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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9시 등교/문소영 논설위원

    특목고, 자사고에 진학하지 않은 평범한 공립 고등학생인 우리 집 10대 청소년은 자정이 넘어도 잠자리에 들지 않아 골칫거리다. 술 약속이 없는 저녁이면 반드시 밤 12시 전에 취침하는데, 10대 청소년에게 잘 것을 늘 간청해야 한다. 1970년대 방영된 미국 드라마 ‘월튼네 사람들’처럼 방의 전등 스위치를 꺼주면서 “잘 자라”는 정겨운 취침 인사를 하겠다는 의도이나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에 열을 올리는 10대는 자유로운 올빼미처럼 자정을 넘기길 원한다. 경기도 거주자인 탓에 추석이 지난 뒤부터 우리 집 10대도 오전 9시까지 등교한다. 30분이 늦어진 것으로 가족들의 오랜 생활 방식이 헝클어졌다. 10대는 등교가 늦어진 30분만큼 더 늦게 자려고 기를 쓴다. 아침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도 겹쳐져 북새통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초등학생은 오전 7시 15분에 등교용 스쿨버스를 타고 8시까지 등교한다. ‘9시 등교’가 학생의 수면권과 조식권을 보호한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취침시간을 두고 질풍노도의 청소년과 실랑이를 계속할 생각을 하니 독립운동도 아니고 이런 갈등이 웬일인가 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파라다이스상 새달 14일 수상

    파라다이스상 새달 14일 수상

    파라다이스상위원회(위원장 김주영)는 16일 ‘제9회 파라다이스상’ 수상자로 문화예술 부문에 김영욱 서울대 석좌교수, 사회복지 부문에 션-정혜영 부부를 선정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김 교수는 1970년대부터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며 한국음악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후학 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션-정혜영 부부는 나눔 활동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한 기부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부 문화 선도에 이바지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14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 [문소영의 시시콜콜] ‘대박통일’과 인공기

    [문소영의 시시콜콜] ‘대박통일’과 인공기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에 태극기가 있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는 인공기가 있다. 1987년 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규정돼 국가로서의 북한을 부인하지만, 그 이후 1991년 9월 18일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 두 국가로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한 민족 두 개의 국가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여당으로 정부를 책임지던 노태우 대통령 때다. 1990년 소련과 수교한 뒤 북방정책을 펴 적성국가(敵性國家)로 분류됐던 공산국가인 동유럽과 중국(1992년)까지 수교하자 북한이 유엔 동시가입 반대를 철회한 덕분이다. 유엔 동시가입의 기획은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1973년 6·23 특별선언에 담긴 정신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6월 23일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을 발표하기 전 그 내용을 북한 정부에 미리 통지했다. 이 외교비사는 지난해 12월 밝혀졌다.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영국 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외교문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한 해 전인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기 전에 박 대통령은 북한에 미리 알려준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1970년대에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각기 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데 사활을 걸었지만, 물밑에선 큰 정보도 주고받고 협상도 했던 것 같다. 7·4공동선언이 그 결과물이다. 물론 정부가 북한에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최근 경기 고양시 종합운동장 주변 도로에 인공기가 게양됐다며 항의 소동이 일었다.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 58조에 따르면, 모든 경기장 및 그 부근, 호텔, 선수촌과 메인프레스센터, 공항 등에 참가국 국기를 달아야 한다. 북한이 참가했으니 인공기 게양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 11일 인공기 게양 및 소지는 경기장, 시상식장, 선수촌 등 최소한으로 축소했고, 남한인이 소지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덕분에 북한이 중국을 3-0으로 이긴 15일 축구경기에서 푸른 한반도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북한에서 태극기가 걸린 적 있느냐는 질문에 남북관계에 상호호혜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시각을 느낀다. 그러나 올 초 박 대통령이 강조한 ‘통일 대박’과 ‘유라시아 철도 연결’ 같은 구상이 현실적인 정책으로 성사되려면 호혜평등 기준만으로 가능할까 싶다. 먼저 허용할 여유도 있어야 한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줌 인 서울] 가리봉 ‘슬럼’ 딛고 도시 재생 꿈꾸다

    [줌 인 서울] 가리봉 ‘슬럼’ 딛고 도시 재생 꿈꾸다

    뉴타운 지정 뒤 개발 중단으로 슬럼화된 구로구 가리봉지구에 다문화가정과 공존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된다. 서울시는 가리봉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을 해제하고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다고 16일 밝혔다. 서울 35개 뉴타운 사업구역 중 지구 전체가 해제되기는 종로 창신·숭인지구에 이어 두 번째다.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지만 주민 갈등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이 표류를 거듭하다 지난 2월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포기하면서 결국 이같은 수순을 밟았다. 시는 이달 주민공람 등 행정예고에 이어 11월 재정비심의를 거쳐 지정을 최종 해제한다. 시는 가리봉동 인구 중 30%가 중국동포인 점을 고려, 이들과 내국인의 화합을 꾀하고 치안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중국동포시장과 연변거리는 시설 현대화를 통해 차이나타운처럼 명소로 거듭날 수 있게 지원한다. 또 가리봉동이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사이에 있는 특성을 살려 정보기술(IT) 관련 청년 창업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하고, 벌집촌은 공공건축가를 투입해 1970년대 여성근로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디지털단지 근로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등으로 개선한다. 주택개량 자금을 지원하고, 골목길 보안등과 폐쇄회로(CC)TV 등 치안시설도 늘린다. 하지만 한쪽에선 가리봉지구 도시재생사업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중국동포가 거주 인구의 30%를 넘고, 이에 따라 건물 불법 증·개축이 많아 도로 등 기반시설 설치 과정에서 보상 등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도 “불법으로 건물을 쪼개 임대해 살고 있는 경우 이전 보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토지·건물주의 70%가 외지인이라는 점도 문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익 전망이 불투명한 도시재생의 경우 집주인들이 자기 돈을 들여 건물을 수리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평양~원산서 미군 북진 멈췄으면 통일됐을 것”

    “평양~원산서 미군 북진 멈췄으면 통일됐을 것”

    헨리 키신저(91) 전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펴낸 저서 ‘세계질서’(World Order)에서 미국이 1950년 한국전쟁 때 평양~원산 부근에서 북진을 멈췄으면 중국의 군사개입을 막고 통일을 이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군이 한반도의 가장 좁은 목인 평양~원산 라인에서 진격을 멈췄으면 북한 전쟁 수행 능력의 대부분을 궤멸시키고 북한 인구의 90%를 흡수해 통일한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경을 놓고 중국과 문제가 될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미군이 평양~원산에서 멈춘다면 중국은 당장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마오쩌둥은 미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이를 중국에 대한 ‘봉쇄’ 전략으로 인식하고 군사개입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마오쩌둥은 미국이 한국을 점령한 뒤 베트남과 주변국들을 침략할 것이라고 여겼다”며 “이에 따라 마오쩌둥은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3년 조선반도를 침략했을 당시 중국 지도자들이 구사했던 (군사개입) 전략을 되풀이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국전쟁은 중국엔 굴욕의 세기를 끝내고 세계 무대에 나서는 상징임과 동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라며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1970년대 미·중 수교의 물꼬틀 트는 등 친중 성향의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은 북한의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며 “북한 문제 논의는 미·중 ‘신형 대국 관계’를 위한 큰 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제임스 조이스는

    ‘다 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소설, 읽는 내내 계속 읽을 것인지를 갈등하게 하는 소설.’ 일생 굴곡을 겪지 않은 위대한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일생은 그의 작품에 대한 서평만큼이나 다사다난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최고의 소설’ 1위에 여러 차례 선정된 ‘율리시스’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D H 로렌스의 ‘차타레 부인의 사랑’만큼이나 영미권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각국에서 음란물로 출판이나 연재가 금지되거나 중단됐고 재판도 이어졌다. 영어로 쓰인 율리시스가 처음 출간된 것은 당시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던 프랑스 파리였다. 영국에서는 출간 이후 모두 압수됐다. 영국의 공공도서관에 ‘율리시스’가 처음 비치된 것은 1970년대가 돼서였고, 그나마 지나치게 자극적이란 이유로 사서들에게만 열람이 허용됐다. 조이스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와 더블린을 작품의 무대로 삼았지만, 정작 율리시스가 논쟁이 된 1915년 이후 스위스 취리히로 옮겨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선구적인 예술가의 삶이 항상 그렇듯 조이스가 뒤늦게 조망 받으면서 오늘날 조이스는 흑맥주 ‘기네스’와 함께 아일랜드의 상징이 됐다. 조이스의 작품은 영미권에서 가장 많은 논문이 쓰인 소설들로 꼽히며, 영문학계에서는 “율리시스가 만들어낸 문학박사가 율리시스를 읽은 독자보다 많을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 더블린에는 ‘조이스 산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이스와 관련된 다양한 관광상품이 자리 잡고 있고,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는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관광객이 찾아온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6월 16일에는 더블린 전역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을 기리는 ‘블룸스데이’ 행사가 펼쳐지고, 그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따라하는 팬들도 부지기수다. 고국이 버린 조이스가 별다른 관광상품조차 없는 아일랜드의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낭만 수요일’엔 꿀맛같은 명작 나들이

    ‘낭만 수요일’엔 꿀맛같은 명작 나들이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어 좋아요. 프로그램이 끝난 뒤 동년배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꿀맛입니다.” 지난 10일 서울 태평로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날 덕수궁관에서 두 번째로 열린 ‘낭만 수요일’ 프로그램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10여명이 참석해 오손도손 정다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작품 해설사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며 여유를 즐겼고,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서울 상계동에서 온 60대 노인은 “1960~1970년대 작품들이어서 옛 기억을 더듬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과 과천관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이어 가는 ‘낭만 수요일’이 조용히 화제를 모으고 있다. 1시간가량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미술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 김환기(1913~1974)의 ‘달 두 개’(1961), 최욱경(1940~1985)의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 등 정물화와 풍경화 5~6점을 만날 수 있다. 작품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6월부터 과천관에서, 이달 3일부터는 덕수궁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두 행사는 모두 연말까지 이어진다. 대상을 특화해 그들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해설과 함께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동참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회당 20명으로 참가 인원인 제한되며 참가 문의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나 덕수궁·과천관으로 하면 된다. (02) 2022-0646, 2188-6305.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세계의 창] 1707년 英과 합병… 20세기 북해유전 발견되며 독립의 꿈

    [세계의 창] 1707년 英과 합병… 20세기 북해유전 발견되며 독립의 꿈

    스코틀랜드는 영국(그레이트 브리튼)을 구성하는 4개 지역(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중 한 곳이다. 오는 18일 스코틀랜드의 410만 유권자가 독립에 찬성하면 307년 동안 유지됐던 대영제국은 해체된다. 켈트족의 스코틀랜드와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가 써 내려온 애증의 역사에서 변곡점이 된 사건과 인물을 키워드 삼아 분리독립의 흐름을 짚어 봤다. ●윌리엄 월리스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 독립영웅 윌리엄 월리스를 모델로 했다. 월리스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으나 이듬해 폴커크 전투에서 패했다. 증오심에 찬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그를 처형지로 끌고 가 나무에 목을 매달았고, 숨이 끊기기 전 끌어내려 거세하고 창자를 꺼내 불태웠다. 그리고 주검 조각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도처에 내걸었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올해로 꼭 700주년(1314년)이 된 배넉번 전투에서 승리해 독립했다. 그러나 17세기 들어 두 왕실은 혼맥으로 연합왕국을 이뤘고, 1707년 스코틀랜드는 영국으로 합병됐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스코틀랜드 젊은이가 영국군으로 징집돼 전사했다. 1919년 이에 항의하는 ‘레드 클라이드사이드’ 운동이 벌어졌는데 영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1920~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은 스코틀랜드 대표 도시 글래스고로 집중됐다. 2차대전 때 스코틀랜드는 나치 독일의 집중 표적이 되기도 했다. ●북해유전 스코틀랜드가 독립의 꿈을 다시 꾸게 된 것은 1970년대 들어 북해유전이 발견되면서부터다. 독립 진영은 최대 240억 배럴에 이르는 석유 매장량을 기반으로 새 국가를 건설하면 노르웨이와 같은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채산성이 떨어져 2050년쯤 북해유전이 소진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마거릿 대처 스코틀랜드인들은 보수당 출신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그 여자’(the woman)라고 부른다. 대처는 스코틀랜드의 기반이었던 철강과 조선산업을 해체 수준으로 구조조정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 5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 지역에서 보수당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앨릭스 샐먼드는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불린다. 1990년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당수에 오른 이후 1999년 자치의회 수립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스코틀랜드 의회선거에서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마침내 과반 의석을 차지해 집권에 성공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수당 정권이 추진한 긴축정책과 민영화는 스코틀랜드의 ‘좌경화’를 심화시켰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의 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스코틀랜드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2012년 말 전격적으로 주민투표 방안을 허용했다. 보수당은 현재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석 59석 가운데 단 1석만 차지할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만일 독립안이 가결된다면 캐머런은 세계사적으로 길이 남을 정치적 오판을 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숀 코너리 vs 조앤 롤링 투표 열기가 뜨거워진 또 다른 이유는 스코틀랜드와 연고가 있는 유명 인사들의 찬반 대결 때문이다. 독립에 가장 적극적인 문화예술인은 배우 숀 코너리다. 그는 ‘스코틀랜드여, 영원히’라는 문신까지 새겨 넣었다. 인기 팝 듀오 유리스믹스의 여성 보컬인 애니 레녹스, 작가 어빈 웰시, 시인 리즈 록헤드도 찬성 운동을 펼쳤다. 반면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100만 파운드(약 17억원)를 반대 캠페인에 후원했다.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에마 톰슨,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잉글랜드 편에 섰다. ●파운드 분리독립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영국의 화폐인 파운드화 지속 사용 여부다. 찬성파는 파운드화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어림없다”고 잘라 말했다. 만약 영국이 파운드 사용을 허용하더라도 파운드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 의미에서 독립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시장에서 당장 통용될 자체 화폐를 만들 만큼 스코틀랜드의 경제력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찬성 여론이 높아질수록 런던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스코틀랜드의 대표 금융사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로이드 금융, 스탠더드라이프는 독립이 된다면 스코틀랜드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독립 투표가 부결되면 결국 파운드가 스코틀랜드의 꿈을 좌절시켰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엄정중립을 약속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4일(현지시간) 결국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스코틀랜드인이었던 여왕은 “(유권자들은) 미래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독립 반대를 선언한 것이다. 전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찬반 우세가 근소하게 엇갈렸다. 여왕의 막판 개입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40여만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마지막 관전 포인트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파독 광부·간호사도?..’라인강의 기적’ 외국인노동자 열악한 연금생활

    파독 광부·간호사도?..’라인강의 기적’ 외국인노동자 열악한 연금생활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경제부흥기를 맞아 5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입해 왔다.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 1세대로 불리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의 노년생활은 ‘최저생활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외국에서 유입되어 온 노동자들이 현재 독일사회에서 확연히 낮은 연금 수혜 때문에 “극히 고도의 빈곤위기”에 처해있으며 초라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독일 슈피겔지가 ‘한스-뵈클러’재단이 운영하는 경제사회학 연구소(WSI,친 노동조합 계열) 연구결과를 인용, 최근 보도했다. 현재 독일 남성 평균 1190 유로(한화 약 170만원), 여성에겐 572 유로의 연금이 매달 지불되고 있는데 반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연금액은 월 평균 남자가 789 유로, 여자가 427 유로라고 전했다. 또한 이 연구소는 그 중 가장 적은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터키인들인데 중요한 이유는 많은 이들의 학력수준이 낮기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독일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연금수령인들의 12.5%만이 최저생활 보조대상인데 반해,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41.8%는 빈곤으로 생활이 위협받고 있다고 연구소는 발표했다. 학자들은 이 연구결과를 독일로 이주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논쟁 자료로 이용가능하다며, “경제적 목적을 위한 이주정책 도구화”를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고국을 떠난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사회적 결과가 잉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60~1970년대 남부유럽을 중심으로 수백만 외국인 노동자가 독일에 유입되어왔다. 이들은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터키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비유럽권 출신으로 한국인 광부나 간호사들도 이에 포함된다. 9월 10일은 100만 번째 외국인 노동자 포르투갈인 로드리게스씨가 쾰른-도이츠 역을 통해 독일에 입국한지 50일째 되는 날이다(사진). 자국이 힘들 때 독일에 와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습의 일면이 떠올라 조금은 씁쓸하다. 사진= 100만번째 외국인 노동자로 독일에 입국하는 로드리게스씨(AFP) 최필준 독일 통신원 pjchoe@hanmail.net
  • [기업투자가 지역경제 살린다] 롯데그룹, 부여군에 활력

    [기업투자가 지역경제 살린다] 롯데그룹, 부여군에 활력

    충남 부여군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부여읍내에서는 3층 이상 건물을 볼 수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12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있는데 이곳에 오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야트막한 건물과 좁고 소박한 도로가 정겨운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같은 감상은 부여군민들에게는 사치다. 백제의 혼이 담긴 고도로 부여군은 ‘군 전체가 문화재’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유산이 많다. 그 덕에 거의 모든 지역이 고도(古都)보존지구로 묶여 있다. 부여군이 보유한 문화재는 240여개에 이르며, 국가지정문화재만 무려 52개다. 낙화암, 궁남지, 정림사지 5층석탑,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왕릉원, 백마강 등 유명 유적지가 즐비하다. 문화재는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개발의 발목을 잡는 요소이기도 하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문화재청을 폭파하자” “백제를 너무 많이 팔아먹었다”는 자조적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1970년대 17만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현재 7만 3000여명 수준이다. 한국인삼공사의 홍삼공장과 강판을 만드는 대림CNS 공장 외에 대규모 사업체도 없다. 65세 인구가 30%가 넘고, 주민 대다수가 농업(40%)에 종사하는 이곳에서 관광은 군 재정을 돌게 하는 윤활유다. 연간 찾아오는 관광객은 500만여명. 짱짱한 문화유산 덕에 만만찮게 발길을 끌지만 쇼핑·숙박·오락 등 인프라가 부족해 부가가치를 높일 재간이 없다. 부여군의 재정자립도는 9%로 충남도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지천이 문화재인 현실뿐 아니라 넉넉하지 않은 곳간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2010년 롯데그룹이 부여군에 진출한 뒤 조금씩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롯데는 2007년 충남도가 추진한 백제문화단지의 민간사업자로 참여했다. 규암면 합정리 일대 총 330만㎡(100만평) 부지에 조성한 백제문화단지 사업은 1993년 시작됐으나 17년 만인 2010년 완성됐다. 부지 절반엔 사비궁, 위례성 등 백제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재현한 ‘왕궁촌’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등을 지은 뒤 나머지 절반엔 숙박·쇼핑·레저 등의 시설을 지을 요량이었으나 애초 민간사업자인 삼부토건이 부도가 나면서 한동안 난항을 겪었다. 이완구 당시 충남지사가 백방으로 뛰어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을 설득해 투자협약을 맺었고 롯데는 4000억원을 투자해 2010년 리조트를 시작으로 2012년 골프장, 2013년 아웃렛을 차례로 세웠다. 지난 3일 평일인데도 백제문화단지와 롯데아웃렛 부여점은 제법 사람이 붐볐다. 이날 320개가 넘는 리조트 객실도 거의 만실을 기록했다. 롯데아웃렛 부여점의 류금석 점장은 “아웃렛 개점 1년 동안 다녀간 방문객이 350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중부권을 대표하는 문화·관광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란 기대가 높지만 롯데가 이곳에 들어오기로 한 결정은 모험에 가까웠다. 특히 아웃렛 프로젝트에 대해선 내부 반대가 무척 심했다. 류 점장은 “배후상권이 취약하기 때문에 경제논리만 따지면 이곳은 아웃렛 등 쇼핑시설이 들어오기에는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여군 자체 인구도 작은데다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군산, 익산 등도 30만명 수준이다. 타지에서 연결되는 교통 또한 그리 좋지 못했다. 이러니 해외 명품은 고사하고 국내 유명 브랜드 유치도 쉽지 않았다. 애초 2만 6446㎡(8000평)에서 1만 6529㎡(5000평)으로 규모를 줄여 ‘프리미엄’을 떼고 문을 연 이유다. 부여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물리친 이는 신동빈 회장이다. 신 회장은 “롯데가 하면 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직원들에게 불어넣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도 했다. 류 점장은 “부여점이 기와 등 한옥식으로 지어진 데는 신 회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며 “때문에 보통 12개월 정도 걸리는 아웃렛 오픈이 부여점은 30개월이나 소요됐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부여점이 백제의 미(美)를 훼손하지 않는 건축물이 되길 바랐다. 원래 정해진 설계도를 물리친 신 회장의 제안에 따라 직원들은 중국 쓰촨성에 있는 전통거리인 진리(錦里)거리를 탐방하며 부여점에 대한 콘셉트를 다시 잡기도 했다. 진리거리는 삼국시대를 재현한 거리로 중국인들의 영웅인 유비와 제갈량의 사당이 있다. 개점 1년이 된 부여점은 의외의 실적을 거두며 순항 중이다. 매출 목표도 7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협력사 직원 500여명 가운데 60%가 부여군민으로 지역 고용창출에도 기여했다. 부여군 관계자는 “부여에 있는 대형 사업체라곤 한국인삼공사 공장과 대림CNS뿐인데 롯데리조트와 아웃렛이 생기면서 지역 젊은층 고용여건이 한결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의 진출에 대해 고운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통업체의 지역 진출은 늘 지역 소상공인들과 마찰을 낳는다. 롯데도 마찬가지. 이치영 부여소상공인회 회장은 “아웃렛이 들어선 이후 그나마 읍내에 있던 옷가게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유동인구도 줄었다”며 씁쓸해했다. 때문에 롯데는 최대한 상생에 신경 쓰고 있다. 아웃렛 오픈 전 읍내의 브랜드의류 가맹점주들 가운데 원하는 이들에게 아웃렛 입점권을 먼저 부여했다. 얼마 전엔 지역 갈등의 원인이 됐던 롯데마트 아웃렛 입점을 깨끗하게 포기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읍내 중앙로에서 열린 거리축제에 인력을 파견하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나름 상인들과 행보를 맞추려 노력 중이다. 이런 까닭에 롯데의 진출을 무조건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인들 가운데 부여읍내와 아웃렛을 연결하는 백마강 사이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놓거나 수중요트를 타고 건널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아이디어와 민원도 제기되고 있다. 부여군 또한 올 초 기자회견을 열어 투자를 확대하라고 롯데와 충남도를 압박하기도 했다. 2007년 업무협약(MOU) 체결 때 2013년까지 총 8개 시설을 짓기로 했으나 아웃렛 이후 롯데는 숨 고르기 중이다. 롯데는 현재 2015년까지 사업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아웃렛 배후 부지에 어린이 테마파크, 자연농장 등 가족단위 레저·휴양시설 건립을 두고 계열사에서 실사작업을 벌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부터는 개장 이후 적자행진을 하고 있는 왕궁촌의 위탁 운영도 맡는다. 충남도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롯데월드 등 테마파크 운영의 경험이 풍부한 롯데가 백제문화단지의 빈약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여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 의친왕, 62세에 날 낳아” 어머니 나이는..‘충격’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 의친왕, 62세에 날 낳아” 어머니 나이는..‘충격’

    ‘마지막 황손 이석’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이 화제다. 지난 4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한 이석은 비운의 역사 속 마지막 황손으로서 자신의 삶을 털어놨다. 이날 이석은 “내가 세종대왕의 28대손이다. 나의 고고조 할아버지가 정조대왕이고 흥선대원군은 증조부다”라고 마지막 황손임을 밝혔다. 이어 “기골이 장대했던 아버지 의친왕은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 13명과 딸 20명을 두었다. 나는 11번째 아들이다. 아버님이 날 62세에 낳았다. 어머니는 옛 관습대로 19세였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26살 때부터 무려 9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한 이석은 “동생 4명을 데리고 죽으려고 했다. 약을 사서 술에 타 마시기도 했다. 도봉산 바위에 올라가서 떨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더라. 죽을 때가 아니었던 거 같다”고 고백했다.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은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수영장•빌딩 청소 등을 하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마지막 황손 이석, 기구한 인생이구나”, “마지막 황손 이석, 어린시절부터 마음 고생이 많았겠다”, “마지막 황손 이석, 자살 시도 9번이나..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KBS(마지막 황손 이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마지막 황손 이석, 조선 황실 비화 공개…“아버지 의친왕 기골 장대…62세 때 날 낳아”

    마지막 황손 이석, 조선 황실 비화 공개…“아버지 의친왕 기골 장대…62세 때 날 낳아”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이 자살 시도를 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이석은 4일 오전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비운의 역사 속 왕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 이석은 “내가 세종대왕의 28대손이다. 나의 고고조 할아버지가 정조대왕이다. 흥선대원군은 증조부”라며 “기골이 장대했던 아버지 의친왕은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 13명과 딸 20명을 두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11번째 아들이다. 아버님이 날 62세에 낳았다”며 “어머니는 옛 관습대로 19세였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석은 “황손으로 태어난 걸 처음에는 많이 비관했다”며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렀지만 교통사고도 났다. 결국 자살을 하려고 유언장까지 썼다”고 설명했다. 과거 생활고로 인해 그룹 비둘기집의 멤버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석은 최근 한 광고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것에 대해 “연예계 30~40년 있으면서 광고 모델을 하지 않았다. 왕실에서 ‘진짜 광대가 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었다”며 “그런데 이번 광고는 세종대왕 역을 맡았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다. 촬영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세종대왕 어진이 6.25때 다 타서 조각가가 내 모습과 관악산 효령대군 동상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은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수영장ㆍ빌딩 청소 등을 하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황손 이석 소식에 네티즌들은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가 의친왕이었구나” “마지막 황손 이석, 의친왕 어땠을까”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 의친왕 어땠을지 궁금”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지막 황손 이석, 조선 황실 비화 공개…“아버지 의친왕 기골 장대…62세 때 날 낳아” 회상

    마지막 황손 이석, 조선 황실 비화 공개…“아버지 의친왕 기골 장대…62세 때 날 낳아” 회상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이 자살 시도를 했던 과거와 조선 황실의 비화를 고백했다. 이석은 4일 오전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비운의 역사 속 왕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 이석은 “내가 세종대왕의 28대손이다. 나의 고고조 할아버지가 정조대왕이다. 흥선대원군은 증조부”라며 “기골이 장대했던 아버지 의친왕은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 13명과 딸 20명을 두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11번째 아들이다. 아버님이 날 62세에 낳았다”며 “어머니는 옛 관습대로 19세였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석은 “황손으로 태어난 걸 처음에는 많이 비관했다”며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렀지만 교통사고도 났다. 결국 자살을 하려고 유언장까지 썼다”고 설명했다. 과거 생활고로 인해 그룹 비둘기집의 멤버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석은 최근 한 광고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것에 대해 “연예계 30~40년 있으면서 광고 모델을 하지 않았다. 왕실에서 ‘진짜 광대가 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었다”며 “그런데 이번 광고는 세종대왕 역을 맡았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다. 촬영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세종대왕 어진이 6.25때 다 타서 조각가가 내 모습과 관악산 효령대군 동상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은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수영장ㆍ빌딩 청소 등을 하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황손 이석 소식에 네티즌들은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가 의친왕이었다니 신기하다” “마지막 황손 이석, 의친왕 그리울 듯” “마지막 황손 이석, 아버지 의친왕 황실생활 어땠을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지막 황손 이석, 자살 기도 비화 공개…“태어났을 때 아버지 의친왕 나이가…”

    마지막 황손 이석, 자살 기도 비화 공개…“태어났을 때 아버지 의친왕 나이가…”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이 자살 시도를 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이석은 4일 오전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비운의 역사 속 왕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 이석은 “내가 세종대왕의 28대손이다. 나의 고고조 할아버지가 정조대왕이다. 흥선대원군은 증조부”라며 “기골이 장대했던 아버지 의친왕은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 13명과 딸 20명을 두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11번째 아들이다. 아버님이 날 62세에 낳았다”며 “어머니는 옛 관습대로 19세였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석은 “황손으로 태어난 걸 처음에는 많이 비관했다”며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렀지만 교통사고도 났다. 결국 자살을 하려고 유언장까지 썼다”고 설명했다. 과거 생활고로 인해 그룹 비둘기집의 멤버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석은 최근 한 광고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것에 대해 “연예계 30~40년 있으면서 광고 모델을 하지 않았다. 왕실에서 ‘진짜 광대가 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었다”며 “그런데 이번 광고는 세종대왕 역을 맡았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다. 촬영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세종대왕 어진이 6.25때 다 타서 조각가가 내 모습과 관악산 효령대군 동상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은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수영장ㆍ빌딩 청소 등을 하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황손 이석 소식에 네티즌들은 “마지막 황손 이석, 의친왕이라니 역사 속에서 나온 듯” “마지막 황손 이석, 의친왕 그립겠다” “마지막 황손 이석, 의친왕 62세 때 태어났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영 칼럼] ‘박세리 키즈’와 리영희 혹은 후쿠야마 키즈

    [구본영 칼럼] ‘박세리 키즈’와 리영희 혹은 후쿠야마 키즈

    며칠 전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10가지’ 중 대표적 사례로 여자 골퍼들의 역량을 꼽았다.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때마다 한국 낭자군이 리더보드 상단을 차지하고 있으니 빈말은 아니다. 최근 LPGA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김인경이 아깝게 준우승했다. 그 직전까지 이미림, 박인비, 유소연이 LPGA 3개 대회 연승 행진을 벌이던 터였다.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도 신지애, 이보미, 안선주가 상금왕 3파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박세리 키즈(kids)’다.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자 박세리의 ‘맨발 투혼’을 보며 골프에 입문한 그들 말이다. 젊은 날 누군가에게 감화를 받고 분발의 계기로 삼는 이들이 박세리 키즈뿐이겠는가. 유신 치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는 리영희 교수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등은 사실상 금서였다. 당시 리 교수의 책을 함께 탐독한 학우들 중 일부는 마오쩌둥을 정말 ‘위대한 혁명가’로 받아들였다. 작가 이병주가 그랬던가.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필자에겐 달빛 어슴푸레한 골방에서 읽던 금서의 솔깃한 메시지가 오래갈 순 없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마오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이 수천만 중국인을 사지로 내몬 폭거였음이 백일(白日)하에 드러났지 않는가. 최근 ‘리영희 키즈’로 남지 않은 게 천만다행임을 거듭 실감했다. 지난달 말 탄생 110주년을 맞은 덩샤오핑에 대한 대륙의 엄청난 추모 열기를 보면서. 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마오는 공업화와 인간혁명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상찬했다. 하지만 마오가 밀어붙인 대약진운동 기간 중 3800만여명의 무고한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리 교수는 생전에 마오의 이런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인민의 운명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적 흐름까지도 바꿔놨다”고 마오의 노선을 뒤엎은,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극찬했다. 덩처럼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쫓겨 ‘하방’(下放: 지방 오지에서의 강제 노역)의 쓴맛을 본 그가 허튼소리를 했을 리는 없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스탈린이나 마오,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등 마르크스-레닌 사생아들의 경제 실험이 좌초하며 각광을 받은 인물이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일본계 3세 정치경제학자인 그는 ‘역사의 종언’에서 오만하게도 변증법적 역사발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로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가 지구촌의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는 지론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면 더 이상 역사적 진보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일종의 ‘후쿠야마 키즈’들이 경제적으론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론 신보수주의(네오콘)와 손잡고 맹위를 떨치는 동안 뜻밖의 반전이 이뤄졌다. 정작 후쿠야마 본인이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를 목격하고 미국식 시장경제의 비전이 허물어졌다고 지적하면서다. 자신의 오류를 일부 인정한 셈이다. 후쿠야마든 리영희든 극단적 주장만 펴는 인물이 젊은이들의 ‘사상의 은사’가 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일 게다.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든 우든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내 생각만 옳다”며 독선적·비타협적 주장을 펴는 이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다간 세월호에 이어 대한민국호(號)가 가라앉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다. 이념적 편향 없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정직한 스포츠에서 한국정치가 배워야 할 판이다. 그게 박세리 키즈의 성공이 주는 교훈이다. “국가 조직(정책)에도 궁극적 인식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더 나은 해결책을 향한 접근만 있을 뿐”이라는 철학자 칼 포퍼의 겸손한 어록이 새삼 와 닿는 요즘이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 40년 만에 빗장 푼 대관령 하늘목장

    40년 만에 빗장 푼 대관령 하늘목장

    “푸른 가을날 동해가 조망되는 해발 800m 목장 길을 걸어 봅시다.” 소와 목동들만 머물던 강원 평창 대관령 ‘하늘목장’이 40년 만에 처음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한우축제까지 연다. 하늘목장은 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1970년대 초 목장으로 개발된 하늘목장이 이달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돼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고 밝혔다. 목장은 당초 축산업을 통한 식량 자급을 목표로 개발됐지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목장의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첫 ‘자연순응형 체험목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일반인들은 목장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동물들을 만지고 함께 어울리며 초지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다. 옛 목동들에 의해 만들어진 4개 산책로 흙길을 걸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국내 대표 기업목장으로 9000만㎡ 넓이인 하늘목장에서는 현재 400여 마리의 홀스타인 젖소와 100여 마리의 한우를 친환경적으로 사육하고 있으며 연간 1400t에 이르는 1등급 원유와 대관령 청정 한우를 생산하고 있다. 개장 이벤트로 이달 한 달 동안 입장료를 면제하고 관광객들은 송아지 먹이 주기, 트랙터마차(2.2㎞) 타기, 승마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개방과 함께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 동안 목장에서는 ‘평창 대관령한우축제’도 열린다. 평창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귀여운 동물 친구들, 블루벨 마을 지키는 특공대로 변신!

    귀여운 동물 친구들, 블루벨 마을 지키는 특공대로 변신!

    1970년대 전설의 애니메이션 ‘독수리 오형제’ 이후 ‘파워레인저’까지 이른바 ‘전대물’(戰隊物·여러 명이 팀을 이뤄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 애니메이션은 변함없는 인기를 끌어왔다. 정의의 용사들이 갖은 어려움과 위기를 딛고 악당을 물리쳐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뻔한 줄거리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손바닥의 땀을 닦아가며 봐야 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것들이라 본의 아니게 일본의 왜색 문화 침투 선봉대 역할을 맡았다는 비판을 종종 듣곤 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한국형 동물 특공대가 나왔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는 3일부터 3D 신규 애니메이션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를 방송한다. 동물 세계 블루벨 마을을 지키는 비밀 조직인 동물특공대의 볼트(다람쥐), 새미(부엉이), 루시(사막여우), 맥스(비버) 대원들은 힘없고 작은 동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평소 귀여운 동물이지만 악당이 나타나면 레인저로 변신, 괴짜악당 ‘나인’과 부하 ‘파스칼’로부터 평화로운 블루벨 마을을 지켜낸다. 더 큰 위기가 나타나면 각자 타고 다니는 특공카를 특공 로봇으로 변신 합체시켜 강력한 파워를 선보인다.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는 국내 최대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삼지애니메이션에서 기획, 제작한 것으로 그동안 동물 자동차로 유명한 ‘부릉부릉 부르미즈’, ‘기상천외 오드패밀리’, ‘외계인 붐’ 등을 제작해왔다. ‘부릉부릉 브루미즈’는 지난해 중국, 아랍권, 베트남, 러시아, 터키 등으로 진출했는가 하면, ‘기상천외 오드패밀리’는 프랑스에서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열풍을 일으켰다. 매주 수요일 밤 7시 13분짜리 분량으로 편성되는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는 모두 52회로 예정돼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반복·비움·저항의 결과물…그게 단색화”

    “반복·비움·저항의 결과물…그게 단색화”

    “1970년대 군정이 들어서자 (예술계가) 꽁꽁 얼어붙고,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됐죠.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되자 뜻도 없고 이미지도 없는 작업을 반복했는데 여기에 저항의 뜻을 담았어요. 민중미술 진영에선 단색화가들을 비판하곤 하지만 단색화는 저항이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이우환 화백) 거장의 목소리는 다소 떨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한 축을 이루는 ‘단색화’를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는 이우환(78) 화백을 비롯해 한국 단색화의 1세대 거장인 박서보(83), 하종현(79) 화백이 전례 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음달 19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시인 ‘단색화의 예술’ 간담회에는 이들 외에 윤진섭·정준모 평론가, 알렉산드라 먼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큐레이터, 샘 바르뒬·틸 펠라스 독립큐레이터, 정도련 홍콩 M+뮤지엄 수석큐레이터 등이 참여했다. 단색화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수십여명의 해외 취재진도 눈에 띄었다. 박서보 화백은 “(단색화는) ‘저것도 그림이냐’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멸시를 당했다”면서 “겉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수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비워내야만 가능한 작업”이라고 소회했다. 하종현 화백도 “단색화는 이제 한국의 독창적인 미술 사조로 대접받는다”고 강조했다. “수도승처럼 끊임없이 반복한 결과물”이라고 거장들이 입을 모은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핵심 사조로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시작돼 한 세대가 지났지만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면서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이어 간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 유사성 때문에 한때 서구 모노크롬 회화의 아류로 치부됐으나 최근 이 같은 오해에서 많이 벗어났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이우환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던 먼로 큐레이터는 “서구는 서구식으로만 단색화를 보는 경향이 있다”며 “197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단색화들은 모노크롬이나 회화 자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독특한 문화적, 시대적 특성을 담았다”고 말했다. 서구 ‘모노크롬화’와 달리 중간 색조의 배경, 반복적인 무늬, 표면 위의 찢긴 흔적들이 의도적으로 기존 해석 방식을 피해 갔다는 설명이다. 전시기획자인 윤진섭 평론가는 “한국 단색화는 정신성, 촉각성, 행위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면서 “박서보의 선묘, 이우환의 선과 점의 행렬, 정상화의 뜯어내기와 메우기, 정창섭의 한지 겹치기, 하종현의 물감 밀어내기, 김기린의 물감 뿌리기 등에는 모두 수십회의 반복이 공통적으로 녹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정상화(82), 김기린(78)도 참여했으며 작고 작가인 정창섭, 윤형근까지 모두 7인의 작품 100여점이 나왔다. 곤궁했던 시절 화가들의 절박한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다시 고개든 KKK

    미국 뉴욕주 햄턴 베이에 사는 카를로스 엔리케 론도뇨는 최근 집 앞에서 ‘미국을 구하려면 이곳에 가입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KKK(쿠클럭스클랜) 회원 가입 신청서를 발견했다. 그는 “난 콜롬비아 출신인데다가 유색 인종이어서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흑인 주민은 “내 이웃이 이런 전단지를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우려했다. 가입 전단지를 받은 주민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31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텍사스주를 비롯해 12개 도시 거주민이 KKK가 사탕과 함께 살포한 가입 권유 전단을 받았다. ‘퍼거슨 사태’로 촉발된 흑백 인종갈등과 불법이민이 올해 미국 주요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백인 우월주의 과격단체 KKK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가입원 모집과 홍보를 통해 세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흑인, 유대인, 이민자, 동성애자, 천주교 신자 등을 향해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던 이 조직은 1970년대 이후 숱한 법정 소송과 내부 갈등으로 세력이 많이 약화됐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KKK멤버는 5000∼8000명이다. 흑인과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인 남부빈곤법센터(SPLC)에서 일하는 라이언 렌즈는 CNN 방송에 “KKK 관계자들이 퍼거슨시를 방문해 백인 경찰을 지지하고 백인 시위대와의 유대를 강화했다”며 KKK의 재등장으로 인한 갈등을 우려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이민호 ‘강남블루스’ 포스터 공개…유하 감독과 ‘말죽거리 잔혹사’ 성공 재현할까

    이민호 ‘강남블루스’ 포스터 공개…유하 감독과 ‘말죽거리 잔혹사’ 성공 재현할까

    이민호의 차기작 ‘강남블루스’ 포스터가 공개돼 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31일 배우 이민호가 영화 ‘강남블루스’의 포스터를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강남블루스’ 크랭크업’이라는 글과 함께 공개했다. 공개된 포스터 속에서 이민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민호가 공개한 ‘강남블루스’ 포스터에 많은 팬들과 네티즌들은 수 만 번의 공유와 ‘좋아요’ 등을 누르며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호 강남블루스 포스터에 네티즌들은 “이민호 강남블루스, 영화 보고 싶다” “이민호 강남블루스, 어떻게 기다리지?” “이민호 강남블루스, 유하 감독과 손 잡다니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민호가 출연하는 ‘강남블루스’는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인생’의 유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누아르 영화로 1970년대 강남을 배경으로 배우 김래원, 정진영, 김지수 등이 출연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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