부가 공동으로 경단을 굴려서 옮기며 땅에 굴을 파 경단을 저장하는 습성을 가졌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우리나라 생물종의 서식 증거로 이용하는 ‘확증표본 확보사업’ 등을 통해 그간 확인되지 않았던 종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국내 기록종의 증거용 표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버진아일랜드 등 탈세루트 집중 해부

    버진아일랜드 등 탈세루트 집중 해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와 국내 주요 그룹의 임원들, 교육·문화계 인사를 비롯한 사회 유명 인사들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뉴스타파가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13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영하는 ‘KBS 파노라마-검은돈의 보물섬, 조세회피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홍콩 등을 찾아 현지 상황과 이들의 탈세 루트를 집중 해부한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해외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은 총 7790억 달러(약 888조원)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최근 ICIJ를 통해 드러난 170개국 13만명의 명단에도 한국인은 245명에 달했다. 홍콩은 매년 10만개 이상의 법인이 설립되는 곳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다. 제작진은 홍콩의 법인 설립 대행 업체를 찾아 은밀한 탈세 정보와 국내로 돈을 몰래 들여오는 방법, 페이퍼컴퍼니라는 것을 감추는 데 쓰이는 패키지 상품까지 취재했다. 한국보다 낮은 세금과 회사의 주인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며 간편하게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주겠다는 업체 등 조세 회피가 이뤄지는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다. 제작진은 또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세피난처 내의 해외법인 현황을 직접 조사했다. 15개의 조세피난처 안에 있는 이들 기업의 해외법인 수는 300여개. 제작진은 버진아일랜드를 찾아 한국 대기업의 해외 법인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확인하고, 어떤 이유로 머나먼 섬에 해외 법인을 만들었는지 기업들의 입장을 들어 본다. 이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세금 회피와 탈세가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심층 분석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서식 확인

    [동영상] 멸종위기 ‘긴다리 소똥구리’ 20여년 만에 서식 확인

    1970년대 이후 소 사육 방법이 달라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긴다리소똥구리(사진)’가 강원도 영월에서 20여년 만에 발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까지 분포가 확인되지 않았던 긴다리소똥구리 2마리가 강원도 영월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소똥구리는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경단을 만드는 곤충으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류는 우리나라에서 ‘말똥구리’, ‘꼬마쇠똥구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분포한 기록은 있지만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이후 최근까지 구체적인 분포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긴다리소똥구리는 뒷다리 발목 마디가 매우 가늘고 길며 어른벌레의 몸은 둥근 알 모양에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다. 5월쯤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이용해 약 12㎜ 크기의 경단을 만들고 경단 한 개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대부분의 곤충은 번식을 위한 생식활동에만 수컷의 역할이 한정돼 있지만 긴다리소똥구리는 부부가 공동으로 경단을 굴려서 옮기며 땅에 굴을 파 경단을 저장하는 습성을 가졌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우리나라 생물종의 서식 증거로 이용하는 ‘확증표본 확보사업’ 등을 통해 그간 확인되지 않았던 종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국내 기록종의 증거용 표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진화하는 고시제도… 변천사 살펴보니

    1948년 처음 시작된 고시는 당시 선발인원의 5%만 공채였다. 특히 현재의 9급 공무원은 대부분 추천으로 임용됐다. 하지만 1961년부터 현재의 5·7·9급 공채와 같은 형태로 고시가 분류됐다. 1999년엔 민간인도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개방형 임용제도가 도입됐다. 2011년에는 민간경력자 5급 채용이 시작되는 등 점점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올해 3회째를 맞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공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직박람회는 여느 기업의 리크루트 못지않은 경쟁과 활기가 넘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공무원 시험과목도 시대상을 반영해 변화하고 있다. 1961년에는 행정학이 추가됐고, 국민윤리 과목은 1981년 추가됐다가 1996년 제외되기도 했다. 2004년 고등고시에 도입된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모든 공채시험에 도입된 역량면접은 고시도 기업 채용과 마찬가지로 인재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5급 고등고시는 처음 시작된 1940년대에는 초급 중학교 졸업자, 1960년대에는 대학 졸업자,1970년대에는 대학 3학년 수료 상당자 등으로 학력에 따른 지원자격이 있었지만 1973년 이후 모든 학력과 경력 제한이 폐지됐다. 행정고시(5급 공개경쟁채용시험)는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외교관 선발이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대체되면 사실상 학력, 나이 제한이 없는 유일한 고시로 남게 된다. 민간경력자 5급 공채는 현재 3년째 연간 100여명을 선발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제도는 중앙부처에서 모두 306개 직위를 수시로 선발 중이다. 올해는 특히 시간제 공무원제도의 활성화로 공무원의 근무 형태가 더 유연해진다. 하루 3시간 이상, 주 15~35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공무원은 경력경쟁채용과 7급 이하 실무직부터 신규채용할 예정이다. 김일재 안전행정부 인력개발관은 “5급 공채는 당분간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장애인, 저소득층, 지방출신 인재 등이 더욱 공직에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개방적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전통주/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최근 열린 재외공관장 만찬의 건배주는 ‘복순도가’라는 경남 언양의 시골 막걸리였다. 이 막걸리는 지난해 핵안보정상회의 때도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면서 마셨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천연 탄산가스 때문에 샴페인 같은 상쾌한 느낌이 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막걸리를 가장 좋아한 사람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66년 여름, 박정희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골프장에 다녀오는 길에 목이 컬컬하다며 삼송동 ‘실비옥’이라는 막걸리 주막에 들렀다. 그 집의 막걸리 맛에 반한 그는 사망할 때까지 14년 동안 청와대로 배달시켜 마셨다고 한다. 지금도 ‘배다리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배다리 술박물관’에는 막걸리를 마시는 박 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이 전시돼 있다. 몇 년 전 뜨겁게 불던 막걸리 열풍이 점점 식어가 전통주 업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술은 본래 유행가처럼 시류를 타지만 아직은 우리 술에 대한 애정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와인이나 사케 같은 외국 술을 선호하고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폭탄주 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주 전문가’인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죽어가는 전통주를 살리겠다고 나선 것은 그래서 반갑다. 우리 전통주는 지역마다 원료와 제조방법, 맛이 다르다. ‘앉은뱅이 술’로 불리는 한산 소곡주, 문배나무의 향이 난다는 문배주, 국화로 빚는 경주 황금주, 송화와 찹쌀로 빚는 완주 송화 백일주, 옥수수로 빚는 강원도 옥로주, 연잎을 재료로 하는 아산 연엽주 등은 모두 귀한 우리 술이다. 또 배와 생강으로 만드는 이강주, 대나무가 원료인 죽력고, 색깔이 붉은 진도 홍주, 술이 곧 안주이고 안주가 곧 술이라는 진양주, 소주의 최고봉 안동소주 등 아직도 수십 종의 전통주들이 명주로 꼽히고 있다. 전해져 오는 전통주는 수백에서 수천 종에 이르겠지만, 상당수는 자가 제조와 소비의 형태이다. 그 다양성이 판매 시장을 좁히는 독이 되었고 명맥이 끊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막걸리를 위시한 전통주는 1970년대에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통주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배상면 국순당 창업자가 별세했다. 고인의 호는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의미의 ‘우곡’(又麯)이다. ‘백세주’로 전통주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시장의 침체 속에서 소위 ‘밀어내기’ 파동을 지켜봐야 했다. 전통주 연구와 더불어 주류시장에서 우리 술의 위상을 높인 고인의 업적만은 평가할 만하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정치의 눈으로 본 문란한 풍속이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 뒤 열린 첫 국무회의. 이 자리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가 잠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가 과다 노출이나 구걸 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것 아니냐는 반발 때문이다. 사람들은 국가가 머리와 치마 길이를 간섭하던 1960~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을 떠올렸다. 자유권 침해, 사회적 약자의 피해 등을 우려한 반대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과다노출에 대한 처벌은 원래 있었다”는 해명이었다. 국가의 통치권이 시민의 일상과 풍속 처벌에까지 이르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경범죄처벌법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4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때도 비슷한 맥락의 처벌규정은 있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의 풍속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경찰범처벌규칙’(1912)을 만들었다. 이후로도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려는 사회규범은 여러 이름으로 꾸준히 등장했다. 퇴폐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 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단속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대체 ‘선량함’의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상위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모호한 규정은 새로운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조변석개해 왔다. 이로 인해 다양한 행위와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은 어느 순간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결코 문란하지 않다. 부제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말해 주듯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으로 일그러진 한국 근현대사의 얼굴을 다룬다. 저자는 “‘풍속’이라 하면 일본에선 핑크산업을 떠올리지만 국내에선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이미지를 먼저 연상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선 풍속 통제가 미군정 이후 일상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규제에서 성 산업으로 축소됐지만, 국내에선 분단체제 이후 풍속에 대한 국가의 관리가 더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의 기준이 어떻게 문화생산과 자아의 주체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작용했는지 고찰한다. 이면에는 정치적 음모나 배경이 자리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를 위해 일제시대 이광수의 ‘무정’이 어떻게 풍속 통제의 담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전시동원 체제를 조장했는지 살펴본다. 또 냉전체제에서 풍속 통제가 ‘망국병’이 되어가는 과정을 에둘러 훑어본다. ‘4·19혁명’의 실패가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면서 ‘소년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국민의 일상과 사생활까지 개입하는 국가의 통치구도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는 결국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1950 ~ 1970년대 현충일 동영상 등 공개

    6·25 전쟁을 마친 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6년, 그동안 산발적으로 지내오던 국군 장병들의 제사를 정부가 공식으로 날을 정해 추모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했다가 1975년 정식 명칭을 ‘현충일’로 개정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5일 제1회 현충일기념식 모습을 담은 대한뉴스 등 현충일 관련 동영상 4건, 사진 6건 등 기록물을 나라기록 포털(contents.archives.go.kr)에 공개했다. 1956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1회 현충일 기념식에는 1956년 5월 31일까지 전몰한 영령들의 추도식이 엄숙히 거행됐다. 함태영 당시 부통령과 유가족,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했으며 소복을 입은 유가족 대표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첫해 동영상뿐 아니라 1965년 제10회 추도식에서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이나, 1975년 제20회 현충일에 주택가 골목에서 묵념하고 있는 엄마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의 현충일 풍경과 사뭇 달라 보인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를 기리는 관련 자료를 보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연탄과 번개탄/박현갑 논설위원

    1970년대 서민생활의 주된 난방 연료는 연탄이었다. 연탄은 뚫린 19개 구멍으로 들어오는 밑불과 산소로 스스로를 태운다. 연탄은 생명의 불꽃이었다. 집집마다 ‘연탄 당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탄불 갈기는 겨울을 나는 데 중요한 일상이었다. 보통 가정용 연탄 보일러는 연탄 두 장을 쓰는데 아래쪽에 놓인 연탄 구멍과 위쪽 연탄의 구멍이 잘 맞아야 제대로 연소가 되면서 열기가 보일러 관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간다. 다 타버린 연탄은 연탄집게를 이용해 버리고 새 연탄으로 바꿔주는데 이때 구멍에서 올라오는 일산화탄소를 피할 길이 없다. 두 연탄이 착 달라붙어 있을 때도 많아 부엌칼 등으로 틈새를 벌려 겨우 새 연탄으로 갈 때도 있다. 보일러 구멍 조절도 중요하다. 열고 닫는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지 않으면 연탄이 빨리 타버리거나 중간에 꺼져버리기 때문이다. 연탄불이 꺼지면 신문지나 휴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붙이는데 불씨가 잘 일어나지 않아 가스를 마셔 가며 호호 불었던 기억을 기성세대라면 한번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연탄가스 중독사 기사도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때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는 게 번개탄이다. 톱밥에 알코올, 아교 등을 섞어 만든 번개탄은 스스로를 불살라 연탄의 밑불이 됐다. 연탄이나 번개탄은 서민생활에 쌀만큼이나 생활필수품이었다. 겨울철이면 집집마다 연탄 보일러 창구에 연탄을 빼꼭히 쌓아놓는 일은 중대사였다. 지게꾼이 지게에 연탄을 짊어지고 산비탈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풍경은 1970년대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연탄 수요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급감하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늘었다. 요즘은 도시가스 보급 등으로 난방체계가 바뀌어 연탄 사용이 대폭 줄었으나 아직도 연탄에 의존하는 가구가 적지 않다. 에너지원으로서 연탄 이용이 줄면서 번개탄의 쓰임새도 바뀌고 있다. 겨울의 보일러실뿐만 아니라 여름 물놀이터에서는 석화나 새우구이 용도로, 야영장 등에서는 삼겹살 등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숯불 도우미로 주목받고 있다. 삶의 연장이자 재충전의 상징물이던 연탄과 번개탄이 최근 들어서는 자살도구로 더 많이 오르내리고 있어 안타깝다. 생계형 근로자, 대학입시에 실패한 수험생, 유명 연예인, 영화제작자, 전 구의회 의장, 전직 장관에 이르기까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번개탄을 이용했다.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 할 때는 그만 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을 불살라 서민의 겨울나기를 도운 연탄과 번개탄의 의미를 한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커버스토리-로컬푸드 시대] ‘로컬푸드’ 해외에선

    “굴뚝 연기가 퍼져나가는 범위 안에서 마셔야 가장 좋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들어봤을 말이다. 맥주나 와인을 품평할 때 나오는 말인데,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신선함을 당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맛 좋다고 굴뚝 바깥으로 운반하기 시작하면 이미 첨가물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이동하는 데 따른 각종 환경오염까지 일어난다는 의미다. 로컬푸드 운동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근처 동네에서 재배한 신선한 음식을 그때그때 섭취하는 게 먹는 사람에게도 좋고, 주변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과 캐나다의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이다. 100마일은 대략 160㎞. 그 정도 범위 내에서 생산되는 음식만 먹자는 것이다. 캐나다의 한 부부가 시작한 이 운동은 거대 농업 회사들이 기계적으로 대량생산한 농산물 대신 인근 지역 공동체 주민들이 생산한 것을 먹자는 운동이다. 그래서 음식 재료도 100마일 안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빵을 구워 먹는다면, 그 빵의 재료인 밀가루가 100마일 안에서 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뻗어나간 슬로푸드도 비슷한 개념이다. 미국식 패스트푸드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대량 생산된 식재료를 이리저리 한꺼번에 뒤섞은 싸구려 음식 대신, 그 지역에서 재배한 재료들을 가지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내면서 천천히 요리해 먹자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산지쇼(地産地消) 운동이 있다. 말 그대로 지역에서 생산해서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1970년대에 등장했고 1980년대부터 일본 정부가 농촌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널리 퍼뜨렸다. 우리나라의 신토불이가 우리 땅에서 난 게 우리 몸에도 좋지 않겠느냐는 감정적 호소에 기반한 캠페인에 가깝다면, 일본의 지산지쇼는 생산자협동조합 구성이나 직판장 강화, 학교급식과의 연결처럼 실제적인 편의성이 더 강조되어 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라디오 DJ 이종환 영결식 엄수

    라디오 DJ 이종환 영결식 엄수

    지난달 30일 폐암으로 별세한 라디오 DJ 고(故) 이종환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가수 최성수와 남궁옥분, 개그맨 전유성 등 50여명의 유족과 지인이 참석했다. 최성수는 추모사를 대신해 고인의 애창곡을 불렀다. 남궁옥분은 고인의 별세를 애도하는 내용의 추모사를 낭독했다. 영결식은 약 20분간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유해는 고향인 충남 아산에 안치된다. 음악다방 DJ로 활동하다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고인은 1970-198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DJ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이종환의 음악살롱’으로도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1970년대 국내 포크음악의 산실 쉘부르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6년에는 20년간 MBC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주는 골든마우스 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2011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고인은 지난달 30일 오전 1시께 서울 노원구 하계동 아파트 자택에서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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